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이나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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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이나교의 공통상징.

'실질적인' 창시자인 마하비라의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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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위키미디어 공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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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창시자3. 기본 가르침
3.1. 불살 (아힘사不殺生)3.2. 카르마3.3. 고행3.4. 5대 서약
4. 특징
4.1. 인본주의적 자력 종교4.2. 이원론적 세계관4.3. 마이너 종교?
5. 교파
5.1. 공의파空衣派5.2. 백의파白衣派
6. 그 외7. 관련 항목

옳을 수도 있다.
틀릴 수도 있다.
옳지만 틀릴 수도 있다.
판정할 수 없을 수도 있다.
옳을 수도 있지만 판정할 수 없을 수도 있다
틀릴 수도 있지만 판정할 수 없을 수도 있다
옳거나 틀리거나 판정할 수 없을 수도 있다
-자이나교의 논리학


판단하지 않고(무판단) 그저 듣고 보고 느끼는 것


1. 개요[편집]

불교와 비슷한 시기에 인도에서 일어난 종교. '자이나'란 승리자라는 의미다.

2. 창시자[편집]

자이나교의 '실질적인' 창시자는 마하비라. 출가 이전의 이름은 '바르다마나'로, 크샤트리아 계급에 속하는 꽤 높은 신분의 인물이었으며 기원전 5-6세기 사람으로 석가모니와 동시대 사람이었다. 그의 부모님은 그가 출가하기 이전에 이미 자발적으로 단식[1][2]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한다.

마하비라가 자이나교를 처음부터 만든 것은 아니고, 처음 자이나교를 창시한 자는 '리샤바'라고 한다. 자이나교에서는 이 리샤바부터 파르슈바나타까지 23명의 자이나교 지도자들을 완전히 깨달은 자, 즉 지나(Jina)라고 하였다. 자이나교의 이름은 여기에서 유래한 것이며, 지나는 다른 말로 '티르탕카라'라고도 한다. 마하비라는 파르슈바나타의 가르침을 물려받고 12년간 수행한 후 최상의 지혜를 얻어 '지나'가 된 뒤 자이나교의 교리를 정립하고 종교의 체계를 갖추어 실질적으로 자이나교를 창시하게 되었다. 자이나교 교리에서는 창시자인 마하비라가 마지막 지나라고 한다.

마하비라는 고행을 버림으로써 깨달음을 얻은 석가모니와는 달리 12년간 계속한 극단적인 고행을 통해 깨달음을 얻었으며 단식을 하다 굶어 눈을 감았다.

이후 자이나교는 마하비라의 유지를 이은 수다르만 등에 의해 계승된다.

3. 기본 가르침[편집]

자이나교는 윤회설을 믿고 있다. 삶과 죽음의 무한한 사이클에서 벗어나려면 올바른 지식(Samyak Gyana), 올바른 관점(Samyak Darshana)을 가지고, 올바른 행동(Samyak Charitra)으로 이를 실천해야 한다고 본다.

올바른 지식이란 존재 자체에 대한 올바른 탐구를 의미한다. 그릇된 관점으로 색안경을 쓰고 대상을 보면 대상의 본질을 정확히 파악할 수 없듯이, 바른 관점을 가지기 위해서는 올바른 지식을 얻는 것이 필수적이다.

자이나교는 이 올바른 지식을 얻는 길은 무수히 많다고 보고, 어느 관점이라도 삶의 진리를 파악하는 데 다가갈 수 있다고 주장하여 자신이 가지고 있는 관점이 유일한 옳은 길임을 주장하는 자들을 비판하였다. 그렇기에 자이나교는 타 종교에 대해 매우 포용적이고 잘 융화되는 장점이 있다.[3] 자이나교 역시 삶의 진리를 탐구하는 길 중 하나일 뿐이라는 것이다.

올바른 지식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냥 서양의 상대주의 철학과 다를 것이 없다. 올바른 관점에서 자이나교의 특징이 드러나게 되는데, 세상을 구성하는 원리인 '타트바'에 대해 이해하는 것이다. 생물(jiva)과 무생물(ajiva)이 영적으로 교류하게 되면(yoga)[4] 영적 요소가 생물에게 유입되게 되는데(asrava), 생물은 이 영적 요소를 빠져나가지 않게 붙잡아두고 카르마로 만들어지게 된다.(bandha) 그런데 선한 카르마면 문제가 없는데, 악한 카르마인 경우 더 이상의 유입을 막고 이미 몸에 들어온 것은 없애야 한다.

