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홍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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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홍렬의 주요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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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mbc.png 방송대상 코미디 부문 최우수상 [1]

이경규
(1992)

이홍렬
(1993)

이경실, 이휘재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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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이홍렬 (李洪烈, Lee Hong-ryeol)

출생

1954년 5월 22일(음력) (64세) / 서울특별시 용산구 후암동

본관

덕수 이씨[2]

국적

대한민국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신체

163cm, 65kg, A형

학력

삼광초등학교 (졸업)
한양중학교[3] (졸업)
서울공업고등학교 요업과 (졸업)
중앙대학교 연극영화학과 (학사)

직업

코미디언, MC

데뷔

1979년 TBC 라디오 가요대행진

소속

투어테인먼트

가족 관계

1남 2녀 중 둘째

종교

개신교(장로회)[4]

링크

공식사이트,유투브


1. 소개2. 출연 프로그램
2.1. 교양2.2. 예능2.3. 시트콤2.4. CF
3. 기타

1. 소개[편집]

MBC를 대표했던 코미디언이자, 중장년 연령층들에게는 아직도 8, 90년대 코미디의 상징.

대한민국의 레전드 코미디언 중 한 분. 1954년생.

1980년대와 1990년대에 작은 키와 개성적이고 익살맞은 외모, 특유의 입담으로 인기를 끌었다.

서울공고를 졸업하고 DJ로 활동하다가 허참의 권유로 방송가에 입문, 코미디나 방송 진행을 많이 맡으며, 이후 MBC에서 주로 활동하였다.

일요일밤의 대행진부터 청춘행진곡, 오늘은 좋은 날, 그리고 현재의 일밤까지 MBC 희극인실의 숨은 터줏대감 중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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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인 콩트로는 1980년대에는 김병조와 콤비를 이룬, 청춘만만세의 카운셀링 개그코너 '어찌 하오리까'가 있으며, 일밤대행진 마당놀이에선 주로 사회자를 봤다.

1991년 한창 잘 나가던 방송 일을 뒤로 하고 일본으로 2년간 유학을 가서 화제가 되었다. 일본 유학 후 방송계로 복귀하여 전성기를 다시 열었다.

그리고 1990년대는 임하룡과 함께 했던 '귀곡산장'을 빼놓을 수 없다. 테마송이 인상적이다. '망태망태망망태 망구망구망망구 우리는 산장지기 괴상한 노인. 망태~ 꺼지지 않는 불꽃, 망구~ 밤에♩ 피는 장미~♪ 누구든지 환영해요 귀곡 산장. 간이 커도 와우! 겁 많아도 와우! 기절 안 하곤 못 배기는~ 귀~곡~산~장~. 뭐 필요한 거 없수!? 없음 말고. 뭐 필요한 거 없냐니까!? 없음 말랑께롱 께롱!께롱!께롱!께롱!' 후술할 음반에도 수록되었다. 길이는 좀 짧지만. 당시 괴담물 단행본으로 베스트셀러가 된 '공포특급'이 불러온 공포 마케팅 열풍을 타고, 공포 컨셉 게스트 코미디 쇼를 만들었는데 이게 대히트를 친 것. 귀곡산장은 나중에 단행본으로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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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조 배역은 이홍렬과 임하룡이다. 연극 버전을 하면서 강성범과 호흡을 맞추었다. 그리고 이홍렬은 여기서 할머니 분장을 하고 있다.

1990년대 중반에는 이홍렬쇼라는 토크쇼로 나름대로 토크쇼 MC로서의 명성을 굳혔다. 서세원쇼가 토크박스 하나에 의지한 것과 달리 다양한 코너로 굉장한 인기를 구가해 전성기에는 자타공인 최고 인기 토크쇼였지만 이홍렬 본인의 사정으로 100회를 채우고 그만뒀다가 2000년대 초에 다시 부활, 또 200회까지 채우고 막을 내렸다.[5] 프로그램 코너들 중에서는 특히 '참참참'이 유명세를 탔는데, 당시 유명 스타가 나와서 밤참을 만들면서 토크를 하는 방식이었다. 주재료는 라면, 만두, 참치 통조림 등 흔하게 볼 수 있는 것으로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것. 맞아 맞아 참참참이라는 제목으로 까지 발매되었지만 2000년대 이후에는 이 책을 발견하기는 거의 어려울 것이다. 관심이 있다면 인근 도서관을 뒤져보자. 이때 게스트와 같이 했던 놀이 '참참참'을 전국에 유행시켰다. 롯데월드에는 이 코너에서 만들었던 메뉴를 상품화해서 파는 참참참 레스토랑도 있었다. 특히 참참참은 당시 일본 버라이어티 영향을 받아 국내에서 숱하게 시도되었던 쿡방들이 우리나라 사정에 안 맞아 몽땅 망하는 가운데 유일하게 장수했던 코너였다는 점도 특색이다.

