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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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크엔터테인먼트

Artist

이선희

이승기

이서진

윤여정

윤보라

양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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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964년[1] 12월 14일[2](현재 만 52세), 충청남도 보령

본관

한산 이씨[3]

신체

158cm, 46kg, O형

소속사

후크엔터테인먼트[4]

가족

딸 윤양원

학력

신광여자중학교
상명여자고등학교
인천전문대학[5] 환경관리과

데뷔

1984년 MBC 강변가요제 대상 「J에게」

팬클럽

홍당무

종교

불교

제5회 MBC 강변가요제 대상

손현희
이름 없는 새
(1983)

4막5장
J에게
(1984)

마음과 마음
그대 먼곳에
(1985)


1. 소개2. 생애
2.1. 1984년 ~ 1990년 '데뷔, 그리고 전성기' 2.2. 1991년 ~ 2005년 '위기, 극복, 그리고 부활'2.3. 2006년 ~ 2017년 '국민 가수로의 도약'
3. 대중적 인기4. 음악적 능력5. 트리비아6. 디스코그래피
6.1. 정규 음반6.2. OST 및 삽입곡

1. 소개[편집]

노래하는 이선희.


이선희 데뷔 30주년 기념 콘서트 타이틀



▲ '이선희 레전드 라이브 모음'[6][7]


▲ 2014년 이선희 데뷔 30주년 기념 콘서트 (수원) 휘트니 휴스턴의 'I will always love you' 무대.

대한민국 땅 위에 100년에 한 명 나올 그런 가수가 나왔습니다. 이선희 양입니다.


대한민국에도 세계 무대에 내놓을 수 있을 만한 가수가 등장했습니다. 이선희!


제 롤모델은 이선희입니다. 시간이 갈수록 발전하는 가수는 그녀밖에 없습니다.



대한민국 국가대표 보컬리스트. 불세출의 디바. 국민 가수.

2006 조선일보, 2008 해럴드경제, 2011년 월간조선 가창력 조사 결과 대한민국 여성 보컬리스트 1위.[11]

가창력 본좌급 여성 보컬리스트이자, 1980년대 중후반을 휩쓴 여가수로 가창력과 대중성이 조화를 이뤘던 대표적인 케이스다. 자그마한 체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폭발적인 에너지와 완벽한 가창력을 바탕으로 1980년대 인기정상을 구가하며 최고의 전성기를 이룩했다. MBC 강변가요제 대상 출신으로 탁월한 가창력과 무대매너, 그리고 차분하고 모나지 않은 선한 이미지의 소유자로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모든 국민으로부터 사랑 받는 진정한 의미의 국민가수이다. 또한 최초의 언니부대를 탄생시켰으며, 이미자패티 김의 뒤를 이어 대한민국 최고의 디바로 성장했다. 벽을 뚫을 듯 쨍한 맑은 진성 고음이 특기이며 동시에 자연스러운 진가성구 전환을 사용한 감정 표현에도 능하다.

조용필, 이승철, 임재범 등과 함께 역대 대한민국 최고의 보컬리스트 반열에 올라 있을뿐 아니라 역대 대한민국 최고의 여성 보컬리스트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12] 데뷔한 지 30년이 넘었음에도 불구하고 박정현, 소향 등 젊은 세대 가수들과의 전성기가 아닌 '현재' 가창력을 논할 때에도, 이미자, 패티 김, 현미, 하춘화 등 레전드 디바들과의 히트곡 등 음악적 업적을 논할 때에도 결코 빠지지 않는 가수이다. 수식어로는 작은 거인, 여가왕, 국민가수, 국민디바, 만년소녀 등이 있다.

작사와 작곡에도 능한 싱어송라이터이기도 하다. 일례로 영화 왕의 남자에 쓰였던 명곡 <인연>을 포함한 13집의 노래들은 전부 그녀가 작사, 작곡한 것이다. 그 이후 14집과 15집은 대부분이 자작곡으로 채워졌다. 그녀는 중학교 때부터 조금씩 곡을 쓰긴 했으나 앨범에 넣지는 못했고[13], 1996년 발표한 10집 '라일락이 질 때' 부터 본인의 자작곡을 앨범에 수록하기 시작했다.[14] 데뷔 이래 변치 않는 외모와 목소리를 유지해 오고 있는 가수로 진정한 자기 관리의 화신으로 평가받는다.

대표곡은 J에게, 아! 옛날이여, 달려라 하니, 갈바람, 괜찮아, 연인의 눈물, 알고 싶어요, 영, 사랑이 지는 이 자리, 나 항상 그대를, 아름다운 강산, 나의 거리, 한바탕 웃음으로, 불꽃처럼, 오월의 햇살, 겨울애상, 추억의 책장을 넘기며, 왜 나만, 그대가 나를 사랑하신다면, 조각배, 비 오는 거리에 서서, 라일락이 질 때, 너에게 가면, 이별 소곡, 살아가다 보면, 이 노래를 빌려서, 아마, 인연, 사랑아, 여우비, 떠나지 마, 그 중에 그대를 만나, 바람꽃 등이 있다.[15]

2. 생애[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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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선희의 활동과 수상에 대한 사실은 한국어 위키백과 '이선희' 문서에 더욱 자세히 정리되어 있으니 참고할 것.

2.1. 1984년 ~ 1990년 '데뷔, 그리고 전성기' [편집]


▲ 1984년 KBS 가요대상 'J에게' 영상.

이선희는 1964년 12월 14일 충청남도 보령에서 태어나 1984년 제 5회 MBC 강변가요제에서 같은 과 선배 임성균[16] 씨와 "4막 5장"이란 팀으로 참가하여 <J에게>로 대상을 수상하고 큰 관심을 모으면서 데뷔했다. 이 때 부모님에게 나간 걸 들킬까봐 전날 급히 파마를 했다고 한다. 유달리 촌스러워 보이는 것도 그 때문이다.[17] 이선희가 고등학교 2학년 시절에 장욱조 음악 사무실에 찾아갔다가 한 작곡가가 쓰레기통에 버리려던 악보를 '이거 제가 불러도 되느냐'고 말하고 주워 왔는데, 이 악보의 곡이 바로 <J에게>였다고 한다. 이 작곡가는 이세건, 민해경의 <사랑은 이제 그만>을 작사/작곡했던 인물이다. 여담으로 이 시절 대통령이 전두환 대통령이었기 때문에 대통령을 연상시킨다고 방송 금지곡이 되지 않을까 하는 농담도 있었다. 실제로 "J~ 아홉시 뉴스에~"라는 식으로 땡전뉴스를 풍자할 때 이 노래가 사용되었다.

폭발적인 가창력과 바지만 고수하는 옷차림의 보이시한 매력으로 남성팬보다 여성팬을 더 많이 보유한 가수로도 유명했다. 일명 '언니부대'의 시초이다. 당시 이선희의 무대 영상을 보면 남자 아이돌의 무대에서나 나올 법한 여성팬들의 비명소리가 터져 나오는 것을 들을 수 있다. 이선희의 언니 부대의 규모가 어마어마해, 회사에서 돈을 주고 사람을 동원했다는 유언비어마저 떠돌 정도로 언니 부대의 위력은 위대했다. 또한 이선희의 동그란 안경과 커트 머리가 당시 여학생들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유행할 정도로 소위 '이선희 신드롬'을 일으켰다. 수줍은 소년 같은 외모와 바지 의상만을 고집하는 독특한 이미지 메이킹은 남성 팬뿐만 아니라 여성 팬들에게도 ‘이선희 신드롬’을 불러 일으켰고, 퇴폐 풍조를 배격하는 사회 분위기는 이선희와 같은 건전한 이미지의 가수가 나래를 펼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놓은 상황이었다. 이선희는 이에 더해 가녀린 듯 하면서도 고음에서는 강력한 힘을 표출하는 특유의 보컬 능력과 젊은 여성들의 감성을 자극하는 노래들을 앞세워 인기 몰이에 나설 수 있었다.

당시 타 방송사에서 데뷔한 가수는 다른 방송사에 출연하지 못했던 관례를 깨고, MBC 가요제 출신으로서는 이례적으로 11월 25일 KBS 가요톱10에서 골든컵의 주인공이 되었으며, 84년 KBS 방송 가요대상 신인상, '84 MBC 10대가수 가요제 최고 인기 가요상, 신인상, 10대 가수상으로 최초 3관왕에 오르는 등 데뷔 직후부터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18] 평론가 임진모의 말을 빌리자면 대한민국 역대 가장 임팩트 있던 데뷔라고 한다. 경이로운 점은 이 때까지 정규 앨범 한 장도 없이 MBC 강변가요제 출전곡인 'J에게' 하나만으로 이 모든 상을 휩쓸었다는 것이다. 이 때 MBC-FM에서 'J에게'가 하룻동안 무려 16번 방송되면서 FM 라디오 하루 최다 방송 횟수 기록을 세웠다. 이후로는 PD들이 자체적으로 이러한 중복 선곡을 피하고 있다고 한다.

1985년 첫 음반 《아! 옛날이여》가 발매되었고 그녀를 스타덤에 오르게 한 'J에게'와 록적인 스타일이 가미된 '아! 옛날이여' ,'갈등' , '소녀의 기도' 등 수많은 곡이 히트하며 등장과 동시에 KBS 가요톱10에 무려 7곡을[19] 진입시키며 큰 인기를 끌었다. '아! 옛날이여'[20]로 1985년 4월 8일 가요부문 통합 1위를 차지했고 발라드가 아닌 다른 장르에서도 그녀의 가창력이 빛이 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1986년 초 2집 《갈바람》[21]이 발매되면서 '갈바람', '괜찮아[22]', '연인의 눈물', '그래요, 잘못은 내게 있어요'[23], '서울의 밤' 등이 인기를 모으며 TV가이드, 뮤직박스 1위로 선정되고 일간스포츠 골든 디스크상, KBS 방송 가요대상, MBC 10대 가수상을 수상했다. 갈바람이 인기를 구가하던 도중 "김연자의 <사랑의 미로>와 후렴 부분이 같다." 라는 표절 시비에 휘말리는 바람에 곡 일부가 수정되어 다시 발표되는 비운을 겪기도 했다.

1986년 '이선희 학생 가장 돕기 콘서트'라는 타이틀을 걸고 공연을 시작했다. 홍익대학교에서 첫 공연을 한 이후 수년 동안 학생 가장 돕기 및 장한 청소년 돕기 공연을 이어가며 그 수익금을 학생 가장들에게 기부했다. 소년, 소녀 가장들이라는 단어 자체가 생소했던 그 당시 그들에게 가장 먼저 손을 내밀어 준 건 이선희였다. 사회적 약자, 사회적 소회계층을 향한 따뜻함이 남달랐던 그녀는 이후에도 위안부 할머니 보금자리 마련을 위한 공연 등을 이어나가며 관심과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꾸준히 따뜻한 마음을 베풀었고, 그녀의 이런 선행은 팬들은 물론 대중들에게도 나눔의 의미를 깨닫게 하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 1987년 3집 수록곡 '영'의 KBS 가요톱10 영상.

1986년 말 3집 앨범 《알고 싶어요[24][25]가 발매되었으며 대표곡 '알고 싶어요'는 1987년 KBS 가요톱10 5주 연속 1위를 하면서 두 번째로 골든컵을 수상하는 주인공이 되었고 한 달 방송 횟수 107회, MBC 라디오 음악차트에서 15주 연속 1위 기록을 배출했다.[26] 그 외 '영', '어둠은 걷히고' 등이 히트했다. 여담으로, '알고 싶어요'[27] 곡을 양인자와 김희갑이 만든 후 소설가 이재운이 허락을 받고 소설 "황진이"에 노래 가삿말을 인용해서 한시로 실었는데, 이게 반대로 알려져서 선후 관계가 바뀌어 알려진 경우가 많다.[28] 1집부터 3집 앨범 활동 당시 이선희는 본인이 작사, 작곡한 노래들을 지구레코드 사에 가져갔으나, 묵살당했다고 한다. 1980년대 당시에는 여성 싱어송라이터라는 개념이 없었을 뿐더러 가수와 작사, 작곡가의 영역을 확실히 나누어 생각했던 때이기에 어쩔 수 없는 시대적 한계가 있었던 것이다. 또한 1집부터 3집을 발매한 지구레코드 사와의 전속계약이 끝난 뒤 그녀의 4집 음반부터는 서울음반(현 로엔엔터테인먼트)에서 발매하게 된다.

1988년 4집 《사랑이 지는 이 자리》[29] 에서는 '나 항상 그대를'으로 KBS 가요톱10에서 3번째로 골든컵을 수상하는 주인공이 되었다. 70년대 신중현과 뮤직 파워(26인조 악단)의 '아름다운 강산'[30][31]을 리메이크하며 폭발적인 가창력을 드러내며 인기를 끌게 되고, 그 밖에도 '사랑이 지는 이 자리', '안녕' 등이 히트하게 되었다. 다른 방면으로는 만화 주제가 '달려라 하니'를 불러 인기를 끌었다. 1988년은 서울 올림픽이 개최된 해인만큼 행사가 많이 열렸는데, 각종 행사의 대미를 이선희의 '아름다운 강산'이 장식했다. 1989년 5집 《한바탕 웃음으로》[32]에서도 '나의 거리'[33]KBS 가요톱10에서 4번째 골든컵을 수상했고, 후속곡인 '한바탕 웃음으로'[34]가 1990년에 3주 연속 1위를 차지하는 등 전성기가 계속 이어졌다. 그리하여 이선희는 1989년, 1990년 한 앨범으로 2년 연속 골든 디스크상을 차지했다. 그 외에 '겨울 애상', '불꽃처럼', '오월의 햇살[35]' 등의 노래가 히트하며 큰 인기를 끌었다.

