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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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의 역임 직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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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128px-Seal_of_Seoul.svg.png 대한민국 서울특별시장

민선2기

민선3기

민선4~5기

제31대
고건

제32대
이명박

제33~34대
오세훈


파일:국회상징.png 대한민국 국회의원 ( 서울 종로구 )

제11~14대
이종찬

제15대
이명박

제15대
노무현


전국시도지사 협의회 회장

초대 고건

2대 이명박

3대 김진선

파일:이명박.png
대통령 기록관 사진

파일:external/rfid.g2b.go.kr/24671.jpg
공식 초상화

대한민국의 제17대 대통령

이름

이명박 (李明博, Lee Myung-bak)[1]

출생일

1941년 12월 19일 (76세)

출생지

일본 오사카 부 오사카시 히라노구[2]

거주지

서울특별시 강남구 논현동[3]

재임기간

2008년 2월 25일 ~ 2013년 2월 24일

서명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Lee_myungbak_signature.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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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씨

경주 이씨 국당공파 39세손[4]

부모

아버지 이충우, 어머니 채태원

형제자매

3남 2녀 중 3남[5]

아내

김윤옥

자녀

이주연, 이승연, 이수연, 이시형

학력

고려대학교 경영학 학사

병역

면제

종교

개신교 (예장통합)

신체

173cm, 70kg, B형

십이지

뱀띠 (신사년)

청계 (淸溪)[6]

약칭

MB

1. 개요2. 생애
2.1. 현대건설2.2. 정계 입문2.3. 제 32대 서울특별시장2.4. 제17대 대통령 선거2.5. 이명박 정부
2.5.1. 대통령 재임 시절 주요 사건 일람
2.6. 퇴임 후
2.6.1. 2018년
3. 평가4. 여담
4.1. 먹방 광고 대통령4.2. 수트핏의 대가
5. 말말말6. 저서7. 가족 관계8. 선거 이력9.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제17대 대통령.

대한민국정치인, 기업인이다. 어촌에서 태어나 유년 시절을 보냈다. 샐러리맨으로 사회 생활을 시작한 이래 30세에 현대건설 이사, 37세에 현대건설 사장, 48세에 현대건설 회장까지 승진하였고, 이후 국회의원, 서울시장, 대통령까지 한 입지전적인 인물.[7]

호는 청계. 본래 어렸을 때 아호는 '일송'이었지만, 서울시장 재직 중 청계천 복원 사업이 막바지에 접어들자 대학 동문이던 역사학자 김정배의 권유로 지었다고 한다. 이름 영문자 이니셜을 딴 약칭인 'MB'로도 불리기도 한다. 취임식 당일 본인이 언급하면서 유명해지기 시작했으며, YSDJ처럼 나름 자주 쓰이고 있다.[8]

대한민국의 전직 대통령들 중에서 지금은 법적으로 보장된 전직 대통령 예우를 하나도 빠짐없이 전부 받을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기도 하다.[9][10]

2. 생애[편집]

이명박의 부모가 일본으로 건너가 노동자로 일하던 중, 일본 오사카의 조선인 마을에서 4남 3녀 중 3남[11]으로 태어났다. 이때 지어진 일본식 이름이 '츠키야마 아키히로(月山明博)'라고 전해진다. 이때까지만 해도 아버지의 자수성가로 조선에 있던 친척도 불러오는 등 나름대로 괜찮게 생활했던 걸로 보인다.

아버지가 일가 친척의 목장 일을 봐주게 되어 경상북도 영일군[12] 흥해읍 덕성리에 살았다. 현재 그곳에 '이명박 대통령 고향집'이 있다. 그러다가 포항시내로 이사했다.

초등학생이었던 시기에 6.25 전쟁이 발발하였다. 이 전쟁으로 인해 누나와 남동생을 잃었다.

야간 상고인 포항 동지상업고등학교[13] 출신으로 고등학교 졸업 후 1년간의 입시 준비 끝에 고려대학교 상과대학[14] 경영학과에 합격했다.[15] 한편 이 입시 준비라는 것이, 낮에는 일당 노동자로 일하고 밤에는 노동자 합숙소 구석에서 작은 불을 켜 공부를 하는 것이었다. 당연히 같이 일하는 다른 노동자들에게 "밤에는 불 끄고 잠좀 자자"며 호통을 받는 일이 부지기수였다고 한다.

합격 당시에는 대학교 중퇴 학벌을 만들기 위해 등록만 해놓고 자퇴할 생각이었으나, 1학기 이상 다녀야 학적이 생긴다는 사실을 나중에야 알고 좌절하였다고 한다. 이 소식을 듣고 어머니가 시장에다가 이명박의 사정을 말하고 다녔고, 다행스럽게도 시장 전체에 소문이났다. 이후 시장 상인들이 모여 이명박에게 등록금을 선불로 주고, 시장의 쓰레기를 청소하는 일을 줬다. 그 돈으로 이명박은 처음 의도와 달리 대학 생활을 시작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명박은 이때의 경험이 너무 고마워, '이런 사람들이 없어도 누군가가 이런 역할을 대신 해주길 바라는' 이유로 서울시장 재직 시절 '하이서울 장학금'을 신설하고, 대통령이 된 후 '든든학자금'을 만들었다고 회고했다.

고려대 재학 시절에 한일협정 반대 시위를 하다 체포 당해 투옥되었고, 소요죄로 징역 2년, 집행유예 3년의 형을 선고받았다. 2007년 한나라당 대선 경선 시기에 박근혜 캠프가 생대 후보인 이명박이 전과 14범이라는 것을 최초로 주장하였으나, 그에 대한 근거는 발견되지 않았고, 대선 후보 등록시에 전술한 전과를 누락하여 전과는 없는 것으로 신고하여 허위신고 논란이 있었다. 체포된 해 12월 15일, 어머니는 심장병이 악화되어 세상을 떠나게 된다. 세상에..

한편, 한일 협정 반대 시위 때 함께 운동했던 인맥들은 6.3 동지회를 결성해 정기적인 만남을 가지며, 그중 당시 중앙대 학생이었던 이재오와 경기고등학교 학생이었던 손학규가 있다. 참고로, 이명박과 이재오, 손학규는, 후술하겠지만 모두 김영삼 대통령이 발탁한 인물들이다.

2.1. 현대건설[편집]

파일:Abj7sPo.jpg

현대 건설 신입 사원 시절 증명 사진


1965년, 현대건설의 재정/경리과에 입사하였다. 본인의 회고에 따르면 당시 운동 전력으로 취업길이 막막해져 현대건설 필기시험에 합격 했는데도 최종입사가 불가능하게 되자 청와대에 탄원서를 넣어, 박정희 대통령이 민정 비서관 이낙선을 보낸 자리에서 청와대에서 현대건설에 최종합격을 통보했다고 한다고 하는데, 후에 공개된 위키리크스를 보면 박정희 대통령은 오히려 정주영 회장에게 '이명박을 조심하라' 라고 경고 했다고 한다. 여기에 대해서는, 정주영 회장이 박정희 대통령의 말을 오해(잘 봐줘라)하고, 전격 지원 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하지만 카더라 통신일 가능성이 높다.

입사 이후 초고속 승진을 거듭해 30세에 이사, 37세에 사장, 48세에 회장까지 올랐다. 이에 대해서 유명한 일화 중 하나로, 이명박이 부사장으로 재직할 당시 현대건설 사장 조성근의 아내와 가수 태진아가 간통한 혐의로 구속된 적이 있었는데, 이 사건 덕분에 사장이 되고 그것을 바탕으로 승승장구하여 대통령까지 했으니 태진아나비효과를 일으켜 대통령을 만든 셈이라는 말이 넷상에서 떠돈 적이 있었다. 사실 아직도 그렇게 알고 있는 사람이 더 많다[16] 하지만 태진아 문서에도 서술되어 있듯이, 이명박의 사장 취임은 사건이 발생한 후 2년이 지난 1977년에서야 이루어졌으며 부사장이 사장으로 승진하는 건 매우 일반적인 일이므로 그 사건과 인과관계가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게다가 조성근은 박정희와 같은 쿠데타 동지로, 건설부장관 지내다가 낙하산으로 현대건설에 와서 5년 채우고 다시 대하건설 사장으로 옮겨갔다. 즉, 회장 정주영도 감히 건드릴 수 없는 위치가 조성근이었다.

임기 내 이라크 건설 수주에 주력하였다. 당시 현대 건설은 중동에서 터졌던 연이은 전쟁으로 막대한 공사 미수금이 쌓였고 대금 회수에 차질을 빚던 상황이었다. 이명박은 공적 자금을 투여받은 후 각종 국내외 공사를 무난히 진척시키며 위기를 극복했으나, 이라크 정부로부터 공사미수금 2억 달러를 회수하는 데는 실패[17], 몇 년 후인 현대건설 부도의 책임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비판도 있다.

1992년 퇴임 후 정계에 진출했는데, 그가 입당한 당은 당시 정주영이 창당했던 통일국민당이 아닌 민주자유당이었으며, 이 때문에 정주영 명예 회장과의 관계가 멀어졌다고 한다. 정주영 창업주가 사석에서 '(이명박은) 노비로도 못 쓸 사람' 이라는 말을 했다는 풍문이 있지만, 달변이기도 한 정주영 창업주가 그 정도 수위로 악담을 했다는 얘기는 확증이 있지 않은 이상 쉽게 믿기는 힘든 부분이다. 현재까지 정 명예 회장이 직접 밝힌 이 전 대통령의 정치 입문 관련 이야기는 "대선 출마 대신 우리 의견을 들어줄 수 있는 의원 수를 늘리자."고 주장했다는 것과, 드라마(야망의 세월)로 창작된[18] 부분에 대해 적극적으로 해명하지 않은 일에 대한 아쉬움이 사장이 민자당 입당 후 정 회장의 반값 아파트 공약을 실효성이 없다고 비판했다는 소문 및 이에 대한 정주영 본인의 소감이 완곡하게 묘사된 정도다.

2.2. 정계 입문[편집]

1992년 대선정주영 현대그룹회장이 통일국민당을 창당하여, 통일국민당의 대통령선거 후보로 출마했지만, 당시 이명박은 경제 관련 전문가 영입이라는 명목으로 김영삼에게 발탁되어 민주자유당 소속으로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전국구 의원에 출마함으로써, 정주영 일가와 관계가 틀어진다. 이명박은 해당 선거에서 당선되어 정계에 입문하게 된다.

1995년 국회의원 임기가 1년 남았지만, 같은 해 지방자치가 처음으로 실시되면서 치러진 제1기 민선 서울특별시장 선거 후보자 선출을 위한 민주자유당 경선에 출마하였다. 최종경선까지 올라갔지만, 결국 정원식에게 패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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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서울 종로에서 11~14대 종로구 국회의원 이종찬, 그리고 노무현 후보를 제치고 당선되었다. 그러나 그의 선거기획을 담당했던 김유찬이 그가 선거비용을 거짓 신고했다고 언론에 폭로하고, 이명박의 측근들은 그를 외국으로 도피시켰던 사실까지 밝혀지자, 이명박은 추세를 보다가 형이 내려지기 직전 자진 사퇴하였다. 이렇게 하여 해당 지역구에서는 보궐선거가 실시되었고, 노무현 후보가 다시 도전하여 당선되었다.

1998년 3월 열린 항소심 공판에서 이명박은 2년 6개월을 구형받았으며, 이어 서울 고등법원에서열린 항소심에서 선거법위반 혐의로 벌금 400만 원형을 선고받았다.

1999년 4월 대법원은 선거법 위반 혐의와 이명박의 범인 김유찬 도피 혐의에 대한 유죄를 확정하고 700만 원의 벌금형을 선고했다.[19] 이로써 이명박은 그해 3년 전에 국회의원 피 선거권을 박탈당했지만, 1년 후 광복절 특사사면복권되었다.

