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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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esbyterian Chu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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長老會

에스페란토

Presbiteria preĝejo


1. 개요2. 문화적 배경3. 역사4. 장로회와 개혁교회의 차이5. 특징
5.1. 조직 특성5.2. 신학적 특성
6. 한국의 장로회
6.1. 한국 장로교 분열과정
7. 국내 주요 장로회 교단 목록
7.1. 주요 교단 및 그 성향7.2. 이단 시비가 있는 교단7.3. 장로회 출신 독립교회
8. 스코틀랜드의 장로회9. 미국의 장로회
9.1. 미국의 회중교회9.2. 미국의 화란계 개혁교회
10. 네덜란드 개혁교회11. 나무위키에 항목이 존재하는 인물
11.1. 목회자, 신학자11.2. 장로 이하 평신도

1. 개요[편집]

개신교 분파 중의 하나. 대한민국에서[1] 가장 큰 교파이기도 하다.

우선 장로교는 개혁 교회에 속한다. 칼뱅스위스의 제네바에서 자리 잡았고, 츠빙글리의 죽음 이후 그 뒤를 이은 취리히의 불링거와 공존하며 개혁을 이어나갔다. 그의 뒤를 이어 존 녹스가 스코틀랜드 장로교를, 잉글랜드 개혁자들이 제네바 성경을 번역하여 도입함과 함께 청교도가 되어 회중교회, 독립교회, 침례교 등의 일부를 이루었고, 성공회 개혁에 참여했다. 그리고 베쟈가 스위스 개혁교회를 이끌었고, 네덜란드는 개혁교회가 독립의 구심점이 되었다. 프랑스에서는 위그노라 불렸으며, 바스크족의 독립국이었던 나바라에서는 국교였다. 헝가리에서는 오스만 튀르크의 지배에 가톨릭 사제들이 도주했던 공백을 메우는 구심점이 되어 감독제를 띠고 있다.

장로교는 장 칼뱅의 영향을 받은 스코틀랜드의 종교개혁가인 존 녹스에 의해 창시되었으며, 본래 명칭은 칼빈 장로교였으나 이 이름이 논란이 되어 장로회로 명칭을 바꾸었다. 다른 말로는 칼뱅주의 교회 또는 개혁교회, 재건교회[2]라고 한다.

넓은 의미의 ‘장로교’는 칼뱅의 신학 노선을 따르는 모든 분파를 뜻하고, 좁은 의미의 ‘장로교’는 장로 정치 체계를 갖춘 스코틀랜드 교회(Church of Scotland)만을 가리킨다. 다만 본 문서에서는 대륙식 개혁교회에 관한 서술도 같이 섞여 있다.

신학적 특성상 공식적으로 통일된 상징은 없다. 한국의 장로교단 마크들은 밑의 교단 목록들을 참조할 것. 미국의 경우 미국 최대 장로교회인 Presbyterian Church (USA)를 비롯하여 배경에 성화가 불타고 있는 십자가를 사용하거나[3] 혹은 스코틀랜드 장로교회가 종종 사용하는 불타는 떨기 문양을 흔하게 사용하는 편이다.

2. 문화적 배경[편집]

성공회감리회가 형성된 잉글랜드는 왕이 전체를 다스리는 중앙 집권제를 채택하고 있으며, 앵글로색슨족 특유의 문화 역시도 수직적인 인간관계를 중시하는 면이 있다. 그리하여 잉글랜드의 성공회, 감리회, 구세군은 감독 정치를 핵심으로 하는 수직적인 체계를 갖추게 되었다.[4]

반면에, 스코틀랜드는 주로 산악 또는 고원지대에서 지방 분권적 체계를 형성하고 있으며, 수평적 인간관계와 자유를 중시하는 성향 때문에 교회의 지도자를 회중이 선출하는 방식의 장로회가 각광받게 된 것이다. 스코틀랜드의 경우, 인구 밀도가 낮은 고원과 산악 지대에서 각 클랜(clan)별로 특정 지역에 흩어져서 거주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정치적 배경 때문에 스코틀랜드의 장로교회는 감독 정치가 아닌 장로 정치를 채택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장로교 자체는 고지대가 아닌 비교적 저지대[5]에 속하는 지방에서 시작되었지만 현대에 들어서는 오히려 고지대에 속한 시골 교회들에서 더 원형에 가까운 장로교회들을 볼 수 있게 되었다.

대륙 국가들 중 스위스와 네덜란드도 마찬가지인데, 둘 다 합스부르크 압제와 싸워가면서 왕정주의와 가톨릭 중앙집권제에 대한 반감이 있었던데다[6] 독립 이후에는 시민의 자유가 최대한 보장되고 상공업이 발달하면서 민주적인 장로제와 궁합이 맞을 수 밖에 없게 되었다.

3. 역사[편집]

16세기 중엽에 장 칼뱅은 성경에서 말하는 장로회 제도를 본격적으로 확립하였으며, 이러한 바탕에서 전 유럽에 영향력을 끼쳐, 프랑스, 네덜란드, 스코틀랜드개혁교회라고 불리는 칼뱅주의 교회들이 세워지게 된다.

특히 스코틀랜드에서는 1560년 스코틀랜드 장로교를 국교로 지정하며, 이후 잉글랜드미국으로 전파되는 토대를 마련한다. 이때부터 청교도 혁명에 이르는 시기에, 칼뱅의 신학을 바탕으로 한 웨스트민스터 대/소요리문답[7](Westminster Catechism)과,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The Westminster Confession of Faith), 그리고 교회헌법과 예배지침이 마련되며 이는 이후의 미국의 필라델피아를 중심으로 한 현재의 장로회의 토대가 된다. 쉽게 말하면,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과 웨스트민스터 대/소요리문답을 따르는 교회는 장로교회라고 할 수 있다.

4. 장로회와 개혁교회의 차이[편집]

보통은 개혁교회가 장로회보다 더 넓은 의미이다. 신학적으로 다른 부분은 칼뱅주의를 따른다 해도 교회 내의 의사결정을 장로제가 아닌 회중제로 할 수도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헝가리의 사례처럼 감독제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8]

칼빈의 교리적 주장 자체가 개혁교회의 지표라 할 수는 없다. 당장 하이델베르크 문서들이나, 웨스터민스터 문서들도 제네바의 문서를 복붙한 것이 아니다. 개혁교회의 뿌리로 여겨지는 스위스에서도 취리히의 츠빙글리, 바젤의 외콜람파디우스가 1세대이며, 칼뱅은 그 이후이다. 스트라스부르의 1세대 개혁가인 마틴 부써도 꼽을 수 있으며, 온건루터파(또는 멜랑히톤파)도 하이델베르크 문서에 참여했다. 칼뱅주의가 개혁교회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이유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사상에 보다 가깝기 때문에 구심점 역할을 잘 감당할 수 있었다고도 볼 수 있다.

장로제 교회만을 가리킬 경우 스코틀랜드식 전통을 따르고 있으면 장로교이며, 반대로 대륙식(스위스, 네덜란드) 전통을 따르고 있으면 개혁교회라 불린다. 다만 요즘은 교단간 교류가 잦아지면서 이 차이도 사실상 없어져가는 추세이다.[9]

보통 칼뱅주의를 따르고 장로제를 취하면서 유럽 대륙에서 발생한 개신교회의 경우 '네덜란드 개혁교회'[10]와 스위스 개혁교회(Evangelisch-Reformierte)[11] 등이 있으나 교회 인테리어나 예배 형식 등에서 스코틀랜드식, 한국식과는 좀 차이가 있다. 심지어 미국 내에서도 'Reformed Church'와 'Presbyterian Church'는 같은 칼뱅파임에도 이민자들의 정체성이나 밑의 세부적인 신학적 견해 차이로 인해 다른 교파처럼 취급된다.

전통적으로 네덜란드와 독일의 칼뱅주의 교회에서는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Heidelberg Catechism)과 벨직 신앙고백(Belgic Confession)[12], 도르트 신조(Canons of Dort)[13]을 신앙규범으로 삼았는데 위의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을 제정한) 웨스트민스터 계열 문서보다 이 세 가지 문서를 더 중요시하는 칼뱅주의 교파들은 대륙식 개혁교회라 봐도 틀리지 않다. 스위스에서는 헬베티아 신앙고백서를 사용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한국을 제외하면 개혁주의를 따르는 교회들은 시편찬송가(psalter)를 부르는 것이 권장되며, 실제로도 보수적인 교회들은 일반적인 찬송가를 부르지 않거나 시편찬송가 위주로 일반찬송가를 1~2곡정도 곁다리 삼아 부르는 경우가 많다.

5. 특징[편집]

5.1. 조직 특성[편집]

성공회, 감리회 등이 어느 정도 보편교회의 전례를 따라 주교 또는 감독 등을 두어 중앙집권적인 체제를 가지고 있다면[14], 장로교는 철저한 장로 정치 시스템에 따라 개교회 중심주의를 따르고 있다. 세속 정치로 따지면 간접/대의민주주의에 가까운 형태이며[15] 실제로도 각 교단별로 교회헌법이란 것이 존재한다.

5.2. 신학적 특성[편집]

장 칼뱅의 영향을 받아 신학적으로 개혁주의를 따르며, 신구약성서를 신앙과 행위에 대한 무오한 유일의 법칙[16]으로 본다. 신앙고백과 요리문답서들은 어디까지나 성경의 무오성을 입증해주는 보조적 문서로 볼 뿐이다.

장로회에서는 교회의 지도자 직위에 대하여 성서가 다음과 같이 가르친다고 본다.

  • 교회의 지도자 직임을 받은 자를 장로라고 한다.[17]

  • 목사는 장로 위에 있는 직임이 아니라, '가르치는 장로'에 해당한다.[18]

  • 성경에 등장하는 '감독'이란 말은 '장로'의 또다른 표현이다.[19]

  • 장로는 교회의 회중이 선출한다.


특히 앞서 설명했듯이, 장로회의 신학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과 요리문답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 원문 참조.

이외에도 대체로 칼뱅을 강조하고, TULIP 교리를 강조한다.

6. 한국의 장로회[편집]

전세계 장로회 총 신자 1,800만 명 중 600만 명이 한국에 분포한다고 한다.

1882년, 만주에서 선교하던 스코틀랜드 장로교회의 존 로스 목사가 요한복음누가복음을 번역하여 출간함으로써 한국과 첫 관계를 맺게 된다. 그 후 1885년 미국 북장로회 소속의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 목사 등의 선교활동으로 처음 들어온 것으로 본다. 그런 이유로 연세대학교에 가면 언더우드관이 있다. 1907년 대한예수교장로회 독노회가 창설되었으며, 1912년 첫 번째 총회를 개최한다.

6.1. 한국 장로교 분열과정[편집]

하지만 이후 다양한 정치적/신학적 노선 차이로 분열되게 된다. 이는 장로회 특유의 개교회주의와도 관련이 있다.

  • 1차 분열(고신): 신사참배 문제
    1932년 일제강점기 치하 신사참배로 분열의 싹이 텄다. 일단 장로교단은 저항했고 그 대가로 유일한 신학교인 평양신학교가 폐교되었다. 결국 타협한 세력이 나왔고, 그들은 총독부의 허가를 얻어 조선신학교를 당시 경성(서울)에 설립한다. 신사참배를 거부하다 투옥된 사람들이 광복 이후 기존의 신사참배를 찬성한 다른 목회자들과 합동할 수 없다고 하며, 고려신학교(현재의 고신대학교)를 중심으로 대한예수교장로회(고신)을 설립하여 분리해 나온다. 이 교단은 신학적 노선이 보수적이라고 평가받는 장로회 중에서도 가장 보수적인 노선을 고수하고 있다. 이후 WCC 가입 문제 사태가 터졌을 때 합동 측과 뜻을 같이하기도 한다.[20] 이외에도 예장재건, 예장순장, 예장총공회 등이 그 여파로 나왔다. 물론 타 장로교단 전체를 신사참배자들로 규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네 교단(예장고신,예장순장,예장재건, 예장총공회)은 저항한 목회자들에 뿌리를 둔다.

  • 2차 분열(기장): 성서비평학(고등비평) 문제
    그로부터 단 1년 후인 1953년, 김재준 목사를 중심으로 한 조선신학교(현재의 한신대학교) 출신의 목회자들이 성서비평학을 수용하였다는 이유로, 교계의 보수적 목회자들로부터 성서무오설축자영감설을 부정하는 "자유주의 신학"[21]이라며 공격당하게 된다.[22] 결국 김재준 목사는 총회로부터 장로교 목사직에서 파면당하고, 장로회 총회는 조선 신학교 출신 신학생들의 목사안수를 거부하게 된다. 이에 김재준 목사를 필두로 한 조선 신학교 출신 목회자들을 중심으로 한국기독교장로회(약칭 "기장")을 설립하여 분립해 나가게 된다.[23] 이후 기장은 대한성공회와 함께 한국의 가장 진보적인 개신교 교단으로 평가받게 되며, 민중신학을 중심으로 반독재 민주화 투쟁, 인권, 노동, 통일운동에도 적극 참여한다.

