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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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일본만화. 미국 만화와 함께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두 개의 만화 시장 중 하나이며, 그만큼 세계적인 영향력도 거대한 편.[1] 일본의 만화 시장은 세계에서 가장 거대하며, 각종 통계를 보면 미국보다도 2~3배쯤 큰 시장이라고 나온다. 동시에 수많은 오타쿠를 양성했으며 오타쿠라는 단어의 원래 의미가 만들어진 분야. 보통 다른 수식어 없이 오타쿠라고 하면 일본계 만화, 애니메이션의 열성 팬을 의미하는 편이다. 나무 위키의 전신인 리그베다 위키 역시 일본 만화와 함께 일본 애니메이션을 다루는 것으로 시작했다.

보통 한국을 위시한 전세계에서 눈깔괴물 모에체라고 불리는 것으로 유명한 그림체를 사용하는 만화이며 동물이나 다른 사물들의 크기가 생각보다 훨씬 크게 묘사되는 경향이 특징. 한국 만화, 중국 만화를 포함한 동아시아의 만화는 기본적으로 일본 만화의 영향권에 있다.

일본은 기본 글씨를 세로로 쓰기 때문에 만화에 세로 말풍선이 많고, 글씨가 세로로 나온다. 그리고 우종서(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줄을 바꿔가며 씀)를 쓰기 때문에 만화를 보는 방향도 영미권이나 유럽, 한국 만화와는 달리 오른쪽에서 왼쪽이다. 때문에 2000년대 이전 한국에서 일본만화를 수입할 때 페이지를 통째로 좌우반전해서 수입하기도 했는데 이 때문에 등장인물 대부분이 왼손잡이가 되기도 했다(...)이런 경우는...

서양에서는 일본 애니메이션을 아니메라고 부르듯이 일본 만화를 '망가'라고 부른다. 또 일본에서 만든 게 아니더라도 일본 만화 풍으로 그려진 만화 역시 망가로 지칭하곤 한다. 아예 만화의 장르 중 하나처럼 치고 있으며 한국 만화는 Manhwa라고 따로 표기하는 중. 마찬가지로 중국 만화는 manhua라고 칭한다. 베트남어 발음은 mạn họa지만 이런 단어를 쓰지는 않고 truyện tranh(傳幀)이라고 한다. 한국에서는 망가가 성인 만화를 뜻하는 단어로 쓰인다. 그 덕분에 포털 사이트에서 '망가'를 검색하면 성인인증을 요구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 한국에서 야한 만화가 망가로 굳어진 이유는 20세기말 한국 인터넷에 상업지/동인지가 보급되는 루트가 북미나 대만 공유사이트로 우회해서 들어왔는데 이 페이지들이 이를 Manga라고 써뒀고 이를 한국에서 그대로 사용했기 때문일 것으로 추정된다.어찌보면 언어의 역사성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인터넷이 보급되기 이전, 예를 들어 1980년대의 이문열의 소설에서 '그 양반 완전 망가 다 됐네'하는 식의 표현이 나온다. 순화되지 않은 일어
일본에서 한국의 만화는 マンファ(만화)라고 칭하는데, 한국 내의 독자적으로 형성된 만화 문화나 내지는 한국 만화 자체를 칭하는 대명사로도 사용된다. '한국 만화' 라는 느낌. 중국의 만화(만후아) 같은 경우 한국의 만화와 구별하기 위해 マンホア(망호아)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러나 만화같은 분야에 가장 많이 보편화되고 발달된 국가가 일본인 특성상 이런 '만화', '망호아'같은 표기는 필자가 제3세계 만화에 대해 기본적인 이해가 있는 경우에 한해 쓰이고, 그게 아니라면 보통 아시아권 만화는 모조리 Manga라는 표기 하나로 퉁치는 것이 현실이다. 한국 만화라표현중에 하나로 '망가'가 남아있었고, 게다가 만화를 비하하는 뉘앙스가 있었다. 한국에 이미 '만화'라는 단어가 있음에도 '망가'가 야한 만화를 가리키게 된 것에는 이러한 맥락도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는 걸 나타내고 싶을 땐 Korean Manga라는 식으로 말한다.

