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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설명2. 기원3. 실태 및 사례
3.1. 이슬람권
3.1.1. 아랍 에미리트3.1.2. 모로코3.1.3. 사우디아라비아
3.2. 비이슬람권 아프리카3.3. 유대교와 팔레스타인3.4. 그 외 지역
4. 한국의 경우
4.1. 전근대4.2. 현대
5. 여권6. 환상과 진실
6.1. 경제적 측면
6.1.1. 세금 문제
6.2. 아내들 간의 평등 문제6.3. 체력적(...) 문제6.4. 성비 문제6.5. 여성들의 입장
7. 현대 사회에서의 부활 가능성8. 동물들의 경우9. 각종 매체

1. 설명[편집]

一夫多妻制, Polygamy.

남성이 여러 명의 여성을 아내로 두는 결혼 형태.

일처다부제의 반대 의미인 단어.

2. 기원[편집]

현대의 우리에게는 일부일처제가 너무도 당연하지만, 인류는 거의 모든 지역에서 선사시대부터 약한 형태의 일부다처제를 이루었다.

수렵 채집 시대에는 뛰어난 사냥꾼이나 족장의 경우 여러 명의 아내를 가질 수 있었고, 문명이 발현된 이후에도 크게 변하지 않았다. 거의 모든 시대의 지배자들은 못 해도 수 명, 심한 경우 수천 명에 달하는 하렘을 유지했다. 우리나라만 해도 수백 명의 후궁을 거느렸던 왕들은 물론이고, 양반들에게도 이 일상적이었고, 혼인하지 않고 여자 노비와 관계하여 자식을 낳는 경우도 있었다.

기독교가 도입된 이후 유럽 지역에서는 일부일처제가 주류였으나, 종교개혁 시기에 구약성경의 사례를 들며 일부다처제를 부활시키자고 주장하던 세력이 일부 있긴 했다. 뮌스터에서는 반란을 일으켜 도시를 점거한 재세례파가 일부다처제를 법적으로 공인하고 실제 시행하기까지 했는데, 이들이 진압된 뒤로는 최소한 주류 사회에서 일부다처제가 주장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시피했다.

한때 뉘른베르크 시에서 30년 전쟁의 여파로 성비가 무너지자 일부다처제를 인정했다는 설이 나돌아 영미권 웹에서도 쉽게 검색되는데, 학자들은 이에 대해 상당히 부정적인 견해를 보이고 있다. 이 뉘른베르크 칙령에 대한 설은 19세기에 처음으로 나왔는데, 이 최초 주장자가 근거로 했다고 주장하는 프랑코니아 회의록이란 게 존재 자체가 의심되고 있기 때문. 한때 한국 인터넷에서는 프리드리히 빌헬름이 일부다처제를 권장했다는 낭설이 바로 이곳, 나무위키의 이 문서에서 유포되고 있었는데, 전혀 근거를 찾을 수 없다.

초기 모르몬교는 일부다처제를 인정했는데 그 이유는 모르몬교가 남성에 한해 가혹한 박해를 받았기 때문이다. 미국 동부지역에서 최초의 박해가 발생해서 모르몬교도들이 대탈출을 시작했는데 그 과정에서 수많은 박해를 당하고 사막을 건너 유타로 도착한 모르몬교도의 남녀성비는 심각하게 깨져있었다. 많은 남편들과 아들들이 종교적 이유로 공격받아 살해당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과부가 넘쳐나 초기모르몬 사회는 일부다처제의 사회적합리성이 존재했다. 문제는 몇세대가 지나 그 사회적 합리성이 사라진 상태에서도 교리형태로 남아있었다는 것인데 유타주의 미합중국 가입조건으로 일부다처제 폐지를 받아들인 이후 모르몬 주류교단은 일부다처제를 허용하지 않는다.

이슬람 세계의 경우 일부다처제가 7세기 아랍에서 빈발했던 전쟁과 각종 사고로 가장이 죽은 경우, 가족의 아이들과 어머니를 부양하기 위한 목적에서 출발한 것이다. 그래서 이슬람권의 경우 입양을 허가하지 않는 나라가 많다.

사실 일부다처제가 선사시대 거의 모든 인류에 발생했던 이유는 자연이 압박이 매우 거세고 야생동물이나 인근 부족간의 분쟁도 잦아서 남성의 소모율이 여성보다 훨씬 높았기 때문이다. 남성은 여성보다 질병에도 취약한 편이고 테스토스테론의 영향으로 위험성을 과소평가하고 굉장히 높은 확률로 죽음이 암시되는 위험에도 어덯게 되겠지 라고 생각하는 낙관론도 강해서 희생정신도 강하다. 늑대나 하이에나가 인간과 완전경쟁하던 시기에 동물에 의한 인간공격이 발생한다면 누가 앞장서서 이 동물들을 내쫒게 되는지 생각해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문제는 사실 현대사회에서도 완전히 해결된 문제가 아니라서 어떤나라건 남성의 사망률은 여성의 사망률보다 높다. 나무위에 올라가 떨어져 죽거나 위험하다고 아무리 말려도 오토바이를 헬멧도 안쓰고 타다가 죽는 사람들은 십중팔구 남성들이며 희생정신 측면에서 지하철 선로위에 떨어진 다른 사람을 구하다가 같이 죽는 사람도 95%가 남성이었다. 고층빌딩이나 용광로, 절삭기, 위험한 건축현장,조직범죄자,전투경찰관,군인[1] 반군조직,소방관[2] 등에 종사하는 성별은 거의 전부가 남성이라 즉시 사망하는 산업재해의 98%가 남성이다. 남성은 10대부터 1~3%이상의 사망률이 시작되어 30대부터 사망률이 급증해서 40세에 도착하면 약 16%정도의 누적사망률이 나온다. 다시말해 100명이 태어나서 1세부터(한국기준 2세부터)세어 40세까지 도달하는 남성은 84명에 불과하다. 반면 여성은 같은 기준으로 100명중 96명이 40세에 도달한다.

극심한 여아선택낙태가 발생한 한국에서 결혼대란이 일어날거라는 예측이 많았지만 실제로 결혼연령층까지 진행하자 남자들이 사망해버려서 결혼대란이라는 것은 실제로는 발생하지 않았고 100대102로 거의 균등하게 태어난 뉴질랜드가 오히려 결혼적령기에 이르자 여성이 남성에 비해 10% 이상 많아져서 결혼대란이 발생했다. 그 결과 남성이민자를 끌어들이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 떄문이다. 고대사회로 가면 갈수록 인간의 조기사망률은 훨씬 높아지고 남성과 여성의 사망률 격차가 더 커졌기 떄문에 완고한 형태의 일부일처제도가 오히려 사회불안을 더 높이게 된다.

일부다처제의 장점은 많은 아이의 출생과 그 보호를 기대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일단 완고한 일처일부제에 비해 평생 수절하는 과부나 노처녀가 존재하지 않고 불륜에 의한 사생아의 개념도 없기 떄문이다. 공자처럼 첩의 자식으로 태어나면 그 모자가 아버지의 지원을 제대로 받기가 어렵다. 또한 남편이 일찍 죽은 아이딸린 과부나 노처녀도 번식욕구는 있을 것이고 이들이 결혼제도 바깥에서 아무런 구제없이 방치되면 인구재생산이 지체되고 사회적 불안이 커질 수 있기 때문에 사회불안을 막기위한 궁여지책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형사취수제도의 본질도 기본적으로 그러하다.

인간의 질투는 사회적 교육의 원인이 아니라 본능에 해당하는 것이기 떄문에 여성 입장에서 상당한 불만을 품게된다. '시앗을 보면 돌부처도 돌아앉는다.'라는 말이 괜히 나온말이 아니다. 본인이 수없이 많은 불륜을 저지른 사람이라 할지라도 배우자의 불륜을 보면 똑같은 신경질을 부린다.기존 결혼제도가 가부장제의 유산이라는 선전 자체가 시몬 드 보부아르산인데 이 떄문에 본인들은 자유결혼을 선택했다고 열심히 선전하기도 했다. 장 폴 샤르트르시몬 드 보부아르 부부는 숱한 애인을 두는건 물론이요. 여대생 하나를 데려와 동거하는 모습까지 보여주기도 했었지만 이 전시적인 부부마저도 결국 질투심을 이기지 못하고 사이가 틀어졌으며 끝내 결혼관계를 청산한 뒤 서로 상대방 때문에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았었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과부나 천민, 노처녀를 누가 돌봐주면 좋겠지만 내 남편은 절대 안된다. 라는 생각은 어느 여성이나 하게 마련이다. 아래 농담처럼 여성이 송중기의 100번째 아내를 선택하지 평범한 사람의 유일한 아내를 선택하지 않을 것이라는 말은 농담에 해당하는 것이고 사실상 자유롭게 놔두고 관측하면 누구나 평범한 사람의 유일한 아내나 남편을 선택한다. 남성이 잘생겼기 떄문에 일부다처를 이루는 현상은 일어나기 어렵다. 잘생긴지 아닌지는 여성이 판단해서 선택한다는 말인데 여성이 최소한의 발언력과 선택권이 있어도 일부다처제가 성립할 수 없기 떄문이다. 결국 일부다처제도가 허용되는 사회는 불균등한 남편/아내간의 권력관계의 관습이 필요하고 그 안에서도 아내의 불만을 다른 방식으로 보상할 수 있는 많은 재산이나 강대한 권력을 가진 남성들만이 실제로 일부다처제를 실현할 수 있다.

