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유나이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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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Incheon-United-FC.png

인천 유나이티드

Incheon United

정식명칭

인천 유나이티드 프로축구단

법인명

㈜인천유나이티드

구단형태

시민구단

소속 리그

K리그1

창단

2003년 12월 30일[1]

연고지

인천광역시

홈구장

인천축구전용구장
인천문학경기장[2]

구단주

박남춘 (인천광역시장)[3]

마스코트

파일:external/oi68.tinypic.com/bf2o7c.png

유티

대표이사

강인덕[4]

단장

김석현 (대행)

감독

욘 안데르센

셔츠 스폰서

신한은행, 인천국제공항[5]

상징색

파란색, 검은색[6]

관련 링크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270px-Emblem_of_Incheon_United.svg.png | 파일:트위터 아이콘.png | 파일:페이스북 아이콘.png |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png | 파일:유튜브 아이콘.png

메인 스폰서

유니폼 메이커

파일:IIAC_jpg01.jpg

파일:external/servicecenter.hummel.dk/hummel%20JPG.jpg

유소년 시스템

U-18 팀

인천대건고등학교

U-15 팀

인천 광성중학교

U-12 팀

인천 유나이티드 U-12

우리는 인천

1. 소개2. 엠블렘
2.1. 창단 10주년 기념 엠블렘
3. 시즌별 역사4. 역대 감독5. 역대 유니폼6. 역대 캐치프레이즈7. 영구결번8. 주요 기록9. 역대 스쿼드10. 유소년 시스템11. 마스코트12. 인천축구전용경기장13. 라이벌14. 문제점 및 사건사고15. 그 외16. 응원가17. 2018 시즌 스쿼드
17.1. 코칭스태프 명단17.2. 선수 명단
18. 역대 인천의 주요 선수
18.1. 선수들이 뽑은 10주년 기념 베스트 11들18.2. 레전드 및 주요 선수들18.3. 주요 등번호18.4. 흑역사

1. 소개[편집]

파일:external/www.incheonutd.com/11160.jpg

2015년 FA컵 준결승전에서 전남 드래곤즈를 꺾은 뒤 서포터즈와 함께 한 기념촬영. 그런데


생존왕
K리그1 소속의 프로 축구단. 연고지는 인천광역시. K리그 13번째 구단으로 대체적으로 중하위권을 오가는 시민구단이다. 최고 성적은 2005년 K리그 준우승 및 2015년 대한축구협회 FA컵 준우승이다. 2002 한일월드컵이 끝난 후의 축구 붐에 힘입어, 전국 곳곳에 지어진 월드컵경기장들의 사후 활용과 K리그 저변 확대를 위해서 대도시들을 중심으로[7] 팀 창단을 추진했고, 인천은 할렐루야 유치와 시민구단 창단을 두고 고민하다가 후자로 방침을 바꾸면서 시민구단으로의 창단이 확정되었다.

인천 유나이티드라는 이름은 인천시와 시민, 기업이 함께 구단을 출범시킨 ‘연합’의 뜻을 나타내 시민구단의 이미지와 어울려 팀의 명칭으로 선정되었다.#

열악한 재정 기반과 얇은 선수층, 잦은 선수 이탈에도 불구하고 우수한 신인들과 준척급 선수들이 강한 팀워크와 정신력을 앞세워 분전하는 것이 창단 이후부터 계속된 전통적 팀 컬러. 그 덕에 승강제 도입 이후 단 한 번도 K리그2로 떨어진 적이 없다. 2016년 성남 FC가 강등당하게 되면서 유일하게 K리그2 경험이 없는 시도민구단이 되었다. 그 덕분에 붙은 별명이 K리그의 생존왕. 시즌 시작 전에는 언제나 하위권으로 분류되지만 심심찮게 상위 스플릿을 위협하고 FA컵 결승에 오를 정도로 K리그 내에서는 다크호스로 손꼽힌다.

유달리 8~9월부터 강해지는 모습을 보여 가을 인천이란 별명도 있다.[8]

2. 엠블렘[편집]

2003년 12월 23일부터 27일까지 4개 시안을 놓고 온라인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 총 5,002명의 응모자 가운데 2,296명(46%)으로부터 1순위로 지정받음에 따라 구단 공식 엠블렘으로 선정됐다.

인천 유나이티드 엠블렘은 당시 K리그 다른 구단에서 사용하지 않은 타원형의 모양을 활용하여 창단 주체인 인천시, 시민, 기업이 원만하게 화합하는 이미지를 나타내고 있다. 엠블렘의 문양은 인천을 상징하는 , 바른길로 이끄는 방향키, 비상하는 날개의 형상을 조합하여 인천 구단이 한국프로축구의 새로운 리더가 되고자 하는 강한 의지를 담았다. 또 노란색의 문양과 테두리에 해양도시인 인천을 나타내는 블루와 블랙의 줄무늬는 세계로 뻗어나가는 인천구단의 역동성과 진취적인 기상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현재까지도 축구 팬들 사이에선 멋진 엠블렘으로 손꼽히는 디자인이다.

2.1. 창단 10주년 기념 엠블렘[편집]

파일:external/www.incheonutd.com/%EB%93%B1%EB%A1%9D%EC%9A%A9%EB%93%B1%EB%A1%9D%EC%9A%A9%EC%82%AC%EB%B3%B8-IUFC_10(final)_02.jpg
2013년 시즌 구단 창단 10주년을 맞이하여 구단 정체성 확립과 함께 2013 시즌 K리그 클래식 상위 스플릿 진출 및 시·도민 구단 최초로 AFC 챔피언스 리그 진출을 달성[9][10]하려는 의미를 담은 창단 10주년 기념 엠블럼을 선보였다.

기존 항구 도시 인천을 상징하는 닻 모양 형태의 형상을 기준으로 한 기본 엠블럼에다가 K리그 클래식 최고의 경기장인 인천축구전용경기장을 단순형상화 하였고 비상의 의미를 담은 날개 형태를 형상화하여 2013년 시즌을 최고로 만들겠다는 의지를 표현하였다.

3. 시즌별 역사[편집]

4. 역대 감독[편집]

5. 역대 유니폼[편집]

6. 역대 캐치프레이즈[편집]

인천 유나이티드 역대 캐치프레이즈

시즌

캐치프레이즈

2004

Blue Heart 2004

2005

푸른물결 2005

2006

시민속으로 Into the Community[13]

2007~2010 [14]

My Pride My United

2011

Change & Challenge[15]

2012

Into the New ERA[16]

2013

인천축구지대본[17]

2014

승리, 그 이상의 감동!

2015

Play, Together![18]

2016~

우리는 인천

7. 영구결번[편집]

인천 유나이티드 영구결번

No. 12

시민구단으로 출범한 취지를 살려 12번째 선수인 서포터즈와 팬들을 위해 창단과 함께 12번을 영구결번 처리하였다.[19]

8. 주요 기록[편집]

9. 역대 스쿼드[편집]

10. 유소년 시스템[편집]

11. 마스코트[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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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유나이티드의 공식 마스코트는 유티이다.

인천광역시상징새두루미를 의인화한 형상으로 프로축구계의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려는 의지와 인천광역시, 인천시민, 인천 연고 기업이 화합할 수 있는 매개체로서의 친근한 이미지로 상징화하였다. 붉은 머리털은 축구에 대한 강한 열정을, 큰 날개는 승리에 대한 강한 의지와 페어플레이의 스포츠 정신을 표현하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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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이사항으로는 대전 시티즌 팬에게 폭행당한 전력이 있다 (...) 자세한 내용은 인천 유나이티드 FC/2012년 참고.

12. 인천축구전용경기장[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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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실상부한 대한민국 최고의 축구 경기장.

설계 때부터 오직 인천 유나이티드만을 위해 만들어진 경기장이다. 관중석 의자 색깔도 인천의 유니폼 색인 파랑색을 기본으로 하고, 검정색과 노란색으로 수놓았다. 동쪽 관중석에는 의자에 구단 이름을 영문으로 새겨 넣어 인천 팬들의 자부심을 높였다. 이렇게 경기장 전체를 구단의 색상과 이름으로 꾸며놓은 경기장은 대한민국에서 인천축구전용경기장이 최초이다.

