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신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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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어: 伊勢神宮(いせじんぐう)
영어: Ise Grand Shrine
프랑스어: Sanctuaire d'Ise
스페인어: Santuario de Ise
독일어: Ise-jingū

1. 개요2. 기원3. 식년천궁
3.1. 소개3.2. 역대 식년천궁
4. 대중문화 속의 이세신궁5. 관광

1. 개요[편집]

홈페이지



일본 미에이세 지역에 위치한 신사로, 일본의 단일성을 나타내기 위해 기원전 1세기경에 조성되었다. 정식 명칭은 지명이 붙지 않은 그냥 '신궁(神宮-진구)'으로, 이세 신궁이라는 이름은 구분을 위해 '이세에 있는 신궁'이라는 의미로 불리는 명칭일 뿐이다. 일본 22사 중 상7사의 수위에 위치한 신사이며, 오늘날에도 일본 전국의 약 8만여개에 달하는 신사를 통괄하는 신사본청의 총본산에 해당[1]하는 중요한 신사이기도 하다.

크게 내궁(內宮)인 '코타이진구(皇大神宮)'와 외궁(外宮)인 '토요우케다이진구(豊受大神宮)'로 구분되는데, 이중 내궁인 코타이 진구 쪽에서는 덴노가의 우지카미(氏神; 씨족신)이자 '태양신'인 아마테라스 오오미카미(天照大御神)를 섬기고 있다. 그 탓에 역사적으로도 일본 황실 및 조정과의 연관성이 강한 편으로 대개 이세 신궁에 참배 목적으로 오는 참배객들은 이 내궁에 참배하기 위해 오는 경우가 많다. 외궁인 토요우케다이진구는 '식량의 신'인 토요우케오오미카미(豊受大御神)를 모시는 신궁으로 5세기경에 처음 조성되었으며, 내궁과는 도보로 약 50분 가량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다.

에도 시대에는 사람들이 토요우케를 모시는 이세 외궁에 대한 참배(오이세마이리)가 유행했다. 특히 부모나 집 주인의 허락 없이 집을 빠져 나와 이세 신궁을 참배(누케마이리)하는 경우도 있었는데 이 경우에는 묵인해주는 것이 관례였다. 사실 이 시기에는 지역간 이동이 매우 제한되어 있어서, 이세 참배를 목적으로 겸사 겸사 여행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긴 했다. 에도 막부의 강력한 정책으로 왕정 복고 초기 사람들이 천황에 대해 잘 모르는 경우가 많았고, 결국 메이지 정부는 이세 외궁에 내한 경배를 아마테라스를 모시는 내궁 즉, 천황의 조상(이라고 생각되는 신)에 대한 경배로 교묘하게 전환시켜 버린다. 그리고 이세 신궁을 모독하는 행위를 불경죄로 코로 와사비를 먹였다.

옛날에는 내친왕, 여왕[2] 등 미혼의 황녀들이 무녀로서 봉직하였는데 이를 사이구(斎宮, 재궁)라고 하였다. 사이구는 보통 새로운 덴노가 즉위할 즈음에 퇴임하였는데, 퇴임 이후에 결혼은 할 수 있었다고 하지만 대부분 미혼으로 살다 죽었다.

근현대에 들어서는 메이지 덴노와 측실 소노 사치코의 7녀 기타시라카와 후사코(北白川房子)[3], 쇼와 덴노고준황후의 3녀 다카츠카사 카즈코, 쇼와 덴노고준황후의 4녀 이케다 아츠코 등이 제관을 맡았다. 2012년부터는 아키히토 덴노와 미치코 황후의 장녀 구로다 사야코가 보조 제관이 되어 쇠약해진 고모 아츠코를 도왔다. 2017년 6월, 아츠코가 퇴임하고 사야코가 제관으로 취임했다. 근현대에 들어 제관이 된 후사코, 카즈코, 아츠코, 사야코 등의 공주들은 모두 기혼.

참고로 사이구의 콩라인 버전으로 사이인(斎院, 재원) 제도도 있었다. 이쪽은 가모 신사(賀茂神社)의 무녀 직책.

단순해 보이는 건물의 외관은 이 건물의 역사를 나타내주는 것. 역사도 역사지만 20년마다 건물을 해체하고 다시 짓는 식년천궁으로 유명하다.

2. 기원[편집]

일본 신화에 따르면 이세신궁이 창건된 계기는 이러하다. (이하의 내용은 일본서기 본문의 기록을 요약한 것이다. 일본서기에서 부연한 일서의 기록은 생략한다.)

