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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보병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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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나무위키+상위문서.png   상위 문서: 제1야전군사령부, 제2군단

대한민국 육군 보병사단 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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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본부

야전군급

군단급

사단

1군
(동부전선)

II

7 · 15 · 27

III

2 · 12 · 21

VIII

22 · 23

(직할)

36

2작사

(직할)

31 · 32 · 35 · 37 · 39 · 50 · 53

3군
(서부전선)

I

1 · 9 · 25 · 30

V

3 · 6

VI

5 · 28

VII

수도 · 8 · 11 · 20 · 26

수도

17 · 51 · 55

(직할)

수방사

52 · 56

동전사

60 · 66 · 72 · 73 · 75

상비사단 기계화사단 ■ 향토사단 ■ 동원사단

파일:external/bemil.chosun.com/20110415141109.jpg

1. 소개2. 개요3. 사단가4. 훈련소
4.1. 제1신병교육대대4.2. 제2신병교육대대4.3. 분대장 교육대
5. 예하부대
5.1. 제50보병연대 독수리5.2. 제38보병연대 번개5.3. 제39보병연대 을지5.4. 포병연대5.5. 직할대
6. 사건사고
6.1. 오혜란 대위 성추행 자살사건6.2. 구상훈 이병 가혹행위 은폐 사건
7. 그 외8. 출신 유명 인물
8.1. 장교8.2. 그 외

1. 소개[편집]

대한민국 국군 보병사단. 일명 승리부대. 경례구호는 해군 해병대 공군과 같은 '필승'. 베낀거 아니냐는 말도 있는데 부대가 승리부대니 어찌보면 당연한 것이다. 같은 필승 구호를 사용하는 육군부대는 제30기계화보병사단이 있다.

심볼은 3개의 동심원이 겹친 형태로, 각 원에는 다음과 같은 상징과 의미가 부여되어 있다.[1]

붉은색 원 - 태양을 상징하며, 사단의 용맹성을 의미.
푸른색 원 - 평화를 상징하며, 자유와 평화를 의미.
노란색 원 - 을 상징하며, 사단의 무궁한 번창을 의미. [2]

생긴게 양궁 과녁판같이 생겼다고 해서 과녁판 부대라고 부를 때도 있다. 또는 계란 후라이 부대.

멍(푸른색), 피(붉은색), 고름(노란색) 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구호: 대성산 이상 무

좌측의 제3보병사단, 우측의 제7보병사단과 함께 중부전선을 담당하는 최전방 부대로, 휴전선 155마일 정중앙에 위치해있다고 설명한다. 부대가 주둔하는 강원도 철원군화천군의 산악지형 특성상 산악전 부대로 분류된다고 한다.[3] 그래서 포병도 산악포병이라는 희한한 별칭을 가지고 있다. 게다가 행군은 거의 을 타는 게 당연시되며[4] 이 산을 중심으로 사단의 거의 모든 부대가 산 중턱 혹은 근처에 퍼져있기에 부대에 따라서는 산을 오르내려야 밥을 먹거나 눈을 치울 수 있는 곳도 많다. 1996년에는 수해로 인해 사단 사령부를 포함한 거의 모든 지역이 초토화되었고, 18명의 장병들이 사망하기도 하였다. 현재는 DMZ 책임지역을 관리하고 1차적으로 적의 도발을 방어하는 최일선 부대이다.

2. 개요[편집]

별로 널리 알려진 부대가 아니지만 의외로 15보병사단은 6.25 전쟁에서 전공을 세운 전통있는 사단이다. 1952년 11월 8일 제12보병사단과 함께 강원도 양양 전진리에서 38, 39, 50 보병연대를 기반으로 창설되었고, 이듬해 2월까지는 후방에 주둔하고 있었으나 5사단을 임무교대차 철수시키면서 15사단이 대신 전선을 담당하게 되었다. 53년도부턴 1군단에 배속되었으며 배치된 곳은 고성 통일전망대 부근 351고지로서 이곳에서 북한군을 상대로 수차례 방어전을 벌여 크고 작은 100여 회의 전투 속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현재 강원도 고성군 통일전망대를 가면 이를 기리는 전적비가 세워져 있다. 승리부대라는 별명도 이 고성 전투의 승리 뒤 이승만 대통령프란체스카 여사의 의견을 따라 '싸우면 반드시 승리하는 부대'라는 의미로 지어준다. 이후 60년대에는 여주, 이천, 양평에 주둔하다가 춘천시 오음리로 이동 후 2군단에 배속 뒤 64년 부터 현 화천 및 철원 일부 지역에 주둔중이다. 참고로 이 부대는 4.19혁명으로 서울 고려대학교에 이동배치되었으나 사단장 조재미 준장은 이승만이 내린 4.19혁명 진압을 당당하게 거부했다.

3. 사단가[편집]

1.
화랑의 넋을 이은 대한의 건아
무쇠같이 뭉치어 달려나가자
산천도 떠는구나 거칠 것 없다
지키자 금수강산 우리 손으로
드높이 휘날려라 승리의 깃발
원수를 무찌르는 제15사단

2.
철모를 조여라 굳게 조여라
겨례의 비원을 풀어야 한다
오늘도 다시 한 번 맹세 하노라
이루리라 조국통일 우리 손으로
드높이 휘날려라 승리의 깃발
원수를 무찌르는 제15사단

4. 훈련소[편집]

4.1. 제1신병교육대대[편집]

2007년에 신축되었다.

상당히 좋은 시설을 자랑한다. 비록 침상이긴 하나, 건물이 매우 깨끗한 편. 또한 육군훈련소처럼 각 시설이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아서 102보충대에서 교육을 15사단으로 받게 되었다면 시설 걱정은 안 해도 좋다. 눈이 오거나 춥지만 않다면 훈련은 어렵지 않을 것. 식당밥도 맛있다.[5] 화장실의 경우, 중대당 두 개의 화장실에 양변기가 각 20개 정도 있다. 보통 한 기수에 250여 명이 입소하는 것을 감안하면 꽤 넉넉한 편. 온수 사용에도 관대한 편이어서, 아주 애매한 환절기가 아닌 다음에야 온수샤워가 가능하다.

신병교육대에는 성당법당, 교회가 있는데, 성당에서는 한 달에 한 번 햄버거, 법당에서는 한 달에 한 번 정도 수계식 참여 시 토스트를, 교회에서는 매주 빵과 사이다 (+초코파이), 한 달에 한 번 이삭토스트[6]를 주니, 다른 종교행사에 참여한 동기들의 정보를 수집해서 적절히 잘 챙겨먹으면 좋다. 초코파이! (주세요!) 참고로 신교대 종교활동 부식은 사단 군종부에서 지원한다. 2014년 초중순 즈음에 법당에선 머핀을 제공했는데 종교행사 전날 서울 코스트코에서 가져온 것들이다.

4.2. 제2신병교육대대[편집]

2005년에 신축[7]되었으나, 현재는 일반 전투부대로 전환되었다.

산 중턱을 깎아서 만든 부대인지라 위병소와 통합막사와의 고도차는 60m 가까이 된다. 여기서 3km 체력측정하는 교육생들 및 기간병들 지못미 특히 막사로 가는 중간지점에 50m 정도의 경사로가 있는데, 경사가 상당히 가파르기 때문에 여기에 처음 와서 의류대 메고 올라갈 때 방심하면 낙오할 수도 있으니 조심하기 바란다. 실제로 병사들끼리 위병소를 지났다고 훈련(특히 행군)이 끝난 게 아니다. 라는 말이 돈다. 신교대였던 과거나 일반 전투대대인 지금이나.

2013년부터는 제1신병교육대대에서 훈련병들의 교육을 맡고 있기 때문에 다시 이전처럼 야전부대로 돌아갔다. 덕분에 산악대대가 좀 덜 힘들어졌다. 이전에는 연대의 모든 훈련을 도맡아서 힘들기로 유명했다. 일주일 뒤에 훈련 또 훈련

4.3. 분대장 교육대[편집]

제1신병교육대대의 한 개 중대가 맡아서 실시한다.

사단 소속이 아닌 군단 소속 분대장 후보생도 해당 교육대에서 교육을 받는다. 분대장 교육대 교관이 상당히 FM에다가 빡센 사람이었기 때문에 병사들에게 유명했다. ("당신들이 분대장이야~?, 당신들은......", 고음 샤우팅 덕에 조교들 사이에서는 별명이 익룡이었다 카더라 북한 총검술도 잘하는건 덤 전형적인 츤데레 타입) 현재는 다른 사람으로 바뀌었다. 또한 분대장 교육대 이용 중 px이용이 제한적으로나마 가능하다.

