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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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국회상징.png 대한민국 국회의원 (세종특별자치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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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민 정부

국민의 정부

제37대
이명현

제38대
이해찬

제39대
김덕중



파일:국회상징.png 대한민국 국회의원 (서울 관악구 을)

선거구 분리
임철순[A]
김수한[A]

제13~17대
이해찬

제18대
김희철

파일:이해찬.jpg

대한민국의 제36대 국무총리

이름

이해찬 (李海瓚)

출생일

1952년 7월 10일 (66세)

출생지

충청남도 청양군

본관

전주 이씨 덕흥대원군[4]

학력

서울대학교 (사회학 / 학사)

가족

5남 2녀 중 다섯째
배우자 김정옥, 슬하 1녀[5]

소속 정당

더불어민주당

지역구

세종특별자치시

의원 선수

7

의원 대수

13, 14, 15, 16, 17, 19, 20

소속 위원회

외교통일위원회

현직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제20대 국회의원

더불어민주당 외교안보통일자문회의 의장
더불어민주당 중앙당후원회장

경력

돌베개출판사 대표
평화민주당 원내부총무
민주당 당무기획실장
서울특별시 정무부시장
제38대 교육부 장관
새천년민주당 최고위원
제36대 국무총리
민주통합당 대표
노무현재단 이사장
통일맞이 이사장
더불어민주당 대표

외부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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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2. 일생3. 논란
3.1. 이해찬 세대3.2. 골프 관련 구설수3.3. 대통령 호칭 논란3.4. 2018 제 3차 남북 정상회담 노쇼 논란3.5. 국가보안법 재검토 및 장기집권 발언3.6. 의정 활동 부실 논란
4. 트리비아5. 선거 이력6. 어록7. 둘러보기

1. 소개[편집]

더불어민주당의 제3대 당 대표
20대 국회의원들 중 유일하게 국무총리, 장관, 정당 대표, 7선 국회의원까지 지낸 정치적 거물

대한민국의 정치인, 관료, 사회학자. 소속 정당은 더불어민주당이다.

국민의 정부 시절 교육부 장관, 참여정부 시절 국무총리를 지냈고, 2012년 18대 대선안철수와의 대선 후보 단일화 때문에 금방 자리에서 내려와야 했지만, 더불어민주당의 전신인 민주통합당의 당 대표를 역임하기도 했던 정계의 거물이다.

그리고 대한민국의 제13대~17대, 그리고 제19대~20대 국회의원이자 더불어민주당의 제3대 당 대표이기도 하다. 13대부터 17대까지는 지역구가 서울 관악구 을 지역이었고, 2008년 18대 총선 때에는 총선에 출마하지 않았다가 2012년 19대 총선 때 관악구 을에 다시 나오지 않고, 당시 신설된 지역구이자 자신이 건설을 지휘했던 세종시로 내려가 당선됐다.

민주당계 정당의 대표적인 선거 전략가 중 한 명으로 유명하다. 1992년 6.27 지방선거조순 서울시장 후보 캠프에서 선거 전략을 담당하면서 조순 후보를 당선으로 이끌어 처음 선거 기획 능력을 인정받았고, 그 후 자신이 선거 전략에 관여하면서 대통령 배출하여 '킹 메이커'라는 별명도 얻었다. 이런 능력을 인정받아 국민의 정부참여정부의 요직을 지냈다.

2002년 16대 대선 때는 노무현 캠프에 참여하여 참여정부 탄생에 일조하였고 국무총리 시절에는 노무현 대통령의 자발적인 역할 분담으로 행정부 2인자의 권한을 제대로 행사할 수 있게 돼 역대 국무총리JP와 더불어 실세 총리의 대명사로 불리는 유이한 사람이 됐다. 세종시의 설계 및 추진 또한 이해찬이 총리로 일할 때 이루어졌다.

이때의 인연으로 민주당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친노무현계의 상징적인 큰형님이자 정신적 지주이며 투 탑으로 손꼽히는 인물이다.[6] 그래서 보통 언론에 '친노의 좌장'이라는 수식어가 자주 따라붙는 편이다. 심지어, 친문계의 리더로 불리는 문재인 대통령도 깍듯하게 형님이라 부르면서 선배로 대우한 사람이다.[7]

그리고 무려 7선 국회의원인데[8] 이는 민주당 현역 의원들 중 최다선이며 20대 국회를 통틀어서는 서청원 의원(8선) 다음이지만, 서청원은 2008년 18대 총선에서 친박연대 비례대표 공천을 대가로 뇌물을 받은 게 드러나 당선 무효형을 선고받았기 때문에 실질적으로는 7선 의원이라고 보는 것이 조금 더 타당하다.[9] 즉, 이해찬은 사실상 서청원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최다선 국회의원인 셈이다.

