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대 대통령 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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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6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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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2022년 3월 9일

21대
2020년 4월 15일

8회
2022년 6월 1일

2019년
2019년 4월 3일

(현재 시행 불가능)

✝ 2014년 7월 24일 헌법재판소가 국민투표법 제14조 제1항 내용 중 일부에 대해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렸으나,
국회에서 추가적인 법률 개정이 이뤄지지 않아 2016년 1월 1일자로 효력을 상실하여 시행 불가.

파일:external/m.polinews.co.kr/art_1483516880.jpg

선거 결과

후보자

박근혜

문재인

정당

새누리당

민주통합당

득표율

51.6%

48.0%

당선인

파일:external/www.ksmnews.co.kr/40964_2013_02_25_s_9_1.jpg

박근혜


1. 개요2. 특이사항
2.1. 국외 부재자 및 재외 선거
2.1.1. 최초의 선상투표 허용
3. 후보자 명단
3.1. 정당별 후보 경선3.2. 최종 미등록 예비 후보자
4. 여론 조사 상황5. 선거 당일 투표 및 개표 풍경6. 결과7. 재보궐선거8. 선거 개표 결과9. 기타
9.1. 선거방송9.2. 대선 격전 지역9.3. 국가기관 선거개입 사건9.4. 선거무효소송9.5.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측의 여론조작, 문재인 선거팀의 SNS기동대
9.5.1. 문각기동대와 댓글부대
10.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산업화 세대와 민주화 세대의 마지막 대결[1]

2012년 12월 19일 대한민국의 제18대 대통령을 선출하기 위해 실시한 선거. 투표 결과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가 득표율 3.53%, 표차 1,080,496표 차이로 2위를 기록한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를 누르고 당선되었다. 그리고 이로 인해 국내 헌정 사상 처음으로 여성 대통령이 탄생하였고 또 87년 체제 이후 최초로 당선자가 전체 투표 수 과반을 득표하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이는 1987년 민주화 이후 치러진 대선에서 사실상의 양자 구도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2] 14대 대선은 김영삼 vs 김대중 vs 정주영 삼파전이었고, 15대는 김대중 vs 이회창 vs 이인제, 16대는 노무현 vs 이회창 vs 권영길[3], 17대는 이명박 vs 정동영 vs 이회창 vs 문국현 vs 권영길 vs 이인제, 19대는 문재인 vs 홍준표 vs 안철수 vs 유승민 vs 심상정 오파전이었던 반면(tv 토론회 기준), 18대는 무소속 안철수 후보가 사퇴함에 따라 사실상 박근혜 vs 문재인 양자구도가 생겼다.

그 때문에 박근혜2018년 기준 지금도 최다 득표(1570만여표) 대선 당선인으로 남아 있다. 사실 2017년 치러진 19대 대선 투표율이 사전 투표+5월 대선+탄핵 정국 버프를 받고도 18대 대선에 비해 고작 1.4% 정도 오른 걸 감안하면 결선투표제가 도입되지 않는 한 이 기록 깨기가 생각보다 쉽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

2. 특이사항[편집]

2.1. 국외 부재자 및 재외 선거[편집]

제19대 국회의원 총선거에 이어서 제18대 대통령 선거에서도 국외부재자와 재외선거인에 대하여 재외선거가 시행된다. 재외선거 유권자 등록일은 2012년 7월 22일부터 10월 20일까지이며, 재외선거 등록 선거인 투표일은 2012년 12월 5일부터 12월 10일까지이다. 재외선거 홈페이지

8월 31일까지 집계 결과 재외국민 선거 유권자 등록률이 1.75%에 불과하여 심각하게 낮은 것으로 조사되었다. 2012년 10월 11일, 마감을 10일 앞두고서야 제19대 국회의원 총선거 당시의 재외선거 등록비율을 넘어섰다. 기사

19대 총선 당시 재외공관에서 투표를 해야 한다는 조항이 수정되지 않고 남아있기 때문. 2012년 정기국회에서 공직선거법이 통과되어 접수 부문에서 가족 대리접수, 공관 순회접수, 재외선거인과 국외부재자 선거인 모두 이메일 접수가 가능해졌다. 하지만 재외공관 안에서 투표해야할 수 있다는 조항은 개정되지 않았다. 우편투표 이야기가 나오고 있지만 국내부재자와 달리 국외부재자와 재외선거인은 신원확인 관련 문제가 있어서 공관투표가 바뀔지는 미지수.

2.1.1. 최초의 선상투표 허용[편집]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는 2012년 2월 29일 통과된 공직선거법 규정에 따라 사상 최초로 선박을 타고 있는 사람들이 투표 가능하게 선상투표(부재자 투표의 일종)가 시행되었다.

대한민국 국적을 보유한 선장이 운항하는 외항선박에서 승무 중인 선원들만 투표가 가능하며, 11월 21일부터 25일까지 선상부재자투표 신고를 한 후, 12월 11일부터 14일까지 선상투표 후 INMARSAT 팩시밀리 단말기로 전송하면 됐었다. 투표지 원본은 국내 도착 후 우편으로 발송하면 됐다.

3. 후보자 명단[편집]


후보자 기호를 보면 특이하게도 마치 비례대표 추천순위처럼 홀수는 전부 여성 후보가 가져가고 짝수는 전부 남성 후보가 가져간 여홀남짝의 구도가 성립하고 있다. 무소속 후보의 기호는 추첨을 통해 결정했는데 우연히 남성 후보 2명은 짝수가 당첨되고 여성 후보 2명은 홀수가 당첨된 것.

또, 이 선거만의 특이점이 있다면 여성 후보들이 남성 후보보다 많았으며, 득표수를 총합해도 여성 후보들이 많은 선거였다는 것이다. 박근혜 후보가 혼자서 단독 과반 득표를 차지했는데 87년 직선제 도입 이후 사상 처음으로 과반 득표한 후보다. 또한 역대 대통령 선거 중 과거의 대통령 선거 본선에 출마해 본 경험이 없는 후보들로만 구성된 유일한 대통령 선거이기도 하다.[4]

3.1. 정당별 후보 경선[편집]

3.2. 최종 미등록 예비 후보자[편집]

4. 여론 조사 상황[편집]

5. 선거 당일 투표 및 개표 풍경[편집]

선거 당일 기온이 낮아서 투표율이 낮을 것으로 예측되었으나, 오히려 그 반대였다. 오전부터 투표율의 증가세가 심상치 않았으며 한때는 15대 대선의 투표율 80%에 견줄 만한 투표율이 나올 것이라는 예상이 돌기도 했다. 결국 16시가 되기 전에 이미 17대 대선의 투표율을 넘어섰고, 17시에는 16대 대선의 투표율에 육박했다. 투표 분위기도 뜨거웠는데, 당초 예상보다 사람들이 몰려 유권자들이 줄을 서서 기다려 투표를 해야 하는 곳도 있었다.

투표율에 따라 각 당의 반응도 엇갈렸는데, 당초 투표율이 높을수록 민주당에 유리하고 새누리당에 불리한다는 예측과 다르지 않게 민주통합당은 높은 투표율에 조금씩 화색이 돈 반면 새누리당은 당혹하는 모양새였다.[10] 김무성 새누리당 선대본부장은 당원들에게 비상사태라며 지지자들의 투표를 독려하기도 했다.

2012년 KBS 대선 개표방송


대한민국의 역사(현대사)를 잘 표현한 카운트다운으로 마지막에 지금까지의 대통령 사진이 나오는 것이 인상적이다.

파일:attachment/1666666.jpg

그러나 6시 정각 지상파 3사의 출구조사 결과 박근혜 후보가 오차범위 내에서 문재인 후보를 앞서는 것으로 나오자(50.1%, 48.9%)[11] 새누리당 관계자들 사이에서 환호성이 터져나왔다. 다만 다른 조사에서는 박빙이거나 문재인 후보가 앞선다는 결과가 나왔기 때문에 전체적으로는 두 당 모두 앞으로의 개표 상황을 봐야 선거 결과를 알 수 있을 것이라는 분위기였다. 참고로 출구조사에서 각 후보가 우세했던 성별, 계층은 박근혜 후보는 50대 이상, 여성, 월 200만 원 미만의 소득, 고졸 이하, 문재인 후보는 40대 이하, 남성, 월 200만 원 이상의 소득, 학력은 대재 이상의 계층에서 우세를 보였다. [12] 지역별 출구조사 자료에 따르면 영호남 지역을 제외한 전 지역에서 40대 이하는 문재인 후보가, 50대 이상에선 박근혜 후보가 우세를 보였다. 호남과 TK 지역은 전 연령대에서 모두 각각 문재인 후보, 박근혜 후보의 지지율이 압도적이었고, 부울경 PK 지역은 30대 이하에선 문재인 후보, 40대 이상에선 박근혜 후보의 지지세가 강했다. 세부적인 출구조사 결과는 다음과 같다.

