조니 뎁

최근 수정 시각:

파일:나무위키+상위문서.png   상위 문서: 배우/서구권

파일:할리우드 명예의 거리.png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 입성자

[ 펼치기 · 접기 ]

이름

조니 뎁
JOHNNY DEPP

분야

영화

입성날짜

1999년 11월 16일

위치

7018 Hollywood Blvd.

[ 펼치기 · 접기 ]

1976년

1977년

1978년

잉그리드 버그만

다이애나 로스

앙리 랑글루아

자크 타티

로버트 도프만

1978년

1979년

1980년

르네 고시니

마르셀 카르네

샤를 바넬

월트 디즈니

피에르 브롱베르제

1980년

1981년

1982년

루이 드 퓌네스

커크 더글러스

마르셀 파뇰

알랭 레네

조르주 댄시거즈

1982년

1983년

1984년

알렉산드르 노우츠킨

Jean Nény

안제이 바이다

Raimu

르네 클레망

1984년

1985년

조르쥬 드 보르가르

에드위지 푸이에르

크리스티앙 자크

다니엘 다리외

Christine Gouze-Rénal

1985년

1986년

알렝 프와레

모리스 자르

베티 데이비스

장 들라누와

René Ferracci

1986년

1987년

1988년

1989년

클로드 란츠만

장 뤽 고다르

세르지 실버만

베르나르 블리에

폴 그리모

1990년

1991년

1992년

제라르 필리프

장 피에르 오몽

소피아 로렌

미셸 모르강

실베스터 스탤론

1993년

1994년

1995년

장 마레

마르첼로 마스트로야니

제라드 우리

장 카르메

잔 모로

1995년

1997년

1997년

그레고리 펙

스티븐 스필버그

로렌 바콜

앙리 베르누이

샤를 아즈나부르

1997년

1998년

1999년

앤디 맥다월

마이클 더글라스

클린트 이스트우드

장 뤽 고다르

페드로 알모도바르

1999년

2000년

조니 뎁

장 로슈포르

조지안 발라스코

조르쥬 크라벤느

장피에르 레오

2000년

2001년

2002년

마틴 스콜세지

데리 코울

샬럿 램플링

아녜스 바르다

아누크 에메

2002년

2003년

제러미 아이언스

찰리 리치

베르나데트 라퐁

스파이크 리

메릴 스트립

2004년

2005년

2006년

미셸린 프레슬

자끄 뒤트롱

윌 스미스

휴 그랜트

피에르 리차드

2007년

2008년

진 해크먼

마이클 더글러스

잔 모로

로베르토 베니니

로미 슈나이더

2009년

2010년

2011년

2012년

2013년

더스틴 호프만

해리슨 포드

쿠엔틴 타란티노

케이트 윈슬렛

케빈 코스트너

2014년

2015년

2016년

2017년

2018년

스칼렛 요한슨

숀 펜

마이클 더글러스

조지 클루니

페넬로페 크루즈

파일:조니 뎁.jpg

이름

조니 뎁 (Johnny Depp)

본명

존 크리스토퍼 뎁 2세 (John Christopher Depp II)

국적

미국 파일:미국 국기.png

출생

1963년 6월 9일(만 55세), 켄터키 주 오언즈버러

거주

캘리포니아 주 로스앤젤레스

직업

배우, 음악가, 프로듀서

활동

1984년 – 현재

신장

178cm

가족

배우자, 로리 앤 앨리슨 (1983 – 1985)
배우자, 앰버 허드 (2015 – 2016)

자녀

릴리 로즈 뎁, 잭 뎁[1]

역대 골든 글로브 시상식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Golden_Globe_Trophy.jpg

남우주연상 - 뮤지컬 및 코미디

제64회
(2007년)

제65회
(2008년)

제66회
(2009년)

사샤 바론 코헨
(보랏)

조니 뎁
(스위니 토드: 어느 잔혹한 이발사 이야기)

콜린 패럴
(킬러들의 도시)


1. 소개2. 락커, 배우가 되다3. 데뷔초4. 팀 버튼페르소나5. 해적왕 등극6. 여자관계
6.1. 허드 폭행 의혹
7. 자녀8. 논란
8.1. 스태프 폭행 의혹
9. 여담
9.1. 동안?
10. 출연작

1. 소개[편집]

할리우드 간지남의 아이콘이자 할리우드 현지에서 가장 높은 인기를 자랑했던 배우[2]

2000년대 할리우드 천의 얼굴[3]

미국의 영화배우이다.

위그노계 프랑스, 독일, 아일랜드, 그리고 체로키 원주민의 혈통을 물려받았다. 때문에 그의 얼굴은 서양인에서 관찰되기 어려운 든 광대뼈가 조금 두드러진 편이므로 본토에서는 아메리카 원주민을 닮았다는 평이 있다.[4]

그의 성인 뎁(Depp)은 프랑스계 성씨다.