2.3. 제 32대 서울특별시장[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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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 선거권이 회복된 것을 계기로, 2002년 제3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 당시 야당이었던 한나라당서울특별시장 선거 후보로 선출되어 출마하였다. 당시 여당의 후보는 당시 떠오르던 정치인 김민석[20]이었는데, 여론조사에서는 오차범위 내로 상당히 치열한 접전을 벌였고, 김민석으로부터 과거의 여러 의혹을 제기받아 이때부터 과거 비리가 드러나기도 했다. 하지만 '청계천 복원사업'과 '대중교통 체계 개편'을 공약으로 내걸어 일찌감치 분위기를 잡았고, 후보토론에서도 판정승을 거두며 52%의 득표율로 당선에 성공했다.

서울시장으로 재직하면서 생겨난 별명은 불도저 시장. 특유의 추진력으로, 그리고 현대건설 CEO 경력을 살려서 토목·건축적인 정책을 밀고 나가 서울 외관을 바꿨다고 해서 생겨난 별명이다.

이 시기의 이명박을 까는 사람은 거의 없다. 좌파 정치평론가도 "대통령 이명박"을 공격하지 "서울시장 이명박"을 공격하지는 않는다. 특히 당시에 야당 쪽 인사임에도 이 시기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과의 관계도 의외로 괜찮았다. 오히려 노 전 대통령도 이명박 당시 서울시장의 행정력신뢰해서 팍팍 지원해줬고 이 시장도 노 전 대통령에게 감사를 표하기도 하는 등 대통령-야당 주요인사로서의 관계는 이상적이었다고 평가해도 될 정도였다.

취임 후, 공약대로 청계천 복원 사업을 시행하여[21] 우여곡절의 과정 끝에 공사는 마무리를 짓는 데 성공하였다. 이명박의 서울 시장 대표적인 커리어이자 그를 대통령으로 진화시킨 최대의 교두보로 화자되지만, 임기 내에 끝내려는 무리한 시도 때문에 이런저런 도 많은 공사였다. 자세한 내용은 문서 참고.

서울특별시 대중교통체계 개편 역시 주요 커리어로서 교통 카드 티머니도 이때 도입되었고 버스의 번호는 지역에 따라, 색은 종류에 따라 체계적으로 재정비하였으며 이용 요금은 환승 횟수가 아닌 이동 거리 비례로 바꿔 당시 어려웠던 버스 회사의 재정을 높이는 데 한몫했다. 또한 중앙버스전용차로제를 도입하여 대중 교통의 질을 높이기도 했다. 2007년 타임지에서는 위 2가지 정책을 높이 사 '환경 영웅' 중 한 명으로 선정하기도 하였다. 대부분이 인정하는 성공적인 정책이지만, 어떤 정책이든 한계는 있는 법. 지랄염병 버스(...) 참고.

이 외에도 뉴타운 사업 및 서울숲 조성, 숭례문 개방 등을 통해 대선을 향한 고지를 밟아간다. 아리수 브랜드화[22]도 이명박 시장의 성공적 작품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잘 언급되지 않는 부분이지만 서울 시내에 많았던 경유버스들을 천연가스 버스로 전면 개편하기 시작한 것도 이명박이다. 오세훈 시장에 와서 완성된 이 사업도 미세먼지가 이슈가 되고 있는 현재와서 다시 호평을 받는 사업. 실제로 지금까지 연구결과를 보면 미세먼지가 늘어나는 국내 요인 중 노후한 경유차에 의한 부분이 꽤나 크다는 결과가 많다. 또 실제로 경유 버스가 줄어드는 기간에는 매년 서울의 미세먼지 농도가 감소하기도 했고.

청계천서울특별시 시내버스 개편 이미지가 컸지만 그 외에도 서울특별시장으로서의 이명박은 김형민 시장 이래 시정능력 면에서 따지면 1~2위권에 올라도 무방할 정도로 상당히 우수했다. 시장이 2번 바뀌고 대통령도 3번이나 바뀌었지만 이명박 시장의 흔적은 아직도 여러 곳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서울시장으로서 성공했기에 대통령이 된 것이므로 서울시장 이명박은 가히 그의 최전성기라 할 수 있다. 워낙 먼치킨급 서울시장이라, 만약 이명박이 서울시장을 끝으로 대통령 안 하고 그냥 정계에서 은퇴했으면 이념을 떠나 존경받는 정치인으로 역사에 이름을 남겼을 거라는 사람도 있다(...)

2.4. 제17대 대통령 선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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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 살림을 사는 당대표를 뽑는 게 아닙니다. 나라를 살릴 대통령을 뽑는 선거입니다, 여러분! 저 이명박은 여러분의 꿈을 반드시 이루겠습니다! ㅡ 한나라당 내부 경선 연설 中


성공적인 시장 경력을 계기로 국민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아지자 제17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였다. 당시 상황은 참여정부 동안의 민생, 경제 파탄과 실정을 심판해야 한다는 정권 심판론이 매우 우세했고, 정권의 임기 막판의 지지율 저하와 민주당 정권에 대한 국민적 피로감 및 당시 분열과 막장을 보여주던 여당 대통합민주신당의 바닥을 찌르는 지지율로 인해 한나라당소속 후보의 대통령 당선이 기정 사실화될 정도였다. 이 때문인지 대선 본선보다도 한나라당의 경선이 더 치열해지는 양상이 발생했는데, 가장 유력한 경쟁자인 박근혜 후보와의 진흙탕 싸움을 방불케 하는 경쟁이 발생했다. 이명박은 여론 지지도, 박근혜는 당내 지지도가 우세했는데, 경선 룰에 따라서 승부가 뒤집어질 수 있는 그야말로 초접전이었다. 과정에서 서로에 대한 네거티브로 인해 둘의 과거 비리는 이때 대부분 드러났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며, 여담으로 유명한 발언인 "여러분 이거 다 거짓말인거 아시죠"와 "저거 어떻게 쥐어박고 싶었어"도 이때 생겨난 것이다. 그러다 북핵 실험 등 박근혜에게 불리한 사건이 하나둘씩 터지기 시작했고, 혈투 끝에 우세했던 여론 지지율을 앞세워 경선에서 승리하여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로 선출되었다.

본선에서는 대통합민주신당정동영과 사실상의 일대일 대결[23]을 벌이게 되었는데, 말이 좋아 매치였지 지지율이 2배 이상 차이나는 거의 이명박의 독주체제였다. 선술했듯 여당의 너무나도 낮은 지지율 때문에 예정된 시나리오기도 했지만... 하지만 새로운 변수가 생겼으니, 이회창의 한나라당 탈당 및 후보 독자출마였다. 같은 보수성향에다 당의 후광이 없어도 네임밸류가 컸던 정치인이기에 표가 분산될 것이라는 위기감이 떠돌기도 했다. 하지만 돌풍은 오래가지 못하고 지지율은 정동영후보의 지지율은 이명박의 절반, 이회창은 정동영 후보의 절반의 양상이 고정되었다.[24] 정동영 측은 BBK 주가조작 사건을 내세우며 이명박을 집요하게 공격했지만, 이명박은 747 공약대운하 공사를 내세워 마이페이스를 걸어갔고 결국 지지율은 득표율로 그대로 연결되어 여유롭게 당선되었다. 표차가 가장 큰 선거가 되었지만[25], 정동영과 이회창 외에도 권영길, 문국현 등의 유력후보가 난립한 선거였기에, 과반 득표율은 달성하지 못했다.

제17대 대선에서 이명박 당시 후보자가 얻은 득표율도 압도적으로 과반수를 달성했지만, 당시 유력 대선 주자로 이명박 외에도, 손학규, 고건, 이회창, 이해찬, 박근혜(...), 정운찬[26], 이재오 등이 있었는데, 이재오와 정운찬은 알다시피 이명박 후보를 지지하면서 친이계에 합류하였고(...), 유력 대선주자 설문 조사 당시, 후반부로 갈수록 이 유력대선주자 모두를 합한 지지율을 이명박이 차지하게 됐다.(...) 또한, 당시 이명박의 강력한 경쟁자라고 할 수 있는 손학규와 고건이 경선에서 탈락하거나 불출마 선언을 했고, 그나마 대선에 나와 이명박에게 도전장을 내밀었던 이회창마저도 이명박의 득표율에 4배 정도로 밀리면서(...) 김영삼이 김대중을 밀어 버렸던 득표율 이상으로 압도적인 투표율로 당선된다.

2.5. 이명박 정부[편집]

재임 당시에 있었던 여러 가지 일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들은 이명박 정부 문서를 참고할 것.

2.5.1. 대통령 재임 시절 주요 사건 일람[편집]

파일:external/pds.joins.com/NISI20130219_0007756487_web.jpg

퇴임연설하는 이명박.[27]

2.6. 퇴임 후[편집]

임기 막판의 급작스러운 독도 방문이 엇갈리는 평가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결론적으론 지지율을 올리는 데 크게 일조했다. 이후 대선 과정에서 존재감이 희석되었고, 국가정보원 여론조작 사건 등에도 불구하고 자당 후보 박근혜가 당선되면서 보수 정권을 연장하는 데 성공했다.

박근혜 대통령 취임식에 등장한 이후 중앙정계나 공식석상에서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고 있다. 지방의 한 골프장에서 골프를 치다가 기자들을 목격하고 일부러 자리를 피하는 장면이 포착되기도 했다. 퇴임 이후에는 크게 매스컴에 부각되길 원치 않는 듯.

퇴임 이후에는 사무실을 마련해서[31] 재단활동을 벌이는 등 개인적인 사업을 벌이고 있으며 페이스북으로 간간이 근황을 알릴 뿐이다. 해외순방을 자주 다니며 여러가지 대외적인 행사에 참여하곤 하며 캄보디아 총리의 경제고문을 맡았던 적이 있었다.[32] 운동을하거나 자전거를 자주 타는 모습을 보여 칠순을 넘긴 나이에도 비교적 정정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른바 4자방 (4대강, 자원외교, 방산비리) 비리 의혹 등 본인 임기 중의 사건과 검찰수사 여부가 여론의 주목을 받기도 했으며, 자서전으로 '대통령의 시간 2008~2013'을 출판하였다.

2015년 10월 베트남벤처기업 세일즈 명목으로 방문하기도 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사망으로 조문을 오며 매스컴에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다.[33]

2016년 8월 그의 측근이 한 언론과 가진 인터뷰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차기 정권은 반드시 내 손으로 창출하겠다고 최근 들어 누누히 강조해 왔다고 한다. 링크된 기사에 따르면 이명박 전 대통령이 차기 정권 창출에 기여하겠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배경에 대해 잡지는 "박근혜와 완전히 등을 대고 갈라선 친이 세력이 의지할 수 있는 역할을 하고, 박근혜가 임기 중 자신을 박대한 데 따른 섭섭함을 간접적으로 토로한 것으로 해석된다"고 분석했다.[34] 또한 측근에 따르면 이명박이 염두에 두고 있는 차기 대권주자로는 반기문 UN 사무총장, 김무성새누리당 대표,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었다고 한다. 특히 반기문 UN 사무총장은 직접 저울질할 정도로 신경을 쓰고 있는 인물 중 한 명으로 드러났다. 나머지 2명에 대해서는 이명박 전 대통령이 부정적인 평가를 내렸다고 한다. 최근 들어 강남구 대치동에 있는 그의 사무실에는 측근들과 같은 여러 인물들이 방문하면서 활기를 띠고 있다고 한다는 사실도 전했다. 또한 최근 들어 그의 기분이 좋아졌다는 사실 또한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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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0월 1일, (이명박 자신이 서울시장 재임 시절의 업적으로 내세우는 청계천 복원사업의 그) 청계천에서 열린 청계천시민걷기대회에 참가한 이명박의 모습. 퇴임 직전까지만 해도 나이에 비해서 상당한 동안이었는데 이젠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는 못하는 느낌이다.

