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 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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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 대전
영어: World War II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Infobox_collage_for_WWII.png

날짜

1939년 9월 1일[1] ~ 1945년 9월 2일[2]

장소

아프로-유라시아, 아메리카, 대서양, 태평양, 지중해

원인

제2차 세계 대전/원인

교전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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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

연합국의 승리

영향

식민제국 몰락
유엔(UN, 국제 연합) 창설
파일:미국 국기.png 미국, 파일:소련 국기.png 소련 초강대국 등극
냉전 시작

피해 규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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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국 군인 사상자

추축국 군인 사상자

알바니아: 3만명
오스트레일리아: 39700명
벨기에: 12000명
브라질: 1000명
불가리아: 18500명
버마: 2600명
캐나다: 42000명
중국: 300만명
체코슬로바키아: 35000~46000
네덜란드령 동인도네시아: 11500명
이집트: 1100명
에티오피아: 15000명
프랑스: 21만명
그리스: 35100명
괌: 1000~2000명
인도(영국령): 87000명
이란: 200명
이라크: 500명
몽골: 300명
네덜란드: 6700명
뉴질랜드: 11700명
노르웨이: 2000명
필리핀(미국령): 57000명
폴란드: 24만명
남아프리카공화국: 11900
스웨덴: 100명
태국: 5600명
터키: 200명
영국: 383700명
미국: 407300명
유고슬라비아: 30만~44만 6천명
총합: 1,600만 명 이상

추축국 총합: 800만 명 이상

연합국 민간인 사상자

추축국 민간인 사상자

4,500만 명 이상

400만 명 이상

연합국 총 사상자

추축국 총 사상자

6,100만 명 이상

1,200만 명 이상

1. 개요2. 전황 지도3. 발단4. 전투 목록
4.1. 전간기4.2. 1939년4.3. 1940년4.4. 1941년4.5. 1942년4.6. 1943년4.7. 1944년4.8. 1945년
5. 주요 전선6. 참전국
6.1. 연합국
6.1.1. 중일전쟁6.1.2. 추축국의 최초 침공 피해국6.1.3. 본국 혹은 종주국의 전쟁 수행 합류6.1.4. 별도 참전6.1.5. 나치 독일의 소련 침공6.1.6. 일본제국의 미국 침공6.1.7. 그 외
6.2. 추축국6.3. 중립국6.4. 중립이었지만 추축국에게 점령된 국가6.5. 중립이었지만 연합국에게 점령된 국가6.6.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연합국 지위 여부
6.6.1. 연합국이 아니다6.6.2. 연합국이 맞다
7. 전쟁 범죄8. 전후 상황
8.1. 연합국8.2. 추축국
9. 기타10. 어록11. 관련 인물12. 창작물
12.1. 영화12.2. 게임12.3. 만화·애니메이션12.4. 기타
13.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다시는 일어나선 안될 인류 최대의 전쟁

제2차 세계 대전은 1939년추축국이 일으켜 1945년까지 연합국추축국 사이에서 벌어진 인류 역사상 두 번째로 일어난 세계 대전이자 인류사 최대의 전쟁이다. 세계 역사의 중심이 유럽에서 초강대국으로 떠오른 미국과 소련으로 넘어간 계기이기도 하다. 전쟁으로 인한 사회적 변화도 컸으며, 과격하게 말하면 근대를 무덤으로 보내 버린 대사건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는다.[3] 이 전쟁을 기점으로 수많은 국가의 정치나 정책이 바뀌었고, 나라나 정권이 멸망하거나 재탄생하기도 하였다.[4]

더불어 추축국의 파시즘적인 통치, 대량 학살과 같은 전쟁 범죄들로 인해 논란의 소지가 많았던 다른 수많은 전쟁들과 다르게 추축국을 일방적으로 비난해도 되는 전쟁이란 점도 특기할만 하다.[5] 이에 대한 반성으로 전후 UN이 설립되었으며, 보편적인 인권과 자유에 대한 운동이 대두되었고, 과정은 험난했지만 결과적으로 보다 자유롭고 평화로운 시대가 오게 되었다.

2. 전황 지도[편집]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1089px-World_War_II_in_Europe%2C_1942_%28Korean%29.svg.png

파일:attachment/Second_world_war_asia_1937-1942_map_00001.png

유럽 전선에서의 추축국(독일, 이탈리아)

태평양 전쟁에서의 추축국(일본)

두 지도 모두 붉은 색은 추축국에 항전하는 나라, 푸른색은 추축국 및 추축국에 점령된 나라들이나 동맹국이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1945-05-15GerWW2BattlefrontAtlas.jpg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Second_world_war_europe_1943-1945_map_en.png

파일:external/www.westpoint.edu/ww2%20asia%20map%2052.jpg

1945년 5월 9일 나치 독일 항복 당시

1945년 8월 15일 일본 제국 항복 당시

3. 발단[편집]

4. 전투 목록[편집]

4.1. 전간기[편집]

4.2. 1939년[편집]

4.3. 1940년[편집]

유럽 북부


유럽 서부


지중해/북아프리카

4.4. 1941년[편집]

4.5. 1942년[편집]

4.6. 1943년[편집]


유럽 동부


유럽 서부 / 지중해


북아프리카


태평양

4.7. 1944년[편집]

4.8. 1945년[편집]

5. 주요 전선[편집]

6. 참전국[편집]

파일:external/www.mapsofworld.com/world-war-ii-axis-vs-allied-powers.jpg
[15]



제2차 세계대전 참전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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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국

유럽 : 파일:external/fa6377aa6c98d7f8eb90c1effc44c9f492b1c5e4b08cbe754dcce80ea5498a9b.png 프랑스 제3공화국파일:자유 프랑스 국기.png 자유 프랑스, 파일:영국 국기.png 영국, 파일:소련 국기.png 소련, 파일:네덜란드 국기.png 네덜란드, 파일:벨기에 국기.png 벨기에, 파일:룩셈부르크 국기.png 룩셈부르크, 파일:터키 국기.png 터키, 파일:폴란드 국기.png 폴란드파일:폴란드 국기.png 폴란드 망명 정부, 파일:노르웨이 국기.png 노르웨이, 파일:체코 국기.png 체코슬로바키아,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1200px-State_Flag_of_Greece_%281863-1924_and_1935-1970%29.svg.png 그리스 왕국, 파일:external/cea7f84262d773700c3c500ca249e90835fbb2cf82da7e9d5ad34fea0f1fa5d4.png 유고슬라비아 왕국,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Flag_of_Albania_(1934-1939)_svg.png 알바니아 왕국(조그 왕조)

아시아: 파일:대만 국기.png 중화민국,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600px-British_Raj_Red_Ensign.svg.png 인도 제국, 파일:네팔 국기.png 네팔 왕국,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320px-Flag_of_the_People%27s_Republic_of_Mongolia_%281940-1992%29.svg.png 몽골 인민 공화국, 파일:Flag_of_the_Provisional_Government_of_the_Republic_of_Korea.png 대한민국 임시정부# ,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320px-Flag_of_the_Philippines_%28navy_blue%29.svg.png 필리핀 자치령,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1050px-State_Flag_of_Iran_%281964-1980%29.svg.png 이란(팔라비),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320px-Flag_of_the_Tuvan_People%27s_Republic_%281933-1939%29.svg.png 투바 인민 공화국, 파일:레바논 국기.png 레바논,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400px-Flag_of_Saudi_Arabia.svg.png 사우디아라비아, 파일:900px-Flag_of_Syria_2011,_observed.svg.png 시리아,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220px-Flag_of_the_Kingdom_of_Sarawak_%281870%29.svg.png 사라왁 왕국

아메리카 : 파일:미국 국기.png 미국, 파일:attachment/캐나다/Canadian_Red_Ensign.png 캐나다, 파일:파나마 국기.png 파나마#, 파일:external/www.worldstatesmen.org/cr_state.gif 코스타리카#, 파일:도미니카 공화국 국기.png 도미니카 공화국#, 파일:엘살바도르 국기.png 엘살바도르#, 파일:아이티 국기.png 아이티#, 파일:온두라스 국기.png 온두라스#, 파일:니카라과 국기.png 니카라과#, 파일:과테말라 국기.png 과테말라#, 파일:쿠바 국기.png 쿠바#, 파일:멕시코 국기.png 멕시코#, 파일:볼리비아 국기.png 볼리비아#, 파일:콜롬비아 국기.png 콜롬비아#, 파일:페루 국기.png 페루#, 파일:에콰도르 국기.png 에콰도르#, 파일:파라과이 국기.png 파라과이#, 파일:우루과이 국기.png 우루과이#, 파일:베네수엘라 국기.png 베네수엘라#, 파일:칠레 국기.png 칠레#, 파일:브라질 국기.png 브라질 , 파일:아르헨티나 국기.png 아르헨티나#
아프리카 : 파일:1188px-Flag_of_South_Africa_(1928-1994).svg.png 남아프리카 연방,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900px-Flag_of_Ethiopia_%281897-1936%3B_1941-1974%29.svg.png 에티오피아 제국, 파일:라이베리아 국기.png 라이베리아, 파일:Flag_of_Egypt_(1922–1958).svg.png 이집트 왕국

오세아니아 : 파일:오스트레일리아 국기.png 오스트레일리아, 파일:뉴질랜드 국기.png 뉴질랜드

추축국

유럽 :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1000px-Flag_of_German_Reich_%281935%E2%80%931945%29.svg.png 나치 독일, 파일:external/18a4927e683473777e3de0f8498861d069cc5fe0a8ad1f8d6bfc064d6683a673.png 이탈리아 왕국*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500px-War_flag_of_RSI.svg.png 이탈리아 사회 공화국+,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900px-Flag_of_Hungary_%281867-1918%29.svg.png 헝가리 왕국, 파일:핀란드 국기.png 핀란드*,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Flag_of_Philippe_P%C3%A9tain%2C_Chief_of_State_of_Vichy_France.gif 비시 프랑스+, 파일:루마니아 국기.png 루마니아 왕국*,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150px-Flag_of_Bulgaria.svg.png 불가리아 왕국*,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320px-Flag_of_Greece_%281822-1978%29.svg.png 그리스국+,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300px-Flag_of_Independent_State_of_Croatia.svg.png 크로아티아 독립국+, 파일:600px-Flag_of_Albania_(1939-1943).svg.png 알바니아 왕국(사보이아 왕조)+,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250px-Flag_of_First_Slovak_Republic_1939-1945.svg.png 슬로바키아 제1공화국+,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250px-Flag_of_Serbia_%281941%E2%80%931944%29.svg.png 세르비아(구국 정부)+,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440px-Flag_IMARO.svg.png 바르다르 마케도니아+,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200px-ROA_chevron.svg.png 로고트 자치국+,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240px-Nasjonal_Samling_insignia.svg.png 노르웨이(크비슬링 정권)+,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2000px-Flag_of_Spain_(1938_-_1945).svg.png 스페인국#, 파일:덴마크 국기.png 덴마크#

