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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보병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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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나무위키+상위문서.png   상위 문서: 제3야전군사령부, 제5군단

대한민국 육군 보병사단 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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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도 백골! 죽어도 백골! 필사즉생(必死卽生) 골육지정(骨肉之精)! 백골! 백골! 파이팅!

일명 백골구호. 사단 정식구호다.

제5군단 예하 사단.

파일:attachment/image_144.jpg


1. 개요2. 역사3. 사단가4. 백골사랑5. 훈련소6. 예하연대7. 기타8. 출신인물

1. 개요[편집]

대한민국 국군 육군 제3보병사단. 일명 백골부대. 주로 철원에 위치하여 최전방 GOP,GP를 지키는 철책사단.

메이커 사단답게, 이곳의 사단장이 되면 3스타를 넘어 4스타도 노릴 수 있을 정도이다.

2. 역사[편집]

1947년 12월 1일 조선경비대 제5, 6, 9연대[1]를 근간으로 부산광역시에서 창설된 한국군의 8개 초기사단 중 하나. 이응준 보병대령을 초대 여단장으로 조선경비대 '제3보병여단'으로 창설되었으며, 1949년 5월 12일 최덕신 대령을 초대 사단장으로 하여 '제3보병사단'으로 승격되었다.[2]

18연대[3]는 자원입대한 서북청년단들이 중심이 된 부대였는데, 극도의 반공성향과 전투적 기질을 자랑했고, 자신들의 철모 좌우에 백골마크를 그려넣었다고 한다. "죽어 백골이 되어서라도 고향땅을 되찾겠다." 라고. "백골부대" 라는 명칭은 전쟁 당시까지만 해도 진백골연대만을 칭하는 별명이었고 3보병사단의 별명은 "사자부대" 였는데, 한국전쟁 이후 더 전투적인 이미지의 "백골부대"를 사단 별명으로 정하게 된다.

한국전쟁 발발 초창기부터 지속적으로 전투에 참여해왔고, 특히 10월 1일 전군 최초로 38선을 돌파함(사단 예하 23연대 10중대)으로서 현재 국군의 날의 유래가 되었다.[4] 그러나 1951년 그 유명한 현리 전투에서 부대원 2/3가 전사, 실종당하는 참패를 당하기도 했다.[5] 한국전쟁이 발발하기 이전에 당시 3사단 사단장이 전장병 외출및 귀가 통제 조치를 하여 전쟁이 터지자 빠르게 대응할수 있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휴전 후에는 1973년 3월 7일 전방에서 군사분계선 푯말 보수작업을 실시하던 중 인민군 육군 초소에서 총격을 가하자, 사단장 박정인 장군의 지휘로 예하 71포병대대가 도발을 가한 인민군 초소를 제압하고, 부대원들을 구출하는 전과를 거두기도 했다. 당시 전투는 휴전 이후에 전방에서 발생한 30여건의 북한군 침투에 가장 성공적, 모범적으로 대응한 '완전작전'의 사례로 손꼽힌다. 매년 3월 7일에는 3.7완전작전 선봉대대 영내에서 기념행사를 실시한다.[6]

자주국방 네트워크 신인균 대표는 2013년 7월 종편 채널A의 시사프로 쾌도난마에 출연하여 정전 60주년 기념특집으로 한국전에서 가장 잘 싸운 5대 국군부대를 꼽았는데, 백골부대는 4위였다.

  • 1위: 육군 제6사단(청성부대. 김종오 장군 지휘. 춘천전투, 음성지구 전투 등)

  • 2위: 육군 제1사단(전진부대. 백선엽 장군 지휘. 다부동전투, 평양 탈환전 등)

  • 3위: 대한민국 해병대(진동리 전투, 통영 상륙작전, 인천 상륙작전[7], 서울 수복작전, 도솔산전투 등)

  • 4위: 육군 제3사단(백골부대. 이종찬 장군 지휘. 3.8선 최초돌파, 원산탈환.)

  • 5위: 육군 수도사단(맹호부대. 송요찬 장군 지휘. 원산탈환.)


현재 제3보병사단은 제6보병사단과 함께 제5군단의 예하부대이다.

한국전쟁 때부터 백골부대로 불렸다고 알려져 있으나 전쟁당시에는 백골부대가 아니라 사자부대(獅子部隊)라는 별명으로 불렸다[8].

3. 사단가[편집]

1절.
돌격명령 내리면 비호와 같이
적을 쳐 무찌르는 조국의 방패
백골혼 이어받아 죽음을 겁내지 않고
조국통일[9] 선봉에서 싸워 이겼다

2절
조국산천 울리는 우리의 함성
승리의 깃발들고 전진 또 전진
오랑캐 무찌르고 보무도 당당하게
화랑의 후예들이 싸워 이겼다

후렴
우리는 백골이 되어도 싸워서 이기는
무적의 정예란다 우리 3사단

4. 백골사랑[편집]

파일:attachment/image_143.jpg
이 이미지에는 오류가 있다. 아래 두개의 별이 상단의 별과 같이 양 다리가 아래로 향해있는데 원래는 별의 꼭짓점이 삼각형의 꼭짓점을 향해 있어야 한다. 문서 상단의 현 부대마크를 보면 차이점을 알 수 있다. 이 이미지가 디씨 백골갤 자동짤방으로 있던 시절에 이미지를 수정해야 한다고 건의글이 꽤나 올라갔으나 알바가 무관심한 탓인지(...) 바뀌지 않았다.