2016년 10월의 비공식적 인터뷰에서는 가장 먼저 박근혜박근혜 정부를 상당히 강한 어조로 비난함과 더불어, 문재인, 박원순도 싸잡아 비판하면서,[35] 차기 정권 재창출에 적극적으로 나서겠다고 하였다. 다만, 한나라당 시절 유력인사로 같이 했던 6년 동생인 손학규에 대해서는 '그 사람도 참, 그 사람은 한나라당에 계속 있었으면 당 내 대통령 후보 경선은 물론 18대 대통령 후보로 대선에도 나올 수 있는 인재인데 괜히 옮겨다녀 가지고...'라면서 안타까워 하는 견해를 보였다. 기사에 따르면 이명박 전 대통령은 한국경제신문과 가진 비공식 인터뷰에서 반기문 UN 사무총장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36][37] 차기 정권 재창출에 적극적으로 나서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현재 행적을 봤을 때, 반기문을 높이 쳤다는 말은 그냥 립서비스였거나, 본심을 숨기기 위해서였다고 보여진다.

2016년 11월 21일, 김영삼 1주기를 불과 1주일 앞두고 현충원에 참배해 김영삼의 차남 김현철 씨를 만난 이후에, 기자와 인터뷰를 하게 됐는데, 드디어 공식적으로 박근혜에 대한 견해를 표명했다. "부끄러운 일로 정말 참담한 심정... 박근혜가 국민의 뜻을 잘 받아줘야"라고 박근혜를 비난하는 견해를 확실히 밝히고, 박근혜 탄핵까지도 고려해봐야 한다면서 탄핵에도 동의하는 견해를 보였다. #

2017년 첫날부터 새누리당을 곧 탈당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사실 10월~11월 초에 탈당할 생각이었지만, 여러 사람들이 더욱 민감한 반응을 보일까봐 잠시 동안 내색을 하지 않고 있었다고 한다. 더불어 반기문/개혁보수신당과의 연대 가능성에 대해선 선을 그었다.[38]

2017년 1월 11일, 늘푸른한국당이 창당식을 거행하면서 창당되었는데, 아직은 본인에 대한 시선을 의식해서인지 창당식에 축하 인사차 나오지는 않았다. 추후에 늘푸른한국당을 겉보기에 소극적으로 지원하는 방식으로 언론에 근황을 나타낼 것으로 보인다.[39]

2017년 5월 17일, 박근혜 정부 시절 외부활동에 잠잠했다가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이후 갑자기 선행활동에 나서면서 그 배경에 관심이 모이고 있다. #링크 따라서 같은 정당이었으면서도 박근혜와는 불편한 관계가 계속되었음을 미루어 추정할 수 있다.

2017년 6월 2일, 이낙연문재인 정부의 사실상 첫 총리로 임명되면서 이낙연이 이명박의 사무실을 예방하였고, 거기서 이명박은 이낙연에게 "언젠가 이렇게 크게 될 줄 알았다, 진심으로 축하한다"는 덕담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허니문 기간은 얼마가지 못했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면서 이명박 전 대통령이 여러가지 논란들에 휩싸였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가 국정원 대선개입뿐만 아니라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를 주도하고, 공영방송에 대한 낙하산 인사와 언론인 탄압으로 언론환경을 초토화시키고,[40] 여기에 국정원, 사이버사령부, 기무사를 동원하여 조직적으로 댓글을 달면서 대선과 총선에 직접적으로 개입했으며, 보수단체들을 동원하며 관제데모를 실시 및 야권 인사들에 대한 흑색선전을 주도를 하던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또한 다스 실소유주 논란을 비롯하여 BBK 주가조작 사건, 제2롯데월드 특혜 의혹, 캐나다 농협 사기대출 사건 등을 비롯한 여러 가지 비리 문제가 계속 제기되고 있는데 아직도 4대강 사업방산비리, 자원외교에서의 비리 등은 나오지도 않은 상황에서 이 정도로 수많은 문제들이 급부상하며 비판여론과 검찰수사가 점점 수위를 높여가면서 이명박 전 대통령을 압박해오기 시작했다. 이에 "다스는 누구 겁니까?"라는 말이 유행하기도 했으며 여론은 갈수록 험악해져서 '진정한 적폐청산은 이명박을 처단해야 끝이 난다'는 여론이 2017년부터 갈수록 확산되어가고 있다. 그렇게 이명박 전 대통령은 박근혜와 함께 문재인 정부로부터 수사 대상에 올라 그 결과 전직 대통령 2명이 동시에 수사대상이 되었는데, 이는 전두환노태우가 수사대상이 된 이후 두 번째이다.


2017년 11월 12일 바레인으로 출국하기 전 기자회견 장면.

2017년 11월 12일, 강연을 위해 바레인으로 출국하기 직전, 기자들에게 "지난 6개월간 적폐청산을 보면서 이것이 과연 개혁이냐, 감정풀이냐 정치보복냐는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저는 새로운 정부가 들어오면서 일말의 기대를 하고 있는 사람 중 한 사람이었다. ", "(하지만) 새로운 정부가 들어와서 오히려 사회의 모든 분야가 갈등과 분열이 깊어졌다고 생각해서 저는 많은 걱정을 하고 있다" 등의 답변을 남겼다. 그런 사람이 19대 대선 투표 때 썩은 표정을 지었다 #링크 여담으로 여기서 기자들이 이명박 전 대통령이 오기 전 영상에서 알 수 있듯이 그를 마치 검찰 포토라인에 세운 것처럼 대하는 장면들이 목격되기도 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수많은 플래쉬 세례에 "눈이 부시니까 좀 꺼요"라고 말했음에도 기자들이 그냥 무시하고 계속해서 플래쉬 세례를 가했는데 이에 이명박 전 대통령이 매우 당황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리고 기자들이 이명박 전 대통령의 답변 이후 "김관진 장관이 구속되었는데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2013년 국정원 댓글 사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등을 물어보았지만 "상식에 벗어나는 질문은 하지 말라"며 이전의 여유로운 모습과는 다른 긴장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또한 기자회견이 이어지기 전부터 이명박 대통령을 규탄하기 위한 시민들이 "이명박을 구속하라"라는 구호를 끊임없이 외치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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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이날 입장 표명에서 3분 40초 동안 총 7번 혀를 낼름거려서 신문기사화(중앙일보)되기도 했다.[41]


2017년 12월 19일에는 자신의 생일 잔치에 가기 전에 기자들의 질문이 이어졌지만 역시나 이전처럼 질문에 답을 회피했다. 한편 생일잔치에 따라온 시민들은 "이명박을 구속하라"라는 구호를 끊임없이 외쳤고 한 시민은 이명박에게 직접 달려들다가 경호원들에 의해 끌려나가기도 했다.

2.6.1. 2018년[편집]

"그 사람(김희중)보다 (이 전 대통령을) 더 잘 알고 있는 사람은 본인밖에 없을 겁니다. 저는 종쳤다고 봐요, MB는 종쳤다."- 정두언 의원이 2018년 1월 18일 JTBC 뉴스룸과의 인터뷰 중에서

또 다시 피의자가 된 전 대통령
측근들의 연이은 구속과 배신,[42] 그리고 다가오는 검찰의 칼날

2018년에는 임종석 UAE 특사 파견 논란이 불거지다가 결국 이명박 정부가 맺은 비밀군사협정이 드러나면서[43] 국민들의 여론이 갈수록 나빠지는 상황에 처했으며, 엎친 데 겹친 격으로 국정원 특수활동비 청와대 상납 사건이 박근혜정부뿐만 아니라 이명박 정부 시기에도 벌어졌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이명박 전 대통령은 점점 궁지에 몰리는 상황이 되어가고 있다. 그리고 1월 말에는 위 두 사건보다 더 심각한 국가정보원 대북공작금 유용 사건까지 터지면서[44] 이명박은 완전히 사면초가인 상황이다.

2018년 1월 17일, 이명박의 집사인 김백준과 이명박의 비서관인 김진모가 모두 구속 수감되었다. 사유는 국정원 특활비 뇌물 관련 불법 금품수수를 한 혐의다. 이렇게 해서 이명박의 측근들이 하나씩 잘려나가고 있고 검찰은 이명박 바로 코앞까지 도달한 상태이다.


2018년 1월 17일 기자회견 영상.

같은 날 오후,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자신에 대한 수사가 정치공작이자 정치보복이라고 주장했으나,(성명서 전문) 이에 대한 여론의 반응은 싸늘하기 짝이 없다. 덤으로 이 과정에서 기자들의 질문은 받지 않는다는 입장을 표해 측근들과 기자들 사이에 말싸움까지 붙었다. 미디어몽구

이와 같은 이명박의 성명을 본 청와대는 바로 다음 날 오전에 박수현 대변인을 통해 문재인 대통령이 분노의 마음을 금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는 우리 정부에 대한 모욕이며, 대한민국의 대통령을 역임하신 분으로서 말해서는 안 될 사법 질서에 대한 부정이고, 정치 금도를 벗어나는 일이다”라며 이례적으로 날선 성명을 내놓았다. 브리핑 전문 [45][46]

그 와중에 나에게 물어라고 발언을 해놓고 그날 바로 기자들에게 질문을 아예 못 하게 했다. 물으라고 했지 대답하겠다고는 안 했다를 넘어서 물으라고 했지 질문하라고는 안 했다(?!)라는 기적의 논리를 시전했다.뉴스

한편 이명박의 최측근이라는 김희중 전 청와대 제1부속실장이 2011년에 이명박 전 대통령의 미국 순방을 앞두고 국정원 특수활동비를 달러로 환전했고, 이를 이명박의 부인인 김윤옥 측에 전달했다는 진술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뉴스 이 김희중이라는 사람은 정두언 의원이 "이명박 전 대통령을 마이크 앞에 서게 한 건 김희중 전 부속실장이다.", "(김희중은) MB의 분신이나 마찬가지거든요. 모든 일정과 통화를 다 옆에서 하니깐요. 뭐 어떤 게 튀어나올지 모른다고 생각하는 거죠. 판도라의 상자가 열린 거예요."라고 말할 정도로 이명박의 최측근이었던 사람이다. 그래서 정두언 전 의원은 이명박의 돈 문제와 관련된 모든 걸 알고 있는 사람인 김희중이 검찰에서 진술을 하기 시작했기 때문에 이명박이 직접 기자회견에 나섰다고 주장한다.[47][48]

이에 빠르면 2월 초에 즉, 평창 동계올림픽 전에 본인에 대한 직접 조사가 이뤄질 것이란 관측이 나오며, 현재 검찰 조사가 국정원 특수활동비 뿐만 아니라 다스 실소유주 등 여러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고, 각각의 사안에서 핵심 진술들을 검찰이 확보한 상태이므로 이명박 전 대통령이 검찰에 소환됐을 때는 여러 가지 사안들이 한꺼번에 수사될 수 있다고 여겨지고 있다.

그래도 전임 대통령이라고 예우 차원 + 평창 올림픽을 유치시킨 공로를 인정해 청와대에서 평창올림픽 초청장을 보낸다고 한다. 그리고 2월 8일, 공식적으로 대의적인 측면에서 참석 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 후 진짜 참가했다.(...) 근데 꿔다놓은 보릿자루라는 평이 많다.