  • 3차 분열(통합): 세계교회협의회 가입 문제
    1960년에는 세계교회협의회(WCC) 가입 문제를 놓고 분열이 일어나게 된다. 장로회의 개교회주의와, 세계 교회의 일치(에큐메니컬 운동)간의 해석 차이를 놓고 합동측, 통합측, 보수측[24], 호헌측[25] 으로 갈렸다고 한다. 원래의 교단의 입장인 WCC 가입을 찬성한 측은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으로, 이에 반대한 측은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26] 측으로 분리되었다.

  • 세부분열(합동): 합동 교단 내부 정치 문제
    이후, 별다른 분열없이 꾸준히 단일 교단을 유지한 기장이나 통합 측과 달리 합동 측은 계속 분열되어, 2007년 기준 문화관광부에 등록된 장로교 계통 교단만 118개에 이르는 상황이다. 이들이 갈려 나가고도 남아 있는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 교단은 한국에서 단일 교단으로서는 가장 많은 개교회 및 목사가 소속된 교단이기도 하다.[27]
    합동 교단 내부의 분열은 위의 1, 2, 3차 분열과는 달리 교리나 신학 노선의 차이보다는 교권이나 교단 내부 정치 문제로 인해 갈라지는 경우가 많아, 교인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하도 분열되다 보니 대한예수교장로회 뒤에 같은 명칭을 붙이는 경우도 있었고, 이런 경우 개혁측A, 개혁측B 등으로 구분한다. 이후 다시 합쳐지거나 분열되거나 하는 과정 중에 있다. 이들이 대한예수교장로회라는 이름을 붙이기를 원하는 이유는, 한국에 처음 장로회가 들어올 때의 명칭이 대한예수교장로회이므로, 정통성을 주장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대체적인 신학 성향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교단 상징

교단

성서비평학

교회일치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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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기독교장로회

O

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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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29]

O

파일:external/oi67.tinypic.com/r73fy1.png [30]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 [31]

X

X

원그래프, 두루마리, 교집합

서술된 내용을 보면 갈라지는 것만이 부각되어 보일 수 있지만 통합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고신과 합동의 통합 시도가 있었으며 신학교 통합이 이루어지기에 이르기도 했었다. 그리고 통합 측과 합동 측 소속 목회자와 교인들이 서로 티격태격 헐뜯고 싸우며 서로를 이단시하는 것까지는 아니다. 현재는 놀랍게도 한국기독교장로회까지 가입된 한국장로교총연합회에 주요 장로교단들이 가입했다.

독자 로고를 사용하는 일부 교회가 아닌 경우, 교회 마크로 어떤 교단에 소속되어 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초록색 두루마리 모양의 바탕에 빨간색 십자가가 있는 마크는 통합의 마크이고, 파란색과 연두색 사각형 사이에 하얀색 십자가가 있는 마크는 합동의 마크이다. 기장은 파란색 원에 왼쪽 구석이 보라색이며 경계선이 '기' 자로 형상화된 마크를 사용한다.

이렇게 교단 마크를 사용하는 이유는, 상당수의 이단이나 사이비 교단이 장로회를 사칭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 꼭 이단 때문이 아니더라도 우리나라 장로회는 분파가 많아서 이게 없으면 구별이 안 된다(...). 밝혀진 바로는, 신천지 위장교회가 그대로 베껴 쓰거나, 광고물 제작업체에서 무분별하게 사용하는 경우도 간혹 있다고 한다.

7. 국내 주요 장로회 교단 목록[편집]

장로회 교단들은 주로 교단 산하의 신학교 출신의 목회자들이 모여 이루어진 경우가 많기 때문에, 교단 산하의 학교 이름을 같이 표기한다. 이 중 총신대와 장신대 출신을 성골이라고 하여 장로회 내부에서 상당히 높게 쳐주는 분위기.[32] 물론 너무 학벌만 내세운다고 까이기도 한다.

  •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 , 장로회신학대학교, 서울장신대학교, 한일장신대학교, 호남신학대학교,영남신학대학교, 부산장신대학교, 대전신학대학교 이상 교단산하 7개 직영 신학교.[33] 숭실대학교[34], 연세대학교[35][36][37], 한남대학교, 한동대학교, 서울여자대학교. 이상 이사파송 산하대학교.

    • 명성교회 (김삼환 목사)

    • 서울교회 (박노철 목사)[38]

    • 소망교회 (김지철 목사)[39] [40]

    • 새문안교회 (이수영 목사)[41]

    • 영락교회(이철신 목사)[42]

    • 안동교회(황영태 목사)

    • 연동교회(이성희 목사)[43]

    • 동신교회(김권수 목사)[44]

    • 신일교회(배요한 목사)[45]

    • 충신교회(이전호 목사)[46]

    • 온누리교회(이재훈 목사)[47][48]

    • 남대문교회(손윤탁 목사)[49]

    • 예능교회(조건회 목사)[50]

    • 동안교회(김형준 목사)[51]

    • 덕수교회(김만준 목사)[52]

    • 산정현교회(후암동, 김호민 목사)[53]

    • 충무교회(이기엽 목사)[54]

    • 동숭교회(서정오 목사)

    • 주님의교회(박원호 목사)[55]

    • 그루터기교회(안용성 목사)[56]

    • 한영교회(신정우 목사)[57]

    • 영등포교회(임정석 목사)[58]

    • 장석교회(함택 목사)[59]

    • 무학교회(김창근 목사)

    • 염산교회(김종익 목사)[60]

    • 현대교회(김명윤 목사)[61]

    • 기쁜소식교회(김영준 목사)[62]

    • 수원성교회(안광수 목사)[63]

    • 안산제일교회(허요환 목사)

    • 함께하는교회 예수마을(장승익 목사)[64]

    • 부산 부산진교회(이종윤 목사)[65]

    • 부산 산정현교회(남병식 목사)[66]

    • 부산 동래중앙교회(정성훈 목사)[67]

    • 부산 영락교회(하단동, 강한솔 목사)[68]

    • 부산 초읍교회(이현진 목사)

    • 부산 항서교회(나재천 목사)[69]

    • 부산 새날교회(김수곤 목사)

    • 인천 제일교회(손신철 목사)[70]

    • 인천 주안장로교회(주승중 목사)[71]

    • 대구 제일교회(박창운 목사)

    • 대구 남산교회(지은생 목사)[72]

    • 대구 삼덕교회(천세종 목사)

    • 대구 칠성교회(한화섭 목사)[73]

    • 광주 무등교회(진명옥 목사)

    • 광주 본향교회(채영남 목사)

    • 광주 동광교회(김민식 목사)[74]

    • 광주 안디옥교회(박영우 목사)

    • 대전 제일교회(김철민 목사)[75]

    • 대전 선창교회(김혁 목사)[76]

    • 대전 인동교회(김성천 목사)[77]

    • 대전 오정교회(최세영 목사)[78]

    • 대전 세계로교회(김성기 목사)

    • 포항 제일교회(이상학 목사)[79]

  •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 - 총신대학교, 칼빈대학교, 대신대학교, 광신대학교

    • 사랑의교회(오정현 목사)[80]

    • 더 사랑의교회(이인호 목사)

    • 삼일교회(청파동, 송태근 목사)[81]

    • 승동교회(박상훈 목사)[82]

    • 남서울교회(화종부 목사)[83]

    • 평안교회(황석형 목사)

    • 분당두레교회(김용주 목사)[84]

    • 분당우리교회(이찬수 목사)

    • 성현교회(김선규 목사)

    • 찾는이광명교회(구교형 목사)

    • 가향교회(양진일 목사)

    • 강남교회(고문산 목사)[85]

    • 왕십리교회(맹일형 목사)

    • 장충교회(남창우 목사)

    • 목동제자교회

    • 왕성교회(길요나 목사)[86]

    • 오륜교회(김은호 목사)

    • 전농교회(이태호 목사)

    • 한성교회(도원욱 목사)[87]

    • 산정현교회(서초동, 김관선 목사)[88]

    • 충현교회(한규삼 목사)[89] [90]

    • 서현교회(김경원 목사)

    • 서울광염교회(조현삼 목사)[91]

    • 뜨인돌교회(정준경 목사)

    • 낮은마음교회(오준규 목사)[92]

    • 새에덴교회(소강석 목사)

    • 수원제일교회(이규왕 목사)[93]

    • 시은소교회(김철 목사)[94]

    • 안산동산교회(김성겸 목사)[95]

    • 부산 초량교회(김대훈 목사)[96]

    • 부산 수영로교회(이규현 목사)[97]

    • 부산 내성교회(남건우 목사)[98]

    • 부산 부전교회(박성규 목사)

    • 부산 해운대제일교회(심욱섭 목사)[99]

    • 대구 대명교회(장창수 목사)[100]

    • 대구 동신교회(권성수 목사)

    • 대구 범어교회(장영일 목사)

    • 대구 문화교회(박종걸 목사)[101]

    • 대구 동부교회(김서택 목사)

    • 대구 북부교회(김용기 목사)

    • 인천 제2교회(이건영 목사)

    • 인천 중앙교회(송창현 목사)

    • 인천 부성교회(홍승수 목사)

    • 인천 계산교회(김태일 목사)

    • 광주 중앙교회(한기승 목사)[102]

    • 광주 동명교회(이상복 목사)[103]

    • 광주 지산교회(배호진 목사)

    • 광주 겨자씨교회(나학수 목사)

    • 대전 중앙교회(고석찬 목사)

    • 대전 중부교회(조상용 목사)

    • 대전 남부교회(류명렬 목사)

    • 대전 새로남교회(오정호 목사)[104]

  • 대한예수교장로회(대신) - 백석대학교 안양대학교

    • 새중앙교회 (황덕영 목사)[105]

    • 사랑제일교회 (전광훈 목사)

    • 신승교회(김사울 목사)

    • 화광교회(윤호균 목사)

    • 제자교회(유충국 목사)

    • 엘림교회(구 평화교회, 도상엽 목사)[106]

    • 삼일교회(대림동): 청파동 삼일교회와는 다른 교회이다.

    • 청파중앙교회(김항우 목사)[107]

    • 한국중앙교회(임석순 목사)[108]

    • 신반포중앙교회(김성봉 목사)

    • 해오름교회(봉천동, 최낙중 목사) : 찬양사역단체인 마커스의 목요찬양집회가 열리는 곳으로 유명하다.

    • 원천교회(문강원 목사)

    • 광음교회(김동기 목사)

    • 과천소망교회(장현승 목사)[109]

    • 부산 영락교회(부민동, 윤성진 목사)[110]

    • 대전 한밭제일교회(이영환 목사)[111]

    • 대전 송촌장로교회(박경배 목사)[112]

  • 대한예수교장로회(대신석수) - 대한신학대학원대학교

  • 대한예수교장로회(피어선) - 평택대학교

  • 대한예수교장로회(고신) - 고신대학교

    • 서울남교회(황영익 목사)

    • 서울영동교회(정현구 목사)[113]

    • 서울시민교회(권오헌 목사)

    • 잠실중앙교회(노정각 목사)

    • 두레교회(오세택 목사)[114]

    • 샘물교회(최문식 목사)[115]

    • 서울중앙교회(김진영 목사)

    • 벧엘교회(박광석 목사)

    • 압구정교회(노은환 목사)

    • 부산 사직동교회(김철봉 목사)[116]

    • 부산 온천교회(안용운 목사)

    • 부산 포도원교회 (김문훈 목사)

    • 부산 제1영도교회(고혜석 목사)[117]

    • 인천 예일교회(천환 목사)

    • 광주 은광교회(전원호 목사)

    • 대전 한밭교회(곽창대 목사)[118]

  • 대한예수교장로회(고려개혁) - 고려개혁신학연구원

  • 대한예수교장로회(고려) - 제네바신학대학원대학교

    • 경향교회 (석기현 목사)[119]

  • 대한예수교장로회(계신)[120] - 계약신학대학원대학교

    • 창광교회(김창훈 목사)[121]

    • 평강교회(정진록 목사)

  • 대한예수교장로회(개혁) - 개혁대학원대학교

  • 대한예수교장로회(합신) -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 강변교회 (허태성 목사)[122]

    • 광야교회 (임명희 목사)[123]

    • 일산은혜교회 (강경민 목사)

    • 산울교회 (윤여길 목사)

    • 광교산울교회 (이문식 목사)

    • 남서울은혜교회 (박완철 목사)[124]

    • 남포교회 (최태준 목사)[125]

    • 부산 호산나교회 (유진소 목사)[126]

  • 대한예수교장로회(개혁국제) - 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

  • 대한예수교장로회(순장) - 서울성경신학대학원대학교

    • 동천교회(전충현 목사)[127]

    • 숭덕교회(권정희 목사)

    • 대천교회

    • 창대교회(김동민 목사)

    • 대전 해맑음교회(윤정현 목사)[128]

  •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보수) - 개신대학원대학교

  • 대한예수교장로회(웨신) - 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

  • 대한예수교장로회(브니엘) - 브니엘신학교

  • 대한예수교장로회(재건)

    • 재건후암교회

    • 재건성은교회

  • 한국기독교장로회 - 한신대학교

    • 경동교회(채수일 목사)[129]

    • 초동교회(손성호 목사)[130]

    • 향린교회(조헌정 목사)

    • 강남향린교회(이병철 목사)[131]

    • 들꽃향린교회(김경호 목사)

    • 섬돌향린교회(임보라 목사)[132]

    • 한신교회(강용규 목사)[133]

    • 분당 한신교회(이윤재 목사)[134]

    • 강남교회(백용석 목사)[135]

    • 서울성남교회(허정강 목사)[136]

    • 효동교회(인영남 목사)

    • 시온성교회(임광영 목사)

    • 올리브교회(조준환 목사)[137]

    • 광주 고백교회(김성룡 목사)

    • 대전 한성장로교회(이재영 목사)

    • 전주 안디옥교회(박진구 목사)[138]

  • 독립개신교회 - 독립개신교회신학교.

