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아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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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기원3. 문제점4. 양심의 자유5. 정체와 목적6. 북한7. 대한민국8. 대중 매체 속 묘사

1. 개요[편집]

스스로 자기 자신을 비판하거나, 혹은 비판하도록 강요받는 행위.

2. 기원[편집]

의도는 좋았다


6.25 동란을 겪고, 아래의 북한을 포함한 공산주의 국가의 예를 읽어보면 자아비판이라는 게 아주 나쁜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자아비판이란 용어가 등장한 배경은 한창 혁명의 기운이 전 유럽을 휩쓸던 19세기 말 ~ 20세기 중반까지, 혁명을 목표로 투쟁을 하던 운동가들이 스스로의 엄격한 도덕성을 다짐하기 위해 만든 용어이자 방법론이다.

자아비판이란 대상자가 하는 행위를 이야기하는 것으로, 말 그대로 스스로에 대한 비판을 하기 위해 만들었던 것으로써, 혁명가라는 생물이 단지 세 치 혀를 통한 선동과 카리스마만으로 움직인다면 너무도 쉽게 타락할 수 있기에, 말로만 정의를 외치는 것이 아니라 매 순간마다 자신의 언행이 일치하도록 뜨겁게 살아갈 수 있는지 스스로의 마음을 다잡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자아비판이라는 방법론이다.

자아비판이라는 것은 애초에 그렇게 거창한 것도 아니고, 단지 어떤 일을 끝내고 나서 같이 활동한 사람들끼리 총화 같은 모임에 모여 서로 잘 된 점과 잘 안 된 점을 토론하며 무엇을 느꼈으며 어떻게 해야 할 것 같고, 앞으로 이러이러한 지점에서 어떻게 행동할지를 담담하게 토로하는 것이 바로 자아비판이다.[1] 원래 이렇게 순수한 의미에서 자기 스스로 잘못을 성찰하고 더 진보하겠다는 의미에서 자발적으로 하며, 동지들은 심판이 아닌 이해의 마음가짐으로 들어 주고 함께 개선하기 위해 조언을 하는건 참 좋았는데, 전체주의적 권력 체계와 결합하면서 어느 순간 그냥 자기 입으로만 한다는 면에서 자아일 뿐, 실질적으로 타율비판에 그것도 자아비판을 명목으로 지가 아닌 다른 당원, 동지들을 걸고 넘어져 정치 투쟁의 장이 되어버리면서 아래 하술할 문제점을 만들게 되었다.

3. 문제점[편집]

물론 이게 피드백으로서의 모임으로 끝나면 다행인데, 개인의 가치관에까지 간섭하거나 '자아'까지 건드리면 그게 일반적으로 알려진 흑화 자아비판인 셈이다.

일본의 좌파 단체에서는 이러한 자아비판을 "총괄"이라고 불리는, 사후토론 시간에 자주 한다. 총괄이 잘못해서 초 하드한 방식으로 발전하면 사람이 죽는 문자 그대로 유혈사태가 벌어지기도 한다. 그 유명한 일본 연합적군이 이거 하다가 동료 여럿 죽였다.

정권들이 막장으로 치달았을 때의 자아비판은 더 이상 자발적인 것이 아니라, 타인(특히 당)이 의무적으로 자아비판을 할 것을 강요했고 자아비판 할 것이 없다고 하면 반동분자로 분류해버렸기 때문에 무조건 없는 트집이라도 만들어내야 했다. 심지어는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이나 개인적인 원한이 있는 사람에게 자아비판 하라며 생트집을 잡거나 치부를 폭로하는 경우도 부지기수였다. 다만 동지를 매도하는 반동분자라고 역공이 들어오면 GG 칠 수 있으니 자기가 치부를 잘 아는 상대만 골라서 해야 했다.

물론 아래에 서술될 자아비판들을 보면 알겠지만, 이렇게 강제적이고 공개적인 자아비판은 이미 이전의 좋은 취지는 싸그리 다 사라지고 지도세력이 자신들의 권력을 공고히 하기 위한 정치적 도구에 지나지 않았다. 뭐든지 자신의 이득을 위해 써먹는 인간의 본성을 보여주는 예시 중 하나.