그리고 2018년 1월 26일, 검찰이 이명박을 피의자 신분으로 전환했다. 자신이 정치 탄압으로[49] 죽게 한 전임자박연차 게이트로 인해 피의자 신분이 된지 정확히 8년 9개월 만의 일이다. 8년 9개월 만에 정반대의 입장이 된 것이다. 이로 인해 올림픽 이전에 검찰에 소환되어 포토라인에 설 확률이 높아졌다.#

같은 날, 검찰이 영포빌딩 지하실을 압수수색한 결과 BBK와 다스 등과 관련된 문건들이 무더기로 쏟아져 나온 사실이 드러났다.## 뿐만 아니라 이명박 정부 시절 청와대 문건으로 추정되는 것들도 있어 국가기록물 무단 반출 의혹까지 덤으로 생겼다.#3[50]

현재 검찰 측에서는 평창올림픽 폐막 이후로 이명박의 소환을 검토 중이며 빠르면 2018년 3월경으로 가닥이 잡히고 있다. 검찰이 2018년 3월에 소환하려는 이유는 정치 보복 논란을 아예 말살시키기 위해서 더 많은 증거, 더 확실한 증거 수집과 철저한 혐의 입증을 위해서라고 밝혔다. 그러나 대다수의 국민들은 이명박이 그 사이에 증거를 인멸할 위험이 있다는 이유로 올림픽 개막 이전에 소환 조사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4

이명박에게 더 안습하고 절망적인 사실을 알려주자면, 그것은 국민들의 태도이다. 먼저 박연차 게이트에 연루되었다는 혐의로 피의자가 되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경우 당시 검찰 수사가 정치 보복의 성격이 강하다는 의견이 62.5%였고 정당한 수사로 본다는 의견은 32.2%로 정치 보복이라는 의견이 정당한 수사로 본다는 의견보다 거의 2배나 더 높았다. 또 검찰 수사 자체도 공정하지 않게 이뤄졌다는 의견도 58.3%에 달했고, 공정하지 않다고 보는 이유로는 가족과 측근에 대한 과도한 수사 확대, 확인되지 않은 혐의로 망신주기를 가장 많이 꼽았다. 관련기사

그리고 끝내 2009년 5월 23일, 노무현 전 대통령이 스스로 자기 삶의 마침표를 찍자 전국적으로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향수가 일어났으며 바로 그 다음 해인 2010년 지방선거에서 친노 인사인 안희정, 이광재, 김두관 등이 도지사에 당선되며 친노의 부활에 성공했다. 그리고 이와 같은 그리움은 계속 이어져 2017년, 노무현 대통령의 직계라 할 수 있는 문재인이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반면, 현재 이명박은 그야말로 고립무원에 사면초가인 상황이다. 2018년 2월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 주관 여론조사에서 무려 국민의 74.2%가 이명박의 구속 수사를 원하고 있으며 이명박을 수사하는 건 정치 보복이 아니라 적폐청산이라고 보고 있다. 구속 반대 여론은 고작 20.7%로 찬성 의견의 절반도 미치지 못했다.참조 거기다가 이재오 같은 친이계의 거물급 인사들은 이미 세력을 잃고 원외에 머물고 있고 자유한국당바른정당도 이명박 구원에 소극적이다.[51] 게다가 이명박에게는 박사모 같은 광신도들도 없다. 덤으로, 과거 나는 꼼수다 시절 재야 언론인으로 공권력의 탄압을 피해 이명박에 대한 의혹을 제기하던 김어준주진우는, 이제 당당하게 공중파에서 끊임없이 의혹을 제기하며 이명박을 여러 방면에서 매우 강하게 압박하고 있다.

끈적한 인간적 유대 관계에 기반해 충성심이 상상을 초월하던 친노와 다르게 MB는 자기 세력이 지리멸렬하고[52] 본인부터 극도로 부패한 인물이라는 것이 드러나[53][54] 국민들로부터 완전히 버림받은 것이다. 이명박은 계속해서 지금 자신에게 처한 상황을 문재인 대통령의 잔인한 정치 보복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전혀 설득력을 얻지 못하고 있는 이유가, 이명박이 해먹은 양이 너무나 엄청나고 명백하여 그것도 국정원 대북공작비등 뇌물의 출처가 심각한 영역이라 국민들이 등을 돌렸기 때문이다.

2018년 2월 중순 검찰이 다스 실소유주 논란을 자신의 차명 재산 문제까지 광범위하게 수사를 확대하면서, 점점 막다른 궁지로 몰리고 있다. 특히 다스 건은 MB 본인의 외아들도 크게 연관되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만큼 심리적인 압박이 엄청날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하기 전에 하루 빨리 구속시켜야 한다는 의견이 있다. 현재 이명박 정부 시절 청와대에서 근무했던 법조계 출신 참모들을 모아 법률적인 대응을 준비 중이라고 한다.

그리고 다스 관련해서 또 다른 폭탄이 터졌는데 삼성이 다스의 소송비 수십억을 대납해 주는 대가로 이건희 회장을 사면시켜주었다는 정황이 드러났다. 이미 이건희의 그림자라고 불리던 이학수 삼성 전 부회장이 검찰에 가서 이를 진술했으며 아예 자수서까지 제출했다. 이것이 사실로 밝혀질 경우 MB는 명백한 거액의 뇌물죄로 최소 10년 이상의 형으로 처벌받게 된다.[55][56] MB 측은 당시 미국 로펌이 무료 변론을 미끼로 다스에게 사기를 쳤다며 이 같은 사실을 부정하고 있다. 삼성 다스 소송비 대납사건 항목 참조.

3. 평가[편집]

4. 여담[편집]

  • 여러 가지 휘호들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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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79년 6월 10일에 한양대학교에서 열린 제1회 새마음제전에서 당시 현대건설 사장이었던 이명박 옆에 당시 박근혜 영애와 최순실이 앉았다. 그러나 박근혜와 최순실보다 한참 떨어져 있어서 이들 둘에게 소외된 모습으로 보인다.

  • 최초의 기업 CEO 출신 대통령이다.

  • 유년 시절 장래희망은 선생님과 소방관이었으며, 좋아하는 정치인으로는 간디와 안창호를 꼽았으며, 좋아하는 음식으로 김치찌개스파게티를 꼽았다. 주량은 맥주 2컵이고, 담배는 피우지 않는다고 한다.

  • 생일결혼기념일, 그리고 대통령 당선일이 모두 12월 19일로 같다. 때문에 이날을 “트리플 크라운 데이”라고 부르면서 매년 전날인 12월 18일친이계 출신 전현직 의원들이 모여 송년회를 겸한 생일잔치를 한다. 이외에도 청와대 비서관급과 수석비서관급, 장관급 인사들도 날짜를 달리해 각각 이명박과 회동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명박 측은 "매년 벌여온 자축연이고 참석자가 많아, 이명박과 안부 나누는 정도일 뿐"이라며 세력화 등의 정치적 해석을 경계한다고 밝혔다.[57] 19일 당일에는 가족들과 함께 보낸다고 한다.

  • 서울특별시 시장 재직 시절 스타크래프트를 한 적도 있었다고 한다. 2003년 WCG 폐막식에서 우승자 이용범과 이벤트 경기를 벌이는 사진. 종족은 저그로서 경기를 위해 5개월 전부터 연습했다는 후문이 있지만, 시작 5분 만에 4드론으로 패배했다. 거기다 상대방의 정찰기(오버로드)를 잡는 위엄을 보였다고 한다.

  • 카우치 사건으로 인디 밴드에 대한 질타가 높아지자, 당시 서울 시장이었던 이명박은 홍대 퇴폐공연 블랙리스트를 만들겠다는 으름장을 보이기도 했으며, 이후에는 한때 홍대의 클럽들을 싹 다 뒤엎으려고 하기도 했다. 하지만 인디 밴드의 반발로 무산되고, 친분이 있었던 유인촌의 설득을 듣고, 오! 부라더스 공연을 관람하여 인디 밴드와 화해하고, 홍대거리에 대한 생각 또한 긍정적으로 바꿨다고 한다. 여기서 설명했다시피 대통령 이전 이명박의 별명은 불도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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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임 후 첫 철도 착공식인 원주강릉선 착공식에 병풍으로 KTX-산천 열차를 사용하였는데, 하필 착공식이 강릉역에서 열린 나머지 KTX가 영동선 스위치백을 넘는 장면이 목격되었으며, 400억짜리 병풍이라는 논란이 일었지만 철덕들에게는 큰 구경거리가 되었다.

  • 대통령으로서는 본의 아니게 매우 희한한 이력이 생기고 말았다. 정작 본인은 아무렇지도 않게 그냥 평범하게 대통령을 했으나 자기 로 탄핵소추를 당한 유일한 대통령이 되었다. 결과 또한 전자의 경우 부활했으나, 후자의 경우 이미 처참한 결말을 맞은 정반대다. 그러나 의외의 사실이지만 이명박도 재임 시절, 야당에서 탄핵소추를 하려고 시도했던 적이 있다.#

  • 나이에 비하면 상당히 동안이다. 현재 76세이며, 임기 중에도 만 65세가 넘어간 할아버지였다. 당장 다음 대통령인 박근혜 대통령과의 나이차도 10살 이상이고 이전 대통령인 노무현 전 대통령보다도 나이가 많다. 운동을 하는 모습이 자주 보이는 걸 보면 자기관리를 꽤 열심히 하는 듯하다.

  • 유행어로는 '나도 해봐서 아는데~'가 있다. 사용 예로는 '나도 호떡 장사 해봐서 아는데~'.'내가 건물 만들어봐서 아는데~''내가 배도 만들어 봐서 아는데~' 식의 발언들이 있는데,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할 수 있다. 농담식으로 넘기면 될 듯. 그리고 여러 가지 장사를 해본 것은 사실이다. 대표적으로는 여고 앞에서 한 뻥튀기장사...가난했던 유년시절

  • 민주화 이후 최초로 임기 종료시까지 소속된 당에서 탈당하지 않고 당적을 유지한 대통령이다.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 모두 임기 말에 지지율이 떨어지면 소속된 당의 압력을 버티지 못하고 탈당했는데 처음으로 새누리당 당적을 지킨 채 임기를 마무리한 것이다. 현재도 새누리당 평당원으로 지내는 중이었으나 대통령 퇴임 이후 당 회비를 계속 안 내고 있다가 탈퇴했다. 대통령 임기 막판에는 인기가 시들해지고 지지율이 떨어지면서 당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신세가 되어버려 당 차원에서는 애물단지(?)가 되어버리기 십상이다. 결국 당으로부터 압력이 들어와 쫓겨나거나 탈당해버리는 관습이 존재한다. 일례로 전두환은 노태우에게, 노태우는 김영삼에게 토사구팽 당했고, 김영삼부터 노무현까지 전부 탈당하여 무소속으로 여생을 보냈다. 이명박이 당적을 유지한 배경으로는 퇴임 지지율이 높았던 점도 한몫했지만 그게 결정적일 정도의 수치는 아니었고(탈당했던 김대중과도 큰 차이는 없었다), 역대 대통령이 대선까지 어느 정도 영향력을 발휘했던 점과는 달리 친이-친박을 필두로 척을 지는 이미지가 강해서 박근혜와 크게 엮이지 않은 점이 큰 요소였다.

  • 논필가 지만원에게 뒷조사 시도를 당하기도 했다고 한다. 의외로 사이가 안 좋은 듯. 그의 주장으로는 이명박의 부친은 (이명박 본인의) 자서전에 언급한 대로 양반 태생이 아니며, 친일 행각을 한 노비이며, 부친의 원래 이름은 떡쇠이며(32세였던 쇼와 14년에 이충우로 개명함.) 이명박은 그의 일본인 사이에서 낳은 서자라고 했다. 다만, 지만원 평소 행적의 특성상 지만원의 말이 사실일 확률은 거의 없다.

  • 조지 워커 부시 미국 대통령과 좋은 관계다. 퇴임 후에도 사적으로 만난 적도 있었고 그가 소장하고 있는 그림 중에 이명박 초상화도 있다.

  • 청담동 가로수길 꼬르소 꼬모에서 아내 김윤옥 여사와 브런치를 즐긴다든지 원래 취미였던 테니스장이나 여러 공연장에서 목격되는 등, 꽤 여유로운 노후생활을 즐기고 있는 것 같다.

  • 대선 후보 당시 조선일보에서 진행한 문답 인터뷰에서 좋아하는 아이돌 스타로 원더걸스를 꼽았다. 다른 후보들도 같은 대답을 했다는 건 함정

  • 노홍철이 아는 형님 중 가장 높은 사람이다. 무한도전에서 "게스트로 초청하겠다"고 전화를 걸었지만 멤버들의 만류로 무산되었고 역시 돌+I 노홍철 본인에 의하면, 정치적 목적은 없고 실제로 친분이 있다 카더라.[60]

  • 서울특별시장 시절 탈모가 심해져, 모발이식 수술을 받았다. 실제로 서울특별시장 시절 재직 중 보면 거의 대머리 수준으로 탈모가 진행됐음[61]을 볼 수 있다. 또한 대통령 중 탈모로 인해 모발이식 수술을 받은 최초의 대통령이자, 어떻게 보면 미용 목적(?)으로 수술을 받은 두 번째 대통령이다. (탈모 수술은 서울시장 시절에 받았다.) 첫 번째는 눈꺼풀처짐 수술을 받은 노무현이다. 탈모가 질병이라면 미용목적이 아니지. 근데 탈모는 질병 맞잖아?