  • 예수교장로회한국총공회 - 대한예수교장로회(고신)에서 분리하여 나온 교파로, 4년제 목회자양성원을 운영하고 있다.

7.1. 주요 교단 및 그 성향[편집]

  • 한국기독교장로회(기장) : 대한민국 내 대표적인 진보적 성향의 개신교 교단이다.[139] 사회운동에 적극적이고, 성소수자 포용[140]에도 관심을 보이는 교단이다. WCC, NCCK에 가입되어 있다. 신학적, 정치적으로 상당히 진보적이지만 전례상(예배형식)으로는 가톨릭 못지 않게 전통적인 경우가 종종 있다.[141] 대표적 교회로 경동교회와 초동교회가 있으며, 기타 유명한 교회로 서울성남교회, 향린교회, 한백교회가 있다. 예장측과 분열될 당시 함경도 출신이 많았다. 현재는 호남권충청권을 중심으로 농어촌 지역에 주로 분포하고 있다.[142]

    - 산하 신학교 : 한신대학교(경기 오산시)

  •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예장합동 및 합동계열) : 예장통합과 교세 1, 2위를 다투는[151] 국내 개신교 대형 교단 중 하나로, 대한민국 내 대표적인 보수 교단으로 꼽힌다. 전반적으로 보수적 성향을 보인다. 합동계열의 원조인 예장합동은 약간 중도보수적이다. 그러나 예장합동 목사들 중에서도 민중신학을 공부했던 진보적인 목사들이 있으며 성서무오성 문제에서도 대부분의 목사들이 성경의 문자적인 오류들은 인정하는 편이다. WCC와 에큐메니컬 운동에 공식적으로는 반대한다고 하나, 개교회 차원에서는 인정하는 목회자들도 꽤 있다. 원칙적으로 십자가를 옥외에 간판이나 첨탑으로 거는 건 허용하지만 예배당 안에 걸어두는 건 우상숭배가 될 수 있다고 보아 금하고 있다.[152] 예장합동에서 분리된 합동 계열 여타 교단들은 교권(교내 정치적 문제) 문제로 갈라진 교단들이라 예장합동과의 신학적 차이는 별로 없다. 2014년 제99회 총회에서 예장합동은 그동안 재교육만 실시하면서 받아들이던 가톨릭 출신 개종자의 영세를 인정하지 않기로 결의한데 이어[153] 2015년 제100회 총회에서는 "성경에 비추어 볼 때 가톨릭은 이단도 아니고 이교다"는 식의 입장을 보였다. 교단 차원에서는 열린예배, 신사도운동, 극단적 세대주의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인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적지 않은 개교회들이 열린예배나 신사도운동을 받아들이고 있다.[154] 대표적인 교회로 승동교회와 충현교회가 있으며, 기타 유명한 교회로 사랑의교회, 삼일교회 등이 있다. 통합측과 분열 당시 평안남도, 황해도 출신이 많았다. 지역별로는 전국적으로 비교적 고른 분포를 보이지만, 충북 북부,[155] 경북 북부, 전남 동부 및 강원 지역은 상대적으로 교세가 약한 편이다.[156][157] 2010년대 들어서는 십일조 납부 의무 규정이나, 목사가 동성애자를 직권 추방할 수 있는 규정을 총회 헌법에 반영하려고 하여 논란을 일으켰다.

    - 산하 신학교 : 총신대학교(서울 동작구) 등

  • 대한예수교장로회-고신(예장고신) : 주기철 목사[158]의 신사참배 거부 순교정신을 계승하는 보수 교단. 교단의 뿌리되는 고신대학교의 전신인 고려신학교 시절부터 부산을 근거지로 하였기에 주로 영남 지역(특히 부산, 울산, 경남)에서 교세가 큰 편이다.[159][160] 신학적으로나 전례상으로나 예장합동보다도 더 보수적인 편이어서 2010년대 들어서야 부분적으로 현대적 악기를 도입하기 시작하였을 정도이며[161], 특히 교단의 기원에 걸맞게 한국 교회사에서 친일 행적에 관한 연구를 가장 활발히 진행한다. 우상숭배화될 수 있다는 이유로 총회헌법에 강단 십자가 설치 금지를 명시한 예장합동과 달리 예장고신은 예배당 내 종교적 상징물을 최소화하되 비치할 경우에는 그 신앙적 의미를 명확히 하도록 권하고 있으며, 십자가 설치를 총회헌법 차원에서 금지하고 있지는 않다.[162] 그래서인지 고신 소속 교회들 중 상당수는 강단에 십자가가 없지만, 십자가를 설치한 교회들도 적지는 않다.[163]

    - 산하 신학교 : 고신대학교(부산 영도구)

  • 대한예수교장로회-합신 : 1970년대 후반, 합동의 정치적 비리로 인해 교단신학교인 총신대학교가 휘둘리자, 이에 반대하는 박윤선 교수[164]를 필두로 한 4인 교수와 학생들이 "합동을 대표할 새로운 신학교를 만들자"라고 주장하며 새로 "합동신학교"를 세웠다. 그러나 이 시도는 당시 정치목사였던 이영수 목사의 음모로 교수들이 축출당하면서 끝나게 되었고, 여기에 참여한 학생과 일부 교회가 아예 새로 교단을 만들며 시작된 교단이다.[165] 과정을 보면 알겠지만, 신학적으로는 상당히 보수적이며, 고신과 맥이 닿는 경우가 많다. 교단 소속 교회들은 많지 않으며, 주로 수도권 지역에 많이 분포하고 있다. 컬러는 보수주의, 경건주의 이다. 따라서 신학적으로는 상당히 보수적이여도 정치적으로는 진보적인 목사들도 여럿 존재한다.

    - 산하 신학교 :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경기 수원시)

  • 대한예수교장로회-재건(예장재건) : 예장고신과 마찬가지로 주기철 목사의 신사참배 거부 순교정신을 계승하는 보수교단. 1938년 신사참배에 반발하여 독자 노회를 결성했던 신도들 중 고신에 가담하지 않은 이들이 1951년 거제도를 중심으로 대한예수교재건교회를 성립하였다가 1969년 영남지역 중심의 예장재건과 수도권 중심의 순장로회로 갈라졌다. 주로 영남지역의 장로교회에 많으며, 교회명에 '재건'이 들어가 다른 장로교회와 구분된다. 보수성이 매우 강하고 교세는 대단히 약하다.

    - 산하 신학교 : 재건총회신학원(충남 천안시)

  • 대한예수교장로회-순장(예장순장) : 함주군에 있던 덕천교회를 시무했던 이계실 목사와 그 인근 5교회를 중심으로 신사참배거부 하면서 독노회로 시작한 교파로서 흥남철수때에 경남 거제로 이동을 하며 재건교회와 뜻을 같이 하였으나 교리적인 차이로 다시 갈라져 나와 현재 영등포구 신길동에 위치한 동천교회를 중심으로 순장교단을 확장시켜왔다. 초기에는 '대한예수교순장로회'라는 명칭을 사용하다가 1980년부터 현재의 명칭으로 개칭하였다. 1999년부터 서울성경신학대학원대학교를 운영하고 있으며, 수도권과 충청권에 주로 많으나 전국적으로는 교세가 매우 약하다. 예장재건과 자매관계인 교단인 동시에 공유하는 특징도 많다.

    - 산하 신학교 : 서울성경신학원대학교(서울 동작구)

  • 대한예수교장로회-대신(예장대신) : 과거의 예장백석과 예장대신이 통합된 교단. 초창기 명칭은 예장 '합동진리'였으나 교회의 연합과 일치를 표방하며 군소 교단들을 계속 흡수하여 교세를 키우며 '합동정통'으로 개명하였고 2009년에는 다시 '백석'으로 개명하였다. 2013년 예장개혁 장지동, 2014년 예장개혁 광주, 예장 성경을 흡수하더니, 2015년 예장대신과 통합하면서 개교회 숫자 7,200개, 교인수 150만의 3위 규모의 교단으로 등극하였다.[166][167] 주로 수도권과 충청권 일부 지역에 교세가 크다. 두 교단이 합쳐질 당시에는 교단 명칭을 '대신'으로 하였으나 제50회 총회 결의 무효확인 소송(2015가합104232)에서 법원이 '대신 총회 교단이 해산과 타 교단의 통합을 진행하려면 교회 수의를 거친 후 회원교회 3/4 이상 찬성이 필요한데 그렇지 못하기에 통합 결의는 무효'라는 판결을 내림에 따라 '대신'이라는 명칭을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대신'이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있으며, 두 교단의 결합 자체가 무효화되거나 법원의 확정판결이 나오기 전까지 이러한 상황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2017년 8월 21일에는 군소 교단인 예장 합동진리와 통합을 선언하며 교회수 8,500개로 기독교대한감리회를 제치고 국내 교세 3위 교단으로 등극하였다.

    - 산하 신학교 : 백석대학교(충남 천안시), 안양대학교(경기 안양시) 외 기타 신학대학원

    • 구 예장백석 계열은 NCCK에 가입되어 있지 않으나 WCC에 반대하지 않던 교단으로, 보수성은 예장통합과 예장합동의 중간 정도인, 진보성향의 목회자와 성도들도 꽤 있던 교단이었다.

    • 통합 이전의 예장대신 계열은 예전 대한예수교성경장로회에서 출발, 대한신학교를 중심으로 한 교단이다. 신학적으로도 보수적이지만 정치적으로 특히 보수적이었다.

  • 대한예수교장로회-계신(예장계신) : 평양 출신으로 고려신학교를 나온 이병규 목사가 예장고신 내부 문제를 법정에서 처리하려 하는데 반발하여 고신을 탈퇴한 후 서울 서대문구 창천동에 창광교회를 세우며 시작된 고신의 분파. 신학적으로 고신측은 물론 같은 고신 분파인 예장총공회보다도 더 보수적이며, 이 때문에 한기총이나 한교연을 포함한 개신교 연합단체에도 일체 가입하지 않고 있다. 서울과 경기도 광주에 계약신학교를 운영하고 있으며 교세는 매우 약하다.
    - 산하 신학교 : 계약신학대학원대학교(경기 광주시)

  • 예수교장로회한국총공회(예장총공회) : 예장고신 부산서부교회 당회장이었던 백영희 목사가 고신측의 입장 중 몇 가지를 비판하다가 1959년 고신측으로부터 제명당한 후 1966년 창설한 교단. 신학적으로는 예장고신이나 예장재건보다도 더 보수적이며 인간론 3분설(몸,마음,영)과 인간구원 2분설(기본 구원, 건설 구원)이라는 독특한 교리를 갖고 있다. 1989년 백영희 목사가 피살된 이후 부산공회파, 서울공회파, 대구(거창)공회파로 갈라졌다. 교세는 예장고신이나 재건보다도 더 약한 편.
    - 산하 신학교 : 예수교장로회 한국총공회 목회자양성원(경남 거창군)[168]

  • 대한예수교장로회-브니엘(예장브니엘) : 1958년 미국 중아선교회가 파견한 선교사인 박성기 박사가 부산 연산동에 설립한 브니엘교회가 주축이 되어 1986년 창설한 교단. 신학적으로는 보수성이 강한 편이나 고신 등의 국내파 보수 교단들보다는 상대적으로 온건하다. 교세는 부산과 서울 일부 지역에만 교회가 분포할 정도로 매우 약하다.
    - 산하 신학교 : 브니엘신학교(부산 연제구) [169]

  • 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여목 : 감리회기장을 제외한 대다수의 한국 개신교 교단들이 여성 목사안수를 인정하지 않던 1987년, 여성으로서 예장보수 총회에서 목사안수를 받고 목회하던 박정호 목사가 '하나님께서는 여성들을 통해서도 큰 사역을 하심에도 대다수의 한국 교회에서 여성의 역할이 평가 절하되는 것이 현실이며, 여성에게도 목회자로서의 기회가 제공되어야 한다'고 선언하고 창설한,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목회자 전문 교단. 현재까지도 여성 목사안수를 인정하지 않는 예장합동 등 보수 교단들로부터 초기에는 이단으로 정죄당하기도 하였으나, 예장통합을 비롯한 상당수 교단들이 여성 목사안수 제도를 도입할 정도로 여성 목회자에 대한 인식을 전환하는 데 큰 공헌을 한 교단이다. 교단 특성상 신학교는 별도로 운영하고 있지 않으며, 출신 신학교들이 다양하고 교단 출범 계기 자체가 보수교단의 여성 목사안수 불인정에 대한 저항이기 때문에 신앙적으로는 자연스럽게 중도 성향을 띠게 되었다. 교세는 그리 크지 않다. 2008년부터 남녀 혼성 총회로의 전환을 선언하고 연합성총회로 개명하였다.

