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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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의 지붕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원이삼점(圓伊三點).[1]

1. 개요2. 절의 건축물들
2.1. 해탈문(일주문)2.2. 천왕문2.3. 전, 각2.4. 2.5. 선방2.6. 종각2.7. 요사채2.8. 노전채2.9. 각
2.9.1. 삼성각2.9.2. 독성각2.9.3. 칠성각2.9.4. 산신각2.9.5. 용왕각2.9.6. 가람각
2.10. 대웅전2.11. 종무소2.12. 염불당2.13. 인법당
3. 그 외4. 유명한 절 및 부속 건축물

1. 개요[편집]

가람이라고도 한다[2] 승려들이 살면서 기도하는 곳이라는 의미가 있다. 사찰 건축물들의 배치를 가람배치라고 하며, 사찰의 시대와 성격을 나타내주는 중요한 의미가 있다. 보통 탑과 금당의 배치에 따라 가람배치가 구분되는데, 시대별로 가람배치를 보면 탑과 금당 중 어느 쪽을 더 중요시 하는가 등을 알 수 있다. 절이란 말은 순우리말이며, 그 유래는 확실하지 않지만 신라 최초의 불교 신도였던 모례(毛禮)의 이름에서 유래했다는 학설이 있다.[3] 모례에 대해서는 묵호자 문서 참조.

일반적으로 대한민국의 절은 산속에 자리잡고 그곳에 은둔하며 불경을 공부하는 수도원의 성향이 짙은데, 이는 역사적인 이유로 도심 사찰이 거의 사라졌기 때문이다. 조선시대숭유억불 정책으로 인해 도심의 절들은 대부분 사라질 수밖에 없었다. 이는 현대에도 마찬가지로 그나마 생활불교를 주장하는 일부 종단이나 포교당은 도심에 설치하지만 그 위치가 영 안좋은 경우가 허다하고, 규모도 개척교회 수준인 경우가 많으며 은근히 님비로 기피받는 경우가 많다. 그나마 도심포교만 하는 진각종 같은 경우 나은 편. 반면 불교가 국교였던 삼국시대고려시대에는 중국이나 일본처럼 수도와 주요 도심 내부에 대규모의 국찰이 여러개가 있었고, 중요한 교통의 요지에는 을 겸하거나 운영하는 사찰이 설치되었다. 이런 사찰들은 맹수나 도적을 막기 위해 요새화되는 경우도 있었다.

아래에 소개된 절을 구성하는 건축물들을 다 갖추지 못한 작은 절이나 개인/소수의 승려가 개인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지은 작은 절은 암자, 혹은 토굴이라고 부른다. 요즘은 무교의 신당을 암자라 부르는 경우도 많지만,[4] 원래 불교의 암자는 대부분 근접한 큰 사찰을 본사로 두고, 큰 절에 소속된 말사로 존재하는 경우가 많다.

말사는 본사에 소속된 절로, 현재 한국 조계종에서는 지역 교구마다 중심사찰을 정해 본사로 하나씩 두고, 가까운 지역의 다른 절들을 형식상 소속된 말사로 두는 식으로 관리하고 있다. 그리고 조계종 소속의 모든 본사들을 총괄하는 곳은 서울 종로의 조계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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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반대일본에서는 절 갯수가 편의점 갯수를 압도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도심지대에 굉장히 흔한 편이다. 역시 가깝고도 먼 나라[6] 일본 신토의 사원인 신사가 지금처럼 신을 모시는 고정된 건물의 형태를 갖게 된 것도 불교에서 절을 짓고 사용하는 것을 보고 영향을 받은 것으로, 그전까지는 그냥 특정 지역을 성역으로 지정해 놓는 수준이었다. 중국 도교의 사원인 도관의 경우 불교 전래 이전에도 자체적인 교단 조직/기관을 갖고 있었지만, 마찬가지로 불교와 사찰의 영향을 받으면서 구조가 비슷해졌다. 우리나라 무교의 신당도 마찬가지로 영향을 받으면서 불상을 모시거나 절과 비슷하게 꾸미는 경향이 생겼고, 절 내부로 들어가 삼성각 등으로 자리잡기도 했다. 물론 절에 소속되지 않은 신당도 많다. 오히려 현대에 접어들면서 절 주변에 장승이나 솟대를 설치하는 경우는 거의 없어졌고, 현재 조계종의 종헌상 승려가 무속인과 결탁해 사찰/신도 운영을 하면 승적 박탈이다.