당시 폭발적인 인기를 구가하던 홍콩 배우 장국영과의 조인트 콘서트를 개최하며, 화제를 모았다. 이때 한국인 가수로는 최초로 홍콩 퍼시픽레코드와 로열티 15%를 받는 조건으로 계약을 체결하고 영어 음반을 발표했다. 이선희의 데뷔곡인 'J에게'를 포함한 4, 5집의 수록곡 중 몇 곡을 추려서 영어로 번안해 홍콩과 한국에서 음반을 낸 것이다. 1980년대 후반, 당시 큰 인기를 모았던 만화영화 달려라 하니의 주제곡을 불러 청소년뿐 아니라, 어린이들에게 익숙한 목소리였던 이선희는 그 인기에 힘입어 피터팬, 오즈의 마법사, 박문수 등의 어린이 뮤지컬에 출연하며 전회 매진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가창력뿐만 아니라, 무대 위에서 뛰어난 연기력까지 보여준 이선희는 세대를 뛰어넘어 당대 최고의 핫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 1991년 KBS 쇼! 특급 '추억의 책장을 넘기며' 영상.

1990년 6집 《추억의 책장을 넘기며》를 발매하며 '추억의 책장을 넘기며'[36], '그리운 나라', '왜 나만' 등이 히트했다. 5집《한바탕 웃음으로》의 수록곡 '한바탕 웃음으로'가 골든디스크상 5회 연속 수상, 6집 《추억의 책장을 넘기며》로 KBS 가요대상 최우수 가수상 6년 연속 수상, MBC 10대 가수상 6년 연속 수상을 했다. 전성기 시절 이선희는 발매되는 앨범마다 대표곡 뿐만 아니라 앨범의 모든 노래가 히트하는 쾌거를 안았다. 또한 폭발적인 가창력 속에서 남다른 감성으로 노래했던 이선희는 노래에 담았던 그 감성을 글로 써내 1990년 4월 <떠나는 자만이 사랑을 꿈꿀 수 있다>라는 자작시집을 발간했다. 시집과 함께 발매된 낭송집은 노래를 들을 때와는 또 다른 감동으로 당시 10대 소녀들의 감성을 자극하며 대형서점들의 베스트셀러 순위에 진입해 오랫동안 상위권에 오르며, 문화에 영향을 끼쳤다.[37] 대중가요와 클래식은 전혀 다른 장르로 인식되어 있던 시절, 이선희는 1990년 세종문화회관에서 캐나다 몬트리올 챔버 오케스트라와 협연을 통해 대중들에게 다양한 음악적 들을 거리를 제공했고, 몬트리올 협연 라이브 실황 앨범을 발매했다.

이선희는 데뷔곡부터 6집까지 매 앨범마다 KBS 가요톱10 1위 곡[38]을 배출하면서 가요톱10 골든컵(5주 연속 1위) 수상 횟수 역대 2위(4회), 1위 횟수 역대 2위(26주)에 랭크, MBC 10대 가수 가요제 10대 가수상 6년 연속 수상, KBS 가요대상 올해의 가수상 6년 연속 수상, 일간스포츠 골든디스크상 5년 연속 수상, 가배상 5년 연속 수상 등 국내에 있는 모든 부문의 상을 모조리 다 수상하는 진기록을 세우며 빛나는 최전성기를 보냈다. 콘서트 활동으로는 1986년부터 1990년까지 총 40여 회에 걸쳐 '학생가장돕기 이선희 콘서트', '장한 청소년돕기 이선희 여름콘서트'를 개최했다.

2.2. 1991년 ~ 2005년 '위기, 극복, 그리고 부활'[편집]

90년대로 접어 들면서 80년대 중후반을 휩쓸며 승승장구를 달리던 그녀에게도 고비가 왔다. 7집《그대가 나를 사랑하신다면》은 '그대가 나를 사랑하신다면', '그대가 떠나신 후에' 등이 인기를 끌었지만 이전만큼의 인기는 끌지 못했고 상업적으로는 가장 저조한 성적을 얻었다. 하지만 위기를 기회로 삼는다는 말처럼, 변화된 가요계 상황에 발 빠르게 대처하여 1992년 8집 《조각배》를 통해 국악과 가요의 콜라보레이션을 이끌었다. 8집 앨범은 이선희 앨범의 수작으로 평가받았으며, 현재에도 색다른 이선희의 모습을 가장 잘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는다. 8집에서 이선희는 상당한 가창력을 필요로 하는 타이틀곡 '조각배'[39]와 '초원', '작은 연가', '성주풀이', '한네의 이별' 등을 이선희만의 느낌으로 소화해 냈다.[40]


▲ 1999년 MBC 가요콘서트 '한송이 국화' 영상.

1994년 9집《한송이 국화》는 락의 느낌을 가미하며 새로운 이선희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한송이 국화'를 시작으로 'Bluse Cafe', '기분이 좋아', '비 오는 거리에 서서', '아쉬움' 등이 이 앨범에 수록되어 있다. 이 앨범으로 그녀는 KBS 가요대상 본상을 수상했다.[41] 이후 1996년 10집 《First love》는 이선희가 직접 모든 노래의 작사, 작곡에 참여하면서 큰 음악적 성장을 보여주었다. 대표곡으로는 '라일락이 질 때'가 있다. '회색 도시'는 락의 느낌으로 앨범을 구매한 사람들에게 새로운 느낌을 주며, '성 안의 아이'는 몽환적인 느낌으로 팬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게 되었다. '소국 한다발'이라는 수록곡에서는 성악가 바리톤 김종홍과 듀엣을 펼치는 등 다양한 시도를 선보였다. 또한 '아카라카치'는 삶에 희망을 주는 메시지를 담고 응원 구호를 접목시키며 가창력까지 돋보이게 해 현재까지도 응원가로 쓰인다. 이 앨범 이후로 이선희는 직접 싱어송라이터의 면모도 보여 주기 시작했다.

이선희는 1998년 11집 《Dream of Ruby》를 발매했다. 대표곡으로는 '낯선 바닷가에서', '너에게 가면', '백우'가 있다. 이선희는 이 앨범에서 '낯선 바닷가에서'의 뮤직 비디오 촬영 중 넘어지는 가로등에 머리를 가격당하는 부상을 당하였다. 이 앨범은 큰 인기는 끌지 못했지만 부드러운 느낌을 주며 팬들에게는 따뜻하게 다가왔다. 신중현의 아들 신대철이 만든 '너에게 가면'에서는 엄청난 고음을 선보이며 여전한 가창력을 나타냈다.[42] 유영석, 박진영, 김종서 등 젊은 세대들의 대표 아티스트들이 도운 12집 《My Life + Best》에서도 건재한 모습을 보여주며 2001년 이선희는 MBC 10대 가수상을 다시 한번 수상했다. 대표곡인 '이 노래를 빌려서'는 이별의 슬픈 감정을, '아마...'는 소녀적인 감성을, '살아가다 보면'은 삶에 대한 격려와 희망을, '이별 소곡'은 조용한 느낌을 드러내며 인기를 끌었다. 그 외 1988년에 발매했던 '나 항상 그대를'이 영화 "가문의 영광"에 삽입되며 젊은 층에게도 인기를 모았다.

2002년 FIFA 한일 월드컵이 열렸을 당시 붉은 악마가 운집한 서울시청과 광화문 광장 일대에서 애국가, 아리랑, 오 필승 코리아, 해야, 아카라카치, 아름다운 강산 등을 열창하며 거리 공연 및 열띤 응원을 펼쳤다. 식지 않는 열기 속에 2003년 월드컵 1주년, 2004년 월드컵 2주년 기념 무대도 가졌다.[43] 2003년 10월에는 북한 평양 특별생방송 통일음악회 (통칭 평양공연)에서 'J에게'와 '아름다운 강산'을 열창하기도 했다. 이후 주로 자신의 제자 이승기와 함께 응원 무대에 등장했으며 2004년 아테네 올림픽, 2006년 독일 월드컵, WBC 준결승전 응원 무대 등에 섰다. 사실상 2002년부터 2006년까지 있던 대부분의 대규모 스포츠 응원 관련 행사에는 이선희가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 2006년 4월 백상예술대상 축하공연에서 '인연' 영상.

2005년 이선희가 직접 모두 작사, 작곡한 13집 《사춘기》를 발매하였다. 직접 작사, 작곡한 그녀의 대표곡 '인연'이 천만 영화 "왕의 남자"의 OST로 삽입되며 큰 인기를 얻어 화려한 복귀에 성공하게 되며, 곡 '장미'와 '왜?'는 이선희의 싱어송라이터의 면모를 확실하게 드러내어 전문가들에게 많은 호평을 받았다.[44] 그 전까지 꾸준히 다양한 음악적 시도로 자신을 담금질한 결과 '사춘기' 앨범의 퀄리티는 역대 이선희의 앨범 중 최고로 평가받을 만큼 훌륭했으며, 이 앨범은 이선희가 왕년의 인기가수를 넘어 21세기에도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하는 창창한 현역이자 훌륭한 아티스트로 평가받는 시발점이 되었다.

콘서트 활동으로는 1992년 위안부 할머니 보금자리 마련을 위한 '이선희 한의 소리 콘서트'를 열었으며 이는 당시 주목받지 못하던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큰 힘이 되었다는 후문이 있다. 1994년 세종문화회관에서 '이선희 서울의 사랑 콘서트'라는 이름으로 데뷔 10주년 콘서트를, 2002년 세종문화회관에서는 '이선희 빅 콘서트'를 성황리에 개최한 바 있다. 2004년 세종문화회관에서 'J에게 20주년 이선희 콘서트'라는 이름으로 데뷔 20주년 콘서트를, 2006년 세종문화회관에서는 데뷔 22주년 라이브 콘서트 '인연'을 개최하기도 했다.

2.3. 2006년 ~ 2017년 '국민 가수로의 도약'[편집]

그러던 도중 그녀는 돌연 미국행을 선택하며 미국으로 유학을 갔다. 그 동안 잊혀질 것 같았지만, 2009년 귀국해 14집 《사랑아...》를 발매하며 여러 방송과 행사에 출연했다. 계속적인 음반 발매와 콘서트를 통한 활동으로 2010년 SBS TV 드라마 《내 여자친구는 구미호》의 OST '여우비'와 '내가 사랑할 사람', 《대물》의 OST '떠나지 마'를 불러 이선희 특유의 폭발적인 가창력으로 OST계의 대모라는 칭호를 받으며 큰 인기를 얻었다. 그 결과 2010년 대한민국 대중문화예술상 국무총리표창을 받았다. 이선희는 2011년 2월 3일에 세계적인 가수들만 설 수 있다는 뉴욕 카네기 홀 중에서도 가장 큰 메인 공연장인 '아이작스턴 오디토리움'에서 대한민국 대중 가수로는 4번째로 단독 공연을 가졌다. 2,800여 석에 이르는 좌석 전석 매진이라는 큰 기록을 세우며 한국인으로서는 최다 관객 동원으로 뉴욕 한인 역사에 한 획을 긋게 되었다.

2011년 9월부터 방송된 MBC스타 오디션 위대한 탄생》시즌 2의 멘토로 출연하였다. 멘티 구자명배수정을 모두 결승에 올렸으며 구자명이 우승, 배수정이 준우승하는 기염을 토해 국민 멘토로 불리며 또 다시 인기를 모았다. 2011년 음악전문사이트 몽키3가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이선희가 유재석을 제치고 인생의 멘토가 되어줬으면 하는 스타 1위에 등극했다고 한다. 스타 오디션 위대한 탄생 방송 중에 구자명배수정, 두 제자와 함께 합동 무대를 가졌는데, 수많은 지원자를 뚫고 결승까지 올라간 두 사람을 가창력으로 찍어 내리며 본좌급의 가창력 클래스를 보여주었다. 구자명과 배수정이 혼신의 힘을 다해 고음을 내는데, 오히려 이선희는 제자들에게 맞춰주며 귀엽다는 표정으로 노래를 하는데도 성량이 너무 커, 방송에는 이선희 목소리밖에 안 들렸다.


▲ 2014년 Mnet 이선희 15집 쇼케이스 '나는 간다' 영상.