2. 락커, 배우가 되다[편집]

그는 본래 '키즈'라는 록 밴드의 멤버였다. 그러나 여느 비인기 가수가 그렇듯이 가난한 음악생활을 하며 살고 있었는데, 당시 그의 아내였던 로리 앤 앨리슨을 통해 친해지게 된 니콜라스 케이지의 권유로 배우 일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저 집세를 내기 위한 임시방편으로만 생각했다고 한다. 배우가 된 이후에도 음악에 대한 그의 열정은 여전했는데, 90년대 중반에 그는 미국 얼터너티브 록 밴드인 버트홀 서퍼스의 멤버와 함께 프로젝트 밴드인 P를 만들어 활동하였다. 더불어 잭 스패로우 캐릭터의 모티브를 롤링 스톤즈의 기타리스트 키스 리처드에게서 따왔다고 밝히는 등 그는 록 음악을 상당히 좋아한다. 이외에 2013년에 그는 55회 그래미 어워드에서 소개자로서 등장하였다.

3. 데뷔초[편집]

파일:external/pds22.egloos.com/f0033738_4d999bf207f4b.jpg

1984년, 《나이트메어 : 엘름가의 악몽》에서 끔살당하는[5] 풋풋한 고등학생 역으로 데뷔한 이래, 그는 1986년 올리버 스톤 감독의 《플래툰》에서 베트남어 통역병으로서 연기하는 등 그다지 눈에 띄지 않았다. 그러다가 팀 버튼 감독의 1990년작 《가위손》의 주연으로 음울함과 동시에 따뜻한 마음을 가진 가위손을 연기하여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신인시절 그는 다수의 하이틴드라마에 단역 및 조연으로 출연하기도 했으며, 드라마 《21 점프 스트리트[6]의 주인공을 맡아 91년까지 다섯 시즌에 출연했다.[7] 여담으로 이 시리즈에는 단역으로 출연했던 신인시절의 브래드 피트의 모습도 볼 수 있다.

4. 팀 버튼페르소나[편집]

그 후 팀 버튼 감독의 페르소나가 되어서《에드 우드》, 《찰리와 초콜릿 공장》, 《슬리피 할로우》, 《스위니 토드 : 어느 잔혹한 이발사 이야기》,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다크 섀도우》 등등 수 많은 작품을 함께 찍었으며, 개인적으로도 굉장히 친하다. 흠좀무. 사실 버튼 말고도 비주류 및 인디 영화에 많이 출연했다. 대표적으로 짐 자머시의 《데드 맨》. 버튼의 영화에서 감독의 여친 헬레나 본햄 카터하고 삼콤비를 이루는 때도 많은데, 카터 본인도 "남편이 영화에서 절친하고 사귀게 해 준다"라고 농담하기도(…).

초기엔 가위손 이미지가 너무 강해서 마음고생이 심했다고. 이후로도 가족들이 본인을 편안하게 볼 수 있는 정상적인 인간 배역을 원했지만 뭘 찍어도 가위손 배우의 이미지를 벗어나지 못했었다. 그만큼 연기를 잘했다는 방증이겠지만... 하지만 후술할 배역 덕분에 드디어 그 이미지를 벗어나게 됐다.

5. 해적왕 등극[편집]

그가 본격적으로 스타덤에 오른 작품은 《캐리비안의 해적》이다. 그는 이 작품에서 주인공인 캡틴 잭 스패로우로서 연기하였는데, 그가 연기하였던 잭 스패로우는 기존의 호탕하고 통쾌한 해적의 영웅과 같은 모습을 비틀어 약간 허술하고 비열한 안티 히어로의 역할을 훌륭히 연기해냈다. 매번 기괴하고 작가주의 성향이 짙은 작품에만 출연했던 뎁은 아이들과 같이 볼수있는 영화를 찍기를 원했는데, 마침 캐리비안의 해적 시리즈가 그의 아이들이 좋아할만한 영화라고 생각되어 출연했다.

여담이지만 이 영화 3편에서 그가 잭 스패로우의 이미지를 따왔다고 했던 롤링 스톤즈의 멤버 키스 리처즈가 잭의 아버지로 카메오 출연하기도 했다. 이 역시 뎁의 활약이 컸다고 한다.

그는 캐리비안의 해적 시리즈에 대한 애정이 깊어 주요 배역들이 빠진 4편에 홀로 출연하기도 했으며, 이후 시리즈에도 출연계약을 했다. 사실 잭 없는 캐리비안의 해적 시리즈는 의미가 없기도 하다.

"난 언제 죽을지 몰라도 해적의 인생이지." -케리비안 해적 낯선 조류 마지막 장면. 이제는 빼도 박도 못 한다. 강제도 영원한 해적인생.

