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현(멀티 엔터테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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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현의 주요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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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주연상

제35회
(2014년)

제36회
(2015년)

제37회
(2016년)

천우희
(한공주)

이정현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

김민희
(아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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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이정현(李貞賢)

출생

1980년 2월 7일 (38세), 전라북도 김제시

신체

158cm, 43kg, O형

학력

성지고등학교 (졸업)[1]
중앙대학교 영화학과 (학사)

종교

무종교[2]

데뷔

1996년 영화 <꽃잎>

가족

아버지 이길술, 어머니 노재승
5녀 중 막내

소속

바나나컬쳐 엔터테인먼트

공식사이트

파일:b7fc25534b70b8f52acbbb4cbbab8366.png파일:bananaculture_logo.png

SNS
팬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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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2. 가수 활동3. 연기 활동
3.1. 평가3.2. 필모그래피
3.2.1. 영화3.2.2. 드라마3.2.3. 뮤직비디오
4. 예능 활동5. 팬덤6. 트리비아7. 수상 내역

1. 소개[편집]

한국의 레이디 가가[3][4]

데뷔와 동시에 영화계와 가요계에서 연달아 센세이션을 일으키며 양 분야에서 자신만의 영역을 확고히 구축한 아티스트

대한민국파문전사배우이자 가수.

1996년 영화 <꽃잎>으로 데뷔했다. 연기를 처음 해보는 10대 소녀라고는 믿기지 않는 신들린 연기를 펼치며 영화계의 주목을 받았고, 대종상, 청룡영화상을 비롯한 다수의 영화 시상식에서 신인상을 거머쥐며 단번에 충무로의 기대주로 떠올랐다.

1999년 1집 <Let's Go To My Star>를 발표하며 가수로 변신, 이 음반의 타이틀곡 '와'가 빅 히트하며 이 해 거의 모든 가요 시상식에서 신인상을 휩쓸었다. 신인상 덕후 이후에도 '바꿔', '너', '줄래', '미쳐', '반', '아리아리' 등 여러 곡을 연이어 히트시키면서 2000년대 초반 국내 인기 정상급 가수로 군림했다.[5]

2000년대 중후반에는 주로 중국에서 한류 스타로서 활발히 활동했고,[6] 2010년대 들어 국내에서 연기에 주력하면서 2015년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는 등 배우로서도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아가고 있다.

2. 가수 활동[편집]

내용이 길어져 분리하였다.
이정현(멀티 엔터테이너)/가수 활동 문서 참조.

3. 연기 활동[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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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작 영화 <꽃잎> 中


1996년 4월 개봉한 장선우 감독[7]의 영화 <꽃잎>의 주인공 소녀 역으로 전격 데뷔. 3000대 1의 공개 오디션을 통해 선발되었다.[8] 희극에나 나올 법한 광년이 같은 소녀가 광기를 품은 채 5.18 민주화운동의 비극을 온몸으로 보여준다. 이 때 이정현은 전라 노출[9]까지 감행하는 등 엄청나게 독기 어린 연기를 보여 주었다.

영화 초반부에서 장을 따라가려 하는 소녀에게 장이 '"미친년아 꺼져!"라는 뉘앙스의 말을 외치며 돌을 던지는 장면이 있다. 물론 소녀를 쫓으려는 장면을 위한 연출. 그런데 장 역할의 문성근이 던진 돌이 이정현의 다리에 실제로 맞아 버렸다.[10] 그러나 어떻게든 영화에 충실해야 한다는 생각이었는지 실제 절뚝이는 발을 끌며 문성근을 쫓아간다. 그러면서도 너무 아팠는지 쫓아가다 쓰러지고 휘청거리는 등 안쓰러운 모습을 보여준다. 정말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다

또한 영화 중반부에 기차 유리창에 비친 여자 귀신의 모습을 보고 놀라서 그 유리를 머리로 깨고 기절하는 장면이 있는데, 정말로 머리로 깼고 정말로 기절한 것이다.[11] 그리고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소녀의 무덤가 발작 씬은 지금까지도 꾸준히 회자되는 명장면. 말 그대로 빙의한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의 연기를 보여준다.

이런 신들린 듯한 열연에 힘입어 겨우 만16세의 나이에 생애 첫 연기작품이었음에도 불구하고 1996년도 대종상에서는 신인여우상과 여우주연상 후보에 동시에 올랐다. 결과적으로는 주연상은 수상하지 못하고 대종상, 청룡영화상을 포함한 각종 영화상의 신인상만 싹쓸이했지만, 대종상 같은 메이저 영화상에서 주연상과 신인상 두 부문에 동시에 노미네이트된 케이스는 그 전이나 후나 매우 드물다.[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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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작 MBC 드라마 <일곱 개의 숟가락> 中


같은 해 MBC 드라마 <가슴을 열어라>와 <일곱 개의 숟가락>에 출연했다. <일곱 개의 숟가락>은 이정현의 드라마 첫 주연작으로, 이정현과 함께 홍경인, 김소연 등 당시 신인급 배우들을 주력으로 내세웠음에도 동시간대 타 방송사 드라마들을 압도하는 호성적을 냈다. 여기서 이정현은 착하고 굳센 소녀가장 역할을 잘 소화해 내며 <꽃잎>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시청자들에게 보여주었다. 청소년 관람불가라 관람이 제한적이었던 <꽃잎>보다도 이 드라마로 이정현을 처음 기억하는 사람도 많다.

이어 1997년 9월 개봉한 선우완 감독[13]의 영화 <마리아와 여인숙>[14]에 특별출연하였다. 이정현은 마리아의 성장한 모습으로 등장하며, 함께 출연한 박상민과의 파격적인 베드씬이 있다.[15][16] 영화의 작품성도 좋은 편이었지만 하필 한석규, 전도연의 <접속>과 신은경의 <노는 계집 창>과 함께 추석에 개봉하는 바람에 흥행 스코어에서 아쉬운 성적을 내고 말았다.

