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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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external/www.seoul.go.kr/iseoulu.g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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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제15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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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대 이명박

3대 김진선

파일:이명박.png
대통령 기록관 사진

파일:external/rfid.g2b.go.kr/24671.jpg
공식 초상화

대한민국의 제17대 대통령

이름

이명박 (李明博, Lee Myung-bak)[1]

출생일

1941년 12월 19일 (76세)

출생지

일본 오사카부 오사카시 히라노구[2]

거주지

서울특별시 강남구 논현동[3]

현재지

서울특별시 송파구 문정동 서울동부구치소[4]

재임기간

2008년 2월 25일 ~ 2013년 2월 24일

서명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Lee_myungbak_signature.png

링크

재단 홈페이지

파일:페이스북 아이콘.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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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씨

경주 이씨 국당공파 39세손[5]

부모

아버지 이충우, 어머니 채태원

형제자매

3남 2녀 중 3남[6]

배우자

김윤옥

자녀

이주연, 이승연, 이수연, 이시형

학력

고려대학교 경영학과 학사

병역

면제

종교

개신교 (예장통합)

신체

173cm, 70kg, B형

십이지

뱀띠 (신사년)

청계 (淸溪)[7]

약칭

MB, 716

1. 개요2. 약력3. 일생4. 평가5. 여담
5.1. 전과 14범설5.2. 먹방 광고 대통령5.3. 수트핏의 대가
6. 어록7. 저서8. 가족 관계9. 각종 타이틀10. 선거 이력11.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제17대 대통령.

대한민국정치인, 기업인이다. 현재는 구속된 피의자.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나 경상북도 포항시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직장인으로 사회 일선에 뛰어들었으며, 30세에 현대건설 이사, 37세에 현대건설 사장, 48세에 현대건설 회장까지 승진하였다. 나중에 국회의원, 서울시장, 대통령까지 거쳤다. 스펙터클한 인생 역경 때문에 한때는 샐러리맨의 신화로 추앙받았다.[8]

호는 청계. 본래 어렸을 때 아호는 '일송'이었지만, 서울시장 재직 중 청계천 복원 사업이 막바지에 접어들자 대학 동문이던 역사학자 김정배[9]의 권유로 지었다고 한다. 이름 영문자 이니셜을 딴 약칭인 'MB'로도 불리기도 한다. 취임식 당일 본인이 언급하면서 유명해지기 시작했으며, YSDJ처럼 나름 자주 쓰이고 있다.[10]

2. 약력[편집]

3. 일생[편집]

4. 평가[편집]

5. 여담[편집]

  • 여러 가지 휘호들을 남겼다. 명필이라고까지 하긴 어렵지만 상당히 정갈한 서체이다.
    파일:external/ojsfile.ohmynews.com/IE001385089_STD.jpg
    파일:external/www.inews365.com/pp_183968_1_1308121874.jpg
    파일:external/ppss.kr/%EC%9D%B4%EB%AA%85%EB%B0%958.jpg

  • 1979년 6월 10일에 한양대학교에서 열린 제1회 새마음제전에서 당시 현대건설 사장이었던 이명박 옆에 당시 박근혜 영애와 최순실이 앉았다. 당시 이명박은 구국여성봉사단(새마음봉사단) 운영위원이였고, 박근혜는 봉사단 총재, 최순실은 전국새마음대학생총연합회장이었다.
    파일:503_2MB.jpg

  • 최초의 기업 CEO 출신 대통령이다.

  • 유년 시절 장래희망은 선생님과 소방관이었으며, 좋아하는 정치인으로는 간디와 안창호를 꼽았으며, 좋아하는 음식으로 김치찌개스파게티를 꼽았다. 주량은 맥주 2컵이고, 담배는 피우지 않는다고 한다.

  • 생일결혼기념일, 그리고 대통령 당선일이 모두 12월 19일로 같다. 때문에 이날을 “트리플 크라운 데이”라고 부르면서 매년 전날인 12월 18일친이계 출신 전현직 의원들이 모여 송년회를 겸한 생일잔치를 한다. 이외에도 청와대 비서관급과 수석비서관급, 장관급 인사들도 날짜를 달리해 각각 이명박과 회동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명박 측은 "매년 벌여온 자축연이고 참석자가 많아, 이명박과 안부 나누는 정도일 뿐"이라며 세력화 등의 정치적 해석을 경계한다고 밝혔다.[25] 19일 당일에는 가족들과 함께 보낸다고 한다. 그런데 하필 박근혜 전 대통령의 수인번호 503과 이명박 전 대통령의 수인번호 716을 더하면 1219가 되는 탓에 드립이 흥하고 있다. 항목 참조.

  • 서울특별시 시장 재직 시절 스타크래프트를 한 적도 있었다고 한다. 2003년 WCG 폐막식에서 우승자 이용범과 이벤트 경기를 벌이는 사진. 종족은 저그로서 경기를 위해 5개월 전부터 연습했다는 후문이 있지만, 시작 5분 만에 4드론으로 패배했다. 거기다 상대방의 정찰기(오버로드)를 잡는 위엄을 보였다고 한다.

  • 카우치 사건으로 인디 밴드에 대한 질타가 높아지자, 당시 서울 시장이었던 이명박은 홍대 퇴폐공연 블랙리스트를 만들겠다는 으름장을 보이기도 했으며, 이후에는 한때 홍대의 클럽들을 싹 다 뒤엎으려고 하기도 했다. 하지만 인디 밴드의 반발로 무산되고, 친분이 있었던 유인촌의 설득을 듣고, 오! 부라더스 공연을 관람하여 인디 밴드와 화해하고, 홍대거리에 대한 생각 또한 긍정적으로 바꿨다고 한다. 여기서 설명했다시피 대통령 이전 이명박의 별명은 불도저였다.(...)
    파일:external/file.cbs.co.kr/j_050915_07.jpg

  • 취임 후 첫 철도 착공식인 원주강릉선 착공식에 병풍으로 KTX-산천 열차를 사용하였는데, 하필 착공식이 강릉역에서 열린 나머지 KTX가 영동선 스위치백을 넘는 장면이 목격되었으며, 400억짜리 병풍이라는 논란이 일었지만 철덕들에게는 큰 구경거리가 되었다.

  • 대통령으로서는 본의 아니게 매우 희한한 이력이 생기고 말았다. 정작 본인은 아무렇지도 않게 그냥 평범하게 대통령을 했으나 자기 로 탄핵소추를 당한 유일한 대통령이 되었다. 결과 또한 전자의 경우 부활했으나, 후자의 경우 이미 처참한 결말을 맞은 정반대다. 그러나 의외의 사실이지만 이명박도 재임 시절, 야당에서 탄핵소추를 하려고 시도했던 적이 있다.#

  • 나이에 비하면 상당히 동안이다. 현재 76세이며, 임기 중에도 만 65세가 넘어간 할아버지였다. 당장 다음 대통령인 박근혜 대통령과의 나이차도 10살 이상이고 이전 대통령인 노무현 전 대통령보다도 나이가 많다. 운동을 하는 모습이 자주 보이는 걸 보면 자기관리를 꽤 열심히 하는 듯하다.

  • 유행어로는 '나도 해봐서 아는데~'가 있다. 사용 예로는 '나도 호떡 장사 해봐서 아는데~'.'내가 건물 만들어봐서 아는데~''내가 배도 만들어 봐서 아는데~' 식의 발언들이 있는데,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할 수 있다. 농담식으로 넘기면 될 듯. 그리고 여러 가지 장사를 해본 것은 사실이다. 대표적으로는 여고 앞에서 한 뻥튀기장사.가난했던 유년시절 다만 '찢어지게 가난했던 유년시절'이 대통령이 되기 위해 거짓말한 것이라는 의혹이 있어 다소 찜찜한 상태.