분대장 교육대에 시험이 있는데, 이 부분이 매우 엄격해 일정 커트라인을 넘기지 못하면 퇴소처리 된다. 각 분과별로 성적우수자 포상과 모범분대장 포상이 있다. 하지만 모범분대장 포상은 대부분 행정보급관 교육생이 받고, 이 행정보급관 교육생은 같은 대대 내 입소자 중에서 뽑는다.[8] 의무대나 PX이용같이 부대 안에서 필요한 것들을 챙기는 역할을 맡기 때문에 편의상 그렇게 선정하는 것. 그러니 포상을 노린다면 성적우수자를 노려보는 것이 낫다. 아니면 조교에 지원하지 그랬어. 누가 그런 메리트가 있는 줄 알았나.

5. 예하부대[편집]

  • 제38보병연대

  • 제39보병연대

  • 제50보병연대

  • 포병연대

  • 사단 직할대

    • 15사단 사령부

    • 공병대대

    • 정비대대

    • 보급수송대대

    • 화생방지원대

    • 수색대대

    • 의무근무대

    • 정보통신대대

    • 헌병대대

    • 전차중대

    • 방공중대

    • 보충중대

    • 본부근무대

5.1. 제50보병연대 독수리[편집]

39연대나 38연대같이 GOP 근무를 하지 않고 매번 훈련만 뛰는 부대다. 훈련량은 27사단 뺨치며 상호간 합동훈련도 자주 뛴다. 이 부대에 신병 교육대대가 있었으며, 2010년 말 제 2 신병교육대가 창설되어 제 2신교대가 전투부대로 환원되기 전까지는 전투부대는 산악대대만 남아 50연대의 모든 훈련을 죄다 산악대대가 뛰어야 했다.[9] 그 결과 그 부대원 전부다 FTX 훈련의 달인이 되었으며 매주마다 산을 탔다. 후방연대라고 해서 편하지 않다. 그 주변은 온통 산이며 지형조차 매우 험악...화천은 신이 버린 땅이다.해서 정말 쉽지 않다. 행군훈련 및 전술훈련도 굉장히 많아서 부대원들에게 애로도 많았을 뿐만 아니라 그 당시 대대장도 사단에서 빡세기로 유명하던 사람이었다. 오죽하면 특공대라는 별명이 붙었을까... 예를 들어 사격측정을 하는데 3번 연속 18발을 못 맞추면 맞출 때까지 매번 사격을 해야했으며 아침 먹기 전에 FTX 점심 먹고 FTX, 자기 전에 5대기는 덤... 한 중대 평가훈련이 있었는데 대대장은 나머지 중대도 같이 훈련을 뛰라고해서 나머지 중대도 웃지 못할 상황을 만들게 되었다. 유격 때는 유격 하루일과가 끝나고 나서 밤에 간부사격도 하였다. 간부들의 아우성

2012년때엔 대대장의 진급욕심으로 매월 40 km 야간행군, 3개월마다 60 km 100 km 무박2일 행군을 계획한 적도 있다.

신막사가 건축되기 전까지는 시설 수준이 15사단 최악이었으며 내무부조리 또한 심했다.[10] 현재는 제 2 신교대가 전투대대로 환원됨으로써 나아졌으리라고 추정. 현재 연본을 제외한 전 대대가 신막사 애용 중이다.

산악대대 근처에는 이외수가 사는 감성마을이 있다. 주마다 한 번씩 해방촌 구보를 하니 숙달되지 않은 신병은 퍼지지 말자. 퍼지면 욕 많이 먹는다. 군가는 덤.[11] 현재 아침 자율뜀걸음 방식을 운용하다가 너무 요령을 피운다는 의견이 올라오기도 했고 대대장이 바뀌어서, 다시 휴일을 제외한 매일 아침 소대뜀걸음으로 변경되었다. 운이 좋으면 이외수를 볼 수도 있다. 홀연히 나타나서 휴가증을 뿌리고 사라졌다 하더라

대신 50연대 산악대대병사들이 좋은 점은 다목리가 코 앞이라 휴가 나가기가 굉장히 편하다는 것이다. 바로 강원고속 동서울행 버스를 탑승할 수 있다. 대신 9시 이후에는 서울로 나가는 차가 없으니 주의할 것. 1박2일에 나왔던 효동각이 다목리에 있어 밥 먹기도 괜찮다.

신병교육대대가 배속된 50연대 본부로 배치받는 병사들은 시설이 참 좋은 신교대를 본 뒤라 연대본부는 더 좋다고 착각할 수도 있다. 신병교육대대가 배속된 연대의 제일 시설 나쁜 곳이 연대본부다. 원래 50연대 산악대대가 제일 안 좋고 부조리도 심했는데 신막사가 들어선 뒤 통합막사를 사용한다. 하지만 그 대대는 옛날 간부 마인드를 가진 사람이 많아서리..... 식당 역시 막사 쪽으로 이전. 예전 산악대대 식당은 간부식당이 없고, 식당 안에서 병사랑 같이 먹었다. 간부식당 같은 식당이 아니여 보급도 구려서 잼도 못 먹는 날도 많다. 연본에는 본부 통신 의무중대가 본관 2층을 사용하는데 안에나 밖에나 안습이다.

그나마 옛날에는 동기생활관이라 의무, 통신, 본부중대가 같은 생활관을 썼으나, 새로 부임한 지휘관이 아무것도 모르고 눈에 보이는 실적이나 올리려고 이건 말도 안 된다면서 중대별 생활관으로 최근에 바꾸었다. 그래서 옛날에는 다른 중대끼리 교류가 있었으나 요즘은 아예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사지방은 컨테이너박스 3개에 나뉘어서 사용할 수 있다. 지원중대는 생활관 몇 개로 나와있지만 본관과 시설이 별 다를바가 없다.

수송대는 연대본부 건물과는 조금 떨어져 있다. 다른 연본과 같이 구막사를 사용 중이며, 2009년에 리모델링을 한 이후로 나름 살 만한 생활관이 됐다. 대신 길다. 예전에는 한밤중에도 여름의 열기가 식지 않아 샤워하고 난 뒤에도 땀을 흘렸다고 하였으나[12] 리모델링 후에는 연본에서 특히 화장실만큼은 제일 좋다. 또한 연본에서 인원이 가장 많은 관계로 사지방도 수송대 것은 따로 있다. 다만 본부중대에 있는 PX까지 거리가 상당히 멀다...군가를 3번 이상은 불러야 도착한다... 연본 근처에는 승리회관이 있는데 면회나 분대회식, 간부회식 등으로 사용되며 영외 PX도 하나 딸려있다.

간단히 말하자면 연대본부가 말이 본부지 여러모로 시설은 제일 나쁘다. 그래도 밥은 맛있는 편. 굳이 순위를 매겨보자면 수색중대>신교대>연본>돌격대>산악. 수색중대는 진짜 맛있다. 심지어 식사추진된 음식마저도 연본 내부에서 갓한 것보다도 맛있다. 또한 가끔 야간 사격훈련 중에는 수색보급관이 식사추진에 기본 밥과 라면까지 넣어주기도 한다!

훈련량이 굉장히 많은데다, 휴가가 강원도 최전방 부대치고는 얼마 나오지 않는다.[13] 그렇다고 위치도 후방이 아니어서(산악대대는 민통선 바로 앞에 있다!) 휴가 나가기도 썩 좋은 편은 아니고... 그나마 동기생활관이 대부분 잘 되어있고 부조리가 적은 편이라는게 위안거리이다.

수색중대의 시설은 연대본부막사보다도 구데기다. 독립중대이다 보니 시설도 엄청작고 구조가 생활관-본부생활관-행정반-생활관 순으로, 안 그래도 인원 적은 독립중대이다 보니 시설이 단조롭다. 수색중대엔 총 5개 소대(본부소대와 수색 4개소대)가 있다. 수색소대는 2개월 분기로 2소대당 1개 GP를 번갈아 근무하며, 근무기간이 아닌 소대는 주둔지에서 대기한다. GP근무시에 해당임무를 교육기간이라 칭할 수 있겠다.

GP에 올라간 소대는 주로 하는 일이 초소근무겠지만, 초소근무 외라고 쉴 수는 없다. 오전과 오후에는 다른 부대와 동일하게 일과생활을 한다. 특히 GP 특성상 고장난 물건들은 다 초소인원들끼리 수리하고 고쳐야 하다보니, 상/병장급 인원들과 간부 분대장 이상 인원들은 작업의 달인이 되어버린다. 그리고 말년 병장이라 해서 누가 더 쉬고 말고도 없다. 짬을 먹었으면 먹은대로 작업하는 곳이 수색중대다. 특히 오전에는 매일 철책점검 작전이 있는데, 그중 수색중대에서 최고로 피땀 나게 하는 경로가 있다. (중대원들이 부르길 그곳의 이름은 봉담계곡?) 경사로가 약 70도로 꺾인 부분이 있는데, 위에서 내려가려고 할
때 약 800 m 아래에 있는 계단이 보일 정도이다. 문제는 그 계단까지 내려가는 경사가 엄청나서 무릎에 힘을 제대로 안 싣고 발을 디디면 어떻게 굴러떨어질지 상상도 안 간다. 당연히 다시 올라오기도 빡세다. 내려가서 반환점을 찍고 올라가기 시작할 무렵이면 허벅지에 힘이 풀려서 올라가기가 무척 힘들다.