해적 왕으로서의 일화로 '베이비버드(Babybird)'의 보컬 스티븐 존스가 강도를 당할 때 조니 뎁이 '그냥 가라'라고 경고했고, 강도는 "잭 스패로우 선장한테 돈을 훔칠 순 없지"라고 말하며 그냥 가려고 했다.출처

6. 여자관계[편집]

배우가 되기 전 록밴드의 멤버로 활동하고 있을 시절, 동료 멤버의 친척인 메이크업 아티스트 로리 앤 앨리슨과 만나 스무 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결혼했다. 2년만인 1985년에 이혼했으나 그는 "후회하지 않는다. 좋은 경험이었고 많은 것을 배웠다"고 회상했다. 그 후 드라마 《21 점프 스트리트》에서 만난 배우 쉐릴린 펜과 3년 간 교제하며 약혼도 했으나 파혼했다. 제니퍼 그레이와도 2개월이라는 짧은 연애 기간 동안 약혼과 파혼을 거쳤다.

그 다음 만난 위노나 라이더와 가장 열렬한 사랑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1989년 라이더가 출연한 영화의 뉴욕 프리미어에서 처음으로 마주쳤으며 서로에게 첫눈에 반했다고 한다.[8] 만나기 시작한 지 다섯 달 후 약혼했고, 라이더가 영화 촬영 중 과로로 쓰러졌을 때는 뎁이 라이더를 돌보기 위해 동거를 시작했다. 인터뷰에서 "위노나와 나눈 감정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경험한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다" 또는 "거의 나 자신보다도 그녀를 더 사랑한다"라는 말을 남기는 등 각별한 애정을 드러내며 공개 연애했다. 4년간의 교제 끝에 1993년 결별했으나, 그 후로도 가끔 함께 식사하거나 서로를 응원해주며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최근에는 라이더가 뎁의 가정폭력 사건과 관련해 "자신이 아는 한 그럴 사람이 아니다"라며 옹호하는 발언을 했다.

이후 여러 배우 및 모델들과 수많은 염문을 낳다가 케이트 모스와 만나기 시작했는데, 1994년부터 1997년까지 사귀면서 이때 역시 약혼과 파혼을 반복했다. 모스와의 연애는 마약과 퇴폐적인 생활로 떠들썩했으며 94년에는 호텔 방에서 싸우다 기물파손 죄로 뎁이 체포되기도 했으나, 여러 인터뷰들을 살펴보면 모스가 뎁에게 정신적으로 많이 의지했던 것으로 보인다. 한편 팀 버튼은 뎁이 모스를 진심으로 사랑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9]

1998년부터 그는 프랑스의 가수 겸 배우 바네사 파라디와 동거하며 딸 릴리 로즈 뎁과 아들 잭 뎁을 낳았다. 2012년까지 14년간 사실혼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물론 아이들이 있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런데 2012년 초에 뎁-파라디 커플의 파경설이 돌기 시작했는데, 뎁의 상대로 지목된 여성은 프랑스 출신의 여배우 에바 그린. 그린이 워낙 한 포스하는지라 "그럴 만하다" 혹은 "넘어가지 않는 것이 이상하다"라는 반응이 나왔다.(…) 뎁은 그린과의 스캔들에 관해 직접적인 언급을 하지 않았으며, 마찬가지로 그린도 이에 대한 어떠한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뎁과 파라디 둘 다 파경설 직후 이를 부정했지만, 결국 2012년 6월에 뎁이 파라디와의 결별을 공식적으로 인정. 뎁 측과 파라디 측의 결별 사유가 서로 다르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뎁은 파라디의 성격에 질려서이고 파라디는 뎁의 여성관계에 질려서 결별했다고.

뎁은 그가 파라디와 결별하기 전 찍었던 영화 《럼 다이어리》에서 그와 같이 출연했던 금발의 미녀 여배우 앰버 허드와 만나 사귀기 시작했는데, 그는 그녀와 2013년 12월에 약혼했다. 둘의 나이차는 무려 23살이다. 그러나 뎁은 평소 가정적이고 딸바보같은 이미지로 워낙에 유명했기에 본토에서는 허드와의 연애로 인하여 많은 비난을 받고 그의 이미지는 추락했다. [10] 영화를 찍는 동안 파라디를 속이고 허드랑 눈 맞았냐고 비난하는 사람들이 많다. 허드에 대한 대중들의 반응 역시 부정적인데, 그녀가 뎁과 연애를 하여 유명해지고자 하는 것이 아니냐 라는 반응이다. 그러나 2015년 2월 5일, 드디어 그는 앰버 허드와 결혼식을 올렸다.

