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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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1. 들국화 이전 (1978~1984)
2. 활동 내역
2.1. 들국화 시절 (1984~1987)2.2. 솔로 시절 (1988~2011)2.3. 들국화 재결성 (2012~2013)2.4. 전인권 밴드 결성 (2014~)
3. 사건
3.1. 마약3.2. 표절 논란3.3. 이은주
4. 최성원과의 파란만장한 관계5.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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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전인권(全仁權)

출생

1954년 9월 4일, 서울특별시

본관

정선 전씨

본적

함경남도 북청

가족

아버지: 전호준, 어머니: 고옥순, 큰형: 전세권[1], 작은형: 전태권
배우자 정혜영, 슬하 1남 1녀

학력

서울재동초등학교
명지중학교
명지고등학교 (중퇴)

데뷔

1978년 따로 또 같이 1집 <따로 또 같이>

1. 개요[편집]

록의 전설
페이스북 페이지
(자신의 옛 이야기, 음악추천, 공연 광고 등을 올리고 있다. 글을 읽어보면 전인권 특유의 화법을 느낄 수 있다.)

1980년대 조용필, 산울림, 유재하 등과 함께 청년문화를 이끌었던 가수.

그가 소속되었던 들국화대한민국 록의 스피릿을 결정지었고 그는 그 중심에 서 있었다.

그가 메인 보컬로 참여했던 '들국화 1집'은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 목록에서 유재하 1집을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2000년대에는 여러 실수로 노망난 할아버지로 기억되다가 2011년 들국화 재결성 이후 'King of Rock'으로 다시 부활했다. 하지만 들국화의 드러머 주찬권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들국화가 사실상 해체에 이르게 되어버리자 자신의 이름을 건 '전인권 밴드'를 결성하여 음악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1.1. 들국화 이전 (1978~1984)[편집]

초년 시절 음악 감상실 '쉘부르' 출신으로 전국을 유랑하며 통기타 업소에서 노래하곤 했다. 쉘부르는 이종환이 운영하던 통기타 업소로 1970년대 초 통기타 진영의 중심이었던 '쎄시봉'의 쇠퇴 이후 새로운 통기타 가수들의 중심이었다.

1978년 강인원, 이주원, 나동민과 <따로 또 같이>로 활동하며 '맴도는 얼굴'을 발표하면서 서서히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1979년에는 첫 솔로 음반을 발표하였으나 망했어요... 후에 인터뷰에서 불 태우고 싶었던 음반이라고 하였다.[2] 불 태울 것 까지야...

1980년대 초부터는 세션 기타리스트로 활동하던 함춘호의 소개로 키보디스트 허성욱과 기타리스트 조덕환, 드러머 한춘근[3]을 만나 강릉시의 한 디스코텍에서 밴드를 처음 시작했다. 그러나 한 달 쯤 되었을 때 허성욱의 부모가 찾아와 팀이 해체되었다.

1982년에는 허성욱과 함께 다시 통기타업소인 '까스등' '모노'에서 통기타 음악을 했다. 이 때 '모노'에서 활동하던 최성원을 처음 만났는데, 최성원은 당시 '매일 그대와' 같은 자작곡으로 인정 받고 있었다.[4] 최성원, 전인권, 허성욱 세 사람은 <전인권 트리오>라는 이름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1984년 봄 무렵에 음악적 견해 차이를 보이던 최성원과 전인권, 그리고 허성욱은 전인권의 모친상을 계기로 해산 상태에 들어가게 되었다. 전인권의 회고에 따르면 전인권 트리오의 해체 사유는 다음과 같다.

'최성원, 허성욱과의 활동은 1984년 5월 어머니의 죽음과 각자의 의견차이로 당분간 중단될 수밖에 없었다. 당시 우리 삼총사는 방배동의 '이트'라는 연주실을 연습장소로 택해 쓰고 있었는데 포크록을 하고 싶어하는 최성원, 클래식하길 원하는 허성욱 간에 가끔 마찰이 일곤 했다. 그러던 차에 암으로 오랫동안 앓아 누워 계시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자 그 충격으로 나는 한동안 말을 잃었고 성원이와 성욱이도 잠시 헤어져 있게 되었다.' (일간스포츠 스타스토리 - 전인권 1990)

