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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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한대행
이인제

권한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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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제

당명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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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명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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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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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160617_경기도BI_메인이미지.jpg



파일:국회상징.png 대한민국 국회의원 (경기 안양시 갑)

선거구 분리
이택돈[A]
윤국노[A]

제13·14대
이인제
[3]

선거구 개편
권수창[4]

파일:국회상징.png 대한민국 국회의원 (충남 논산시·금산군)

제15대
김범명

제16대
이인제

선거구 개편
이인제[B]

파일:국회상징.png 대한민국 국회의원 (충남 논산시·계룡시·금산군)

선거구 개편
이인제[B]

제17~19대
이인제

제20대
김종민

파일:external/www.anewsa.com/20120727171521.jpg

이름

이인제(李仁濟, Lee In-je)

출생일

1948년 12월 11일 (만 69세)

출생지

충청남도 논산시 부창동

본관

전주 이씨, 익안대군파[7]

종교

무종교

가족

배우자 김은숙, 슬하 2녀

학력

서울대학교 행정학 학사

소속 정당

자유한국당

의원 선수

6

의원 대수

13, 14, 16, 17, 18, 19

현직

자유한국당 상임고문

경력

한국UN봉사단 총재
자유한국당 상임고문
대한민국 국회의원
새누리당 최고위원
선진통일당 당대표
자유선진당 비상대책위원장
민주당 상임고문
새천년민주당 최고위원
국민신당 상임고문
제29대 경기도지사(민선 1기)
제10대 노동부 장관
통일민주당 대변인
대전지방법원 판사
제21회 사법고시 합격

공식 사이트

www.ijworld.or.kr

S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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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일생 및 당적 변경사3. 친박 여부
3.1. 친박으로 분류하는 견해3.2. 친박으로 보기 어렵다(혹은 애매하다)는 견해
4. 저서5. 선거 이력6. 기타7. 둘러보기

1. 개요[편집]

"내가 바로 피닉제다!"



불사조, 혹은 피닉제. 조금 길게는 소설 제목에서 따와 당을 마시는 새라고 불리기도 한다. 긍정적인 의미든 부정적인 의미든 상징적인 별명. 이제는 명실공히 자타공인이다.

대한민국정치인. 6선 의원(전 충청남도 논산시 계룡시 금산군 선거구) 출신이다. 판사 출신 노동인권 변호사에서 최연소 노동부 장관과 경기도지사를 역임. 제15대 대통령 선거제17대 대통령 선거에 후보로 나왔으며 제16대 대통령 선거제19대 대통령 선거에 경선 후보로 나온 인물이다. 전 새누리당 최고위원.

2. 일생 및 당적 변경사[편집]

3. 친박 여부[편집]

3.1. 친박으로 분류하는 견해[편집]

이인제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진 상황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을 반대하는 혁신과 통합 보수연합의 공동대표로 머무를 만큼 보통 친박으로 분류되는 편이다. 또한 위안부 협의에 대한 답없는 의견으로 여론이 매우 나쁘며 국정 교과서에 대해서도 그리 반대하지 않는 견해를 가진다라 하는데 자세한 내용 추가바람. 그리고 드디어 박근혜 대통령 탄핵 반대집회에 참가했다. 이로서 대놓고 친박인증 일단 이인제가 역대 인터뷰나 총선에서 했던 말들을 볼 때는 대통령이 무너지면 국가가 위태로워진다[9]고 생각한 듯. 그렇다고 친박이 아니게 되는 것은 아니지만... 친박으로 분류하는 건 과거에 어땠냐보다 지금 어떠냐가 더 중요하다. 예컨대 유승민은 한때 친박이었지만, 지금 그를 친박으로 분류하지는 않는다. 이전 대통령을 그리워하는 이인제를 친박이라 볼 수 있다.

3.2. 친박으로 보기 어렵다(혹은 애매하다)는 견해[편집]