그라운드 터치라인에서 관중석까지 거리를 최소한으로 줄여 축구경기를 가장 생동감있고 역동적으로 볼 수 있다. 골을 넣은 선수가 관중석으로 달려가 팬들과 껴안는 골 세레모니에 최적화 되어있다.[20] 관중석과 그라운드가 가깝다 보니 그라운드를 뛰는 선수들의 거친 숨소리, 선수들끼리 부딪치는 소리를 모두 들을 수 있다. 국내의 다른 어떤 구장도 따라올 수 없을 만큼 관중과의 거리를 좁혔다.

K리그 관중 규모에 비해 지나치게 큰 다른 월드컵 경기장들과는 달리 국내의 축구 관중 규모를 고려하여 약 2만 석의 규모로 지어졌다.근데 주중경기는 1만명도 겨우채운다 자세한 내용은 인천축구전용경기장 문서 참조.

훈련장은 연수구 동춘동에 위치한 승기천연구장이다.

13. 라이벌[편집]

인천광역시를 연고지로 하는 팀답게, 주로 수도권이나 경기도권 팀들과 라이벌 관계에 있다.

13.1. 인경전, FC 서울[편집]

K리그 팀중에 FC 서울과 사이가 좋은 팀이 얼마나 있을까 싶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인천은 지리적으로도 가깝고 서포터즈들 호전성도 강하기 때문인지 미묘한 라이벌 감정과 해마다 끊이질 않는 양 측 서포터즈들간의 충돌로 감정의 골이 깊어질대로 깊어진 불구대천의 원수 사이다. 자금이나 규모면에서 많은 차이가 나는 두팀이지만 인천의 맹렬한 라이벌 의식 덕분에 상대전적은 그렇게까지 밀리지는 않는 편.

그래서 서포터들 중에서는 슈퍼매치를 언론들이 억지로 만들어낸 더비라고 폄하하고, 경인 더비야말로 진짜 더비 라고 치켜세우는 사람들도 있을 정도다.[21]

인천이 처음 리그에 참여한 2004년부터 2006년까지는 인천의 전적이 약간 앞서있었고, 2007년부터 2009년까지는 인천이 이기질 못했다. 그리고 2010년부터는 백중세를 유지하고 있는 중.(정규리그 기준) 다만 상암 원정에선 지독히도 승률이 좋지 않았으나 2013년 3월 9일 경기에서 3:2로 승리하며 9년만에 첫 원정승리를 기록하였다. 인천에게 있어서는 서울이 가장 큰 라이벌이라고 봐도 될 것이며, 서울에게는 수원과의 슈퍼매치 다음가는 라이벌 더비로 자리잡았다. 언론과 K리그 팬들은 경인더비란 명칭을 사용하나 인천측은 2016년 7월 17일부터 이 더비를 인천광역시의 인(仁)자와 서울특별시의 경(京)자를 따서 인경전으로 칭하기 시작했다.

특히 2015년 FA컵 결승에서 인천이 서울에게 패함에 따라 이들의 적대감은 다음 시즌에도, 그 후로도 계속 표출될 것으로 보인다. 흥미롭게도 사이 안좋은 것과 별개로 구단간의 선수 이동은 활발한 편이다. 굴지의 대기업 산하 기업구단과 열악한 시민구단 사이의 거래이지만 그 손익이 일방적이었던 적은 별로 없다는 점도 이채롭다.

13.2. 수원 삼성 블루윙즈[편집]

반면 수원에게는 이상하리만치 약하다. 차범근 시절까진 수원 2중대였고 윤성효 감독 부임 이후엔 그나마 좀 할만해졌지만 여전히 까다로운 상대. 2012년 숭의 아레나 파크에서의 역사적인 홈 첫경기에서도 수원은 자비없이 2:0으로 무참히 홈 첫경기를 패배로 장식해 주었다. 하필 2골 다 인천 출신 라돈치치가 꽂아 넣었다. 반대로 2013년에는 25R에서 인천이 수원을 상대로 3:1 승리를 거두며 역사적인 첫 상위 스플릿 입성을 결정짓는 승리를 따내기도 했다.

13.3. 032[22] 더비, 부천 FC 1995[편집]

지리적으로 인천부천서울보다도 훨씬 가깝다보니 인천 유나이티드가 창단하기전엔 부천 SK를 응원하는 인천 시민들도 많았다. 그리고 2003년 인천 유나이티드가 창단하고 이 두 팀은 032더비라 하여 많은 명경기를 배출하였다. 그러나 부천SK는 이후 제주로 연고지를 이전해 제주 유나이티드가 되었고, 두 팀간의 대결은 역사속으로 사라지나 싶었지만 부천 FC 1995K리그 챌린지에 참가하기로 결정하면서 032더비가 다시 부활하였다.

재밌는건 前 인천 유나이티드의 감독인 김봉길의 아들 김신철이 부천에서 뛰고 있다는 것. 이래저래 다시 만난다면 재밌는 경기가 될것으로 예상되었으나… 팀 성적이 좋지 않다는 평가를 받으며 2014년 봉길매직은 끝났고, 김신철 선수의 부담도 줄어들었다. 그리고 2015년 대한축구협회 FA컵 32강전에서 만나게 되어 10년만에 032더비가 부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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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만의 더비 경기에서 2대0으로 완승하자 인천 서포터즈가 선보인 배너. 같은 032 다른 CLASS. 부천이 2부 리그인 K리그 챌린지에 소속되어 있는 것을 위트 있게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훗, 이래야 더비 경기답지

13.4. 전북 현대 모터스?[편집]

전북 킬러

이상하리만큼 전북을 상대로 강하다. 역대전적도 13승 14무 13패로 백중세다. 국가대표에 비유하자면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이 이상할 정도로 한국 국대에 약한것과 같다. 과거 전북이 동네북으로 취급당하던 2000년대 중반에 전북을 상대로 승점을 많이 쌓은것도 있지만, 리그 최강으로 군림한 2010년대 이후에도 인천은 때만 되면 전북의 발목을 잡으며 승점 3점을 획득할 정도. 유난히 인천만 만나면 부진한 모습을 보여줘서인지 전북의 수장인 최강희 감독도 인천과의 승부는 부담이 된다는 이야기를 할 정도. 반대로 인천 선수들은 전북만 만나면 오히려 힘이 난다고 하니 과거 수원과 대전의 천적관계가 생각날 정도.

한편 2013년에 정혁-정인환-이규로가 세트로 전북으로 이적했고, 2014년에는 김남일한교원이, 2015년에는 문상윤까지 전북에 합류해서 이 면에서도 인천은 전북에 경쟁 심리를 가지고 있다. 거기에 이적한 선수들 모두가 하나같이 인천에서는 핵심으로 활약한 선수들인 반면 한교원을 제외하면 전북에서의 활용도가 애매했기 때문에 이에 대한 아쉬움을 표시하는 경우도 있다. 2015년을 마지막으로 인천 선수의 전북 이적은 일단은 사그라들었고 김인성, 박세직, 송제헌 등 반대로 전북에서 인천으로 합류한 선수들도 있어서 이적 면에서 전북의 2중대라는 놀림도 옛말이 됐다.

14. 문제점 및 사건사고[편집]

15. 그 외[편집]

시민구단의 한계상 열악한 재정 탓에 어느 정도 발전을 이룬 선수들을 다른 돈 많은 구단들에게 팔아 이적료로 수입을 남기는 셀링클럽이다. 그렇게 선수를 팔고도 하위권을 기어다며 적자에 쪼들리는 시민구단들이 비일비재하고 인천도 적자로 인해 재정과 성적에 위기가 왔었다. 인천에서 매각한 선수들을 전부 모아놓으면 리그 올스타에 준할 정도로 훌륭한 선수들이 많다. 이정수, 최태욱, 이근호[23], 최효진, 김치우, 라돈치치, 데얀, 유병수, 정인환, 이석현, 문상윤, 유현 등이 있다. 요즘에는 전북 현대의 선수 셔틀노릇을 하고 있다. 2012 시즌 종료 후엔 사실상 수비진을 뜯어내다시피해서 정인환, 정혁, 이규로를 내주더니 2013 시즌 종료후엔 수비형 미드필더 김남일과 공격수 한교원을 전북으로 보냈다. 그리고 2015 시즌을 앞두고 문상윤까지 전북으로 보냈다. 때문에 구단내 선수들이 특출나게 눈에 띄기 시작하면 팬들은 기쁨 반, 다른 팀에게 뺏길까 노심초사하는 걱정 반의 감정을 느낀다. 다행스럽게도 2015 시즌이 끝난 후 케빈, 이윤표, 박대한, 요니치, 조수혁, 진성욱 등 기존의 주전급 선수들 대다수와 재계약을 체결하면서 전력 유출을 최소화하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2017년에는 이들 중 이윤표만이 인천에 남았다.