고난의 최대 피크는 겨울이다. 강원도 철원의 기후가 그렇듯이, 춥긴 오질라게 춥지만 눈도 졸라게 온다. 눈이 빨리 내린다면 11월 초부터 내리기 시작하며, 강원도 아니랄까 봐 5월 중순까지도 눈이 내린다. 수색중대 전역자들 중 겨울 좋아하는 사람은 미친 놈이 아닌 이상 없을 것이다. GP근무 중에는 눈이 온다면 오전작전 때 보급로와 작전경로 위주로 제설작업을 나간다. 말은 쉽다. 보급로가 약 2 km가 조금 안 되고, 작전경로가 한쪽 기준으로 1.5 km 좀 안 되니까 솔직히 거리만 보면 우루루 몰려나가서 작전하면 괜찮다. 그러나 작전 중에 투입할 수 있는 인원이 한정되있다.

시설은 2개 GP가 다 옛날 초소치고는 괜찮은 편이다. 보통 해당 근무지역의 GOP와 GP가 같은 사단인 경우가 많은데, 50연대 수색중대가 근무하는 GP는 타사단의 GOP와 껴있는 입장이라 부식추진도 타사단에서 온다. 그런 이유로 PX 이용은 조금 힘들다. 그나마 짬이 좀 되는 상병장급들은 주둔지에 있는 본부소대나 동기들에게 필요한 것들을 내선전화로 부탁하여 편지나 택배추진차량에 카드를 맡기며 추진하기도 하지만, 동기 없는 이등병들이나 일병들은 그런 부분에서 불편할 것이다.

제일 자랑할 만한, 사단에서도 정말 유명한 수색중대의 짬밥은 어떤가. 연대장 아저씨도 자주 와서 밥을 먹었고[14] 근처 산악대대와 신교대대장급들도 와서 맛보고 갔다. 이 비결이 무엇이냐. 수색중대 보급관들의 입김이 가장 컸다. 수색중대 취사병은 본부중대 주둔지 취사병 2명과 소대 취사병 1명이다. 보통 소대취사병들은 주둔지교육시에 같이 교육받지만, 중대에 두개소대가 주둔시에는 취사지원을 나가 중대취사병을 돕는다. 일반대대에서는 취사소대가 따로 있지만, 독립중대는 그런 게 없다. 중대 하나가 소대 하나나 다름없다. 갈굼도 취사병들은 피해갈 수 없기 때문에, 지들이 살려면 최소 반찬이 부족하거나 맛이 없으면 되기도 하고... 보급관들이 특히 취사 중에 수시로 찾아가서 맛을 보고 평가함도 한몫할 것이다. 메뉴 보고 골라먹는 일반 말년병장도 밥은 다 꼬박 챙겨먹었다.

그래서 타부대와 달리 라면 레시피가 별로 발달하지 않았다. 왜냐고? 라면도 파송송 계란탁해줄 취사병들이 있는데 굳이 내무반에서 맛도 없는 봉지라면 먹을필요가 없으니까.. 예전에 있던 행보관이 취사병 하나가 밥 태우는 꼴을 보고 바로 GP에 있는 소대로 가는 추진차량에 태워버리고 직접 밥을 했다는 소문도 있다.

수색중대 막사 바로 옆엔 승리회관이 있는데, 주로 PX를 가려면 아예 뒷문을 이용해 영외로 나가야 하는 판국이다. (군대에서는 위병소에서 한 발자국만 나가도 탈영이니까.) 뭐 이걸로 말이 많긴 했는데, 지금은 시간이 많이 흘러서 어떻게 됐는지 모르겠다. PX 갈 때마다 전우조 3명으로 당직사관한테 뒷문 열쇠를 받아 열고 나갔다 들어왔다 해야 하는 식이라 조금 번거로웠다. (상병장급들은 몰래 담 넘어서 오가곤 했다. 어차피 불과 20 m도 안 되는 거리니까.)

관할구역에 문화재로 등록된 인민군 막사가 있다. 근데 볼 것도 없다. 그냥 덩그러니 집 한 채 있을 뿐.

5.2. 제38보병연대 번개[편집]

GOP 근무를 들어가는 부대로써 부대 전체가 민통선 내에 위치하고 있어 함부로 접근할 수 없다. 연대본부가 오히려 대대보다 전방에 있고, 기후도 정말 끝내준다. 더울 때는 토가 나오게 덥고, 추울 때는 강원도 어디 안 가는 추위를 자랑하니... 이 연대가 방어하고 있는 GOP는 15사단에서 가장 험한데다 7사단 GOP와 맞먹을 정도의 최악의 난이도를 자랑하고 있으며 GOP에 들어가는 승암고개[15]의 경사는 정말 급하다. 일부 소초의 경우, 두돈반이 들어갈 수 없을 만큼 험준한 길을 넘어 진입해야 한다. 그나마 포장 되어있는게 다행. 운전하다보면 땅을 보는 게 아니라 하늘을 보고 운전한다.[16] 이 부대 또한 사단에서 중심이 되는 모 산을 뒷 산처럼 들락날락 하므로 미리 익숙해 지면 편하다. 예전 장혁과 김준현이 이 부대에서 복무하였다.

15사단 내에서 이 부대에 배치되었다면, 안타깝지만 고생길 확정이다. 지형이 열악하고, 훈련도 생각보다 적지 않을 뿐더러, [17] 시설이 굉장히 열악하다. 사단 내 타부대, 심지어 바로 옆에 있는 2포병여단 예하 포대나 이기자, 칠성부대의 예하 대대들이 차차 신막사를 사용하기 시작한지가 오래인데도 GOP 소초를 제외한 전 부대[18]가 구막사를 사용하고 있으며, 화변기가 존재하는 막사도 있다. 하지만 최근들어 서서히 막사 내부 리모델링을 함으로써 장병들의 편의성을 높이고 있다. 연대본부가 좁은 구막사에 넘치는 인원을 못 견뎌 컨테이너를 임시도 아니고 상시로 설치해가며 운용중인데, 바로 앞에있는 67포병대대는 사단 본부대 뺨치는 신막사에 입주해있어 매우 비교된다.67포대가 38연대인줄 알고 좋아했다가 절망하는 신병들 연본은 PX 또한 황량해서 굉장히 슬프다. 생활관 또한 대부분의 막사가 일자형인 관계로 선임생활관이라 중대에 따라 부조리가 상당히 많이 남아있는 곳도 있어서... 묵념. 애초에 막사 구조 때문에 계급별로 나눌수가 없다...

그나마 강원고속 버스가 각 대대와 직할대를 싹 돌아서 태우고 와수리를 찍고 동서울터미널로 가는데 2시간 10분이면 가능하기 때문에 타 연대보다 휴가 나가기 편하다는 점, GOP 포상휴가가 많다는 점에서 위안을 얻자. 물론 워낙 외딴 곳에 처박혀 있느라 외박 나갈 수 있는 곳이 화천 읍내, 철원군 와수리 말곤 없다는 점은 또 안 좋지만... 그냥 포기하고 마음 비우는게 편하다.

민통선 안 말고개 정상 부근에 한국군 보병 6사단의 금성 전투 전과를 기리는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탱크는 덤. 말고개를 넘으면 철원군과 철원평야가 나온다.

