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감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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鄭鑑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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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내용3. 여담

1. 개요[편집]

조선시대 말기에 등장한 작자미상의 도참서. 고려시대 십팔자위왕 예언의 후속작.

2. 내용[편집]

정감록은 정본이 없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이본이 많다. 온갖 도참서가 다 섞인 형태로 전해지지만, 정감록 모든 판본에 포함되기 때문에 아마도 원형이리라 추측하는 것이 감결(鑑訣)이다. 그리고 감결은 내용이 조선의 조상이라는 이심(李沁)과 조선 멸망 후 일어설 정씨(鄭氏)의 조상이라는 정감(鄭鑑)이 금강산에서 마주 앉아 대화를 나누는 형식이다. 그래서 책 이름이 정감록.

정감록이라는 제목 때문에 세간에는 정도전이 저술했다고도 하고, 혹은 정여립이 저술했다고도 하지만 설득력은 없다. 정몽주나 그 후손이 썼다는 설도 있는데, 조선왕조 건국 직후 흉흉한 민심을 배경으로 이 책이 집필되었다는 것이다.

정확히 언제 형성되었는지는 알 수는 없지만, 대체로 18세기 영조, 정조 무렵에 나왔다고 추측한다. 정조 9년(1785)에 일어난 이율, 양형, 홍복영의 모반사건(정감록 모반사건)에 정감록이 확실히 등장하기 때문에, 분명히 그 이전에 형성되었을 것이다. 정도령의 모델이 실제로 청나라에 대항해 명나라를 복원하려고 한 정성공이나 그의 아들 정경이라고 보는 최근 학설에 의하면, 17세기 중반(인조 말-효종 연간)까지 성립연대를 올려 보기도 한다.

정감록에 있는 "이씨가 망한다." 하는 구절로 보아, 조선왕조에 반대하는 의도를 내포했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학자들에 따라서는 정감록이 성리학을 위시한 조선왕조의 지배 이데올로기에 대항하는 민중의 저항 이데올로기로 형성되었다고 보기도 한다. 이런 내용 탓에 조선시대에는 금기시되었지만, 민간에서 암암리에 퍼졌다.

필사가 반복되면서 판본이 다양하게 형성되었지만, 핵심요지는 조선왕조(木子,李)가 망하고 계룡산에 정씨가(奠邑,鄭)(정도령이라는 진인[1]) 새로운 나라를 세운다는 것이다.[2] 정감록 모반사건의 판본에서는 이씨가 망하고 김씨, 유씨, 정씨의 삼국으로 나뉘었다가 최종적으로 정씨가 통일한다고 씌었다고 한다.[3] 다른 판본에서는 정씨의 계룡산(鷄龍山) 도읍 8백 년이 있고, 다음은 조씨(趙氏)의 가야산(伽倻山) 도읍 5백 년(혹은 천년), 또 그 다음은 범씨(范氏)의 완산(完山) 7백 년(혹은 600년이나 천년)과 왕씨(王氏)의 재차 송악(松嶽:개성) 도읍 천년(혹은 500년)이라고 한다. 서기 5천 년대까지 예언하다니 우왕 굿 또한 조선왕조가 망하고 정도령, 혹은 정진인[4]이 새 왕조를 세우기 전까지 환란이 일어나기 때문에 이를 피할 십승지로 피난해야 한다는 말이 나온다고도 한다.[5]

문제는 이 십승지이다.


