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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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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2. 춘추전국시대제나라3. 남북조시대의 남제4. 남북조시대의 북제5. · 교체기의 제나라6. 대 성립된 고구려계 유민 이정기가 세운 산둥 반도의 지방 세력 정권 제나라
6.1. 역대 군주
7. 당나라 농민 반란 지도자 황소가 세운 정권 제나라8. 오대십국시대 남당의 원래 이름인 제나라(서제)9. 금나라의 괴뢰 정권 제나라(유제)

1. 소개[편집]

중국 여러 왕조들의 이름. 대개 오늘날 산동성 지방을 중심으로 있었다.

2. 춘추전국시대제나라[편집]

3. 남북조시대의 남제[편집]

4. 남북조시대의 북제[편집]

5. · 교체기의 제나라[편집]

승려인 고담성(高曇晟, ? ~ 618년)이 618년에 세운 단명 정권. 고담성은 스스로 대제(大齊) 황제라고 자칭했지만 석 달도 안 되어 피살되었다.(...)

6. 대 성립된 고구려계 유민 이정기가 세운 산둥 반도의 지방 세력 정권 제나라[편집]

안사의 난 이후 세력이 약화된 당 대에 등장한 지방 정권 세력으로 765년부터 819년까지 존속한 것으로 본다. 당나라고구려계 유민[1]이정기의 세력에서 출발하였으며, 이정기가 당나라로부터 치청평로절도사(淄靑平盧節度使) 관직을 받아서 765년에 세운 정권이다. 이정기를 포함해서 4대 동안 지속되었다. 장안을 공격하려 하기도 하였으나 실패하고 819년 당과 신라의 연합 공격으로 멸망하였다. 자세한 항목은 이정기 참조. 단 제나라라는 국명을 사용한 것은 이납 때의 일시적인 일이고 존속 기간 대부분에서 치청평로절도사로 행세했다. 전성기에는 산동 지역을 중심으로 한 중국 동부 15개 주를 점령했으며 대규모의 염전과 발해, 신라 등과의 중계무역을 통해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 고구려유민집단을 중심으로 성장한 이정기 세력은 이정기 대에서부터 독자적으로 백관을 세우고 법 제도를 새로이 들여오는 등의 거의 반 독립국의 형태를 띄었으며 그 아들인 이납의 시대에 들어서는 국호를 정하기까지 하였다.[2]

고구려-발해의 법제와 관제 일부를 수용한 것으로 보이며 당서의 추론에 근거하여 제의 문화 역시 중국지역의 것이라기 보다는 고구려에 가까운 것이 꽤 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제의 멸망 이후 당은 이주한 고구려 유민들을 대량학살하고 장기간에 걸쳐서야 간신히 해당 지역의 문물을 원래 중국식으로 수정하는데 성공하였다. 혼란기라 그런지 단순한 독립 세력인지 국가인지 서술이 어중간하지만, 고구려 유민 출신 이정기에서 이어지는 고구려계 이씨 세력이 약 60년간 통치하여 민족주의 사관이 강한 이들은 이를 한국사를 이야기할 때 언급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정기가 고구려의 계승 의식을 갖고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회의적 의견이 많다. 흑치상지의 당 투항 후 활동이나 고선지의 활동이 국사에 포함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3]

일단 당의 시점에서 '제' 는 어디까지나 '평로 번진' 이였을 따름이며, 개중에서도 가장 반항적인 번진으로 평가되었다. 실제로 당덕종 전반기의 '사진의 난'의 중심세력으로 꼽히기도 했고. 마찬가지로 당의 관직을 지속적으로 사실상 받아왔기 때문에 완전한 독립국가라고 보기에는 애매한 상태이다.[4]

6.1. 역대 군주[편집]

  • 이정기(李正己) - 재위: 765년 ~ 781년

  • 이납(李納) - 재위: 781년 ~ 793년

  • 이사고(李師古) - 재위: 793년 ~ 807년

  • 이사도(李師道) - 재위: 807년 ~ 819년

7. 당나라 농민 반란 지도자 황소가 세운 정권 제나라[편집]

황소(黃巢)가 881년에 선포한 나라이다. 성씨를 따라서 황제(黃齊).

8. 오대십국시대 남당의 원래 이름인 제나라(서제)[편집]

9. 금나라의 괴뢰 정권 제나라(유제)[편집]

금나라가 북송을 무너뜨리고 현재의 한단(邯鄲)인 대명부(大名府)를 수도로 하여 세운 괴뢰 정권(1130년 ~ 1137년). 유제(劉齊)라고도 하고, 금나라가 세운 가짜 제나라라는 뜻에서 위제(僞齊)라고도 한다. 금나라는 북송의 신하였던 유예(劉豫, 1073년 ~ 1146년)를 괴뢰 정권 제나라의 황제로 책봉해서 이 나라를 세웠다. 하지만 남송에 수시로 털리다가 결국 금나라와 남송 간의 합의에 따라 제나라가 폐지되었다(...). 유예는 금나라 황제에 의해 촉왕(蜀王)으로 책봉되었다. 다만 촉왕으로 책봉된 건 그저 허울일 뿐, 실제로는 내몽골 지방으로 강제이주당해 그곳에서 쓸쓸히 생을 마쳤다. 금나라가 세운 다른 괴뢰 정권으로 초나라(장초 또는 위초)가 있는데, 이곳의 경우 억지로 책봉된 괴뢰 황제가 남송으로 달아나서 흐지부지 됐다. 해당 항목 참고.

[1] 몇몇 학자들은 백제계 유민이었을 것이라는 추측도 내세우지만 이런 설을 내세우는 사람들이 대다수 유사역사학자인지라(...). 다만 이정기가 살았던 곳에는 백제계 유민도 어느 정도 존재했고 실제로 몇몇 백제인들도 이정기의 반란에 참여해서 이정기를 도와주기도 했다.[2] 다만 칭왕국호는 다른 하북 삼진들도 하였던 것이며 이마저도 요구가 받아들여지자 바로 취소했다.[3] 그러나 최근에는 발해의 법 제도를 수용한 흔적이나 당과의 문화 차이가 상당히 심해서 당서의 기록에서도 나온 만큼 어느 정도의 계승성을 인정해야된다는 주장도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한국사와 연관이 있는 세력이나 나라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지, 이정기의 제나라가 결코 한국사가 될 수는 없다. 발해와 달리 이쪽은 고구려 문화를 계승한 것이 아니고, 발해의 법 제도를 받아들이거나 당나라와의 문화 차이가 크되 이것이 고구려를 계승했다고 보기는 애매하기 때문이다.[4] 문제는, 사진의 난을 위해 파견한 진압군이 정작 목표인 평로번진에는 접근하지도 못하고 다른 번진을 상대하다가 주차, 이회광의 난이 일어나서 장안본진이 털리고(난의 발발지가 장안이다.(...)) 당덕종, 그리고 당나라 전체가 하마터면 봉천에서 멸망할 뻔(...). 난을 피해 봉천으로 피신했다가 주차군에게 포위당해 장기간 공격받았다. 심지어는 황제 코앞까지 화살이 날라왔으니(...) 이런 흠좀무한 일이 터지면서 한동안 관심밖에 놓였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