6.1. 허드 폭행 의혹[편집]

그리고 앰버 허드와 15개월 만에 갈라서며 2016년 5월부터 공식적으로 이혼 소송이 시작됐다. 사람들은 '그럴 줄 알았다'는 반응이 많은 편. 그런데 허드 측에서 이혼 사유로 뎁의 가정폭력이 원인이라는 주장을 하며 폭행 혐의로 뎁을 고발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허드는 멍이 든 얼굴로 법원에 등장하여 눈물을 터뜨리기도 했다. 만약에 사실이라면 뎁이 가지고 있던 기존의 좋은 이미지를 한방에 날릴 수도 있는 충격적인 사건이라 팬들도 경악하는 중. 여기에 허드 측에서 신청한 접근 금지 신청을 법원에서 받아들여서 접근금지 명령을 받았다. 기사, 기사2

허드의 증언에 의하면 뎁은 마약과 술에 빠져 지내고 있으며, 정신적으로 불안한 상태라고 한다. 뎁은 이에 대해 어떤 변명도 늘어놓지 않고 "결혼생활을 빨리 끝내고 싶다"는 말만 되풀이한다.

허드가 정황상 돈 뜯으려고 주작을 한 것이 아니냐는 의견이 제기되었지만, 허드는 연기력은 폭망이어도 거대 프로젝트인 DC 확장 유니버스저스티스 리그에 캐스팅되기도 했기 때문에 이 이슈는 이기든 지든 허드에게 좋은 것이 별로 없다는 점에서 그다지 신빙성 있는 정보는 아니다.

허드와 이혼하기 얼마 전에 나온 뎁의 신작인 《거울 나라의 앨리스》는 악평을 받았으며 가정폭력 사건이 터지기 전 며칠 전에는 모친상을 치렀다. 뎁으로서는 여러모로 배우로서도 개인으로서도 최악의 해를 보냈을 터.

한편 지인들은 뎁이 폭력을 행사할 사람이 아니라고 옹호하고 있다. 이 지인들 중에는 조니 뎁과 헤어진 전 연인 바네사 파라디도 "조니는 그럴 사람이 아니다"라고 뎁을 두둔하고 있다. [11] 딸인 릴리 로즈 뎁도 포함.

이혼소송에서 뎁을 압박하기 위한 허드의 자작극이라는 반론도 있다.

우선 가정폭력이 사실이라면 형사 고소를 하여 폭력 관련 형사재판과 이혼 재판을 병행하는 것이 허드 측에 훨씬 유리한 일이고 일반적인 관례이기도 한데 해외 여론은 허드가 형사고소를 하지 않고 있다는 점에 의문을 표하는 의견이 많다. 거기다 신원미상의 누군가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LAPD 측에서 현장에서 그 어떤 폭행의 증거도 찾지 못했다는 점. 당시 경찰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 뎁은 자리에 없었고 당사자인 허드 역시 돌아가라 하기에 조사조차 하지 않고 돌아갔다는 점인데 허드 측은 이때 폭력을 저지른 뎁이 도망을 가면서 입 다물 것을 요구하며 회유했기에 일이 커지는 걸 원하지 않아 경찰을 돌려보냈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사건에 대한 미국 경찰들의 대응방식을 아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의문을 느낄 만한 사안인데, 미국 경찰들은 가정폭력의 피해자가 원하지 않는다고 해서 조사 현장을 놔두고 되돌아갈 사람들이 절대로 아니다. 피해자가 괜찮다고 뜯어말려도 현장에 아주 약간의 폭행 조짐이라도 보이면 일단 뒤집고 본다할 정도로 대단히 철저한 대응을 보여주는 게 이들인데, 허드 측의 주장대로 뎁의 회유에 허드가 폭행현장을 치워서 감추었다 하더라도 그 철저한 미국 경찰이 돌아갈 정도로 아무런 증거도 남지 않는다는 게 가능하냐는 것이다. 경찰의 초기대응 미숙이었다고 주장할 수도 있겠지만 이걸 또 어떻게 증명하느냐가 관건이라 해외에선 어마어마한 논란이 있었다.

그러다 2016년 8월, 유튜브에 앰버 허드가 직접 찍은 조니 뎁 몰래카메라 영상이 올라왔다. # 동영상에선 조니 뎁의 앰버 허드에 대한 신체적인 폭력은 없었으나, 조니 뎁이 술에 취해서 물건을 거칠게 다루는 모습이 나왔다. 현지에선 이 부부의 불화가 얼마나 심한지 보여준다고 베니티 페어는 보도했다.

이혼 소송 끝에 앰버 허드가 700만달러(한화 77억 2800만원)를 가져가는 것으로 합의 되었다. 부부가 합의함에 따라 허드는 조니 뎁이 자신에게 신체적으로 폭력을 썼다는 주장을 철회하는 신청서를 썼다. 소송에서 "우리의 관계는 강렬한 열정과 시간에 휘발성, 하지만 항상 사랑으로 결합 했었다"고 부부들은 말했으며 "서로 경제적 이득을 위해 거짓 주장을 하지 않았고 신체적 또는 정신적 피해의 의도는 결코 없었다. 앰버는 조니 뎁의 최상의 미래를 기원하며 앰버는 자선 단체에 이혼 위자료를 전액 기부할 것"이라고 베니티 페어는 밝혔다.