또한 부족단위의 분쟁도 사라지고 야생동물의 위협도 거의 없어져 인간의 조기사망률이 극도로 낮아진 현대사회에서는 사회적 합리성이 사라진 제도이다. 고대의 일부다처제도는 일단 여성이 남는다는 전제하에 발생하는 제도였는데 현대사회에서는 그만큼 남성이 일찍 많이죽지 않아서 일부 다처제가 허용된다면 신부가 없는 남성이 다수 발생하게되고 이것이 오히려 심각한 사회적 불안을 조성할 수 있게 된다. 사우디 아라비아나 카타르 같은 중동 부국들의 국민소득은 전세계 최상위에 해당하기 떄문에 이들 국가가 이집트나 시리아 이라크 터키처럼 인근 국가에서 많은 여성을 일부다처제의 신붓감으로 데려가는데 이것이 사회불안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초기 이슬람교는 메디나에서 모은 무력집단을 기반으로 메카 ,시리아, 이라크, 페르시아, 이집트등을 불과 100년도 안되는 짧은 시간내로 정복했기 때문에 정복전쟁의 결과로 많은 이슬람 전사와 동로마군/사산조페르시아군/도시국가방위군들이 죽고 거대한 군대가 적지에서 미혼상태로 대치하고 있었다. 그 때문에 마호멧 생전에는 일부다처제의 사회적 합리성이 높았을 것이다. 남편이 지하드를 하러가서 죽었을때 과부의 문제나 점령한 정복지에서 죽여버린 적군의 아내들, 지하드를 위해 징집한 소년들의 [3] 일부만 돌려주는 식이 되기 때문에 여자가 남을 수 밖에 없다는 말이다. 문제는 이게 선지자의 말씀으로 굳어져버려서 이후로도 이슬람권의 끊임없는 내전의 원인이 되는 것을 모르몬교의 사례랑 비교해보면 일부다처제가 종교와 결합하게 되면 끔찍한 사회적 재앙이나 발전을 가로막는 장벽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렇듯 전쟁과 일부다처제는 서로 양성피드백을 이루기 떄문에 예멘이나 소말리아처럼 수백년간 지속적으로 내전이 발생하는 지역은 남성사망률이 극도로 높아 일부다처제의 결혼제도로 인한 불안은 거의 없어진다. 다만 이런 국가에서 남녀 성비가 무너진 이유는 남성이 징병당해서 수십년간 미혼상태로 전장에 투입되어 있거나 남성만 골라서 선별적으로 학살하는 민간인 학살이나 부족전쟁 때문이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일부다처제가 용인되는 사회의 환경은 남성이라고 편안한 환경은 아니다. 그런일을 막으려면 공물이나 구매등으로 이민족 여성을 꾸준히 제공받는 상태가 되어야 안정된 상태가 유지될 수 있다. 또는 잉여남성을 외국으로 난민이나 정복군등으로 꾸준히 보내버려야 한다. 사실 이래서 아랍국가들은 주변국가의 난민을 많이 받는 것 같으면서도 난민수용은 거의 하지 않는다. 난민여성만 결혼으로 집으로 데려가기 떄문이다. 그것도 따지자면 난민수용이기는 한데 난민 남성은 유럽등의 다른 대륙으로 보내버리기 떄문에 난민선은 빈민층 남자만 잔뜩 타 있게된다. 이런 점 떄문에 더더욱 이슬람권 이민자가 배척받게 된다.

3. 실태 및 사례[편집]

현대에는 대부분의 국가에서 사라진 형태로 몇몇 국가에만 남아 있다. 일부다처제를 시행하는 나라들 분포도

사실상 일부다처제는 매매혼이 허용되는 곳과 거의 겹친다. 매매혼이 금지되면서 대부분의 다른 대륙에서는 사라진 풍습이지만 아프리카에서는 아직 일반적인 풍습이다. 지역관습을 떠나서 보면 중동과 동남아시아 인도등지의 이슬람교의 세력이 큰 지방을 중심으로 샤리아를 법률체계로 하고 있는 국가에서는 일부다처제를 인정하고 있다. 터키공화국은 이슬람권에서 특이하게 샤리아가 아닌 세속주의헌법 떄문에 법적으로 인정받지는 않지만 시골이나 터키동부로 가면 샤리아 법정이 국법보다 우선한다고 보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일부다처가정이 상당수 존재한다.

3.1. 이슬람권[편집]

쿠란에 따르면 4명까지 두는 것을 허용한다고 하나 그보다 많이 두는 경우도 있다. 되려 초기 이슬람에서 아내를 4명까지 둔다고 하자 당시 귀족들이나 부자들은 겨우 4명이냐? 불만이 가득했는데 당시 아랍에서는 수십여명 아내를 둔 경우가 흔했기 때문이다. 90년대에는 카자흐스탄에선 사이비 이슬람 신교 단체가 쿠란에선 아내를 4명만 두라고 했으니 그 다음 숫자부터는 다르게 여긴다면서 5번째 딸을 아내로 받아들여도 된다는 황당한 주장을 하다가 당연히 근친상간으로 쿠란을 모독한다는 기존 이슬람계 반발과 같이 정부가 직접 나서서 박살낸 적도 있다.

하지만 이슬람권이라고 해도 다 같은건 아닌지라., "4명? 닥쳐, 내 마음대로 결혼할거야!"라는 식으로 살고 있는 사람도 있다. 2016년 나이지리아에 사는 모하메드 벨로 아부바카르(92세!)는 나이지리아 현지 매체인 '뱅가드'와 인터뷰에서 "아주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고 있으며 죽는 순간까지 이 성업을 계속 이어갈 것"이라고 앞으로도 계속 아내를 늘려갈 것임을 밝혔다. 그는 무려 아내는 97명이지만, 이혼한 아내 10명을 포함하면 결혼식만 107번 치렀다. 슬하 자식은 185명이다. 무슬림이라고 하지만 이슬람율법은 4명의 아내까지 두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탓에 2008년 이슬람 지역교구로부터 4명의 아내를 두고 나머지 아내와는 이혼하라는 명령을 받기도 했다. 그럼에도 대부분 아내들이 자의로 결혼했다는 탄원을 올리면서 무마됐다. 물론, 나이지리아 이슬람 성직자들은 여전히 비난하면서 93명 아내를 포기하고 율법대로 4명만 남겨두라고 반발하고 있다.

물론 이런 경우는 매우 드문 경우이고 아내가 많은만큼 돈도 많이 든다. 4명까지 두는 것도 문제지만 이혼하고 새로 결혼하는 편법에 대한 인식도 그다지 나쁜 편이 아니라 대체로 4명+@의 편법을 쓰는 가정 혹은 1명도 감지덕지로 사는 가정으로 양극화하게 된다. 이 문제에 수니파시아파의 차이는 거의 없다.

조혼 문제도 종파차이가 거의 없는데 굳이 따지자면 이전 문서의 서술과 다르게 수니파쪽이 규제를 더 하지 않는다. 마호멧이 6살과 결혼하고 안고자다가 생리를 시작하자마자 교합한건 사실이기 떄문에 시아파건 수니파건 조혼을 도덕적으로 문제시삼는다는건 바로 신성모독과 연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어린 신부가 수니파입장에서는 아내의 모범으로 숭상받는 아이샤인데 이 사람의 대한 평가가 양 종파마다 다르다. 아이샤는 시아파에서 신성시하는 알리 이븐 아비 탈리브와 대립하고 전쟁까지 벌인데다가 무하마드는 첫부인부터 수많은 과부와 결혼했는데 아이샤는 무하마드가 키운 처녀였기 때문이다. 이런 연고로 수니파 입장에서는 불신자들을 징벌한데다가 무하마드의 반듯한 반려자인 무슬리마로 칭송하기 떄문에 조혼에 대한 문제제기 자체가 불가능한편 같은 사건을 이유로 시아파아이샤를 경원시하며 [4] 무함마드의 딸이자 알리의 부인인 파티마를 무슬리마[5]의 모범으로 보기 때문에 시아파 중에 조혼을 꺼리는 교파도 있으나 마이너한 이야기고 시아파의 경우에도 어차피 무하마드 자체가 벌인 일이라 대부분이 긍정하므로 별 차이는 없다.

이슬람 율법(샤리아)에 의하면, 남성은 결혼을 원하는 여성에게 일정 이상의 자금을 주어야만 한다. 샤리아적 관점에서 결혼은 '신성한 계약관계'이며 반드시 신랑과 신부 본인의 자발적인 동의가 전제되어야 한다. 이슬람의 결혼은 결혼계약서에 서명을 하고, 신부측에게 지참금을 지급함으로써 유효화된다.

또한, 쿠란에는 신부의 지참금은 오로지 신부를 위해 쓰도록 권장되어있는데 전혀 지켜지지 않는다. [6]

여러명의 아내를 둘 경우, 남편은 '모든 아내들을 평등하게 사랑하고 평등하게 대우할 율법상의 의무'를 가지게 된다. 그런데 이 규약도 무의미한 구절이다. 무하마드만 해도 많은 아내가 있었지만 대놓고 차별한데다가 6살의 나이로 시집와서 처녀성에 대한 시비를 걸만한 가능성도 없는 아이샤를 대놓고 편애하면서 끼고 살면서 많은 재산을 주고 죽을때도 아이샤 무릎위에서 죽었으니 평등하게 대하라는 말은 늙은 마누라라고 굶기지는 말고 애처의 낳지않은 자녀들도 완전히 무시하지 말아라. 수준의 이야기다. 사우디아라비아 왕가도 편애받는 넷째 왕비의 아들 그레이트5라고 불리는 아들들만이 왕가계승을 하고 있다.

북아프리카 지역의 실제 통계를 보면, 1907년 이집트에서는 6%의 남성이 두 명 이상의 아내와 결혼했는데, 이 비율은 20세기 후반이 되면 2.8%(1992)까지 떨어졌다. 참고로 인근의 알제리는 1.0%(1998), 모로코는 1.1%(1994). #

사실 중동 빈국에서 일부다처제에 대한 지지도가 떨어진 것은 역내의 여성들이 기름이 나오는 부유한 사우디아라비아나 아랍에미레이트 카타르 같은 국가로 팔려가기 때문이다. 이 문제 때문에 아내를 찾지못한 남성이 크게 늘면서 이 국가들에서 중동부유국에 대한 불만은 크지만 교리상으로는 일부다처제를 문제시삼기 어렵기 때문에 금지할 수도 없는 문제라서 입장이 다소 갈리고 있는 것이다. 물론 아내를 수입하는 아라비아 반도의 부국들은 견고한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다.