과거에는 부대마크에 해골모양을 사용하지 않았다. 참고로 이 때의 부대마크는 은근히 육군본부의 부대마크를 닮아서 전투복에 원색마크로 오바로크를 치던 시절에는 멀리서 보면 헷갈리기도 했다. 차이점이라고는 오직 가운데에 큰 별이 있으면 육군본부 부대마크, 없으면 제3보병사단 부대마크였다. 일단 중앙 지점의 별표의 여부로 육군본부 마크와 구별 가능하고 자세히 보면 외곽 삼각형의 삼변의 중간 지점이 육군본부 마크는 끊어지지 않고 이어져 있지만, 백골부대의 경우는 쐐기 문양으로 끊겨 있다. 끊겨있달까, 이 끊긴 부분끼리 이어보면 역삼각형이 나온다. 삼각형 안에 이렇게 역삼각형을 만들면 위와 양 옆에 삼각형이 3개 생긴다. 지나친 3 사랑 코른의 성스러운 숫자는 8 아닌가? 2^3 = 8 프랙탈 사단

하지만 전반적인 부대마크 디자인이 상당히 싱크로율이 높아 중앙 별표 구별은 생각보다 눈에 잘 띄지 않아 은근히 혼동하는 경우들이 있었고, 이 때문인지 2000년대 중반부터는 전투복에 오바로크 치는 부대마크가 위장색 마크로 변경되면서 같은 파랑 원색계열임에도 불구하고 위장색에서 색상배열의 차이를 두어, 검정색 계열의 바탕을 사용하는 육군본부 마크와 달리 연두색 계열의 바탕을 사용해서 원색마크와 상당한 이질감을 불러 일으키기도 했다.

해골마크가 민간인에게 혐오감을 불러일으키고 부대 이미지에 타격이 생긴다는 이유로 부대마크에 넣지 않았다, 또는 육영수 여사가 부대마크를 보고 섬뜩하다고 해서 바뀌었다는 카더라도 있었으나, 애초에 전투복 상의에 부착하는 연대 비표에 해골마크가 들어가는데 부대마크에 넣지 못할 이유가 없다. 사실 다소 디테일한 해골이 들어가 사단마크 치고는 복잡한 모양인 탓에[10] 단순화 과정에서 빠졌다는게 정설이다.

부대 측에서도 해골마크를 '죽을 각오로 싸우면 반드시 산다'는 필사즉생(必死則生)의 정신, '죽을 수는 있어도 패할 수는 없다'는 수사불패(雖死不敗)의 정신을 담는 것으로 정의하는 등 상당히 큰 의미를 두고 있다. 실제로도 부대를 거쳐 간 지휘관이나 장병들이 북한과 대치하는 최전방의 부대임에도 부대마크가 용맹성을 나타내지 못하고 있다며 개선을 요구하는 건의를 꾸준히 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그 덕분인지 몰라도 2012년 12월 3일부터 부대마크에 다시 해골이 들어가게 되었다. 이 때부터는 육군본부 마크와 완전 구별이 가능해져서 위장색 마크도 기존 연두색 바탕에서 육군본부 마크와 동일한 검정색 바탕으로 바뀌었다.

전통적으로 해골을 좋아하는지라, 자체행사나 내부 구조물, 현판 등에는 무수히 많은 해골(…)을 그려넣고 있다. 예를 들면 이런 것. 진정한 카오스 스페이스 마린의 선조답다. 백골을 하도 많이 봐서 원피스캐리비안에 나오는 해적깃발을 보고도 진절머리가 날 정도

파일:attachment/3xxskull.jpg
47번 국도를 타고 포천시 이동면에서 철원군 서면으로 넘어가면 만날 수 있는 조형물. 43번 국도 문혜리에서 와수리로 가는 길에도 있다.다음지도 아니, 좋지 않은가 현실계의 아이 오브 테러 어린아이는 몸이 다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눈 크기가 크다

훈련소에서 퇴소하는 이등병들에게 주는 술도 백골주라고 부른다. 해골모양 잔에 술을 담아서 백골주(…).[11] 경례구호도 다른 부대와 달리 "백골!" 이라고 한다. 정말 해골을 이토록 좋아할 줄이야. 마치 워해머40K의 어떤 녀석들을 보는 듯하다. 그러고보니 워해머 판타지 쪽에는 해골 덕후 툼 킹이 있었지.

연대 비표 때문에 육군본부 독극물 처리부대나 화생방부대로 오인받기도 한다. 실제로 DC인사이드 백골부대 갤러리에 가보면 23연대 병사는 육군본부 독극물처리부대로 포병연대 병사는 육군본부 폭발물처리반으로 오인받았었다고 한다.

한국 제3사단의 전신 및 백골의 유래는 서북청년회다. 사실 그들이 가는 길엔 항상 죽음이 함께 했다..

의외로 회관이름은 삼성회관인데 삼성회관 옆에 영외 PX인 삼성마트가 있다. 삼성그룹에서 지원해 주나 보다. 진백골연대의 회관 이름이 백골회관이다.

그리고 부대 정문이나 그 인근에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등에 대한 거친 격문들이 쓰여진 플래카드가 달려 있고 부대에 따라서는 연병장같은 부대시설에도 걸려있다. 아예 김씨 삼부자 사진을 영정마냥 검은 테두리 쳐서 걸어두는 부대도 있고 대치중인 북한군 부대의 지휘관들의 사진도 살생부로 걸어놓은 부대도 있다.

대적관 구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멸북통일 최선봉 천하무적 백골사단
쳐부수자 북괴군 때려잡자 김정은[12]
김정은은 미친개 몽둥이가 약!(3회 반복)

부관참시 김일성 김정일 능지처참 김정은[13]
북괴군의 가슴팍에 총칼[14]을 박자!(3회 반복)


빡센 부대는 구호 역시 강력하다.

신교대에서 이 구호를 알려주던 조교는 김정일이 죽는 바람에 김정은이 추가되어서 귀찮다는 말을 하곤 했다.