7. 자녀[편집]

유명한 딸내미바보로, 딸이 낙서한 셔츠를 자랑스럽게 입고 다닌다든가, 딸이 플라스틱 구슬을 꿰어 만들어 준 장난감 팔찌를 패션 아이템(…)처럼 항상 착용하고 다닌다든가 하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재밌는 점은 할리우드 가십에서 형편없는 센스라고 사정없이 까다가 딸아이가 만들어준 것이라는 그의 해명이 세간에 돌자마자 이에 대한 대중들의 반응은 급격하게 변하였다. 더하여 그는 딸과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해 바비 인형(!)을 갖고 함께 놀기도 했다. 열심히 연구해 다양한 톤의 목소리로 인형놀이를 함께 하자 딸은 짜증을 내며 "아빠 원래 목소리로 돌아와요!"라고 말했다.

딸의 이름은 릴리 로즈 멜로디 뎁. 언론에 상대적으로 덜 부각되기는 하지만 그는 슬하에 아들도 두었다. 그의 아들의 이름은 잭이다. 《찰리의 초콜릿 공장》같은 경우는 딸이 자신이 영화에 나오길 바라서 출연했다는 말이 있다. 그는 평소 블록버스터 영화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캐리비안의 해적》에 출연한 이유는 출연작 중 아이와 공감할 수 있는 영화가 많지 않았기 때문에 딸아이와 함께 보고 공감할 수 있는 영화를 찍고 싶어서(…) 출연했다고 한다. 당시 그의 딸은 4살이었다. 과연 그는 딸내미바보다. 그런데 《캐리비안의 해적》 시리즈는 PG-13...[12] 다만 딸과 아들은 스파이더맨을 더 좋아한다는 듯하다. 잭 스패로우 목소리로 '헤이~ 꼬마들, 어때?'라고 꼬셨는데, 반대로 '아빠 스파이더맨 보러 가지 않을래?'라고 대꾸해서 섭섭했다고 한다(…). 그래도 아이와 공감대를 형성하려는 노력이 헛되지 않았는지, 자식들이 사춘기에 접어든 후에도 많은 대화를 나누고 있는 모양이다. 릴리로즈가 16세 때 LGBT 화보 프로젝트 참가로 커밍아웃을 하여 사람들을 놀라게 했는데, 이에 대해 묻는 인터뷰에서 조니 뎁은 이미 예전에 딸이 얘기해 주어서 알고 있었다고 답했다. 그는 릴리로즈의 커밍아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결정은 아이들의 몫이고 자신이 해 줄 것은 부모로서 아이를 응원하는 것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아이가 생기기 전에는 히피 기질이 있었고 그래서 그는 담배도 피우고 마약도 하였으나, 아이가 태어난 이후에는 사람이 완전히 변했다고 한다. 스스로도 인터뷰에서 '내 인생은 딸이 태어나기 전과 후로 나뉜다'라고 말했을 정도다. 딸아이가 신장병에 걸렸던 07년에 그는 모든 활동을 중단했고, 아이의 병이 치료된 후에는 병원에 100만 파운드를 기부했다. 이건 정말 부모마음인 듯하다. 덤으로 그는 10년 가까이 동거상태였던 아이들의 어머니이자 연인 파라디에게 결혼신청을 한 것도 딸이 병에 걸렸던 것이 큰 작용을 했다고 한다.[13]

전 여친 파라디가 프랑스인이라 그런지는 몰라도, 뎁은 프랑스어를 할 줄 안다. 다만 능숙하게 말할 수 있는 정도는 아니고 약간 말할 줄 아는 정도라 오히려 자녀들이 자신의 프랑스어를 바로 잡아준다고 한다.[14]

8. 논란[편집]

8.1. 스태프 폭행 의혹[편집]

촬영중이던 영화에 일하던 스태프가 조니뎁에게 폭행당했다며 주장했다. 조니뎁은 스태프가 본인을 먼저 폭행했다 주장하나 스태프측도 터무니없는 소리라며 왜 본인이 배우를 폭행하냐고 하며 논란이 되고있다.

9. 여담[편집]

  • 오른쪽 팔뚝에는 아들의 이름인 JACK (잭)을 문신으로 새겼고, 가슴에는 딸의 이름을 문신으로 새겼다.

  • 싸인을 가장 잘 해주는 영화배우 no.1으로 뽑힌 기록이 있다. 지나가다 만난 이 사인을 해 달라 하면 거의 100%로 사인을 해주는 모양이니, 거리를 걷다 조니 뎁과 우연히 만난다면 반드시 사인을 해 달라 하자. 그런데 자주 사인을 해줘서인지 뎁의 사인에 금전적 가치는 별로 없다고 한다(…).[15]

  • 크리스토퍼 리 경이 '요즘 젊은(...) 배우들 중 가장 뛰어난 배우'로 이 양반을 꼽았다는 이야기가 있다. 당시의 리 경의 연세를 생각해보면 그 분 기준에선 오십인 이 양반이 젊은 편이긴 하다.

