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원(용의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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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왕위에 이르기까지3. 조사의의 난, 아버지와의 마지막 대결4. 아버지와의 이별, 피도 눈물도 없는 숙청5. 말년, 속죄의 죽음6. 캐릭터 평가
6.1. 불같은 성격6.2. 불효자이면서 효자6.3. 동복형들에겐 좋은 동생6.4. 아들들에 대한 부성6.5. 사정없는 외척 숙청6.6. 노골적인 여색
7. 기타

1. 개요[편집]

KBS 대하드라마 용의 눈물의 또 다른 주인공이자 진 주인공. 배우는 유동근[1].

2. 왕위에 이르기까지[편집]

첫 등장은 아버지 이성계가 요동 정벌 강행과 회군 사이에서 고민하는 와중에 아버지의 지인인 정도전(용의 눈물)과의 장기 한판을 두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한참 사이 좋게 장기를 두는 와중에 정도전이 장기판 상황을 빗대어 아버지인 이성계의 상황을 말해주며 아버지가 위화도에서 회군할 것이라는 걸 말해주고 이를 들은 후 바로 가족들을 고향인 함흥으로 피신시키는 일을 수행한다.

이후 위화도 회군을 한 아버지 이성계를 찾아가 대업을 위한 혁명이라고 말을 하나 이성계를 노하게 하며 이성계에게 경솔한 입이 화근이 될 것이라는 복선이 담긴 말로 꾸짖음을 들은 후 쫓겨난다. 이성계가 결국 우왕과 최영을 몰아내며 실권을 쥐게 되는 가운데, 혼란스러운 정국 속에서 친어머니 신의왕후를 잃기도 하지만 실제 역사와 같이 아버지의 가장 큰 정적이었던 정몽주와 마주한 자리에서 그 유명한 하여가단심가를 통해 서로의 속내를 확인하고 그를 암살함으로써 조선의 개국에 큰 공헌을 한다. 그러나 정몽주를 포섭하려던 이성계의 큰 분노를 사서 얼마 동안 숨어 다니는 신세가 되어 위화도 회군 때부터 두 부자의 어긋남의 징조를 예고한다.[2]

엉뚱하게도 개국에 공이 없는 이복동생 이방석이 세자로 책봉되자 분노하며 아버지와 계모 신덕왕후에게 반발하지만 소용이 없었고 이에 자신의 휘하와 종친들을 규합, 정도전과의 라이벌 관계를 형성하였다. 정도전이라는 강적과 대립하면서도 왕실의 위엄을 무엇보다 중시하는 사람답게 무분별한 흑색선전이나 저급한 수단은 지양했다. 아내인 민씨가 자신과 상의도 없이 내관을 매수하고 측근 조영무를 부려서 방석의 세자빈 유씨가 내시 이만과 통정한 일을 잡아내 궁을 뒤집어 놓자 크게 역정을 낸다. "이 이방원이가 제수씨가 바람난 일을 트집 잡아 세자가 되란 말이오!"라는 호통이 절창. 대권에 대한 야심은 버리지 않고 있으나 왕실의 위신을 실추시키는 스캔들을 기회로 삼고 싶지는 않은 면모를 드러낸다. 사실 바람에 관대한 성격 때문이다 그래도 방석을 세자 자리에서 끌어내리는 것만은 가하다 여겼는지 아버지 이성계를 찾아가 "부인도 건사하지 못하는 방석에겐 세자의 자격이 없다"고 간언하지만, 도리어 "이게 다 네 수작이란 걸 모를 것 같으냐"는 역정만 듣고 만다. 본래 이 일에 직접적 관련이 없는 본인으로서는 미치고 펄쩍 뛸 노릇이나, 사태를 적발한 조영무부터가 이방원의 충복이라 오해를 피할 길이 없었다.

실제로 신덕왕후며 정도전까지 모두 이 일의 배후에 이방원이 있을 것이라 지목했는데, 이방원 본인이 움직이지 않았다 뿐 이방원 휘하 세력이 단단히 작정하고 이방원을 위해 벌인 일이니만큼 오히려 당연한 오해라고 하겠다(...). 이방원은 나름대로 세자 자리에 사심이 없다고 구라를 치며 둘째형 이방과를 대신 세자로 앉히시라고 주청을 하지만 격노한 이성계는 오히려 세자를 절대 바꾸지 않을 것이라 선언하고 이방원의 궁궐 출입을 금지시킨다. 이후 일을 주도한 부인이며 조영무에게 사람을 뭘로 보고 이런 일을 꾸몄느냐고 제대로 역정을 낸다.[3]

이후 명나라의 사신으로 파견되거나[4][5] 사병혁파 등으로 곤경을 겪으면서도[6] 착실하게 세력을 키워가며, 이숙번과도 만나 그의 앞에서 먼저 무릎까지 꿇어 보이는 것을 통해 의형제 관계를 맺게 된다. 또한 신덕왕후와의 갈등도 심해져 사냥한 노루를 성까지 짊어지고 와 "아바마마께서 여색에 빠지시어 몸이 쇠하셨다, 이걸 고아 드리라"고 상 앞에 던져놓는 패드립을 저지르기에 이른다.[7] 그러나 자신의 압박이나 방석의 비행으로 마음의 병이 심해진 신덕왕후의 임종이 임박해오자, 생애 마지막이라는 생각이 들었는지 가지 말라는 원경왕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병석에 찾아가 묵묵히 유언을 듣는다. 하지만 이는 죽음을 눈앞에 둔 신덕왕후를 보고 연민의 감정이 생겼기 때문은 아니었다. 신덕왕후를 찾기 직전 뭐하러 가냐고 불만을 비치는 민씨에게 자신은 계모가 한 짓을 절대 잊지않으며, 절대 용서하지 않는다고 단언했다. 그저 일국의 왕족으로서 왕실의 위신을 우선했을 뿐 이었다. 이때의 독기어린 선언은 10년도 훨씬 더 지나 신덕왕후의 정릉을 다 파버리는 걸로 증명된다.

신덕왕후 사후 상심한 이성계가 무리하다가 병중에 들자, 정도전 등이 자신을 비롯한 신의왕후 소생들을 암살하려는 타이밍에 반란을 일으켜 역습을 가해 이복동생들과 정도전의 당여들을 죽이고 사실상 조정의 실권을 장악한다. 이 과정에서 그 동안 이래저래 한이 많이 쌓였던 정도전에게 왜 자신에게 살려달라고 하지 않냐, 함께 살자고 제안하지만 이제 그만 쉬게 해달라는 정도전의 거부에 그를 죽일 것을 명하며 그 최후를 씁쓸하게 지켜본다.[8] 이방석의 경우 신병을 확보한 그 즉시 살해했지만 이방번과 이제는 일단 그냥 놓아줬다. 허나 이방간이 그들을 죽이려 쫓아가는 걸 보고 멈추라는 듯, 한 번 부르기만 했을 뿐 결국 그냥 묵과한다.

이 모든 참극에 절망한 이성계가 물러나자 둘째 형 이방과를 왕에 세웠다. 이에 이지란 등이 그럴 것 없이 그냥 왕위에 앉으라고 재촉하기도 하지만 본인은 정당하게 아버지에게 인정받고 싶다는 생각에 결코 서두르려 하지 않는다. 반란 이후 아버지와 만난 자리에서 벼루를 맞고 물러나는 와중에서도 결코 예의를 잃지 않았고, 강렬하게 거부당하면서도 최선을 다해 효도를 드리려 할 정도.
벼루 장면을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정종과 이방원 내외가 이성계에게 문안 인사를 드리러 왔는데, 이 때 이성계는 도저히 이방원을 곱게 맞이해 줄 심정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 이방원에게 동복 형제와 남편을 잃은 딸 경순공주가 결국 출가하였고, 이성계는 그 출가하는 삭발 의식에 참석하고 돌아온 직후였기 때문이다. 결국 이성계는 분을 참지 못하고 금수 같은 놈이라며 벼루를 머리에 던지고, 이방원을 죽이겠다며 자신의 어검을 가져오라고 호통을 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예의를 갖추려 하는 이방원의 모습도 볼거리. 이 벼루 장면은 이후 드라마 정도전에서 배우가 바뀐 채 그대로 오마쥬한다. 상황은 좀 바뀌었지만(정몽주를 살해한 뒤에 분노한 이성계와 이방원), 이성계 역을 맡은 배우가 이 유동근이고, 벼루를 이방원에게 내던지고 곧바로 칼로 내리치려 하며 '나는 사람이 아니라 짐승 새끼를 키웠다!'라고 대노하는 모습 등 거의 내용을 그대로 오마주했다.