  • 성별 출구조사

    • 남성: 박근혜 49.1%, 문재인 49.8%

    • 여성: 박근혜 51.1%, 문재인 47.9%

  • 연령별 출구조사

    • 20대: 박근혜 33.7%, 문재인 65.8%

    • 30대: 박근혜 33.1%, 문재인 66.5%

    • 40대: 박근혜 44.1%, 문재인 55.6%

    • 50대: 박근혜 62.5%, 문재인 37.4%

    • 60대 이상: 박근혜 72.3%, 문재인 27.5%

  • 월 소득별 출구조사

    • 100만 원 이하: 박근혜 60.8%, 문재인 26.5%

    • 100~200만 원: 박근혜 56.1%, 문재인 35.9%

    • 200~300만 원: 박근혜 42.3%, 문재인 51.2%

    • 300~400만 원: 박근혜 36.9%, 문재인 56.5%

    • 400만 원 이상: 박근혜 40.2%, 문재인 57.8%

  • 학력별 출구조사

    • 중졸 이하: 박근혜 65.8%, 문재인 25.5%

    • 고졸: 박근혜 51.7%, 문재인 39.7%

    • 대재 이상: 박근혜 34.7%, 문재인 55.3%

지역, 세대별 출구조사 결과는 다음과 같다.

  • 서울

    • 20대: 박근혜 31.9%, 문재인 67.7%

    • 30대: 박근혜 29.3%, 문재인 70.5%

    • 40대: 박근혜 39.8%, 문재인 59.8%

    • 50대: 박근혜 60.3%, 문재인 39.5%

    • 60대 이상: 박근혜 70.8%, 문재인 29.0%

  • 경기, 인천

    • 20대: 박근혜 31.0%, 문재인 68.5%

    • 30대: 박근혜 30.9%, 문재인 68.7%

    • 40대: 박근혜 41.7%, 문재인 58.0%

    • 50대: 박근혜 63.6%, 문재인 36.3%

    • 60대 이상: 박근혜 76.3%, 문재인 23.4%

  • 강원

    • 20대: 박근혜 38.2%, 문재인 61.2%

    • 30대: 박근혜 40.6%, 문재인 59.4%

    • 40대: 박근혜 49.5%, 문재인 50.1%

    • 50대: 박근혜 72.6%, 문재인 27.4%

    • 60대 이상: 박근혜 82.5%, 문재인 17.1%

  • 대전, 충남, 충북, 세종

    • 20대: 박근혜 33.9%, 문재인 65.6%

    • 30대: 박근혜 31.6%, 문재인 68.1%

    • 40대: 박근혜 45.3%, 문재인 54.4%

    • 50대: 박근혜 68.5%, 문재인 31.2%

    • 60대 이상: 박근혜 79.5%, 문재인 20.3%

  • 광주, 전남, 전북

    • 20대: 박근혜 4.3%, 문재인 95.4%

    • 30대: 박근혜 5.8%, 문재인 94.0%

    • 40대: 박근혜 7.2%, 문재인 92.6%

    • 50대: 박근혜 9.5%, 문재인 90.5%

    • 60대 이상: 박근혜 13.9%, 문재인 85.8%

  • 부산, 울산, 경남

    • 20대: 박근혜 39.5%, 문재인 60.0%

    • 30대: 박근혜 42.3%, 문재인 57.5%

    • 40대: 박근혜 54.8%, 문재인 44.9%

    • 50대: 박근혜 70.8%, 문재인 29.0%

    • 60대 이상: 박근혜 84.0%, 문재인 15.9%

  • 대구, 경북

    • 20대: 박근혜 67.2%, 문재인 32.3%

    • 30대: 박근혜 65.7%, 문재인 33.8%

    • 40대: 박근혜 77.7%, 문재인 22.2%

    • 50대: 박근혜 89.2%, 문재인 10.7%

    • 60대 이상: 박근혜 95.1%, 문재인 4.8%

  • 제주

    • 20대: 박근혜 28.3%, 문재인 71.1%

    • 30대: 박근혜 31.5%, 문재인 68.1%

    • 40대: 박근혜 42.6%, 문재인 57.1%

    • 50대: 박근혜 66.3%, 문재인 33.7%

    • 60대 이상: 박근혜 73.9%, 문재인 25.7%


출구조사 결과 중 지역-세대별 결과는 이전 선거까지는 이런 종류의 정보가 공개된 적이 없었다는 점에서 대단히 흥미로운 결과이다. 경기, 인천 지역의 20-30대는 서울20-30대와 거의 비슷한 투표성향을 보였으나 40대 이상세대부터 서울보다 박근혜에게 더 많은 지지를 보내면서 서울에서는 문재인이 승리하고 경기, 인천에서는 박근혜가 승리하는 결과가 나타났음을 알 수 있다. 또한 강원도의 경우 20-40대에서 문재인이 승리하긴 했지만 수도권, 충청권에 비해 박근혜의 득표율이 높게 나타나 전방의 젊은 군인들 및 농촌 지역 청년들의 박근혜 지지가 상당히 높았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호남에서는 전 세대에서 문재인이 완승했지만 60대 이상에서는 박근혜가 선전해 호남에서도 노년층은 보수세가 상대적으로 강하며 박정희 향수도 어느정도 나타났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13] PK에서는 20대-30대에서는 문재인이 승리해 PK 젊은층에서의 선전이 문재인의 PK 선전의 요인이었음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전국 결과와 달리 PK 40대에서 박근혜에게 밀린 것이 PK 패배의 결정적 요인이 되었다. TK에서는 20-30대에서도 박근혜 후보가 65 : 35 정도의 득표율 차이로 승리했고 60대 이상 세대에서는 95.1%라는 기록적인 득표율을 기록하며 압승했다. TK 젊은층의 보수성, 그리고 TK 노년층의 박정희 향수가 어느정도였는지를 알 수 있는 결과다.

첫 개표는 저녁 6시 40분 경상북도 안동시에서 집계되었다. 초반부터 영남권에서 시작된 개표로 인해 박근혜 후보가 앞서 나가기 시작했고, 단 한 번도 역전을 허용하지 않은 채 박 후보가 꾸준히 표차를 벌려나갔다. 그 탓에 출구조사 결과로는 두 후보가 오차 범위 내에서 초박빙 접전을 벌이며 누가 당선될지 예측할 수 없는 치열한 진검승부가 벌어질 것으로 예상되었으나 실제 개표 결과는 그에 못 미치게 다소 싱겁게 끝났다.

파일:attachment/1666662.jpg
밤 8시 50분쯤 박근혜 문재인 양 후보의 표차가 50만 표를 넘어서자 방송사들이 박근혜 후보의 당선 유력을 예측하였다. 이때 전국의 개표율이 불과 27% 조금 넘은 상황이었다. 그때부터 출구조사 때 예측된 치열한 진검승부는 싱겁게 끝나버렸다.[14]

파일:attachment/1666661.jpg
이후로도 밤 10시에 개표율 40% 상황에서 박근혜 문재인 양 후보의 표차가 65만 표를 넘어서자 방송 3사 모두 박근혜 후보의 당선 확실을 예측하였으며, 이때부터 박근혜 후보의 당선 확정의 카운트다운[15]이 시작되었다.


파일:attachment/1666665.jpg
결국 12월 20일 오전 1시 25분이 조금 넘은 개표율 96.5%에서 카운트다운이 끝나[16] 예상보다 큰 1,087,328표차로 박근혜 후보의 당선이 확정되었다. 당선 확정을 알리는 매직 넘버가 0이었을 때 남은 표는 1,086,414표였는데 남은 표를 모두 문재인 후보에게 줘도 914표 차로 박근혜 후보가 당선되기에 당선이 확정된 것이다.

다만 이 이후 문재인 후보의 강세지역인 서울특별시의 개표에 따라 개표 마지막에는 문재인 후보와의 표차가 약간 줄어서 최종적으로 새벽 3시 40분경 1,084,096표 차이가 난 상태에서 개표가 끝났다.

중요한 건 박근혜와 문재인 둘이 합친 득표율이 99.57%나 되었다는 점이다. 결국 나머지 후보들은 전부 합쳐서 0.5%도 득표하지 못했다. 대통령 선거 역사상 양대 후보가 가장 두드러진 선거였으며, 1, 2위 후보를 제외한 후보들의 득표율이 가장 낮은 선거다. 그만큼 두 후보가 치열하게 경쟁했다는 것이다.