  • 뎁과 관련한 재밌는 징크스가 있는데, 그것은 뎁이 나온 영화에선 뎁이 떡칠을 해야 그 영화가 흥한다는 것. 《가위손》, 《찰리와 초콜릿 공장》, 《스위니 토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등등. 특히나 《캐리비안의 해적》과 같이 실제로 분장을 덕지덕지 칠한 영화는 대흥행을 한다, 굳이 멀쩡한 얼굴로 나왔는데도 흥행에 성공한 걸 뽑자면 엘 마리아치 3부작 중 하나인 《원스 어 폰 타임 인 멕시코》를 들 수 있다. 사실 여기서도 멀쩡한 얼굴은 아니다. 퍼블릭 에너미도 본전수준의 흥행은 거두었다. 떡칠한 영화 중에서도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평가로는 많이 까였지만 어쨌든 흥행에서 굉장히 성공했으니 이쯤 되면 징크스가 그대로 들어맞는 것 같은데...
    <다크 섀도우>에서 이 징크스가 깨져버렸다. 제작비의 2배 흥행도 아닌 간신히 제작비나 겨우 건졌다. 게다가 2013년 얼굴을 떡칠하고 원주민 톤토로 나와 연기한 영화 《론 레인저》가 초반부터 쫄딱 망하면서 징크스가 완전 박살난 것으로 확정되는 분위기. 되레 《다크 섀도우》의 기대 이하 흥행은 망한 것도 아닌 수준. 2014년에 개봉한 《트랜센던스》에서도 흥행이 폭망하고 평도 말이 아니기에, 이젠 분장이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사실 2012년부터 출연 작품이 계속 흥행과 비평 모두 실패한 터라 현지에선 위기론이 나오고 있다. 전세계 10억 달러를 기록한 대히트작 앨리스의 후속작인 거울 나라의 앨리스마저 폭망했고 캐리비안의 해적: 죽은 자는 말이 없다도 흥행에 성공한 편이긴 하지만 북미 기준으로 시리즈 최저 흥행 기록(1억 7200만달러)했고 전세계 흥행도 1편(6억 5000만달러) 보다 높긴 하지만 2~4편이 10억 달러를 기록한 것에 비하면 기대 이하이다. 다만 2015년 개봉한 '블랙 매스' 는 호평을 받았고, 피해자(...) 라쳇 역으로 출연한 오리엔트 특급 살인(2017)은 흥행면에서도 나름 대박이 났다.

  • 엄청 잘 생겼지만 고화질 화면으로 보면 의외로 피부의 모공이 큰 편이다. 화장으로 가리지 않으면 좀 실망할 수도. 상관없다.

  • 한국 기자와 인터뷰를 가진 적이 있는데, 거기서 보여준 한국어 발음이 그야말로 포풍이었다. 한국어를 할 줄 아는 게 아니라 기자의 말을 그저 따라한 것뿐인데 그냥 옆집 아는 형. [16]

  • 로커 출신이라 그런지 마릴린 맨슨과 친하다. 그리고 맨슨의 앨범 Mechanical Animals 촬영에 쓰인 가짜 유방을 현재 보유중이라고 한다[17] 이것이 인연이 되었는지 맨슨의 2012년 신보인 Born Villain에서 피처링을 넣어주기도 했다.

  • 국내에선 전담 성우로 故 장세준이 맡았었고 지금도 그의 연기는 전설로 회자될 정도이다. 하지만 그의 사후에는 대다수 김승준이 많이 맡고 있으며 SBS 애스트로넛에선 홍성헌 성우가 한번 맡았었으나 반응이 그렇게 좋은 편이 아니었다. MBC에선 최원형안지환이 각각 담당했는데 안지환이 더 많이 맡았다.. 일본에서는 히라타 히로아키가 주로 맡는다.

  • 2013년에 출연한 《론 레인저》의 프리미어 인터뷰에서 밝힌 내용 중, 거의 실명 상태라는 내용이 있어 팬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한쪽 눈은 거의 실명 상태이며 나머지 한 쪽 눈도 안경이 없으면 5cm 이내의 물체도 뿌옇게 보인다고. 그러나 그 해 6월 29일에 방송된 KBS 2TV '연예가중계' 의 인터뷰에서 본인은 건강한 상태라고 실명설에 대해 일축했다.

  • 인형을 수집하는 게 취미다.