아시아 :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1000px-Merchant_flag_of_Japan_%281870%29.svg.png 일본 제국, 파일:태국 국기.png 태국,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262px-Flag_of_the_Republic_of_China-Nanjing_%28Peace%2C_Anti-Communism%2C_National_Construction%29.svg.png 중화민국(왕징웨이 정권)+, 파일:이라크 왕국 국기.png 이라크 왕국*,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320px-Flag_of_the_Philippines_%281943-1945%29.svg.png 필리핀 제2공화국+,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320px-1931_Flag_of_India.svg.png 자유 인도 임시정부+,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320px-Flag_of_Cambodia_under_Japanese_occupation.svg.png 캄보디아 왕국+,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647px-Flag_of_the_Empire_of_Vietnam_%281945%29.svg.png 베트남 제국+,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320px-Flag_of_Burma_1943.svg.png 버마국+

* 전쟁 도중 추축국에서 연합국으로 전향
+ 괴뢰 국가/정권
# 간접적 지원/지원 여부 논란 있음


6.1. 연합국[편집]

6.1.1. 중일전쟁[편집]

제2차 세계 대전 발발 이전, 중국일본은 따로 미리 전쟁을 치르는 중이었다. 이 둘의 관계는 제2차 세계 대전 발발 이후 연합국추축국간의 관계로 확대되었다.

국가

참전일

참전 계기

중화민국[16]

1937년 7월 7일 [17]

일본의 침략, 중일전쟁

6.1.2. 추축국의 최초 침공 피해국[편집]

독일의 폴란드 기습 침공으로 인해 제2차 세계 대전이 시작 되었다. 폴란드는 영국프랑스와 상호방위조약을 맺어놓은 동맹국이었기 때문에 두 국가는 상호방위조약에 규정된 의무를 이행하기 위해 독일에 맞서싸우게 되었다.

국가

참전일

참전 계기

폴란드 제2공화국폴란드 망명 정부

1939년 9월 1일

독일의 선제침략, 폴란드 침공

프랑스 제3공화국자유 프랑스

1939년 9월 3일

폴란드와의 상호방위조약 이행

영국

1939년 9월 3일

폴란드와의 상호방위조약 이행

6.1.3. 본국 혹은 종주국의 전쟁 수행 합류[편집]

영국이 전쟁에 참전하기로 결정하자 영국의 식민지들 그리고 자치령들과 영국을 본국으로 생각하고 있던 영연방 국가들 또한 독일과의 전쟁을 선포하게 됐다. 이후 이들은 영연방군[18]이라 불리며 유럽, 아프리카, 아시아-태평양, 남아메리카 전선에서 독일, 이탈리아, 일본 등 추축국에 맞서 싸우는 주력을 맡게 된다.[19][20]

국가

참전일

참전 계기

오스트레일리아

1939년 9월 3일

본국(영국) 정부의 전쟁 수행에 합류[21]

뉴질랜드

1939년 9월 3일

본국(영국) 정부의 전쟁 수행에 합류

뉴펀들랜드 자치령[22]

1939년 9월 4일

영국의 전쟁 수행에 합류

네팔 왕국

1939년 9월 4일

본국(영국)의 전쟁 수행에 합류[23][24]

캐나다

1939년 9월 10일

본국(영국) 정부의 전쟁 수행에 합류[25]

남아프리카 연방[26]

1939년 9월 6일

본국 정부의 전쟁 수행에 합류.

남로디지아[27]

정확한 시기가 모호함[28]

본국(영국)의 전쟁 수행에 합류함.[29]

영국령 인도

1939년 9월 3일

종주국(영국)의 전쟁 수행에 합류

영국령 케냐

1939년 9월 3일

종주국(영국)의 전쟁 수행에 합류[30]

탄자니아[31]

1939년 9월 3일

종주국(영국)의 전쟁 수행에 합류[32]

영국령 나이지리아

1939년 9월 3일

종주국(영국)의 전쟁 수행에 합류[33]

영국령 골드 코스트

1939년 9월 3일

종주국(영국)의 전쟁 수행에 합류

영국령 자메이카

1939년 9월 3일

종주국(영국)의 전쟁 수행에 합류[34]

6.1.4. 별도 참전[편집]

국가

참전일

참전 계기

바레인

1939년 9월 10일

독일에 선전포고 후 연합군에 합류[35]

노르웨이

1940년 4월 9일

독일의 선제 침략, 노르웨이 침공

네덜란드[36]

1940년 5월 10일

프랑스 침공에 따른 독일군 침략

벨기에

1940년 5월 10일

프랑스 침공에 따른 독일군 침략

룩셈부르크

1940년 5월 10일

프랑스 침공에 따른 독일군 침략

체코슬로바키아 제2공화국 망명정부

1940년 7월 18일

독일에 강제병합된 본국 탈환 노력

이집트 왕국[37]

1940년 9월 16일[38]

이탈리아의 선제 침략[39]

그리스 왕국

1940년 10월 28일

그리스 침공

유고슬라비아 왕국

1941년 4월 6일

유고슬라비아 침공, 전 추축국[40]

6.1.5. 나치 독일의 소련 침공[편집]

독소전쟁 발발로 인해 소련이 연합국에 가담했다.

국가

참전일

참전 계기

소비에트 연방

1941년 6월 22일[41]

독소전쟁

투바 인민 공화국

1941년 6월 25일

종주국(소련)의 전쟁 수행에 합류

몽골 인민 공화국

1941년 8월 9일[42][43]

종주국(소련)의 전쟁 수행에 합류[44]

6.1.6. 일본제국의 미국 침공[편집]

진주만 공습으로 인해 미국,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이 연합국에 가담했다.

국가

참전일

참전 계기

파나마

1941년 12월 7일

진주만 공습에 따른 미국의 전쟁수행에 합류, 일제의 침략.

미국

1941년 12월 8일

일본의 기습 공격[45], 진주만 공습

필리핀 자치령 [46]

1941년 12월 8일

진주만 공습에 따른 미국의 전쟁수행에 합류

코스타리카

1941년 12월 8일

미국의 전쟁수행에 합류

도미니카 공화국

1941년 12월 8일

미국의 전쟁수행에 합류

엘살바도르

1941년 12월 8일

미국의 전쟁수행에 합류

아이티

1941년 12월 8일

미국의 전쟁수행에 합류[47]

온두라스

1941년 12월 8일

미국의 전쟁수행에 합류[48]

니카라과

1941년 12월 8일

미국의 전쟁수행에 합류

피지 식민지

1941년 12월 8일

연합국의 전쟁수행에 합류[49]

과테말라

1941년 12월 9일

미국의 전쟁수행에 합류

쿠바

1941년 12월 9일

미국의 전쟁수행에 합류

대한민국 임시정부

1941년 12월 10일

연합국의 전쟁수행에 합류
(연합국 지위여부는 아래 문단 참조.)

6.1.7. 그 외[편집]

국가

참전일

참전 계기

멕시코

1942년 5월 22일

미국의 전쟁수행에 합류

브라질[50]

1942년 8월 22일

U-Boat의 자국상선 공격에 격분하여 참전

에티오피아 제국

1942년 12월 14일

영국군에 의해 해방 후 합류

볼리비아

1943년 4월 7일

미국의 전쟁수행에 합류[51]

콜롬비아

1943년 7월 26일

미국의 전쟁수행에 합류[52]

이탈리아 왕국

1943년 9월 8일

항복후 연합국에 합류하였다.
독일이 구금된 무솔로니를 구출해 이탈리아 사회주의 공화국을 수립하자,
이에 대항해 이탈리아 내전을 치렀다.

이란 제국

1943년 9월 9일

영국과 소련의 전쟁수행에 합류

라이베리아

1944년 1월 27일

미국의 전쟁수행에 합류[53]

페루

1944년 2월 12일

미국의 전쟁수행에 합류

루마니아 왕국

1944년 8월 25일

전 추축국

불가리아 왕국

1944년 9월 8일

전 추축국[54]

산마리노

1944년 9월 21일

연합군에 의해 보호받은 후 참전

알바니아 왕국[55]

1944년 10월 26일

1939년, 이탈리아에 강제통합된 후 연합군에 의해 해방된 후 참전

헝가리 왕국

1945년 1월 20일

전 추축국

바하왈푸르[56]

1945년 2월 2일

종주국(영국)의 전쟁수행에 합류.

