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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戰爭 / War, Invasion[1]

1. 개요2. 기원3. 원인과 목적
3.1. 전쟁과 경제3.2. 전쟁과 정치
4. 전략과 전술5. 전쟁 대비의 필요성6. 오늘날의 전쟁
6.1. 민주평화론
7. 피해
7.1. 전장에서의 어려움
7.1.1. 극도의 긴장7.1.2. 끔찍한 죽음7.1.3. 낙후된 환경
7.2. 사회적 혼란7.3. 경제적 피해7.4. 민간인 피해7.5. 학살7.6. 전쟁범죄7.7. 전쟁 이후의 피해
8. 전쟁 미화
8.1. 사기를 위한 거짓 선전8.2. 전쟁 낭만주의
9. 전쟁 옹호
9.1. 전쟁은 멋지고 즐겁다9.2. 전쟁은 문제의 유일한 해결책이다9.3. 전쟁은 올바르다9.4. 전쟁은 기술 발전에 도움이 된다9.5. 전쟁은 돈이 된다
10. 인간 이외의 종의 전쟁11. 역대 전쟁 사상자 순위12. 역대 유명 전쟁 목록 (시기순)
12.1. 전투 목록
13. 전쟁의 양상에 따른 분류14. 이미지 및 영상15. 명언16. 창작물 속 전쟁의 피해자들17.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국가적 무력 충돌. 둘 이상의 서로 대립하는 국가 또는 이에 준하는 집단 간에 군사력을 필두로 한 수단을 써서 상대에게 자신의 의지를 강제하려는 행위 또는 그 상태를 말한다.

2. 기원[편집]

흔히 인간의 전쟁은 "유인원 한 놈이 다른 유인원 놈의 싸대기를 후려쳤을 때부터 시작됐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구석기 시대에조차도 전쟁이 있었으리라고 보고 있다.[2] 신석기 시대의 주된 식량 획득 수단은 사냥이 아닌 채집이었으며 농경이 서서히 시작되고 있었는데도 무기가 비정상적으로 많이 나온다. 특정 몇 지역을 제외하면 채집이 여전히 압도적인 효율을 보였으며 서서히 농경을 시작하던 때였는데도 무기가 비정상적으로 많이 나온다. 특히 사냥할 때는 아무 쓸모가 없으므로 대체로 전쟁용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큰 동물을 사냥할 때는 접근하기 어려우므로 긴 으로 깊숙히 찔러서 죽여야 효율적이고, 반대로 작은 동물을 사냥할 때는 을 던지거나 로 쏘아 잡거나 몽둥이로 때려잡아야 좋다. 요컨대 이런 무기의 대량 발굴은 과거에 전쟁이 있었음을 시사한다. 청동기 시대에 접어들면 무기가 훨씬 많아진다.

역사적으로 전쟁이 없었던 때는 거의 없었다. 역사가 기록된 이후 3421년 중 약 268년(약 7%)만이 평화기였으므로[3], 인류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까지 멸망한 국민국가 60개 중 50개가 전쟁으로 사라졌으며,[4]제 2차 세계대전 이후 현재까지 세계에서 전쟁이 없었던 시기는 없었다.

3. 원인과 목적[편집]

전쟁의 원인과 목적은 영토, 자원, 종교, 사상 등 이권 쟁탈의 경향을 띠며, 이후 전쟁은 상대 편에서 이권을 빼앗기지 않으려 무력 투쟁을 하거나, 빼앗긴 것을 탈환하려 하거나, 제3자가 전쟁을 종식시키기 위해 무력 개입을 하거나, 동맹국의 전쟁을 지원하기 위해 개입하는 등 다양하고 복잡한 양상으로 변화한다. 이렇게 복잡하게 변화한 전쟁은 뜨거운 감자처럼 누구도 쉽사리 끝을 맺거나 손을 쓰기가 어려운 상태가 된다.

3.1. 전쟁과 경제[편집]

흔히 '전쟁은 경제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라는 이해가 널리 퍼져 있지만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일례로 20세기 초에는 노먼 에인절(Norman Angell)의 '거대한 환상(The Great Illusion)'을 비롯해 유럽 내 주요 국가간의 긴밀한 경제적 상호의존으로 더 이상 강대국간 전쟁은 불가능해졌다는 자유주의적 관측이 대세를 이뤘다. 그러나 이러한 낙관적 견해는 1차대전을 예측하지도, 설명하지도 못했다. 강대국들은 막대한 경제적 피해를 무릅쓰면서도 전쟁에 뛰어들었다.

경제가 전쟁의 원인과 아주 무관한 것은 아니다. 중세-근대 유럽에서는 전쟁으로 적국의 생산을 빼앗아오는 것이 합리적인(이익인) 것으로 생각했고, 이를 위해 국내의 생산을 쥐어짜 병력을 만들어 전쟁에 몰두했으며, 상대편도 전쟁을 위해 병력을 짜냈을 테니 나도 더 짜내고, 또 쥐어짜낸 만큼 전쟁에서 벌어와야 하니까 군사적인 역량도 키우고, 또 이기려면 자원이 더 필요할 테니까 국내에서 최대한 짜내고... 이런 순환 속에서 근대 유럽국가가 국내 자원을 최대한 짜내기 위해 관료제 등의 행정력과 군사력을 키워서, 그걸 바탕으로 세계를 주도했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경제가 독립적이고 결정적인 전쟁 발발 원인이 아니라 권력을 구성하는 한 하위분야란 사실을 이해하는 것이다. 막스 베버의 지적을 인용하자면, "권력은 사회적 관계에서 한 행위자가 다른 행위자의 저항에도 자신의 의사를 관철시킬 수 있도록 만드는 위치에 있게 되는 확률" 이며, 그 원천(source)은 경제적 능력을 포함하여 무척 다양하기 때문이다.

3.2. 전쟁과 정치[편집]

"전쟁은 정치의 연장"이라는 클라우제비츠의 경구와 "정치란 권력에 관여하려는, 혹은 권력배분에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노력"이라는 막스 베버의 정의를 고려할 때, 전쟁의 제일 큰 발발 원인은 권력(power)이다. 엄밀히 말하자면 케네스 월츠의 지적대로 "분쟁을 조정할 상위 권위체가 없는 무정부적 국제체계 아래서 개별 국가의 생존을 위한 안보(혹은 권력)추구가 전쟁의 구조적 원인"이다.

현대 국제정치학에서 전쟁은 세력균형(balance of power)이 무너졌을 때 발생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이를 뒷받침하는 경험적 근거 역시 풍부하다. 제1차 세계대전은 궁극적으로는 19세기 말과 20세기 초를 전후한 독일의 급격한 국력 신장이 유럽의 세력균형을 뒤흔든 결과였고, 제2차 세계대전은 패전에도 다시 유럽 최강국으로 부상한 독일이 영국과 프랑스의 쇠퇴로 유럽에서 발생한 힘의 진공을 노리고 팽창을 추구하다 맞이한 파국이었다.

홉스의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라는 정의대로 인간은 투쟁하는 존재이다. 그러나 개인간의 갈등은 국가라는 공권력과 법의 형성으로 인해 억제되었으나 그러한 공권력이 존재하지 않는 국가간의 관계는 여전히 그러한 투쟁 상태를 유지하고 있으며 그것이 전쟁의 근본적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전쟁은 그 대가가 너무나도 크며 동시에 결과가 불투명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국가는 이러한 갈등을 조정하는 과정, 즉 국가간의 정치인 외교를 통하여 이를 조정해왔다. 따라서 클라우제비츠의 말대로 전쟁은 정치의 연장이며 다시 말해 전쟁이라는 수단은 국가간의 갈등을 해소하는 행위(정치)의 가장 마지막 단계인 동시에 가장 확실하면서도 도박적인 수단이다. 따라서 현명한 정치인들은 철저하게 국익을 계산하여 외교적 수단을 선택하였다. 조정과 타협을 통해 얻어지는 국익이 전쟁이라는 수단을 선택했을 때 예상되어지는 국익보다 작다고 여겨질 때 전쟁이라는 수단이 사용되야하는 것이다. 이를 가장 잘 구사한 인물로는 오토 폰 비스마르크가 꼽히고 가장 잘못 구사한 인물로는 네빌 체임벌린이 있다.

한편 전쟁 역시 정치에 영향을 준다. 구국영웅은 지지율을 빠르게 상승시킬 수 있으며 패배는 즉시 실각으로 이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전쟁이 벌어지면 정치인들은 신경이 엄청나게 곤두서게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전쟁에서 승리하면 지지율은 거의 만장일치급으로 폭등한다. '전쟁의 승패는 병가지상사'라는 말은 군인들에게나 해당되는 것이고 정치인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 마가렛 대처포클랜드 전쟁의 승전으로, 버락 오바마오사마 빈 라덴의 사살로 지지율을 상승시켰다. 반대로 레오폴도 갈티에리는 포클랜드 전쟁의 패배로, 김일성한국 전쟁의 실패로 위기에 몰렸다. 패전한 아돌프 히틀러가 자살로 생을 마감하고, 이오시프 스탈린은 제 명에 죽은 것도 그렇다. 민주주의 체제에서는 지지율이 중요해짐에 따라 전쟁이 정치에 주는 영향은 더 커졌다.

2500년전에 쓰인 손자병법의 첫 구절에는 이렇게 써있다.

孫子曰: 兵者, 國之大事. 死生之地, 存亡之道, 不可不察也.
손자가 말했다. 전쟁은 국가의 중대사인 군국기무다. 백성의 생사 및 국가의 존망과 직결되어 있는 까닭에 깊이 생각지 않을 수 없다.

전쟁을 가리키는 영단어 가운데 'war'는 정치적 목적을 이루기 위한 전쟁의 속성이 강하다. 한편 'invasion'은 상대 국가의 점령을 목적으로 하는 전쟁을 뜻한다.[5]

4. 전략과 전술[편집]

아군의 피해를 최소화하고 적의 피해를 최대화하여 종국에 전쟁을 이기기 위한 계획이 전략(戰略, Strategy)이고, 그 실행 방법이 전술(戰術, Tactic)이며, 실제 행동은 전투(戰鬥, Battle)를 통해 이뤄진다. 그러나 이러한 분류방법은 19세기 식이고 요즘 서방 군사학계에서는 용병술을 전략-작전술-전술의 3단계로 구분한다.