민주당의 최다선 현역 의원이지만, 최고령 의원은 전혀 아닌데다가[10], 여전히 친노계친문계의 큰 어른인 거물이기에 아직은 정계 은퇴를 말할 단계가 아니라는 것이 일반적인 평. 2018년 기준 65세로, 역대 대통령 중 그보다 많은 나이로 출마해 당선된 사람만 넷이니 그리 많은 나이라 보기도 힘들다. [11]

사회학 기초 교과서 중 하나인 C. 라이트 밀즈의 <사회학적 상상력>을 공역하기도 한 사회학자이기도 하다.

2. 일생[편집]

3. 논란[편집]

3.1. 이해찬 세대[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이해찬 세대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교육부 장관 시절 추진한 정책으로 인해 영향을 받은 세대를 지칭하는 말이다.

3.2. 골프 관련 구설수[편집]

국무총리 시절 골프로 인하여 여러 번 구설수에 올랐다.

강원도의 대형산불로 천년고찰 낙산사가 불타고 있을 때도 골프를 치고, 장마에 전국적으로 홍수 피해가 속출하고 있는 가운데에서도 측근들과 골프를 쳐 물(水)불(火)을 가리지 않고 골프를 치는 총리라고 국민적 공분을 샀다. 국순당 배중호 사장과 가진 골프회동이 특히 문제가 됐는데 주류세 관련 법안 통과 바로 전날 만나서 법안 상정 관련과 관련이 있던것이 아니냐는 의문을 샀다. 3.1절에는 영남제분 류원기 회장과 골프를 치기도 했는데 류원기 회장은 여대생 청부 살인 사건 의 윤길자의 남편이다. 이 3.1절 골프 사건을 계기로 이해찬은 총리직에서 물러난다. 이때 노무현 대통령을 설득해서 이해찬 총리를 해임한 사람이 바로 문재인 민정수석이다.

이때 이해찬 총리가 골프를 치던 골프공도 화제 였는데 대통령의 상징인 봉황 무늬를 총리가 골프공에 그려 넣어 사용해서 문제가 됐었다. 이해찬 총리는 아랫사람이 만든것이라고 해명했지만, 한나라당에서는 조선시대였으면 사형감이라며 비판했다.

3.3. 대통령 호칭 논란[편집]

더불어민주당 전당 대회를 앞두고 김어준의 다스 뵈이다에 출연해 옛 이야기를 풀면서 문재인 대통령을 향해서 자신이 상급자인 총리 시절 부르던 '문 실장'이라는 호칭을 사용해 당시 대표 경선 경쟁자였던 김진표 의원 측과 송영길 의원 측에서 -사석 아닌 공개 방송에서 그러한 칭호를 사용한 것은 적절치 못했다고 비판했다.

3.4. 2018 제 3차 남북 정상회담 노쇼 논란[편집]

[남북정상회담]이해찬, 면담 불발 해명 “소통 잘 안돼서‥”

2018년 제3차 남북정상회담에서 민주평화당 정동영 대표와 정의당 이정미 대표와 함께 안동춘 최고인민회의 부의장과의 면담 일정을 갑작스레 펑크내 논란이 일었다. 논란이 일자 이정미 대표 측과 이해찬 대표 측에서는 '일정에 착오가 있었다'며 해명했다. '노쇼' 다음날 3당 대표들은 김영남 상임위원장과 회담을 진행했다. 이 '노쇼'에 청와대 청원게시판이 이 의원들을 탄핵해달라는 청원이 올라오기도 했다. #

기자들도 이미 다 대기 하고 있었던 상황이고, 윤영찬 홍보수석이 이전에 직접 면담 일정[12]을 브리핑 하기도 해서 의도적인 무시가 아니었냔 의심을 샀다. 이에 이해찬 의원 측은 "정상회담 배석자 숫자가 갑자기 예상보다 많이 줄어드는 바람에 정의용 국가안보실장과 서훈 국가정보원장을 제외한 나머지 장관들, 박원순 서울시장, 최문순 강원지사가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면담에 합류했다"며 "(참석자) 숫자가 많아 (주제가) 산만해지니 3당 대표만 별도로 만나려고 했는데 스케줄이 안 잡혔다"고 한다. ##