2. 활동 내역[편집]

2.1. 들국화 시절 (1984~1987)[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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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국화 시절 대중에게 그의 목소리는 충격 그 자체였다. 오죽하면 들국화 최고의 명곡 중 하나인 '그것만이 내 세상'의 금지곡 지정 사유가 다름 아닌 '창법 저속'(...). 참고 세상 다 무너지는 대재앙 창법 레고 밟은 창법 감전 창법[5]

솔로 활동을 시작하기 전에는 판소리 명창들에게 창을 배워서 동굴에서 1년동안 득음 연습을 했다고 한다. 결국 국내외에서도 찾기 힘든 독특한 창법을 지니게 되었다.

1980년대 당시엔 타고난 높은 톤의 목소리로 벨팅을 통해 3옥타브대의 고음을 쉽게 소화해내는 보컬이었다.[6] 당시에는 지금보다 목소리가 가늘고 톤이 높았기 때문에 양희은의 성대모사를 하고 다니기도 했다고 한다.[7] 김현식과 고음 대결을 해서 이긴 적도 있다는데[8] 이는 한영애의 '바라본다'에서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두 사람이 그 곡에서 코러스로 참여했는데, 거기서 초고음의 샤우팅을 내지르는 남성이 바로 전인권이다.
타고난 미성과 피 나게 갈고 닦은 창법으로 당시에는 레드 제플린딥 퍼플, 스틱스 같은 외국 록밴드의 곡 커버를 자신만의 스타일로 부르고는 했다. '아침이 밝아올 때까지', '사랑일 뿐이야', 들국화 라이브 앨범에 수록된 'Come Sail Away', 2집 '조용한 마음', 솔로 1집 '돌고 돌고 돌고', '사랑한 후에' 등에서 리즈 시절 맑고 시원했던 고음역대 보컬을 들을 수 있다.

하지만 같은 해 여름, 조덕환의 권유로 전인권, 조덕환, 허성욱 세 사람이 밴드를 재결성한다. 1984년 겨울에는 밴드 들국화가 결성되었으며, 1985년 6월에는 최성원이 재합류했다.

데뷔 앨범은 1985년 9월 발매되었다. 그동안 들국화의 곡들은 드럼 파트가 없었기 때문에 리듬이 강조되지 않아 포크적인 성향을 띄고 있었지만, 앨범 녹음 과정에서 드럼과 더불어 일렉기타 세션이 추가되었다. 결과적으로 들국화의 곡들은 이전보다 락적인 이미지가 훨씬 더 강화되었다. 여기서 김도균의 증언을 보자면 다음과 같다.

헤비메탈 밴드 백두산, 아시아나의 기타리스트였던 김도균의 회고에 따르면 들국화는 포크 음악으로부터 출발했다고 한다.

'처음 볼 때는 들국화도 3인조였죠, 그런데 조금 독특한 멤버 구성이었습니다. 드럼 없이 어쿠스틱 기타(전인권), 일렉트릭 기타(조덕환) 그리고 베이스(최성원). 사실 처음 보는 형태였죠.[9] 매일 밤마다 연주를 하니까 항상 만나게 되고 또, 농담도 서로 자주 주고 받으며 아주 사이 좋게 지냈었습니다. 그 후 앨범을 내고 국내에서 상당히 유명해졌죠. 사실 음악적인 스타일은 저희와는 달랐습니다. 제가 볼 때는 포크 음악으로부터 출발한 것 같습니다. 그 쪽의 선배들은 한대수, 김민기, 조동진 등 이런 분들로부터 내려온 라인이라고 봅니다. 그래서 rock 과 folk music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함으로 서로 돕게 되는 것입니다. 미국에서도, 밥 딜런 노래를 지미 헨드릭스가 부르는 등 같은 히피 시대의 동지들이죠...' 김도균 홈페이지. 지금은 없어짐.


들국화 1집은 발매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크게 성공하였으며 후에 대중음악 100대 명반 중 1위에 오르기도 하였다.

타이거JK는 전인권에 대한 존경의 표시로 본인의 6집 타이틀 곡인 <소외된 모두, 왼발을 한 보 앞으로!>에서 "소외된 모두 왼발을 한 보 앞으로/ 그 다음은 오른발의 차례/ 눈앞을 향해 행진 '전인권'의 열정 어태킹(Attacking)"이라는 랩을 만들어서 넣기도 하였다. 이 랩에서 언급되는 '행진'은 물론 들국화 1집의 1번 트랙 곡이다.