또한 이 프로를 통해서 초창기 심현섭김구라 등, SBS 초기 공채 개그맨들의 모습도 볼 수 있었다.

또 이홍렬하면 빼놓을 수 없는 프로그램이 일요일 일요일 밤에 속 코너였던 '한다면 한다'. 세계나 국내에 여러 곳을 돌아다니면서 이홍렬이 한다면 한다!를 외치며 도전하는 프로그램이었는데 지금의 리얼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의 조상격인 프로라 생각하면 된다. 이 프로그램에서 최초로 한국에 소개된 번지점프는 그 이후 2000년대 초반까지 예능의 단골 소재가 될 정도로 많은 충격을 주었고 당시 40대였던 이홍렬이 한다면 한다!를 외치고 번지점프를 하는 장면[6]은 많은 중년들에게 힘을 주었으며 엄청난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무려 20년 전인만큼 예능 프로도 지금과 비교가 불가능할 만큼 점잖고 얌전했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야 이놈들아아아아아아!' 처절한 저주의 외침을 토하며 뛰어내렸으니 당시 시청자들이 받았던 쇼크는 상상을 초월했다.

"뺑코"라는 별명으로 유명한데 이는 이경실의 콩트 '도루묵 여사'에서 이경실의 권유로 콧구멍에 500원짜리 동전을 성공적으로 넣었다 뺐던 것에서 유래한다(돈 트라이 디스). 하지만 정작 본인은 넓은 콧구멍에 콤플렉스가 있어서 코에 뭔가를 넣는 행위를 대단히 불쾌해 한다고 한다. 대신 별명이 "촉새" --> "뺑코"로 바뀐 것은 만족해 하는 듯. 그러다가 MBC every1의 프로그램 가족이 필요해 시즌 2에서 15년 만에 코에 뭔가를 넣는 개그를 시도했다.[7]

일반적으로 방송국에서는 연예인들이 비상시에 이용할 수 있도록 주차 자리를 한두 자리 비워 놓는데 때마침 스케줄 때문에 방송국에 늦게 도착한 이홍렬에게 경비가 "주차장에 자리 부족해요. 나가세요."라면서 진입을 막았고, 이홍렬은 결국 길거리에 주차를 하고 들어가서 방송을 했다고 한다. 그때 경비의 대응에 서운함을 느껴서, 내가 MBC에 바친 열정이 얼만데... 하고 생각했다고 한다. 결국 SBS로 옮길 때는 SBS에 전용 주차석을 요구했다고. 경비원 입장에선 자리가 없는데 어쩌라고...

2000년 말부터 2002년 초까지는 SBS의 시트콤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에 출연했다.[8] 진지한 배역을 주로 맡다가 코믹한 배역에서 맹활약했던 노주현신구와는 반대로, 기본 베이스는 코믹하지만 중년의 로맨스와 관련되어 진지한 연기를 할 때도 많았던 노홍렬이란 캐릭터를 잘 소화해냈다.

2014년 4월 중순 MBC의 코미디 프로그램인 코미디의 길로 복귀하여 MBC 19기 개그맨 김용재와 콤비로 모큐멘터리 형식의 코너를 하고 있다. 까마득한 후배들과 아이디어를 짜고 어린이 분장으로 PD 앞에서 코너 검사를 받는 등 분투하는 중. 김용재는 이상민 주연의 음악의 신에 등장한 개념없는 매니저와 비슷한 캐릭터이다. 2014년 7월 6일에는 환갑 기념 출판기념회가 방송되었다. 전유성, 최불암, 이경실, 전영록, 황기순 등 많은 스타들이 오랜만에 등장했다.