10대 스진 덴노 재위 5년(기원전 93년)에 전염병이 돌아 많은 사람이 죽었다. 이듬해(기원전 92년)에도 그 여파로 백성들이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며 충돌이 일어났고 이를 다스리기 어려웠다. 스진 덴노아마테라스와 야마토노오쿠니타마, 두 신을 궁궐에 모시면서 죄를 고백하고 제사를 지냈으나, 두 신을 두려워하여 궁궐 안에서 함께 지내기를 매우 부담스러워했다. 그래서 장녀인 토요스키이리비메(豊鍬入姬命)로 하여금 궁궐 밖에서 아마테라스를 모시며 제사를 지내도록 하였다.[4]

11대 스이닌 덴노 재위 25년(기원전 5년)에 스이닌 덴노아마테라스를 모시며 제사 지내는 직무를 누이인 토요스키이리비메 대신 자기 딸 야마토히메(倭姬命)가 맡도록 하였다. 야마토히메는 아마테라스를 모시기 좋은 터를 찾아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이세국(伊勢國)에 닿았을때 아마테라스가 신탁을 내려 알려주었다.

"신풍(神風)이 부는 이세국(伊勢國)은 도코요(常世)[5]의 파도가 계속 밀려드는 나라로 주변 나라들이 부러워한다.[6] 여기에 머무르도록 하라."

야마토히메는 신탁을 받은 뒤에 이세에 신궁[7]을 지었다고 하며, 여기가 아마테라스가 하늘에서 처음으로 내려온 곳이라고 일본서기는 말한다.

참고로 일본 각지에는 모토이세(元伊勢) 신궁이라고 불리는 곳들이 있다. 전해오는 말에 따르면 야마토히메가 지금의 이세신궁 자리로 아마테라스를 모시기 전에는 각지를 떠돌며 그 영위를 모셨는데, 모토이세라 불리는 곳들이 잠시나마 아마테라스를 모셨던 터라고 한다.

외궁의 기원에 대해서는 별개의 기록으로 전한다. 지유기궁의식장(止由気宮儀式帳)에 따르면, 21대 유라쿠 덴노 22년(477년)에 덴노의 꿈에 아마테라스가 나타나 말하기를 "나 혼자서는 안심하고 식사도 할 수 없어 매우 불편하다. 단바(丹波)[8]에 있는 토요우케(豊受大神)[9] 신을 내 가까이에 불러 날 시중 들도록 하라."하고 명령하였으므로 그대로 하였다고 한다.[10]

그러나 일본서기나 지유기궁의식장 등은 모두 실제 신궁이 건립된 지 수백 년이 지난 뒤에 기록되었으므로 곧이 믿기는 어렵다. 학자들은 대체로 이세신궁이 원래는 이세 지방의 토착신을 모신 성지였으리라 추정한다. 특히 이세 지방에 있던 이소베씨(磯部氏) 집안의 씨족신인 토요우케 신을 모신 곳이었을 가능성이 상당하다.[11] 이소베 씨는 성을 와타라이(度会)로 바꾸어 지금도 외궁의 신관직을 세습한다.

학계에서는 일본신화의 형태가 41대 지토 덴노(재위 690~697) 때 창작, 완성되었다고 본다.[12] 이세 신궁이 지금의 형태로 건축된 때도 지토 덴노 시절이다. 지토 덴노 시절에 아마테라스를 제사지내는 직무를 맡던 오쿠(大来) 황녀가 이세 신궁으로 들어가기를 거부했다는 기록도 이를 뒷받침한다.[13]

신화대로라면 아마테라스의 부속신으로 경내에서 조그만 건물 하나를 받았어야 할 토요우케 신이 '외궁'이라는 이름으로 거의 아마테라스와 동격의 건물을 받게 된 것도 본디 이세의 토착가문인 이소베씨의 성지를 아마테라스의 성지로 재편성하면서 나온 지토 덴노 시절의 정치적/종교적 타협의 산물이었을 것이다.

최초의 식년천궁이 지토 덴노 때 시작함도 결코 우연이 아니다.

3. 식년천궁[편집]

3.1. 소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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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지은 건물(아래쪽)과 곧 헐릴 낡은 건물(위쪽)

식년천궁(式年遷宮)이란 일정 기간이 지나면 건물을 다시 짓고 신을 옮기는 의식이다. 이세 신궁은 20년 주기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2013년 10월에 62번째 천궁이 있었다. 이를 위해 200년, 300년 뒤에 사용할 나무를 미리 심고 있다.