과거 2011년까지 인천 문학 경기장 주 경기장을 홈으로 썼을 땐 바로 옆의 문학 야구장을 홈으로 쓰는 인천 SK 와이번스와 묘한 관계에 있기도 했다. 경기시작전이나 끝난 시간이 되면 서로 원수와 같은 두 스포츠의 팬들이 사이좋게 문학경기장역에서 지하철을 타는 한국에서는 보기 힘든 진풍경이 펼쳐졌다. 또한 한 쪽에서는 경기를 진행 중인데 다른 한 쪽에서는 폭죽을 터뜨리며 경기에 방해를 주기도 하는 등 구단 간의 협조도 부족한 모습이었다. 그리고 문학경기장이 아무래도 종합 경기장이다보니 축구 관람에는 어려움이 있어서, 기존 숭의야구장을 헐고 그 자리에 인천축구전용경기장을 따로 건설하여 2012년부터 사용 중이다. 중소 구단에 어울리는 작고 아담한 구장으로, 종합 경기장처럼 트랙이 없이 바로 앞에서 경기를 관람할 수 있는 EPL급 시야를 자랑해 직관하기 매우 좋은 구장이다.

2013년 9월 16일, 인천국제공항공사가 사회공헌 사업의 일환으로 인천 유나이티드에 5년 간 100억 원 규모의 지원을 하기로 결정했다. 인천일보 기사 당초 요구보다는 낮은 금액이지만 점차 연간 지원액을 늘려갈 계획도 갖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연 20억 지원금액은 그리 크지 않은 숫자고 아니나 다를까 2014년 연말에 2달치 월급이 밀려 일부 선수들은 학자금 대출을 받는 등 안습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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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유나이티드의 공식 서포터즈는 미추홀보이즈(MEETYOUHALL BOYS)였으며(2014년 9월부로 해체) 규모는 작지만 적극적인 행동력과 특유의 호전성으로 다른 대형 구단들의 대형 서포터즈들과도 전혀 밀리지 않는 악명과 사건기록을 자랑했다. 수원의 프렌테 트리콜로, 서울의 타나토스와 함께 클래식에선 제일 악명 높았던 서포터다.
현재는 인천의 각 서포터 소모임이 파랑검정이라는 이름의 현장연합팀을 구성하여 응원을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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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축구 경기장 전광판에 수시로 선수들의 외모 별점이 떠오른다. 경기장 아나운서가 "인천의 소닉붐 김인성!" 이라는 식으로 별명을 부르면 99%의 확률로 전광판에 외모 별점이 나타나는데, 별점이 높으면 기분이 좋을 수 있겠지만 별점이 낮으면 홈-원정 관중 가릴 것 없이 소소한 비웃음이 터져 나온다. 이런 연유로 인천의 김도혁 선수는 자신의 얼굴에 매겨진 별점 반 개 (...)에 애교 섞인 항의글을 페이스북 댓글에 올려 작은 논란이 일기도 했다. #

2010년까지 메인 스폰서가 GM대우였고, 초대 단장이자 현 대표이사인 안종복, 전임 감독인 장외룡을 비롯하여 경영진과 선수단에 과거 대우 로얄즈와 관련된 인물이 많이 있기 때문에 인유를 로얄즈의 후신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만, 양 구단은 직접적인 계승 관계가 아니므로 어디까지나 별개로 취급하는 것이 옳다. 그리고 대우 로얄즈를 계승하는 팀은 부산 아이파크이다.

구단의 가장 큰 특징으로는, 공식 등록된 중학부 축구 팀이 드는 인천 지역에서 '미들스타 리그'라는 아마추어 중학생 리그를 매년 혹은 격년제[24]로 운영중이다. 인천 지역 남자 중학생들은 이 경기를 통해 어쩌다 부평고나 도화기계공고 같은 축구부가 있는 고등학교에 뽑히기도 하고, 인유의 U-18팀인 인천대건고등학교에 스카웃되기도 한다. 다만 도서 지역과 강화군 지역은 지역 특성상 참가가 힘들다. 대체적으로 연수구 지역과 계양구 지역 중학생들이 강한 편.

장외룡 감독 시절 언론 인터뷰에서 호나우두앙리가 나이 들어 은퇴할 때쯤 되면 데려오겠다고 호언장담한 적도 있다. 그리고 팬들은 이를 그냥 지방구단 흥보 차원에서 한말로 이해했고, 실제로 둘 다 은퇴했지만 안 왔다 (...)

일본어 위키에서는 인유가 '유나이티드'라는 명칭을 유럽에서의 쓰임새와 달리 단순히 이념적으로 사용한 거라고 서술했지만, 사실은 유럽에서도 여러 구단이 통합된 게 아니더라도 '유나이티드'는 뜻이 좋아서 (...) 엄청나게 자주 쓰인다. 유나이티드라는 이름을 쓰면서 여러 구단이 통합되지 않은 가장 대표적인 구단이 바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다. 맨유는 철도 회사의 실업 팀에서 프로 팀으로 전환한 경우이며 통합된 구단은 없다.

2017년 기준 유료 관중 비율이 K리그 클래식 12개 구단중 광주 FC와 더불어 최하위권이라고 한다. 반은 돈내고 반은 안내고 인천의 오락가락 탁상 행정탓이 커 죽도록 까이고 있다. #

16. 응원가[편집]

17. 2018 시즌 스쿼드[편집]

17.1. 코칭스태프 명단[편집]

인천 유나이티드 2018 시즌 코칭스태프 명단

직책

이름

영문 이름

국적

생년월일

감독

욘 안데르센

Jørn Andersen

파일:독일 국기.png

1963년 2월 3일

코치

박성철

Park, Sung Chul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1975년 3월 16일

코치

임중용

Lim, Joong Yong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1975년 4월 21일 (음력)

GK코치

권찬수

Kwon, Chan Soo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1975년 4월 21일

피지컬 코치

야스민 무이쟈

Jasmin Mujdža

파일:크로아티아 국기.png

1974년 3월 2일

트레이너

이승재

Lee, Seung Jae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1978년 9월 29일

트레이너

이동원

Lee, Dong Won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1985년 11월 25일

트레이너

양승민

Yang, Seung Min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1986년 7월 23일

17.2. 선수 명단[편집]

인천 유나이티드 2018 시즌 선수 명단

번호

이름

영문 이름

포지션

국적

생년월일

1

정산

Jeong, San

GK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1989년 2월 10일

2

노성민

No, Sung Min

DF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1995년 7월 19일

3

김용환

Kim, Yong Hwan

DF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1993년 5월 25일

4

한석종(부주장)

Han, Suk Jong

MF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1992년 7월 19일

5

강지용

Kang, Ji Yong

DF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1989년 11월 23일

6

최종환(주장)

Choi, Jong Hoan

DF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1987년 8월 12일

7

남준재

Nam, Joon Jae

FW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1988년 4월 7일

8

이정빈

Lee, Jung Bin

MF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1995년 1월 11일

9

스테판 무고샤

Stefan Mugosa

FW

파일:몬테네그로 국기.png

1992년 2월 26일

10

엘리아스 아길라르[a]

Elias Aguilar

MF

파일:코스타리카 국기.png

1991년 11월 7일

11

조주영[b]

Jo, Ju Yeong

FW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1994년 2월 4일

13

김진야

Kim, Jin Ya

MF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1998년 6월 30일

14

윤상호

Yun, Sang Ho

MF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1992년 6월 4일

15

김대중

Kim, Dae Jung

DF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1992년 10월 13일

16

이윤표

Lee, Yun Pyo

DF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1984년 9월 4일

17

고슬기[c]