2015년 현재 tbs 교통방송에서 이홍렬의 라디오쇼를 진행하고 있다.

2016년 2월 21일 런닝맨에 게스트로 출연했으며 띠동갑 후배인 지석진과 팀을 이루었다. 이른바 콤비며 이홍렬의 별명이 뺑코이고, 지석진의 별명이 왕코 이므로...

밑에 CF 항목을 보다시피 20세기 후반 상당히 유명하고 큰 인기를 끌었던 레전드급 코미디언 방송인이어서 찍은 광고의 수가 그야말로 엄청나다. 젊은 세대들은 어릴 적 TV를 키면 그가 나오는 여러 개의 CF들을 아주 쉽게 자주 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가 출연한 프로를 전혀 보지 않은 어린 애들도 "어? 저 아저씨 어느 어느 광고에서 본 사람이다"라고 할 정도.

2. 출연 프로그램[편집]

2.1. 교양[편집]

2.2. 예능[편집]

2.3. 시트콤[편집]

2.4. CF[편집]

  • 1985년 <진주햄 줄줄이바나나소시지>

  • 1985년 <에바스화장품> (가수 나미[9]와 함께 출연)

  • 1986년 <삼양식품 짜짜로니> (이경규와 함께 출연)

  • 1986년 <삼양식품 사또밥>

  • 1986년 <영진약품 판크레온*에프>

  • 1988년 <롯데제과 ABC초콜릿>

  • 1993년 <해태제과 우리또래> (홍진경과 함께 출연)

  • 1993년 <녹십자 제노킨> (강호동과 함께 출연)

  • 1994년 <롯데푸드 꽃게랑>

  • 1995년 <크라운제과 딸기콘> (이제니와 함께 출연)

  • 1995년 <보령메디앙스 보드레> (이성미와 함께 목소리 출연)

  • 1995년 <대웅제약 베아제>

  • 1995년 <삼양식품 큰냄비>(송경철, 이인혜와 함께 출연)

  • 1995년 <동부대우전자 입체냉장고 탱크> (고소영, 배종옥, 박인환, 염정아, 이영하, 이재룡, 유인촌과 함께 출연)

  • 1995년 <장은 JCB카드>

  • 1996년 <거평프레야> (유인촌, 김희선, 배종옥, 박상아, 이재룡과 함께 출연)

  • 1996년 <미코팬시 항균노트>

  • 1996년 <동부대우전자 전자렌지 요리박사>

  • 1996년 <녹십자 OK>

  • 1996년 <대우통신 탱키>

  • 1996년 <애경 생금비누&보디글렌저>

  • 1997년 <서울 시티폰>

  • 1997년 <매일유업 치즈피아 스모크햄치즈>

  • 1997년 <청정원 즉석짜장> (고두심과 함께 출연)

  • 1997년 <한국후지필름 오토오토>

  • 1998년 <교원구몬 구몬학습>

  • 1999년 <동원F&B 일품만두> (허영란과 함께 출연)

  • 2000년 <선거공익광고> (펌프잇업을 소재로 한고은과 함께 출연)

  • 2000년 <동원F&B 라우동> (강성진과 함께 출연)

  • 2000년 <LG생활건강 자연퐁싹> (1편에선 중식당/2편에선 김희애와 함께출연)

  • 2000년 <동원F&B 오곡음료>

  • 2000년 <동원F&B 동원참치 3억원이벤트>

  • 2000년 <동원F&B 동원선물세트>

  • 2001년 <동원F&B 동원영양구이>

  • 2002년 <구구스터디>

  • 2002년 <솔표조선무약 어린이 성장제 아이키>

  • 2014년 <어린이재단>

  • 2017년 <AJ렌터카 AJ셀카>

3. 기타[편집]

  • 2007년부터 크라제버거 홍대점을 운영하고 있어서 방문하면 가끔 볼 수도 있으며, 3번 망하고 4번째로 낸 가게라고 한다.지금은 자신의 홈페이지를 통해서 운영 중단을 천명해 놓은 상태다. 어째 사업과는 연관이 없어보인다.

  • 점심 시간에 홍대 앞을 지나면 담배 피는 이홍렬을 구경할 수 있으나, 워낙 연예인이 깔린 동네라 아무도 관심이 없다고 한다.