전략은 국가 최고지도부의 과업으로 국가의 정치적, 경제적, 군사적 차원에서 전쟁에 승리하기 위한 총체적 계획을 세우는 것이며, 작전술(作戰術, operational art)은 전구(戰區, Theater) 차원에서 승리하기 위해 적용하는 용병술을 뜻한다. 일반인들이 말하는 전략은 사실 작전술인 셈이다. 현대적인 의미의 전략은 아예 전쟁터 밖에서 이뤄진다. 일반적으로 현대적 작전술은 군단급까지 적용하는 개념이나, 특수한 때면 사단이나 여단급까지 적용할 수 있다. 전술은 위에서 설명했듯 전투에서 승리하기 위한 부대 지휘 행동으로, 통상 사단급 이하 제대에서 이루어진다.

전략이 전술보다 더 중요하다. 전술적 승리가 전략 성공에 귀결되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만 전략에서 지면 전술적으로 아무리 이겨도 결국 전쟁에서 패배한다. 미군 철수의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구정 공세에서조차 미군과 한국군은 남베트남 내 베트콩 세력을 궤멸시켜 전술적으로는 승리하였다. 그렇지만 정작 구정 공세의 여파로 인해 미국 내 반전주의가 득세하면서 미군은 철수, 즉 전략적 패배(전쟁 패배)를 할 수밖에 없었다.

5. 전쟁 대비의 필요성[편집]

전쟁은 근본적으로 손해이며 가급적 피해야 할 행위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전쟁에 대한 대비와 국방력 확충의 필요성이 부정되는 것은 아니다. 즉, 전쟁을 피하고자 한다면 역설적이지만, 전쟁을 위한 준비를 철저히 해야 한다.

고서 군사론에서 소개하는 “평화를 원하거든 전쟁에 대비하라”는 격언이 있듯이, 전쟁대비가 잘 되어야 주변의 침공이 없는것이다. 사회학적 관점을 봤을 때, 국제사회에선 영구구속력을 가진 상위 권력이 없기 때문에 기회가 생겨서 전쟁을 일으켜 무력으로 무언가를 탈취한다 해도 전쟁을 일으킨 국가의 힘이 막강하다면 제재받지 않기 때문에, 힘의 균형이 무너지면 전쟁이 일어나도 이상한 게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현재 지구상에서 벌어지는 각종 분쟁과 내전은 (역시나)역설적이지만 상호간에 보유한 무력이 어정쩡한 수준에서 비등비등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예를 들어 A와 B중 어느 한 쪽이 압도적인 무력을 보유하고 있다면 전쟁은 발생하기 어렵다. 그리고 A와 B모두가 압도적인 무력을 보유하고 있을 때에도 역시 전쟁은 발생하기 어렵다. 결국 현대의 전쟁은 A와 B가 서로 비슷한 수준의 무력을 보유하였으면서도 그 무력 수준이 변변치 않아 어느 쪽도 상대방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주기 어려운 상황에서 주로 발생한다.

냉전상호확증파괴의 가능성을 지렛대 삼아 전쟁 없이 종료된 것이나, 지구상에서 군사력 밀도가 가장 높은 지역인 동북아시아가 실제로는 전쟁, 분쟁, 테러 위험에서 가장 안전한 지역인 것에서 알 수 있듯이,[6] 일정 수준 이상의 잘 조직된 군대의 존재, 즉 상호간의 일정한 군사력 유지는 확실하게 전쟁을 막는 역할을 한다. 즉 전쟁은 최대한 피해야 하지만 그에 대한 대비가 철저해야만 전쟁을 억제할 수 있다.

6. 오늘날의 전쟁[편집]

아직도 세상에서는 크고 작은 국지전들이 일어나고 있다. 서아시아는 종교, 민족 갈등과 서구 식민 지배국들의 식민유산, IS알카에다 같은 과격 이슬람 근본주의 테러 단체들의 준동과 폭거로 인해 전쟁과 학살,테러가 끊임 없이 이어지며 세계의 화약고로 악명을 떨치고 있다. 아프리카 대륙은 서유럽 열강들이 식민지 시절 민족, 종교의 구분 없이 그려놓은 국경선으로 인해 서구 식민지배에서 독립 후 국가들마다 내전과 전쟁이 끊이지 않고 있으며, 우크라이나에서 일어난 반(反)러 시위는 결국 돈바스 전쟁으로 비화되었고 이를 러-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보는 사람도 있다. 이러한 유명 사례 외에도 여전히 세계에는 치열한 분쟁이 현재진행형에 있다.

한편 강대국 간에는 전쟁은 일어나지 않을 확률이 매우 높다. 현대 세계에서는 전쟁으로 얻는 이득이 전쟁으로 입은 피해를 상회할 수 없을 정도로 전쟁은 그 피해가 크고 유럽의 선진국들은 이미 양차 세계대전으로 피해가 막심한 역사를 가졌고 패권도 상당 위축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강대국과 전쟁한 사례는 6.25전쟁인데 한국과 미국주도의 유엔군이 북한을 수복했다가 중국이 개입하여 전쟁이 벌어진것이다. 6.25전쟁 이후로 강대국 사이의 전쟁은 벌어지지 않았으며 이후 냉전 시대에도 전쟁은 벌어지지 않았다. 특히 핵무기 발명 이후에는 핵전쟁의 위협으로 전쟁을 가급적 피하려고 하고 있다.



동영상을 보자. 쿠르츠게작트의 것.

6.1. 민주평화론[편집]

1990년대 이후 국제정치학자들 사이에서는 통계연구와 질적인 조사를 거쳐 다음의 2가지 사항을 보편적으로 합의했는데 이를 민주평화론(Democratic peace theory)이라고 한다. 반박을 시도하는 사람들이 매우 많고 세부사항을 파고 들어가면 허점도 있지만 현재까지는, 적어도 2차대전 이후에는 확실하게 빗나간 사례가 없다.

  • 민주주의 국가 사이에서는 전쟁이 없는 경향이 있다.

    • 단, 민주주의로의 이행기에 있는 국가라면 전쟁에 취약성이 있다.

  • 민주주의 국가라도 비민주주의 국가와는 전쟁을 한다.


우선 2차대전 이후 최초의 국제전인 한국전쟁은 정부 수립 이후 일단 자유주의로의 이행기에 있던 대한민국이 공산주의 체제인 북한, 중국의 침략에 맞서 UN의 도움을 받아 벌인 전쟁이었으며, 베트남 전쟁, 중국-베트남 전쟁, 이란-이라크 전쟁 역시 양측 모두 비민주주의 체제였으므로 민주평화론에 어긋나지 않는다. 걸프 전쟁,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 이라크 전쟁은 비민주주의 국가가 민주국가인 미국과 벌인 전쟁이고 현재 벌어지고 있는 우크라이나 전쟁도 민주주의로의 이행기에 있는 국가인 우크라이나가 비민주주의 국가에 가까운 러시아와 벌이는 전쟁이라는 점에서 역시 민주평화론에 위배되지 않는다.

대한민국의 경우 대한민국과 전쟁할 확률이 가장 높은 북한민주주의 국가라고는 전혀 볼 수 없기 때문에 민주평화론을 적용하기는 어렵다. 실제로도 직접적인 전쟁만 없을 뿐이지, 80년대 말 ~ 90년대 초의 무장 간첩 침입이나 제2연평해전 등 전투는 간헐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영토에 직접적으로 포격을 가하는 연평도 포격 사태와 같은 일도 일어났다.

7. 피해[편집]

전쟁이 벌어지면 각종 범죄와 비극이 발생한다. J.그라이트는 '모든 인류 죄악의 총합이자 인류 스스로 파멸의 길을 걷는 행위'라고 묘사했다. 전쟁에서는 주로 폭력 위주의 범죄만 일어나리라 생각하기 쉽지만 전쟁은 모든 비리와 범죄를 다 모아놓은 것이다. 그래서 인생을 통틀어 유일하게 적군에 합법적인 제압을 포함한 살인을 허용하고, 살인 외에도 적을 상대로는 사회에서 용인되지 않던 거의 모든 범죄들이 용인된다. 적의 물자를 전리품으로 노획하거나, 적을 속이기 위해 거짓 정보를 흘리거나, 군법으로도 금지된 고문 마저도 복수나 심문이라는 명목하에 암암리에 행해지게 되며, 상대국의 경제를 파탄내기 위해 위조지폐도 뿌려지고, 평시라면 꿈도 못 꿀 주거침입도 아무렇지 않게 이루어지며, 이 과정에서 얼마나 살인, 상해, 강간, 방화, 폭행, 협박이 일어나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구글에 전쟁에 관한 이미지를 검색해 보거나 공수부대원의 죽음을 자세히 표현한 Blood on the Risers 문단을 보면 전쟁의 참상이 어떠한지를 알 수 있을것이다.

7.1. 전장에서의 어려움[편집]

전장은 일반인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러우며 끔찍하다. 어디서부터 날아올지 모르는 총알이 자신 옆에 있는 동료 병사의 머리를 관통하고, 동료병사들이 습격당해 죽는 순간이나, 부상의 고통에 시달려 괴로워하는 모습들을 수개월 혹은 수년 이상을 지켜봐야 한다.

7.1.1. 극도의 긴장[편집]

지뢰가 있을지 없을지조차 모르는 경로를 매일매일 이동해야 하며, 옷도 제때 갈아입지 못하고 샤워나 제대로 된 식사는 기대조차 할 수 없으며 피곤해도 잘 수 없다. 설령 잘 수 있는 시간이 생겨도 언제 적이 습격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불안에 떨어야 한다. 적들은 힘들어서 쉬고 있거나, 밥을 먹고 있거나, 자고 있는 순간을 노린다. 상대방이 무방비 상태에 놓여 있어서 습격하기 쉽기 때문이다. 몇 십 kg가 넘는 장비들을 지고 산지를 오르내려야 한다. 군대에서 며칠 하는 행군을 수 개월, 수 년 반복해야 하는 것이다.