이인제를 친박으로 분류하는 것은 오해의 여지가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친박이라는 표현은 기본적으로 박근혜가 2004년 무렵부터 한나라당의 유력 정치인으로 부상하면서 박근혜 주변에 모이기 시작한 정치인들의 집단을 지칭하는 것이고, 특히 2007~2008년 사이 손학규는 떠나고 이명박과 박근혜가 한나라당의 양대 유력 정치인으로써 첨예하게 대립하기 시작하면서 한나라당 소속 정치인 대부분이 친박과 친이의 양대 계파로 재편성되면서[10] 명확하게 완성된 개념이다. 이 점에서 보면 박근혜가 아직 본격적으로 정치활동을 시작하기도 전인 1997년에 신한국당을 떠나 친이/친박 대립이 격렬하던 시기에는 광야를 떠돌다가(...) 친박계가 친이계를 당권에서 배재하는 데 성공한 2012년에 이르러서야 새누리당에 복귀했지만 당 내에서 중요한 입지를 차지하지 못한 이인제는 애초에 친박/친이 구도에 낄 자리가 없는 인물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사태 이후 탄핵 반대 입장을 보인 김문수나 홍준표 같은 인물들 역시 종종 친박으로 분류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쪽 인물들은 애초에 친박의 반대파였던 친이계에 속하던 인물들이다[11]. 다만, 친박 특유의 가혹한 당 내 숙청때문에 일단 친이계를 당권 경쟁에서 완전히 몰아낸 뒤 친박 내부에서도 두드러지는 인물들이 차례로 배제당하면서 박근혜 실각 시점에서는 오히려 본래 친박계의 쌍벽이던 유승민/김무성이 친박 반대파의 거두가 되고, 미리 숙청당해 견제권 밖이던 친이계의 홍준표, 김문수나 친박도 친이도 아니던 이인제등이 유력 정치인이 모두 밀려나 고만고만한 쪼렙 정치인 외에은 무주공산이 되어버린 친박 세력으로 진입한 것 뿐이다. 이런 식으로 박근혜 실각 이후 들어온 인물들을 분류하여 뭔가 신박한 호칭을 붙여 친박의 한 분류로 재분류하면 모를까, 친박이라는 표현이 기존에 사용되던 의미를 생각하면 이들을 친박으로 분류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한국 현대정치사(특히 보수정당사)에 대하여 잘 모르는 이들이 친박이라는 개념을 단순히 '박근혜 편을 드는 정치인들' 정도로 이해하고 "친박으로 분류하는 건 과거에 어땠냐보다 지금 어떠냐가 더 중요하다." 면서 박근혜 편을 드니 친박이라는 식으로 단순하게 판단해 버리는 경우가 많은데, 친박이라는 개념은 정확히 말하자면 박근혜에 대한 지지를 계기로 탄생한 특정한 계파를 지칭하는 표현이며, 친박, 탈박, 쪽박, 반박, 진박, 잔박, 돌박, 멀박 운운하는 표현들이 자주 사용되는 것 역시 이 친박이라는 '계파'의 변화를 통해 보수정파의 변화상을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 사실 이 친박이라는 개념은 2000년대 중반 이후 한국 정치사(특히 보수정치사)를 설명하는 데 가장 중요한 개념 중 하나인데 이처럼 '특정한 대상을 지칭하는 특정한 표현'의 의미를 함부로 확장시킬 경우 오해를 불러올 가능성이 상당하다[12]. 무엇보다도 그의 당적 변천사를 생각해본다면, 이인제에게 계파는 큰 의미가 없다.

4. 저서[편집]

5. 선거 이력[편집]

연도

선거 종류

소속 정당

득표수 (득표율)

당선 여부

비고

1988

제13대 국회의원 선거 (경기 안양 갑)

통일민주당

29,325 (32.59%)

당선 (1위)

초선[13]

1992

제14대 국회의원 선거 (경기 안양 갑)

민주자유당

39,232 (35.82%)

당선 (1위)

재선[14]

1995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경기도지사)

1,264,914 (40.56%)

당선 (1위)

초선[15]

1997

제15대 대통령 선거

국민신당

4,925,591 (19.20%)

낙선 (3위)

2000

제16대 국회의원 선거 (충남 논산·금산)

새천년민주당

66,957 (65.37%)

당선 (1위)

3선[16]

2004

제17대 국회의원 선거 (충남 논산·계룡·금산)

자유민주연합

42,242 (44.85%)

당선 (1위)

4선[17]

2007

제17대 대통령 선거

민주당

160,707 (0.68%)

낙선 (6위)

2008

제18대 국회의원 선거 (충남 논산·계룡·금산)

무소속

23,595 (27.67%)

당선 (1위)

5선[18]

2012

제19대 국회의원 선거 (충남 논산·계룡·금산)

자유선진당

40,076 (42.36%)

당선 (1위)

6선[19]

2016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충남 논산·계룡·금산)

새누리당

43,898 (42.55%)

낙선 (2위)

2018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충청남도지사)

자유한국당

345,577 (35.10%)

낙선 (2위)


피닉제답게 여기저기 난잡한 정당을 확인할 수 있다. 7선을 바라보면서 단 한번도 같은 이름의 정당으로 총선에 출마한 적이 없다. 총선 이전에, 당장 저 무수한 선거 이력 중 같은 정당명으로 출마한 것이 14대 총선과 1회 지선뿐이다. 사실 이것도 아슬아슬했던 게 1회 지선 1년 뒤 민주자유당이 신한국당으로 당명을 바꿨다. 그리고 결국 자유한국당 타이틀로도 선거에 출마한다.