악한 카르마의 유입을 막으려면 금욕을 행해야 하며(samvara), 극도의 금욕을 하게 되면 이미 들어온 악한 카르마를 없애준다(nirijara). 오랜 수련 끝에 카르마에 연연하지 않게 되면 자이나교 가르침의 정점에 이르러 윤회론에서 벗어나게 된다. 불교의 해탈과 비슷한 셈.

3.1. 불살 (아힘사不殺生)[편집]

아힘사ahimsa란 불살생不殺生의 계율을 뜻하며, 자이나교에서 가장 중시하는 교리이다. 자이나교는 이를 대단히 엄격하게 준수할 것을 요구한다.

인도 외부로 퍼져나간 불교와는 달리 인도의 토착종교로 남았는데도 소수종교인 이유 중 하나.

농작물 갉아먹는 해충도 죽이면 안 되는 것은 물론 미생물을 죽이지 않도록 호흡도 수건으로 입을 가리면서 해야하고 수돗물도 헝겊에 한 번 걸러 먹으며, 벌레를 밟지 않도록 길을 걸을 때도 빗자루로 쓸면서 다녀야 한다. 식물조차도 쌀이나 밀처럼 낱알 하나를 다 먹어서 생명을 끝장내는 식물은 먹지 못하고 감자나 양파 등 싹을 틔울 수 있는 뿌리식물조차도 먹지 못하며 오직 잎 등만 먹어야 한다.

때문에 무소유의 계율에 의해 옷도 입지 못하는 자이나교도에게 허락된 몇 안되는 소지품이 방울달린 빗자루(지팡이)와 헝겊, 입 가리기용 수건이다.

앞서 말한대로 인도의 토착종교로 남은 이유도 이 아힘사 때문인데, 잘못해서 물속 생명을 다치게 할까봐 강을 건너거나 배를 타거나 해서 다른 나라로 가지 못한 것이다.

교조인 마하비라는 벌거벗고 다닐 때 벌레들이 자신의 몸을 물어뜯고 기어다녀도 혹시 잘못 건드렸다가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여 내버려두었다고 한다.

이 때문에 자이나교에서는 먹는 것도 엄격하게 제한하며, 생명을 최소한으로 해치는 범위에서만 식량을 구하도록 하고 있다. 실제로 자이나교에서 최고의 경지로 치는 것은 식물을 포함하여 아무 생명도 해치지 않기 위해 단식하다가 굶어죽는 것이다. 이쯤 되면 무섭기까지 하다.[5]

자이나교는 눈에 보이지 않는 미생물에 관해서도 다루고 있다. 교리에는 이 세상의 모든 공간, 모든 물체에 니고다(nigoda)라고 하는 아주 작은 미생물이 있다고 한다. 즉, 숨을 쉬고 있는 지금 이 순간도 니고다가 죽어가고 있으며, 걸을 때마다, 앉을 때마다, 누울 때마다 니고다들이 깔려죽고 있는 것이다. 즉 자이나교도들이 보기에 모든 생명체들은 무슨 짓을 해도 살생을 피할 수 없는 것이다.

또한 자이나교는 살생에 등급을 두었다. 죽일 의도가 없었고, 생물체가 아주 작고 미천한 경우 실수로 살생을 저지른다 하더라도 그리 악한 카르마를 많이 쌓지는 않는다. 하지만 악행을 저지른 것은 사실이기 때문에 선행을 통해 악한 카르마를 상쇄시켜야 한다.

3.2. 카르마[편집]

자이나교, 시크교, 불교는 모두 그 기원이 힌두교 혹은 브라만교에 있기 때문에 이들 종교는 업(業), 즉 카르마Karma를 중요하게 여긴다.

자이나교는 '모든 생물은 고통을 느끼며, 고통을 매우 싫어한다.'라고 생각한다. 자이나교가 아힘사 즉 불살생의 계율을 중시하는 것도 죽음이야말로 엄청난 고통이며, 만약 함부로 다른 생물을 죽이게 된다면 그 생물들이 고통으로 말미암아 자기를 죽인 이들을 미워하게 되기 때문이다.