총소리나 폭음은 영화나 게임에서 들리는 소리보다 훨씬 크다. 9mm 구경의 탄환조차 천둥소리처럼 크다. 하다못해 이보다 구경이 작으며 게임이나 영화에서 주구장창 갈기고 쏘는 5.56mm 구경의 소총탄을 쏠 때도 고막을 찢어버릴 듯한 굉음을 낸다. 155mm 곡사포의 RAP탄 사격 시 근방 15m 내에 있으면 실제로 고막이 찢어지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 노출 된다면 단 하루만 지나도 심신이 지치고 피폐해진다. 자신의 목숨이 달려있는 수많은 변수들이 산재한 상태에서 길게는 8~10년을 초긴장 상태로 있는 것은 극도로 고통스럽다. 실제로 세계대전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의 대다수는 가볍든 무겁든 PTSD, 즉 트라우마 증상을 겪었다.

7.1.2. 끔찍한 죽음[편집]

총에 맞아서 부상을 입거나 죽으면 그나마 양반일 정도로 잔인하고 고통스럽게 죽는다. 적군에게 잡혀서 유린당하거나 고문당하고 죽을 수도 있고 포탄에 맞거나 생화학 무기에 피폭되어 죽을 수도 있다. 포탄도 피폭지에서 바로 휩쓸리면 그나마 편안한 죽음이고, 현대전 특성상 포격 사망자의 상당수가 살상반경에서 조금 떨어져 있다가 사지가 떨어져 나간 채로 몇 시간씩 고통받다가 죽는 일이 허다하다. 부상을 당하는 고통은 평소에 부딪히고 넘어져서 다치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 그나마 가벼운 부상에 속하는 총상도 위에 설명된 부상보다 무척 아프다.

갑작스럽게 폭격을 맞거나, 적의 기습을 당해 혼자 낙오된 상태에서 제대로 된 응급조치만 받으면 충분히 살아 남을 수 있는 부상을 치료하지 못하고 몇 시간, 최악의 경우 며칠 동안 신음하다가 상처가 감염되고 곪아가면서 세균에 감염되어 비참하게 죽어가는 경우도 많다. 총알 중 제일 약하다고 알려져 있는 .22 Long Rifle탄에 피탄되어 난 상처도 신체에 심각한 부상을 입히며 회복도 오래 걸린다. 가벼운 부상도 회복되기 위해서는 며칠 가량의 시간이 필요하지만 전쟁이 워낙 급박하게 돌아가는 중이라면 부족한 병력 때문에 완치가 되지도 않았음에도 (신체거동이 불가능할 정도가 아니라면) 바로 전선에 배치되곤 하며, 이 경우 부상병은 엄청난 육체적 후유증과 심리적 고통을 떠안게 된다. 치명상을 입어 가망이 없으면 흑색명찰을 달고 치료도 없이 그냥 버려지게 된다.

기계화 부대, 해군, 공군은 보병보다야는 낫겠지만 크게 다르지는 않다. 기계화 부대는 (대표격인 전차 기준으로 봤을 때)일단 소총탄은 잘 막는다. 그러나 적 전차는 물론이고 적 보병의 대전차 미사일, 공격용 헬리콥터, 대전차 지뢰에 맞으면 전차가 폭발하거나 불이 나는 경우가 허다하다. 설령 그러지 않더라도 무한궤도가 끊어져 사각지대에서 적 보병에게 공격당한다던가, 포탄이 바닥나거나 주포가 못 쓰게 되어 움직이는 통조림이 되어 버릴 수도 있다. 또한 전차에는 화장실이 없다.[7]

해군의 경우는 일단 시설 자체는 그럭저럭 쓸만하지만 한번 격침당하면 그대로 수장되는 것 외엔 방법이 거의 없다. 천안함 피격사건 당시 절반이 몇 명은 시신도 찾지 못했고 탈출하지 못한 다수의 군인들이 침몰하는 초계함에 갇혀 아무것도 못하고 그대로 죽어야 했다. 평시에도 선원들을 괴롭히는 파도나 폭풍우, 배멀미는 두말할 것도 없다. 그리고 죽거나 심하게 다치거나 나쁜 마음을 품은 동료가 있으면 바다에 버려질 수도 있다. 항공모함이나 순양전함 같은 대형 함선에 타고 있으면 격침당할 위험이 배가 된다.

공군이라면 육공해 중 가장 시설이 좋지만[8] 지상에 있을 때 공군 기지나 민간 공항은 제1 목표이므로 공군기지가 습격당할 위험이 높다. 적기에 격추당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7.1.3. 낙후된 환경[편집]

총알이 날아다니는 전시에 제대로 된 화장실은 존재하지도 않는다. 돈많은 미군도 고지 등에 소대단위로 배치되고 철수했다 말았다 하는 야전 전투 진지에서는 제대로 된 화장실 그딴 거 쓰지도 못했다. 수세식 변기와 화장지도 당연히 공산품이니 전쟁으로 난리가 난 상황에선 그냥 아무 곳에나 싸고 묻어둘 뿐이다.

각종 오물뿐만 아니라 환자나 시신도 문제이다. 평상시엔 약국에서 돈내고 당연히 사던 생필품과 의약품의 공급은 끊기고 주거 환경이 파괴된 상황에서 제대로인 생활, 치료는 불가능하다. 또한 이들을 제때 조치하지 않고 방치하면 악취를 풍기고 주변을 오염시키며 전염병의 매개체가 된다. 21세기 들어 위생 문제는 다소 나아지고 있지만 1, 2차 세계대전 당시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국가들이 막장수준의 위생 상태를 보였다. 1차 세계대전 당시 프랑스군의 위생 관련 보고서 기록을 보면 끔찍하기 그지없는 위생 상태를 기록하는데 독일군이 점령했던 지역 또한 더럽기는 마찬가지라고 기록되어 있다. 2차 세계대전의 참혹한 전장이었던 스탈린그라드에서는 땅이 얼어붙은 관계로 시체를 묻지 못해 날이 풀릴 때까지 그냥 방치해뒀다.[9]

게다가 군인으로 징집되고 전쟁상황이 벌어지면 행동 하나하나가 통제된다. 음식을 먹고 싶어도 자기 맘대로 먹을 수 없고, 담배를 피우고 싶어도 맘대로 피울 수 없으며, 힘들어서 중간에 쉬고 싶어도 마음대로 쉬지 못하게 된다. 전시에는 개인적인 행동으로 아군에게 피해를 주는 상황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개인 하나가 행동을 잘못하면 부대 하나가 현장에서 증발해 버린다. 적의 공격을 받아서 숨어있는데 누구 하나가 담배를 피워서 적군들이 담뱃불이나 연기의 냄새로 위치를 알아차려 버리고 박격포라도 쏠 수도 있다[10]. 시간 내에 집결지로 합류해야 하는데 누구 하나가 쉬겠다고 해서 시간을 지체할 수는, 보급을 받을 수 없는 상황에서 배고프다고 식량을 무작정 먹어버릴 수는 없다. 장기 포위전 상황에서 그건 죽음과 동의어다.

미군이 테러와의 전쟁 치를 때 같은 상황이면 장비와 병력의 건강을 관리하면서 싸울 수 있어서 피해가 최소화되기는 하는데, 그 미군도 진짜 전쟁 상황에서는 개별 병사의 희생 같은 건 보상을 철저하게 해주긴 했어도 전쟁 그 시점에는 수백, 수천 명 죽는 것도 크게 의식하지 않았다.

7.2. 사회적 혼란[편집]

또한 치안도 매우 불안정해진다. 물론 침략 당하는 국가 쪽이긴 한데 전쟁이 일어나면 살인은 기본이요, 강간절도는 옵션이다. 전쟁 전에 모범 시민이었더라도 막상 상황에 닥치면 저런 짓을 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특히 전쟁의 포화가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경우, 질서를 수행하는 공권력이 사라지니 무법 천지로 변해 생각하기도 힘든 일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난다. 심지어 질서 체계가 유지되고 있었고 마을 사람들이 서로 다 알고 지내던 연평도 포격 사건 때만 해도 도둑이 넘쳐났다. 홀로코스트 관련 재현작들을 보면 더더욱 심각하다. 아트 슈피겔만를 봐도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주는 척하면서 팔아먹거나 믿었던 동료들에게 팔려가는 등 별의 별 상황이 다 나온다. 즉, 극한상황이라 한 인간의 인격과 윤리관, 생활 양식 등 모든 것들이 부서진다.

평화로울 때 만들어진 법률, 사회적 규율, 도덕적 가치관 등이 총체적으로 붕괴한다는 점에서 전쟁이 사람 사는 사회를 망치는 방법은 정말 끝이 없다. 당장 적의 물자를 노획하면 그나마 다행이지 전쟁 상황의 도덕적 해이와 파괴적 기회주의를 틈타 아군이 써야하는 물자부터 빼돌려 나라와 사회를 지켜야 할 군인이나, 보호의 대상이 되야 할 민간인들은 떼로 굶고 얼어죽는 와중에도 부귀영화를 쌓아 먹는 인간쓰레기들 같이 평시에는 드러나지 않을 악한 인간상이 얼마나 많이 생기는지 역사가 잘 설명해주고 있다.

전쟁은 우리 정치적 공동체의 물리적 생존이란 절대적인 명제로 평상시에는 떳떳하지 못한 일 처리 과정이나 폭압적인 조직 논리를 정상화시키고, 여기서 더 막 나가면 오히려 이를 사회 구성원들에게 권장하기 시작하여 장기적으로 그 사회의 집단적 가치관 자체를 크게 망가뜨려 놓는다.