2. 절의 건축물들[편집]

2.1. 해탈문(일주문)[편집]

절의 현관 정도의 위치를 지닌다. 본래 해탈문이라고 부르며, 이 해탈문이 절과 세속을 가르는 경계가 된다.

이 해탈문의 형식 중 기둥을 일렬로 한 줄 세워 지붕을 얹은 것을 일주문이라고 하는데, 옆에서 보면 기둥이 하나로 보인다. 앞에서 보면 기둥이 2개(혹은 4개)인데 옆에서 보면 기둥이 하나로 보이게 만든 이유는, 불계와 속세가 만나는 경계에서 양자가 아직 분리되지 않은 미분별과 비분리의 상태를 그대로 반영하기 위해서이다.# 아무튼 이 일주문이 해탈문을 부르는 통칭으로 불리기도 한다.

일본에서는 이러한 일주문의 형식을 고려문이라고 부른다.(*) 한반도에서 건너온 양식이라는 것. 일본은 해탈문이 적은데, 고려문이나 일주문의 흔적이 나오기도 하는 모양. 해탈문에는 절의 이름이 쓰여진 현판이 걸린다. 보통 남쪽 가장 외각에 위치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래서 남문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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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어사 일주문.#

2.2. 천왕문[편집]

사천왕을 모신 문. 불법을 수호하는 사천왕이므로 잡귀를 막는 의미도 지니고 있다. 해탈문에 이은 2번째 문. 때문에 중문이라고 불리는 경우도 있다.

고대의 절들을 보면 회랑으로 금당 주변을 막아놓기 때문에 반드시 이 중문을 지나야 했다. 한국의 경우에는 사천왕이 일반적이지만, 고대나 일본의 경우에는 이천왕이나 금강역사 2명이 있는 금강문을 세우는 경우가 일반적이다.[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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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남 사천왕으로 유명한 부천 석왕사 천왕문. 천왕문 위에 종각이 같이 있다.#

2.3. 전, 각[편집]

부처님의 상이나 보살의 상들을 모셔 놓은 건물들을 전이라 하고, 그 외의 건물들은 각이라 한다. 불상을 모셔놓은 전이 그 절에서 가장 크고 중앙에 위치해 있다. 금당이라고도 한다.

절에서 모시는 부처에 따라 중앙이 되는 전의 이름이 다르며, 대웅전(석가여래), 극락전, 극락보전, 무량광전, 무량수전(아미타불-무량수불), 약사전(약사여래), 대적광전(비로자나불), 팔상전(석가여래의 일생을 그린 팔상도), 관음전(관세음보살), 지장전(지장보살과 명부시왕, 현왕[8]) 등이 있다.

단 전이 없고 불상을 모시지 않은 절도 있는데, 진신사리를 모신 적멸보궁이 바로 그것이다. 불상은 부처의 모습을 형상화한 것인데 적멸보궁은 그 부처에게서 나온 사리가 있는 곳이므로 불상을 굳이 두지 않는 것이다. 경남 양산시에 있는 통도사가 바로 이 경우다.

2.4. [편집]

사리, 경전 등을 보관해놓는 장소로 사용된다. 특히 석가모니의 진신사리를 모셔놓은 곳들은 특히 적멸보궁이라고 부른다. 국내에는 5곳이 있다. 목탑, 석탑, 전탑들이 있으며, 한국의 절에서는 삼국시대까지만 해도 탑의 비중이 상당히 컸고, 고려시대까지는 목탑이 많았으나 고려 후기부터는 목탑이 거의 사라지고 석탑만 남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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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형적인 전성기 신라 석탑 양식을 보여주는 불국사 석가탑의 모습. 균형과 비례가 매우 우수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2.5. 선방[편집]

승려들이 참선하는 곳. 선불교(선종)가 발달한 지역(특히 한국과 일본 등)에서는 매우 중요한 곳이다. 이곳은 일반적으로 절의 관계자 외는 출입금지/사진촬영 금지이므로, 절에 갔을 때 함부로 들어가 실례를 끼치지 말도록 하자. 신성모독은 더더욱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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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운사 선방에서 참선하는 스님들.# 선방의 특성상 평소에는 십중팔구 일반인 출입금지인지라 개인이 찍은 사진은 찾기 힘들며, 대부분 이렇게 특별한 경우에 한해 언론사에서 찍은 사진이 많다.