Ko, Seul Ki

MF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1986년 4월 21일

18

박종진

Park, Jong Jin

MF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1987년 6월 24일

19

콰베나 아피아-쿠비

Kwabena Appiah-Kubi

FW

파일:호주 국기.png

1992년 5월 19일

20

고르단 부노자

Gordan Bunoza

DF

파일:크로아티아 국기.png

1988년 2월 5일

21

이진형

Lee, Jin Hyung

GK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1988년 2월 22일

22

김동석

Kim, Dong Suk

MF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1987년 3월 26일

23

김덕중

Kim, Deok Joong

MF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1996년 3월 2일

24

이우혁

Lee, Woo Hyeok

MF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1993년 2월 24일

25

김석호

Kim, Seok Ho

MF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1994년 11월 1일

26

곽해성

Kwak, Hae Seong

DF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1991년 12월 6일

27

문선민

Moon, Seon Min

MF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1992년 9월 16일

28

이효균

Lee, Hyo Kyun

FW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1988년 3월 12일

29

김보섭

Kim, Bo Seob

FW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1998년 1월 10일

30

김혁중

Kim, Hyeok Joong

FW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1994년 12월 9일

31

이태희

Lee, Tae Hui

GK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1995년 4월 26일

32

정동윤

Jeong, Dong Yun

DF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1994년 4월 3일

33

정원영

Jung, Won Young

DF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1992년 5월 26일

34

김한빈

Kim, Han Bin

DF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1991년 3월 31일

36

김대경

Kim, Dae Gyeong

FW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1991년 9월 2일

39

임은수

Lim, Eun Soo

MF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1996년 4월 1일

40

최범경

Choi, Bum Kyeong

MF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1997년 6월 24일

44

김정호

Kim, Jung Ho

DF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1995년 5월 31일

47

김동민

Kim, Dong Min

DF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1994년 8월 16일

인천 유나이티드 2018 시즌 군 입대 및 임대 선수

구단

이름

영문 이름

포지션

국적

생년월일

기간

아산 무궁화

박세직

Park, Se Jik

MF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1989년 5월 25일

2017.05.11~2019.02.10

아산 무궁화

김도혁

Kim, Do Hyuk

MF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1992년 2월 8일

2017.12.07~2019.09.06

상주 상무

이상협

Lee, Sang Hyeop

MF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1990년 1월 1일

2018.01.15~2019.10.14

상주 상무

송시우

Song, Si Woo

MF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1993년 8월 28일

2018.05.28~2020.02.20

상주 상무

박용지

Park, Yong Ji

FW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1992년 10월 9일

2018.05.28~2020.02.20

상주 상무

이호석

Lee, Ho Seok

FW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1991년 5월 21일

2018.05.28~2020.02.20


[a] 클루브 스포르트 에레디아노에서 임대[b] 광주 FC에서 임대[c] 부리람 유나이티드에서 임대

18. 역대 인천의 주요 선수[편집]

18.1. 선수들이 뽑은 10주년 기념 베스트 11들[편집]

  • 선정한 선수들 본인은 본인을 무조건 엔트리에 포함.

  • 뽑은 선수들과 직접 같이 뛰어본 선수로만 선정.


정혁이 뽑은 10주년 기념 인천 유나이티드 베스트 11 (4-4-2)

[ 펼치기 · 접기 ]

전재호가 뽑은 10주년 기념 인천 유나이티드 베스트 11 (3-5-2)

[ 펼치기 · 접기 ]

박재현이 뽑은 10주년 기념 인천 유나이티드 베스트 11 (4-4-2)

[ 펼치기 · 접기 ]

임중용이 뽑은 10주년 기념 인천 유나이티드 베스트 11 (3-4-3)

[ 펼치기 · 접기 ]

18.2. 레전드 및 주요 선수들[편집]

  • 임중용 (2004~2011) : 2018년 2월 기준 인천 유나이티드 역대 최다 출전을 기록한 인천의 상징. 인천의 창단멤버였고 최장기간 주장을 역임한 선수이며, 2005년 K리그 베스트 11에 선정됐을 정도로 실력을 갖춘 수비수였다. '라돈 투게더'의 주인공이기도 하고, 인천의 등번호 20번이 의미있는 번호가 된 이유도 20번이 임중용의 번호였기 때문이다. 은퇴 이후에도 인천에 코치가 되어 돌아오는 등 인천 팬들에게는 잊을 수 없는 선수.

  • 전재호 (2004~2011) : 임중용과 함께 인천의 전설을 언급할 때 가장 먼저 언급되는 선수로, 출장 횟수도 상기한 임중용에 이은 두 번째 순위에 자리잡았다. 좌측면에서 활발한 움직임을 보였고 2010년에 주장을 역임하기도 한 선수. 강원 FC에서 2013년에 은퇴한 이후 2015년부터 인천대건고의 코치가 되어 인천에 돌아왔고, 2017년에는 감독으로 승격되었다.

  • 김이섭 (2004~2010) : 인천 역대 골키퍼 중 최고로 인정받는 전설. 창단멤버였고 앞의 두 선수와 함께 언급되는 경우도 많다. 숟한 경쟁을 인천에서 겪었으나 대부분 최후의 승자는 김이섭이었다.

  • 노종건 (2004~2010) : 아쉽게도 원클럽맨이 되지는 못했으나, 묵묵히 제 몫을 다한 인천 중원의 살림꾼으로 평가받았다. 2010년까지만 해도 창단 멤버 + 원클럽맨이 가능해 보였지만, 폼이 급락하여 아쉽게 팀을 떠나고 이후 공익 근무를 하다가 은퇴했다.

  • 김학철 (2004~2008) : 초창기 인천 수비를 임중용과 함께 이끈 베테랑. 임중용처럼 대구 FC 창단 멤버 - 인천 창단 멤버를 연속으로 거친 선수였다.

  • 방승환 (2004~2008) : 초창기 인천 공격진에서 활발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심판 항의 사건으로 8개월 간 그라운드를 떠나있기도 했으나, 돌아와서 복귀골을 신고한 뒤 서포터즈에게 절을 하기도 했다.

  • 제난 라돈치치 (2004~2008) : 인천 외국인 선수 중 최다 출장, 최다 득점 기록자. K리그의 다른 팀들도 거쳤지만, 인천에서는 특히 그 의미가 깊은 선수이다.

  • 최태욱 (2004) : 인천의 창단 멤버 중에서도 최고의 네임밸류를 자랑하는 선수. 2004 시즌의 에이스였지만, 한 해만에 결국 팀을 떠난다.

  • 이정수 (2004~2005) : 주전 경쟁에서 낙오된 이정수는 인천 이적 이후 엄청난 발전을 보여주었고, 부상에 시달리던 때에도 변함없는 활약을 보여주었다. 결국 그 활약으로 수원 삼성 블루윙즈 이적.

  • 김현수 (2004) : 인천의 첫 주장. 경력도 화려한 선수였고, 혼란스러운 창단 시즌을 그래도 지탱해준 선수.

  • 미오드라그 안젤코비치 (2004) : 인천의 1호골을 기록한 선수. 그러나 반 시즌만에 팀을 떠나 그 활약이 오래가지는 않았다.

  • 라디보예 마니치 (2004~2005) : 안젤코비치가 나간 자리에 들어왔고, 2004 시즌 후반기 최고의 활약을 펼치며 임팩트를 남겼다.

  • 박재현 (2005~2009) : 2005 시즌에 입단하여 2007 시즌에 기량이 만개했다. 다만 적절한 스쿼드 로테이션 플레이어로는 평가받았으나, 핵심 소리를 듣지는 못했다.

  • 최효진 (2005~2006) : 2005, 2006 시즌 우측면을 든든하게 담당한 선수. 당시에는 쓰리백에서 전재호와 양 측면 미드필더를 담당했다.

  • 서동원 (2005~2006) : 트레이드로 인천에 합류하여, 과거 국대 출신답게 중원을 안정화시켜 준우승에 공헌한 선수.

  • 야스민 아기치 (2005~2006) : 2005 시즌 서동원, 노종건과 중원을 형성하여 대단한 기량을 보여준 핵심 미드필더.

  • 셀미르 (2005~2006) : 저니맨 답게 인천에서 뛴 기간은 짧았으나, 그 와중에도 중요한 공격 포인트를 많이 기록하며 좋은 추억을 남기고 떠난 공격수이다.

  • 장경진 (2005~2011) : 2005 시즌부터 인천에 합류하여, 긴 기간 수비진에서 자신의 역할을 잘 수행했다. 그러나 김학철, 임중용 등에 비해 확고한 주전으로 올라간 시기는 짧았다.

  • 드라간 믈라데노비치 (2006~2009) : 이름값이 굉장히 높아서 올 때부터 기대를 모았고, 오자마자 코너킥 직접 득점에 최단시간 골 등 화려한 기록을 쓴 미드필더였다. 인천에서 3년 반동안 헌신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은퇴했다.