6. 결과[편집]

시간별 투표율

선거인수: 40,507,842명[17]

시간

누적 투표수[18]

투표율

7시

1,125,385

2.78%

9시

4,716,438

11.64%

11시

10,705,017

26.39%

12시

14,132,003

34.89%

13시[19]

18,367,719

45.34%

14시

21,289,252

52.56%

15시

24,032,398

59.33%

16시

26,393,513

65.16%

17시

28,412,222

70.14%

18시

30,721,459

75.84%

지역별 투표율

지역

선거인수

투표수[20]

투표율[21]

기권수[22]

서울특별시

8,393,847

6,307,869

75.14%

2,085,978

부산광역시

2,911,700

2,219,699

76.23%

692,001

대구광역시

1,990,746

1,585,806

79.66%

404,940

인천광역시

2,241,366

1,657,821

73.96%

583,545

광주광역시

1,117,781

898,416

80.37%

219,365

대전광역시

1,182,321

904,367

76.49%

277,954

울산광역시

886,061

694,938

78.43%

191,123

세종특별자치시

87,707

64,990

74.10%

22,717

경기도

9,364,077

7,018,577

74.95%

2,345,500

강원도

1,235,647

911,988

73.81%

323,659

충청북도

1,234,832

925,778

74.97%

309,054

충청남도

1,601,751

1,168,095

72.93%

433,656

전라북도

1,483,402

1,142,133

76.99%

341,269

전라남도

1,530,012

1,171,210

76.55%

358,802

경상북도

2,185,987

1,710,122

78.23%

475,865

경상남도

2,608,874

2,008,683

76.99%

600,191

제주특별자치도

451,731

330,967

73.27%

120,764

재외국민[23]

222,389

158,235

71.15%

64,154

합계

40,507,842

30,721,459

75.84%

9,786,383

연령별, 성별 투표율(출처: 중앙선관위)

남성

74.8%

여성

76.4%

종합 연령별

19세

74%

30대 전반

67.7%

20대 전반

71.1%

30대 후반

72.3%

20대 후반

65.7%

30대 종합

70.0%

20대 종합

68.5%

40대

75.6%

50대

82.0%

60세 이상

80.9%

남성 연령별

19세

72.5%

30대 전반

64.4%

20대 전반

72.1%[24]

30대 후반

69.2%

20대 후반

62.5%

30대 종합

66.9%

20대 종합

67.4%

40대

73.5%

50대

81.0%

60세 이상

85.9%

여성 연령별

19세

75.7%

30대 전반

71.0%

20대 전반

70.1%

30대 후반

75.5%

20대 후반

69.2%

30대 종합

73.3%

20대 종합

69.7%

40대

77.7%

50대

82.9%

60세 이상

77.1%

대한민국 제18대 대통령 선거 방송 3사 출구조사 결과 [25]

기호

후보명

정당

득표율

순위

1

박근혜

새누리당

50.1%

1

2

문재인

민주통합당

48.9%

2

4

박종선

무소속

0.1%

6

5

김소연

무소속

0.2%

5

6

강지원

무소속

0.4%

3

7

김순자

무소속

0.3%

4

대한민국 제18대 대통령 선거

기호

후보명

정당

득표수

득표율

순위

당선여부

1

박근혜

새누리당

15,773,128

51.55%

1위

당선

2

문재인

민주통합당

14,692,632

48.02%

2위

낙선

3

이정희

통합진보당

사퇴

4

박종선

무소속

12,854

0.04%

6위

낙선

5

김소연

무소속

16,687

0.05%

5위

낙선

6

강지원

무소속

53,303

0.17%

3위

낙선

7

김순자

무소속

46,017

0.15%

4위

낙선

선거인수

40,507,842

투표수

30,721,459

무효표수

126,838

투표율

75.84%

대한민국 제18대 대통령 선거 지역별 개표 결과

지역

새누리당
박근혜

민주통합당
문재인

전국

15,773,128
(51.6%)

14,692,632
(48.0%)

서울

3,024,572
(48.2%)

3,227,639
(51.4%)

인천

852,600
(51.6%)

794,213
(48.0%)

경기

3,528,915
(50.4%)

3,442,084
(49.2%)

강원

562,876
(62.0%)

340,870
(37.5%)

세종

33,587
(51.9%)

30,787
(47.6%)

대전

450,576
(50.0%)

448,310
(49.7%)

충남

658,928
(56.7%)

497,630
(42.8%)

충북

518,442
(56.2%)

398,907
(43.3%)

광주

69,574
(7.8%)

823,737
(92.0%)

전남

116,296
(10.0%)

1,038,347
(89.3%)

전북

150,315
(13.2%)

980,322
(86.3%)

부산

1,324,159
(59.8%)

882,511
(39.9%)

울산

413,977
(59.8%)

275,451
(39.8%)

대구

1,267,789
(80.1%)

309,034
(19.5%)

경남

1,259,174
(63.1%)

724,896
(36.3%)

경북

1,375,164
(80.8%)

316,659
(18.6%)

제주

166,184
(50.5%)

161,235
(49.0%)


인천의 두 후보 득표율과 전국 두 후보 득표율이 같다!

지역

새누리당
박근혜

민주통합당
문재인

전국

15,773,128
(51.6%)

14,692,632
(48.0%)

인천

852,600
(51.6%)

794,213
(48.0%)

7. 재보궐선거[편집]

8. 선거 개표 결과[편집]

파일:attachment/GYH2012122000110004400_P2_59_20121220050703.jpg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500px-Presidential_election_of_South_Korea_2012_result_by_municipal_divisions_svg.png

  • 전국적으로 보면 제주도를 포함한 대부분의 지역에서 박근혜 후보 지지가 더 우세했으며, 반면 문재인 지지가 더 우세한 지역은 서울특별시 및 전통적 민주당 지지 지역인 전라북도, 전라남도, 광주광역시에 그쳤다. 공교롭게도 지역별 승패는 20년 전인 1992년14대 대선 선거 결과와 정확히 일치했다.

  • 시군구별로 보면 수도권에선 경합, 영남권, 충청권, 강원도에서 박근혜가 우세, 호남권에서 문재인이 우세하였다. 문재인은 노무현이 이긴 16대 대선보다 부산경남의 득표율은 약 10% 이상 늘어나는 성과를 보였다.(62:38) 또한 대경권에서 8:2로 밀린 건 인구가 거의 비슷한 호남에서 9:1로 승리하면서 만회할 수 있었지만, 충청권에서 천안시 서북구 등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는 박근혜에게 10% 이상 차이로 참패하였다.(56:43) 강원도에서도 62:37.5라는 참패를 하면서 인구는 적지만 여기서도 상당한 표차가 났다. 경합지인 수도권, 제주도의 표차를 합산하면 최종적으로 약간의 표차로 승리하긴 했지만 사실상 무승부로 중부권에서 난 표차를 메우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그나마 부산경남에서 40%에 육박하는 득표율을 얻어 표차를 상당히 줄인 덕분에 그나마 3% 차이로 진 것이다. 문재인이 부울경에서 40% 가까이를 얻은 것은 분명 지역감정 타파의 명분으로 PK 탈환을 지상목표로 했던 친노세력의 입장에서는 커다란 성과로 여겨지긴 했지만 결국 승리하지는 못하였고 사실 문재인의 패인은 중부(충청, 강원)권에서의 참패에 있었다. 19대 총선과 마찬가지로 수도권과 PK에만 올인하는 전략은 중부권에 상대적으로 소홀하다는 인식을 주었고 이들 지역에서의 부진을 불러왔다. 그렇다고 PK에서 접전을 벌이거나 수도권에서 완승하지도 못하면서 민주당은 19대 총선에 이어 이길 수 있다고 믿었던 선거에서 또다시 패배하고 만다.


파일:external/scienceon.hani.co.kr/000Map3.jpg

  • 좌측이 일반적인 지도형태고, 우측은 인구비례로 나타낸 지도이다.

  • 2012년 12월 20일 새벽 1시 25분부로, 새누리당의 박근혜 후보가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를 누르고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득표율 차는 출구조사의 1.2% 차이보다 커진 약 3.5% 정도의 차이, 표차로는 108만 표 정도의 예상보다 큰(출구조사 격차상 36만7,000표 정도의 표차로 예상) 차이가 났다. 덕분에 오차범위 내 초박빙이라는 출구조사 결과와 달리 실제 개표는 예상보다 싱겁게 끝났다.

  • 출구조사 결과에서는 경기도, 인천광역시, 대전광역시가 문재인 후보 우세로 나타났으나, 실제 개표 결과에서는 박근혜 후보 1위로 나타남으로써 출구조사가 여지없이 빗나가버렸다[26][27]. 출구조사가 빗나가 버린 만큼 득표율 차가 커진 것. 출구조사가 빗나간 경기, 인천, 대전 이 세 지역의 투표인수를 합치면 무려 950만 명을 넘기 때문에 엄청난 차이가 발생한 것이다. 또한 문재인 후보가 크게 앞서 묻힌 감이 있지만 호남(광주광역시, 전라북도, 전라남도)에서 출구조사 결과와 실제 결과가 2~3% 정도 차이가 났던 것도 있다. 특히 전남은 출구조사와 실제 결과가 3% 이상 벌어져 전국에서 가장 크게 빗나갔다.