1998년에는 KBS 드라마 <야망의 전설>과 SBS 드라마 <어느 날 갑자기>에 출연. 1999년에는 영화 <침향>[17]에, 2000년에는 영화 <하피>[18]에 출연했지만 두 영화 모두 비평적, 흥행적으로 크게 실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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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작 SBS 드라마 <아름다운 날들> 中


2001년에는 SBS 드라마 <아름다운 날들>에 김세나 역으로 출연했다. 이 드라마는 당시 최고 시청률 30%대를 기록하며 많은 인기를 끌었고, 이후 일본에서도 히트하며 이정현이 일본에 진출하는 교두보가 되기도 한다.[19]

2003년에는 중국 베이징TV 드라마 <미려심령>에 주인공 쳉후이(程慧) 역으로, 2006년에는 일본 TBS 한일 합작 드라마 <윤무곡~론도>[20]에서 최윤희 역으로 출연하였다. 두 작품 모두 멜로물로, 국내에서는 보기 힘들었던 이정현의 청순가련 연기를 볼 수 있다.

2008년 KBS 대하드라마 <대왕 세종>에 세종대왕의 후궁 신빈 김씨 역으로 7년만에 국내 드라마에 복귀했지만 성대결절로 중도 하차하고 말았다.[21] 2010년에는 중국 CCTV 대하드라마 <공자>[22]에 위나라 왕후 난쯔(南子) 역으로 출연했다. 이 드라마는 2011년 중화TV 채널을 통해 국내에서도 방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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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작 영화 <범죄소년> 中


2011년 박찬욱, 박찬경 감독의 단편영화 <파란만장>에 출연하여 신들린 무당 연기를 보여주며 <하피> 이후 11년만의 영화계 복귀를 알렸고,[23] 2012년에는 영화 <범죄소년>[24]에 16살 아들을 둔 33살의 철부지 미혼모 장효승 역으로 출연, 여러 국제영화제를 포함한 평단의 호평을 받았으며, 그동안의 국내 연기활동 공백을 아쉬워하는 반응도 많았다.[25][26]

2014년에는 김한민 감독의 영화 <명량>에 정씨 여인 역으로 출연, 인상적인 연기를 선보였다.[27] 그런데 그 김한민 감독과 열애설이 떴다.# 그러나 당사자들이 곧바로 부인하며 진화.#

2015년 SBS 드라마 <떴다! 패밀리>의 여주인공 나준희 역으로 출연했다. <대왕 세종> 이후 6년여만의 브라운관 복귀였지만, 시청률은 타 방송사 드라마에 밀려 참패. 그래도 커리어의 첫번째 로맨틱 코미디물로, 배우 이정현의 색다른 모습이 많이 등장한다. 여동생 연기, 공항 격투신, 여자친구인 척 하기, 술 취한 연기, 신입사원 연기, 기억상실 연기 등등. 그냥 대놓고 귀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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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작 영화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 中


2015년 8월 개봉한 영화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에 주인공 정수남 역으로 출연했다. 영화가 개봉된 이후 줄곧 "이정현의, 이정현에 의한, 이정현을 위한 영화"라는 찬사를 받았고, 노 개런티로 출연한 이 작품으로 2015년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1996년 <꽃잎>으로 신인상을 받은 이후 19년 만의 청룡에서의 수상이며, 이 수상으로 JTBC 뉴스룸에 출연, 손석희인터뷰도 했다. 영화가 개봉된 직후 작성된 "올해 여우주연상 이정현 확정"이라는 네이버 영화 평점란 베댓이 다시금 화제가 되는 등 이정현을 다시금 '배우'로 각인시킨 기념비적인 작품.

2016년 11월 개봉한 영화 <스플릿>에서는 생계형 도박 브로커 주희진 역을 맡았다. 이정현의 영화 중에서는 처음으로 명랑하고 쾌활한 모습의 캐릭터. 그러나 너무나 평범하고 전형적인 '꽃받침 여주'에 가까운 캐릭터라 팬들로부터 "이정현답지 않은 선택"이 아닌가 하는 아쉬움도 많이 나왔다.[28] 반면 이정현 본인은 자신에게 잘 안 들어오는 평범한 역할이라 오히려 매력적이었고 너무나 편안한 마음으로 촬영을 해서 좋았다고 밝혔다.

2017년 7월 개봉한 류승완 감독의 영화 <군함도>에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가 고초를 겪는 조선 여인 오말년 역으로 출연했다. 촬영 당시 역할을 위해 체중을 36.5kg까지 감량한 것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동년 9월 개봉한 문소리 감독/주연의 영화 <여배우는 오늘도>에는 카메오로 잠깐 등장한다.

3.1. 평가[편집]

이정현은 예전 <꽃잎> 때 신들린 듯한 연기를 했는데 그게 이 영화에도 그대로 드러난다. 낚시에 걸려 나온 장면은 직접 다 연기를 한 것인데 영화를 보면 너무 연기를 잘해서 꼭 ‘더미’를 가져다놓고 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정말 놀라운 배우다.


박찬욱[29]

이런 배우가 그동안 작품을 많이 안 했다라는 건 일종의 관객들에 대한 직무유기 아닙니까?


공형진[30]

순수와 광기를 오가는 배우 이정현의 에너지가 영화의 팔 할이다.


송경원[31]

이정현씨는 어릴 때부터죠? 작은 몸에서 놀라운 폭발력을 지닌 정말 무서운 연기자입니다.


김혜수[32]


광기, 폭발력에 있어서는 그야말로 천부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다. 이정현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꽃잎>과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도 이런 면이 제대로 발현된 작품. 그러면서도 정반대의 어린아이나 소녀같은 순수함을 동시에 표현하는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 광기 연기라고 해서 단순히 소리를 빽빽 지르고 감정을 폭발하는 것으로 끝나는게 아니라 완급을 조절하며 입체적인 면모를 드러낼 수 있어야 하는데, 이정현의 장점이 바로 이 부분이다. 이러한 야누스적인 면에 있어서는 이정현만한 배우를 찾기 어렵다는 것이 대체적인 평가. 여러가지의 복합적인 감정이 교차하는 세밀한 심리 연기도 최고 수준으로 해내며, 오랜 가수 활동으로 다져진 화면 흡인력도 대단히 좋다.