  • 독립개신교회 : 대한민국의 칼뱅주의 교단들 중 'Presbyterian'이 아닌 'Reformed'명칭을 최초로 표방한 교단. 1964년 김홍전 목사가 '성약교회'를 개척한 것이 시작이며 2017년 기준으로 서울 외에 안양 강변교회, 전주 한사랑교회, 대전 성은교회(2016년 재창립) 등 4곳이 있다.[170] 신학적으로는 매우 보수적임에도 예배 형태는 의외로 예전적이며[171] 교회 건축도 여타 개신교 교회들과 약간 다른 느낌이다. 그리고 의자가 지정좌석제(...)이며, 굉장히 폐쇄적이라서 아무나 간다고 바로 교회 회원이 되는 게 아니라 오래 기다려야 한다.

    - 산하 신학교 : 독립개신교회신학교(경기 안양시)

    • 독립개혁장로회 : 1991년에 출범했으며, 위의 독립개신교회와 자매관계일뿐더러 여러 특징을 공유하고 있다. 의정부, 분당, 이천, 익산, 전주, 광주, 순천, 광양 합해서 12개 교회가 존재한다.

7.2. 이단 시비가 있는 교단[편집]

장로교라는 이름으로 등록된 교단 중에서도, 장로회 교리와는 동떨어진 교단도 있는 등, 여러가지 문제점이 드러나고 있다. 일부 교단에서는 이러한 교단을 이단성이 있다고 주장하며 교류 금지를 결정하기도 한다. 자세한 내용은 개신교 항목의 이단 목록 참조.

  • 대한예수교장로회(중앙)총회: 유자현 (녹산교회)

  • 대한예수교장로회(성경)총회: 김풍일 (새빛등대중앙교회)

  • 대한예수교장로회(성경)총회: 이송오 (성경침례교)

  •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총회): 문제선

  •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총신[172]): 신옥주 (은혜로교회)

  • 대한예수교장로회(법통)총회: 박무수 (부산제일교회)

  •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중립): 통일교 계열

  • 대한예수교장로회(총화)총회: 통일교 계열

  • 대한예수교장로회(할렐루야): 김계화 (할렐루야 기도원)

  • 대한예수교장로회(부흥)총회: 변승우 (큰믿음교회)[173]

  •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이삭교회: 오평호[174]

  • 대한예수교장로회평강제일교회: 구재철

7.3. 장로회 출신 독립교회[편집]

장로회 소속이었으나 초교파 독립교회를 선언한 독립교회 목록.

  • 갈보리교회

  • 새민족교회

  • 한백교회[175]

  • 예수촌교회

  • 고양교회

  • 할렐루야교회[176][177]

  • 관악교회

  • 김해교회

  • 서부제일교회[178]

  • 예수마을전원교회

  • 분당예닮교회

  • 유평교회

  • 하늘교회및선교단체연합회

  • 한국기독교선교 100주년기념교회

  • 중신교회

  • 우리들교회

8. 스코틀랜드의 장로회[편집]

장로회 명칭의 원조인 스코틀랜드의 경우 실질적으로 국교회처럼 돌아가고 있는 'Church of Scotland'와 완전한 독립 교파들인 'Free Church of Scotland', 'Free Presbyterian Church of Scotland' 등이 존재한다.

9. 미국의 장로회[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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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가장 규모가 큰 주류 장로회는 Presbyterian Church(USA)이다. 2014년 말 조사로 약 170만명의 정식 교인이 가입해있다. 신자들을 모두 추산하면 약 3백만명 정도 되는 듯.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어서 2014년에는 총회와 각 노회 투표를 통과해 동성결혼 주례도 허용하고 있다.

한편 보수적인 교단으로는 정통장로교회나 미국 복음장로교회 등이 있지만, 위의 주류파에 비하면 소수이었으나 성장세에 있다. 특히 동성결혼 주례 허용 투표 결과에 반발해 보수적 교단으로 이적하거나 떨어져 나간 교회들도 있으며 늘어나는 추세라고 한다.

전통적인 신학교는 프린스턴 대학교이다. 현재는 주류 장로교단의 구심점이며, 이에 맞서는 정통파 장로교의 신학교가 웨스트민스터신학교

9.1. 미국의 회중교회[편집]

'장로교와 개혁교회의 차이' 문단에서 상술했듯 칼뱅주의를 따르고(물론 극초기 이야기, 현재는 구원론에 대해 다양한 견해를 펼친다) 침례가 아닌 일반적인 세례를 주면서 교회 정치체계만 회중제를 따르는 교회는 그냥 '회중교회'라고 부르는데, 초기 미국 동부의 교회들은 의외로 장로교가 아닌 회중교회들이 많았었다.

사실 미국 내 청교도들은 장로제보다는 직접적인 회중 자치를 중시하는 분리주의자들이 대다수였고,[179] 당연히 이들이 세운 교회도 대다수가 회중교회(congregational church)이며 이곳과 연관된 대학이 하버드대학교예일대학교이다.

19세기 이후로 대표적인 리버럴 교단이 되어 보수 위치에 있던 장로회와 대립했었고, 1957년 독일계 개혁교단인 'E&R Church'와 합치게 되면서 연합 그리스도의 교회(UCC)로 명칭을 바꾸게 되었다.[180] 그런데 리버럴 교단이라곤 하지만, 1950년대까지는 의외로 장로교처럼 십자가도 없이 강대상만 있는 보수적인 느낌의 인테리어가 주류였다.(##)[181] 흔히 생각하는 성공회 비스무리한 인테리어는 1950년대에 '예배회복운동'[182]을 본격적으로 받아들이고 나서야 등장한 것이다.(##)

이 교단의 전도나 선교에 대해서 흥미로운 사실이 있는데, 19세기에는 미국 건국의 주체였었고, 비교적 늦게 유입된 장로교와 몇가지 합의를 했다는 것이다.

  • 1 미국 동부는 회중교회가, 서부는 장로교회가 맡는다.

  • 2 한반도와 만주는 장로교회가, 중국과 동남아 그리고 일본은 회중교회가 맡는다.


위 사항으로 인해 한국에는 장로교 선교사들이 들어왔고, 일본과 중국은 회중교회 선교사들이 들어왔다. 일본에서는 조합교회로 이어졌다. 위의 합의는 절대적으로 준수되지는 않았다고 한다. 한국에도 일본 조합 교회가 들어 왔는데, 성결교와는 반대로 일본 정부의 앞잡이가 되어 내선일체에 앞장 섰고 당연히 광복 이후 강제 해산되었다. 물론 일본 내 조합 교회도 일본 기독교단이라는 통합 교단에 흡수되어 소멸했다.

한국기독교장로회와 연관이 깊은데 일단 문익환 목사가 유학한 도쿄신학교는 회중교회의 일본 선교사인 S.R.브라운이 세운 신학원을 바탕으로 초교파적인 신학교가 된 곳으로 보인다.[183] 그의 부인이 다닌 요코하마 신학교도 일본 조합교회의 모체가 되는 도시샤대학의 설립의 배경이 된 곳.

미국에서 보수적이던 장로교단과 리버럴화의 전조를 보이던 회중교회의 마지막 합작품인 구역을 나눈 아시아 선교가 있었던 셈인데 그 영향으로 일본 유학을 간 문익환 등이 성서비평학을 받아들이게 된 것.[184]

UCC의 최근 경향은 미국 메인라인 중에서도 리버럴의 중심이다. 페미니즘, 동성애, 인종차별, 낙태 문제에 관해 그 어떤 메인라인 교단들보다도 과감하게 목소리를 내는 편.

한편 리버럴화에 반발한 극소수의 회중교회들은 CCCC 혹은 4C교단이라 하는 회중교단을 설립했으며 'Conservative'란 명칭에서도 알 수 있듯 자칭 주류인 UCC와 비교하면 동성애를 금지하는 등 보수적인 스탠스를 취하고 있다. 하지만 신사도 운동의 창시자인 피터 와그너가 첫 목사 안수를 받은 교단인지라 한국인 입장에서는 이 교단도 호불호가 갈릴 수가 있다.

9.2. 미국의 화란계 개혁교회[편집]

미국에서 'Reformed'명칭을 쓰는 교단들은 대체로 네덜란드계 이민자들과 연관이 있다.

전통적인 옛 '주류 교단'[185]으로 간주되는 RCA(미국 개혁교회)[186], 온건 정통주의 성향의 CRCA(미국 기독개혁교회) 그리고 보수 정통주의 성향인 PRCA(미국 개신개혁교회), FRCNA(북미 자유개혁교회), NRCA(미국 화란개혁주의교회)와 HNRC(헤리티지 화란개혁주의교회)[187]가 있다.

10. 네덜란드 개혁교회[편집]

맨 위에서 썼듯이 네덜란드는 유럽 대륙에서 몇 안되게 칼뱅주의가 크게 번성했던 나라였고, 스위스와 다르게 2010년대에도 보수적인 성향의 교회들이 다소 남아있다.

20세기 초까지는 가장 메이저한 기독교 교파였고 전체 인구의 60%를 차지했으며 보수성이 (현재와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강했다. 특히 네덜란드에서 가장 북쪽에 있는 프리슬란트, 드렌터, 흐로닝언 3주는 1940년대까지 개혁교회 신자들이 가장 많이 몰려있는 곳이었으며 헤르만 바빙크, 헤르만 리덜보스 등 한국에 잘 알려진 개혁주의 신학자들도 대부분 북부 출신들이 많았다. 그러나 2차대전 후로는 급격하게 세력을 잃었으며 시류에 따라 리버럴화가 진행되었다.

오늘날에는 개혁교회를 믿는 사람들은 전인구의 약 10% 남짓에 불과하여 사실상 소수종교로 전락한 상황이다.

한국과 달리 장로가 임기제인 경우가 흔하며[188] 목사도 한 교회에 오래 머물러있지 않고 여기 저기 청빙되어 자주 인사 이동을 하는 스타일이다.

타 국가의 개혁주의 교단들이 그렇듯 교리나 신학적 성향을 놓고 분열과 통합을 반복한 적이 있었는데 아래와 같다.

  • 원래 네덜란드 개신교의 주류였던 '국교회'[189]와 1882년 아브라함 카이퍼의 의해 분리되었던 화란개혁교회 총회파[190]는 1962년부터 '함께가는 길'(Samen op weg)이란 이름으로 재통합 운동을 시작했고 여기에 네덜란드 복음주의 루터교회(ELKN)가 가세하여 2004년 PKN(네덜란드 개신교회)란 이름으로 정식 통합했다. 그러나 여전히 개교회별로는 특징이 구별되며 이 안에 보수 파벌인 고백연맹(Confessionele vereniging)과 '개혁주의 연맹'(Gereformeerde Bond)이 존재하고 있다.[191] 원래는 교단 마크가 없었으나[192] 합치면서 십자가 안에 비둘기가 들어간 마크를 제정했다.

  • 1834년 국교회의 신학적 성향을 문제삼으며 자발적으로 '분리와 (신조로의) 복귀'를 추구했던 '기독개혁교회'(CGK)[193]는 1892년 카이퍼주의자들과 통합하지 않은 소수의 교회들을 중심으로 잔류하여 현재까지 이어오고 있다. 이 교단도 자유파와 보수파가 한 교단 내에 공존하고 있으며, 보수파는 'Bewaar het Pand'[194]라는 별칭을 갖고 있다.