이 식년천궁 제도의 유래는 분명하지 않다. 과거 선대 기술자들이 후세들에게 기술을 완전 전수하는 데 20년이 걸려서라는 것도 있고, 정기적인 재건축이 신의 영위를 재탄생시킨다는 설이나, 그냥 과거의 건축기술 부족으로 건물이 낡으면 위험해지니 정기적으로 때려부수고 다시 짓는 게 관습화되었다는 설, 손과 발을 사용해서 셀 수 있는 가장 큰 숫자가 20이기 때문이라는 설 등등(…) 다양한 설이 있다.

이걸 가지고 우리나라가 경복궁을 복원할 때 거대한 목재가 부족해서 외국에서 수입하느냐 마느냐를 두고 갑론을박하는 것을 빗대서 일본은 나름의 선견지명과 일관성을 가지고 일을 추진한다고 하는 것은 말이 맞지 않다. 20년마다 한 번씩 건물을 새로 짓는다는 관습이 있으니 이에 맞추어 미리 준비했을 뿐이다. 경복궁은 이처럼 정기적으로 새로 짓는 건물이 아니다. 외려 예상치 못한 훼손과 고의적인 파괴로 인해 수리와 복원이 필요해진 것이라, 거대 목재의 수요가 있을 것을 예상하고 미리 심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14]

이세신궁처럼 우리가 '현대 일본신사' 하면 떠오르는 신사 건축의 형태는 의외로 역사가 짧다. 에도 시대 신사건축 양식 중 '고대의 건축은 이렇게 짓지 않았을까'하고 추측하면서 짓던 복고양식 건축이 유행하다가 고착화된 것이다.[15]

3.2. 역대 식년천궁[편집]

횟수

내궁(內宮)

 

외궁(外宮)

서기

연호

덴노

서기

연호

덴노

1회

690

지토(持統)

692

지토 덴노

2회

709

와도(和銅) 2

겐메이 덴노

711

와도 4

겐메이

3회

729

텐표(天平) 1

쇼무(聖武)

732

텐표 4

쇼무

4회

747.9

텐표 19

748

텐표쇼호(天平勝宝) 1

코겐(孝謙)

5회

766

텐표진고(天平神護) 2

쇼토쿠(称徳)

768

진고케이운(神護景雲) 2

쇼토쿠

6회

785.9.18

엔랴쿠(延暦) 4

간무(桓武)

787

엔랴쿠 6

간무

[16]

792

엔랴쿠 11

7회

810.9

코닌(弘仁) 1

사가(嵯峨)

812.9

코닌 3

사가

8회

829.9

텐초(天長) 6

준나(淳和)

831.9

텐초 8

준나

9회

849.9

카쇼(嘉祥) 2

닌묘(仁明)

851.9

닌주(仁寿) 1

몬토쿠(文德)

10회

868.9

조간(貞観) 10

세이와(清和)

870.9

조간 12

세이와

11회

886.9

닌나(仁和) 2

코코(光孝)

889.10

칸표(寛平) 1

우다(宇多)

12회

905.9

엔기(延喜) 5

다이고(醍醐)

907

엔기 7

다이고

13회

924.9

엔초(延長) 2

926.9

엔초 4

14회

943.9

텐교(天慶) 6

스자쿠(朱雀)

945.12

텐교 8

스자쿠

15회

962.9

오와(応和) 2

무라카미(村上)

964.9

코호(康保) 1

무라카미

16회

981.9.17

텐겐(天元) 4

엔유(円融)

983.9

에이간(永観) 1

엔유

17회

1000.9.16

초호(長保) 2

이치조(一条)

1002.9

초호 4

이치조

18회

1019.9.17

칸닌(寛仁) 3

고이치조(後一条)

1021.9.16

지안(治安) 1

고이치조

19회

1038.9.16

초랴쿠(長暦) 2

고스자쿠(後朱雀)

1040.9.15

초큐(長久) 1

고스자쿠

20회

1057.9

텐기(天喜) 5

고레이제이(後冷泉)

1059.9

코헤이(康平) 2

고레이제이

21회

1076

조호(承保) 3

시라카와(白河)

1078

조랴쿠(承暦) 2

시라카와

22회

1095.9

카호(嘉保) 2

호리카와(堀河)