이는 대적관(對敵觀) 구호라고 하며 식사시간때 취사장 앞에서 이 구호를 외치고 입장해야 한다. 위 구호는 2011년 12월 김정일이 죽자 바뀐 구호다. 2010년 12월에 최초로 제정되었는데 만들어질 당시에는 '멸북통일 최선봉 천하무적 백골사단, 쳐부수자 북괴군 때려잡자 김부자, 김부자는 미친개 몽둥이가 약!(3회 반복), 부관참시 김일성 능지처참 김정일! 김정은! 북괴군의 가슴팍에 총칼을 박자!(3회 반복. 단. 포병연대는 총칼 대신에 포탄이다.) 였다.

근데 이러한 백골부대의 부대 내부구호가 2013년 3월 일부 언론을 통해 알려지게 되었고, 당시에는 한미 연례 연합군사훈련 '키 리졸브'가 진행 중이었다. 이에 북한과 국내 종북세력들은 '최고존엄 모독' 운운하면서 맹비난을 퍼부었고, 자신들의 관영 TV에 이명박 당시 대통령국방장관, 합참의장 이름을 붙인 허수아비 표적에 사격을 가하는 선전영상을 내보냈다.국군 병사들이 환호햇다 카더라 돈없어서 허수아비에 붙일 사진도 못 뽑는 거지들

여기에 더해 심지어 생활관 중앙현관에는 북한 지도부 + 대적하고 있는 북한군 부대 지휘관의 영정까지 걸어놓은 대대도 있다.사실 그런 대대 투성이다. 사실 3사단 거의 모든 부대가 그렇게 하고 있다. 안한 곳이 찾기 더 힘들다.

여담으로 백골사랑 못지 않게 구호 만드는 것도 좋아하는 듯. 대적관구호 이전에 '천하무적 백골', '진격구호'가 존재했다.
2009년 11월 즈음에 만들어 졌으며, 2010년 어느 시점부터 점점 안 쓰이다가 대적관구호가 등장하며 완전히 묻혀벼렸다...

천하무적 백골 구호는 다음과 같으며 주로 분·소대 이동시 쓰인다. 인솔자가 묻고 나머지 인원들이 대답하여 주고받는 형태.

천하무적 백골! / 천하무적 백골!
천!하!무저~억! 백골! / 천!하!무저~억! 백골!
삼팔선 최초 돌파부대는? / 이십삼연대!
혜산진까지 돌격부대는? / 이십이연대!
최북단 부령[15] 진격부대는? / 십팔연대!
적에게 가장 무서운 포병은? / 백골포병연대!
천!하!무저~억! 백골! / 천!하!무저~억! 백골


연대 순서 틀리면....더 이상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서로 맞춘 것도 아닌데 십팔연대 할 때 목소리가 커진다.

진격구호 역시 천하무적 백골과 마찬가지로 주고 받는 형태이며 다음과 같다.

우리 선배들이 지켜낸 자유 / 우리가 지켜 물려준다
우리 조국땅을 침범한 놈은 / 한 방에 날려버려
오늘은 걷고 내일은 뛰고 / 백두산 까지 진격
살아도! / 백골!
죽어도! / 백골!
필사즉생! / 골육지정! 백골! 백골! 파이팅!


이것도 순서 틀리면... 우리 선배들이 지켜낸 자유 / 한 방에 날려버려 우리 조국땅을 침범한 놈은 / 우리가 지켜 물려준다

5. 훈련소[편집]

시설은 구막사이지만 나름대로 깨끗하고 시설도 괜찮다. 그러나 방독면은…[16]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방독면 샐 놈은 샌다[17] 하지만 자신이 5소대 이상의 소대라면 막사에서 생활하는게 아니라 막사 옆 컨테이너 박스에서 생활한다. 밤엔 보일러와 온풍기를 틀어주기에 막사보다 따뜻하다는 얘기가 있지만… 개소리. 침낭과 관물대에 서리가 앉는다!그리고 5월에 눈이 내린다! 게다가 토막 대기시간과 화장실 한번 갔다올 때마다 들어오는 한기는… 단, 컨테이너 박스생활을 하면 조교도 잘 들어오지 않아 관물대에 기대는 등 매우 편하게 지낼 수 있다. 그런데 화장실이 시궁창이다…[18]

2015년 11월 부로 컨테이너 박스 생활은 종지부를 찍고 리모델링한 구막사[19]에서 생활한다. 생활관별 에어컨, 전기판넬 등 훈련소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훌륭한 시설을 구비하였다. 그런데 건물의 노후로 인한 아쉬움이........

훈련강도는 옛 306 기준 어느 신병교육대보다 강력하다. 306 운전병들이 각 신병교육대를 수료하고 야수교에서 서로 자신의 신병교육대가 빡세다고 논쟁하던중 3사단 나온 훈련병이 나타나면 서로 입다물 정도로…[20] 그중 몇중대가 헬게이트네 어쩌네들 하지만 3사단에서 헬게이트 아닌 곳이 있을까…

2012년 10월까지의 군번들은 신교대 7주 교육 마치고 자대배치 받고 나서 제2신교대라는 곳으로 가서 따로 2주 교육을(화생방, 사격 등) 더 받았지만 그 이후의 군번부터는 제2신교대가 없어졌고 또한 14년도 군번부터는 기존 7주 교육에서 5주 교육으로 줄어서 강도가 많이 약해졌다. 7주 교육받은 상병장들이 요즘 5주 교육 받고 오는 신병들 보면 신교대 엄청 편해진 것 같다고... 그 전 군번들은 5주 교육이었는데? 05년 12월 군번의 3사단은 한국 3사단이 아니라 미국 3사단이었나? 7주 교육 받고 땡이었는데? 이 제 2신교대대가 "훈련소 5주 좀 짧지 않나?"라는 높으신 분들의 명령으로 전국적으로 만들어진 탓에, 당시 10년도에 입대한 제2신교대대 기간병들은 이병~상병때는 제2신교대대 창설 준비로 군생활 내내 막노동에, 말년에는 다시 해체 준비로 막노동을 해야만 했다.