또한 공신들과 연회를 가진 자리에서 함께 승전의 기쁨을 나누는 것처럼 보이면서도, 정 집사 앞에서는 결코 기뻐서 그러는 게 아니라는 씁쓸한 속내를 드러내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정도전의 집사가 자신을 암살하려다 죽임을 당하자, 그 충의를 높게 사서 무덤을 마련해주는 등 실제 역사에서와 같은 포용력을 보여준다.

물론 그와는 별개로 권력 다잡기에는 철저해서 공신들의 원망을 사면서까지 사병혁파를 진행시키는 한편, 넷째 형 이방간이 권력욕을 드러내며 은밀히 움직이는 가운데 자신을 타도하기 위해 암약하던 조사의의 부하들이 이끄는 군사들의 습격에 부상을 입고 드러눕게 되자 위중한 척하며 향후 흘러가는 동향을 살펴본 뒤 건재함을 과시해 방간 등을 반쯤 데꿀멍시키는 등의 압박을 가한다. 훗날 선위 드립으로 신하들을 갖고 놀던 노하우의 싹수가 이때부터 드러난다.

결국 이방간이 박포와 손을 잡고 반란을 일으키자 친형을 치는 것에 주저하면서도 결국 그를 꺾어버린다. 이후 방간의 처우를 두고 갈등하다가 결국 살려주기로 한다. 하지만 이방간과 손을 잡고 반란을 일으킨 박포는 고문 후 본보기로 처형하며, 박포는 죽기 직전 처형장에 모인 신하들에게 나 다음은 당신들이 될 거라는 발언을 한다. 이방원은 잠깐 흠칫하지만 어차피 죽을 놈 헛소리나 실컷하게 놔두라고 하며 떠난다.[9] 반란을 진압한 뒤로도 사병혁파에 계속 전념해 박포의 예견처럼 끝내 자신과 생사고락을 함께 한 공신들 다수를 유배보내기에 이른다. 그 뒤 백성들 앞에서 현 조정의 건재와 방과와의 우애를 증명해 보이는 차원에서 함께 사냥에 나서지만, 이미 물러나기로 마음먹은 방과는 이제까지의 나약한 모습과는 다르게 방원의 의향과 상관없이 그에게 왕위를 물려준다. 마침내 조선 제 3대 임금 태종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10]

3. 조사의의 난, 아버지와의 마지막 대결[편집]

그렇게 염원하던 왕위에 오르게 되지만, 며칠도 되지 않아 답답한 궁궐 생활에 싫증을 내서 밖으로 나가거나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왕위에 오른 그날 밤에 이숙번의 집으로 미행을 나갈 정도.[11] 자주 미행을 나가지만 돌아올 때 사관과 언관들에게 걸려서 폭풍 잔소리를 듣기도 한다.[12] 훗날 후궁으로 들이는 선빈 안씨도 이숙번의 집에 미행을 나갔다가 만났다.

한편 아버지 이성계는 이에 격노하여 동북 면으로 가버리고 그 전부터 세력을 키워오던 조사의와 결탁하게 된다. 방원은 이런 아버지를 모셔오려 연이어 차사를 파견하지만 맨 처음에 보냈던 박석명만 무사히 돌아오고 나머지는 보내는 족족 살해당한다. 본인은 이런 아버지의 반응에 서글퍼하며 난감해하고, 결국 조사의가 난을 일으키자 아버지와 직접 칼을 맞대야 한다는 사실에 또다시 갈등하지만 이숙번의 일갈에 마음을 다잡고 아직 어린 양녕대군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친정하기에 이른다. 실로 하늘을 찌를 듯 맹렬한 조사의 휘하 군대였지만 결국 내부의 배반을 유도해 진압에 성공한다. 조사의와 마주한 자리에서 자신과 아버지를 싸우게 한 것에 대한 맹렬한 분노를 드러내고, 그에 대해 냉담히 비웃는 조사의에 대해 삼족을 멸할 것을 명한다.[13]

이러한 일련의 과정 끝에 마지막으로 아버지 이성계를 모셔오게 되고, 미리 활과 철퇴로 무장하고 있던 이성계의 공격에서도 살아남아(...) 드디어 조선의 정식 국왕임을 인정받기에 이른다.(이성계의 의도를 파악한 하륜의 기지가 있었다.)[14]

4. 아버지와의 이별, 피도 눈물도 없는 숙청[편집]


조사의의 난 이후 수년의 터울을 두고 진행된 2부에서는 아직 별다른 일 없이 왕권강화와 국정에 전념하고 있었다. 아버지 이성계와는 조선의 국왕임을 인정받는 걸 넘어 그 유명한 "소자의 춤을 보시옵소서!!" 일화로 드디어 화해한 상황.

그러나 후궁의 일로 원경왕후와 갈등을 빚은 뒤, 본격적으로 외척 경계의 싹수를 드러내 선위 소동으로 민무질, 민무구 형제의 꼬투리를 잡아 원경왕후의 원망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들의 모든 권력을 박탈시킨 뒤 유배를 보내기에 이른다. 이후 장인어른 민제의 병세가 위중하자 원경왕후의 다그침에 마지못해 일시 두 형제를 유배에서 풀어 아버지의 상을 치르게는 해줬지만, 장례가 끝나자마자 사정없이 다시 유배를 보내버렸고 아예 섬에 위리 안치시켜 버린다. 그리고 이전 유배지에서 두 형제에게 대우를 잘 해준 관리들마저 처벌했을 정도.

도중 아버지 이성계의 병세가 위중하자 어의를 닦달하고 어차피 용의 눈물에서 어의는 사망 플래그라 소용없다 [15][16]부처님에게 공양을 드리는 등 안간힘을 써서 쾌유를 위해 노력하지만,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국 아버지는 세상을 떠나고 만다. 결국 슬픔을 억누르고 있다가 홀로 남게 된 자리에서 "아바마마!! 소자가 잘못했사옵니다!!!"라 절규하며 오열하고 만다. 그 뒤 덕망 있는 스님들로 하여금 생전 이성계의 공덕을 금가루로 쓰게 한다.[17]

물론 그와는 별개로 외척 숙청에는 변함이 없어 끝내는 민무구, 민무질 형제를 사사해버렸고 이로 인해 원경왕후로부터 짐승 및 살인마라는 소리마저 듣지만 사정없이 내쳐버린다. 그걸로도 모자라 두 형제 밑의 두 동생들마저 부르더니 "내가 너희 형들을 죽인 것에 대해 원망하고 있잖아, 그렇지? (민무율, 민무회: 아닙니다. 전하. 원망한 적이 없습니다.) "아니야... 너희들은 역시 그때의 일로 과인을 원망하는 것이 틀림없어." 라는 사소한 꼬투리를 잡아 죽여 버린다.[18] 행동 하나하나 말 한 마디 한 마디를 전부 의심하고 관련자 앞에서 슬슬 속을 긁는데 편집증에 걸린 사람 같은 모습을 보여준다.양녕의 정신나간 행동이 이해가 안가면서도 이방원의 작태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 뒤 의형제와도 같은 이숙번 마저 마지막 술자리를 가진 끝에 귀양을 보내며 더욱 왕권 강화에 매진한다.[19]

그러나 이런 일련의 피로 피를 씻는 권좌에 염증을 드러내 계속 탈선하는 세자 양녕 때문에 속을 썩이면서 매를 치기도 하고 무릎을 꿇으며 빌기도 하는 등 부정을 보여주지만 결국엔 양녕을 폐하고 충녕을 세자로 삼는다. 이 과정에서 이에 반대하는 황희 역시 유배형에 처한다.