전쟁이 무서운 까닭의 하나는 폭탄이 떨어지지 않은 곳에도 막대한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다. 우선 간접적으로 경제가 어려워지니 살림이 팍팍하고, 사람이 극히 이기적으로 바뀐다. 특히 본인이 사는 도시가 전쟁의 직접적 피해를 입지 않았다면, 몰려드는 피난민 문제도 심하다. 6.25 관련 문학 작품을 읽어보면 피 튀기는 전장의 묘사도 있지만 인간이 얼마나 비인간화하는지 드러난다. 중학교 때 국어 교과서에 나온 <기억 속의 들꽃>을 보면 주인공의 부모님이 얼마나 악질로 바뀌었는지 알 수 있다. 본토에서 전쟁을 치는 것도 아닌 미국 역시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이라크 전쟁을 치르면서 아메리칸 드림에 대한 회의감, 기성 정당, 정치인들에 대한 분노, 각종 사회 복지 시스템의 붕괴와 이에 따른 사회적 피폐화, 전례 없는 민간 사회의 군사화와 위기의식 확산 등의 사회적 문제를 겪고 있다.

7.3. 경제적 피해[편집]

경제적 피해로는 초인플레이션까지 난다. 독일의 초인플레이션 사례를 보면 벽지보다 지폐가 더 쌀 정도라 벽칠을 돈으로 했으며, 분 단위로 바뀌는 돈의 가치 때문에 레스토랑은 선불로 운영했다고 한다. 무엇보다 전쟁에 쓰는 경제력은 실로 어마어마하니 인플레이션으로 온 국민적인 피해에 더해 국가규모의 거시경제 역시 개박살난다.

전쟁에 쓰는 무기 하나하나는 일반 국민들이 생각하기 힘들 만큼의 고가다. 미 해군에서 함포를 쏠때마다 구호겸 비아냥으로 '또 캐딜락이 날아간다'(One more Cadillac on the way)라고 할 정도로 엄청난 고가다. 그나마 싼 편에 속하는 전차가 최소 몇 십억 원이고 전투기라면 1,000억 원은 기본이다. 소모품 이라고 생각되기 쉬운 미사일도 가장 싼 게 억 단위고 비싼 건 수백억 단위이다. ICBM 개발국들 치고 핵보유국 아닌 나라가 없는 게 괜한 게 아니다. 핵을 장착하지 않고 배치하기에는 가격 대비 효과가 너무 낮기 때문이다. 이런걸 전쟁 때 기본적으로 수천 발을 쏘고 또 쏘니까 경제가 버틸 수가 없다. 대량생산으로 단가 낮추는 것도 한계가 있다.

미군제한전이었던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이라크 전쟁에서 도합 18년(실질적으로는 11년)간 공식적으로 1조 5천 억의 전비를 소모했다. 비공식적으로는 무려 5조 6천 억에 이른다. 조세 저항이 큰 미국의 특성상 이를 세금 인상으로 해결할 수는 없으니 복지 예산이나 기타 예산의 축소를 통해 재원을 확보했을 것이다.

전쟁에 드는 경제적 재화에 대한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1943년 10월. 미 육군 제5군은 이탈리아 미냐노 협곡으로 진격했다. 이곳에 있는 산들은 평균 해발 800m에 경사 60도가 넘는 깎아지른 비탈이었다. 미군은 이곳에서 독일군의 거센 저항으로 1달간이나 묶였고 자연스럽게 그것을 막대한 포격지원으로 풀려 하였다. 5군 포병대의 155mm 곡사포들은 보름간 수십만 발의 포탄을 독일군 방어 진지로 발사했다.

임무교대를 위해 잠시 쉬던 포병들은 심심한 나머지 재미있는 계산을 하나 해보기로 했다. 한 발에 50달러인 포탄의 가격, 대포의 원가와 감가상각, 그리고 그것을 여기까지 나르는 데 필요한 경비와 자신들의 봉급 등을 모두 더한 다음 대충 어림잡은 독일군의 숫자로 나눠본 것이다.

그 결과 이 포격으로 독일군을 모조리 다 죽이더라도 1명당 25,000달러의 거금이 들어간다는 계산이 나왔다. [11]대부분 미국 중서부 시골 출신인 젊은 병사들로서는 평생 한 번도 본 적 없는 거금이었다. 그들 가운데 한 병사가 아주 진지한 얼굴로 의견을 내놓았다.

"내게 좋은 생각이 있다. 산 위에 있는 독일 놈들을 다 불러모은 다음 그 돈을 나누어 주고 집에 가라 하자. 분명 놈들도 기꺼이 동의하겠지. 이건 내가 장담할 수 있다."

7.4. 민간인 피해[편집]

칼과 화살만 있던 시절에는 피해가 군인 내지 점령지의 백성 등으로 극히 적었지만, 전쟁 양상이 다변화하고 항공기와 기술의 발전으로 공간과 시간의 제약이 많이 사라져서 전후방을 가리지 않고 희생이 늘어난다. 오히려 현대전에서 통계를 볼 때 생존기술과 부대 전투력 유지를 위해 애쓰는 군대는 피해가 적고 민간인은 대량으로 죽어나가는 추세다. 거기다 전략전술의 발달로 대규모 전투에선 생산을 맡는 민간지역이 제1순위 폭격지역의 하나이고, 소규모 게릴라전 역시 민간인을 방패로 쓰면서 시간이 갈수록 군인보다 민간인 사망률이 높아지고 있다. 특히 포격 대상이 서울 같은 거대한 도시라면 피해는 더 늘어날 수 있다. 공산군에 의한 학살이 자주 발생했다는 카더라가 있는 6.25 전쟁만 봐도 각각 비율[12]로 치자면 민간인들이 훨씬 덜 죽었다. 단, 아직까지도 각 집단에서의 비율로 치면 당연히 군인이 더 많이 죽는다. 옛날에 비해서 인구가 크게 증가한 것에 비하여 군대 규모는 상대적으로 덜 증가했기 때문에 양적으로 민간인들이 더 많이 죽는 것이다.

현재에는 핵무기와 같은 대량살상무기를 개발하면서 핵전쟁이 일어나면 인류가 스스로 만든 무기의 위력으로 전 인류의 생존이 위험할 지경이다. 냉전 당시의 핵전력 최고조 단계에서도 핵무기가 폭발하면 지구가 박살난다든지, 전 인류가 멸종한다든지 등은 약간 과장된 말이다. 그러나 주요 도시들이 모두 부서지고 국가 행정 및 통치체계가 무너져 기존의 발전이 한순간에 멈추면서 적어도 수십 년, 길게는 수백 년에 걸쳐 열릴 혼돈의 시대가 문제라면 문제. 핵전쟁의 가장 큰 문제점은 핵전쟁 자체의 피해가 아니라 이로 인해 벌어지는 국가 행정체계의 붕괴 및 전사회적 무법사태다. 그런 상황을 표현한 것으로 매드 맥스 시리즈 영화가 있다.

고대의 전쟁도 군인들끼리만 하는 신사적(?)인 전쟁은 아니었다. 아즈텍이나 마야의 전쟁, 혹은 야노마뫼족의 전쟁 등을 보면 농업이 미발달한 사회에서는 전쟁으로 온 민간 사망자의 비율이 현대전에서보다 훨씬 높다. 현대에는 인구가 많아서 더 큰 규모의 살상이 일어나는 것으로 보일 정도. 게다가 전쟁으로 인한 질병, 기아 등으로 사망하는 사람의 비율은 근대적 구호체제가 갖추어지지 않은 고대에도 무시할 수 없는 정도였다. 삼국지관련 문서에 보면 XX난이 일어난 뒤 식인판이 벌어졌다거나, 수습하기 위해 구휼 정책을 펴지만 막장이었다거나 하는 서술을 찾기가 매우 쉽다. 앞의 언급은 이러한 파급 효과보다는 전투로 살상한 인명만을 고려한 것으로 보면 될 것이다.

전쟁이 벌어지면 주로 약자, 특히 그중에서도 약소국 측 민간인이 최대 피해자가 된다. 그동안의 전쟁 결과를 바탕으로 한 통계 결과가 이를 뒷받침한다. 총탄이나 포격에 휘말리거나 약탈당하고 적군에게 죽임을 당할 수 있다. 제네바 조약에는 민간인을 건드리지 말라고 되어있지만 잘 알려진 대로 PKO 중에도 지키지 않는 자들이 허다하다.

따라서 전쟁, 특히 현대 사회에서 전쟁이란 갈수록 의도적으로 후방에서 군수 산업에 종사하는 것도 아닌 100% 무관한 순수한 민간인이란걸 정치적, 군사적 차원에서 배제하는 방향으로 진화해 왔고, 그런 탓에 전쟁은 내가 하기 싫다고 꼭 피해갈 수 없다. 한번 불어닥치면 남녀노소 역시 가리지 않는다. 때문에 내가 관심이 없더라도 어느 정도는 사전지식이 있는 편이 여러 사람들의 미래를 위해서도 좋다.[13]

7.5. 학살[편집]

덧붙여 냉전이 와해한 뒤 이데올로기 문제는 많이 사라졌지만, 6.25 전쟁 당시 북한군과 한국군+UN군이 서로 엎치락뒤치락 할 때, 점령군이 바뀔 때마다 마을(이나 도시)에서 숙청 작업으로 주민들끼리 서로 학살하는 일이 흔했다. 북한군이 점령하면 자유주의, 자본주의 주장한 사람들을 죽이고 다음 날 미국이 점령하면 어제의 공산주의자들을 죽이는 식이다. 몇몇 지역에서는 밤에 게릴라가 점령하면 정부군 측에 도움을 준 사람들이 죽고, 낮에는 그 반대 상황인 초막장이던 일도 있었다. 이 와중에 이념이라곤 전혀 모르는 촌로들까지 같이 휩쓸려서 학살을 겪곤 했다. 그래서 휴전 60년이 넘었지만 그때의 후유증으로 지금까지도 서로를 원수처럼 여기며 전혀 왕래하지 않는 마을들도 있다. 특히 지방 산간지역에서는 모두 같은 날 죽어서 마을 제사를 한날에 같이 하는 때도 많다.