귀국 후 이해찬 의원이 측근들에게 털어놓은 말에 따르면 통일부에 그렇게 요청하자, 북한에서 급작스럽게 부의장과의 면담 일정을 잡았고 이에 정당 대표들은 “다른 야당의 반대를 무릅쓰고 평양에 왔는데 갑자기 부의장을 만나라는 게 말이 되느냐”며 재차 일정 조정을 요구했다고 한다. 하지만 일정 조정이 안 되면서 결국 ‘노쇼’ 사태가 벌어졌다는 것이다. 이후 만찬에서 이 대표로부터 이 얘기를 전해 들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옆자리에 있던 김영철 통일전선부장에게 다시 일정을 잡으라고 지시했고, 그날 밤 실무 책임자인 이택건 통일전선부 부부장이 이 대표 등을 직접 찾아 사과했다고 한다. ###

3.5. 국가보안법 재검토 및 장기집권 발언[편집]

10.4 선언 11주년 기념행사 참석을 위해 평양에 머무르면서, "평화체제가 되려면 국가보안법 등을 어떻게 할지 논의해야 한다", "제가 살아 있는 한 절대 (정권을) 안 빼앗기게 단단히 마음먹고 있다"고 발언해 논란이 되었다. 이를 두고 자유한국당에서는 "이 대표가 국가보안법 폐지 추진 의도를 평양에서 표명한 것은 부적절하며 정치적 의도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고 비판하였고, 더불어민주당은 "원론적 수준의 의견마저도 대역죄 취급 하고 나서는 것은 구시대적 반응"이라고 반박하였다. 정권 안 빼앗기겠다는 발언에 대해서는 "집권당 대표답지 못한 속 좁은 마음을 내놓은 것"이라고 바른미래당에서 비판했다.

논란이 되자 이해찬 대표는 국가보안법에 대해서는 "폐지나 개정을 말한 것이 아니다", "북·미 간 평화협정을 맺어야 제도 개선을 얘기할 수 있을 것", 장기집권론에 대해서는 "내가 앞으로 20년 살겠느냐"라는 해명을 내놓았다.

3.6. 의정 활동 부실 논란 [편집]


더불어민주당 유일 '결석 2관왕' 본회의 무단결석률 민주당 내 1위 상임위 무단결석률 민주당 내 4위 대표법안 발의 민주당 하위 2위 라는 불명예 스러운 기록을 가지고 있다. 전 국회의원을 대상으로 하면 본회의 결석률 10위인데, 이 수치는 민주당 내에서는 결석률 1위이고, 유승민 의원과 조원진 의원을 제외하면 유일하게 자유한국당 의원이 아닌 국회의원이다. (나머지7명은 자유한국당 국회의원.) 참고로 하위 20명을 기준으로 해도 유일한 더불어 민주당 국회의원이다. (하위 20명중에 17명이 자유한국당 의원이다.;) 이와는 대비되게 6선 문희상 국회의장은 100% 출석률을 자랑한다. (84회 본회의에 한 차례도 빠짐없이 참석했다.)

http://newslabit.hankyung.com/article/201808272276G

4. 트리비아[편집]

  • 신림동에서 1978년부터 '광장서적'이라는 서점을 운영한 바 있다. 이 서점은 이해찬이 국회의원이 된 후에는 동생 이해만이 운영하였으며, 처음에는 인문사회과학 서점이었으나 1990년대 들어서는 고시서적도 많이 취급하게 되었다. 유서가 깊고 규모가 큰 서점이어서, 신림동 고시서점 중 목이 좋고 가장 유명했던 '상원서적'과 함께 신림동 고시촌랜드마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곳이었으나, 법학전문대학원이 도입되면서 여느 고시서점들과 마찬가지로 몰락하여 2012년 12월 31일 부도를 내고 역사의 저편으로 사라졌다. 광장서적이 있던 자리에는 현재 '북션' 서점이 들어서 있다.

  • 호불호가 뚜렷하게 갈리는 정치인이며, 지지자들 사이의 애칭은 '해찬들'[13], '찬들이형', 또는 '대장부엉이'라 불리며, 비토 세력들에게는 '해골', '해골찬'이라는 멸칭으로 불린다.

  • 파일:external/cache.clien.net/20170320171547_JITSr6pH_171780905.jpg
    대통령 선거에서 경선 후보, 대선 후보, 캠프 및 정당 관계자들이 예전의 모습과는 사뭇 다른 말 실수를 하거나 이해할 수 없는 언행을 보일 때마다 이 짤을 사용하면서 이해찬 1승이라고 외치는 게 이 되어버렸다.