4. 양심의 자유[편집]

가장 큰 문제는 자아비판이라는 행위는 양심의 자유와 정면으로 충돌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걸 하는 사람들은 정신적으로 뼈와 살이 분리되는 기분을 느낀다고 한다. 왜냐하면 이것은 개인의 신념의 자유, 즉 양심의 자유에 대한 심대한 침해이기 때문이다. 당신이 무언가 잘못을 했다 해도 당신의 속마음까지 법이 간섭할 이유는 없다. 게다가 이것이 법도 아니고, 집단의 여론 같은 것을 기준으로 자아비판을 시키면 그야말로 인간의 정신을 갈갈히 찢어놓는 끔찍한 고문 방법이 되버린다.

레온 트로츠키가 권력투쟁 말기에 자아비판을 해야 한다는 의견이 대두됐으나, 당 일각에서 "개인의 양심의 자유에 의거하여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를 비판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옳지 않다. 그러므로 그냥 잘못한 것만 지적하고 비판해야 한다"는 의견에 따라 그냥 잘못한 것만 집어내고 말았다. 그리고 망명 갔지.

5. 정체와 목적[편집]

개인의 관념과 자존감을 스스로 붕괴시켜 이데올로기를 받아들이기 쉽게 만드는 것이 자아비판의 목적이다. 타력에 의한 직접적인 강요가 아니라 분위기 조성을 통해 간접적으로 자력을 방조하는 것이므로 저항감이나 자각도 낮아진다. 북한을 비롯한 공산권의 자아비판 때문에 자아비판이 그냥 처벌 전의 요식행위로 착각하고 있는 사람이 많은데 자아비판은 구성원을 통제하기 위한 수단이므로 자아비판을 통제수단으로 쓰는 조직이나 사회의 말단 구성원은 필수적으로 거쳐간다고 보면 된다.

자아비판은 명칭만 다를 뿐이며, 종교 및 심지어 평범한 회사에서도 자주 써먹는다. 회사에서는 자기반성회라는 이름의 행사를 통해 업무에서 실수를 하거나 태도가 나태한 사람들에게 자아비판을 하게 만든다. 뭐하러 이딴 짓을 다 하나 싶겠지만 자신도 모르게 자아비판을 해본 사람도 많다. 중고등학교에서 주최하고 강제적으로 참여하게 되는 수련회에 다녀온 사람은 전부 다 자아비판을 해본 셈인데, 수련회 과정에 반드시 들어있는 '촛불 켜놓고 자아성찰'하기가 바로 자아비판의 소프트 버전이라고 봐도 된다.

6. 북한[편집]

북한사회주의/공산주의 정권에서는 자아비판 자기 마음을 당 규율에 억지로 끼워 맞추도록 강요하기로 악명이 높다. 김일성 통치 시기, 8월 종파사건과 관련하여 갑산계와 소련계 일파들을 대거 숙청하는 데 이 방법을 썼다. 이 외에도 집단농장, 탄광 같은 곳에서도 자기반성을 위해 많이 사용했는데, 실상은 개인을 비하해 당의 위상을 높이고자 하는 심리적 탄압에 지나지 않는다. 한국전쟁 당시 유엔군 포로들도 사상교육의 일환으로 자아비판을 강요당했다.

북한 등 사회주의/공산주의 정권에서는 이를 일종의 자기 반성, 혹은 반성문 정도로 여기는 듯한데 실제로 매우 그럴싸한 화합과 관용으로 포장된다. 흔히 북한이 친일반민족행위자를 용서해 주는 대신 공개 사과 및 자아 비판을 하도록 선처했고 악질 친일파는 끔살당했다고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데 악질 친일파 중에 처형된 사람들도 있지만 그 외에는 얼렁뚱땅 넘어간 사람들(특히 중간 관리직이나 실무직)도 부지기수로 많았다. 김태조김씨 조선 왕조를 창건하고 나니 친일파를 죄다 처단하면 일할 사람이 없게 되는 상황이었던 것. 이건 남쪽도 다를 게 없었다. 일제강점기 당시 지식인이나 관료, 엘리트가 일하려면 어느 정도는 일본과 협력할 수 밖에 없었으니. 그래서 북한 정권에 협조적인 친일파들은 자아비판 몇 번으로 용서해 줬고, 악질 친일파 몇 명만 본보기로 처형했다. 그래서 북한 정권 수립 공신 중에는 친일파가 상당수 있다.