에콰도르

1945년 2월 2일

미국의 전쟁수행에 합류

파라과이

1945년 2월 7일

미국의 전쟁수행에 합류

우루과이

1945년 2월 15일

미국의 전쟁수행에 합류

베네수엘라

1945년 2월 15일

미국의 전쟁수행에 합류 [57]

터키

1945년 2월 23일

[58]

시리아[59]

1945년 2월 26일

독일과 일본에 선전포고

레바논

1945년 2월 27일

사우디아라비아

1945년 2월 28일

[60]

아르헨티나

1945년 3월 27일

미국의 전쟁수행에 합류[61] 및 친위대를 피해 도망친 사람들의 연합국 가담요구[62]

칠레

1945년 4월 11일

미국의 전쟁수행에 합류[63]

핀란드

1945년 4월 15일

전 추축국, 소련의 압박과 영미의 추축국 탈퇴 및 연합국 가담요구

6.2. 추축국[편집]

국가

참전일

참전 계기

일본 제국

1937년 7월 7일

중국에 대한 전면공격

만주국

1937년 7월 7일

일본의 전쟁 수행에 합류

몽강자치연합정부

1937년 8월 19일

일본의 전쟁 수행에 대한 동조

나치 독일

1939년 9월 1일

폴란드에 대한 전면 기습공격

슬로바키아 제1공화국

1939년 9월 1일

독일의 전쟁수행에 대한 동조

핀란드[64]

1939년 11월 30일

소련의 기습공격, 겨울전쟁

이탈리아 왕국(→이탈리아 사회주의 공화국)[65][66]

1940년 6월 10일

대프랑스/영국 전쟁에서의 전리품 획득

이라크 왕국[67]

1941년 4월 18일

영국의 지나친 내정간섭에 대한 반발

헝가리 왕국

1941년 6월 22일

독소전쟁에 가담

루마니아 왕국

1941년 6월 22일

소련에 빼앗긴 몰도바 지방 회복

유고슬라비아 왕국

1941년 3월 25일

사면초가로 인해 가담 이후 탈퇴, 이후 괴뢰국화

불가리아 왕국

1941년

유고슬라비아 침공에 가담

알바니아 왕국[68]

1941년 12월 17일

미국에 선전포고.[69]

크로아티아 독립국

1941년 4월 10일

독일에 의해 독립 이후 유고슬라비아 침공에 가담.

태국[70]

1942년 1월 25일

일본의 남방작전에 가담, 인도차이나 지방 회복

자유 인도 임시정부

1942년

인도를 영국으로부터 독립[71]

6.3. 중립국[편집]

개전부터 종전까지 형식상으로라도 중립을 유지한 국가에 한해 기술한다. 추축국의 침략으로 점령된 벨기에처럼 중립의사는 있으나, 침공을 당해서 생존을 위해서라도 억지로 참전한 국가가 많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경우에는 중립국에서 제외되고 참전국으로 분류된다.

국가

중립사유

스위스

국토 대부분이 산지라 점령해서 이득보는 것이라곤 이탈리아 북부와의 교통 정도인데 의외로 병력이 많아 알프스 등지에서 버틸 경우 예상되는 피해가 컸다. 항복 직전이 되면 사회 인프라까지 자신의 손으로 다 붕괴시키겠다는데 그냥 두는 편이 돈세탁 등으로 쓸모가 많아서 오스트리아에서 독립한 이후 꾸준히 국토 사수에 성공, 영세 중립국으로서의 이미지를 굳혔다. 아예 전투가 없던 것은 아니고, 스위스 영공을 침입한 독일 공군과 스위스 공군이 몇차례 소규모 공중전을 벌인 적이 있다. 연합군의 경우 스위스의 중립을 보장해주긴 했지만 독일을 폭격하려던 폭격기가 스위스 도시를 오폭한 사례가 소수 있다. 결국 스위스는 이러한 자국 영공에 들어온 연합국과 추축국 항공기를 가리지 않고 나포하는 강공책을 내놓았다.

스페인국

당시 프랑코 정권은 내전에서 독일과 이탈리아의 덕을 많이 봤지만, 역시 내전의 후유증으로 어느 한쪽 줄에 설 처지가 아니었다, 거기에 독일 공군 원수란 작자가 스페인 내전 중에 벌인 개짓 덕분에 추축국에 가입할 이유를 상실했다. 독일의 압박에 의해 의용군 1개 사단[72]과 청색 비행중대[73]동부전선에 파병했고 상당한 활약도 했지만 어디까지나 의용군이었을 뿐이다. 나중에는 은근슬쩍 연합군 편을 들어서 히틀러가 분노하기도 했다. 일본과도 우호 관계를 유지했지만 1945년 4월에 단교했다. 이미 전황이 연합군 쪽으로 기울어서 그 쪽 눈치를 본 것도 있었기 때문이다.

안도라

현재도 그랬지만 당시에도 스페인과 프랑스의 보호령이었기 때문에 스페인이 중립을 지키자 스페인에 묻어가기 식으로 중립국이 되었다.

포르투갈

역시 스페인과 마찬가지로 안토니우 살라자르 독재정권이었으며, 지리적으로 스페인에 둘러싸여서 스페인에 묻어간 셈이다. 연합국과는 해상통로로 연결되고, 추축국과는 스페인을 거쳐서 육로로 연결되므로 전쟁 기간 내내 양측의 스파이 활동이 성행했다. 다만 파시즘 국가는 아니어서 전쟁 중반 이후에는 아소르스 제도 등의 주요 거점을 연합국에게 개방해서 사실상 연합국이 된다. 사실 포르투갈은 포르투갈이 몰락하고 영국이 힘을 가진 뒤부터 전통적인 영국의 동맹국이었다. 대표적으로 나폴레옹 전쟁틸지트 조약 후 전 유럽이 나폴레옹의 동맹이나 밑에 있을 때 영국편에 서서 프랑스와 싸운 단 하나의 국가가 바로 포르투갈이다.

스웨덴

형식적으론 중립국인데 나치 독일의 편의를 굉장히 많이 봐줬다. 당장 독일의 철광석 수요의 상당부분을 스웨덴이 메꿔줄 지경이었다. 이웃국가 중 노르웨이-덴마크[74]는 독일에 점령, 핀란드는 추축동맹에 가담하여 독일에 의해 국토가 포위되어 있었으므로 독일이 단번에 밀어버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 중 노르웨이는 스웨덴이 길을 비키지 않겠다면 공격하겠다는 독일의 협박에 밀려서 길을 내줘 점령당했는데 이 때문에 안 그래도 깊었던 노르웨이의 반스웨덴 감정이 더 심해졌다.

아일랜드

과거 아일랜드를 식민지배했던 영국 때문에 독일의 선전을 기대하고 있었다. 하지만 영국 옆에 있어서 영국의 견제가 심했으며, 미국과 영국간의 통상항로 중간에 버티고 선 관계로 전략적인 요충지에 있는데다가 독일이 아일랜드를 점거하려는 계획을 만들다가 몇 번 들켜버리자 아예 미군이 아일랜드를 무혈침공해서 사실상 연합국의 점령지로 바꿔버린다. 그 외에 아일랜드인이 개인적으로 영국군 등 연합군 측에 참전한 사례도 있었다.

리히텐슈타인

이쪽은 스위스에 묻어간 식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리히텐슈타인은 사실상 스위스의 보호령이기도 했다.

아프가니스탄 왕국

이란이 소련과 영국에게 사실상 분할점령되면서 일종의 완충지대로 중립국임을 인정받았다. 물론 유사시 연합국이 진주할 수 있었긴 하지만 이 지역이 원래부터 외국군대가 주둔하는 것을 극히 꺼리고 집단적으로 반항하는 곳이었으므로 긴급사태가 터지지 않는 한 사실상 방치하는 지역으로 선정되었다.

티베트

일본과의 사이에 중국이 있고, 중국의 상황이 어수선한데다 사실상 당시의 중화민국은 티베트를 건드릴 생각 없이 엄연히 다른 독립국으로 인정하고 있었기에 청나라의 붕괴 이후 중국과는 이웃한 다른 국가로 존재하며 중립을 지키고 있었으나 종전 뒤 중화인민공화국이 침공해와 점령당하게 된다.

바티칸 시국

건드리면 지옥간다독일이 점령을 시도하며 대치한적 있으나, 교황이 근위대에게 화기가 아닌 미늘창만 들게하며 비폭력적으로 나왔고,전세계 가톨릭 교도들의 반발을 걱정해 포기하였다.

6.4. 중립이었지만 추축국에게 점령된 국가[편집]

국가

점령사유

덴마크

1940년 4월까지 중립을 유지했으나 독일이 노르웨이 침공을 위한 그 전초기지로 삼기 위해 침공했다. 지리적으로 연합국의 지원을 받기 어려웠고 독일의 군사력에 고스란히 노출되었으며 군사력 격차도 심했기에 침공 당일 새벽, 덴마크 정부는 독일의 제안을 받아들여 자국 영토에 독일군 주둔과 군시설 사용을 허가했다. 덕분에 덴마크는 독일군 점령지이면서도 어느정도 개입은 받지만 그래도 자주적이며 독립적인 정부가 존속할 수 있었다. 또한, 독일의 침략을 받았음에도 연합국에 가담하지 않은 유일한 나라가 되었다. 하지만 독일에 전황이 불리해지는 1943년 후반부터 독일도 덴마크에 대대적으로 개입을 시작하였으며 수탈이 강화되었다. 이를 교훈삼아 덴마크는 대전 종식 후 NATO에 가입한다.

6.5. 중립이었지만 연합국에게 점령된 국가[편집]

국가

점령사유

이란 제국

1941년 초까지 정부는 중립을 유지했으나 정부와 별개로 국민여론은 영국과 소련에 대한 반감이 강했고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친독정서가 상당했다. 한편, 영국은 북아프리카 전선의 전황 악화에 이에 호응하는 이라크의 반영 폭동으로 중동에서 위기감을 느끼고 있었으며 소련은 독소전쟁 발발 후 영국으로부터의 군수물자 지원루트 확보 필요성을 느꼈다. 이러한 양국의 이해관계가 일치하면서 페르시아 침공이 개시, 이란은 항복하고 국왕이 퇴위당했으며 대전 기간동안 영소군의 점령을 받게 된다.

6.6.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연합국 지위 여부[편집]

대한제국은 추축국인 일본 제국에 의해 이미 1910년에 병합 당한 상태였으며, 따라서 제2차 세계 대전 기간 동안 한반도에는 별도의 자주적인 국가가 존재하지 않았다. 한반도를 식민 통치하던, 일본 제국 조선총독부일본 본토일본군을 위해, 물자 및 인력을 적극적으로 반출하고 지원했다. 사족으로 대한제국의 황태자가 공식적으로는 일본 제국의 군인 직위에 있었다.

6.6.1. 연합국이 아니다[편집]

대한민국 임시 정부는 진주만 공습으로부터 3일 후인 1941년 12월 10일에 정식으로 대일본, 대독일 선전포고를 하기는 했지만, 단순히 국민당의 지원을 받으면서 극히 제한적인 활동만 펼쳤기 때문에 참전국 및 승전국으로 인정받지는 못한다.