대선 외의 선거에서는 불패의 정치인이었으나 끝내 20대 총선에서는 살아남지 못했다 하지만, 박근혜 게이트로 새누리당이 박살나면서 이인제에게 재기의 발판이 될 수 있게 되는 것 처럼 보였고, 실제 후속정당인 자한당에서는 원로로서 그럭저럭 입지를 다지고, 7대 지선에서 자신의 지지 기반인 충남지사 후보로 전략 공천되어 다시 불사조처럼 부활할 것처럼 보였지만... 민주당 양승조 후보에게 더블스코어로 30% 가량 뒤처지면서 그의 찬란한 부활의 역사도 쇠락의 길로 접어들 모양이다. 이제 자한당 탈당해서 어디로 갈지 의문이다[20]

6. 기타[편집]

  • 국정 여러분야에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고, 상당히 무게감있는 목소리에 호소력있는 연설능력으로 2000년대 이후에는 연륜을 쌓으며 TV토론으로 자신의 이미지를 바꿀만큼 성장하였다 그 옛날 정치고수들의 면모가 남아 이인제를 그저 매체를 통해 철새정치인으로만 알고있는 사람들은 의외의 모습에 놀라기도 한다. 2007년 대선토론회에서도 그 미미한 존재감과 지지율 속에서도 TV토론평가는 늘 2~3위권이였다.(1위가 못된 이유는 역시 존재감 탓.)[21]

  • 젊은 시절에는, 하단의 노무현 전 대통령의 평처럼 성실함 부문에서 낮은 점수를 받은 적도 있었다. 97년 대통령 선거 당시 일부 유권자들도 비슷한 반응을 보였는데, 그 전년도인 96년에 주류 언론을 통해 타서전[22] 논란이 이는 상황을 보았을 정치인이 이에 대한 대비를 제대로 하지 않고, 자기 책에 나온 내용을 묻는 말에도 제대로 답변하지 못했기 때문. 2007년 대선에는 TV토론에서 유권자들의 점수를 확실히 얻을 만큼 성장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지만, 좀 때늦은 감이 있다.

  • 노무현 대통령은 이인제의 대선출마를 무조건 막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2002년 대권후보 경선에 나섰다고 밝힌 바가 있다. 이인제에 대해서 "재주는 있어보이는데 성실해 보이지도 않고 철학이 있어 보이지도 않는다.", "나는 88년부터 89년까지 이인제 씨와 함께 국회 노동위를 같이 했다. 그 때 이인제 씨는 불성실의 극치였다." 등의 말로 비난을 하기도 했다. 당적을 옮긴 정치인이 대선 후보로 나서게 할 수는 없다는 그의 확고한 논리는 이후 손학규를 비토할 때에도 그대로 쓰였다.

  • 보수주의 - 사회주의[23]의 구도가 아닌 보수주의 - 자유주의의 좌우 구도(이른바 보수 양당제)를 지향한다.# 문제는 이게 지나쳐서 민주당이나 노무현 전 대통령도 사회주의자라고 공격한다(…). 민주당이 그가 있을때에 비해 비교적 좌경화 된 것은 맞으나 여전히 자유주의에 뿌리를 둔 정당이다.

  • 다소 줏대 없어 보이는 정치적 행보로 부정적인 이미지가 있지만 인물 됨됨이에 대해서는 상당히 좋은 평가를 받는다. 바로 위에서 보듯 자신에 대한 조롱섞인 세간의 시선에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가 하면, 과거 변호사 시절에는 억울한 피해를 본 사람을 위해 무료 변론을 해준 적도 있다고. 탤런트 서인석의 지인도 그 중 한 명이며 그래서 현재까지도 선거유세를 같이 지원해줄 정도로 서인석과 절친이다. 나중에 서인석이 찾아가 수임료를 건네자 "한 번 무료 변론한다고 말했으면 그렇게 하는건데 왜 돈을 가져오느냐?"면서 돌려보냈다고 한다. 이 불사조는 착한 불사조다

  • 2007년 대선에 출마할 당시 선거운동 유세차로 대전 관저동 성애노인요양원을 방문하였는데, 한 할머니에게 용돈을 받으며 얼굴이 할머니의 손에 잡혀 흔들리는 등 애취급(?)을 받아 웃음거리로 화제가 된적도 있었다. 관련움짤 이로 인해 '도리도리 이인제', '우쭈쭈 이인제'(...) 라는 별명이 생겨났다. 그래도 피닉제보단 임팩트가 약한 편이다.