이런 임팩트있는 강렬한 연기가 관객들의 인상에 깊게 남아 있지만, 일상적인 생활연기나 능청스러운 코믹연기도 잘 해낸다. 신인배우 시절에는 강약조절이 미숙하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지만, 30대에 들어서는 <범죄소년>, <스플릿> 등의 작품에서 철부지 미혼모 역할이나 허당 브로커 역할을 모자람없이 연기해 내며 호평을 받았다. 부드러운 감성 연기나 눈물 연기도 수준급. 극을 이끄는 주인공으로서든, 주인공을 서포트하는 역할로서든, 혹은 씬스틸러로서든 연기력 면에서는 빠지는 데가 거의 없는 완성형 연기파 배우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영화에서 보여주는 연기의 깊이에 비해서는 드라마에서는 연기가 다소 얕게 나온다는 평이 있다. 이정현은 연기할 때에 캐릭터 연구와 몰입에 많은 시간을 소요하는 편인데,[33] 드라마는 굉장히 스피디하게 촬영을 해야 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또한 특유의 하이톤 때문에 특히 무거운 발성이 필요한 사극에서는 목소리가 튀는 문제점이 발생한다.[34] 현대극에서도 속삭이듯이 조곤조곤 대사를 치는 스타일인데, 조용한 영화관에서 보게 되는 영화에서는 관객의 몰입도를 높이는 장점으로 작용하지만 시청 환경이 상대적으로 산만한 TV 드라마에서는 대사가 잘 들리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다. 여러모로 드라마보다는 영화에 최적화된 배우라는 평.

3.2. 필모그래피[편집]

3.2.1. 영화[편집]

개봉 연도

제목

배역

비중

비고

1996년

꽃잎

소녀

주연

데뷔작

1997년

마리아와 여인숙

18세의 마리아

특별출연

1999년

침향

임선희

주연

2000년

하피

송수연

주연

2011년

파란만장

무녀

주연

단편

2012년

범죄소년

장효승

주연

2014년

명량

정씨 여인

조연

2015년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

정수남

주연

2016년

스플릿

주희진

주연

2017년

군함도

오말년

주연

여배우는 오늘도

본인

카메오

2018년

밀약

서주하

주연

두번 할까요?

박선영

주연

3.2.2. 드라마[편집]

국내 드라마

방영 연도

방송사

제목

배역

비중

비고

1996년

MBC

가슴을 열어라

유서영

조연

일곱개의 숟가락

조정혜

주연

1998년

KBS

야망의 전설

이정희

조연

SBS

어느 날 갑자기

은미

주연

2부작

2001년

SBS

아름다운 날들

김세나

주연

2008년

KBS

대왕 세종

이선(신빈 김씨)

주연

[35]

2015년

SBS

떴다! 패밀리

나준희(수잔 존슨)

주연


해외 드라마

방영 연도

국가

방송사

제목

배역

비중

비고

2003년

중국

베이징TV

미려심령

쳉후이

주연

2006년

일본

TBS

윤무곡-론도

최윤희

조연

2010년

중국

CCTV

공자

난쯔

주연

3.2.3. 뮤직비디오[편집]

발표 연도

아티스트

곡명

비고

1998년

조트리오

눈물 내리는 날

1999년

구피

게임의 법칙

조PD

Fever

피쳐링

2012년

몽니

소년이 어른이 되어

[36]

2016년

지선

오늘, 우리

[37]

4. 예능 활동[편집]

활동 기간에 비해 예능 프로그램의 출연은 적은 편이다. 출연해도 거의 단발성 게스트 정도. 가수 데뷔 초기에는 신비주의 컨셉을 고수하느라 예능 출연 횟수는 손에 꼽았고, 후에도 잦은 해외활동 및 바쁜 스케줄로 인해 국내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들다. 그나마도 토크 위주의 프로그램에 출연하게 되면 늘 주제가 한정적이고[38] 버라이어티 계열 예능에서는 거의 볼 수 없었다.

2009년 <무한도전> '올림픽대로 듀엣가요제'에서 전진과 듀엣 '카리스마'로 출연. 당시 심사위원인 무한도전 에어로빅 특집을 도와(?)준 염정인씨는 그룹명 카리스마를 마음에 들어했다. 성적은 금상. 작곡은 SG워너비 전담(?)인 안영민씨. 당시 안영민이 최초 샘플곡을 들려주는데 이정현이 3초만에 커트 쳐버리자 기계가 뻑나가는 모습이 잠시 화제가 되기도 했다.

2014년 12월 ~ 2015년 1월 <무한도전> '토토가'에 출연, 변함 없는 초 절정 동안을 보여주며 무도 멤버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게다가 당시 등장한 멤버들이 동갑인 하하를 제외하고 전부 오빠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오빠라고 부르는데 이 말투가 오빵~이라 멤버들이 정신을 차리지 못하며 정신 차려. 당신들 유부남이야 그들의 시선을 한 눈에 사로잡았다. 장이 하지만 귀여운 모습만 이슈되지는 않았고 아이디어북[39]을 내놓으면서 무대 설정에 대해 진지한 고찰을 하는 등 가수로서도 성실한 모습을 보였다. 참고로 이 날 방송에서는 3천만원짜리 에르메스 버킨백을 카페 바닥에 서슴없이 내려놓는 모습을 보여 많은 여성 시청자를 멘붕에 빠뜨렸다.[40] 또한 입고 나온 야상 역시 1천만원대의 제품[41]이다. 그리고 본공연에서는 소품 하나하나 꼼꼼히 신경 쓰는 공연 장인의 모습을 보여줘 무대에 대한 애착이 큰 것을 엿볼 수 있었다. 여담으로 화면에 잡힌 이정현의 방 거실에는 플레이스테이션 3가, 그것도 참치가 있어 뭇 겜덕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기도 했다. 게다가 더해서 레고까지, 그것도 테크닉 42009가 방부 처리의 비법은 덕질? 아무리 리마스터링 이라지만 음원조차 방부제 느낌이 난다 시대를 앞서가다못해 초월한 음원 본방송에서 와의 복장을 입은 모습이 1999년 데뷔 당시 모습이랑 거의 차이가 없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2015년 6월 <1박 2일> '여자사람친구 특집'에 정준영의 친구로 출연했다. 프로그램에선 돈 많은 회장님 + 애교 기믹으로 나왔다. 저녁 식사 복불복 커플 노래자랑에서는 백지영, 택연의 '내 귀에 캔디'를 불렀는데 물을 끼얹는 퍼포먼스를 보여주어 "역시 이정현"이라는 반응이 나왔다.