  • 2012년 1월 14일 있었던 대만 총통(대통령) 선거와 비슷한 격차가 발생하였다. 대만 선거 역시 마잉주 중국 국민당 후보와 차이잉원 민주진보당 후보 간 출구조사 및 선거 전 여론조사(예측조사)보다 격차가 큰 실제 개표결과가 나타났다는 점에서 유사하다.

  • 최종 투표율은 75.8%로 지난 2007년 대선 때보다 무려 11%나 증가하면서 선거에 관심이 높아진 국민의식이 드러났다. 세대를 가리지 않고 투표율이 증가#2했으며, 특히 2-30대 투표율도 15-20%가량 높아졌다. 5-60대 투표율도 5%가량 늘었는데, 이들이 베이비붐 세대로 2-30대보다 인구가 많은걸 감안하면 5-60대가 가장 많은 관심을 보였던 보수진영 후보의 승리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28] 그리고 유권자수가 4천만 명이나 되는지라 6공화국 대선중 최고의 투표수가 나왔다. 3000만 표를 넘었다.

  • 당선된 박근혜는 역대 당선자 중 최다 득표였고, 낙선한 문재인도 역대 낙선자 중 최고 득표였다. 심지어 문재인이 역대 대선 당선자들보다도 득표수가 높고, 17대 당선자인 이명박 전 대통령보다 320만 표나 많으며, 문재인 자신이 당선된 19대 대선 때보다도 약 127만 표나 많다.

  • 가장 접전이었던 곳은 시군구 단위로 따질 경우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로 문재인 후보가 박근혜 후보를 59표 차이로 제쳤다. 읍면동 단위로 따질 경우 서울특별시 성동구 금호4가동이었는데, 얼마나 접전이었냐면 박근혜 당선인이 문재인 후보를 4384:4383, 단 1표 차이로 승리했다.

  • 세대 대결 구도가 이전 대선들보다 심화된 선거였다. 10년 전 2002년 대선에 비해 20-30대의 노무현 후보와 문재인 후보에 대한 지지도는 각각 59.0%, 59.3%에서 65.8%, 66.5%로 상승했고, 50-60대 이상의 이회창 후보와 박근혜 후보의 지지도는 57.9%, 63.5%에서 62.5%, 72.3%로 상승해 각 세대의 진보, 보수 쏠림 현상이 심화되었다. 한편 40대에서는 55.6% 대 44.1%로 문재인이 승리하긴 했지만 지지율 차가 적어 40대의 진보화가 진행되었음에도 아직까지는 캐스팅보트의 역할이 40대에 있음을 보여주었다. 가장 주목받은건 50대의 표심이었다. 이들이 40대였던 10년 전에는 48.1%(노무현) 대 47.9%(이회창)의 팽팽한 지지율을 보이던 세대였으나 이 대선에서는 62.5% 대 37.4%로 박근혜에게 몰표를 줬으며 특히 투표율이 가장 높았다는 점에 있어서도 매우 적극적으로 박근혜 지지에 나섰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는 당시 50대의 주축을 차지했던 50년대생-60년대 초반생들이 가진 박정희 향수, 그리고 여전히 남아 있던 지난 노무현 정부에 대한 실망감 등이 종합된 것으로 분석할 수 있다. 이른바 '산업화 세대'의 결집으로 불리며 진보층 일각에서는 한국사회의 고령화로 인한 일본과 같은 거대 보수 정당의 장기집권이라는 미래를 예측하기도 하였으나 이 같은 분석은 현재로서는 완전히 틀린 분석이 되었다. 한국의 세대투표는 단순히 나이가 들면서 보수정당을 뽑는 연령효과보다는 한 세대의 특수한 역사적 경험에서 비롯되는 세대효과가 더 크다는 사실을 간과한 것. 사회가 고령화된다 해도 박정희 향수를 가진 50년대 이전 출생자생들의 인구는 갈수록 줄어들면 줄어들지 늘어나지는 않기 때문이다. 대신 오히려 강력한 김대중, 노무현 향수를 가진 70-80년대생들의 몰표 현상이 19대 대선부터 부각되기 시작하였다.

9. 기타[편집]

  • 사상 최초로 남성 후보보다 여성 후보가 더 많은 대선이다.(남성 3명, 여성 4명)

  • 한국에서 몇 안 되는 단 2명의 후보에게 극단적으로 표가 쏠린 대선이다. 박근혜와 문재인 두 사람의 득표율을 합치면 무려 99.57%이다. 결과적으로 나머지 후보들이 다 합친 득표율이 불과 0.43%밖에 되지 않았다. 이러한 이유는 군소후보 4명 중 강지원 외엔 기존에 잘 알려진 인물이 없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29]

  • 특이하게도 남성 후보들은 모두 짝수 기호를, 여성 후보들은 모두 홀수 기호를 받았다.

  • 특이하게 박근혜 후보의 지지 이유 중 동정심이나 감정이입과 같은 감성적 동기가 큰 비중을 차지했다. 아마 어린 나이에 를 잃은 것이 주된 이유인 듯.

  • 무소속 후보가 정당 소속 후보보다 더 많았다.(정당 소속 3명, 무소속 4명)[30][31]

  • 이번에도 세븐 갤러리여지없이 털렸다. 소재도 다양해서 선7ㅓ, 투표율, 7ㅐ표 등등.

  • 충청북도 청원군은 이번 대선을 마지막으로 청주시와의 통합 이전 대선 선거구로서 역할을 마치게 되었다. 2014년 청주시와 청원군이 통합되면서 청원군이 폐지되어 청주시 상당, 흥덕, 청원, 서원구별로 분류되었으며 다음 대선부터 청주상당, 청주서원, 청주청원, 청주흥덕의 일반구별로 선거를 치르게 되었다.

  • 부천시는 2016년 부천시 조례에 따라 부천시 일반구가 전면폐지됨에 따라 이번 대선까지만 부천 일반구별(부천소사, 부천오정, 부천원미)로 나뉘어 치뤄졌다가 다음 대선부터 부천시 단일 선거구로 통합되어 치러졌다.

  • 2012년부터 특별자치시로 승격된 세종시가 이번 대선부터 첫 대통령 선거를 치뤘다. 따라서 충청권은 대전, 세종, 충남, 충북도별로 치뤄졌다.

  • 엄격한 의미로 따지자면 헌정 이후 대선들 중 유일한 여야대결이었다. 이외의 대선들은 대통령의 탈당/파면으로 법적으로는 모두가 야당인 상태에서 치러졌는데, 이 대선 때는 대통령 이명박이 탈당을 하지 않았기에 엄격한 의미의 유일한 여야대결이었던 것.

  • 제6공화국 대선 중 원외정당 후보가 없던 유일한 대선이었다.

9.1. 선거방송[편집]

파일:나무위키+유도.png   SBS의 선거방송 내용에 대해서는 2012 국민의 선택 문서의 2번째 문단을 참조하십시오.

  • KBS와 MBC는 광화문 야외진행을 선보였다. KBS에 경우 광화문 KT 사옥에 미디어파사드를 설치했는데 미디어파사드[32]를 통해 다채로운 영상에다 거기에 출구조사 결과도 표출하였고 특설무대에서는 가수들의 공연이 있었다고 한다. MBC도 광화문에 특설 스튜디오를 설치했고 박명수를 MC로 기용하기도 하였다.


  • 이 영상은 광화문 KT 사옥에 설치된 KBS 미디어 파사드로 여기서 나오는 것은 출구조사 결과가 표출되는 영상이다. 참고로 이 시스템을 위한 시설과 프로그램 전반은 국내 한 미디어파사드업체에서 제작하였으며 이후에 유명세를 타며 전 세계적으로 잘나가게 되어 KBS측에서 다큐멘터리로 이 회사에 대해 소개한 적이 있었다. 관련 정보를 아는 위키러가 있다면 추가바람.


  • 특히 MBC 출구조사에서 방영된 1분 남짓한 카운트 다운 영상은 한국 현대사를 잘 압축했다는 호평을 받았다. 이 때까지의 대통령이 딱 10명이었던 것을 10초 카운트다운으로 표현한 것도 특징할 만하다. 다만 유력후보 2인과 연관성이 깊은 대통령 박정희, 노무현에 대한 내용은 거의 들어가지 않았다. 사용된 배경 음악은 얼음과 불의 노래왕좌의 게임 시즌 1 오프닝이다.[33][34]

영상에 나오는 사건들을 정리해보면…

  • 출구조사 결과가 그야말로 카오스로 진행되었는데 방송 3사 결과로는 박근혜 후보의 1.2% 박빙 우세로 조사되었으나 JTBC에서는 소수점 격차(박근혜 49.4%, 문재인 49.2%)가 났고, YTN에서는 오히려 문재인 우세로 예측조사 결과가 나왔다. 결국 개표 결과에 따라 YTN은 사과방송을 해야했고 JTBC 역시 예측이 빗나간 데 대한 사과자막을 내보냈다.