5.3. 제39보병연대 을지[편집]

이 부대 또한 38연대와 더불어 GOP 근무를 들어가는 부대로써 옆의 38연대 보다는 대체적으로 낫다는 평이다. 이 부대 관할로 승리 전망대가 있으며 가끔 민간인이나 VIP들이 찾아온다. 여기 브리핑하는 병사 브리핑 잘한다 가끔씩 대학생들 국토대종주하러 온다. 마현리 대대, 육단리 대대, GOP 소초 모두가 신막사를 사용하고 있는데다 GOP 섹터도 옆의 38연대보다 대체적으로 평탄한 편인데, 문제는 관할 섹터중에 명백히 꽝인 롤러코스터 천국의 계단 섹터가 존재한다는 점이다. 첫 줄에서 언급했던 승리 전망대는 전망대의 특성상 인근 지형중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는데, 이 승리전망대와 인접해있는 소초가 바로 문제의 이다. 꽝이라는 표현이 다소 적절하지 않을수도 있는데, 해당 섹터에 투입되는 병사의 입장에서 보기에는 이 섹터의 난이도야말로 적절하지 않다 이 소초가 관리하는 섹터내에는 인근지형에서 가장 높은 곳과 가장 낮은 곳이 동시에 존재하는데, 이 가장 높은 곳과 가장 낮은 곳의 거리가 꽤 가깝다. 말로 들으면 별 거 아닌거 같지만, 그야말로 흉악할정도로 높은각도의 경사에 특유의 험난한 지형과 낙후된 계단, V자 협곡 등이 콜라보레이션을 이루어 괴랄한 최악의 난이도를 자랑하는데, 전 사단을 포함한 GOP 섹터중에서도 손꼽히는 난이도로 유명하다.[19] 험난한 경사때문에 소초 내 부상자가 끊기지 않고 발생하며 그로 인한 공석을 메꾸기 위한 병사 파견이 끊이지 않을 정도라서, 병사들 사이에서는 전역이 빨라지는 소초라는 우스갯소리도 있을 정도다. 이러한 최악의 난이도에 아이러니하게도 인근의 승리전망대 덕분에 교통시설이 좋기 때문에, 방송국등에서 촬영도 자주 나오는 편이다. 사실 고지대에 V자 협곡이 어우러져 탁트인 전방이 한눈에 들어오기 때문에 뷰도 끝내준다 이러한 특수한 상황의 섹터는 한곳 뿐이며, 이외에는 대체적으로 평탄한 평지지형의 섹터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38연대의 GOP보다는 낫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육단리 대대 옆에는 필승회관이라고 해서 회관과 영외PX가 있으며 부대 근처에 마을이 있다. 교통이 타 부대보다 낫기 때문에 접근성이 좋은편. 이 부대 병사들 또한 다목리 말고 와수리를 이용하므로 오히려 서울까지 가는데 50연대보다 시간이 적게 걸린다. 50연대 병사들이 타는 버스는 서울로 나가는데 광덕고개를 넘기 때문. 이 광덕고개를 넘으면 포천시인데 내려가가보면 그 유명한 박달 유격장이 있다. 이 부대 또한 모 산을 관할하기 때문에 제집처럼 드나들기 때문에 퍼지지 말자. 정상에서 북쪽을 바라보고 앉으면 북한이 잘 보인다. 2010년에는 북한군 GP초소에서 이 연대소속 GP로 총격을 가했으나 바로 맞대응 사격을 하기도 하여 뉴스에도 실린적이 있다.(이 대응에 민간에게 알려지지 않은 진실이 있다.) 45초 완전 작전이라고도 하며 즉각 대응을 한 병사들은 여러차례 포상을 받았다고 한다. 이 부대가 관할 하는 곳에 유격장이 있으며 예전 모 대대가 주둔하다가 떠난 후 유격기간에만 사용하는 막사가 있다. 화장실이 최악이며 샤워실도 상상에 맡길 것. 그래도 텐트치는거 보단 낫다. 9월 말 부터 유격뛰는 인원들은 강원도 특유의 추위를 고려하여 화학대에서 제독차를 지원해줘서 온수!!로 샤워를 할 수 있다.

39연대는 연본이 구막사였으나 현재 btl 공사를 마치고 신막으로 입주했다. 예전 구 막사 특히 수송대/의무대 막사는 최악.....(수송대는 인정하지만 의무대는 괜찮은편. 연대본부에 딸려있는 본부중대가 진짜 건물이 쓰레기였다.) 거기에 사람이 살수 있는가라는 말이 나올정도로 후졌다. 화장실이...... 또한 거기는 밥 먹으려면 거진 등산을 해야하기 때문에... PX도 황량했다. 현재는 신막사로 바뀌어 나름 살기 좋아졌다.취사장이 복지관과 같이 붙어있어(옛 취사장은 군수과 창고가 되고..) 밥먹으러 갔다가 2층으로 올라가 노래방이나 사지방 등을 즐길 수 있게 됐다. 연대 본청과 생활관이 한 건물로 통합되어있고,최근에는 본청 중앙 입구 위에다가 대형 사단마크를 설치하였다.

사실 15사단에서 가장 나은 선택지 중에 하나라고 할 수도 있는 것이, 예하 전 부대가 신막사에 입주하였고, GOP 근무난이도가상대적으로 낮은 편에 속하는데다[20], GOP 포상휴가도 잘 나와 근무 조건이 제일 낫다. 물론 동서울까지 가는데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는게 함정. 그래도 38연대에 비하면 시가지에 조금 가깝다.

모 산 정상을 관할중인데 이 때문에 군 VIP가 자주온다. 두 달 있으면서 3스타와 4스타,그리고 화천 군수를 몇 번은 봤다고 한다. 심지어 GOP에 들어가는 모 대대는 FEBA에서 투입 전 교육을 하는데 야전군 사령관이 아무 예고도 없이 찾아왔다고.... (물론 병사들 격려차 찾아온 것이다.)

5.4. 포병연대[편집]

  • 포병연본(명포부대)

    • 제26포병대대 상무

    • 제67포병대대 충무

    • 제68포병대대 청룡

    • 제998포병대대 백호


포병연본과는 달리 대대들은 여러 곳에 퍼져있는데 한 곳만 빼고는 하나같이 접근성이 좋지 않다. 그 한 곳도 산 중턱.. 예전 포병연대 한 대대에서 송승헌이 복무하였다.(함께 군 생활을 한 병사의 증언에 의하면 훈련 때마다 환자라며 의무대로 빠져서 군생활을 날로 먹었다고 한다. 역시 연예인...) 병과 특성상 독립포대가 많으며 998포병대대만 신막사였으나, 좁고 험해터진 민통선 내부의 67대대에도 신막사가 완비되었다. 바로 앞에 있는 38연대 본부와 매우 비교되는 모습을 자랑한다. 그 좁은 5번 국도로 수십대의 공사차량이 드나들었으니... 사실 평소에도 민통선 내부에 포병 훈련장, 사격장이 가득히 들어차있어 대형 차량, 군용 차량들이 미어터지는게 일상이다.

15사단 포병연대는 6ㆍ25 전쟁 중인 1952년 8월 7일 전남 광주 포병학교에서 제9야전포병단으로 창설됐다. 이후 1953년 4월 1일 현재의 15사단에 예속됐다. 특히 부대는 6ㆍ25 전쟁에 참전한 몇 안 되는 포병연대로 수도고지전투(강원 금성군)와 한국군 최초의 제병합동 화력지원 전투로 기록된 고성지구전투(강원 김화) 등 창설 7개월 만에 100여 차례의 전투에 참전, 9344명을 섬멸하고 24명을 생포하는 전과를 올렸다.
이후 부대는 1986년 7월 육군 장비전력화 계획에 의해 155㎜ 개량형 견인곡사포 KH-179를 도입했고 1996년 12월에는 포병대대 사격지휘체계(BTCS : Battalion Tactical Command System) 배치를 완료했다.

또 1999년 4월에는 승리 포병 훈련장을 마련, 전술전기 연마의 토대를 구축했고 2005년 11월 전자 기상관측장비 GL-5000P의 전력화, 2008년 8월 육군전술지휘정보체계(ATCIS : army tactical command information system) 전력화, 9월 BTCS A1전력화 등을 통해 지속적으로 전력 보강을 해 왔다. 2014년 11월 신형 포병관측장비 TAS-1K의 전력화를 완료해 포병전력의 타격능력을 크게 향상시켰다.

17년 기준 998포대, 67포대가 신막사에 입주해 있으며, 998포대는 이미 K-9자주포를 사용하고 있고, 17년 안에 67포대가 K-55A1 자주포를 사용하게 된다. 진지공사가 밀려서 어떻게 될지 모른다. 26포대, 68포대는 구막사를 사용하고, 포도 KH-179라 여러모로 고달프다.

5.5. 직할대[편집]

타 부대와 마찬가지로 몇몇 대대를 제외하면 사령부 옆에 옹기종기 붙어있다. 사령부 안에 있는 본부대와 통신대의 통합 막사만 제외하고는 전부 구막사다. [21] 그래서 타 연대 통신병들이 통신대대에 오면 시설 좋다고 부러워하기도. 소문에 의하면 요즘 군대가 좋아져서 pc로 리그 오브 레전드를 할 수 있다고 한다.[22] 동아리방에 가면 죄다 롤밖에 안한다. 2011년에 사단 연병장에 남성대에서 공수해온 잔디를 깔아서 현재 잔디가 깔려있다. 잔디를 깐 장병은 전부 2박 3일 보상휴가를 받았다.(사실이 아니다. 옆에 붙어있단 이유로 통신대에서 개인정비시간 17시 30분 부터 20시 30분까지 거의 모든 가용인력이 끌려가나 작업했음에도 포상은 생색내기급의 4박5일 10명도 뿌리지않았다. 당시 군번들에게 이 작업은 "떼작업"으로 불리웠으며 어느 누구도 사단연병장에서 흙과 함께 구르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갖은수를 써서라도 빼고싶어했다.)