  • 글씨체가 나이에 맞지 않게 귀엽다.(...) 17대 대선 후보자 글씨체 다만 이 글씨는 여비서가 대신 쓰다 생긴 일이라는 소리도 있다. 실제로 이인제가 쓴 다른 글을 보면 다소 평범한 글씨체를 보여준다.또다른 글씨체

  • 쑹추위: 대만정치인인데, 정치 인생이 이인제랑 비슷하다. 다만, 쑹추위는 자기가 친민당을 만들고 거기서 옮겨다니지는 않았지만... 중화권 언론에서 쑹추위와 이인제를 놓고 비슷하다고 한 기사도 있었다.

  • 오자와 이치로: 일본의 정치인. 여당과 야당을 옮겨다니며 연명한 행적이 이인제와 흡사하다. 단, 이인제와는 달리 낙선한 적은 없다.

  • 사형제도 폐지에 찬성하는 정치인 중 한 명이다.기사

  • 19대 대선의 tv 토론에서 동성애 관련 이슈가 부각되면서, 제 15대 대선 당시 후보들의 동성애 관련 발언이 재조명 되었는데, 이인제는 당시 '결론을 내리지 못했지만, 그들에 대해 하나의 신성한 인격체로 바라봐야한다.'[24]는 요지로 말한 바 있어 김대중 당시 후보만큼 (혹은 그보다도 더)[25] 진보적인 모습을 보였다. 19대 대선에서 동성애 논쟁을 부추긴 후보가 같은 당의 홍준표 후보였음을 생각하면 의외의 스탠스.

  • 그의 고종사촌 동생 중에서 모 입시학원에서 수학강사를 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 얼굴은 똑같이 생겼지만 목소리는 다르다.

  • 노무현 관련 다큐멘터리인 노무현입니다에서도 등장한다. 새천년민주당 경선과정이 주 내용인만큼 다른 인물보다도 비중있게 나오며메인빌런 네거티브, 경선 불복설 등이 자세히 다뤄진다.

  • 쌉니다 천리마마트에도 이름이 언급됐다! 2부 41화에서 정복동이 왠 점쟁이에게 '책사로 영입하고 싶은 사람이 ?'라는 질문을 받고서 조금도 고민없이 이인제라고 답했던 것인데,[26] 이를 본 네티즌들은 정복동조차 인정한(?) 이인제를 찬양하는 리플들을 남겼다.

  • 2018년 5월 15일 외부자들에 출연하여 공자도 자신의 뜻을 이루기 위해 14년동안 나라를 돌아다니다가 결국 노나라로 돌아왔듯이, 자신도 원래 정당으로 돌아오는데 15년 2개월이 걸린만큼 고생을 많이 했다는 발언을 하였다

7. 둘러보기[편집]