  • 선거 당일, 2명이 안타깝게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첫 번째는 강원도 원주에서 80대 할아버지가 투표 당일, 등재번호가 기재된 안내문을 두고 와 다시 집으로 가던 도중 기차에 치여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고, 두 번째로는 심장에 지병이 있던 70대 할머니가 투표를 마치고 심장질환으로 숨지는 일이 일어났다.

  • 투표율 만년 꼴찌라는 오명을 가지고 있던 인천광역시는 인천시청, 인천선관위, 인천지역 시민단체 등의 노력으로 투표율 74%를 기록하여 꼴찌 탈출에 성공하였다. 뉴스

  • 결국 이번 선거에서도 동-서 간의 지역 갈등은 해소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동안 투표율이 낮은 축에 속했던 대구, 경북의 투표율이 80%를 육박[36]하는 파란이 일어났다. 이에 대한 원인으로는 대구경북을 대표한다고 말할 수 있는 정치인인 박근혜가 대선에 나오자[37][38] 대구경북권의 기대[39]가 이번 투표에서 표출되었다는 설이 있다. 호남에서 김대중한테 기대 한 만큼 TK에서는 박근혜한테 기대한다는 말도 있었다.[40]

  • 전남 지역에서 유일하게 박근혜 후보가 문재인 후보를 이긴 투표구가 있는데, 다름아닌 전남 고흥군소록도만 관할하는 도양읍 제7투표소였다. # 육영수한센병 환자를 대상으로 한 선행으로 인한 버프를 받았다는 평가다.[41]

  • 경상도 지역에서는 대구경북과 부산울산경남이 확연한 차이를 보였다.

  • 대구, 경북에서는 박근혜의 득표율이 대구 78%→80%, 경북 73%→81%으로 증가했다. 그래서 대구 경북에서 득표율이 80%을 넘은 첫 대통령이 되었다.

  • 다만 호남과 대구경북에는 문재인, 박근혜 몰아주기가 나타남으로서 지역주의는 아직 견고한 상황.

  • 그리고 제19대 국회의원 선거 이후 민주당계열이 강해졌던 수도권에서도 박근혜 후보가 선전했는데, 서울에서는 패배했지만 득표율 차가 3.2%에 그쳐 16대 대선에서의 이회창 후보에 비해 크게 선전했으며, 2011년 재보선에 비해서 23개구는 득표율이 올라가고 반면 강남구와 서초구는 문재인 후보의 득표율도 약간 올라갔다. 그리고 인천 부평권과 경기도 대도시권 위성도시에서도 크게 선전했다. 제16대 대통령 선거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과 권영길 전 민주노동당 대표와 표차를 합하면 당시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는 크게 참패하지만 제18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수도권에서 득표율이 오르며 박근혜 후보가 접전으로 경합을 벌였다. 제16대 대통령 선거에서 이회창 후보는 서울에서 강남구, 서초구만을 남기고, 인천에서는 도서권과 중구만을 남기고, 경기도에서는 일부 최외곽지역을 남기고 과반 득표에 실패하는데 서울에서는 보수강세지역인 송파구, 강동구, 용산구는 물론, 모든 구를 뺏겼고 인천에서는 당시 중구를 제외한 모든 구도심과 모든 지역도 과반 득표에 실패했다. 경기도에서는 위성도시에서 참패한 것은 물론, 보수 강세 지역과 근접지역에서도 참패, 양평, 가평과 용인 부촌지역(현 용인 수지구), 성남 분당 등을 빼고 외곽 지역과 최전방 지역에서도 과반 득표에 실패했다. 하지만 제18대 대통령 선거에서 박근혜 후보는 서울 25개구에서 16대 대선의 이회창 후보보다 더 득표율이 높은 것은 물론, 인천 전역에서도 16대 대선의 이회창 후보보다 득표율이 높았으며 경기도 전역에서도 16대 대선의 이회창 후보보다 더 득표율이 높았다. 결과적으로는 문재인 후보가 서울에서 앞선 표가 박근혜 후보가 경기, 인천에서 앞선 표보다 많아서 문재인 후보의 6만여표차 신승. 그러나 수도권의 인구수를 생각하면 사실상 무승부다. 민주통합당 입장에서는 서울에서 승리를 거두면서 호남 이외 지역에서 승리지역이 생긴 것이 그나마 위안이 되었다.

  • 충청도에서는 새누리당에 흡수되었던 자유선진당의 영향과 문재인 후보가 PK에 집중하면서 충청권에는 상대적으로 소홀했던 것의 영향으로 박근혜 후보가 문재인 후보를 충남과 충북에서는 56 : 43 정도의 큰 지지율 격차로 승리하였고 대전과 세종시에서도 접전 끝에 신승했다. 한편 강원도의 경우 62 : 37.5라는 엄청난 득표율 차로 승리했는데 이는 충청권과 마찬가지로 문재인 후보의 PK 집중으로 인한 소외감 및 군인들이 많은 지역답게 안보문제에 있어 문재인 후보에게 반감을 가진 것을 원인으로 분석할 수 있다.

  • 동- 서 간의 지역 갈등뿐만 아니라 세대 갈등도 적나라하게 나타났다.[44] 7:3 3:7의 대립을 해소하는 것도 정권의 숙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 직선제 개헌 이후 계속 하락세를 보였던 대통령 선거 투표율이 오랜만에 반등한 선거이기도 하다. 보수 대 진보의 양강구도가 되고, 선거운동 기간 내내 박빙의 승부로 이어지면서 각각의 지지층이 크게 결집했던 것이 원인.

  • 직선제 이후 역대 대선에서 인천광역시, 경기도, 충청북도, 제주특별자치도에서 득표율이 높았던 후보가 모두 당선되었는데, 이 속설은 이 선거에서도 틀리지 않았다.(네 곳 모두 박근혜 후보 우세)

  • 당시 박근혜 후보가 당선되면서 헌정사상 최초라는 타이틀을 여러가지 얻게 되었는데 다음과 같다.

    • 최초의 여성 대통령

    • 최초로 87년 대통령 직선제 개헌 이후 과반을 득표한 대통령[45]

    • 역대 최다 득표수를 얻은 대통령[46]

    • 최초의 녀 대통령[47]

    • 최초의 미혼 대통령[48]

    • 대한민국 정부수립(1948년 8월 15일) 이후 태어난 첫 대통령

    • 최초의 이공계 학과 출신 대통령[49]


파일:attachment/20121220000586_1.jpg

  • Daum에서 당시 개표 막바지인 12월 20일 새벽에 위와 같은 다른 결과('문재인 당선 확정')를 대문에 내보냈던 병크를 터뜨렸다. 이미 박근혜 당선인의 당선이 '확실'을 넘어 '확정'으로 접어든 새벽 2시 전후 시점에 벌어진 상황이라서 당시 다음에 접속한 사람들 모두 어이가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당황한 다음 측은 부랴부랴 대문을 교체했지만 어쨌든 사실상 미리 결과를 단정지어 놓은 것이 드러난 셈이라[50], 가뜩이나 다음 아고라 등에서 보여지는 다음의 노골적인 편향성에 운영 주체들까지 관련이 있지 않은가 하는 논란이 일기도 했다.


파일:attachment/sociodemographical.jpg

  • 16대, 17대, 18대 대선 각각의 사회인구학적 투표 동향을 그림 자료로 정리한 것. 17대 대선에서 전 국민이 급격히 우향우했던 것과는 달리 18대 대선에서는 백중세를 이루면서 다소간 우파가 우세한 상황. 진보-보수 스펙트럼에서 의외로 남성이냐 여성이냐의 문제는 그리 중요하지 않은 가운데, 여전히 연령이 상당한 상관관계를 갖는 변수로 나타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지역적으로는 영남권이 상대적으로 더 강한 보수 성향을 보이는 가운데 호남권에서 진보 후보에 대한 전폭적 지지로 인해 지극히 현저한 상관관계가 나타나고 있다.

  • 진보 진영에서 공직선거법에 대해 전자개표를 할 수 없게 되어있다는 잘못된 주장을 하였다. 이 과정에서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수검표를 부실하게 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재검표 요구가 일었다.