  • 이투스 수리논술 강사인 오승준과 상당히 외모가 흡사하다. 또한 묘하게 박정학 배우와 비슷하게 생겼다.

  • 위의 선거 당선 당시의 사진처럼 무표정인 모습이 많아서 포커 페이스의 이미지로도 유명하다. 깐깐한 이미지의 외모와 겹쳐서 더 큰 시너지를 나타내는 편.

  • 파일:1494484245075.png
    위 사진은 동료 의원인 문희상과 함께 국회에서 열린 문재인의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한 장면이다. 문희상은 참여정부 시절 초대 청와대 비서실장[14]으로 일했던 적이 있고, 이해찬은 앞서 말했듯이 참여정부 시절 법에 보장된 권한을 마음껏 행사했던 '책임 국무총리'로 일한 적이 있어서 둘 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인연이 있는 사람들이며, 문재인의 대선 유세를 지원한 사람들이다.
    그런데도 우연히 취임식 날 사진에 표정이 이렇게 찍혀서 마치 반(反)문재인 성향 의원들이 억지로 참석한 모습처럼 나와 버렸다. 물론, 이 두 사람은 친노계 - 친문계에서는 원로급으로 분류되는 의원들이고, 문재인의 대통령 당선을 위해서 누구보다도 매우 열심히 뛴 인물들이다.

  • 20대 국회의원들 중 유일하게 총리 경력이 있는 의원이다. 그래서 현직은 국회의원이지만 사석에서는 '총리(님)'이라 불린다. 일종의 예우 차원.[15][16]

  • 2010년대 들어 민주화 운동 시절에 당한 고문의 후유증으로 보이는 증상을 자주 보이고 있다. 2017년 김어준의 파파이스와 같은 공개석상에서 나온 모습을 보면 가끔씩 손을 떨거나 말이 끊기는데, 이는 젊었을 때는 보이지 않던 모습으로 예전에는 말을 날카롭고 빨리 하기로 정평이 나 있었던 인물이다. 따라서 민주화 운동을 하다가 여러 모로 고문 후유증이 생긴 게 아니냐는 얘기가 있다. 특히 2018년 7월 20일 민주당 당 대표 선거 출마 기자회견에서는 몸을 떨고 코를 훔치는 등 건강에 문제가 있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민주당 8.25 전당대회 분위기가 뜨거워 지면서 당권 경쟁자인 김진표 의원과 송영길 의원을 지지하는 측에서는 이 건강 문제를 놓고 이해찬을 공격하기도 했는데, 당장 민주당계 정당의 영원한 정신적 지주인 김대중 전 대통령도 한나라당 측으로부터 고령을 이유로 치매 등의 각종 질병에 시달리고 있다는 루머로 공격 받은 적이 있고, 또 문재인도 대선 기간에 홍준표, 안철수 지지자들에게서 치매설 공격을 받은 적이 있던 터라 이를 보는 반응은 좋지 않다. 쉽게 말해 '자유한국당이나 할 법한 공격을 이젠 당신들이 하느냐, 당신들이 그들과 무엇이 다르냐'는 비판이다.

  • 모친인 박양순 여사는 2017년 10월 30일, 향년 100세에 별세했다. #

  • 6월 15일 tbs와 한 인터뷰에서 더불어민주당은 개혁 우파, 진짜 진보는 정의당이라고 평가했으며 한편으로는 더불어민주당보다 왼쪽에 있는 정당들은 우리나라의 사회 구조상, 깊이 뿌리내리기 어렵다고 분명히 규정하기도 하였다.

5. 선거 이력[편집]

연도

선거 종류

소속 정당

득표수 (득표율)

당선 여부

비고

1988

제13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관악 을)

평화민주당

39,950 (31.18%)

당선 (1위)

초선

1992

제14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관악 을)

민주당

64,035 (44.69%)

당선 (1위)

재선[17]

1996

제15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관악 을)

새정치국민회의

54,049 (44.75%)

당선 (1위)

3선

2000

제16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관악 을)

새천년민주당

48,751 (47.48%)

당선 (1위)

4선[18]

2004

제17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관악 을)

열린우리당

49,673 (41.12%)

당선 (1위)

5선

2012

제19대 국회의원 선거 (세종)

민주통합당

22,192 (47.88%)

당선 (1위)

6선[19]

2016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세종)

무소속

46,187 (43.72%)

당선 (1위)

7선[20]


선거의 귀재

보다시피 지역구 7전 7승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의 선거 득표율이 50%를 넘은 적이 한 번도 없다는 걸 지적하는 사람들이 있다. 같은 민주당 중진인 정세균 국회의장이 지역구 6전 6승에, 모두 50%를 넘긴 득표율로 승리한 걸 비교 대상으로 드는데, 정세균은 2012년 총선 때 서울 종로구로 지역구를 옮기기 전까지는 민주당 후보에게 압도적인 표를 몰아주던 호남에 지역구를 두고 있었으니 적당한 비교 대상이라고 보긴 힘들다.