2015년 3월 중순 쯤에 수색대대가 막사 리모델링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수색대대는 전 대대원이 선 후임을 끊는 것 뿐만 아니라 휴가가 적은 부대로 알려져있다. 예전에는 많이 줬는데? 관심병사만 아니면 포상 2-3개는 받아 나갔음

6. 사건사고[편집]

주의. 사건·사고 관련 내용을 설명합니다.

이 문서는 실제로 일어난 사건·사고의 자세한 내용과 설명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특정 사건사고 문서는 유머성 서술과 비하의 표현이 제한되며, 사실관계를 작성할 때에는 출처를 반드시 표시해야 합니다.

6.1. 오혜란 대위 성추행 자살사건[편집]

현역 육군 소령이 현역 육군 대위에게 각종 가혹행위와 "하룻밤만 같이 자면 군 생활 편하게 해주겠다"는 등의 파렴치한 성희롱과 성추행을 가한 끝에 피해자인 여군 대위가 자살한 사건. 여군 대위에 대한 성추행, 피해자 자살, 가해자의 아버지가 장성 출신이라는 보도, 소속부대의 증거 위변조 의혹 보도, 1심 집행유예, 결국 국회의원 4명이 국방부를 항의방문하고 국방장관이 재조사를 지시한 뒤에야 대법원에서 실형이 선고되는 등 한국군 내의 여군의 처우와 군내 사망사고를 다루는 고위 장교의 안이함, 군사법원의 한계 등 국군의 많은 문제점이 결집된 사건이다.

2012년 10월 16일, 15사단 부관부 인사행정장교로 복무했던 오혜란 대위(여군 54기)는 15사단 부관참모인 노승원 소령(3사 35기)에게 10개월 동안 지속적인 언어폭력과 성추행에 시달리다 자신의 차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다. 노승원 소령은 오혜란 대위에게 "하룻밤만 같이 자면 군 생활 편하게 해주겠다"라며 지속적으로 성관계를 요구했다. 약혼자가 있는 오혜란 대위는 이를 거부하자 10개월 동안 매일 보복성 야간근무를 시키는가 하면 다음날 아침 출근해서 막상 야간근무한 서류는 제대로 보지도 않고 집어 던지는 등의 가혹행위를 했다.

피해자의 기록으로 사건을 재구성한 기사. 지독한 모욕과 가혹행위가 이어졌다는 내용이 보도됐다.

피해자가 불교 신자였음에도 기독교도인 노 소령예수님이 직접 채찍 들고 오실 겁니다.매주 교회에 나올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아무리 군대고 장교 사이라지만 신앙 생활에 이런 식으로 강요와 간섭을 하는 것은 지극히 잘못된 일이다. 이 사건을 보도한 한겨레의 기사에는 피해자가 가해자의 아버지가 장성 출신이라 사건을 보고해도 소용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는 내용도 나온다. 피해자 오 대위는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노 소령이 다른 여군 6명에게 폭언과 폭행을 가했다는 보도도 있었다.

이 일로 인하여 부관부가 전격 해체되었으며 1심 판결에서는 징역 2년 집행유예 4년이 선고되어 논란[23]이 되고 있다. 군 검찰과 노 소령 변호인 둘다 항소할 뜻을 밝힘에 따라 2014년 11월 기준으로 2심 고등군사법원에서 재판이 진행되었으며 가해자 노 소령은 집행유예 상태로 불구속 수사를 하고 있었다.

사건에 대한 15사단의 대응은 많은 비판을 받았다. 증거 위변조 의혹은 1심의 약한 형량에 더해 여론의 공분을 사는 계기가 됐고, 결국 국회의원들이 국방장관에게 직접 항의방문을 하는 사태까지 발생했다. 백미는 부사단장이 무속인의 말을 빌미로 유족에게 가해자를 용서하라고 권한 사건. 유족이 분노한 것은 당연하다. 그보다 한국 육군 부사단장 정도 되는 고위 장교가 자살한 부하 장교 유족에게 이런 말을 한다는 것 자체가 상식 밖이다.

증거 위변조 의혹도 제기돼 결국 국회의원 4명이 국방부를 항의 방문했고 국방장관이 재조사를 약속하는 사태로까지 번졌다.

피해자 오혜란 대위는 순직이 인정돼 대전현충원에 안장됐다.

2014년 11월 4일, 군인권센터에서 심리부검결과에서 오 대위의 자살원인이 성추행과 가혹행위로 인한 우울증으로 나왔다. 15사단 배치 이전에는 정신적인 문제가 없었는데, 15사단 배치이후 노 소령의 성추행과 가혹행위로 인해 정신병이 생겼고, 이로 인해 자살했다. 군인권센터는 죄목을 강제추행죄에서 강제추행 치상죄로 격상하라고 고등군사검찰부에 요청했다. 2014년 12월 18일, 고등군사법원 선고공판에서 가해자 노 소령은 보통군사법원의 원심을 깨고 징역 2년을 선고했다. 그러나 오 대위가 당한 수모에 비하면 죄가 너무 가볍다는 의견이 절대 다수이다

마침내, 2015년 7월 9일, 대법원은 가해자 노 소령에게 징역 2년 선고를 확정했다. 그와 동시에 2심 고등군사법원에서 제시하지 않았던 성폭력 특례법 제42조 제1항에 따른 신상정보 등록대상자로도 등록되었다.

6.2. 구상훈 이병 가혹행위 은폐 사건[편집]

파일:external/www.mediafire.com/nx9xzgi3qykyg0bzg.jpg
해당 사건을 뉴스화면 캡쳐하여 인터넷에서 재구성한 짤방

2012년 2월, 해당부대에서 근무하던 구상훈 이병이 19일만에 쓰러져 식물인간이 된지 1년 7개월만에 깨어나고, 1년이 지나 말을 할 수 있게 되자 자신은 구타당해 실신한 것이라고 KBS 취재기자를 통해 최초로 폭로된 사건이다. 좀 더 자세한 내용은 KBS 시사기획 창에서 2014년 11월 11일 방영되므로 사건내용이 추가될 수 있다.

구 이병의 뒤통수에 난 상처가 욕창[24]이라는 군의관의 말에 관계자들은 제대로 수사하지 않았고 당시 군의관은 진술서를 쓰지 않았다. 또한 군 수사기관은 구 이병 부모들에게는 뇌동정맥 기형에 의한 뇌출혈이라 말해 가족들이 납득했다고 군 수사기관은 주장했다. 문제는 KBS 취재기자가 입수한 2012년 3월 9일 구 이병 간호 기록집을 보면 욕창없음이라고 표기되어있다. 3월 5일, 부모에게 욕창이라고 설명한 군 당국이 거짓말 했을 개연성을 보여주는 대목이며, 사건 당일 구 이병의 상처에 대해 다 알고 있었다. 구 이병이 의무대에서 누워있을 당시에는 생활복 상의에 군복 하의 상태였다고 한다. 구 이병 부모는 사건이 일어난 이후, 군 관계자에게 구 이병의 군복, 옷가지, 소지품을 돌려달라고 했는데 항의를 했음에도 끝내 돌려받지 못했다. 이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도 있다.

당시 구타 가해 지목 선임병사 7명중 한 명은 뻔뻔스럽게도 구타나 가혹행위 본 적도 없고 한 적도 없어요라고 말하는 건 물론 무고죄로 맞고소하겠다고 나섰다.

구 이병 가족들은 사건 초기에 청와대 신문고, 인터넷 게시판 등에 올리고 국가인권위원회에 제소했지만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다. 구 이병의 증언으로 가족들은 현재 사건 당시 가해 선임병사들을 형사고소 준비하고 있다. 구 이병 변호인은 제22보병사단 총기난사 사건 임병장 공동변호인과 제28보병사단 폭행사망 사건 가해병사 하 병장 변호인을 맡고있는 김정민 변호사이다.

사건이 커지자, 육군 측은 구 이병이 의식을 회복한 것에 대해 매우 유감스럽게다행스럽게 생각한다면서 육군 측에서 정부 유관기관 및 민간 수사기관 등과 공조하고, 또한 가족이 원하면 가족을 참여시킨 가운데 재수사를 하기로 결정했지만, 가해자들이 전부 전역했고, 피해자도 전역해서 육군이 수사할 권한이 없는데 여론이 빗발치니깐 사건을 무마해 보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이 와중에 한민구 국방부 장관은 재조사한다면서도 기존 군 수사결과를 신뢰한다고 말해 논란이 일고 있다. 도대체 뭘 믿고 신뢰한다고 말할까?

