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탄불

최근 수정 시각:

유네스코 세계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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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한글

이스탄불 역사지구

영어

Historic Areas of Istanbul

프랑스어

Zones historiques d'Istanbul

국가·위치

터키 이스탄불

등재유형

문화유산

등재연도

1995년

지정번호

356

등재사유

(i)[1], (ii)[2], (iii)[3], (ⅳ)[4]


1. 개요2. 인구3. 기후4. 역사
4.1. 고대4.2. 중세4.3. 근대4.4. 현대
5. 명칭6. 행정구역7. 관광
7.1. 구경거리7.2. 쇼핑7.3. 이스탄불에서 주의해야 할 일
8. 문화
8.1. 낚시8.2. 이스탄불의 맛
9. 교통지옥
9.1. 교통지옥 이스탄불에서 효율적으로 돌아다니는 법
10. 스포츠11. 창작물에서의 이스탄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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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치(Haliç =금각만)에서 바라본 모습. 남동쪽을 향해 찍은 사진으로, 오른쪽의 육지가 파티흐(Fatih) 구, 즉 테오도시우스 성벽 안의 콘스탄티노플 시가지이다.[5]

Istanbul was Constantinople
Now it's Istanbul, not Constantinople
Been a long time gone, Oh Constantinople
Now it's Turkish delight on a moonlit night
이스탄불은 콘스탄티노플이었지
하지만 이젠 이스탄불이야, 콘스탄티노플이 아니라

콘스탄티노플은 예전에 끝났어
이젠 달 밝은 밤 속의 터키인의 보배지
- They Might Be Giantsd의 Istanbul (Not Constantinople)

بو شهر ستنبول كه بىمشل و بهادر(Bu şehr-i Sıtanbûl ki bî-misl-ü behâdır)
بر سنگكه يكپاره عجم ملك فداءدر(Bir sengine yekpâre Acem mülkü fedâdır)
현대 터키어 번역:
Bu İstanbul şehri ki misli benzeri yoktur.(부 이즈탄불 셰흐리 키 미즐리 벤제리 욕투르.)
Bir taşına bütün Acem mülkü fedadır.(비르 타쉬으나 뷔튄 아젬 뮐퀴 페다드르.)
우리말 해석:
이스탄불의 도시만큼 귀중하고, 값으로 형언할 수 없는 도시는 없네.
단지 그대의 한 조각 돌을 위해, 나는 온 페르시아와 맞바꾸리라.
- 18세기, 터키의 튤립 시대를 대표하는 시인 네딤의 'kaside'의 일부



1. 개요[편집]

터키어: İstanbul büyük şehir belediyesi (이즈탄불 뷔윅 셰히르 벨레디예시: 이스탄불 광역시)
쿠르드어: Stenbol (스텐볼)
그리스어: Κωνσταντινούπολη (콘스탄디누폴리) 혹은 Η πολή (이 폴리[6])[7][8]
불가리아어: Цариград (차리그라트)[9]
러시아어, 우크라이나어, 벨라루스어 : Стамбул (스탐불)[10] [11]
아이슬란드어 : Mikligarður (미클리가르뒤르)[12]
영어 : Istanbul (이스탄불)

보스포루스 해협(Boğaziçi denizi)과 마르마라해(Marmara denizi), 할리치 만(Haliç) 사이에서 유럽 대륙과 아시아 대륙의 경계선(이 경우 아시아의 정의가 좀 애매하기는 하지만) 위에 위치한 터키의 도 및 그에 속한 동명의 도시. 도시가 두 대륙에 걸쳐 있다는 지리적 특이성으로도 유명하다.[13] 인구는 2014년 기준 14,377,018명. 과거 로마 제국오스만 제국의 수도였으며, 동로마 제국 시기인 중세 시절부터 지금까지 쭈욱 유럽에서 가장 큰 도시다. 물론 터키최대도시이기도 하다.

이스탄불을 터키의 수도라고 착각하는 사람이 많은데, 터키의 수도는 앙카라다. 부루마불의 폐해.[14]

2. 인구[편집]

러시아모스크바 (인구 약 1,151만)보다 더 많다.[15] 더 무서운 건 터키 경찰에 따르면 이스탄불 거주인구 중에 거주신고가 되지 않은 이들(불법으로 만든 집에서 살아가는 빈민가 거주민)과 외국인을 합치면 거의 600만에 달한다고 한다. 더군다나 시리아 내전 이후 터키가 국경을 개방하면서 몰려온 시리아 난민들이 이곳까지 몰려온 마당에 가뜩이나 복잡한 이스탄불에 헬게이트가 열렸다. 그마저 합산시키면 경찰추산으론 적어도 2000만... 흠좀무 다만 서울시(605.25km²) 3배가 넘고 제주특별자치도(1,848km²) 와 비슷한 1,830km²로 넓고,[16] 이스탄불 내에서도 생활권이 구분되어 있기 때문에 생각보다 복잡하지는 않다. 인구밀도는 7,691명/km²으로 서울의 17,289명/km² (2009)과 비교해도 널널하다. 다만 이스탄불의 체감적 인구밀도는 서울보다 복잡하다는 느낌을 주는데, 여행객들이 주로 가는 지역들이 이스탄불의 도심 정중앙에 위치해 있기도 하거니와, 외국인도 많이 돌아다니기 때문. 더욱이 이스탄불의 인구구조는 몇몇 중심구에만 치중해 있기 때문에, 중심 구 단위들로 보면 서울보다 훨씬 더 복잡하다. 2009년 기준으로 베이오울루구의 인구밀도는 28,235.1명/km²이고, 이스탄불의 구시가지인 파티흐구는 26,794명/km²으로 서울 평균보다 훨씬 더 혼잡하다. 전형적인 베드타운인 귄괴렌구의 경우 32,366명/km².

한때 동로마 제국의 수도였던 만큼 그리스인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었다. 1923년 그리스-터키 인구 교환 협정 당시에 이스탄불 전체 인구의 1/3이 그리스인인 현실을 고려해 이스탄불의 그리스인들은 추방에서 제외되었다. 하지만 이들에 대한 박해는 아타튀르크 사후 특히 1950년대 들어 키프로스 문제와 관련해 그리스와의 갈등이 심해지자 가속화되었으며 이 시기 터키 정부의 묵인 속에 이루어진 시민들의 조직적인 약탈과 폭행까지 행해져 1960년대를 기준으로 인구는 급감하게 된다.[17] 백여 년이 지난 2015년 현재는 거주민의 겨우 0.01%만이 그리스계[18][19]이다.

3. 기후[편집]

지중해성 기후일것 같은 선입관과 달리 비도 많이 온다. 보스포루스 해협때문에 오히려 음습한 기후다. 동로마 제국이 멸망한 이유에 대한 우스갯소리로, 우중충하고 음습한 날씨의 콘스탄티노플을 수도로 삼아서 밝고 명랑한 그리스인들이 허약하고 비관적으로 변했다는 말이 있을 정도. 영국인들이 그러하듯이 현지인들은 우산을 쓰는 대신 레인코트나 모자를 쓰는 편. 이러다보니 우산을 쓰는 사람들은 대부분 외지인이나 관광객 들이다.

이즈미트 지진을 일으킨 북아나톨리아 단층이 근처에 존재하기 때문에 언제 대지진이 일어날지 모른다고 터키의 지진 권위자가 경고한 바 있다.

4. 역사[편집]

1600년을 이어온 동로마 제국오스만 제국의 심장.

원래 이 도시의 이름은 이스탄불이 아니였다.

로마 제국의 수도가 되기 전까진 비잔티움으로 불려지고 있었다.

도시의 이름이 비잔티움으로 불려졌을 때는 그저 작은 지방도시였었는데, 로마 제국의 황제인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이곳의 이름을 자신의 이름을 따 콘스탄티노폴리스로 바꾸었고 동로마시절이 되면서 콘스탄티노폴리스라는 도시의 이름은 서서히 콘스탄티노플로 굳어가게 되었다.[20]


비잔티움은 고대 그리스인이 세운 도시이다. 이름의 유래는 도시의 개척자 비자스(Βύζας).

신화에 따르면 메가라라고 불리는 도시에 비자스(Βύζας)라고 하는 왕자가 있었다. 그는 장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아버지로부터 왕좌를 이어받지 못 하였다. 그래서 새로운 식민지 도시를 개척하고자 아폴론 신전의 여사제였던 델포이 신탁에게 자문을 구하였는데 그녀는 "눈 먼자의 도시의 반대 편에 도시를 세우라"라고 말하였다. 이 눈 먼자의 도시의 정체는 칼케돈(Χαλκηδών)이며 이 도시의 개척자가 장님이라고 알려졌기 때문에 그렇게 불리는 것. 여사제의 조언을 들은 비자스는 메가라의 개척자들과 함께 그 땅을 찾아 항해하였다. 목적지 근처에 다다른 비자스 왕자 일당들은 한 땅을 발견하였는데 그 땅은 북쪽으로는 금각만이 있고 동쪽으로 보스포루스 해협을 끼고 있어서 항구도시의 입지조건으로 매우 좋았다. 흑해 연안에 있는 도시들은 지중해로 빠져나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보스포루스 해협을 지나가야 하므로 이 지역의 중요성이 높다. 그래서 그들은 BC 667년 여기에 도시를 세웠고 사람들은 도시의 이름을 왕자의 이름을 따서 비잔티온(Βυζάντιον)으로 불렀다. 칼케돈의 개척자가 장님이라고 여겨지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칼케돈 또한 메가라 사람들에 의해 개척되었고 비잔티움 개척 이전인 BC 685년에 세워졌다. 그런데 그들은 금각만을 끼고 있어서 입지조건이 더 좋은 보스포루스 해협 서쪽에 개척하기 않고 해협 동쪽에 도시를 세웠다. 그래서 후세 사람들은 칼케돈을 세운 집단들이 도시를 해협 서쪽에 건립하는 것의 이점을 "보지 못하였다"고 판단하여서 개척자를 장님이라고 여기게 된 것. "이런 꿀 빠는 땅을 몰라보고 엉뚱한 데다 자리잡았네, 저 눈뜬 봉사들ㅋㅋ" 정도의 뉘앙스? 비잔티온(Βυζάντιον)이라는 명칭은 후에 로마로 건너가 비잔티움(Byzantium)으로 불리게 되었다.

비잔티움은 BC 491년 다리우스 1세 치세의 페르시아가 점령하였으나 BC 477년 아테네를 위시로 한 델로스 동맹에게 다시 탈환되어 그리스계 도시로 쭉 남다가 AD 46년 로마 제국이 점령한다. 로마 제국의 일개 도시에 불과했던 비잔티움은 AD 330년 콘스탄티누스 1세가 이 곳을 수도로 정하면서 운명이 달라진다. 도시 이름은 황제의 이름을 딴 콘스탄티노플(Κωνσταντινούπολη)로 개칭되었고 천혜의 입지조건을 바탕으로 승승장구한다.

1453년 오스만 제국은 콘스탄티노플을 함락시키고 이 곳으로 수도를 옮겼다. 오스만 제국은 이 곳을 코스탄티니예(قسطنطينيه)로 불렀고 도시는 다시 번영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오스만 제국은 17세기 이후 점차 쇠퇴하기 시작했고 끝내 세계 1차대전의 패배로 코스탄티니예는 연합국(주로 영국)에 의해 점령당하게 되었다. 제국은 공중분해당할 위기에 처해있었으나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라는 걸출한 군인이 등장하여 사방의 적을 무찌르고 잃어버린 영토를 수복하기 시작, 지중해를 건너려던 찰나에 영국이 개입한다. 영국은 에게 해의 섬과 코스탄티니예를 포함한 동트라키아 지방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압력을 넣었고 아타튀르크는 후자를 선택. 이로써 도시는 다시 터키의 품으로 돌아오게 된다. 아타튀르크를 수반으로 하는 신생 터키 정부는 오스만 왕가와 귀족들을 반역자로 규정하여 모두 추방시켰고 기존 세력들의 입지를 약화시키기 위해 수도를 앙카라로 천도하였다. 이 때 도시 이름을 코스탄티니예에서 이스탄불(Istanbul)로 바꾸었고 이것이 현재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4.1. 고대[편집]

본디 비잔티움이라는 이름의 고대 그리스 시절 건설된 로마 제국의 지방도시[21]였다. 비록 인구 100만의 수도 로마나 인구 50만의 제국 제2의 도시 알렉산드리아 수준으로 번영한 것은 아니었지만 유럽과 아시아를 연결하는 거점이자 제국의 무역 도시 중 하나였는데 평범한 무역 도시였던 이 도시의 운명을 완전히 뒤바꾼 사람은 바로 콘스탄티누스 1세였다.

콘스탄티누스 1세사두정치 시절 서방 부제의 자리에 있었을 때부터 150여 년 간의 위기로 쇠락할 대로 쇠락하였으며 전통적인 다신교 문화와 공화주의적 정치 관례가 남아있던 로마를 대체할 제 2의 수도의 건설을 구상하고 있었다. 그가 생각한 조건은 이집트소아시아 등의 경제적 중심지와 문화적 중심지인 그리스를 포함하는 제국의 동방과 가까운 곳이며 당시 제국을 위협하던 가장 큰 세력인 다뉴브 강 이북의 이민족 및 사산 왕조 페르시아의 국경과 가까워 이들의 침입 시 신속한 대응이 가능한 곳이었다. 본디 그는 새로운 수도를 건설할 자리로 모이시아 속주의 세르디카(Serdica)[22]를 생각하고 있었고 "세르디카는 짐의 로마가 될 것"이라는 말 또한 여러번 언급했으나[23] 사두정치를 끝내기 위한 리키니우스와의 내전 도중 벌인 비잔티움 공성전을 통해 비잔티움이 자신의 이상을 구현할 최적의 장소라는 곳을 깨닫게 되었다.

324년 내전을 종결짓고 제국 유일의 황제 자리에 오르자마자 콘스탄티누스는 비잔티움을 제국의 새로운 수도로 선포하였고 곧바로 비잔티움을 제국의 수도에 걸맞는 도시로 바꾸는 대공사에 착수했다. 수도 완공식이 있었던 330년 5월 11일, 콘스탄티누스는 친히 이곳을 로마 노바(Roma Nova), 즉 '새로운 로마'라 명명하였으나,[24][25] 역사적으로는 '콘스탄티누스의 도시'라는 의미의 콘스탄티노폴리스(Constantinopolis)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불렸다. 일단 이름은 이렇게 붙었지만, 도시가 동로마 제국을 넘어서 세계적으로도 손꼽히는 유명한 도시가 되면서 점차 '도시 중의 여왕(바실리사 톤 폴레온/Βασιλὶς τῶν πόλεων)', 이걸 넘어서 더 흔하게는 그냥 도시(이 폴리/ η Πόλη)라고 불렀다. 즉, 제국 제2의 도시인 테살로니키마저도 콘스탄티노폴리스 앞에선 '도시'가 아닌 마을로 불리고 시골 취급 당할 정도로, 도시라는 이름은 콘스탄티노폴리스의 의미로 널리 쓰였다. 마치 조선시대부터 한양이라는 자기만의 이름이 있었음에도 우리들은 그 도시를 죽 수도라는 의미의 '서울'로 불러온 것처럼. 그 뜻을 생각하면 나중에 나오는 터키어 명칭 '이스탄불'과도 상통하는 명칭이다.

