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 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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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배경3. 전개4. 화약 후

1. 개요[편집]

동학 농민 운동 당시 전주성을 점령한 농민군과 정부가 맺은 약조. 火藥이 아닌 和約이다.

2. 배경[편집]

황토현 전투 , 황룡촌 전투 에서 관군을 격파 한 동학 농민군은 전주성을 점령하기에 이른다.

이에 놀란 조선 정부는 청군에 농민군 진압을 위한 원병 파병을 요청한다. 하지만 텐진조약을 빌미로 일본군 까지 조선에 들어오고 만다.

이에 놀란 조정은 다급히 농민군과 화약을 맺어서 청군과 일본군이 모두 물러가게 할 것을 기도하였다. 톈진조약에 의거하면 조선의 변란이 진정될 때 양국 모두 즉시 병력을 철수하여야 하며 잔류하지 못한다는 조항이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농민군은 말 그대로 농민이므로 농번기가 다가오므로 모내기를 하러 떠나야하고 반 외세의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청군과 일본군이 온다 하니 원래의 목적과는 정 반대의 상황이 벌어진 것.

3. 전개[편집]

전봉준은 음력 4월 19일 중앙군을 이끌고 내려온 초토사 홍계훈에게 정장을 보냈는데 '억조(億兆)가 마음을 같이 하고 온 나라가 의논을 모아 국태공(흥선대원군) 을 모시고 부자 사이의 윤리와 군신 사이의 의리를 온전히 하여 아래로는 여민을 편안히 하고, 위로는 종묘사직을 보전하는 것이 우리의 지극한 소원입니다. 장차 죽음으로써 맹세하고 변치않을 것이오니 엎드려 비옵건대 굽어 살피옵소서'라는 내용이었다.

요약하자면 -흥선대원군 돌아오고 탐관오리 때려잡아주면 얌전히 있을게요-

홍계훈은 동학 농민군을 때려잡으러 왔는데 정장을 받고 멈칫한다. 음력 5월 8일 홍계훈과 농민군 지도부는 강화를 맺는다 이때 전봉준은 폐정 개혁안 27개조를 내놓았고 , 이에 관군 대표인 홍계훈이 무조건 수용함으로써 전주화약이 성립되었다.

4. 화약 후[편집]

농민군은 대부분 해산하고 동학군은 각 지방에 집강소를 설치하여 잘못된 정치의 개혁을 위한 행정 관청 구실을 하게 하였다.

집강소는 농민 자치기구로서 전라도에 53개가 설치 되었고 관찰사가 협력했다

설치 과정에서 김개남은 5~6만 명의 농민군을 이끌고 집강소 설치에 반대하던 남원 부사 이용헌과 나주의 현령들을 살해하여 그곳에도 집강소를 설치했다.
농민군은 전주성에서 철수한 후
5월 11일경 순변사 이원회에게 '전라도유생등원정' 14개조
5월 17일경 '원정열록추도자' 24개조
5월 20일경 장성에서 전라감사 김학진에게 '개혁안' 13개조 등을 제시하였다.

동학농민군이 이때 내세운 폐정 개혁안

동학교도와 정부는 서정(庶政)에 협력할 것
탐관오리 숙청
횡포한 부호 처벌
불량한 유림과 양반 처벌
노비문서 소각
7종의 천인에 대한 대우 개선
과부 재가 허락
이름 없는 잡세 폐지
인재 등용, 문벌 타파
일본과 간통하는 자 엄벌
공사채(公社債) 면제
토지 평균 분작
— 폐정개혁 12개조


정부는 화약후 교정청을 설치한다


우리 정부는 왕명을 받들어 교정청을 설치하였다 당상관 15명을 두고 먼저 폐정 몇가지를 개혁하니, 모두
동학당이 주장한 것 이다. 우리 힘으로 개혁하여 일본인이 끼어듦을 막고자 하였다 6월 16일 혁폐 조건을 전국에 보내 시행토록 하였다 - 김윤식 "속음청사"

1. 이포(착취한 세금)가 많은 자는 일절 너그러이 용서하지 말고 법대로 처리하라.

1. 공사채를 물론하고 족징을 절대로 금하라.

1. 지방관은 부임지에 토지를 매입하거나 묘를 쓸 수 없다. 만일 이를 어기면 토지는 몰수하고 묘는 파내어 옮겨라.

1. 채무에 관한 소송은 30년이 지난 것은 받아주어서는 안된다.

1. 각 읍 이속은 신중하게 뽑아 안에 올리고 이를 임명하는 데 만일 뇌물을 써서 법을 위반하는 자는 공금 횡령으로 다스려라.

1. 세력에 기대어 남이 먼저 써놓은 묘를 빼앗는 것을 일체 엄금하고 묘는 일일이 적발하여 세금을 거두어라.

1. 각 읍관에 쓰이는 물건은 시중가격을 따르고, 진상 물품 역시 시중가격의 낮음에 따를 것이다. 소위 관지정(관아에서 알아서 정한 것)은 혁파한다.

1. 부보상 이외에 이른을 칭탁해 무리짓는 것을 각별히 금할 것이다. (사료상 보부상이라는 표기는 안 나온다. 교과서에 나오는 보부상이라는 표기는 일제시대 일본식 표기이다. 부보상이 맞다.)

1. 경각사(중앙의 각 관청) 에서 따로 복정(하급관청에 공물을 배정하는것) 하는 것은 반드시 정부에 보고하고, 만일 사사로이 백성에게서 거두는 이는 반드시 무거운 벌을 내릴 것이다.

1. 원결(토지세)외 추가로 더하거나, 호포 외 더 걷는 것은 금지한다. 만일 드러나면 곧 바로 다스린다.

1. 경우리 역가미는 구례로 시행하고, 20년 이래 가마련은 아울러 거론치 말라.

1. 민고는 혁파하라.

정부는 동학 농민군의 폐정 개혁안을 일부 수용하여 자주적 개혁을 추진하였다

그런데 인천에 들어왔던 일본군이 경복궁 을 습격하고 김홍집 내각을 수립하여 교정청을 폐지하고 군국기무처를 설치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