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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마누엘 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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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이마누엘 칸트 (Immanuel Kant)

출생

1724년 4월 22일, 프로이센 왕국 쾨니히스베르크

사망

1804년 2월 12일 (만 79년 296일), 프로이센 왕국 쾨니히스베르크

국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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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

철학자

학력

콜레기움 프리데리키아눔 (졸업) (-1740)
쾨니히스베르크 대학교 (학사) (1740-1746)
쾨니히스베르크 대학교 (석사)
쾨니히스베르크 대학교 철학 박사 (1755)

경력

쾨니히스베르크 대학교 철학 교수

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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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사상
2.1. 인식론2.2. 윤리학2.3. 미학
3. 업적4. 영향5. 어록6. 여담7. 저서
7.1. 한국어 번역 논쟁

1. 개요[편집]

이성이 무엇인지 보이려고 자연은 칸트를 낳았다.


F. Kaulbach

근대 철학의 거성이자 전무후무한 위대한 철학자
근대 철학의 완성자[1]

18세기 독일철학자. 서양 근대 철학사에서 데카르트로부터 이어지는 합리주의존 로크로부터 이어지는 경험주의를 종합하였으며, 인식론, 형이상학, 윤리학, 미학 등 분야를 막론하고 서양 철학의 전 분야에 큰 족적을 남겼다. 특히 대표작인 순수이성비판은 그 내용은 몰라도 그 명칭은 한 번쯤은 들어 본 사람이 많다.

혹자는 평하길, 사망한 지 200년이 흐른 지금도 근대 철학의 중심인물.[2] 물론 칸트의 영향력은 근대 철학에 국한되지 않으며, 현대 철학에서도 칸트의 영향력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특히 칸트 윤리학은 현대 윤리학의 중요한 한 축 중 하나이다. 이를테면 "플라톤주의자"만큼이나 현대 철학자들이 여전히 자주 쓰는 수식어 가운데 하나가 바로 "칸트주의자"다. 이마누엘 칸트의 철학을 고스란히 받아들이는 현대 철학자는 사실상 없다고 봐도 무방하지만, 인식론과 윤리학을 위시해 다양한 분야에서 칸트가 최초로 제시한 여러 통찰을 토대 삼아 더욱 발전하게 하려는 철학자가 현대에도 많이 있기 때문이다.

2. 사상[편집]

칸트의 사상 체계는 흔히 크게 삼분된다:

  • 인식론: "나는 무엇을 알 수 있는가?"

  • 윤리학: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 종교철학: "나는 무엇을 희망해도 좋은가?"


이 중 첫째 질문인 제1 비판은 『순수 이성 비판』, 둘째 및 셋째 질문은 제2 비판인 『실천 이성 비판』에서 다루어진다.[3] 괄호 내의 저서는 대표 저서일 뿐이며 제1 비판은 『형이상학 서설』, 제2 비판은 『윤리형이상학 정초』, 『윤리형이상학』, 『이성의 한계 안에서의 종교』 같은 저서도 중요하다. 그리고 이 세 질문을 알게 된다면, 최종적으로 "인간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답할 수 있게 된다고 하였지만 명확히 이 물음에 답하는 하나의 저서라고 불리는 책은 출간하지 않았다.

2.1. 인식론[편집]

순수 이성 비판 항목 참조.

2.2. 윤리학[편집]

칸트의 윤리학은 '경험 독립적 지식'에 대한 다른 방향의 추구이다. 경험독립적이라는 말은 '경향성'으로부터의 탈피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서 '자유'라는 개념이 중요하게 작용하는데, 일반적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자유'는 '주어진 상황 속에서 무작위하게 선택할 수 있음'이라는 개념이지만, 칸트 및 철학에서 사용되는 '자유'란 '자기 자신에게서 비롯됨'이라는 의미에 좀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내가 A라는 결론을 내린 것은 외부적인 강요 내지는 경향에서 기인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판단과 사유로부터 결론이 도출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을 철학자들은 자율로서의 자유'라고 집약시켜 표현한다. 그러므로 뒤에서 설명하고 있는 '가언 명령'은 칸트에게 있어 자유로운 판단이 아니다. 왜냐하면 특정한 요인으로부터 발생한 경향성에 이끌려 판단을 내렸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는 경험과 멀리멀리 떨어져서, 즉 어떤 행위가 어떤 결과를 야기할지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로 행위에 대한 도덕적 판단을 내려보자는 결론으로 이어진다. 그래서 칸트에게 윤리학에서 철학적 지식의 대상이 되는 근본적인 영역은 의지, 그중에서도 선의지가 된다. 그런데 이 선의지는 "A를 위해서는 B를 하라"고 우리에게 말하지 않고(가언명령), 그러한 조건 없이 '~를 해라!(혹은 하지 말라)'고만 명령한다. 이를테면 직관적으로 볼 때에, 동일하게 사람을 살리는 행위라 하더라도 '네 평판을 위해서 사람을 살리라'는 명령에 따르는 행위는 윤리적이지 않은데 선의지에서 기인하는 명령, 즉 '사람을 살리라'는 명령에 따르는 행위는 윤리적이라는 것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가언명령은 '~을 위한 판단'이기 때문에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무조건적인 명령, 칸트식으로 말하면 정언명령은 칸트에 의하면 크게 1) 보편화 가능성, 2) 인격을 수단으로만 대하는 것이 아니라 동시에 목적으로 대우할 것, 3) 목적 왕국의 입법자가 어떻게 할지를 고려하여 행위할 것이라는 세 방식으로 설명된다. (이 세 가지 설명이 왜 결론적으로 같은 하나의 정언명령을 지시하는지는 수많은 논란거리이긴 하지만) 그리고 이 정언명령은 그 대상이 자신/타인인지, 혹은 그 행위가 고정적(완전한)인지 아닌지의(불완전한) 기준으로 나뉘어서 총 네 가지로 구분되는 명령을 우리에게 준다고 칸트는 정리한다. 이로부터 자신에 대한 완전한 의무(자살 금지), 타인에 대한 완전한 의무(거짓말, 거짓약속 금지), 자신에 대한 불완전한 의무(능력 개발), 타인에 대한 불완전한 의무(선행)가 따라나온다는 것이다.[4]