  • 박근혜가 대통령으로서의 직무수행을 못한다고 비난도 했었다. #.

  • 사적으로는 형인 이상은, 이상득사촌동생이재오와 사적으로 매우 친한 관계다. 배우 유인촌과도 상당한 친분을 가지고 있어, 취임하자마자 유인촌을 문화체육부 장관으로 임명했다.[62][63] 정운찬의 경우 예전에도 친분이 있었으나 능력을 높이 사서 한 때 국무총리로 임명하면서 더 친해지게 됐고 지금도 그 친분을 이어 가고 있다. 현재도 최측근들과 더불어 유인촌, 정운찬을 자주 만나는 편. 그리고 정운찬은 여기서 현재 범상치 않은 행보를 보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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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명박 대통령 본인의 아들 이시형보다, 형 이상득의 아들(조카)이 이명박과 외모가 유사하며, 어째 아버지 이상득보다 숙부 이명박을 닮은 편이다. 실제로 비교해보면 많이 닮았다. 장녀 이주연은 이명박을 빼닮았다.

  • 현재 국민의당 소속인 손학규하고도 상당히 친했다. 6.3 항쟁 때 이재오, 손학규랑 서로 알게 된 사이였던 데다가 한나라당 시절 서울시장때는 이명박, 이재오, 손학규 셋이 같이 만나 6.3항쟁 동지회라든지 모임을 상당히 많이 가졌었다고. 이들은 노무현 정부 시절 같은 한나라당 소속일 때는 소위 한나라당의 Big4로 언급되기도 했다. Big4에 박근혜가 껴있다는 건 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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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회의장정세균 의원의 경우 친노이지만 이명박, 이상득 형제처럼 대기업에서 종사했던 경험이 있는 데다, 이명박과 같은 고려대 출신인 공통분모가 있어 어느 정도 인맥관계로 얽혀있다.[64]

  • 제17대 대통령 당선 직후, 바로 심상정을 직접 찾아 가서 만나서 인사하기도 했다. 심상정을 은근히 높이 쳤던 듯하다 그러나 심상정은 이후 유시민과 의기 투합한 후 이명박을 맹비난하기 시작한다 여담으로 이명박의 개명 전 성명이 돌림자와 항렬을 맞춘 '상정'으로 심상정과 같다(...).[65] 여담으로 이명박이랑 노회찬은 같은 고려대학교 출신이라고.(...)[66] 그리고 노회찬, 심상정이 진보신당을 창당하던 때에 이명박은 대통령이었는데, 진보신당 창당 때랑 진보신당 창당 2년차 모두 이명박이 직접 축하 화환을 보냈다. 창당 2년차에도 축하 화환을 보낸 점을 봤을 때 이명박과 노회찬, 심상정이 과거에는 상당한 친분이 있었음을 추측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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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재 유명세를 타고있는 이재명 성남시장과 같은 경주 이씨이며, 종파도 같은 국당공파이지만, 이재명 본인이 이명박 대통령을 싫어하는 편이다(...).

  • 노무현과 더불어 상당한 자덕이다. 친한 이재오도 같은 취미를 갖고 있어, 종종 같이 타고 다니기도 한다고 한다.

  • 자기가 퇴임하기 전 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차기 대선주자로 염두에 두고 있던 인물이 매우 친한 사이인 이재오정운찬이었고, 이재오랑은 알다시피 매우 친해서 이재오가 출마선언을 했을 때 이재오를 지지한다는 의사를 표현하기도 했다.[67]

  • 현재는 상상하기 힘들지만, 과거에는 박원순 서울시장과도 상당히 친분이 있었다. 그러나 이명박이 대통령 취임한 직후, 박원순은 이명박을 맹비난하면서 사이가 멀어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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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퇴임 이후 기존에 살던 논현동이 아닌 내곡동으로 집을 옮기려했으나, 아들 이시형내곡동 사저 매입 의혹과 관련해 불구속 기소를 당하는 바람에, 논현동에 계속 거주 중이다.

  • 어찌된 일인지 이명박은 자신이 대통령이 되기도 이전이었던 2007년, 박근혜가 대통령이 될 시에 최태민 일가의 국정농단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발언을 하였고, 뜻밖에도 이는 현실이 되었다. 다만 박근혜의 무능과 최씨 일가와의 관계는 당시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던 사실이었다. 단지 이들이 자기보신 등 여러 가지 어른의 사정 탓에 침묵을 택했거나 혹은 이 기사처럼 쓴소리나 폭로를 해도 묻히던 시절이었다. 어쨌든 2007년 경선 과정에서 벌어진 양측의 네거티브 공방은 훗날 서로를 목 죄게 된 올가미가 되었다고 보기도 하나,[68] 이명박前 대통령의 경우, 대통령 당선 이전에도 박영선정봉주가 BBK, 다스 관련 의혹을 박근혜 캠프를 능가할 정도로 매우 끈질기게 제기했던 만큼, 박근혜가 이런 의혹을 전혀 제기하지 못했어도 대선 과정에서 박영선, 정봉주 등의 민주당계 인물들에 의해 의혹으로 공격당했을 가능성이 여전히 매우 높다.

  • KBS 2TV ‘추적60분’에서는 검찰과 권력 2부작 2편에서 ‘검사와 대통령의 아들’편이 방송 됐는데, 2014년 검찰이 마약 투약과 관련해 김무성 의원 예비 사위의 자택을 압수수색 했지만 용의선상에 있던 사람들을 조사하지 않았다는 진술이 나왔다. 방송 내용을 요약하면 강남 클럽에선 대부분 마약을 하는데, 이시형이 이 강남클럽을 자주 갔다고 한다. 검찰도 김무성 의원 예비사위의 집에서 모두 9개의 주사기를 발견했다. 중앙지검 강력부에서 마약 수사 중 이명박 전 대통령 아들의 이름이 나왔지만 수사에 들어가진 못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 인터넷상에서는 이명박 전과 14범설이 퍼져 있다. 이는 2007년 중순 박근혜와 이명박이 대통령 경선을 놓고 신경전을 벌이던 당시 박근혜 측 한 의원의 입에서 처음 나온 발언(#)으로 추정된다. 이후 다른 반이명박 진영에서도 이를 적극 받아들여 널리 퍼트리는 데 일조했다. 하지만 위의 링크는 법에 대해 잘못 이해하고 있는데, 구속, 입건, 기소와 전과는 별개이며, 이 자료만으로는 전과 14범인지 알 수 없다. 기소전과 문서 참조. 확실한 전과에 대해 말하자면, 6.3 항쟁 당시 유죄를 선고받고 투옥되었으며, 1996년 선거법 위반으로 벌금형을 받은 바 있으나 이는 사면받았다. 그 밖에 CEO시절 크고 작은 벌금형을 받았다는 얘기(#)가 있으나 본인이 공개하지 않는 이상 정확한 사실 확인은 어렵다.[69]

  • 서청원과는 한때 친분이 있었으나,[70] 2007년 서청원이 친박계가 된 직후에는 견원지간으로 변했다.[71] 이는 이재오도 마찬가지.그 대가로 서청원은 친이계에게 찍혀서 한나라당 18대 국회의원 경선에서 탈락하게 된다

  • 박근혜와 친박을 제외한 이명박 前 대통령에게 적대적인 인물들(민주당계, 진보계)에게는 딱히 직접적으로는 크게 언급을 한 바는 거의 없으나, BBK와 다스 관련 의혹을 모조리 파헤치며 공격한 정봉주만큼은 상당히 싫어하는 것으로 보인다.[72][73]

  • 진중권에게 "궁예의 말년을 보는 것 같다"는 비난을 당하기도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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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격 자세와 관련하여 논란이 인 바 있다. 다만, 서울특별시장 시절에도 경계 근무를 서면서 사격 자세를 잡았는데, 그때는 군 면제자같지 않은 정상적인 자세를 취했다.#

  • 대통령 재임 시절, 아이폰을 사용하는 것이 목격된 적이 있다. 다만, 현재도 사용하는지랑 애플빠인지는 확실하지 않다.[74] 여담으로 노회찬은 확실히 본인이 애플빠임을 인증했다.

4.1. 먹방 광고 대통령[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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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은 배고픕니다

대통령 재직 시절 냉면은 물론이고 보신탕까지 즐겨먹을 정도로 딱히 가리는 음식이 없었으며 만두, 풀빵, 등 군것질거리나 젊은 입맛인 피자스파게티도 좋아했다고 한다. 특히 대선 광고 때 보여준 국밥 먹방은 보는 사람마저 입에 침이 고일 정도이고, 어묵 먹는 사진이나 가래떡 먹는 사진이 있다. 정치인들이 원래 보여주기식 서민 코스프레 쇼를 잘하게 마련이라 하더라도 비교적 맛있어 보이게 먹을 수 있는 정치인인 편이었다. 심지어 모든 현역들과 예비역들이 악평하는 군대 짬밥도 맛나게 잡수신다.

대선 후보 당시 <김승현, 정은아의 좋은 아침>에서 김승현 아나운서가 이명박 후보의 집을 찾아가서 아침밥을 대접받았는데, 찌개 사이즈의 돌솥에 쌀밥을 짓고 날계란을 넣어서 먹는 모습을 보여주었다.[75] 뜨거운 쌀밥에 계란과 간장을 넣고 비빈 간장 비빔밥은 기운이 없을 때마다 별식으로 부탁해서 먹을 정도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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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런 그도 후쿠시마 오이 먹방만은 실패. 어째 셋 다 찝찝함을 감출 수 없는 표정이다. 후쿠시마 오이 시식은 사전 협의도 없이 갑작스럽게 시행되었다고 하니 아무리 이명박이라도 제대로 먹방을 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참고로 좌측의 일본 정상은, 당시 일본 총리 간 나오토. 시식 직후 후쿠시마산 오이라는 통역을 들은 수행원들은 황급히 시식한 오이의 방사능 수치를 검사했다고 한다. #

4.2. 수트핏의 대가[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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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대기업에서 고위직을 오래 지낸 경험 덕분인지 양복 고르는 안목도 제법 있는 데다가 대통령 중 비교적 큰 키에(173cm)[76][77] 슬림한 몸매 덕분인지 수트빨을 잘 받는 패셔니스타이기도 하다. 연관 검색어에도 수트핏, 수트간지 등이 있을 정도. 다른 정치인과 찍은 사진을 봐도 신체비율도 일품. 때문에 얼굴만 가린 채로 낚시로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링크 다만, 수트핏의 경우 이명박과 마찬가지로 대기업을 경영해본 경험이 있는 둘째 형 이상득도 정장을 보는 안목도 똑같이 뛰어난데 이명박보다 키가 더 크기까지 해서 형 이상득에 비해서는 수트핏을 한 수 아래로 친다.(...)

그리고 자기관리에도 철저해서 샤넬 메이크업 베이스, 유리아주 립밤, 디올 립글로우, 아벤느 미스트, 설화수 기초 등을 사용한다고(...). 인터넷에서는 맹뿌템, 명박템으로 불리고 있다. 기자들이 "그가 지나가면 짙은 향수 냄새가 남아있었다"고 회고하기도 한다.