2.6. 종각[편집]

절에는 범종, 목어, 운판, 법고의 4가지 악기가 있는데 범종은 지옥의 중생들에게, 목어는 물짐승들에게, 운판은 날짐승들에게, 법고는 들짐승들에게 부처의 진리를 일깨우기 위해 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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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유일의 십(十)자형(혹은 아(亞)자형) 종각인 송광사 종각.@

2.7. 요사채[편집]

절의 살림살이를 총괄하는 곳. 신도와 거사/보살, 행자, 사미 등이 음식을 준비하는 부엌[9], 승려들의 숙소[10], 절의 창고 등을 한데 묶어서 부르는 말이다.

건물의 특성상 다른 사찰 건물과는 달리 화려함이나 엄숙함을 강조하는 종교건물 분위기보다, 사람들이 사는 가정집 모습. 그래서 다른 사찰건물과 비교해 다소 이질적인 느낌이 나며, 근래에는 그냥 양옥을 짓기도 한다.

일본 사찰은 대처승이 발달하다 보니 절에서 살림을 차리고 살면서 편의를 위해 부처를 모신 법당과 요사채가 별개의 건물이 아니라 복도로 이어진 형태를 하는 경우가 많지만,[11] 우리나라는 소규모인 암자나 포교당이 아니면 별개의 건물로 떼놓는 게 일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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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룡사 요사채.#

2.8. 노전채[편집]

각종 공양행사의 진행과 기도를 맡는 노전스님(부전스님)이 머무르는 시설.

2.9.[편집]

토속신앙의 신을 모신 전각. 종류가 다양해 이를 헷갈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름에서부터 '전'보다 격이 낮은 '각'을 붙이는 데서 불교와 거리가 있음을 알 수 있는 건물.

보통 이런 토속신앙의 전각들은 대웅전의 뒤편 위쪽이나(일반적인 위치) 대웅전에서 조금 거리를 두고 위치하나, 절에 따라서는 종종 대웅전과 맞먹거나 더 좋은 자리에 있을 때도 있다.[12] 그러나 진각종 같은 밀교계 종단의 사찰을 비롯한 일부 종단에는 없는 경우도 있다. 사찰이 작을 경우[13]에도 없을 때가 있는데, 이 경우 대웅전 안에 신중단과는 별개로 토속신을 모시는 불단을 차리는 경우가 많다.

주로 이용하는 사람들이 기도하러 오는 무당들이나 시주를 많이 하는 노보살/노처사들이다 보니, 현대 절들은 다른 전각들에 비해 작던 기존의 건물을 크게 재건축하거나 처음에 절을 지을 때부터 상당히 크게 짓고, '각'이 아닌 '전'을 붙여 칠성전, 삼성전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다만 오래된 전통사찰에도 칠성전이라는 표현이 남아 있는 것을 보면, 딱히 틀린 건물 이름은 아닌 듯 싶다.[14]

2.9.1. 삼성각[편집]

독성(나반존자), 칠성신, 산신의 3위를 같이 모신 전각이다. 종종 다른 토속신이 들어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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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룡산 갑사 삼성각.@

2.9.2. 독성각[편집]

천태각이라고도 부르며, 독성(나반존자)만 모신 전각이다. 나반존자는 석가여래와는 별개로 홀로 득도한 성인이라 하는데, 문제는 불경 어디에도 나오지 않는다는 것. 심지어 중국이나 일본에는 없다!

일설에 따르면 단군이라고도 하고[15], 중국 천태산에서 도를 닦은 사람이라고도 하고, 말법시대에 미륵이 오기 전까지 강한 신통력으로 중생을 돌본다는 전승에 기초해 불경의 인물 중 가장 비슷한 빈두로존자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나반존자 신앙의 시작은 현재 연구된 바로서는 1693년이 처음이고, 대중화된 것은 1800년대부터이다. 존재야 어쨌건 한국에서 두드러진 신앙인 건 사실이다.