그 뒤 마침내 충녕에게 진짜로 선위를 하고 상왕으로 물러나지만 실제 역사에서와 같이 군권은 자신이 쥐고 있었고, 그 힘을 바탕으로 이번에는 충녕-세종의 처가에 화살을 돌려 처가를 완벽하게 박살내버리고, 그의 장인 심온은 사사해버렸다. 이에 세종은 눈물기까지 비치며 장인인 심온의 목숨만은 살려 줄 것을 부탁하지만, 이방원은 오히려 "주상! 울음을 그치지 못할까! 내 말하지 않았소! 임금은 눈물을 보여서는 아니되느니!"라는 호통[20] 과 함께 세종을 성군으로 만들기 위해 모든 악업은 자신이 지고 갈 것이라는 말로 거부한다.뚝 해
도중 세종의 왕비 소헌왕후 역시 훗날 화가 될 수 있으니 제거해야 한다는 일부 신료들의 간언을 듣지만 단호하게 거부한다. 왕후까지 정리해 버리면 결국 새 중전을 들인다는 이야기인데, 새 중전을 들이면 이전의 살육은 아무 의미가 없는 사법살인이 될 뿐이며, 새 중전 측에 딸린 외척들을 날려버리는 일을 또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젠 사람 때려잡는 일도 지긋지긋하다는 분노와 회한 어린 일갈이 일품.[21]

5. 말년, 속죄의 죽음[편집]

모처럼 돌아온 양녕의 거지같은 몰골에 성화를 내던 중, 원경왕후가 그 꼴을 보고 실신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그 자신도 등창이 시작되어 죽음이 머지않았음을 느끼고, 원경왕후의 병이 위중하다는 소식을 듣고 자신 때문이라며 극중 처음으로 죄책감을 드러낸다. 이후 원경왕후의 병석으로 찾아가 용서를 빌고, 왕좌에 오른 뒤 자신은 사람이기를 포기했다는 변명 아닌 변명을 한다. 이후 체념이 서린 용서를 받지만 끝내 원경왕후가 눈을 감자 끌어안고 서럽게 운다.
한편 조선 전역에 극심한 가뭄이 든 가운데 그의 병세도 악화되어 어의로부터 요양을 갈 것을 요청받지만, 백성들이 고통 받는 가운데 자기 몸이나 돌볼 수 없다며 거절한다. 그리고 이젠 자신도 늙었고 주변의 사람들도 대부분 남지 않은 현실 속에서 이젠 정말 끝이 다가왔음을 절감하며 그나마 세종의 뛰어난 통치력에 안도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후 세종이 찾아와 재차 요양을 갈 것을 부탁하지만 역시 거부하고, 이전 내쳤던 황희의 복권을 부탁한다.

그리고 계속 조선 전역에서 기승을 부리고 있는 가뭄에 걱정을 금치 못하다, 마지막으로 자신에게 남은 사람인 내금위장(정 집사)에게 주위에 아무도 들이지 말라고[22] 엄명을 내린 뒤 병이 깊어진 몸으로 홀로 뙤약볕 아래 기우제를 지낸다.[23] # 와중 감정이 복받친 태종은 하늘 아래 자신이 쌓아온 악업을 피를 토하듯 늘어놓는다.

"그러하옵니다. 이 몸은 죄인이옵니다. 씻을 길 없는 많은 죄를 지었사옵니다. 죽였사옵니다. 아버님의 가슴 속에도 평생토록 한을 심었사옵니다. 계모님도 그랬사옵니다. 평생의 반려자인 대비마저도 그리했사옵니다. 하오나 미련한 이 몸은 그 길이 나라를 지키는 길이라 생각을 했사옵니다. 그랬사옵니다. 동지들도 다 죽였사옵니다. 죽였사옵니다. 사돈마저 죽였사옵니다! 다 죽였사옵니다! 왕실의 걸림돌을 치우기 위함이었사옵니다! 그것이 악업인 줄 알면서도 그리했사옵니다! 모든 죄는 이 몸에게 물으시옵소서. 이 몸, 이승을 떠나기 전에 간절히 기원하옵나이다! 모든 죄는 이 몸에게 물으시옵소서!" [24]


결국 기우제 끝에 드디어 하늘이 어두워지고 비가 쏟아진다. 이에 태종은 한을 토해내듯 "드디어 이 몸을 용서하여 주시는 것이옵니까!" 하고 절규한다. 이윽고 세종과 중신들이 일제히 그 자리로 몰려들어 태종을 부축하고, 태종은 세종에게 꼭 성군이 되라고 당부한다. 그리고 맏아들 양녕이 보고 싶다는 심정을 토로하고 마지막으로 "아버지... 아버지... 아... 버..."라는 유언을 남기고 숨을 거두게 된다.

6. 캐릭터 평가[편집]

한국 사극에 등장하는 모든 이방원 중에서도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급의 존재. 더 나아가 한국 사극 최고의 캐릭터 중 하나. 태종 이방원의 인생을 실제 역사에 가깝게 디테일하게 묘사했을 뿐만 아니라, 유동근의 연기력에 힘입어 하늘을 찌를 만한 카리스마를 자랑한다. 용의 눈물이 지금까지도 한국 사극의 블록버스터로 남게 된 원동력들 중 하나.

원래는 이성계와 함께 2대 주인공으로 설정되어 있었지만 용의 눈물이 인기에 힘입어 59회나 연장하여 그의 전 생애를 다 다루게 되면서 결국 태종의, 태종에 의한, 태종을 위한 드라마가 되어 사실상 진 주인공으로 등극했다.

이 드라마의 이방원을 두 문장으로 정리하자면 친혈육간의 정이 눈물겨운 이이자 무자비한 왕조 시대 정치가이자 군왕이라고 할 수 있다. 아버지 이성계나 어머니가 같은 형제들에 대한 정이 지극하고, 맏아들 양녕에 이르러서는 평생 하지도 않는 결정 번복이나 애걸복걸도 무릅쓰는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준다. 그러나 강력한 왕권을 위해서라면 고락을 같이 한 공신들도 결국 다 쳐내 버리고, 처남들도 날려버리고, 결국에는 그토록 애지중지하던 맏아들마저 폐세자를 시킬 정도로 강력한 결단력과 인정사정없는 숙청능력을 선보인다. 원조 킬방원 이러한 태종의 캐릭터를 멋지게 요약하는 대사는 양녕을 두고 뇌까리는 한탄. "과인은 평생 결정을 번복해 본 일이 없는 사람인데, 내 아들이 이토록 뜻대로 되지 않는다니...."

대체로 여색과 야심과 냉혹무비함 등 정치인 이방원의 어두운 면모가 여과 없이 묘사되었다는 평이지만, 중간 중간 드러내는 인간적인 흔들림과 고뇌가 배우의 연기력과 어우려져 강렬하기 짝이 없는 탓에 일부에서는 역사상의 냉혹함에 대한 실드가 다소 들어가지 않았냐는 평도 존재한다. 세종을 향한 애비가 주상을 위해 사람이 할 수 없는 짓을 한다는 일갈에 설득당하는 시청자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이방원의 잔인한 숙청, 여색 등을 비교적 빠뜨리지 않고 낱낱이 묘사했음에도 불구하고 캐릭터의 복잡미묘한 입체성과 배우의 호연이 던지는 자기합리화가 주는 설득력이 너무나 강력했다. 실제로 용의 눈물에서의 캐릭터 해석은 방영이 끝난지 20여년이 지난 시점에서도 실제 역사상 태종이라는 인물을 해석할 때 그 영향력이 강하게 남아있다.[25]