2014년 3월 25일 이선희는 데뷔 30주년을 맞았고, 15집 앨범 《SERENDIPITY》를 발매하였다. 그녀의 음악적 역량이 최고로 발휘된 이 앨범은 팬들에게 전하는 아름다운 추억과 위로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이선희는 앨범의 전 11곡 중 9곡을 직접 작곡하고 7곡을 작사하였는데, 대표곡으로는 '그 중에 그대를 만나'가 있다. 이 곡은 4월 첫째 주 MBC 쇼! 음악중심에서 2위를 차지하였고, 한국갤럽에서 조사한 '2014년 올해를 빛낸 가요' 3위에 선정되었는데, 동시대 여가수들과 비교해 보면 가히 대단한 성적이다.

2014년 3월 29일과 4월 5일 《불후의 명곡 전설을 노래하다》에 전설로 출연했다. 등장하며 본인의 데뷔곡인 'J에게'를 열창했다.[45] 이선희의 명성을 반증하듯 기라성 같은 후배 가수들(임창정, 박정현, 윤민수, 신용재, 바다, 홍경민, 더 원, 알리 등)이 경연 가수로 출연했다. 대중의 관심도도 높아 2회분 모두 무한도전을 제치고 동시간대 시청률 1위를 기록했다. 2014년 8월 23일 히든싱어 시즌3 첫방송에 출연해서 모창능력자들을 누르고 우승했다. 1라운드는 J에게, 2라운드는 인연, 3라운드는 아름다운 강산, 4라운드는 그 중에 그대를 만나가 선곡되었다. 이 방송분은 시청률 7.181%로 왕중왕전을 제외한 히든싱어 역대 최고 시청률을 기록하는 동시에 동시간대 공중파 포함 전체 시청률 1위를 차지했다.

2014년 10월 이선희는 한국갤럽이 조사한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사람' 중 가수 부문에서 조용필에 이어 2위에 올랐다. 총 13개 도시에서 열린 이선희 전국 콘서트 투어는 27회 전회 전석 매진을 기록했다. 또한 아이돌 가수들이 점령한 가요계에서 이선희는 한국갤럽이 조사한 ‘2014년 올해를 빛낸 가수’ 5위, 40-50대에서는 ‘2014년 올해를 빛낸 최고의 가수’ 1위로 선정되었다. 2014년 12월 신촌 명물거리에서는 이선희의 그 해 마지막 공연이 열렸다. 이선희의 애제자 이승기와, 오랜 친분을 자랑하는 이서진도 깜짝 출연한 ‘구세군 나눔 콘서트’였다. 소외된 이웃을 위해 특별히 마련한 자리에서 이선희는 한 해 동안 대중들에게 받은 사랑을 라이브 무대로 보답했다. 이는 SBS의 '나는 산다 - 이선희, 대한민국을 위로하다'라는 프로그램으로 특별 편성되었다.


▲ 2015년 KBS2 광복 70주년 기념 행사 '나는 대한민국' 아름다운 강산 영상.[46]

2015년 '광복 70주년 국민대합창 나는 대한민국'에 출연하여 1945년생 해방둥이로 이루어진 1945 합창단의 지휘자를 맡았고, 대합창 당일 '인연', '아름다운 강산', '행복의 나라로'를 열창했다.[47] 또한 광복 70주년을 기념하여 '행복의 나라로' 디지털 싱글을 발매했다. 2016년 4월 SBS 판타스틱 듀오에 출연했다. 예선에서 '그 중에 그대를 만나'를 열창하며 김예진 양(예진아씨)을 판타스틱 듀오로 선택했고, 결승에서 '나 항상 그대를'으로 정규 편성 이후 초대 우승자가 되었으며, '추억의 책장을 넘기며', '이별', '알고 싶어요', '아름다운 강산'으로 결국 5연승을 하면서 규정상 하차했다.[48]

2016년 '천호식품 우먼솔루션'의 CF에서 '아름다운 강산'을 부르며 출연하였다.[49] 갱년기 여성에게 에너지를 불어 넣어주는 여성건강식품이라는 우먼솔루션의 특징과 부합하는 이선희의 동안 이미지 때문에 캐스팅되었다는 비화가 있다. 2016년 SBS 드라마 푸른 바다의 전설 OST 작업에 참여한다는 기사가 떠 큰 주목을 받았고, OST '바람꽃'을 발표했다. 2017년 본격적으로 월드 투어에 나선다. 5월 미국 로스엔젤레스에서 공연을 펼쳤고, 9월에는 호주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에서 공연을 펼칠 예정이다.[50] 2017년 8월 5일에는 강원도 원주의 오크밸리 썸머 페스티벌에서 무료 공연을 펼쳤다.[51]

콘서트 활동으로는 2009년에 이선희 14집 앨범 발매기념 콘서트 '초대'를, 2011년에 세종문화회관에서 'J에게 27th 라이브 콘서트'라는 이름으로 데뷔 27주년 콘서트를 가지기도 했다. 2014년에는 세종문화회관에서 '데뷔 30주년 기념 콘서트 - 노래하는 이선희'라는 타이틀로 데뷔 30주년 콘서트를, 2016년과 2017년에는 세종문화회관에서 'The Great Concert LEE SUN HEE'라는 타이틀로 콘서트를 열었다. 2009년 이후의 모든 콘서트는 전국순회 공연(전국투어) 형식으로 개최되었다.

3. 대중적 인기[편집]


▲ '1980년대 가요계의 진정한 가왕, 조용필과 이선희'[52]

'이른바 들국화와 김현식, 그리고 조용필과 이선희가 지배하던 80년대의 지형도에서는...' [53]


강헌 (대중음악 평론가)

한 신인가수가 이름과 목소리를 알리는 데 이보다 더 충격적일 수는 없었다.[54]


강헌 (대중음악 평론가) 2014년 2월 인터뷰 中


80년대 가수 중 대중적 인기의 최고봉은 단연 조용필이지만, 범위를 여자 가수로 한정한다면 80년대 여가수 중 대중적 인기의 최고봉은 이선희라는 평이 많다. 다만 앨범 발매 및 활동주기가 지금보다 길었던 당시 환경 상, 윤시내, 정수라, 이은하, 나미, 이상은, 주현미, 김완선 등과 라이벌 관계를 형성하기도 했다. 그러나 80년대에 전성기를 누렸던 많은 가수들 중 2000년대와 2010년대에도 히트곡을 낸 것은 조용필과 이선희 정도에 그친다. [55]

이선희가 80년대 여가수 중 대중적 인기의 최고봉이었다는 근거는 다음과 같다.

1980년대 대한민국 최고 인기 가수에 대한 설문조사 상.

1980년대 대한민국 최고 인기 가수에 대한 설문조사 하.

  • 1. 80년대에 이선희보다 많은 수상 실적을 올린 여가수는 없다. 1984년 양대 방송사에서 신인상을 휩쓸었고, MBC 최초 3관왕에 올랐다. 또한 KBS 올해의 가수상 6회 연속 수상, MBC 10대 가수상 6회 연속 수상, 골든디스크상 5회 연속 수상, 여가수로서 KBS 가요톱10 1위 최다 랭크(26회), 각종 차트 1위 석권 등 이선희는 인기 최정상의 위치에 서 있었다.

  • 2. 80년대에 이선희보다 규모가 큰 팬클럽(팬덤)을 보유한 여가수는 없다. 조용필의 오빠 부대에 비견될 정도의 규모를 갖춘 이선희의 언니 부대라는 용어를 새로 만들어 내기까지 할 정도였으니 말 다했다. 그러면서도 그녀는 남녀노소에게 골고루 사랑받는 가수였다.

  • 3. 80년대에 이선희보다 히트곡이 많은 여가수는 없다. 이선희는 내는 앨범마다 족족 히트곡을 냈고, 가요톱10 1위를 한 곡만 7곡이다. 1위를 하지는 못했지만 히트한 아! 옛날이여, 갈등, 영, 사랑이 지는 이 자리, 아름다운 강산 등까지 포함하면 손가락으로 다 셀 수도 없다.

  • 4. 80년대에 이선희보다 방송이나 행사에 출연을 더 많이 한 여가수는 없다. 가요톱10, 열린음악회, 가요무대,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 쇼! 특급, 화만나, 젊음의 행진 등 방송이란 방송은 모조리 출연하였다.[56] 실감이 나지 않는다면 당장 부모님께 여쭈어 보거나, 유튜브를 찾아 보는 것이 좋다.

  • 5. 80년대에 이선희보다 길고 꾸준한 전성기를 누린 여가수는 없다. 이선희는 발매하는 앨범마다 히트하며 1984년부터 1990년까지 6년 연속으로 가요톱10 차트 1위곡을 보유하였다. 다른 여가수들이 잠시 이선희의 인기를 앞지를 수는 있었겠지만, 80년대를 통틀어 이 정도의 인기를 이 정도로 꾸준히 누린 여가수는 이선희뿐이라는 것이다.[57][58]


가장 중요한 것은, 이선희의 한결같음이다. 데뷔한 지 30주년이 넘었지만 아직까지도 이선희는 현역 여자가수들과 수없이 비교되고 회자되는 당대의 톱스타이자 전설의 현역 보컬, 현재 진행형 '리빙 레전드'라는 것이다.[59] 말인 즉슨, 1980년대의 대중적 인기를 넘어 현재의 가수로서 위상은 당대 여가수들 중 이선희가 가히 압도적인 원탑이라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는 것이다.[60][61][62] 이런 평가에 대해 이견도 있는데,[63] 다른 여가수의 팬들은 당대 평가는 서로의 전성기가 엇갈리며 서로가 엎치락 뒤치락하는 최소한 백중세였는데 이선희가 2010년대까지 왕성한 활동을 펼쳤기 때문에 고평가 받는다고 주장하곤 한다. 거기다 이승기를 발굴해 낸 스승이라는 점 때문에 젊은 세대에게 인지도를 넓히며 지지를 받을 수 있었다는 점도 부인하지는 못한다.

이선희가 당대 여가수 중 최고봉이라는 평가를 하는 쪽이 주로 드는 근거는 당시 최고의 권위를 인정받던 가요순위 프로그램 KBS 가요톱10 최다 1위 수상 실적과 대상 바로 아래의 최우수상 격인 KBS 올해의 가수상, MBC 10대 가수상의 최다 수상이고, 최고까지는 아니고 최고 인기 여가수들 중 하나였을 뿐이라는 쪽은 이선희가 당시 양대 방송사 가요대상인 KBS 가요대축제, MBC 가요대제전에서 대상 수상 실적이 없다는 점을 주로 이야기한다.[64][65][66] 정확하게 얘기한다면 1984년부터 1990년까지가 이선희가 전성기를 보낸 시점이라고 할 수 있으며, 90년대 초반부터는 이선희의 인기가 꺾였다고 할 수 있지만, 이선희는 그 당시부터 현대까지 대중적 인기를 얻고 있는 유일무이한 여가수라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4. 음악적 능력[편집]


▲ '연인의 눈물' 2002년 이선희 BIG CONCERT 무대영상.[67]

대한민국 역대 최고 가창력 보컬리스트에 대한 설문 조사.

음역대는 메조 소프라노이며 보이스 타입은 소프라노이다. 기본적인 발성은 진성, 그 중에서도 벨팅이다. 음원과 라이브를 포함하여 D3 - A5(진성은 F#5)의 음역대를 가지고 있다. 우선 음악, 나아가 대중예술이라는 장르에서는 대중과의 소통, 호불호가 갈리지 않고 대중들이 좋아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데, 이선희는 그것에 있어서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영역에 다다른 예술가이다. 뱃심으로 노래를 부르기에 성악 발성, 뮤지컬 발성처럼 들리기도 하며, 소리가 밀도 있고 단단하게, 깨끗하고 강력하게 뻗어 나간다. 마치 휘트니 휴스턴처럼 소위 말하는 '꽉 찬 소리'가 난다는 것이다. 매우 큰 성량 때문에 마이크를 뗄 때, 배 밑으로 내리는 것도 이에 기인한다.[68]

무엇보다도 그녀가 가진 가창력의 핵심은 특유의 공명감이다. 음색은 한없이 맑고 막힘없이 쭉 뻗으면서도 소리는 깊은 배음이 울려서, 아주 두텁고 단단한 공명감이 곡 전체에 울린다. 고음부에서도 알맹이가 있는 두꺼운 소리가 난다는 것이다. '마치 대중음악적인 측면에서 이선희의 목소리는 성악적인, 또는 뮤지컬적인 요소와 팝적인 부분이 절묘하게 조화된 목소리와 같다'고 음악평론가 김형석이 평한 바 있다. 다시 말해 이선희는 음역대가 넓지는 않지만 자신의 레인지 내에서는 독보적인 깊이의 울림을 만들어 낸다는 것이다.[69] 이렇기에 아무리 노래를 잘 하는 보컬리스트가 그녀의 노래를 불러도, 분명히 그녀의 공명감보다는 약하기 때문에 '뭔가 부족하다'고 느껴지는 것이다.[70]

또한 대한민국 여가수 가창력의 독보적인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 1980년대부터 현재까지 약 30여 년 동안 등장한 소위 '가창력이 뛰어난 여가수'라는 수식어를 가진 양희은, 정수라, 주현미, 민해경, 인순이, 이소라, 신효범, 박미경, 이은미, 빅마마, 거미, 박정현, 소향 등 거의 모든 여가수들과 비교당하지 않은 적이 없다. 즉, 30년의 세월 동안 한결같이 다른 여가수들과 비견되는 한국 여가수 가창력의 척도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그녀가 그만큼 대단하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고, 이 페이스대로라면 데뷔 40주년 때에도 이선희와 다른 여가수가 비교될 것이다.