2. 역사[편집]

19세기 중반 이후부터 현재와 비슷한 형태의 만화 잡지가 일본에서 발간되기 시작했다. 이후 키타자와 라쿠텐이 1900년대 초부터 20여년간 풍자 만화를 신문사, 잡지사에 연재했는데, 미국 스트립 코믹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 1928년에 키타자와가 연재한 《톤다 하네코》는 소녀를 주역 캐릭터로 출연시켜 일본 순정만화의 시조로 평가받는다.

오카모토 잇페이는 1915년 최초의 일본 만화가 단체인 도쿄 만화회를 설립했고, 1921년 도쿄 아사히 신문에 《사람의 일생》을 연재하여 일본 스토리 만화의 원형격인 작품을 만들어냈다. 이후 1932년에 결성된 신만화파집단의 만화가들이 주도로 만화 그리기에 을 도입하고 서구적 유머에서 탈피한 만화들을 그렸으며, 2차 세계 대전 시기 노라쿠로 등등의 전시 선전격 만화들이 연재됐던 흑역사도 있다.

전후 미군정 기간에는 《황금 박쥐》 같은 그림 연극이 인기를 끌어 이것을 바탕으로 아카혼이 생겨나 과자집이나 그림 가게에서 판매되었다. 쇼가쿠칸 계열의 슈에이샤에서 월간지가 발간되어 만화가 연재되기 시작했으나 가격이 비쌌으므로 이를 해소하기 위한 대여점이 생겨나 대본소 만화가 탄생하였다.[2] 1950년대 후기부턴 만화 잡지 발간이 시작되어, 점유율의 감소로 60년대 이후 대본 만화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3] 같은 시기 PTA나 시민단체들에 의한 반대 시위와 영향력으로 인해 많은 만화들이 비난당하거나 유해도서로 지정됐던 경력이 있다. 이에 데즈카 오사무가 정면으로 PTA와 맞붙어 몇번의 대토론, 공청회를 거친 끝에 승리를 거둬냈고, 1950~60년대 일본의 각 지자체가 '청소년육성보호조례'를 제정한 뒤 1963년부터 출판사 출판윤리협의회가 자율심의를 맡는 방식의 자율규제가 성립된다.

그리고 1950년대 중-후반을 전후해서 도쿄 도시마 구의 토키와 장에 집결한 만화가 동인 집단의 만화들과 나가이 고의 초창기 만화들은 일본 만화의 발전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1963년 《철완 아톰》의 애니메이션화 이후로 tv 애니메이션의 코믹스판들이 속속 연재됐으며, 이듬해 일본 최초의 청년만화 잡지인 가로가 출간되어 만화는 어린이만 보는 것이란 고정관념 타파와 동시에 전공투에 참여한 대학생들한테도 많은 인기를 얻었다. 여기에 충격을 받은 데즈카 오사무는 com 잡지 창간에 참여하기도 했고, 1968년 쓰게 요시하루가 발표한 '나사식'은 이후 만화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같은해 소년 점프가 슈에이샤에서 창간되어 독자 앙케이트 방식으로 신인 만화가들을 고용해 인지도를 넓혔으며, 당시 연재한 《파렴치 학원》, 《맨발의 겐》 등은 초창기의 대표작들로 자리매김했다.

1973년 1차 오일 쇼크의 영향으로 일본에 불어닥친 출판업계 불황에도 만화 잡지, 단행본 실적이 흑자를 기록했을 만큼 만화는 일본인에게 대중오락 문화 중 하나로 자리잡혀갔다. 이후 70년대 후반엔 여러 청년만화 잡지들이 창간하는등 뉴웨이브 운동이 활발했으며, 중심 인물로 오토모 가쓰히로, 아즈마 히데오 등이 있다. 1990년대 중반 일본 만화의 매출 실적은 최절정을 기록하였으나, 이후 인터넷과 휴대폰의 보급으로 서서히 감소하게 되었으며[4] 절판된 만화가 복각되거나 도서관에 소장되는 사례가 늘어났다. 2000년대 들어선 웹코믹라이트 노벨과 연계하여 새 활로를 개척하는 중이며, 전세계로 일본 만화가 정식 출간되는 국가가 더욱 늘어나기 시작했지만.