2014년 12월 17일, 별로 신뢰가 안가는 육군에서 재수사가 밝혀졌는데 아니나 다를까 역시나 사건이 은폐된 거 그대로 발표했다.# 구 이병 가족들 및 시민들은 이 결과를 납득할 수 없다는 입장이 절대 다수. 조사과정에서 가해자로 지목된 병사들은 계속 무고죄 드립을 난무하고 있는 실정이라 향후 구 이병과 가해자들은 현재 민간인 신분이기에 고소가 접수되면 민간수사기관을 통해 수사진행될 예정이다.

7. 그 외[편집]

재수가 좋지 않은 이상 별별 힘든 곳에 걸릴 공산이 크다. 연대의 경우 미묘하게 산지지역과 평야지역이 교차되어있는 작전지역이 있고 이 중 사단이 덜 신경쓰는 연대도 있으며, 그런 연대 산하는 고생을 더 한다.

그렇기 때문에 2사단, 12사단, 21사단과 더불어 피박 중 하나다. 7사단이나 27사단도 이런 취급을 안 받는 점을 생각하면 왠지 안습이다. 거기에 15사단 자체도 어떤 곳인지 모르는 사람들도 있다. 실례로 몇몇 전역자들은 15사단이 어디냐고 물어보면 "은둔부대로서 북한군이 쳐들어오면 갑자기 튀어나와 막아내는 부대."라고 우스갯소리를 한다. 그도 그럴것이 워낙 산골인데다가 삼면이 메이커 부대로 둘러싸여 있다!!! 때문에 이 사단에 배치받게 되는 신병들에겐 괜찮은 부대로 소문 나 있으나... 27사단에 가려서 그렇지 훈련이 상당히 빡세며[25] GOP섹터는 7사단과 더불어 최악이다. 특히 모 연대의 '남산-해운대' 섹터는 전체 GOP섹터 중 가장 험한 지역중 하나로 손꼽힌다. 여기 배치되는 보병 특기 신병들은 개고생이 확정이다. 천국에 온 것을 환영하오 용사여일단 여름에는 39도까지 올라가고 겨울에는 영하 30도 이하로 떨어지며 GOP 지역의 거의 모든 섹터가 맥도날드 로고 마냥 이어져 있고, 운전병들에게도 굉장히 애로사항이 꽃피는 지형이었으나 도로만큼은 점차 나아지는중... 예전 사고사례를 보면 고개부분의 도로가 비포장도로 길이었기 때문에 간부들이 오토바이타고 출퇴근하다가 사망하는 경우가 많았으며 20년 전만해도 전 구간이 포장 도로가 아니라 죄다 비포장 길이었다. 현재 GOP 지역 일부분을 제외하고 어지간한 도로는 포장이 되어있어 운전하는데 크게 지장은 없다. [26] 하지만 사단 본부마저 영내 지형이 험악하기에(...) 통합막사 올라가는 길 경사가 겨울에 눈이 내리면 근무병들의 절규를 들을 수 있다고 한다... 보충병들이 도미노처럼 넘어지는 광경도 목격할 수 있다. 눈도 참 많이 내린다. 거의 이틀에 한번 꼴로 내리게 된다. 육군 간부들 사이에선 유명하다고 한다. 왜냐면 죄다 산밖에 없느니 말이다 하하하.

매해 초, 화천군에서 열리는 산천어 축제 때에는 사단과 연대에서 병사들을 뽑아다가 주말에 많이 축제에 즐기기 머리수 많이 늘리기 위해서 내보낸다. 일과중에 당당히 외출을 할 수 있으므로 좋긴 하지만 실 목적인 PC방 등지에는 헌병들이 펜을 꺼내든채(...) 잠복하고 있으므로 그냥 축제 먹거리나 실컷 먹고 오는게 보통이다. 어자피 가도 제대로 못한다. 이미 예약 같은게 꽉 찼기 때문.가을에는 민ㆍ관ㆍ군 한마음 축제라는 이름으로 대성산 축제를 하는데 걸그룹을 초청한적도 있었다. 근처 감성마을에 사는 이외수가 축제기간에 부대 위병소로 찾아와서 근무자에게 랜덤으로 한장 주고 가는 식의 포상휴가증을 뿌리기도 했다고 한다. 여러가지 행사가 있다. 가령 예를 들어 의무대에서는 인바디 체크를 해서 측정 결과를 알려준다던가 유격체험 및 타로카드 심리체험, 플스로 위닝 대회나 철권을 하여 상품을 주기도 한다. 2011년 기준. 축제하는 곳 뒤에 대성산회관이 있는데 목욕탕을 이용해도 좋다. 근처 다목리의 식당에서는 파닭이나 중화요리, 순대, 막걸리 떡볶이 등 여러가지 음식을 팔며 물가는 당연히 비싸며 서울보다 500원 정도 비싼수준. 옆에 다목초등학교에서 본격적인 축제가 벌어지는데 놀다가 뒤를 보면 사열대 위에 사단장님이 허허허 하면서 앉아계신게 보인다. 여기서 잘하면 포상휴가! 2011년에는 포병연대 소속 모 대대가 받았다.

연예인 송승헌장혁이 복무했던 부대로 유명하며, 그 외에도 성우 정재헌씨가 수색중대, 아이돌 그룹 젝스키스 출신 장수원도 이 부대 본부대 군악대 출신이다. 이땐 그냥 아재였는데 TV에서 얼굴 환해진거 보면 역시 관리가 중요한 듯개그맨 김준현은 38연대 수색중대 출신이었으며 상추는 불미의 사건으로 50연대로 전출오게 되었다. 근데 소문으로는 전역할 때까지 춘천병원에 몇 개월동안 있었다고... 가수 전영록 씨도 이 부대 출신이다. 해당 연예인이 부대에 있던 시절에는 산천어 축제 등 군부대 관련 축제 때에 지원 온 연예인이 꽤 빵빵했으나 현재는 그냥 조촐하다.[27] 비슷한 사례로 김태우가 복무했던 27사단이 있다. 번외로 소셜 페스티벌 텐트 24시로 유명한 이광낙씨도 15사단 39연대 모 대대 중사 출신이다. [28]
송승헌의 경우는 당시로서는 어떻게 다뤄도 곤란해질 병사로 간주되었기 때문에,민통선 북쪽에 있는 부대로 배치되었다. 민통선은 아니지만 인적이 드문 부대로 배치되었다. 그래서 자대 배치시 대부분의 사단이 그렇듯이 포병연대에 일단 차를 타고 갔고, 당일에 자대가 된 105밀리 견인포병대대에서 차를 몰고 와서 다른 신병들과 함께 실어갔다. 이 항목에서 '원래 배속되었던 대대 위치가 도로변'이라고 서술된 이유는 15사단 포병연대가 다목리에 있는 점에 기인한다. 그리고 그 몇 시간 사이에 포병연대의 행정병들이 깔깔이에 송승헌 싸인을 다 받았다는듯 하다(…). 유일하게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래로 봉오리가 붐빈 적은 송승헌이 전역하던 날이라고 하는데 일본에서 팬들이 와서 진을 쳤다고 한다. 일본을 비롯한 국내외 팬들을 실은 관광버스 40대가 봉오리 길을 막아서 50연대 돌격대대 공지합동 훈련이 지연되었다고 한다. 당시 거기서 근무하던 부사관분의 말이 물동량 차량이 관광버스 때문에 이동을 못해서 오후 늦게 훈련을 출발했다고 한다.
참고로 찰지구나 드립으로 유명한 엉덩국도 여기 포병대에서 복무하다가 2016년 4월에 전역했다.

군복무 시절에는 팬클럽과 일본에서 정기적으로 소포가 왔었는데, 1인이 먹는건 턱도 없고 포대 전체가 일과 이후에 꾸역꾸역 티비를 보면서 먹는 걸 일주일 내내 일과처럼 해야 치울 수 있을 정도로 배송되었다. 예전에는 인사행정병 혼자 쫄래쫄래 소포를 들고왔지만, 송승헌 전입 이후로는 분대마다 1명씩 일병을 징발해서 단가로 실어날랐다. 차량이 동원된 때는 발렌타인 데이뿐이다. 차량을 운영하려면 기름이 필요한데, 포병 작전에 써야하는 차량 연료를 수송관의 허가와 상부에 서류 요청까지 감수해가며 영내에서 짐나르는데 썼다는건 예비역 수준만 되어도 헛소리인건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헛소리는 아니다. 모 연대의 경우에는 택배가 좀 많거나 무거운 물건은 도수운반 말고 차량 수송했다.
처음에는 간부들의 연구실에 보관하려 했으나, 적절치 않은 것으로 생각되었기 때문에 내무반 피시방에 쌓아두게 되었다. 피시가 너무 낡아서 병장들도 잘 쓰지 않았기 때문에 원래는 철야한 당직병들의 숙소처럼 쓰였지만, 그 이후에 용도가 변경된 것이다. 체력단련실은 건물 외곽의 요철 부분에 칸막이를 세워서 만든 공간이므로, 당연히 벌레와 쥐가 들끓을 그 공간에는 소포가 보관된 적이 없었다.
원래 소포 내용물로 사제 음식물을 반입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으나, 일본에서 오는 소포들이 처치곤란인데다가 송승헌 한 사람만 예외로 해줄수가 없어서 이후로는 음식물 소포를 따로 반송하지 않게 된다.
그 외에는 매니저를 통해 체력단련실에 비품을 기증하였고, 플스2 슬림 버전과 위닝 일레븐을 가져왔다.[29]
군생활 자체는 무난하게 한 것 같으면서도 나름 이런저런 일은 있었다. 몇몇 에피소드는 잘해야 대학생 정도이던 병사들에게 사회생활의 단편을 보여줬달까... 굳이 에피소드를 좋은 걸로 하나 들자면, 일병 진급 당시 연예인 부대 차출이 왔지만 거절하였다.