여담이지만 나반존자를 비롯한 나한들은 성인임에도 성격이 매우 무섭고 엄격해, 예불 시 재물은 물론이고, 기도할 때도 신도의 자세가 불성실하면 여러 가지로 안 좋다고 한다. 다른 학설에는 "토속신앙의 천신이 불교화되었다"는 주장도 있다. 다만 이 경우 칠성신이 이에 해당한다는 주장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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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사 천태각.#

2.9.3. 칠성각[편집]

칠성당, 북극보전이라고도 한다. 칠성신[16]만 모신 전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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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강남구 봉은사 북극보전.@

2.9.4. 산신각[편집]

산령각, 산왕각이라고도 하며, 산신만 모신 전각이다. 다만 종종 산신각이면서 산신 외에 독성이나 칠성도 같이 모시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경우 3위가 같이 있는 게 아니라 독성이나 칠성신 중 1위만 산신과 같이 모셔놓는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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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원사 산왕각.@ 현대에는 상당히 드문 여산신을 모셔고 있다.

2.9.5. 용왕각[편집]

용왕당, 용왕단이라고도 한다. 용왕을 모신 건물로, 내륙지방의 절보다는 해안지역의 사찰에서 종종 볼 수 있으며, 내륙지방의 경우 절 근처에 영험하다고 알려지거나 유명한 샘이나 우물, 강이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용왕은 불교의 호법신 성격이 강하다보니 용왕각보다는 관음전만 짓거나 관음전 안에 용왕을 합사한 경우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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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월암 용왕단.@

2.9.6. 가람각[편집]

국사당, 국사단, 우호당이라고도 하며 절을 지키는 것을 전담하는 신인 가람신을 모신 건물이다. 가람신의 성격상 기존 토속신앙의 신이라 하기도 힘든지라 일반적으로 신도들의 발길도 상대적으로 적고, 절을 지키는 일이란 게 신중이나 산신과 겹치다 보니 가람각까지 갖춘 절은 오래되고 규모가 큰 절이라도 상당히 드문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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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도사 가람각.#. 일본 칠복신 중 하나인 대흑천이라는 설이 있다.@

2.10. 대웅전[편집]

일반적으로 절의 핵심인 건물. 다만 적멸보궁의 경우에는 얘기가 좀 다르다. 자세한 정보는 항목 참조.

2.11. 종무소[편집]

사찰의 행정과 관리, 안내를 담당하는 곳으로, 전통적인 시설은 아니다. 보살이나 거사들이 있으면서 기도/불사 접수, 템플스테이 안내 등을 맡는 사무실이 바로 종무소다. 위에서 말한 요사채와 같은 건물에 있는 경우도 있다.

2.12. 염불당[편집]

염불수행을 집중적으로 하기 위해 만들어놓은 건물. 근대까지도 만일회 등의 염불결사가 융성하여 여러 사찰에 흔하게 지어졌으나, 근현대 선종이 중심이 되면서 많이 줄어들었다가, 2000년대에 들어 신도들을 중심으로 염불이 점차 중시되는 풍조가 퍼지면서 다시 조금씩 주목받고 있다.

흥국사 대방*의 경우 염불당에 요사채 기능을 합쳐 염불수행에 집중할 수 있도록 지어져 있다. 대방과 염불당은 보통 동일시되나, 다르게 봐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2.13. 인법당[편집]

한자로는 因法堂 혹은 人法堂이라고 쓴다. 큰 법당을 별도로 갖출 수 없는 사찰에서 한 건물 안에 요사채와 법당이 같이 있거나, 승려의 거처 한쪽을 법당으로 쓰는 작은 절을 말한다. 일본에는 동국사에서 볼 수 있듯이 법당과 요사채가 이어진 경우가 상당히 흔하지만, 한국은 암자가 대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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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쌍계사의 말사인 국사암의 인법당.

첨탑을 가진 절도 있는 모양이다.[17]

3. 그 외[편집]

산속이나 풍광 좋은 곳에 오랜 역사와 함께 남아있는 경우가 많아 문화재로 지정되는 경우가 상당수. 특히 산 어귀나 등산로등에 있는경우가 많아 일반 신도들 외에 등산객들도 많이 찾는 편. 템플 스테이의 주요 대상이기도 하다.

이에 따라 파생된 것이 국립공원을 찾는 사람들에게 문화재 관람료를 강제징수 하는 문제이다.