사실 각본이 이방원을 미화한다고는 보기 어렵다. 작중 이방원의 작중 행동들을 잘 보면 냉혹한 숙청과 조선건국 정당화에 대한 묘사가 주를 이루는 반면 실제 역사상에서의 명군으로서의 치세는 그리 잘 묘사되는 편이 아니다. 오히려 왕권 강화로 인해 신료들과 백성들이 핍박받고 고통받는 식의 묘사가 나올 정도였다. 게다가 숙청의 묘사가 너무 강해서[26] 살인마가 아닌가 싶을 정도의 잔혹함을 그대로 드러내준다. 여기에 한국 사극 주인공 중에 대놓고 역사왜곡을 지시하는 이는 이방원 뿐이다. 고려사와 태조실록을 편찬할때 왕실의 위신에 손상가지 않게 여말선초의 피비린내를 알아서 잘 윤색하라고 압박을 준다.[27] 실록 등에서 이방원을 좀 과하게 쉴드 쳐주는 부분이 있으면 나레이션에서 직접 그것을 반박하는 등의 장면도 있었다.[28] 이방원 하면 '사관에게 적지 말라고 해라' 라는 명령이 기록된 일화가 유명하여 사관 우대 군주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치세 동안 사관들을 험한 말로 갈구고 옥에 가두기도 했다는 사실을 나레이션으로 고스란히 묘사한다. 신문고 역시 원 취지와 달리 왕권강화의 틀로 쓰였음을 비판받고 있다. 즉, 이방원의 미화는 작중 묘사가 균형잡힌 데 반해 배우의 카리스마와 인간적인 매력 때문에 단점이 가려 보이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마지막 회의 기우제 장면은 내내 비 좀 내려달라고 기도하는 장면을 길게길게 보여주는데, 배우가 연기력으로 하나도 지루하지 않게 끌고 가 버릴 정도. 기우제 동안 과거의 악행을 낱낱이 하늘에 자백하는데도, 백성을 위해 비를 달라고 울부짖는 호연에 가려서 시청자들은 감동의 눈물을 흘릴 뿐이었다(...).

그야말로 실제 역사 속 이방원 그 자체로 평가받고 있으나 딱 하나 빠진게 있는데 바로 백성들에 대한 너그러운 모습이 없다는 것. 실제로 태종(조선)에도 나오지만 외척과 관료들에게는 그야말로 야차였을지는 모르지만 백성들에게는 매우 너그러운 모습을 많이 보였고, 조운선 침몰로 수많은 인명 및 재산손실 사고가 터졌을 때 이 사고는 내게 책임이 있다며 자책하는 모습을 보였는데 여기서는 그러한 모습이 거의 없이 왕권 강화에만 매진한 모습만 보여준 것은 다소 아쉬울 따름이다.[29][30]

6.1. 불같은 성격[편집]

위화도 회군서 부터 왕위에 오르고 나서도 냉철한 판단과 언변, 카리스마로 좌중을 휘어잡는 태종이지만 몇몇 장면에서 보면 대놓고 불같이 성질을 내는 장면도 많이 보여준다.

대표적으로는 정몽주가 이성계 제거에 실패한 후 태연하게 상황을 살피러 이성계의 문병을 왔을 때 저자가 어찌 여기를 오냐며 옆에 있던 조영무의 칼을 냅다 뽑아서 들어가려는걸 숙부인 퉁두란이 말려서 겨우 멈췄으며, 세자위가 엉뚱하게 이복동생인 방석에게 갔을 때는 자신이 사냥에서 잡아왔던 노루를 신덕왕후의 찻상에 내던지며 "아버지께서 여색에 빠져 앓아 누우셨으니 이거 고아서 드리시고, 행여나 고기 한점 떼먹지 마시옵소서"라고 말하며 다과회를 난장판으로 만들기도 했다. 아무리 계모가 마음에 안 든다지만 전근대 기준으로 아니 현대 기준으로도 대놓고 불효에 패드립을 저지른 셈.

무인정사 이후 공신 심사에 불만을 품은 박포가 술에 취해 형인 이방과가 왕위에 오른후 있던 주연에서 난동을 부리자 마시던 술잔을 집어던지며 호통을 치고 갑사들을 호출하여 자리에서 그대로 끌어내 순군사(훗날 의금부)에 가둬버렸고, 결국 그 죄로 박포가 귀양가자 이에 대해 직접 찾아와 한마디 했던 조영무에게 격노하여 밥상 뒤집기를 시전하기도 했다.[31] [32].이후 세자위에 오른 후 사병혁파의 일환으로 조영무, 이천우, 조온을 귀양보낸 후 측근인 민무질이 술자리에서 크게 취하여 "이제 매형과 민씨 가문 세상이니 저희도 같이 권력좀 나눠달라"고 했을 때도 다시 한번 밥상 뒤집기를 시전, 술이 떡이 되어 헤롱거리던 민무질이 술이 번쩍 깨서 안절부절 못하게 하기도 했다. 여기서 '동생을 죽이고, 아버님을 내쫓고, 형님을 귀양보내는 마당에 처남들 쯤이야'라는 태종의 발언은 외척인 민씨 가문에 대한 1차 경고였다. 이 경고를 잊어버렸던 민씨 형제들은 훗날 모두 피의 대가를 치뤄야 했다.

왕위에 오른 후에도 원경왕후와 외척 견제 문제로 서로 불같은 언성으로 부부싸움을 했으며 세자시절 양녕이 봉지련과의 스캔들로 시끄럽자 얼굴에 두꺼운 책을 냅다 던지고[33][34] 그에게 역정을 냈다. 물론 그 뒤에 양녕의 멱살을 잡고 한참 그를 질책하다가 지쳐서 "아들아, 제발 이 아빠말좀 들어다오ㅠㅠ"하면서 무너지는 모습을 보이고, 양녕이 물러나가자 어지러진 집무실을 스스로 정리하며 흐느낀다.

또한 정사를 볼때도 불같이 화를 내는 경우가 왕왕 있었는데 조사의의 난 와중에 명나라에서 그의 국왕 책봉에 대해 문제를 제기 하자 명의 인정보다 아버님께 인정받는게 중요하다며 외교문서를 가저온 관리에게 상소문을 냅다 집어 던졌으며[35][36], 민무구-민무질 옥사 때 그들을 변호를 하면서 자신을 힐난한 이지성에게 대노하여 그 자리에서 끌어내 귀양보내 버리기도 했다. 결국 이지성은 쭉 유배되어 있다가 민무휼, 민무회 형제를 사사할때 후환을 끊는 차원에서 제거된다.

셋째 충녕대군의 세자 책봉은 그 정점. 이 때 세자 책봉 후 편전에서 세자[37]와 세자빈을 앉혀놓고 백관들이 모인 자리에서 조회를 보는데 황희가 대놓고 그의 말을 끊고 세자 책봉의 부당함을 주장할 때 그는 곤복 차림에 면류관의 구슬을 휘날리며 백관을 압도, 황희를 그대로 끌어내 유배조치 하고 다시 세자 문제 가지고 왈가왈부 하면 군율로 다스리겠다 하며 분위기를 서슬퍼렇게 찍어눌러 버린다.

다만 이런 분노는 자신의 가족, 자신과 왕실의 권위, 자신의 권력에 도전하는 자들에게 주로 터져 나왔다. 물론 이외에 조영무 같이 궁녀인줄 모르고 건드렸던 사건에 대해 버럭하는 일도 있었지만 이런건 그 자리에서 적당히 타이르고 경고 한번 단단히 주고 끝냈다.[38] 물론 이거이는 그게 계속 쌓여서 정치 생명이 작살났지만....

6.2. 불효자이면서 효자[편집]

아버지 이성계에게 있어서는 최고의 불효자라 해도 과언이 아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최고의 효자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방석이 세자로 등극한 뒤 제1차 왕자의 난에 이르기까지 아버지와 충돌이 몇 번 빚어지긴 했지만, 왕자의 난 이후로는 벼루가 날아들든 화살이 날아들든 철퇴가 난무하든 항상 공손한 저자세로 일관하며 아버지의 사랑과 인정을 갈망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아버지 앞에서 춤을 추는 모습과 임종 뒤 오열하는 장면, 죽음을 맞이하는 가운데에서도 아버지를 찾는 모습은 이성계가 살아서나 죽어서나 끊임없이 그를 생각하던 이방원의 효심을 여실히 드러내는 장면.