1097.9

조토쿠(承徳) 1

호리카와

23회

1114.9.16

에이큐(永久) 2

도바(鳥羽)

1116.9

에이큐 4

도바

24회

1133.9.16

초쇼(長承) 2

스토쿠(崇徳)

1135.9

호엔(保延) 1

스토쿠

25회

1152.9

닌페이(仁平) 2

코노에(近衛)

1154.9

큐주(久寿) 1

코노에

[17]

1169

카오(嘉応) 1

타카쿠라(高倉)

26회

1171

조안(承安) 1

1173

조안 3

타카쿠라

27회

1190.9.16

켄큐(建久) 1

고토바(後鳥羽)

1192.9

켄큐 3

고토바

28회

1209.9.16

조겐(承元) 3

츠치미카도(土御門)

1211.9

켄랴쿠(建暦) 1

준토쿠(順徳)

29회

1228.9.16

안테이(安貞) 2

고호리카와(後堀河)

1230

칸키(寛喜) 2

고호리카와

30회

1247.9.16

호지(宝治) 1

고후카쿠사(後深草)

1249.9.26

켄초(建長) 1

고후카쿠사

31회

1266.9.16

분에이(文永) 3

카메야마(亀山)

1268.9.15

분에이 5

카메야마

32회

1285.9.16

코안(弘安) 8

고우다(後宇多)

1287.9.18

코안 10

고우다

33회

1304.12.22

카겐(嘉元) 2

고니조(後二条)

1306.12.20

토쿠지(徳治) 1

고니조

34회

1323.9.16

겐코(元亨) 3

고다이고(後醍醐)

1325.9.16

쇼추(正中) 2

고다이고

35회

1343.12.28

코코쿠(興国) 4

고무라카미(後村上)

1345.12.27

코코쿠 6

고무라카미

36회

1364.2.16

쇼헤이(天平) 19

1380.9.8

텐주(天授) 6

고카메야마

37회

1391.12.20

겐추(元中) 8

고카메야마(後亀山)

1400.2.28

오에이(応永) 7

고코마츠

38회

1411.12

오에이 18

고코마츠(後小松)

1419.12.21

오에이 26

쇼코(称光)

39회

1431.12.20

에이쿄(永享) 3

고하나조노(後花園)

1434.9.23

에이쿄 6

고하나조노

40회

1462.12.27

칸쇼(寛正) 3

1563.9.23

에이로쿠(永禄) 6

오기마치

41회

1585.10.13

텐쇼(天正) 13

오기마치(正親町)

1585.10.15

텐쇼 13

42회

1600.9.21

케이초(慶長) 14

고요제이(後陽成)

1600.9.27

케이초 14

고요제이

43회

1629.9.21

칸에이(寛永) 6

고미즈노오(後水尾)

1629.9.23

칸에이 6

고미즈노오

44회

1649.9.25

케이안(慶安) 2

고코묘(後光明)

1649.9.27

케이안 2

고코묘

[18]

1659.11.25

만지(万治) 2

고사이(後西)

45회

1669.9.26

칸분(寛文) 9

레이겐(霊元)

1669.9.28

칸분 9

레이겐

[19]

1683.3.10

텐나(天和) 3

46회

1689.9.10

겐로쿠(元禄) 2

히가시야마(東山)

1689.9.13

겐로쿠 2

히가시야마

47회

1709.9.2

호에이(宝永) 6

나카미카도(中御門)

1709.9.5

호에이 6

나카미카도

48회

1729.9.3

쿄호(享保) 14

1709.9.6

쿄호 14

49회

1749.9.1

칸엔(寛延) 2

모모조노(桃園)

1749.9.4

칸엔 2

모모조노

50회

1769.9.3

메이와(明和) 6

고사쿠라마치(後桜町)

1769.9.6

메이와 6

고사쿠라마치

51회

1789.9.1

칸세이(寛政) 1

고카쿠(光格)

1789.9.1

칸세이 1

고카쿠

52회

1809.10.16

분카(文化) 6

1809.10.16

분카 6

53회

1829.9.2

분세이(文政) 12

닌코(仁孝)

1829.10.16

분세이 12

닌코

54회

1849.9.2

카에이(嘉永) 2

코메이(孝明)

1849.9.5

카에이 2

코메이

55회

1869.9.4

메이지(明治) 2

메이지

1869.9.7

메이지 2

메이지

56회

1889.10.2

메이지 22

1889.10.5

메이지 22

[20]