압도적인 성량의 소유자. 노래할 때 소리가 커질수록 마이크가 입에서 멀어지는걸 볼 수 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기계가 고장난다고 한다. 이러한 성량 때문에 그에 관련된 일화가 많은데 전남대학교 운동장에서 무대를 가졌는데 그 소리가 건물들을 뚫고 도서관까지 들렸다는 일화도 있고, 2002년 한일 월드컵이 끝난 후 광화문 일대에서 국민대축제를 할때 세종로 사거리 교보문고 근방에서 공연을 구경하던 사람들은 무대가 보이지도 않는데 유일하게 이선희 노래 소리만 들리더라는 일화도 있다.[71]

한 누리꾼은 자신이 군악대로 복무 중 행사를 나갔을 때 이선희가 초청 가수로 왔는데 아름다운 강산을 부르다 부대 음향 앰프 하나를 날려 먹었다고 증언했다. 아예 신문에까지 나올 지경이니 말 다했다. 소위 '배꼽 마이크'의 시초이기도 하다. 사실상 이 단어가 유일무이하게 쓰이는 가수는 이선희 단 한 명뿐이긴 하지만 말이다. 이처럼 그녀의 성량은 누가 듣기에도 엄청나기 때문에 성량으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가수로 평가된다.[72] 또한 성량이 좋을 뿐더러 목소리가 무척 맑고 발음이 정확한 가창 스타일을 보여준다. 고음역대에서도 파워와 함께 정확한 발음을 구사할 수 있는 가수는 무척 드물다. 노래란 멜로디에 가사를 실어 감정을 전달하는 음악인데, 전달이 우선 정확해야 받아들이기 쉽기 때문이다. 야외 무대에서 이선희의 목소리를 들어보면 섬세함과 맑은 음색이 정화되는 듯한 느낌을 준다.


▲ '여우비' 2011년 이선희 오월의 햇살 콘서트 무대영상.

음색의 경우 극도로 맑은 톤인데, 이선희 본인은 탁하고 허스키한 음색을 부러워하는 기색을 비추기도 했다.[73] 그런데 맑은 것도 이 정도로 맑으면 오히려 개성일지도 모른다. 이선희의 팬들 중에는 이선희의 이 맑은 음색을 더욱 좋아하는 경우도 많고, 이선희도 최근으로 올수록 성량과 고음보다는 음색과 감성을 강조하는 노래를 더욱 많이 부르는 추세이다. 기본적으로 80년대에 데뷔한 가수이기 때문에 대표곡들은 8비트 기반의 노래들이고, 또 따라서 현대적인 청자들에게는 올드하게 들릴 수 있다. 80년대 이전의 레전드급 가수들의 노래들이 다소 촌스럽게 들리는 이유가 바로 이 8비트 기반의 리듬감 때문이다.

그런데 이선희의 놀라운 점은 90년대 이후 16비트 기반의 리듬감을 요구하는 노래들도 아무렇지 않게 불러낸다는 점으로, 보컬리스트로서의 재능을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다. 2000년대 이후로는 R&B 등 리듬을 더 쪼개는 곡들도 부르고 있지만, 널리 알려진 노래들은 80년대 곡들이 많기에 대중들이 그녀의 리듬감과 호흡을 주목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74][75] 이선희하면 파워풀한 가창력만 떠올라서 가려지기 쉽지만 이선희만큼 다양한 음악을 한 뮤지션도 많지 않다. 국악풍의 '조각배' 등 8집 전곡, 13집에 실린 모던락 스타일의 자작곡 '왜?', 싸이가 피쳐링한 '안녕히', 타이거 JK가 피쳐링한 14집 수록곡 'You Too' 등이 그 예이다. 대중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곡들을 들어보면 음악적 실험, 도전과 발전을 위한 노력, 점점 성숙해지는 기량이 함께 묻어난다.

전성기를 구가하던 1980년대에는 각종 음악 방송이란 방송마다 모조리 출연하며 주류 팝 음악[76], 락[77], 발라드[78], 트로트[79], 알앤비(소울)[80], 재즈(라틴)[81], 모던 뮤직[82], 뮤지컬[83], 오페라[84], 심지어 외국 팝송[85]과 국악(민요)[86]까지 거의 모든 음악 장르를 소화해 냈다. 자신의 노래보다 타 가수의 노래를 더 많이 부르는 진기록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실제로 1990년대에는 뮤지컬 '오즈의 마법사', 2000년대에는 오페라 '문화초대석 바리' 등의 무대에 출연하기도 했고, 2016년 판타스틱 듀오에서 부른 '알고 싶어요'에서 힙합(랩)까지 소화해 내는 모습을 보이는 등 그만큼 이선희의 음악적 스펙트럼의 폭은 굉장히 넓다.[87] 30주년 앨범의 타이틀인 '그 중에 그대를 만나'의 절정 부분 브릿지에는 F5(3옥타브 파)라는 어마어마한 고음이 있는데, 그걸 또 라이브에서 완벽하게 소화한다. 고음도 고음이지만 이 노래, 가뜩이나 개마고원처럼 고음이 이어지는 후렴부에 숨 쉬는 데가 없는 노래인데, 고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이 노래를 완벽하게 소화해 낸다.


▲ '그 중에 그대를 만나' 2014년 이선희 30주년 기념 콘서트 무대영상.

이선희는 호흡을 정말 잘 쓰는 가수이다. 라이브에서도 호흡소리가 거의 안 들리게도 노래에 따라 섞어 쓰기도 하는데, 기본적으로 호흡소리가 안들리게 하는건 무척 어렵다. 다른 가수들이 그녀의 노래 중 몇 곡을 원곡 그대로 부르는 것을 부담스러워 하는 이유 중 하나이다. 또한 이선희의 대단한 점은 아무리 훌륭한 가수라도 나이가 들다보면 목이 상하게 되는데 이선희는 먹는 것도 일일이 주의할만큼 목관리에 있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여 지금도 예전 목소리와 거의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목소리 관리를 위해 늘 운동과 식단 조절을 하며, 짜거나 매운 음식, 음주는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고 한다. 또한 더운 여름에도 목 관리를 위해 손수건이나 스카프를 목에 두르고 있다고 한다. 평상시 대화할 때도 목 관리 차원에서 조용히 대화한다고 하니, 진정한 자기 관리의 화신이라고 할 만하다.

이선희를 그리 선호하지 않는 사람들은 이선희는 이 정도가 한계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엄청난 성량, 음역대, 정확한 리듬감을 가지고 있지만 노래에 적절한 감성을 담아내고 전달하는 데는 약하지 않긴 하나 그리 강하지도 않다는 주장이다. 정서의 표현력이나 전달력이 강하거나 독특한 나미정수라, 주현미 등과 비교해 볼 때 부족한 점이 있다는 것이다.[88][89][90] 하지만, 사람들마다 느끼는 바가 다른 가수의 감정 전달력을 평가한다는 것이 성립되지 않다는 점을 차치하고서라도, 이는 설득력이 떨어지는 주장이다. 한정된 장르에서 자신만이 전달할 수 있는 그 장르 특유의 감정을 전달하는 데에 특화되어 있는 동시대 여가수들과,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심지어 다른 가수들의 곡까지도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는 이선희를 비교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91][92]

이선희의 또 다른 약점은 비평적인 면에서 이선희가 크게 높은 평가를 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 평가는 동시대의 다른 여가수들도 예외가 되지는 않는다. 1980년대의 여가수들이 비평가들의 명반 목록에 이름을 올리는 일은 드물고, 별로 약점이 아닐 수도 있지만 말이다.[93] 이선희에 대해서는 여러 평가가 있다. 그러나 이견 없이 여가수 중 최고 수준의 가창력을 보유한, 대한민국 가요계의 여제로 정평이 나 있다. 완벽에 가까운 자기 관리 능력 또한 대한민국 최고 수준으로 평가받고 있다. 정리하자면, 그녀는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여성 싱어송라이터이자[94] 공명감, 성량, 음색, 호흡이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는 국내 최정상의 보컬리스트라는 것이다.

5. 트리비아[편집]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의 부친인 조 잭슨으로부터 미국에 데뷔하자고 러브콜을 받았던 적이 있었다. 아시아판 잭슨 파이브를 만든다고 조 잭슨이 한국에 직접 와서 오디션 합격하고 안전지대가 만든 앨범까지 다 완성된 상태였는데 결국 시의원을 하게 됐다고 한다. 1991년 서른이 채 안된 나이에 서울시의회 시의원 선거에 민주자유당 소속으로 나와 마포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어서 정치에 참여한 적이 있다. 이는 이종찬 전 국가정보원장과의 개인적 친분 때문이다. 그러나 민주자유당을 탈당하여 새한국당을 창당한 이종찬을 따라 역시 민주자유당을 탈당했고 다시 민주당에 입당하여 야당 의원으로 끝까지 활동했다.[95] 이후 1997년 제15대 대통령 선거에서 역시 이종찬이 소속된 새정치국민회의김대중 후보를 지지한 것을 제외하고는 정치와는 거리를 두고 있다. 후일 토크 프로그램에 나와 발언한 바에 의하면 어린 시절 부모님 없이 자란 친구로 인해 청소년 문제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시의원이 되면 내가 그런 부분에서 좀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어 출마했던 것으로, 세비도 받지 않았다고 한다.

1992년에는 8집 앨범에서 위안부를 기리는 노래인 '어느 조센삐의 극락'을 타이틀곡으로 실었는데 노래 제목의 '조센삐'라는 단어가 되려 위안부 할머니들을 비하한다는 이유로 고발당하는 일이 벌어졌고, 이후 8집 앨범의 타이틀곡을 '조각배'로 변경했으며 제목도 '어느 할머니의 극락'으로 바꾸면서 일단락되었다. 1998년에는 11집 앨범 수록곡인 '낯선 바닷가에서'의 뮤직비디오를 촬영하다가 금속으로 된 전등이 기울어 쓰러지면서 머리를 직격하는 바람에 전치 6주 이상의 부상을 입었고 수술까지 받는 큰 사고를 당했다.[96] 이것 때문에 활동 복귀도 취소되는 등 본인에게 가장 큰 흑역사였다. 당시 연예관련 프로에서 그녀가 전등에 머리를 맞는 장면을 그대로 내보내 엄청난 비난을 들었다. 2001년 5월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인기 코너였던 게릴라 콘서트에 출연, 길거리를 돌아다니고 심지어 먼저 인사를 건네도 아무도 자신을 못 알아보는 굴욕을 겪었지만[97] 게릴라 콘서트 현장에는 9217명의 관객을 모으면서 대성공을 거뒀다.

동안으로 유명하다. 우현, 안내상, 한석규, 정진영과 동갑이고, 김상중, 조재현, 김국진, 김태원보다 한 살 많다. 오죽하면 강변가요제 때부터 나이를 속였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이선희의 아버지는 스님(대처승)이었고, 불교 음악인 범패 전수자였다. 어린 시절 초등학교 졸업 즈음까지 큰 절에서 자랐기 때문에 많은 스님들과 함께 지내며 스님들의 불경 독송을 따라하곤 했다고 한다. 어린시절 이선희는 아버지가 스님이고 절에서 산다고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친구들은 이선희의 노래를 듣고 감동하고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고 한다.

홍콩 영화배우이자 톱스타였던 故 장국영과도 친분이 있었는데 장국영이 1989년 내한했을 때 함께 합동 콘서트를 가지기도 했었다. 당시 MC가 장국영에게 이선희를 어떻게 생각하냐고 넌지시 묻자 장국영 왈 귀여운 여동생 같다고 했다. 이후 홍콩에 초대받아 장국영이 드라이브도 시켜주고 주윤발 등이 참석한 선상파티에도 초대되어 즐거웠다고 훗날 추억하기도 했다. 장국영이 홍콩에 가수로 데뷔할 생각은 없냐고 묻기도 했다는걸 보면 장국영이 이선희를 마음에 들어한 모양이다. 이선희는 남자 셋 여자 셋-화이팅 홍박사! (1999)에서 가수 이선희 역할로 특별출연하기도 했고, MBC 시트콤 깁스 가족 (2000)에서 이선희를 좋아하는 모창가수 역할로 나오기도 했으며 두근두근 체인지 (2004)에서는 가수 지망생들의 보컬 트레이너 역할로 나오는 등 연기 활동도 했었다. 능청을 떠는 것이 필요한 시트콤이었는데도 은근 자연스럽게 연기 잘 한다.