6.6.2. 연합국이 맞다[편집]

하지만 대한민국 임시 정부를 연합국이라고 주장하는 견해도 있다. 1919년 3·1 운동을 기점으로 구성된 임시정부는 이후 중일 전쟁 동안 중국 국민당과 연합하여 독립운동을 통한 방식으로 대일항쟁을 시작하는 한편, 진주만 공격이 있었던 1941년에는 한국 광복군을 창설해 추축국인 일본 제국과 나치 독일에 선전포고를 한다. 또한 단순히 국민당의 지원을 받으면서 극히 제한적인 활동만 펼쳤고 타국으로부터 승인을 못받았다는 주장에도 무리가 있는데 임시정부는 1944년에는 버마 전선에서 영국군의 요청으로 임팔 전투(태평양 전쟁)에 광복군 요원을 투입하여 직접적으로 2차대전에 참전을 하고 타국 정부로부터 1921년 중화민국의 승인을 받고 중화민국 이외에도 1944년에는 소련으로부터, 다음 해 1945년에는 프랑스와 폴란드, 리투아니아 등등 몇몇 정부로부터, 특히 주요 연합국 5개국 중 3개국인 중화민국, 소련, 프랑스로부터 승인을 받았다는 것을 근거로 한다.

7. 전쟁 범죄[편집]

전체 사상자 7500만명 중 5000만명 이상이 민간인 사망자로, 그 절대다수가 추축군의 손에 의해 저질러졌다. 유럽-아프리카 전선에서는 주로 독일 국방군과 무장친위대에 의해 홀로코스트로 대표되는 계획적, 조직적인 인종 학살이 이루어졌고, 동아시아-동남아시아, 태평양 전선에서는 일본 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과 일본군 위안부로 대표되는 집단 강간 등이 두드러진다. 점령지의 인구를 전쟁에 강제 동원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물론 추축군만이 전쟁범죄를 저지른 것은 아니라서, 연합군도 전선에서의 포로 사살이나 민간인 약탈 및 강간 또는 살인이 자행되었다. 진영을 가리지 않고 민간 시설에 대한 전략 폭격이 대대적으로 일어난 전쟁이기도 하다. 충칭 대공습, 드레스덴 폭격 등. 커티스 르메이의 "무고한 민간인은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말이 여기서 나왔다.

8. 전후 상황[편집]

8.1. 연합국[편집]

연합국은 매우 많지만 일단 전쟁 중 파시스트들과 가장 적극적으로 박터지게 싸웠던 미국, 러시아(구소련), 영국, 프랑스, 폴란드, 체코, 네덜란드, 중국을 중심으로 서술한다.

미국은 승전 이후 해리 트루먼 행정부 체제를 통해서 전후 복구와 경제 부흥에 힘쓰기도 하였으나 소련과 동구권 공산주의와의 동서냉전으로 한때 같은 연합국으로 활동했던 소련과 정치적 대립을 하게 되었으며 1990년대에 가서야 동서냉전을 종식하게 되었고 지금은 세계 최대의 강국으로 부상하며 영향력을 과시하고 있다. 러시아소련이 망하면서 예전만큼은 못하지만 을 무기로 다시 성장 중.

영국은 승전 이후 전후 복구와 재건에 힘쓰게 되었다. 타 유럽 국가에 비해 영국 본토와 영국민의 피해는 상대적으로 적었지만, 제 1차 세계 대전에 이은 또다른 괴멸적 전쟁으로 영국 경제는 침체기에 접어들게 된다. 이후 영국은 베버리지 보고서의 원칙에 따라 복지국가론에 따라 국가를 재건하였으며, 사상 처음으로 복지국가 개념이 영국에서 실현됐다.
또한 이 시기 영국은 더 이상 식민 제국을 유지할 수 없다는 판단 하에 식민지들을 차래로 독립시켜 대영제국을 점진적으로 해체시키고, 이를 영연방이라는 국제 기구로 재편하게 된다. 이 영연방을 통해 영국은 영연방 왕국 구성국들은 물론, 자신들에게 우호적인 과거 피식민 국가들과의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였으며, 영국의 전후 복구는 이 영연방 각국의 지원과 협력, 영연방 경제 연합[77]을 통해 이뤄졌으며, 이 시기 영연방 각국 사람들이 영국으로 건너가 부족한 일손을 채웠다. 이런 영연방이라는 기구와, 세계 초강대국인 미국의 배려, 그리고 영국 문화의 소프트 파워 덕에 영국이 초강대국에서 물러난 오늘날까지도 어느 정도 세계적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다.

프랑스는 전장이 된 자신들의 국토를 수습하고, 전후 복구 사업을 진행하며 머지 않아 경제적 풍요와 정치적 안정을 되찾게 되었다. 하지만 영국, 이스라엘과 함께 수에즈 전쟁에서 제대로 망신을 당했고, 식민제국을 계속 유지하고 싶었던 욕심에 알제리와 베트남을 침공해 식민지 전쟁을 벌였다. 이 전쟁의 실패로 인해 프랑스는 초강대국 지위에서 탈락하게 된다. 물론 초강대국에서만 탈락했을 뿐이지 아직도 영국과 함께 유엔 상임이사국으로 큰 목소리를 내고있는 중이다.
사회적으로는 드골주의와 사민주의의 극렬한 좌우대립과 허무주의를 겪었다. 하지만 이런 대립 속에서도 프랑스 특유의 보편적 복지체제를 형성하게 된다.
이 시기 프랑스는 전후 경제 복구와 유럽의 평화 체제 정착, 그리고 독일에 의한 또다른 전쟁의 발발을 막기 위해 유럽 각국과의 협력 필요성을 느꼈다. 이 때문에 훗날 유럽 연합으로까지 이어지게 되는 최초의 유럽 공동체[78]를 형성하여, 오늘날 독일과 함께 유럽 공동체를 이끄는 두 주축이 된다.

폴란드는 이후 소련군과 그에 협력한 폴란드 공산당에게 넘어가 소련의 괴뢰국화 된다.소련과 폴란드 공산당은 이 과정에서 파시스트들과 싸웠던 망명정부 및 폴란드 국내군 소속 장교들을 서방의 스파이로 몰아 처형시키는 희대의 병크를 일으키고 만다. 이후 콘스탄틴 로코솝스키를 위시한 소련의 간섭을 겪다가 이에 반발한 고무우카가 집권하고 또 이에 반발한 세력으로 인해 쫓겨나는 등 여러 우여곡절을 겪다가 레흐 바웬사의 자유노조 운동으로 마침내 1989년 공산당 독재가 종식된다. 폴란드는 냉전이 끝나자마자 바로 NATO유럽 연합에 가입하는 등 서방 세계로 화려하게 다시 돌아온다.

체코는 제2차 세계 대전 이전 뮌헨 협정으로 독일에게 빼앗긴 국권을 제2차 세계 대전에서 나치가 패망함으로서 다시 되찾았으나 뒤이어 들어온 소련군과 소련이라는 외세를 등에 업은 체코 공산당에 의해 공산당의 지배하에 들어가 소련의 위성국으로 전락한다. 그러다가 스탈린 사후 공산체제에 대한 반감이 고조되면서 알렉산데르 둡체크등 개혁파 세력들이 집권하여 이후 체코 내부에서 정치 민주화를 요구하는 반정부 민주화 운동이 일어났으나 소련이 체코에 대한 군사개입을 일으켜 반정부 세력들을 진압하였고 둡체크의 개혁정책에 반발하던 체코 공산당내 보수파 세력들이 소련의 군사 개입을 등에 업고 둡체크를 몰아내면서 실패하였다. 그러나 소련군의 반정부 운동 진압 이후에도 바츨라프 하벨등이 이끄는 반 공산 세력들의 반정부 투쟁이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이어졌고 1989년 동유럽 자유화 바람을 틈타 벨벳혁명이 일어나게 되어 마침내 야케스 공산당 서기장이 퇴진하고 이후 실시된 민주 다당제 대선에서 반공 운동 지도자였던 하벨이 당선되면서 마침내 공산당 독재 체제가 종식되었다.

네덜란드는 추축국에서 해방된 이후 연합국 자격을 얻었지만, 식민지였던 인도네시아가 네덜란드의 식민지배에서 독립하려고 하자 인도네시아를 상대로 전쟁을 일으켰다. 그러나 한물 간 식민주의 대신 새로운 신예인 인도네시아를 자국의 동맹으로 끌여들이길 원했던 미국영국, 소련등 전승국들의 압박으로 금방 데꿀멍하고 독립시켜줘야 했다. 이후엔 수리남과 같은 해외 식민지가 모조리 잘려나가고 아루바 등 소수만 남긴 채 벨기에, 룩셈부르크와 함께 유럽 연합에 가입하고 현재는 조용히 살고있는 중이다.

중국일본 제국 대신 아시아의 주도 국가로 자리매김할 뻔 했으나 국공내전이 재발발하여 공산혁명으로 기존의 중화민국(국민정부)타이완 섬으로 국부천대하면서 철수하고[79] 중화인민공화국이 건국되었고 미국소련 양쪽에 밉보여 1970년대까지 고립된다. 그동안 대약진 운동문화대혁명, 제사해 운동같은 충격과 공포OME급 사건을 겪다가 이후 덩샤오핑의 개혁, 개방으로 사실상 말만 공산주의 국가가 된다. 이후 천안문 사태와 같은 우여곡절 끝에 경제성장, 우주개발에 성공하고 홍콩마카오를 반환받아 구 제국주의 시절의 치욕을 씻는 등 겨우 20세기를 해피엔딩으로 맞이하고 현재의 위치에 이르게 된다.

승전과정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한 5개국[80]은 UN 상임이사국들이다.