이러한 칸트의 윤리관은 양립가능론에 의해서 지지된다. 이것을 지지하는 칸트의 직관은 마음의 불투명성, 즉 우리는 어떤 대상을 특정한 방식으로 우리가 바라보는 방식으로만 바라볼 수 있다는 점에 기인한다. 이에 따라서, 행위자의 행위는 한편으로는 물리적인 인과의 법칙 하에서, 다른 한편으로는 도덕적인 응보의 법칙 하에서 관찰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내가 죽어가는 사람을 약물로 살리는 행위는 한편으로는 혈관에 약물이 흐르는 일련의 과정이나 내가 그동안 받아온 교육, 경향성을 통해서 설명될 수 있으나 다른 한편으로는 그 환자를 살리고자 하는 나의 선한 의지에 따른 결과이기도 하다. 이는 어떤 때는 동일한 하나의 행위를 설명하는 드다른 두 방식이 있을 수 있다는 점에 기인하며, 결정론은 물리적인 인과법칙에, 인간의 책임은 도덕적인 응보 법칙에 의해서 확보되므로 우리는 어떤 행위자의 행위를 그가 그동안 겪었던 어떤 과거의 사실들로부터 독립된 채로 판단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이로부터 우리는 칸트의 윤리학이 어떻게 다시금 경험 내로 탐구 영역을 제안하면서 흄과 같이 경향성에 의지하지 않고서 사람의 도덕적 책임을 설명하는지를 볼 수 있다.

칸트는 '윤리 형이상학 정초'에서 이와 같이 행위의 선악을 가를 기준을 논한 다음(총 3장으로 이루어진 그 책에서 위의 두 문단은 각각 2장과 3장의 논의의 요약이다.) '실천이성비판'에서는 목적 혹은 동기의 선과 악을 가를 기준을 제시한다 친구들과의 서신에서의 언급을 통해서는 원래 쓸 계획이 없었던 이 책에서 칸트는 우리에게 허용된 유일한 목적, 다른 말로 '보편화 가능성'기준을 통과하는 목적이 오직 윤리와 행복이 결합된 상태, 곧 '최고선'이라고 논한다. 이는 곧 전통적인 윤리학의 최종 목적인 행복 개념을 자신의 방식으로 뜯어고치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는데, 전반적인 논의는 행복은 '행복'이라는 추상적인 이름만으로는 개개인에게 아무런 행위 이유를 주지 못하고, 반드시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대상과 연관이 되어야만 하는데, 이 구체적인 대상들은 사람들마다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에(같다면 순전히 우연일 것이기 때문에) 행복은 보편타당한 목적이 될 수 없다는 것, 그리고 우리가 느끼는 행복 중에서 유일하게 보편적인 대상을 가지는 행복이 있다는 것(도덕 법칙을 행하고 느끼는 흡족함. 도덕 법칙은 보편적이니까.)을 논한 다음 그리고 이와 같은 윤리와 행복이 결합된 형태인 최고선에 대한 추구만이 인간에게 있어 유일하게 정당한 보편화 가능한 목적이며, 이를 잘 추구하기 위해서 스스로의 마음에 대한 영원한 개선 여지를 남기는 영혼의 불멸성, 그리고 최고선의 실현이 언젠가는 오리라는 것을 보장하는 신의 존재에 대한 믿음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논의로 이어진다.'[5]

칸트의 종교관, 특히 신에 대한 논의는 위에서 다룬 인과적, 혹은 현실적 판단과 응보적 판단 간의 상이성에 대한 우리의 태도를 설명하기 위해서 다루어진다. 여기서 다루는 주된 물음은 '위에서 살펴본 상이한 두 판단(물리적 인과, 도덕적 응보)이 겹치지 않는 현실에 우리는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이다. 이를테면 머리가 끝내주게 좋은 어떤 악당이 지금껏 능수능란하게 어떤 처벌도 받지 않도록 자신의 죄를 잘 피해가는 것을 보았다고 해 보자. 우리는 한편으로 그가 마땅히 벌을 받아야 한다고 여기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그가 죽을때까지 응당 받아야 할 처벌을 피해나갈 것임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도덕적 응보에 대한 판단을 포기해야 하는가? 칸트는 이때 그가 처벌받아야만 한다는 믿음을 유지하라고 주문한다. 결코 현실에서 물리적 인과에 따른 판단과 도덕적 응보에 따른 판단이 일치하지 않을지라도, 마치 일치할 것처럼, 혹은 일치되도록 노력하며 살아가라는 것이다. 바로 그것이 곧 유일하게 허용된 보편타당한 목적인 최고선이 지시하는 것이니 말이다. 이처럼 최고선에서부터 따라오는 신에 대한 믿음은 일종의 신앙이나, 이 신앙은 오직 윤리의 명령에 대한 신앙이므로, 적절한 신앙은 윤리성에서부터만 나올 수 있다. 그래서 칸트에게서 신에 대한 신앙은 윤리에 대해 우리가 마땅히 가져야 할 태도에서만 기인한다.