제자들도 길렀는데 이선희의 첫 제자가 바로 조정린이었다. 모창대회에서 조정린을 보고 목소리가 예뻐 스타성과 실력을 겸비한 가수로 키우려 했는데, 아무리 가르쳐도 안 되는 사람이 있다는걸 깨닫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스타성과 실력을 갖춘 그 다음이 이승기였다. 이선희가 소극장에서 밴드 공연을 하던 이승기를 우연히 보고 바로 제의를 했는데, 처음에 이승기는 이선희가 누군지 몰라 거절했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 뒤에 바로 그 이선희가 제의했다는 사실을 안 이승기의 어머니는 깜짝 놀라 이승기에게 어서 가서 사과드리고 제자로 받아 달라고 말씀드리라고 했고, 그렇게 이승기는 이선희의 제자가 되었다고 한다. 그 밖에 이선희가 유난히 아끼고 좋아하는 후배가수들로는 홍경민, 백지영 등이 있다. 홍경민은 불후의 명곡에서 밝혀지기로는 자신과의 약속을 깬 적이 있었음에도 별다른 얘기를 안하고 넘어간 적이 있다고 했다. 당시 홍경민은 '그때 김창환 작곡가와 미팅이 갑자기 잡혔다'며 그 자리에서 받은 곡이 <흔들린 우정>이라고 한다.[98]

콤플렉스로는 다리가 못 생겨서 치마나 드레스를 입지 못한다고 한다. 한번 콘서트 때 드레스를 입었더니 관중들이 실망해서 그 뒤로 안 입고 있다고 한다. 심지어 방송에서 한복을 입을 때에도 남자 한복을 입었다. 그러나 이덕화의 말 '다리에 흉터가 있다. 다리가 못 생겼다 그러던데, 한번 치마 입고 나온 걸 보니 예쁘던데요. 그 당시에 신문에 이선희가 치마를 입었다고 대서특필되기도 했었어요.' 에 따르면 굉장히 예쁜 다리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실제로 콘서트에서 치마와 드레스를 종종 입기도 한다. 예외적으로 MBC의 어린이 뮤지컬 오즈의 마법사도로시 역으로 출연한 적이 있는데, 이 때에도 치마를 입고 있었다. 이 역시 언론에 대서특필되었다. 또한 2002년 이선희 빅 콘서트에서 12집 'My life + Best' (2001) 앨범의 타이틀곡 '이별 소곡'을 부를 때에도 빨간 드레스를 입은 적이 있다.

2016년 4월부터 SBS 방송국 프로그램인 판타스틱 듀오에서 예진아씨란 예명으로 함께하는 김예진 양과 환상적인 무대를 보여줬고, 초대 우승을 포함한 5연승을 이룬 뒤 명예졸업했다. 자신의 노래에 '인연', '운명'과 같은 가사를 자주 사용한다. 13집 사춘기의 타이틀곡 제목이 아예 인연인 것도 그렇고, '인연'과 '운명'이라는 가사가 '인연', '그 중에 그대를 만나', '바람꽃' 등의 노래에 전부 들어가 있다.

가사를 자주 개사하여 부른다. 그냥 가사를 헷갈리는 것일 수도 있다. 본인이 직접 작곡했는데 말이다.

  • '나 항상 그대를'의 하이라이트 부분은 '돌아와 그대 내게 돌아와 난 온통 그대 생각뿐이야'에서 2000년대부터 '그대여 내게 돌아와 난 온통 그대 생각뿐이야'로 굳어졌고, '그대여 돌아와요 나에게' 등의 바리에이션도 있다.

  • '인연'의 후렴구는 '먼 길 돌아 만나게 되는 날 다신 놓지 말아요'와 '먼 길 돌아 다시 만나는 날 나를 놓지 말아요'의 두 가사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날의 기분에 따라 후렴구의 가사를 원래대로 부르는 경우가 있고, 전자 또는 후자로 통일시켜 부르는 경우도 있다. '먼 길 돌아 만나게 되는 날 나를 놓지 말아요', '먼 길 돌아 다시 만나는 날 나를 놓지 말아요' 등의 바리에이션도 있다.

  • '그 중에 그대를 만나'의 후렴구는 '별처럼 수많은 사람들 그 중에 그대를 만나'와 '별처럼 수많은 사람들 그 중에 서로를 만나'가 있는데, 후렴구의 가사 원래대로 부르기도 하고, 주로 전자로 통일시켜 부른다.

  • '우리 사랑 운명이었다면'을 '우리 사랑 인연이었다면'으로 개사하여 부른 적도 있으며, 마지막 부분 '우리 사랑 운명이었다면 내가 너의 기적이었다면'을 전자로 통일하여 마무리하기도 한다.


1992년 음반 제작자 겸 자신의 매니저 윤희중[99]과 결혼하여 딸 윤양원을 낳았지만 결혼 6년만에 파경했으며 이후 2006년 6살 연상의 건축 사업가와 미국에서 재혼했다. 신승훈과 함께 KBS 가요톱10에서 역대 2번째로 최다 1위 수상자이자 최다 골든컵 수상자다.(26회, 4번)[100] 이선희와 함께 MBC 강변가요제에 4막 5장으로 출전하여 대상을 수상한 임성균은 제대를 한 후에 음반을 내고 잠깐 활동을 했지만 별다른 인기를 얻지 못했으며 현재는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고 있다고 한다. TV 동화 행복한 세상에 나오는 일화에 따르면 그녀가 방방곡곡 콘서트 활동을 다니면서 지쳤을 때 한 할머니가 그녀의 대기실로 가서 빳빳한 지폐 한 장을 건네주며 격려해주자 그녀는 할머니가 준 지폐를 꼭 쥐면서 열정적으로 공연을 마쳤다는 이야기가 있다. 최불암은 이선희에 대해 "처음 봤을 때 머리가 뽀글뽀글한 어린 소녀가 콧등에 땀방울이 맺혀가며 노래를 부르는데 그 감성과 울림, 작은 체구에서 나오는 부르짖음. 깜짝 놀랐어요. 최선을 다해서 노래하는 모습이 정말 예뻤어요"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소향, 박정현은 이선희를 가장 존경하는 가수로 꼽고, 임창정, 홍경민, 윤도현, 백지영, , 슈퍼주니어 규현 등의 후배 가수들은 이선희의 팬으로 유명하다. 이선희의 호소력 짙은 목소리와 뛰어난 노래 실력에 감탄하며, 가장 닮고 싶은 가수로 ‘이선희’를 꼽는다. [101][102][103] 2017년 2월 28일 SBS '불타는 청춘'에서 양수경이 오랜 친구인 이선희를 향한 속마음을 고백했다. 양수경은 “내가 정말 힘들었을 때 아무 말 안하고 통장번호 대라고 해서 깜짝 놀랐다”며 당시 느꼈던 고마움을 고백했다. 또한 “넌 역시 대단한 가수고, 나한텐 좋은 친구야”라는 말로 오랜 친구 이선희에게 애틋한 속마음을 전했다. 친한 사람으로는 개그우먼 김미화, 아나운서 이금희, 배우 겸 MC 김원희, 방송인 최유라 등이 있으며 최유라를 제외하고 세 명은 12집 'My life+Best(2001)'의 수록곡 '살아가다 보면(박진영 작사, 작곡)'의 뮤직비디오에 출연했다. 김미화이금희는 이선희 콘서트에도 출연할 정도로 친밀한 사이이며[104], 2004년 SBS '이선희와 친구들' 가요쇼에도 함께 출연한 바가 있다.

1985년 이선희는 KBS로부터 돌연 6개월 간 방송 출연 정지를 당한다. 당시 학생 신분이었던 이선희는 학교 시험으로 방송에 참여할 수 없다는 의사를 전달했고, KBS는 방송을 펑크냈다는 이유로 6개월 이상의 방송 출연 정지라는 조치를 내렸던 것이다.[105] 또한 1985년 '나는 사랑에 빠졌어요'가 이은하의 '아직도 그대는 내 사랑'이라는 곡과 표절 시비에 휘말리면서 방송 불가 판정을 받았다.[106] 1986년 정수라KBS 가요대상 수상곡이자, 영화 공포의 외인구단의 주제곡이었던 '난 너에게'는 아이러니하게도 대상 수상 직후에 표절 시비에 휘말려 표절 판정을 받았다. 이선희의 1집부터 4집 앨범은 전부 연초에 발매되었다. 그녀는 연초에 앨범을 발매해서 연말에 인기가 주춤할 수 밖에 없던 것이다. 연말의 인기가 가요대상의 여부를 판가름하는 척도였던만큼, 이선희는 유달리 상복이 없었다고 할 수도 있다. 1988년 MBC 가요대상에서는 대중 엽서 집계 1위와 음반 판매량 역시 2위를 차지했음에도 불구하고, 대상을 차지하지 못했다.

이선희는 '알고 싶어요'의 작사, 작곡가인 양인자, 김희갑 부부의 결혼식 무대에서 축가로 '알고 싶어요'를 불렀는데, 양인자, 김희갑 부부가 정신이 없다 보니 감사 인사와 답례를 하지 못했다고 한다. 무려 30년 동안 말이다! 2017년 5월 13일 불후의 명곡 전설을 노래하다 방송분에서 양인자가 이선희에 대한 고마움을 드러냈고, 다음에 밥 한 끼를 사겠다고 약속했다. 이선희에 대한 비판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가창력은 당대 최고였으나 대중적 인기가 뒷받침되지 못했다는 주장과, 대중적 인기는 당대 최고였으나 가창력이 뒷받침되지 못했다는 주장이다. 이선희를 비판하는 주장 1은 이선희를 비판하는 주장 2에 의해 논파된다. 주장 2 역시 주장 1에 의해 논파된다. 대중적 인기와 가창력 모두 과대평가되었다는 주장도 있는데, 주장 3은 주장 1과 2에 의해 논파되고, 주장 1과 2 또한 주장 3에 의해 논파되는 희한한 구조를 띤다. 한 마디로, 이는 영양가 없는 힐난과 다름이 없다는 것이다.

이선희의 노래는 그녀가 너무 노래를 쉽게 부르고, 또 음역이 큰 폭으로 왔다갔다 하는 부분이 없어서 많은 사람들이 애창하는데 쉽게 보다가 피를 보는 경우가 무척 많다. 그녀의 가창력을 새삼 깨닫게 되는 부분이다. 일례로 인연의 경우, '먼 길 돌아' 부분에서 '길' 부분을 가성으로 처리할 수 있는 여자 일반인은 둘째치고 여자 가수조차 드물다.[107] 이선희가 넘치는 가창력을 주체하지 못하고 노래를 너무 잘 불러서 SBS 판타스틱 듀오 프로그램의 취지를 잘 살리지 못했고, 진정한 의미를 퇴색시켰다는 기사도 있다.[108][109] 그리고 기자는 마음의 문제를 가지고 있다며 댓글 창에서 대차게 까였다.

인터뷰나 콘서트 중 멘트를 할 때는 그녀가 노래를 부를 때와는 달리 매우 조용한 목소리로 차분하게 말하면서도, 조리 있게 말을 잘 하는 편으로 30년 이상 가수로 활동하면서 쌓인 그녀의 경력과 그녀 개인의 노력[110] 덕분인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연예가중계에서 인터뷰를 했을 때 제작진으로부터 예상질문 리스트를 받아 질문에 대한 답변을 하나하나 달아보며 준비한 흔적을 볼 수 있었다.[111] 콘서트 보안이 철저하기로 유명하다. 그 흔한 공연 후 인증샷도 찍을 수 없다.[112] 최근 팝스타들의 내한공연에서 관객들의 각종 비매너 논란이 있는 가운데 이럴 바에는 아예 처음부터 이선희처럼 해야 한다는 얘기도 있다.