8.2. 추축국[편집]

제2차 세계 대전에서 엄청난 사상자와 피해가 발생했고, 추축국들이 현대는 물론 당시의 기준으로 봐도 심각한 수준의 만행을 저질렀기 때문에 추축국의 상당수는 기존 정부가 붕괴되는 상황을 맞이하였고, 특히 추축국 삼인방인 독일, 이탈리아, 일본은 연합군이 영토 전체를 점령하는 등 일시적으로 국가가 소멸한 후 새로운 국가가 탄생하는 수준의 처벌을 받았다. 그리고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서 UN의 규칙중에 옛 추축국이 다시 전쟁을 준비하는 등의 불온한 움직임이 보일경우 연합국이나 기타 국가가 선전포고없이 바로 기습적으로 전쟁을 개시해도 무방하다는 조항이 남아있을 정도다. 해당 조항은 유엔헌장 53조와 107조로 이곳을 참조하라. 다만 지금은 사문화된 상태이기는 하지만.

1943년 조기에 항복한 추축국 이탈리아무솔리니 정권이 붕괴된 후에 신정부가 들어서서 연합군에 가담하였고, 무솔리니가 북쪽으로 도망가서 세운 정부와 독일군을 상대로 1945년 5월까지 혈투를 벌렸다. 1946년에 들어서 1861년 통일 이후 유지했던 왕정을 폐지하고 입헌공화정으로 전환하여 새로운 이미지로 전환하고 전범 이미지를 털어내기 위해 노력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무솔리니 정권에 의해 1936년에 탈퇴했던 국제연맹의 후신 UN에도 1955년에 공식 가입하였다. 추축국 3대 국가 중 피해는 제일 적은 편. 잃은 영토도 거의 없다.

독일은 1945년 5월 아돌프 히틀러가 자살한 후, 칼 되니츠가 후임자가 된 다음 연합국에게 항복을 선언하고 연합군이 베를린을 정복하며 전쟁에서 물러났다. 그리고 되니츠 정부가 해산 당하면서 국가가 일시적으로 소멸했다. 이후 미국, 영국, 프랑스, 소련 4개국의 연합통치에 의해 영토를 상당수 잃고, 남은 국토는 동서로 분단되어 이른바 서쪽에는 서독이, 동쪽에는 동독 이라는 새로운 국가가 탄생하였으며 이후에 베를린에 베를린 장벽이 설치되기도 하였다. 그리고 1990년 10월 드디어 재통일을 이루었다. 이후에는 전범 이미지를 털어내기 위해서 옛 나치의 잔재를 청산하고 전범들을 잇따라 체포하는 등 전범시절 청산에 총력을 기울였으며 전쟁 때 침략했던 국가들에게 전후보상을 했으나, 집시 학살과 식민 지배에 대한 사죄나 배상은 일절 없었기 때문에 과거 식민지였던 국가들에게 비난을 받는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이 프랑스, 폴란드, 러시아, 네덜란드, 노르웨이, 체코 등 2차 대전 당시 싸웠던 유럽 국가들이나 엄청 죽여댔던 민족들이 만든 이스라엘에게는 제대로 배상한 덕분에 좋은 이미지가 널리 퍼져 있는 씁쓸한 상황이다.[81] 심지어 2014년에는 전세계 국가 이미지 1위 까지 했다. 과거 식민지 국가들 입장에서는 씁쓸한 정도가 아니라 분통이 터질 듯. 근데 다른 제국주의 국가들도 사과는 일절 안한다는게 함정

일본은 위의 두 국가가 항복했음에도 불구하고 옥쇄를 결의하며 끈질기게 저항했다. 그러나 1945년 8월 미국의 원자폭탄 투하와 소련의 참전으로 감당할 수 없는 피해와 손실이 예상되자 덴노의 명의로 전쟁의 종식을 고하였다. 45년 미 군정은 천황제 지속을 승인했고 50년 한국 전쟁으로 경제적 부흥의 계기를 마련하였다. 이후 급격한 경제발전과 50년이 넘게 자민당이 득세를 하면서 일본에서는 전범세력들의 후손들이 민주적으로 정치권력의 주류가 되었고, 과거사 청산 및 단절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한체 우익화 되었다. 따라서 한일기본조약 등으로 식민지배에 대한 배상을 하고 호소카와, 무라야마등 역대 일본 총리들의 담화를 통해 공식적인 사과도 했으나 이러한 노력에도 무색하게도 정치인들의 과거 전쟁범죄에 반성하려 하지 않으려는 태도와 독도,쿠릴열도,센카쿠 등 영토분쟁으로 현재 러시아, 한국, 중국 등 주변국들과 대립하고 있다. 특히 2차 대전 당시 중일전쟁을 치룬 중국과의 갈등이 가장 심한데, 과거에는 냉전 때문이었지만 현재는 보통국가화를 지향하는 일본의 군사력을 경계하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이다.

9. 기타[편집]

모호하게 전쟁이 종결되어 불안불안했던 질서가 유지되던 제1차 세계 대전 이후의 전간기와는 달리 제2차 세계 대전은 누가 봐도 대립구도가 명확했고 결정적으로 확실하게 승패가 갈렸기 때문에 앞으로의 역사와 세계질서를 완전히 결정짓게 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미친 영향이 워낙 커서 영향을 안 받은 곳이 없다. 그나마 아메리카 대륙은 별 일 없었지만 다른 온갖 대륙은 전장이 되었다. 독일은 유럽에, 일본은 아시아(+오세아니아), 이탈리아는 아프리카에 전장을 만들었고, 대서양이나 태평양 역시 전쟁터가 되었다. 이 전쟁으로 인해 발생한 여러가지 일들이 전후 세계를 많이 바꿔놓았다. 독일, 이탈리아, 일본 때문에 국가 자체가 잠깐 멸망해버린 경험을 한 국가도 많고, 아예 새로운 나라, 새로운 정권이 세워지거나 혹은 세계 각국의 정치, 사회 부분에 매우 큰 변화가 일어났다.

긍정적인 영향도 없지는 않다. 총력전을 겪고 난 사람들은 더 이상 전쟁이 군인들만이 아닌 전 국민이 겪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고, 그 전쟁이란 게 인류 전쟁사의 온갖 기록을 다 갈아치울만한 거대한 전쟁이었기에, 전 세계 사람들에게 '이런 전쟁은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인식이 자리잡게 되었다. 이런 인식은 2차 대전 이후 미국과 소련의 냉전으로 인한 대립구도가 전면전으로 발전하지 못하게 하는 역할을 했다. 또한 세계를 전쟁으로 이끈 전체주의와 제국주의는 과거에 비해 터부시당하게 되었고 전쟁 발발의 과정이 된 뮌헨 협정이 재조명되어 국제관계에서 독재 국가들이 무리한 요구를 하면 거절하고 힘을 보여줘야 한다는 인식이 주를 이루게 되었다.

10. 어록[편집]

"우리는 그들과 같은 식민지도 없습니다. 우리는 그들이 독점하는 국제동맹의 기회도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너무나도 비좁은, 그래서 생활의 필수적 자원들 조차 너무 부족한 우리의 제국,조심스럽고 신중하게 개간되고 관리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계획없이 이것을 해낼수 없습니다. 도이칠란트, 지크 하일!"
- 아돌프 히틀러

우리는 모든 시대에 걸쳐 가장 위대한 정치인으로 역사에 남을 것이다. 아니면 역사상 가장 악랄한 범죄자로.
- 파울 요제프 괴벨스, 그의 일기장

"우리는 사악한 세력과 맞서 싸울 것입니다. 우리의 적은 폭력과 불신과 불의와 억압과 박해이고 그것과 맞섬으로써 정의가 지켜질 것임을 저는 확신합니다."
- 네빌 체임벌린, 1939년 9월 3일의 대독일 선전포고 연설

"나는 지금 이 자리에서, 이미 정부 관료들에게 말하였듯이, 의원 여러분께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제가 여러분께 드릴 수 있는 것은 피와, 수고와, 눈물, 그리고 땀뿐이라고. 우리의 앞에는 가장 고통스러운 시험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의 앞에는 투쟁과 고통으로 점철될 수많은 세월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의 정책이 무엇이냐고 물으신다면, 이와 같이 답변하겠습니다. 육, 해, 공을 가리지 않고, 하느님께서 주신 모든 힘을 가지고, 이제껏 인류가 저질러 온 수많은 범죄 목록 속에서도 유례없었던 극악무도한 폭정에 맞써 싸우는 것이라고. 그것이 우리의 정책입니다. 우리의 목적이 무엇이냐고 물으신다면, 한 단어로 대답하겠습니다. 그것은 승리입니다. 어떤 대가를 치러서라도, 어떠한 공포가 닥쳐와도, 갈 길이 아무리 멀고 험해도 말입니다. 왜냐하면 승리 없이는 생존도 없기 때문입니다."
- 윈스턴 처칠의 유명한 전시 수상 취임 연설[82]

"인류 역사상 무적의 군대란 존재하지 않았으며, 앞으로도 결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 이오시프 스탈린, 1941년 7월 3일의 라디오 연설에서

"중화민족뿐만이 아닌 인류의 번영을 위해, 설령 실패할 위험이 있더라도 우리는 소중한 모든 것을 걸어야만 하는 때에 왔습니다."
- 1943년 미 의회, 쑹메이링 출처

"황국이 총력을 기울여 승리를 결정지을 계기는 바로 오늘날에 있으니, 공들은 기꺼이 백성들보다 앞장을 서서 분노를 새로이 하여 단결을 굳건이 하고 떨쳐 일어나 적국의 야욕을 분쇄함으로써 황운을 무궁히 도울지어다."
- 히로히토