다만 실제 칸트의 종교철학을 서술한 '이성의 한계 내에서의 종교'에서는 이러한 논변이 직접 제시되지 않는다. 위 논의는 실천이성비판의 최후미 및 이성의 한계 내에서의 종교 서문에 살짝 언급만 되기 때문이다. 칸트는 본인 스스로는 이 책을 상식만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해할 수 있는 책이라고(...) 서론에서 밝힌 바 있는데, 아마도 이 때문에 상식적인 한계 안에서만 논의를 하려고 노력한 게 아닌가 싶다. 여튼 이전에 제시한 높은 도덕적 기준 (앞의 논의에 따르면, 누구든지 거짓말을 하거나, 혹은 도덕과 상관없는 행복을 추구하면 나쁜 사람이다!)에 따른 논의가 아니라, 다른 기준에서부터 인간이 모두가 악함을 먼저 제시한다. 그에 따르면, 인간은 미개한 상태에서건, 문명화된 상태에서건, 국제 관계에서건 악행을 만연하게 저지르는 존재이며, 그리고 심리적으로 볼 때에 자기 자신을 선을 추구한다고 기만하면서 실제로는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즉, 악한 일을 하면서도 언제나 자기 정당화를 일삼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보편적으로 악하다. 그러나 동시에 인간에게는 보편 도덕을 인지할 능력이 반드시 있고, 악은 반드시 구체적인 대상, 곧 우연적 대상을 가지는 행복에서 오기 때문에, 악의 기원은(성벽) 우연적인 반면 선의 기원은(소질) 필연적이며, 악이 자라나지만 않는다면 인간은 선한 소질을 꽃피울 수 있다고 논한다. 이러한 논의로부터 악한 성질들을 갖지 않고 선한 소질이 만개하는 행위자를 이상으로 삼아서,'[6] 모든 사람들이 다 함께 이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 도덕적인 공동체를 만들어 신의 지배가 실제로 이루어지는 세상을 만들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논의가 뒤따른다. 따라서 칸트의 종교철학의 논의는 일부는 그의 윤리학과, 또 일부는 인류가 도덕적 사회로 영원히 전진해나가야 한다는 그의 역사관과 맞물린다.

그리고 칸트의 최후의 윤리적 저작인 윤리형이상학에서 그는 '경험 독립적 윤리학'이 어떻게 구체적으로 전개되어야 할지를 탐구한다. 이 책의 주제는 고도로 추상적이어서 무의미한 것처럼 여겨지는 윤리학의 주장들이 보다 구체적인 상황에서 어떻게 적용되어야 할지에 대한 탐구이다.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여기에서 칸트는 추상적인 원칙인 네 가지 윤리적 정언 명령들을 법적 의무의 근거(타인에 대한 완전한 의무), 혹은 도덕적 의무의 근거로(나머지 세 의무) 분류하고 일상적 혹은 특정한 맥락에서 이러한 명령들이 어떻게 구체적인 규칙이나(법 이론) 행위로(덕 이론) 이어져야 할지를 탐구하는 것이다. 이처럼 현실적인 사례들이 탐구의 대상이 되기에 비록 그 사례들에 대한 판단 중 일부는 현대에 맞지 않을 수도 있고 심지어 전혀 칸트답지 않은 면도 있다.(이를테면, 자연의 경향성에 거스르는 행위인 자위를 하지 말라든가 손님의 수는 4명 이상 12명 이하가 좋다든가...) 그럼에도 이러한 논의들 역시 추상적이고 경험으로부터 멀어진 자신의 윤리학의 대원칙이 보다 구체적인 맥락에서 어떻게 가장 옳은 행위를 이끌어내도록 기능할 수 있을지를 탐구한 노력의 결과라는 점도 고려하면 아마도 정상참작의 여지가 있지 않을는지.

2.3. 미학[편집]

칸트가 말년에 미적 판단력을 다루어 미학에 기여하게 된 데에는, 칸트가 살던 당시의 계몽주의 풍토와도 연관이 있다. 18세기 유럽 사람들은 계몽정신을 강조하면서 한편으로는 신고전주의와 낭만주의라는 상반된 문화를 산출했다. 신고전주의가 기하학적으로 딱딱 떨어지는 그리스, 로마 문화를 높게 평가했다면, 낭만주의는 중세 로망스 문학이나 이슬람 하렘 같은 이국적인 문화에서 자신들의 요구를 만족시킬 무언가를 찾았다. 칸트는 계몽주의 시대의 이런 상반된 문화의 영향을 동시에 받은 것으로 보인다.

칸트가 『판단력 비판』에서 다룬 내용은 오늘날 미학의 주요한 개념으로 자리잡고 있다. 『판단력 비판』은 '어떻게 우리에게 취미판단으로서의 선험적 종합 판단이 가능한지'를 다룬다. 즉, 우리가 가진 취향이 이미 가지고 태어난 것인지, 그 취향을 가지고 어떤 식으로 판단하는지, 그 취향에 따른 판단이 종합적 판단으로 확대되는 것이 가능한지 따진다.