서울 관악구가 민주당 지지세가 서울에서 제일 강한 지역이기는 하지만 호남만한 텃밭은 당연히 아님에도 연이어 5선을 한 것은 대단한 결과이다.

물론 비교적 유리한 지역에 출마해온 것은 사실이다. 관악구는 앞서 말한 것처럼 서울 내에서 가장 민주당 계열 지지율이 높은 지역이었다. 다만 세종시의 경우에는 본인이 국무총리 시절 수도 이전을 전면에서 지휘한 곳인데다가 자기 자신이 충청도 출신이긴 하지만, 그 이전에는 보수 성향이 강한 지역이었던 것은 사실이며 19대 총선 당시 맞붙었던 상대는 충청 정치권의 거물이었다. 물론 이를 감안해봐도 7전 7승은 선거의 달인으로 평가받을만한 기록이기는 하다. 남경필이 보수 성향이 강한 지역구이기는 했어도 수도권에서 6전 6승을 한 것이 대단한 기록으로 여겨지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른바 '선거의 여왕'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었던 박근혜의 경우, 차례의 총선에서 좋은 성적을 냈고, 2006년 5.31 지방선거한나라당의 대승으로 이끌긴 했지만 누가 봐도 새누리의 승리가 명확해 보였던, 그것도 대통령으로서 이끌었던 20대 총선에서는 참패해 박근혜가 본인의 능력으로 선거의 여왕이 된 건지, 아니면 그동안 기울어진 운동장 덕분에 얻게 된 승리를 박근혜의 능력 덕택에 얻은 것처럼 포장이 된 건지 불투명하게되었다

반면, 이해찬은 소위 말하는 험지 출마는 해본 적이 없었고 항상 유리한 지역을 출마해왔다는 점은 박근혜와 같을지 몰라도 13대 총선에선 민주정의당김종인, 통일민주당의 거물 김수한을 꺾고 당선되었고, 19대 총선에선 충청 지역 정치권의 거물 심대평을 상대로 완승을 거뒀다. 큰 선거를 이끌어본 경험도 서울시장 두 명[21]의 당선에 기여한 바 있고, 2012년 대선을 제외하면[22] 자신이 참여한 대선에서 모두 승리를 맛 보았으니 박근혜에게 크게 뒤쳐진다고 말할 정도는 아니라 할 수 있지 않을까?

1988년 첫 출마부터 2012년 총선까지 소속 정당의 이름이 모두 다른데, 이인제김한길처럼 탈당을 밥먹듯이 해서 그런 게 아니라, 그가 몸 담고 있었던 민주당의 이름이 유난히 자주 바뀌었기 때문이다. 이건 문희상도 마찬가지다. 물론 신민주연합당 시절과 열린우리당 입당으로 인한 탈당 및 20대 총선에서의 무소속 출마 등 3번 탈당하긴 했다.

6. 어록[편집]

아빠는 현주가 학교에 다니는 모습을 자주 그려보곤 한단다. 엄마 아빠가 학교 다니던 때와는 달리 현주의 학교생활은 훨씬 자유롭고 재미있을 거야. 그때쯤에는 세상도 훨씬 좋아지고 자유로와질 테니 말이야.


외동딸 이현주 양의 3번째 생일에 보낸 편지[23]

7. 둘러보기[편집]