09년 3월을 기준으로 사단골에 있던 의무대가 훈련소와 같은 주둔지를 사용하게 되었다. 더 이상 훈련소 의무시설이 열악하다는 얘기는 안나오겠지? 11년 7월을 기준으로 신막사가 새로 들어섰지만 조교들이나 간부들만 생활하는 곳으로 사용된다. 훈련병들은 그대로 구막사에… 지못미.
+대대 의무대와 사단 의무대로 나뉘는데 공교롭게 대대 의무대와 사단 의무대가 같이 공생하고 있어 훈련병들은 대부분 사단으로 많이 가는 편
(거기서 틀어주는 엠넷채널은 훈련병들에겐 세상과 소통이 가능한 유일한 수단이다.)

무엇보다 무서운 점은 사건사고가 자주 터지는 곳이고 실제로 자살미수 등이 빈번하게 일어나는 곳이라는 것. 이로 인해 온갖 자살방지 대책을 내놓는데, 음독자살이 일어나면 세제, 총기 손질용 기름 등을 압수한다거나 신발끈으로 자살하는 사람이 나오는 걸 대비해 오매듭을 지어 풀기 어렵게 한다거나 하는 것들로 그야말로 근본은 고치지 않고 보여주기식 처리법이다.[21]

03군번 같은 경우는 신교대에서 야상끈을 다 수거했었다. 이유는 자살에 쓰일수 있다고... 손톱깎이 면도기등 조금이라도 날카로운 부분이 있다면 신교대에서 규정된 시간에 사용하게 하고 사용후 바로 수거한다. 그리고 야상끈은 병장 쯤 돼야 쓸 수 있었다.

2015년 기준 막사가 외벽과 내부 리모델링을 거치면서 (건물 구조는 그대로) 전체적인 시설이 좋아졌다.
+사단 방침에 따라 훈련병들에게 반말을 쓸 수 없기 때문에 존중어를 사용하고 있다.육군 병영생활 개선 시범사단으로 찍혔다는 말이 있었는데

6. 예하연대[편집]

  • 제18보병연대 진백골[22]

    • 선봉1대대

    • 적토마2대대

    • 백혼3대대

  • 제22보병연대 혜산진[23]

    • 불사조1대대

    • 이한림2대대

    • 야성마3대대

  • 제23보병연대 38선 최선봉 돌파 맹호[24]

    • 비호1대대(신병교육대)

    • 백호2대대

    • 청호3대대(38선 최선봉 돌파 대대)

  • 포병연대

    • 제11포병대대(대한민국 최초로 창설 후 최초로 창설된 6개의 포병부대 중 하나)

    • 제71포병대대(3.7완전작전 포병대대)

    • 제72포병대대

    • 제635포병대대

  • 예하 직할대

    • 공병대대

    • 정비대대

    • 보급수송대대

    • 수색대대(5.22완전작전)

    • 의무근무대

    • 정보통신대대

    • 전차대대

    • 헌병대

    • 화생방지원대

    • 토우중대

    • 보충중대

    • 방공중대

    • 본부근무대

7. 기타[편집]

메이커 사단 중 한 곳.

아무래도 별명도 그렇고, 부대 이미지가 상당히 험악해서인지(…) 갓 입소한 장정들에겐 빡센 부대라는 소문이 자자하다. 급식과 여자들에겐 특수부대 못지 않은 빡센 부대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훈련이 많고 힘든 보병사단이긴하다.306보충대 같은 곳에서 훈련소와 자대를 통보받을때, 모 장정이 "훈련소 3사단, 자대 3사단!" 소리를 듣게 되면 옆에 같이 있던 다른 장정들이 모두 박수를 쳐주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306보충대에서 충원하는 병력은 제3야전군사령부 예하 부대들로 배치되었는데, 3사단의 경우 이들 중 가장 빡센 지형조건(…)에서 주둔하기 때문이다. 그래봤자 진짜 강원도 동부전선의 산악지대에 비하면야(…). 그렇더라도 겨울에는 동부전선 보다 더 춥다. 철원이 남한 에서 가장 추운 지역이기도하다. 실제로 한파가 몰아치는 해에는 철원이 동시베리아보다 더 춥기도 하다.[25]

포병연대도 만만치 않은것이 1973년에 18연대 전방대대가 군사분계선 표지판 보수 작업 중에 북한군의 사격도발에 의해 아군이 부상당하자 당시 사단장이었던 박정인 장군[26]이 포병연대 본부에 전화를 걸어 포병대응사격을 했는데 105mm 견인곡사포백린탄[27]을 발사해 북한군 GP를 직격, 그것도 GP건물 내부에 작렬시킨 바람에 북한군 상주인원 36명까지 몰살시켜버린 적이 있으니 이른바 3.7 완전작전. 고폭탄 파편도 아니고 그 악명높은 백린탄 화염으로 군인 수십명이 끔찍하게 분살당하는 생지옥을 겪은 후 백골부대는 북한군에게 공포의 대상이 되었고[28] 사단이 통째로 교체된 건 물론이고 3사단에 대응하기 위해 2개 사단을 배치했는데 북한 장교와 사관들이 가장 꺼리는 곳이라고 한다.

하지만 당시는 남북협상 기간이었고 이로 인해 약 1달 뒤에 박정인 장군은 불명예전역을 하게 된다(...).