일단 도시가 삼각형의 양변이 보스포루스 해협에 면해 있기에 육지의 한변만 방어하면 되는 천혜의 요지이다. 게다가 당대 어떠한 공성병기로도 뚫을 수 없다는 테오도시우스의 삼중 성벽의 위엄은 대단했다. 도시를 노리고 쳐들어 온 수많은 이민족들을 모조리 트라키아 땅의 양분으로 만들어 버렸다. 물론 4차 십자군 전쟁 당시엔 동맹걸고 들어온 십자군에게 털리긴 했지만.[26]

게다가 삼각형의 양변이 접한 바다가 단순히 외딴 곳이 아니라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보스포루스 해협이다 보니 전시가 아닌 평시상황에서는 지정학적인 이점을 살려 사통팔달의 교통의 요지가 될 수도 있는 땅이다.

4.2. 중세[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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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스탄티누스 사후 제국이 콘스탄티누스의 자식들 및 조카들에 의해 나뉘어지는 일련의 과정을 통해 콘스탄티노플은 제국 동방, 즉 동로마 제국의 수도를 맡게 되었다. 중세 서양 세계의 강대국 중 하나였던 동로마 제국의 수도인 만큼 세계에서 가장 번영한 도시들 중 하나였으며[27] 특히 제국이 경제적으로 절정기에 달했던 콤니노스 왕조 마누엘 1세의 치세에는 총 인구 40만여 명 중 외국인 인구가 6만에서 8만에 달했을 정도로[28] 코스모폴리탄적인 도시로서 번영했다.

그러나 1204년 도시를 침략해온 4차 십자군에 의해 3일 동안 도시 전역이 약탈당하고 그들이 세운 괴뢰국, 라틴 제국의 수도가 되면서 본격적으로 몰락하기 시작하고 1263년, 니케아 제국이 도시를 탈환하고 제국을 재건했으나 도시는 이미 활기를 잃은 지 오래, 그 뒤로 제국이 점차 쇠락하면서 1453년 콘스탄티노플 함락 당시에 도시 인구는 겨우 4만 밖에 남지 않았다. 결국 1453년, 도시를 제국의 새로운 수도로 삼기를 갈망한 메메드 2세오스만 제국에 의해 끝내 함락된다. 역사적으로 이 함락은 함대포를 끌고 와서 포격을 하고, 방어군의 10배가 넘는 정예 예니체리들의 돌격으로 무너졌다고 하지만, 야사에 따르면 성문 샛길을 잠그지 않아서 이렇게 되었다고 한다. 사실 샛길을 잠그고 안 잠그고를 떠나서 이미 전황은 오스만 제국 쪽으로 압도적으로 기운 상태였고, 그보다 10만 공격군에 방어군이 7천 명 밖에 없었으니(...) 그때까지 버틴게 오히려 용하다.

4.3. 근대[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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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만 제국의 수도 시절에도 이스탄불은 콘스탄티노폴리스를 오스만 터키어로 음차한 코스탄티니예[29]라고 부르며 제국의 수도로서 크게 번영했다. 코스탄티니예를 정복하고 오스만 술탄들은 카이세리 룸(Kayser-i-Rûm)[30]를 자칭하며 종교적 관용, 각종 면세 혜택, 급여 보장 등 다양한 당근과 유혹을 휘두르며 동로마 제국 말기 많이 인구가 빠져나가고 초췌해졌던 도시의 영광을 되살리기 위해 노력하며, 그 결과 덕분에 오스만의 정복 이후 한두세대 만에 코스탄티니예는 동로마의 전성기 시절 같은 번영과 중요성을 다시 누리게 됐다. 당시 이스탄불은 지금처럼 터키 끄트머리에 위치한 변경이 아니라 3대륙을 지배하는 제국의 한복판에 위치한 중심지였다. 술탄은 수도 이스탄불에서 제국 각지로 군사를 출병시켜 지배를 공고히 했고, 심지어 유럽 내륙의 오스트리아까지도 원정했다. 자세한 것은 빈 포위 항목 참조.

4.4. 현대[편집]

그러나 1922년 오스만 제국이 멸망하고 터키 공화국이 출범하면서 수도의 지위는 상실하고, 수도는 튀르크인의 발원지이자 아나톨리아에 위치한 앙카라로 옮겨진다. 이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는데,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코앞인 보스포루스 해협영국 함대가 몰려와서는 깔짝댔던 기억도 있고, 기존 제국의 친왕 귀족세력의 본산이기 때문에 아타튀르크가 일부러 불모지나 다름없던 앙카라를 수도로 선택한 면도 있으며, 결정적으로는 터키 공화국의 출범 계기가 된 1922 ~ 1923년의 터키 독립전쟁 당시 그리스와 인접한 이스탄불이 그리스군에게 점령당할 뻔했기 때문이다.[31] 아무래도 수도가 적진에 그렇게 가까이 붙어 있어서야 불안했던 모양이다.[32]

5. 명칭[편집]

오스만 제국에 점령당한 후 새로운 수도가 되면서 명칭에 혼선이 생기는데, 사실 오스만의 정복 이전부터 튀르크인들은 이 도시를 '이스탄불' 이라 부르고 있었다. 이것은 10세기 무렵부터 아랍에서 쓰던 명칭이었다. 뜻은 '도시에서', '도시로' 정도로, 서쪽에서 번영하던 대도시라는 이미지를 통해 좀 막연하게 붙인 명칭이었다. 이 명칭의 기원에 대한 전설이 있다.

처음 콘스탄티노폴리스를 방문한 튀르크인 사절단이 보스포루스 해협에서 어느 그리스인 어부에게 해협 건너의 콘스탄티노폴리스를 가리키며 도시의 이름을 물었는데, 튀르크인 통역자의 그리스어 발음이 영 좋지 않았는지 그리스인 어부는 질문을 제대로 듣지 못했다. 그래서 콘스탄티노폴리스를 가리키며 "저 도시요?(Εις την πολίν;)" 라고 되물었고, 튀르크인 사절단은 이걸 도시 이름으로 알아듣고 그대로 떠나버렸다는 것이다.[33] 상기 그리스어발음은 '이스 띤 뽈린?'인데, 이 지방에서 쓰던 그리스어 방언으로는 "Εις ταν μπολί;(이스 딴 볼리?)"로 발음된다. 실제 있었던 에피소드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절묘한 전설이다. 이 전설은 그리스인이라면 거의 누구나 알고 있는 이야기로 오늘날 그리스인들은 이 전설을 가지고 터키인을 비웃기도 하는데, "우리의 위대한 도시 콘스탄티노폴리스는 이름도 제대로 못 부르는 터키 촌놈들에겐 어울리지 않지!(+고로 콘스탄티노폴리스는 우리 그리스인들의 품으로 돌아와야 마땅해.)"라는 식. 기회가 된다면 그리스인들에게 이 전설에 대해 물어보자. 오늘날 그리스인들은 비잔티움 제국 시대에 그랬던 것처럼 오늘날까지도 이스탄불을 정관사를 붙여서 'η Πολή (이 뽈리)'라고 부르는데, '그 도시'란 뜻이다. 어부가 알아들었으면 졸지에 이불이라고 불릴뻔 했다. 고대와 현대를 통틀어 그리스인들 사이에서 콘스탄티노폴리스의 위상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여담으로 이스탄불의 명명 사례와 비슷한 예시는 여러 곳에 존재한다. 이즈미르(İzmir)의 경우 '스미르나로'라는 뜻의 그리스어 '이스 스미르닌(εις Σμύρνην)'이 변형된 것이며 이즈니크(İznik)의 경우 '니케아로'라는 뜻의 그리스어 '이스 니케안(εις Νίκαιαν)'이 변형된 것. 그리스 코스(Κως) 섬의 터키어 명칭인 이스탄쾨이(İstanköy)는 '코스 섬으로'라는 뜻의 그리스어 '이스 틴 코(εις την Κω)'가 변형된 것이다.

그 외에도 튀르크인들은 이 도시를 스탐불(ستامبول, Stambul), 이슬람불(اسلامبول, İslambul, 이슬람을 찾으라[34]), 파이타흐트(پایتخت, Pay-i taht, 옥좌[35]), 아시타네(آستانه, asitane, 술탄의 문지방), 다르사아데트(در سعادت, Dâr-ı saâdet, 행복의 집), 바브알리(باب العالی, Bâb-ı âli, 웅장한 문), 데르알리예(در عاليه, Der-ı âliyye, 위대한 집) 등으로 다양하게 불렀다. 동로마를 멸망시킨 메흐메트 2세가 친히 '이슬람볼' 이라는 명칭을 부여했다고도 하는데, 확증은 없다. 몇몇 역사가들의 기록에만 등장하는 내용인데, 콘스탄티노플이 오스만 제국에 정복된 직후부터 이슬람볼이라는 이름이 보이므로, 개연성은 충분하다.

러시아보다 천년 앞서 제3의 로마 소리 들은 근성의 불가리아는 꿋꿋이 황제가 계시는 도시란 의미 그대로 짜르그라드라 부르고 있으며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중세 불가리아 제국이 잘 나갈 때는 자신들 수도인 벨리코 타르노보도 짜르그라드라 불렀는데 이후에는 그냥 이스탄불만 그렇게 부른다. 중세부터 지금까지 사용되고 발칸반도 역사에서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했던 콘스탄티노플-소피아-베오그라드 간 도로도 짜리그라드 도로(불가리아어: Цариградски път)라고 부른다.

오스만의 점령 이후로도 제국의 공문서에서는 '코스탄티니예(قسطنطينيه, Ḳosṭanṭīnīye)'를 더 선호했다. 아랍어로 "콘스탄티노폴리스"에서 그리스어 "폴리스"를 빼고, "콘스탄티누스의 것"이라는 뜻의 "알 쿠스탄티니야"라고 쓴 것을 다시 터키식으로 읽은 것이다. 이미 현지에서는 콘스탄티노플이라는 명칭이 이스탄불보다 이게 더 간지나서 워낙 뿌리깊게 박혔던 탓이다. 게다가 오스만 제국의 술탄 파디샤들 또한 종교는 이슬람이지만 로마와 동로마의 후계 국가를 자처했기 때문에 로마 제국과의 직접적인 연결성을 부여하는 저 이름을 딱히 거부할 이유도 없었고. 그러나 민족의식이 강해진 19세기에는 그리스식 명칭인 콘스탄티노플을 버리고 이스탄불로 굳어졌고, 구어적으로 사용되던 명칭은 완전히 대세가 되었다. 그리고 1923년 터키 공화국이 수립되자 이스탄불을 제외한 이런저런 명칭들은 폐지하고 이스탄불로 완전히 공식화했다. 아예 터키 우편에서 이스탄불 말고 콘스탄티노플, 콘스탄티노폴리스, 코스탄티니예, 짜리그라드, 알 쿠스탄티니야 등등의 이름으로 적힌 우편은 무조건 취급하지 않겠다고 강경 엄포를 때릴 정도였다. 이후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그리스어 빼고 대부분의 언어에서 이스탄불 혹은 그 이름에서 나온 말로 불리고 있다.

6. 행정구역[편집]

본래 '이스탄불'은 테오도시우스 성벽 내에 위치한 구역 - 오늘날의 파티흐(Fatih)구 - 만을 의미했으나 튤립 시대에 베이오울루(Beyoğlu) 구가 추가된 것을 시작으로 동서로 영역을 확대에 1923년 공화국 수립 당시에는 아나돌루 지역의 위스퀴다르(Üsküdar)구와 에윕(Eyüp), 바이람파샤(Bayrampaşa), 제이틴부르누(Zeytinburnu)구가 편입된 상태였다. 여기에 또 면적확대가 이루어져 오늘날에는 서쪽의 차탈자(Çatalca)구와 동쪽의 실레(Şile)구, 남쪽의 아달라르(Adalar)구가 포함된 어마어마한 영역이 되었다.

이스탄불의 생활권은 크게 4곳으로 구분되며, 배드타운이 밀집한 바으즐라르(Bağcılar)구와 인접한 아브즐라르(Avcılar), 바흐첼리에빌레르(Bahçelievler)구를 포함한 유럽쪽 서부 도심 (이 세구만 합쳐도 인구가 250만이다), 전통적인 이스탄불이었던 파티흐(Fatih), 베이오울루(Beyoğlu)구와 그 주변부에 위치한 제이틴부르누(Zeytinburnu), 바이람파샤(Bayrampaşa), 에윕(Eyüp), 쉬실리(Şişli), 베식타쉬(Beşiktaş)구를 포함한 주도심, 아나돌루 지구의 중심지였던 위스퀴다르(Üsküdar), 카드쾨이(Kadıköy)와 주변부에 위치한 위미라니예(Ümraniye), 체크메쾨이(Çekmeköy)를 포함한 아나돌루 해변쪽 도심, 나머지 카르탈(Kartal), 아타셰히르(Ataşehir), 말테페(Maltepe), 펜딕(Pendik)구를 포함한 아나돌루쪽 동부 도심으로 구분된다. 이 외에 변두리에 위치한 Çatalca나 Şile같은 면적 큰 구들은 아직 한산해서 농사도 짓고 있고, 심지어 마차도 볼 수 있는 동네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1000px-Istanbul_location_districts.svg.png

오늘날 이스탄불 주의 행정구역도 모습. 관광객들이 몰리는 구시가지 지역은 중앙에 한정되어 있으며, 교외지역은 대단위 신도시가 들어서있다. 보스포러스에 가까운 구들이 대부분 부자들이 살고 있는 구. 서울로 치면 강남 지역에 해당한다.