Yesterday, December 7, 1941 - a date which will live in infamy - the United States of America was suddenly and deliberately attacked by naval and air forces of the Empire of Japan.
앞으로 치욕의 날로 기억될 1941년 12월 7일인 어제, 미합중국은 일본 해군과 항공대로부터[83] 고의적이고 기습적인 공격을 받았습니다.
The United States was at peace with that nation, and, at the solicitation of Japan, was still in conversation with its government and its Emperor looking toward the maintenance of peace in the Pacific.
미국은 일본 제국과 평화를 유지하고 있었으며 일본의 요청으로, 그들의 정부와 황제를 상대로 함께 태평양에서의 평화유지를 목표로 하는 대화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Indeed, one hour after Japanese air squadrons had commenced bombing in the American island of Oahu, the Japanese Ambassador to the United States and his colleague delivered to our Secretary of State a formal reply to a recent American message. And, while this reply stated that it seemed useless to continue the existing diplomatic negotiations, it contained no threat or hint of war or of armed attack.
사실, 일본 비행 편대들이 미국 오아후 섬에 폭격을 개시한 지 한 시간 후, 주미 일본 대사와 그의 동료는 우리의 국무 장관에게 미국 정부의 최근 서한에 대한 공식답변을 제출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답변서는 외교 협상을 지속하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었지만, 군사적 공격 혹은 전쟁과 관련된 협박이나 암시는 포함하고 있지 않았습니다.[84]
It will be recorded that the distance of Hawaii from Japan makes it obvious that the attack was deliberately planned many days or even weeks ago. During the intervening time the Japanese Government has deliberately sought to deceive the United States by false statements and expressions of hope for continued peace.
하와이에서 일본까지의 거리를 고려한다면 공격은 수일 혹은 심지어 수주 전부터 고의적으로 계획되었음이 명백합니다. 그 준비 기간 동안 일본 정부는 평화유지를 희망하는 표현과 진술로 고의적으로 미국정부를 기만하였습니다.
The attack yesterday on the Hawaiian Islands has caused severe damage to American naval and military forces. I regret to tell you that very many American lives have been lost. In addition, American ships have been reported torpedoed on the high seas between San Francisco and Honolulu.
하와이 제도에 대한 어제의 공격은 미국 해군과 군사력에 심각한 피해를 입혔습니다. 유감스럽게도 매우 많은 미국 국민들이 희생되었음을 여러분께 알려드립니다. 덧붙여, 샌프란시스코호놀룰루 사이의 공해상에서 미국 군함들이 어뢰 공격을 받았다는 보고가 들어왔습니다.
Yesterday the Japanese Government also launched an attack against Malaya.
어제 일본 정부는 또한 말레이반도(말라야)에 대한 공격을 개시하였습니다.
Last night Japanese forces attacked Hong Kong.
어제 밤 일본군홍콩을 공격하였습니다.
Last night Japanese forces attacked Guam.
어제 밤 일본군을 공격하였습니다.
Last night Japanese forces attacked the Philippine Islands.
어제 밤 일본군필리핀 군도를 공격하였습니다.
Last night the Japanese attacked Wake Island.
어제 밤 일본군웨이크 섬을 공격하였습니다.
And this morning the Japanese attacked Midway Island.
그리고 오늘 아침 일본군미드웨이 군도(群島)를 공격하였습니다.[85]
Japan has therefore undertaken a surprise offensive extending throughout the Pacific area. The facts of yesterday and today speak for themselves. The people of the United States have already formed their opinions and well understand the implications to the very life and safety of our nation. As Commander-in-Chief of the Army and Navy I have directed that all measures be taken for our defense, that always will our whole nation remember the character of the onslaught against us.
그러므로 일본은 태평양 전역에 걸쳐 기습 공격을 감행한 것입니다. 어제와 오늘 벌어진 일들이 이를 스스로 증명합니다. 미국 국민들은 이미 뜻을 굳혔고 우리나라의 생명과 안전에 초래된 결과를 잘 이해하고 있습니다.[86] 미국 육군과 해군의 통수권자로서 본인은 국가 방위를 위한 모든 조치를 지시하였으며, 이 조치는 모든 국민이 우리에게 가해진 침략의 성격을 기억하도록 할 것입니다.
No matter how long it may take us to overcome this premeditated invasion, the American people, in their righteous might, will win through to absolute victory.
우리가 이 계획적 침공을 격퇴하는 데에 얼마의 시간이 걸리든, 미국 국민들은 정의로운 힘을 모아 완전한 승리를 거두게 될 것입니다.
I believe that I interpret the will of the Congress and of the people when I assert that we will not only defend ourselves to the uttermost but will make it very certain that this form of treachery shall never again endanger us.
최선을 다해 우리 자신의 방위를 위해 노력해야 할 뿐 아니라 이러한 식의 배신 행위가 앞으로 다시는 우리를 위협하지 못하도록 확실히 해두어야 한다는 나의 주장은 의회와 국민 모두의 뜻을 반영한 것이라고 믿는 바입니다.
Hostilities exist. There is no blinking at the fact that our people, our territory and our interests are in grave danger.
이제 침략의 위협은 분명히 존재합니다. 우리 국민, 우리 영토, 우리의 이익이 심각한 위험 사태에 처해 있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With confidence in our armed forces, with the unbounding determination of our people, we will gain the inevitable triumph. So help us God.
우리 군대에 대한 신뢰와 우리 국민의 결연한 의지로써, 우리는 기필코 승리를 거두게 될 것입니다. 신의 가호를 빕니다.
I ask that the Congress declare that since the unprovoked and dastardly attack by Japan on Sunday, December 7, 1941, a state of war has existed between the United States and the Japanese Empire.
본인은 1941년 12월 7일 일요일에 일본의 일방적이고 신의 없는 공격이 개시된 시점에서, 미국과 일본제국 사이에 전쟁 상태가 시작되었음을 의회에서 선언해줄 것을 요청하는 바입니다.[87]
-프랭클린 D. 루스벨트, 진주만 공습 직후의 의회 연설.

'미국에 있는 친구들이여. 나는 미국을 공정하게 평한다. 5만명의 병사들이 전쟁터로 향한다. 미국을 위해서뿐 아니라 인간성과 인간의 존엄성과 인간의 자유와 인간의 위대함을 위해서 말이다.'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유럽으로 파견되는 미군 수송선에서 쓴 편지에서[88]

"There are no innocent civilians. It is their government and you are fighting a people, you are not trying to fight an armed force anymore. So it doesn't bother me so much to be killing the so-called innocent bystanders."(무고한 민간인은 없다. 그것은 그쪽 정부와 함께 우리와 싸우는 민중들이고 우리는 무장한 적군하고만 싸우는것이 아니다. 그래서 소위 죄없는 방관자를 죽이는 것을 나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 커티스 르메이, 일본 본토 공습을 기획하면서

"In Japan they would be set up like this: they’d have a factory; and then the families, in their homes throughout the area, would manufacture small parts. You might call it a home-folks assembly line deal. The Suzuki clan would manufacture bolt 64; the Harunobo family next door might be making nut 64, 65, or 63, or all the gaskets in between. These would be manufactured right in the same neighborhood. Then Mr. Kitagawa from the factory would scoot around with his cart and pick up the parts in proper order."(일본의 도시란 이런 모양이다. 공장이 있다. 그 옆에 민간인들이 살고 있고, 그 사람들은 자기네 집에서 조그만 부품들을 만든다. 그걸 가내수공업이라고 할 수 있겠지. 스즈키네는 64호 볼트를 만들고, 옆집 하루노보네는 64호, 65호나 63호 너트나 다른 잡동사니를 만드는 식이다. 그러면 키타가와 씨가 그걸 정리해다가 공장으로 가져가는 거다.)
- 커티스 르메이가 도쿄 대공습 직전 도쿄 상공에서 민간인에 대한 공습이란 상황에 죄책감을 느끼던 부하들을 향해서

"그리고 나는 외치고 싶었다. 러시아, 벨로루시, 폴란드의 땅 속에 누워 있는 이들, 우리가 거쳐온 전장에서 영원히 잠든 이들에게 소리치고 싶었다. '동지들, 우리가 해냈소!"
- 베를린 전투에서 인용된 한 소련군 참전용사의 어록

"내 진정한 바람이자 모든 인류의 소망은 이 엄숙한 의식을 통해서 과거의 피와 대학살을 벗어나 더 좋은 세상을 만드는 것이다."
-더글라스 맥아더, 일본의 항복 조인식 후 미주리호 갑판에서의 연설

"나는 이 전쟁이 전세계의 인류와 전 중국의 동포, 그리고 세계문명국가가 참가한 최후의 전쟁이 되기를 믿는 바입니다."
-장제스. 1945년 8월 15일 승전기념 연설

We shall go on to the end. We shall fight in France, we shall fight on the seas and oceans, we shall fight with growing confidence and growing strength in the air, we shall defend our island, whatever the cost may be. We shall fight on the beaches, we shall fight on the landing grounds, we shall fight in the fields and in the streets, we shall fight in the hills; we shall never surrender!
"우리는 끝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프랑스에서 싸울것이며, 우리의 바다와 해양에서 싸울것이고, 우리는 자신감과 함께 자라나는 공군의 힘으로 하늘에서 싸울것입니다, 어떠한 댓가를 치르더라도, 우리는 우리의 땅을 지킬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해안에서 싸울것이며, 우리는 상륙지점에서 싸울것이고, 우리는 우리의 대지와 도시의 거리에서 싸우고, 우리의 언덕에서 싸울것입니다. 우리는 절대로 항복하지 않을 것입니다!"
-윈스턴 처칠. 1939년 전시총리로 임명받고 국민 사기를 고취시키고자 한 연설에서

"파리는 상처입었습니다. 파리는 파괴되었습니다. 파리는 고문받았습니다. 하지만 파리는 해방되었습니다."
-샤를 드골 자유프랑스 장군. 1944년 파리 해방 직후 연설

11. 관련 인물[편집]

12. 창작물[편집]

12.1. 영화[편집]

12.2. 게임[편집]

12.3. 만화·애니메이션[편집]

12.4. 기타[편집]

13. 관련 문서[편집]