6. 디스코그래피[편집]

6.1. 정규 음반[편집]

  • 1985년 1집《아! 옛날이여》(1985.01.25) - '아! 옛날이여'(타이틀곡), '갈등', '나는 사랑에 빠졌어요' 등

  • 1986년 2집《갈바람》(1985.11.25) - '갈바람'(타이틀곡), '연인의 눈물', '괜찮아' 등 [113]

  • 1986년 3집《알고 싶어요》(1986.11.30) - '알고 싶어요'(타이틀곡), '영', '어둠은 걷히고', '청아한 사랑' 등

  • 1988년 4집《사랑이 지는 이 자리》(1988.02.01)- '나 항상 그대를'(타이틀곡), '아름다운 강산', '사랑이 지는 이 자리', '안녕', '길을 떠나자' 등 [114][115]

  • 1989년 5집《한바탕 웃음으로》(1989.06.) - '나의 거리'(타이틀곡), '한바탕 웃음으로', '불꽃처럼', '오월의 햇살', '겨울애상' 등

  • 1990년 6집《추억의 책장을 넘기며》(1990.08.20) - '왜 나만'(타이틀곡)[116], '추억의 책장을 넘기며'[117]

  • 1991년 7집《그대가 나를 사랑하신다면》(1991.07.) - '그대가 나를 사랑하신다면'(타이틀곡), '추억 속을 걷네' 등

  • 1992년 8집《조각배》(1992.08.) - '조각배'(타이틀곡)[118][119]

  • 1994년 9집《한송이 국화》(1994.03.31) - '한송이 국화'(타이틀곡) 등

  • 1996년 10집《FIRST LOVE》(1996.10.24) - '라일락이 질 때'(타이틀곡), '아카라카치' 등 [120]

  • 1998년 11집《Dream of Ruby》(1998.11.02) - '너에게 가면'(타이틀곡), '낯선 바닷가에서' 등 [121]

  • 2001년 12집《My Life + Best》(2001.03.26) - '이별 소곡'(타이틀곡), '아마', '이 노래를 빌려서', 'My Life' 등

  • 2005년 13집《사춘기》(2005.04.14) - '인연(동녘바람)'(타이틀곡), '왜?', '사춘기' 등

  • 2009년 14집《사랑아...》(2009.02.25) - '사랑아...'(타이틀곡), 'You Too' 등

  • 2014년 15집《SERENDIPITY》(2014.03.25) - '그 중에 그대를 만나'(타이틀곡)[122][123], '너를 만나다', '나는 간다' 등

6.2. OST 및 삽입곡[편집]

  • 1984년 KBS 수목드라마 《불꽃놀이》 - '불꽃놀이'(오프닝곡)

  • 1985년 MBC 애니메이션 《소공녀 세라》 - '소공녀 세라'(오프닝곡)

  • 1987년 MBC 청소년드라마 《푸른교실》 - '푸른교실'(오프닝곡)

  • 1988년 KBS 애니메이션 《달려라 하니》 - '달려라 하니'(오프닝곡) [124]

  • 1988년 KBS 애니메이션 《천방지축 하니》 - '천방지축 하니'(오프닝곡), '열세 살 나이에 알았어요'(엔딩곡)

  • 1992년 SBS 주말드라마 《두려움 없는 사랑》- '그대가 나를 사랑하신다면' [125]

  • 2000년 MBC 주간시트콤 《깁스 가족》 - '수줍은 고백' [126]

  • 2002년 영화 《몽중인》 - '해바라기 사랑'

  • 2002년 영화 《가문의 영광》 - '나 항상 그대를'[127]

  • 2005년 영화 《왕의 남자》 - '인연' [128]

  • 2009년 영화 《불꽃처럼 나비처럼》 - '불꽃처럼 나비처럼'

  • 2010년 SBS 수목드라마 《내 여자친구는 구미호》 - '여우비', '내가 사랑할 사람'

  • 2010년 SBS 수목드라마 《대물》 - '떠나지 마'

  • 2016년 SBS 수목드라마 《푸른 바다의 전설》 - '바람꽃'