이름

터키어

면적(km²)[36]

인구(2013)[37]

이름

터키어

면적(km²)

인구(2013)

가지오스만파샤 구

Gaziosmanpaşa

12

495,006

말테페 구

Maltepe

53

471,059

귄괴렌 구

Güngören

7

306,854

베이코즈 구

Beykoz

310

248,056

바샥셰히르 구

Başakşehir

107

284,488

산작테페 구

Sancaktepe

63

304,406

바으즐라르 구

Bağcılar

23

752,250

술탄베일리 구

Sultanbeyli

29

309,347

바이람파샤 구

Bayrampaşa

9

269,677

실레 구

Şile

800

31,718

바크르쾨이 구

Bakırköy

29

220,974

아달라르 구

Adalar

11

16,166

바흐첼리에블레르 구

Bahçelievler

17

602,931

아타셰히르 구

Ataşehir

25

405,974

베식타쉬 구

Beşiktaş

18

186,570

위스퀴다르 구

Üsküdar

35

534,636

베이오울루 구

Beyoğlu

9

245,219

윔라니예 구

Ümraniye

46

660,125

베일릭뒤쥐 구

Beylikdüzü

39

244,760

체크메쾨이 구

Çekmeköy

152

207,476

뷔윅체크메제 구

Büyükçekmece

173

211,000

카드쾨이 구

Kadıköy

25

506,293

사르예르 구

Sarıyer

153

335,598

카르탈 구

Kartal

38

447,110

술탄가지 구

Sultangazi

37

505,190

투즐라 구

Tuzla

138

208,807

시슐리 구

Şişli

35

274,420

펜딕 구

Pendik

190

646,375

실리브리 구

Silivri

858

155,923

아르나붓쾨이 구

Arnavutköy

453

215,531

아브즐라르 구

Avcılar

50

395,274

에센레르 구

Esenler

19

461,621

에센유르트 구

Esenyurt

43

624,733

에윕 구

Eyüp

228

361,531

제이틴부르누 구

Zeytinburnu

12

292,313

차탈자 구

Çatalca

1,142

65,811

캬으트하네 구

Kâğıthane

15

428,755

퀴췩체크메제 구

Küçükçekmece

44

740,090

파티흐 구

Fatih

15

425,875

이스탄불

İstanbul

5,461

14,160,467

  • 원래 파티흐 구 동부는 에미뇌뉘 구(Eminönü İlçesi) 소속이었으나, 도심 공동화 현상으로 에미뇌뉘 구의 인구가 줄어들면서 2008년 에미뇌뉘 구를 파티흐 구에 합병했다. 합병 직전인 2007년 에미뇌뉘 구의 인구는 32,557명에 불과했다.


파일:attachment/이스탄불/Example.jpg

▲ 미국 브루킹스 연구소에서 조사한 이스탄불 대도시권의 경제 규모. GDP(국내총생산)가 3,011억 달러로 총 29위를 차지하였으며 이슬람권 대도시권들 중 가장 큰 경제권이다.

7. 관광[편집]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성 소피아 성당(하기아 소피아)외에도 블루 모스크(술탄 아흐멧 모스크), 술레이마니예 모스크, 지하 저수조 등 엄청난 역사 유적이 많다. 요즘은 세계적인 패션 중심지로 부상했다지만, 확실히 서유럽의 도시보다 낙후되어 보이는 모습도 많이 볼 수 있다. 도로 체계가 근대화가 안 되어 벌어지는 엄청난 교통체증, 그리고 그 지역의 대기오염 등등. 유럽식으로 만들어진 깔끔한 버스 정류장에 들어오는 낡고 더러운 버스도 참 깨는 볼거리다. 요즘은 버스들이 리모델링을 해서 깨끗하다. 서울시 버스와 색깔톤과 구조가 비슷한데, 아무래도 한국 버스를 수입하지 않았나 싶다. 실제로 기아마크를 봤다는 사람도 있었다. 과거에는 민영버스(Halk otobüsü)라는게 있어서 이 버스에서는 악빌을 사용할 수 없고, 버스 안에 타고 있는 차장에게 직접 요금을 지불해야 하는 시스템을 갖고 있었는데, 2015년 기준으로 악빌은 사용중단되었지만, 모든 버스에서 이스탄불카르트를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38] 그 대신 직접 돈을 주고 차를 타는게 금지되어 있으니, 만약 교통카드에 돈이 없다면 주변 사람들에게 부탁하고 그 사람에게 돈을 주자. 현지인들도 그렇게 한다.

해협 양쪽으론 유럽과 전 세계의 부호들이 지어놓은 호화 별장들과 개인 선착장, 요트들이 즐비하며 많은 관광객들이 유람선을 타고 여기를 구경하며 찬탄한다.

7.1. 구경거리[편집]

죽기 전 꼭 가봐야 할 도시 1위에 선정된 만큼 볼거리가 참 많다. 이스탄불은 크게 유럽 지구의 구시가지(남쪽)와 신시가지(북쪽), 그리고 아시아 지구로 이루어져 있는데, 구경거리는 주로 구시가지에 몰려있다. 신시가지에도 몇 개 구경거리는 있으니 낫지만, 아시아쪽 이스탄불은 위스퀴다르(Üsküdar) 지역을 제외하면 새롭다라고 할 한 것이 없는데다 아시아-유럽 이동이 결코 만만하지 않으므로 여러모로 주의할 것. 참고로 이 부분에 쓰여진 가격들은 모두 2012년 초~중순 기준이며, 1리라에 2015년 기준 400원.

  • 뮤지엄 패스

이스탄불의 박물관들을 맘대로 딱 한 번씩만 드나들 수 있는 패스. 2015년 12월 현재, 개시부터 5일동안 쓸 수 있으며 가격은 85리라[39] 술탄 아흐멧 지역의 매표소에서 구매가 가능하며, 아야 소피아 자미(성 소피아 성당), 고고학 박물관[40], 터키 이슬람 예술/미술 박물관[41], 톱카프 궁전(하렘 포함)을 통과할 수 있다. 터키 대학에 유학하는 학생이라면 Müzekart를 만들 수 있는데 이건 30리라로 터키 전국의 거의 웬만한 유적을 다 뚫을 수 있는 특별권이다.[42] 20리라를 더 주면 Müzekart+라며 북키프로스 터키 공화국의 박물관까지 뚫을 수 있는데다가 오페라, 극장공연같은 입장료를 깎아주는 괴물을 준다. 심지어 유효기간은 발행일로부터 1년(!) 원래 내국인용이기 때문에 만드려면 터키 주민등록증이나 터키 대학에 다니고있다는 학생증이 필요하다. 뮈제카르트와 뮤지엄 패스에 대해 알고싶다면 이 사이트를 방문할것. http://www.muzekart.com/tr/muzekart

이스탄불의 영원히 변치않을 랜드마크. 하기아 소피아라고도 하며, 전차정거장 술탄 아흐멧 역(Sultanahmet istasyonu) 또는 국철 잔쿠르타란역(Cankurtaran istasyonu) 앞, 어느 쪽에서 내리든 보인다. 술탄 아흐멧 자미 건너편에 있다. 입장료는 40리라 동로마 시절에 건축되어 오스만 제국이 개조해서 모스크로 써오다 지금은 박물관이 되었다. 오스만 시절 개조 당시 부숴버리는 선택 대신 덮어쓰기 스킬을 시전한 덕분에 콘스탄티노플 시절의 벽화들이 살아남아, 기독교와 이슬람교가 공존하는 웅장한 미로 유명한 관광지가 된 것은 이미 유명할대로 유명해진 사실이다. 큼지막한 원판에 아랍어로 쓰여있는 것은 알라와 무함마드, 정통 칼리프 네 명의 이름으로, 뭐라고 쓰여있는지 읽지는 못해도 이슬람 세계에서 가장 큰 서예작품이라고 하니 눈여겨 볼 것. 월요일은 쉰다. 이 곳뿐만 아니라 터키의 거의 모든 박물관과 문화유적이 월요일에 쉰다. 그러므로 월요일은 닥치고 쇼핑, 클럽ㄱㄱ 참고로 한국어 오디오 가이드도 있다! 30리라 (이는 현재 이스탄불 직항노선을 운항중인 아시아나항공에서 제작 지원한 것임.)

아야 소피아의 건너편에 자리한 라이벌 모스크[43]. 참고로 술탄 아흐멧과 아야 소피아 사이에 히포드롬 광장(Hippodrom, 마차경주가 열린 로마시대 경기장 유적터, 터키어로는 '말의 광장'이라는 뜻의 At maydanı라고 부른다)이 있다. 술탄 아흐멧은 오스만 시절에 만들어졌는지라 아야 소피아보다 좀 더 오스만 풍이 강하며 성원 내부의 푸른 빛의 타일은 특히 아침이나 저녁에 가면 햇빛에 빛나서 경탄스러울 정도로 아름답다. 다만 생각보다 푸르진 않은데, 이집트 바자르에 있는 뤼스템파샤 자미에 가면 성원 전체가 푸른 타일로 덮여있는 모습을 볼 수도 있다. 참고로 여기는 지금도 예배가 이뤄지는 공공시설이라 입장료가 없지만, 나올 때 기부금을 넣는 곳이 있어 내고 싶은만큼 내면 된다. 남쪽에 모자이크 박물관이 있는데, 모자이크 박물관은 입장료 8리라 별도다.

  • 예레바탄 사라이 (Yerebatan Sarnıcı, 바실리카 시스턴)

아야 소피아 남서쪽 가까이에 있는 궁전(저수지). 터키어로 '사르느즈'도 단순한 저수지라는 뜻이다. 평범한 저수지 주제에 온갖 장식을 해놔서 궁전처럼 보여서 이런 명칭이 붙었다. 입장료는 10리라이며, 박물관이 아니기 때문에 뮤지엄 패스나 뮈제카르트는 통하지 않는다. 게다가 생각보다 볼 것도 별로 없다. 터키 학생증이 있다면 3리라에 뚫을 수 있지만 3리라의 가치가 있는지도 의문이다. 근처에 가장 오래되었다는 시스턴이 또 있는데 여기도 10리라라서 낚일 수 있지만 주의. 볼거리보다는 그냥 접견장소에 불과하다. 뭐,... 더위 피할 곳으로 쓰겠다면야. 그런데 사람은 많이 모인다. 정오가 가까우면 사람의 줄이 쫙 늘어선다. 특히 여름에. 안이 시원해서인듯.

술탄 아흐메트 지구에서도 해안가 끝자락에 있다. 아야소피아에서 이동하려면 걸어서 5분정도만 가면 된다. 15세기~19세기동안 오스만 제국의 궁정의 역할을 한 곳이다. 오랜기간동안 술탄들이 자기 취향대로 증축을 하다보니 조잡스러워 보인다는 얘기도 있다. 입장료는 2016년 7월 기준 30리라이며, 하렘구역은 별도로 15리라 더 내야한다. 작년에만 해도 25리라였는데 5리라 더 올랐다(...) 서쪽 역 근방에 귈하네 공원과 국립 이스탄불 고고학 박물관이 있다. 건물 내부 전시관 대부분은 사진촬영 금지이다. 궁전 입구에는 성 이리니 성당(Aya İrini)이라는 조그만 동로마식 성당 건물이 있는데, 이 건물은 소피아 성당 건립 이전에 동로마제국 기독교의 총본산이었던 나름 유서깊은 건물이지만 오스만제국 시절에는 무기고로 쓰였으며, 현재는 버려진 건물이다. 톱카프 궁전 내에서도 특히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보물관과 도자기관(궁전내 부엌건물을 개조해서 꾸몄다), 그리고 바닷가쪽에 있는 바다트 쾨슈크(Bağdat Köşk)이다. 종교유물을 전시한 관도 있는데 이곳에서는 무함마드의 수염과 모세의 지팡이, 요셉의 팔뼈 같은 이슬람 종교유물들을 볼 수 있다[44].

  • 이스탄불 고고학 박물관 (İstanbul Arkeoloji Müzesi)

톱카프 궁전으로 가는 길목에서 발견할 수 있는 박물관. 19세기 말 오스만 함디 에펜디(Osman Hamdi Efendi)가 당시 제국주의 열강들의 침략으로 위험을 겪고있던 이라크, 시리아의 메소포타미아, 헬레니즘 문명 유물들을 수집해 톱카프 궁전의 일부건물을 빌려 전시한것이 시초로 복도에다가도 유물을 쌓아놓을 정도로 압도적으로 많은 전시물을 자랑하며 부속건물로 딸려있는 치닐리 쾨슈크(Çinili köşk - 도자기가 있는 정자)에는 완숙기의 이즈닉 도자기와 터키 도자기가 어떻게 중국에서 넘어왔고 제작기술이 발달해왔는지를 알아볼 수 있는 풍부한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다. 입장료는 15리라.[45] 귈하네(Gülhane)역에서 가까우며, 근처의 귈하네 공원은 봄에 가면 흐드러지게 핀 장미꽃때문에 매우 아름답다.

  • 파노라마 1453 (Panorama 1453 museum)

2009년에 문을 연 박물관. 테오도시우스 성벽이 있는 트램 톱카프 역 바로 앞에 있다. 1층에 이것저것 시각자료가 있으나 전부 터키어로 되어 있어서 패스(...) 포인트는 계단을 타고 올라가면 볼 수 있는 360도 파노라마로 된 콘스탄티노폴리스 함락 재현도 인데, 실제 쓰였을 법한 물건들과 메흐테르, 대포 소리 등도 재현해 현장감이 상당하다. 현지에서 초등학생들 견학 필수코스라고 하며 이때문에 평일 오전이나 이른 오후에 갈 경우 헬게이트가 열릴 수도 있다(...)

  • 시르케지 역 (Sirkeci İstasyonu)

아가사 크리스티의 오리엔탈 특급 살인사건의 배경이 되는 오리엔탈 특급의 유럽방면 종착역. 지금은 그냥 한가한 기차역 수준이며, 공사중. 2015년 현재 펜딕까지 뚫린 YHT(터키 고속철)이 하이다르파샤 역을 지나 해협을 건너 2016년, 이 역으로 연장될 예정이다. 톱카프 사라이 북쪽과 갈라타 다리 사이(그러니까 트램 1호선 시르케지 역 건녀편)에 있다. 배낭여행객이라면 이 주변과 술탄 아흐메트에 저렴한 숙소가 많아서 자주 들르게 될 것이다. 그리고 시르케지 역 바로 앞에는 맥도날드버거킹과 터키 전통 과자들을 파는 상점이 많이 있다. 참고로 터키 대표 과자중 하나인 로쿰을 처음 발명한 가게가 이 역 근처에 있다. Ali Muhiddin Hacı Bekir라는 가게로 가게는 조그맣지만 1777년 개점당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 쳄베를리타쉬 하맘 (Cemberlitaş Hamamı, 터키탕)

구시가지(베야즈트) 카팔르 차르시(그랜드 바자르) 동쪽, 쳄베를리타시 역에 있다. 쳄베를리타쉬(Cemberlitaş)는 '고리가 있는 돌'이라는 뜻인데,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이곳에 수도를 건설하고나서 세운 구조물에서 비롯된 지명이다. 이 구조물은 아직 남아있으며 이스탄불 행정당국에서 말끔하게 수리해서 공개하고 있다. 전차정거장 Çemberlitaş역에서 바로 볼 수 있다. 이스탄불에서도 가장 오래된 건축물 중 하나인데 450여년 전 미마르 시난(Mimar Sinan)[46]이 건축했다. 하맘(목욕탕) 중에선 가장 대표적인 장소라 그런지 가격이 상당히 센 편인데 입장료(셀프목욕)만 40리라, 터키식 때밀이를 체험하려면 20리라를 더 던져줘야 한다. 이곳 말고도 유명 하맘이 2군데(자이오울루 하맘, 슐레이마니예 하맘) 더 있긴 하나, 관광용이라 현지인은 그다지 잘 안 간다 카더라. 하맘을 좀 더 싸게 이용하고자 한다면 관광지가 아닌 지방도시나 아시아 구역으로 가야 한다. 이스탄불 주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하맘들도 곳곳에 숨어있는데, 이런곳도 저렴하다. 대표적으로 카라쾨이에서 갈라타 탑 올라가는 언덕을 등지고 우측 토프하네쪽으로 가면 보이는 동네인 추쿠르주마(Çukurcuma)에 위치한 하맘이 있다.