2000년대 후반부터 2010년대 초반까지는 해외 인기에서 하락세를 탔다. 나루토 이후 해외의 인기를 견인할 대표작이 없다시피하며, 그나마 있던 나루토도 완결해버린 상황. 그리고 히어로 무비의 대흥행으로 마블, DC가 일본 만화에 대해 느끼던 위기감은 사라지다시피 했다. 당시 아사히 신문에서는 이미 2011년에 식어버린 만화붐에 대한 특집 기사를 작성했을 정도다. 링크 하지만 2010년대 중반에는 진격의 거인, 원펀맨을 비롯하여 양덕들이 좋아하는 만화가 나오기 시작하면서 다시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

다만 각 작품들의 인기들과는 별개로 잡지사의 판매부수는 날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5] 다만 어느 시장들이나 다 그렇듯이 만화 시장도 시기에 따라서 부침이 있어서 시장이 확장되는 때가 있고, 침체되는 때가 있다. 아직 일본 만화는 기본적으로 다른 나라에는 없는 일본만의 만화잡지 연재 시스템과 풍부한 인력의 공급에 의해 지탱되고 있다.[6] 또한 저렴한 노동력이나 국가적인 장려책에 의미가 없는 분야라서[7] 일본 만화 시장이 작아질 수는 있어도 주도권까지 빼앗기고, 생산자에서 소비자로 전락하는 일은 적어도 가까운 장래에는 일어나기 쉽지 않다. 차라리 3D홀로그램 등이 발달하여 만화라는 매체가 없어지는 날이 더 빠를지도 모른다.

3. 시스템[편집]

3.1. 잡지연재[편집]

많은 수의 일본 만화가 잡지에 연재된다. 소년 점프 같은 유명한 잡지 이외에도 일본에는 만화를 연재하는 잡지가 매우 많다. 만화 전문 잡지 이외에도 마작 잡지 등의 취미 잡지나 성인 잡지에도 만화 연재가 끼어있는 경우가 많다.

3.2. 단행본[편집]

  • 단행본 : 일반적인 단행본이다.

  • 문고판 : 문고판 사이즈의 단행본이다. 종이의 질이 일반 단행본보다 좋고 가지고 다니기 좋다.

  • 애장판 : 대형 사이즈의 단행본이다.

  • 염가 단행본 : 주로 편의점에서 판매된다. 흘러간 만화들이 재탕되거나, 여러 종류의 만화를 합본으로 묶어서 판매하는 경우가 많다. 분량에 비해서 싸지만 일반 단행본보다 보관이 불편하다.

4. 작가[편집]

5. 작품 목록[편집]

일본 만화 / 목록

일본 애니메이션 /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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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 · 라틴 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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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 · 라틴 문자

6. 장르[편집]

6.1. 근성물[편집]

1960년대가지와라 잇키 등을 시작으로 형성된 장르. 대표작으론 《거인의 별》 등이 있다.

6.2. 능력자 배틀[편집]

1970년대 초에 《바벨 2세》를 연재한 요코야마 미쓰테루가 중시조로 분류하며, 《죠죠의 기묘한 모험》, 《드래곤볼》, 《원피스》등 현재 일본 만화에서 비중이 높은 장르 중 하나.

6.3. 루프물[편집]

6.4. 소년만화[편집]

2010년대 일본 잡지 연재 만화에서 우세한 비중을 유지하고 있는 장르. 항목 참조.

6.5. 소녀만화[편집]

역사로 계산하면 1950년대 리본을 시작으로 일본 만화 장르에서 역사가 꽤나 긴 장르.

6.6. 스포츠물[편집]

1970년대에 본격적으로 제작 수가 증가하면서 현재까지 꾸준히 독자층을 유지하는 장르. 일단 2010년대에 인기를 끌고 있는 작품들론 《슬램덩크》, 《겁쟁이 페달》, 《하이큐》, 《쿠로코의 농구》 등이 존재한다.

6.7. 요리만화[편집]

1980년대 가리야 데쓰데라사와 다이스케의 《맛의 달인》과 《미스터 아짓코, 그리고 《미스터 초밥왕》를 기점으로 형성된 장르.