  • 민주화 이후 최초로 임기 종료시까지 소속된 당에서 탈당하지 않고 당적을 유지한 대통령이다.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 모두 임기 말에 지지율이 떨어지면 소속된 당의 압력을 버티지 못하고 탈당했는데 처음으로 새누리당 당적을 지킨 채 임기를 마무리한 것이다. 현재도 새누리당 평당원으로 지내는 중이었으나 대통령 퇴임 이후 당 회비를 계속 안 내고 있다가 탈퇴했다. 대통령 임기 막판에는 인기가 시들해지고 지지율이 떨어지면서 당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신세가 되어버려 당 차원에서는 애물단지(?)가 되어버리기 십상이다. 결국 당으로부터 압력이 들어와 쫓겨나거나 탈당해버리는 관습이 존재한다. 일례로 전두환은 노태우에게, 노태우는 김영삼에게 토사구팽 당했고, 김영삼부터 노무현까지 전부 탈당하여 무소속으로 여생을 보냈다. 이명박이 당적을 유지한 배경으로는 퇴임 지지율이 높았던 점도 한몫했지만 그게 결정적일 정도의 수치는 아니었고(탈당했던 김대중과도 큰 차이는 없었다), 역대 대통령이 대선까지 어느 정도 영향력을 발휘했던 점과는 달리 친이-친박을 필두로 척을 지는 이미지가 강해서 박근혜와 크게 엮이지 않은 점이 큰 요소였다.

  • 논필가 지만원에게 뒷조사 시도를 당하기도 했다고 한다. 의외로 사이가 안 좋은 듯. 그의 주장으로는 이명박의 부친은 (이명박 본인의) 자서전에 언급한 대로 양반 태생이 아니며, 친일 행각을 한 노비이며, 부친의 원래 이름은 떡쇠이며(32세였던 쇼와 14년에 이충우로 개명함.) 이명박은 그의 일본인 사이에서 낳은 서자라고 했다. 다만, 지만원 평소 행적의 특성상 지만원의 말이 사실일 확률은 거의 없다. 애초에 지만원은 이명박을 공격하기 위해 저런 말을 한 것 같지만, 부친의 친일 행각이라면 문제가 될 지언정 신분제가 폐지된 현대 민주주의 국가인 대한민국에서 아버지가 노비면 어떻고 본인이 서자면 뭐 어떻단 말인가?

  • 조지 워커 부시 미국 대통령과 좋은 관계다. 퇴임 후에도 사적으로 만난 적도 있었고 그가 소장하고 있는 그림 중에 이명박 초상화도 있다.

  • 청담동 가로수길 꼬르소 꼬모에서 아내 김윤옥 여사와 브런치를 즐긴다든지 원래 취미였던 테니스장이나 여러 공연장에서 목격되는 등, 꽤 여유로운 노후생활을 즐기고 있는 것 같다.

  • 천안함 피격사건, 연평도 포격 사태 당시 순국한 군인들의 묘역에 매해마다 빠짐없이 참배하는 중이라고 전해진다. 다만 비판하는 측에서는 '참배는 돈이 안 들기 때문'이라고 비아냥거리기도 한다.

  • 대선 후보 당시 조선일보에서 진행한 문답 인터뷰에서 좋아하는 아이돌 스타로 원더걸스를 꼽았다. 물론 이 당시는 아이돌 그룹 자체의 수도 적었고 원더걸스가 천하통일을 했던 때였기 때문에 비슷한 질문을 받은 정치인들 대부분은 원더걸스를 뽑았다.[29]

  • 노홍철이 아는 형님 중 가장 높은 사람이다. 무한도전에서 "게스트로 초청하겠다"고 전화를 걸었지만 멤버들의 만류로 무산되었고 역시 돌+I 노홍철 본인에 의하면, 정치적 목적은 없고 실제로 친분이 있다 카더라.[30]

  • 서울특별시장 시절 탈모가 심해져, 모발이식 수술을 받았다. 실제로 서울특별시장 시절 재직 중 보면 거의 대머리 수준으로 탈모가 진행됐음[31]을 볼 수 있다. 또한 대통령 중 탈모로 인해 모발이식 수술을 받은 최초의 대통령이자, 미용 목적으로 수술을 받은 두 번째(?) 대통령이다. 첫 번째는 눈꺼풀처짐 수술을 받은 노무현이 있지만 사실 이쪽은 안검하수 수술이기 때문에 미용 목적이라고 하기는 뭣하다.

  • 박근혜가 대통령으로서의 직무수행을 못한다고 비난도 했었다. #.

  • 사적으로는 형인 이상은, 이상득이재오[32]와 사적으로 매우 친한 관계다. 배우 유인촌과도 상당한친분을 가지고 있어, 취임하자마자 유인촌을문화체육부 장관으로 임명했다.[33][34] 정운찬의 경우 예전에도 친분이 있었으나 능력을 높이 사서 한 때 국무총리로 임명하면서 더 친해지게 됐고 지금도 그 친분을 이어 가고 있다. 현재도 최측근들과 더불어 유인촌, 정운찬을 자주 만나는 편.
    파일:Lee Myung-bak and Yoo In-chon.jpg

  • 이명박 대통령 본인의 아들 이시형보다, 형 이상득의 아들(조카)이 이명박과 외모가 유사하며, 어째 아버지 이상득보다 숙부 이명박을 닮은 편이다. 실제로 비교해보면 많이 닮았다. 장녀 이주연은 이명박을 빼닮았다.

  • 현재 바른미래당 소속인 손학규하고도 상당히 친했다. 6.3 항쟁 때 이재오, 손학규랑 서로 친하게 된 사이였던 데다가 한나라당 시절 서울시장때는 이명박, 이재오, 손학규 셋이 같이 만나 6.3항쟁 동지회라든지 모임을 상당히 많이 가졌었다고.[35] 이들은 노무현 정부시절 같은 한나라당 소속일 때는 박근혜까지 포함해 소위 한나라당의 Big4로 언급되기도 했다. 이명박, 이재오, 손학규, 박근혜 중 네 명 모두 각 당의 대통령 후보 경선에 참여했던적이 있었고, 세 명이나 대통령 후보로 출마했으며, 그 중 두 명이나 대통령이 되었으니 이름에 걸맞기는 했다.
    파일:LMB-LJO-SHG.jpg

  • 국회의장정세균 의원의 경우 친노이지만 이명박, 이상득 형제처럼 대기업에서 종사했던 경험이 있는 데다, 이명박과 같은 고려대 출신인 공통분모가 있어 어느 정도 인맥관계로 얽혀있다.[36]

  • 제17대 대통령 당선 직후, 바로 심상정을 직접 찾아 가서 만나서 인사하기도 했다. [37][38] 여담으로 이명박이랑 노회찬은 같은 고려대학교 출신이라고.(...)[39] 그리고 노회찬, 심상정이 진보신당을 창당하던 때에 이명박은 대통령이었는데, 진보신당 창당 때랑 진보신당 창당 2년차 모두 이명박이 직접 축하 화환을 보냈다. 창당 2년차에도 축하 화환을 보낸 점을 봤을 때 이명박과 노회찬, 심상정이 과거에는 상당한 친분이 있었음을 추측할 수 있다. 다만, 이명박 정부 시절부터는 관계가 예전보다는 다소 멀어졌다.[40] 그래서 그런지 심상정과 노회찬은 이명박이 구속된지 얼마 안 돼 착잡한 마음도 들었다는 짧은 소회를 페이스북에 올리기도했다.[41]
    파일:2MB-SSJ.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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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재명 성남시장과 같은 경주 이씨이며, 파도 같은 국당공파이지만, 이재명 본인이 이명박 대통령을 매우 싫어한다.