  • 카팔르 차르시 (Kapalı Çarşısı, 그랜드 바자르)

터키 재래시장의 대표이며 서울로 치면 남대문 시장같은 곳이다. 세계에서 가장 큰 재래시장이라는 말도 있다. 여기는 베야즈트에 있으며, 예레바탄 사라이의 서쪽에서 시내로 좀 들어간 곳에 있다. 전차를 이용할 경우 쳄베를리타쉬 역을 지나서 베야즈트-카팔르 차르시(Beyazıt-Kapalı çarşısı)에서 내리면 된다. 들어가면 구경거리가 많고 흥정도 잘 통한다고는 하나, 그래도 물가가 굉장히 비싸서 가볍게 시장볼만한 곳은 못된다.[47] 다만... 터키어를 할 줄 안다면 모든 상황이 다 바뀐다. 앞선 손님에게는 120리라에 팔던 카페트가 똑같은 크기에 똑같은 디자인인데도 흥정만 잘하면 70리라정도로 깎는건 일도 아니다. 예산문제와 실속적인 것을 원하는 위키러라면 그냥 기계로 짠 카펫을 사는것도 나쁘지 않다. 어차피 디자인은 터키에서만 사용되는 것들로 되어있기 때문이다. 혹은 손으로 짠 카펫을 구한다고 하더라도 오를론(orlon)이라는 화학섬유로 짠 것이나, 화학염료를 사용해서 염색한 실을 쓰는 카펫의 경우 천연염색 카펫의 2/3 수준밖에 안될정도로 가격이 떨어진다. 가령 작은 방에 깔 수 있는 킬림(여름철에 흔히 쓰는 얇은 카펫)의 경우 천연염색제품 가격은 최저 150리라인데 화학염색제품(둘다 수공예품)은 100리라 정도에도 구할 수 있다. 다른 물건들도 처음 부르는 값의 60%수준까지는 깎아볼 수 있다고 보면 된다. 애초에 상인들도 손님들이 가격투쟁(...)할 것을 알기때문에 비싸게 부른다. 여기에 낚이면 뭐... 여하튼 여기서 정말 제대로 된 전통 터키 카페트를 사려면 수표 다발이나 카드를 할부금으로 그을 생각하시길. 돈없어 보이는 사람이 수제 카펫 가게를 기웃거리면 저 가게 가면 기계제 판다고 쫓아내기까지 한다(!)

동양인 관광객이 엄청 많이 찾다 보니 돌아다니다 보면 니하오 어서오세요 곤니찌와를 엄청 들을 수 있다(...) 호객꾼들이 여성들 같은 경우엔 무시하고 가면 아줌마 아줌마 거리다가 그래도 반응이 없으면 할머니(...)라고 한다. 발끈해서 돌아볼때 주의를 끌수 있다나... 위에 적혀있듯이 세계적인 관광지다 보니 기본적으로 흥정을 하더라도 물건들이 싼편이 아니고, 중국산도 상당수 있다고 한다. 혹시 촛대나 집안 장식용품을 살 생각이 있으면 Paşabahçe(파샤바흐체)라는 인테리어 소품 체인점에서 동일한 물건을 거의 반 가격에 구매할 수 있으니 가 보는 것울 추천한다.

출입구가 몇십개도 넘기 때문에 길 잃어버리기 딱 좋으니 여기를 약속장소로 삼지는 말 것. 길을 찾기위해 힌트를 주자면, 트램이나 버스를 타기 위해서는 베야즈트문(Beyazıt Kapısı)가 어딘지를 물어서 가면 쉬울것이다. 일요일은 쉬며 평일에도 19시면 닫는다. 또한 카팔르차르시와 이어서 서술할 이집션 바자르 사이에도 시장들이 잔뜩 형성되어있는데, 터키어밖에 안통하고 현지인들을 위한 시장이지만 발품만 열심히 팔면 카팔르차르쉬 가격의 50%정도 가격에 물건을 구할 수도 있다. 혹시나 있을지 모르지만(...) 유학생들을 위해 조언을 주자면, 중고서적 혹은 터키어 사전을 구하고 싶다면 이곳 카팔르차르시 근처에 있는 'sahaflar çarşısı'에 가보기 바란다. 베야즈트문 바로 왼쪽에 빠지는 골목에서 왼쪽으로 가면 보이는 좁은 뜰같은 곳인데, 웬만한 책은 이곳에서 다 구할 수 있다. 다만 가격흥정 필수. 찾고 싶은 책이 있으면 책가게 주인에게 물어보면 바로바로 찾아준다. 책 외에 골동품, 오스만 제국시절 화폐같은것도 취급하는 가게들이 있다.

  • 이집션 바자르 (Mısır Çarşısı - 스파이스 바자르)

그랜드 바자르에서 북쪽으로 갈라타 다리 가는 길에 있다. 터키 재래시장 중 하나로, 오스만 제국 시기에 카팔르차르쉬의 공간이 부족해지자 확장된 시장이다. 왜 이집트 시장이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설이 있는데, 1517년 이집트를 정복한 이후 이집트에서 이스탄불로 진상되는 공물들을 이곳에서 늘어놓고 팔았다는데서 비롯되었다는 설과, 터키어로 옥수수를 의미하는 '므스르'[48]에서 비롯되었다는 두가지 설이 있다.

현지인을 대상으로 하는 식료품과 향신료 위주의 장이 열린다. 그랜드 바자르와는 달리 가격대가 낮기 때문에 음식하기를 좋아한다면 눈이 마구 돌아가는 장소.[49] 그랜드 바자르와는 달리 영어가 별로 통하지 않으므로 흥정시 유념할 것. 일요일 휴무. 주변에 슐레이마니에 자미(모스크)가 있다. 이곳에서도 관광기념품들을 구할 수 있는데 가게가 몇개 없다. 하지만 카팔르차르시보단 더 싼 가격을 부른다. 이집션 바자르 바로 근처에 위치한 뤼스템파샤 자미 인근에는 게임제품들을 파는 가게들이 몰려있는데, 이쪽에서는 진주자개 장식을 한 전통 체스판같은 것들을 시내값과는 비교도 안될만큼 싸게 구할 수 있다. 카팔르차르시나 므스르차르시 상인들도 이곳에서 물건을 떼와서 판다.

터키 전통 악기에 관심이 있다면, 이집션 바자르 앞에 있는 에미뇌뉘에서 15분정도 할리치를 따라 걸으면 나타나는 운카파느(Unkapanı)에 가면 된다. 이곳에 악기 도매상들이 널려있다. 터키어가 안된다면 갈라타탑 주변에도 악기상들이 있으니 그곳에 가면 된다. 다만 소매상인만큼 운카파느 가격보단 비싸다. 다르부카, 탬버린같은 악기는 연주하는 방법도 간단하므로 기념품으로 사가면 좋은 추억이 될 수 있을것이다.

  • 갈라타 다리 (Galata Köprüsü)

에미뇌뉘역 근방에 있으며, 유럽측 이스탄불의 남북을 이어주는 다리. 위에도 서술되어 있지만, 할 일없는 실직자와 니트와 소매치기가 모여 잔뜩 낚시질하고 있는 곳이다. 그러니 멀쩡히 트램도 다니고 있는데 굳이 어두울 때 걷는 일은 자제토록 하자. 주로 이곳을 걸어다니는 목적은 고등어 케밥이라 불리는 발륵 에크멕을 먹어보기 위한 것이 대부분이다. 그리고 그나마도 삐끼들이 너무 달라붙어서 짜증날 지경이다. 차라리 아시아쪽인 카드쾨이쪽이 발륵 에크멕 먹기에는 더 좋다. 값도 싸다. 사족인데, 가끔 갈라라고 잘못 알고 있기도 한다.

  • 갈라타 탑 (Galata Kulesi)

갈라타 다리에서 탁심 광장으로 가는 길에 있다. 동로마 시대에는 (Ο μεγάλος πύργος, 메갈로스 피르고스)라고 불렸다. '큰 탑'이란 뜻. 목적이 감시용 및 등대역할을 위했던 것 만큼, 이스탄불의 모든 것을 볼 수 있는 전망대 역할을 한다. 입장료는 2016년 9월 현재 25리라 (터키인은 15리라). 유명세와 허벌나게 비싼 입장료에 비해선 시설이 매우 열악하니 조금 고민할 필요가 있다.[50] 하지만 날씨 맑은날 일몰때 간다면 정말 환상적인 경치를 볼 수 있을것이다. 겨울철엔 안개낀날 가도 굉장히 분위기 있는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그리고 터키인들은 갈라타탑에 갈 때 동행자를 잘 골라서 데리고 가는데, 속설에 의하면 갈라타 탑에 같이 간 동반자와 결혼하게 된다고 한다.

  • 탁심 광장 (Taksim Meydanı)

이스탄불판 명동. 튀넬역(카라쾨이역 북쪽)에서 이스티클랄 거리를 통해 탁심역까지 트램이 다닌다. 이 주변에 술집이나 클럽이 산재해있어 젊은 사람들이 많이 다닌다. 하지만 뒷골목이 많아 치안이 좋지는 않으니 어두울때 뒷골목으로 가는 것만큼은 자제하자. 참고로 대중교통을 타고 탁심역으로 가거나 빠져나가려면 무조건 초단거리 전철(Füniküler)을 타야해서 제톤 1개(=3리라)를 더 쓰게 되어있다. 그렇다고 인근 역에서 걸어가겠다는 생각은 버리자. 길이 생각보다 복잡하고, 언덕 경사가 장난 아니다.

서양덕후였던 술탄 압뒬메지트가 친유럽정책을 표방하며 천문학적인 돈을 들여 세운 서양식 초호화 궁전으로 '정원으로 가득찬 궁전'이라는 뜻, 이걸 짓느라 돈을 다 탕진해버리는 바람에 당대 이름난 은행가집안인 로스차일드 가문으로부터 융자를 받은 적이 있다. 모티프는 프랑스베르사유 궁전이다. 여기에 들어간 대부분의 소품은 유럽에서 직수입해다 썼으며, 세계에서 가장 큰 크리스탈 샹들리에도 여기에 있다.[51] 접근하기는 좀 어려운데, 일단 일일 입장객이 3천명 선착순 한정이고, 단독행동은 안되고 일정인원이 모여 가이드를 따라야만 입장이 가능하며, 가는 방법도 유럽 지역의 트램 종착역(신시가지)인 카바타쉬에서 해안가를 따라 계속 올라가야 한다. 그리고 입장료가 만만찮은데, 기본요금 30리라에 하렘 10리라 추가. 문화부 관할이 아니고, 터키 국회 관할이라 뮤지엄 패스도 통하지 않는다. 국제학생증이 있다면 5리라로 대폭 깎인다.[52] 그리고 월요일 휴무. 공화국 시기에는 아타튀르크가 이스탄불에 왔을때 궁전의 일부를 관저로 사용했는데, 이곳에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가 운명한 방도 보존되어있다. 때문에 아타튀르크의 기일이 가까워지면 수많은 참배객(?)들로 분주해진다.

  • 오르타쾨이 (Ortaköy)

이스탄불 시민들의 주말휴양처로 유명하다. 바로 위에 보아지치 대교가 지나가며, 전망좋은 카페에서 수다를 나누는게 현지인식 노는법. 주말마다 장도 서기때문에 이런저런 빈티지한 물건들을 구경하고 사는 재미도 쏠쏠하다. 오르타쾨이는 쿰피르(Kumpir)라는 구운감자에 여러가지 토핑을 얹어먹는 요리와 과일을 얹은 와플이 유명한데, 거의 모든 카페에서 이것들을 취급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외국인이라는거 알면 삐끼도 정말 지겹게 달라붙는다. 돌마바흐체 궁전에서 버스타고 갈 수 있는 거리로, 돌마바흐체 궁전 본 김에 여기도 보고 가면 좋다.

  • 이을드즈 궁전 (Yıldız Sarayı)

베식타쉬의 바르바로스 거리에 맞닿아있는 궁전으로, 돌마바흐체 궁전에 질렸는지 압뒬하미트 2세가 세워서 주로 거주한 궁전이다. 크기도 작고 돌마바흐체에 밀려서 그런지 한산하지만 내부장식은 돌마바흐체보다도 더 화려하고 으리으리하다. 그 주변은 공원으로 이스탄불 시민들의 주말 휴식처로 사용되고 있다.

  • 루멜리 히사르 (Rumeli Hisar)

오스만 제국이 동로마의 콘스타티노플을 공략할때 4개월만에 급조한 석조 성채. 당시 술탄인 메흐메트 2세는 최대한 빨리 지으라고 명령을 내리며 여러 장군들에게 각자 성채를 나눠 짓게하며 가장 먼저 짓는 쪽은 담당한 장군에게 후한 보상을 내리겠다고 한다. 보스포러스 대교 앞에 있으며, 돌마바흐체 사라이에서 22번 버스로 들어가면 볼 수 있다. 별도로 철도가 다니지 않고, 유럽-아시아를 잇는 대교 바로 앞에 버젓이 있기 때문에 주말에 이곳을 들르려면 엄청난 교통체증을 감수해야 한다. 중심지에서 비교적 멀어서인지 잘 알려지지 않은 관광지인데, 보스포러스 대교의 전체를 구경하기엔 가장 좋은 곳이다. 요금은 5리라로 터키의 사적지 중에선 나름대로 저렴한 축에 속한다. 하지만 버스비가 3.5리라 들어가니 그게 그건가. 박물관같은 개념보다는 공원에 가깝다.

  • 크즈 쿨레시 (Kız Kulesi)

처녀(Kız)의 탑이라는 뜻인데, 옛날에 이 지역을 다스린 태수가 자신의 공주가 뱀에 물려 죽는다는 예언을 듣고 보호하기위해 가둬놨으나 하필이면 공주에게 위로로 보낸 과일바구니 속에 뱀이 있어서 결국 결혼도 못해보고 물려 죽었다는 전설이 있다. 원래는 동로마 제국 시대인 11세기경에 세관 및 감시초소로 사용하기 위해 지은 건물로 오늘날까지 당시의 건축에서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15세기경 이스탄불을 묘사한 그림지도에서도 갈라타탑과 함께 반드시 묘사되는 건물이다. 아시아쪽 이스탄불의 위스퀴다르 항구에 가까우며, 왕복페리 비용으로 10리라 정도, 낮에는 찻집, 저녁에는 식당으로 개조되어있다. 월요일 휴무. 다만 건물 안에까지 들어가는 관광객은 잘 없는듯.

  • 카리예 박물관 (Kariye Müzesi)

동로마 시절에는 '시골'(Η Χώρα)이라 불렸던 곳에 위치했던 작은 성당으로 오스만 시기에 모스크로 개조되었지만, 이곳은 성화들을 가려놓았던 회칠을 완전히 제거해서 옛 동로마 성당의 면모를 완벽하게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크기는 아야소피아에 비해 작은편이지만, 후기 콤니노스 왕조와 팔레올로고스 왕조 시기의 동로마 이콘 화풍을 감상할 수 있어 역사적으로 가치가 높은 곳이다. 이스탄불 중심가에서는 조금 떨어져있으며 에미뇌뉘에서 버스를 타고 '에디르네카프'(Edirnekapı)에서 내리면 쉽게 갈 수 있다. 근처에 오스만 제국 술탄이 즉위할때 의식을 행하던 에위프 술탄 사원도 있으니 함께 가보자. 입장료는 15리라.