그 후일담도 명작이다. 사건이 일어난지 12년 후인 1985년 9월 20일 남북 이산가족 평양방문단의 일원으로 함경남도 도민회 이상순 회장이 평양에 갔을 때 북한 정치 보위부의 고위 간부가 방문단이 묵던 호텔로 와서는 "함경남도 출신에 박가 성을 가진 그 요란한 사단장은 요즘 뭘 하오?"라고 묻더라고 한다.[29] 지릴 뻔

또한 수색대대에서도 1992년 5월 22일 야음을 틈타 비무장지대 군사분계선을 월경하여 침투한 적 3명에 대해 퇴로를 차단함과 동시에 수색대대를 투입하여 전원 사살한 작전이 있는데 5.22완전작전이라 한다. (정규전 제외하고 최초 을지무공훈장을 배출한 작전)

2009년 3월 18일에는 일본인이 월북시도하려고 했다가 철책에서 초병한테 잡혔다고 한다. 이는 3. 18완전작전으로 불린다. 최초로 발견한 초병은 18연대 소속의 이등병병장이었는데 이들은 나중에 3야전군사령관이 포상으로 14박 15일을 받았다고 한다. 덤으로 통역병과 상황병, 그 시각 5분대기조 인원들도 6박 7일씩은 받았고 대대장중대장, 소대장도 표창과 함께 4박5일 포상휴가를 받았다고… 군생활하다가 로또 터졌다고…

09년 5월에 있었던 KCTC 훈련에서 철책근무서던 22연대가 전갈대대에게 기똥차게 물 말아먹은 적이 있다. 다만 그러기 전 07년에 18연대가 전갈대대를 궤멸 수준으로 몰고 간 전적이 있었다. (일명 개싸움) 그만큼 18연대의 피해도 심했고, 그들의 승리라고 표현하는 사람도 있지만 사실상 무승부다. 어쨌든 전갈대대의 입장에선 역대 최초로 자존심이 상할 만큼 박살난 것이긴 하지만. 2010년에 최초로 시도 되는 쌍방부대 간 KCTC 훈련에서 모 사단을 완전히 제압하고 어깨가 들썩이던 시기도 있었다.

사실 18연대도 사람 사는 곳이라 딱히 최초의 백골부대원들 처럼 북한 관련된 것만 보면 죽자고 물고 늘어지진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간과하고 있는데, KCTC는 연대급 훈련이 아니라 대대급 훈련이며[30], 당시 훈련장에 가서 아주 간단히 행해지는 더러운 뺑이를 치고 온 부대는 연대 전체가 아니라 그 중 1개 대대였다. 그 당시의 상황을 말하자면 그 대대는 바로 전 해에 전방에 나가 철책을 지키다가 후속으로 올라오는 부대의 철책적응훈련이 늦어지는 바람에 2개월이나 늦게 내려와서 병사들의 불만이 많이 쌓여있었다.[31][32] 그래도 페바 내려가서 정상적인 인간의 생활을 누릴 수 있다고 기대하던 차에 신임 대대장이 짬이 안되는 바람에 원래 페바에서 생활하던 다른 부대가 맡았어야 할 훈련을, 철책 지키다가 이제 갓 내려와서 피로도 덜 빠진 그 대대가 물어왔던 것이다. 당연히 대대 병사들의 불만은 대폭발. 그러나 어쩔 수 있나. 군대는 까라면 까는 것이다. 편한 페바 생활은 안녕이고 한달에 장비보수 겸 휴식으로 주는 1주일을 제외하고는 항상 훈련을 뛰어버렸다. 다른 부대도 다를 바 없다면 할 말이 없지만.

이게 07년도 얘기면 모르겠는데 09년도 얘기면 잘못된 얘기다. 3개 대대중 1개 대대가 GOP에 투입되며 페바에 내려오면 2년을 대기한다.우리도 그럴 줄 알고, 그럴 거라고 기대하고 내려왔다.[33] 09년도 KCTC 훈련받은 대대가 10년도에 GOP투입을 했으니 내려오자마자 훈련을 받고 불만이 쌓인건 잘못된 이야기다. 물론 이때 체력키워야된다고 몇달간 개좆같이 굴려서 개빡세고 불만 쌓였던것은 사실이다.

MBC 주말 예능프로그램인 일밤의 병영체험 예능 코너 리얼입대 프로젝트 진짜 사나이해군 제2함대 다음 부대로 선정되어 12월 10일부터 5박 6일간 촬영을 하였으며 물론 시기가 시기인 만큼 혹한기 훈련도 실시하였다. 이걸 본 DC인사이드의 해당갤러리의 전역자들은 몇연대 GOP에 걸릴까부터 해서 지옥의↗3사단에↘당도한 것을→환영하오↘낯↘선↗이여↘라는 등의 식으로 맞장구 치는 이들도 있다…

포병연대 본부, 18연대, 23연대 등 신막사 건축이 완료된 곳도 있고 건축중인 곳이 있는 등 현대화가 이뤄지고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생활 환경은 열악한데, 특히 연대본부와 11포병대대, 71포병대대를 제외한 나머지 2개 대대들은 그야말로 현시창. 특히나 포병의 경우 여전히 포반장을 병 출신 하사가 하는 등 아직 개편되지 않은 잔재가 남아있고, 병영 내 부조리나 악습 역시 알게 모르게 남아있으며 심한 곳의 경우 부대가 포대 단위로 독립되어 있어 열악한 환경은 물론이요 외딴 산속에 당직사관이나 기타 관리간부만 출근할 뿐, '간부의 천국 병의 지옥'이라 할 만하다. 그런데 11대대의 경우 병영내 부조리가 2008년하고 2010년에 사단 기무부대와 기무사령부 불시검열에서 적발이 되는 바람에 한동안 대영창 시대의 개막과 함께 피바람이 불었었다.[34] 여타 관리의 눈길이 닿지 않아 분기별 실사격 훈련 등으로 포를 빼는 일도 잦아서 자신의 주특기가 155mm 견인포병이라면 그저 묵념(...). 당장 수작업으로 박았다 뺐다 해야하는 견인포 발톱만 해도 40kg이 넘는 포병의 특성상, 분대원 하나하나가 제 일을 해주지 않으면 직접적으로 다른 분대원에게 타격이 가기 때문에 갈굼이나 체력단련 강요가 심하다.