  • 노무현과 더불어 상당한 자덕이다. 친한 이재오도 같은 취미를 갖고 있어, 종종 같이 타고 다니기도 한다고 한다.

  • 자기가 퇴임하기 전 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차기 대선주자로 염두에 두고 있던 인물이 매우 친한 사이인 이재오정운찬이었고, 이재오랑은 알다시피 매우 친해서 이재오가 출마선언을 했을 때 이재오를 지지한다는 의사를 표현하기도 했다.[42]

  • 현재는 상상하기 힘들지만, 과거에는 박원순 서울시장과도 상당히 친분이 있었다. 그러나 이명박이 대통령 취임한 직후, 박원순은 이명박을 맹비난하면서 사이가 멀어지게 된다.
    파일:2MB-PWS2.png

  • 퇴임 이후 기존에 살던 논현동이 아닌 내곡동으로 집을 옮기려했으나, 아들 이시형이 내곡동 사저 매입 의혹과 관련해 불구속 기소를 당하는 바람에, 논현동에만 계속 거주 하였다.

  • 어찌된 일인지 이명박은 자신이 대통령이 되기도 이전이었던 2007년, 박근혜가 대통령이 될 시에 최태민 일가의 국정농단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발언을 하였고, 뜻밖에도 이는 현실이 되었다. 다만 박근혜의 무능과 최씨 일가와의 관계는 당시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던 사실이었다. 단지 이들이 자기보신 등 여러 가지 어른의 사정 탓에 침묵을 택했거나 혹은 이 기사처럼 쓴소리나 폭로를 해도 묻히던 시절이었다. 어쨌든 2007년 경선 과정에서 벌어진 양측의 네거티브 공방은 훗날 서로를 목 죄게 된 올가미가 되었다고 보기도 하나,[43] 이명박前 대통령의 경우, 대통령 당선 이전에도 박영선정봉주가 BBK, 다스 관련 의혹을 박근혜 캠프를 능가할 정도로 매우 끈질기게 제기했던 만큼, 박근혜가 이런 의혹을 전혀 제기하지 못했어도 대선 과정에서 박영선, 정봉주 등의 민주당계 인물들에 의해 의혹으로 공격당했을 가능성이 여전히 매우 높다.

  • KBS 2TV ‘추적60분’에서는 검찰과 권력 2부작 2편에서 ‘검사와 대통령의 아들’편이 방송 됐는데, 2014년 검찰이 마약 투약과 관련해 김무성 의원 예비 사위의 자택을 압수수색 했지만 용의선상에 있던 사람들을 조사하지 않았다는 진술이 나왔다. 방송 내용을 요약하면 강남 클럽에선 대부분 마약을 하는데, 이시형이 이 강남클럽을 자주 갔다고 한다. 검찰도 김무성 의원 예비사위의 집에서 모두 9개의 주사기를 발견했다. 중앙지검 강력부에서 마약 수사 중 이명박 전 대통령 아들의 이름이 나왔지만 수사에 들어가진 못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 상도동계 직계 인물들과는 대부분 친한 편이나, 강삼재, 서청원 및 한나라당 시절 민주당계 정당으로 이적한 상도동계 직계 일부하고는 현재로써는 친분이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강삼재는 이명박이 정계 입문했을 당시부터 이명박이랑 별로 사이가좋지 않아, 이명박이 17대 대선에 출마했을 때도 대부분 이명박 지지선언을 한 상도동계 중진과는 달리 이회창을 지지했다. 서청원과는 한때친분이 있었으나,[44] 2007년 서청원이 친박계가 된 직후에는 견원지간으로 변했다.[45] 이는 이재오도 마찬가지. 또한 김영춘과 박재호는 이미 2000년대 초반에 한나라당이 민주공화당처럼 변해간다면서 한나라당을 탈당하고 열린우리당으로 이적했으니 이명박과 친분이 있을 리가 만무하다시피 하다.그 대가로 서청원은 친이계에게 찍혀서 한나라당 18대 국회의원 경선에서 탈락하게 된다

  • 박근혜와 친박을 제외한 이명박 前 대통령에게 적대적인 인물들(민주당계, 진보계)에게는 딱히 직접적으로는 크게 언급을 한 바는 거의 없으나, BBK와 다스 관련 의혹을 모조리 파헤치며 공격한 정봉주는 아주 싫어하는 것으로 보인다.[46][47][48] 정봉주는 이명박에게 직접적으로 고발당해 걸려들어가면서 감옥에 가면서도 "오늘은 진실이 구속되지만, 내일은 거짓이 구속될 것이다!"라는 말을 남기면서 감옥에 갔다 와서도 이명박의 대부분의 의혹을 파헤쳤는데, 그 결과 그 말대로 이명박을 구속시키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하게 된다.[49]

  • 이명박이 궁지에 몰린 직후 오랫동안 이명박의 거의 모든 의혹을 조사하던 정봉주가 "지금은 진실이 구속되지만 다음에는 거짓이 구속될 것이다! 잘 들었나, MB?"라고 페이스북에 게시물을 올렸는데, 곽한구가 정봉주의 그 게시물에 좋아요를 눌러서 화제가 됐다.#[50] 곽한구가 이명박을 싫어하는 듯하다.

  • 진중권에게 "궁예의 말년을 보는 것 같다"는 비난을 당하기도 했다(...) #

  •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이승만 전 대통령을 꼽았다.

  • 사격 자세와 관련하여 논란이 인 바 있다. 엄밀히 말하자면 미필인데 엉망인 사격자세를 보여주어서 욕을 먹은 것. 완벽한 조준과 견착을 보여준 문재인 대통령과 상당히 비교되는 상황. 다만, 서울특별시장 시절에도 경계 근무를 서면서 사격 자세를 잡았는데, 그때는 군 면제자 같지 않은 정상적인 자세를 취했다.#
    파일:미필 이명박 사격술.png

  • 가훈이 '정직'이라고 한다. 대통령 재임시절 청와대 홈페이지에도 기재됐던 내용이다. 하지만 그동안의 범죄 수사 및 구속과 대비되면서 비아냥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 이명박의 전 측근인 정두언 전 의원은 2018년 2월 28일 tbs와의 인터뷰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은 일종의 선민의식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출처 정두언 의원의 인터뷰에 따르면 이명박은 하늘로부터 항상 보호를 받는다는 선민의식이 있었고, 때문인지 사석에서는 '이제껏 나(이명박)를 건드리고서 잘된 인간 한 명도 못 봤고 내가 하면 일이 모두 잘 풀린다.' 는 말을 자주 하곤 했다고 정 의원은 주장했다. 이것을 고려하면 이명박 전 대통령이 주변인을 극도로 계산적으로 대하는 성향이나 그의 비인간적인 행동들, 그리고 의외의 허술함 등이 설명된다. 다만, 예외적으로 자기 일가족이나, 이재오, 최시중, 자신을 지지했던 김영삼 前 대통령과 상도동계 인물들, 천신일, 김백준 등의 최측근들에게는 인간적인 모습을 보였다.손학규에 대해서도 자신과 같이 하지 않은 것에 대해 상당한 아쉬움을 드러냈다.