자이나교는 만약 생물을 죽이거나 고통을 주어 고통스럽게 하고 그로인해 그 생물에게 미움을 받게 되면, 그 미움이 카르마를 무겁게 만든다고 생각하였다.

또, 자이나교는 우주가 인간의 형상으로 되어있어 정수리는 천상의 세계이며 발바닥 쪽은 지옥이라고 생각하였으며 보통의 사람들은 허리부근에 위치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카르마가 무거워지면 사람은 우주의 발바닥 쪽으로 가라앉게 되어 점점 지옥과 가까운 세계에서 환생하게 된다고 믿었다.

게다가, 미움으로 인한 나쁜 카르마는 끈덕지게 달라붙어서 잘 안 떨어지는 반면 선행으로 인한 좋은 카르마는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기 때문에 선행을 하는 것은 별 효과가 없다고 보았다.

따라서, 인간이 천상의 세계로 올라가기 위해 극단적인 고행을 통해 영혼의 무게를 가볍게 하고 나쁜 카르마를 흩어버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는 힌두교의 카르마 개념과는 다른 것으로, 일단 힌두교에서 카르마가 쌓이면 뭔 짓을 해도 그 카르마는 가지고 갈 수밖에 없는 반면에 자이나교에서는 극단적인 고행만 하면말은 쉽다 나쁜 카르마를 가볍게 할 수 있다. 나쁜 카르마란 영혼에 붙어있는 일종의 먼지나 오물 같은 것이다.

만약 인간이 극단적인 고행을 하고 아힘사를 잘 지켜 영혼이 한 없이 가벼워지면 그는 우주의 정수리, 즉 천상의 세계까지 영혼이 떠올라 높은 곳에서 우주의 더 많은 것을 보고 더 많은 것을 알게 되며 결국에는 열반Nirvana(불교 혹은 힌두교에서 말하는 것과 같은 개념이다.)에 이르게 된다고 보았다.

참고로 영혼이 엄청 가벼워서 우주의 정수리에 닿아있는 사람들이 바로 지나(티르탕카라)이다.

3.3. 고행[편집]

위의 '카르마' 항목에서 설명하였다시피, 고행은 아힘사를 어기거나 나쁜 일을 함으로써 쌓인 나쁜 카르마를 없애고 영혼을 가볍게 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행위이다.[6]

고행의 핵심은 인간의 모든 욕망을 차단하는 것이며 소식(小食), 단식(斷食)[7], 굴욕(일부러 굴욕을 당하고 반응을 보이지 않는 것(참는 것).마조히즘[8][9]), 고독 등의 '외면적 고행'과 예의를 지키는 것, 봉사하는 것, 무소유를 행하는 것, 묵상하는 것, 죄를 참회하는 것 등의 '내면적 고행'이 있다.

참고로 최고의 고행은 단식하다가 굶어죽는 것으로, 이것이 가능한 경지에 도달하는 것이 성인의 반열에 드는 것이다.

3.4. 5대 서약[편집]

불살생不殺生, 불소득不所得, 불망어不妄語, 불탈취不奪取, 불음不淫

가장 우선시되는 것은 당연히 불살생ahimsa.

그 다음 중시되는 것은 불소득으로, 이를 지키기 위해 자이나교도와 승려는 아무것도 가져선 안 된다. 불살생계를 지키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도구[10]를 제외하고는 옷조차 가지지 않아야 하기 때문에 자이나교도는 옷을 입지 않는다.

불망어는 거짓된 말이나 망령된 말을 하지 않는 것, 불탈취는 남의 것을 빼앗지 않는 것(애초에 남의 것이든 뭐든 가지면 안 된다.) 불음은 성적인 접촉을 일절 하지 않는 것이다.

이들 계율의 목표는 '욕구를 버리는 것'으로, 이를 위해 자이나교도는 인간관계를 만들고 싶다든가 하는 정신적인 욕구를 포함한 모든 기초적 욕구까지 버려야 한다.(생존에 필요한 욕구인 식욕까지 버려야 최고 경지에 들어설 수 있다는 데에서 말 다했다.)

4. 특징[편집]

4.1. 인본주의적 자력 종교[편집]

자이나교에는 창조주 혹은 절대신 또는 인격신의 개념이 존재하지 않으며, 깨달은 자의 초자연적인 능력 같은 것도 인정하지 않는다. (우주적인 지혜를 가지는 건 예외)

4.2. 이원론적 세계관[편집]

모든 것은 생명인 지바(jiva)와 비생명인 아지바(ajiva)로 나뉘어져 있다고 믿었다.