무슬림들의 일부다처제에 대한 인식은 지역마다 크게 갈렸는데, 보스니아(85%)나 터키(73%), 카자흐스탄(62%) 등 동유럽과 중앙아시아권의 무슬림들은 "부도덕하다"라고 응답한 비율이 압도적이었으나, 니제르(87%), 세네갈(86%) 등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서는 일부다처제에 대해서 도덕적으로 용납 가능하다는 의견이 압도적이었다. 요르단이나 이집트 등 중동권에서는 찬성이 반대보다 높았으나, "도덕과 상관없는 문제다"라는 응답의 비율이 높은 편이었다. 성별로 봤을 땐 남성이 여성보다 일부다처제에 긍정적이었으며, 그 격차는 파키스탄에서는 29%p에 달했다. #

3.1.1. 아랍 에미리트[편집]

국가 차원에서 일부다처제 유지에 사활을 걸고 있는 편이다. 압둘라 벨하이프 알누아이미 UAE 사회기반개발부 장관 주도로 일부다처제의 장려를 위해 기존의 첫번째 아내에만 보조되던 주택보조금을 둘째 부인에게도 지불하기로 한 정책같은 것이 대표적인 정책이다. 아랍에미레이트는 독립부족간의 연합왕국에 가깝기 떄문에 지정부족간의 결혼을 권장하는데 이 지정부족원 딸들을 데려가려면 수천만원에 해당하는 지참금을 지불해야한다. 반면 이집트나 이라크등의 외국인 여성을 데려오면 지참금이 불과 수백만원에 불과하다. 비중동권의 여성과 결혼한다면 아예 지참금을 안줘도 된다. 이러다보니 역설적으로 지정부족원들의 여성이 미혼인 상태로 남아있게 되어버렸는데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정부족원 즉 아랍에미레이트 부족 출신 여성과 결혼하면 나라가 2100만원의 결혼식 보조금을 지불하고 있고 아내를 위한 거주보조금도 지불해왔다..

그래도 여전히 아랍에미레이트 부족출신 여성의 지참금은 비싸기 때문에 많은 아랍에미레이트 부족출신 여성이 미혼으로 남아있게되자 이들과 결혼할 경우 둘째 부인의 거주도 국가보조금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다시 말하지만 이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은 양쪽이 다 지정부족원이어야 한다. 아랍권 국가들은 부족주의적 전통이 엄청나게 강한데 아랍에미리트트는 독립부족연합이기 떄문에 이 문제가 더욱 극심하다. 해당부족원이 아니면 취업등으로 영주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할지라도 아무런 혜택을 받을 수 없으며 타국인은 두번째 부인의 체류권조차 인정되지 않는다. 법적으로는 명시되어있지 않지만 이민국에서 허가를 내준 적이 없다고.. 따라서 일부다처는 오로지 아랍에미레이트인만 가능하며 장려받는다.

3.1.2. 모로코[편집]

모로코는 일부다처제를 금지하진 않았지만 법적 구제절차는 다양하게 구비되어있다. 이전문서에 기록된 것처럼 결혼문제에 국가가 까다롭게 굴어서 일부다처제를 못하게 만든다는건 역사속에 수도없이 반복된 전형적인 쉬르크에 해당한다. 그리고 이런 애들의 목을 벤걸 칭찬하는 하디스가 수천구절도 넘는데 목이 내걸리고 싶지않으면 이런 법을 만들지 못한다. 다만 내가 허락하지 않았는데 둘째부인을 들였다. 라고 아내쪽에서 문제제기를 할 경우 정식 구제절차가 법으로 허용되어 있는 것이다.

사실 모로코는 유럽과 중동 사이에 관문에 존재하는지라 일부다처제에 대한 입장이 미묘한데 일단 도덕적으로 논란을 삼는건 이슬람교의 특성상 목숨 내놓는거나 마찬가지라서 금지할 수는 없고 그렇다고 권장하지는 않는다. 수준이다. 모로코는 그다지 부유한 국가가 아니고 서구적 가치관에 영향을 받은 식민지시절 프랑스정착촌이나 관광지와 시골지방의 풍습이나 사회관념이 크게 다르다. 그래서 일반화하기 어려운 지역이다.

3.1.3. 사우디아라비아[편집]

사우디아라비아 파이잘 왕이라든지 여럿 왕들이 아내를 수십여명 두었는데, 물론 공식적으로 어디까지나 4명까지만 이혼하는 절차를 시행한 다음에야 새 아내를 받아들인 것이다. 그렇지만 이건 이혼 시늉인거지 이혼은 아닌 편법이다. 그냥 동침하기 전에 편의적으로 결혼하고 다음날 아침에 이혼하는 절차만 반복하는 것이다. 결혼이나 이혼절차는 이런 편의적 절차에서는 아내의 입회없이도 이맘의 입회하에 이혼한다./결혼한다. 라는 선언만 하면 되기 떄문에 그다지 어려운게 아니다. 당연히 이런 편의적인 이혼을 했다고 여자가 재혼한다는건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이런 이혼녀는 명목상의 이혼녀지 사실상 남의 아내를 훔치겠다는 소리나 마찬가지다. 사우디아라비아 가정에 초대를 받고 방문한 서구인 남성이 사우디아라비아인 아내의 맨얼굴을 우연히 사고로 보아도 큰 사고에 해당한다. 그것도 모자라서 서구의 습관대로 별 생각없이 그 미모를 칭찬했다가 자신을 모욕했다고 여긴 분노한 가장의 칼을 맞고 죽은 사건이 있었는데 이 사건은 법정에서 무죄가 나왔다. 이 지역에서 다른 남자의 소유인 여자에 대해 수작부리다가 남편에게 걸리면 죽여도 샤리아법으로 무죄이며 여자는 명예살인의 대상이 된다.

이런 편법을 동원하는 케이스도 많은 반면 사우디는 빈부격차가 이 지역에서도 매우 극심한 국가다. 그래서 일부다처를 시행하면 4명까지 채우는 것은 물론이고 편법까지 동원하는 것이 일반적인 편이지만 아예 못하는 집도 많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일부다처인 가정은 전체의 8.5%인데 사우디 아라비아에서 일부다처 결혼을 하는 여성이 50%가 넘는 이유가 이러한 이유 떄문이다.

3.2. 비이슬람권 아프리카[편집]

위에서도 설명했지만, 아프리카에선 이슬람이 아니라도 일부다처제를 인정하는 나라가 많다. 그 예로 남아공 대통령(2009년 취임)인 제이콥 주마는 2012년 시점에서 아내가 넷이다[7]. 2010년엔 부인이 3명이었는데, 이 때 영부인 자리에 아내 셋을 모두 데리고 나왔다. 남아공에선 이슬람은 극소수이며 주마도 공식적으로 기독교인이라 법적으로는 일부다처제가 인정되지 않는데, 관습법적으로는 허용되기에 큰 문제로 삼지 않는 듯하다.

이처럼 아프리카 여러 부족들은 부자이거나 족장같은 권력자는 아내를 무한으로 둘 수 있기에 자이르(현재의 콩고 민주 공화국)에 있던 바쿠바 족 자치구역, 자칭 쿠바 왕국(Kuba kingdom) 왕이던 르켕 왕이 현대에 보기드물게 진짜 하렘을 이룩한 적이 있는데, 60년대만 해도 르켕 왕은 아내를 무려 800명씩이나 둔 적까지 있다. 그는 식민지 시절에는 벨기에 측이 그냥 얌전히 바쿠바족을 다스리며 대들지 않으면 매달 돈도 두둑히 주고 당신의 왕권을 인정하겠다고 두면서 절대적인 왕권을 행사했다. 아들딸이 무려 2천명이 넘었을 정도였다. 하지만 벨기에로부터 이 나라가 독립한 60년대 들어서 자이르 정부가 이건 해도 너무하다고 그 부족마을로 가서 지나친 일부다처제를 금지하던 일[8]도 있었다.

지금은 저렇게 하진 못해도 여전히 엄청나게 아내를 두는 경우가 있는데 2000년대 후반에 케냐에서 마사이족 마을로 간 한국인 여행자는 아내를 30명이 넘게 둔 마을 촌장을 봤다고 한다. 한술 더 떠 촌장의 아들들도 각자 아내를 10여명씩 두고 있는데 그나마 촌장인 아버지[9]가 가진 아내의 수를 넘기면 안된다는 법칙이 있다고 한다. 물론 여기도 거저 아무나 아내를 저렇게 가지는 게 아니다. 주로 를 비롯한 가축이나 생필품을 지참금으로 아내의 집안에 내줘야 하는데, 아내의 외모와 여러가지를 따져서 지급할 지참금이 달라진다고 한다.

여행자가 보통 아내에게 주는 소가 몇 마리냐고 묻자 마지막에 맞이한 아내는 꽤 미인인데 소 30마리를 주었다고 한다. 참고로 그 마을 보통 서민들은 소를 보통 몇 마리 수준으로 기르고 있었고 촌장의 집안은 2천마리가 넘는 소를 가지고 있었단다. 즉 여기도 지참금이 부족하면 마법사 되는 셈.

이태석 세례자 요한 신부가 지내던 남수단도 마찬가지라서 남수단 다수 기독교인들도 이슬람욕해도 일부다처제를 욕하지 않고 당연시하고 있으며 이는 이슬람이 아닌 전통풍습이라고 여긴다고 한다. 덕분에 부족장이나 잘 사는 부자들은 아내를 여럿 데리고 있는 경우가 허다한데 이 역시 지참금으로 팔려나온 신세가 대부분이었다고 한다.

3.3. 유대교와 팔레스타인[편집]

성경의 구약에서도 일부다처제는 흔히 찾아볼 수 있는데 일단 솔로몬만 해도 아내가 700명에 첩 300명을 데리고 있었다. 다만 이건 솔로몬이 행했던 외교정책의 일환이기도 하다. 전쟁으로 영토를 넓히기보다는 이웃 나라의 왕족 및 귀족들과 사돈관계를 맺음으로서 그들을 자신의 속국에 가깝게 만드는 것.

이렇듯 구약성경에 묘사된 고대 유대교 시절에는 이스라엘 지방에서도 일부다처제가 있었고, 중세 때도 일부일처제와 일부다처제가 섞여 유지되다가, 서기 11세기에 프랑스의 대 랍비인 게르솜 유다가 유대교에 일부일처제를 도입하자는 교리를 공표한 이래로 대다수의 주류 유대교에서는 정통파 진보파를 가리지 않고 일부일처제가 확립되었다.