2009년 장혁이 주말에 매니저와 둘이 방문해서 출신 대대 전체에 아이스크림을 돌리고 간부들과 저녁을 먹고 가기도 했다. 근무 당시 간부들의 증언으로는 궂은 일도 마다않고 특권의식없이 열심히 군생활을 했다고 한다(송승헌과 반대되는 복무태도였다고…). 대대 시설병으로 복무했는데 여름에 유격 훈련중 비가 많이 와서 전투복 바지에 사타구니(...)가 쓸려 상처가 났다는 목격담이 있다. 근데 장혁이 이렇게 성실히 복무한데는 다 이유가 있다. 장혁 항목을 봐도 알겠지만 장혁은 군대 안갈려고 브로커가 개입된 병역비리를 저질렀다 걸린 전과가 있다. 그 일에 대한 사죄의 의미로 열심히 임한것이라 보는게 맞겠다. 이후 여러가지로 그 병역비리에 대해 진심으로 후회한다는 언급도 했다.


지금은 많이 잊혀졌지만 최악의 무장탈영 사건으로 기록된 혜화동 터미네이터 사건임채성이 이곳 15사단 소속이었다. 부대 흑역사.
2010년에는 북한군 소초에서 15사단 GP로 총격을 가했으나 바로 맞대응 사격을 하기도 하여 뉴스에도 실린적이 있다. 그리고 밖에서는 신경도 쓰지않고 넘어갔지만 사단내부에서는 대략 2주동안 TV 시청금지에 단독군장으로 돌아다녀야 했다.

그 다음해에 대통령 부대표창을 수상하였다. 총 9회 수상

15사단 출신들이나 주위사단 출신들은 알겠지만 사단위치가 어중간한 화천과 철원의 걸쳐서 위치해있어, 화천 쪽에선 철원에서, 철원 쪽에선 화천에서 지원을 받으라고 해서 불쌍한 거지사단으로 유명하다. 아마 22사와 더불어 GOP 사단 중에서 가장 가난한 사단이 아닐까 싶다. 아래에 27사단 best xx연대의 차량은 죄다 새차인데 우리차는 왜 구형만 있지?[30][31][32][33]

결론적으로 가난하고 지형도 뭐 같고 사람들도 어디있는지 잘 모르며 여름엔 덥고 겨울엔 얼어죽는 그런 곳이다.

육군 간부들 사이에서 베스트 유배지로 유명하나, 위치 특성상 작전수행에 매우 중요한 부대이기 때문에 겉으로 안 좋은만큼 진급은 타부대보다 잘 된다.

미국의 16명 전쟁영웅으로 유명한 고 김영옥 미 육군 대령이 6.25 전쟁 기간 미 육군 7사단 31연대 1대대를 이끌고 싸우던 곳이 바로 7사단 5연대 gop 지역과 15사단 38연대 gop 지역이었다.


그리고 승리부대 용사의 다짐이라는 게 있다.

하나, 나는 자랑스러운 승리부대 용사다.
하나, 나는 승리 5대 전투영웅의 군인정신을 계승한다
하나, 나는 최고의 전사가 된다.
하나, 나는 보름달 정신을 이어 밝을 병영문화를 창출한다
하나, 나부터 현장에서 행동하고 실천한다

TV 프로그램 진짜사나이에서 2군단 예하 사단들 중 유일하게 한번도 출연을 못 한 부대다.(...)[34] 막사가 구막사인데 출연가능할리가... 포병은 전부 견인포라서 자주포 나왔으니 나올리도 없고 견인포 방열은 더 위험해서...

8. 출신 유명 인물[편집]

8.1. 장교[편집]

  • 김종태: 15사단장 인사비리로 보직해임에도 중장전역, 전 국회의원 20대 국회의원 박탈

8.2. 그 외[편집]

  • 김준현: 개그맨으로 38연대 수색중대에서 복무했다.

  • 상추: 연예병사로 입대하였으나 안마방 사건으로 인해 50연대 예하 대대로 전입했다.[35]

  • 송승헌: 포병연대 예하 대대에서 복무했다.

  • 수현: 2017년 12월 28일에 신병교육대로 입대했다.

  • 엉덩국: 포병연대 예하 67대대에서 복무했다.

  • 장수원: 젝스키스 멤버로써 군악대에서 복무했다.

  • 장혁: 38연대에서 복무했다.

  • 정재헌: 수색중대에서 복무했다.

  • 황치열: 15사단 화학지원대에서 복무했다.

  • Lv.7벌레: 24인용 텐트 홀로치기행사의 바로 그 주인공. 현역시절 39연대 모 대대 탄약반장으로 복무했다.

  • 정용화: 이곳 신병교육대를 수료하였다. 자대는 702특공연대.

