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국유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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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本国有鉄道にほんこくゆうてつどう (国鉄こくてつ) / Japanese National Railway (JNR)

일본국유철도
日本国有鉄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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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립 년도

1949년

해체 년도

1987년

영업 지역

일본 전역

보유 선로

19,639km


1. 개요2. 역사3. 국철 분할 민영화에 대한 반론
3.1. 버블 경제로 인하여3.2. 국철 분할민영화는 국철 노조의 탄압을 위함이였다3.3. 정치계의 병크이다
4. 노선5. 관련 영상6. 관련 항목

1. 개요[편집]

일본의 국유 철도를 운영하던 국토교통성(당시 운수성) 산하 공기업으로, 현재 JR그룹의 전신이다. 한국으로 치면 현 코레일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니까 지금의 JR은 코레일이 민영화한 형태라고 비유할 수 있다.

본사는 도쿄도 치요다구 마루노우치에 위치했으며, JR 그룹이 발족할때 JR 히가시니혼이 한동안 이곳에 본사를 두기도 했다.

JR 설립 직전 신칸센과 재래선을 모두 합쳐 국철의 보유 선로의 연장은 19,639km에 달했으며, 그와 동시에 총 연장 132km의 선박 노선[1]과 총 연장 11,739 km에 달하는 버스 사업도 가지고 있었다. 여러모로 흠좀무.

2. 역사[편집]

인계서
             
일본국유철도는, 쇼와 24년 일본국유철도법의 시행에 의해, 국책사업으로써 철도사업을 인계하여, 이후 나라의 기간적 수송기관으로써 우리 나라의 수송의 근간을 맡아, 국가의 발전, 국민생활의 향상에 큰 공헌을 해 왔다. 그러나, 최근 우리 나라의 수송구조의 변화, 경제정세의 진전에 의해, 철도수송은 그 독점성을 상실하고, 경영현황의 악화 일변도를 걸어, 파국적 상황에 빠져 있다.
(중략)
일본국유철도는, 민영분할에 따른 철도사업의 재생이야말로, 철도를 미래지향적으로 유지, 발전시키는 유일의 방도라고 확신하여, 국가와 한 마음으로, 또한 임직원이 한마음 한 뜻으로 뭉쳐, 역사적 대개혁에 임해, 마침내 이 어려운 사업을 완수하는 순간을 맞이했다.
(중략)

쇼와 62년 3월 31일 24시 0분 현재
국철 전 노선에 사고 발생 보고 없음. 일본국유철도는, 모든 열차 운행을 무사고로 확실히 각사에 인계하고, 여기에서 철도 사업의 역할을 마친다.

쇼와 62년 3월 31일
일본국유철도
(후략)

- 1987년 3월 31일, 국철이 JR 각 사에 업무를 이관하면서 당시 국철 총재였던 스기우라 타카야 외 4인[2] 명의로 쓴 인계서 중 일부 내용에서.
- 문맥에 맞게끔 일부 의역한 부분이 있음.
인계서 전문(일어주의)


1949년에 운수성의 철도 총국을 공기업화하면서 태어났다. 태평양 전쟁이 끝난 이후 일본에서 전쟁 기간 동안 파괴된 철도의 복구 작업이 계속되었으나 극심한 인플레이션과 복구 작업에 투입한 인력들에게 지급할 막대한 인건비로 인해 철도 총국의 재정은 극도로 악화되었다. 그리고 GHQ에서 철도의 공기업화를 요구함에 따라 1949년 4월 1일에 '일본국유철도법'이 의회를 통과함에 따라 설립되었다.

1964년에는 도카이도 신칸센을 개통하는 등 일본의 승객과 화물을 쓸어담으며 리즈 시절을 누렸다. 하지만 동시에 점점 적자가 늘어나기 시작, 1970년대에 접어들어 정치권에서 신선 건설 요구가 잇따르고, 도로·항공 등 대체 교통 인프라의 발전과 오일 쇼크에 따라 막대한 적자를 떠안게 된다. 그리고 노동조합의 파업도 잦아 국민들의 신뢰도도 바닥을 쳤다.

국철은 물론 자체적으로 이 적자를 구제할 방법을 찾고 있었는데, 그 중 하나가 통신 사업이다. NTT의 민영화와 함께 통신산업의 자유화가 이루어지자, 국철 인프라를 활용해 광섬유망을 부설해서 통신 산업에 진출하고자 한 것. 그래서 미쓰이, 스미모토, 미쓰비시와 손을 잡고 계열사로 일본텔레콤주식회사를 설립, 신칸센 노선을 따라 광섬유망을 부설하여 통신 인프라를 구축해 통신 사업에 진출할 준비...를 하다가 후술할 민영화 크리(...)를 맞는다.[3]

국철은 특정지방교통선[4]을 지정해서 적자 노선을 폐선하거나 제3섹터로 넘기고, 국철재건법을 제정하여 신규 노선의 건설을 정지시키고, 10만명을 정리해고하는 등 정상화를 위한 노력을 했으나 결국 1987년 4월 1일에 경영 합리화를 위해 JR 7개사와 철도연구소, 철도정보시스템으로 분할되었으며, 특정지방교통선 중 30개 노선을 사철이나 제3섹터로 넘겼다.