이 제도에 대해 여성을 위한 정책이라고 표현하는건 여성의 질투심을 상당히 얕본 평가이다. 남자나 여자나 본인이 쿨하다고 생각하더라도 "시앗을 보면 돌부처도 돌아앉는다" 소리를 들을만큼 질투는 인간의 근원본능이다. 심지어 본인이 얼마나 바람을 피는가에 관계없이 질투기제는 그대로 작동한다. 그래서 여성이 최소한의 발언력만 있어도 일부다처제는 성립하기 어렵다.

3.4. 그 외 지역[편집]


부탄도 왕족은 일부다처제를 허용한다. 단 현 부탄국왕인 지그메 케사르 남기엘 왕축은 평생 왕비제선 페마만 바라보고 살겠다고 선언해서 당분간 일부다처제를 볼 일을 없을듯.그러나 차기 국왕 때 일부일처제를 법제화할 가능성이 있다. 오히려 선대 국왕인 지그메 싱계 왕축이 위엄이 넘치는 일화가 있는데, 이분은 왕비가 4명이다. 그냥 4명도 아니라 이 4명 모두 다 한 자매다!!(....) 이유는 선대 국왕은 결혼 전에 4자매 중에 제일 맏언니를 사랑했고 결혼하려고 했는데[10] 저 맏언니가 자신의 여동생 3명도 함께 아내로 안 받아들이면 자기도 결혼 안 하겠다고 고집을 피워서 어쩔 수 없이 4명을 한꺼번에 아내로 맞아들였다. 물론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인 나머지 3명의 아내들과도 사이가 좋고 사랑해서 현재까지도 별다른 문제는 없다.

초기 몰몬교는 일부다처를 허용했으나, 유타 전쟁 이후 1890년에 폐지되었다. 일부다처제가 폐지되기 이전에 쓰여진 소설인 셜록 홈즈 시리즈의 주홍색 연구[스포일러]쥘 베른80일간의 세계일주[12]에서 관련 내용이 등장한다. 미국근본주의 몰몬교 지도자이자 아동 성범죄자 워렌 제프스는 대저택 하나에서 50여명의 부인을 거느리고 있었다.# 즉, 근본주의 몰몬교도일 수록 일부다처제에 긍정적일 가능성이 아주 높다. 이런 이들을 다룬 미국 드라마 빅러브의 주인공은 일부일처제를 주류 몰몬교가 받아들였다는 것도 비판할 정도로 종교원리주의자로 이단에 가까운 소수파이다. 이유는 조셉 스미스가 일부다처제 하라고 했기 때문이라나.

4. 한국의 경우[편집]

4.1. 전근대[편집]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과거에는 지위가 높을 수록 많은 여자를 얻는 것이 일반적이었다.[13] 하지만 '정실'은 대체로 1명이었기에, 엄밀하게 말하면 '일부일처다첩제' 혹은 줄여서 '처첩제' 정도가 된다. 사실 이 문제는 좀 복잡한 문제인데 프랑스의 마담 드 퐁파두르의 예처럼 기독교권 국가에서도 왕이나 귀족은 대놓고 애인이 있었고 심지어 현직 영주들의 애인들이 대대로 수여받다가 다음대의 미스트리스에게 물려주는 관직이나 저택이 있는 경우도 많았지만 일부일처제로 규정한다. 이슬람권에도 첩에 해당하는 "오른손이 소유한 것"은 4명의 카운터에 들어가지 않아서 무한대로 가질 수 있는데 처는 4명까지로 규정한다.

동아시아에서의 첩의 위치가 국가에 따라 다르고 시대에 따라 다르지만 대체로 아내와 애인과 노예의 속성이 각각 강해졌다가 옅어졌다가가 반복된다. 그래서 일부일처제 + 노예 애인이라고 볼 것인지 그냥 일부다처제라고 볼 것인지는 판단하는 사람마다 다르다. 대체로는 일부일처제라고 본다. 여성주의자들은 결국 남자 한명이 여러명과 제도적 관계를 가지는거 아니냐? 라는 식으로 처첩제가 일부다처제라고 생각하기도 하지만 그 기준으로는 일부일처제따위는 인류역사상 없었고 한국이건 이슬람이건 유럽이건 모조리 다 일부다처제가 된다. 유럽의 페미니스트들도 그래서 유럽도 일부다처제였다라고 주장하기도 하지만 이건 좀 극단적인 시선이니 적당히 가려듣자 건조하게 보면 처첩제는 일부일처제의 정의에 더 부합한다.

전쟁의 결과로 노획하거나 무당의 자식처럼 천대받아서 얻은 여자를 같은 부족에서 얻은 정식부인과 동급으로 두지 않는 식의 차이는 원시적인 부족에서도 자주 나타나고 이런 노예/천민들은 정식 부인 앞에 나타날 수 없거나 나타나면 엎드려서 존경을 표해야하며 상속권과 성씨등을 물려받을 권리도 적자에게만 있는 등의 차별 정도는 전세계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고대에 특별한 아내가 존재했던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고 계승권과 상속권 차원에서 정실소생과 측실소생. 사생아는 엄연한 차이가 있기 떄문에 계승에 대해 수많은 문제와 내전, 피를 뿌렸던 근원이기도 했으니까.. 처와 첩을 동일시 하는 것은 여러모로 그분들만의 시각이다. 사실 이렇게 차별을 두는 것 보다는 대놓고 다 처로 맞아들이는 아프리카가 더 인간적인 것이라 볼 수도 있겠지만 사실 아프리카의 이 처들은 모조리 아무런 권한도 없는 첩들이나 다름이 없기 때문에 나름 안방의 권위를 보유한 정실의 존재라도 인정하는게 그나마 더 여성의 권한이 높다고 볼 수도 있으니 무자르듯 결정할 문제는 아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정실'이 여럿 있기가 힘든 구조였는데, 우선 전통적으로 처가와 사위 간 연대가 강했다. 부부별성이라는 것에서도 알 수 있는데, 장인어른의 파워가 강했다는 의미다. 결혼 후 여자가 출가외인이 되는 것은 최근 300년 정도 일이고, 그 전엔 천 년도 넘게 차라리 데릴사위제에 가까웠다. 중국이나 중동 등등이 일단 결혼하면 딸은 거의 인연이 끊기다시피 하고 시집가서 남편이 죽으면 끈 떨어진 나룻배가 되는 것과 다르다. 남자 입장에선 결혼하면 최소 몇 년은 처가에서 살고, 이게 길어져서 처부모 3년상 모시는 일도 허다했다. 장인어른이 고위관직에 있으면 사위 자격으로 음서의 혜택을 볼 수도 있고, 재산상으로도 본가에서 물려받는 재산 못지않게 (아들 딸 구분없이 균분상속하므로) 처가 부모가 돌아가시면 아내를 통해 상속받는 재산도 비중이 컸다.

이런 상황에서 '정실'이 여럿이 되기는 힘들다. 상식적으로 일단 결혼하면 'OO가의 사위'란 정체성이 상당히 중요해지는 상황에서 동등한 정실 부인을 다시 맞이한다는 건 상상하기 힘든 거다.

그러나 여성의 권한이 커서 위와 같이 된 것이 아니기에, 은 있었다. 즉 장가든 후 메인 주거지가 처가가 되는 건 맞는데, 실질적으로 여자는 친정에서 계속 살고, 남자는 처가와 본가를 오가면서 산다. 이 대표적인 표본이 서울강릉을 오락가락했던 신사임당의 남편 이원수 같은 사람[14]. 그리고 흔히 이럴 때 본가 근처에는 첩을 두고 사는 것이 조선 중기 이후 상류층 남자의 생활상이었다. 소위 현지처(...)의 전통은 긴 역사 면면한 셈.

고려충렬왕 때, 오랜 여몽전쟁으로 남녀 성비가 무너졌다든지 원래 해동 땅은 음기가 세다든지(...) 하는 이유를 들면서 박유의 건의로 일부다처제를 시행하려 했으나 무산되었다. 제안을 한 대신 박유를 두고 도성 여인들이 "을 두자는 자가 저 요망한 늙은이다!!!!"라며 손가락질하면서 욕했다든지, 그 소식을 들은 여인들이 남편과의 동침을 거부하는 시위를 했다고도 고려사에 전한다.

그런데 고려 말에는 일부다처 풍습이 확인되기도 한다. 특히 호족 출신으로 중앙에 진출한 사람의 경우 경처와 향처라 하여 고향과 개경에 처를 따로 두었다.[15] 종래에는 이를 고려 시대 전반의 풍습으로 확대시켰으나, 지금은 전란이 계속되어 남녀성비가 무너진 고려 말엽의 일시적인 현상으로 보는 것이 주류이다. 사실 이성계중혼을 한 대표적인 인물이기 때문에 저 관습이 고려시대의 일반적 관습이겠거니라고 생각한 것도 크다.

‘전조(前朝)의 말엽에 대소 원인(大小員人)이 경외(京外)에 양처(兩妻)를 함께 둔 자도 있고, 다시 장가들고서 도로 선처(先妻)와 합한 자도 있으며, 먼저 취첩(娶妾)하고 뒤에 취처(娶妻) 한 자도 있고, 먼저 취처하고 뒤에 취첩한 자도 있으며, 또 일시(一時)에 삼처(三妻)를 함께 둔 자도 있어서, 그가 죽은 뒤에 자식들이 서로 적자(嫡子)를 다투게 되니 쟁송(爭訟)이 다단(多端)하였으나, 그 때에는 처(妻)를 두고 취처(娶妻)함을 금하는 법이 없었습니다.

태종실록 태종 17년 2월 23일


당장 조선왕조 실록에 해당 부분이 언급되는 것을 봐도 알 수 있는데, 시기를 고려시대 말기의 혼란상으로 제한하고 있을 뿐 아니라, 양처를 두는 것을 금지하는 법이 없었다라고 되어 있는데, 이는 맥락상으로 다처를 허용했다는 것이 아니라 법으로 금지해야 할 필요를 못 느낄 정도로 일부일처가 당연했다는 이야기이다.

애초에 경처와 향처 부분이 고려 말이라는 증거가 하나 더 있는데, 중혼의 결과 양처, 혹은 심하게 3처까지 둔 사람이 나오면서, 그 자손들이 모두 적자가 되었다. 이 부분은 조선시대에 일부일처 다첩제가 되면서 누가 첩이 될 것인가가 문제가 되었다는 것은 나중 일이고, 당장 고려 말부터 재산분할 관련으로 소송으로 시작된다.