[1] 1984년 당시 신문이나 TV 가이드 같은 방송 관련 잡지에서는 1967년 2월 10일, 또는 3월 10일 등으로 나온 바 있다.[2] 음력으로는 11월 11일 [3] 한산 이씨 화수회에서 확인했다. 인터넷에 떠도는 여주 이씨 등 다른 이씨들은 잘못된 정보. 한산 이씨는 충남 지방에 인구가 많으며, 보령시에 집성촌이 있다.[4] 2002년 설립된 이선희의 매니저 권진영이 대표로 있는 기획사. 권진영 대표가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다. 이승환의 드림팩토리, 윤종신미스틱 89와 비슷하게 사실상의 이선희의 개인 소속사에 가까운 느낌. 소속 연예인으로는 이선희의 제자 이승기와 2010년부터 한솥밥을 먹고 있는 이서진, 양태오, 윤여정 등이 있다. 또한 씨스타가 해체된 이후 멤버였던 윤보라가 이 기획사에 들어왔다.[5] 현재 인천대학교로 통합되었다.[6] 최고음은 '살아가다 보면'의 3옥타브 파#이다. 하지만 이선희는 음역대가 아니라 울림의 깊이 하나만으로 최고로 평가받는 가수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가창력 (Singing ability), 즉 '노래를 잘 하는 것'은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이, 호불호가 갈리지 않고 좋아하는 것이다. 진정한 의미의 가창력과 보컬 테크닉 (Vocal technique) 및 발성 기술 (Vocalization)이 좋은 것은 판이하게 다르다. 착각하지 말아야 한다.[7] 가창력은 외적인 부분과 내적인 부분으로 나뉜다. 외적인 부분은 성량과 음색, 호흡과 공명감, 보컬 테크닉 및 발성 기술과 기교이며 내적인 부분은 감정 전달이다.[8] 남 칭찬, 특히 가수에 대한 칭찬에 그토록 인색하고 오만방자한 것으로 유명한 그 조영남이 신문과의 인터뷰 중 한 말이다.[9] 라디오 방송인 별이 빛나는 밤에의 별밤지기이자 밤의 문교부 장관으로 유명한 이문세가 별밤 방송 도중에 한 말이다.[10] 이선희 또한 2011년 SBS 놀러와에서 가장 닮고 싶은 가수 1위로 송창식을, 사연 있는 노래 1위로 송창식의 한번쯤을 꼽으며 데뷔 시절부터 그의 팬이었음을 밝혔다. 2016년 SBS 판타스틱 듀오에서 가장 좋아하는 동료 가수로 송창식을 꼽았다. 실제로 송창식의 곡을 콘서트에서 종종 부르며, 방송에서도 영상이나마 송창식과의 듀엣 무대를 선보였다.[11] 남녀 통틀어 조용필, 이승철, 임재범에 이어 4위를 차지했다.[12] 음악적 능력 부분에 있는 링크에 들어가면 많은 조사를 규합한 결과를 볼 수 있는데, 이선희는 여자 중 1위, 남녀 통틀어 4위를 차지했다.[13] 작사라면 몰라도 여자가 작곡을 한다는 것이 거의 받아들여지지 않던 시절이다. 1970~80년대의 여성 싱어송라이터는 장덕, 심수봉 등 극소수였고, 이후 90년 중반이 되어서야 이상은, 김윤아 등이 본격적인 여성 싱어송라이터로 등장하기 시작했다.[14] 10집 전곡을 이선희가 직접 작사, 작곡했다. 그 중에는 이선희가 중학교 때에 썼다는 곡인 '성안의 아이'도 포함되어 있다.[15] 최근에 들어서는 'OST계의 대모'라는 수식어를 얻을 정도로 드라마 OST 분야에서 활발한 활동을 보여주고 있다.[16] 참고로 이분은 슈퍼스타K4 미국 지역 오디션에 참가하기도 했다.[17] 이선희가 당시를 회상하면서 "지금은 ‘어떻게 저런 패션이 다 있어?’ 할 것 같아요. 당시에는 아줌마 파마밖에 없었어요. 파마하기 전 저는 굉장히 멋있을 거라고 상상했죠. 그 모습이 얼마나 쇼킹했던지, TV를 보고 고등학교 때 화학 선생님께서 전화를 하셨어요. 당시 패션리더였던 선생님은 제게 ‘폭포 파마라는 것이 있는데, 하필 그런 아줌마 파마를 해서 내 제자라는 것을 창피스럽게 만드니?’라고 하시더라고요."라고 말하기도 했다.[18] 특히나 신인상은 1984년 초반에 '그것은 인생', 후속곡 '물 같은 사랑'으로 인기를 끈 최혜영의 수상이 거의 확실시되던 상황이었는데, 그녀가 단 한달 간 보여준 임팩트만으로 이를 압도하면서 신인상의 주인공이 되었다. 심지어 MBC에서 데뷔한 신인이 KBS의 신인상을 말이다.[19] J에게, 아! 옛날이여, 갈등, 소녀의 기도, 나는 사랑에 빠졌어요, 이 말을 하고 싶어요, 혼자된 사랑 이상 7곡이다.[20] <아! 옛날이여>는 1983년 가수 진필이 먼저 부른 곡인데, 당시 제목은 <그때와 지금>이었다.[21] 1집 앨범을 작곡자 송주호의 곡들로만 채웠다면, 2집은 박건호, 이범희, 이현섭, 이호준 등 당대의 주류 작사가와 작곡가들에게 다양하게 곡을 받아 제작했다. 이선희의 자작곡으로 처음 수록된 <바람 속에서>는 이후 싱어송라이터로서 그녀가 가진 가능성을 보여줬다.[22] <괜찮아>는 그녀가 출연했던 보령제약의 거담제 ‘용각산’의 광고 배경음악으로 사용되며 화제가 됐다.[23] <그래요 잘못은 내게 있어요>는 가요 차트 1위곡은 아니었지만 여러 음악 차트와 순위 리스트에서 인기를 얻었다.[24] 최고 인기 가수의 위상에 걸맞게 이 앨범에는 남국인, 윤희중, 김홍탁, 최종력, 양시춘, 김희갑, 이범희 등 무려 7명의 유명 작곡가가 참여했다.[25] 총 12곡의 수록곡 중 크게 히트한 노래는 앨범 A, B면 첫 트랙을 장식한 <잃어버린 약속>, <늦었어요>가 아니었다. 이 앨범의 최대 히트곡은 인기를 끌 거라고 전혀 예상하지 않았던 A면 다섯 번째 트랙 <영>과 B면 네 번째 트랙 <알고 싶어요>였다.[26] 당시 한 음악프로그램에서 이선희가 <알고 싶어요>의 '달 밝은 밤에 그대는 누구를 생각하세요'라는 첫 부분의 가사를 부르면 그녀의 팬 홍당무들이 "언니요!!!!!!!"라고 소리치는 장면이 압권이다.[27] 누구나 이선희를 오리지널 가수라고 여겼음직한 <알고 싶어요>는 사실 그녀보다 2년 먼저 남자 가수 이승제가 발표한 노래였다. 처음 발표했을 때의 제목은 <가을나무 사이로>였고 가사도 달랐다. 원곡 가수 이승제는 <눈동자>, <아득히 먼 곳>으로 잘 알려진 가수였다. 이선희의 대표적인 히트곡 <알고 싶어요>가 1984년 발표한 이승제의 독집에 이미 수록한 노래라는 점을 아는 대중은 그리 많지 않다.[28] 1995년 조선일보에 「청사홍사」라는 칼럼을 연재한 작가 이재운이 양인자의 양해를 얻어 이 곡의 가사를 한시로 바꿔 발표한 것이 오해의 원인이었다.[29] 이 앨범은 클래식 음악을 전공한 싱어송라이터 송시현과의 음악적 교류를 통해 작업한 첫 앨범이기도 하다.[30] 최초로 브릿지 파트 위에 "빰빰빠바밤 빠바밤~ 빠바밤 빰빰 빠라바밤바밤밤~" 하는 보컬을 덮었는데, 오늘날에 와서는 이 부분이 곡의 상징처럼 인식되고 있다. 전반적으로 이선희 특유의 스타일이 강하게 반영된 버전이라, 신중현의 원곡을 좋아하는 팬들 중에는 이선희의 리메이크 곡이 원곡을 마치 건전가요처럼 만들었다고 비판하는 사람도 있다.[31] 편곡과 연주가 아쉬운 반면 이선희의 가창은 뛰어나다는 것이 중론이다. 물론 1988년 발매본에 한정해서 말이다. 2001년 이선희 12집 'My Life + Best'에서 리메이크하여 발매한 아름다운 강산, 즉 현재 이선희가 MR로 사용하고 있는 버전은 현대적인 밴드사운드로 신중현의 대곡을 새롭게 해석하여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분명한 것은 이선희의 리메이크로 <아름다운 강산>이 새롭게 주목받았으며 엄청난 대중적 인기를 얻었다는 사실이다. 이선희가 아니었다면 <아름다운 강산>이 지금과 같은 국민적 애창가요가 되지는 못했을 것이다.[32] 이 음반은 윤희중, 송시현, 김창완, 김범룡, 이재성 등이 작곡한 신곡 총 10곡을 수록했고, 이선희 1집의 히트곡 <갈등>의 작사자이자 전 남편인 윤희중이 설립한 해광기획에서 제작했다.[33] 이 곡으로 이선희는 DJ 인기 집계 2개월 1위, MBC FM 여론조사 1위 등을 차지하며 인기를 얻었다.[34] 이 노래는 당시 군사정권에 항거하던 사람들을 위로하는 곡이다.[35] 윤복희의 오빠인 윤항기 목사가 작사, 작곡, 편곡하고, 이선희가 작사에 참여하였으며, 5.18 민주화 운동 희생자들에 대한 추모의 뜻이 담겨 있는 곡이다.[36] 2014년 3월과 4월 방영된 KBS 2TV 「불후의 명곡」 이선희 편에서 박정현이 <추억의 책장을 넘기며>를 불렀다. 작은 체구로 열창하는 모습은 이선희와 비슷해 색다른 감동을 줬다. 2015년 10월 방송된 케이블채널 M-net의 오디션 예능 프로그램 「슈퍼스타 K7」에서 천단비는 <추억의 책장을 넘기며>를 열창하며 이선희와의 추억을 언급했다. 2016년 5월 방송된 SBS 「일요일이 좋다 - 판타스틱 듀오」에서 마지막 무대에 오른 이선희와 예진아씨는 <추억의 책장을 넘기며>를 선곡해 박수를 받았다. 그리고 2016년 10월 MBC 「일밤-복면가왕」에서 시네마천국으로 출연한 슬기도 <추억의 책장을 넘기며>를 불러 시청자들을 사로잡았다. 이외에도 '추억의 책장을 넘기며'는 수없이 리메이크되는 등 1990년대 여성 발라드의 명곡으로 평가받는다.[37] 교보문고, 종로서적 베스트 셀러 1위에 올랐다.[38] 데뷔곡 'J에게', 2집 '갈바람', 3집 '알고 싶어요', 4집 '나 항상 그대를', 5집 '나의 거리', 5집 '한바탕 웃음으로', 6집 '추억의 책장을 넘기며'[39] 원래 타이틀곡은 김지하 시인의 시가 돋보인 '어느 할머니의 극락'이었는데, '조센삐'라는 명칭 때문에 논란이 있었다. 음반 회수까지는 벌어지지는 않았지만 타이틀곡을 바꿔야 했을 정도이다. 비슷한 시기에 이선희는 자선행사와 위안부 할머니 추모제에 모습을 드러내어 할머니들을 위로하기도 했다. 당시 기사[40] 1988년 서울 올림픽 때 초청되었던 외국 가수들과 대화하던 도중 '진정한 한국의 음악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가장 많이 받고 이에 자극을 받아 국악계의 거목인 김영동과 이 앨범을 만들게 되었다고 한다.[41] 특히 음원보다 라이브가 훨씬 높은 평가를 받는 앨범이다.[42] 이선희의 노래 중 애드리브를 제외하고 최고음을 내는 곡이다. 최고음은 3옥타브 파.[43] '온국민 하나되어'라는 타이틀 아래 월드컵 D-100, D-50, D-30 공연뿐만 아니라 16강, 8강, 4강, 결승 진출 기원 공연을 벌였다. 이후 재공연은 '온국민 다시 하나되어'라는 타이틀으로 열렸다.[44] 이선희 데뷔 30주년을 맞아 네이버에서 실시한 선희톱10 투표 결과 '인연'이 1위를 차지했다.[45] 이 날 경연곡으로 《J에게》를 부른 가수는 알리다.[46] 광복 70주년 기념 행사 때의 아름다운 강산 직캠 영상에서는 함성 소리로 인해 브릿지 파트의 클라이막스 부분이 잘 들리지 않기에, 방송본을 삽입한다.[47] 방송 음향 편집 과정에서 음량과 울림을 대폭 감소시켰는지 라이브 직캠 영상에서는 방송본에 비해 공명감이 훨씬 더하다.[48] 사실 더 이상의 독주를 막기 위한 나는 가수다의 명예 졸업과 같은 규정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49] 그런데 이선희가 손해 배상을 받아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소리가 나올 정도로 이선희의 이미지에 먹칠하는 사건이 발생했다.기사 링크.[50] 이선희에 앞서 이승철, 김범수도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에서 공연을 펼친 바 있다.[51] 원주의 인구는 2017년 현재 약 34만 명이다. 공연 중 멘트에서 음악 작업을 하고 있다고 했으니 다음 앨범을 기대해 보자.[52] 물론 둘의 인기를 비교할 수는 없지만, 영상에서 보듯이 당시 가요계에서 남자는 조용필, 여자는 이선희가 쌍두마차의 보컬이라고 불렸다.[53] 원본은 이상은에 대한 평가로 "이른바 들국화와 김현식, 그리고 조용필과 이선희가 지배하던 80년대의 지형도에서는 굉장히 생소한 곡일 수도 있었다는 거죠. 새로운 어떤 감수성을 지닌 10대 엔터테이너의 등장이었다고 보는 것이 온당할 것 같습니다." - 강헌 (대중음악 평론가) 이다.[54] 원본은 "대중음악사에 충격적인 데뷔는 많았죠. 90년대 서태지의 데뷔. 60년대 김추자의 데뷔. 84년 이선희의 데뷔도 역시 이런 역사적 데뷔에 밀리지 않는 그야말로 센세이션이었죠. 'J에게'는 노래 자체와 이선희 탁월한 가창력과 맞물려 국민 히트곡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대학교 4학년 때, 그 당시에 노래 접하는 순간, ‘이건 무조건 대박이다.’ 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어요. 실제로 강변 가요제가 낳은 노래 중 가장 큰 히트 기록 중 하나이고, 그리고 1984년 전체 통틀어 최고 히트곡이 되었죠. 한명의 신인가수가 이름과 목소리 알리는 데 이보다 더 충격적일 수 없었다고 볼 수 있죠." 이다.[55] 주현미와는 스타일이 달랐기에 라이벌 구도라기보다는 각자 장르에서 최고의 위치를 달리는 이미지였으며, 거의 동일한 시기에 데뷔했고 비슷한 파워형 보컬리스트인 정수라, 똑같이 강변가요제 대상을 수상하며 혜성처럼 등장한 이상은과 많은 라이벌 구도를 형성했다. 사실 이상은과는 데뷔 시기도 차이나고, 라이벌 구도였다기보다는 세대 교체식으로 이선희의 보이시함을 좋아하던 팬들이 이상은 쪽으로 많이 넘어 갔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56] 이선희의 대중적 인기와는 무관하지만, 이 때 자신의 곡보다 주류 팝 음악, 락, 발라드, 트로트, 알앤비(소울), 심지어 외국 팝송과 국악(민요)까지 섭렵하며 남의 곡을 더 많이 불렀다는 것 또한 놀라운 점이다. 그만큼 그녀의 음악적 스펙트럼의 폭이 넓다는 것이다.[57] 이 점이 바로 주현미와 대비되는 점이다. 이선희는 전성기 발매하는 매 앨범마다 히트한 반면, 주현미는 1980년대 후반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으나 1985년 데뷔곡인 '비 내리는 영동교'를 제외하고 2집부터 8집까지 활동이 문자 그대로 전부 망했다.[58] 1980년대 초반 인기 원톱은 윤시내, 1980년대 중반 인기 원톱은 이선희, 1980년대 후반 인기 원톱은 주현미, 1990년대 초반 인기 원톱은 김완선이 주로 꼽힌다.[59] 2014년부터 2016년까지 꾸준히 한국갤럽에서 조사한 '올해를 빛낸 가수' 순위권 내에 들고 있으며, 2014년에 신곡 '그 중에 그대를 만나'를 발표했을 때에는 아이돌이 점령한 가요계에서 그녀의 곡이 한국갤럽에서 조사한 '올해를 빛낸 가요' 3위에 선정되는 등 저력을 보이고 있다. 이처럼 갤럽 조사의 순위권에 드는 1980년대 가수는 2010년대 들어서 조용필과 이선희 둘 뿐이다.[60] 사실 이전에도 이선희의 위상이 가장 높았다고 볼 수 있다. 1990년, 몬트리올 챔버 오케스트라와의 협연을 통해 처음 세종문화회관에 발을 딛었고 1994년, 데뷔 10주년 콘서트를 세종문화회관에서 성황리에 개최했으며 2004년, 데뷔 20주년 콘서트도 세종문화회관에서 성황리에 개최했다. 이 때까지 동시대 여가수 중 단독 무대로 세종문화회관에 서 본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61] 세종문화회관가수의 기량과 대중적인 인기, 활동 이력 등을 모두 고려해 대관이 결정되기 때문에 대중가수들이 쉽게 설 수 없는 무대인데, 이선희는 이를 데뷔한 지 6년 만에 해낸 것이다.[62] 동시대 여가수 중에는 주현미만이 유일하게 30주년 콘서트를 세종문화회관에서 개최한 것과는 대조적으로, 이선희는 2006년, 2009년, 2014년, 2016년까지 4년 연속으로 전석이 매진된 가운데 세종문화회관 무대에 섰고, 2011년에는 미국 뉴욕 카네기 홀, 2017년에는 호주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에서 공연을 펼친다. 말하지 않아도 위상의 차이가 압도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63] 이선희의 1980년대 대중적 인기가 원탑이었다는 주장을 의미한다. 현재의 위상에 대해서는 이견이 거의 없다.[64] 이선희가 KBS 가요대상을 타지 못한 이유는 KBS 방송국에 찍혀서 배제됐던 것으로 합리적인 의심을 할 만하다. 