5.1. 전과 14범설[편집]

인터넷상에서는 이명박 전과 14범설이 퍼져 있다. 이는 2007년 중순 박근혜와 이명박이 대통령 경선을 놓고 신경전을 벌이던 당시 박근혜 측 한 의원의 입에서 처음 나온 발언으로 추정된다. 이후 다른 반이명박 진영에서도 이를 적극 받아들여 널리 퍼트리는 데 일조했다. 하지만 위의 링크는 법에 대해 잘못 이해하고 있는데, 구속, 입건, 기소와 전과는 별개이며, 이 자료만으로는 전과 14범인지 알 수 없다. 기소전과 문서 참조. 확실한 전과에 대해 말하자면, 6.3 항쟁 당시 유죄를 선고받고 투옥되었으며, 1996년 선거법 위반으로 벌금형을 받은 바 있으나 이는 사면받았다. 그 밖에 CEO시절 크고 작은 벌금형을 받았다는 얘기(#)가 있으나 본인이 공개하지 않는 이상 정확한 사실 확인은 어렵다.[51] 첫 발언 이후 14범설을 공개적으로 제기한 사람은 당시 박근혜 캠프 대변인으로 있던 이혜훈으로 알려졌다.

도시전설급으로 취급되었던 소문이, 2018년 3월, 공식적으로 형사처분 받은 전과는 총 11회인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이 제출한 영장 청구서의 범죄 전력 칸에는 "지난 1996년 10월 같은 법원에서 선거법 위반과 범인도피죄로 400만원 벌금형을 받은 것을 비롯해 총 11회 형사처벌을 받았다"라고 적시되었다. 다만, 재판에서 형사처분 받은 횟수만 11회라는 것이지, 유죄를 받은 혐의는 최소 11개이거나 그보다 더 많을 가능성도 있다.

게다가, 서대문형무소에서 6개월을 복역한 것 외에도 현대건설 상무로 재직하던 1972년, 서울 용산동 매머드빌딩 부지에 중기공장차고 7동을 무허가로 건축해 건축법 위반 혐의로 공개 수배됐다 구속되기도 해서 구치소 경험이 없던 것은 아니다.

어찌되었든 이명박이 대선 홍보물에 기재한 "전과경력 없음"은 거짓이었던 것으로 10여년만에 밝혀졌다. 당시에도 이미 공개되었던 학생시위 관련 전과 조차도 없음으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제출해서 논란이었다. 당시 한나라당은 실무상 착오라며 "전과 1건"으로 수정한 바 있다.

5.2. 먹방 광고 대통령[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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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은 배고픕니다

대통령 재직 시절 냉면은 물론이고 보신탕까지 즐겨먹을 정도로 딱히 가리는 음식이 없었으며 만두, 풀빵, 등 군것질거리나 젊은 입맛인 피자스파게티도 좋아했다고 한다. 특히 대선 광고 때 보여준 국밥 먹방은 보는 사람마저 입에 침이 고일 정도이고, 어묵 먹는 사진이나 가래떡 먹는 사진이 있다. 정치인들이 원래 보여주기식 서민 코스프레 쇼를 잘하게 마련인 것을 감안하더라도[52]비교적 먹방을 잘하는 정치인인이었다. 심지어 모든 현역들과 예비역들이 악평하는 군대 짬밥도 맛나게 잡수신다.

대선 후보 당시 <김승현, 정은아의 좋은 아침>에서 MC 김승현이 이명박 후보의 집을 찾아가서 아침밥을 대접 받았는데[53] 찌개 사이즈의 돌솥에 쌀밥을 짓고 날계란을 넣어서 먹는 모습을 보여주었다.[54] 뜨거운 쌀밥에 계란과 간장을 넣고 비빈 간장 비빔밥은 기운이 없을 때마다 별식으로 부탁해서 먹을 정도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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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런 그도 후쿠시마 오이 먹방만은 실패. 어째 셋 다 찝찝함을 감출 수 없는 표정이다. 후쿠시마 오이 시식은 사전 협의도 없이 갑작스럽게 시행되었다고 하니 아무리 이명박이라도 제대로 먹방을 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참고로 좌측의 일본 정상은, 당시 일본 총리 간 나오토. 우측은 중국 총리 원자바오. 시식 직후 후쿠시마산 오이라는 통역을 들은 수행원들은 황급히 시식한 오이의 방사능 수치를 검사했다고 한다. # 사실 이 장면은 방사능 위험 논란이 있는 지역의 농산물을 외국 정상들에게 반강제로 먹이는 장면이어서 외교적으로 심각한 결례이기도 하다. 당시 일본이 방사능으로 나라가 망하니 마니 하는 정신없는 상황에서 앞뒤 가릴 거 없이 연출한 장면이어서 국제적으로 크게 문제 삼지 않고 넘어가기는 했지만.

당연하지만 못 먹는 음식들도 있는데 콩은 알레르기가 있어서 못 먹는다고 한다.[55] 잡곡밥도 가난하던 시절의 기억 때문인지 싫어한다고 한다.

5.3. 수트핏의 대가[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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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대기업에서 고위직을 오래 지낸 경험 덕분인지 양복 고르는 안목도 제법 있는 데다가 대통령 중 비교적 큰 키에(173cm)[56][57] 슬림한 몸매 덕분인지 수트빨을 잘 받는 패셔니스타이기도 하다. 연관 검색어에도 수트핏, 수트간지 등이 있을 정도. 다른 정치인과 찍은 사진을 봐도 신체비율도 일품. 때문에 얼굴만 가린 채로 낚시로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링크 다만, 수트핏의 경우 이명박과 마찬가지로 대기업을 경영해본 경험이 있는 둘째 형 이상득도 정장을 보는 안목도 똑같이 뛰어난데 이명박보다 키가 더 크기까지 해서 형 이상득에 비해서는 수트핏을 한 수 아래로 친다.(...)

그리고 자기관리에도 철저해서 샤넬 메이크업 베이스, 유리아주 립밤, 디올 립글로우, 아벤느 미스트, 설화수 기초 등을 사용한다고(...). 인터넷에서는 맹뿌템, 명박템으로 불리고 있다. 기자들이 "그가 지나가면 짙은 향수 냄새가 남아있었다"고 회고하기도 한다.