북한이 악질 친일파까지 관리로 그대로 재임용한 남한을 심심하면 까지만 북한 역시 친일파 청산을 깨끗하게 했다고 볼 수는 없다.[2] 어디까지나 비교적일 뿐. 장헌근[3]의 사례처럼 북한이 남한보다 친일 청산을 크게 잘했다고 보기 힘든 이유가 여기 있다. 최근에는 "원수님 심기를 불편하게 해드려서 죄송합니다"라고 강요당한다카더라.[4]

참고로 북한은 자아비판을 넘어, 업그레이드 버전으로 상호비판마저 존재한다.

7. 대한민국[편집]

반공을 내세우던 군부독재 시절의 대한민국은 당연히 이러한 북한의 '자아비판' 행위를 빨갱이들이나 하는 짓으로 치부했지만 실상은 전체주의적인 성향이 강했던 한국에서도 자아비판은 알게 모르게 성행했다. 극과 극은 통한다 물론 민주주의 체제를 표방하는 만큼 북한처럼 대놓고 인민재판하듯이 정부가 주관하지는 않았고 '자아비판'이란 단어를 쓴 것도 아니지만 민간에서는 알게 모르게 아주 흡사한 것들을 실시했으며, 오락실 간 학생들을 잡아다 "깡패될려고 오락실갔냐"며 후드려패고, 아침 조회시간에 전교생이 보는 앞에서 대놓고 비판한 후 반성문을 낭독하게 했던 흑역사가 있다.

1970년대나 1980년대도 아닌 2008년에 지방의 일선 학교들에서 성 소수자들과 심지어 그들의 부모들을 전교생이 보는 앞에서 자아비판대에 올려 사회적인 물의를 빚기도 하였다. 당시 인터뷰에 참가한 어떤 선생은 "잘못된 걸 바로잡아 주는데 왜 니네들이 간섭하냐?"라면서 적반하장이 따로 없는 태도를 보였다. 오락실에 간 학생 잡아다 반성문 읽게한 건 그나마 나름대로 선도취지라도 있지, 성 소수자에 대한 근본부터 잘못된 시각을 고수하며 부모까지 불러내 자아비판을 시킨 것은 빼도박도 못하는 인권침해이다.[5]

대한민국 국군에서도 자아비판을 하는데, 가혹행위를 한 간부나 병사가 피해자를 대상으로 반성문을 작성하여 다른 장병들 앞에서 읽게 하는 식의 벌을 내릴 때가 있다. 이건 제대로 된 자아비판.

8. 대중 매체 속 묘사[편집]

중국 영화 <패왕별희>에서 서로를 매국노라느니 더러운 부르주아의 앞잡이라느니 하면서 비난하는 장면이 있다. 그 외에도 위화의 소설 같이 문화대혁명을 다루는 대부분의 중국 대중매체에서 자아비판은 더 이상 스스로를 비판하는 것이 아닌, 중국 공산당에 의해 부과되는 일종의 임무이자 주위 사람을 고발하고 음해하는 수단으로 변질되면서, 특히 가족이나 이웃 간에 남아 있던 모든 신뢰를 무너뜨리는 것으로 그려진다.[6]

야인시대에서 심영김두한의 협박으로 닷~씨는 안하겠쏘 전향서를 쓰고 나서 을 배신했다는 죄책감 때문에 매우 괴로워했다. 하지만 전위대장 정진영은 고백한 것을 자아비판으로 처리하고[7] 상부에 보고하여 그를 월북시켰다. 대조적으로 그 김두한다른 작품에서 자신의 친일행적을 자아비판하고 목숨을 건지라는 권유를 뿌리치며 군중 앞에서 비장하게 자결한다.

옴부즈맨 프로그램방송국 차원에서의 자아비판이라고 볼 수 있다.

[1] 지금은 이렇게 긍정적인 의미라면 자기반성이라는 말을 좀 더 일반적으로 쓴다.[2] 거의 40년 가까이 지배를 받았기에 친일파 청산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웠다는 점도 있지만.[3] 한때 북한 권력 10위 안에 들 정도의 인물이었다.[4] 노골적으로 강요당하지 않는다 해도 현지 제도와 분위기 상 1984와 별 차이가 없을 것이다.[5] 연좌제까지 곁들여져있다.[6] 일부에서는 중국 특유의 타인에 대한 무관심이 이런 사회 분위기를 겪었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추측도 있다.[7] 김두한과 비슷히 정진영도 심영의 어머니를 보고 마음이 약해져 살려주었을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