6.3. 동복형들에겐 좋은 동생[편집]

아버지와의 관계가 중점적으로 다뤄져 드문드문 보여지지만 동복형제들에 대한 우애도 애틋하다. 권력욕 없는 둘째형을 징검다리로 쓰기 위해 반강제로 왕위에 앉히긴 했지만 결코 함부로 대하지 않고 예의를 지켰다[39]. 2차 왕자의 난이 끝난후 신하들이 정종 면전에서 양위하라 압박을 주고 동궁전에 들어오자 형님에게 뭐하는 짓이냐며 호통치고 최대한 물렸다.[40] 몸이 달아 정안왕후를 겁박하다시피 했던 원경왕후와는 정반대[41]. 원경왕후가 이성계나 정종에게 투덜거릴때는 내 아버님이고, 내 형님이라며 왕실의 일원으로써 예의와 체통을 지키라고 하면서 딱 잘라버린다. 병중이던 셋째 방의가 2차 왕자의 난 중에 절제사 인수를 들고오자 형의 마음 씀씀이에 감동해 눈물을 쏟았으며, 그의 투병이 길어지자 상왕으로 물러난 형 방과와 함께 문병도 가고 어의를 보내는 등 정성을 다했고 결국 병으로 사망했을 때는 직접 찾아와 어찌 이리도 일찍 세상을 뜨냐면서 눈물을 보였다.

넷째 방간은 2차 왕자의 난을 꾸미는 와중에 방원을 방심시키라는 박포의 조언을 따라 일부러 살갑게 굴었는데 한치의 의심도 않고 믿었다.[42] 교묘하게 낚은 것도 아니고 설장수의 임종을 보고 오는 길에 한동안 서먹서먹하던 방간이 갑자기 다시 잘 지내보자며 다가온 부자연스런 상황이었는데 굉장히 기꺼워하며 받아들였다. 하륜과 민씨가 입을 모아 갑자기 저러는게 수상하다고 몇번이나 간언했지만 한번 의심하면 끝도 없다면서 전혀 듣지 않았다.[43] 2차 왕자의 난이 진압되고도 희희낙락하는 공신들이나 민씨와는 달리 침울해하며 민씨가 마련한 주안상을 물린채 고뇌했고 측근들이 입을 모아 방간을 반역죄로 다스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전부 뿌리치고 방간을 살려서 귀양을 보내는 걸로 끝냈다. 이후 자신이 상왕으로 물러났을 때 결국 사망하자 종친의 일원이 죽었으니 종친들 모두에게 상복을 입으라 명하며 슬픔을 보였다. 분량의 쥐꼬리만한 익안군 방의가 죽었을때도 굉장히 슬퍼하는 모습을 보였다.[44]

6.4. 아들들에 대한 부성[편집]

아들바보로 유명한 그의 부성 또한 심도 있게 다루었다.

양녕대군이 성장한 중후반부 부터 점점 엇나가는 자식을 혼내고 꾸중하면서도 어떻게든 달래고 감싸려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양녕의 막장행위가 극에 달한 후반부에는 말 그대로 눈물로 애원을 하며 그의 마음을 돌리려하지만, 이러한 노력도 헛되이 결국은 양녕을 폐위하게 된다. 세자폐위의 명을 내린 뒤 어린아이처럼 서럽게 우는 모습 또한 압권. 앞서도 서술했지만 숨을 거두기 직전까지 '양녕이 보고 싶다'는 말을 남기는데, 그의 깊은 부성을 짐작케 한다. 참고로 명필로 유명한 양녕대군이 태종의 눈앞에서 뛰어난 서예솜씨를 선보이는 장면이 있는데 이때 온갖 호들갑을 다 떨며 기뻐하는 등 상당히 팔불출같은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45] 이후 신하들에게 주책없게 자식자랑을 하는 모습은 그야말로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아버지의 모습이다. 이후 결국 그의 비행을 더는 묵과하지 못하고 폐세자 조치 했을 때는 어명을 받든 도승지가 나간 후 눈물을 줄줄 흘리며 엉엉 울어 버리기도 했다[46].

효령대군과 훗날 왕위에 오르는 충녕대군의 경우에도 부성이 깊기는 마찬가지로 훗날 나이가 차서 결혼을 하고 궁궐 밖으로 나가 살라고 했지만 그래도 입궐하여 학사들을 통한 학문 연마는 막지 않았다[47]. 상왕이 되고 효령대군이 오랫동안 지방을 여행하고 문안인사차 찾아왔을 때는 얼굴이 활짝 펴져서 하던 업무를 물리치고 맞이하기도 했다.

충녕대군의 경우에는 그가 왕이 된후 자신은 상왕으로 물러난 이후에도 아들의 왕권을 위하여 피도 눈물도 없는 옥사를 일으켜 문제가 되는 측근과 왕의 장인인 심온과 그 가족까지 피도 눈물도 없이 정리해버리며 아들의 위치를 견고하게 다졌다.

성녕대군의 경우에는 결혼까지 했지만 몸이 안좋은지라 다른 형제들과는 달리 출궁시키지도 않고 곁에 두었지만 결국 홍역으로 투병하다가 사망했을 때는 그의 마지막 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죽은 아들을 보지 못하고 고개를 돌린채 눈물을 뚝뚝흘리며 슬퍼한다.

6.5. 사정없는 외척 숙청[편집]

이런 아버지나 아들에 대한 따뜻함과는 별개로, 외척의 숙청에 있어서만큼은 인정사정없는 냉혈한으로 돌변한다. 제1차 왕자의 난에서 정도전의 죽음을 씁쓸하게 바라보며 방석을 죽이고 방번과 이제의 죽음을 방관할 때에조차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줬던 것과는 180도로 다른 모습. 사병혁파의 과정에서 공신들을 유배 보내다 이를 이루자 일부는 다시 복권시켜주는 포용력과도 전혀 다르다. 사소한 꼬투리 하나를 잡은 것만으로도 반역으로 몰아붙여 권력을 빼앗아 유배 보내고 잔인하게 국문하고 어릴 때부터 그들 사이에서 자라온 양녕대군에게 이를 참관하게 하여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게 한다. 이는 이를 통해 양녕에게 자신이 짊어질 책임을 더욱 강하게 통감하게 만들고자 하는 의도도 있었다. 하지만 이것은 오히려 안 그래도 피흘림에 지겨웠던 양녕이 더욱더 권좌를 증오하게 되는 역효과를 낳았다. 그리고 이를 세종의 처가에마저 반복하는 모습은 실제 역사와 조금도 다를 것이 없는 무자비한 숙청형 군주. 거기다 신덕왕후의 정릉의 석물들을 헐어 청계천에 처박아 정종 부부를 아연케까지 한다. 와병 중이던 정안왕후는 뒷날 자기 내외의 능도 그리되지 않을까 걱정한다. 태종은 정통성 확립을 위해 정종을 형으로는 대접해도 왕 취급은 안했기에 절대 공연한 걱정이 아니었다. 그나마 실제로는 정종 부부의 무덤은 무사했다.

이에 대한 그의 인간적 고뇌가 드러나는 장면이라고는 세종의 처가에 대한 처우를 두고 역정을 낸 것과 임종을 앞둔 원경왕후 앞에서의 고백, 기우제에서의 고해성사뿐이다. 원경왕후의 짐승, 살인마라는 저주가 조금도 아깝지 않은 일면이다. 다만, 작중에서 원경왕후가 태종을 상대로 어그로를 끌어 숙청을 자초한 면도 있다. 태종의 여성 편력에 투기심을 드러내는 건 그렇다 치더라도 태클을 걸 때마다 나와 우리 민씨 집안이 그렇게 고생해서 왕위에 올려줬는데 이러냐는 말을 입을 달았다. 가뜩이나 외척이 왕권을 어지럽힐 것을 강박관념급으로 싫어하는 태종에게 원경왕후가 이런 발언을 서슴치 않게 하며 어그로를 끈다면 태종 입장에서는 나한테 반기를 들고 왕권을 위협하려는 의도가 있다고 받아들여도 이상할 일이 아니다. 실제로 실록에 따르면 태종과 원경왕후는 자주 부부싸움을 하여 부부싸움이 벌어졌다하면 원경왕후를 모시는 상궁과 나인들이 쫓겨나는 일도 있었다. 태종도 부부싸움이 지긋지긋했는지 폐비까지 생각했다가 정종이 말려서 관뒀다고 한다. 물론 이런 점을 감안하더라도 태종의 외척 숙청은 그 어떤 미화도 들어가 있지 않고 여과없이 나오기에 용의 눈물의 평가를 더욱 드높이는 부분.