  • 1944년에는 화란개혁교회에서 '해방파'(Liberated/Vrijgemaakt)가 분리되었는데 신학적인 논쟁 탓이 컸다. 당시 신학교 교수였던 클라스 스킬더(Klaas Schilder)는 카이퍼 신학의 문제점들(가정적 중생[195], 보편은혜[196], 영원칭의[197]에 관해 단호한 입장을 취해오고 있었으나 이것 때문에 결국 신학교와 교단에서 그를 지지한 사람들과 함께 강제로 쫒겨나서 새로이 만들어진 것이다.[198] 해방파 교단 역시 현재까지 이어져오고 있으며 한국의 예장고신 교단과 자매관계이다. 1967년에는 여기서 다시 NGK란 교단이 분리되어 나왔는데,[199] 2010년대 이후로 해방파 개혁교회와 기독개혁교회, NGK가 화해 및 협력 분위기로 바뀌었다. 다만 이 과정에서 리버럴화 되어간다는 우려도 생기는 편. 결국 2017년 6월 총회에서 여성안수 허용안이 통과되었고, NGK와 빠르면 2023년에 교단을 통합하기로 결정되었다.

  • 2015년 기준으로 네덜란드에서 가장 보수적 개혁주의에 가까운 형태를 고집하는 교단으로는 2004년 교단 통합에 반대한 기존 국교회들이 모여서 만든 '복구파 개혁교회'(Restored Reformed Church/Hersteld Hervormde Kerk)와 1907년 G. H. 케르스턴에 의해서 분리된 Gereformeerde Gemeente(영어로는 Reformed Congregations)[200]가 있다.

11. 나무위키에 항목이 존재하는 인물[편집]

11.1. 목회자, 신학자[편집]

11.2. 장로 이하 평신도[편집]