[1] 공주시·연기군 선거구의 제18대 국회의원이다.[A] 2.1 2.2 서울특별시 제12선거구의 제12대 국회의원이다.[4] 전주 이씨 덕흥대원군 14세손, 시조 43세손 '海'자 항렬이다. 순종황제의 조카뻘이자 배우 이해랑, 소설가 이해조와는 같은 항렬이고, 마라토너 이봉주의 아버지뻘이다.[5] 이름은 이현주로, 숭실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졸업했다.[6] 심지어 노무현 대통령 사후에 문재인 당시 노무현재단 이사장을 정계로 끌어들인 당사자가 이해찬이었다. 이후 김어준은 인터뷰에서 이 총리에게 을 하셨다며 좌중을 웃기기도 했다[7] 다만 문 대통령은 빠른 53년생인 탓에, 52년생인 이해찬 대표와 실제로는 동갑이다. 미남으로도 유명한 문프동갑이라는 건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대학 학번도 72학번으로 같은데, 두 사람 모두 재수했기 때문.[8] 참고로 노무현 대통령과 입사동기이며, 14대 총선을 통해 입사문희상 국회의장과 박지원 대표보다 선배 의원이다.[9] 그래도 공식적으로는 8선 의원으로 쳐 준다. 20대 국회 첫 개회식에서 서청원 의원이 사회를 맡을 당시 박형준 국회사무총장이 서 의원을 8선 의원으로 소개한 것이 그 예.[10] 20대 국회 기준으로 민주당 최고령 현역 의원은 후반기 국회의장이 된 문희상 의원이다. 2018년 기준으로 73세.[11] 2018년 당대표 선거에서 경쟁한 김진표보다 어린데도 출마했을 때 "세대교체가 필요하다"는 비판이 나왔을 정도이니... 이게 모두 초선을 만 35세에 한 데다가 노안이라서 그렇다. 물론 그 노안이 고문의 휴유증일 가능성이 크다는 걸 생각하면 비판하기도 힘든 일이다.[12] 윤영찬/청와대 국민소통수석 : "정상의 움직임과 별도로 정당 3당 대표는 안동춘 최고인민회의부의장을 접견할 예정입니다."[13] 고추장 브랜드에서 따온 별명이다[14] 마지막 청와대 비서실장이 바로 문재인이었다.[15] 항상 욕만 먹고 금방금방 경질되기는 하지만, 그래도 국무총리는 의전서열 5위로 굉장히 높은 자리다. 행정부, 입법부, 사법부의 수장인 대통령, 국회의장, 대법원장, 헌법재판소장 바로 다음 위치다. 이해찬의 경우 야당 대표(8위) 경력도 있다.[16] 장관이나 교섭단체 당 대표(비대위같은 임시 당 대표 제외, 정식 당 대표 한정)를 역임한 의원의 경우에도 사석에서는 '의원님'이 아닌 '장관님'이나 '대표님'이라 불린다. 또 다른 사례로 박지원 민주평화당 의원이나 정병국 바른미래당 의원 또한 사석에서는 각각 장관을 지낸 경력 때문에 의원님이 아닌 '장관님'이라 불렸다. 다만, 이 두 사람 모두 2017년 초에 각각 당 대표를 역임하였기 때문에 현재에는 장관님보단 '대표님'으로 더 많이 불리고 있다.[17] 1995년 7월 의원직 사퇴 (조순 시장하 서울시 정무부시장 임명)[18] 2003년 열린우리당으로 당적 변경[19] 첫 세종시 국회의원. 2016.3.15 더불어민주당 탈당(공천불복)[20] 본인 선거이력상 최초로 무소속으로 당선, 세종시 재선 국회의원, 2016.9.30 더불어민주당 복당[21] 사실 서울시장은 2승 1패다. 1패는 2010년 6.2 지방선거 때 생긴 전적이다. 이때 이해찬은 한명숙 후보 선대위원장을 맡았다. 한명숙 후보는 오세훈 한나라당 후보와 접전 끝에 겨우 0.6%p 차이로 떨어졌다. 그렇지만 투표함 뚜껑이 열리기 전까지 여론조사에서 두 사람의 지지율 차가 15~20%p 가량 차이가 났던 걸 감안하면 상당한 반전이었다. 크게 이길 줄 알았는데 크게 이기기는 커녕, 강남 3구의 몰표가 아니었다면 분명히 떨어졌을 정도로 후들거리는 격전을 치렀으니까. 오세훈 본인도 가까스로 당선된 뒤 '내가 이겼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어두운 표정을 감추지를 못했다.[22] 18대 대선에서는 안철수와의 단일화를 위해 당대표직에서 중도 사퇴해 선거를 끝까지 돌보지 못했다. 당 지도부가 선거를 앞두고 총사퇴한 건 문재인의 패인 중 하나로 꼽힌다. 팟캐스트 등에서 이해찬이 한 말을 보면 본인 스스로도 이런 결정을 내린 것을 깊이 후회했던 것 같다.[23] 당시 전두환의 김대중 내란음모 조작 사건에 연루되어 투옥 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