6. 어록[편집]

부모가 뭐하는 지 알릴만 하면 이 장사 하고 앉았겠어요, 제가? 그걸 왜 물어봐요, 어른이. "너 이름이 뭐지?" 이름 알아서 뭐해요. 돌아가면 잊어버릴텐데, 이름 알아서 그 이름 가지고 자기가 메모했다가 이 다음에 뭐 도와줄꺼에요? 아마 그 어른은 돌아가서 "내가 길바닥에 있는 한 놈을 내가 용기를 줬다"고 할런지 몰라요. 저는 그 어른이 지나고 난 다음에 수모까지 느껴요. 차라리 모른 체 하고 지나가지. - 횐돌산 수양관 간증에서 고등학교 시절 장사 경험을 밝히며

저는 요즘 제가 다시 한국에 돌아와서 인터넷 금융회사를 창립을 했습니다. 해서 금년 1월달에 BBK라는 투자자문회사를 설립을 하고, 이제 그 투자자문회사가 필요한 업무를 위해서 사이버 증권회사를 설립을 하기도 하고, 고생을 해서, 지금 정부에다가 제출해서 이제 며칠 전에 예비 허가 나왔습니다.- 2000년 광운대학교 강연 중에서[58]

기본적으로는 낙태에 대해 반대인데, 불가피한 경우가 있단 말이에요. 가령 아이가 세상에 불구로서 태어난다든지, 이런 불가피한 낙태는 용납이 될 수 밖에 없는 거 같아요.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낙태도 반대 입장이에요. 보수적인지는 모르겠지만…. - 2007년 5월 12일,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요즘 젊은 배우들이 많이 뜨잖아요. 그 영화는, 거기 중견배우들이 살짝 한물 좀 가신 분들이 모여가지고 한거야. 돈 적게 들이고 돈 번 거야. 그 배우들, 돈 적게 준거 같던데, 딱 보니까. 아주 머리를 썼더라고요. 내가 딱 보니까 그래. 아주 여럿이 있었는데, 한때 다 인기가 있던 사람들이었는데, 지금 아마 그 배우들은 요즘 젊은 배우 한 사람보다 적게 들었을거야. 아, 아이디어, 벤처 아이디어다, 이게. 그렇잖아요. 요즘 비싼 계약하고, 젊은 배우 막 스카웃해 가지고 말이지, 그렇게 만든 영화가 아니고, 시간이 남아가지고 말이지, "누가 안 불러 주나" 하고, 단역으로 나올 사람들 말이지, 단역으로 나올 사람들을, 역을 하나씩 다~ 줘 가지고, 활발하게 나오게 만드니까 얼마나 좋겠어. 아마 공짜로 나오라고 해도 다 나왔을거야. (돈을) 준다고 계약하고, 실제로는 안 줬는지…. - 2007년 5월 19일, 벤처기업인 간담회에서 백종진 벤처기업회장이 "이 전 시장께서 우리가 만든 '마파도2'를 함께 본 적이 있다"고 말하자, 이명박이 밝힌 '마파도2 감상 소감'

나라를 위해, 잘해서 국민으로부터 지지를 받을 생각은 하지 않고, 국민의 지지를 받는 후보를 어떻게라도 끌어내리기 위해 세상이 미쳐 날뛰고 있다. - 2007년 6월 13일, 경남 사천 당원간담회에서

지난 2002년 김대업 같은 인물을 만들고, 정부의 모든 기관이 힘을 모아 이회창 후보를 대통령이 되지 못하도록 했는데, 끝나고 나니 새빨간 거짓 음해임이 드러났다. 이번에도 그렇게 하려고 김대업여러 준비해서 하나씩 내놓고 있다. - 2007년 6월 13일, 경남 통영·고성 당원간담회에서

저는 군대를 무척 가고 싶었습니다. 갈 수만 있었더라면 어떻게해서든 아마 갔었을 것 같습니다. 제가 대학 1학년때 였습니다. (기침) 입학을 하고 저는 이태원 재래시장에서 새벽 네시에 일어나서 환경 미화를 하면서 다녔고 제 어머니는 그 시장에서 일을 하셨습니다. 2년간 그 일을 하니깐 힘이 들어서 좀 쉬고 싶고, 그 기간에 군대를 가고 싶었습니다. (기침) 군대를 가서 논산훈련소에 도착해서 신체검사를 받았습니다만은 뜻밖에 제가 기관지확장증 등 몇 가지 요인으로 퇴출 당하게 생겼습니다. 제가 군의관에게 치료를 해주면 되지 않겠느냐고 군대에 있게 해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만은. 결국엔 논산훈련소에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기침) - 2007년 한나라당 예비후보 검증청문회에서 병역 면제 사유를 묻자

도곡동 땅, 하늘이 두 쪽 나도 제 땅 아닙니다. 아닌 것을 아니라고 말하는데, 그 이상 무슨 표현이 필요합니까. - 2007년 8월 16일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당시 기자회견에서

뭐 도곡동 땅이 어떻다고요? BBK가 어떻다요? 새빨간 거짓말입니다. 여러분. 저는 그런 삶을 살아오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누가 나에게 돌을 던질 수 있습니까? 여러분. (중략) 누구도 나의 길을 막을 수가 없습니다. 저는 정직하고 당당하게 살았기 때문입니다. - 2007년 8월 17일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서울합동연설회에서 (풀영상)

온갖 음해에 시달렸습니다. (중략) 여러분 이거 다 거짓말인 거 아시죠? 여러분 언제부터 한방에 간다 한방에 간다 그러더니 그 한방이 어디 갔습니까? 허풍입니다, 허풍. -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당시

경제, 반드시 살리겠습니다! - 2007년 제17대 대통령 선거 당시

아마 내년되면 (주가가) 3000을 돌파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저는 실물경제를 한 사람이기 때문에 허망한 정치적인 이야기를 하지 않겠습니다. 더 나아가 임기 5년 중에 제대로 되면 5000까지 올라가는 것이 정상입니다. 주가가 진정한 평가를 받을 수 있는 가장 큰 요인은 정권교체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권 교체를 하면 주가가 전반적으로 상향조정 될 것입니다. - 2007년 12월 14일 여의도 대우증권 본사에서

대한민국은 위대한데 위대하지 못한 지도자를 만났기 때문에 오늘 이 모양으로 된 것입니다, 여러분. 약속한다, 뭘 해주겠다, 뭘 해주겠다. 그렇게 약속하고 지난 5년간 잘했으면 나라가 이 꼴이 됐겠습니까? (중략) 국민에게 겁을 먹어야 하는데, 국민이 얼마나 무서운가를 알아야 하는데, 그게 아니라 국민을 마음대로 하는 건 줄 알아요. 기가 막혀요, 정말. 우리 대한민국을 다시 만들어놔야 합니다. - 2007년 대통령 후보로 지지자들에게 연설 중

이 사건은 복잡하지 않습니다. 열번, 백번을 수사하고 특검을 하더라도 결과는 결코 바뀌지 않을 것입니다. 진실은 오직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 2007년 12월 18일 대선을 하루 앞두고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저는 지난 6월 10일 광화문 일대가 촛불로 밝혀졌던 그 날 밤에, 저는 청와대 뒷산에 올라가 끝없이 이어진 촛불을 바라보았습니다. 시위대의 함성과 함께 제가 오래 전부터 즐겨 부르던 아침 이슬이라는 노래 소리도 들려왔습니다. 캄캄한 산중턱에 홀로 앉아서 시가지를 가득 메운 촛불의 행렬을 보면서, 국민들을 편안하게 모시지 못한 제 자신을 자책했습니다. - 2008년 6월 19일 촛불집회 관련 대국민 담화

그렇지만 제 임기 중에 일어난 사회지도층의 권력형 부정과 불법에 대해서는 이미 여러 차례 밝힌 대로 관용을 베풀지 않을 것입니다. - 2009년 6월 29일 18차 라디오 연설에서

그... 왜... 장사가...어... 야, 이것 좀 이것 좀 사먹어라 야~ 뻥튀기! (중략) 내가 노점상 할 때는 슈퍼마켓이 없었거든! - 이문동 재래시장에 방문해서 상인들과 대화를 나누며 #

저는 앞으로 어떤 정권도 "방송을 장악할 수 있다, 언론을 장악할 수 있다"하는 시대는 지나갔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 2009년 7월 27일 20차 라디오 연설에서

(우리는) 도덕적으로 완벽한 정권이므로 조그마한 허점도 남기면 안 된다. 우리 정권은 돈 안 받는 선거를 통해 탄생한 특성을 생각해야 한다. - 2011년 9월 30일 청와대 확대비서관회의 중