  • 김영빈 (2006~2011) : 인천 수비진에서 적절한 역할을 수행했고 김학철의 노쇠화 이후로 주전으로 승격되었다.

  • 김상록 (2007~2009) : 2007 시즌을 이끈 에이스. 방승환, 데얀과 함께 닥공의 주축이었다. 아쉽게도 그 이후로는 감독 교체와 전술 교체로 인해 폼이 급락했다.

  • 데얀 다미아노비치 (2007) : 2007 시즌 한 해만을 뛰었으나 강렬한 임팩트를 남겼고, 인천을 떠난 이후로는 말 안해도 모두가 알 자타공인 K리그의 레전드에 등극했다.

  • 안재준 (2008~2010, 2013~2016) : 인천의 아들이라는 별명을 얻으며 임중용의 후계자로 주목받았다. 실제로 입단 직후부터 잦은 기회를 받았고 또 그를 잘 살렸다. 허정무 부임 이후 트레이드로 팀을 떠나 많은 팬들이 아쉬워했지만, 2013 시즌을 앞두고 돌아와서 다시 그의 기량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군 입대 이후 노쇠화를 보여주면서 아쉽게 팀을 또 떠났다.

  • 유병수 (2009~2011) : 인천 구단 역사 상 최다득점자. 2년 반이라는 그리 길지 않은 기간을 뛰었음에도 엄청난 스탯을 기록했다. 동시에 인천 역사 상 최초의 리그 득점왕 배출.

  • 정혁 (2009~2012) : 부상은 좀 잦았지만, 중원에서 항상 제 몫을 다했다는 평을 들었다. 2013 시즌 시작 전에 정혁 + 정인환 + 이규로 세트 이적에 묶여서 전북 현대 모터스로 떠났다.

  • 남준재 (2010, 2012~2014, 2018~ ) : 2010 시즌에 신인임에도 주전으로 기용되면서 가능성을 선보였다. 안재준과 함께 트레이드로 떠났으나, 일이 잘 안 풀리자 2012년에 장원석과 트레이드되어 귀환, 그리고 곧바로 반 시즌만에 8골 1도움을 쓸어담았다. 이후 2018년 여름 이적시장을 통해 다시 한 번 인천에 귀환, 인천 역사 상 최초로 인천에 세 번 합류한 선수가 되었다.

  • 이윤표 (2011~ ) : 인천의 차기 레전드로, 별명은 미추홀 파이터. 초창기에는 그리 신뢰를 받지 못했으나, 꾸준히 활약하며 자신의 이름을 팬들에게 점점 각인시켰고, 어느새 인천의 최고참의 자리에 올랐다. 임중용의 후계자 이야기를 들은 적은 없지만, 자신만의 등번호 16번에 새 의미를 부여하는 또 다른 레전드.

  • 티무르 카파제 (2011) : 인천의 아시아 쿼터로는 첫 성공작이었고, 2011 시즌 인천의 에이스로 활약했다.

  • 한교원 (2011~2013) : 인천 시절에 좋은 추억을 많이 남긴 윙 포워드. 특히 2012 시즌 후반기부터 2013 시즌까지의 활약은 주목할 만했다. 전북 이적 후 인천과의 경기에서 한퀴아오 사건을 저지르기는 했으나, 팬들에게 아직까지는 좋은 기억에 가깝다.

  • 권정혁 (2011~2014) : 故 윤기원 선수의 죽음 이후 그 자리를 채우기 위한 대체자로 영입되었고, 유현에게는 계속 밀리는 모습이었으나 본인이 주전이던 때에는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골킥으로 득점을 하는 모습도 보여줬다.

  • 빠울로 (2012) : 빗속의 경인 더비에서 넣은 단 1개의 골로 전설이 되었다. 안타깝게도 해당 골 이후로는 좋은 모습을 보이지 못했고, 이후 백혈병으로 투병하다가 2018년 2월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 김남일 (2012~2013) : 인천 소속으로 국가대표에 뽑힌 몇 안 되는 선수.[25] 특히 2013 시즌에는 축구 도사 소리를 들을 정도로 좋은 기량을 펼쳤다.

  • 이보 (2012, 2014) : 짧은 기간이었지만, 엄청난 양의 공격 포인트를 기록했다. 잠시나마 인천 역대 최다 어시스트 기록을 전재호와 함께 보유했지만, 케빈이 이를 순식간에 앞질렀다.

  • 박태민 (2012~2014) : 3년간 측면 수비를 꾸준히 책임진 선수. 2014년에는 주장도 역임했다. 그 뒤 남준재와 같이 성남 이적.

  • 문상윤 (2012~2014) : 인천 유스 출신 첫 번째 성공작. 측면과 중앙을 오가면서 좋은 모습을 보여줬다.

  • 구본상 (2012~2014) : 데뷔전에서 퇴장을 당하는 불행도 있었지만, 중원에서 김남일의 파트너로 꾸준한 모습을 보여줬다.

  • 최종환 (2012~ ) : 굉장한 킥력을 지닌 측면 플레이어로 측면 미드필더 자리부터 시작해서 풀백까지 다양한 포지션에서 제 모습을 보여주었다. 2016 시즌부터는 팀의 새 주장으로 선임되었다.

  • 유현 (2012~2015) : 사실상 유현의 전성기가 인천 시절으로, 그의 존재만으로도 수비가 든든해진다는 인식이 생길 정도였다. 인천을 떠난 이후 계속 내리막길을 걷는 것이 아쉬운 점.

  • 진성욱 (2012~2016) : 인천 유스 출신의 두 번째 성공작이고, 4경기 연속 골 등 임팩트로는 최고의 평가를 받았다. 인천 소속으로 U-23 대표에도 뽑혔었다.

  • 이천수 (2013~2015) : 그 이름값으로 인해 올 때부터 많은 주목을, 또 우려를 받았다. 중간에 논란도 일으켰지만, 위기에 빠진 팀과의 재계약을 선택하고 마지막 해까지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경기장에서 보여주며 마무리만큼은 멋있게 하였다.

  • 이석현 (2013~2014) : 2013 시즌에 보여준 모습만큼은 팀의 에이스로 손색이 없었다. 그러나 이보의 존재로 인해서 포지션이 애매해지며 아쉽게 인천 생활을 마무리.

  • 김대중 (2014~ ) : 초창기에는 불안하다는 소리를 지속적으로 들었지만, 수비진 로테이션 멤버로는 확실한 능력을 입증했고 거기에 2017 시즌에는 공격수로도 재능이 있음을 입증했다.

  • 김도혁 (2014~ ) : 젊은 나이에 부주장, 주장을 모두 경험한 차기 레전드 1순위. 구단에 대한 애정을 항상 드러내온 바 있고, 팬들에게도 좋은 인상을 깊게 남겼다. 2017 시즌에는 최종전에서 득점을 기록하며 잔류에 공헌했다. 2017년이 끝나고 아산 무궁화 FC에 입대했다.

  • 김용환 (2014~ ) : 측면이라면 좌측, 우측, 공격, 수비 모두 가리지 않고 소화하는 인천의 만능 자원. 데뷔 초에는 힘든 시기도 있었으나 2016 시즌부터 측면의 확고한 주전으로 올라섰다. 유스 출신인 만큼 특히 주목받는 선수.

  • 권완규 (2015~2016) : 트레이드로 인천에 입성하여 초기에는 실책도 간혹 범했지만, 팀 수비의 일원으로 최소 실점을 이끌기도 하고 2016 시즌에는 해결사의 면모까지 보여주며 팬들의 인정을 받았다.

  • 박세직 (2015~) : 중원에서 전체적인 흐름을 조율하며 공수 밸런스를 잘 맞췄고, 왼발 킥이 좋아 세트피스 상황에서도 맹활약했다. 2017년 여름 아산 무궁화 FC로 입대했다.

  • 박대한 (2015~2016) : 입단 테스트를 거쳐 간신히 들어온 만큼 절박한 플레이를 보였고, 2015 시즌 베스트 11 후보에도 들어갔었다. 권완규와 함께 측면에서 믿음직한 기량을 보여주었다.

  • 김원식 (2015) : 임대로 짧은 기간 함께 했음에도 인천 팬들의 큰 애정을 받는 선수. 실제로 2015 시즌 전술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

  • 김인성 (2015) : 원래부터 빠른 발로 유명했고, 그 발을 살려 한 해동안 공격의 축으로 자리잡았다. 몸값 문제로 아쉽게도 1년만에 보낸 선수.