1962년부터 문화재 관리비용 충당을 목적으로 가야산 해인사에서 처음으로 문화재 관람료를 징수하기 시작했고 그 이후 국립공원들이 지정되면서 국립공원 입장료와 별개로 징수하였으나 개별징수의 불편을 이유로 차츰 통합되어 87년부터 모든 국립공원에서 국립공원 입장료와 문화재 관람료를 통합징수하게 되었다. [18]

90년대 들어서 문화재 관람의사가 없는 국립공원 탐방객들에게 문화재 관람료를 강제 징수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주장이 제기되기 시작하여 다시 분리징수하는 방안이 제시되었으나 사찰 측의 강한 반발로 무산되었으며, 이후 끊임없는 민원과 집단 소송이 제기되었다. [19]

국립공원관리공단은 이 논란에서 빠지고 싶었는지 2007년부터 국립공원 입장료를 폐지하였으나 사찰들은 여전히 사찰 입구가 아닌 등산로 입구에서 독자적으로 문화재 관람료 징수를 계속하고 있다.

상식적으로 오래된 문화재의 보존에는 지속적으로 비용이 들어가는 것은 당연하나 문화재 관리가 징수의 명목이라면 마땅히 그 수입은 문화재청과 같이 문화재를 관리하는 책임기관이 취합하여 적재적소에 배분하는 것이 타당하다. 대형 사찰들의 경우 연간 10억을 넘을 것으로 추정되는 큰 돈이지만 정확한 금액이나 사용내역에 대해서 전혀 공개하지 않고 있다.

풍수지리학에 따르면 한국의 옛 절들은 거의 명당 자리에 세워져 있다고 한다. 믿거나 말거나. 다만 이 경우, 무덤자리에 좋은 음택명당이나 일반인이 살기 좋은 양택명당이 아니라 수행자들에게 좋은 명당이라 일반인이 살거나 무덤을 만들기에는 지나치게 기가 세서 오히려 해를 입는다고 한다. 그러니 괜히 조상 잘 모시고 싶다고 절에 불지르지 말고, 영 탐나면 절의 스님들과 상의해 위패나 잘 모시자. 실제로 전문가들에 따르면 조선조에 종종 절을 불사르고 그 자리에 바로 무덤을 쓴 경우치고 후대에 재액으로 집안이 망해, 결과적으로 버려진 무덤이 안 된 경우가 없다고 한다. 흠좀무[20]

절에 불지르고 무덤 쓴 가장 유명한 인물이 흥선대원군이라는 야사가 있다.[21]지나가던 스님[22]이 흥선군에게 '당신 밑으로 10대가 잘먹고 잘사는 명당을 줄까, 아니면 당신이 임금의 아버지가 되고 3대 만에 망하는 명당을 줄까?' 라고 했더니 야심찬 남자인 흥선군은 후자를 선택했다는 것. 결국 흥선군은 현재의 충남 덕산현 가야산에 있던 가야사를 찾아가 두둑하게 시주를 하고, 시주에 흡족한 스님들이 외출한 틈을 타서 가야사를 홀라당 불태운 후에 자신의 아버지 남연군의 묘소를 썼다. 결국 자신의 아들은 고종황제가 되었지만 조선왕조의 운명은........... 참고로 남연군의 이 야심찬 묘는 후에 오페르트 도굴사건의 화를 입기도 했다.

좀 오래된 절들의 창건 이야기를 들어보면 삼국시대통일신라 시대의 유명한 승려가 처음 창건했다는 이야기가 많다. 그 중에서도 원효, 의상, 자장율사, 도선이 많은 편. 하지만 다른 사료와 교차 검증이 가능한 소수를 제외하면 대부분 허구에 가깝다. 유명 승려들의 이름을 빌려서 절의 위상을 높이려는 것. 물건너 일본도 비슷한지 역사가 좀 된 고찰의 경우 십중팔구는 불교를 크게 발전시킨 쇼토쿠 태자가 처음 창건했다는 설화가 붙어 다닌다고.

조선시대 초기까지만 해도 가내수공업의 형식으로 사찰별로 다양한 특산품들이 있었으나 사대부들이 특하면 사찰로 쳐들어가 깽판은 기본에 특산품을 요구하며 박해하는데다 불도 질러대서 현대에는 맥이 많이 끊어졌다. 하지만 지금도 사찰 전통식품류나 차, 절 전통 발효식품 등은 비교적 쉽게 구할 수 있으며, 대구에선 고려~조선시기 스님들이 각 절의 특산품을 물물교환하던 승시(僧市)를 복원해 행사화한 팔공산 승시축제를 열고 있다.