  • 과거에 음악활동을 한적이 있으며, 1998년에는 음반을 낸 적도 있다. 일종의 자선 음반으로 기획하였고, 일부 기존 노래를 커버한 노래(ex. 트로트곡 <물레방아 도는 내력>)도 좀 있다. 그외에도 Friends라는 곡은 함께 한 아티스트가 아홉이고, 마지막 트랙인 발라드 넘버 '다시 한번 해봐요'는 그를 비롯한 당대 유명가수들과 합창했는데, 함께 한 아티스트가 열아홉이나 된다. 그러나 흥행은 흑역사. 지금은 정반 구하기도 힘들다. 그래도 <영희네 담벼락에 누가 써 놓은 이야기>라는 곡은 그럭저럭 유명하다. 들어보기 해당 곡의 작곡자는 그 유명한 김창완이다. 이 앨범 전곡을 이홍렬은 대인배스럽게도 자신의 홈페이지에 공개해놓고 있으니 관심있는 분은 들어보자. 몇몇 곡의 경우 이홍렬의 라이너노트도 곁들여져 있다.

  • 이외 음악활동의 경우 '초콜렛'이라는 남녀혼성 듀오에 거의 모든 곡을 제공한적도 있으나 그룹이 망해서 자선음반보다 더 잊혀졌다. [10]

  • 결혼은 비교적 늦게 했으며[11], 33세에 중앙대학교 연극영화과를 입학한 것으로 유명한 만학도. 그래서 그런지 상당한 다독가라고 한다. 2년간 일본에 체류 한 적이 있다.[12] 이때 체류 경험에 바탕해서 쓴 일본, 일본어 서적도 있고, "아버지 되기는 쉬워도 아버지 노릇하기는 어렵다"라는 자녀 교육서를 쓴 적도 있다. 그 외 아버지에 관련된 책을 번역했으며 당연히 일본어에 매우 능통해서 일본인과 직접 대화가 가능하다.

  • 자신에게 일어났던 여러 소사(小事)들을 꼼꼼히 메모하는 습관이 있기로도 유명하다. 그냥 단순히 '무슨 일이 있었다' 하는 식으로 쓰는게 아니라 날짜를 정확히 쓰고 중요한 사건을 간단히 소회하는 형식으로 기록해 뒀다. 인터넷 초창기 이홍렬이 직접 만든 홈페이지에 이러한 내용들이 남겨져 있었다. 또한 이홍렬의 두 아들이 태어난 날에 신문 1면을 스크랩 해 놓은 에피소드도 유명하다.

  • 주병진(1977년 데뷔) - 강석(1978년 데뷔) - 이홍렬(1979년 데뷔) 순으로 선후배 사이다. 이 시점 이후로 MBC의 개그맨은 공채를 하기 시작하여 기수대로 표시하고 있다. 즉, 이 세 사람은 특기수에 해당. 알다시피 개그맨계는 선후배 사이를 철저히 따지는 쪽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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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뿌우신인 시절의 이경규, 뺑코 '이홍렬'과 함께.
    사진과 관련된 비화가 있는데, 당시 무명 개그맨이었던 이경규가 자신도 개그맨이라는 것을 사람들에게 증명하기 위해 방송사 선배와 사진을 찍고 싶어했는데, 이경규에게 그나마 잘해주고 가장 친한 선배였던 이홍렬이 이 소식을 듣고 같이 사진을 찍어준 것이었다. 그러나 이 사진을 찍은 후 이경규는 감히 선배인 이홍렬과 사진을 찍는데 옆에서 쪼개고 건방진 표정을 짓는다는 이유로 모 선배 개그맨에게 코피까지 흘릴 정도로 얼굴을 주먹으로 얻어맞았으며, 다른 선배 개그맨들에게도 어떻게 감히 후배가 선배랑 사진을 찍냐고 갈굼받았다고 한다...[13] 이홍렬은 이경규에게 그나마 잘해주던 천사표 선배 중 하나였다. 나중에 가면 이경규도 이홍렬에게 "때려 봐. 때려 봐."라고 쓸데없이약올렸다가 한 대 맞기도 했고, 이홍렬과 맞 담배를 피질 않나, 담뱃불 없다고 이홍렬이 피던 담배를 뺏어서(!) 자기 담배에 붙이는 행동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홍렬은 나중에 최양락한테 지나가는 식으로 뒷담화를 했는데 최양락은 말 끝나기 무섭게 자기도 똑같이 이경규를 따라했다. 그러자 참고 참던 이홍렬이 폭발해 "이 새끼가 더 나쁜 놈이네!"하면서 구두로 최양락을 때렸다고 한다.[14](...) 한마디로 매를 벌어서 맞은 것.