파일:/20150127_122/cheezeburger_1422362833289v0Wrg_JPEG/mug_obj_142236283099279779.jpg

  • 위 깜짝출연 이후 또 다시 잭 스패로우로 분장하여 난치병을 안고 있는 환자병원으로 깜짝 방문하여 약 70명의 환자들을 일일히 면회하며 위로해주었다는 가슴따뜻한 소식이 전해졌다.덧글은 개판이지만

  • 그런데 재산 문제로 자산관리회사와 소송 중인데 한 달에 2백만 달러(약 22억원)를 쓰는 등 낭비벽이 심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9.1. 동안?[편집]

나이보다 훨씬 젊어 보이는 동안으로 유명했으나 50줄에 들어서면서 턱살이 붙고 목주름, 눈가주름이 늘어났다. 아직도 보통 서양인들에 비하면 엄청 젊어보이는 수준. 오히려 간지가 핵폭발 (그래도 팔자주름은 아직 거의 없다.)

2017년 5월 당시의 사진은 이렇다.

파일:external/ugc.reveliststatic.com/phnr1ymaog2qbwe.jpg

그런데 2018년 중반기 시점 급격히 노화한 듯한 모습의 사진이 돌기 시작했다. 혹시나 남몰래 앓고 있는 병이 있어 그 병색이 드러난 것이 아닌가 추측하며 걱정스러워하는 팬들이 있을 정도.

파일:20180605143002_453.jpg

10. 출연작[18][편집]

연도

영화명

배역

1984

나이트메어

글렌 렌츠[19]