이러한 학살에 관하여 또 전쟁이란 상황이 인간성을 어떻게 파괴하는지 고찰해 볼 여지가 있다. 한국전쟁 당시 마을 하나 하나 찾아다니며 양민학살을 저질렀던 남북 양측, 15년 전에 딱 그 선례를 남긴 스페인 내전을 비롯한 전간기 유럽의 각종 민족, 이데올로기적 분쟁, 현대 중동,아프리카의 조직화 된 학살은 양민들이 누구편인지 확실하게 만들기 위해 일부러 저질렀던 것이다. 제3자, 중립 세력, 휘말리기 원치 않는 사람들을 조직적으로 자기 진영에 들어 간다는 선택을 강제하기 위해 학살을 의도적으로 사용했다는 점은 거의 모든 근현대사의 내전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현상이다. 전쟁이라는 상황은 이렇게 인간의 목숨을 기만의 도구로 취급하는 것을 당연하게 만든다.

7.6. 전쟁범죄[편집]

전쟁에 관하여 전쟁터에서 무엇이든 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오해도 많다. 대한민국 정부수립 초기나 한국전쟁 때에 제주도나 신천군, 보도연맹 사건 등 각지에서 벌어진 차마 필설할 수도 없는 군경이나 서북청년단 등 우익 자경단에 의한 그 무수한 양민학살사건(다만 인민군과 좌익 무장대에 의한 학살도 분명 존재했다)들도 이 사람들은 '전쟁이라는 특수한 상황 속에서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고 '애초부터 의심을 사고 다닌 놈들이 나쁜 거 아니냐'며 책임을 돌려버리기 일쑤다.

그러나 전쟁 중에도 정도를 벗어난 일들을 하면 비판을 받으며 현대에는 전시국제법도 형성되었다. 북한이나 소말리아 같은 나라의 군사 지도자들이 아니라면 일반적으로 정도에 벗어난 짓을 하는 군인들을 처벌하는 걸 당연하게 여기는 의식과 군법이 있다. 과거보다는 많이 나아져서 승전국 군대여도 전시국제법을 어기거나 하면 자체적으로 전범들을 처벌을 하거나 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7.7. 전쟁 이후의 피해[편집]

"전쟁터에서 나는 더 나은 사람이 됐소...... 확실히! 내가 전쟁터에서 훨씬 괜찮은 인간이 된 건 사실이오. 그런 고초를 겪었는데 당연하지 않겠소? 수많은 고통을 봤고, 나 자신도 많은 고통을 겪었소. 그곳에선 살아가는 데 중요하지 않은 것들은 금방 제거돼버리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거든. 그곳에서 그걸 깨닫게 됐소......"

"하지만 전쟁도 우리에게 앙갚음을 했소. 우린 그 사실을 인정하기를 두려워하지만...... 전쟁이 우리를 쫓아와 나란히 가고 있소...... 우리 딸내미들 중에는 불행하게 사는 아이들이 많소. 그건 전쟁터에 나서 싸운 엄마들이 자기들이 살았던 전장의 방식으로 딸들을 키웠기 때문이오. 아빠들도 마찬가지고. 전선의 윤리로 말이오. 전쟁터에서 사람은, 당신한테 이미 말했듯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어떤 가치를 지닌 사람인지 단박에 드러났소. 그곳에선 감출 필요가 없었거든. 우리 딸들은 세상엔 다른 방식의 삶도 있다는 것을 상상도 못했소. 전쟁을 겪은 부모들이 딸들에게 이 세상에 감춰진 추악한 이면은 알려주지 않았으니까......"


- 사울 겐리호비치, 레닌그라드 공방전 당시 소련군 보병 중사.

사실 전쟁 그 자체로 인한 피해는 크지 않을 때도 많다. 상대가 제정신을 가지고 있으면 복구를 할 수도 없을 정도의 피해를 입히려고 하지는 않는다. 민족 또는 국민 말살 같은 건 생각보다 경제력과 인력, 기회비용이 많이 소모가 된다. 특히 민족주의의 발흥 이후 집단의 조직 능력과 저항력이 크게 향상되었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다. 인프라 역시 복구가 불가능할 정도의 피해를 입히는 것보다 그걸 이용하는 편이 훨씬 이익이다. 실제로 2차 세계대전 때도 추축국을 제외하면 의외로 많은 도시들이 멀쩡한 편이었다.

인명 피해 역시 현대에는 상대를 다 죽이려고 전쟁을 내는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에 보통 그렇게 심각한 편은 아니다. 보통 징집된 성인 남성 세대가 전멸한다 해도 20대나 30대 남성에 한정되기에 그 이전 세대와 다음 세대를 이용하는 걸로 대체가 충분히 가능하고, 여차하면 여성 노동력을 재건에 투입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독소전쟁과 같이 극단적인 경우라면 이야기가 다르지만 이건 나치의 공식적이고 계획적인 민간인 학살정책이 크고, 다른 나라는 그 정도 상황에 이른 사례가 없다.[14]

민족을 말살하고 도시들을 다 초토화시키는 일들은 과거에나 일어나는 편이었는데, 활동 범위가 좁아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국가들이 근본적으로 적기 때문에 국력을 굉장히 낭비해도 다른 세력들을 요즘처럼 신경 쓸 필요가 없는 고대 제국들 혹은 역청야전술까지 쓸 수 있는 과거 유목민들이나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이들도 도시에서 대량학살을 한 경우는 흔하지 않고, 주로 농촌의 경작지를 초토화시키며 도시 인구도 말려죽이는 형태였다.

전쟁 피해를 복구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자국이 전쟁터가 되었다 해도 평균 수년 가량이다. 예컨대 한국전쟁으로 인한 피해는 전후 복구가 전쟁 전부터 이미 후방 지역에서는 시작됐고, 휴전과 동시에 서울을 비롯한 전방지역도 복구에 착수하여 아무리 늦게 잡아도 1955년 즈음에는 전쟁전 수준으로 복구가 완료되었다.[15]

그래도 전쟁이 문제가 되는 건 심리적인 충격과 더불어 앞서나가는 다른 국가들에 비해 뒤쳐지는 것 자체로 인한 국민들의 빈곤 의식 때문이다. 다른 나라들이 앞서 나가면서 상대적으로 경쟁력이 떨어짐에 따라 국민들의 상대적인 생활 수준은 떨어지기 마련이고, 또한 전쟁을 치른 결과 형성된 심리적 충격은 이후 그 사회를 한 세대 이상 트라우마에 빠뜨리는 결과를 낳는다. 또한 정신적으로 국민들이 패전했다면 패전에 대한 원인을 찾거나, 승전했어도 보상 받은 게 희생에 비해서 적다고 느끼면 집단적 극단주의가 판치기 쉬운 정치적 환경이 마련된다. 반공주의가 팽배하던 1950~1980년대의 대한민국을 생각하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낙후된 경제와 혼란한 정치에 대한 불만으로 공산주의파시즘이 전세계를 휩쓸었으며 결국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홍역을 다시 한 번 치루어야 했다. 이렇게 전쟁이 당사자들의 인간성을 말살하고, 사회를 폐쇄적이고 편집증적인 불안감에 몰아 넣고 일상적인 도덕관이 마비시키면 극단주의가 퍼지기 쉬운 환경이 된다. 시리아 역시 시리아 내전을 거치면서 자국민을 학살하는 아사드 정권과 제노사이드를 일삼는 ISIL의 대결로 변질되었다.

8. 전쟁 미화[편집]

애초에 전쟁 영화랑 완전히 일치하는(=멋진) 전쟁은 역사상 단 하나도 없었다. 참전 용사들이 전쟁 영화를 절대 안 본다는 게 괜히 나온 말이 아니다. 이상과 현실의 괴리가 너무나도 심하며, 표면적으로 내세우는 명예와 다르게 명예스럽지 않은 일들이 훨씬 더 많이 터지고,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동부 전선을 비롯한 20세기의 이데올로기가 체계화된 집단 증오가 끼어든 전쟁들은 비무장 민간인 학살 같은 명예와는 정반대의 것들이 오히려 일상화된다.

8.1. 사기를 위한 거짓 선전[편집]

심지어 나폴레옹 같은 영웅들조차 병사들을 징발하기 위해 전세가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음에도 이기고 있다고 거짓 선동을 하기도 했으며, 현대에도 정확한 자료 수집을 위해 재조사를 해보면 어른들의 사정으로 인해 어이없는 일들이 많이 일어난다. 예를 들어, 베트남과의 전쟁에서 미국과 중국의 전략가들은 자신들에게 유리한 보고를 해서 필요한 군인들이나 물자를 지원받기도 했으나 그들의 보고에 의하면 곧 이길 것 같은 전쟁이 도무지 끝나지 않자 조사를 해보니 결과적으로 최소한 당시에는 전혀 그렇지 않은 것으로 판단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때 일본군 역시 적의 일부 군함을 격침시켜놓고 말도 안 되는 전과로 부풀렸고 그걸 진짜 믿은 상부의 지시에 의해 레이테 해전이 벌어져 개박살이 나기도 했으며 병사들에게는 중국 역시 짧은 기한 안에 끝을 낼 수 있다고 선전했으나 항복시키려고 온갖 짓을 다해도 적이 항복할 생각을 하지 않아 병사들이 맛이 가기 시작했다.

심지어 베트남 전쟁이나 6.25 전쟁 등의 장군들의 회고록을 보면 우리나라도 그런 문제에 있어서 자유롭지는 않다. 다른 나라들도 마찬가지라 군사 교류가 자유롭고 투명하게 되면 작전 계획서나 각종 보급률 등을 보고 주작들이 들통날 가능성이 높다. 6.25 참전 우방국들도 전설적인 업적들이 있는데 이 역시 곧이곧대로 믿기 어렵다.

8.2. 전쟁 낭만주의[편집]

1차 세계 대전 당시 애국심에 불타올라 군 입대를 자원했던 수많은 젊은이들과, 오랜 평화로 마땅히 전쟁을 겪어 본 적 없는 벨 에포크 시대 유럽의 중장년층 세대들이 실제로 이런 비스무리한 생각을 했었는데 실제로 당대 많은 사람들이 전쟁에 대한 명예, 영광 따위의 낭만적인 서사시적 인식을 품고 있었다. 그들이 알고 있는 전쟁은 소설에 나오는 멋진 전쟁영웅 주인공의 일대기나 당시의 영화에 나오는 영광스러운 조국 군대의 돌격 장면에 패퇴하는 적군들 따위의 수준이었다. 물론 그 입대한 젊은이들이 전선에 도착하자마자 그 환상은 완전히 산산조각났다.