본관이 있는 향처의 자손들이 더 높은 위치에 있는 것 아닌가 생각할 수 있지만, 경처는 개경에 거주하는 유력인사들과 정략 결혼을 한 사례가 많은 것이다. 이 때문에 경처의 지위가 오히려 높았고, 이에 대해서 향처의 자손들이 반발하는 양상이었다. 사실상 왕자의 난도 조선이라는 나라를 유산으로 둔 유산싸움인 것이다.

4.2. 현대[편집]

조선 말에 개화기 이후 처첩제도 공식적으로 폐지되었다. 이후 일제와 미군정은 처첩제를 한국의 특수한 풍습으로 인정하여 을 두는 것을 허락했지만, 대한민국 헌법 개정 과정에서 모두 금지되었다. 대한민국에서는 말그대로 아내남편이 1명씩만 있는 일부일처제만 인정한다. 대한민국 국군 간부들의 경우 일부다처제 행위를 하면 축첩행위라는 혐의로 현역부적합심의 대상이 된다.[16]

90년대 후반 토요미스테리 극장에 소개된 사례에 따르면, 6.25 전쟁 때 피난을 오던 실향민 남자가 도중에 부인과 아이를 잃고 몇년 후에 재혼을 했는데, 죽었다고 생각했던 부인과 아이를 다시 만났다. 처음엔 기뻐하다가 이내 난감한 상황에 빠지고 두 집 살림을 하다가 결국은 들통났다.[17] 어찌어찌 해서 두 부인과 자식들을 끼고 살게 되지만, 틈만 나면 마누라들이 머리 끄댕이 잡고 싸워서 대폿집 마담과 바람이 났는데(...), 이 사실을 알고 분노한 부인들이 남편과 마담 둘 다 쥐어 팼다.

남들의 부러움을 받았지만, 본인은 죽을 때까지 "하나도 안 좋아..."라고 했다고. 얼마나 시달렸는지, 심지어 죽은 이유도[18] 두 명의 부인이 화투를 치다 싸움이 붙은 것을 말리던 와중에 풍으로(...) 세상을 떠난 것. 심지어 죽은 뒤에도 자신의 옆에 묻힌 부인들이 싸우는 바람에 결국 자식들 꿈에 유령으로 나타나서는 마누라들 무덤과 좀 떨어진 위치에 무덤을 이장해 달라고 하소연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자식들은 아버지의 부탁을 들어드리고자 이장을 결정했는데, 두 어머니의 무덤과 떨어진 위치에 어느 한 쪽으로 1mm라도 치우치지 않도록 하느라 상당히 애를 먹었다는 이야기.[19]

덧붙이자면, 이 에피소드의 제목이 참 적절하게도 "아버지는 DMZ"였다(...). 솔직히 재혼한 일은 어쩔 수 없지만 마담과 바람 핀 건 죽도록 맞아도 모자란 일이라 쉴드조차 불가능하다(...). 중립국으로 간 게지

5. 여권[편집]

결국 부유층 남성은 여러 명, 중산층은 1~2명, 하위층은 아예 한 명과도 결혼하지 못할 수 있다. 즉 일부다처제 사회에서 아내의 수는 남편의 사회경제적 지위를 고스란히 반영한다. 일단 어떤 사회가 일부다처제를 시행한다고 치면, 그 사회는 곧바로 가정이라는 공동체를 안정시킬 방법부터 고민하게 된다. 여러 아내, 그리고 그들의 배다른 자식들 사이의 갈등으로 인해 집안이 풍비박산날 수 있기 때문.(…) 인류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이 때문에 적지 않은 문화권에서 다양한 시도가 있어 왔다. 다음은 그 중 몇몇 방법을 열거한 것이다.

  • 자매가 아닌 공동 아내들은 거처를 분리시키되, 자매인 아내들은 함께 지낼 수 있게 한다.

  • 각 아내들은 모두 부부관계와 경제권, 재산의 소유권에 대해 동등한 권리를 갖는다.

  • 가장 연장자인 아내가 가정 내에서 특별한 권위 또는 특권을 갖는 것을 인정한다.

    • 이와 함께, 어린 아내를 편애하지 않게 하는 관습이 동시에 시도될 수 있다.[20]

그러나 정책적 관점에서 볼 때 어찌되었건 간에, 일부다처제가 남아있는 나라들, 근대화가 덜 이루어진 국가들에서 여권을 제대로 보장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각 부인을 공평하게 사랑하라는 계율[21]은 그저 계율에 지나지 않으며, 무엇보다 배우자가 '다수'가 됨에 따라 상대방에 대한 배려 역시 상당히 떨어진다. 배우자를 다수 거느리는 경우 각 아내를 '스테이터스'나 '재산'으로 볼 수는 있을지언정 인격적인 동반자나 반려로 여기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 일부다처제 등에 대해 관대한 나라들 가운데에서는 아직도 성폭행을 당한 여성은 자살하는 것이 불문율이 되어 있는 등 고대 종교 악습을 간직하고 있는 경우도 있다. 정확히 일부다처제와 연관 있다고 말하기 어려우나, 여권 경시 풍조 자체와 무관하지 않다.

6. 환상과 진실[편집]

한국사쌤: 몇몇 남학생들이 일부다처제가 없어져서 슬퍼하던데 일부다처제가 없어진건 다 너네를 위해서야. 일부다처제가 시행되면 다들 송중기의 백번째 부인이 되고싶어하지 너네 부인이 되고싶진 않을꺼야

이렇게 요약 가능하다.

뭐 옛날이든 현재든 일부다처제가 존재하기는 해서 그렇다 치지만 은근히 기록이 많은 덕분에 에로게 등에서는 남자의 로망으로 포장되어 나오고 오덕뿐만 아니라 뭇 남성들중에도 이를 동경하는 사람이 많지만 현실은 그렇게 만만하지도 않고 영원한 장밋빛이 펼쳐지는 것도 아니다. 실제 허용이 되는 나라에서도 처를 여럿 두는 것이 가능한 경우는 드물다.

6.1. 경제적 측면[편집]

부모에게서 독립하여 사회 진출을 생각 하거나 경험한 사람 이라면 알 수 있겠지만, 한국의 일반 가정 기준으로 1처에 자식 둘만 딸려도 가장은 자신의 덕질에 들일 금액을 가급적 줄이는 것부터 시작해 온갖 부분에서 넉넉하게 돈을 쓰기도 힘들고 거의 대부분 뼈 빠지게 일을 해야 하고 가정의 불화를 일으키지 않도록 배려와 마음을 써야 하는 당연한 일이 있는데 여기에 처가 넷에 1인당 자식을 2명만 둔다고 생각 해보자. 부양가족이 단숨에 12명이 된다. 게다가 그 12명이 각각 3명씩 거주할 수 있는 집을 도합 4채 지어야 한다. 감당할 자신이 있는 사람은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일부다처제도 시대와 상황에 따라 모습이 다를 수 밖에 없겠지만 대체로 아내들 간의 충돌을 막기 위해 아무리 사정이 안 좋아도 집은 무조건 따로 마련해 주는 게 보편적이다.

따라서 이런 일부다처제를 허용하는 국가에서도 아내를 여럿 맞이 한다는 건, 한 마디로 부의 상징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꾸란에서도 '정 할거면 이런 특수한 상황이라면 이까지 해도 되겠지만, 대신 모든 아내에게 같은 대우를 해 줘야 하고 누구도 차별해서는 안 된다. 떫으면 그냥 하지 마라. '라고 적혀 있다.[22] 즉, 중동식의 일부다처제는 이슬람 율법이 권장하는 것이 아니라, 당시 중동 풍습 때문에 대놓고 금지는 못하지만, 지양할 풍습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또한 기존 아내의 허락[23]을 받아야 하고 신 앞에서 차별 안하겠다는 확언을 해야 한다. 물론 근대화가 잘 이뤄지지 않은 국가일 경우에는 앞서 서술한 것처럼 형해화된 계율로 다루는 경우가 많으며, 이 경우 여성의 인권은 시궁창에 처박힌다. 하지만 이런 나라들도 부자거나 권력자 아니라면 일부다처제는 이 항목 여러 예시에서 보듯이 어림도 없다.

간혹 두 번째로 맞은 부인이 남편의 가정에 경제적으로 도움을 주는 케이스도 있다.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과거에는 밥집을 운영하는 여자가 손님으로 온 남성과 눈이 맞는 경우가 있었는데, 밥집을 운영해서 번 돈으로 본처 자식들까지 부양한 사례도 간혹 있었다고.

6.1.1. 세금 문제[편집]

그리고 세금도 대폭 늘어난다. 실제로 우리나라 여행전문가가 정말 힘들게 이집트[24]에서 아내가 둘인 부유한 사업가를 겨우 만날 수 있었다. 이런 건 좀처럼 어려운 일인데, 일부다처제를 허용하는 이슬람권 나라들에선 외국인들이 취재하는 것을 이슬람 모독으로 연결한다고 기분 나빠하기에 외국 언론이나 여러가지 취재가 자세히 된 게 없을 정도이기 때문이다.

더불어, 아내를 2명 두자 세무소 직원이 와서 그만큼 수입을 인정받으시니 세금이 늘어난다고 정식 통보까지 하더란다. 뿐만 아니다. 이집트에도 여성부가 있고, 여성부 직원이 와서 두 아내를 만나는 자리에서 "남편이 한 아내를 차별한다면 이를 알리라"고 신신당부까지 했는데, 이는 이혼 사유가 되기 때문. 그 사업가도 아내가 둘인 것에 환상 가지지 말라고 쓴소릴 하는데, 그게 절대로 배부른 투정이 아니라는 것을 알수 있다.