1900.10.2

메이지 33

57회

1909.10.2

메이지 42

1909.10.5

메이지 42

58회

1929.10.2

쇼와(昭和) 4

쇼와

1929.10.5

쇼와 4

쇼와

제2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59회 식년천궁 연기

59회

1953.10.2

쇼와 28

쇼와

 

1953.10.5

쇼와 28

쇼와

60회

1973.10.2

쇼와 48

1973.10.5

쇼와 48

61회

1993.10.2

헤이세이(平成) 5

아키히토

1993.10.5

헤이세이 5

아키히토

62회

2013.10.2

헤이세이 25

2013.10.5

헤이세이 25

4. 대중문화 속의 이세신궁[편집]

많은 일본 대중매체에서 간간히 이름을 언급하거나 배경으로 빌리고 있다.

X(CLAMP)키슈 아라시가 이 이세신궁의 무녀라는 설정으로 나온 바 있고, 또 이세 시가 배경으로 등장하는 라이트노벨 반쪽 달이 떠오르는 하늘에서도 등장한다.

5. 관광[편집]

가기는 쉽지 않다. 이세신궁이 위치한 곳은 미에 현에서도 동쪽 끝자락이라서 오사카나고야에서 간격이 벌어진다. 하지만 이세신궁은 일본인들이 평생 한번은 가보고 싶어하는 곳으로 꼽는다. 그 정도로 굉장히 가치가 있는 곳인데, 기회가 있으면 꼭 가보는 걸 추천한다. 나고야와 오사카 같은 대도시에서 접근성이 매우 좋고, 시간상으로 대략 1시간 30분~2시간정도면 갈 수 있다. 물론 이것이 꽤 시간이 드는 것이기 때문에 보통은 킨테츠 레일패스를 끊고 토바와 묶어서 여행하거나 더 넓혀서 미에현을 여행하기도 한다.

단, 칸사이(즉, 오사카, 교토, 나라 등을 중심으로 하는 여행)나 나고야권을 중심으로 돌아다니는 여행을 가면서 이곳만 들르는 것은 추천하기가 어렵다. 아무리 빨리 이동한다고 해도 적게는 왕복 3시간 길게는 왕복 5시간은 잡아야 하고, 스룻토 간사이 패스 같은 각종 칸사이나 나고야권에서 쓰는 패스의 통용 구간을 넘어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여기까지 오려면 얄짤없이 추가요금을 내야 한다. 킨테츠에서 발행하는 패스라면 추가요금 없이 올 수 있지만, 간사이나 나고야권 여행이라면 다른 패스에 비해 메리트가 없는 경우가 많다.

JR 투어리스트 패스 중 이세 - 쿠마노 - 와카야마 지역 패스를 사용하면 편하게 이용할 수 있다. 미에 교통의 버스 노선까지 추가금 없이 이용할 수 있어서 좋지만, 도카이도 본선(JR 교토선)과 나라선이 이용범위에 없기 때문에 교토 관광은 포기하다시피 해야 한다.

이세시 역 남쪽 출구에서 나와서 미에교통 51,55 외궁내궁선(外宮内宮線) 버스를 타면 된다. 그 외 노선, 버스는 추가바람. 이세시역전(伊勢市駅前) 정류장에서 타고 우치미야마에(内宮前) 정류장에서 내리면 바로 내궁행이다. 요금은 2017년 3월 기준 430엔. 내궁 입구에는 적당한 크기의 목재 토리이가 서 있으며 바로 강을 건너는 다리로 이어진다. 많은 사람들이 이 토리이 앞에서 인사하고 들어간다. 나갈때도 마찬가지. 여기서부터 내궁 본전까지 걸어서 가는데, 시간이 좀 걸리니 주변 숲을 둘러보면서 천천히 가자. 본전 앞은 사진 촬영 금지이므로 참배하는 모습을 찍을 수는 없다.[21]