칸트는 자연을 인식하는 능력인 순수이성(현상계)과 인간의 자유의지를 결정하는 능력인 실천이성(이성적 이념) 사이를 연결하려 시도한다. 즉 경험으로 아는 물질계의 자연현상을 이해하는 지성(verstand; understanding)[7]과 철학적으로 어떻게 살것인지 윤리적인 생각을 하게 해주는 이성을 연결시켜주는 것이 무엇인가 생각한 것이다. 칸트는 이것이 감정을 판단하는 능력, 즉 쾌와 불쾌를 판단하는 판단력을 통해 가능하리라 기대한다. 그리고 이를 미, 숭고, 합목적성의 개념을 설명하면서 살펴본다.

『판단력 비판』의 구성은 다음과 같다. 여기서는 목적론상 판단력 비판 부분에 대한 설명은 생략한다.

  • 미학상 판단력비판

    • 미학상 판단 분석론

      • 미의 분석론

      • 숭고 분석론

        • 수학상 숭고에 관하여

        • 역학상 숭고에 관하여

    • 미 판단론의 변증론

  • 목적론상 판단력비판

    • 목적론상 판단력의 분석론

    • 목적론상 판단력의 변증론


칸트는 판단력을 규정적 판단력, 반성적 판단력으로 나눈다.

  • 규정적 판단력: 규정적 판단력은 개별자를 이미 주어져있는 보편자에 포섭시키는 능력이다. 오늘날로 따지면 인지심리학등에서 연구하는 인식판단 이에 해당할 듯.

  • 반성적 판단력: 반대로 반성적 판단력은 개별자가 주어져있는 상황에서 그 개별자가 포섭된다고 생각되는 보편자를 찾아내는 능력이다. 오늘날로 따지면 철학에서 사용하는 탐구태도와 유사할 듯. 칸트에 따르면 반성적 판단력에는 지성과 상상력이 필요하며, 엄밀한 객관성과 필연성을 단언할 수 없기에 이는 주관적이다.


그리고 반성적 판단력을 다시 미학상의 판단력과 목적론상의 판단력으로 나눈다.(위의 목차 분류에서 가장 상위에 해당) 칸트는 이 중에서 미적 판단력을 다루는 데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다.

  • 미적 판단력: 말 그대로 아름다움을 평가하는 능력이다. 우리가 꽃이나 그림을 보고 마음에 든다고 느끼는 것이 대표적이다. 칸트는 이를 주관적 취미판단으로 정의한다.

  • 목적론적 판단력: 이는 목적론적 사고에 의거해 대상의 합목적성을 따지는 능력이다. 자연의 합목적성을 평가하는 능력이다. 칸트는 이를 반성적 취미판단으로 정의한다.


칸트는 이 미적 판단력(감성적 판단력, 미감적 판단력, 취미판단)력을 성질, 분량, 관계, 양상의 4가지 측면에서 살펴본다. 그리고 이에 따라 취미판단의 4가지 특성을 정리하는데, 그것이 바로 무관심성, 주관적 보편성, 목적없는 합목적성, 주관적 필연성이다.

  • 취미판단의 제1계기: 성질의 범주에 따른 고찰 → 무관심성

  • 취미판단의 제2계기: 분량의 범주에 따른 고찰 → 주관적 보편성

  • 취미판단의 제3계기: 취미판단에서 고찰되는 목적의 관계목적없는 합목적성

  • 취미판단의 제4계기: 대상들에 관한 만족의 양상 → 주관적 필연성(공통감)


더 쉽게 이를 요약하면 without interest, concept, purpose으로 요약할 수 있다. 취미판단의 4가지 특성을 다시 상세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무관심성(uninterestedness) : 다른 말로는 무사심성이라고도 한다. 칸트는 미적 대상을 느낄 때 우리는 그 대상을 어떤 이해관계없이 보고 만족한다고 보았다. 칸트의 관점대로라면, 우리가 음식이나 섹시함이나 돈을 보고 아름답다고 느끼는 건 진정한 미가 아니다. 반면 흘낏 아무런 관심없이 길거리를 지나가다가 우연히 본 꽃잎이나 유리조각을 '사심없이' 아름답다고 느꼈다면, 그건 미이다. 한마디로 아름답다고 느끼는 과정에는 다른 일체의 개입요소 없이 그냥 아름답다고 느끼는 게 전부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 무관심성은 소위 예술을 위한 예술(art for art's sake)을 주장하는 예술가나 이론가들 사이에서는 거의 금과옥조처럼 여겨진다. 예술가는 그냥 예술이 좋아서 하는 거고, 예술애호가는 그냥 예술이 좋아서 감상하는 거라는 식의 예술지상론이 이 무관심성에 근거하고 있다. 다른 말로 이를 예술의 자율성(autonomy)이라고 한다. 말 그대로 미적 판단은 정치나 경제 등 다른 어떤 요소에 종속되지 않는 자율적인 존재라는 것이다.
    물론 당연히 이 무관심성이 정말인지는 후대의 미학자들이나 예술이론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이렇게 따지면 오늘날 경매에서 비싼 값에 거래되는 예술품들은 전부 무관심성에 위배되는 것이 된다. 그냥 투기하기 위해 사는 거지 아름다워서 사는 게 아니게 되니까 말이다. 반대로 이렇게 따지면 사회의 부조리에 대해서 비판하는 사회참여예술 같은 것도 성립할 수 없게 된다. 마찬가지 이유로, 소녀시대를 좋아하는 건 엄밀히 말하면 무관심성에는 위배된다. 따지고 보면 소녀시대 맴버들의 여성적 매력 등에 끌리는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2. 주관적 보편성 : 과학을 하는 사람들이라면 이게 얼마나 형용모순인지 알 것이다. 보편성은 객관성을 전제로 한다. 나는 A라고 보는데, 남이 B라고 본다면, 그건 A가 아닌 거다. 모두가 A라고 객관적으로 봐야 그건 A라는 보편성을 인정받을 수 있다. 그러나 칸트는 미적판단, 주관적 취미판단에서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내가 소녀시대를 좋아할 때 그 좋아하는 취향 자체는 순전히 주관적이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 중에서도 소녀시대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고, 팬덤으로 묶인다. 만약 미가 순전히 주관적이기만 한 것이라면 모든 사람들은 다 다른 걸그룹을 좋아해야 하고 서로들의 취향이 일치하는 일은 결코 일어날 수 없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좋아하는 걸그룹이나 미인상이 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날까? 그 까닭으로 칸트는 모든 인간에겐 공통감각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공통감각에 대해서는 4번 참고.