2번 트랙인 '그것만이 내 세상' 한 곡만 해도 윤도현, 김경호, 김종서, 권인하, 박효신, 이수, 이선희, 소향, 박완규, 김바다, 박정현, 하동균, 김연우, 하현우, 더원, 포지션, 요아리, 정준영, 김필, 김장훈, 김윤태(...) 등의 수많은 가수들이 리메이크하거나 공식 무대 혹은 비공식 무대에서 불렀다.

그리고 들국화는 1987년에 해체되었다.

2.2. 솔로 시절 (1988~2011)[편집]

1988년에 1집 앨범인 '사랑한 후에'를 발표한다. '돌고 돌고 돌고'를 히트시키며 솔로 활동을 시작하였다. 그 후 1989년에는 <전인권과 가야> 밴드로도 활동하였다. 1991년 2집 '언제나 영화처럼'을 낸 이후에는 마약 사건으로 인해서 10년이 넘도록 활동을 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10여년 만인 2003년에 3집 '다시 이제부터'를 발표하고 스카이라이프 CF에도 출연하여 인권이 라이프라는 유행어도 남겼다. KBS 신화창조의 비밀의 삽입곡으로 그의 대표곡인 '행진'이 선정되면서 다시금 재기에 성공하여 2004년에 4집 '전인권과 안 싸우는 사람들'[10]을 연달아 발표했다.

하지만 솔로 시절 20년 중 후기 10년은 대마초와 자기관리 부실(...)로 목소리리즈 시절에 비하면 형편이 없어졌고, 마약 사건을 넘어서 2005년 자살로 생을 마감한 배우 이은주와의 관계에 대한 논란과 스토킹에 가까운 편집증세 때문에 대중적 이미지가 완전히 바닥을 기어가게 되었다.

2.3. 들국화 재결성 (2012~2013)[편집]

2000년대 이은주 사건과 마약 복용으로 인한 투옥, 정신 병원 입원 등 전인권의 인생 말기는 그야말로 막장같이 끝나가는 듯 했으나... 꾸준한 치료로 인해 다시 가수 생활을 시작 할 수 있을 만큼 건강이 회복되었다. 당시 최성원의 말에 따르면, 막장이 되어가던 친구가 너무 안타까웠는데, 어느 날 홀연히 나타나 지금까지 들은 목소리 중 최고의 목소리를 들려줬다고 한다. 결국 2012년 10월을 기점으로 들국화가 드디어 재결성되었다. 이 때 아내와 재결성 재결합도 하고 정신병원에 감금된 동안 성찰도 많이 하면서 사람이 많이 바뀌었다.


이글스 - desperado


딥 퍼플 - Smoke On the Water, 존 레논 - Imagine


들국화 - 사랑한 후에, 그것만이 내 세상
('사랑한 후에'는 전인권이 돌아가신 어머니를 생각하며 쓴 곡이라고 한다.[11][12] 그래서 그런지 '사랑한 후에'를 전인권 만큼 부르는 사람이 존재하지 않는다.[13])

완전 부활이라고 해도 무방... 아니, 원숙미까지 더해졌다!

하지만, 2013년 10월, 드러머 주찬권의 죽음으로 들국화의 활동이 전면 중단된다. 불행 중 다행으로 새 앨범을 위한 주찬권 드럼 파트는 녹음을 마친 상태여서 2013년 12월 주찬권의 유작이자 신보 + 리메이크 형식의 들국화 4집 '들국화'가 무사히 발매된다. 하지만 이후 들국화의 활동은 기대하기 힘든 상태다. 그 이유는 만나면 늘 다투기만 하던 전인권과 최성원의 사이를 중재해주던 주찬권의 역할이 사라지자 둘의 사이는 다시 악화되었고 (재결성 후 자주 하던 카톡도 안 한다고 한다) 둘이서 투맨 밴드 하기도 좀 뭐하기도 해서... 자세한 건 들국화 항목을 참고.