6.2. 아내들 간의 평등 문제[편집]

해외 출장을 가서라도 선물을 반드시 2개를 같은 것을 사줘야 한단다. 남의 떡이 더 커 보인다는 속담처럼 하나라도 다르면 서로가 상대 쪽 선물이 더 좋게 여길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어느 스튜어디스가 쓴 책자에서도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아랍권 한 나라에서 아내를 둘 데리고 있던 한 현지인 남성이, 면세점에서 똑같은 고급 기념품을 구입하길 원했는데 하나밖에 없어 난감해하던 걸 본 적이 있다고 한다. "다른 걸 사시면 어떻겠습니까?"라고 하자 그 남성은 "안돼! 두 아내에게 공평하게 대하자면 같은 것으로 사줘야 한단 말이오!"라고 고집을 부렸다고 한다. 그래도 사정을 이야기하자 마지못해 아내 둘에게 그럼 같은 값으로 둘이 원하는 걸 고르라고 하여 최대한 비슷한 값으로 두 사람이 원하던 걸 고르고나서야 비로소 그 남성도 미소를 보이며 수고했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6.3. 체력적(...) 문제[편집]

또한 정력을 소비하는 일이란 현실적으로 한계가 있다. 하루 이틀 자주 해대면 1년도 못가서 남자는 힘이 떨어지고 몸이 늘 피로하며 생각도 하기 힘들어 지고 피로가 축적되고 몸이 불편해지니 점점 시원찮아지고, 모든 것이 귀찮아지기 마련이다. 1명을 상대로도 낮에 일을 하면서 생긴 피로와 휴식에 대한 조절을 잘 해주어야 즐거운 부부 생활이 간신히 성립되는데 이 정력 소비 행위가 2배만 되어도 밤에 힘을 2, 3~4배로 더 많이 써야 부부간의 즐거움이 무너지지 않는다. 즉, 어지간히 절륜한 정도로는 턱도 없다. 물론 30대까지야 체력이 있으니까 별 문제 없겠지만 40대 이후라면? 어떤 사태가 벌어질 지는 상상에 맡긴다.

6.4. 성비 문제[편집]

게다가 일부다처제의 또다른 문제점이 아직도 남아있다. 그 것은 바로 일부다처제를 공식적으로 허가하고 시행을 할시 결혼을 못하는 남자들이 당연히 생길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가뜩이나 남녀의 보편적인 성의 비율 같은 것은 남자 쪽이 조금 더 많이 태어나는 게 자연적인 현상인데[25], 이런 상황에서 한 남자가 4명, 아니 2명의 여성과 결혼을 한다고 쳐도 어딘가의 어떤 남자 둘, 셋 이상이 결혼을 할 기회와 상대를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다. 즉 이 때문에 남성들이 불만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MBC 뉴스데스크로도 바로 이집트 같은 경우가 보도되기까지 했다. 외국 기자들 카메라 앞에서 나온 이집트 남성들은 소리를 꽥꽥 지르면서 화를 내기까지 했다. "돈많은 자들은 아내를 넷이나 두는데, 우린 아내 하나 두기도 벅차다!" 그래서 외국 여성에게 치근거리면서 치한 짓까지 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간혹 운 좋게 하나 걸려서 결혼하면 비 이슬람 신자인 외국 여자들은 지참금을 요구하지 않고, 태어난 아이는 어차피 무슬림이고, 이들 입장에선 땡잡은 셈이다. 다만 이건 로또와 같은 확률이고, 되려 여자 관광객 자칫 잘못 건드리다가 경찰이나 사복경찰에게 걸려 작살나기 십상이다.

해외 여행자들이 이런 치근남들을 피하고자 반지를 낀다든지 유부녀로 위장하고 들어온다고 반지를 끼거나 남자들을 데리고 와 남편이라고 말해도 결혼사진 보여달라며 치근거리는 이집트 남성들도 있다. 그런데 실제로 한국인 신혼 부부가 이집트 여행을 갔다가, 이런 치근거리던 호텔 종업원을 만난 적이 있다. 빡돈 남편이 멱살잡고 '내가 남편인데, 어디 경찰서 가자.'라고 분노하자 종업원이 굽신거리며 빌었는데, 그 호텔 사장이 와서 사정을 듣더니 죄송하다면서 그 사죄로 하루 식비를 받지않았다고 한다.[26] 그대신 그 직원은 사장이 알아서 처리한다고 하더니만 그는 며칠 동안 보이지 않았다. 이 내외가 그 호텔에서 나올 때 그 치근거리던 종업원이 얼굴이 퉁퉁 부은 채로 지나가는 걸 봤는데 다른 직원이 말하길, 사장이 뜨거운 불벼락을 내려 그 직원의 정신상태를 정상으로 돌려놓았다고 한다. 이럴 경우엔 경찰도 사장의 손을 들어준다면서. 이처럼 일부다처제가 가능한 지역에서 이런 일이 꽤 자주 벌어지는데 이런 남성들은 가난하고 지참금이 없어 도저히 결혼하지 못하고 그나마 만만한 외국여성에게 이런 치한 짓을 많이 저질러 이런 원인도 일부다처제가 원인 중 하나 아니냐는 지적도 많다. 인도 공화국이나 방글라데시터키에서도 종종 벌어지는 일인데, 이러다가 걸리면 경찰이 제대로 반 죽여놓는다.[27]

위에 나온 나라 가운데 여성이 엄청 불평등한 나라인 파키스탄도, 부자거나 하다못해 그 지역에서 그나마 제법 힘이 있는 수준의 권력자가 아니라면 일부다처제가 극히 어렵다. 파키스탄을 여행한 한국인 여행자의 책을 보면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파키스탄에서 길을 잃어서 정말 외딴 마을에서 묵게 되었는데, 이 외딴 마을은 찢어지게 가난한 집들 투성이였고, 한국의 중산층 수준 정도의 촌장이 그나마 마을에서 가장 부자였다. 그리고 촌장은 아내가 셋이었고 마을 사람들 상당수는 노총각이었다고 한다. 위에 나온 사례들의 출처를 아는사람은 링크걸어주기를 바란다.

6.5. 여성들의 입장[편집]

대부분 부정적이다. 여초 현상이 극심하다는 체첸에서조차 일부다처제 도입은 결국 여성들의 극렬한 반대로 실행되지 않았을 정도. 고려에서도 박유가 인구 격감과 여초 현상을 이유로 일부일처 그만두자고 했다가 오만 욕을 다 먹었다는 일화가 있다.

무슬림 여성들도 일부다처제에 긍정적이지는 않은데, 한국인 대학생들이 전세계 대학을 찾아가서 자매결연을 맺으면서 현지 대학생과 여러 이야기를 나눈 걸 쓴 <캠퍼스 로드>라는 책에 나온 일화에 따르면 이러하다. 이란 테헤란 대학교에서 남녀 학생들과 대화하다가 일부다처제 이야기가 나오자 남학생들은 "돈만 있다면 꿈꿀 수 있지(…)"라는 반응을 보인 반면, 여학생들은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심지어 어떤 여학생은 이런 말을 한 남학생에게 화를 내면서 욕설까지 했다고 한다.

그러나 단지 부정적이라고만 하기에는 복잡한 사정이 많다. 일례로 유럽 난민 사태 때는 요르단인의 아내가 되면 그 인척들까지 요르단 국적을 주기에, 몸만 챙겨 피난온 난민들이 요르단 국적 취득을 위해 일부다처의 형태로라도 결혼을 희망한 일이 있다. 현지인에게 일부다처제를 하자면 여러 사항들을 깐깐하게 점검해야 하지만, 돈도 시간도 법적 지위도 부족한 난민들은 지참금이고 뭐고 딸아이를 바치려고 든 것.

프랑스 만화 겸 사진집 모음인 '평화의 사진가'에서도 이런 게 나온다. 아프가니스탄에 간 프랑스 여성이 험한 산가에 사는 어느 여인을 만나 친하게 지냈는데 3년 뒤에 다시 가보니 그녀에게 낯선 젊은 여자가 곁에 있기에 "친척인가요?"라고 물어보니 "내 남편의 둘째 아내에요."라고 웃으며 말하는 거 아닌가?

놀란 프랑스 여성이 "그리도 금실좋던 부부였는데 왜 둘째 아내를 맞이했나요??"라고 물었는데 그 첫째 아내가 말하길, "내가 둘째 아내를 빨리 맞이하라고 남편에게 말했죠. 그러자 남편은 뭔 헛소리야? 라며 거부했고 그래도 내가 1년 넘게 끈질기게 설득하여 남편이 백기들고 2번째 아내를 맞이했어요." 라며 웃으며 말했다고 한다(...). 다만 이 같은 경우에는 산골 마을이라 여성이 좀처럼 없고 그나마 있는 다른 여성들도 나이가 훨씬 많아서, 이 첫째 아내가 외로움을 못 견뎌서 친구 겸 식구로 받아들이고자 남편에게 1년이나 설득했던 거였다. 물론 이 남편은 그 지역에서 꽤 부자였기에 양과 말이 100 마리가 넘고 큰 농장을 가지고 있었다. 이 척박한 곳에서 가축을 몇십마리 가지는 것도 엄청난데 이 정도라면 부자였던 터라, 아내가 저렇게 새 아내를 맞이하라고 할 여유가 있었다.

모리 카오루의 신부 이야기에도 유사한 사례가 들어 있기도 하다. 다른 사람과 교류도 못 하고 하루 종일 집에서 너무너무너무(...) 외롭게 지내던 여인이 목욕탕에서 만나 친해진 여자친구의 남편이 죽고 재혼도 못 할 처지라 남편에게 부탁하여 둘째 부인으로 맞게 한 이야기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있다. 궁금한 이야기 Y에 나온 사연인데, 본처가 아이를 낳지 못하자 자신의 친구를 남편에게 소개해 첩으로 살 수 있게 했다고 한다.

앞서도 언급했지만, 두 번째 부인이 첫 번째 부인의 자녀들을 부양하는 사례도 있었다. 그런 이유로 첫 번째 부인이 두 번째 부인을 환영하기도 했다.

2012년 8월 나이지리아에선 아내가 5명인 어느 사내가 6번째 아내를 들이자[28], 아내 모두가 분노하여 다같이 칼을 들고 남편을 위협해서 묶어두고 1명씩 성관계를 가진 다음에 찔러 죽이고 달아난 사건까지 벌어졌다고 국내에서도 보도되었다. 그러나 이는 틀린 정보로 보인다. 위에 5명의 부인들에게 강간당하고 복상사한 기사가 와전된 듯 하다. 살인죄냐, 강제 성관계 중에 이뤄진 사망사고냐에 따라 처벌 수위가 엄청나게 다르다.[29]

7. 현대 사회에서의 부활 가능성[편집]

20세기 말 이후로 애정관계가 복잡해지면서 일부다처제나 일처다부제를 허용하자는 말이 있다. 간혹 지나치게 개방적이다 싶은 사람들은 다처다부제(...)를 허용하자는 말을 하기도 한다. 실제로도 두 여자가 한 남자와 결혼하기를 원하거나 반대로 두 남자가 한 여자와 결혼하기를 원하는 경우가 아주 드물지만 나오기도 한다.