  3. 목적없는 합목적성 : 다른 말로 무목적적인 합목적성. 칸트는 미적 취미 판단은 목적없는 합목적성을 따른다고 봤다. 칸트에 따르면 우리가 어떤 대상의 미를 고찰할 때, 이는 객관적, 규정적이지 않고, 주관적, 반성적, 통제적, 규제적이다. 쉽게 말하면, 물리학적 사실처럼 정확히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인식하는 사람이 느끼는 순간마다 다르게 느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자기가 스스로 반성하듯 생각하면서 그게 아름다운지 아닌지 판단한다는 것이다. 때문에 칸트는 합목적성은 강제성이 없으며, 단지 그렇게 하도록 요청될 뿐이라고 한다.
    다시 말해, 우리는 특별히 딱히 소녀시대를 좋아해야 할 목적이나 당위성이 없지만, 그럼에도 소녀시대를 좋아하고, 자기 멋대로 정한 그 목적에 따라 온갖 덕질을 한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어떤 대상을 아름답게 느껴야만 하는 의무는 없다. 아름다움을 느껴야 한다는 목적을 가지고 사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목적을 느끼며 살지 않음에도, 뭔가를 좋아하고 아름다움을 느낀다. 마찬가지로 예술은 목적성이 없는 짓이지만, 그 예술을 좋아하고 목적에 부합한다고 여기는 사람이 있다. 즉 만족하는 사람이 있다. 사람은 아름다운 것을 느낄 줄 알며, 이는 따로 그렇게 하라고 목적을 부여하지 않아도 그렇게 된다는 것이다. 반대로 정말 참된 미를 가진 것이라면, 우리는 자연스레 아름다움을 느끼게 될 것이다.

  4. 주관적 필연성(공통감각) : 칸트는 미적 판단(주관적 취미 판단)이 이론적 인식(경험)과 실천적 인식(선험)을 매개한다 본다. 이 경우 문제가 되는 것은, 주관적인 미적 감정이 객관적, 보편적인 판단처럼 여겨져야 한다는 점이다. 이에 주목한 칸트는 공통감각을 취미판단의 전제조건으로 삼는다. 주관적 감정에 따르는 취미 판단이 근거하는 보편적 원리. 칸트에 따르면, 이는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저것은 아름답다'는 데 동의하게 해주는 공통적인 상식이다. 즉 다시 말하면, 주관적 보편성이 가능하려면 곧 공통감각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칸트는 이 공통감각에 의거하는 취미판단은 합목적적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 역시 반론이 가능하다. 소녀시대를 좋아하는 팬덤이 많기야 하지만, 현실에서는 다른 걸그룹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많기 때문이다. 실제로는 칸트가 말한 미적 판단의 특성들은 굉장히 이상적인 것들이다. 만약 정말 칸트가 말한 것처럼 우리 인간들 모두가 사심 없이 순전히 좋아라 하게 된다면 그거야말로 세계평화 실현일 것이다.

칸트는 미적 대상을 볼 때 우리는 이 4가지 특성을 경험한다고 보았다. 주의할 점은 이는 존재론적 해석이 아니라 인식론적인 해석이다. 즉, 그 대상이 아름다움을 내뿜어서 내가 그렇게 느끼는 게 아니라, 내가 그렇게 느끼고 인식하도록 되어있기 때문에 아름답다고 느낀다는 것이다.[8] 즉, 소녀시대를 예시로 들기는 했지만, 실제로 칸트가 말한 미적 판단, 취미 판단이 실현되려면 어떤 심미적 대상은 소녀시대 수준 정도로는 택도 없다.[9] 말 그대로 수십억 인류 모두가 좋아하는, 미적판단의 일치가 일어나야 하니까. 다시 강조하지만, 칸트는 미가 숭고와 함께 그 자체로 마음에 들 때 일어나는 감정이라 보았다. 이 둘은 특수한 감정으로서의 반성판단이다. 칸트는 아름다움에 대한 감정(미적 판단)은 개인마다 따로 느끼지만, 모든 사람들은 보편적으로 아름다움을 느낀다고 전제했다. 아름다움과 숭고라는 감정은 지성 및 이성과 연결되어 있으니까.