6.8. 연애물[편집]

1970년대 아다치 미츠루다카하시 루미코의 《나인》과 《시끌별 녀석들》를 시작으로 많은 인기를 얻어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6.9. 일상물[편집]

6.10. 청년만화[편집]

1960년대 초의 잡지 가로를 시작으로 성인 독자층에게 읽히고 있는 장르이며, 수위는 소년만화와 성인만화의 중간 정도로 계산하면 된다.

6.11. 하렘물[편집]

6.12. 학습만화[편집]

일본은 70~80년대에 수많은 학습만화를 발표한 바 있었고, 이런 경향이 80년대부터 한국으로 전파되어 여러 시리즈들을 양산시킨 데 기여하였다.

6.13. 개그만화[편집]

1962년 《오소마츠 군》을 발표한 아카츠카 후지오가 이 장르의 대선배로, 이후 《멋지다! 마사루》, 《개그만화 보기 좋은 날》 등 여러 개그만화들이 제작되는데 영향을 주었다.

6.14. 이세계 전생물[편집]

2010년부터 갑자기 뜬 장르[9], 소설가가 되자에서 장르가 나타나고 거기서 소설로 만들어지고 만화로 만들어지기까지 하였다.[10] 보통 제목에 이세계 혹은 전생 이란 단어가 붙은것은 이세계 전생물이다.

[1] 다만 그러한 영향력에 비하여 일본 내에서는 만화의 위상이 썩 높은 편은 아니며 1960년대 이전에는 만화를 어린이가 보는것이라는 인식도 강했고 이후로도 청소년층을 대상으로 하는 만화에서도(흔히 소년만화라고 한다.) 상당기간 폭력성이나 선정적인 장면들이 나오는 만화가 많이 나왔기에 세대가 교체되고 일본 이외 지역에서도 애니메이션 수출의 영향으로 일본 만화를 많이 보면서 인식이 나아진것이다. 우라사와 나오키허핑턴포스트 인터뷰에서도 알 수 있듯, 여전히 일본에선 만화가 일종의 차별적 용어가 되어 있다고 한다.[2] 실제로 대본만화 작가 중에서 일본 만화의 거물로 성장한 만화가들이 여럿 있었다. 미즈키 시게루, 시라토 산페이, 후지코 후지오[3] 한국도 1990년대에 이와 비슷한 과정을 거칠뻔 했다가(다만 대본만화가 사라진건 아니기는 했다.) IMF 외환위기와 인터넷의 보급으로 오래가지 못했고, 웹툰과 학습만화가 주도하게 되었다.[4] 그래서 모바일 만화시장이 일찍부터 큰 편이었다. 일본 웹코믹이 만화잡지의 위세에 눌러서(어느정도 인지도만 생기면 만화잡지로 연재처를 옮기기 때문에) 아마추어 작품 위주로 돌아갔던것과는 정반대.[5] 아무리 얇게 만든다고 하더라도 만화잡지 쯤 되면 덩치가 커져서 사다 집에 두거나 버릴때에도 부담이 되어 구매의욕을 저하시키는데다가 인터넷등으로 연재되는것을(웹툰처럼) 원하는것만 볼수 있다던가 E-book 등으로 볼수도 있으며 잡지 하나 둘 나올 살 돈을 모으면 단행본 한권을 살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잡지 판매부수는 상승세를 당분간 탈수는 없을 것이다.[6] 이것도 나름대로 문제점이 적지 않기 때문에 신인이나 무명 작가들은 단행본이 팔리지 않으면 생활이 곤궁해진다.[7] 차라리 애니메이션 시장이라면 싼 노동력이나 국가 정책 등이 약간이나마 효력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만화는 정말 소수의 인력이 시장을 좌지우지한다.[8] 디시의 프로 관종인 '극흑헬렌켈러' 의 글이다. 자기의 판단대로 믿고 거르도록 하자. .[9] 한국의 경우 2000년부터 양판소에서 많이 생겼다.[10] 대략 순서로 치면 소설가가 되자에서 인기가 많아져서 소설을 내놓고 거기서 만화, 애니메이션으로 나눠진다. 애니메이션이랑 만화는 내용이 다를 때가 있다. 하지만 대부분 애니메이션이 나오면 그것을 보고 소설이랑 만화의 판매량이 증가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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