[1] 이탈리아의 에티오피아침공, 스페인내전, 중일전쟁이 발발한 1937년 7월 7일이나 추축국연합국의 구도가 완전해진 1941년 12월 8일(미국의 대일본 참전)을 시작점으로 봐야 한다는 일부 학설들이 있지만 나치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한 시점을 시작점으로 보는 것이 세계 통설이다.[2] 일본이 항복을 선언한 8월 15일이 아닌, 전함 미주리에서 항복 조약에 서명한 날인 9월 2일을 종전일로 본다.[3] 외교정책처럼 국제정세와 상관된 모든 것들은 2차 세계 대전이 끝난 시기를 기점으로 깡그리 뒤집어엎어졌을 정도다. 당장 제1차 세계 대전의 후유증은 분명 전세계를 휩쓸었지만, 정작 전쟁에 직접 개입한 국가는 태반이 유럽, 그중에서도 독일과 주변국이 대개였다. 반면 제2차 세계 대전은 유럽뿐 아니라 아프리카, 중동, 동아시아, 오세아니아(호주) 국가들이 적극 개입하였고, 전국토가 전쟁터였다. 아메리카 대륙에 있는 미국을 비롯한 다른 국가들도 하와이를 제외하면 전국토가 전쟁터로 변하지 않았을 뿐이지 해안가나 주요 항로가 추축국 잠수함들의 게릴라전에 시달렸다.[4] 독일, 일본, 이탈리아는 나라가 멸망한 뒤 연합국 점령하여 새로운 정부가 탄생했으며, 아프리카, 동남아시아, 동유럽 등지의 국가들도 엄청난 국가의 변화, 정권 변화를 겪었으며, 중국도 중일전쟁을 통해 세력을 키운 마오쩌둥에게 주도권이 넘어간다.[5] 역사학계에서 추축국을 편드는 수정주의가 금기시된 극히 드문 시기다. 사실관계와 관련된 것쯤은 괜찮지만 추축국이 옳다느니 어쩔 수 없었다느니 하는 것은 철저하게 금지된다.[6] 몇몇 학자들은 이시점을 제 2차세계 대전의 시발점으로 본다.[7] 몇몇 학자들은 이시점을 시발점으로 본다.[8] 중국이 연합국에 가입한 것은 진주만 공습 뒤인 1941년 12월 9일이다.[9] 일반적으로는 독일의 폴란드 침략을 전쟁의 시작으로 보지만, 일부 시각에서는 중일전쟁부터 이미 세계 대전이 시작되었다고 보기도 한다.[10] 1939년 9월 3일에 연합국을 구성하는 영국(영연방 포함)과 프랑스가 추축국인 독일에 공식적인 선전포고를 했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제2차 세계 대전의 시작으로 본다.[11] 교전 지역은 남아프리카 인도양이지만, 교전 당사국이 서방 연합군과 독일이므로 유럽 서부전역과 함께 분류한다.[12] 엘베 강에서 서방 군대와 소련 군대가 조우한 날.[13] 되니츠의 플렌스부르크 정부는 서방연합국에 먼저 항복하고 다음날 소련군한테 항복한다.[14] 영국과 영연방은 전자, 미국(시차상 9월 2일) 그리고 중화인민공화국은 후자를 기념한다.[15] 위 지도에서는 연합국에 터키와 사우디아라비아가 포함되있지 않다. 터키, 사우디는 전쟁이 거의 다 끝나가는 1945년이 되어서야 선전포고하긴 했다.[16] 중국 공산당과 군벌들도 중화민국 국민혁명군에 소속되어 참전했다.[17] 참고로 중화민국이 연합군에 공식적으로 가입한 것은 진주만 기습 다음 날인 1941년 12월 10일(충칭 시각 기준)이다.[18] 엄밀히 따지면 영국도 영연방군의 일원이었다.[19] 말레이시아 식민지와 싱가포르 자치령도 영국의 전쟁 수행에 합류했으나, 1941년 시점에 일본군에 의해 점령되어 제외.[20] 여담으로 당시 구성된 영연방 합동군 체제는 6.25 전쟁 당시 파견된 주한 영연방군과 말레이-인니 분쟁에까지 이어지게 된다.[21] 태평양 전쟁뿐 아니라 북아프리카, 유럽 지역에도 호주인들이 보내졌고 미국과 함께 일본과도 싸웠으며 일본 역시 호주 북부를 97차례나 폭격했다고 한다.[22] 이 당시에는 영국의 자치령이었다.[23] 엄밀히 말하면 영국의 식민지는 아니었지만, 당시 영국에 의해 강하게 영향을 받고 있었다.[24] 군사적인 참전과 총을 포함한 군사적 지원뿐 아니라 차, 설탕, 원료까지도 지원했다.[25] 다양한 전선에서 활약하였고 전쟁이 끝났을 당시 캐나다 공군의 규모는 세계 3위였고, 지상군은 물론 수많은 자원봉사단도 유럽으로 보냈다.[26] Union of South Africa.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전신.[27] 현재의 짐바브웨에 해당하는 영국의 보호령[28] 그러나 영문위키를 참조하면 상징적인 '선전포고'를 했다고 한다.[29] 북아프리카나 동아프리카, 미얀마, 유럽 등에도 병력이 보내졌다고 한다.[30] 약 10만의 의용군이 나왔으며, 탄자니아와 함께 동아프리카 전선의 사실상 주역을 맡았다. 에티오피아와 마다가스카르 해방 이후로는 주로 버마 전선에 참전했다.[31] 당시에는 탕카니카와 잔지바르라는 두 개의 지역으로 나뉘어 있었다.[32] 케냐와 마찬가지로 약 10만의 의용군이 지원했으며, 동아프리카 전선의 주역이었다. 에티오피아와 마다가스카르 해방 이후로는 주로 버마 전선에 참전했다.[33] 약 4만 5천의 의용군을 보냈으며, 영국과 영연방에 대한 물자와 자원 지원 또한 맡았다.[34] 북-남 아메리카와 유럽-아메리카를 잇는 지리적 요충지라는 이유 때문에 미군 기지가 들어왔으며, 많은 자메이카와 카리브 해 영국 속령 출신 청년들이 영국 본토 항공전과 유럽 전선에서 싸웠다. 또한 지브롤터몰타에서 피신한 난민들 중 많은 수를 수용한 곳도 자메이카였다.[35] 1940년에는 이탈리아에게 폭격을 당하기도 함.[36] 네덜란드령 동인도(인도네시아)도 일본군에게 점령당함.[37] 1952년 왕정이 폐지되었다.[38] 공식적인 선전포고는 1945년 2월 24일이며 이 때 독일과 일본에 선전포고를 했다.[39] 이집트는 그 당시 형식상으론 독립국이였으나 여전히 영국군이 주둔했고 영향력을 끼치고 있던 상태였다.[40] 1941년 3월 25일 추축국에 가입했지만 2일만에 쿠테타로 엎어졌다.[41] 소련이 연합국에 가담한 시점 기준이다. 할힌골 전투를 기준으로 할 경우에는 참전개시일이 1939년 5월 11일, 소련의 폴란드 공격을 기준으로 할 경우에는 참전개시일은 1939년 9월 17일이다.[42] 할힌골 전투를 기준으로 할 경우에는 참전개시일 1939년 5월 11일[43] 공식적인 선전포고는 1945년 8월로, 일본에 선전포고[44] 할힌골 전투를 기준으로 할 경우에는 '만주국에 대한 기습 공격'[45] 일본은 선전포고문을 재일 미국대사관에 암호로 타전했다. 하지만 그 해독과정에서 시간이 지체됐고 그에 따라 진주만 공습까지 본국으로 전송되지 않아 기습공격이 되버렸다. 그리고 진주만 공습이 기습공격이었기 때문에 일본은 종전 후, 협상 태이블에 앉았을 때 계속 발목이 잡혔다.[46] 미국 헤어-하워스-커팅법에 의해 1935년부터 1946년까지 존재한 미국 통치하의 준독립상태. 현 필리핀 공화국의 전신[47] 연합국에 식량을 지원했다.[48] 연합국에 식량과 원료를 지원했다.[49] 태평양 전쟁 도중 연합군의 기지로 사용되었으며 뉴질랜드나 호주 아래의 부대로 병력도 파견함, 단 당시 기준 영국의 식민지였다.[50] 남미국가 중에는 유일하게 공식적으로 지상군도 파병하여 이탈리아 전선에 배치되었다.[51] 병력을 파견하진 않고 연합군에게 주석을 지원했다.[52] 주로 연합국에 석유를 지원했으며 독일의 잠수함에 의해 자국의 상선이 작살났음에도 군대는 파견하지 않았다.[53] 전쟁 초기에는 자국 영토를 개방, 이후에도 '고무'와 같은 중요한 자원들을 제공했기에 전략적으로 중요한 지역이었다.[54] 제2차 대전 발발 초기에 추축국에 속해 있었지만 독일군에 의해 억지로 끌려가는 등 독일군에게 사실상 피지배국, 독일군 점령지 수준의 취급을 받았고 전쟁 말기 전세가 추축국에게 불리해지자 나치독일과의 국교, 동맹관계를 끓고 소련 등 연합국과 동맹을 맺고 독일군을 공격했다.[55] 엔베르 호자가 이 당시 알바니아 빨치산을 했었다.[56] 파키스탄에 있던 토후국가[57] 연합국에 석유를 지원했다.[58] 영국, 소련 등 연합국 세력과 추축국 세력의 가운데에 끼인 묘한 위치에 있었고 제1차 세계 대전에서 큰 피해를 보았기 때문에 중립을 지키고 있었다. 전쟁 내내 친독적인 자세를 계속 유지했지만, 이는 표면상일뿐 실제로는 그럴 생각조차 없었다는 반론도 있다. 이후에 전세가 완전히 기울자 소련의 압박으로 형식적 선전포고를 했다.[59] 당시 프랑스의 위임 통치령 지배 하에 있었으나 지배국이었던 프랑스가 나치군의 침공을 받아 점령당한 이후엔 나치의 지배 하에 있었다. 그러나 결국 영국과 자유 프랑스 정부에 의해 점령됐고 프랑스는 시리아의 독립을 약속해 이듬해인 1946년 프랑스의 식민지 위임 통치에서 완전히 독립하게 된다.[60] 사실 줄서기라기보단 1939년, 1941년 각각 독일, 일본과 외교관계를 단절하며 추축국과 선을 그은 데다가 이전부터 연합국에 석유를 지원했다. 또 동부 지역에는 미 공군의 기지까지 짓는 걸 허용했다. [61] 남미의 대표적인 친독국가였으나 전쟁 내내 독일을 도와준 적은 일절 없고 연합군 군수사령부의 자격으로 선전포고를 했다. 즉, 연합군의 군량은 상당부분 아르헨티나산이었던 것이다. 