5. 팬덤[편집]

다음에 있는 공식 팬클럽 명칭은 'Feel2ya(필이야)'. 중국 팬클럽은 LiveJH, 일본 팬클럽은 Honey Hyony(허니 효니)[42]이다.

풍선 색은 가수 데뷔 때부터 금색(골드). 금색 풍선을 처음 사용한 가수 팬덤이다. 미니 앨범 'Ava Holic' 활동을 들어가면서 풍선과 함께 처음으로 응원봉을 제작했다. 초기 응원봉은 이정현의 영어 예명인 AVA(에이바)를 형상화한 디자인으로 모양으로 제작 되었고, 'V '활동에서는 '와' 시절의 모습을 간략히 나타낸 마크와 영어로 'LEE JUNG HYUN, I LOVE AVA'라고 쓰여있다. 그 외에도 텀블러, 부채'와' 무대용 부채와 무한도전 '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 버전 2개다, 달력, 전자파차단 스티커 등 아이돌 팬덤에 뒤처지지 않게 활발하게 다양한 굿즈가 발매되고 있다.

팬덤계 사이에선 전설로 꼽히는 팬덤.# 3집 '반' 활동 시절 엠넷 방송에서 고무장갑 응원을 했던 카밀리아보다 한 발 앞선 목장갑 응원목장갑도 굿즈라면 굿즈을 선보였는데 이때 팬은 맨 앞에 앉아있던 4명 뿐이었다. 근데 이 팬 4명이서 웬만한 아이돌 팬덤들 씹어먹은 엄청난 목청을 자랑해서 전설의 응원 영상으로 손꼽힌다. 이 덕분에 방송 카메라도 보고 감동받아 이들을 두 차례나 잡았으며 이후 우스갯소리로 도는 게 '이정현 팬 2명이면 타 가수팬 50명의 목소리를 낼 수 있다'.#

또한 '미쳐' 활동 때는 KBS <뮤직뱅크>에 무대 도중 카메라로 추정되는 마이크가 이정현의 턱으로 돌진해 가격한 사건이 있었는데[43] 해당 방송국 홈페이지에 항의글을 거의 폭주하다시피 보내 서버가 다운되어서 결국 사과문까지 받아낸 전적도 있다.

그런 가운데 역대급 방송사고가 SBS <인기가요>에서 일어났다. 이정현은 3집 굿바이 무대를 위해서 '이정현 히스토리'라는 컨셉으로 무대를 연출했지만 시작과 동시에 음악이 장면과 틀리게 나가거나 역주하거나 또는 멈추거나 또는 잡음이 들리거나 등 사전 녹화분이 씹히기 시작한다.놀란 팬들의 "어어?" 하는 소리까지 들린다 사태 파악을 한 이정현은 황급히 생방 무대준비를 하게 되고 공개방송에 참여한 팬들은 빡침과 울분으로 죽어서도 부를 이름 "이정현!', '이정현!"을 외친다. 잠시 잠잠해지는가 싶더니 또 다시 음악은 중단되고 정체불명의 소리가 들리며 음향사고가 시작된다. 무대의 반 이상이 방송사고... 그냥 이때 사고란 사고는 다 났다고 보면 된다. 그래도 이정현은 노련함을 뽐내며 방송 끝까지 최선을 다한 후 환한 미소와 함께 손을 흔들며 퇴장한다. 방송 후 방송사고 기사가 나왔고, 기사 내용에는 '"얼마동안 팬들을 만나지 못할것 같아 고별무대를 신경써서 준비했는데, 사고로 준비했던것을 보여주지 못해 아쉽다."며 울음을 터뜨려 주위를 안타깝게 했습니다.'라는 기사 내용이 담겨 있었다. 이에 이정현의 팬들은 즉각적으로 SBS에 항의하며 정식사과를 요구하였다. SBS <인기가요> 측은 "HDTV용 테이프 레코더가 원인불명의 오작동을 일으켜 잠시 방송이 중단됐다"고 해명하며 이정현과 팬들에게 사과하는 차원에서 3집 활동 굿바이 무대를 일주일 늦춰 다시 방영해 주기로 하였다. 하지만 일주일을 기다린 <인기가요>에서는 아무런 언급도 없이 굿바이 무대를 방영해주지 않았다. 방송사고에 항의하다 재방영 소식을 듣고 다소 누그러졌던 이정현의 팬덤 '필이야'는 크게 분개하였고 "어떻게 가수와 팬을 이렇게 무시할 수 있느냐", "상황을 설명하고 공개사과하지 않을 경우 엄청난 비난을 감수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인기가요>의 연출자 남승룡 PD는 "사실 고별무대 녹화장면을 또다시 내보내기로 했다는 말은 이정현 측으로부터 퍼져나간 얘기로 안다"고 또 한번 필이야의 생존 확인을 시켜주는 발언을 하였다. 2번씩이나 이정현과 팬들을 우롱하며 거짓 약속과 더불어 오리발을 시전한 <인기가요>에 대해 단단히 화가 난 팬들은 <인기가요> 홈페이지는 물론 전화, 메일 등에 연일 항의와 비난으로 또 한번 폭주하였고 결국 <인기가요> 홈페이지 서버를 마비시켜 버렸다. <인기가요>는 4집 컴백 무대를 화려하게 해주겠다는 말을 했었는데 그냥 말을 하지마쇼

'V' 활동 당시 크레용팝 팬덤과 마찰이 일어날 뻔 했다. 엠넷 무대에서 벌어진 사건으로 이정현의 'V' 무대가 시작됐는데 팝저씨들의 "크! 레! 용! 팝!"을 외치는 소리가 그대로 전파를 타서 논란이 되었는데 알고 보니 이정현의 무대는 사전녹화본으로 녹화본이 틀어진 상황에서 실제 무대 위에선 아직 크레용팝이 있는 상태였고 그때 응원 소리가 이정현의 무대에 섞여 들어간 것이었다. 크레용팝의 팬덤은 사과의 의미로 이정현 'V'의 노래 응원법을 외워 타 무대에서 응원해주는 것으로 훈훈하게 마무리되었다.