2.4. 전인권 밴드 결성 (2014~)[편집]

주찬권의 죽음으로 들국화의 활동은 중지되었지만 60대의 나이에 다시 불타오른 음악에 대한 열정을 멈추기 싫었던 전인권은 자신의 이름을 필두로 한 '전인권 밴드'를 결성한다. 현재까지 콘서트와 새 앨범들을 내며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다. 전인권 밴드는 2014년 9월 정규 앨범인 '2막 1장'을 내고 2015년 12월 미니 앨범 '전인권 밴드 겨울이야기'를 냈다.

2015년 9월 밴드 활동과는 별개로 후배들(Zion.T, 윤미래, 서정권, 강승원, 서울전자음악단, 갤럭시 익스프레스(Galaxy Express), 구남과여라이딩스텔라, 그레이프 티(Grape T))을 모아 싱글 앨범 '너와 나'를 발표했다.

3. 사건[편집]

3.1. 마약[편집]

전인권은 유독 마약과 악연이 깊었다. 1987년 10월, 허성욱 등과 함께 대마초 흡연 혐의로 구속된 것을 시작으로[14] 마약 관련 구속만 네 번을 더 당했다. 즉, 대마초 흡연 혐의(1987, 1992), 메스암페타민 투약 혐의(1997, 1999, 2008)로 구속 횟수만 총 다섯 번에 달한다. 그 외에도 2004년 10월에는 울산병원 응급실에서 마약 성분이 있는 진통제 투약을 해달라고 요구했다가 전날 같은 약을 투약했다는 이유로 거절당하자 병원의 기물들을 파손하고 병원 관계자들에게 폭력을 휘둘러 경찰이 출동한 적이 있었다. 당시 출동한 경찰이 간이 마약 조사를 실시했으나 무혐의로 훈방 조치만 취했다[15] .

2007년에는 메스암페타민 복용 혐의로 조사 도중 필리핀으로 돌연 출국, 수배 중인 상황에서도 한국인 관광객들과 사진을 찍는 대범함을 보여주었다. 5개월 간 체류하다가 귀국했고, 인천국제공항에서 검거되었으며 필리핀에서 마약을 한 것은 사실이나 한국에서는 하지 않았다라고 주장하였다. 한 차례의 항소 끝에 2008년 3월, 징역 1년과 추징금 546,000원을 선고받았다. 그 때 가요계 후배들과 동료들의 많은 도움이 있었는데 사진작가 김중만을 중심으로 이수만, 윤도현, 김장훈 등 16명이 천만원 정도를 변호사비로 모금하여 주었고, 윤도현김장훈은 변호측 증인으로도 출석했다. 김부선, 조덕배, 정경수 등은 탄원서를 제출하여 구속보다 치료를 위해 선처해 줄 것을 부탁했다.

2008년 9월 6일에 출소했으며 2008년 10월에는 지난 2002년에 이별했던 처와 재결합을 하고 신곡을 작곡하며 콘서트를 준비하는 등 다시 일어서는 듯 하였으나 지병인 대상포진으로 인해 첫 콘서트가 취소되었으며 다시 만난 아내와도 2009년 3월에 다시 결별하였다.

당시 전인권은 대상포진 치료를 위해 투여받던 모르핀에 중독되어 갔다. 한 번에 80알을 먹을 정도로 중독되었던 전인권을 어느 날 갑자기 다섯 남자가 집에 들이닥쳐 강제로 차에 태우고 어디론가 끌고 갔는데 바로 요양원이었다. 당시 헤어져 살던 전인권의 아내가 막장이 되어가던 전인권이 걱정되어 신고했으며 전인권은 그곳에서 치료받다가 2011년 아내가 요양원에서 다시 데리고 나오면서 아내와 재결합했다. 당시 요양원에서 나올 때 전인권이 아내에게 ‘왜 나에게 잘해주는 것이냐. 앞으로 나는 혼자 살아야 할 텐데 지금 당신이 잘해주면 내가 더 힘들어지니 당신은 당신 길로 가라’라고 말하자 아내는 ‘내가 전인권 좋아하잖아’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 말이 전인권에게는 신앙이 되어 이후 마약에서 손을 완전히 떼고 가족과 음악에 몰두하게 되었다고 한다.