의외로 외출/외박시 가볼 만한 명승지가 많다. 도피안사, 직탕폭포[35], 임꺽정 바위 등. 그러니 외출/외박시 PC방만 가지 말고 명승지좀 돌아보자. 언제 이런 곳에 들러보겠나. 물론 군대도 자주 갈 만한 곳은 못 된다 그냥 전역하고 짬나면 가봐라.

특히 2011년~2012년 동안 23연대 3대대(한국전쟁 당시 38선 최선봉 돌파를 했던 대대이다) 한 곳이 훈련 짬 당하기로 유명했는데... 특히 이 대대에 있던 2010년 ~2011년 군번들이 군생활에서 한번 받을까 말까한 훈련을 다 받았으니 그 말이 나올만 했다. 더군다나 시기상으로도 천안함, 연평도, 김정일 사망시기가 겹쳐진 시기였으니 뭐... 신병이 그 대대에 들어오면 반드시 듣는 레퍼토리가 있었다. 3사단에는 3개 연대가 있고, 그 중 2개는 GOP근무를 담당하며, 나머지 1개 연대는 3개의 대대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중 2개 대대는 신병교육 임무를 맡고 있으므로 3사단 내의 굵직한 훈련들이 있으면 총 9개의 대대 중 어디서 그 훈련들을 다 할까? "바로 여기야."....라는 뭐야 그거 무서워

일반인들은 겉으로만 보이는 해골과 관련된 이미지만 보고 빡세다고 생각하지만 철원-포천 지역이 강원도와 경기도 사이에 넓게 펼쳐진 분지 평야지대[36]다 보니 산악지대에 위치한 부대나 훈련량이 장난 아닌 기계화부대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편한 부대에 속한다. 사단 직할대, 18연대, 22연대, 23연대, 포병연대 중 18연대와 22연대는 GOP를 담당하는 부대인데 18연대는 담당 작전지역 중 일부구간의 지형이 강원도보다는 상대적으로 편하며[37] 심지어 22연대의 담당구역 중 절반 정도는 넓찍한 평야지역이다.[38]그런고로 연대 수색중대와 사단 직할 수색대대, 23연대 휘하 대대 중 모든 훈련을 몰빵당하는 한 개의 대대[39]만 좀 많이 힘들뿐 이미지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편하다. 다만 부대 전체적으로 이루어지는 이미지 메이킹, 군기 확립이나 사기 고양 등의 면에선 다른 유수의 메이커부대만큼이나 민감한 편이므로 충분히 빡센 편이다. 2016년 초부터 GOP 근무를 1개 대대가 고정으로 들어가게 되면서 전방연대의 예비대대들의 훈련양이 폭증했다. GOP에서 근무하다 내려온 부사관들이 페바근무 못해먹겠다, 다시 올라가고 싶다라고 말하는 수준.

2011년 때려잡자 김정일 구호가 북으로 유출되면서 한동안 북한이 완전히 뒤집어진 적이 있었다. 당연히 북에선 게거품을 물며 책임자 처벌하라, 괴뢰당국의 호전광들은 광란의 댓가를 치룰 것이다! 라고 패악을 부려댔다. 입만 열면 남한 대통령들을 비방하고 서울 불바다에 갖은 협박질을 하는 놈들이 저러니 웃긴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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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모히칸 스타일과 비슷한 헤어스타일을 강조하고 있다. 일명 백골컷(백골형두상)이라고 하며, 윗머리 9mm, 옆머리 1mm이다. 사단-연대-대대를 거치면서 계속 압박이 들어오고 간부들부터 머리가 잘려나가서 단기복무 간부 및 말년 병을 제외하고는[40] 병, 간부 할 것 없이 사이좋게 빠박이로 생활하는 수준. 윗머리를 좀더 기르게 해줘야지 솔직히 윗머리 너무나 짧아서 멋도안나고 호구같았었다. 정작 저걸 시킨 사단장은 백골컷을 안했다고[41]

8. 출신인물[편집]

  • 건일

  • 겔부 - 꾸나꼬무이야기 작가. 22연대에서 복무했었다.

  • 권지용 - 2018년 2월 27일 3사단 신병교육대로 입대하여 포병연대에서 복무중이다[42]

  • 김요환 - 대장 - 前 육군참모총장. 44대 사단장으로 있었다.

  • 김운용 - 現 제3야전군사령관. 사단장 역임, 2군단장 역임. 합참시절 아덴만작전 기획. 처제가 중견탤런트 윤현숙인줄 알았으나 처의 8촌여동생이다(...)[43]

  • 김원기 - 前 프로게이머. 혜산진연대에서 행정병으로 복무했었다.

  • 김종민 - 전 국가재건최고회의 법재 사법위원회 보좌관으로 6.25 전쟁 당시 정승화가 있었던 18연대에서 중대장, 대대장으로 복무. 6.25전쟁 참전기 '대전쟁' 집필.

  • 김종오 - 12대 사단장. 8대 합참의장이자 15대 육군참모총장. 춘천-홍천지구 전투당시 6사단장 그분이 맞다. 현리전투 당시 사단장으로 있었다.

  • 김칸비 - 18연대에서 복무했었다.

  • 남영신 - 비육사최초 특전사령관. 사단장 재임시절 백골컷 탄생의 장본인.

  • 딘딘 - 훈련소 생활을 3사단에서 했다.[44] 자대는 5군단에서 포병으로 복무.

  • 박세직 - 12.12 군사반란 당시 사단장으로 재직했다. 최전방 사단장이었기에 하나회의 핵심 인물임에도 쿠데타에 가담할 수가 없었지만 결과적으로 이 덕분에 김영삼 정부 출범 때 화를 면할 수 있었다.

  • 박영진 - 포병연대 예하대대에선 PX병으로 복무했었다. [45]

  • 박정인 - 사단장으로 재직하던 1973년 당시 북한의 대남도발에 포병 대응사격을 지시했었다. 2016년 2월 3일 향년 89세로 별세.