  • 한편 수많은 진보진영 지지자들은 수개표를 요구하는 촛불집회에 참가했다. 기사. 이와 더불어 백악관 홈페이지에 재검표 청원을 요구하는 글을 올려 논란이 되고 있다. 기사

  • 진보진영에서는 개표 결과가 조작되었다는 음모론을 들고 나왔지만 시사in 조차 이런 음모론은 황당할 뿐이라는 반응을 보였고 기사 문재인도 재개표는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라며 부정적 의사를 표했다. 기사 이들은 한영수를 대표원고로 선거무효소송을 제출하였다. 전자개표기가 대선 당시 오류를 일으킨 사실은 결국 확인되었지만, 이들의 개표 결과가 조작되었다는 주장은 근거가 없어 책에 대해 배포금지가처분 신청이 승인되고 명예훼손으로 기소된다. 개표조작설에 대해 이들이 한 행동은 한마디로 제16대 대통령 선거 당시 한나라당의 반대 버전이라고 할 수 있다. 제16대 대통령 선거 문서 참조. 이들은 모두 황당무계한 개표조작설이나 전자개표위법설만을 이유로 선거 무효를 주장하지 않고 국가정보원 여론조작 사건을 대선무효의 사유로 포함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박근혜 탄핵으로 소의 이익이 없다며 각하(2013수18)되었으나 대통령이 쫓겨났다는 이유로 무효 확인의 이익이 없다는 것은 잘못되었다며 재심을 신청(2017재수88)한 상태이다.

9.2. 대선 격전 지역[편집]

1, 2위 후보 간 표 차이는 108만 표 정도밖에 안 났지만 지역 구도가 뚜렷하게 나타난 탓에 시, 군, 구 단위에서 생각만큼 치열한 격전지는 거의 없었다. 시, 군, 구 단위에서 1, 2위 후보 간 표 차가 1,000표 차 미만의 격전지는 다음과 같다.


이상 4곳에 불과하며 사이좋게 2곳씩 나눠 가졌다. 지역 구도가 뚜렷한 탓에 후보 각각이 강세를 보인 지역이 뚜렷해서 캐스팅 보트 역할을 할 지역이 적었던 탓에 이와 같은 결과가 나왔다.

9.3. 국가기관 선거개입 사건[편집]

선거 막판 국가정보원이 여론조작을 시도하며 대선에 개입했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12월 11일 제기된 의혹을 경찰은 서울지방경찰청장의 지시에 따라 마지막 토론이 끝난 12월 16일 일요일 오후 11시 증거가 발견되지 않았다고 발표하였다. 제18대 대통령 선거가 끝난 지 6개월 정도 이후 검찰이 실제 수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국정원의 행위가 사실이며, 실제로는 12월 중순 당시 증거를 발견하고도 허위 발표를 한 사실이 확인되었다.

2015년 2월 9일 서울 고등 법원이 유죄 판결을 내림으로써 국가기관에 의한 대선개입이 처음으로 인정되었다. 그러나 그 해 7월 16일 대법원이 당시 형사소송법에 의해 당사자가 부인한 전자증거를 증거로 채택하기 위해서 필요한 요건에 맞지 않는 상태에서 전자증거[51]를 채택했다며 그 증거에 나오지 않는 범위내에서 발견된[52] 여론조작 정치개입 활동을 가지고 대선개입여부를 판단하라는 취지로 이례적으로 선거법 위반여부에 한해 판단 없는 파기 환송 처리하였다. 어찌되었건 국정원이 당시 개입을 한 것이 인정된 만큼, 선거 후보자도 아니었던 당시 당국이 선거에 조직적으로 개입했다는 것이 사실로 드러났다고 볼 수 있다.[53]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하는 국가정보원에서 선거에 개입한 순간, 이미 그 선거는 부정선거이다. 그러나 이게 얼마나 심각한 것인지 자각조차도 못 한(혹은 그러하도록 여론조작을 벌인) 채[54]로 4년을 날리고 말았다.

해당 사건으로 원세훈 전 국정원장은 선거법과 국정원법 위반으로 유죄판결을 받고 수감되었고, 연제욱, 옥도경 전 사이버사령관도 정치관여죄로 유죄판결을 받았다.

이와는 별도로 보수 개신교 계통의 여론조작단(소위 십알단)이 박근혜 후보를 위해 온라인상에서 여론조작 활동을 펼쳤으며, 이와 관련된 오륜교회에 재직하던 윤정훈 목사는 유죄판결을 받았다. 기사

2018년 현재 드러난 내용은 가히 충격적인데, 국정원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국군 사이버사령부기무사, 그리고 대한민국 경찰청까지 그야말로 국가 정보·방첩·수사기관이 총동원되어 여론조작을 가해 대선에 개입한 사실이 드러났다.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국가정보원 여론조작 사건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9.4. 선거무효소송[편집]

전자개표가 위법이라고 주장하는 한영수는 대선이 개표조작 부정선거라며 전자개표는 선거법에 어긋나고 개표조작 의혹이 있다며 선거무효소송에 동참할 사람을 모집한다. 국가정보원 여직원의 대선개입 의혹이 제기된 상황이라, 선거개입성 여론조작은 부정선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상당수가 선거무효소송인단으로 참여했다.

이들은 그 후 청구취지를 확장 및 변경하여 국가정보원 여론조작 사건을 대선무효사유로 포함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이로 인해 2017년 1월 현재까지 선거무효소송이 진행 중인 상황이다. 대법원이 2015년 1월 5일 여러 관련사건을 통일적이고 모순 없이 처리하기 위하여 심층 검토중이라는 입장을 밝히고 2년 가까이 소송이 아무것도 진행되지 않았는데 이 관련사건은 국가정보원 여론조작 사건 재판을 일컫는 것으로 보인다. 선거무효소송의 사건번호는 2013수18이다.

2017년 4월 5일 심리진행상황이 쟁점에 관한 재판부 논의 중으로 바뀌었으며, 4월 27일에는 이미 박근혜가 파면되어 소송의 법률상 이익이 없다는 이유로 각하 결정이 나왔다. 박근혜가 파면된 대통령으로 대부분의 혜택이 박탈되었을지라도 경호, 무궁화대훈장 등이 남아있는 상태라 반발이 일고 있다.뉴스 논란의 핵심은 공직선거법 상 선거무효소송은 대법원 단심으로, 소가 제기된 날로부터 180일 이내에 처리해야 한다고 규정되어 있는데, 이번 사건은 소가 제기된 날로부터 4년이 지난 상황에서야 선고가 나왔다. 그나마 심리진행이 무기한 연기된 상태였던 2017년 3월 10일부로 헌법재판소에서 18대 대통령이었던 박근혜의 파면을 선고하였고, 이를 근거로 하여 대법원은 "해당 재판이 무효처분이 된다고 해도 그로 인하여 물러나야 하는 대통령 박근혜가 탄핵으로 궐위된 상황이기 때문에 심리속행의 실익이 없어졌기 때문에 기각한다"라는 내용이었으며, 같은 판결문에서 “선거법 처리기간 조항은 의무가 아닌 권고규정”이라고 말하였다.

이에 대해 선거무효 단체에서는 탄핵으로 궐위된 상황이라는 이유로 소의 이익이 없다고 각하하는 것은 부당하다며 재심 신청(2017재수88)하였다. 또한 2017년 8월 30일 18대 대선과정에 국정원장 원세훈과 그 예하의 심리전단, 기무사 등이 조직적으로 선거에 개입했다는 자료가 속속들이 나오고 있던 와중에 재판에서는 원세훈에게 4년의 실형을 선고하였고, 구속상태가 아니었던 국정원장 원세훈은 법정구속에 이르게 되었다. 이 재판의 결과로 국가가 불법적으로 대선에 개입했다는 것을 재판부가 인정하였다고 볼 수 있기 때문에, 현행 '공직선거법'상으로 국가가 불법적으로 개입한 선거는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는 바, 이를 근거로 해서 재심을 심의할 경우에는 무효처리가 될지도 모르는 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국면으로 접어들게 되었다.

9.5.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측의 여론조작, 문재인 선거팀의 SNS기동대[편집]

18대 대통령 선거는 박근혜문재인 양측이 모두 유난히 댓글 부대와 여론 조작 파문으로 시끄러운 선거였다.

9.5.1. 문각기동대와 댓글부대[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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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대 대통령 선거를 2달 앞둔 2012년 11월 8일, 민주통합당 보좌진 27명이 모여 전략기획팀, 메시지팀, 실무지원팀 등 3개 팀으로 구성된 일명 SNS 기동대를 결성했다. 차모 비서관을 기동대장으로 하여, 전략기획팀은 트위터와 페이스북에 전파할 내용을 기획, 메시지팀은 전략기획팀에서 기획한 글을 전파, 실무지원팀은 연락과 진행사항을 점검하고 전파된 글의 반응을 모니터링했다. 오프라인-온라인 회의 체계를 갖추고, 활동 시간대를 정하는 등 매우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움직였다.[55] 'SNS 기동대'는 12월 2일까지 트위터와 페이스북 등 SNS에서 문재인 후보의 당선을 위한 댓글부대 임무를 충실히 수행했다.