(지금 시국에 대해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어디, 소속이 어디에요? (저는 시사IN 주진우 기자입니다) 어? (시사IN 주진우 기자입니다) 대표로 묻는 거 아니죠? (시국에 대해서 한마디 해주시죠) 정말 참담한 심정이죠. 어떻게 이렇게 부끄럽고, 부끄러운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시위에 나온 사람이나, 나오지 않은 국민들도 똑같은 심정일 거라고 저는 생각을 합니다. 국민들의 뜻을 잘 받아줬으면 좋겠고... 이 나라는 선진국 문턱까지 왔고, 또 민주주의 국가이기 때문에 가슴이 답답하지만 헌법적인 절차가 중요하지 않는가 저는 생각합니다. (정치권에서는 탄핵도 거론되고 있는데) 그것도 헌법적인 절차의 하나죠. - 2016년 11월 21일 김영삼 대통령의 묘지 참배 후 기자들과 인터뷰를 하면서 최순실 게이트 관련한 물음에

본인이 뭐라고 하든 모두가 다 알고 있으니 순리대로 따르면 되겠죠. - 2016년 12월 18일, 박근혜 탄핵소추가 가결된 후, 박근혜가 탄핵 사유를 부인하자

아이고. 좀 잘해! 잘해가지고 모범을 보여야지. (중략) 시작은 좀 미약해도 끝이 아마 좋을 거야.- 2017년 3월 22일, 이재오가 대선 출마를 선언하며 예방하러 오자

저는 새로운 정부가 들어오면서 일말의 기대를 하고 있던 사람 중에 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지나간 6개월 적폐청산이라는 명목으로 보면서 이것이 과연 개혁이냐 감정풀이냐 정치보복이냐 이런 의심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중략) 그러나 그 짧은 시간에 발전하는 동안에 부정적인 측면도 있다는 것을 (기침) 우리 모두 다 아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긍정적인 측면이 부정적인 측면보다도 훨씬 크다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부정적인 것을 고치기 위해서 긍정적인 측면을 파괴해서는 아니 됩니다. - 2017년 11월 12일 바레인 출국 전 인터뷰에서

적폐청산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되고 있는 검찰 수사에 대하여, 많은 국민들이 보수를 궤멸시키고 또한 이를 위한 정치공작이자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에 대한 정치보복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저와 함께 일했던 이명박 정부 청와대와 공직자들에 대한 최근 검찰 수사는 처음부터 나를 목표로 하는 것이 분명합니다. (기침) 지금 수사를 받고 있는 우리 정부의 공직자들은 모두 (기침) 국가를 위해 헌신한 사람들입니다. 제 재임 중 (기침) 일어난 모든 일의 최종 책임은 저에게 있습니다. 더 이상 국가를 위해 헌신한 공직자들을 짜맞추기식 수사로 괴롭힐 것이 아니라 나에게 물어달라 하는 것이 저의 오늘의 입장입니다. - 2018년 1월 17일 기자회견에서

저는 오늘 참담한 심정으로 이 자리에 섰습니다. 무엇보다도 민생경제가 어렵고 한반도를 둘러싼 안보 환경이 매우 엄중할 때, 저와 관련된 일로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드려서 대단히 죄송합니다. 또한 저를 믿고 지지해주신 많은 분들과 이와 관련해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많은 분들에게도 진심으로 미안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전직 대통령으로서 물론 하고 싶은 이야기도 많습니다마는 말을 아껴야 한다고 스스로 다짐하고 있습니다. 다만 바라건대 역사에서 이번 일로 마지막이 되었으면 합니다. 다시 한번 국민 여러분들께 죄송스럽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 2018년 3월 14일 검찰에 소환되면서


7. 저서[편집]

  • 신화는 없다 : 1995년에 이명박이 자신의 생애를 돌아보면서 쓴 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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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가족 관계[편집]

  • 아버지 이충우 (1907 ~ 1981)[62] / 어머니 채태원 ( ~ 1964)

    • 누나 이귀선 (1930 ~ 2010) / 夫 김일용

      • 조카 김동석

      • 조카 김동혁 (1951 ~ ) 前 현대산업개발 자재부장[63]

    • 이상은 (1933 ~) 다스 회장 / 妻 박청자

      • 조카 이동형 다스 부사장

      • 조카 이?? / 夫 전종화 (1966 ~ ) 前 씨모텍 부사장[64]

    • 이상득 (1935 ~ ) 前 국회부의장 / 妻 최신자 (1941 ~ )

      • 조카 이지형 (1966 ~ )맥쿼리-IMM자산운용 대표 / 妻 조재희 (1973 ~ )

      • 조카 이성은 (1969 ~ ) / 夫 구본천 (1964 ~ ) LB인베스트먼트 대표이사 사장[65]

      • 조카 이지은 (1970 ~ ) / 夫 오정석 (1970 ~ ) 서울대학교 경영학과 교수[67]

    • 누나 이귀애[68]

    • 본인 이상정 (나중에 이명박으로 개명) / 妻 김윤옥 (1947 ~ )

    • 여동생 이귀분[78] / 夫 김진 에스엠 대표[79]

    • 남동생 이상필[80]

9. 각종 타이틀[편집]

10. 선거 이력[편집]

연도

선거 종류

소속 정당

득표수 (득표율)

당선 여부

비고

1992

제14대 국회의원 선거 (전국구)

민주자유당

7,923,718 (38.5%)

당선 (25번)

1996

제15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종로)

신한국당

40,230 (41.0%)

당선 (1위)

[82]

2002

제3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서울특별시장)

한나라당

1,819,057 (51.8%)

당선 (1위)

2007

제17대 대통령 선거

한나라당

11,492,389 (48.7%)

당선 (1위)

11. 관련 문서[편집]