  • 케빈 오리스 (2015~2016) : 단 2년의 활약으로 구단 역대 최다 어시스트를 기록한 선수. 그 2년동안 인천의 공격은 케빈으로 시작해 케빈으로 끝나는 모습을 자주 보여주었다. 특히 2016 시즌에는 시즌 전체로 보면 10-10을 한 시즌에 달성하는 면모를 보여줬다.

  • 마테이 요니치 (2015~2016) : 2년 연속 시즌 베스트 일레븐에 선발된 인천 역사 상 최고의 외국인 선수. 실력이 정말 탁월한 선수였고, 수비진의 중심으로 모두에게 인정받았다.

  • 송시우 (2016~ ) : 입단 초기부터 조커로 극적인 득점을 기록하며 시우 타임이라는 별명을 얻었고, 2017 시즌에는 팀 내 최다득점자가 되었다.

  • 조병국 (2016) : 짧은 기간 함께 한 노익장이었지만, 흔들리던 요니치를 회복시키고 인천 수비를 정상화시키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1년을 불태우고 경남 FC 이적.

  • 한석종 (2017~ ) : 데뷔전에서 오심으로 퇴장당하는 불운도 있었지만, 어느새 인천 중원의 상징이 되어 상대 중원을 틀어막고 공수 양면에 큰 기여를 하였다.

  • 김진야 (2017~ ) : 유스 출신으로 새로이 주목받는 스타.

  • 문선민 (2017~ ) : 인천 역사 상 첫 월드컵 명단 포함 선수. 스웨덴 리그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다가 인천에 합류했으며, 특유의 저돌적 플레이로 눈길을 끌었다. 결국 2018 시즌의 맹활약을 통해 국가대표에 데뷔했고, 데뷔전 데뷔골까지 기록했다.

  • 스테판 무고샤 (2018~ ) : 제 2의 데얀이라는 별명을 받을 정도로 놀라운 활약을 이어가는 특급 공격수.

  • 엘리아스 아길라르 (2018~ ) : 과거 이보가 보여주었던 퀄리티를 다시 보여주고 있는 코스타리카 출신 미드필더.

18.3. 주요 등번호[편집]

인천 유나이티드의 의미 있는 등번호

번호

세부사항

1

여타 구단과 마찬가지로 인천에게도 주전 골키퍼를 상징하는 등번호인데, 특히 인천의 초대 레전드 김이섭이 달았기에 의미가 있는 번호. 김이섭 이후로도 1번을 달았던 선수는 웬만하면 주전 골키퍼로 낙점되었다. 다만 김이섭 다음으로 이 번호를 받은 선수인 윤기원이 의문의 죽음을 맞으면서 비운의 번호로 남기도 했다.
역대 1번의 주인은 김이섭 - 윤기원 - 유현 - 권정혁 - 유현 - 조수혁 - 정산으로 정산을 제외하면 1번의 주인은 항상 주전이었다.[26]

4

비운의 레전드 노종건의 등번호.
점차 잊혀지고 있으나 인천 역사에 큰 역할을 했던 주전 수비형 미드필더 노종건이 4년간 사용한 등번호. 노종건은 화려하지는 않지만 항상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며 팀의 든든한 기둥 역할을 해왔고, 2008년에는 그간의 공로를 인정받아 주장까지도 역임했었다. 그러나 2009년 부상을 당한 후 컨디션이 급격히 떨어지면서 결국 2010년을 마지막으로 인천을 떠났다. 노종건은 이전에는 26번, 19번, 14번을 사용했다가 이요한의 이적 이후 4번으로 옮겼고, 이후 계속 이 번호를 사용했다. 노종건이 인천을 떠난 후 수비수 디에고가 잠시 달았으나 이 선수는 심각한 부진으로 반 시즌만에 방출되었고, 그 다음은 센터백 김태윤이 달고 있다가 2014년에 수비형 미드필더 배승진에게 번호가 오면서 수비형 미드필더에게 주어지는 번호로 자리매김했다. 그 뒤에 4번을 받은 김원식, 김경민, 한석종도 해당 포지션에서 활약하고 있는 선수.[27]

7

역시 타 팀과 마찬가지로 에이스를 상징하는 번호인데, 인천에서는 2010년대 중반부터 새로운 레전드 후보인 김도혁을 상징하는 번호로 자리잡았다. 김도혁이 달기 이전에도 7번을 달은 선수로는 2007년 10-10을 기록했던 김상록, 인천에 있을 당시 인천의 공격을 이끈 이보, 2012년 인천을 먹여살린 남준재, 이적 이후 꼬였으나 인천 시절에는 좋은 미드필더였던 이재권, 그리고 2005 준우승의 핵심 멤버 서동원 등 팀의 에이스 급 선수들이 있었지만[28] 번호가 자주 바뀌는지라 누군가를 상징하는 번호는 아니었다. 그러다가 김도훈이 부임한 이후 김도혁이 7번을 받은 뒤 세 시즌 연속으로 그 번호를 받으며 김도혁 하면 떠오르는 등번호가 되었다. 2017년 말 김도혁이 입대한 후에는 팀의 새로운 크랙송시우가 이 등번호를 물려받았고, 송시우가 상주 상무로 입대한 후에는 과거 인천의 에이스였고 2013년에 7번을 달기도 했던 레골라스 남준재가 인천에 복귀하면서 다시 7번을 받았다.

9

주전 공격수의 번호로 유명한 9번이지만, 인천에서는 저주받은 등번호에 가깝다. 멀리 영국에 있는 9번의 저주로 유명한 모 팀처럼 인천 유나이티드 9번의 저주라고 칭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2018년 이전까지는 이 번호를 달고도 좋은 인상을 남긴 선수는 2005년 딱 1년만 이 번호를 달고 있던 방승환[29]이 유일하다. 제난 라돈치치마저도 31번이 아닌 이 번호를 달았을 때는 잉여 소리를 들었고, 이준영은 승부조작으로 인해 흑역사가 되었으며, 오그넨 코로만은 9번을 달자마자 플레이가 읽혀 팀을 떠났고, 사미르 베크리치도 코로만과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강수일은 터지지 않는 유망주를 벗어나지 못하다 음주 폭행 시비로 인해 방출되었고, 김명운은 인천 팬들의 기대감을 부숴버린 공격수. 그리고 그 정점을 찍은 것이 돌발 은퇴의 설기현. 설기현 이후로도 9번은 저주를 벗어나지 못했는데, 송제헌은 시즌 초 좋은 모습을 보였지만 부상으로 결국 한계를 만났고 달리보르 베셀리노비치는 김명운 이상의 악몽으로 남았다.
이렇게 길고도 길었던 9번과의 악연은 2018년에 드디어 새로 영입된 몬테네그로 국가대표 공격수 무고사가 시즌 초반부터 좋은 모습을 보이면서 유병수 이후 최초로 리그 10골을 넘기면서[30] 사실상 저주는 끝났다!

10

팀의 핵심을 상징하는 10번인 만큼 인천에서도 최고의 활약을 보여준 선수들이 달았다. 대표적인 예시가 K리그 최연소 득점왕 유병수. 그 외에도 데얀 다미아노비치, 케빈 오리스, 이천수, 셀미르, 엘리아스 아길라르 등 실력 내지는 상징성이 넘치는 선수들이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최초의 10번 조르제 토미치나 이적으로 논란만 일으키다 끝난 알미르, 그리고 먹튀 웨슬리 아우베스 등 자격이 의심되는 선수들도 꽤 섞여 있었다. 아무래도 이천수가 3년간 10번만을 달고 있었기 때문에 이천수 하면 떠오르는 등번호가 되었다.

11

달면 팀을 떠나게 된다는 저주받은 등번호 2.
방승환을 제외하면 이 번호를 한 해 이상 유지한 선수가 없고, 그 중에서도 이근호, 오그넨 코로만, 네이선 번즈를 제외하면 모두 그 다음 해에 이적했다. 그마저도 이근호는 2군에만 있었고, 코로만은 급속도로 부진하여 시즌 중도에 쫓겨났고, 번즈는 식물인간이나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인천의 상징으로 떠오르던 진성욱도 11번을 달고 괜찮은 활약상을 보여주었으나 시즌을 마치자마자 팀을 떠났다. 그러나 2017년의 박용지가 이 번호를 달고 4골 1도움이라는 그럭저럭 괜찮은 기록을 보인데다가 다음 해에 잔류하는 것에도 성공하면서 간만에 징크스를 깨는 케이스가 될 지 주목됐는데... 그 다음 시즌에는 심각한 부진을 보여주었고 결국 시즌 도중 상주 상무로 입대하게 되면서 다시 결번이 되었다. 여름에 조주영이 임대로 합류하면서 새 주인을 찾았지만, 시즌 말미까지도 리그 한 경기 출전에 그치면서 저주가 이어질 전망이다.