개인주의가 강화되는 선진국에서는, 혼외자의 권리가 혼내자와 거의 같이 취급되게 되고 사실상 관계의 권리도 강화되는 흐름을 거치면서 점차 결혼제도의 지위가 변하고 있다. 결혼을 했을 경우 얻는어떤 배타적인 이득이 비혼이나 혼외 관계에 대한 인권적 배려를 강화하면서 전에 비해 줄어들었다.

실상 양성평등 문제만 봐도, 과거 일부다처제(사실 일처다부제도 마찬가지)가 여성을 상속 도구로 전락시키고 양성평등을 파괴했다고는 하지만, 이것은 과거의 이야기일 뿐, 현대의 일부일처제 합법화 운동의 명분에 대한 제대로 된 반박은 되지 못한다. 애초에 이런 문제는 전근대 사회에서의 약자의 권리 부재라는 측면에서 살펴봐야 한다. 일부일처제가 쭉 유지되어온 문화권에서도 상대적으로 덜하긴 해도 성 차별이 심각한 경우가 많았다. 현대에 일부다처제나 일처다부제의 필요성이 급갑했다는 논리 역시 현대 일부일처제가 보편적인 '현상'을 설명해줄 뿐, 일부다처제 역시 당사자들의 동의가 있다면 허용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한 반박은 되지 못한다.

이 때문에 미국 등 동성혼 합법화를 거친 나라에서는 마찬가지로 일부다처제 합법화 운동이 일어나고 있기도 하다. 특히 유타 주의 경우 동성혼 금지와 일부다처제 금지에 모두 위헌 판결을 내리는 위엄 넘치는 행동을 했다(...). 다만 유타주의 특수성은 좀 생각할 필요가 있는게, 유타주는 애초에 몰몬교에서 개척했다가 미국에 흡수된 주로 현재에도 몰몬교도가 가장 많은 주이다. 동성혼 허용이 나온 것도 몰몬교가 다른 기독교에 비해서는 동성애에 너그럽기 때문이고, 일부다처제는 더한 것이 애초에 몰몬교는 일부다처제를 허용했던 종교다. 미국 정부와 협상하는 과정에서 일부다처제를 포기한 것이 현재의 몰몬교다.

사실 일부다처제는 윤리적 문제를 떠나서 일부일처에 비해 너무 비효율적이라(특히 성비가 고른편인 인간에게 있어서) 합법화한다면 몇몇 능력있는 남성들의 취미성(?) 제도가 될 가능성이 크다. 일부다처제의 진짜 문제는 양성평등의 문제가 아니다. 국가적으로 허용하면 사회적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지기때문에 섣불리 허용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리고 위에서 본 것과 같이 과거에 비해 결혼 제도의 지위가 낮아지고 혼외자가 혼내자와 거의 비슷하게 취급받아지는데 굳이 당사자간 합의 하의 일부다처제를 허용할지 여부를 따져야 하냐는 반론도 있다.

폴리아모리도 참고할 것.

8. 동물들의 경우[편집]

대부분이 일부다처제이다. 일부일처제도는 그걸 유지하는 것 자체로 특이한 대상으로 보는 원앙 등 몇몇 종에 불과하다. 이유는 간단한게 유전자 경쟁을 암컷이 할 경우 암컷 중 1마리만 번식을 하게 되는데 수컷끼리 할 경우 암컷이 전부 번식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난교나 일처다부의 형태를 이루려면 암컷이 어마어마한 숫자의 새끼를 낳을 수 있어야하는데 그래서 한번에 수백만개의 알을 낳는 곤충이나 어류는 다수의 수컷의 정자를 얻는 경우가 일반적이지만 큰 동물이면 동물일수록 새끼를 낳을 수 있는 숫자가 적어져서 수컷끼리 경쟁해서 우열을 정한 후 암컷을 택한다. 포유류는 대부분이 일부다처제이며 특이하게 개과는 일부일처제가 종종 있고 설치류에서도 일부일처제가 종종있다. 인간은 새끼를 많이 낳지 못하는데도 일부일처제인데 성체가 될때까지 시간이 굉장히 오래 걸리는 동물이므로 수컷 하나의 노동력으로 새끼들을 다 키우기 어렵기 때문일 것이다.

일부다처제를 유지하는 동물도 강한 수컷이 다른 수컷의 접근을 아예 막는 경우는 그런일이 일어나지 않겠지만 같은 무리안에 다른 수컷이 있다면 거의 반드시 바람을 핀다. 바람을 펴야 자연스러운 세대교체가 일어나기 떄문이다. 바람으로 인한 세대교체를 설명하자면 늑대나 마르못의 경우 일부일처제도가 유지되지만 번식의 권리는 우두머리 늑대 암/수에게만 있다. 그러나 바람이나 불장난은 일어나기 마련이고 임신을 한 개체는 그 어미와 결전을 펼치는데 어미가 이기면 딸이 쫒겨나서 새무리를 만들러가고 딸이 이기면 어미가 쫒겨나서 죽는다. 보통은 어미의 공격에 당황한 딸이 놀라서 쫒겨나는 편인데 어미쪽이 너무 노쇠한 경우는 얄짤없다. 수컷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딸이나 아들인데 질투가 너무한거 아닌가? 하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인간들처럼(?) 동물들의 질투도 대부분 싸움으로 이어지게되는데 인간과는 다르게 패배는 곧 추방이나 죽음을 의미하기 때문에 훨씬 더 처절하게 싸운다.

'수컷이 강압적인 경우 암컷이 싫어한다'는 것은 인간의 시선을 투입해서 너무 왜곡한 이야기이고 실제로는 수컷이 강하고 사나울수록 보유하는 암컷의 무리가 더 크고 암컷의 충성도도 높다. 왜냐하면 암컷들도 충분히 이런 경쟁을 즐기기 때문이다. 수컷들끼리 싸움이 발생하는 경우 암컷들은 전투에 휘말릴 정도 범위만 슬쩍 피할 뿐 절대 그 장소를 떠나지 않고 승자가 누구인지 끝까지 확인한다.

무리생활을 하지 않는 동물의 경우 번식기가 다가오면 암컷들은 소리높여 울거나 페로몬을 넓게 뿌려 수컷들을 유인하고 그 냄새를 맡고 찾아오는 수컷들을 싸움붙이고 흥미롭게 쳐다본다. 흥미롭게 쳐다본다고 하는 것은 그 싸움이 암컷이 조장한 싸움이기 때문이다. 번식기에 소리높여 울고 페로몬을 흩뿌려놓고서도 처음 다가온 수컷과 교접하지 않고 시간을 질질 끌면서 계속 수컷을 모은다. 수컷은 빨리 교미를 확정짓고 다른 암컷에게 가고 싶어하는데 암컷은 시간을 질질 끌면서 자신의 페로몬과 목소리가 닿는 범위에서 최대한의 수컷을 끌어모아 싸움을 크게 붙인다. 싸움을 멈추게 하거나 도망가지 않는 것은 승자가 누구인지를 판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 대결이 꼭 물리적 대결이 아니라해도 패자에게는 번식권을 주지 않는다.

9. 각종 매체[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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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종의 환상이라 그런지 미디어에서도 자주 등장한다. 예를 들어 카니발 판타즘의 경우 주인공이 히로인들과 그야말로 문어발 데이트 약속을 잡았는데 이것도 일부다처제라 하면 일부다처제. 살아남기 위해 별의별 꼼수를 동원했지만 결국 실패하고 이후 발각되면서 말 그대로 작살이 났다.

빠삐용은 두 아내를 거느리고 그것도 자매덮밥을 했지만 따로 집을 지어준 게 아니라 옆에 동굴을 파고 살았다. csi 라스베가스에서도 일부다처제 부부사건을 다룰 때 한 집에서 지내고 그것도 한방에 침대 2개가 있는 예를 보여준다. <맹수와 사냥꾼>에서도 천막 하나 안에서 부인 3명을 거느리고 사는 몽골인이 등장한다.

스탠라 큐브릭의 고전영화 닥터 스트레인지러브에서는 핵전쟁 이후 인구 복원을 위해 일처다부제를 실시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자 남자 정치인들이 좋아하는 것이 블랙코미디적인 연출로 나온다. 이의 영향인지 2010년대 일본 서브컬쳐계에서는 2010년대부터 일본의 초저출산률 및 인구 감소를 핑계로 근미래에 정부에서 일부다처제나 출산의무제를 도입한다는 설정을 꽤 자주 차용하고 있다. 물론 일처다부제는 없다(...)

기동전사 건담 철혈의 오펀스에서 나제 터빈이 전함급으로 실현한다.

라이트 노벨 마탄의 왕과 바나디스에서는 최종권인 18권에서 주인공 티글브륀 왕국지스터트 왕국의 통합 왕으로 즉위한 이후, 엘레오놀라 빌타리아, 류드밀라 루리에, 소피야 오베르타스, 엘리자베타 포미나, 올가 탐, 리무아리샤, 티타, 레긴을 아내로 삼고 일부다처제를 하고 있다. 정실 왕비는 레긴. 참고로 18권 최후반에서는 에렌과의 사이에서는 아들을 낳았으며, 다른 아내들과 사이에서도 자식들을 낳은 것으로 묘사되었다.

라이트 노벨 흔해빠진 직업으로 세계최강의 주인공인 나구모 하지메는 유에와는 허구한 날 장소 안 가리고 딥키스를 여러 번 했으며, 성관계 또한 여러 번 치룬다. 이후 하렘 멤버들과 어지간해선 키스 한 번 이상은 한 사이이다. 시아에게 고백한 날 밤에는 시아와도 성관계를 치뤘다는 서술이 있다. 하렘 멤버 8명 전원을 아내로 인정하고 에프터스토리를 보면 모두와 성관계를 여러 번 치른 걸로 보인다. 일본 귀환 후 5년 정도 지나니 아예 일곱 아이의 아버지가 되었다고 한다.