2000년대 시각에서는 다르게 볼 수 있지만 용의 눈물이 방영되던 1990년대는 시국이 워낙 권력자의 친인척 비리에 대해서 시선이 안 좋을 때라서, 이런 인정사정없는 모습조차도 단호하다고 호평받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무구의 아래 두 동생을 처벌하는 부분은 저렇게까지 해야하는가라는 의견이 나온다.[48][49]

6.6. 노골적인 여색[편집]

다른 한편 여색을 밝히는 모습도 타 매체의 이방원들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독보적이다.[50] 신덕왕후 앞에서 아버지가 여색에 홀렸다고 야유할 처지가 전혀 못 된다 첫 시작은 효빈 김씨.[51] 막내 동생이 세자가 되고 정도전의 견제를 받아 꿔다 놓은 보릿자루 신세일 때 민씨의 여종 덕실을 보고 후실로 들인다. 이일로 인해 원경왕후와 두고두고 싸우게 된다.[52][53] 그나마 즉위 후 원경왕후가 덕실에 대한 미움을 어느 정도 내려놓아 봉합되는가 싶더니 선빈 안씨를 시작으로 후궁을 계속해서 들이고 침소에 드는 궁녀는 말 그대로 날마다 바꿔서 원경왕후의 복장을 뒤집는다. 원경왕후는 이 문제로 태종과 끊임없이 지지고 볶았는데[54] 이것은 신덕왕후와의 악연, 민씨 형제의 부적절한 처세와 함께 태종이 외척 제거의 결심을 굳히는 원인이 된다.

다만, 공사구분이 철저해서 아버지 같은 원칙에 어긋난 무리수는 없었기에 국정에 악영향을 미치진 않았다. 그리고 그의 호색에는 원래 여색을 좋아한다는 이유도 있지만 왕실의 세력을 키우고[55] 외척인 민씨를 견제한다는 이유도 있었다. 중전의 친정 못지않게 후궁 혹은 그 친정이 왕의 총애에 힘입어 세력을 키우는 것도 경계해서 선빈 안씨가 자기 소생을 세자로 삼으려는 욕심을 보이자 처소에 발길을 끊어버렸으며 원경왕후를 대신해 궐 안의 살림을 돌볼 후궁 2명을 들일 때도 친인척에게 수혜를 주거나 투기하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

본인이 호색한이라서 그런지 휘하 공신들의 여자문제에는 엄청나게 관대한 편이다. 무인정사 이후 사병혁파 문제로 대립 중이던 이거이 부자가 방석의 기생첩과 스캔들이 터졌을 때 이를 공격수단으로 쓰자는 이숙번의 건의에, 사병혁파와 왕권강화라는 숙원 때문에 받아들이긴 하지만 여자문제로 트집 잡는 게 제일 치사한 일이라며 탐탁찮아했다. 조영무가 어쩌다 궁궐의 여인을 끌어다 첩실을 삼은 사건에서 이 호색함과 아량이 잘 드러나는데, 처음에는 조영무를 사정없이 질책하면서 '궁녀라면 과인에게 속한 여인네거늘!' 운운하고 당장 목을 치겠다며 버럭버럭 화를 낸다[56]. 그렇게 조영무를 압박하며 으름장을 놓는데, 조영무가 쩔쩔매면서도 '내놓지는 못하겠습니다' 하고 떠는 모습을 보이자 이내 분위기를 전환하고 '수전증에 걸린 게야, 떨긴 왜 떨어!' 하고 꾸짖으며 같은 사내끼리 이 일은 그냥 넘어가자는 일종의 사후승인을 내려 준다. 조영무의 연기력이 폭발하는 명장면

7. 기타[편집]

극중에서는 압도적인 카리스마와 존재감을 과시했지만, 뒷날 공개된 NG 장면들에 의하면 유동근의 장난기 때문인지 애드립성 조크 장면이 많은 편이었다. 극중의 모습이 워낙 강렬했기에 더더욱 뿜게 만드는 장면들.

그리고 먼 훗날 평행세계에서 아버지로 환생하여, 자신이 된 자신의 셋째아들 환생에게 끔찍한 보복을 당하게 된다. 허나 여기에선 이성계가 야심이 많긴 하지만 한편으로 정도 많고 순박한 인물로 묘사되는데다, 이 쪽 이방원의 마지막 행태가 상당히 패드립적이라 인과응보라기보다는 안쓰러울 정도의 위화감을 자아낸다. 묘하게도 네가 왜 이렇게 됐냐는 연민의 대사는 그 이방원과 자신 양쪽 모두에게 해당되는 말. 더욱이 용의 눈물의 이성계는 마지막에 이르러서 아들과 화해하여 한을 풀고 세상을 떠났지만, 정도전의 이성계는 이제 막 지옥에 들어섰을때 드라마가 끝나버려 시청차들에겐 고통받는 존재로 인식된다는게 더욱 안습할뿐.