14

요한 크루이프, 티에리 앙리 등 전설적인 공격수들의 번호였던 14번이지만, 인천에서의 14번은 인천의 저주받은 등번호들 중에서도 끝판왕이다. 초기에 이정수, 노종건에게 이 번호가 주어질 때만 해도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이근호와 트레이드된 윤주일이 14번을 달고 먹튀로 전락하면서 저주가 시작됐다. 윤주일은 반 년만에 나갔고, 그 뒤 젤리코 칼라지치(칼레)가 들어와 이 번호를 받고 주전으로 활약했지만 활약과는 별개로 반 시즌을 끝으로 또 떠났다. 이후 이장관은 딱 6개월 뛰고 은퇴했으며, 도재준은 2군만을 전전했다. 전 시즌 의외의 활약을 펼친 김민수도 14번을 받자마자 부진에 시달렸고, 이를 이은 안재곤은 도통 경기장에 보이지 않는 사이버 선수였다. 기대감을 모았던 이적생 김창훈도 먹튀로 전락했고, 심지어 2013년의 에이스 이석현조차 2014년에 이 번호를 받고 추락했으며, 그 다음으로 14번을 받은 김재웅이슬기는 2015년에 둘이 합쳐도 인천에서 5경기를 채 소화하지 못했다.[31] 로테이션 멤버로 가능성을 확인받던 윤상호는 2016년에 14번을 받음과 함께 비판 1순위가 되었었고, 2017년에 기대를 받으며 들어온 이학민은 오른쪽 김창훈 소리를 들으며 역시 쓸쓸히 퇴단했다. 이후 2018년에 윤상호가 다시 14번을 달았지만 역시 출장 기회가 적은 것은 마찬가지.

16

미추홀 파이터 이윤표를 상징하는 번호.
이윤표는 본래 '7'을 좋아했는데, 축구에서 7의 의미[32] 때문에 17번을 선호했다고 한다. 그러나 인천 입단 당시 17번의 주인은 전재호였고, 그에게서 번호를 가져오는 것은 불가능했기에 1+6=7인 16번을 택했다. 그런데 전재호가 떠난 뒤에도 그 번호를 유지한 결과, 이윤표가 임중용전재호의 아성에 도전하는 레전드의 반열이 오르는 시기까지 이윤표가 16번을 가지게 되면서 새로운 상징적인 번호로 떠올랐다. 아쉬운 점은 2015년에 이윤표가 팀을 떠날 뻔했다가 극적으로 잔류한 바람에 이성우에게 잠깐 번호가 넘어갔던 것인데,[33] 당시에는 이윤표가 레전드 소리를 듣기에는 부족하다는 것이 중론이어서 이 번호도 크게 의미 없이 넘어갔지만 이후로 이윤표의 활약이 거듭되고 최고참이 될 때까지 잔류하면서 20번에 이은 다른 상징으로 남을 가능성이 보인다. 여담으로 초창기 멤버 중 스타로 꼽힌 최태욱이 16번을 골랐었다.

17

레전드 전재호를 상징하는 번호.
2004년부터 2011년까지 17번의 주인은 항상 전재호였다. 전재호가 인천에서 큰 활약을 한 만큼 17번 하면 전재호가 떠오르는 팬들이 대다수. 다만 그가 떠난 이후에 윙백 내지는 풀백들이 이 번호를 이어갔다면 의미가 있었겠으나 그의 후임 17번은 문상윤이었고 문상윤이 번호를 바꾼 후에는 존재감이 없던 김용찬이 가져가면서 의미가 퇴색되었다. 잠시 김대경권완규가 달면서 비슷한 느낌이 돌아오나 싶었으나 그 다음 주인은 미드필더 이상협. 이상협 자체의 활약은 점차 개선되는 모습을 보여줬지만, 전재호의 번호라는 의미가 다소 퇴색된 것은 아쉽다. 잘만 하면 20번이 중앙 수비수의 번호가 된 것처럼 갈 수 있었을수도 있었다. 이상협의 입대 이후에 번호를 받은 선수는 고슬기. 고슬기의 활약도도 꽤 괜찮은 편이어서, 어느새 점점 미드필더에 어울리는 번호가 되는 느낌이다.

20

인천의 상징적인 중앙 수비수에게만 허락되는, 레전드 임중용의 번호.
임중용이 2004년부터 2010년까지[34] 가지고 있었고, 임중용이 2005년 준우승 당시의 주장인데다가 투지와 인기를 갖추었고 또 인천 최초의 시즌 베스트 일레븐 수상자라서 20번은 팀의 상징적인 번호로 남았다. 실제로 20번을 달았던 수비수들은 모두 실력으로는 최고를 인증받은 선수이다. 비록 임중용의 후임 정인환이 이적 사가로 20번의 이름에 먹칠을 하긴 했으나, 정인환 역시 국가대표에 뽑힌 수준급의 선수였다. 안재준인천의 아들 소리를 들을 정도였고, 마테이 요니치2년 연속으로 K리그 클래식 베스트 일레븐에 등재되었을 정도의 두말할 것도 없는 K리그 탑클래스. 고르단 부노자는 논쟁이 있기는 해도 실력은 확실함을 모두에게 인정받았다.

18.4. 흑역사[편집]

  • 알파이 외잘란 (2004) : 굉장한 기대를 받고 영입된 선수이지만, 더티 플레이 논란을 계속 일으켰고 반 시즌만에 팀을 떠난 뒤에는 K리그를 디스하기도 했다.

  • 김치우 (2004~2006) : FK 파르티잔 임대 당시부터 구단과 묘한 기류가 흘렀고, 이적 절차에서도 본인은 FC 서울을, 구단은 전남 드래곤즈를 주장하였고 결국 구단이 원하는 대로 흘러가면서 김치우와의 사이가 틀어졌다. 이후 전남 시절 당시 인천의 데얀 다미아노비치에게 가운데 손가락을 들어올리는 모습도 보여줬는데, 결국 나중에 같은 팀에서 만나게 된다.

  • 이준영 (2005~2011) : 오랫동안 인천에 헌신적이었던 선수라서 레전드의 반열에도 오를 가능성까지 보였던 인물이지만... 충격적이게도 승부조작이 적발되었다. 정황 상 인천에서 승부조작을 한 타 선수들도 이준영에게 포섭당했을 가능성이 있다.

  • 성경모 (2005~2010) : 김이섭과 오랜 경쟁 구도를 형성한 골키퍼지만, 팀을 떠난 이후 다른 팀에서 승부조작이 적발되어 쓸쓸히 축구계를 떠났다.

  • 도화성 (2009~2010) : K리그 최장거리 골 기록을 세우기도 했지만, 그 역시도 승부조작이 적발되었다. 게다가 도화성은 브로커로도 활동했고 사설 도박장까지 운영한 만큼 다른 조작범들보다도 죄질이 나쁘다.

  • 정인환 (2011~2012) : 남준재, 안재준을 정인환, 김명운과 트레이드하면서 인천에 합류했고 실력적으로는 흠잡을 데 없는 선수였지만, 전북으로 이적할 당시 온갖 언플을 선보이다가 인천 팬들에게는 원수같은 존재로 낙인이 찍혔다.

  • 설기현 (2012~2015) : 전무후무한 세 개 구단에서 흑역사 취급을 받는 선수. 2015 시즌 개막이 일주일도 남지 않은 시점에서 돌연 은퇴하여 경제적으로도 정신적으로 수많은 손해를 남긴 장본인. 거기에 이후로도 분위기 파악을 잘 못하는 인터뷰를 몇 차례 했다.

  • 네이선 번스 (2012~2013) : 큰 마음을 먹고 영입한 대형 외국인이었지만 부상으로 1년을 날리고 이후로도 연봉만을 축내며 즐겁게 경기를 관람하는 모습이 찍혀 팬들의 공분을 샀다.