사찰이 무너지기를 기도하는 사람들도 있다. 행사 동영상 하여튼 민폐

한반도에 불교가 전래된 역사가 오래된지라 사찰 이름을 딴 역명도 제법 많다. 도시철도광역철도봉은사역, 망월사역, 범어사역, 학동증심사입구역 등을 비롯해 일반 철도의 개태사역, 다솔사역[23], 백양사역, 불국사역, 성주사역, 직지사역, 흥국사역, 희방사역, 울산(통도사)역, 석왕사역[24] 등이 그러하다. 다만 이 중 다솔사역은 폐역되었고 개태사역과 성주사역, 직지사역, 흥국사역 등은 여객 취급을 하지 않아 일반인이 접근하기 힘들다.

4. 유명한 절 및 부속 건축물[편집]

기타 지역도 추가바람.

4.1. 대한민국[편집]

절(불교)/한국 참조

4.2. 중국[편집]

4.3. 티베트[편집]

  • 포탈라궁 - 궁전으로 더 유명하지만, 흰 부분은 궁전이고 붉은 부분이 부처를 위한 공간이다.

4.4. 일본[편집]

4.5. 중화민국[편집]

  • 용산사

4.6. 몽골[편집]

4.7. 네팔[편집]

4.8. 부탄[편집]

4.9. 인도[편집]

4.10. 스리랑카[편집]

  • 불아사

4.11. 인도네시아[편집]

4.12. 말레이시아[편집]

  • 켁록시 사원

4.13. 베트남[편집]

  • 바이딘 사원

4.14. 태국[편집]

  • 왓 프라깨우

  • 왓 포

  • 왓 아룬

  • 왓 롱쿤

4.15. 미얀마[편집]

4.16. 라오스[편집]