  • 신원식 - 46대 사단장. 연평도 포격 도발 당시 대적관 구호를 만들었다.

  • 씨드락 - 오인용소속. 장석조씨가 본인의 유튜브 영상에서 댓글로 언급한 적이 있다.

  • 양동근 - 사단본부 군악대 출신. 이후 국방홍보원으로 전출갔다가 그곳에서 전역.

  • 이규형 - 영화감독. 영화 DMZ, 비무장지대에서 자신의 경험을 영화화 하였다고 밝힘. 3사단 작전과 행정병이었으나 수색중대로 전출.

  • 이시언 - 신병교육대 조교로 복무.

  • 이종찬 - 참군인으로 유명한 군인. 3.8선 돌파당시 사단장.

  • 이원계 - (? ~ 1950.12), 한국전쟁 초기 북진시기의 진백골연대 6중대장. 계급은 대위, 사후 소령으로 추서. 6중대는 북진 당시 함경북도 부령까지 진격하였으나, 중공군의 개입으로 중대장 포함 중대원 전원(후방으로 후송된 1명 제외)이 옥쇄하고 말았다. 2010년대 중반 즈음 진백골연대의 모 소초의 이름이 이 분의 이름으로 바뀌었다. 당시 6중대의 유일한 생존자였던 고 최수용 옹(2011년 별세)은 울산에 추모관을 건립하고 6중대원들의 위령제를 지냈다. 현재 6중대의 위령제는 2014년 부터 철원에서 열리고 있다. [46]

  • 이준혁 - 연예병사로 물의를 일으켰다가 재배치로 23연대로 전출왔다.

  • 이철원 - 육사 42기 출신으로 현역 대령이다. 파병부대 아라우부대의 부대장이었었다. 지난 2011년 경에는 3사단 참모장으로 있었고, 그 당시 주한 미국대사였던 캐슬린 스티븐스와 35년 만에 해후하였다. 1976년 이 대령은 예산중 1학년이었고, 캐슬린 대사는 그 학교 영어교사였다.

  • 장동민 - 22연대에서 복무했었다. 그때 해군에서 복무 중이던 유상무한테 면회가려고 위수지역 이탈했다가 걸려서 영창 갔었다고......

  • 주원 - 2017년 5월 16일 3사단 신병교육대로 입대했다. 기초군사훈련에서 우수한 성적으로 1등상으로 받았고 수료 후 조교로 복무 중이다.

  • 주호민 - 제101보병여단 출신이기는 하나 신병교육을 이곳에서 받았었다.

  • 지창욱 - 2017년 8월 14일 3사단 신병교육대로 입대했다. 9월 21일 신병교육대 수료식에서 우수한 성적으로 전우상을 받았다. 다만 자대배치는 제5포병여단으로 받았다.

  • 정승화 - 12.12 군사반란 당시 육군참모총장. 현리 전투 당시에 23연대 예하 대대에서 대대장으로 복무했었다.

  • 최덕신 - 초대 사단장. 월북해서 북한 천도교 교령으로 지낸 그 사람 맞다. 11사단 사단장으로 재직당시 거창 양민 학살사건의 주범.

  • 채명신장군 - 한국전쟁 당시 22연대 연대장과 사단참모장으로 있었다.


국방부 제작 괴작 영화 크레파스의 무대가 된 곳이다. 또한 1990년대 회고풍 청춘영화인 1999, 면회도 작중 인물이 이 사단에 복무한다는 설정이라서 이 부대와 관련된 촬영지가 많다.