2012년 11월 26일 민주통합당은 여의도에 위치한 신동해빌딩 6층을 임차하고, 이를 중앙당사로 추가하는 절차를 마쳤다. 좀 더 체계적으로 SNS 선거 활동을 하기 위해 SNS 기동대를 지원한 것이다. 사무실이 마련되자 2012년 11월 27일부터 12월 12일까지 총 91대의 컴퓨터가 설치되었고, 이와 함께 프린터 24대와 유전전화기 47대, 의자 105개, 테이블 72개, 파티션 104개, 텔레비전 5대, 냉장고 3대도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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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2월 3일, 'SNS 기동대'가 'SNS 지원단'으로 확대·개편되면서 조직의 규모는 총 10개 팀, 76명으로 늘어났다. 이 SNS 지원단의 책임자가 바로 조한기다. SNS 기동대의 책임자였던 차 비서관은 SNS 지원단에서 대응1팀장을 맡았고, SNS 기동대 중 일부와 다른 민주통합당 보좌진 등 총 16명이 SNS 지원단으로 합류하면서 대응1팀으로 편입돼 기존의 SNS 활동을 이어나갔다. 특히 SNS 기동대를 이끌었던 차 비서관은 하루에 100건이 넘는 트위터를 작성하기도 했으며, 글 중에는 상대 후보에 대한 원색적인 비판도 포함되어 있었다고 한다.

SNS 지원단의 핵심조직은 '대응1·2·3팀'으로 추정된다. 대응1팀은 트위터와 페이스북, 대응2팀은 인터넷 포털사이트와 블로그, 대응3팀은 인터넷 커뮤니티와 인터넷 뉴스 댓글란을 각각 맡아 업무를 세분화했다. 이 세 개 팀을 통해 문재인 후보의 정책, 유리한 글, 불리한 내용에 대응하는 글, 박근혜 후보에게 불리한 글 등을 전파하며 전방위적인 인터넷 선거운동을 벌였다. 이외의 팀에도 아래 표에 나와있는 것처럼 아주 세세한 업무가 부여됐다.

구성과 업무는 다음과 같다.

  • SNS기획팀: 선거운동기간별 후보자 홍보 계획 수립, 팀별 업무 보정, 회의 준비

  • SNS메시지팀: 문재인 후보와 아내 김정숙의 트위터, 페이스북, 블로그에 홍보물을 작성

  • SNS분석대응팀: SNS 여론을 모니터링하여 SNS선거운동 전략 수립

  • SNS플랫폼팀: 홈페이지, 카카오톡, 모바일앱을 운영

  • SNS콘텐츠팀: SNS에 유통시킬 동영상 등 콘텐츠를 생산

  • 뉴스매거진팀: 홍보를 위한 인터넷 뉴스레터를 매일 작성해 당원과 일반인들에게 발송

  • SNS네트워크팀: 인터넷을 통해 배포되는 콘텐츠 정리


이후 SNS 지원단은 불법 선거운동으로 기소되었다.

1심 재판부는 "선거캠프 내 내부적 사무분담 변경에 불과한 것으로 보인다"라며 SNS 기동대의 설립 자체는 무죄로 판단했다. 다만, SNS 지원단을 운영하기 위해 사무실을 차리고 설비를 갖춘 것은 유죄로 판단해 조한기와 차모 비서관에게 각각 벌금 20만 원의 선고를 유예했다.

그러나 이 판결은 항소심에서 뒤집혔다. 2심 재판부는 "위반 행위를 물적 시설의 설치와 인적 조직의 구성으로 나눠 유·무죄를 논할 것은 아니다"라며 원심의 오류를 지적하고, "국회의원 보좌관 27명이 전략기획팀, 실무지원팀 등으로 구성돼 각 팀별 업무를 담당한 사실 등을 고려하면 사조직 설립 금지 위반 혐의를 유죄로 인정할 수 있다"라고 설명하면서, '조직을 설립한 사실'과 '사무실에 설비를 갖춘 사실'을 모두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판단해 두 사람 모두에게 벌금 90만원을 선고했다. (#, #)

이후 유죄로 선고받은 조한기를 그대로 19대 대선에 선거팀 내에 넣으면서 다시 논란이 생겼다. 이후 온라인상에서 문재인 지지자를 문각기동대라 칭하는 일이 생겼다.

10. 관련 문서[편집]