그런데 몇 가지 묘한 점이 있다. 십승지로 지목된 곳들이 대체로 남부지방이라는 점인데, 이로 미루어볼 때 정감록의 형성지는 북쪽, 특히 서북지역이라고 추정함이 일반적이다. 실제로 서북지방을 중심으로 일어난 대규모 봉기인 홍경래의 난이 농민봉기에서 정감록을 본격적으로 활용한 첫 사례이다. 이후 홍경래의 이름과 더불어 정감록은 19세기 농민봉기의 바이블처럼 사용되었다.[7]

그리고 해당 지역들은 대읍(大邑, 큰 고을)은 전무하고, 상당수는 산속, 협곡, 바위그늘 등 일반적 거주지로서는 재앙급[8]인데, 대신 외부에서 접근하기 어렵고 눈에 잘 띄지 않는 지역들이다. 즉, 무릉도원이라기보다는 좀비 서바이벌 가이드에서 언급하는 베이스 캠프에 가깝다. 이를 위와 조합하면, 농민봉기를 일으켰다가 실패했거나 세금문제 등으로 야반도주한 사람들이 숨어들기에 최적의 지세가 바로 저 십승지들이다.

그 외 동학농민운동을 일으킨 동학 접주 손화중이 선운사 마애좌불상 배꼽 아래에서 꺼냈다는 '비결록'이 정감록이었다 카더라라는 이야기가 오지영의 <동학사>에 있다. 선운사는 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 삼안리에 있는 로 바위맥 끝에 위치한 도솔암 마애좌불상이 유명하다. 이 마애좌불상은 보물 1200호로 지정되었으며 크기 15.6 m로 절벽에 새겨졌다.[9] 명치 부근 배꼽에 봉인된 흔적이 있는데 이 안에 검단선사가 비결록을 써 넣었다는 전설이 있다. 조선 말 전라감사 이서구가 이 비결록을 꺼내기 위해 봉인을 풀었다가 하늘에서 갑작스레 천둥벼락이 내렸고, 이서구가 책의 첫 장을 열어보니 첫머리에 "전라감사 이서구가 연다." 라는 구절이 있었다고 한다. 이서구는 두려워하며 다시 봉인하였고 19세기 말 손화중이 이 비결록을 가져갔다고 한다.

본문에 나오지는 않지만 정감록 하면 항상 언급되는 궁궁을을(弓乙)이란 주문이 있는데, 이것의 해석으로 반란도 일어나고, 동학 등 조선 말~일제강점기의 많은 신흥종교들이 제각기 해석해서 교리로 삼았다.

정감록은 일제강점기까지도 많은 신흥종교의 경전으로 활용되었다. 현재는 십팔자위왕설이 실제 조선 건국으로 맞아떨어지자, 그와 유사한 방식으로 반란에 적당한 명분을 끼얹으려는 새로운 도참설로 분한다. 물론 십팔자위왕 때와는 달리 이 설은 망했어요.

3. 여담[편집]

  • 성이 정 씨인 유력 대권주자가 나올 때마다 "정도령" 드립이 많이 나왔는데[10], 특히 현대그룹 정주영 회장의 통일국민당 창당과 1992년 대선 출마, 2010년대 들어서는 충청도 출신의 정운찬 총리가 잘 맞아 떨어져서 자주 나왔다. 그래서인지 이제는 아예 정씨 유력 정치인들을 패러디할 때도 종종 쓰이는 모양이다. 국민의당 정동영 의원의 경우 본인이 2007년 유력 대권 주자이기도 했고 무엇보다 본인의 이름과 발음이 비슷해서 지지자들로부터 정도령이라고 불리기도 하였다.[11] 하지만 안 됐잖아. 심지어 이씨한테 졌다. 근데 그 분전주 이씨가 아니라 경주 이씨인 게 함정

  • 범씨 완산 7백 년을 이용하여 새만금 간척이나 방사능 처리시설을 정당화하는 경우가 부안군이나 군산시에서 가끔 나왔던 모양이다. 수도 망했어요.

  • 조선 말기에 정감록을 신봉하는 서민들이 이미 많았는데, 조선이 진짜로 망해버리자 정감록을 당장 실천해야겠다라고 생각하는 서민들이 많았다. 그래서 지금의 북한지역에 살던 사람들이 하삼도에 이주해서 6.25 때 피해를 거의 보지 않게 되었다. 북쪽 사람들이 이주한 길지를 감록촌이라고 부르는데 현재는 젊은 후손들은 대부분 대도시에 거주하고 있다.