[1] 주권국가는 아니지만 스코틀랜드 최대의 종파이기도 하다. 물론 주권국가로 한정하면 개신교 중 장로회가 최대 교파인 나라는 주권국가 승인 여부 문제에 논란이 있는 대만 등을 제외하면 사실상 대한민국이 유일하다.[2] 둘 다 Reformed Church의 번역.[3] 절대 KKK 같은 불타는 십자가가 아니다![4] 잉글랜드 내에서 이러한 체계에 반발한 사람들은 아예 교인 개개인의 의사가 모두 반영되는 회중제를 주장했고, 이러한 주장에서 침례교와 회중연합교회가 생겨나게 되었다. 그러나 이들은 대다수가 지금의 북아메리카로 쫒겨나다시피 했다.[5] 존 녹스가 주로 활동했던 지방은 로우랜드였고 하이랜드는 당시만 해도 주변 클랜들의 땅을 마구 뺏어 먹으며 클랜들 중 원톱으로 군림했으며, 개신교 매파 중 하나였던 클랜 캠밸에 대한 반발로 오히려 친가톨릭에 스튜어트 왕가를 지지하는 경향이 강했다.[6] 스위스는 현존하는 주권국가들 중 유일한 직접민주주의 국가이며, 네덜란드는 19세기 왕정으로 전환하기 전까지 공화정 체제였다.[7] 요리(要理)문답서이다. 요리(料理)가 아니다. "중요한 이치"라는 뜻. 번역자에 따라 "교리"문답서라고 하는 경우도 있긴 하다.[8] 다만 헝가리의 경우는 역사적인 이유로 인해 상당히 독특하게 발전한 편이다.[9] 사실 아브라함 카이퍼나 헤르만 바빙크 등 네덜란드 신학자가 쓴 서적을 한국에서도 생각보다 쉽게 구할 수 있다.[10] 네덜란드어에서 개혁교회를 가리키는 말로는 'Hervormde'와 'Gereformeerde'가 있는데 원칙적으로는 같은 단어이지만 19세기 이후로 전자는 국교화된 전통적인 개혁교단을, 후자는 미국, 한국의 장로교처럼 헌금으로 운영되는 독립교단을 뜻하게 되었다. 한국 개신교에서 대체로 '화란개혁교회'라고 하면 후자를 가리킨다.[11] 역사적인 이유로 독일어권에서 개혁주의라고 하면 스위스나 혹은 동프리슬란트를 떠올리는 경우가 많다. 독일과 달리 스위스 개신교단은 한국과 구성이 비슷하다.(개혁주의+감리교)[12] 여기서 말하는 'Belgic'이란 표현은 지금의 벨기에가 아닌 16세기 기준으로 지금의 네덜란드까지 포함하는 넓은 의미이다. 그래서 네덜란드어로는 'Nederlandse Geloofsbelijdenis'이다.[13] 당시 네덜란드에서 쿠테타로 집권한 칼빈주의자들이 아르미니우스파(항변파)를 축출하는 과정에서 나온 신조이다.[14] 물론 성공회감리교가톨릭에 비해서 중앙집권적인 성격이 약한 부분이 있다.[15] 사실 교회 정치에서 장로는 세속 정치로 치면 국회의원급 위치라 볼 수 있다[16] 여기서 말하는 성서무오설을 극단적인 축자영감설로 보기는 힘들다. 칼뱅 항목 참조. 물론 극단적인 복음주의자들은 축자영감설을 바탕으로 한 성서무오설을 완전히 신봉하는 경우도 많다.[17] 여기서 장로회라는 이름이 연유되었다.[18] 목사가 아직 청빙되지 않은 교회의 경우 그냥 장로가 예배를 집전할 수 있다. 다만 즉흥적인 설교는 불가능하며 전임 목사가 써놓았던 원고를 그대로 읽어야 한다.[19] 여기서 감리회의 해석과는 차이를 보인다.[20] 고신의 교단 신학교인 고신대학교부산에 있고, 고신의 세력이 가장 큰 지역이 아이러니하게도 개신교인 비율이 적은 부산&경남 지방이라고 한다. 김회권 교수(예장통합 소속) 역시 진주시에서 고등학교를 다닐 때 진주에는 고신 측 교회가 많았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정작 개신교인이 많은 전라도 지역에서는 고신이 힘을 못 쓴다. 전라도 지역의 장로회들은 대부분이 통합, 합동 아니면 기장 측.[21] 18세기 독일을 위시로, 계몽주의사상에 영향을 받아 등장한 신학의 한 부류. 문화개신교신학이라고도 한다. 성서비평학이 처음으로 도입되었고, 성문서 연구나 역사적 예수 연구 등 이후 신학의 연구사에 큰 영향을 끼쳤으나, 신학이라는 이름에도 불구하고 인본주의를 우선하였으며, 아돌프 히틀러가 집권하자 이들중 약 80%가 나치 독일에 손을 들어주며 히틀러를 지지하였다. 이들의 제자 세대였던 칼 바르트를 비롯한 여러 독일 신학자들이 이들을 비판하며 신정통주의 신학을 만들어내었고, 이후 알베르트 슈바이처가 자유주의 신학의 역사적 예수 연구에 일침을 가하자 자유주의 신학 붐은 사라지게 되었다.[22] 실제로 김재준 목사의 신학은 자유주의 신학이 아니라, 성서비평학은 받아들이지만 그렇다고 성경의 권위를 부정하지는 않는 칼 바르트의 신정통주의 신학이다. 칼 바르트는 성서비평학은 인정하면서도 성경의 권위는 인정해야 한다며, 자유주의 신학을 강도 높게 비판하면서 새로 신정통주의 신학을 만들었다.[23] 이후 분열된 교단들이 '분열'된 입장이기에 교단 이름을 '대한예수교장로회(○○)'이라는 식으로 사용하고 있는 반면, 기독교장로회 측은 사실상 교단 간의 분열이긴 하지만 어쨌든 '퇴출'된 입장이라 아예 한국기독교장로회라하여 아예 표기법을 달리하고 있다.[24] 보수측에 관한 자료는 대부분 유실되었다고 하며, 현재 성합측으로 명맥을 잇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보수측에 대한 자세한 정보나 위 교단에서 나온 다른 교단을 아는 사람이 있다면 추가바람. 출처1출처2[25] 예장합동 소속이었던 박병훈 목사를 중심으로 1962년 분파하였고 이후 여러 파로 분열되었다. 이후 일부 파벌은 2010년대 초 합동측과 재결합 논의가 성사되어 합동 교단으로 복귀하였다.[26] 참고로 '합동'이라 불리게 된 것은 1960년 고려신학(이하 고신) 측과 합동 측이 교단을 합쳤었기 때문이다. 두 교단이 '합동'하였다 하여 다른 교단 측에서 그렇게 불렀던 것. 그러나 결국 양 교단의 의견 차이로 2~3년 만에 다시 분리되었다. 고신 측에선 이를 '환원'이라 하여 독자적인 교단 총회 회기 역시 합동 이전을 이어나가고 있다.[27] 2010년대 중반 이래 교인수는 예장통합이 예장합동을 제치고 최대 교단이 되었다.[28] 1986년 제71회 총회에서 제정되어 지금은 대다수의 통합측 교회가 현판과 차량, 공문서, 홈페이지 상의 교회명에 삽입, 예장통합 소속 교회임을 표시하여 다른 예장계열 교회들과 구분하고 있다. 특허청에 의장등록이 되어 있어(특허청 표장등록 제42-0004489호) 예장통합 소속이 아닌 교회가 이 로고를 사용하면 불법이다. 그래서인지 군소교단 교회 또는 사이비(특히 신천지) 위장 교회들 중 예장합동을 사칭하는 교회가 부지기수인데 비해 예장통합을 사칭하는 교회는 극히 드물다.[29] 통합 측이 성서비평을 수용하는가에는 논란이 있다. 사실 김재준이 한국에 처음 성서비평학을 소개했을 때와 다르게, 지금은 총신대고신대 등 보수적인 교단 신학교에서도 기본적인 성서비평은 가르치고 있다.[30] 2008년 총회에서 새롭게 변경된 로고이다. 기존의 로고는 파란 지구본 안에 월계수 덩굴이 감긴 붉은 십자가 형상을 하고 있었다.[31] 대한예수교장로회(고신)의 경우, WCC 가입 분쟁시 이쪽에 합동하였다.[32] 큰 교단일수록 신학교에 가려고 하는 사람은 많은데 정원이 적어 어렵기 때문이고, 작은 교단일수록 교세를 늘리기 위해 목사가 되기 쉽게 하기 때문에 그렇다.[33] 예장통합측의 7개신학교는 교단에서 직영으로 운영을 하지만 각기 독립적인 이사회를 구성하여 운영중이다. 따라서 학교의 학풍이 같은 교단 내에서도 차이가 있다. 일례로 장로회신학대학교보다는 서울장신대가 보수적이란 평가를 받는다.[34] 예장통합 소속의 장로교 신학자인 김회권 교수는 여기에서 교목실장으로 목회하고 있다.[35] 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은 감신대, 한신대, 장신대와 협동하여 설립되어 특정 교파에 소속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따로 목사 안수를 하지 않는다. 신학적으로는 진보적인 학풍을 지닌 미국의 프린스턴 신학교에 비교되기도 한다.)[36] 연세대의 경우 개신교 이사회에서 4명이 파송된 이사인데, 각기 대한성공회, 한국기독교장로회,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측), 기독교대한감리회측에서 1명씩 파송한다.[37] 최근 이사파송의 인원수를 4명에서 2명으로 제한하기로 해 감리회측에서 반발이 있게 되었다.[38] 이종윤 목사가 과거에 담임이었다. 이종윤 목사는 초대 담임이었으며 원로목사로 있다.[39] 곽선희 목사가 과거에 담임이었다.[40] 이명박 전 대통령이 장로로 시무했던 그 교회다[41] 언더우드 목사가 세운 그 교회. 이 교회는 한국 장로교의 역사 그 자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42] 초기 담임목사는 고 한경직 목사.[43] 1894년에 설립된 역사있는 교회, 독립운동가였던 함태영 목사가 2대 담임목사로 사역한 교회이다. 하기한 초동교회 설립자와 동일인.[44] 강동수 목사가 과거에 담임이었다.[45] 이광선 목사가 과거에 담임이었다.[46] 박종순 목사가 과거에 담임이었다.[47] 초기 담임목사는 고 하용조 목사.[48] 교단을 탈퇴하여 초교파 교회 혹은 독립 교단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사실이 아니다. 과거에 하용조 목사가 독립 교단 선교에 몸을 담은적이 있기는 하지만 교단을 탈퇴하거나 옮긴 것이 아니라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같은 단체에 새롭게 가입한 것일 뿐이며, 온누리교회 담임목사로서의 자격이 아닌 문서선교 단체 '두란노서원' 원장으로서의 자격으로 가입한 것이다. 그러나 예장합신 출신인 현 담임 이재훈 목사를 비롯한 소속 목사 100명 중 40명이 타 교단 출신인데다 교회 영문명에 Presbyterian을 쓰지 않고 Community Church로 지칭할 정도로 교단색을 드러내지 않고 독자성이 강한 점을 감안하면 행정상으로만 예장통합에 소속된 사실상의 초교파 독립교회라고 보아도 무방하긴 하다.[49] 1897년 호러스 알렌이 세운 교회로 새문안교회, 승동교회와 더불어 한국 장로교의 산 역사로 불리는 교회.[50] 구 연예인교회. 1974년 고 구봉서 장로가 주축이 되어 고 하용조 목사(당시 전도사)를 모시고 시작한 성경공부가 모태가 된 교회로, 교회의 태동이나 초기 명칭 때문에 연예인들만 다니는 교회로 오해받기도 하나 현재는 연예인이 아닌 교인들이 더 많다. 대표적 인물이 정세균국회의장.[51] 김동호 목사가 과거에 담임이었다.[52] 손인웅 목사가 과거에 담임이었다. 본래 정동 덕수초등학교 인근에 있었으나 1984년 성북동으로 이전하였다.[53] 원래 1906년 평양에서 세워진 교회로 주기철 목사가 신사참배 거부로 순교하기 전 마지막으로 담임목사로 사역했던 교회이며, 독립운동가인 조만식 장로가 출석하던 교회이기도 했다. 분단 이후 6.25 전쟁을 거치며 월남한 교인들이 이곳뿐만 아니라 이태원(현 서초동), 회기동, 부산, 해운대, 대전, 여수, 익산 등 여러 곳에 같은 이름의 교회를 설립했다. 후암동 산정현교회는 6.25 직후 지은 예배당을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으며, 지금까지도 여러 교단으로 나뉜 다른 지역의 산정현교회 후신들과 교류할 정도로 항일과 반공 역사에 대한 자부심이 강한 교회이다. 본래 독노회(이북 출신 신사참배 반대 출옥성도들이 만든 군소 교단. 현 합동복구측) 소속이었으나 2005년 예장통합에 가입하였다. 남한에 소재한 산정현교회의 후신 교회들에 대해서는 이 자료를 참고.[54] 고 박종렬 목사가 과거에 담임이었다.[55] 이재철 목사가 과거에 담임이었다. 정신여고 강당을 지어주고 그곳을 예배당으로 빌려 쓰고 있어 유명하다.[56] 개포동 국립국악고등학교 인근에 위치한 교회로 교역자들의 철저한 역할분담과 주1회 예배, 짧은 본예배 시간, 예배후 커뮤니티 활동 등 교인들 간의 교제에 중점을 두는 독특한 프로그램으로 운영되고 있다. 담임인 안용성 목사는 서울여대 기독교학과 겸임교수이기도 하다.[57] 전덕열 목사가 과거에 담임이었다. 본래 인근에 있었던 한영방직 공장의 사내 교회로 시작하였다가 한영방직이 문을 닫은 이후 일반 교회로 전환하였다.[58] 방지일 목사가 과거에 담임이었다. 방지일 목사는 자신의 후임인 김승욱 목사가 은퇴한 후에도 원로목사로서 계속 교회를 섬기며 활발히 활동하다가 2014년 10월 10일 103세를 일기로 별세하였으며, 현재까지 한국 개신교 역사상 최장수 목회자로 기록되어 있다.[59] 이용남 목사가 과거에 담임이었다. 월계2교에서 인덕대학교 방향 오른쪽 뚝방, 옛 상신교통 종점 인근에 보이는 한옥 양식의 대규모 예배당이 장석교회이다. 1995년 현재 위치로 이전하기 전에는 장위동 사랑제일교회 자리에 있었다.[60] 오신주 목사가 과거에 담임이었다. 교회가 마포구 염리동을 기반으로 하고 있어 이런 이름이 붙여졌다. 당연한 얘기지만 HCl과는 관련이 없다.[61] 홍인식 목사가 과거에 담임이었다. 1976년 압구정 현대아파트 단지내 신사시장에서 시작하였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었다. 1992년 초교파 교회인 새길교회와 합병하여 초교파 독립교회가 되었으나 2년만에 결별하고 원소속인 예장통합으로 복귀하였으며, 2001년 삼성2동사무소 뒤편에 제과회사 영업소로 쓰이면서 방치되어 있던 현재의 교회당을 인수하여 이전하였다. 만 24세로 요절한 배우 이은주가 생전에 다녔던 교회이기도 하다.[62] 연예인들이 많이 출석하면서 유명해진 교회이다. 이름 때문에 구원파의 일파인 기쁜소식선교회와 관련있지 않느냐는 오해를 받는데 구원파와는 전혀 무관한, 예장통합 소속의 건전한 교회이다.[63] 성균관대역 바로 앞에 위치하고 있다. 화서역 인근에 있는 수원성감리교회와는 다른 교회이다.[64] 이승장 목사가 과거에 담임이었다. 이승장 목사 시절은 합신 교단 소속이었다.[65] 미국 북장로교 선교사 윌리엄 베어드가 세운 교회. 합동 교단의 초량교회와 함께 부산지역 장로교회의 산 역사로 불린다.[66] 평양 산정현교회 교인들이 6.25 당시 부산에 피난하여 예배를 드리다가 휴전 이후 서울 후암동으로 옮겨갈 때 부산에 남은 교인들이 분립하여 1956년 창설한 교회. 고 장기려 박사가 출석하던 교회로 유명하며, 초창기에는 부평동에 있다가 1982년 괴정동 현재의 위치로 이전하였다.[67] 신동혁 목사가 과거에 담임이었다. 