2차 세계 대전과는 달리 후방의 민간인 지역에 대규모 전략폭격을 하는 개념이 아직 발달하지 않은 시기였기 때문에 가끔씩 포격이나 폭격이 있긴 했어도 비교적 평화로웠던 후방의 민간인들은 여전히 전쟁터의 지옥같은 시궁창에 대하여 모르고 있었고 심지어 도시에선 공원에서 참호전 놀이까지 즐기고 있었다. 총력전이 길어지며 후방 역시 경제난을 겪고 종전 후 지옥같았던 전쟁터에서 살아돌아온 사람들에 의하여 전쟁의 현실이 알려지면서 이러한 인식은 서서히 사라졌다.[16]

오늘날에는 게임을 통해서 전쟁을 접하고 전쟁을 재밌는 것으로 착각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게임을 통해서는 민간인의 피해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으며 게임을 통해 죽는 사람들이 누군가의 가족이고 하나의 인간일 것이라고 생각할 수 없다. 적이니까 죽이고 아무 생각도 하지 않을 뿐이다.

9. 전쟁 옹호[편집]

전쟁의 끔찍함은 매우 자명하지만 전쟁의 일부분 또는 전쟁 그 자체를 옹호하는 전쟁광들도 있다. 아래는 이러한 전쟁 옹호론의 주요 주장들을 정리해놓은 글이다.

9.1. 전쟁은 멋지고 즐겁다[편집]

"전쟁이 났으면 좋겠다" 라는 주장은 단순히 게임을 좋아하는 청소년부터 어떤 정치적 분쟁을 해결할 방법은 전쟁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극단적인 사람들까지 넓은 스펙트럼에 걸쳐서 나타난다.

이는 대체로 전쟁의 끔찍함에 대해 무지하기 때문에 일어난다. 대개는 전쟁을 전혀 겪어보지 않았거나 자신에게는 그럴 일이 없다고 믿는 세대들의 생각이다.[17] 이에 관하여서는 피해 문단 참조.

또한 미디어에서 전쟁을 미화하는 것과도 관련이 있다. 미디어에서 무기를 맞대고 대결하는 양상으로 그려지곤 하는 전쟁은 사람들의 원초적인 '대결' 심리와 파괴 본능을 자극한다. 이러한 전쟁을 미화한 미디어나 게임을 많이 접하며 자란 아이들은 전쟁을 두려워하지 않고 심지어 낭만적이거나 열혈적이라고 생각하고, 일부는 전쟁이 일어나길 바라기도 한다. 자세한 것은 8.2 문단 참조. 실제로 전쟁이 일어나지 않더라도 군대에서 훈련만 받아도 7.1에서 다루는 전장에서의 어려움을 경험할 수 있다.

밀덕들을 이 부류에 속한다고 보는 사람들도 있으나 밀덕들도 자신이 좋아하는 무기가 실제로 쓰일 때 어떤 위력을 갖고 있는지 잘 알고 있고, 그래서 밀덕 중에도 전쟁을 옹호하지 않는 사람들이 훨씬 많다. 우스갯소리로 밀덕들은 전쟁을 자기가 좋아하는 무기가 부서지니 더 싫어한다는 말도 있다.

9.2. 전쟁은 문제의 유일한 해결책이다[편집]

전쟁이 '우리'가 속한 정치 공동체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쟁만이 최선의 방법이라는 주장이다.

조지 W. 부시 시절 네오콘 강경파들 역시 이러한 부류이다. 그러나 이들은 자신들이 권력을 잡고 있을 때에만 전쟁이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주장하고 반대하는 사람들은 비애국자로 몰아가기 때문에 전쟁광이라고 비판받았다. 여러 나라의 극단적 정치 세력에게서 의외로 자주 볼 수 있는 주장인데, 우리나라의 경우 일부 극우 세력이 북한과의 분쟁을 전쟁으로 해결하자는 북진통일론을 주장한다. 또 ISIL에 의한 테러 피해를 입은 국가들은 테러리스트와의 전쟁을 일으켜 씨를 말려야 된다고 주장한다.

남은 해결 수단이 정말로 전쟁뿐인 경우도 있다. 방어 전쟁도 이에 해당된다. 적이 전면적으로 침략해오면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대개 맞서싸우는 방법밖에 없기 때문이다.[18] 또한 2차 세계대전 역시 뮌헨 협정 당시 영국과 프랑스가 공세를 취했다면 독일이 항복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유가 어찌되었건 전쟁은 필연적으로 이기는 쪽도 피해를 입기 때문에 문제 해결을 위해 전쟁을 할 수 밖에 없는, 최후의 상황에서나 고려해볼 옵션이다. <손자병법>의 저자 손무조차도 최선의 승리는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임을 강조하고 있다.

"그 정도는 별거 아니야. 전쟁이 옳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마을이 공격을 받는다면 우리도 지키러 나가야지."


-존 둘리틀, <둘리틀 선생의 바다 여행> 중

사회 구조의 개혁을 원하는 자들 중 전쟁이라는 방법을 찾는 자들 또한 있는데, 집이 한두 군데가 삐걱거린다고 집을 불살라버리고 다시 지을 생각을 하는 꼴이다. 심지어 전쟁으로 국가가 처음부터 시작한다고 해도 나라가 나아진다는 보장 역시 없다. 전쟁으로 사람들이 죽더라도 남은 사람들의 정신이 개혁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가끔 전쟁이 없었다면 인류의 숫자가 천문학적으로 불어나 지구가 인류 포화 상태에 빠져 엄청난 문제들이 발생했을 것이라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3차 세계대전이 일어나도 인류의 폭발적인 증가를 멈출 수는 없다는 결론을 얻었다. 인구 밀도 문서 참조.

9.3. 전쟁은 올바르다[편집]

상무(尙武)적인 가치관을 가진 민족 집단 사이에서 간혹 나타난다. 바이킹북유럽 신화에서는 전투로 죽은 사람들을 위한 곳인 발할라가 따로 마련되어 있어서 영원한 전쟁을 즐길 수 있다는 게 하나의 예. 일본 역시 무인 집단이 집권한 막부의 역사적 경험이 있어 전투 자체는 명예롭다고 보는 가치관이 있다. 대체로 힘 자체를 숭상하는 경우로 힘의 우위를 판단하기 위해 일종의 결투와 같이 어떠한 행위는 비겁하게 여겨져 피하는 등의 규칙이 생겨난다. 춘추전국시대 당시 초나라가 강을 건널 때까지 기다려줬다가 패배한 송양공의 송양지인(宋襄之仁)의 사례를 들 수 있다. 이러한 규칙은 외부 세력에 의해서 파괴되기도 하는데, 원나라의 일본원정에서도 일본인 사이의 전쟁 규칙에 익숙하던 일본군이 종과 징을 치면서 진격하는 것이 패배를 초래했다. 이렇게 규칙화된 전쟁과 전투에서 살상력을 제거한 것이 스포츠로 정착하기도 한다.

그러나 전쟁의 끔찍함은 잘 알려져있기 때문에 대체로 본인들이 행하려는 전쟁에 한해서 올바르다는 것을 주장하기 위하여 명분을 마련한다. 대부분의 경우 영토 확보이나 세력 확장을 위해 전쟁을 일으켰으면서도 개전 명분을 내세우는 것도 해당 전쟁이 올바르다고 선전하기 위함이다. 성전(聖戰) 역시 올바르다는 믿음 하에 벌어지는 전쟁이다. 그러나 그러한 명분이 설득력이 없거나 보편 윤리에 어긋나는 경우 전세계적으로 비난받는다. 전자의 사례로는 헐 노트가 사실상 전쟁을 강요한 것이라면서 진주만 공습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주장하는 일본 제국이 있다. 후자의 경우 자신들의 영토 확장을 올바른 성전인 지하드라고 주장하는 ISIL이나, 다른 민족들을 아예 열등민족(Untermenschen)으로 간주하고 절멸시키려고 했던 나치 독일을 들 수 있다.

살육이나 잔학행위 등을 벌이기 위해서라는 등 잔혹하고 악한 행위를 의도적으로 추구하려는 경우는 거의 없다. 정도를 넘은 짓들을 했더라도 특수한 시대, 상황에 있었거나 당시 사람들을 정상적인 상태에 있었던 사람들이 아니라 어쩔 수 없었다는 변명을 한다. 위에서 든 나치 독일ISIL과 같이 본인들은 그것이 옳다고 믿을지언정 보편 인류의 가치로서는 용납할 수 없는 경우는 종종 있다. 개인 단위에서도 악한 자들이 위선이라도 갖추려고 하는 것을 보면 이라는 것은 국가 단위에서는 더더욱 드러내놓고 추구하기에 어려운 듯하다.

선하다고도 악하다고도 주장하지 않은 채 전쟁을 일으키는 것도 가능성 중 하나로서는 존재한다. 그러나 7 문단에서 다룬 것처럼 전쟁은 피해가 워낙에 크기 때문에 특별히 가치관을 구축하지 않으면 대개 나쁜 것으로 여겨지기 마련이다. 피해가 작아지는 경우에는 옳고 그름에 대해서 특별히 판단하지 않을 수도 있는데, 개인간의 싸움이 그러하다. 전쟁과는 달리 최악의 사태까지 가봤자 두 사람이 다 죽는 정도이고 이 역시 무척 드물기 때문에 개인이 싸우는 것에 대해서는 그럴 수도 있다며 넘어가는 사람도 많다. 게임이나 영화를 아무리 실감나게 만들어도 전쟁의 악함에 대해서 잘 느끼지 못할 위험이 상존해 있는 것은 이 때문이기도 하다. 가상 매체로서는 정말 사람이 죽는 등의 피해를 구현하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방어를 위한 전쟁은 이 이유로 옹호받을 수 있다. 적의 침략이 이미 벌어진 상황에서 이에 맞서는 것은 국가적 정당방위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침략전쟁을 하면서도 침략을 받은 척 자작극을 펼치는 경우가 많았다. 심지어 동유럽에서 슬라브인을 몰아내고 레벤스라움을 확보하는 것을 게르만족의 역사적 사명이라고 생각하던 나치 독일 역시 폴란드 침공 당시에 폴란드의 기습을 당했다고 위장했을 정도이다. 한편 침략이 일어나기도 전에 침략이 벌어질 것을 예방하기 위한 예방전쟁국제법상 인정되기는 하나 그 용인의 폭이 매우 좁다.