신인 시절 학교 시험 때문에 KBS 음악 방송에 참가하지 못했는데, KBS 측에서 방송 펑크라느니 신인이 건방지다느니 하며 6개월 방송 정지를 먹여버렸다. 그래서 '아! 옛날이여'는 아예 KBS 방송활동을 하지 못했다.[65] MBC에서 데뷔한 신인이 고깝게 보여서, 보복성 조치로 방송 정지를 먹였다는 당시 대중들의 반응에서 알 수 있듯이, KBS 가요대상은 이로 인해 공정성이 결여되었다는 의심을 피하지 못했다.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에서 기사를 찾아보면 더욱 상세히 알 수 있다. 말인 즉슨, 1985년, 1986년에는 KBS 여자가수상을 탈 수 있었으나 이 사건으로 못 탔을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것이다. 이 2년 동안에 여자가수상을 탄 사람이 정수라이다.[66] 1987년부터는 KBS도 남녀 통합 대상을 시상하여 대상 가능성이 더욱 줄어들었다. MBC의 경우는 80년대에 대상을 조용필이 휩쓸었기 때문에 1980년부터 1987년까지 조용필을 제외하고 대상을 탄 가수는 이용 밖에 없다.[67] 1분 30초를 주목해 보라. 이선희의 성량은 사람의 것이 아니다![68] 이에 반해 두성 창법을 사용할 때에나, 가성 창법을 사용할 때는 마이크를 머리 위로 들어 올린다.[69] 이것이 한국 전문가들이 그녀의 가창력을 높게 평가하는 가장 큰 이유이다. 반면 외국 보컬 트레이너들은 믹스보이스와 같은 목에 무리가 가해지지 않는 발성법을 선호하는 경향을 보이기에 그녀의 가창력에 의문을 표하기도 한다.[70] 소향이나 손승연과 같은 좋은 믹스보이스 발성이 갖추어진 가수들이 내는 날카로운 고음과는 달리 조용필, 김현식, 전인권, 이수, 이은미, 한영애, BMK, 프레디 머큐리, 제임스 브라운, 휘트니 휴스턴, 머라이어 캐리, 셰어 등과 같은 고음에서 흉성을 많이 섞은 발성, 이른바 생목에 가까운 발성인 '벨팅'으로 노래하는 가수들이 내는 꽉 찬 고음이 난다는 것이 그 이유일 수 있다.[71] 2002년 이선희 콘서트 전체 무대를 감상하다 보면, 고음이 올라가는 부분에서 그녀를 클로즈 업해서 잡아줄 때마다 마이크는 보이지 않는데 소리만 쩌렁쩌렁하게 들리는 경우가 빈번히 발생한다. 음이 내려가면 그제야 비로소 마이크가 밑에서 올라오는 것을 볼 수 있다. 링크 1, 링크 2.[72] 여타 성량이 큰 가수들도 많지만, 미리 음향 조절을 함에도 불구하고 마이크를 배꼽까지 내려도 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울리며 잘 들리는, 에코와 리버브를 최대한 줄이고 마이크를 배꼽까지 내려야 음향 기계와 스피커가 고장나지 않는 가수는 이선희뿐이다.[73] 이선희는 학창시절 락밴드 동아리의 보컬을 맡았을 정도로 락 음악을 좋아한다고 한다.[74] 비트를 쪼개면 쪼갤수록 곡이 더욱 부르기 힘들어지고, 곡의 난이도가 대폭 상승한다. 정확한 음정과 박자를 맞추는 능력과 리듬감, 리듬의 강약을 조절하면서 엇박을 넣는 능력과 빨라진 리듬으로 가빠 오는 호흡을 조절할 수 있는 폐활량까지 뒷받침되어야 하기 때문이다.[75] 실제로 12집 'My life+Best'를 준비할 때 그 시대에 맞는 리듬에 익숙해지기 위해 해당 앨범의 수록곡 중 하나인 '살아가다 보면'을 작사, 작곡한 박진영과 리듬 연습을 했다고 인터뷰한 내용이 남아 있다.[76] 그녀 자신 대부분의 곡.[77] 아! 옛날이여, 아름다운 강산, 너에게 가면, 김경호의 나를 슬프게 하는 사람들, 버즈가시[78] 그녀 자신 대부분의 곡. 임창정의 소주 한 잔, 백지영의 잊지 말아요 등[79] 이주일과 함께 한 무대에서 부른 나훈아의 울긴 왜 울어, 주현미의 짝사랑, 잠깐만 등[80] 그녀가 최근에 직접 작사, 작곡하여 발표한 대부분의 곡.[81] 그녀가 최근에 발표한 일부 곡. 백지영의 Dash 등.[82] 왜?, 꿈 등 그녀가 최근에 직접 작사, 작곡하여 발표한 일부 곡.[83] 피터팬, 오즈의 마법사, 박문수 등[84] 문화 초대석 바리 등[85] 4 Non blondes의 What's up, Kenny rogers & Shenna easton의 We've got tonight, 휘트니 휴스턴의 'I Will Always Love You', 마돈나의 'Like A Virgin', 바브라 스트라이샌드의 'Woman In love', ABBA의 'Waterloo', 'Dancing queen' 등.[86] 조각배, 성주풀이, 한네의 이별 등[87] 자신이 직접 작사, 작곡에 참여하는 싱어송라이터라는 점도 이러한 넓은 음악적 스펙트럼의 한 이유이다.[88] 감정 전달력과 정서 표현력은 지극히 주관적인 부분이기에 사람마다 느끼는 바가 다르다. 따라서 이러한 평가는 가수들에게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 비판이다. 애초에 사람마다 느끼는 바가 다른 가수의 감정과 표현력, 호소력을 평가한다는 것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것이다.[89] 더욱이 근래에 이선희에 대한 대중들의 평가는 소향이나 손승연처럼 고음을 잘 내서 노래를 잘 부르는 가수라기보다는, 모든 사람들이 좋아하고 듣기에 편한 음색과 목소리로 감정을 자극하는 레전드 보컬리스트라는 평가가 주를 이룬다. 이선희도 나이가 들어 노쇠하여 예전만큼의 파워를 지닌 고음을 잘 못 낼뿐더러, 최근으로 올수록 성량과 고음보다는 음색과 감성을 강조하는 노래를 더욱 많이 부르는 추세이기에 그런 측면도 있다.[90] 실제로 이러한 평가는 10집부터 14집까지의 그녀의 음악과 어느 정도 합치되는 부분이 있다. 15집, 30주년 기념 앨범에서 3옥타브 파(F5)가 들어 있는 곡을 발매한 사람에게 할 말은 아닌 것 같지만 말이다. 또한 14집 앨범을 발매한 뒤 다수의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위와 비슷하게 말했던 바가 있다.[91] 이선희는 주류 팝 음악, 락, 발라드, 트로트, 알앤비(소울), 재즈(라틴), 모던 뮤직, 뮤지컬, 오페라, 심지어 외국 팝송과 국악(민요), 힙합(랩)까지 거의 모든 음악 장르를 소화해 내며 전성기 때에는 자신의 곡보다 다른 가수의 곡을 더 많이 부르는 진기록을 세우는 등 다양한 장르와 가수의 곡을 자신만의 스타일로 소화해 내어 부른다.[92] 오히려 이선희가 동시대 여가수들보다 감정의 표현력이 좋다고 볼 수 있다. 전달할 수 있는 감정의 종류, 폭, 스펙트럼이 넓기 때문이다. 전술했듯이, 각자의 장르에서 어느 가수가 더 감정을 잘 전달하는지 평가하는 것은 사람마다 느끼는 바가 모두 다르기에 무의미한 것이다. 하지만, 굳이 감정 전달력과 표현력을 비교하자면, 다양한 종류의 정서를 전달할 수 있는 가수가 포괄적인 범주의 감정을 표현할 수 있기에 정서를 더욱 잘 표현하고 전달한다고 할 수 있다. 그렇기에 이선희의 감정 표현력, 전달력이 더 높다는 것이다. 주현미임창정의 '소주 한 잔'을 부르든, 백지영의 '잊지 말아요'를 부르든, 버즈의 '가시'를 부르든, 김경호의 '나를 슬프게 하는 사람들'을 부르든 전부 트로트풍의 창법으로 트로트 특유의 감정만을 맛깔나게 전달할 테지만, 이선희는 각자 발라드, OST, 락 특유의 정서를 살려서 자신만의 방식대로 재해석하여 부를 수 있다는 것이다.[93] 동시대에 활동했던 나미, 김완선, 장필순 등은 꼽혔다.[94] 대표적으로 히트한 곡은 역시 인연이다. 이선희 작사, 작곡.[95] 1991년 6월 20일 치러진 선거는 31년 만에 부활된 지방선거로 기초의원과 광역의원 선거가 별개로 진행되었다. 이선희는 민주자유당 소속으로 서울시의회 선거에 마포구에 출마해 당선됐다. 불우한 이웃과 청소년을 돕고자 했던 좋은 의도와는 달리 출생년도 조작 파문까지 일어 곱지 않은 시선을 받았다. 데뷔 후 식을 줄 모르던 이선희의 인기는 이를 계기로 어려움을 맞이했지만, 이선희는 “의정 활동 중에도 음악 활동은 멈추지 않겠다”고 선언했다.[96] 이 부상을 입고 병원에 가 있다가 조금 괜찮아진 것 같아 진통제를 맞은 후 뮤직비디오를 끝까지 다 찍은 후 다시 병원에 입원했다고 한다.[97] 물론 연출된 장면이며 지금 다시 봐도 연출티가 팍팍 난다.[98] 홍경민의 거의 유일무이한 히트곡이다.[99] '갈등', '나의 거리'등의 히트곡을 쓰며 주목받았다.[100] 1위는 69회를 차지한 가왕 조용필이다.[101] 소향의 MBC 나는 가수다 경연곡 중 유일하게 같은 원곡자의 이름이 두 번 보이는데, 바로 이선희이다. '인연'과 '나 항상 그대를'을 리메이크하며 선배에게 존경심을 표했다. 박정현의 국내 무대 데뷔곡은 'J에게'였다. 한글에 익숙하지 않아서 발음이 힘들었지만 이선희에 대한 존경의 의미를 담아 그렇게 정했다고 한다. 그녀는 KBS2 불후의 명곡 전설을 노래하다 이선희 편에서 '추억의 책장을 넘기면'을 부르며 선배에게 곡을 헌사했다.[102] 임창정은 JTBC 히든싱어 프로그램 중 유일하게 이선희 편에만 출연했고, 그 자신이 전설로 출연해도 될 만한 프로그램인 KBS2 불후의 명곡 전설을 노래하다에도 이선희 편만 유일하게 출연했다. 홍경민은 원래부터 이선희와 친분이 있는 모습을 자주 보였고, 윤도현은 데뷔 때부터 이선희의 팬임을 자처했는데, 이는 Mnet 대한민국 Vocal Top 20 영상에서 확인할 수 있다. 백지영은 JTBC 히든싱어와 SBS 힐링캠프에 이선희와 함께 출연하며 이선희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103] 베베미뇽은 KBS2 '불후의 명곡 전설을 노래하다'에서 가장 존경하는 가수가 이선희라고 밝힌 바 있으며, 여러 무대에서 이선희의 노래를 부르고 있다. 본인이 불리기 원하는 별명도 제 2의 이선희일 정도이다. 슈퍼주니어 규현은 SBS 판타스틱 듀오에서 이선희를 가장 좋아하는 가수로 꼽았고, 에브리싱에서 '그 중에 그대를 만나' 듀엣을, 라이브 무대에서 '인연' 듀엣을 펼치며 자신의 소원이자 꿈을 이뤘다고 말한 바 있다.[104] 2002 이선희 빅 콘서트에 출연하여 함께 노래도 불렀다.[105] 당시 대중들은 MBC를 통해 데뷔한 이선희를 탐탁치 않게 생각하던 KBS에서 보복성 방송 금지 처분을 내렸다고 생각했다. 이는 연말 KBS 가요대상의 공정성을 의심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고, 전술한 설문 조사 링크 안의 신문 기사에서도 이를 찾아볼 수 있다.[106] 당시 대중들은 두 곡의 분위기가 너무나도 다르고, 리듬감도 비슷하지 않았기에 잘 납득하지 못했던 상황 속에서 결국 표절이 아닌 것으로 결론이 났다.[107] 수많은 리메이크 중 가성으로 처리한 사람은 '휠릴리'를 부른 이수영, 히든싱어 이선희편 준우승자 김원주 뿐이다.[108] 장난이 아니다. '차라리 이선희의 독무대였다고 해도 이 무대의 퀄리티는 올라갔으면 올라갔지, 내려가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이선희의 압도적인 실력 차는 음악대장의 실력을 묻어버리고, 5연승을 차지하게 할 만큼 강력한 것이었다. 5연승을 한 이선희의 성적은 당연한 결과다. 거기에는 어떤 의외성도 없고 특별함도 없었다. 전교 1등이 1등을 한 결과지를 받아든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상 이선희는 가창력이 아예 없는 인물과 팀을 이뤄도 일정 수준 이상의 성과를 낼 가수다.' 까지만 보면 이선희의 가창력을 극찬하는 기사였다.[109] 하지만 '문제는 '이선희' 같은 걸출한 가수의 실력에 대한 감탄에 초점이 맞춰진다는 것이다. 듀엣이 아닌, 프로가수의 실력만이 전부가 되어 버린 상황 속에서 프로그램의 취지는 퇴색되어 가는 것은 당연하다. 포커스가 가수에게 맞춰져 있는 한, <나는 가수다>의 리바이벌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라는 부분을 보면 판타스틱 듀오 제작진 측을 규탄하는 기사임에 틀림이 없다. 이렇듯 신선한 내용의 기사인데, 설득력이 있다.[110] 모 인터뷰에서 가수는 회사 임원 앞에서도, 회사 직원들 앞에서도 노래를 부르게 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사회 현상에 관심을 가지고 있어 거의 매일 신문을 읽는다고 밝혔다.[111] 여기서 김생민이 학력고사 공부하는 줄 알았다고 하며 웃는다. (...)[112] 하지만 인스타그램에는 최근 콘서트 영상이 많이들 올라온다. 유튜브에도 이따금씩 업로드되는데, 한 번쯤 생각해봐야 할 문제이다.[113] 타이틀곡인 '갈바람'이 김연자의 '사랑의 미로'라는 노래와 표절 시비가 생겨서 후렴 부분을 수정해서 재발매한 흑역사가 있다. 후속곡인 '괜찮아'가 높은 순위를 기록하여 인기를 끌었으나, 전반적으로 이선희 전성기의 앨범 치고는 저조한 성적을 거두었다. '괜찮아' 같은 경우, 일부 방송에서 반말투의 가사와 제목으로 인해 '괜찮아요'라고 표기되는 해프닝도 있었다.[114] CD 발매가 이뤄졌는데, 이선희 4집이라는 타이틀이 아닌, '이선희 베스트'라는 이름으로 나왔다.[115] 이 음반부터 송시현이 참여하며 지구레코드에서 발매하다 1994년 9집까지 서울음반(현 로엔엔터테인먼트)에서 발매한다. 이때의 인연인지 20년 후인 2014년 15집 음반에서 다시 로엔엔터테인먼트 음반으로 발매되었다.[116] 원래 타이틀곡이었던 곡이지만, 생각보다 반응이 좋지 않았다. 더군다나 활동도 짧아서 영상 자체가 거의 남아있지 않은 상태이다.[117] 이 노래는 후속곡으로 활동하고 나서 음반 뿐만 아니라 방송차트에서 높은 순위를 기록하였다. 후일 인터넷에 올라온 어떤 네티즌의 리뷰로 인해 젊은이들에게 재조명 받기도 했다. 불후의 명곡 전설을 노래하다 이선희 편에서는 이 노래를 박정현이 부르며 선배에게 헌사했다.[118] 원래 타이틀곡은 '조각배'가 아니라, '어느 할머니의 극락'이었으나, 원제인 '어느 조센삐의 극락'이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어 제목 뿐만 아니라 타이틀도 바꿔야 했다.[119] 국악을 접목한 곡들로 채운 실험적인 앨범이다.[120] 타이틀 곡인 '라일락이 질 때'를 비롯한 이선희의 자작곡을 처음으로 실은 앨범이다.[121] 신대철, 김영석, 조장혁 등 젊은 가수들과의 호흡으로 완성한 락발라드 앨범이다. 하지만 위에 서술한 사건으로 인해 활동이 짧았다.[122] PV 내용이 무척 감동적이다. 그녀의 오래된 팬들과 함께한 특별한 PV.[123] 공개 직후 각종 음원차트의 상위권을 싹쓸이 했으며 빠른 차트 아웃 없이 서서히 순위가 내려갔다. 8월 무렵엔 50~70위권에 머무르고 있었으나 히든싱어 출연 효과로 다시 반등하여 20~30위권으로 치솟았으며 2014년 말까지 차트에 머물렀다. 2014년 연간순위는 20위권 안쪽으로 굉장한 성과를 냈다. 2014년 멜론 연간순위 13위에 올랐다.[124] 훗날 정여진도 불렀다.[125] 1991년 발표한 이선희 7집의 타이틀곡. 이선희가 드라마에 본인 역으로 특별출연해 극중 작곡가인 윤명노(최재성 분)에게서 이 곡을 받아 부르는 것으로 나온다.[126] 이선희와 똑같이 생긴 모창가수 이선휘(본명 정복순) 역으로 특별출연. 극중 복순이 무대에서 떨어져 팔을 다치고 입원했을 때 병원 식구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는 장면을 위해 이선희가 직접 작사, 작곡한 곡으로, 이후 멜로디와 가사를 다듬어 2005년 발표한 이선희 13집에 '사춘기'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었다.[127] 1988년 발표한 이선희 4집의 타이틀곡. 이선희의 원곡이 삽입된 것은 아니고 극중 여주인공인 장진경(김정은 분)이 피아노를 치면서 이 곡을 불렀는데 영화가 흥행에 성공하고 특히 이 장면이 크게 히트하면서 원곡도 덩달아 재조명을 받았다.[128] 2005년 발표한 이선희 13집의 타이틀곡을 이 영화 뮤직비디오에 삽입하여 히트. 이 때문에 마치 《왕의 남자》 주제곡처럼 인식되고 있으나 실제로 왕의 남자 OST 앨범에는 없는 트랙이며, 이선희가 2003년 방영된 MBC 드라마 《다모》에 감동을 받고 만든 노래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