[A] 1.1 1.2 경기도 제4선거구(안양시·광명시·시흥군·옹진군)의 제12대 국회의원이다.[3] 의원직 사퇴. 잔여 임기 1년 미만으로 재보궐선거 미실시.[4] 안양시 만안구 선거구의 제15대 국회의원이다.[B] 5.1 5.2 논산시·금산군 선거구 제16대 국회의원논산시·계룡시·금산군 선거구 제17대 국회의원[7] 익안대군파 16세손, 시조 39세손. 순조의 동생 뻘이다.[8] 그러나 정작 이 발언이 무색하게 이인제는 충청남도지사 선거에서 피닉스처럼 부활하지 못하고 더블스코어로 대패를 당한다. 애초에 위기의 남자들이라며 김문수, 안철수와 함께 나왔다.[9] 탄핵 반대 측에서 주장하는 것과 완전히 같은 생각이다. 그들은 대통령이 없어지면 민주주의가 무너진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안 무너졌다. 이때도 이때도 그랬다. 사실상 무너진 6.29 선언,노무현 대통령 탄핵때도 민주주의는 무너지지 않았다. 오히려 앞의 세개의 일은 외려 민주주의를 발전시키는데 기여했다. 지금도 물론 마찬가지[10] 이전까지의 친박/친이가 한나라당 내 계파 중에서 두드러지는 2개 세력이었다면, 이 시기 이후에는 한나라당(이후 새누리당) 자체가 친이와 친박으로 양분되었다고 봐야 한다.[11] 정확히 말하면 김문수의 경우 이재오와 함께 학생운동 출신으로 친이계의 핵심인사이자 당 내에서 대표적인 빈(反)박계 인물로 꼽히던 인물이고, 이에 비해 홍준표는 명확한 친이계 인사라기보다는 친이계에 가까운 중도파로서 일종의 범 친이계 인사로 여겨지던 편이다.[12] 비유적으로 설명하자면... 어떤 사람이 선거에서 대선에서 이명박이나 박근혜, 홍준표를 찍었다면 그 사람은 한나라당->새누리당->자유한국당의 지지자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것이 "저 사람은 해당 정당의 당원이다"라고 말할 근거는 되지 않는다는 것. 당원이라는 개념은 단순히 그 당을 찍는 지지자라는 개념이 아니라 '해당 정당의 당원명부에 이름이 올라와 있는 사람들'을 지칭하는 개념인 것처럼, 친박이라는 개념 역시 '특정한 계파를 지칭하는 개념으로 사용되고 있음을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13] 1990년 3당 합당, 1990.1.22 민주자유당 창당 합류[14] 1995.6.7 사퇴 (경기도지사 출마)[15] 1997.9.13 탈당, 1997.9.18 사퇴 (제15대 대통령 선거 출마)[16] 2002.12.1 탈당, 2002.12.3 자유민주연합 입당[17] 2005.12.7 탈당, 2006.1.27 국민중심당 창당 합류, 2006.5.11 탈당, 민주당 입당,2008.2.17 통합민주당으로 합당, 2008.3.17 탈당 (공천불복)[18] 최저득표율 당선, 이 당시 논산계룡금산 선거구에선 한나라당, 통합민주당, 자유선진당, 친박연대, 무소속이 출마한 5파전이 벌어졌다. 그러다 보니 여러 후보로 표심이 분산되는 효과가 일어났고 결국 30%도 안되는 지지율로 당선이 된 것. 2011.9.8 자유선진당 입당[19] 2012.11.16 새누리당과 합당[20] 농담이 아니라 진짜 탈당을 해도 갈 정당이 마땅치 않은데 일단 자신과 인맥이 있는 바미당은 지선 참패로 자한당에 합치거나 공중분해될 위기에 처했고, 민평당, 정의당은 정치사상이나 인맥 지지기반 어느쪽에도 연이 없다. 한편 민주당은 정말 간신히 찾아보면 없는건 아닌데 절대다수가 자유선진당 입당할 때 인연이 다 끊어졌고, 거기에 현 주류인 친문, 친노 입장에서 이인제는 문재인이 많이 당한 당내 내부총질의 상징적인 인물이었고, 거기에 그 피해자가 노무현이라 입당시키려고 해도 일반당원들이 들고 일어날만한 상황이다. 결국 정계은퇴를 안한다면 자한당에 남는 경우에 수밖에 남지 않고, 그렇지 않다면 자한당이 분열될때 같이 나가거나 혹은 그 분열의 시발점이 될 수 있다는 추측이다[21] 5공 청문회 당시 노무현, 이해찬과 함께 5공 세력들에게 날카로운 질문극딜을 던지면서 상당한 호평을 받았던 경력이 있다.[22] 자기 이야기를 써야 할 자서전을, 남이 창작 요소까지 넣어가며 대필하는 걸 빗댄 말. 소재를 굳이 자서전에 한정지어 기사를 낸 것이지만, 언론사에서 정치-경제-외교 란에 실을 기사를 통해, 각자 지지하는 대선 후보들에게 조언하곤 했던 걸 감안하면, 이듬해에 열리는 대통령 선거에 나설 정치인들을 향한 간접적인 충고이기도 하였다.[23] 여기서의 사회주의는 공산주의만이 아닌 사회민주주의, 민주사회주의 등을 포괄하는 용어이다.[24] "동성애는 아주 미묘한 문제다. 사회에 저항하고 자신의 성아이덴티티를 주장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이지만, 자연의 섭리를 바탕으로 인간다운 삶이 과연 어떤 형태가 될 것인가에 대해서는 아직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영화 ‘필라델피아’에 나타난 것처럼 동성애자를 하나의 신성한 인격체로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이다."#[25] 이쪽은 같은 인터뷰에서 "동의하지 않으나 이단시해서도 안된다"고 답하였다.[26] 작품 내에서는 이인재라고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