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 공연에서는 '와' 부채의 축소판 600개를 제작하여 관객에게 미리 나눠줬고 이정현이 '와' 를 공연할 때 관객들이 이 부채를 들고 이정현의 춤을 따라하면서 공연장을 한껏 달구는 데 성공. 역시 가수나 그 팬이나 클래스는 영원한 듯.

6. 트리비아[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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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0월 27일 더 서울 어워즈에서의 모습)

1990년대까지만 해도 얼굴만 보면 나이에 비해서 상당히 성숙한 노안 외모였지만 30대가 된 2010년대 이후엔 오히려 나이에 비해 굉장한 동안미모를 뽐내고 있다. 어렸을때보다 나이 들어서 오히려 동안이라는 소리듣는 케이스. 두시탈출 컬투쇼에 출연했을 때 한 청취자가 동안의 비결을 묻자 "담배를 안 피워서 그런가?"라고 대답하기도. 담배 대신 방부제 잡수세여? 무엇보다 피부가 타고났다는 평. 2015년작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에서는 민낯으로 잠자는 얼굴을 화면 가득히 클로즈업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피부가 아기 피부 뺨치게 깨끗해서 관객의 탄성을 자아냈을 정도. 또한 극중에서 교복을 입고 고등학생 연기를 하는데 아무런 위화감이 없다(...) 물론 본인은 데뷔 이후 매일같이 팩을 하고 매주 피부관리실을 빠지지 않고 가는 노력을 한다고 말했다.

3인칭화 말투도 잘 쓴다. 지금은 그다지 잘 쓰는 것 같진 않지만 20대 초반에는 팬들한테 "정현이는요, 여러분을 사랑해요."라고 인사할 정도로 3인칭화 말투를 많이 썼다. 한때 이정현 성대모사 도전하는 연예인들이 자주 써먹던 대사이기도 하다.

바비인형 덕후로 알려져 있다. 집에 꽤 많은 양의 바비인형을 콜렉팅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본인도 이걸 잘 활용해서 '줄래'와 'V' 뮤직비디오 등에서 바비인형을 이용한 연출을 하기도 했다.

가수활동 초기 CF에서는 주로 큐트한 이미지로 밀고 나갔는데, 조성모와 연인 컨셉으로 출연한 KTF n016 CF에서 "잘자! 내 꿈 꿔~!"라고 메시지를 남기는 대사가 공전절후의 유행어가 되었다.#[44] 이 CF 때문에 조성모와 열애설이 터지기도 했다.

이정현의 가수로서의 활발한 활동은 그녀의 연기력이 큰 일조를 하였다. 지금이야 다시 보면 손발이 오그라드는 '바꿔'의 무대의상[45]과 안무마저 당시에는 카리스마 여전사라며 평가받을 수 있을 정도로 강렬한 눈빛 연기와 무대 장악력을 보였고, 앨범 때마다 수많은 컨셉의 변화를 줬음에도 전혀 무리없이 소화하고 가요의 중심에서 멀어지지 않으면서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한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와' Live 무대 (1999년)
'달아달아' + '아리아리' Live 무대 (2003년)

절륜한 가창력까진 아니더라도 자신의 하이톤을 댄스 음악에 맞춰 이 정도까지 라이브로 소화할 수 있던 여성 가수도 그렇게 많지는 않았던 시절이었고[46] 끊임없이 새로운 걸 보여주며 대중이 자신에 기대하는 요구를 만족시키던 이정현은 한 시대를 풍미한 여성 솔로 댄스 가수로서 부족함이 없었다.

각 곡에 대한 무대 컨셉과 그에 따른 의상 컨셉 등을 직접 고안하고 프로듀스하는 모습들 때문인지 '한국의 레이디 가가'라는 수식어가 붙기도 하는데, 실제로 아리랑 TV에서 했던 인터뷰를 보면 '와'의 핵심 컨셉트였던 동양적인 분위기, 외눈박이 부채, 새끼손가락 마이크 등을 프로듀서가 아닌 이정현이 직접 고안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오히려 이를 반대하는 프로듀서랑 대판 싸웠다고 사실 톡깨놓고 보면 레이디 가가의 데뷔보다도 10년을 더 앞서서 이런 무대를 선보인 것이니 '한국의 레이디 가가'가 아니라 레이디 가가가 '미국의 이정현'이라고 해야 맞을 판.

이러한 의상은 이정현의 언니가 일일이 직접 제작한 것이었다. '와'의 콘셉트는 우리나라 전통 의상에서 따온 것인데, 그래서 우리나라 전통 의상을 주제로 한 서적 선비와 피어싱에 긍정적으로 언급되기도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활동 당시 KBS에서는 복장 규제를 당했는데, 이정현이 착용한 대형 비녀가 폭력적이라는 이유에서였다. 믿기지 않겠지만, 해당 서적의 213페이지에 그렇게 기술되어 있다. 당시 네티즌들은 그럼 사극도 방송 금지하라라면서 해당 방송사를 비웃었다. 오래 전 사건이라 기사를 찾아보기가 쉽지 않지만 당시엔 공중파의 후진성을 보여 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거론되며 논란이 일었다. 사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연예인 패션 규제가 매우 엄격했다. 지금이야 타투만 가리면 되지만, 당시에는 PD들의 기분에 따라 머리 염색이나 피어싱도 금지 대상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 남자 아이돌의 필수 아이템인 아이 라인이나 세미 스모키 메이크업은 상상도 못하던 시절이었다.

표절 많이 당하는 한국가수
이정현 이탈리아 가수에게 표절당하다

당시에는 한국가수들이 외국의 곡들을 무단 표절했던 일이 비일비재했는데 이정현은 반대로 외국에서 그녀의 곡을 따라한 표절곡들이 많이 있었다. 그 중 대표적으로 1집 '와'를 이탈리아 가수 Bandido가 'Vamos Amigo'란 곡으로 표절한 사례가 있다.

이 곡은 아예 이탈리아 가수 저작권으로 되어 있어서 오히려 '와'가 표절이라는 의혹이 일기도 했다. 그래서 국제변호사가 선임되어 500만 달러(60억원) 정도의 손해배상 청구를 계획하기도 했으며, 결과는 저작권라이센스를 구입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되려 '와'도 표절논란이 있는데 브레이브하트 OST(1995)와 DJ Sakin & Friends의 'Protect Your Mind'(1998)을 각각 표절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다. 참고로 작곡가는 최준영이며 그 이전에도 룰라의 '날개잃은 천사'로 Shaggy의 'Oh, Carolina'를 표절한 전력이 있는지라 의심이 간다.