6.25 직후 설립된 교회로 역사는 상대적으로 짧지만 한국기독교선교박물관을 운영하여 한국 개신교의 역사 및 유산과 유물을 보존하려는 노력과 함께 산하 기관인 예람선교센터를 통해 지역 주민들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1981년부터 매년 자선바자회를 개최하여 그 수익으로 시각장애인 개안수술을 지원하는 등의 지역사회 공헌을 인정받아 2016년 기독교윤리실천운동 좋은교회상을 수상하였다.[68] 6.25 당시 부산으로 피난한 서울 영락교회 교인들이 모태가 되어 1953년 세워진 교회. 1987년 당시 담임목사였던 고현봉 목사와 예장통합 총회의 갈등으로 고현봉 목사가 통합 총회를 탈퇴하고 합동정통(예장백석) 총회에 가입하면서 교회가 분열되었다. 2003년에 이르러서야 두 교회는 화해하였고 백석측 부산영락교회가 통합측 부산영락교회를 위해 하단동에 새로운 예배당 부지를 마련해 주어 이전하였다.[69] 학교법인 국성·남성·한성·훈성학원 설립자인 김길창 목사가 일제강점기부터 1960년대까지 담임했던 교회로, 해당 학교법인들의 모태가 된 교회이기도 하다. 김길창 목사는 일제강점기 장로교 교단 내 대표적인 신사참배 가담자로 많은 비판을 받는 인물이다. 그런데 정작 항서교회 홈페이지에는 일제강점기 민족의 빛이 되었다는 자화자찬은 있지만 어디에도 과거 친일 행적을 회개하는 내용은 없다.[70] 해방 직후 설립된 인천 지역 장로교회의 모태이며, 인성여자고등학교 모재단인 학교법인 제일학원을 운영하고 있다.[71] 나겸일 목사가 과거에 담임이었다. 현 담임인 주승중 목사는 순교자 주기철 목사의 손자이다.[72] 강태영 목사가 과거에 담임이었다.[73] 기독교복음침례회의 창시자 권신찬이 담임했던 그 칠성교회 맞다. 이 사건으로 인해 한때 교회 자체가 와해될 위기까지 갔지만 결국 살아남아 현재까지 존속하고 있다. 다만 권신찬 목사 시절을 흑역사로 여기기 때문인지 칠성교회 홈페이지에서는 오랜 전통을 언급하기는 하지만 교회 연혁은 공개하지 않고 있다.[74] 남정규 목사가 과거에 담임이었다.[75] 박종덕 목사가 과거에 담임이었다. 1938년 장로회-감리회 선교구역 분할 철폐 직후 세워진 대전 지역 장로교회의 모태이며, 대전 지역의 통합 교단을 대표하는 교회이다.[76] 고용일 목사가 과거에 담임이었다.[77] 고 김병화 목사가 과거에 담임이었다.[78] 한남대학교대전신학대학교가 인근에 자리잡고 있으며, 규모나 역사 면에서 대전 지역의 통합 교단 교회를 대표하는 교회들 중 하나이다.[79] 이명박 전 대통령이 학생 시절에 출석했던 교회로 알려져있다.[80] 옥한흠 목사가 과거에 담임이었다.[81] 전아무개 목사가 담임이였으나, 성추행 사건 이후 사임하고 홍익대학교 인근에 새교회를 차렸다. 자신의 추종자들을 이끌고 나간 건 덤.[82] 1893년 새뮤얼 무어 선교사에 의해 설립되어 12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교회. 예장통합의 새문안교회, 남대문교회와 더불어 한국 장로교회의 산 역사로 불리는 교회이다.[83] 홍정길, 이철 목사가 과거에 담임이었다. 홍정길 목사는 장애인학교 건립을 위해 사임하고 남서울은혜교회 창립.[84] 박철수 목사가 과거에 담임이었다.[85] 송태근 목사가 과거에 담임이었다.[86] 길자연 목사가 과거에 담임이었다. 아들인 현재의 담임목사에게 세습하는 과정에서 논란이 많았다.[87] 박승준 목사가 과거에 담임이었다.[88] 1960년대 독립 교회였던 후암동 산정현교회에서 교인들이 분립하여 나와서 이태원동에 새로운 산정현교회를 설립, 1971년 예장합동에 가입하였으며, 1980년대 후반 서초동으로 교회를 이전하였다. 현재 남한에 소재한 산정현교회 후신들 중 교세가 가장 크다.[89] 고 김창인 목사가 과거에 담임이었다. 하지만 최초로 담임목사 자리를 세습한걸로 알려졌으며, 아들 목사의 횡포때문에 전성기때에 비해 교인들이 많이 줄었다[90]김영삼 전 대통령이 장로로 시무하던 교회이기도 하다.[91] 세들어있던 건물에 붙은 커다란 감자탕집 간판 때문에 일명 '감자탕교회'로 유명한 교회. 교회 이름을 한자로 쓰면 光鹽敎會로, '빛과 소금의 교회'라는 뜻이라고 한다. 지금은 하계동 서울온천 건물 일부를 매입하여 정식으로 예배당을 '소유'한 교회가 되었다.[92] 오준규 목사는 오륜교회 부목사로 있다가 독립하여 구리시 교문동 시청 인근 상가 2층에 교회를 개척하였다. 세월호 침몰 사고 이후 피해자들에게 무관심한 개신교인들의 관심과 각성을 촉구하는 활동을 하는 한편, 삼일교회 전병욱 목사와 사랑의교회 오정현 목사에게 각 소속 노회가 사실상 면죄부를 준 판결에 항의하여 합동 총회회관 앞에서 1인시위를 진행하는 등 합동측 목사로서는 드물게 사회참여적, 개혁적 성향을 지녔다.[93] 수원화성을 거닐다 보면 창룡문 쪽에서 유럽식의 거대한 고딕 양식의 갈색 예배당이 보이는데 바로 수원제일교회다. 수원시내 고도제한이 설정되기 전인 1989년에 건축되었기에 이같이 높이 올릴 수 있었다고 한다. 현재는 이러한 이점을 살려 수원화성을 내려다볼 수 있는 전망대로 종탑을 비신자들에게 개방하고 있다.[94] 김성길 목사가 과거에 담임이었으나 아들에게 세습하였다. 세습 뿐만 아니라 김성길 원로목사의 2017년 박찬주 육군대장 옹호 발언으로 논란을 일으켰다.[95] 김인중 목사가 과거에 담임이었다.[96] 통합 교단의 부산진교회와 함께 윌리엄 베어드 선교사가 세운 부산 지역 장로교회의 양대 산맥으로 순교자 주기철 목사가 사역하기도 했던 교회이다.[97] 정필도 목사가 과거에 담임이었다.[98] 한규석 목사가 과거에 담임이었다.[99] 1952년 창립 초기에는 고신 교단 소속이었다. 고신과 합동이 합쳐졌다가 환원될 때 환원된 고신측에 가담하지 않고 합동 교단에 그대로 남은 케이스.[100] 고 임태득 목사가 과거에 담임이었다. 임태득 목사는 예장합동 증경 총회장 재임중 여성 목사안수에 반대하는 입장을 밝히면서 "여자들이 기저귀 차고 강단에 올라가? 안 돼!"라고 발언하여 큰 파문을 일으킨 바 있다.[101] 대구시청 바로 뒤에 위치하고 있다. 1967년 건립된 옛 명성예식장 건물을 1978년 인수하여 교회당으로 쓰고 있어 일반적인 예배당과는 다른 독특한 건축 양식을 갖고 있다.[102] 구 프린스 호텔을 인수한 신일교회로 잘 알려진 교회. 2017년 4월 광주신일교회와 광주중앙교회가 합병하였다.[103] 최기채 목사가 과거에 담임이었다.[104] 서울 사랑의교회 담임목사인 오정현 목사의 친동생이다. 오정호 목사는 논문표절 및 허위학력 의혹 등으로 물의를 일으켰던 형과는 달리 교회갱신협의회 상임회장을 역임하고 한국 개신교의 현실에 대한 비판적 입장을 표명하는 등 개혁성향을 지닌 인물이다.[105] 박중식 목사가 과거에 담임이었다.[106]장효희 목사가 과거에 담임이었다. 장효희 목사는 불미스러운 사건을 일으키고 사망하면서 교계 및 사회에 큰 논란을 일으켰던 인물이다.[107] 양용주 목사가 과거에 담임이었다. 대신 교단의 발상지로 안양대학교의 전신인 대한신학교가 이곳에서 창립하였다. 1970년대말 교회에 부임한 담임목사와 일부 교인들 간의 갈등으로 내부 분열이 일어났고, 1980년 담임목사와 그를 따르는 교인들이 통합 교단으로 옮겨 성화교회(현 청파동교회)로 분립해 나간 흑역사가 있다. 분열 초기에는 불편한 관계가 장기간 계속되었으나 현재는 새로운 교인들이 대거 유입되고 청파동 교동협의회 공동 참여 등을 통해 두 교회의 관계가 우호적으로 개선된 상태.[108] 최복규 목사가 과거에 담임이었다. 초창기 명칭은 '베다니교회'였으나 중곡동 옛 천일사(태광에로이카 전신) 자리로 이전하면서 현재의 이름으로 개명하였다.[109] 유재열의 장막성전이 이삭중앙교회로 바뀐 이후 기성교회화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는 교회. 과거에는 대한예수교장로회 개혁국제파라는 소수 교단 소속이었으나 현재는 예장백석에 가입해 있으며, 기성교회화 되면서 과거 장막성전의 색은 거의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110] 6.25 당시 부산으로 피난한 서울 영락교회 교인들이 모태가 되어 1953년 세워진 교회. 1987년 당시 담임목사였던 고현봉 목사와 예장통합 총회의 갈등으로 고현봉 목사가 통합 총회를 탈퇴하고 합동정통(예장백석) 총회에 가입하면서 교회가 분열되었다. 2003년에 이르러서야 두 교회는 화해하였고 백석측 부산영락교회에서 부지를 마련해 주어 통합측 부산영락교회는 하단동으로 이전하였다. 참고로 예장백석 교단은 현재 대한민국 3위의 개신교 교단으로 성장하였지만 부산에서는 교회수가 총 10개를 넘지 않을 정도로 교세가 매우 약하다.[111] 과거에는 예장개혁 소속이었으나 개혁측이 예장합동에 복귀하는 과정에서 합동측에 가담하지 않고 독립교회로 남아 한독선연에 가입하였으며, 2015년 예장백석에 가입하였다. 이영환 목사는 대전에서는 침례회장경동 목사와 더불어 인지도가 높은 이른바 '네임드' 목사 중 한 명이며, 침신대 출신이면서 장로회 목사 안수를 받아서인지 기존 장로회 목사들과는 약간 다른 성향을 보인다. 국회의원 박병석이 출석하는 교회로 잘 알려져 있다.[112] 1990년대 초 신학교를 갓 졸업한 박경배 전도사가 천막교회로 시작하였으나 송촌지구가 택지로 개발되면서 이주민들을 대거 유입하여 급성장하였다. 현재는 한밭제일교회와 함께 대전 지역의 백석측 교회를 대표하는 중견 교회가 되어있다.[113] 1976년 철학자이자 사회윤리학자인 손봉호 박사가 주축이 되어 설립한 교회이다. 기존 문서에 영동교회라고 되어있으나, 서울영동교회가 정확한 명칭이다. 서울 강남구 논현2동 88-2번지 소재[114] 통합측인 김진홍 목사의 두레교회와는 다른 교회이다. 보수성이 강한 고신측 교회로서는 드물게 노숙인 쉼터를 운영하고 사회복지에 많은 관심을 갖는 한편 교회개혁실천연대를 통해 개신교 바로잡기 운동을 하고 있다. 이 때문에 담임인 오세택 목사는 고신 교단에서 안 좋은 의미로 '찍힌' 입장이라고 한다.[115] 박은조 목사가 과거에 담임이었다. 서울영동교회에서 분립한 교회이다.[116] 정판술 목사가 과거에 담임이었다.[117] 부산광역시 영도구 지역의 개신교를 대표하는 고신 교단의 교회. 조선 말기인 1896년 설립되어 12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이곳에서 제2~제8영도교회까지 분립하였다.[118] 고 김덕복 목사가 과거에 담임이었다. 1964년 설립된 대전 최초의 고신측 교회이며, 대전지역 고신 교단의 모교회이다.[119] 석원태 목사가 과거에 담임이었는데 아들에게 세습한 것이다.[120] 이병규 목사의 주도로 만든 고려파에서 파생된 교단.[121] 계신교단 설립자인 이병규 목사가 설립, 죽을 때까지 담임하던 교회로 계신파의 모태라 할 수 있는 교회이다. 그러나 정작 이병규 목사가 사망한 후 계신 총회와 창광교회 당회의 마찰이 현재까지 끝이지 않고 있다.[122] 김명혁 목사가 과거에 담임이었다.[123] 영등포역 쪽방촌에 위치한 교회로 영등포 쪽방상담소와 노숙인 쉼터를 운영하고 있다.[124] 홍정길 목사가 과거에 담임이었다.[125] 박영선 목사가 과거에 담임이었다.[126] 최홍준 목사가 과거에 담임이었다.[127] 이계실 목사가 설립한 교회로 예장순장 교단의 모태가 되는 교회이다. 원래 함경남도 함주에 있었으나 6.25 당시 거제도로 피난하여 교회를 재건하였고, 휴전 이후 서울 신길동 현재의 위치에 자리를 잡고 덕천교회에서 현재의 명칭으로 개칭하였다.[128] 구 대선교회. 선화동 옛 대전문화방송 옆에 위치하고 있다가 주거환경 개선사업으로 2008년 관저동으로 이전하였다.[129] 본래 담임목사였던 박종화 목사가 2015년 12월 정년 퇴임하고, 후임으로 한신대학교 총장을 역임한 채수일 목사가 청빙되었다. 초기 담임은 김재준, 강원용 목사. 이 교회는, 대한성공회 서울교구 최초의 여성 사제인 김기리 미리암 신부가 성공회로 개종하기 전 다녔던 교회이기도 하다.[130] 훗날 부통령을 지낸 함태영 목사가 설립한 교회. 기장과 예장이 분열되는 과정에서 조향록 목사가 이 교회를 이끌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기장 소속으로 자리를 잡았다.[131] 밑에도 나와 있지만 향린이라는 이름이 붙은 교회가 왜 여럿 있냐면, 모체인 '향린교회'는 신자 수가 불어나면 일부를 다른 교회로 분가시키는 원칙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132] * 국내의 대표적인 LGBT 사목 교회다. 현재 예장합동교단에서 이단성 심의를 제안하여 주요 7개 교단에서 이단 심의 중. 기장은 시비로 간주하는 중. 일단 약자의 편에 서기에 내버려두는 중이라는 한신대 신학 교수의 기사도 있다.[133] 이중표 목사가 과거에 담임이었다.[134] 이중표 목사가 과거에 담임이었다.[135] 전병금 목사가 과거에 담임이었다.[136] 서울역 맞은편에 위치한 교회. 특히 이곳은 한신대학교의 발상지이기도 하다.[137] 베뢰아 아카데미 출신으로 이단 논란이 있는 레마선교회의 이명범 목사가 설립한 '예일교회'를 모체로 한 교회. 공학도 출신으로 건전한 신학을 공부한 아들 조준환 목사가 상속받은 후 각고의 노력 끝에 한국독립교회선교회연합회를 거쳐 한국기독교장로회 경기남노회에 가입한 정통 교회로 변신시켰다. 현재 조준환 목사는 어머니 및 어머니와 관련된 인맥들을 교회에서 모두 제명하고, 레마선교회와의 관계를 단절한 후 건전한 교회로 유지,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한다. 자료 2014년 예일교회에서 올리브교회로 이름을 바꾸었다.[138] 이동휘 목사가 과거에 담임이었다. 조립식 미군 격납고를 불하받아 옮겨 지은 독특한 예배당 모양 때문에 '깡통교회'로 잘 알려져 있다.[139] 나머지 하나는 대한성공회.[140] LGBT에 포용적인 대표적인 국내 교회로 임보라 목사의 섬돌향린교회가 있다. 이외에도 대한성공회 소속의 길찾는교회도 있다.[141]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열린예배의 첫 스타트를 끊어놓은 교회는 경동교회(...). 정확히는 통기타 연주를 예배에 처음 도입한 것.[142] 출처[143] 손 목사의 딸인 손동희 권사는 예장고신 소속 부산소재 교회에 다닌다고 한다. 50년만에 고신대 졸업. 