  • 에윕 술탄 사원 (Eyüp Sultan Camii)

역대 오스만 제국 파디샤들이 즉위의식을 하던 곳으로, 이스탄불 성벽을 나가서 조금 더 가야 나오는 곳이다. 성자 에윕(아랍어로는 '아이윱')는 예언자 무함마드의 친우(Ensari)로 이슬람 교도들이 콘스탄티노플을 공격했을때 그곳에서 전사한 인물인데, 메흐메트 2세의 콘스탄티노플 공방전 당시 그의 무덤이 발견되었고 그곳에 세운 사원이 바로 에윕 술탄 사원이다. 과거에는 메카로 향하던 순례자들이 고향에서 메카로 떠나기전에 우선 칼리프가 거주하는 이스탄불을 순례했는데, 당시 반드시 거쳐가는 곳이 바로 이곳이었으며 오늘날에도 터키인들은 메카, 메디나, 예루살렘 다음가는 성지로 여기고있다. 근처에는 종교물품을 파는 시장들이 형성되어있으며, 에윕 술탄 사원에서 가까운 언덕에는 프랑스 작가 피에르 로티가 즐겨찾던 카페가 있다. 이곳에 서면 할리치를 중심으로 이스탄불의 경관이 아름답게 펼쳐지기 때문에 유명한 관광지로 꼽힌다. 입장료는 무료이며, 에미뇌뉘나 탁심에서 가는 버스가 있다. 피에르로티 카페를 가기 위해서는 에윕 술탄 사원 뒤편의 무덤들이 드글드글한(...) 언덕을 올라가거나, 해변으로 나와서 거기서 케이블카(Telefelik)을 타고 오르내릴 수 있다. 케이블카는 악빌로 탈 수 있지만 환승은 안된다. 참고로 유명세탓인지 판매하고 있는 음료값은 아무리 이스탄불이 물가가 비싸다지만, 터무니없이 비싼 수준이니 참고할것.

  • 미니아튀르크 (Miniatü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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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탄불의 테마파크로 터키 전국에 분포한 주요 유적들을 미니어처로 만들어 전시하고 있다. 주요 관광지에서 좀 떨어져있어서 버스를 타고 가야하는데 1453번 버스가 에미뇌뉘와 (여름 한정) 술탄아흐멧을 지난다. 애초에 관광객용 노선이라 이 노선은 이스탄불의 주요 관광지를 거의 다 지난다. 혹은 에윕 술탄 사원이 위치한 곳에서 버스나 돌무쉬를 타도 간다. 입장료는 외국인은 10리라, 터키인은 5리라, (터키 내에서 유학중인) 학생은 3리라이다. 혹은 베식타쉬나 카바타쉬 항구에서 12, 14, 16시에 미니아튀르크를 종점으로 하는 배가 있으니 배를 타고 유유히 할리치를 구경하는 것도 좋다.

  • 아나돌루 지역(Anadolu Yakası)

이스탄불의 아나돌루 지역[53]은 편입된지 오래되지않은 곳이라 이렇다 할 사적지는 없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관광객이 적어서 사실 그대로의 터키 일상을 구경하고자 한다면 가장 적절한 지역이다. 구시가지에서 이동한다면 에미뇌뉘에서 하이다르파샤나 쿠즈군주크까지 페리로 이동하는데 하이다르파샤는 남쪽으로 가는 단거리 이동이고, 쿠즈군주크가 보스포러스 다리(Boğaziçi Köprüsü)의 바로 앞이다. 여기서 한 정거장 더 가면 다리 밑을 통과해 베이레르베이[54]로 간다. 신시가지에서 이동하는 경우는 카바타쉬에서 카드쾨이로 이동하는 것이 보통이다. 제톤 1개로 해결가능한 대중교통용 페리(단거리)가 있고 별도 요금이 있는(10~30리라) 유람선 페리(장거리)가 있다. 또한 위스퀴다르(Üsküdar) 뒷골목은 100년 이상된 오래된 집들이 많이 보존되어있는데 사진찍기엔 매우 좋은 그림이 나온다. 찍덕들이라면 한번쯤 가보는것도 나쁘지 않을듯 하다.

  • 아나돌루 카와으(Anadolu Kavağı)

이스탄불 아나돌루지역 북쪽 끝에 위치한 작은 어촌으로, 굉장히 소박한 이스탄불의 옛 모습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카바타쉬 항구에서 배를 타고 1시간 반쯤 가면 갈 수 있고, 혹은 카드쾨이에서도 가는 버스가 있다. 어떤식으로 가든 상당히 멀다. 아나돌루 카바으에는 요로스 성(Yoros Kalesi)라는 동로마 시절 성채가 있으며, 그곳 위에 올라가면 마르마라해와 흑해가 만나는 경치를 볼 수 있다.

  • 고양이

이스탄불은 고양이들의 도시다. 항구 도시이기 때문인지 옛날부터 고양이가 많았고, 지금도 많다. [55] 이들 고양이들은 집에서 기르는 애완 고양이가 아니라 그냥 길에서 사는데, 그렇다고 우리나라의 길고양이들처럼 불쌍하게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이스탄불 시민들이 모두 공동으로 돌봐주는 고양이들이라고 보면 된다. 때문에 이스탄불 고양이들은 사람에게 스스럼없이 다가오기도 하며 사람을 보고 도망치는 일도 없다. 이스탄불을 구경하다 지치면 길거리 카페에 앉아서 고양이들을 구경하는 것도 좋을지도. 심지어 하기아 소피아 안에서도 돌아다니는 여러마리의 고양이를 볼 수 있을 정도.
참고로, 이스탄불 사람들은 이스탄불 고양이들을 매우 사랑한다. 혹시라도 우리나라에서처럼 길고양이를 으르대고 쫓아내다가는 이스탄불 사람에게 얻어맞을 수도 있음을 알아두자.

7.2. 쇼핑[편집]

2017년 1월 현재 1리라=342원으로 1년 전에 비해 리라 가치가 떨어져서 관광지를 벗어나면 의외로 쇼핑을 괜찮게 할 수도 있다. 대도시 답게 쇼핑몰이 많이 있는데 터키 최대의 애플스토어가 있는 조를루 센터(Zorlu center)와 현지에서 제일 유명한 이스티니예 파크(İstinyePark), 그리고 폭 넓게 많이 찾는 제와히르 몰(Cevahir) 등이 유럽쪽 신시가지인 시슬리(Şişli), 레벤트(Levent)에 밀집되어 있다. 이 쪽 지역은 사무실 등이 많아 고층빌딩이 밀집해 있어서 그런지 구시가지쪽만 보다가 시슬리 지역에 와 보면 다른나라에 온 듯한 느낌이 든다. 단, 신시가지쪽 몰들은 현지 상류층들을 대상으로 한 곳이 많아 한국과 생각보다 가격 차이가 별로 안나니 유의할 것. 가격이 한국이랑 비교해 뒤죽박죽이라 반스 스니커가 한화로 8만원 하는 광경을 볼 수 있다(...) 짧게 여행하는 와중에 잠깐 가 볼만한 곳으론 구시가지 근처의 올리비움 아울렛 센터(Olivium Outlet Center)가 있다. 파노라마1453 박물관이 있는 톱카프 트램 역(톱카프 궁전이랑 전혀 다른 곳이다!)에서 돌무쉬로 5분 거리에 있는데 1,2층은 현지 브랜드가 대부분이라 볼게 없지만 3층에 나이키, 아디다스, 폴로, 디젤 등 익히 아는 브랜드가 밀집해 있다. 관광객들에겐 상대적으로 알려져 있지 않아 꽤 한적하고, 아울렛이라 물건을 잘 찾아야 하지만 아무래도 한국보다 사람들이 대체로 체격이 조금더 크다 보니 작은 사이즈 옷의 경우 계속 재고로 남아 있던 거여서 그런지 상당히 괜찮은 가격에 구할 수 있다. 실제로 한국에서 가격대가 상당한 디젤의 경우 남자 허리 29사이즈의 청바지를 한화로 5만원 정도에 구하는 횡재(...)를 얻을 수도 있다.

하지만 무슬림국가기 때문에 일주일 중 금요일에 몇 상점들은 1시 정도에 문을 닫기도 한다. 무슬림신자들은 하루에 다섯번 메카를 향해 기도를 드려야하는데 모스크에서 기도문이 나와도 사람들은 무시하고 자기 할 일을 하지만[56] 금요일은 모스크에 가서 기도를 해야 하기 때문에 그날은 문을 일찍 닫거나 아예 열지 않는다. 기독교의 주일과 비슷한 개념. 하지만 금요일에 모스크에 가서 기도하는 사람은 대부분 남자들이고, 여자들은 그냥 집에서 기도를 드린다.

7.3. 이스탄불에서 주의해야 할 일[편집]

  • 저녁이나 밤중에 친근한 척 다가오며 술 살테니 같이 가자는 자가 있다면 무조건 못 들은 척 하거나 뿌리쳐 버리자. 다름아닌 유흥업소 호객꾼이다. 흔한 수법으로는 자신도 여행객(스페인과 이탈리아같은 터키인과 생김새가 유사한 라틴계 국가를 사칭한다.)이라며 함께 하자거나 담배불 좀 빌려달라며 말을 걸어와 계속 쉴 새없이 말을 꺼내며 은근슬쩍 밥이나 함께 먹자거나 라는 식이다. 한 번 걸리면 일단 접대부가 나오는 유흥업소로 안내한다. 이 때 위치를 모르게 하기 위해 일부러 골목길을 돌거나 택시를 타는 등 피해자가 차후에 신고를 못하도록 막는다. 그리고 유흥업소 내에서는 술과 안주를 마구마구 시키고 어느샌가 접대부도 불러서 술판을 벌이는데, 이후에 주인이 험악한 어조로 결제를 요구한다. 잘못 걸리면 100만원쯤은 우습게 날라갈 수 있다. ATM기계에서 돈을 뽑게 하는데, 100만원에서 150만원에 달하는 금액을 요구한다! 만일 거부할 경우 술집 내로 끌고가 총이나 칼로 협박해서 도저히 낼 수 밖에 없는 상황을 만든다. 드물게 36계 줄행랑을 치는데 성공하는 경우가 있으나 피해자들은 상당히 많아 이미 유명한 이야기라고 한다. 특히 위의 수법은 너무 흔해서 한국 정부에서 주의를 하라고 친히 공문을 띄웠을만큼 유명한 사기행각이다. 이스탄불 여행 전에 반드시 인터넷 등을 통해 이스탄불의 사기 종류들을 파악해가자.

  • 터키에서 물가가 가장 비싸기로 유명한 이스탄불인만큼 터키의 다른 도시로 갈 계획이 있다면 최대한 잡비를 줄이는 것이 현명하다. 예를 들면 물이나 돈두르마 같은 것. 특히 물은 필히 관광지로 이동하기 전에 준비할 것. 관광지내 물값은 비관광지의 최대 2배까지 먹는다. (2012년 6월 기준 1.5리터에 0.75리라이지만, 관광지에선 1~2리라 받아먹는다. 게다가 앙카라의 대형마트에선 0.4리라 밖에 안한다!) 유럽 기준으로 봐도 이스탄불 물가는 식비빼곤 비싼 편에 속한다.

  • 관광지에서 평일에도 할 일 없이 돌아다니는 남성들은 외국인 여성과의 성관계를 노리려고 하는 경향이 강하다.

    물론 이 중에는 터키인들도 있지만 전부 터키인인 것은 아니다. 그 시각에 대부분의 터키 남자들은 직장에서 일하기 바쁘기 때문이다. 관광지에서 영어로 먼저 말 거는 남자들은 상인 아니면 시리아인일 가능성이 높다. 한 한국인 여성 여행자가 쓴 수기에 따르면 한 10대 고딩이 계속 따라오기에 꺼지라고 했더니 갑자기 지갑에서 돈을 꺼내면서 얼마면 되겠냐고 제안을 했다고. 이것들이 사람 보기를...

  • 사람 많은데에서 오랫동안 머물러 있지 말자. 지난 PKK가 저지른 테러도 그렇고, 2015년 들어 주변국 정세의 불안에 따라 테러 조직이 가장 열심히 노리는 곳 중 하나가 프랑스 파리와 터키의 이스탄불이다. 물론 아야 소피아 같은 문화유적지나 박물관에는 경찰, 헌병들이 경계를 서고 있지만 시장같은 곳은 위험할 수 있다. 1999년 당시 PKK 조직원이 쓰레기통에 설치한 폭탄이 폭발해 100여명이 넘는 외국관광객들이 죽거나 부상당한 사건도 므스르 차르쉬(이집트 시장) 입구에서 벌어진 일이다. 2016년에는 터키 한인이 운영하는 레코드숍에서 폭행사건이 일어나기도 하였다. 자세한 건 터키 한인 레코드숍 피습사건 참조.

  • 테러위협때문에 앞서 언급한 시장이나 대형쇼핑몰, 문화유적지, 박물관 입구에서 항상 금속탐지기와 엑스레이탐지기를 동반한 검문검색이 이루어지고 있다. 군인이나 경찰, 경비요원의 지시에 따라 가방은 엑스레이 탐지기 입구에 놓고, 금속탐지기 게이트를 통과할땐 핸드폰과 지갑을 놓고 통과하면 된다. 귀찮긴 하지만 안전을 위해서이니 협조하자. 애초에 여행을 다니면서 검문검색에 용이하게 짐을 꾸려 들고다니는것도 팁이다. 특히 동전 아무렇게나 주머니에 넣고 다니지 말자.

8. 문화[편집]


이슬람 국가의 대도시라지만 이스탄불만은 별로 그런 느낌이 없이 서방세계의 도시들처럼 자유로운 분위기가 돈다. 여성들은 히잡(이슬람 여성들이 머리를 감싸는 스카프)을 쓰지 않고[57] 서방세계 여성들처럼 긴 금발에 티셔츠 청바지 차림으로 다니기도 하며, 특급호텔 2층의 유리창으로 배꼽이 드러나는 타이즈 헬스복 차림으로 런닝머신에서 뛰는 여성들도 볼 수 있고, 나이트 클럽도 많고 술도 잘 마신다. 이스탄불 나이트 클럽에서는 바람잡이로 가슴이 수박만한 금발여성이 춤추는 모습도 쉽게 볼 수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대낮에 공개된 시가지 대로에서 사람들 보는 앞에서 음주나 여성들에게 찝적거리는 짓을 하는 건 여전히 위험하다.그럼 이런 걸 어느 나라에서 허용하냐? 또한 모스크 근처에 위치한 식당이나 레스토랑에선 술을 취급하지 않는 것이 불문율로 되어있어, 술을 마시고 싶으면 맥주점(Birahane)이나 와인주점(Meyhane)이나 나이트클럽에 가야 한다.