2004년 일본에 진출할 때 홍백가합전에서 데뷔무대를 가졌는데, 당시 이정현은 붉은색의 한복을 입고 출연하였다. 이정현의 말에 따르면 당시 기모노를 입고 출연해 달라는 제작진의 요청[47]을 받았지만 그냥 한복을 입고 생방송에 나갔다고 한다. 논란이 일어날 것을 각오하고 한 행동이었지만 의외로 현지에서도 반응이 좋았다고. 이후 이정현은 해외에서의 공식행사에서는 지속적으로 한복 코드의 드레스를 입고 참석하고 있다.http://www.ppomppu.co.kr/zboard/view.php?id=freeboard&no=4863590

LG 트윈스에서 2차례 시구를 했다.


2005년 8월 25일 치바 롯데 마린즈에서도 시구를 한 적 있다. 그 당시 치바롯데에서 이승엽이 뛰고 있었고, 당시 주전 3루수 이마에 토시아키가 이정현의 노래를 워낙 좋아해서 응원가로 '와'를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 그래서 이정현은 치바롯데에서 이마에의 유니폼을 입고 시구했었다.

당신은 베토벤을 죽였습니다의 실제 사례자가 될 뻔 했다. 2000년대 초반 모 매체의 기사에 따르면, 어머니가 그녀를 임신했을 당시 노산[48]이었기 때문에, 낙태를 고민했다고 한다. 지금이야 30대 후반 임산부가 흔해서 노산 축에도 들지 못하지만, 저 당시 의학 수준으로는 위험성이 컸으며, 이미 네 명의 자녀가 있어서 육아 부담도 심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언니들에게 귀여움을 받으면서 성장해서 가정 분위기는 화목했다고 한다.

2017년 바나나컬쳐엔터테인먼트와 전속계약을 맺으면서 지금까지의 가수 및 배우 활동과 함께 소속사가 준비하고 있는 신인 아이돌의 프로듀서로서도 활동할 예정이라고 한다.

7. 수상 내역[편집]

수상 연도

시상식

부문

작품

1996년

제34회 대종상

신인여우상

꽃잎

제16회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신인배우상

제17회 청룡영화상

신인여우상

1997년

제2회 씨네21 영화상

신인배우상

1999년

MBC 10대가수가요제

30세 미만의 국민이 뽑은 10대 가수상

신인가수상

KMTV 가요대전

신인가수상

Mnet 뮤직비디오 페스티벌

댄스가수상

신인가수상

SBS 가요대전

신인가수상

제14회 한국영상음반대상 골든디스크

신인가수상

제10회 서울가요대상

신인상

2000년

KBS 가요대상

본상

SBS 가요대전

본상

KMTV 가요대전

본상

제15회 한국영상음반대상 골든디스크

본상

제11회 서울가요대상

본상

2001년

KBS 가요대상

본상

SBS 가요대전

본상

KMTV 가요대전

본상

서울가요대상

본상

2002년

제17회 한국영상음반대상 골든디스크

인기상

SBS 가요대전

본상

KBS 가요대상

본상

KMTV 코리안 뮤직 어워드

올해의 가수상

제9회 대한민국 연예예술상

신세대 가요 가수상

2003년

KBS 가요대상

본상

2004년

정보문화의 달

정보통신부장관 표창

제55회 일본 NHK 홍백가합전

본상

2005년

제12회 대한민국 연예예술상

한류올스타상

2006년

중국 차이나 패션 어워즈 (CFA)

한·일 베스트 드레서상

중국 QQ 성광대전 시상식

최고 인기 여가수상

중국 TOM 영요 시상식

최고 인기 여가수상

2007년

중국 CCTV 동남경박 시상식

최고 인기 여가수상

2012년

제7회 중국 화정상

아시아 최고 인기대상

2013년

Mnet 아시안 뮤직 어워드

레드카펫 특별상

2015년

제19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WTUF 중국의 밤 한·중 문화교류상

대한민국 문화관광산업대상

한류스타대상

한국영화아카데미 올해의 배우상

경국지색상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

제36회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

2016년

제3회 들꽃영화상

여우주연상

한국영화아카데미 十歲傳(십세전)