단 손양원 목사는 예장 통합 여수노회 소속. 수정전 고신으로 편입이 되어 있었으나 손양원 목사가 순교할때는 고신은 성립되기도 전이었다. 물론 손양원 목사가 어릴적에 다녔던 경남 함안 소재 칠원교회는 현재 예장 고신 마산노회 동함안시찰 소속이고, 신사참배 거부 등의 행적들을 보면 고신과 정신적으로 무관한 것은 아님.[144] 교인 수로는 예장통합이, 개교회 수로는 예장합동이 우세.[145] 사실 이 문제는 한국 감리교(기감회)에도 비슷하게 적용되는 비판이다. 참고로 국내 개신교 교단 중에서 에큐메니컬 정신에 가장 철저한 교단은 대한성공회.[146] 교단 지도층 인사인 명성교회 김삼환 목사가 교회일치운동에 관해 어떤 행보를 보이는지를 보면 이를 알 수 있다.[147] WCC 개최 문제라든지, 가톨릭과의 직제 일치 합의 문제 등에서 예장통합 내 일부 보수파들에 의한 잡음이 일어난 적 있다.[148] 국사교과서 국정화 사태에 대해서 교단 산하 장로회신학대학교에서도 이 사안가지고 교수들과 학생들이 의견이 양쪽으로 갈렸다. 신학교인만큼 교단보다는 진보적이지만 보수측이 결코 적은 수는 아니다.[149] 이전에는 충청권의 통합 교단 교세가 크다고 기재되어 있었는데 충청도 지역에는 오히려 교세가 약한 편이며 감리회, 구세군, 성결교회 등 타 교단 교회에 출석하는 개신교인들이 많다. 통합교단의 충청+강원권 교인 수는 교단의 2016년 자료 기준으로 20만명 정도(충청권만으로는 약 17만명). 각각 46만명의 호남권, 43만명의 영남권에 비하면 인구 감안해도 적은 편이다. 2016년 기준으로 교단 소속 교회 교인은 약 278만명. 수도권 지역 교인 수는 약 170만명.출처 특히 감리회 신자가 약 4만명에 불과하여 통합교단 신자의 절반 수준에 지나지 않는 충북권과 달리 은 약 20만명의 교인이 출석하는 감리회가 강세를 보이는 지역이다. 전국적으로 통합 교단이 교인 수에서 감리회보다 2배 이상인 점을 감안하면 이 지역에서 감리회의 강세를 유추할 수 있다.출처[150] 예외적으로 대전은 평양노회 등 이북지역 노회 소속 교회를 합친 교인수가 약 7만명, 교회수 262개로 충남권에서 유일하게 예장통합이 감리회(교회수 238개)나 성결교회(교회수 138개)보다도 많고, 예장합동에도 뒤지지 않을 만큼 교세가 강한 편이다.출처 이는 한국 선교 초기 대전 지역이 감리회와 장로회의 선교 구역 경계였으며, 일제강점기인 1938년에 충남권 최초의 장로교회(현 대전제일교회)가 대전에 세워진데다 해방 후 한남대학교대전신학대학교가 들어서고 1952년 대전시기독교연합회 발족 회원 교단으로 참여하는 등 대전에서 예장통합의 활동이 활발한 영향도 있고, 타지역 출신 주민이 많고 특정 교파에 거부감을 갖지 않는 대전 지역 개신교인들의 특성도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인다. 참고로 대전 5개 자치구 지역자활센터 중 대덕구, 유성구 등 2개 구의 지역자활센터, 서구 월평동정림동의 사회복지관을 예장통합 대전노회가 위탁 운영하고 있다.[151] 교인 수로는 예장통합이, 개교회 수로는 예장합동이 우세.[152] 그 대신 교회 표어나 성경구절, 혹은 풀밭 사진을 걸어둔다.[153] 사실 이 부분은 한국 가톨릭 측에서도 개신교의 세례를 대부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예장합동의 입장만 비판하기에는 무리가 있다.[154] 예장합동의 대표적 교회인 삼일교회만 봐도 젊은이들(특히 숙대생)을 끌어모으기 위해 적극적으로 열린예배를 받아들여 시행하고 있으며, 오륜교회의 경우도 신사도 운동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어 비판을 받는다.[155] 충주. 진천, 음성, 괴산 한정. 제천단양은 오히려 장로회 중 합동의 교세가 우세한 편이다.[156] 이전에는 호남권 성도 수가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라 적혀 있었는데, 79년에 합동과 분열했으며 전라도에 많이 분포했던 개혁 교단의 합동 교단 복귀 전까진 실제로 그랬다. 그러나 2005년 복귀 이후로는 2017년 3월 크리스찬투데이 발표 기준으로 전국 270만 합동측 교인 중 해당 지역의 교인이 57만명으로 오히려 전국에서 많은 편이다.출처 합동계열 교회가 호남권에 많은 이유는 보수적인 미국 남장로교 선교회가 선교 초기에 이 지역의 선교를 담당해서라는 분석이 있다. 다만 전남 동부 지역(순천, 여수, 광양, 보성, 구례, 곡성 등)은 통합 교단의 교세가 압도적으로 이곳에서는 합동이 힘을 못 쓴다.[157] 강원권은 2016년 기준으로 11만명의 교인이 소속된 감리회가 가장 많은 지역으로, 합동뿐 아니라 장로회 자체가 감리회보다 교세가 약한 편이다.출처 물론 강원권에도 장로교회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강원권 장로교회, 특히 영동 지방 장로교회의 대부분은 통합 교단 소속. 그나마 원주시를 위시한 영서 지방에서는 합동이 어느 정도 힘을 쓰는 편이다.[158] 다만 주기철 목사 본인은 2016년 복권되면서 현재 예장합동의 평양노회에 교적을 두고 있으며(출처), 막내아들인 故 주광조 장로는 예장통합교단 소속 영락교회 은퇴장로,출처 손자인 주승중 목사(셋째아들 주영해 장로의 차남)는 예장통합 소속 주안장로교회 담임목사이다.이 출처에서 주승중 목사가 말하는 숙부가 바로 앞서 언급한 주광조 장로이다.[159] 2007년도 기준 교단 소속 교회 중 48%가 부울경 지역에 위치했고 17%가 대경권에 위치했음. 경상도 전체로는 65%의 비율을 차지. 다만 경북권은 경남권에 비해 교세가 약해서 경북 남부 지역은 예장합동이 우위인데 비해 고신측 교회는 상대적으로 드물고, 예장통합이 압도적 우위인 경북 북부 지역에서는 고신 교회를 거의 찾아볼 수 없다.[160] 단, 고신 총회는 부산이 아닌 서울 서초구 반포동에 위치하고 있다.[161] 그나마도 예배 시작전 준비찬양 시간에만 부분적으로 허용될 뿐, 본예배 시간에는 여전히 피아노나 오르간 이외의 악기를 사용하지 않는다.[162] 이는 통합-합동 분열 이전의 예장 총회가 1957년 강단 십자가 부착 금지를 가결하였고,(분열 이후 예장통합은 1960년대 이 조항을 삭제하였다.) 예장고신이 분리되어 나온 것은 해당 조항 제정 이전인 1952년이기 때문이다. 다만 태극기, 성조기 등의 국가주의, 민족주의적 상징물을 강단에 비치하는 것은 비성경적인 행위로 간주하여 엄격히 금하고 있다. 강단 십자가에 대한 예장고신의 입장은 예장고신 기관지 기독교보의 기사를 참조.[163] 예를 들면, 고신 교단 소속인 대전의 한밭교회는 본당 강단에 십자가를 설치하고 있다.[164] 한국인 최초로 성경 66권의 주석 집필을 한 성경신학자로, 보수계열 신학자와 목회자들에게 많은 존경을 받은 학자이다.[165] 이전에는 합동교단 설명에 상술한 개혁교단과 같은 교단이었다가 이후 교단이 나뉘었다.[166] 본래 구 예장백석과 통합 이전의 구 예장대신은 성향차이가 있는 교단으로, 통합 과정에서 통합에 반대하던 구 예장대신 측 교회들이 일부 대신석수측 등으로 분리되어 나가기도 하였다.[167] 구 예장백석의 개교회 숫자는 5,588, 통합 당시 구 예장대신에서 통합된 예장대신으로 합류한 개교회의 숫자는 약 1,440여 개였다.[168] 신학사상 교육은 거의 하지 않고, 성경통독 100회 등 성경 연구와 영성 훈련에 중점을 두고 있어 신학교라기보다 수도원에 가까운 형태로 보아야 한다.[169] 원래는 1990년대에 부산 금정구에 정규 대학으로 설립하려고 했으나 브니엘학원 사태로 인하여 설립인가가 취소되어 정규대학으로 설립되는것이 무산되었으며 해당 사태로 인하여 해당 교단에 대한 인식도 나빠져서 교세 확장에 발목을 잡아버렸다. 더군다나 2013년 이후 대학설립준칙주의도 폐기 되면서 정규 신학교가 될 가능성은 한없이 낮아 보인다.[170] 2015년 대전 성은교회를 담임하던 이아무개 목사가 신앙적 견해 차이로 독립개신교회(계승)이라는 새로운 교파를 세워 갈라져 나갔으나, 이에 반발하여 이목사의 성은교회를 탈퇴하거나 제명된 성은교회의 신도들이 2016년 유성구 원내동에 기존 독립개신교회 소속으로 성은교회를 새롭게 출범하였다. 다만 독립개신교회 교단 홈페이지에는 재창립된 성은교회의 정보가 아직 반영되어 있지 않다.[171] 예배 도중에 부르는 찬송 순서가 영광송상투스→'경배송'→'헌상송'→송영 순서이다. 찬송가부터가 교단 특유의 전용 찬송가를 쓴다.[172] 정통 교단처럼 위장하기 위해 만든 명칭으로 합동측과는 전혀 관련이 없다. 무엇보다 합동측은 여성에게 목사 안수를 주지 않는다.[173] 변승우 목사는 본래 예수교 성결교회 출신으로 성결대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 안수를 받았으나 이후 예장백석 교단으로 옮겨 울산에서 큰믿음교회를 시작하였다. 2016 예장통합 사면 취소 사태에 관련되었다.[174] 장막성전의 교주 유재열이 미국으로 이민한 후 오평호가 장막성전의 남은 신도들을 모아 만든 종파. 교리나 신조 등에서 장막성전의 영향을 완전히 탈피하지는 못했다. 결국 유재열이 귀국한 후 오평호는 해임되었고, 이후 유재열도 종교활동에서 손을 떼면서 현재는 과천소망교회라는 이름으로 개칭되어, 장막성전의 색이 거의 없는 평범한 예장백석 소속 교회가 되었다.[175] 민중신학자로 잘 알려진 안병무 박사와 박성준 교수가 공동으로 설립한 교회로 본래 기장 소속이었다. 자체 예배당을 갖지 않고 서대문역에 있는 안병무 기념관에서 예배를 드린다.[176] 전두환 시절 정권의 지지&지원 하에 성장한, 대한축구협회 회장과 63빌딩의 대한생명으로 상징되던 최순영신동아그룹 회장과 연관이 있다.[177] 이 교회 이름에서도 유추가 되는 할렐루야 독수리 축구단과 그 자매구단 혹은 그 자체의 계승 구단인지 여부로 논란이 있었고 최근까지 개명해가며 질긴 생명력을 보여주다 사실상 소멸한 임마누엘 축구단 → 재건할렐루야 축구단 → 고양HiFC → 고양자이크로도 마찬가지로 연관이 있다.[178] 충암고등학교 맞은편에 위치한 교회. 과거에는 예장통합 소속이었다. 이쪽은 신학적 성향보다는 정치적 문제로 인해 출교와 교단 탈퇴로 이어진 사례에 속한다.[179] 이들은 이미 '사보이 선언'을 하면서 장로교와는 갈라선 상태였다. 1685년 영국 사보이 궁전에 모여서 웨스트민스터 문서들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없다고 선언하며 고백서의 내용을 일부 수정했고, 회중교회만을 위한 '사보이 신앙고백서'를 작성하기도 했다.[180] 환원 운동에서 생겨난 그리스도의 교회 제자파(DoC)와는 진보적 주류 교파란 공통점만 있을 뿐 직접적인 관계는 없다.[181] 현대 한국 개신교 교단들 중에서는 마이너 교단인 '기독교대한복음교회'가 이런 형태를 띄고 있다.[182] 교회일치운동의 일환으로 자비송, 영광송 등의 예전(liturgy) 의식들을 되살리자는 운동이며, 이것의 결과물 중 하나가 바로 '리마 예식서'이다.[183] 2차대전 이후 아오가쿠 등 다른 대학의 신학부들이 이곳으로 이관되었으며, 명칭도 도쿄신학대학으로 바뀌었다.[184] 그러나 성서비평학 자체는 한국의 몇몇 개신교인들이 생각하는 것 만큼 사악한 학문이라고만 볼 수 없다.[185] Mainline Protestant, 후기 자유주의와 신정통주의에 호의적인 대형 개신교 교단들을 말한다. '주류'라고 부르지만 21세기 기준으로는 사실상 퇴물로 전락했다.[186] 수정교회로 유명한 故 로버트 슐러가 이 교단 소속이었다.[187] 1993년 NRCA에서 분리된 교단으로 우리나라에서도 어느 정도 알려진 조엘 비키(Joel Beeke) 목사가 이 교단 소속이다.[188] 다만 임기가 지나도 다시 뽑히는 것이 가능하다.[189] Nederlandse Hervormde Kerk, 한국 신학계에서는 분리된 '화란개혁교회'와 구별하기 위해 '국가개혁교회'나 '갱생교회' 등으로 번역하기도 한다.[190] 분리 초기에는 국교회의 자유주의화를 애통해한다는 뜻에서 애통(Doleantie)파 교단이라는 명칭을 사용했지만, 하술된 기독개혁교회의 다수파와 통합하면서 이 이름을 사용하게 되었다. 2004년 교단 재통합 전까지 썼던 '총회파'(Synodaal)라는 표현은 해방파와 구별하기 위해 붙여진 별칭이다.[191] 이 파벌에 속한 국교회들은 오후예배 시간이 존재한다.(일반 국교회는 오전예배만 있음)[192] 그 대신 개교회별로 교회 인장(kerkzegel)을 사용했다.[193] 분리 초기에는 '십자가 밑의 개혁교회'(Gereformeerde Kerk onder het Kruis)라는 명칭을 사용했지만 곧 위와 같은 명칭으로 바꾸었다.[194] 디모데전서 6장 20절(네게 부탁한 것을 지키고...)에서 따온 것이다.[195] 모태신앙은 열매를 맺기 전부터 기본적으로 거듭났다고 봐야 한다는 주장.[196] 유기되어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도 최소한의 '은혜'는 입는다는 주장. 옹호 측에서는 보수적인 교회라도 적극적으로 사회를 변혁시킬수 있다는 근거로 사용했으나 반대 측에서 이 이론은 알미니안주의와 다를 것이 없으며 교회를 세속화시킬수 있다고 논박한다.[197] 카이퍼가 주장한 영원칭의론은 일반적인 칼빈주의자들의 칭의론과 달리 한번 선택받은 사람은 그냥 그 의를 받아들이기만 하면 된다는 주장에 가깝다. 일견 그럴듯하지만 반대 측에서는 신자의 책임감을 약화시키고 이신칭의론을 손상시킬 위험이 있다고 바라보는 편이다.[198] 이들은 당시의 네덜란드 교회헌법 31조를 들어 자신들이 당한 권징이 부당한것이라고 호소했고 그 때문에 '31조파'라는 별칭도 갖고 있다.[199] 상기한 네덜란드 개신교회에 통합되지 않은 교단치고는 진보적인 편에 속한다.[200] 아직까지도 한국에서는 저명성이 없는 교단이라 공식 번역명칭이 존재하지 않는다. 여하튼 이 이름을 가진 네덜란드 교회들은 교리적으로는 분명 아무런 문제가 없는 정상적인 교단임에도 교회 안은 물론이고 뾰족탑에도 십자가를 달지 않으며, 예배를 드릴 때 여자들은 챙 달린 모자를 꼭 써야 하는 등 20세기 전반의 네덜란드식 개혁주의 스타일을 잘 유지하고 있는 편이다.[201] 예장합동 소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