이를 요즘 식으로 설명하면, 우리는 취향은 다 다르지만 뭔가 좋아하는 게 있다. 칸트는 이를 보편화해 나아가, 우리 모두는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능력이 있고, 이것이 서로를 연결시키는 역할을 할 것이라 본 것이다. 칸트는 이 취미 판단을 통해 이론적 인식(경험)과 실천적 인식(선험)을 매개할 수 있다 보았다.[10]

칸트는 이러한 4가지 특성에 따라 우리가 느끼는 아름다움을 미와 숭고로 나눈다.

  • 미(beauty): 칸트는 미를 지성과 상상력의 자유로운 유희로 정의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지성은 경험적 대상을 분류하고 규정, 정의하려는 인식능력이다. 반면 상상력은 판단력 산하에 있는 능력으로, 자유롭고 창조적인 정신행위이다. 상상력은 앞서 말한 무목적성을 가지며, 따라서 그 자체로 어떤 목적도 가지지 않는다. 당연히 이는 앞서 이야기한 예술지상주의(예술을 위한 예술)과 연관된다. 우리는 아름다움을 느낄 때 자기목적성, 자기지시성을 따른다.(앞서 말한 무관심성)
    그리고 칸트는 미적 쾌의 감정은 결코 사물이 주는 감각적 느낌이나 대상의 개념으로 환원되지 않는다고 봤다. [11] 사물화된 것(예술품 같은 것)을 볼 때의 경험은 인식행위가 된다. 진정한 취미판단을 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칸트에 따르면 미는 개념을 떠나 보편적으로 만족을 주는 것이다. 그리고 합목적성에 의해서, 미적 쾌(만족)는 궁극의 목적을 항한다고 한다. 인간이 제작한 미술작품에 대한 평가는 단지 성질, 분량, 관계, 양상에 근거하여 형식적으로 미의 정도를 파악하는 것일 뿐이다.[12]

  • 숭고(sublime): 아름다움은 일차적으로 모든 대상의 형상에 관계하나 숭고는 우리가 대상의, 그것도 어떤 무한한 크기에 대하여 느끼는 심미적 정서이다. 이것은 조화와 질서가 아닌 혼란과 무질서에 의해 유발된다.
    칸트는 숭고를 논한 로마시대 학자 디오니시우스 카시우스 롱기누스를 인용한다. 롱기누스에 따르면 숭고는 신적인 것이며, 거대한 크기의 감각적 자연을 통해서 파악되며, 그 안에서 완결성을 가진 것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칸트는, 자연물은 단지 이성적 이념을 매개하는 감성적 대상일 뿐이며, 크기를 존재론적으로 완결짓는 요소로 이해하지 않는다. 칸트에게 있어 숭고한 것은 대상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에 대한 이성의 관념이다.


칸트는 숭고를 다시 수학적 숭고와 역학적 숭고로 구분한다.

  • 수학적 숭고 : 단적으로 말하면, 매우 매우 큰 것이다. 칸트는 대표적으로 피라미드를 예시로 들지만, 그보다 더 큰 것이라고 했다. 요즘식으로 굳이 말한다면 우주나 수학의 무한 개념을 생각해보자. 이 수학적 숭고를 느낄 때 인간은 감정, 인지, 사고 능력의 한계로 그 크기를 인식하지 못할 정도가 되고, 이 때 눈 앞의 감성적 자연은 '절대적으로 큰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조화나 규칙을 느끼게 되는 미와 달리(황금비를 생각해보자), 수학적 숭고는 아예 인지 범위를 넘어서기 때문에 그런 조화나 규칙을 발견할 수도 없고, 때문에 아름답다고 느끼는 게 아니라 도리어 불쾌감을 느끼게 된다고 한다. 따라서 처음에 수학적 숭고에 부합하는 어떤 것을 접했을 때, 우리는 그것을 합목적적인 게 아니라 도리어 반목적적인 것으로 여기게 된다고 한다. 굳이 표현하면 아름답다고 좋아하는 게 아니라 그 크기에 전율하며 압도당하게 된다고 할까? 칸트에 따르면 숭고의 감정은 불쾌의 감정이다. 이 불쾌감은 인간의 상상력이 이 끝없는 무한한 것을 완전히 그려 낼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이에 좌절하기 때문에 나온다. 인간은 감성적 자연 내에서 절대적 총체성의 이념을 눈으로 볼 수 있게 만드는 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고 절망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초감각적 사유 작용인 이성은 전체로서의 무한을 사유할 수 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이성이 자연의 한계를 넘어섬을 확인할 수 있다. 이때에 불쾌는 쾌로 전이되고 전체를 합목적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된다.

  • 역학적 숭고 : 수학적 숭고가 대상의 양적 크기를 그 중심 계기로 삼았다면, 역학적 크기는 대상의 힘의 크기가 관건이 된다. 수학적 숭고가 우주무한처럼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커다란 어떤 것이라면, 역학적 숭고는 폭풍이나 원자폭탄처럼 역동적으로 크게 휘몰아치는 힘이다. 다만 이 역학적 숭고를 느끼려면 '공포'와 '안전', 두가지 요소가 충족되어야 한다. 쉽게 말해, 허리케인 카트리나를 강화유리벽이 설치된 튼튼한 건물 안에서 경험할 때에는 그 허리케인을 숭고롭게 보게되지만, 밖에 나가서 그걸 겪게 되면 끔살당한다. 어쨌든, 역학적 숭고는 대상의 힘의 크기가 무한한 것처럼 판정되는 것을 말한다는 것이다.