아지바들은 그냥 비생명일 뿐이지만, 지바 즉 생명체들은 자신의 영혼에 붙는 카르마에 따라 사후에 물속 미생물에서 인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모습으로 환생한다. 물론 이들의 최종목표는 영혼을 가볍게 하고 나쁜 카르마를 없애 열반에 이르는 것.

이 지바(생명체)들은 순수한 영혼일 뿐이지만 카르마에 의해서 오염되어 있다. 이 오염된 정도가 심할수록 영혼은 무거워져 지옥에 가까워지는 것이어서 모든 지바, 그중에서도 특히 인간은 카르마가 쌓이지 않도록 5대 서약(특히 아힘사)을 지키고 고행을 하며 자신의 영혼을 가볍게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세상의 일부분밖에 볼 수 없는 오염된 영혼은 고행과 계율의 준수를 통해 순수성을 회복하여 자신의 눈을 가리던 카르마들을 벗어던지고 이 세상을 한눈에 보고 우주적 지혜 혹은 진리를 깨달을 수 있다.

4.3. 마이너 종교?[편집]

위의 교리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자이나교는 굉장히 빡세다.

때문에 자이나교의 교도는 그렇게 많지 않으며 전 세계적인 신도 인구는 600만 명 정도. 이 중 400만 명 정도가 인도에 있다.[11] 당연하지만, 물론 위에 교리를 다 칼같이 지키는 건 아니다. 인도 여행을 간 여행전문가 이지상은 자이나교인은 다 이런 줄 알았다가 고기도 아무렇지 않게 먹거나 자이나교인이라면서 위에 서술한 교리를 무시하는 경우도 여럿 봐서 사람사는 게 그렇구나...이랬다는 느낌을 쓰기도 했다.

그러나 아무리 마이너라고 해도 자이나 교도가 인도 사회에 끼치는 영향력은 제법 큰데, 그 이유는 농사나 짓고 물건 만들던 다른 인도인들과 달리 옛날부터 일찌감치 살생을 안 해도 생계에 지장이 없는 상업에 뛰어들었기 때문이다.[12]

이들은 상업에 관한 책을 저술하거나 상업에 관련된 교육을 받으며 살았으며 따라서 무역은 물론 외부 정보에 상당히 밝았다. 덕분에 인도에서는 이들을 가리켜 유대인도 백기를 들 노랭이들[13], 돈을 쌓아두는 괴물 등으로 부르며, 심지어 이슬람 수니파외의 종교를 죄다 탄압하여 힌두교시크교와의 대대적 전쟁을 치루며 제국을 붕괴시키게 한 무굴 제국 황제 아우랑제브조차도 이들만은 건드리지 못했다. 무굴 제국 경제도 꽉 잡고 있었으니까.

당연히 현대에 이르러서도 인도 내 대기업, 부자, 무수한 상권은 이들 자이나 교도가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다. 심지어 영국이 자신들의 막강한 군사력과 자본력으로 인도를 식민지배하고 있던 시기에도 인도 경제의 절반은 자이나교도들이 장악하고 있었다. 외려 현대에 들어와서 자이나교도의 인도 경제에 대한 영향력이 감소한 편.

2000년대 와서는 전 세계 다이아몬드 사업에 뛰어들어 수백여 년 동안 유럽 다이아몬드 산업을 독점해온 유태인을 몰아낼 정도로 투자와 규모가 늘어났다. 벨기에에 있는 안트베흐펜 다이아몬드 상거래 시장은 오랫동안 유태인이 독점해왔는데 지금은 인도인, 자이나교인들이 장난아니게 들어왔다. 유태인이 좌우하던 다이아몬드 기업 드비어스를 비롯한 업체 지분까지 야금야금 먹고 있는 상황이다.

우리나라 쌍용자동차를 인수한 마힌드라 모터스, 옛 대우전자를 인수한 비디오콘 같은 인도 대기업들은 자이나 교인들이 줄줄이 차지하고 있다. 따라서 현재 인도에서 전체 인구의 0.42%에 불과하면서도 인도 세금의 24퍼센트를 이 사람들이 낸다.