다만 참전 사유가 줄타기로 오해받는 이유는 전쟁이 끝난 후 나치 독일 전쟁범죄자들을 아르헨티나가 도피시켜줬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수많은 자원봉사자들이 유럽에 파견되어 활동했었다.[62] 당시 아르헨티나는 친위대를 피해서 도망친 사람들이 많았는데 그 중 한 사람이 헝가리 출신 신문기자인 신문기자 비로 라슬로(Bíró László)이다. 라슬로는 볼펜을 발명한 사람으로 유명하다.[63] 친독 성향을 보였으나 1943년 이후로 추축국과의 관계를 끊었고 이후 일본에게만 선전포고를 했다.[64] 사실 추축국에 들어가긴 애매한데(초창기에는 완벽히 추축국편이었으나 후에 연합국편이됨) 핀란드 정부의 공식 입장상으로는 어쩌다보니 소련과 같이 싸우게 되어서 서로 협력했을뿐 추축국은 아니다였고 실제로 핀란드는 독일의 공식적인 군사동맹요구같은걸 모조리 씹어버렸다. 그러나 핀란드의 투르쿠에서 만든 유보트들은 후에 연합국 상선들을 침몰시켰다... 전후 각 국 정상들끼리 회담을 가질 때 핀란드 당국은 그런 사실을 공표하지 않았고 전쟁의 대상을 소련으로 한정지었다. 미국,영국 역시 핀란드를 추축국으로 간주하지는 않았다. 아마 추축국의 패전이 뚜렷해지자 라플란드 전쟁 당시 독일에 맞서 싸운것이 크게 작용한 듯 하다. 이와 비슷한 케이스는 이탈리아(전쟁 끝바지에 추축국의 패전이 뚜렷해지자 연합국 편 진영에 합류함.[65] 메이저 추축국 중 1943년 연합국에게 가장 먼저 항복하였으며 1946년에는 왕정을 폐지하고 공화정으로 개편하였다.[66] 이탈리아는 제1차 세계 대전 당시에도 진영을 변경한 사례가 있다.[67] 이전 문서에서는 이미 독립했다고 나오지만 사실 독립한 이후에도 영국의 심한 내정간섭을 받아야 했다. 참전하고 얼마 안 가서 영국군에의해 점령당했고 영국은 1947년끼지 이라크를 실질적으로 지배했다.[68] 이탈리아의 괴뢰국[69] 1939년 이탈리아에 점령된 이후 이탈리아의 전쟁 수행에 합류한 바가 있다.[70] 가장 늦게 항복한 추축국. 태국은 일본제국의 강압에 의해 원하지 않게 동맹을 맺고 전쟁에 끌려갔다. 영국과 프랑스,네덜란드 등 다른 서방 연합국들은 당연히 태국을 전범국으로 처벌할것을 주장했으나 태평양 전쟁의 연합군 핵심은 미국이었던지라 전범국 처벌을 주장해도 딱히 반영할 수 있는 방법이 없어서 미국이 태국을 용서하는 것을 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이는 태국을 위한 변명의 소지가 있다. 애초에 서양 열강들이 주변국을 식민지로 만들고 태국을 포위 압박하는 상황에서 줄타기 외교로 겨우 생존했으면서도 이미 일부 지역을 할양해 프랑스에게 빼앗긴 상황이며 태국 입장에선 일본도 그런 열강들 중의 하나고, 가담하지 않았으면 일본에 점령당했을 것이다. 애초에 프랑스에게 일부 지방을 빼앗겨서 그걸 회복하려고도 했다. 프랑스와 네덜란드가 종전 후에도 베트남인도네시아 등의 식민지배를 유지하려고 식민지 독립 전쟁에서 인도네시아나 베트남의 독립운동을 무력진압하거나 영국이 말레이시아와 미얀마, 브루나이등 식민지였던 동남아 국가들의 독립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자치령 등의 각종 편법을 내세우며 계속 식민통치를 지속하려는 꼼수를 쓰려다가 결국 마지못해 독립을 인정하고 식민지 독립 이후에도 이들 나라들에 대한 영국의 내정간섭이 적지 않았던걸 생각하면 프랑스와 영국,네덜란드는 충분히 일본 때문에 추축국에 가담한 걸 빌미로 점령하거나 이권을 침탈 했을수가 있고 미국이 태국에 대한 처벌을 막은게 백번 의로운 행동이다.[71] 찬드라 보세를 정부수반으로 하며 안다만제도의 포트블레어를 영토로 지배했던 괴뢰국이다.[72] 청색 사단(División Azul, 정식 명칭은 에스파냐 의용사단/División española de voluntarios)이라 불리는 이 사단은 1943년에는 연합군의 압력에 귀국시키긴 했으나 수천명 가량은 베를린 전투까지 독일에 남았다. 사단의 구성원 중 몇몇 인원은 스스로 혹은 친지가 내전 때 공화국에 연관된 사람들이었고 이 사단은 항상 선봉에 서는 것은 물론 심지어 고기방패 역할까지 하는 등 의용군을 골수까지 빨아서 활용하자는 독일군에 의해 엄청 강하게 운용된다.[73] Escuadrilla Azul. JG27 산하로 편성되었으며, 스페인 내전에서 이미 Bf109를 탑승했던 베테랑들도 포함되어 있었기에 적응이 어렵지 않았다고 한다.[74] 단 덴마크는 군대만 주둔시키고 정부 자체를 무너뜨리진 않았다.[75] 이는 이후 되니츠가 전범재판을 받는 원인중 하나가 된다.[76] 그런데 이 사건의 피해자는 추축국이 아니라 연합국인 폴란드다.[77] 1972년 전까지 영연방 각국 사이에는 자유 무역과 자유 이주가 보장되었다.[78] 정확히는 유럽석탄철강 공동체[79] 중국 공산주의 세력의 항일운동은 보잘 것 없었다고 보는 시각도 많다. 주로 국민당 계열의 군대가 일본군과 박터지게 싸우는 동안 뒤에서 세력이나 키웠다는 비아냥도 듣는다. 그리고 어느 정도는 사실이다.[80] 미국, 영국, 프랑스, 소련의 후신인 러시아, 중화인민공화국이다.[81] 다만 러시아와는 아직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꽤 남아있어 여전히 불편한 부분이 있는데, 그 이유는 냉전 때문에 공산주의 진영인 소련과는 애초에 관계 회복 자체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전후에 독일을 감시하던 국가들이 대부분 자본주의 진영이였으니...[82] 2차 세계 대전을 다룬 역설사의 게임 하츠 오브 아이언 4 티져 영상에서 해당 연설을 읆는 윈스턴 처칠의 육성이 나온다.[83] 이전에는 공군이라고 되어 있었지만 일본은 미국처럼 공군이 없었다.[84] 일명 Fourteen Part Message라 불리는 일본의 선전 포고문에는 전쟁을 선포한다는 의미와 관련이 있는 표현(Declare, War against, State of War 등)이 하나도 없었다.[85] 비유가 아니라 이 모든 것은 동시 다발적으로 일어났다. 이 영상에서는 루스벨트는 미국 전함이 어뢰공격을 받았다는 문장 뒤 모든 문구를 생략하고 바로 본인이 통수권자로 행동했다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다른 영상에서는 저 부분을 낭독한다. 영상 참고. 3분 25초부터 4분 43초까지.[86] 루스벨트 대통령이 생략한 문장.[87] 미국의 헌법상 전쟁 개시 권한은 의회에 있으므로 대통령은 의회에 전쟁 개시를 요청하는 절차를 거친다.[88] 그는 자유프랑스군 소속 정찰기 조종사로 참전했다가 실종되었다.[89] 1944년 7월 20일 있었던 히틀러 암살미수사건을 말한다.[90] 운 좋게 살아남아서 아르덴 대공세를 지휘하기도 했다.[91] 배드 컴퍼니 2는 싱글 플레이 챕터 1 한정.[92] 나머지 배틀필드 시리즈들은 현대전, 1차 대전, 베트남 전쟁, 미래전이 무대다.[93] 배경은 동부전선이다.[94] 미니어쳐 게임. 여기는 외계인이 인류에게 준 VK라는 가상의 기술이 도입되어 제2차 세계 대전에서 제3차 세계 대전으로 번진 세계를 다루고 있다.[95] 최대 6인으로 이루어진 분대를 지휘하여 전투를 하는 턴제 전략게임이다. 게임플레이는 재기드 얼라이언스폴아웃과 비슷하다. 추축군 진영과 연합군 진영 둘 중 하나를 택할 수 있다. 스팀에서도 판매 중.[96] 국내에서 만들어진 2차대전 게임인데 진영이 연합군과 독일군으로 나누어진다. 소련군은 유닛 형태로 구매 가능.[97] 독일군도 적으로 나오긴 하지만 이 게임의 주적은 특이하게도 전쟁 도중의 소련군(?!)이다. 1편에서는 전쟁을 미국, 영국, 프랑스, 폴란드 등 서방측 연합국에게 유리하게 만들기 위해, 2편에서는 V2 로켓으로 영국을 작살내려는 소련군을 저지하기 위해서이다. 덕분에 러시아측 유저들은 이 게임을 할때 아주 뒷목을 잡는다고..[98] 보드워게임에도 불구하고 전지구를 범위로 2차대전을 시뮬레이팅하는 워게임. 기존의 워게임이 시나리오 단위로 주어진 제한된 병력으로 목표달성이 주였던 것에 비해, 월드 앳 워는 단순히 전투뿐만이 아니라, 생산, 정치, 외교까지 신경써야한다. 물론 이에 비례해 들어있는 컴포넌트의 갯수, 룰북의 양, 플레이 타임은 왠만한 보드게임의 상상을 초월한다.[99] 그런데 업데이트 이후로는 냉전기때의 전차로 확대되고있다. 게임 시작 시점의 배경은 1957년이다. 그러나 맵의 이름은 1, 2차 대전에서 이름을 따온게 많다.[100] 1차 세계 대전 이전의 군함도 등장한다.[101] 1987년 애플 II 로 발매된 이후 각종 플랫폼으로 이식된 슈팅게임. 애플 II, 아미가, 코모도어 64, PC-9801, MS-DOS, 게임보이 , iOS, 안드로이드등으로 이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