독립영화부문 특별공로상

2017년

제1회 더 서울 어워즈

영화부문 여우조연상

군함도

제25회 대한민국 문화연예대상

영화부문 여자 최우수연기상

제6회 한국영화배우협회 스타의 밤 시상식

대한민국 톱스타상


[1] 명덕여자고등학교 재학중에 선생님의 소개로 영화 <꽃잎> 오디션을 보았다고 한다. 그러나 오디션 합격 후 연예활동으로 인해 수차례 전학을 하였으며 최종적으로는 성지고등학교를 졸업하게 되었다.[2] 관련기사[3] 2014년 ‘무한도전토토가에서 출연 당시 소개문구.[4] 독창적이고 화려한 무대 퍼포먼스를 선보이는 가수라는 점에서 붙은 수식어. 사실 이정현이 레이디 가가보다 10년 가까이 앞서 가수로 데뷔했기 때문에 선후가 바뀐 표현이긴 하지만, 이렇게 많이 비교되고 있다. 또한 레이디 가가의 충격적인 등장 후 ‘한국에는 이정현이 있었다’는 식으로 이정현의 퍼포먼스가 재평가를 받은 면도 있다. 그 외에도 가수와 배우 양쪽으로 성공적인 커리어를 이루고 있는 점, 단신(150cm대)이라는 점도 비슷한 면. 2009년 레이디 가가 내한 공연 당시 이정현이 오프닝을 맡기도 했다.[5] 이 무렵 가요계는 여성 솔로 가수들이 강세를 보이고 있었는데, 2000년에는 이정현, 김현정, 백지영, 박지윤, 제이의 다섯 사람만으로 구성된 <디바 BIG 5>라는 특집 예능 프로그램이 단독으로 방송되기도 했을 정도.[6] 중국에서는 '이정현 핸드폰', '이정현 냉장고' 등이 출시되었을 정도. 이때 돈을 많이 벌었는지 3천만원짜리 에르메스 버킨백을 방송에 들고 나온 것이 화제가 되기도 했고, 2017년 현재 강남구 도곡동의 최고급 초고가 주상복합 아파트타워팰리스에 거주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7] 이 감독의 커리어는 정말 범상치 않다. 한국 영상자료원 선정 한국 영화 best 100안에 들어가는 작품인 <경마장 가는 길>, <우묵배미의 사랑>, 베를린 영화제 알프레드 바우어 상 수상작 <화엄경>부터 익히 알고 있는 희대의 괴작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까지 정말 다이나믹하다. 해당 항목 참조.[8] 당시 영화 스탭과 관계자들은 대부분 이정현의 캐스팅을 반대했었는데 이유는 연기 경험이 전혀 없었기 때문. 당시 한국 영화계에서 장선우 감독의 명성은 대단하던 시절이었고 <꽃잎>은 당시로서는 상당한 자본이 들어간 대작인데다 소재부터가 기획 당시부터 큰 주목을 받던 작품인데, 그런 영화의 주인공 역이니 연기 좀 했다는 아역 연기자들이 오디션에 몰려들었던 터라 더욱 그랬다. 그러나 시나리오상 소녀의 이미지와 딱 들어맞는 이정현의 외모와 범상치 않은 끼를 높이 평가한 장선우 감독이 이정현을 적극 밀어 결국 캐스팅되었다. 막상 첫 촬영이 시작되자 이정현은 경험 부족이 여실히 드러나며 수많은 카메라 앞에서 얼어붙고 말았고 장선우 감독은 대본을 집어던지며 본인이 뽑아놓고선 "쟤 누가 뽑았어!"라고 소리치며 첫 촬영을 접어버렸다. 이에 충격을 받은 이정현은 그날 밤 숙소에서 울다가 '연기는 어차피 잘 못하는게 당연하니 연기를 하려고 하지 말고 그냥 내가 그 소녀 자체가 되자'고 결심, 다음날부터 평소에도 미친 소녀처럼 지내기 시작했고 이후로는 장선우 감독도 더이상 터치하지 않았다고. 오히려 촬영기간 내내 그렇게 지내는 이정현에게 장선우 감독과 문성근, 설경구 등 출연 배우들이 "촬영 끝나면 원래의 너로 돌아가야 된다"고 수시로 주의를 주었다고 한다.[9] 이때 모난 돌로 어깨부터 허리까지 전면을 대각선으로 긁으며 자해하는데, 야한 장면과는 거리가 멀며 정말 소름끼친다.[10] 영화상에서는 편집을 하지 않고 넘어갔기에 절뚝이며 문성근을 쫓아가는 이정현을 보며 연기력이 일품이라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문성근이 처음 던진 작은 돌과는 달리 2번째로 던진 돌은 화면에서도 뚜렷이 보일 정도인데 약 어른 주먹의 절반 정도 크기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영화를 주의 깊게 보면 알 수 있겠지만 처음 문성근이 던진 돌에 이정현이 진짜로 깜짝 놀라서 왼쪽으로 피하고 문성근은 이정현을 피해서 재차 짱돌을 던진다. 그러나 진짜 놀라버린 이정현은 갈팡질팡하다 문성근이 돌을 던진 방향으로 이동, 다리에 정확히 들어맞는다. 때문에 다리에 가해진 심한 충격으로 쓰러지게 되고 다리에 맞은 돌은 이정현의 키만큼 튀어오른다.[11] 원래는 CG로 깨진 모습을 처리할 예정이었다고 한다. 즉 잘 깨지는 특수유리가 아닌 진짜 기차 유리를 깬 것.[12] 같은 사례로는 1990년 청룡영화상에서 <장군의 아들>의 박상민, 1997년 청룡영화상에서 <접속>의 전도연, 2012년 대종상에서 <은교>의 김고은, 2017년 대종상에서 <박열>의 최희서 정도가 있다. 이 중에서도 이정현의 케이스처럼 완전히 생애 첫 연기작품이었던 것은 박상민 한 명이며 이정현처럼 10대의 나이였던 배우는 없었다.[13] 80년대 장선우 감독과 함께 <서울예수>를 제작했다.[14] 심혜진, 김상중, 신현준 주연. 영화진흥공사 시나리오 공모전에서 대상을 수상한 시나리오로 제작된 영화이다. 당시 <은행나무 침대>로 여성들의 우상으로 자리매김했던 신현준이 부모의 불륜으로 폐쇄적인 인간이 되어버린 역할을 연기하여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김상중은 지능지수가 7살인 형 역할로 나왔다. 심혜진은 이들 형제를 유혹하여 여인숙을 차지하려는 역할을 맡았다. 시대적 배경의 어두운 면과 소외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부각시켰다.[15] 왜 파격적이냐 하면 개봉 시기와 그녀의 출생년도를 보면 알겠지만 겨우 18살이었던데다가 학년으로쳐도 고3 수험생이었기 때문이다.[16] 하지만 파격적인 걸로 치면 이미 전작인 <꽃잎>에서 훨씬 더 했었기 때문에.. 장면 자체의 강도도 그 때가 더 셌고 이정현의 나이도 그 때(촬영 당시 고1)가 더 어렸다. <마리아와 여인숙>에서는 별다른 노출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고.. 다만 소녀에게 가해지는 학대와 폭력에 초점이 맞춰진 <꽃잎>에 비해 <마리아와 여인숙>이 에로틱하긴 하다.