5. 교파[편집]

무소유를 실천하기 위해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였으나 시간이 지나자 흰 옷 하나 정도 걸치는 것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하고 생각하는 자이나교 종파가 생겨났는데, 이 종파가 '백의파(白衣派 ; Svetambera)'이며, 옷을 입지 않는 것을 고수하는 종파가 '공의파(空衣派 ; Digambara)'다.

08년 mbc에서 방영한 자이나교 관련 다큐멘터리에서는 나체로 생활하는 모습이 방영되었다. 자이나교 공의파 승려는 남자는 나체로 생활해야 하나 여자는 전라가 불가능하므로 진정한 깨달음을 얻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5.1. 공의파空衣派[편집]

디감바라Digambara를 번역한 말, 나형파裸形派라고도 하는데 실제로 이렇게 불소득의 계율을 지켜 옷을 입지 않고 지내는 건 승려들이나 그렇다. 일반 신도들도 조심하긴 하지만 옷을 입기는 한다.

백의파에서 전승되어 오는 경전을 인정하지 않고, 4-5세기에 쿤다쿤다가 따로 지은 경전을 신봉하고 있다. 교도는 인도 각지에 퍼져 있으며, 17세기 이래 비스판티파(派)·테라판티파·타라나판티파의 3파가 있다. 교파들끼리 크게 다른 건 없고 생활 양식만 조금 다르다.

뛰어난 사원 건축이나 조각으로 잘 알려져 있고, 프라크리트어(語)인 자이나 샤우리셰니어로 된 2차 경전과, 아파브란샤어로 된 경전의 방대한 문헌은 인도 언어연구에 좋은 자료가 된다. 9세기 이후의 것은 주로 카나라어로 쓰인 것이 대부분이다.

5.2. 백의파白衣派[편집]

자이나교에서 수행자는 계율을 엄격하게 지켜야 하기 때문에 당초에는 몸에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수행하였는데, 마침내 1세기경 백의를 걸치는 것을 허용하는 일파가 나타나 아무것도 걸치지 않는 공의파(空衣派)와 2파로 나뉘어졌다.

보통 자이나교의 경전으로 자주 언급되는 경전 《싯다르타》는 백의파의 것이며 공의파(空衣派)는 이를 인정하지 않는다. 현재 백의파는 많은 분파로 갈려 서인도지방에 널리 분포한다.

공의파와 백의파의 차이는 경전과 백의를 입느냐 마느냐뿐만 아니라 여성신도의 구원이 가능한가 아닌가에도 있다. 공의파는 여성신도는 남성신도보다 더 죄를 지어서 여자로 태어난것이기 때문에 그 업을 씻고 남자로 다시 태어나서 수행해야 구원 받을 수 있다고 믿는 반면, 백의파는 여성신도도 남성신도와 동등한 존재로 인정한다. 즉 여성도 구원받을 수 있다고 믿는다. 그렇기 때문에 공의파는 여성사제나 여성을 위한 사원을 인정하지 않지만 백의파는 여성사제와 여성을 위한 사원도 인정한다.

6. 그 외[편집]

힌두교 혹은 브라만교를 기원으로 하는 불교, 자이나교, 시크교의 또 하나의 공통점은, 카스트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마하비라에서는 전생의 카르마가 현생의 카스트에 영향을 미친다는 관점은 그대로 수용하고 있다. 다만 쉽게 말해 카스트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았을 뿐이다. 또한 카르마는 선행으로 쌓이는 것보다 악행으로 들러붙은 것이 더 크다고 보며, 이러한 카르마에 따라 사는 동안에도 인간의 영혼이 위로 갔다 아래로갔다 하는 데다 고행으로 자신의 깨달음을 추구하는지라 상대방이 자기보다 카스트가 높건 말건 알 게 뭐야 인 셈. 더군다나 식욕 같은 기본욕구는 물론 소지품도 제대로 가질 수 없으며 인간관계 역시도 끊어야 하기 때문에 카스트가 높아봤자 좋다고 여길 것이 하등 없다. 일반 신도들이야 그 정도 까지 모든 걸 내려놓지는 못하지만 기본적인 교리가 그런 만큼 카스트가 그만큼의 권위를 가지지 못하는 것. 더군다나 아무리 카스트의 최하위, 자이나교 식의 우주로 말하자면 발바닥에 붙어있는 인생이라도 악한 카르마가 들러붙은 것들 때문에 끌려내려간 것이니 그들에게 인간으로서의 기회가 없다고 보는 것도 아니다.