『판단력 비판』에 대해 보다 자세한 내용을 알길 원한다면 다음 문서를 참고하기 바란다. 김상현, 『칸트 판단력 비판』(토픽맵에 기초한, 철학 고전 텍스트들의 체계적 분석 연구와 디지털 철학 지식지도 구축), 철학사상 별책 제5권 제6호, 서울대학교 철학사상연구소, 2005.

참고로 위 칸트의 미학론에 대한 내용은 2015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국어시험 지문으로 출제되어 수많은 학생들에게 당혹감을 안겨준 것으로 유명하다. 문제가 많은 칸트 씨 윤사에서만 봐도 되는데 뭘 국어까지 마중 나오고 그래

3. 업적[편집]

특정한 철학자에게 준 구체적인 영향을 넘어서, 칸트는 근대부터 현재까지에 이르는 철학연구가 칸트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을 정도로 철학의 틀 구조를 바꾸었다. 달리 말하면, 그는 패러다임의 전환을 이루었다. 이러한 전환은 공리주의에서 후기 칸트학파의 사상에 이르는 혁신과 밀접하게 연관된 채로 철학과 사회과학, 인문학 분야 모두에서 유지되었다.

경험론[13]합리론[14]이 치고박고 싸우던 18세기 유럽철학계를 평정한 거인. 실제로 칸트 이전 세대에는 경험론과 합리론의 구분이 없었다. 같은 경험주의론자인 여러 영국 철학자조차 자신들이 같은 학파에 들어간다는 것에 대해 동의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자신들을 플라톤 학파 혹은 아리스토텔레스 학파라고 지칭하였다.

이러한 학파의 구분은 칸트 이후, 정확히 말해서는 칸트에 대한 연구가 극에 달하던 18세기 후반 19세기초에 와서야 정립되었다. 바꿔 말하면 칸트는 『순수이성비판』이라는 책 하나로 17-18세기 존재하던 모든 영국, 대륙철학자들을 단 2개의 학파로 양립시키고 그들이 대립하던 본질적인 문제를 파악한 후 이를 자기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풀어낸 대단한 인물. 근대철학은 칸트 전과 후로 나뉜다는 얘기나 칸트를 모든 강들이 흘러 들었다가 다시 갈라져 나가는 호수로 비유한 것도 다 이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근대적인 의미의 윤리도덕에 대한 체계적인 논의도 칸트에서부터 시작됐다. 인간이 지켜야할 의무론적 윤리란 무엇이며 무엇이 옳고 그른 것인지 체계적인 인식론과 실천 이성 구분을 통해 그 구조를 펼쳐보였다. 칸트가 인식론뿐만 아니라 근대 윤리학의 시작을 알렸다고 봐도 될 듯. 게다가 판단력 비판을 통해 인간의 미학 인식까지 구분과 과정을 설명 시도했다. 칸트가 인류 지식 세계에 공헌한 바는 이렇듯 어마어마하다.

칸트가 나타나고 나서야 비로소 철학이 하나의 학(學)으로 완성되었다는 설도 있다. 칸트 이전까지 철학은 다분히 주관적이면서 고답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었는데 칸트가 인식론과 윤리론, 미학론을 펴면서 철학이 객관적인 학문으로 완성되었다고. 칸트 이전에는 그냥 "내가 이렇게 생각하니까 이렇다" 식의 철학이 죽 이어져 내려오다가, 걍 썰만 늘어 놓다가 칸트가 방대한 논리와 자료로 치밀한 철학 세계를 완성하면서 이후 형이상학 발전과 완성에 크나큰 영향을 끼쳤다는 얘기. 물론 칸트 이전의 철학을 연구하다 보면 큰일날 소리긴 하지만. 저명한 철학자 R.샤하트는 "칸트 이전의 철학자들을 불완전하게 이해해도 근대 철학 이해에 큰 지장은 없지만, 칸트를 불완전하게 이해하면 근대 철학을 이해할 수 없다." 라고 말했을 정도.

그 스스로 "데이비드 흄의 책을 읽고 미망에서 깨어났다"고 말하기도 했다.[15] 자칫 어렵게 들리는 이 말은 그냥 흄과 칸트 모두 오직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범위 내로 철학의 탐구 범위를 좁히자는 데에 동의한다는 말이고, 이 점에서 그는 경험론자와 닮았다. 그래서 칸트의 이 고백은 "경험적인 것, 혹은 수학적인 것이 아닌 모든 책은 불태워 버리라"는 흄의 말과 상통한다. (기존의 형이상학이 완전히 쓸모없다는 데에서 칸트는 흄과 완전히 일치한다. 그래서 현대 영미형이상학에서 흄은 형이상학에 대한 회의주의자로 자주 다루어지지만 칸트는 그다지 다루어지지 않는다.)

다만 그는 이와 같은 경험적인 범위 내로 철학의 탐구 범위를 좁히면서도 흄의 탐구 방식을 반드시 따라가지는 않았다. 보다 구체적으로 칸트는 경험을 통해서 얻게 되는 지식이 아니라 바로 그 경험을 가능하게 할 원칙이 무엇일지를 탐구했다. 흄의 경험론은 모든 경험이 공유하는 어떤 일반적인 성질, 이를테면 어떤 대상이든지 그것에 대한 나의 관념(idea)은 나의 인상(impression)에서 기인한다는 것에 주목하는 반면, 칸트는 모든 경험이 가져야만 할 어떤 형식에 주목한다. 이처럼 그는 경험론적인 틀 내에서 합리론적인 정신을 가지고 세계를 탐구하였다고 볼 수 있기에 굳이 도식적으로 말하자면 경험론과 합리론자의 종합을 보여주었다고 평가할 수 있겠다. 하지만 흄이 자신의 주장에 대한 칸트의 대응에 동의했을지는 알 길이 없다. 칸트는 흄을 알았지만 흄은 칸트를 몰랐는데 흄이 세상을 떠났을 때가 1776년으로 『순수이성비판』이 출판되려면 5년이 더 지나야 했기 때문이다.