간혹 약육강식의 원리에 입각하여 우수한 국가가 그렇지 않은 국가를 침략하는 것이 응당하다고 생각하는 주장도 있다. 제국주의 시대에는 사실상 약육강식이었던 서구 열강의 식민지화가 횡행하였고 서구 유럽의 근대성을 바탕으로 이를 백인의 의무로 포장하였다. 그러나 능력의 우수성과 지배·복속 관계의 도덕적 올바름을 묶어서 논하는 것은 비형식적 논리 중 범주의 오류이다. 비록 국가간에는 불법적인 행위를 처벌할 세계정부와 같은 기구가 부재하기는 하나, 개인간의 사례로 비유해보았을 때 비도덕적인 일이어도 뛰어난 능력을 요구하는 경우가 있음은 물론이다. 요컨대 '약육강식'이라는 말이 능력의 우수성을 지배·복속 관계의 도덕적 올바름에 결부시키는(=능력이 모자르면 복속되는 것이 옳다) 주장을 담고 있으므로, 위와 같은 주장을 합당화하기 위해선 약육강식이 정말 사실인지를 먼저 입증해야 할 것이다.

9.4. 전쟁은 기술 발전에 도움이 된다[편집]

전쟁과 불화가 인류진화시킨다는 철학이며, 의외로 고대부터 근세기까지 이어진 유서깊은 사상이다. 자세한 내용은 전쟁발전론 문서를 참고.

9.5. 전쟁은 돈이 된다[편집]

일부 말로는 전쟁 중 군수 물자 장사로 이득을 보는 사람과 그 외의 장사로 이득 보는 사람이 많다고 하며, 그건 사실이다. 한 예로 영국의 조셉 시릴 뱀포스라는 사람은 제 2차 세계대전 직후에 '전쟁이 끝났으니 이제 이것저것 고치겠지.' 하는 생각으로 JCB[19]라는 건설기계 회사를 세워 떼돈을 벌었다. 그리고 한국 전쟁이 없었다면 지금의 경제 대국 일본 역시 없었다. 포드 역시 찦차로 전쟁 중에도, 그 후에도 대박을 거두었다. 그래도 당연히 전쟁으로 이득보는 사람은 극소수일 뿐이며. 불이익을 보는 사람이 더 많다.

전쟁이라는 행위가 경제에 도움이 된다고 주장하는 경우도 있다. 전쟁경제 참조. 전쟁이 난다면 고용률이 높아지며 잉여인력과 잉여자산 등은 싸그리 불타 없어지고 사회가 말소되므로 이 위에 새로운 토대를 지을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그러나 이는 통계적 착시이다. 고용률은 생산량과 상당한 비례 관계를 지니고 일반적으로 전쟁으로 인해 손익계산서에서는 생산량이 증가할 수도 있지만 대차대조표를 살피면 순자산은 감소하기 때문이다. 국가 단위의 경제를 판단할 때는 생산량보다 순자산이 더 올바른 지표이다. 예컨대 어떤 원인으로 당신의 집이 파괴된다면 손익계산서에서는 그 건물을 복구하거나 새로운 건물을 건설하느라 생산량이 증가할 수도 있지만 대차대조표에서는 자산이 감소한 것으로 나온다.2차 세계대전은 대공황을 끝내지 않았다도 참조.

10. 인간 이외의 종의 전쟁[편집]

전쟁을 인간만이 한다고 아는 사람들이 있는데 곤충들 중 개미, 흰개미도 전쟁을 한다.[20] 그 밖에는 돌고래나 침팬지, 고릴라 같은 사회생활을 하는 동물 가운데도 "정치" 라는 사회구조가 발달한 종들은 대부분 전쟁한다. 심지어는 사자도 일기토 위주이긴 하지만 전쟁을 한다. 사실 무리생활을 하는 동물들은 대부분 전쟁을 한다고 봐도 무방하다.

전쟁을 벌이는 종들은 자기 집단의 승리를 위해 다른 종을 쓰는 때도 많고, 가끔은 다른 종으로 이루어진 집단과 연합해서 싸우는 종의 벽을 넘어선 연합 전투를 벌이는 일도 있다. 인간의 경우에는 해당 사항이 없다. 애초에 인간의 능력이 넘사벽이기도 하고... 기병이나 코끼리 병, 혹은 불타는 돼지 같은 것은 연합이 아닌 생체 병기로 사용한 것.

11. 역대 전쟁 사상자 순위[편집]

사상자 수가 가장 많았던 전쟁은 당연히 제2차 세계대전이다. 약 7000만 명의 사람들이 죽었고 그 중 소련인, 중국인이 각각 2200만, 2000만으로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2위는 몽골제국의 정복 전쟁. 4천만 이상이 사망했다. 당시 세계 인구 수를 감안하면 그야말로 무지막지한 수가 죽어나간 것. 오늘날의 인구수로 비율을 곱하면 10억 명 이상이 사망한 것이다.

3위는 명청교체기. 명나라 말기의 혼란한 사회상과 만주족의 학살이 겹쳐 2500만가량이 사망했다. 유랑민이 되어 국가의 호구조사에 집계되지 않은 사람까지 포함되어 있을 수 있음에 유의해야 한다.

12. 역대 유명 전쟁 목록 (시기순)[편집]

세계 전쟁 목록

시기

전쟁 이름

지역

기원전 12세기

트로이 전쟁

남유럽 트로이

기원전 500년경 ~ 기원전 448년경

페르시아 전쟁 - 300

그리스

기원전 431년경 ~ 기원전 404년 4월 25일

펠로폰네소스 전쟁

그리스 - 터키

기원전 264년 ~ 기원전 146년

포에니 전쟁

북아프리카 - 남유럽

기원전 206 ~ 기원전 202

초한전쟁

중국

기원전 218년 ~ 202년

제2차 포에니 전쟁

동유럽 - 남유럽

기원전 58년 ~ 51년

갈리아 전쟁

서유럽

85년 ~ 107년

다키아 전쟁

동유럽 - 남유럽

383년

비수대전

중국

598년 ~ 614년

고구려-수 전쟁

동아시아

630년 ~ 751년

이슬람/정복

중동 - 아프리카 - 이베리아

645년 ~ 668년

고구려-당 전쟁

동아시아

670년 ~ 676년

나당전쟁

동아시아

755년 ~ 763년

안사의 난

중국

993년 ~ 1019년

여요전쟁

동아시아

1096년 ~ 1291년

십자군 전쟁

유럽 - 서아시아

1231년 8월 ~ 1259년 5월

여몽전쟁

한반도

1337년 ~ 1453년

백년전쟁

서유럽

1398년 ~ 1402년

정난의 변

중국

1455년 ~ 1485년

장미전쟁

영국

1494년 ~ 1559년

이탈리아 전쟁

이탈리아 반도를 중심으로 스페인, 베네룩스, 프랑스서유럽 대부분 지역

1570년~1573년

4차 오스만-베네치아 전쟁

남유럽 - 서아시아. 지중해 해전사상 유명한 레판토 해전이 이 전쟁 중에 벌어졌다.

1618년 ~ 1648년

30년전쟁

북유럽 - 중유럽, 독일

1640년 12월 7일 ~ 1668년

포르투갈 왕정복고전쟁

1592년 ~ 1598년

임진왜란

한반도

1627년, 1637년

정묘호란 - 병자호란

한반도

1652년 ~ 1674년

(1~3차) 영란전쟁

1701년 ~ 1714년

스페인 왕위계승전쟁

1700년 ~ 1721년

대북방전쟁

스칸디나비아 반도,발트해

1740년 ~ 1748년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

유럽

1756년 ~ 1763년

7년 전쟁

아프리카와 동아시아를 제외한 전세계

1755년 - 1763년

프렌치 인디언 전쟁

북아메리카

1622년 ~ 1890년

인디언 전쟁

북아메리카

1775년 ~ 1783년

미국 독립전쟁

1812년 6월 18일 ~ 1814년 12월 24일

미영전쟁

1803년 ~ 1815년

나폴레옹 전쟁

1801년 ~ 1805년

1차 바르바리 전쟁

1825년 ~ 1828년

500일 전쟁

1846년 4월 25일 ~ 1848년 2월 2일

미국-멕시코 전쟁

1861년 4월 12일 ~ 1865년 4월 9일

남북전쟁

1839년 ~ 1842년, 1856년 ~ 1860년

아편전쟁

1853년 ~ 1856년

크림 전쟁

1866년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

중유럽

1870년 ~ 1871년

프로이센-프랑스 전쟁

서유럽

1877년

서남전쟁

일본

1879년 ~ 1883년

태평양 전쟁(남아메리카)

남아메리카

1896년 8월 27일 9:00~9:40

영국-잔지바르 전쟁

1839년 ~ 1880년, 1919년

영국-아프가니스탄 전쟁

1898년 4월 ~ 12월

미국-스페인 전쟁

1894년 8월 1일 ~ 1895년 4월 17일

청일전쟁

한반도, 요동

1904년 2월 8일 ~ 1905년 9월 5일

러일전쟁

한반도, 만주

1908년 ~ 1912년

알바니아 독립전쟁

1912년 12월 ~ 1913년 8월

발칸 전쟁

발칸 반도

1914년 7월 28일 ~ 1918년 11월 11일

제1차 세계대전

전세계

공백

1/2

서부전선/동부전선

독일

1917년 10월 25일 ~ 1922년 10월 25일

적백내전

소련(구 러시아 제국)