  • 서점에 가면 정감록이란 제목으로 여러 책이 팔리지만 내용이 전부 다르다. 사실 원본이 없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최초의 '정감록'을 썼겠지만 이런 금서는 유통금지이기에 '정감록이라는 미래를 다루는 금서가 있더라~'라는 말만 사람들에게 전해지고 책은 전해지지 않았다. 이런 오리지날 '정감록'에 대한 인기를 바탕으로 B라는 사람도 C라는 사람도 정감록이라는 인지도를 바탕으로 흥행을 노리고 다른 내용이 담긴 '정감록'을 작성했다. 결국 시간이 갈수록 '정감록'의 내용과 판본은 계속 증가했다.

  • 머리 작고 발 없는 이들을 외계인이라고 추측하는 사람도 있다. 또는 미사일의 형상이라고 풀이하는 사람도 있다.

  • 대부분의 도참서가 그렇듯 내용이 모호하다. 따라서 독자가 대충 시대상황에 맞춰서 내용을 해독한다. 조선이 멸망했으므로 정감록이 참이라고 생각한 사람들이 있었다. '바다 건너 섬나라의 진인이 백성을 구할 것이다'라는 내용[12]을 미국[13] 해리 S. 트루먼 대통령이 일본에 핵폭탄을 투하해서 광복을 맞이하게 했다는 사실 때문에 당시 거의 대부분의 국민들이 트루먼이 진인(True + Man)이다라고 여겼다.

  • 기묘하게도 정감록에 나오는 정씨 왕조의 도읍지로 꼽히는 계룡산이 한때 박정희 정권이 행정수도 이전을 구상했던 공주시나, 현재 행정수도 이전이 언급되는 세종특별자치시와 굉장히 가깝다.


[1] 眞人은 도교에서는 수행을 마친 선인의 의미로, 불교에서는 바른 인간이란 뜻으로 쓰인다.[2] 그러나 본문 중에 정도령이란 말은 나오지 않는다.[3] 정씨의 나라가 건국된다는 내용은 앞서 언급한 정몽주, 정도전, 정여립의 예를 통해서, 당시 백성이나 조선왕조 반대세력들이 정씨를 이씨왕조의 대체재로 여겼다는 점을 알수 있다.[4] 한 판본에서는 진인의 사주까지 서술하였다. 기사년 무진월 기사일 무진시로 가운데, 즉 왕을 상징하는 土의 천간이 4개나 있으며 사(뱀)가 진(용)이 된다는 뜻이다.[5] 십승지 중에서도 어느 땅이 좋은지는 해석이 다양하다. 군사적 요지인 곳이 좋다는 해석도 있고, 땅이 기름진 곳이나 풍수적으로 좋은 곳이 좋다는 해석도 있다. 자세한 것은 이중환의 택리지를 참고.[6] 단 이쪽은 이론(異論)이 많다.[7] 단, 본문에선 북쪽 땅은 전부 불모지 취급이니 심히 안습. 단적인 예로 십승지 안에 북쪽 땅이 한 군데도 없다.[8] 그래도 하천 하나씩은 끼어서 거주 자체는 가능하하지만, 겨울을 넘기기 어렵다는 평도 있다.[9] 마애(磨崖)라는 단어가 절벽이나 큰 바위에 새겼다는 뜻이다.[10] 심지어 정씨가 아닌 노태우의 선전 만화에는 정씨가 당나귀 정씨로 불리기도 한다면서 귀가 큰 노태우와 관련이 있다는 식으로 연결하기도 했다. 정태우[11] 지금은 오히려 지지자가 아닌 사람들이 조롱의 의미로 그렇게 부른다.[12] 이 대목이 최근 학자들이 정도령의 모델이 정성공이라고 추정하게 된 큰 근거이다.[13] 신대륙을 섬나라로 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좀 애매하지만... 바다 건너에 있음은 사실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