[17] 영화제에만 출품하고 평이 좋지 않아서였는지 정식 개봉하지 못하고 있다가 그 이후 이정현이 가수로 뜨자 2000년에 이정현이 주인공인 것처럼 홍보하며 개봉했으나 흥행은 참패. 이 영화에서 이정현은 이세창이 맡은 남주인공의 과거 회상씬에 10여분 정도 나오는 것이 전부다. 전형적인 스타 묻어가기 마케팅이었으나 결과는.. 당시에도 이정현은 이에 대해 대놓고 불만을 표했다.[18] 공포 영화로, 이정현이 가수로 뜬 다음 출연한 첫 영화기도 하다. 그 당시 등장한 듀오백 의자도 이걸 밀었지만 금새 묻혔다. 하피는 해괴한 연출력으로 유명해져 2000년대 초반 망한 수많은 한국 호러영화들 중에서도 나름 인지도는 있는 편이다.[19] 배우로서의 이정현은 드라마보다는 영화에 강하다는 이미지가 있지만, 이 시기까지는 오히려 영화보다 드라마 성적이 좋았다. 영화는 데뷔작 <꽃잎> 외에는 모두 흥행에 실패하고 영화 평도 대체로 좋지 않았던 반면, 드라마는 <일곱 개의 숟가락>, <야망의 전설>, <아름다운 날들>이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고 2부작 단편 <어느 날 갑자기>도 수작이라는 평을 받았다.[20] 최지우, 타케노우치 유타카 주연[21] 이정현 본인도 흑역사로 생각하는지 이후에도 이 드라마를 언급하는 일이 거의 없다.[22] 영화 <공자: 춘추전국시대>와 혼동하는 경우가 있으나 이정현이 출연한 것은 드라마.[23] 이 작품 이후 박찬욱과의 인연이 이어지고 있다. 2013년 'V'의 뮤직비디오를 박찬욱, 박찬경 감독이 노개런티로 찍어주기도 했고, 이후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와 <군함도>에 이정현이 출연하는 데에도 박찬욱의 강력한 추천이 있었다고 한다. 이정현도 박찬욱에 대해 다시 연기를 할 수 있게 해 준 은인으로 생각한다고.[24] 이 영화가 들꽃영화상이 만들어지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항목 참조.[25] 이 당시 공형진이 본인의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이정현을 두고 "이런 배우가 그동안 작품을 많이 안 했다는 것은 관객에 대한 직무유기"라고 하기도 했다.[26] 사실 이정현의 필모를 보면 배우로서 최고의 성장기라 할 수 있는 20대 시절을 통째로 날렸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01년 드라마 <아름다운 날들> 이후로는 중국, 일본 드라마에서만 몇년에 한번씩 가뭄에 콩나듯 연기했을 뿐이고, 영화는 아예 없었으며, 유일한 국내드라마 출연작이었던 드라마 <대왕 세종>에서는 별 활약도 못하고 성대결절로 중도하차하고 말았다. 중국 드라마는 다른 배우들은 중국어로, 이정현만 한국어로 연기한 후 전문성우가 중국어 더빙을 덮는 식으로 찍은 것이었으니 반쪽짜리 연기일 수밖에 없었고, 결국 20대 내내 제대로 된 연기활동이 사실상 없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27] 다만 이정현이 맡았던 정씨 여인 캐릭터 자체는 평이 갈렸다. 가장 인상적이고 눈물나는 장면을 연출했다는 호평도 있었던 반면, 엄연히 전쟁영화에서 극의 긴장감을 끊고 작위적인 감동을 주려는 불필요한 캐릭터였다는 비판도 많았다.[28] 이정현이 빨간 립스틱에 빨간 하이힐, 가짜 명품으로 치장해 도박판에서 허세를 부리는 설정을 넣는 등의 노력을 하긴 했으나..[29] 영화 <파란만장> 인터뷰(#) 중.[30] 영화 <범죄소년> 개봉 당시 <공형진의 씨네타운>에서.[31] 씨네21 기자. 영화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 평점 중.[32] 2015년 청룡영화상 시상식 중.[33] 단적인 예로 출연 분량이 짧았던 영화 <명량>에서도 촬영 전 열흘 이상 집에서 칩거하며 캐릭터에 몰입했다고 한다. 이런 스타일 때문에 다작이 어려운 편.[34] 이정현과 비슷한 톤을 가진 전도연도 무협영화 <협녀, 칼의 기억>에서 유사한 문제를 노출한 적이 있다.[35] 성대결절로 중도하차[36] 영화 <범죄소년> OST[37] 영화 <스플릿> OST[38] 어머니 무당설이 가장 유명한데, 이는 데뷔작이었던 영화 <꽃잎>에서 보여준 신들린 듯한 연기와 더불어, 1집 앨범의 한복 무대의상, 비녀머리, 파격적인 무대와 대비되는 일상에서의 신비주의 컨셉, 그리고 개인적으로 즐겨 피우던 향초 등이 겹쳐지면서 와전되었다. 당시엔 전혀 듣도 보도 못한 새로운 캐릭터였으니 오해를 불러 일으킬 만도... 이 외에도 3집 타이틀곡 '미쳐'의 뮤비 백스토리나, 중국의 원조 한류스타, 동안의 비결 등, 하나같이 기사에서 늘상 다뤄 왔던 얘기들이라 팬들 입장에서도 조금은 식상하다는 의견.[39] 방송을 보면 알겠지만 거의 김장훈 콘서트 수준의 무대를 생각하고 있었다. 이정현의 설명을 들은 무도 멤버들이 '이걸 어떻게 만들지?' 식의 표정을 지을 정도.[40] 게다가 이정현은 에르메스 버킨백을 분홍, 초록, 주황, 검정으로 4개나 가지고 있다.[41] 21드페이[42] 이정현의 '현'을 따왔다.[43] 하지만 이정현은 턱에 맞고도 대단한 프로 정신으로 무대를 끝까지 이어나갔다. 흠좀무. 이 사건은 컬투쇼 라디오에 동반 출연했던 코요태의 신지가 실황을 언급한 적이 있다. 괜히 '독한 여자라 하지마'란 가사가 들어간 게 아니다[44] 후속작 CF다.[45] 심지어 이정현 본인조차 나중에 '오버했다'고 인정할 정도. 자료화면을 지워버리고 싶다고.[46] 다만 이정현은 두성이나 반가성 등의 발성 요령이 없이 진성(생목)으로 불러버리는 타입이라 목 컨디션에 따른 기복이 있는 편이었다. 보컬 트레이닝을 받을 수도 있었지만 본인의 음악에는 이런 날 것의 느낌이 더 어울린다며 받지 않았다고 한다.[47] 기모노를 '강요'했다고 와전되는 경우가 있는데 평범한 '요청'이었다고 한다. 다만 이정현이 당시 한국에서는 정상급 스타였지만 일본에서는 완전한 신인일 뿐이었고 더구나 홍백가합전이라는 일본의 국민적 프로그램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제작진의 평범한 요청이라고 해도 이를 거절한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48] 당시 36세. 참고로 아버지는 이때 47세로 무려 11살 차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