[1] 진보와 보수 후보의 일대일 양자대결이었던데다 세대 대결구도가 이전까지의 대선들보다 크게 심화된 선거였기에 이와 같은 별칭이 붙기도 했다. 1930-1950년대생(50-60대 이상)과 1970-1980년대생(20-30대)들의 표심이 정반대로 나타나며 격돌했고 1960년대생(40대)들은 두 후보에게 비슷한 지지를 보내며 캐스팅보트의 역할을 맡았다. 이 선거를 마지막으로 대선에서 산업화 세대(1930-1950년대생)의 인구비중을 민주화 세대(1960-80년대생)이 크게 앞지르면서 이전까지의 산업화 세대 vs 민주화 세대의 선거구도는 점차 옅어지게 된다. 한편 19대 대선부터는 1990년대생이라는 산업화도, 민주화도 경험해보지 않은 새로운 세대가 한국정치에 본격적으로 등장하게 된다.[2] 이전으로 따지면 7대 대선과도 비슷한데, 그 쪽도 역시 부정선거 논란이 밝혀졌다. 부전여전.[3] 그나마 18대 대선과 가장 비슷한 구도를 이뤘으나, 사실 알고보면 민노당 권영길 후보가 깎아먹은(...) 표가 좀 되서 노무현 후보가 과반득표는 아슬아슬하게 실패했다. 그런데도 이겼다[4] 다만 박근혜의 경우, 17대 대선 당시 본선에는 출마하지 못했지만 한나라당 경선에서 이명박 후보와 초접전의 양상을 보이며 경쟁하다가 석패했다.[5] 11월 23일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문재인 후보를 지지하며 사퇴하였다.[6] 11월 22일 박근혜 후보를 지지하며 사퇴하였다.[7] 11월 26일 문재인 후보를 지지하며 사퇴.[8] 무소속 강지원 후보와 정책연대를 했다.[9] 정식 대선 후보 등록을 하지 않았다.[10] 실제로 선거 전에도 투표율 70%를 기점으로 문재인의 승리가 갈릴 것이라는 분석기사가 있었다. #1, #2[11] 뒷이야기로 나온 바로는, 실제 출구조사 데이터는 박근혜 후보 50.6% 문재인 후보 49.1%였다고 한다. 물론 원래 출구조사 데이터인 50.6 - 49.1도 오차범위 안에 있다. 보정 과정에서 수치가 약간 조정됐다고. 기사(접속이 되지 않는다.) 결국 이 결과하고 실제 개표 결과와는 상당한 차이가 있는 편.[12] 성별, 세대에서 후보별로 가장 높은 지지를 한 계층은 박근혜 후보는 60대 이상 여성에서 72.5%, 문재인 후보는 20대 이하 여성 69.0%였다.[13] 이는 구 동교동계의 박근혜 지지도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14] 현재까지 대선에서 어떤 후보의 당선 유력이 선언된 이후로 그것이 역전된 적은 단 1번도 없었다.[15] 카운트다운 = {(남은 표수) - (1위 후보와 2위 후보 간 표차)}/2.[16] 1위 후보와 2위 후보 사이의 표차가 남은 표수보다 많아지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1위 후보와 2위 후보간 표차가 2만 표 정도 났는데 남은 표수가 18,000표 정도라면 2위 후보한테 남은 18,000표를 모두 줘도 순위가 뒤집히지 않는다. 따라서 이 상황에서 1위 후보는 당선이 확정되게 된다. 박근혜 후보는 문재인 후보와의 표차가 110만 표 정도 난 상황에서 남은 표수가 109만 표 대로 돌입하자 남은 표를 전부 문재인 후보한테 줘도 1위에는 변함이 없기 때문에 남은 표수와 상관 없이 당선이 확정된 것이다.[17] 재외선거인 43,201명 포함. 재외선거인을 제외한 국내유권자 + 국외부재자는 40,464,641명.[18] 재외국민 투표 및 부재자 투표 포함[19] 부재자 투표수 합산 시작. 부재자 투표수는 누적 투표수에 포함됨.[20] 부재자 포함한 숫자다. 재외국민 투표 중 국외부재자는 각 시도 본수에 포함되어있으나 재외국민 투표만의 투표율은 별도로 표기한다.[21] 소수점 셋째자리에서 반올림하여 둘째자리까지 표시[22] 투표 하지 않은 사람. 선거인수 - 투표수[23] 국외부재자는 이미 상술한 시도 본수에 포함되어 있으나 투표율 계산을 위해 별도 표기했다.[24] 군인 투표가 들어가 있기 때문에 20대 후반에 비해 20대 전반의 투표율이 월등하게 높다. 그런데 다음 19대 대선에서는 20대 전반에서도 여성들이 투표율이 더 높았다.[25] 표본 오차는 95% 신뢰 수준 +-0.8%다.[26] 이 지역들은 오차범위 내 경합 지역으로 분류된 곳들이라 완전히 엉뚱하게 빗나간 것은 아니다. 그런데 저 세 지역 인구보다 훨씬 적은 제주특별자치도는 박근혜 오차범위 내 우세를 맞췄는데? 지난번에도 이러더니 [27] 다만 인천광역시는 예상보다 크게 빗나갔는데 출구조사에서는 50.6 : 49.0으로 문재인 후보의 1.6% 승리로 나왔으나 실제 결과에서는 51.6 : 48.0으로 박근혜 후보가 3.6% 앞서는 것으로 나오며 출구조사 결과를 크게 벗어났다.[28] 실제 출구조사 결과 50대의 박근혜 지지율은 62.5%로 37.4%의 문재인보다 큰폭으로 앞섰다.[29] 이전 버전에 나머지 후보가 0.41%, 무효표가 0.02%라고 돼있었는데, 득표율은 무효표(비투표 포함)를 제외한 유효표 중에서만 계산하는 것이다. 애초에 계산도 틀렸다.[30] 다만 무소속으로 나온 김소연 후보와 김순자 후보의 경우 당시 문재인 중심의 야권 단일화에 반발한 일부 재야세력이 진보신당 내 현장파를 중심으로 '변혁모임'을 만들어서 김소연을 후보로 냈는데 진보신당도 공식적으로 김소연을 지지하였다. 이때 진보신당 내 일부 사회당계는 이에 반발하여 19대 총선 진보신당 비례대표 후보였던 김순자를 지지하였다. 도토리 키재기지만 김순자가 김소연보다 표를 훨씬 더 받은 건 함정.[31] 정당 소속이었던 이정희 통합진보당 후보는 중도 사퇴하였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정당 후보는 양강이었던 박근혜와 문재인 둘뿐이었다. 워낙 양강 후보로의 쏠림이 아주 강한 탓에 군소 정당이 후보를 낼 상황이 없었던 셈. 실제로 박근혜, 문재인 두 후보의 표를 제외한 표가 4명의 무소속 후보들이 받은 표였는데 앞서 설명했듯이 다 합쳐도 0.43%밖에 못 얻었다.[32] 건물이나 조형물을 스크린으로 삼아 다양한 영상물을 표출해 내는 것을 말한다.[33] 사실, 마지막 싸이강남스타일무슨 국뽕도 아니고 역사적 사건도 아닌데 뜬금없이 왜 나왔느냐는 반응도 있었다. 하지만, 그 당시 기준으로 싸이의 전 세계적인 열풍은 현재진행형인 상황이었기에 이해를 못 할 정도는 아니라는 의견도 있었다.[34] 여담으로 MBC에서 탄핵까지 끝난 2018년이 되서야 공식 영상을 올렸다. 그전까지는 비공식 영상이 저작권 신고를 받고 볼수 없었다.[35] 굉장히 빠른 속도로 지나가기 때문에 유심히 보지 않으면 놓치기 쉽다.[36] 80%를 돌파한 지역은 광주광역시 한 곳이다.[37] 박정희의 딸이고 대구에서 태어났다.[38] 어릴 때부터 서울에서 살아서 사투리는 못 쓴다. 새누리당에서도 TK 국회의원 중 사투리를 못 쓰는 국회의원은 박근혜가 유일하다는 말이 나온다.[39] ex) 박정희대통령처럼 소신있게 정치를 할 것이다.[40] 김대중은 홀대받던 호남지방을 발전시켰고 박근혜박정희의 딸이기 때문에…[41] 이후 제19대 대통령 선거에서도 호남 지역에서 유일하게 홍준표 후보가 35.8%의 득표율로 1위를 한 투표구가 되었다.[42] 부산 30%→40%, 울산 35%→40%, 경남 27%→36%[43] 그 경남도 겨우 0.5% 차이, 표차로는 10760표차이였다.[44] 출구조사에서 2,30대는 문재인 후보가 약 65-35 정도로 앞섰고, 40대에서도 약 55-45 정도로 앞섰다. 박 당선인은 50대에서 약 65-35, 60대 이상에서 75-25로 앞섰다.[45] 문재인 후보는 48%인데 이는 지난 이명박 대통령이 얻은 득표율(48.7%)보다 약간 낮은 수준이다.[46] 이전 기록은 2002년 대선에 노무현 대통령이 얻은 12,014,277표였다. 370만 표 이상 차이가 나서 기록이 깨졌다.[47] 대한민국 제 5, 6, 7, 8, 9대 대통령을 지낸 박정희 전 대통령이 아버지[48] 여성 대통령의 남편을 주로 부군(夫君)이라 칭하는데 박근혜 전 대통령의 경우 결혼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18대 대통령 임기 동안 부군은 공석이었다.[49] 이승만 전 대통령은 철학 학사, 영문학 석사, 국제정치학 박사였으며, 윤보선 전 대통령은 고고학 학사와 석사, 박정희 전 대통령은 조선국방경비사관학교 학사, 최규하 전 대통령은 영어영문학 학사, 전두환 전 대통령과 노태우 전 대통령은 육군사관학교 학사, 김영삼 전 대통령은 철학과 학사, 김대중 전 대통령은 목포공립상업학교 졸업으로 고졸, 노무현 전 대통령은 부산상업고등학교(현 개성고등학교) 졸업으로 김대중 전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고졸, 이명박 전 대통령은 경영학 학사. 박근혜는 전자공학과 학사 출신이다. 여기에 후임인 문재인 현 대통령은 법학과 학사로 박근혜는 유일한 이공계 학과 출신 대통령의 타이틀도 가지고 있다.[50] 다음 관계자들이 오후까지 투표율만 보고 문재인 당선이라는 확신에 차서 예정 시각에 맞춰 이런 결과가 나오도록 한 것이 하나의 가능성으로 꼽힌다. 혹은 투표 결과에 멘붕한 관계자들이 벌인 일종의 정신승리(…)라는 견해도 있다. 물론 진실은 저 너머에...[51] 트위터 계정 목록이 포함된 파일이었다. 국정원 직원이 조직의 외압을 받았는지 자기가 파일을 작성했다는 입장을 번복하면서 문제가 생긴 것. 현재는 김진태가 주도한 형사소송법 개정에 따라 본인이 부인해도 감정결과 본인이 쓴 것으로 밝혀지면 컴퓨터의 문서 파일은 증거로 쓸 수 있게 개정되었으나, 이미 공소된 사건에 대해서는 적용되지 않는다.[52] 이것도 굉장히 많은 수이다. 물론 당사자가 파기환송심에서 다시 자기가 썼다고 시인하거나 검찰이 기타 특히 신용할 만한 정황에 의하여 작성된 문서라는 점을 보강하면 파기환송심에서 해당 파일의 증거채택이 가능하다.[53] 증거능력에 논란이 있는 해당 파일을 제외하고 확인되는 인터넷 계정만 가지고 국정원의 시기별 사이버 활동 및 그 내용의 변화 과정을 비교해 보더라도 2012년 8월 20일(박근혜 대선후보 선출일) 이후 정치글 중 선거글이 차지하는 비중이 현저하게 증가함이 명확하고 군소후보인 이정희 후보를 노골적으로 비방하는 글을 여러 직원들이 올린것도 명확하기에 국정원 조직원들이 고의적으로 선거에 개입한 것이 분명하다.[54] 2013년 당시 검찰 특별수사팀에 가해진 외압과 방해는 상상을 초월한다. 당시 황교안 법무부 장관이 법무부 차원에서 수사 외압을 가했고, 심지어 국정원에서는 파견 검사들을 이용해 증거와 압수수색 장소까지 조작해버리고 이것도 모자라 특별수사팀에 대한 뒷조사까지 하여 수사팀을 해체하려고 한 정황까지 드러났다. 여기까지만 해도 기가 막히는 것인데, 당시 사건을 수사 중이던 경찰에게도 외압을 가하고 증거를 은폐하려 했다.[55] 09:00 - 오프라인 회의, 10:00 ~ 11:00 - 집중 유포, 13:00 - 온라인 회의, 13:30 ~ 15:00 - 집중 유포, 15:00 - 모니터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