1985

해변의 사생활

잭 마셜

1986

플래툰

게터 러너

1990

사랑의 눈물

Wade "Cry-Baby" Walker

1990

가위손

에드워드 시저핸즈

1993

길버트 그레이프

길버트 그레이프

1993

베니와 준

1993

아리조나 드림

액설 블랙마

1994

에드 우드

에드 우드

1995

닉 오브 타임

진 왓슨

1995

데드 맨

윌리엄 브레이크

1995

돈 주앙

돈 주앙/존 R. 더마코

1997

도니 브래스코

도니 브래스코/조지프 D. 피스톤

1997

브레이브

라파엘

1998

라스베가스의 공포와 혐오

라울 듀크

1999

슬리피 할로우

크레인

1999

애스트로넛

스펜서 아마코스트

1999

소스

잭 케루악

1999

나인스 게이트

딘 코르소

2000

초콜릿

2000

맨 후 크라이드

시저

2001

비포 나잇 폴스

본 본, 빅토르 대령

2001

프롬 헬

프레더릭 애벌린

2001

블로우

조지 정

2003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멕시코

샌즈

2003

캐리비안의 해적: 블랙 펄의 저주

잭 스패로우

2004

해피리 에버 애프터

린콘누

2004

네버랜드를 찾아서

제임스 매슈 배리

2004

시크릿 윈도우

모트 레이니

2005

리버틴

로체스터

2005

찰리와 초콜릿 공장

윌리 웡카

2005

유령신부

빅터

2006

신비의 바다

나레이션

2006

캐리비안의 해적: 망자의 함

잭 스패로우

2007

캐리비안의 해적: 세상의 끝에서

잭 스패로우

2007

스위니 토드 - 어느 잔혹한 이발사 이야기

스위니 토드

2009

퍼블릭 에너미

존 딜린저

2009

파르나서스 박사의 상상극장

토니

2010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미친 모자장수

2010

투어리스트

프랭크 투펠로

2011

랭고

랭고

2011

캐리비안의 해적: 낯선 조류

잭 스패로우

2011

럼 다이어리

폴 켐프

2012

다크 섀도우

바나바스 콜린스

2012

21 점프 스트리트

톰 핸슨

2013

론 레인저

톤토

2013

랄프 스테드먼 스토리: 이상한 나라의 친구들

본인

2014

트랜센던스

윌 캐스터

2014

숲속으로

늑대

2015

모데카이

찰리 모데카이

2015

블랙 매스

제임스 '화이티' 벌저

2016

거울 나라의 앨리스

모자장수

2016

신비한 동물사전

겔러트 그린델왈드

2017

캐리비안의 해적: 죽은 자는 말이 없다

잭 스패로우

2017

오리엔탈 특급 살인

라쳇

2018

셜록 놈즈

셜록 놈즈

2018

신비한 동물들과 그린델왈드의 범죄

겔러트 그린델왈드

[1] 사실혼 관계인 바네사 파라디와의 자녀들.[2] 2000년대부터 꾸준히 선호도나 인기, 인지도 조사를 하면 1, 2위권내를 다퉈왔던 배우이며 2010년대 이후 흥행에서 죽 쑤고 사생활적으로도 안 좋은 사건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2015년 미국인이 가장 선호하는 배우 2위에 오를 정도이다. 이는 페르소나였던 팀 버튼의 세계관 탓도 있겠지만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즐길 수 있는 배역 연기와 영화의 덕도 있었을 것이다. 특히 조니 뎁을 선호하는 계층이 80년~00년대 출생자들인 밀레니엄 신세대라서 그 위치가 향후에도 견고할 것이라는 점이 특징이다. 1위는 이 시대 미국의 국민배우 톰 행크스 # 하지만 아내 폭행 혐의로 논란인 상태이며 타격이 클 것으로 보인다.[3] 실제로 미국 현지에서 미남 배우 라이벌들 중 연기력을 놓고 순위를 매겼을 때 평균적으로 가장 높은 순위를 랭킹하는 이유도 캐릭터 소화력이 미치광이 이발사부터 기계인간까지 아주 특화된 배역도 못하는 역할이 없을 정도로 넓다는 것이다. 데뷔 때부터 스타성 위주가 아닌 가위가 손인 주인공부터 맡기 시작해서 이러한 마이너한 캐릭터들을 메인스트림으로 끌어냈다는 것부터가 관건이다. 하지만 이도 2012년 이후는 흥행과 평을 줄줄이 실패하고 밴드로 눈을 돌리게 되면서 하락세를 겪는 중이다.[4] 영화 《론 레인저》에서 그가 아메리카 원주민으로 분장한 모습은 위화감이 없이 매우 자연스럽다.[5] 침대에 구멍이 생기면서 빨려들어간 후 구멍에서 피바다가 천장으로 솟구친다. 배우가 조니 뎁이라는 걸 모르고 봐도 기억에 남을 만한 장면. 참고로 방 전체를 거꾸로 만들고 가짜 피를 쏟아붓는 걸 찍은 다음 상하반전을 시킨 것이다.[6] 2011년에 리메이크된 미국판 영화 《도학위룡》이라 불리는[7] 영화판에서도 막판 카메오로 깜짝 등장하여 허무하게 죽임을 당한다. 더 이상 《21 점프 스트리트》에 출연하지 않겠다는 의미인 듯.[8] 그 순간 흘러나오던 노래가 베를린의 Take My Breath Away였다는 사실을 두 사람 다 기억하고 있으며, 자신들이 소중하게 여기는 노래들 중 하나라고 밝히기도 했다.[9] "I believe he never really loved Kate. I mean, I love Johnny like a son, but he never was the same. I believe, also know, he belongs with Winona. So many people try to tell him they should just talk. They never say anything."[10] 본토에서는 뎁이 부모로서 여전히 아이들과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왔고 해적왕의 호감 이미지가 강해서 앰버 허드와의 연애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인 사람은 얼마 없었지만 뎁 자체는 여전히 호감 이미지였다.[11] 오해할 수 있는데, 파라디는 이미 다른 애인과 살림(..)을 차렸기 때문에 굳이 뎁을 옹호할 필요는 없다.[12] 13세 이하에게 엄격한 부모 지도 필요. 하지만 다 보잖아?[13] 당시 파라디는 결혼이 무섭다는 이유로 프러포즈를 거절했다. 그러나 그 후에도 2012년 결별 전까지 사실혼 관계를 유지했다.[14] 프랑스 세자르 영화제에서 시상자로 나온 적이 있는데, 소형 카세트 플레이어를 함께 가지고 나왔다. 그는 직접 프랑스어를 하지 않고 대신 프랑스어 지도를 받아 연습한듯한 자신의 목소리를 미리 녹음해둔 카세트테이프를 재생하였다. 객석의 반응은 웃는데 웃는 게 아닌 그저 그런 반응을 보였다. 조니 뎁은 대중들을 웃기려는 마음에서 이를 한 것이겠지만 객석에는 자신들의 언어에 큰 자부심을 갖고 있는 프랑스인들이 가득하였다.[15] 사인에서 금전적 가치라니 뭔 소리냐고 의아할 사람들을 위해 설명하자면, 미국에는 유명인사의 사인을 거래하는 시장이 상당히 발달했다. 지금 이베이만 해도 수많은 유명 인사들의 사인이 거래되고 있다. 즉 뎁처럼 사인을 많이 해 주는 사람의 사인은 물량이 많아서 가격이 낮다는 말. 이승엽 의문의 1승[16] 다른 해외 배우들이 안녕하세요를 하는 것을 들어보면 발음이 부족하거나 억양이 잔존하거나 해서 "Annyeonghaseyo"의 발음이 나오지만 조니 뎁은 그런 거 없다. 발음뿐만 아니라 억양도 한국인 같아서 깜짝 놀랄 수밖에 없다. 특히 두 번째 안녕하세요는 혀를 내두를 수준.[17] 여담으로 팀 버튼이 《찰리와 초콜릿 공장》을 찍을 때 윌리 웡카 역으로 원래 맨슨을 캐스팅하려 했다는 얘기가 있는데 확인바람.[18] 론 레인저부터 줄줄히 영화들이 흥행에 실패하면서 조니 뎁의 커리어에 위기가 왔다고 말하는 영화팬들이 많아졌다. 현재 2016년 작 거울 나라의 앨리스도 평가가 심히 좋지 않은 상황. 2017년의 캐리비안의 해적 5편이 여러모로 중요한 영화가 될 듯하다.[19] 프레디 크루거에게 침대 밑으로 빨려들어간 뒤, 피가 분수처럼 위로 솟구쳐 오르며 사망하는 인물로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