대마초 흡연 사건으로 2008년 1월 25일 KBS의 출연금지 명단에 올랐다가 2012년 5월에 해제되었다.[16] 그 뒤 2014년 3월 2일, 배철수가 일요일 밤 11시에 진행하는 KBS의 콘서트 7080함춘호와 함께 출연했다. 여기서 "이제는 몸 관리를 철저히 한다"고 전인권 본인이 직접 말했고, 배철수도 "전인권의 피부가 반짝거린다"고 말한 것으로 보면 전인권 자신도 과거의 잘못을 반성하고 있는 듯 하다.

2012년 놀러와에 출연했을 때 지금은 절대로 마약에 손대지 않고, 가족들의 사랑을 먹으며 살고 있다고 말했다.

이후 방송이나 콘서트에서도 "마약에서 완전히 손을 뗐으며 건강을 위해 금주와 규칙적인 생활을 하고 있다"고 한다.

3.2. 표절 논란[편집]

그의 '걱정 말아요 그대'가 독일 곡인 Bläck Fööss의 Drink Doch Eine Met를 표절했다는 논란을 받고 있다.


  • 영상에서 56초부터 보면 '이 정도면 표절이다'라고 말이 많은데 판단은 개인의 몫으로 남긴다.

  • 4월 26일 전인권은 본인의 페이스북을 통해 "나는 표절 안해요"라고 논란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4월 28일 본인의 페이스북에 "나는 곧 독일로 간다"며 "일단 그 곡을 만든 사람 입장을 충분히 받아들이고 원하는 것을 해결해 줄 것"이라고 밝혔다. "그날(합의가 된날 이후) 로열티를 달라고 하면 적당 선에서 합리적으로 재판하든, 그쪽 입장대로 로열티가 결정되면 한국 저작권협회와 상의해서 줄 것"이라고 말했다.#


'걱정 말아요 그대'의 표절 의혹이 진행되는 와중, 1995년에 발매된 들국화 3집 '우리'가 1984년 발표된 CCM곡 'I just want to praise you'의 표절이라는 의혹이 추가되었다.

안찬용 서울장신대학교 예배찬양사역대학원 교수는 이 논란이 있기 전부터 찬양사역자들 사이에서 두 곡의 유사성에 대한 이야기가 이미 있었다며, 추연중 CCM 전문 칼럼니스트는 8마디의 멜로디와 코드 진행에서 유사성이 발견된다고 밝혔다. #스포츠경향 기사

후배 가수 김경호는 인터뷰를 통해, '걱정 말아요 그대'보다, '우리'의 표절의혹건이 더 문제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전인권 들국화 3집 우리 표절 의혹 원곡 키변경

'I just want to praise you (주를 찬양하며)'
들국화 '우리'

3.3. 이은주[편집]

2005년 여배우인 이은주가 자살하자[17] 전인권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은주와 나는 레옹과 마틸다 같은 사이였다라며 주고 받은 문자 메시지를 공개했다.

이 발언은 많은 논란을 일으켰고 흥미 위주로 끌고 간 언론도 문제는 있다. 이은주의 친한 언니인 하 씨는 '전인권 씨는 이은주가 살아 있을 때부터 이은주의 스토커였다'라면서 하루에 20차례씩 문자를 보내고, 새벽에 전화를 받지 않으면 폭언을 녹음하는 등 스토커 수준의 행동을 일삼았다라고 밝혔다.

또한 이은주의 친오빠는 팬클럽 카페에 글을 올려 '문자 뿐만 아니라 당신과의 교류는 단순한 친분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것을 어찌하여 그렇게 착각을 하면서 이제 고인이 된 은주를 두 번 죽이시는지 가슴이 아픕니다'라는 심정을 전한 후 '그리고 그걸 기정 사실인 양 언론에 떠들어 대는 전인권 씨를 보며, 연민마저 느낍니다'라고 밝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인권은 분위기 파악 못하고 '이은주를 위한 노래 부르겠다'라고 밝혔다. 예상대로 전인권은 대차게 까였으며 대중들이 전인권에게 가졌던 호의는 모래처럼 사라져 버렸다.

이은주를 사랑했는가 안 했는가를 떠나, 이은주가 반박할 수가 없는 상태에서 일방적으로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었다는 점에서 구원의 여지가 없다. 그런데... 이 모든 기사들이 전부 와전된 이야기라는 소리도 있다.(...) 이 모든 것이 언론이 장난질을 친 것이라는 거. 명불허전 기레기.