[1] 이덕화가 이 배역에 한때 거론되었으나 96년 4·11 총선에서 낙선한 것 외에도 당구영화 <큐>의 흥행실패에 따른 충격 탓인지 고사했고 이덕화가 <용의 눈물> 대신 컴백작으로 선택했던 SBS <이웃집 여자>는 97년 9월 13일 추석특선영화 다이하드 2 편성, 10월 18일 프랑스 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한국 VS 우즈벡> 중계 편성으로 결방되어 같은 해 9월 14일 21~22회, 10월 18일 31~32회가 나갔는데 이들 중 22회-32회는 이덕화가 고사한 <용의 눈물>과 맞붙었으며 이덕화는 KBS 2TV 코미디 세상만사의 한 코너인 '이 밤의 끝을 잡고'에 초대손님(97년 10월 26일)으로 출연했는데 이덕화 등을 물리치고 <용의 눈물>에서 이방원 역으로 나온 유동근은 <코미디 세상만사> '이 밤의 끝을 잡고'에 초대손님(98년 2월 6일)로 나왔었다[2] 작중에 안 나오나 부자가 원래부터 사이가 나쁜 건 아니다. 이방원은 집안 최초로 무인 집안에서 과거시험을 합격한 인물로 이성계도 굉장히 기뻐했다. 그러나 역사와 작중 모두 정몽주를 독단적으로 암살하면서 오랫동안 사이가 나빴다.[3] 세자 자리에 대한 야심만큼은 확실히 있었으나 이런 사태는 바라지 않았다는 것이 작중에 명확히 드러난다. 실제로 이번 일의 결과로 이방원이 얻은 것이라곤 왕실의 혼란과 이성계의 어그로밖에 없다(...). 이때 조영무를 꾸짖으면서 '사내에게는 금기가 있어! 적어도 계집 얘기 따위로 한 사람을 매장시키고 죄를 잡으려 든다는 것은 사내가 해서는 아니 될 짓이야!' 하고 호통을 친다. 어쩌면 후일 조영무가 태종의 궁녀를 건드렸는데도 결국 웃어넘기는 개그 에피소드의 복선이었는지도 모른다(!).[4] 신덕왕후는 이를 두고 겉으로는 걱정하는 척하며 화근이 없어졌다며 좋아하다가, 무사히 돌아온다는 소식을 듣고 안색이 돌변한다.[5] 참고로 이때 이방원의 성공적인 외교 수행과 귀국을 전하는 부인 민씨는 신덕왕후의 반응을 즐기는듯 씩 웃는게 또다른 관전 포인트.[6] 이 과정에서 마찰이 빚어지자 신의왕후 소생의 왕자들의 집사들이 대신 곤장을 맞는 형에 처해지고, 정도전과의 대화로 인해 완전 폭발하여 그냥 들고 일어나려 하다가 하륜의 질책에 가까운 만류로 겨우 참는다.[7] 이 노루가 마취된 채 살아있는 생노루를 팽겨친 것이고 실제 신덕왕후 역을 맡은 김영란 씨가 이걸 모르고 있다가 기겁했다는 일화가 있다. 어쩐지 비명소리가 너무 리얼하다 했어...[8] 모르고 넘어가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전에 정 집사(훗날의 내금위장)가 방원에게, 정도전을 죽일 땐 꼭 자신을 데려가 달라고 청했다. 그리고 결국 거사가 성공하여 정도전을 직접 베어버린 사람은 정 집사가 되었다.[9] 훗날 박포의 말은 사실이 된다.[10] 작중의 모습과 다르게 실제로 정종 이방과는 강직한 무골이자 무인으로서 입지가 있었으니 동생 눈치를 보지는 않았겠지만.[11] 이 때 이숙번의 집에는 하륜이 찾아와서 나랏일을 이야기하며 담소를 나누고 있었는데 방원이 행차하자 버선발로 뛰어나와 맞는 장면이 압권이었다.[12] 실제로 태종 이방원은 정종 둘째형 이방과가 왕위에서 물러난 후 유유자적하며 평온하게 지내는 모습을 부러워했다는 기록이 존재.[13] 조사의는 이방원에게 '넌 사람 죽이는 걸 좋아하니 얼른 나도 죽이라.'고 이죽거렸다. 이는 작중 2차 왕자의 난 때 박포를 죽일 때 박포가 했던 발언에 이은 태종의 무자비한 숙청에 대한 또 하나의 암시가 된다.[14] 이때 이성계가 철퇴로 상을 부수면서 고함을 지르는데 다른 신하들이 피하라고 하자, 부친의 마음을 알고 있었던 듯 "닥쳐!" 라고 일갈하며 가만히 있게 만든다. 그리고 이성계는 그런 이방원을 보며 "하늘의 뜻이로다...." 라고 말하며 고개를 푹 숙이는 장면이 일견.[15] 태조때부터 세종때까지 계속 자리지키는 이 어의는 신덕왕후때는 무슨 병인지도 진단 못해서 '황공하옵니다.' 이성계 때는 '환후가 의술의 한계를 넘어섰습니다.' 성녕대군 진료하며 '원인을 모르겠습니다.' 소헌왕후가 몸져누웠을 때는 '마음의 병을 어떻게 고칩니까.' 하여간 병 고치는 장면이 안 나온다.[16] 종방후에 방송된 특별방송에선 패널로 나온 개그맨 전유성은 이 어의를 용의 눈물 공포의 저승사자라고 불렀다.[17] 이를 들은 원경왕후는 그만큼 자기네 일가에게도 신경 좀 써줬으면 하는 원망을 드러냈고, 양녕대군은 생전 그렇게 권력을 두고 다투다 이제 와서 생색을 내냐고 냉소를 드러냈다.[18] 이 부분이 참 비정한 게 민무구, 무질을 죽인 다음 무휼, 무회를 불러 양녕을 위로하라 한 다음, 양녕에게 친척들끼리 화목하게 지내야 한다며 타이른다. 그리고 얼마 후 무휼, 무회도 목매달아 버린다. 죄라도 있다면 모르겠는데 태종 본인 입으로 "솔까말 민씨 걔들이 뭔 죽을죄를 지었냐? 좀 분수에 넘친 죄 그거 하나뿐이지."라고 말했다.[19] 작중에서야 이방원의 충신이자 의리남으로 나오지만 실제로는 이숙번은 오만방자하여 태종의 심기를 계속 건드렸다. 처음에는 그래도 자기를 위해 공을 세운 사람이고 유능하니 감싸주던 태종도 이숙번이 아예 대놓고 태종을 무시하며 불러도 안 나오는 태업을 일삼자 귀양보냈다. 일각에서는 아직 한참 왕성히 활동할 수 있는 연령대였기에 태종 이후 왕에게 걸림돌이 될 소지가 역력하여 싹을 잘랐다는 의견도 있지만 이숙번이 자초한 것은 분명하다. 어쨌든 이숙번을 쫓아낸 태종은 훗날 임종 때 세종대왕에게 자신이 눈을 감아도 절대 이숙번을 복직시키지 말아달라고 당부했다. 그리고 훗날 세종대왕은 이숙번을 유배에서 해금하여 고향인 안산에 거처하게 했지만 절대 그를 조정에 불러들이지는 않았다.[20] 태종이 왕인 처음에 세종에게 존댓말을 하다가 버럭 역정을 내며 반말을 섞어가며 화를 낸다. 대신 목소리에 점점 힘이 들어간다 (...) 여기에서 확인할 수 있다. 태종의 일갈은 2분 15초부터 시작. 이전 버전에서는 시종일관 가벼운 존댓말로 일관한다고 되어 있는데, 자세히 들어보면 "울음을 그치지 못할"라고 반말이 튀어나온다. 어찌됐건 이 장면의 포인트는 왕조차 꾸중듣는 어린애처럼 보이게 하는 태종의 카리스마.[21] 소헌왕후의 친정을 숙청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원경왕후가 소용이 없을 걸 알면서도 태종을 찾아와 "우리 가문을 박살냈으면서 이번엔 며느리 가문까지 박살내십니까?"라고 따졌다.(하지만 예전에 비하면 기개가 약해져서 애처로운 하소연이나 마찬가지다.) 이때 태종은 대꾸없이 조용히 처형장을 보러 갔는데, 원경왕후의 말을 듣기 전부터 무자비한 숙청으로 여럿의 목숨을 끝내버린 것에 진저리를 느낀 걸로 보인다.[22] 당시 주상인 세종도 포함되어 있다.[23] 이때 정 집사가 큰일 난다면서 만류했으나 이방원 자신이 "나도 사람다운 일을 해야지... 사람다운 일을...." 이라며 고집을 꺾지 않아 결국 그의 뜻에 따르게 된다.[24] 이 말 이후로 이방원 자신이 저지른 모든 악업들이 회상으로 나타난다. 정몽주를 죽일 때부터 사돈인 심온을 죽일때까지.[25] 단적으로 2017년 대선 정국 당시 사람들이 평하길 앞으로 대통령이 되어야 할 인물은 세종이 아니라 인간적인 면모를 지니면서도 단호한 숙청을 보여준 태종이 되어야 한다는 시각이 있었다.[26] 이 드라마에서 국문은 정말 답정너로써 국문을 받는 사람들의 입장으로보면 정말 억울하기 짝이 없는게 한 두번이 아니다. 특히 심온을 때려잡을때는 본인 스스로가 인정할 정도로 억지로 사람을 때려잡는다는 것을 인정할 정도다.[27] 조선건국에 저항한 이숭인, 이종학 등을 장살한 일을 사서 편찬하는 타이밍에 갑자기 거론해서 조정을 뒤집어 놓고 대간들이 사초쓰는 이들을 국문하겠다며 날뛰니 '뭐, 꼭 그런 뜻은 아닌데'하고 슬쩍 빠지고 그러면서 왕실위신 헤치지 않게 써야한다고 주장하는 도승지를 '식견높고 정치 잘 안다'며 칭찬한다. 