5. 말말말[편집]

금년 1월달에 BBK라는 투자 자문회사를 설립을 하고 - 2000년 광운대 강연 중에서[78]

"내가 해봐서 아는데" -이명박 대통령이 자주 했던 말

"뭐 내곡동 땅이 bbk가 어떻다고요 새빨간 거짓말입니다 여러분. 한방에 간다 한방에 간다 하더니 한방이 어디 갔습니까?" -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당시

온갖 음해에 시달렸습니다 여러분 이거 다 거짓말인 거 아시죠? -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당시

"경제, 반드시 살리겠습니다!" - 이명박, 제17대 대선 당시

"아마 내년되면 (주가가) 3000을 돌파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저는 실물경제를 한 사람이기 때문에 허망한 정치적인 이야기를 하지 않겠습니다. 더 나아가 임기 5년 중에 제대로 되면 5000까지 올라가는 것이 정상입니다. 주가가 진정한 평가를 받을 수 있는 가장 큰 요인은 정권교체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권 교체를 하면 주가가 전반적으로 상향조정 될 것입니다." - 2007년 12월 14일 여의도 대우증권 본사에서

"이런 위대한 국가 대한민국 국민을 가지고 왜 우리나라가 이렇게 어려워하고 있습니까? 이것은 단지 지도자를 잘못 만났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여러분" - 2007년 대통령 후보로 지지자들에게 연설 중

“대통령 당락에 관계 없이 우리 내외가 살 집 한 채만 남기고 가진 재산 전부를 내놓겠다” 2007년 12월 7일 대통령 선거 전 KBS 선거방송연설 중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 - 박영선 現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이 이명박에게 악수하면서 "왜 그러세요? 저 똑바로 못 보시겠죠?" 하면서 쏘아 붙이자 맞받아치면서[79]

“제 임기 중에 일어난 사회지도층의 권력형 부정과 불법에 대해서는 이미 여러 차례 밝힌 대로 관용을 베풀지 않을 것입니다.” -2009년 라디오 연설 중에서

"방송을 장악할 수 있다, 언론을 장악할 수 있다"하는 시대는 지나갔다. - 이명박, 2009년 7월 27일 20차 라디오 연설에서
그래서 국정원 댓글부대를 조직하셨다

"우리 정권은 돈 안 받는 선거를 통해 탄생한 특성을 생각해야 한다, (우리는) 도덕적으로 완벽한 정권이므로 조그마한 허점도 남기면 안된다" - 2011년 9월 30일 청와대 확대비서관회의 중

"너 이름이 뭐지?"[80]

"어떻게 이렇게 부끄럽고 부끄러운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시위에 나온 여러분과 같은 심정입니다만, 정말로 참담한 심정입니다. (박근혜가) 국민들의 뜻을 잘 받아줬으면 좋겠고..." - 2016년 11월 21일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발발 직후 김영삼 前 대통령 서거 1주기를 맞아 김영삼 대통령의 묘지에서 참배하면서 기자와 인터뷰를 하면서

"본인이 뭐라고 하든 전 국민이 다 알고 있으니 국민들 뜻에 따르면 되겠죠." - 박근혜 탄핵소추안 가결 직후 박근혜가 탄핵 사유를 부인하는 것에 대해 기자들과 인터뷰하면서

"한국의 보수는 한 시대가 정리됐다. 이재오 늘푸른한국당 대표는 내가 오랫동안 지켜본 인물이다. 개혁적이고 진취적이면서 리더쉽, 청렴함, 강직함을 모두 갖춘 이재오 대표가 새로운 보수를 재건할 적임자이다." - 사실상 늘푸른한국당 이재오 대표의 대선출마 지지 선언을 하면서

"저는 새로운 정부가 들어오면서 일말의 기대를 하고 있던 사람 중에 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지나간 6개월 적폐청산이라는 명목으로 보면서 이것이 과연 개혁이냐 감정풀이냐 정치보복이냐 이런 의심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2017년 11월 12일 바레인 출국 전 인터뷰에서

"적폐청산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되는 검찰 수사에 대하여, 많은 국민들이 보수 궤멸을 겨냥한 정치공작이자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에 대한 정치보복이라 보고 있다. 제 재임 중 일어난 모든 일의 최종 책임은 저에게 있다. 더 이상 국가를 위해 헌신한 공직자들을 짜맞추기식 수사로 괴롭힐 것이 아니라 나에게 (책임을) 물어달라” -2018년 1월 17일 기자회견에서

6. 저서[편집]

  • 신화는 없다 : 1995년에 이명박이 자신의 생애를 돌아보면서 쓴 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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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가족 관계[편집]

  • 아버지 이충우 (1907 ~ 1981)[81] / 어머니 채태원 ( ~ 1964)

    • 누나 이귀선 (1930 ~ 2010) / 夫 김일용

      • 조카 김동석

      • 조카 김동혁 (1951 ~ ) 前 현대산업개발 자재부장[82]

    • 이상은 (1933 ~) 다스 회장 / 妻 박청자

      • 조카 이동형 다스 부사장

      • 조카 이?? / 夫 전종화 (1966 ~ ) 前 씨모텍 부사장[83]

    • 이상득 (1935 ~ ) 前 국회부의장 / 妻 최신자 (1941 ~ )

      • 조카 이지형 (1966 ~ )맥쿼리-IMM자산운용 대표 / 妻 조재희 (1973 ~ )

      • 조카 이성은 (1969 ~ ) / 夫 구본천 (1964 ~ ) LB인베스트먼트 대표이사 사장[84]

      • 조카 이지은 (1970 ~ ) / 夫 오정석 (1970 ~ ) 서울대학교 경영학과 교수[86]

    • 누나 이귀애[87]

    • 이상정 (나중에 이명박으로 개명) / 妻 김윤옥 (1947 ~ )

    • 여동생 이귀분[97] / 夫 김진 에스엠 대표[98]

    • 남동생 이상필[99]

8. 선거 이력[편집]

연도

선거 종류

소속 정당

득표수 (득표율)

당선 여부

비고

1992

제14대 국회의원 선거 (전국구)

민주자유당

7,923,718 (38.5%)

당선 (25번)

1996

제15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종로)

신한국당

40,230 (40.5%)

당선 (1위)

[100]

2002

제3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서울특별시장)

한나라당

1,819,057 (51.8%)

당선 (1위)

2007

제17대 대통령 선거

한나라당

11,492,389 (48.7%)

당선 (1위)

9. 관련 문서[편집]