8.1. 낚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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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이스탄불 낚시꾼들은 세월을 낚는다.

이곳에서는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다. 이른바 도시 한복판에서의 낚시(...) 할리치로 갈라진 유럽 이스탄불을 하나로 잇는 '갈라타 다리(Galata köprü)는 설계상 2층 구조로 되어있으며 - 1층은 식당가로 쓰인다. - 다리 중앙에는 배가 지나다닌다. 그리고 이곳 일대의 유일한 다리라 자동차도 다니고 전차도 다니고 사람들도 다닌다. 이 와중에 다리 2층에서 낚시를 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바다라서 그런지 의외로 고기가 잘 잡힌다. 한 시간만 잡아도 10마리는 거뜬히 잡는다고. 주로 고등어나 '함시'[58]라고 불리는 일종의 정어리가 잡히며, 가끔 꽃게같은게 잡히기도 한다. 하지만 터키 사람들은 꽃게를 잡으면 재수없다고 던져버린다. 던져버릴바에야 나좀 주지, 아닌게 아니라 좀 친하게 지내거나 이야기만 잘하면 그냥 주거나 아주 싸게 간식 사주는 정도로 두툼하게 줄 수도 있다. 우스갯소리로 갈라타 다리의 낚시꾼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터키 경제가 나쁜 것이라고들 한다. 실제로 이곳에서 평일 오전부터 죽치고 앉아 낚시하는 사람들은 연금타서 생활하는 노인들이나 일자리없는 젊은이들이 대부분이다.
이 와중에 케밥이나 샌드위치를 거리에서 파는 장사꾼들도 있어 다리 위는 늘 혼잡하다. 다리 아랫층에는 발륵 에크멕(Balık ekmek - 바게트처럼 생긴 빵을 갈라서 그 사이에 고등어(uskumlu)를 끼운 샌드위치이다.)을 판다. 사람들이 걸어다니는데 교통체증이 발생하는 것도 아마 이스탄불이 유일할지도. 대륙에 유력한 라이벌 상하이가 있다.

8.2. 이스탄불의 맛[편집]

이 지역에서 통하는 속담으로 "바다에서 내 아버지가 나온대도 먹는다."(Denizden babam çıksa yerim.) 라는 패드립말이 있을 만큼(...) 해산물 요리가 유명하다. 다만 이스탄불에서 널리 알려진 해산물 요리들은 전부 그리스 요리에서 왔거나 그 영향을 받은 것이고, 이스탄불이나 이즈미르 등의 에게해 지역이 아니면 터키인들은 생선을 그리 먹지도 않는다. 또한 이 곳은 두 제국의 수도로 있으면서 화려한 요리법들이 발전했으며, 특히 돈만 있다면야 옛 오스만 제국의 궁중요리를 그대로 재현하는 식당들도 있어서 인기있다. 또한 터키 전국에서 요리사들이 몰려와서 장사하고 있기 때문에 터키 전국의 토속요리들을 맛볼 기회도 얼마든지 있다.

다만 이스탄불은 터키에서 가장 물가가 비싼 지역이다. 다른 유럽 나라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싼 편이지만 트라브존이나 다른 지역에서 사먹고 이스탄불에서 사먹으면 확실히 물가 차이를 느낄 수 있다. 다만 우리나라도 그렇듯이, 술탄아흐멧, 갈라타 다리 등 관광지 식당들은 꽤 비싼 편이나 관광객들이 많이 찾지 않는 곳으로 눈길을 돌리면 싼 가격에 맛있게 먹을수 있는 곳들이 있다. 특히 몰 같은 곳에서 현지인들을 상대하는 케밥 체인점들의 경우 가성비가 상당히 좋으니 기회가 되면 한번 가보는 것을 추천. [59]

이스탄불 토속요리는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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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합 쌈밥(Midye Dolması - 미디예 돌마스)

삶은 홍합(midye)에 후추, 올스파이스, 딜, 쿠민, 건포도, 양파 등으로 양념한 쌀밥을 채워넣고 다시 한번 찐 요리로, 먹기전에 레몬즙을 듬뿍 넣어서 먹는다. 원래 이 지역에 살던 그리스인들이 먹던 요리이며 역사도 상당히 길다고 한다. 식당에서 먹기도 하지만 길거리에서 이것을 파는 모습도 쉽게 볼 수 있는데, 6개정도 먹으면 가볍게 한끼 때우기에도 좋다. 길거리에서 파는건 비싸봐야 2개에 1리라(630원) 정도이니 가격도 부담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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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양 곱창구이(Kokoreç - 코코레치)

양의 창자를 불에 구운다음에 매콤하게 양념한 것으로 보통은 빵에다가 끼워서 판다. 케밥과 각종 양고기 요리들로 양냄새에 적응했다면 그 다음에 도전해볼만한 음식으로 매콤하고 양창자 특유의 쫄깃쫄깃한 식감도 좋다. 다만 양창자에서 나는 냄새 때문에 터키인들 중에서도 호불호가 갈리는 음식이다.


파일:external/www.e-tarifler.com/beykoz-kebabi.jpg

  • 베이코즈 케밥(Beykoz Kebabı)

이스탄불 베이코즈동의 토속음식으로 양념한 양고기와 함께 각종 야채들을 꼬챙이를 이용해 고정시킨다음에 삶거나 오븐에 구워내는 요리다.


http://www.evepaketservis.net/wp-content/uploads/2012/07/BALIK-Ekmek-Aras%C4%B1-.jpg

  • 고등어 샌드위치(Balık Ekmek - 발륵 에크멕)

고등어를 오레가노와 후추, 고춧가루등으로 양념한 다음에 잘 굽고 각종 야채를 함께 넣고 싸먹는 샌드위치이다. 한국에선 고등어 케밥이라고 알려져있지만 케밥은 고기가 들어있는 음식만을 가리키며 터키인들도 이 표현을 사용하지 않는다. 원래 그리스 어부들이 배위에서 간단하게 한끼 때우려고 도시락으로 싸가던게 기원이라고 하며(...) 전형적인 그리스 요리의 기법으로 요리한다. 고등어살만을 구워서 팔기도 하는데, 이때도 그리스식으로 올리브유와 레몬즙을 듬뿍 끼얹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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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휜캬르 베엔디(Hünkâr Beğendi)

"황제께서 만족하셨다!" 라는 재미있는 이름을 가진 요리로 원래 오스만 제국의 궁중요리였다. 다른 터키요리들도 그렇긴 하지만 만드는데 굉장히 손이 많이 가는데, 우선 가지를 불에 잘 구웠다가 우유같은것과 섞고 뭉게서 곤죽을 만들어놓고, 양고기와 각종 야채를 푹 끓여서 스튜처럼 만든것을 밥 위에 미리 올려놓은 가지로 만든 곤죽(...)위에 부어서 내는데, 보다시피 어마어마하다. 가지퓌레 준비하는데만 한시간 가까이 걸린다. 하지만 일단 맛을 보면 왜 황제가 만족했는지 이해할 수 있을만큼 새로운 맛을 선보인다.

9. 교통지옥[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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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막지하게 복잡한 이스탄불 교통노선도. 배, 지하철, 전차 노선을 총망라하고 있으며, 지도에 표시된 노선들은 악빌(Akbil)이라는 교통카드로 상호환승이 가능하다. 검은색으로 새로 개통된 마르마라이선(Marmaray hatı)도 볼 수 있다. 더 크게보기

  • 붉은색 - 지하철 1호선 (M1)

  • 녹색 - 지하철 2호선 (M2)

  • 하늘색 - 지하철 3호선 (M3)

  • 보라색 - 지하철 4호선 (M4)

  • 남색 - 전차 1호선 (T1)

  • 고동색 - 전차 3호선 (T3)

  • 주황색 - 전차 4호선 (T4)

  • 황토색 - 퓌니퀼레르 (F1)

  • 옥색 - 케이블선 (TF1,2)

  • 검은색 - 마르마라이 선(Marmaray Hatı)

  • 금색 - 메트로부스(Metrobus)[60]

  • 회색 - 튀넬(Tünel)

  • 풀색 - 추억의 전차(Nostaljik Tramvay), 전차 2호선 (T2)


도시 자체가 보스포루스 해협을 끼고 아시아와 유럽 두 구간으로 갈라져 있으며, 성 소피아 성당과 여러 유적들이 남은 구시가는 유럽 쪽에 있고 현대화된 신시가는 아시아 쪽에 지어지고 있다. 그래서 구시가 쪽에 사는 많은 터키 샐러리맨들이 아침에 다리를 건너 유럽에서 아시아로 건너가 일하고 저녁에는 유럽으로 돌아온다. 사실상 위스퀴다르 너머 아시아지역에 산업시설들이 밀집해있고, 베이오울루 북쪽으로 상업시설들이 밀집해있기 때문에 두 지역은 오래 전부터 동일생활권으로 연결되어 있었으나 교통은 상당히 불편하다. 바다를 사이로 다리가 두 개밖에 없기 때문에[61] 출퇴근시간마다 극심한 정체가 이어지며, 항구들을 잇는 터키어로 바푸르(Vapur)라고 불리는 배가 여전히 주된 교통수단 노릇을 하지만 느리다. 에미뇌뉘 항구에서 하렘, 위스퀴다르 등 아시아 지역으로 이동할 경우 항해에만 15~20분 가까이가 걸리며, 거기서 버스로 연결되는 교통수단도 빈약한 편이다. 에미뇌뉘 항 바로 앞에는 서울역 환승센터 저리가라 할 정도의 어마어마한 버스정거장이 있지만 평상시에도 혼잡하다. 가뜩이나 혼잡한 거리에 터키 국가대표팀이나 갈라타사라이(이 지역을 연고로 하는 축구팀)가 원정경기를 나가 우승하기라도 한다면...

도시 한 가운데에 국제공항이 두 개나 있다. 보스포로스 해협을 사이에 두고 서쪽의 아타튀르크 공항(İstanbul Uluslararası Atatürk Havalimanı)과 동쪽의 사비하 괵첸 공항(Sabiha Gökçen Uluslararası Havaalanı)이 있는데, 두 공항 사이의 교통은 정말 정말 불편하다.[62] 사비하 괵첸 공항은 국내선 노선도 함께 취급하기 때문에 이스탄불에 도착하자마자 다른 지역으로 가는 사람이라면 그때마다 애로사항이 꽃필 것이다. 보통 한국에서 출발하면 아타튀르크 공항에 도착하게 되는데[63], 이곳에서 도심 (관광지가 많은 술탄아흐메트, 파티흐, 베이오울루 등등)에 가려면 하바쉬(Havaş)라고 부르는 공항버스(요금 15TL.)나 택시(도심까지 약 100~120TL.), 혹은 경전철(Hafif metro, 3TL.)을 타야한다. 단 경전철을 타려면 제이틴부르누(Zeytinburnu)역에서 내려 전차로 갈아타야하고, 위스퀴다르 등등 아시아 지역으로 건너가려면 에미뇌뉘(Eminönü)에서 내려 또 배로 갈아타야 한다.[64] 물론 그때마다 요금 2리라가 추가된다. 악빌(Akbil)이라는 교통카드 시스템이 있기는 한데, 우리나라와 달리 고작 환승시 일부 할인이라는 메리트 밖에 없다.[65] 이스탄불에 1주일 이상 머물지 않는이상 쓸 일은 없을듯 싶다. 악빌을 살때 보증금 명목으로 6리라를 추가로 내야 하기 때문이다.(물론 반납하면 보증금을 돌려주지만, 악빌 창구직원은 99.9% 영어를 못한다. 원래 내국인용이라...) 그러나 이스탄불에서 대중교통을 이용할 생각이라면 3~4일 이상을 머무를땐(패키지의 코스의 기본이 3일부터 시작) 만드는 것이 경제적으로 유리하고 무엇보다 편하다. 이스탄불 교통 시스템 특성상 여러 종류의 탈것들을 번갈아 타야되는데 그때마다 티켓을 끊으려면 여간 귀찮고 힘든 것이 아니다.

철도여행도 상당한 애로사항이 꽃피는데, 유럽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아시아 지역으로 건너가 앙카라, 트라브존, 메르신 등지로 철도여행을 하려 할 경우 먼저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간 다음 하이다르파샤 역(Haydarpaşa İstasyonu)에서 기차를 타야 한다. 앙카라행 고속열차인 YHT는 거기서 하이다르파샤 역에서 더 동쪽인 펜딕(Pendik)역에 가서 타야 한다. 유럽 지역에 있는 시르케지 역에서는 아시아로 가는 기차를 취급하지 않는다. 애초에 터키의 철도는 굉장히 빈약하기 때문에 탈 일도 거의 없을 것이다. 터키인들이 애용하는 고속버스(Otobüs)를 이용할 경우 서쪽의 에센레르 오토가르(Esenler otogar)에서도 동쪽으로 가는 버스를 탈 수는 있으나, 중간에 보스포로스 해협을 건너야 하기때문에 차라리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 하렘 터미널에서 타는게 훨씬 낫다.[66] 유럽의 시르케지 역에서는 그리스 테살로니키까지 가는 기차를 탈 수 있는데, 17시간 걸리는데다가 무지막지하게 비싸다. 그리스와 터키 사이에 국경통과세가 거의 기차표 값과 맞먹기 때문이다.(2010년부터 그리스 발 거의 모든 국제기차노선이 잠정 중단되었다.)

이스탄불 당국에서도 교통체증의 심각성[67]을 알고, 교통환경을 개선하려 노력하고 있지만 쉽지 않을것 같다. 당장 구시가지만 해도 수백년 묵은 도로와 주택들을 뜯어낼 수도 없는 노릇인데다가[68] 지하철 공사를 하려 해도 파는 족족 유적, 유물들이 발굴되기 때문에 시 당국에선 어쩔 도리가 없다고 한다. 더군다나 이스탄불 구역을 가르는 할리치 만과 보스포로스해는 폭은 뭐해도 엄연히 바다인지라 해저터널을 뚫는 것도 쉽지 않은 모양이다. 최근에 지하철 공사 도중 잔쿠르타란(Cankurtaran) 일대에서 동로마 시대의 군항 유적을 발견하기도 했다.

그리고 유적 유물만을 탓할 것도 없는 것이, 구시가는 그렇다고 치더라도 최근 개발된 신시가지나 유물이 없는 곳에서도 교통체증은 똑같이 나타난다. 이것은 유적의 문제가 아니라 이스탄불 시 당국과 정부가 기본적으로 도시계획에 대한 인식 자체가 없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신도시를 개발할 때 구획정리를 하고 도로망을 정비한 후 건물을 짓지만, 이스탄불은 지주들이 건물을 먼저 짓고 그 사이 남는 땅에, 그것도 땅값이 비싸기때문에 한국처럼 6차선, 8차선 도로는 꿈도 못꾸고 기껏해야 2, 4차선 도로가 나는 식이기 때문에 교통 소통 따위는 전혀 고려되지 않고 개발되는 것이다. 멀리 갈거 없이 용인 수지구 생각하면 된다.