기사들이 자극적으로, 그리고 내부적인 정의에 입각하여 전인권의 발언을 왜곡시켰다는 저 주장이 사실이라면 분명 의미가 있는 내용이다. 그러나 위의 글 또한 논리적 오류가 있으니, 전인권의 발언이 왜곡되었다 하더라도, 그가 잘못한 건 사실이라는 것이다. 애초에 전인권이 다른 사람에게 욕을 먹은 것은 이미 고인이 된 이은주씨는 어떤 변명도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자신만의 감정을 바탕으로 외부인들에게 증명받기 어려운 이야기를 꺼냈기 때문이다.

윗 글이 지적하고 있는 것에는 크나큰 오류가 하나 있는데, 전인권과 이은주가 사랑할 수 없다는 편견이 있는가?이다. 문제는 전인권의 주장이 팩트라고 해도 자신만의 생각일 수 있다는 것이고, 우리는 그런 사람을 단계에 따라 짝사랑, 혹은 스토커라고 부른다는 것이다...

전인권이 애초에 욕을 먹은 이유가, 윗글에서처럼 전인권이 이은주를 사랑해서가 아니라, 대답할 수 없는 상태의 사람을 상대로 추문이 될 수도 있는 주장을 하면서 자신의 주장을 증명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속된 말로 전인권과 이은주가 정말 남녀 간 어떤 것이 있었다고 친다면 이은주가 전인권에게 보낸 어떤 메시지가 있을 것이 아닌가.

남녀 간의 사이가 아니었다고 주장하려면, 그는 왜곡되었던 언론의 주장을 바로 잡았어야 했다. 남녀사이가 아닌 선후배 사이 혹은 특정 분야에서 같은 감성을 공유하는 사이 등. 그는 자신과 이은주가 남녀 사이였다는 증거도 내놓지 못했고, 언론의 잘못됨을 바로잡지도 않았다. 거기에 이은주 씨의 주변에서는 전인권의 발언 내용과는 전혀 다른 증언들이 흘러나오고 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찌라시 연예인 X파일만 해도 이은주와 전인권의 스캔들 이야기가 있으나 단순한 친구사이라고 기록되어 있었다.

즉, 설령 윗글처럼 중간에 전인권의 말이 언론과 네티즌에 의해서 과다하게 부풀려진 면이 있다 하더라도, 애초에 그가 반론하지 못하는 고인을 상대로 자신의 감정을 마치 사실인듯 증언한 사실 자체의 문제가 없어지는 건 아니라는 것이다. 전인권과 이은주 사태는 그가 불러일으킨 사건이며, 중간의 왜곡이 있다 하더라도, 그는 그 왜곡에 대해서 반론을 전혀 하지 않음으로써 의혹을 더 증폭시켰다. 그건 왜곡한 이의 잘못이기도 하지만, 애초에 그런 뉘앙스의 말을 꺼낸 그의 잘못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전인권 자신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그와 더불어 이미 고인이 된 더이상 어떤 의견도 낼 수 없는 상대인 이은주씨의 문제이기도 하기 때문에, 타인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설령 그것이 왜곡이라 할지라도 바로잡지 않고 입다물고 있었던건 애초에 말을 꺼낸 그의 잘못임이 분명한 것이다.

윗글은 기자들과 네티즌들의 사건의 왜곡에 대해서 분노하며, 그에 대한 반대급부로 전인권을 감싸주는데, 왜곡이 잘못된건 그 사실대로 지적하되, 중간의 내용이 부풀려졌다 하더라도 애초에 그러한 남들이 오해할만한 일을 말한 전인권의 잘못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둘은 별개의 문제이며, 고인에 대한 이야기를 함부로 떠들어 고의였던 그렇지 않던 간에 추문을 만든 뒤에도 입다물고 있었던 전인권에게 크나큰 문제가 있음을 지적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4. 최성원과의 파란만장한 관계[편집]