1987년 채무 37.1조엔 중 동일본회사(4.2조엔),도카이회사(0.5조엔), 서일본회사(1.1조엔), 화물회사(0.1조엔), 나머지 섬철도회사는 채무승계를 하지 않았다.[5]
저들이 합친 채무는 6.9조엔... 즉 애초에 이들 회사는 저 빚을 전부 떠안지 않았다.

막대한 채무는 일단 '일본국유철도 청산사업단'에서 떠안았으나 국철 소유의 토지 매각 등을 통해 채무의 6할 이상을 상환하려던 계획은 버블 경제가 붕괴되어 차질을 빚게 되었고, JR 혼슈 3개사에 추가 부채 부담을 시켰음에도 30조엔 장기채무 상환을 못한채(오히려 이자 지급 등으로 증가함)결국 1998년에 사업단은 해체되고 채무의 5할은 정부가 탕감했다.(즉 나라빚이라는 거다.) 나머지 채무는 철도 건설·운수 시설 정비 지원기구 내의 국철 청산 사업본부가 담당하였다.(결론은 전부 나라빚) 현재도 매년 원금 4,000억 이자 6,600억 합계 1조엔이상을 세금으로 지불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까지 국철에 대한 민영화는 일본 내외에서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JR 7사의 재정 상태가 호전되었기 때문이다. 1985년 당시 국철은 1조엔 이상의 적자를 내고 있었는데, 이나마 일본 정부가 6,000억엔의 보조금을 투입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이러한 국철 말기의 난국은 JR 7사의 성립 이후 2005년 5,000억엔 이상의 흑자로 돌아 섰다. 그러나 이 수치는 어디까지나 표면적인 것이고, 실제로는 혼슈의 3개 회사가 벌어들이는 흑자의 비중이 매우 높다. 그 외의 회사들은 돈을 까먹거나 편법으로 흑자를 내기에 바쁜 상황. 여전히 시코쿠는 엄청난 양의 돈을 까먹고 있으며, 큐슈는 아슬아슬하게 본전치기로 지내다가 이제서야 본격적인 완전민영화 행보를 걷기 시작했고, 홋카이도는 자기네 나와바리 지키면서 기금 굴리고 근근히 먹고 살다가 한 번씩 개념을 상실한 사고를 일으키거나 수익성 저조로 인한 폐선드립을 치기 바쁘며, JR 화물은 점점 쇠퇴하는 일본의 화물철송 비중에 비추어 봤을 때 아예 답이 보이지 않는다.(...)

또한 운임 인상을 반복했던 국철과 달리 JR 성립 이후에는 1997년을 제외하고 단 한 번도 운임 인상이 없었다는 점[6], JR 성립 이후 철도 서비스 전반의 질적 향상이 있었다는 점도 국철의 민영화가 성공하였다는 평가를 뒷받침하고 있다.

여담으로, 오랫동안 관습에 지나지 않았던[7] 지적확인 환호응답을 처음 제도화시킨 곳이 국철이었다.

3. 국철 분할 민영화에 대한 반론[편집]

한편, 일부 철도 동호인 및 국철 노조의 조합원 등, 각계 각층에서 국철 분할민영화는 너무나 성급하게 시행되었으며, 나아가서는 실패한 민영화 라고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에대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3.1. 버블 경제로 인하여[편집]