[1] 다만 신사본청의 종교법인으로서의 사무실은 도쿄 시부야에 위치하고 있다.[2] 덴노의 딸과 손녀까지는 내친왕(內親王), 증손녀부터는 여왕(女王)이라 한다(남자는 친왕/왕). 1947년에 오늘날의 일본 황실전범이 정해지기 전에는 4대손까지를 내친왕, 5대손부터 여왕이라고 했다.[3] 후사코의 손녀 기타시라카와 하츠코는 1939년에 출생한 직후부터 황태자비 후보로 물망에 올랐는데, 평민 쇼다 미치코에게 밀려 탈락하고 고준황후(나가코)의 외가인 시마즈(島津) 가문으로 시집갔다. 때문에 아키히토 황태자와 쇼다 미치코가 결혼식 전 이세신궁을 참배하러 왔을 때, 후사코는 쇼다 미치코를 홀대하였다고.[4] 야마토노오쿠니타마는 다른 곳에 따로 모시도록 하였다.[5] 일본 신화나 고대 민속에서 말하는, 바다 건너편에 있다는 낙원, 이상향을 가리킨다. 신화에서 흔히 보이는 타계(他界)의 한 종류다. 일본의 민속에서는 타계를 흔히 산 속이나, 혹은 바다 너머에 있다고 상상한 반면, 궁중에서는 천상계에 타계가 있다고 믿었다. 타카마가하라야말로 야마토 조정의 궁중에서 믿었던 천상계 타계이다.[6] 이세를 현세와 타계의 중간쯤에 위치한 곳, 타계에 가까운 곳으로 보는 것이다. 이 문맥에서는 이세를 도코요라는 '해상 타계'와 가까운 곳이라고 하는데, 아마테라스는 천상 타계인 타카마가하라의 군주다. 이 부분은 야마토 조정의 포섭 이전부터 존재했던 민간신앙의 성소를 야마토 조정이 포섭하려 한 역사가 신화에 남았다고 볼 수 있다. 야마토 조정의 포섭 이전에는 바다 건너편에서 이세로 신이 건너왔으므로, 그곳에 종교시설을 세웠다는 이야기였을 것이다.[7] 정확히는 지금의 내궁[8] 지금의 교토 북부[9] 곡령신(穀靈神), 즉 곡식의 신으로 그 중에서도 벼의 신이다. 따라서 벼농사 하는 농민에게 특히 숭배받았다. 기록에 따라 남신인지 여신인지 서로 말이 다르다.[10]아마테라스는 곡신의 신 보고 내 밥순이가 되라고 명령한 것이다.[11] 다른 학설에서는 원래 이세의 토착 태양신을 모신 곳이었는데, 야마토 조정의 태양신인 아마테라스와 습합되었다고 보기도 한다.[12] 물론 아예 무에서 창작됐다는 소리가 아니다. 오래된 신화소는 분명히 존재했다. 하지만 그런 신화소를 끼워 맞추고 정치신화로 구성, 완성했다는 소리다. 또한 이런 과정에서 지토 덴노 본인은 물론 후지와라 가문의 고위층이 협력했으리라는 정황이 있다. 지토 덴노여자 덴노로, 선왕인 40대 덴무 덴노의 아내였다.[13] 물론 오쿠 황녀의 행동은 자기 오빠를 죽인 지토 덴노에 대한 반발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세 신궁이 지토 덴노 이전까지만 해도 아마테라스의 전통적인 성소가 아니었기 때문에, 전통이 아님을 핑계로 오쿠 황녀는 이세 신궁에 들어가기를 거부하고, 정말 최소한의 경우에만 마지못해 이세 신궁에 들어가 제례를 거행하곤 되돌아가기를 반복하였다.[14] 참고로 이세신궁의 재건축을 위해서 목재를 미리 준비하는 게 부럽다고 평가한 건 무슨 친일적인 학자나 언론사 기자도 아니고 현장에서 경복궁과 같은 한국의 건축물들을 복원하고 있는 목수들, 대목장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다. 한국일본으로부터 독립한 지 반세기가 한참 전에 지나갔는데도 불구하고 조선시대 주요 궁궐과 건축물에 대한 복원이 완료되지 않았고 민주화 되기 이전에는 체계적인 계획도 없었다. 심지어는 식민지 지배의 상징인 조선총독부 청사를 이전하자는 것도 아니고 그냥 근정전 앞에 놔두자는 주장도 있을 지경이었으니 이에 대한 아쉬움을 표현한 것이다.[15] 고토 오사무(도쿄대학 공학원대학 교수) 저, <일본건축사> 참조.[16] 내궁 정전이 소실되어 임시로 천궁함.[17] 내궁 정전이 소실되어 임시로 천궁함.[18] 내궁 정전이 소실되어 임시로 천궁함.[19] 내궁 정전이 소실되어 임시로 천궁함.[20] 내궁 정전이 소실되어 임시로 천궁함.[21] 사실 대부분의 신사에서 본전 안은 사진을 찍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