역설적이지만 이러한 모습으로 인해 인도의 하위 계층에게서 큰 호응을 얻음과 동시에, 카스트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으면서 그렇다고 권위에 도전하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14] 브라만교와 적절한 타협점을 이루며 오늘날까지 살아남았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최초의 원자론이 나온 곳이 바로 자이나 교단이다![15] 정확히는 4원소설과 원자론을 결합한 듯한 세계관을 믿고 있었는데[16] 이것이 인도에 퍼지면서 인도 원자론을 형성하였다.

7. 관련 항목[편집]

[1] 이런 경지는 자이나교에서 최고의 경지로 친다.[2] 좀 있다 후술 하겠지만, 자이나교는 자살을 합법적으로 인정한 유일한 종교다. 단, 단식에 의한 자살 한정이다.[3] 자이나교는 이를 예화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6명의 맹인코끼리를 만지고 코끼리의 특성에 대해 설명하라고 했다. 어떤 사람은 다리를 만지고 코끼리가 베게같다고 했고, 꼬리를 만진 사람은 코끼리가 줄과 유사하다고 했다. 이렇게 차이가 나는 이유는 서로가 코끼리의 다른 부분을 만져 코끼리의 수많은 속성 중 하나를 파악한 것뿐이지, 특정 주장이 맞고 틀리다를 논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것이다.[4] 우리가 알고 있는 그 요가 맞는다. 자이나교에서는 요가라는 수련이 대자연과 같은 무생물을 생물인 사람이 파악하는 과정으로 본 것이다.[5] 위에서 언급하였듯이 극단적인 금욕으로 인한 죽음은 카르마의 경지를 벗어난 해탈의 지경이기 때문이다.[6] 물론 압도적으로 선행을 하면 되지만 이런 선행으로 인한 좋은 카르마는 끈덕지게 붙어있는 나쁜 가르마와는 다르게 시간이 지나면 금방 흩어져버리니...[7] 아힘사도 지키고 고행도 하고 일석이조.[8] 진지해지자면, 마조히즘은 오히려 자이나교에서는 타락이라고 볼 것이다. 고통을 받으면서 쾌감을 느낀다니? 모든 쾌감을 버려야 하는 종교에서? 쾌감도 버리고 불쾌감도 버리고 오로지 무감을 지향한다.[9] 굴욕을 당하면 그에 따른 신체적 정신적 스트레스 반응이 올라오기 때문에 그런 반응마저 고통에 굴복하는 것이라고 보고 그런 굴욕조차 '굴욕은 굴욕일 뿐'이라는 것으로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는 것에 가까울 것이다[10] 입을 가릴 수건, 물을 거를 헝겊, 빗자루, 방울 달린 지팡이 같은 것들.[11] 그래도 이 정도면 세계에서 14번째로 많이 믿는 종교다.[12] 엄연히 불소득의 계율에 어긋나긴 하지만, 그걸 까다롭게 일일이 적용해서 옷도 다 벗고 다니는 건 승려들이나 그렇지, 일반 신도들까지 그렇게 엄격하게 하긴 무리다.[13] 16세기 스페인이 그라나다 지역을 차지하면서 종전 이슬람 지역에 공존하던 유태인들이 탄압받자 이들이 이주해온 곳 가운데 하나가 인도였다. 인도에선 이들을 별다른 거부감없이 받아들여 공존했는데 실제로 유태인들이 인도에서 경제를 차지하지 못한 계기가 바로 이들 자이나 교인들 탓이 엄청났다. 유태인들이 오기 천여 년 전부터 이미 이곳 지리와 무역적 모든 것을 달달 외우고 정보를 독점하는 이들을 상대하는 건 제 아무리 유태인들이라도 넘어설 수가 없었다. 그래도 일부 유태인은 그래도 인도 여기저기를 둘러보며 착실히 자리를 잡아서 지금도 일부가 부촌을 이루며 대대로 살아가기도 한다.[14] 카스트 자체를 전면부정하는 데다 권위에까지 도전한 것이 바로 싯다르타.[15] Karen Armstrong,'축의 시대',정영목 옮김,교양인,2010[16] 박성래 외 2명,'과학사',전파과학사,2013,pp327-3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