1980년대 초부터 일본의 경제는 소위 버블 경제라고 하여 모든것이 정신줄을 놓고 성장하는 듯 보였다. 하지만 이는 거품으로 인한 포풍성장일 뿐이며 거품이 꺼지면 헬게이트가 열릴 것 이라고 예측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당시 일본 정부또한 이것이 거품뿐인 성장임을 알지 못하였으며 "어차피 돈이 미칠듯하게 들어오니까 민간자본을 유치하면 돈을 더 잘벌겠지?" 하는 심산으로 덴덴공사와 일본국유철도의 민영화 계획을 1980년대 초반에 수립하였다. (당시에는 5년안에 민영화 한다고 하였으나, 정작 1985년에 민영화 된것은 덴덴공사 뿐이었다.) 하지만, 국철의 분할민영화가 이루어진 1987년 이후, 즉 1980년대 말부터는 버블이 서서히 꺼지더니 결국 1989년부터 일본은 소위 말하는 '잃어버린 10년'을 넘은 장기적인 경기 침체에 빠져들었으며 이러한 경기 침체로 인해 JR동일본, 서일본, 도카이, 큐슈를 제외한 시코쿠, 홋카이도, 화물은 아직까지도 국가의 보조금으로 연명하고 있으며, 최악의 경우 국철 시대에 그럭저럭 열차가 굴러다님으로서 최소한의 수요가 있었던 노선들이 '수익 악화'라는 이유로 하나 둘 폐선되는 등 국철 시대보다 일본의 철도망이 위축되기도 하였다.[8] 또한 국철이 "언젠가는 여기에 철도를 깔을꺼임! 고로 내땅임!"이러면서 사들인 토지 및 철도 계획은 분할민영화와 동시에 없던것이 되면서 '일본국유철도 청산사업단'에서 떠안아 처분하게 되었다. 그로인해 장래에 철도가 들어섬으로써 발생하는 신규 수요 있기는 한가요?가 그대로 공중에 날아가게 되었으며, 이러한 수요로 인한 토지 수익을 노린 일부 투자자들 또한 손해를 보게 되는 등 여러가지의 이유로 국철의 민영화 이후 본격적으로 경제사정이 악화되었다는 의견이 있다.

3.2. 국철 분할민영화는 국철 노조의 탄압을 위함이였다[편집]

당시 국철 노조가 파업 및 노동운동을 많이 자행하였으며, 이로인해 민심은 국철 노조 및 국철에 대해 등을 돌리게 되었으며[9] 이는 정부 및 국철 지도층에서 많은 골치거리가 되었다. 하지만, 국철 노조를 자기 마음대로 해체할 경우 이는 국철 노조에게만 좋은일을 시켜줄 뿐, 국철 지도층 및 정부에게는 아무런 이익이 되지 않으므로, '국철'이라는 조직을 없애버림으로서 국철 노조를 내부적으로 와해시키기 위해 민영화를 진행하였다는 의견도 존재한다. 또한 분할민영화를 추진한 나카소네 야스히로도 퇴임 후 취재에서 국철노조 해체가 분할민영화의 목적이었음을 자인한 바 있어 이 주장을 뒷받침했다.[10]

또한 국철의 분할민영화 이후 JR 7개사에서는 구 국철 노조 조합원의 재취업을 불허하였으며, 노조 소속이더라도 민영화측 의견에 말 잘듣는 동력차 노조 조합원이라던지 민영화 찬성측으로 의견을 전향한 일부 국철노조 조합원만 재취업 시키며, 2016년 현재에도 국철노조 조합원들에게 불이익을 주는 등 민영화 이후에도 국철 노조의 탄압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국철 노조 자체는 현재도 존속하고 있다) JR은 요금인상을 안 하는 대신 이렇게 비용절감을 할 수 있었다.

실제로 국철 분할민영화 이후 일본의 경제가 불경기로 접어들면서 철도 뿐만 아니라 산업 전반에 대한 노동운동 자체가 위축되었다.

3.3. 정치계의 병크이다[편집]

철도원-철도성으로 이어지는 중앙 행정기관 당시에는 철도의 건설 및 유지보수에 대해 정치권의 압박이 덜한 편이였고, 이로인해 효율적인 경영이 가능했으나, 공기업으로 체제를 전환한 이후, 대주주인 정부 눈치를 보게 되었으며 이에따라 "정말 답이 안나올 정도로 수요가 나오지 않습니다만" 수준의 지역에도 정치권의 압박으로 인해 울며 겨자먹기로 철도를 운영하게 되었다. 또한 건설 부채에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되는 세이칸 터널, 세토대교, 도호쿠 신칸센 또한 정치권에서 압박을 넣어 억지로 건설하게 되었다. 하지만 국철의 재정이 막장으로 치닫으려고 할 때 '적자 83선'이라던지 '특정지방교통선'과 같이 수요가 안나오는 노선에 대해 대대적인 숙청 관리작업을 위해 살생부 리스트를 만들고 국철 버스로의 전환, 폐선 등 경영 개선을 위해 노력하려 할 때는 정치계에서 방해를 놓아 (대표적으로 일본 열도 개조론을 앞세운 다나카 가쿠에이 내각) 국철 재정상황의 개선을 위한 노력은 모두 실패로 돌아갔으며, 이는 곧 국철의 재정상황을 더욱더 악화시켰으며 말기암 환자처럼 국가 보조금이 없이 버틸 수 없는 국철을 정치계에서는 손을 놔버리고 신경쓰지 않기 위하여 토사구팽 해버렸다는 의견이다.


4. 노선[편집]

JR 그룹의 각 항목을 참조. 다만 민영화 이후 잘려나간 노선이 많아 민영화 직후 노선과는 다소 다르다.