[1] 개명하기 전 이름은 이상정으로, 형 이상은, 이상득처럼 상자 돌림이다. 일제강점기에 태어난 영향으로 인해 츠키야마 아키히로(월산명박, 月山明博)라고 창씨개명한 바 있었다.[2] 정확한 명칭은 일본 오사카 부 오사카 시 히라노 구 가미후쿠이도 정. 근처의 가미미나미(加美南) 정과 혼동되어 가미미나미후쿠이도(加美南福井戶)로 잘못 알려지기도 했다.[3] 정확한 주소는 서울특별시 강남구 학동로23길 42.[4] 정확한 위치는 서울특별시 송파구 정의로 37 서울동부구치소 12층 3평 규모의 혼거실을 개조한 독방으로 알려졌다. 전층을 혼자 쓸 계획. 2018년 3월 23일 새벽 수감되었다.[5] 경주 이씨 39세손 '相'자 항렬이다. 개명 전 이름은 이상정(李相定)이다. 대구 출신 독립운동가이상정과는 본관, 한자, 항렬까지 똑같은 동명이인이다.[6] 큰형 이상은, 작은형 이상득, 이명박 대통령으로 3남이며, 2녀는 정치에 등장한 적이 없다. 2녀 중 큰누나인 이귀선은 2010년 사망하였다. 여동생 이말분은 훗날 이름을 이윤진으로 개명하고 선교사가 되어 중국에서 선교활동을 한다. 하지만 실제로 이명박은 남동생이 있었고, 형제는 총 4남 3녀였는데 누나 1명과 남동생 1명이 한국전쟁 당시 어린 나이에 사고로 사망하여 실질적으로 3남 2녀로 성장한 것이다. [7] 아호는 원래 일송(一松)이었으나 서울특별시장이었을 때인 2005년 10월 26일에 있었던 청계천복원시민위원회 전체 회의에 참석한 고대 동문 김정배 위원장의 권유에 따라 청계(淸溪)로 바꿨다.[8] 자세한 내용은 이명박의 저서 <신화는 없다>를 참고할 것.[9] 전 국사편찬위원장[10] 이 때문에 이명박을 2MB라고 부르기도 했다. MB에 2(李)를 덧 붙인 것.[11] 총학생회장 직무대행을 맡아 6.3 항쟁을 주도했다. 이후 수배된 이명박은 서울교도소에서 6개월간 복역하였다.[12] 현대건설 회장 자격으로 참여했다. 당시 언론 보도. [13] 영포빌딩 소유. 이 회사 대표자격으로 직장의료보험에 가입해서 월급을 99만원 받는다고 신고해서 화제가 되었다.[14] 영일빌딩 소유.[15] 출처[16] 출처 [17] 회사이름이다. 대명주빌딩 관리.[18] 교회 설립 초기 멤버로, 장로가 되기 위해서 주차봉사활동도 하면서 적극적이였다고.이때 서울시도 하나님께 봉헌하셨다 그러나 퇴임 이후는 발길을 끊었다고 한다.[19] 훗날 여기서 명예박사 학위도 받는다.[20] 학자들이 중심이 되어 만든 단체인데, 아내인 김윤옥 여사의 친인척들이 번갈아 총재직을 맡고 있는 의문의 단체라고.[21] 참고. BBK, LKe뱅크, e뱅크증권중개 이 3개 기업을 통칭해 e뱅크코리아라고 명명했고, 이명박은 e뱅크코리아 회장으로 대외활동을 했다. [22] 홈페이지 상에서는 아직도 고문으로 나와있다.[23] 이미 2000년에 맡은 적이 있었다. 참고. [24] 이명박 개인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정치, 사회에 있어서도 중요한 내용이기에 분리[25] 그러나 회동이 열리는 장소에는 기자들이 쫙 깔려서 참석자들을 일일이 촬영하며, 4대강 사업지를 장소로 잡는가 하면, 이명박 본인도 입구에서 인터뷰를 종종하며 정치적으로 이용한다.[26] 사진 속 배경은 서울고속버스터미널 건너편의 신반포4차아파트 상가인데[27] 이곳의 입주 시기는 1979년이기 때문. 또한 지나가던 한성운수 29번 버스를 보면 1980년대에 한창 다니던 차종이다. 이명박이 대학시절이던 60년대에는 볼 수 없는 배경인 셈.[27] 정확히는 현재의 서울 지하철 9호선 고속터미널역 8-2번 출구의 건너편.[28] 그래서 2007년 대선 즈음 '마릴린 맨슨 내한공연기' 1편 2편 이런 패러디물들이 돌아다니기도 했다.[29] 원더걸스가 과도한 섹시 컨셉 없이 밝고 건강한 컨셉을 지향하던 그룹이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30] 이명박의 서울시장 시절 노홍철이 청계천 홍보대사가 되었을 때, 이명박과 인사하는 자리에서 노홍철의 말실수로 형님이라 부른 적이 있었는데, 이명박이 대수롭지 않게 웃어넘겼다. 당시 노홍철은 이 발언으로 "서울시장에게도 형님이라 부르는 돌아이"라는 등 언론에 상당한 이슈가 되었다. 이후 노홍철이 사과를 했으나 이명박이 오히려 괜찮다며 노홍철에게 동생이라 불렀고, 노홍철은 대통령 취임식까지 초대를 받았다.[31] 실제로 친형 이상득은 완벽하게 대머리다.[32] 같은 이씨라 얽히지만 본관은 다르다. 다만, 재령 이씨가 경주 이씨에서 파생된 성씨라는 점을 감안하면 먼 친척 정도로는 볼 수 있겠다.[33] 유인촌이 한 드라마에서 이명박 역을 맡기도 했었던 만큼, 연결관계가 이때부터 생겼을 수도 있다.[34] 여담으로 노회찬의 경우는 박중훈과 상당히 친한 사이이다.[35] 특히 이명박과 그의 측근들은 당시 한나라당 대표 선거에서 이재오와 강재섭이 맞붙었을 때 모두 이재오를 지지했던 적도 있다.[36] 실제로 정세균은 친노계 중에서 이명박의 형 이상득과도 인맥관계로 맺혀 있는 몇 안 되는 인물이다.[37] 여담으로 이명박의 개명 전 성명이 돌림자와 항렬을 맞춘 '상정'으로 심상정과 같다.[38] 의외의 사실이지만 이명박이 옛날에 학생 운동을 했던 시절이 있어서 그런지 노회찬, 심상정과도 면식이 있다고 한다. 이재오가 운동권 출신이라 이들과 인맥관계로 엮여 있는데, 이명박이 이재오와 매우 친밀한 사이인지라, 이명박도 예전부터 노회찬, 심상정과 인맥관계로 엮여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39] 그래서 그런지 노회찬, 심상정이 이명박 대통령 취임 전부터도 이명박과 전혀 어색하지 않게 지냈다.[40] 특히 노회찬은 이명박에게 고발당한 정봉주가 대법원에서 징역 1년을 받고 수감돼자, 이명박에게 정봉주를 당장 사면복권시킬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41] 특히 심상정은 이명박이 검찰청 포토라인에 서는 것을 착잡한 심정으로 지켜봤다고 언급하기도 했다.[42] 실제로 이재오뿐만 아니라 반기문과 홍준표, 유승민이 이명박을 예방했는데, 이재오가 늘푸른한국당 대선후보로 출마했을 때, 이명박은 이재오가 차기 대통령으로 가장 적합한 인물인 것 같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역대급 사태로 범보수계 정치세력이 대거 붕괴해 친이계나 보수계 모두 대통령 당선이 사실상 불가능한 상태에서도 이재오를 지지한단 선언을 했으니, 이재오, 정운찬 등을 차기 수장으로 한 자 계파와 친박계가 새누리당에서 당권투쟁을 할 때도 실제로는 이재오나 정운찬이 차기 대권주자가 되길 바랐다는 것을 알 수 있다.[43] 이명박 측은 박근혜의 최태민 관련 의혹을 제기하였고, 박근혜 측은 이명박의 BBK 관련 의혹을 제기하였다.[44] 서청원 또한 이명박, 이재오, 손학규처럼 6.3 항쟁에 참여한 인물이기도 하다. 이명박, 이재오와 서청원은 동년배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출생 시기가 가까운 편인데, YS계 군번으로는 오히려 서청원이 선배로, 서청원은 상도동계 직계로 분류되지만이제는 민정공화계의 후신인 친박이 된 직후 현역 상도동계 선배 취급을 안 해주면서 옛말이 되었다.,이명박과 이재오는 상도동계 직계가 아닌 YS키즈로 분류된다. 