[1] 이라크전쟁이 일어날 당시 미군의 여성비중은 20%에 달했는데 여군사병들의 경우 임신하는 방법으로 전장투입을 회피해서 실제 전장에 투입된 병력의 98%가 남성이었다.[2] 911테러 당시 뉴욕시에서는 빌딩이 무너져내리는 과정에서 사람들을 구하느라 343명의 소방관이 죽었는데 여성 소방관의 비중은 30%가 넘었지만 사망자 가운데 여성 소방관은 한명도 없었다.[3] 로마나 초기 이슬람제국은 15세부터 모병해서 30세를 병사의 정년으로 보았다. 15세 소년들을 단체로 징집해서 30세까지 굴리면 그 중 엄청난 수가 전사할 것이다. 전사보다 더 많은 사상자를 내는 것은 병사이다. 타지에서의 집단생활하는 것 그 자체의 문제인데 각종 풍토병의 내성은 현지인만 가지고 있어서 정복활동과 전염병은 뗄레야 뗼 수 없는 관계다.[4] 무함마드를 독살한 천하의 죽일년이라는 전승을 전하는 종파도 있다.[5] 여성 무슬림[6] 물론 비현실적인 규약으로서 지참금이라는 제도 자체가 매매혼을 근거로 하는데 돈주고 사오는 신부에게 지참금을 준다는 게 말이 안된다. 신부는 내것이고 돈은 넘겨주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이런걸 신성모독이나 하람이라고 말하는 파트와는 없다. 어린 딸을 '팔아'서 지참금으로 가계빚을 해결하는 일이 무슨 특별한 일도 아닌 당연한 일이다. 물론 이슬람 지역을 제외한 다른 지역에서도 그런 습관이 있었지만 인도공화국이건 중국이건 매매혼 풍습을 법률로 엄격히 금지해버렸기 때문에 현재는 이슬람 지역과 아프리카에만 남아있다.[7] 참고로 그에겐 사별한 부인과 예전에 이혼한 전(前) 부인이 있다. 그래서 현재의 아내의 숫자보다 결혼 횟수가 더 많다.[8] 군대로 밀어붙여서 협박하듯이 없애려다가 부족이 저항하면 양 측 피해가 클테니 아내들에게 자발적으로 뜻을 밝히자고 합의를 봤다. 르켕 왕은 400명으로 줄이겠다고 한발 물러났으나 결국 700명이 넘은 아내들이 이혼하고 싶다고 뜻을 밝혔고 결국 자이르군이 나서서 억지로 그녀들을 이혼시켰다. 르켕 왕은 분개했으나 그래도 10% 정도 남았다고 하는데 그것도 엄청나다. 참고로 60년대 당시 그의 나이는 70대였으며 이 쿠바 왕조라고 불리던 바쿠바족 지역 인구가 5만명이었는데 여기서 2천여명이 아들딸이었으니...[9] 그것도 당시 나이가 84살이었고, 마지막에 맞이한 아내는 19살이었다.[10] 물론 이분도 아들처럼 한 사람만 바라보고 살겠다는 얘기를 했다.[스포일러] 중요한 살인 동기다.[12] 주인공 일행이 유타 주를 지나가고 있을 때 부부싸움 끝에 도망쳐 온 남편이 헐레벌떡 기차로 도망쳤고, 파스파르투가 '대체 아내가 몇 명이길래 그렇게 도망칠까' 싶어 물어보자 그 남자는 "고작 한 명이지만, 한 명도 지긋지긋했다"고 답한다.[13] 왕은 1처에 9첩, 대부(=벼슬아치 정도)는 1처 2첩, 선비는 1처 1첩. 즉 왕은 10명, 대부는 3명, 선비는 2명의 여자를 둘 수 있다는거[14] 근데 이원수는 이런 상황에서 아내 신사임당에게 갑이 되기는 커녕, 아내가 눈을 감는 날까지 내내 을의 위치에 있어야만 했다(...). 그 이유가 이원수의 장인이자, 신사임당의 친정아버지인 신명화강릉시 지역의 명문가 출신의 대부호였고, 그런 그가 차녀 신사임당을 너무나도 사랑한 탓에 딸이 사위에게 눌려 지내는 꼴은 못 보겠다면서 일부러 한미한 집안 출신의 무능력자 노총각과 결혼시켰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원수는 아내 신사임당이 죽은 뒤에나 첩을 들일 수 있었고, 아내의 생전에는 셔터맨 생활이나 해야했다. 어찌나 그가 신사임당에게 눌려 살았는지, 아들인 이율곡은 아버지가 첩을 들였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출가하여 승려가 되겠다면서 아버지를 쌩깐 일도 있었다(...). 고개 숙인 남자[15] 대표적인 경우가 조선 태조 이성계다. 고려 말 그는 중앙정계에 진출한 후 함경도의 본가에 아내 신의왕후 한씨가 살아있는 상태에서 개성 유력자의 딸인 신덕왕후 강씨와 결혼해서 살았다.[16] 육군준장 이종국이 첩과 짜고 전처의 딸을 굶겨죽인 하늘집유아학대사건 이후 첩을 둔 군간부에 대해 대대적인 숙청이 이뤄졌다.[17] 이것도 황당한 경위로 들통나게 되는데, 남한 쪽 부인과 북한 쪽 부인의 팬티 취향이 달랐던지라(...) 두 집을 오갈 때마다 필연적으로 팬티를 갈아입어야 했다. 그러다가 하루는 급한 김에 골목길에서 팬티를 갈아입게 되었는데 마침 순찰중이던 경찰에게 걸려서 풍기문란죄로 잡혀가는 바람에 두 집 살림이 들통났던 것(...). 사족으로 이 에피소드에서 경찰 역으로 특별출연한 사람이 80년대 후반에 활동한 듀오 그룹 '도시 아이들'의 맴버였고 솔로로 독립해 가요 선녀와 나무꾼으로 잘 알려진 가수 김창남이었다.[18] 1990년 6월 25일이었는데, 심지어 일요일이었다.(...)[19] 이렇다보니 작업 시간이 거의 한밤중까지 계속되는 바람에, 인부들이 대체 이게 뭐하자는 거냐며 볼멘소리를 했을 정도였다(...).[20] 예를 들자면, 남편이 장거리 여행을 떠나기 전에 의무적으로 최고령 아내의 방에서 묵게 하는 관습 등이 있다. 남편 입장에선 좀 아쉬울 일이지만(…) 이렇게 해서라도 아내들 간의 분쟁과 알력을 방지하려는 것.[21] 물론 일부다처제를 최대한 막기 위해서 만든 계율임은 말할 필요도 없다. 과거의 사람들조차도 일부다처제의 문제점을 알고 있었다는 증거다.[22] 정확하게 말하면 "너희들은 결코 많은 아내들을 만족시킬 수 없을 것이다." 이다. 이므란(가족)장을 읽어보자. 한마디로 일부다처제 하지 말라는 소리다.[23] 아내의 집안이 권력자거나 부유층이라면 더더욱 어려워진다.[24] 그나마 이슬람권 내에서는 그럭저럭 여권이 존중되는 나라다. 사실 세속의 전통이 오래 된 상황에서 가난한 이슬람 국가일 경우 여성들의 인권을 어느 정도는 인정하는 경향이 있다. 애시당초 열악한 여성 인권 자체가 남편이 갑인 동네여야 가능한 거니까. 중동에서 여권이 상대적으로 높은 나라들은 대체로 석유가 안 나온다. 여성도 경제활동에 참여하는 것은 이 때문. 사우디나 카타르 등에서는 여성은 경제 활동에 참여할 기회도, 그럴 이유도 없다.[25] 약 106:100 정도 된다. 물론 남자들은 많이 태어나는 만큼 또 쉽게 죽어나가는 편이다. 하지만 2007년도 경에 나온 외국의 조사 프로그램에 따르면, 전세계적으로 남자가 여자보다 4천만명 정도 더 많다고 한다.[26] 경찰에게 가는 것보단 이게 훨씬 싸게 먹히기 때문. 물론 종업원을 확실하게 매장시킬 수 있지만 대신 경찰이 올 것이고, 숙박시설이 영업금지를 한동안 당할 수도 있다. 당연히 피해가 훨씬 크니까 하루 식비 안 받고, 종업원도 적당히 두들겨 준 뒤 그냥 용서하는 게 싸게 먹히는 셈. 사실 종업원 입장에서도 호적에 성범죄자로 빨간줄 긋고 신상 공개되는 것보다 그냥 처맞고 넘어가는 것이 낫다. 종종 해외여행 블로그나 책자에서도 이런 숙박시설에서 벌어진 사건사고로 경찰에게 신고하면 며칠에서 길면 1달까지 영업정지당한 경우가 간혹 나오는데, 사장에게는 엄청난 피해가 되는 셈이다.[27] 해외여행 기행책자라든지 블로그에서 꽤 종종 보인다. 외국 여성에 대한 성추행을 벌이다가 걸렸는데 경찰이 정말 죽여라 구타한다. 피해자인 외국 여성이나 지인들이 처음에는 잘한다 하다가 나중에는 정말로 때려죽이는 분위기에 기겁하고 됐다고 말리는 일까지 있다. 한 한국인 여행자가 인도에서 목격했는데 피투성이로 기절한 가해자를 아예 죽일려는지 계속 구타하여 피해자인 백인여성이나 그 친구들이 경찰들을 잡고 필사적으로 이제 됐다며 그만하라고 말렸다고 한다....이 여행자는 누가 봐도 저 성추행범, 몇달 병원 가던지 후유증이 장난아니라고 후기로 썼다...[28] 무슬림인지 그리스도교 신자인지는 불명이지만 아내 수를 보면 둘 다 아닐 가능성이 크다.[29] 이슬람 샤리아에서도 고의살인이 아니라 사고 등으로 인한 사망, 즉 폭행치사 같은 경우는 사형에 처하지 않음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대신 폭행치사로 구속된 뒤 피해자가 용서하거나 법원이 판결한 바에 따라 배상금을 지급할 때까지 갇혀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