의외로 세계에서 두번째로 오래된 지하철이자 세계에서 가장 짧은 지하철이 이스탄불에 있다. 1875년에 건설된 튀넬(Tünel)과 카라쾨이(Karaköy)를 잇는 지하철로 길이가 573m 밖에 안된다. 프랑스의 건설회사가 파리 메트로를 놓기 전에 시험삼아 만들어봤다는 설과, 베이오울루 지역에 있는 고급 호텔과 항구를 연결하기 위한 교통수단으로 만들어졌다는 설이 있는데 튀넬과 카라쾨이 사이의 길이 상당히 가파른 언덕길이라 오늘날까지 요긴하게 쓰이고 있다.

여러가지로 철덕들이 좋아할만한 도시.

2013년 10월 29일에 보스포로스 해협 관통 해저 철도 터널[69]이 개통하면서 드디어 양쪽을 잇는 철도인 마르마라이선도 완전개통되었다. 기존에 교량 2개(...)가 전담하고 있었던 도로교통을 어느 정도 분산시킬 수 있을 듯. 그리고 시내와는 조금 거리가 있지만 보스포러스 해협 북쪽 입구측에 한국의 현대건설과 SK건설에 의해 야부즈 술탄 셀림 대교(Yavuz Sultan Selim Köprüsü)가 2016년 새로 개통되었다.

9.1. 교통지옥 이스탄불에서 효율적으로 돌아다니는 법[편집]

1. 아나돌루 지역에서 이스탄불로 들어올 경우, 굳이 에센레르 오토가르까지 갈 필요가 없다. 여행자들이 흔히 이용하는 Metro Turizm이나 Pamukkale Turizm, Ulusoy & Varan Turizm, Kâmil Koç 같은 버스회사들은 에센레르 오토가르에 들어가기 전에 알리베이쾨이(Alibeyköy) 터미널과 옥메이다느(Okmeydanı)를 거친 다음 에센레르로 들어가는데, 알리베이쾨이나 옥메이다느에서 내리면 바로 버스타고 2~30분거리에 구시가지(파티흐 구)가 나온다. 알리베이쾨이에서 탁심은 20분내로도 끊을 수 있을만큼 가깝다. 만약 아나돌루 지역에서 이스탄불 구시가지나 베이오울루 구, 베식타쉬 구 일대를 가고자 한다면 굳이 에센레르까지 갈 필요가 없는 것이다. 재수없으면 알리베이쾨이에서 에센레르까지 교통정체로 1시간 넘게 걸릴 수도 있기 때문에(...) 이쪽이 더 이득.

2. 아침 7~9시, 오후 4~7시에는 절대, 절대, 절대로 교통수단을 이용하지 말것! 특히 이스탄불에서 가장 교통정체가 심한 시간대는 아침 8시와 오후 5~6시 무렵으로 러시아워와 정확히 겹친다. 지하철도 이 시간대는 콩나물시루라 차가 들어왔는데도 타지 못하는 상황도 왕왕 벌어지는데다가, 전차(T1)를 이용하면 전차 선로와 차선을 공유하는 부분에선 전차도 옴짝달싹 못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 시간에 택시를 이용하려 한다면... 그건 정말 도시락 싸들고 말리고 싶다. 뭐 택시기사한테 적선하고 싶다면야...

3. 이스탄불의 대중교통은 대략 밤 12시쯤 되면 완전히 끊긴다고 보면 된다. 만약 밤드리 노니다가 12시가 지나 집이나 숙소로 돌아갈 수가 없다면 터덜터덜 걸어가든가 돌무쉬를 타면 된다. 탁심의 돌무쉬는 새벽 2시까지도 쌩쌩하며, 행선지랑 돌아오는 길, 그리고 약간의 터키어 소통능력만 있으면 집이나 숙소 바로 앞에까지 돌무쉬가 세워주기도 한다. 다만 돌무쉬 요금은 버스보단 약간 더 비싸가는걸 유념하시길...

4. 아나돌루 지구와 유럽 지구를 잇는 배는 대개 오후 8시부터 10시면 끝난다. 가끔씩 (특히 겨울에) 바다상황이 더럽게 안 좋아서 배가 끊길때도 있는데, 이럴땐 보스포로스 해협을 헤엄쳐서 건너든가 마르마라이 노선으로 23시까지 위스퀴다르에서 유럽지구의 시르케지로 지하철을 타고 갈 수 있고, 만약 현 위치에서 위스퀴다르나 시르케지가 너무 멀리 있다면 메트로부스를 이용하면 된다. 혹은 베이코즈나 베벡, 베식타쉬 일대에서 보스포로스를 건너서 운행하는 버스, 돌무쉬도 있으니 이쪽을 알아보기 바란다. 다만 서너번 환승할 각오는 해야한다. 만약 아타셰히르에서 23시에 탁심에 있는 숙소로 돌아가야 한다고 가정할 경우, 아타셰히르에서 우선 지하철을 타고 1) 카드쾨이까지 간 다음에 거기서 위스퀴다르까지 걸어가든가 버스를 탄 다음, 마르마라이를 타고 시르케지로 간 다음에 돌무쉬를 타고 탁심으로 가든가. 2) 위날란까지 간 다음에 메트로부스로 환승한 다음에 메지디예쾨이에서 지하철이나 돌무쉬를 타고 탁심으로 간다. 3) 택시를 타도 되는데, 아타셰히르에서 탁심까지 택시비는 야간할증과 다리이용료가 적용되어 못줘도 70리라는 줘야 한다. 4) 하렘 터미널까지 간 다음에 거기를 경유하고 에센레르로 가는 버스를 수소문한 다음에 이런저런 사정좀 해서 알리베이쾨이까지 버스를 얻어타고, 거기서 탁심까지 가는 방법도 있긴 하다.

5. 택시는 가급적이면 타지 말자. 가격도 엄청 비싼데다가, 외국인이고 터키어 모르고 이스탄불 지리에 낯설다는 티 풀풀내고 다니면 바가지 엄청 씌운다. 요즘은 미터기 조작질은 거의 일어나지 않지만 일부러 골목골목 돌면서 추가비용을 뜯어내는 수법은 흔하다. 특히 관광지에서 "탁시?" 하면서 호객하는 택시기사들은 더더욱 질이 나쁠 확률이 높기때문에 타선 안된다. 이스탄불의 택시요금제는 기본요금제가 아니라, 우선 자릿세로 2리라 깔고 50미터 단위로 요금이 기하급수적으로 상승하는 시스템이라는걸 생각하자. [70]

10. 스포츠[편집]

터키 쉬페르리그의 3대 명문 프로축구단인 갈라타사라이 SK, 페네르바흐체 SK, 베식타쉬 JK의 연고지다.

그리고, 2000 하계 올림픽부터 올림픽 유치에 도전하였으나, 유치 신청서를 낸 2004, 2008, 2012, 2020 모두 유치 실패하여 올림픽 유치전의 콩라인으로 뽑히고 있다. 특히 가능성이 제일 높았던 2020 하계 올림픽을 일본 도쿄에게 내주고 만다. 터키 뿐만 아니라 이슬람 국가가 올림픽을 개최한 적은 한 번도 없다. 무슬림이 많은 도시에서 올림픽이 개최된 사례는 사라예보가 있으나, 사라예보는 보스니아계의 무슬림 말고도 정교회 신자인 세르비아계과 가톨릭을 신봉하는 크로아티아계 사람들도 상당수라 애매하다. 그 동계 올림픽도 종교와 상극인 사회주의의 구유고 연방 시절에 유치한 것이기도하니...

11. 창작물에서의 이스탄불[편집]

온라인 게임 대항해시대 온라인에서는 오스만 투르크의 본거지로 등장한다. 자세한 것은 해당 항목 참조. 대항해의길도 마찬가지.

패러독스사의 크루세이더 킹즈유로파 유니버설리스시리즈에서는 DLC와 공식 위키에서의 비잔티움으로 살아남기 공략등 은근히 비잔티움과 함께 제작사의 푸시를 받고있는 지역이다.[71] 단, 이름은 무슬림 국가가 점령하지 않는한 콘스탄티노플로 고정되며, 러시아만 예외적으로 짜르그라드로 이름이 변경된다. 그리고 절대로 이스탄불로는 안 바뀐다. (...)

어쌔신 크리드: 레벨레이션의 주 무대이기도 하다.

007 시리즈에서 번에 걸쳐 이야기의 무대가 된 적이 있다.