아무튼 같이 김영삼 휘하에서 종사했던 만큼, 상호 간에 친분이 전혀 없었다면 그게 더 이상할 수도 있다.[45] 특히 이 당시 서청원이 이명박 가족의 도곡동 땅 차명보유 의혹을 제기하면서 상호 관계가 험악해졌다.[46] 실제로 정봉주는 박근혜 캠프를 능가하는 수준으로 집요하게 이명박을 공격했고, 그 결과 이명박에게 직접적으로 고발당해 혐의가 일부 인정됨으로, 징역 1년형에 2022년까지 피선거권을 박탈당했다. 이후 2017년에 집권한 문재인 대통령에 의해 2017년 12월 복권되었다.[47] 이명박 前 대통령에 대한 감정과 이명박의 옳고 그름을 떠나서 이명박 입장에서는 어떻게 보면 정봉주를 싫어하는 것이 당연하다. 정봉주는 이명박이 대통령 후보일 당시에도 BBK로 이명박을 저격했지만, 대통령이 되고 나서도 나는꼼수다라는 팟캐스트를 김어준, 주진우와 진행하면서 작정하고 이명박 비리 파기에 나섰던 데다, 정봉주가 이명박을 공격한 수위는 당시 이명박에게 적대적인 인물들 중에 가장 강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 수위가 경선 당시 박근혜 캠프, 친박이나,흔히 이명박에게 맹공을 가한 기자나 학자, 정치인에 속하는 보통 친노계 인물들이나 박영선, 진중권이나 주진우를 능가하는 수준으로 폭격을 가했으니 이명박 입장에서는 정봉주를 당연히 싫어할 만 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그런지 이명박은 정봉주를 고소했고, 그 결과 정봉주는 2011년에 허위사실 및 과장사실 유포 혐의로 징역 1년, 피선거권 박탈 10년이 선고 되어 홍성교도소에서 1년형을 살게 된다.'이후, 19대 대통령에 취임한 문재인 대통령이 정봉주를 복권시키면서 피선거권을 회복하고 더불어민주당에 복당하였고 현재도 앞장서서 MB저격수의 선봉에 나서고 있다.결국 정봉주는 정권 교체와 복권으로 인한 피선거권 회복 직후 그동안 조사해왔던 이명박 관련 내용에 대해 폭로하면서, 결국 최측근 김백준을 잡고, 약6년 전 자신이 감옥에 들어갔던 상황과 달리 반대로 자신을 고발했던 이명박을 구속시키는 데 기여하게 된다.[48] 오죽했으면 정봉주는 친이계 인사들한테도 거의 찍히다시피 했다. 실제로 외부자들에서 친이계의 좌장 이재오가 정봉주의 이름을 호명하면서 상호간에 살벌한 설전을 벌이기까지 했다.[49] 실제로 정봉주는 JTBC 뉴스룸에서 이명박의 최측근 김백준을 구속 수사하면, 아마 이곳과 국정원 특수활동비에서 걸려들어갈 것이라는 언급을 했는데, 실제로 이것으로인해 이명박은 크게 불리해지고 결국 구속되기에 이른다.[50] 참고로 좋아요를 누른 곽한구 계정이 곽한구 본인의 계정이 맞다.(...)[51] 2014년 공직선거법 개정 전까지는 벌금형은 공개할 의무가 없었다.[52] 물론 박근혜의 경우처럼 전혀 못하는 경우도 있다.[53] 방영 당시에는 대선 후보가 뉴스나 토론 이외에 다른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것이 제한되어 있어서 대선 후보의 부인을 출연시켜 그들의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주려 하였다. 그 과정에서 간접적으로 후보를 노출시켜서 그러한 문제를 피해가려 했다. 일종의 꼼수 출연[54] 이때 김윤옥은 남편에게만 돌솥밥을 주고 자신과 손님 김승현의 밥은 일반 공깃밥으로 내와서, 빈축을 사기도 했다.[55] 구속 당할 때에 콩밥 먹을까봐 밝혔다.[56] 이명박 대통령의 20대 시절인 6~70년대 기준으로 보더라도 173cm 정도면 어느 정도 큰 키에 해당했다. 근데 그의 형들인 이상은, 이상득은 이명박 본인보다 키가 더 크다.[57] 이명박 본인의 자서전에 의하면 자기 형이 자기보다 큰 거에 비해 약간 아쉬워했다고 한다.[58] 이 발언이 담긴 영상이 대선 3일 직전 언론을 통해 보도됨으로써 bbk가 자신의 회사가 아니라고 주장하던 이명박의 주장을 완전히 뒤집어엎어벼렸고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킨 발언이다. 또한 이 발언은 이명박 대통령이 사기꾼이라고 인식되게 만든 가장 결정적인 발언으로 꼽힌다. 이에 대해 나경원 당시 한나당 대변인은 주어는 없다라는 희대의 화법을 구사하며 실드를 쳤다. 이명박이 문장이 길어지면서 앞뒤가 안맞는 말을 자주한다면서 "내가 설립했다"고는 말 하지 않았다고. [59] 노무현의 그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와 뉘앙스는 다르지만 완전히 똑같은 대사라 재조명받기도 했다.[60] 패러디 모음 게시글[61]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과 신봉수 서울중앙지검 첨단범죄수사1부장은 BBK 특검 파견검사 출신이고, 송경호 특수2부장은 이명박 정부 시절 광우병 논란과 관련한 MBC PD수첩 수사·기소에 참여했던 적이 있다. 윤석열 지검장은 이명박 정부 하에서 대검찰청 중수1과장·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장을 역임하는 등 잘 나가는 검사였다. 송경호 부장은 이명박 정부 시절 법무부 형사기획과 → 서울중앙지검 → 수원지검 성남지청에서 근무했고, 신봉수 부장은 이명박 정부 시절 서울중앙지검서울서부지검 → 의정부지검 고양지청 → 형사사법통합정보체계추진단·스폰서 검사 조사단 → 대구지검에서 근무했다.[62] 본명은 이덕쇠였으나 1939년 개명했다고. 평생 목축일을 했다고 알려졌다.[63] 2002년 서울시장 선거에서 특보를 지내며 여의도에서 이명박을 도우며 정치에 뜻을 보이기도. 다스 협력업체 대표를 지내기도 했다. 2018년, 상속받은 재산이 이명박의 차명재산이였다고 털어놓은 것으로 알려졌다.[64] 씨모텍 주가조작 사건에 연루되었으나 무혐의 처분.[65] LG 창업주 구인회의 손자[66] 2012년에 11살의 나이로 36억원대 주식부자 반열에 올랐다.[67] 부총리를 지냈던 오명의 아들[68] 6.25 전쟁 때 사망[69] 줄리어드 음대 졸업, 현재 전업 주부[70] 前 검사. 2010년 당시 가장 젊은 삼성 임원이였으며, 2012년 사내 최연소 팀장에 오르기도 했다. 승진 속도에 대한 설명에서는 항상 이명박의 맏사위라는 설명이 덧붙는다.[71] 줄리어드 음대 졸업, 현재 전업 주부[72] 이명박의 대통령 재임 시절 주치의 최윤식의 아들[73] 이화여대 미대 졸업, 현재 전업 주부[74] 조양래 한국타이어 회장의 아들. 효성그룹과 이어진다. 아내 및 두 처형과는 리라초등학교 동문.[75] 당시 9살 손녀와 6살 손자가 2012년 어린이 주식부자 반열에 올랐다. 당시 가치로는 9억원과 9억1천만원대[76] 에스엠은 이시형이 설립한 자동차 부품업체로 다스 협력업체다.[77] Double K의 친 누나.[78] 중국에서 선교사를 했다고. 이말분에서 이름을 바꿨다고 전해진다.[79] 이시형이 만든 다스 협력업체.[80] 6.25 전쟁 때 사망.[81] 대한민국 임시정부 한정으로 '순수 시대순'이라면 앞전에.[82] 1998년 3월 의원직 사퇴 (불법선거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