이후 편찬작업을 하던 하륜을 불러다가 '내가 못믿어서 그런건 아닌데 그거 그렇게 쓸거요? 역사 쓰려면 헤아려야 할 게 많으니 알아서 다 고려하시오'하고 대놓고 곡필을 지시한다. 물러난 하륜은 그 무서운거 없는 이방원도 역사는 무서워 한다는걸 깨닫는다.[28] 예를 들면 1차 왕자의 난 때 이방원이 "내가 원래 방석이 방번이를 죽일 생각까지는 없었는데 이거이 부자가 나한테 제대로 상의도 하지 않고 나서서 쳐 죽인거임" 이라고 했다는 실록 기록을 소개한 뒤 바로 이어서 이런 실록 기록을 믿을 수 없다고 까 버렸다.[29] 다만, 부족하지만 약간은 나오기는 한다. 대표적으로 세자에게 방해가 될까봐 자신의 처남들을 모두 죽여버리고 양녕대군이 밖으로 나돌아다닐 떄 막지 못한 궁궐의 관리, 병사들의 목을 베라는 명령까지 내리는데 정작 양녕대군과 같이 놀았던 '잡놈'들을 죽이지는 않고 모두 놓아주었다는 것.[30] 후일 방영된 대왕세종에서는 태종의 이러한 면모를 잘 보여주었다.[31] 이때 무인정사 때 싸운 동지들을 이렇게 홀대하시는건 사나이의 의리가 아니라고 조영무가 항변하지만 "이놈아, 이것은 정치야!!! 그 자리에서 내가 넘어갔다면 왕권이 실추되고 권위가 흔들리게 된단 말이다! 뭘 알고 떠들어!!!"라고 단호하게 거절한다.[32] 여담으로 이 밥상 뒤집기는 유동근의 전매특허(...)로써 정도전에서도 뭔가 분노한 일이 있을때 수시로 이성계가 밥상 뒤집기를 시전한다.[33] 이때 실제상황인진 알 수 없으나 코에 책이 직격하여 양녕의 코에서 피가 줄줄 나왔다.[34] 역시 정도전에서도 이방원본인에게 책을 던지는데 이때도 이방원이 맞고 피를 흘린다.[35] 동시에 자신의 왕위에 대한 정통성에 대하여 태클을 걸며 감놔라 대추놔라하는 명에 대한 분노이기도 했다. 참고로 태종은 사신이 자신의 집으로 찾아와서 현재 명과 척을 지려는 정도전을 제거하면 그의 왕위 등극에 도움을 주겠다고 했지만 이때 태종은 '이것은 우리 조선 내부의 일이고 타국이 개입할 문제가 아니다'라고 하면서 그 도움을 단칼에 거절한다. 훗날 이런 문제가 불거 질걸 생각하면 태종이 매우 잘 판단한 것.[36] 이는 이후 하륜이 조선을 대표로 명에 방문하여 영락제와의 담판을 지으며 수습된다. 동시에 여진족의 조사의의 난 개입문제도 동시에 해결하여 귀국하게 된다.[37] 훗날의 세종[38] 사실 그때 버럭했던건 조영무 때문이라기 보단 권세를 쥔 중신들을 전체적으로 기어오르는거 같자 군사훈련 겸해서 다시 한번 제대로 눌러버리기 위해 마련한 자리였기 때문이다. 이때의 메인타겟은 조영무가 아니라 사서 태조실록을 편찬하고 있던 하륜이었다.[39] 딱 한번은 형인 정종과 있을 때 예의를 잊은 적이 있었는데 왕의 집무실인 대전에 아버지 태조가 걸어 놨던 신덕왕후의 초상화가 그대로 걸려있는걸 보자 대뜸 일어나 잡아채서는 내동댕이 쳐버린 것 정도가 있다. 참고로 이때 동생의 신덕왕후에 대한 반감과 원한을 잘알던 정종은 뭐라 말도 못하고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40] 특히 자신의 측근인 이숙번과 하륜의 경우 이때 왕위 계승에 대한 말을 하려고 하자 "듣기 싫어!!!!!!!!!!!"라고 쩌렁쩌렁하게 일갈하여 말을 잘라버리기도 했다.[41] 그래도 훗날 자신이 내명부 최상위인 중궁전을 차지 했을때는 다시 부드럽게 대한다. 뒷날 자신의 처가가 풍비박살난 이후엔 정안왕후에게 함부로 대했던걸 후회하기도 한다.[42] 어린시절 독사에 물린 방원을 업고 10리길을 달려서 목숨을 구해줬다는 설정이 붙어있다. 여기에 신덕왕후와 비슷한 연배인 첫째, 둘째 형보다 훨씬 가까운 바로 윗형에 정도전에게 맞설때 형제들 중 가장 적극적으로 도와줘서 방간이 권력욕을 내비치기전엔 제일 친한 형이었다.[43] 2차 왕자의 난을 진압하러 나설때 형님에게 상처 하나라도 입히면 군율로 다스리겠다며 살릴 뜻을 분명히 한다. 이 말 자체는 실록에 기록된 말이지만 방원이 사전에 난의 전모를 파악하고 압도적으로 유리한 입장이라 출병전의 눈물쇼와 합쳐 왕실의 위신을 해치지 않으려는 연극으로 볼 수도 있는 실제 역사와 달리 초반에는 방원이 크게 불리한 상황에 놓인걸로 각색했기에 의심의 여지가 없는 진심이다.[44] 실제 익안군 이방의는 권력 욕심을 전혀 내지 않았으며 2차 왕자의 난이 터졌을때 방원에게 자신의 모든것을 내놓다시피 했다. 권력욕도 없고 형제만의 우애만 생각하는 익안군을 태종이 존경하지 않을 이유가 하나도 없다.[45] 평소 그의 이미지를 생각하면 다소 코믹할 정도이다.[46] 사실 이 명령을 내리기전에 어명을 도승지에게 내릴때도 목소리가 떨리고 눈에는 눈물이 떨어지기 일보직전이였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최대한 끝까지 왕의 모습을 보였고 결국 도승지가 집무실에서 나가고 나서야 참았던 눈물을 쏟고 말았다.[47] 역시 자식들 사랑하기는 마찬가지인 원경왕후의 경우에는 너무 빨리 출궁시키는거 아니냐며 서운해 보이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48] 정말 저 사람이 한때 매형으로 생각했던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잔인하고 답정너다. 이 드라마에 나오는 국민이 안 그런게 어디있겠냐만 정말 이 두 형제는 주리형, 압슬형, 인두형 등 당시에 가옥했던 형벌은 다 받는다. 사실 드라마를 봐도 민무구, 민무질은 어느정도 권력을 얻고 나서 오만방자한 면이 없지 않아 있었지만그렇다고 죽이는건 아무리 봐도 심했지만 민무휼, 민무회 형제는 형들이 당한것도 있어서 조용히 살다가 정말 작은 실수 하나 한 것이었다. 괜히 중전이 난리를 친게 아니다.[49] 다만 이방원도 작중 처음부터 외척을 숙청하려는 의도는 없었다. 민무질이 술자리에서 "권력이라는 건 부귀영화를 누리는 거니 남자라면 당연히 가져야하는 거 아닙니까."라는 발언을 눈치없게 하여 사병 혁파 과정에서 공신들을 귀양 보내서 괴로워하는 이방원을 눈치없이 자극하여 이방원이 "권력은 자식, 친족, 형제, 처가도 없는 것."이라 일갈하며 민무질에게 잘 처신해서 괜히 화를 자초하지 말라고 경고를 암시했으나 알아듣지 못했으며, 원경왕후와 민무구도 이런 뜻을 알아듣지 못하고 "왜 괜히 심기를 건드렸냐." 면박만 줬지 권력을 얻기 전과 다를 바 없이 행동하여 결국 사망플래그를 제대로 터트렸다.[50] 사실 이나마도 실제 태종의 행적과 비교하면 많이 줄인 편이다. 작중 내레이션을 통해 여자가 너무 많아 일일이 등장시킬 수 없었다고 대놓고 언급한다.[51] 선빈 안씨가 세자 자리에 욕심내다 총애를 잃어버리는 것과 달리 이쪽은 욕심 없이 태종의 사랑만 갈구한 덕에 (첩실 생각할 틈도 없이 바쁘던 세자 시절을 제외하면) 꾸준히 사랑받는다.[52] 이 과정에서 원경왕후는 덕실에게서 난 자식(뒷날의 경녕군 이비)을 죽이려 하다 이방원의 노여움을 사고, 이것이 뒷날 그녀의 남은 두 동생마저 죽게 하는 구실 중 일부가 되고야 만다.[53] 그런데 효빈 김씨는 자신과 원경왕후의 위치를 떠나서 원경왕후에게 깍듯이 예를 갖추고 저자세로 일관했다. 원경왕후도 이 때문인지 다른 후궁들과는 달리 그녀에 대해서는 날을 세우지는 않았고 좋은 관계를 유지했다.[54] 함흥차사로 태종이 한참 심란해졌을 때도 마누라 등쌀에 내전에서 나와 지내고 있었다.[55] 잠저시절부터 왕실은 씨가 넉넉해야 한다는 말을 수시로 한다.[56] 당시 궁궐에 속한 나인과 상궁은 왕의 여인으로 분류, 간통시에는 기본이 참수형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