1919년 5월 19일 ~ 1923년 10월 29일

터키 독립전쟁

터키

1927년 ~ 1936년, 1946년 ~ 1949년

국공내전

중국

공백

반장전쟁

대만(타이완)

1939년 5월 ~ 1939년 8월

할힌골 전투

1939년(혹은 1937년) ~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전세계

1937년 7월 7일~ 1945년

1

중일전쟁

중국, 일본

공백

2

서부전선, 북아프리카 전역

1939년 11월 30일 ~ 1940년 3월 13일

3

겨울전쟁

핀란드, 소련

1941년 6월 22일 ~ 1945년 5월 9일

4

독소전쟁

독일, 소련

1941년 12월 7일 ~ 1945년 9월 2일

5

태평양 전쟁

태평양 국가와 인도차이나 반도

1941년 7월

에콰도르-페루 전쟁

에콰도르, 페루

1948년~1956년, 1967년, 1973년

중동전쟁

중동

1950년 6월 25일 ~ 1953년 7월 27일

6.25 전쟁

한반도

1954년~1962년

알제리 전쟁

프랑스령 알제리

1958년 ~ 1976년

대구 전쟁

아이슬란드 - 영국

1962년 10월 ~ 1962년 12월

중국-인도 국경분쟁

동아시아 - 남아시아

1964년~1973년, 1975년

베트남 전쟁

베트남

1969년 7월

축구전쟁

엘살바도르, 온두라스

1969년 3월 12일

중국-소련 국경분쟁

1971년 3월 26일 ~ 12월 16일

방글라데시 독립전쟁

방글라데시

1979년 2월 17일 ~ 1979년 3월 16일

중국-베트남 전쟁

베트남 북부

1979년 12월 24일 ~ 1989년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

아프가니스탄 민주 공화국

1980년 9월 22일 ~ 1988년 8월 20일

이란-이라크 전쟁

이란, 이라크

1982년

포클랜드 전쟁

영국 포클랜드 제도

1986년~1987년

토요타 전쟁

차드

1990년8월 2일 ~ 1991년 2월 28일

걸프 전쟁

이라크, 쿠웨이트

1991년 6월 25일 ~ 1999년 6월 10일

유고슬라비아 내전

유고슬라비아

1992년 2월 ~ 1995년 12월 14일

1

보스니아 내전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1998년 2월 28일 – 1999년 6월 10일

2

코소보 내전

세르비아, 코소보

1996년 ~ 2003년

콩고 전쟁

콩고민주공화국 동부

1차:1999년 8월 26일 ~ 2000년 5월, 2차:2000년 6월 ~ 2009년 4월 16일

체첸 전쟁

러시아(러시아 북캅카스)

1999년 5월 ~ 7월

카길 전쟁

인도, 파키스탄

2001년 10월 7일 ~ 현재

1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

아프가니스탄

2003년 3월 20일 ~ 2011년 1월 23일

2

이라크 전쟁

이라크

2008년 8월

남오세티아 전쟁

남오세티야, 조지아

2011년 2월 ~ 10월

리비아 내전

리비아

2011년 2월 ~ 2018년 현재

시리아 내전

시리아

2014년 ~ 2018년 현재

돈바스 전쟁

우크라이나

2015년 ~ 2018년 현재

예멘 내전

예멘


가공의 전쟁에 대해서는 가공의 전쟁 문서 참조.

12.1. 전투 목록[편집]

13. 전쟁의 양상에 따른 분류[편집]

14. 이미지 및 영상[편집]

파일:10731_19019_4048.jpg
6.25 전쟁에서의 대한민국 육군.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US_Army_soldiers_in_a_firefight_near_Al_Doura%2C_Baghdad.jpg
이라크 전쟁 미 육군 2사단의 작전 모습.

파일:attachment/Screenshot_2014-08-17-11-36-01.png
베트남 전쟁을 추모하는 그림.

파일:external/images.trvl-media.com/Vietnam-Veterans-Memorial-21769.jpg
위 그림의 모티브가 된 '마야 린'의 베트남 기념비다. 베트남 기념비는 일반적 기념비의 형태인 동상처럼 구상적인 형태 대신, 검은색 벽에 새겨진 전사자들의 이름으로 그들을 기념한다. 막연한 벽을 바라보는 관람객은 전사자들의 이름을 보면서 벽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깨닫고, 그들의 희생과 나의 관계를 상기시켜 준다. 단순한 기념비지만 사람들에게 울림을 주는 기념비.


전쟁 중 모든 사람들이 겪는 고통을 다룬 뮤즈의 Aftermath 뮤직비디오.


역사상 있었던 굵직한 전쟁들을 모아놓은 노래.

15. 명언[편집]

파일:나무위키+넘겨주기.png   관련 문서: 명언/전쟁

"모든 전쟁은 내전이다. 왜냐하면 모든 인류는 형제이기 때문이다."
- 프란시스 페네론[21]

인류가 전쟁을 없애지 않는다면 전쟁이 인류를 없앨 것이다.

전쟁이 그토록 끔찍한 것은 잘된 일이다. 아니면 우리는 전쟁을 좋아하게 될 테니까.

16. 창작물 속 전쟁의 피해자들[편집]

17. 관련 문서[편집]

[1] war는 정치적 목적을 이루기 위한 전쟁이며 invasion은 영토점령을 위한 침략전쟁을 뜻한다.[2] 로드 오브 워에서는 "우리의 본성이다. 오죽하면 옛날의 인간 해골에 창촉이 박혀 있었다니까."와 같은 대사도 나온다.[3] 정치적인 목적등과같은 외부요인으로 인해 유실되거나 기록되지못한 전쟁 등을 고려하면 평화의 기간은 더 줄어든다.[4] 이춘근, '대한민국, 흥망의 갈림길에 서다.', 일곡문화재단, 2015, p. 20.에서 재인용.[5] 한국사에서 임진왜란은 전형적인 'invasion'이며 병자호란은 'war'의 성격이 더 강하다고 볼 수 있다.[6] 세계를 권역별로 나누어서 살펴보면 알 수 있지만, 해당 지역 국가들의 (중앙 정부가 통제하는 체계적인) 군비 수준이 낮은 곳일수록, 전쟁, 분쟁, 테러 그리고 범죄조직의 활동으로 인해 사망하는 사람이 많아진다.[7] 메르카바 전차는 임시 화장실로 쓸 수 있는 공간이 있다.[8] 만약 전쟁이 났는데 당신이 공군이라면 전투기를 탈 때 외에는 후방에 있을 가능성이 높다. 괜히 미 공군을 비꼬는 말 중에 U. S. Chair Force란 말이 나온 게 아니다.[9] 그나마의 위안거리는 이런 추운 날씨에선 시체도 얼어붙어서 썩는 냄새가 덜 난다는 사실이다. 물론 봄이 되자마자 썩기 시작해서 모아다 태워버렸는데, 이 작업을 맡은 소련군들의 PTSD도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고.[10] 미국-아프가니스탄에서 실제로 다국적군 상대로 탈레반이 자주 했던 짓이다. 어디서 담배 한 번 잘못 피웠다가 박격포탄이 날아와서 분대가 몰살당한다던가, 은엄폐가 조금 소홀했다가 소부대가 대규모 탈레반에게 포위되어 전멸한다던가.[11] 21세기 현재 가치로도 약 3,000만 원에 가까운 거금이지만 저 당시엔 훨씬 더 엄청난 돈이었다.[12] 민간인은 2,000만 명이 넘어 국군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았는데 사상자가 군인에 비하여 그리 많지 않았다. https://ko.wikipedia.org/wiki/%ED%95%9C%EA%B5%AD_%EC%A0%84%EC%9F%81 [13] 이 때문에 레프 트로츠키는 "당신은 전쟁에 관심이 없을지 몰라도, 전쟁은 당신에게 관심이 있다."라고 말한 바 있다.[14] 하다못해 전쟁을 일으킨 그 독일조차도 그 정도 피해는 입지 않았고, 민간인 인명 손실도 실상을 보면 해외 거주 독일계가 많지, 본토 피해는 공습으로 인한 사망자를 제외하면 얼마 안 된다. 이건 독일 본토로 진입한 소련군이 너무 전쟁을 빨리 끝낸 게 크다. 또한 독일에 대한 도덕적 우위를 확보하기 위해 민간인에 대한 보복을 가능한 한 막았다.[15] 간혹 1970년 즈음에야 복구됐다는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 또한 전쟁 시기 성년이었던 세대가 자리를 잡고 경제성장에 전념하면서 극단적인 반공 분위기가 가라앉기 시작했기 때문일 뿐, 물질적 피해와는 별 관련이 없다.[16] 2차 세계 대전직전의 뮌헨 협정당시 영국과 프랑스가 독일의 깽판에도 머뭇거렸던 이유가 당시 여론주도층이던 중장년층 대부분이 전쟁이 일어날 수 있는 행위를 반대했기 때문이다. 알다시피 당시의 여론주도층들의 연령대는 과거 1차 세계 대전 참전자들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겪었던 끔찍한 일을 아들 세대가 또다시 겪기를 원하지 않았다.[17] 이에 해당하지 않는 대표적인 전쟁광으로는 조지 S. 패튼이 있다. 이사람은 2차 세계대전에 지휘관으로 참여하고, 능력도 뛰어났지만 그놈의 전쟁을 좋아하는 성격 때문에 굉장히 말이 많았다.[18] 제한전의 경우 적도 속전속결을 원하기 때문에 이미 전투가 몇 번 있었던 상황에서도 평화적 해법이 있을 수도 있다. 고려-거란 전쟁에서의 서희의 담판이 대표적인 사례이다.[19] 나무위키에 항목이 개설된 신용카드사와는 관계없다.[20] 다만 흰개미는 종족 특성상 대부분 개미의 침공을 방어하는 방어전인 경우가 많다.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개미와 흰개미와의 전쟁이 최초의 정치적 전쟁이며 개미에 위협을 느낀 흰개미가 공격을 했다고 썼다.[21] 17~18세기 프랑스가톨릭 대주교이자 신학자이다. 자세한 내용은 이곳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