[1] 개명하기 전 이름은 이상정으로, 형 이상은, 이상득처럼 상자 돌림이다.[2] 정확한 명칭은 일본 오사카 부 오사카 시 히라노 구 가미후쿠이도 정. 근처의 가미미나미(加美南) 정과 혼동되어 가미미나미후쿠이도(加美南福井戶)로 잘못 알려지기도 했다. [3] 정확한 주소는 서울특별시 강남구 학동로23길 42.[4] 경주 이씨 39세손 '相'자 항렬이다. 개명 전 이름은 이상정(李相定)이다. 대구 출신 독립운동가이상정과는 본관, 한자, 항렬까지 똑같은 동명이인이다.[5] 큰형 이상은, 작은형 이상득, 이명박 대통령으로 3남이며, 2녀는 정치에 등장한 적이 없다. 2녀 중 큰누나인 이귀선은 2010년 사망하였다. 여동생 이말분은 훗날 이름을 이윤진으로 개명하고 선교사가 되어 중국에서 선교활동을 한다. 하지만 실제로 이명박은 남동생이 있었고, 형제는 총 4남 3녀였는데 누나 1명과 남동생 1명이 한국전쟁 당시 어린 나이에 사고로 사망하여 실질적으로 3남 2녀로 성장한 것이다. [6] 아호는 원래 일송(一松)이었으나 서울특별시장이었을 때인 2005년 10월 26일에 있었던 청계천복원시민위원회 전체 회의에 참석한 고대 동문 김정배 위원장의 권유에 따라 청계(淸溪)로 바꿨다.[7] 자세한 내용은 이명박의 저서 <신화는 없다>를 참고 할 것.[8] 이 때문에 이명박을 2MB라고 부르기도 했다. MB에 2(李)를 덧 붙인 것[9] 전두환, 노태우는 12.12 사건 등의 판결로 인한 예우 박탈(사면되었으나 경호 이외 예우 불가), 박근혜는 탄핵파면으로 예우 박탈, 나머지는 전원 사망하여 해당사항이 없으며, 현직 대통령인 문재인이 별탈없이 퇴임한다면 이 내용이 수정될 수도 있다.[10] 다만 최근 이명박의 측근들이 비리 유무 관계로 조사받고 있음에 따라 조사를 받게 될지, 수사가 들어간다면 구속수사/불구속수사를 받게 될지, 유죄판결이 나올지 무죄판결이 나올지는 미지수다. 현재 일부 시민단체와 범 친노계 정치인들이 구속수사하라고 시위하는 중이다. 만약에 유죄판결을 받아도, 벌금형에 그치면 전직 대통령 예우는 그대로 유지된다. 얼핏 생각하기에 집행유예(벌금 집행유예 제외)를 받아도 예우가 유지될 것 같지만, 전직대통령 예우에 관한 법률은 "금고 이상의 형이 확정된 경우"라고 하고 있지 실형이 확정된 경우라고 하고 있지 않으므로, 집행유예를 받아도 예우가 박탈된다.[11] 이 중 1남 1녀는 어릴 때 요절해 3남 2녀가 되었다.[12] 현재 경상북도 포항시 북구[13] 그의 친형들도 모두 이 학교를 나왔다. 그럼 이상득은 야간학교를 나왔는데 서울대를 간 건가?[14] 현재는 경영대학.[15] 당시 서울대 입시에서는 제2외국어 반영을 하고 있었는데, 동지상고 야간반은 제2외국어를 가르치지 않았던 실업계였던지라 서울대는 생각조차 못했다고 한다.[16] 심지어 이 문서의 이전 버전에도 마치 사실인 것처럼 쓰여있었다.[17] 이 대금은 2003년 후세인 정권이 이라크 전쟁으로 붕괴한 후 일부 돌려받았는데, 이 전 대통령이 자서전 <신화는 없다>에서 후세인 정권하 관료들의 매너 및 일하는 태도를 극찬한 일을 비춰본다면 아이러니한 일.[18] 선배인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졸업자들의 업적까지 이명박 사장의 작품으로 나온다.[19] 여담으로, 이 당시 이 사건을 담당한 대법원 재판부에서 주심을 맡은 대법관이 바로 훗날 노무현 탄핵심판 대리인으로 활동하고, 노무현에 의해 대법원장으로 임명된 이용훈 대법관이다. 유죄가 확정되고 나서 이명박은 이용훈에게 판결이 틀렸다며 편지까지 보냈다고 한다.[20] 사실 386세대의 대표주자로서 이때만 해도 상당히 끝발 날리던 정치인이었다. 젊은 정치인으로 15대 총선에서 최연소 당선되었고 386세대 대표주자라는 위상을 밀어붙이며 서울시장까지 노렸으나, 뒤에 나온 대로 이명박에 밀려 낙선. 그리고 제16대 대통령 선거에서 정몽준을 지지하며 당을 옮기면서 철새라는 오명을 쓰게 되었다. 이후 "가출했던 아들이 집에 돌아온 심정이다"라는 말을 남기며 민주당에 복당, 김민'새'(...)라는 오명을 얻은 채로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낙선하였고, 군소 정당인 민주당(2014년)의 대표로 있다가 최근에 와서야 겨우 더불어민주당복당하였다. 여전히 정치는 하고 있으나 예전의 위상을 찾을 수가 없다. (2010년 불법정치자금 수수로 5년간 선거권 박탈.)[21] 정확히는 취임 1년차가 된 직후였던 2003년 7월 1일부터 시작하였다.[22] 단순히 이름만 붙인 게 아니라 품질관리를 도입한 계기가 되었고 오세훈, 박원순 시장 시기에도 아리수의 품질관리가 잘 계승되고 있다. 따라서 아리수 브랜드 런칭 역시 이명박 시장의 치적 중 하나로 인정받을 만하다.[23] 이회창 등 다른 군소후보들도 있었으므로, 정확히는 일대일 대결은 아니었다. 그런데 이회창은 군소후보라고 하기에는 최종득표율이 만만 찮았다. [24] 이회창이 이명박의 지지율만 흡수할 것이란 예상과는 달리 정동영 후보의 지지율도 상당수 흡수했다. 대통합민주신당한나라당도 좋아하지 않았던 20대의 표심이 반영된 것이다. 사실 이회창 지지율의 대부분은 이인제의 지지율을 전부 흡수한 것이라 볼 수 있다.[25] 이 기록은 2017년 대통령 선거에서 문재인이 경신한다[26] 이 당시는 서울대학교 총장으로 비노계의 대권 주자로 언급됐는데, 한나라당열린우리당에서 모두 언급되었다.[27] 임기 중후반부터는 안경을 쓰는 모습을 많이 보였다.[28] 사실 노무현 대통령의 임기가 2월 25일자로 종료되기 이전의 사건이긴 하나, 정말 임기가 얼마 안 남았기 때문에 사건과 관련해서는 보름 후에 대통령이 될 이명박이 더 주목받았고, 서울시장 시절 숭례문을 개방했기에 직접적인 연관점도 많았다. 물론 대부분의 사후 처리는 이명박 재임 중 이루어졌다.[29] 남북관계를 완전히 냉각시킨 시발점으로서 의미있는 중요한 사건이다. 이 사건 이후로 금강산에는 단 1명의 남한 관광객도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30] 아동 포르노의 정의가 실제 아동 청소년에서 아동 청소년으로 인식되는으로 바뀌었다.[31] 사무실이 서울특별시 강남구 테헤란로에 위치한 임대료 월 1,300만 원에 달하는 임대료에 퇴임 직전에 공사한 삼성동 자택 유지비용도 그토록 아방궁이라 공세를 벌였던 노무현경남 김해시 봉하마을 자택보다 높은 것으로 드러나 물의를 빚었다. 특히 임대료와 자택 수리비용은 모두 다 국민 혈세로 충당된다는 사실이 논란이 되기도 했다.[32] 사실 대통령 취임 이전에도 7년간 맡았던 적이 있었다.[33] 사실 그는 김영삼과 인연이 있는데, 김영삼이 "우리는 도덕적 선구자가 아닌 능력있는 정치인이 필요하다"라는 말을 남기며 정치계로 발굴해낸 인물이었다.[34] 다만, 이명박도 김영삼처럼 속으로는 박근혜를 맘에 안 들어했기 때문에, 정권 초에는 오히려 친박 계열들을 경선에서 대부분 쳐내고 가까이 하지 않으려는 움직임 및 구실이 생기면 트집잡아서 박근혜를 쳐내려는 움직임까지 보였다. 즉, 이런 의사표현은 박근혜에 대한 강한 불만 표현이라고 보면 된다.[35] 다만, 박원순과는 MB 정부 시절 전, 서울시장~대선후보 시절까지는 상당한 친분을 가지고 있었으나, MB 정부 출범 직후 상호간 정치적 견해 차이로 인해 대립하는 모양새로 변했다. 검색 엔진에서 찾아봐도 나오며, 박원순 문서를 참조해도 알 수 있다.[36] 반면 김무성은 어렵다고 평가했다. 개인적으로는 오세훈을 생각하고 싶으나, 오세훈도 아직 경쟁력에서 떨어진다고 평가했다.[37] 다만, 손학규에 대해서도 먼저 평가한 것과 아쉬워하는 평가를 남긴 것을 고려하면 손학규같은 인사를 내세울 가능성도 충분하다. 아니면 남경필이나[38] 늘푸른한국당의 창당 예정일이 2017년 1월 내인데, 탈당 견해를 밝힌 시기와 창당 시기를 고려하면, 곧 탈당할 것으로 여겨진다. 실제로 이명박이 대통령 시절, 차기 대선후보로 염두에 두고 지지했던 인물은 이재오와 정운찬이었고, 이 두 인물 모두 이곳에 있다. 여러 가지로 시기를 고려해서 탈당 시기를 정했을 것 같다. 어쩌면 노리고 있었을지도[39] 다만, 이명박 대통령과 늘푸른한국당의 성격을 감안했을 때, 언론에 노출되지 않는 방식으로 적극 지원할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고 여겨진다.[40] 이 때문에 과거 공정성과 신뢰도에서 1위를 달리던 MBC가 극우 언론매체로 변질되며 정권의 어용방송으로 전락해버렸다. 훗날 MBC 블랙리스트 사태까지 터지면서 이명박 정권의 시궁창스러운 공영방송의 현실이 제대로 드러났다.[41] 참고로, 공범자들에서 최승호 PD에게 언론 장악의 책임을 추궁당할 때에도 혀를 낼름거렸다. 현 상황에 대해서 이명박 전 대통령이 상당히 초조해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42] 집사라고 불리며 이명박의 재산을 관리하는 혹은 관리했던 김희중 전 실장, 김백준 전 기획관, 이병모 청계재단 사무국장등이 검찰에 소환만 됐다하면, 그날 저녁 혹은 다음날에 실토했다는 기사가 바로 나올 정도다. 사실 정두언 전 의원에 따르면 이명박 전 대통령은 서울시장을 하기 전부터 '극도로 계산적인 사람'이라고 악명이 자자했으며(정두언 전 의원이 이명박의 서울시장 러닝 메이트 제안을 받았을 때도 주변에서 이를 근거로 만류했다고.) 주변 관계에서도 이러한 성향이 여지없이 드러나고 있는 샘.[43] 덤으로 이 사건을 문재인 정부의 원전 게이트라고 부르며 공격을 퍼부었던 자유한국당역풍을 맞았다.[44] 국정원의 최중요 예산으로 절대 함부로 건드려서는 안 되는 대북공작금을 멋대로 유용한 건이라 특활비 상납 사건과는 비교가 안 될 만큼 심각하다.[45] 상황이 다르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성명서와 크게 대비된다. 노 전 대통령의 것은 자신에게 책임을 물으라고 하는 부분은 동일하지만 동시에 자신을 버리라는 결연한 말과 함께 자신의 사람들 더 나아가 자신의 몸 담은 진영까지 휘말리는 것을 막으려고 했지만 이명박 전 대통령은 어떻게든 자신과 보수 진영을 엮으며 살려달라고 붙잡는 모습이다.#[46] 또 문재인 대통령이 이명박의 기자회견을 듣고 분노한 대목은 바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에 대한 정치 보복이라고 생각한다."는 대목이었다. 이 말은 조금만 생각해 보면 결국 이명박 자신이 노 전 대통령에게 보복을 가해 죽였다는 걸 시인하는 것이다. 만약 노 대통령의 사망과 이명박 본인이 아무런 연관이 없다면 굳이 현재 자신에게 들어오는 압박이 '노무현 대통령 사망에 대한 보복'이라는 말을 갖다 붙일 필요가 없다. "노무현 대통령은 그저 자신의 추악한 비리가 드러난 것에 대해 부끄러움을 느끼고 저승으로 도피한 것이고 나는 그걸 바로 잡으려다가 불의의 사고가 난 것뿐이다."고 말하면 되니까. 정말로 자신에 대한 수사 압박을 정치 보복 프레임으로 얽고 싶었다면 "문재인 대통령이 내게 사적 원한을 품고 나를 압박하고 있다."고 해야 씨알이 먹혀도 먹혔을 것이다. 근데 저렇게 말했으니 결국 자신이 노무현 대통령을 억지로 추달하여서 죽였다고 자인한 자충수가 되었고 노무현 대통령의 평생의 벗이었던 문재인 대통령이 당연히 분노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야말로 역린을 건드린 것이다. 이 와중에도 이명박의 측근들은 "아픈 곳을 건드렸냐"며 현 정부를 비난하면서 국민들의 더 큰 분노만 일으켰고, 검찰은 이런 이명박의 성명을 무시하고 고강도의 수사를 이어가고 있다.[47] 김희중은 이명박이 정계에 진출한 이후 약 15년간 MB의 집사를 맡아온 거의 분신 같은 사람이라고 한다. 그런데 저축은행 관련해서 김희중이 돈을 받자(그나마도 받은 돈을 한 푼도 사용하지 않고 보관만 해놓았다. 정두언 전 의원이 말하길 김희중은 너무 착한 사람이라 뇌물을 받을 성격이 아니며 준 쪽에서 갖은 수단을 동원해서 어쩔 수 없이 받았을 거라는 추측을 했다) 곧바로 그를 헌신짝처럼 버렸다. 게다가 그 일로 김희중이 복역중이었던 당시 그의 아내가 생활고에 시달린 끝에 자살할 때 까지 단 한 번의 눈길조차 주지 않았으며, MB 측 인사가 장례식장에 참석하지 않았다고 한다. 아마 이 일로 인해 김희중이 이명박과 손절한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한 증거로 김희중은 검찰 조사를 받고 나오는 날 아침에 '저는 더이상 아이들한테 부끄러운 아빠가 안 될 겁니다.라는 문자를 지인에게 보냈다.[48] 이명박 前 대통령의 용인술은 각별한 인연을 통해서 맺어진 인맥들은 철저히 챙기고(그 예로 김영삼 前 대통령 및 형 이상득과 이재오, 최시중 및 본인과 예전부터 매우 친했던 인물들(영포회 등의 친목집단 포함)만큼은 매우 각별히 챙겼다) 이들을 통해서 맺어진 인물들에게도 매우 각별한 대우를 했던 반면(특히 박형준, 이동관, 임태희의 경우 각각 이재오, 최시중, 이상득을 통해 친분이 깊어진 인물들로 MB의 최고 복심으로 알려져 있다. 김백준의 경우는 MB 본인의 최심복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만큼은 확실히 위의 인물들 못지 않게 이명박의 총애를 받았던 인물들이다), 자신에게 안좋은 쪽으로 한번 찍힌 사람들은 한때 가까웠던 사람이라도 언제 그랬냐는 듯이 내치는 스타일이었다. 