  • 이경실이 지나치게 괄괄한 여걸이라서, 이성미가 그런 이경실을 기피하자 이홍렬이 두 사람을 불러다 놓고 화해시켜서 둘을 절친으로 만들어놓은 일화가 있다.

  • 한창 인기 있던 1995년에는 '뺑코형사 특급추리왕'이라는 어린이책이 출판된 적이 있다. #

  • 여명808의 등장을 예견했다.(중국배우 여명이 나와서 건강차를 만드는 내용...) 예언.

  • 前 정치인 이회창의 성대모사를 잘 한다.

  • 1대 100 345회 방송분에서 1인으로 참가했으며, 이 날 그는 우승 상금 5000만원을 타게 된다면 아프리카에 우물을 기부할 거라고 이야기했으며, 100인 중 하나로 출연한 대후배 장효인에게 도와달라고 말했다. 아울러 신인 시절 이경규에게 잘해준 선배로 당시 무명이던 이경규가 자신도 코미디언이라는 걸 알리고 싶어서 이홍렬의 허락을 받아 같이 사진을 찍었는데, 이를 안 다른 선배들이 이경규를 괘씸하게 여겨 코피가 날 정도로 구타했다는 이야기를 했다. 이는 예나 지금이나 심각한 코미디언 똥군기의 폐단. 이 대결 2번째 문제에서 91명 중 57명이나 떨어지는 등 평소와는 달리 문제가 극악을 달리던 난이도 속에서도 7단계에서 최후의 1인과 대결을 펼쳤으며, 결과는 여기 참조. 참고로 후반전에서는 이보다 난도가 높아서 5문제를 풀고 우승자가 나왔다.

  • 아프리카에 자전거 2,600대를 기부하기도 하는 등 선행을 많이 한다.

  • 2001년부터 풀벌[15]이라는 이름의 고양이를 키우고 있었는데 지난 2018년 7월 5일 무지개다리를 건넜다고 한다. 관련기사 그리고 풀벌을 키우던 이야기를 유튜브에서 연재하고 있다.

[1] 1995년부터 2000년까지는 MBC 코미디대상, 2001년부터 MBC 방송연예대상으로 바뀌었다.[2] 덕수 이씨 26세손 '烈'자 항렬이다.[3] 가수 전영록과 중학교 동창이다.[4] 온누리교회 집사이다. 참조[5] 부활했을 당시에도 인기는 좋았다.[6] 뉴질랜드로 가서 찍었는데 같이 간 다른 여자 연예인들이나 PD는 높이를 보고 겁에 질려 번지점프로 뛰길 포기했다. 이홍렬도 이거 긴장되네... 이러면서 고민하던 반응이지만 결국 그 홀로 뛰어내렸다.[7] 물론, 동전이 아니라 고무줄이었지만...[8] 사실 시트콤에 출연하게 된 배경이 재밌는데, 당시 진행하던 자신의 토크쇼가 MBC의 세 친구에 시청률이 추월당한 후, 종영을 하게 되었다. 이에 오기에 가까운 심정으로 시트콤에 도전한 게 해당 작품이라고 한다.[9] 5인조 보이그룹 Q.O.Q로 활동했던 솔로가수 최정철의 어머니.[10] 작곡가동명이인일 가능성도 있으니 이에 대해서는 검증 필요.[11] 결혼 당시 34세. 아내는 26세.[12] 당시 한참 잘 나가던 시점에서 갑자기 일본으로 공부한다고 떠난 경우였다. 때문에 전유성같은 이들은 대단히 높이 평가하였다.[13] 개그계의 대표적인 똥군기의 예.[14] 최양락의 깐족거림은 개그계에서 상당히 유명했다. 주병진 족발사건이 대표적인 예.[15] 벌이 아닌 털뭉치를 뜻하는 영어 furball에서 따 왔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