  • 조수철 (2014~2015) : 나름 인생역전의 주인공이었고 국가대표 예비명단까지 이름을 올렸으나, 인터뷰로는 잔류 의사를 말하면서 뒤에서는 시장에서 평가받고 싶다고 한 이중적인 모습이 논란이 되면서 인천 팬들에게 실망감을 남기고 이적했다.

  • 달리보르 베셀리노비치 (2017) : 실력으로만 보자면 달리만큼 부진한 선수는 이전에도 존재했으나, 2년간 좋은 활약을 보여줬던 케빈의 후임이었기에 그 충격은 더 컸다. 게다가 달리의 영입 과정에 대한 논란도 이후 불거지면서 더더욱 흑역사 취급을 받고 있다.


[1] 2003년에 창단하여 2004년 리그부터 참가했다.[2] 그런데 정작 첫 시즌이었던 2004년은 문학경기장 주경기장에서 치른 홈경기가 몇 번 없다. 2005년 문학경기장에서 개최하기로 예정된 아시아 육상선수권대회 준비(문학경기장 주경기장 육상 트랙 설치 공사) 관계로 숭의공설운동장 주경기장(숭의야구장과 함께 철거됐으며 그 자리에 인천축구전용경기장이 세워졌다.)과 문학경기장 보조경기장(...)에서 홈경기를 옮겨 치른 적이 있다. 참고로 숭의운동장은 야간 조명시설이 없어서 낮에만 경기를 치러야 했고 야간 조명시설이 있던 보조경기장은 전광판은 물론이고 선수와 심판의 락커룸과 대기실이 없어 선수들과 심판이 큰 불편을 겪어야했다. 관중들도 의자가 없는 스탠드에서 신문지를 깔고 앉아서 경기를 관람했다. 안습...[3] 이 다 그렇듯 시민구단의 구단주는 해당 지방자치단체장이 맡는다.[4] 2017년 중순 취임. 전임 김광석, 박영복 대표이사가 완전히 공무원이었음과 비교해보면 이쪽은 그래도 체육계에서 일을 하기는 했지만, 마찬가지로 전문 축구인은 절대 아니다. 인유의 대표는 창단 이후 줄곧 인천시 또는 인천시체육회, 인천시축구협회 등과 연관된 인물이 자주 맡곤 했다. 그리고 이후 인천을 혼란으로 이끈 강인덕의 인천 부임 후의 행보는 항목 참조.[5] 인천국제공항공사 운영 공항[6] 쉽게 말해 구단 상징색과 홈 유니폼 디자인 기반으로만 치면 '한국판 인터밀란'. 팀의 유니폼은 물론 홈 경기장 좌석의 의자 배색도 파란색과 검은색이다. 장내 아나운서가 선수를 소개하는 별칭에도 '파검(파랑+검정)의 OOO'라는 명칭을 쓸 정도로 팀의 상징으로 깊게 뿌리 박혀 있다. 물론 2012년에 허정무가 그걸 왜곡해서 욕을 바가지로 퍼먹었다.[7] 당시 팀이 없었던 도시는 인천, 대구, 광주였다. 이 중 대구는 가장 먼저 대구 FC를 창단했으며, 광주는 차선책으로 상무 불사조를 유치했다가 2010년대에 들어서 시민구단인 광주 FC로 다시 참가했다.[8] 여담으로 같은 동네 야구팀에게도 비슷한 별명이 있다. 정확히는 이쪽이 원조.[9] 2013 시즌에 상위 스플릿 진출은 성공했지만, AFC 챔피언스 리그 진출은 실패.[10] 시도민 구단 최초 AFC 챔피언스리그 진출은 2014년 성남 FC가 달성했다.[11] 이스탄불 더비에서 종종 언급되는 페네르바흐체의 6-0 대승리 당시 감독이기도 하였다. 당시 툰자이의 선취골을 보고도 태연히 서서 펩시콜라를 들이키던 모습이 참으로 인상적이었다[12] 2007시즌에는 장외룡 감독이 유학을 다녀오면서 한시즌 통째로 박이천 감독대행이 이끌었다.[13] 이 캐치프레이즈는 당시 인천 단장이었던 안종복과 연관이 있다. 안종복이 인천 구단을 떠난 뒤 2013년 경남 FC 사장으로 간 후 2006년 캐치프레이즈와 똑같은 컨셉의 '도민속으로' 라는 캐치프레이즈를 경남 FC 캐치프레이즈로 썼으나 팀을 시원하게 말아먹고 자신은 콩밥까지 먹게 됐다.(...)[14] 4년 연속 사용[15] 당시 인천 감독이었던 허정무2010 남아공 월드컵 당시 언급했던 '유쾌한 도전' 이라는 말에서 차용됐다.[16] 인천축구전용경기장 입주 첫 해를 기념하는 의미[17] '인천이 세상 축구의 중심이다'라는 의미[18] '투게더'는 2006년에 개봉한 인천유나이티드 다큐멘터리 영화 ‘비상’에 등장하는 현 인천 U-18팀 임중용 감독의 명대사로 유명하다. 라돈치치 의문의 1패[19] 인천 유나이티드 12번 영구결번[20] 파일:/image/396/2012/07/15/20120715215411_20120715002004_0_0.jpg 2012년 7월 15일 극적인 결승골을 성공시킨 빠울로의 골 세레모니.[21] 다만 이것은 서울과 수원이 서로를 라이벌이라고 인정하고 싶어하지 않을 정도로 싫어하기 때문이고, 실제로는 분위기로 보나 뭘로 보나 슈퍼매치가 더 격렬하고 관심을 끄는 매치이다. 게다가 경인더비도 처음에는 서포터들에게 언론이 만들어준 더비라는 소리를 들었다. 인천 관중동원력이 수원보다 훨씬 약한데도 지금의 위상을 갖춘데는 언론의 지원사격 덕이 컸다.[22] 부천은 경기도임에도 지역번호를 031이 아닌 인천과 같은 032를 사용한다. 여기에서 착안한 이름.[23] 인천 시절 2군 MVP를 하긴 했지만 인천에서 제대로 활용하지 않았다. 트레이드로 영입한 대구 FC에서 잘 키웠다고 보는 게 맞겠다.[24] 연도개최가 가끔 지연되거나 빨라지거나 할 때가 있다.[25] 국대 출신 내지는 이후 국대급으로 성장한 선수는 좀 있지만, 인천에서 국대에 뽑힌 선수는 유병수, 김남일, 김치우, 정인환, 전재호, 문선민 여섯밖에 없었다. 그마저도 전재호는 부상으로 데뷔조차 하지 못했다. 최태욱조차도 인천 시절에는 청소년 대표로만 불려다녔다.[26] 정산은 이기형 감독 시기에 합류했는데, 이기형은 시즌 초반에 주전 골키퍼를 명확히 정해두지 않고 정산, 이진형, 이태희를 로테이션으로 돌렸다. 그리고 이들 중 가장 안정적인 모습을 보였던 이진형이 후반기부터 주전 골키퍼로 자리잡았다.[27] 김경민은 센터백이 주포이지만, 당 시즌에 수비형 미드필더로 기용할 계획이 있었고 번호도 4번으로 옮겼다. 다만 부진으로 인해 한 해만에 30번으로 복귀. 한석종은 전형적인 수비형 미드필더보다는 공격 성향도 있는 박스 투 박스이지만 수비적인 롤에서 능력이 극대화되는 선수이다.[28] 모든 7번을 달은 선수가 잘 한 것은 물론 아니다. 대표적으로 마에조노 마사키요가 기대에 못 미쳤고, 도화성은 승부조작에 연루되었다. 그리고 김치우는 실력과는 별개로 인천 팬들과 완전히 척을 진 케이스.[29] 그 외의 시즌에는 11번을 배정받았다.[30] 시즌 전체로는 2016년 케빈 오리스가 10골-10도움을 달성했다. 한편 2018년에는 문선민 역시 10골을 돌파하였다.[31] 김재웅은 전반기에 인천에서 14번을 달고 뛰다가 수원 FC로 이적했고, 그 해 후반기에 이슬기가 병역을 마치고 합류하여 14번을 달았는데, 김재웅과 이슬기 2명 다 1경기 출장에 그쳤다.[32] 7은 주로 우측 윙어들에게 돌아가는 번호이다.[33] 한편 이윤표는 이 때 7이 두 개인 77번을 골랐다.[34] 2011년에는 플레잉 코치로 전환하면서 번호도 48번으로 바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