이명박 본인의 비서관이었으면서 눈에서 벗어난 김희중 외에도 정두언, 정태근, 남경필이 이명박의 측근으로 있었는데, 이들은 이명박에게 마음에 안 드는 직언을 하다가 이명박의 눈 밖에 나게 되었고, 이후 이명박의 집단에서도 홀대를 받았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집권에 이들의 공적이 상당한 것을 생각하면, 이명박은 한번 눈 밖에 난 사람한테는 지난 인연도 생각하지 않고 홀대하는 성격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어찌보면 그런 성격을 가지고 타인을 대하는, 다시 말하면 역량이 떨어지는 용인술로 인해 지금 시점에 와서 이렇게 궁지에 몰리게 된 것일 수도 있다. 남경필, 정두언, 정태근은 다들 완전히 이명박과 연을 끊고 친이계를 떠나 돌아섰으며(특히 남경필의 경우 이상득과 사이가 틀어져 불법 사찰 대상이 됐다는 논란까지 생기자, 이때부터는 대놓고 이명박을 비판하기도 했다), 김희중은 아예 내부 고발자 역할을 하면서 이명박 전 대통령의 목을 죄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 점을 생각하면 이명박 전 대통령의 용인술에 확실히 문제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49] 보복이라는 단어는 피해를 입은 당사자가 가해자에게 하는 행동이므로 이명박이 노무현에게 한 행위는 보복이라는 단어가 어울리지 않는다.[50] 이 단독보도를 MBC 뉴스데스크가 터트렸는데, 과거 이명박 정부 시절 극우화 되어 정권의 어용방송급으로 전락한 뉴스데스크가 현재 방송 정상화된 후 이명박에게 반격을 가하게 된 것이다.[51] 바른정당은 원내 의석이 9석밖에 안 되어서 제 몸 건사하기도 버거울 정도이고 자유한국당은 여전히 친박계가 건재함을 과시하고 있는데 문제는 친박계는 이명박을 불구대천의 원수 취급하는 집단이란 것이다. 전체적으로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한 방어는 포기하고 그거할 시간에 문재인 정부 비판에 집중하는 상황이다. 정부 비판도 잘 안 먹혀서 문제지[52] 아이러니하게도 친이계를 거세시킨 것은 같은 당의 친박계들이다! 19대 총선, 20대 총선에서 칼자루를 쥔 친박계가 친이계를 포함한 비박계를 싸그리 공천학살하는 바람에 친이계가 세력이 지리멸렬해진 것이다.근데 공천학살을 먼저 시작한 쪽은 친이계다. 어찌 보면 무모한 3당 합당의 부작용이라고 볼 수 있다. 정파, 정당이라는 것은 하나의 이념을 공유하는 정치 세력인데, 3당 합당은 다양한 세력들이 대권을 위하여 합당한 것이다. 그러다 보니 당이 시간이 지나도 친이, 친박, 친홍등 색깔이 다른 계파가 다른 계파를 잡아 먹으면서 지내왔다. 자연스러운 주류 계파의 이동이 아니라, 서로 학살에 학살을 거듭하여, 커왔기에 같은 당이라고는 하나 계파 간에는 서로를 원수처럼 본다. 민주당계 정당들도 내부 총질로 소란스럽기는 마찬가지였지만, 국민의당의 분당 이후로 이런 소란은 줄어들었다. 지금은 친노-친문의 주류 계파를 거치면서 상당히 안정적인 정당이 되었다.[53] 국정원의 정치공작과 특활비와 대북공작금 사적 유용, 다스 관련 가족 비리, 자원외교 과정에서 불법, 위헌적 소지 이면합의와 각종 비리들, 정경유착(롯데와 현대), 민간인 사찰과 영포라인을 위시한 비선조직의 국정농단 등 너무 많은 비리 정황이 드러나고 있는 상황이다. 측근이었던 정두언 전 의원이 '정권을 잡은 게 아니라 이권을 잡았다', '조직폭력배 정부' 라고 공개방송에서 말할 정도. 이 때문에 박근혜정부 그 이상의 범죄 집단이라는 의견도 있다.[54] 혐의에서도 차원이 다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뇌물 수수로 의심받았던 대상은 조카사위 연철호와 영부인 권양숙이 투자받은 500만 불, 여식 노정연이 유학자금 및 전세금으로 쓴 140만 불이다. 노무현 측은 이 금액에 대해 각각 투자계약서와 차용증을 증거로 제시했고(계약서가 있더라도 뇌물로 볼 수 있는 판례는 이미 있지만), 이것을 뇌물이라고 증명하기 위해서는 최소한으로는 노무현 대통령이 재임 시절 총 640만 불의 수수를 지시했거나, 인지하고 있었다는 증거가 있어야 하며, 나아가서 노무현이 재임시절 태광실업 및 박연차 회장에게 무슨 대가를 지급하였는지에 대한 물적 증거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당시 대검 중수부는 이들 중 아무것도 제시하지 못한 채 국정원과 손잡고 망신주기 언론플레이에만 집중했고, 나아가 강금원 등 측근들이 뇌종양으로 누가봐도 목숨까지 잃을 상황에 처했음에도 병보석을 막으려고 노력하며 결국 노무현을 압박했다. 그에 반해 이명박이 받는 혐의는... 바로 위 각주에 잘 설명되어 있을 뿐더러 물적증거가 너무나도 명백한 것들이 많다. 심지어 정치보복이라고 볼 만한 근거라고는 '노무현의 죽음에 대한 원한'이라는 심증밖에 없다.[55] MB의 현재 나이(76)를 감안하면 사실상 종신형이나 마찬가지다. 게다가 이 건뿐만 아니라 다른 사건 곳곳에서 받고 있는 혐의가 수두룩하다.[56] 사실 삼성 측이 아무런 부인없이 곧바로 검찰에 가서 시인했다. 이렇게 되면 이건희 회장은 뇌물공여죄로 처벌받게 되지만 뇌물공여죄는 뇌물죄보다 형량이 무척 가볍고 이건희 회장이 현재 고령인 데다 병원에 입원에 있는 만큼 그렇게 엄한 법의 심판을 받지 않게 될 것이라는 계산하에 진술했다는 평이 있다. 이건희에게 상당부분 책임을 넘기고, 사망발표하면 된다.[57] 그러나 회동이 열리는 장소에는 기자들이 쫙 깔려서 참석자들을 일일이 촬영하며, 4대강 사업지를 장소로 잡는가 하면, 이명박 본인도 입구에서 인터뷰를 종종하며 정치적으로 이용한다.[58] 정확히는 현재의 서울 지하철 9호선 고속터미널역 8-2번 출구의 건너편.[59] 영웅시대에서 이명박 역으로 열연하였다.[60] 이명박의 서울시장 시절 노홍철이 청계천 홍보대사가 되었을 때, 이명박과 인사하는 자리에서 노홍철의 말실수로 형님이라 부른 적이 있었는데, 이명박이 대수롭지 않게 웃어넘겼다. 당시 노홍철은 이 발언으로 "서울시장에게도 형님이라 부르는 돌아이"라는 등 언론에 상당한 이슈가 되었다. 이후 노홍철이 사과를 했으나 이명박이 오히려 괜찮다며 노홍철에게 동생이라 불렀고, 노홍철은 대통령 취임식까지 초대를 받았다.[61] 실제로 친형 이상득은 완벽하게 대머리다.[62] 유인촌이 한 드라마에서 이명박 역을 맡기도 했었던 만큼, 연결관계가 이때부터 생겼을 수도 있다.[63] 여담으로 노회찬의 경우는 박중훈과 상당히 친한 사이이다.[64] 실제로 정세균은 친노계 중에서 이명박의 형 이상득과도 인맥관계로 맺혀 있는 몇 안 되는 인물이다.[65] 의외의 사실이지만 이명박이 옛날에 학생 운동을 했던 시절이 있어서 그런지 노회찬, 심상정과도 면식이 있다고 한다. 이재오가 운동권 출신이라 이들과 인맥관계로 엮여 있는데, 이명박이 이재오와 매우 친밀한 사이인지라, 이명박도 예전부터 노회찬, 심상정과 인맥관계로 엮여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66] 그래서 그런지 노회찬, 심상정이 이명박 대통령 취임 전부터도 이명박과 전혀 어색하지 않게 지냈다.[67] 실제로 이재오뿐만 아니라 반기문과 홍준표, 유승민이 이명박을 예방했는데, 이재오가 늘푸른한국당 대선후보로 출마했을 때, 이명박은 이재오가 차기 대통령으로 가장 적합한 인물인 것 같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역대급 사태로 범보수계 정치세력이 대거 붕괴해 친이계나 보수계 모두 대통령 당선이 사실상 불가능한 상태에서도 이재오를 지지한단 선언을 했으니, 이재오, 정운찬 등을 차기 수장으로 한 자 계파와 친박계가 새누리당에서 당권투쟁을 할 때도 실제로는 이재오나 정운찬이 차기 대권주자가 되길 바랐다는 것을 알 수 있다.[68] 이명박 측은 박근혜의 최태민 관련 의혹을 제기하였고, 박근혜 측은 이명박의 BBK 관련 의혹을 제기하였다.[69] 2014년 공직선거법 개정 전까지는 벌금형은 공개할 의무가 없었다.[70] 서청원 또한 이명박, 이재오, 손학규처럼 6.3 항쟁에 참여한 인물이기도 하다. 이명박, 이재오와 서청원은 동년배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출생 시기가 가까운 편인데, YS계 군번으로는 오히려 서청원이 선배로, 서청원은 상도동계 직계로 분류되지만이제는 민정공화계의 후신인 친박이 된 직후 현역 상도동계 선배 취급을 안 해주면서 옛말이 되었다., 이명박과 이재오는 상도동계 직계가 아닌 YS키즈로 분류된다. 아무튼 같이 김영삼 휘하에서 종사했던 만큼, 상호 간에 친분이 전혀 없었다면 그게 더 이상할 수도 있다.[71] 특히 이 당시 서청원이 이명박 가족의 도곡동 땅 차명보유 의혹을 제기하면서 상호 관계가 험악해졌다.[72] 실제로 정봉주는 박근혜 캠프를 능가하는 수준으로 집요하게 이명박을 공격했고, 그 결과 이명박에게 직접적으로 고발당해 혐의가 일부 인정됨으로, 징역 1년형에 2022년까지 피선거권을 박탈당했다. 이후 2017년에 집권한 문재인 대통령에 의해 2017년 12월 복권되었다.[73] 옳고 그름을 떠나서 이명박 입장에서는 어떻게 보면 정봉주를 당연히 싫어할 수 밖에 없다. 정봉주는 이명박이 대통령 후보일 당시에도 BBK로 이명박을 저격했지만, 대통령이 돼고 나서도 나는꼼수다라는 팟캐스트를 주진우와 진행하면서 작정하고 가카(이명박) 비리 파기에 나섰으니 이명박 입장에서는 정봉주를 싫어할만 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그런지 이명박은 정봉주를 고소했고, 그 결과 정봉주는 2011년에 허위사실 및 과장사실 유포 혐의로 징역 1년, 피선거권 박탈 10년이선고돼 홍성교도소에서 1년형을 살게 된다. 이후, 19대 대통령에 취임한 문재인 대통령이 정봉주를 복권시키면서 피선거권을 회복하고 더불어민주당에 복당하였고 현재도 앞장서서 MB저격수의 선봉에 나서고 있다.[74] 문재인 대통령과 박원순 서울특별시장도 아이폰을 사용하는 것이 확인된 바 있다.[75] 이때 김윤옥은 남편에게만 돌솥밥을 주고 자신과 손님 김승현의 밥은 일반 공깃밥으로 내와서, 빈축을 사기도 했다.[76] 이명박 대통령의 20대 시절인 6~70년대 기준으로 보더라도 173cm 정도면 어느 정도 큰 키에 해당했다. 근데 그의 형들인 이상은, 이상득은 이명박 본인보다 키가 더 크다.[77] 이명박 본인의 자서전에 의하면 자기 형이 자기보다 큰 거에 비해 약간 아쉬워했다고 한다.[78] 이 발언이 담긴 영상이 대선 3일 직전 언론을 통해 보도됨으로써 bbk가 자신의 회사가 아니라고 주장하던 이명박의 주장을 완전히 뒤집어엎어벼렸고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킨 발언이다. 또한 이 발언은 이명박 대통령이 사기꾼이라고 인식되게 만든 가장 결정적인 발언으로 꼽힌다.[79] 노무현의 그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와 뉘앙스는 다르지만 완전히 똑같은 대사라 재조명받기도 했다.[80] 주진우가 이명박에게 기습 인터뷰를 시도하면서 다스는 누구꺼냐? 라고 물어봤는데(이명박은 당연히 주진우를 모를 수가 없다) 이명박이 너이름이 뭐지? 하면서 모르는척을 했다.[81] 본명은 이덕쇠였으나 1939년 개명했다고. 평생 목축일을 했다고 알려졌다.[82] 2002년 서울시장 선거에서 특보를 지내며 여의도에서 이명박을 도우며 정치에 뜻을 보이기도. 다스 협력업체 대표를 지내기도 했다. 2018년, 상속받은 재산이 이명박의 차명재산이였다고 털어놓은 것으로 알려졌다.[83] 씨모텍 주가조작 사건에 연루되었으나 무혐의 처분.[84] LG 창업주 구인회의 손자[85] 2012년에 11살의 나이로 36억원대 주식부자 반열에 올랐다.[86] 부총리를 지냈던 오명의 아들[87] 6.25 전쟁 때 사망[88] 줄리어드 음대 졸업, 현재 전업 주부[89] 前 검사. 2010년 당시 가장 젊은 삼성 임원이였으며, 2012년 사내 최연소 팀장에 오르기도 했다. 승진 속도에 대한 설명에서는 항상 이명박의 맏사위라는 설명이 덧붙는다.[90] 줄리어드 음대 졸업, 현재 전업 주부[91] 이명박의 대통령 재임 시절 주치의 최윤식의 아들[92] 이화여대 미대 졸업, 현재 전업 주부[93] 조양래 한국타이어 회장의 아들. 효성그룹과 이어진다. 아내 및 두 처형과는 리라초등학교 동문.[94] 당시 9살 손녀와 6살 손자가 2012년 어린이 주식부자 반열에 올랐다. 당시 가치로는 9억원과 9억1천만원대[95] 에스엠은 이시형이 설립한 자동차 부품업체로 다스 협력업체다.[96] Double K의 친 누나.[97] 중국에서 선교사를 했다고. 이말분에서 이름을 바꿨다고 전해진다.[98] 이시형이 만든 다스 협력업체.[99] 6.25 전쟁 때 사망[100] 1998년 3월 의원직 사퇴 (불법선거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