  • 임채성: 22사단 임병장 총격난사 전까지 정부수립 이래 최악의 무장탈영의 주범자. 현재 무기징역 선고받고 감옥에 수감중

[1] 4개라는 말도 있지만 애초에 사단 창설 당시부터 3개의 원이라고 말한다.[2] 달이 가장 강조되는 이유는 보름달->15일->15사단이라는 연상 때문. '십오야 둥근 달'이라고 부르기도 한다.[3] 15사단 사병들은 처음 자대배치하면 선임이 자신들의 부대를 육군 유일의 산악보병부대라고 조소를 흘리며 말한다. 잠깐?[4] 신병교육대에서 실시하는 행군도 마찬가지다. 제1신병교육대에서 실시하는 행군의 경우, 4km 행군을 제외하고는 모 고개 정상(해발 695m)까지 등반하는 것은 필수이며 제2신병교육대에서 실시하는 40km행군의 경우 여기에 추가적으로 근처에 있는 모 산의 정상까지(해발 1100m) 등산해서 다른 길로 내려왔다가 앞에서 언급한 고개까지 왔던 길을 되돌아가는 코스가 포함되어있다. 이 구간이 굉장히 힘들다... 20도 기울기의 길이 15km 정도 이어진다. 하지만, 이쪽으로 자대 배치를 받는다면 2년 동안 1100m 정상을 훈련, 제설 등의 이유로 뒷산 가듯이 동, 서, 남, 북로를 통해 최소 10번 이상 갈 것이니 미리 익숙해지는 게 편할 수도 있다. 그나마 동,서,북로는 경사가 봐줄 만 한데, 남로는 중반쯤 걷다보면 그 이후의 경사는 가히 기절할 수준이다. 하지만 훈련소에선 남로를 통해 등반하지 않는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하지만 서로가 더 힘들다. 남로보다 수 km는 긴 듯. 거기다가 서로는 구간 포장에다 거진 비포장길이다. 하지만 동로는 포장길이라 매우 등산하기가 좋다. 물론 민간인은 출입금지다. 북로도 나쁘지 않으며 여긴!! 짧다[5] 2010년 당시 2군단 군단지정 1호 우수병영식당에 선정된 바 있다. 조리자격증이 있어야만 취사병을 할 수 있다고 한다.[6] 세례식을 하는데, 신청한 사람들에겐 기념품을 주고, 참관만 해도 토스트가 나온다![7] 제2신병교육대대가 더 빨리 신축된 이유는 원래 전투대대였으며, 육군 훈련기간이 8주로 늘어남에 따라 신병교육대대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한때 안마방으로 유명했던 상추가 여기에 배치됐으나 그 본인은 춘천병원에서 군생활을 날림하셨다.[8] 즉, 대부분 조교들이다.[9] 그러니까 한 연대의 직할중대를 제외한 각 대대에 뿌려진 모든 훈련을 나머지 대대들이 신교대로 재편재되어서 남은 전투 1개 대대가 뛰게 되는 셈(...)몰빵[10] 모 중대는 취침시간에도 구타가 이어져 귓방망이 중대라고 불렸다고 하며, 자다가 선임이 깨워 근무를 대신 서게 하는 일도 빈번했다고 한다. 화기중대에 위키러가 파견을 나간적이 있었는데 일병 나부랭이가 이등병을 새벽 3시까지 갈갈이 하고 있었다. 그래서 다들 해당 대대를 옛날 군대라고 불렀다. 2012년 7월경에 신막사로 옮긴 시점에는 사단 자체 대대적인 부조리 박멸이 시작되어 쾌적한 생활환경이 조성되었으며 현재는 동기생활관 형태로 운영된다. 하지만 여전히 간부들은 옛날 간부 마인드다. 인상 깊었던 게 의무병이 외진 일정을 짜는데 언제 되냐니까 돌아오는 건 엄청난 욕설뿐.. 사실의무병 입장에서는 보낼 수 있는 인원에 비해 외진자는 흘러넘치고, 인솔해 줄 수 있는 간부, 훈련이나 사정에 따라 외진이 취소될 수 있으며, 외진 보내는 날에 진료과가 휴진할 수도 있다. 심지어 치과외진은 의무병이 외진 리스트를 보내면 거기서 선발해서 외진을 보내야 하기 때문에, 의무병이 정확히 언제 외진을 갈 수 있을지 확언할 수가 없다. 그래서 외진 전날에 알려준다고 해도 계속 물어보고 화를 낸다. 잘 모르는 사람들은 의무병이 외진을 안 보내준다고 생각하여 마음의 편지로 의무병 전체가 찔린 적이 있다. 안습[11] 그런데 이런 것들은 전부 부조리라고 진즉에 폐지되었다. 현재는 자율 뜀걸음을 하지만, 대대장이 바뀐 이후 병사들이 너무 요령을 피운다면서 해방촌 반환점에서 간부들이 대기타면서 반환점까지 제대로 돌았는지 확인하는 번호표 같은 것을 주는 방식으로 바뀌었고, 2016년 이후론 크게 번호표를 준다거나 하지는 않는다.[12] 이는 각종 파견이 많은 수송대의 특성상 어쩔 수가 없다. 한정된 막사 안에 원래 인원도 지내기 빠듯한데, 각종 파견 복귀 또는 급작스런 신병유입이 있다면 매트리스 2개에 3명이 껴서 자는 등 열악한 상황이 벌어진다...이를 해결키 위해 2013년 말엽 생활관 끝에 있는 다용도실을 리모델링해 생활관으로 바꿨다. 예전 다용도 실에서는 연등과 라면 취식을 자주 했는데 거기 엄청 큰 쥐도 살았다. 귀신이 있다는 애기도 들었다. 음료수도 박스채 보관했는데 다들 중간에 몇 개씩 빼먹었다. 수송대장실에 있는 라면과 커피는 당직병과 당직사관의 주된 야식![13] 신교대 조교 임무를 부여받지 않으면 군생활 평균 40일 휴가를 나가기가 힘들다고 한다. 이 정도가 왜 적다고 하느냐... 앞의 38연대, 39연대에서는 군생활 동안 평균 60일 이상 휴가를 기본적으로 받는다.[14] 특히 그 아저씨는 사리곰탕을 좋아해서, 메뉴에 사리곰탕이 있으면 꼭 수색중대 와서 밥을 먹었다.[15] 예전에 무장 탈영했던 병사가 여기서 잡힌 적이 있다. 근데 그 주위는 온통 지뢰밭이다.[16] 특히 적근산의 정상 직전 마지막 헐떡고개는 커브를 한번에 돌기도 힘들 뿐더러 경사도 승암고개보다 심하다. 적근산 정상 전봇대 설치를 위한 민간 크레인 차량이 마지막 헐떡고개를 오르다 180도 뒤집힌 적이 있다. 그만큼 경사가 높아 부식도 병사들이 도수운반을 하고 동절기 준비를 위한 유류의 경우 치누크가 정상으로 공수작전을 해주는데 언론에서도 취재를 오는 진풍경이다.[17] GOP 근무를 들어가지 않는 대대(더군다나 GOP에 못 들어갈 문제가 있는 인원들을 그 대대에 쓸어넣다보니 부조리도 상당히 존재하는 상황)에 가면 훈련도 토나오게 많은데다, GOP 포상휴가도 없어 휴가마저 적다.[18] 말고개 대대, 적근산 대대, 장평동 중대, 수송대 전부![19] 단 육체적인 고됨은 있지만, 막사나 장비 보급등이 전부 최신식으로 제공되며 연대내에서도 어느정도 형편을 봐주는 편이므로 부상자로 인해 T/O에 문제가 생기지 않는 한 생활의 쾌적함은 보장 되어있는 편이다.[20] 단 꽝에 걸리지 않는다는 조건하에[21] 보충중대 기간병 생활관은 본부대에 있다. 공군파견병도 같이 생활[22] 본부대의 경우 같이 붙어있는 통신대대쪽에 동아리방이라고 하는 PC방이 있다. 통신대 전용이다. 반대로 PX는 본부대 막사에 있다. 그런데 통신대대도 같이 이용하고 있다. PX병은 현재 통신대 PX병이 전역한 이후로 본부대 PX병 두명이서만 운영하고 있다.[23] 피해자 유가족과 합의도 하지 않았고 노 소령 조차 반성의 기미가 없었는데도 집행유예를 선고한 것은 피해자 유가족을 우롱하고 있단 증거. 일단 1심을 맡은 군단 소재 보통군사법원이 독립성 보장 제로인 곳인지라...[24] 주로 쇠약하거나 누워서 지내는 환자, 노인 등에서 발견되는 질환. 쉽게 말해 몸을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아 혈액 순환이 안되는 부위가 썩어들어가는 질병이다.[25] 50연대의 경우 행군훈련이 굉장히 많다. 더군다나 행군코스는 산으로....산악 대대 부대원이라면 상황 걸릴때마다 인접산과 고개를 제집 드나들듯이 갈 것이다. 산이 하나같이 경사가 더럽다.[26] 가끔가다가 씽크홀이 보이긴 한다.[27] 여담이지만 모 가수는 배치를 받았는데 사단 인사처에서 연예인 귀찮다고 다른 데로 보내버린 경우도 있었다.[28] 또 재밌는 건 15사단 내에서는 KCTC 영웅으로 유명하다. 소총으로 탱크 잡으려고 대항군 탱크 위에 올라갔다가 통제관한테 욕 먹었다고 한다. 분명히 탱크 안에 승차하고 있던 군인들에게 소총을 난사했으나 마일즈 장비를 안차고 있었으므로 안 죽었다.[29] 같은 시기에 플스 2가 1대 더 반입되었는데, 그걸 가져온 덕후는 삼국무쌍 같은 덕후들 사이에서의 접대게임을 들고왔지만 실제 일반인들은 위닝 말고는 관심이 없어서.... 그냥 안습.[30] 물론 확실히 지원이 부족하긴 한 듯. 폭우가 쏟아져서 고생했던 2008년 공중지상합동훈련 당시, 7사단 병사들은 훈련 후 버스타고 복귀했지만 15사단은 병사들 버스를 태워줄 여유가 없었는지 행군으로 복귀했다. 물론 병사들은 수긍을 했는데 기름값이 부족했는지 전차를 컨테이너 트럭에 싣고 와서 사격을 한 후 다시 트럭에 싣고 가는 걸 훈련 중에 봤기 때문이었다.. 2010년 50연대 RCT훈련 때도 비가 엄청나게 쏟아지는데 행군으로 복귀했다. 안습[31] 신교대에서도 거지사단의 면모를 볼 수 있는데, 사단장이 부대방문을 하는데 구두약이 없어 물로 전투화를 닦는 경우도 있었다. 그 외에 소나기 책만 주고 커버는 주지 않는 등(옆 7사단에서는 줬다.) 여러 가지 안습한 일이 많았다.(2011년 기준)[32] 그래도 15사단 모 대대의 격언 중 '15사단은 필요한 게 부족하지만, 7사단은 있는 게 없다'라는 말도 있으니 너무 낙담하지 말자[33] 하지만 27사단보다 더 먼저 보급되는 장비들이 있는데 바로 GOP에 필요한 장비들이다. 그러나 이건 당연한게 27사단은 GOP 부대가 없다.(...) 이 때문에 2008년 2군단 저격수 대회 당시 야간사격에 사용할 야간투시경이 신형 모델인 PVS-04K(단안)가 아닌 PVS-7(양안)으로 지정됐었다. 당시 7사단과 15사단의 저격수들은 이미 보급된 PVS-04K로 연습을 해놓은 상태였지만, GOP가 없는 27사단이 여전히 구형 모델인 PVS-7을 이용했기 때문에..[34] 27사단 수색대대 편에서 수료식 당시 군악연주를 15사단 군악대가 담당하긴 했다.[35] 사단 보충중대에서 전출 대기도중에 본부근무대 막사 내에서 생활했는데 기간병들이 몰려가서 싸인을 받았다(...) 분위기는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