[1] 이 초기배치 연대는 현재는 전부 다른 사단 예하부대이다. 단, 6연대의 경우 대구에서 반란을 일으키는 바람에 해체 후 22연대로 재창설되었다.[2] 그래서 승격일을 사단창설 기념일로 하고 있다. 부산광역시 중앙동에 창설기념비가있다.[3] 한국전쟁 초기에는 수도사단 소속이었다. 흥남철수 기간 중, 당시 3사단 26연대와 배를 바꿔타서 3사단으로 예속 전환되었다. 26연대는 수도사단 예속으로 변경[4] 이때 3사단장이 참군인으로 이름높은 이종찬이었다. 이종찬은 1950년 11월 12일에 최석 준장으로 사단장이 교체될 때까지 3사단장직에 있었다.[5] 그런데 부대 역사 배울 때는 한 번도 패하지 않았다고 배운다.[6] 이 일이 있은 후 박정인 사단장은 보직해임되었는데, 그 이유는 박정인이 이 작전 이후에 북한군을 골탕먹일려고 사단 모든 차량을 DMZ까지 진출시킨 것이 문제가 되었다. 이 일로 북한은 전시동원령까지 선포하였고, 여차하면 전쟁으로 이어질 수 있는 문제였다. 그것을 군단장이나 야전군사령관 허락없이 사단장 "단독"으로 한 것이다. 사실 DMZ로 군 병력을 보내는 것은 UN군사령부의 허락이 있어야 하는 것이고, 당시에는 평시 작전통제권도 국군이 단독으로 행사할 수 없었다. 그런데 그딴거 다 무시하고 한 것이다. 아무리 실제병력이 없었다고 해도, 군차량도 결국 군 병력의 일부이므로 이는 명백한 지휘통제 위반이다.[7] 이때 해군참모총장이었던 손원일 제독이 사라진 사건이 있었는데, 직접 소총을 들고 해병대원들과 함께 돌격 중이었다.[8] 한국전쟁 당시 3사단은 제2913부대로도 불렸다.정승화총장의 회고록에 따르면 흥남철수이후 3사단으로 18연대가 오자 사단장이 이제부터 우리사단은 백골부대라고 했다고 나온다 # [9] 연평도 포격 사태이후 대적관 구호 생성과 함께 '조국통일'에서 '멸북통일'으로 바뀌었었다. 2018년 7월 1일부터 다시 '조국통일로 바뀌었다.[10] 다른 사단마크와 비교해보면 알 수 있는데 해골이 들어간 탓에 은근히 복잡하다. 게다가 9와의 연관성을 억지로라도 잡은 9사단과는 달리 해골과 3의 연관성이 없는 것도 한몫했다. 눈구멍 콧구멍의 갯수를 합치면 3개가 된다고 하면 될 것을...[11] 물론 잔 안에 들어 있는 것은 맛스타였지만 2011년 1월 1일부로 전역을 해서 생생가득이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혹은 그냥 맹물[12] 구호가 처음 만들어졌을 때는 김정일이었다[13] 구호가 처음 만들어졌을 때는 부관참시 김일성 능지처참 김정일 김정은이었다[14] 포병연대는 종특상 '총안구에 포탄'으로 대체했다.[15] 함경북도 부령군 [16] 2017년 현재, 훈련소 또한 방독면은 k-5신형으로 교체되었다.[17] 956기수부터 신형 방독면을 지급받았다[18] 774기수 당시 2소대에서 볼거리 환자가 나오는 바람에 2소대 인원들만 컨테이너 생활을 했었는데 화장실이 제일 고통이었다고.... [19] 진짜 구막사는 922기가 컨테이너조차 꽉 차서 마지막으로 썼다.[20] 3사단 신병교육대가 빡 쎈 이유 중 하나는 훈련장의 위치다. 사격이고 수류탄이고 하여간 훈련교장은 죄다 '산 하나 넘어간 곳'에 있다. 하여간 훈련교장 자체가 막사에서 워낙 멀어서 매일 훈련하러 갈 때마다 행군하는 기분을 느껴야 한다. 그리고 진짜 행군 때는 그놈의 행군코스가 그 이동경로를 전부 포함한다.... 그것도 야간행군때만.[21] 보충병이 의정부에서 신교대로 도착하면 자살 방지를 위해 활동복의 허리 고무줄부터 압수한다[22] 사단의 백골부대 라는 별칭을 처음 쓴 연대라 이런 이름을 사용한다. 창설시에는 3사단에 포함되어 있지 않다가 나중에 편입되면서 사자부대에서 백골부대로 사단 별명을 바꾼다. 자세한 사항은 서북청년회 참조.[23] 원래는 쌍둘연대였는데 진격로 중 최북단에 위치한 함경남도 혜산진까지 갔다고 해서 바꿨다.[24] 원래는 그냥 맹호연대였으며 이름이 길어서 그냥 38선 최초돌파 연대 또는 맹호연대라고 부른다.[25] 상황실에서 겨울에 새벽근무하다가 뉴스의 아침 날씨를 보면 분명 훨씬 북쪽인 블라디보스톡보다 추운 것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26] 대대장, 연대장, 사단장을 이곳에서 했다고 한다. 연대장 시절에 휘하 대대장 중에서 장포스로 유명한 장태완 장군이 있다.[27] 한국군 공식입장으로는 어디까지나 '연막탄'이지만...[28] 후에 북한군 출신으로 귀순한 한 탈북자는 이 백골부대로 강의차 방문했는데 "북한에 있었을 때 '치가 떨리도록 악랄한 놈들'이라 불리던 백골부대에 오니 굉장히 긴장됐다."라고 했다 한다.[29] 박정인 장군은 2016년 2월 3일에 사망했다.[30] 이는 해당 항목에도 버젓이 명시되어 있다.[31] 일단 이 사연들은 부대 내에 퍼져있는 소문이다. 믿거나 말거나(…). 근데 본래 기간보다 오래 하고 내려온 것 자체는 사실이다.[32] 실제로 예정대로 철수했으면 정상적으로 나갔을 100일 휴가를 철수지연때문에 140일만에 나갔다[33] 위에 짬이 언돼느니 뭐라니 서술한 것은 이렇게 대기를 타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을 그 당시 병사들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34] 2010년의 경우 병사들이 사고친 것이 아닌 대대주임원사가 공금 횡령한 거 때문에..... [35] 번지점프도 가능하다.[36] 철원이 산으로 유명한 강원도에서 뜬금없이 양질의 쌀로 유명한 지역임을 생각해보자. 다만 담당하는 GOP 섹터 만큼은 험준한걸로 유명하다.[37] 하지만 철원의 강설량은 강원도 지역 못지않으며 추위로는 강원도 일부 지역도 한 수 접어줄 정도이다. 단지 근무를 서는 섹터의 일부 지형만 편하게 되어있을 뿐이다.[38] 편한 섹터도 22연대가 18연대보다 덜 주목받는 이유에 포함되기도한다. 물론 북한의 주 침공로로 예상되는 평야지역도 엄청나게 중요하지만. [39] 다른 두 개의 연대가 GOP를 담당하기 때문에 사단 차원에서 받을 수 있는 오만가지 훈련은 거의 다 뛴다고 보면 된다. 만약 당신이 해당 대대에 떨어질 예정이라면 1년 중 절반 이상은 밖에서 자므로 마음 단단히 먹는게 좋다.[40] 자대에 따라서 말년은 물론이고 제대 하루 전날에도 밀린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41] 2005~7년 기준으로는 오히려 이렇게 밀려고 하면 사회에 불만 있냐며 막았었다.[42] 조교로 뽑혔다는 루머가 있었으나, 평범한 군생활을 하고싶다는 본인 의사에 따라 포병으로 자대배치를 받았다. [43] 김운용 대장의 장인과 윤현숙의 아버지는 동명이인인데 둘의 관계는 6촌관계이고 김운용의 장인은 윤용남 전 합참의장과는 동갑내기사촌관계이자 육사동기(육사19기)이다.[44] #[45] 그의 군대동기들의 증언이 있었다.[46]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