  • 파탓루앙

4.17. 캄보디아[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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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가운데에 있는 3개의 원을 이(伊)라고 하는데, 가로와 세로 어느 것에도 묶이지 않는 묘한 삼각형의 배치를 하고 있다. 이 3가지 원의 상징은 해석이 너무 많아 정답이 없다. 공·성·상(空性相)의 세 교리가 붙지도 떨어지지도 않는 것을 나타냈다고 보기도 하고, 불교의 삼보(불佛, 법法, 승僧)을 나타낸다고 보기도 한다. 개중에는 천지인이라고 해서 땅, 불, 물을 상징하는 색으로 칠하기도 한다. 아무튼 불교에서는 사물을 이분법으로 나누지 않고 3가지로 나눠 생각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상징이다. 어쩌면 궁극의 3대 요소일지도 모르지만![2] 범어(산스크리트어) 상가라마(Sangharama)를 번역한 승가라의 준말[3] 모(毛)를 고대 신라어의 관례대로 뜻인 로 읽어 털례→털→절로 바뀌었다는 것.[4] 현재 도심에 00암[5]이라고 써있는 건물들 혹은 시설은 대부분 무속인들의 신당이다. 근래의 도심사찰은 포교당, 포교원, 혹은 (도심)선원 등의 말을 쓴다.[5] 예 - 만다라 문양이나 빨강과 하양색 깃발이 있는 암자[6] 실제로 "편의점보다 더 많은 종교시설"이라고 말하면 각각 한국에서는 교회를, 일본에서는 절을 언급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이런 팩트만 갖고 한국을 개신교 국가로, 일본을 불교 국가로 단정지을 순 없지만, 이러한 문화적 차이가 시사하는 바는 꽤 크다고 할 수 있겠다.[7] 예외적으로 구례의 화엄사에는 금강문과 천왕문이 둘 다 있다. 금강문을 지나 오르면 천왕문이 등장.[8] 현왕은 보현왕여래(普現王如來)를 말한다. 보현왕여래는 바로 염라대왕이다. 염라대왕은 다음 생에 부처가 되는데 이때의 직함이 보현왕여래다. 현왕은 망자를 3일 만에 심판한다고 하며, 현왕 신앙은 조선 후기에 상당히 유행하였다.[9] 여기만 떼어놓을 경우 공양간이라 한다.[10] 따로 떼어놓을 경우 승방(僧房)이라 한다[11] 국내의 일본식 사찰 동국사에서 이런 구조를 볼 수 있다.[12] 전통적인 동양 건축의 위계질서에서는 안쪽이나 더 높은 곳에 있을수록 상위의 건축물인 경우가 많다. 때문에 대웅전은 대부분 절의 가장 안쪽에 있고, 비슷한 위치나 더 뒤, 높은 곳에 있는 건물은 대적광전이나 산신각, 조사전 정도. 그마저도 조사전은 대웅전 근처라면 몰라도 대웅전 뒤쪽으로 가는 일은 절대 없다.[13] 보통 도심의 포교당[14] 참조글:(전략)박효열의 연구에 따르면, 전각명이 칠성전으로 등장하는 가장 앞선 시기의 자료가 유기(1707~1785)의 <호은집> 권2에 나오는 "철성전 상량문"(<한국불교전서> 제9책, 조선시대편 3, P.719)이라 하며, 그러다가 구한말 보정(1861~1930)의 <다송문고>(<한국불교전서> 제12책, 보유편 2, P.756)에서는 칠성전에서 격이 떨어진 칠성각으로 등장한다면서 칠성각이라는 호칭은 거의 20세기에 이르러서야 사용된 것이 아닐까 추측하고 있다.(후략) 출처: 김일권 저, <우리 역사의 하늘과 별자리>P.186[15] 최남선이 처음 주장[16] 절에 따라 칠성탱에 칠성신앙이 불교화된 존재인 칠성여래(치성광여래)를 중심으로 모시기도 한다. 이 경우 불화 중심의 부처는 칠성신이 아니라 북두칠성 신앙과 관련이 있는 북극성을 상징하는 치성광여래다. 칠성신은 치성광여래 근처의 7명의 옛날 관복 차림의 신이나 부처다. 자세한 것은 북두칠성 항목 참고.[17] 교회가 망해서 절로 바꿨다 카더라 통신이 있다(...)[18] 이 시기에 사찰 측은 통합징수의 법제화를 요구하였으나 각각 관리주체가 되는 법률이 다른 관계로 법제화까지 이루어지지는 못하고 행정지침 수준에서 합의하여 시행되게 되었다[19] 강제 징수한 문화재 관람료를 부당이익으로 보고 반환소송을 하여 승소한 사례들이 있다[20] 사실 이건 권선징악 수준의 카더라 통신이지만, 이런 성격의 소유자 치고 안 망하는 게 이상할 수도. 조선조 폐사되어 무덤이 된 연기사의 경우, 무덤을 쓴 사람(전라감사라고 한다*)이 관군을 동원해 사찰에 살던 승려 수백 명을 삶아 죽이고 절자리를 차지했다는 전승도 있다. 현재 그 무덤은 대가 끊어졌는지 돌보는 이가 없어 완전히 퇴락하여 수풀이 우거졌다. 인과응보라면 인과응보일까. 연기사에 있던 사천왕상은 현재 영광 불갑사에 있는데,*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사천왕상 중 손에 꼽을 정도로 예술적인 사천왕상으로 꼽힌다. 절 입구를 지키는 사천왕상이 저 정도인데 사찰은 얼마나 아름다웠을지를 생각하면 한국 종교사/미술사/건축사적으로 연기사의 폐사는 엄청난 손실이라 할 수 있다.[21] 풍수가들의 말에 따르면, 절 자체를 태운 것은 아니고 절이 기운이 흐르는 곳에 위치해 기운을 막아서 불태웠다고도 한다[22] 일설에는 이때 백운학이라는 승려 겸 관상가가 흥선대원군이 고종을 세우는 데 관련된 예언을 했다고 한다. 참고로 백운학은 관상을 잘보기 위해 스승 일허선사의 조언에 따라 한쪽 눈을 희생했다고 전해진다. 오딘이냐?[23] 경전선 복선화 공사 완료에 의해 2016년에 폐역되었다.[24] 지금의 북한 강원도 고산군 소재. 원래 이름은 석왕사역이었으나 북한 정권 치하에서 광명역으로 이름이 바뀌었다.[25] 도쿄타워 옆에 위치한 그 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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