그의 평생의 동료이자 음악적 경쟁자였던 최성원과는 말그대로 애증으로 점철된 30년의 세월을 보냈다. 흥미롭게도 최성원의 별명 중에 ‘한국의 폴 매카트니’ 가 있는데 전인권을 존 레논에 대입하면 꽤나 그 관계가 들어맞는다. 포크락을 베이스로 하여 대중친화적인 음악을 추구했던 최성원과 락킹한 사운드로 시대정신을 표현하고자 했던 전인권. 각각의 음악 성향도 폴 매카트니와 존 레논에 놀라울 정도로 대응된다. 또한 전인권이 이것저것 문제로 언론사에 구설수로 오르내리고 방황하는 동안 최성원은 가요계 원로로서 별 풍파 없이 안정적이게 지냈고. 심지어 들국화 시절 포지션도 최성원은 베이스 & 보컬 전인권은 리듬 기타 & 보컬이였는데 이것은 정확히 비틀즈 시절 폴 메카트니와 존 레논과 대응된다. 더 재미있는 것은 주찬권의 역할인데, 주찬권은 링고 스타가 비틀즈의 링크(link)였던 것처럼 들국화라는 밴드를 지탱하고 전인권과 최성원을 연결시켜 주었으며 둘 다 밴드의 드러머였다. 주찬권의 죽음 이후 전인권과 최성원은 다시 안녕

놀러와에서 들국화가 한 이야기를 요약하자면 안 싸운 날이 더 적었을 정도로 하루가 멀다 하고 싸웠다고 한다. 그렇다고 심각한 게 아닌 사소한 이유. 예를 들어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 쪼꼬렛 VS 씀바귀 물론 이건 농담일 것이고, 서로의 주관이 너무 뚜렷하면서 각자 음악적 역량 역시 뛰어났기에 충돌하다 보니 사소한 것 가지고도 싸운 게 아닌가 싶다.

이제는 전인권도 오랜 방황의 길에서 벗어났고, 최성원 역시 그것을 인정하고 이해하기에, 무엇보다 다들 이제는 산전수전 다 겪으며 웬만한 평지풍파에는 눈 하나 흔들리지 않을 내공이 되어 서로가 서로를 인정하고 배려하게 된 듯. 애초에 1980년대에 이랬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러나 얼마 전 뉴스룸에서 전인권이 자신과 최성원은 안 맞는다며 앞으로 들국화 재결성은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재결합한다면 베이스 대신 어쿠스틱 기타를 쳐줬으면 좋겠다고...[18]

5. 여담[편집]

라디오에서 앞으로 자신만큼 발전할 가수를 묻는 질문에 원더걸스를 택했으며, 특히 선미를 가장 눈여겨 본다고 말했다.

FC 서울에서 하프타임으로 전인권의 걱정말아요 그대를 응원가로 쓰고 있다. 핸드폰 플래쉬의 불빛을 이용해 N, E, W석 전 관중이 함께 참여하는 응원인데 많은 서울 팬들의 호응을 얻고 있다. 그리고, 2016년 8월 13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슈퍼매치에서 초대 가수로 등장해 3만 6천여 명의 관중들과 함께 행진걱정말아요 그대를 열창했다. 수원의 서포터들은 전인권이 노래하는 중임에도 불구하고 패륜송을 대차게 불렀다. 가볍게 무시하자. 전인권은 자신의 노래를 함께 불러준 FC 서울과 팬들에게 감동하여 감사를 전했고 뜻깊은 행사에 참여하게 된 것에 고마움을 느끼고 이 노래가 FC 서울에 힘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여담으로 하프타임 시간 때문에 말리지 않았으면 한 곡 더 했을 뻔 했다. 다시 돌고 그리고 결국 후반 시작 지연에 영향을 주었다.

SBS 판타스틱 듀오에 출연하여 일반인 '송도 푸드트럭'과 함께 '그것만이 내 세상'을 열창해 7대 판듀에 올랐고 8대 판듀 결정전에서 '사랑한 후에'를 불렀으나 이문세 & 원일중 코스모스의 '그녀의 웃음소리 뿐'에 꺾여 자리에서 내려왔다.

2016년 11월 19일 모이자! 광화문으로! 밝히자! 전국에서! 박근혜 퇴진 4차 범국민행동 집회에 참여했다.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상록수', '걱정말아요 그대', '애국가', '행진', 'Whishing well'을 열창했다. "평화의 시위가 되기를 바란다'고 하였고, "박사모가 한 대 때리면 그냥 맞으세요. 우리 민주주의를 지켜내기 위해서 맞으신 분들이 무지 많으세요."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12월 31일 10차 집회에도 참여하여 '아름다운 강산'을 불렀다. 친박 단체아름다운 강산을 부르는 것에 대해 불편함을 표현했던 신대철이 요청했다고 한다.