참고로 JR 화물은 자체 노선이 없다고 해도 무방하다. 있어봤자 아주 짧은 인입선 수준.

5. 관련 영상[편집]


1957년(!) 당시 전동차에 관한 영상. 참고로 영상 맨 앞의 사진은 JR 히가시니혼이 1997년까지 사용한 옛 본사(=일본국유철도 본사) 빌딩이다.

일본국유철도가 JR로 바뀌는 순간의 영상(1987년 3월 31일~4월 1일). 제법 찡하다. 영상의 시계가 자정을 가리키는, 그러니까 1987년 4월 1일 자정부터 현재의 JR로 이어지게 된다.

교토 우메코지 기관구의 증기기관차들이 야마모토 나오즈미(山本直純)[11]의 지휘로 낸 경적 소리를 멜로디 삼아 은퇴한 직원과 현직들이 함께 스코틀랜드의 민요 Auld lang syne의 일본어판 반딧불의 빛[12]을 노래한다.

해외라던가 일부에서는 민영화 하는 것 가지고 왜 이리 요란이냐는 비판도 있었는데 이는 일본에서 철도가 차지하는 비중을 보면 답이 나온다. 일단 일본은 철도교통이 상당히 발달해있으며 세계적으로도 유명하고 일본인들에게 철도교통이 다가오는 의미가 상당히 크다. 그러니까 일본인들에게 철도는 하나의 유사 문화와도 같은 개념인 것이다. 멀리 갈 것 없이 한국에도 일본 철도를 좋아하고 일본 철도에 대한 정보를 모으고 박식한 철도 동호인들이 많을 정도면 일본에서 철도가 얼마나 중요한 요소인지 알 수 있다.

1987년 3월 31일 후지 TV에서 방영한 일본 국철 마지막 날 특집 프로그램. 4편까지 있다.

6. 관련 항목[편집]


[1] 국철 민영화 당시 운영하던 항로는 우노역타카마츠역 사이의 우코 연락선 18km, 아오모리역하코다테역사이의 세이칸 연락선 113km, 미야지마구치역미야지마역 사이의 미야지마 연락선 1km, 총 세 노선이었다. 1982년 6월까지는 니가타역요산선 호리에역 사이 니호리 연락선 70km도 운영했다. 참고로 전부 운임 계산을 위한 영업거리이고, 실제 거리와는 차이가 크다.[2] 이름을 올린 나머지 4인은, 당시 부총재였던 하시모토 마사시, 기사장 오카타 히로시, 총재실장 이데 마사타카, 총재실 문서과장 혼다 유이치로.[3] 일본텔레콤은 후에 소프트뱅크에 인수된다. 후에 소프트뱅크텔레콤으로 이름이 바뀐 뒤 소프트뱅크BB, Y모바일과 함께 소프트뱅크모바일에 흡수합병된다.[4] 쉽게 표현하자면 장사 드럽게 안 되는 로컬선. 특정지방교통선의 조건은 1977년~1979년의 3년간 평균 수송밀도가 4천명/1일 미만인 노선(다만 피크타임에 시간당 1천명 이상 이용, 대체수송도로가 없거나 적설로 1년에 이용불가능한 날짜가 10일 초과할 경우 등 일부 예외조건이 있었다)[5] JR도카이가 신칸센중 가장 수익성이 좋은 도카이도 신칸센 전 구간을 승계받는 대신 5조 956억엔의 국철 채무를 떠안았다는 이갸기는 낭설이 아니라 사실이다. 일본경제신문의 이 기사에 5조 956억엔이라고 확실히 쓰여져있다.[6] 하지만 90년대 이후 버블경제가 무너지면서 일본 물가상승률이나 이자가 거의 바닥급이었다는 건 감안해야 한다.[7] 코레일에 따르면 일제강점기 때에도 환호응답은 존재했다고 한다.[8] 특히 JR 홋카이도가 이 문제에서 가장 심각하다.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JR 홋카이도/경영실태에 잘 나와 있다.[9] 이게 단적으로 드러난게 아게오 사건이다.[10] 국철노조는 분할민영화 반대 운동한답시고 아사쿠사바시역불 질렀다가 제대로 역풍 맞아 그때부터 사실상 해체 수순을 밟았다.[11] 1932~2002. 1970~90년대에 일본에서 대중적인 인기를 얻은 지휘자 겸 작곡가로, 특히 TBS 테레비의 클래식 방송 음악회 '오케스트라가 왔다(オーケストラがやってきた)'를 약 10년 동안 맡은 것으로 유명하다.[12] 蛍の光 ( ほたるのひかり ) 호타루노 히카리, 매년 연말에 열리는 NHK 홍백가합전에서도 마지막에 반딧불의 빛을 부르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