[1] 인간의 창의성으로 빚어진 걸작을 대표할 것[2] 오랜 세월에 걸쳐 또는 세계의 일정 문화권 내에서 건축이나 기술 발전, 기념물 제작, 도시 계획이나 조경 디자인에 있어 인간 가치의 중요한 교환을 반영[3] 현존하거나 이미 사라진 문화적 전통이나 문명의 독보적 또는 적어도 특출한 증거일 것[4] 인류 역사에 있어 중요 단계를 예증하는 건물, 건축이나 기술의 총체, 경관 유형의 대표적 사례일 것[5] 따라서 오른쪽 위 바다가 보스포루스 해협, 그리고 바다 건너편 오른쪽에 희미하게 보이는 육지는 소아시아.[6] 그리스어로 그 도시라는 뜻.[7] 역사에 관심있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겠지만(...) 오스만 제국에게 함락당하기 이전, 비잔티움 제국의 수도였던 당시에 쓰이던 명칭이다. 동로마 제국의 주도세력이었던 그리스인들이 보이는 콘스탄티노플(이스탄불)에 대한 애착은 무척 강해서, 그리스인 조르바에서도 아기를 축복하는 동네 아낙들이 "딸들은 저마다 길쌈에 익숙하게 하시고 아들들은 저마다 용감한 병사가 되어 왕들의 도시 콘스탄디누폴리를 되찾게 하옵소서" 라고 노래하는 것을 볼 수 있으며, 터키 독립전쟁 당시 (영국의 간섭과 터키 본토를 향한 무리한 진격의 반작용으로) 콘스탄티노플을 점령(그리스인 기준에서는 탈환)하지 못한것을 아직도 통한스럽게 여기는 이가 있을 정도다. 그런고로 그리스인들은 지금도 터키식 이름인 이스탄불보다는 그리스식 이름인 콘스탄티노플을 훠얼~씬 선호한다.[8] 별칭격인 '이 폴리'의 경우 정관사+'도시'인데... 직역하면 '그 도시'가 되기는 하지만, 영어의 관사 The와 마찬가지로 그냥 '도시'로 번역하는 것이 더 적절할수도 있다. 이는 동로마 시기에 '도시' 라고 하면 당연히 제국의 수도인 콘스탄티노플을 의미하던 것에서 기인한 호칭. 실제로 안나 콤네나알렉시아드를 보더라도 도시(The city - Η πολή)라면 당연히 콘스탄티노플이고(...) 제국 제 2의 도시인 테살로니키조차도 마을(town - η χώρα)로 표기함을 알 수 있다.[9] 현대 불가리아에서는 그냥 Истанбул (이스탄불)로 부른다.[10] 제정 시절에는 Царьградъ (차리그라드, 현대 러시아어 표기로는 Царьград)로 불렀다.[11] 불가리아어의 Цариград (차리그라트)와 러시아어 Царьградъ (차리그라드)는 그냥 발음만 봐도 알겠지만(...) '황제의 도시' 라는 같은 의미다. 이는 두 나라가 정교회 문화권으로 중세시기부터 동로마 제국과 활발한 교류를 가져왔고, 정교회 문화권의 문화적, 종교적, 경제적 중심지였던 콘스탄티노플을 '황제가 사는 도시' 라고 불렀던 데서 기인한다.(그렇다고 안 싸웠던 이야긴 아님. 특히 불가리아인들은 이 도시가 '황제의 도시' 니까 더 탐냈음.) 요즘이야 뭐 굳이 옛날 이름 쓰지 않고 그냥 이스탄불이라고 부르지만.[12] '대도시'라는 의미의 고대 노르드어 Miklagarðr에서 유래한다. 이 명칭은 중세 초기, 온 유럽으로 진출(주로 침략및 약탈, 가끔 용병으로 고용)했던 바이킹들이 자신들이 본 중에서 가장 큰 도시를 '큰 도시' 라고 불렀던데서 기인한다.[13] 비슷하게 유럽과 아시아 경계선에 있는 도시로 러시아예카테린부르크카자흐스탄 아틔라우도 있지만, 인지도에서 엄청난 차이가 난다.[14] 참고로 터키 외에도 수도가 유명하지 않은 나라들이 꽤 있다. (괄호안은 사람들이 흔히 수도로 생각하는 지역 호주-캔버라(시드니) .케나다-오타와(토론토) . 브라질-브라질리아(상파울루) . 미국-워싱턴DC(뉴욕). 스위스-베른(취리히) .모로코-라바트(카사블랑카). 뉴질랜드-웰링턴 (오클랜드) .UAE-아부다비(두바이)등 사실 이스탄불은 터키와 앙숙인(특히 근대국가 터키의 성립 당시에는 대규모 전쟁까지 벌인) 그리스와 지나치게 가깝고 이 때문에 함락될 뻔한 적도 있는 도시이기 때문에 수도로 삼기에는 상당히 불안하다.[15] 1437만 전체 인구의 1/4은 보스포루스 해협 동안의 아시아 부분에 살고 있어서 '유럽 대륙' 최대의 도시라고 하기에는 애매한 면도 있다. 위키백과유럽 최대의 도시 항목에서도 이 부분에 대해 주석을 달아 놓았다. 웹상에서는 모스크바가 유럽 최대의 도시라고 주장하는 자료도 많이 있으며, 이런 글 댓글창에는 어김없이 이스탄불은 어디 갔냐 vs 모스크바가 1위 맞다라는 키배벌어지곤 한다.마드리드 어디있냐는 댓글도 있긴한데 무시하자 러시아-터키 관계 문서에서도 볼 수 있듯 러시아와 터키는 역사적으로도 앙숙이었기 때문에 서로 사소한 것에서 지지 않으려고 으르렁거리는 측면도 있다.[16] 5,343km²로 아는 사람이 많은데, 이는 이스탄불 주의 면적이다.[17] 이 사건에 대해 좀 더 설명하자면, 1955년에는 아직 영국 식민지였던 키프로스에서 키프로스는 그리스라며 그리스와 통합을 요구하는 시위와 폭력행위가 극에 달해있을 시절이다. 아테네에서도 반 터키 시위가 있었고, 특히 이스탄불과 마찬가지로 로잔 조약을 통해 추방에서 제외된 트라키아 서부 지방의 튀르크계 주민들에게도 박해가 벌어졌다. 그러자 터키에서도 반 그리스 여론이 치솟기 시작했고, 그게 폭력 사태로까지 번지게 된 것이다. 1930-40년대까지만 해도 터키와 그리스 관계는 상당히 좋은 편이었지만, 동구권의 공산화로 인해 잔뜩 긴장한 양측 정부는 극단적인 민족주의 이데올로기를 강조하기 시작했고, 둘 다 제정신은 아니었다. 또 오스만 제국이 소멸되고 나서 오스만 제국 국적이 말소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국적을 터키 공화국으로 신청하지 않은 그리스계 무국적자들이 이스탄불에 상당히 많이 살고 있었는데, 그동안 이들은 외국인도 아니고 자국인도 아닌 상태로 거주허가증만으로 버티며 살아가고 있었지만, 이때의 키프로스의 반 튀르크 시위 이후 법적 이유를 들어 하나 둘 추방시킨다. 영화 "터치 오브 스파이스"의 주인공 가족들도 엄마와 외할아버지는 터키 국적을 가지고 있으므로 이스탄불에서 계속 살아도 되지만, 주인공의 아버지인 사바스 야코비디스가 무국적자라 합법적으로 추방되는 모습을 통해 당시의 시대상을 반영하고 있다. 참고로 당시 터키 정보기관 요원은 이슬람으로 개종하면 추방하지 않겠다고 꼬시지만, 아버지는 5초 동안 망설이다 결국 거부하고 그리스행을 택한다. 하지만 이스탄불에 대한 미련은 여전히 아버지의 마음을 흔들고, "세상에서 가장 긴 5초였다."라고 말한다.[18] 정확하게 말하면 정교회를 믿는 인구만 한정된다. 마찬가지로 그리스 혈통이지만 19세기 말과 터키 독립전쟁 시기 그리스에서 추방된 무슬림인 기리틀리(Giritli)의 수는 훨씬 더 많으며, 오스만 제국 시절에 터키화된 그리스계 인구는 여전히 이스탄불 인구의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다.[19] 사실 터키에서 종교가 아닌 혈통으로 '그리스계'를 따지는 것은 의미가 없는 것이... 터키의 영토인 아나톨리아 반도, 그 중에서도 인구가 밀집된 해안의 평야지대에는 고대부터 많은 그리스계 도시들이 건설되어 있었고, 로마 제국 시대에는 제국내에서도 인구수로 상당히 두드러지는 속주였다. 이후 동로마의 쇠락으로 투르크인들이 이 땅을 정복하고 지배하기는 하였으나 당연히 기존의 주민들(대체로 그리스계로 여겨지던 그리스어 사용자들)에 비하면 소수였기에 문화적 동화와 통혼을 통해 융합되면서 현재의 '터키인' 개념이 탄생한 것이다. 즉, 혈통적인 그리스계를 따지자면 애초에 현재 터키인의 상당수가 투르크인 도래 이전부터 현지에 터잡고 살던 그리스인들로 혈통이 이어진다.(...) 다만 문화적, 종교적으로 '터키화' 되었을 뿐. 그러니까 그만 좀 싸워![20] 이전 교과서에는 콘스탄티노플이라는 표현을 주로 사용해왔으나 세계사 용어 개정으로 현재는 죄다 콘스탄티노폴리스로 바뀌어 버렸다.(...)괜히 더 길어졌네[21] 아이러니하게도 그 당시엔 지금의 터키 수도앙카라가 더 큰 도시였다. 사실 비잔티움이 신 수도로 뽑힌 이유는 그 전까지 지방 소도시였기 때문에 지워야 할것들이 적었고 빠르게 신도시를 건설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세종특별자치시가 선정된 기준과도 비슷하다.[22] 지금의 불가리아 수도 소피아.[23] 세르디카 외에도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가 키워놓은 동방 정제의 수도 니코메디아, 사두정치 시절 동방 부제의 수도 시르미움, 훗날 제국 제2의 도시가 되는 테살로니카 또한 고려 대상이었다.[24] 그리스어로는 네아 로미(Νέα Ῥώμη). 로마 노바가 올바른 명칭이라고 알려져 있으나 노바 로마다. 라틴어 문법은 형용사가 무조건 명사 뒤에 오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따지면 라틴어의 영향을 받은 로망스어 계열 언어 모두 형용사가 명사 뒤에 와야될 것이다. [25] 좀 더 세세한 명칭은 로마 노바 콘스탄티노폴리타나(Roma Nova Constantinopolitana). '콘스탄티누스의 새로운 로마'라는 뜻이다.[26] 이때 털린 건 정면으로 성벽을 넘어들어온 게 아닌, 금각만(골든 혼)을 통해 병력이 넘어들어와서다.[27] 이와 비견할 만한 도시는 후우마이야 왕조코르도바, 아바스 왕조바그다드, 장안, 북송카이펑 등이 있었다.[28] J. Phillips, The Fourth Crusade and the Sack of Constantinople, 144.[29] 정확하겐 아랍어로 '콘스탄티누스의 것'이라는 뜻의 알 쿠스탄티니야(Al Qusṭanṭīniyya/قسطنطينية)를 음차했다.[30] 로마 황제라는 뜻의 터키어.[31] 끝내 그리스군이 점령하지 못한 이유는, 이미 연합군(주로 영국군)측이 이스탄불을 접수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리스군이 코 앞까지 다가오자 연합군은 전쟁 한 번 해볼텨? 라는 무시무시한 협박으로 돌려보냈다.[32] 사실 1912년 제1차 발칸 전쟁 당시에도 불가리아군이 차탈자(Çatalca)까지 내려와서 이스탄불을 위협한 적이 있었다. 더군다나 이 지역은 오늘날 이스탄불 광역시에 포함되어있을만큼 이스탄불과 지척에 있는 거리다. 한국으로 따지면 서울과 휴전선 거리가 가까우며 수도 서울이 북한의 장사정포의 범위에 포함된다라고 봐도 무방하다.[33] 페루도 이런 비슷한 케이스로 국명이 정해진 바 있다...정확히는 원주민이 자기 이름(Bíru)을 묻는 줄 알고 답했다가 나라 이름으로 착각한 것.[34] 특히 셀림3세 시기의 화폐들에는 일괄적으로 이슬람불 주조 표시가 되어있지만 그 시대에 한정되어 쓰였다.[35] 2017년 현재 방영중인 터키 사극의 제목이기도 하다. 압뒬하미트 2세 시기를 다루었다.[36] http://www.hgk.msb.gov.tr/urunler/diger/il_ilce_alanlari.pdf[37] http://www.webcitation.org/6NPUvLF4J[38] 하지만 앙카라를 포함한 지방에서는 여전히 차장을 태운 민영버스가 돌아다닌다.[39] 4개 이상 박물관을 순회해야 본전을 뽑으므로 고민해볼 필요는 있다. 그런데 이용할 수 있는 박물관이 거의 5개 수준인 건 안 자랑[40] 붙어있는 위치(톱카프 궁전 바로 아래다.)에 비해 의외로 관광객이 잘 가지 않는 곳인데, 터키의 3대 박물관 중 하나다. 볼거리도 정말 많으니 패스를 샀다면 꼭 가보자.[41] 블루 모스크 근처에 있다.[42] 뮤지엄 패스와는 다르게 이스탄불 아닌 곳도 뚫린다. 관광객이 호구냐![43] 실제로 술탄 아흐메트 모스크는 오스만 고전 건축의 최고봉이자 완결판이라는 평가를 받는다.[44] 오스만 제국의 황제 셀림 1세가 이집트를 정복하며 칼리프 직을 넘겨받으면서 함께 얻어온 것들. 오늘날에야 그냥 유물이지만, 황제가 칼리프를 겸했던 오스만 제국 시대에는 의미가 있는 것들이었다.[45] 2015년 3월 기준. 전년보다 5리라 올랐다.[46]터키 1만 리라 뒷면의 그 분이다.[47] 이곳은 이름값 + 항상 출입하는 관광객들 때문에 이스탄불 상가건물중에서도 가장 임대료가 비싸다. 물건값이 비싼데에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그리고 세계에서 가장 비싼 터키의 기름값 덕분에 물류운송비도 장난아니게 비싸다. 기념품을 사고 싶다면, 그 생산지에서 사는것이 가장 저렴하다.[48] 사실 이것도 이집트에서 터키로 전래되었기 때문에 붙어진것으로 결국은 이집트와 연관되어있다 할 수 있겠다.[49] 그래도 다른 시장보다는 약간 비싼편이다.[50] 내부에는 저녁에 운영하는 카페와 바를 차려놓았는데 정작 전망대 열람시간대에는 열지 않는다. 안 연다고 들어갈 수 있는 것도 아니라, 정말로 2사람도 힘겹게 들어가는 좁은 복도로 돌아다녀야 한다. 정말로 이스탄불의 전망을 볼 수 있다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51]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이 선물해준 것으로 알려저 있는데... 사실은 할부로 구입한 물건으로 3번에 걸처셔 분할납부할 것이라고 한다. 첫번째 납부후 오스만 제국이 망해서 땡처리되었다는 후문이 존재한다.[52] 그런데 그냥 일반 학생증으로도 깎은 사람이 있다 카더라.[53] 과거에는 아시아 지역이라고도 하고, 영어권 여행객들은 그렇게하는데, 터키정부와 이스탄불시에서 밀고있는 단어는 Anadolu yakası, 즉 아나톨리아 지역이다.[54] 이곳에 여름별궁인 베일레르베이 궁전(Beylerbeyi Sarayı)이 있다. 현재는 국빈을 위한 호텔로 개조되었고, 관광하고자 한다면 별도 입장료를 내야한다. 대략 돌마바흐체 궁전의 축소판 정도고, 학생할인 가능. 마찬가지로 돌마바흐체 궁전 옆에 위치한 츠라안 궁전(Çırağan Sarayı)도 호텔로 개조되어있다.[55] 실은 이스탄불에는 개들도 많지만, 아무래도 고양이보다 덩치가 크다보니 고양이만큼 자유롭게 활개치지는 못한다. (이스탄불의 케디(고양이)들은 상점에 맘대로 드나들거나 물건 위에 올라가는 등 제멋대로지만, 이스탄불의 쾨펙(개)들은 덩치 때문에 그게 불가능하다.)[56] 이스탄불이 관광도시기 때문에 사람들이 장사하다가 모스크에 갈 수 없는 일이다.[57] 사실 터키의 국부인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는 히잡을 여성 억압의 상징이라 여겨 굉장히 싫어했다. 하지만 대놓고 착용 금지는 하지 않는 대신 모든 창녀는 히잡을 착용해야 한다라는 법을 제정하여 히잡 착용에 대해 우회적으로 제재를 가하였다.[58] 정어리과의 작은 물고기인데 터키 사람들은 주로 이걸 (향신료와 함께) 볶아서 먹거나 튀겨먹는데 우리나라 사람이 보면 멸치볶음이 떠오른다고 한다... 실제로 멸치 사촌이라 할 만큼 가깝지만, 함시는 멸치보다 좀 더 크다.[59] 몰 안의 괜찮은 식당은 15~20리라에 배터지게 먹을 수 있다. 16/02/28 기준 24리라 정도가 약 만원. 물론 더 내면 더 좋은 식사를 즐길 수 있다.[60] BRT.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이 서울시내 버스 전용차선을 보고 삘받아서 만든거다 카더라[61] 참고로 바다 서쪽의 인구는 950만여 명이고 동쪽의 인구는 500만여 명인데 그 사이를 잇는 다리가 고작 두 개뿐이다(...) 거기에 둘 다 자동차전용도로라서 걸어서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혹은 그 반대로 못다닌다.[62] 교통체증이라도 만나면 3시간은 걸릴 각오를 해야한다.[63] 인천국제공항과 이곳을 연결하는 직항노선을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이 각각 주 5회, 터키항공은 주 11회 운항하고 있다[64] 항구가 꽤 복잡해서 잘못하면 엉뚱한 배를 탈 수도 있으니 주의[65] 과거에는 카드내 충전되어있는 금액이 많을수록 할인률이 커지는 특이한 시스템이었는데 2006년에 폐지되었고, 2014년 현재 2시간 이내에(!) 기본요금은 1.95TL, 1회 환승시에는 1.25TL, 2회 환승시에는 1TL, 3회이상 환승시 0.75TL이 빠져나간다. 예를 들어 에디르네카프(Edirnekapı)에서 바으다트 거리(아나돌루지구 최고의 번화가)로 가야한다고 가정하면, 우선 에디르네카프에서 톱카프까지 전차를 이용하거나, 에디르네카프에서 버스를 타고 에미뇌뉘까지 가야한다. 만약에 전차를 이용할 경우에는 톱카프에서 에미뇌뉘로 가는 전차로 환승하고, 에미뇌뉘에서 배를 타고 카드쾨이까지 간 다음에, 거기서 또 버스를 타고 바으다트 거리(Bağdat Caddesi)까지 가야한다. 이렇게 되면, 전차를 이용할 경우 전차(1.95TL)-1호선(1.25TL)-배(1TL)-버스(0.75TL) 3회환승을 했고, 버스로만 갈 경우 버스(1.95TL)-배(1.25TL)-버스(1TL) 2회환승을 했으므로 각각 4.95TL, 4.20TL이 적용된다. 만약에 저걸 전부 제톤으로 탔다면 12TL, 9TL이 나온다. 만약에 재수가 없어서, 교통정체에 걸려버리는 바람에 에디르네카프에서 에미뇌뉘까지 막혀서 두시간 이상이 걸려버린다면, 중간에 환승요금이 무효가 되어 다시 처음부터 계산된다!!! 흠좀무[66] 살인적인 정체때문에 아타튀르크 대교의 경우 거의 2시간동안 아무것도 못하고 다리위에 묶여있는 경우도 상당히 자주 발생한다.[67] 터키 페네르바흐체에서 뛰며 2008년 챔피언스리그 8강 진출에 활약한 호베르투 카를로스가 인터뷰한 내용을 보면, 먹을 것도 좋고 축구 인프라도 좋고 터키 생활은 만족하는데 딱 하나 이스탄불의 교통체증은 악몽이다고 치를 떨었다..[68] 가령 귈하네(Gülhane)역과 술탄아흐메트(Sultanahmet)역 사이의 전차선로는 2차선도로 위에 있기 때문에 자동차와 선로를 공유한다(!) 그 말인즉, 자동차 정체가 시작되면 전차도 옴짝달싹 못하게 된다는 소리(...)[69] 2009년에 일본 미쯔비시 건설에서 완공하였으며 마르마라이선 개통식에는 일본 총리도 참석하였다. 한편 SK건설의 컨소시엄이 현재 비슷한 위치에 도로터널을 공사중이며 2015년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70] 터키내 다른 지역들은 이스탄불보단 택시비가 저렴한 편이지만, 그래도 한국에서보다는 비싸다. 당장 석유값이 세계에서 제일 비싼 나라가 터키다.[71] 그러나 도시를 노리는 비로마 플레이어의 맨탈을 고려해서 삼중성벽은 형식적으로만 구현되어있다. 물론 일반 성벽보다 튼튼하긴 하다만 전용 성벽에서 주는 요새화 수치가 글쌔올시다에 주둔병에는 버프를 안 준다. 그래서 잘 뚫린다.... 더군다나 크킹에는 해군이 없다! 그나마도 유로파 유니버살리스에는 별다른 특수 조치가 되어있지 않아 그냥 날먹할 수 있는 도시. 거기다가 비잔틴이 오스만 상대로 해상봉쇄조차도 못하게 패치해버렸다. 오히려 고증에 안 맞는데 만약 이게 8단계 요새로 구현되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