그러나 한편으론 19대 대선운동 과정에서 안철수 후보를 지지하는 입장을 밝혔다가 타 대선후보 지지자들의 비방과 뭇매를 맞기도 했다. 특히 진보표심의 분산을 우려한 문재인 지지자들이 거셌다고.

2017년 8월 1일 팟캐스트 정영진 최욱의 불금쇼 101회 1부에 출연했다.

[1] 드라마 연출가(TBC, KBS에서 활동) 겸 연극 연출가.[2] 신해철의 라디오프로였던 고스트네이션에서 말씀하시기를 반주 한큐에 녹음, 보컬 한큐에 녹음 그리고 끝이었다고.(...) 그때는 그랬던 시절이라고 회고했는데 그래서 백두산이라든지 당시를 전후로 한 여러 밴드들도 같은 이유로 1집의 퀄리티에 대한 반응이 좋지 않았다고 한다.[3] 헤비메탈 밴드 백두산의 드러머로 간다.[4] 전인권의 말로는 "굉장히 부드러운 느낌의 아티스트지만 은근히 터프하다"고 한다. "운전할 때 보면 정말 무섭다"고. 덤으로 본인의 무면허 운전 이야기도 했다.[5] 참고 링크의 경우 대마초, 흡연, 지병인 대상포진으로 목 상태가 최악일 때다. 다른 영상의 경우 멀쩡하다.[6] IZM에서 2015년에 임진모가 진행한 인터뷰에서 전인권이 직접 밝힌바에 따르면 지금도 3옥타브 도#까지는 쉽게 올라간다고 한다. [7] 판타스틱 듀오에서 한 말.[8] 놀러와 방바닥 콘서트에서 확인할 수 있음.[9] 트리오 시절의 들국화는 전인권, 조덕환, 허성욱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처음에는 3인조였다가 최성원이 나중에 재합류하게 되는데 김도균 씨는 아마도 허성욱이 후에 들어온 멤버라고 잘못 알고 있는 것 같다.[10] 그 유명한 '걱정 말아요 그대'가 1번 트랙으로 수록되어 있는 앨범이다.[11] 정확하게는 작사만 한 것이다. 원곡은 알 스튜어트의 'The Palace of Versaille'라는 곡이다.[12] 들국화 재결성 이후 MBC '놀러와'에 출연했을 때 다른 멤버들이 소개한 일화에 따르면 'The Palace of Versaille' 이 노래를 들었을 때 "야 이거 인권이더러 부르라고 하는 노래다"라고 느꼈다고 한다.[13] 그나마 음색이 전인권과 비슷한 하동균이 '불후의 명곡'에서 이 노래를 부른 뒤 큰 화제를 일으킨 바 있다. 방송 후 그가 노래부른 영상이 다시보기 1위를 기록했을 정도.[14] 결국 이 사건은 들국화 해체에 영향을 주었다.[15] 역설적이게도 본인의 아내(정혜영)와 동명이인이었던 탤런트의 SBS 공채(정혜영-93년 3기 김지수(본명 양성윤)-92년 2기) 선배 탤런트 한국명(김지수)와 동명이인이기도 한 미국인 군속 킴캐신은 94년 10월 연예인 대마초 사건에 연루되었는데 KBS 1TV 토요 단막극 <인간극장> 11화 '눈뜨고 꿈꾸는 여자'의 여주인공(젊은 김린 역)으로 발탁되어 구설수에 올랐다[16] MBC에서는 명단에 없었다. SBS는 별도의 출연금지 명단이 없는 대신 자체 가이드라인을 통해 결정한다고 했다. 참고로 KBS의 출연금지 명단은 MBC에서도 준용한다고 한다.[17] 공교롭게도 이은주가 나온 드라마 중의 하나인 MBC 불새 출연진에 속했던 배우(정혜영)는 전인권 아내 이름과 동명이인이었다[18] 이유는 팀에 이미 베이스가 있기 때문... 이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