4. 영향[편집]

독일의 칸트 연구자인 회페는 『이마누엘 칸트』에서 칸트의 영향을 다음 네 가지로 나누었다.

  1. 독일 관념론: 요한 고틀리프 피히테, 프리드리히 셸링, 게오르크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로 대표된다. 피히테는 칸트의 철학을 칭송하며, 자신의 철학을 칸트의 연장선상에 있으며 이를 더욱 보완시키는 철학이라고 주장하였으나, 말년의 칸트 본인은 이에 대하여 자신의 철학은 그 자체로 완성된 체계라고 반박하였다. 이후 셸링과 횔덜린(휘페리온을 쓴 그 시인 맞는다)이 칸트의 '주관적' 관념론의 한계를 지적하며 다소 낭만주의적인 관념론을 전개하였고, 이후 셸링과 횔덜린의 친구였던 헤겔이 이들을 다시 비판하며 이른바 '객관적' 관념론을 주장하게 된다.

  2. 신칸트주의: 1870년부터 1920년까지 약 반 세기 동안 유럽의 강단철학을 지배한 사조이다. 에른스트 카시러, 헤르만 코헨, 하인리히 리케르트 등이 대표적이다. 주로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에 주목해 과학주의적 철학을 전개하였다.

  3. 현상학과 실존주의: 후설, 셸러, 야스퍼스, 하이데거가 대표적이다. 이들은 주로 칸트가 주장한 '초월성(transzendetal)' 개념을 요리조리 재해석해서 자신들 고유의 사상에 도입하는 방식으로 칸트를 계승하였다.

  4. 20세기 중반 이후: 영미권에서는 스트로슨, 셀라스 등의 분석철학 계열과 또 다시 이들을 비판한 로티가 칸트를 계승하거나 비판한 학자들이다. 또한 롤스와 같은 영미권의 자유주의 정치철학자들은 칸트에 강한 영향을 받았다. 독일의 위르겐 하버마스 또한 롤스와 함께 칸트의 윤리학과 정치철학을 현대적으로 계승하고 있는 가장 저명한 철학자로 뽑힌다.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자들은 계몽주의의 정점인 칸트에 우호적일 리가 없을 것 같지만, 놀랍게도 칸트의 『판단력 비판』과 같은 텍스트에서 이질성, 다원성 등의 키워드를 뽑아내기도 했다. 가령 장 프랑수아 리오타르는 칸트 미학의 숭고를 자신의 이질성의 철학을 옹호하는 데 활용한다.


한국에서는 '독일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일본'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1990년대까지만 해도 철학과 = 칸트학과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 이 시절 철학과 교수들은 20%의 고대 그리스 철학과 50%의 칸트철학, 30%의 기타를 공부했고 학생들은 99%의 맑스주의[16]와 1%의 기타를 공부했다는 농담도 있다. 영미철학, 프랑스철학의 균형잡기가 비교적 성공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21세기 이후에도 한국 철학계에서 가장 깊게 연구되는 인물은 여전히 칸트라고 할 수 있다. 때문에 보통 철학과 학생들이 넘어야하는 가장 큰 벽으로 꼽히는 인물이 바로 칸트.

대학뿐만아니라 중고교 교육과정에서도 큰 영향을 끼치고 있는데, 현행 윤리와사상 교과서에서도 칸트는 매우 비중 있게 다뤄지고 있다. 아무래도 고교 과정에서는 의무론적 윤리와 목적론적 윤리를 대립항으로 간주하여 교육 및 학습하고 있는데, 칸트는 전자의 대표 주자를 넘어서 거의 유일한 주자로 여겨질 정도이다.[17] 2007 개정 교육과정 이후에는 윤리와 사상 교과서에서 칸트 윤리학의 현대적 재해석 및 보완까지 교과서에 공식으로 다루고 있다. 로스라는 20세기 윤리학자가 내세운 조건부적 의무가 바로 그것이다. 이는 칸트 윤리의 절대주의적 도덕 원리를 다소 유연한 형태로 변형한 것이다. 물론 그 심오한 깊이를 모두 담을 수 없는 실제 수능 기출 문제에서 도덕적 딜레마가 나올 때(예를 들면 가족 1명과 다수의 모르는 사람 중 누굴 구해야하는지) 결과 등에 상관하지 말고 도덕적 명령에 따르셈ㅇㅇ 이러는 선택지밖에 안 나온다. 다만 이러한 태도가 자신의 대원칙이 어떻게 구체적인 맥락에 적용될 수 있을지를 지속적으로 고민했던 칸트의 입장을 얼마나 대변하는지는 미지수. 생활과 윤리 교과서에서도 여러 분야에서 등장하신다. 환경윤리에서 독특한 인간중심주의의 대표자로 나오고, 평화와 윤리에서는 국제연합에 기초한 영원한 평화 구상이 나온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응보주의 형벌론에 기초한 사형제 찬성론까지 다뤄진다. 결국 윤리와사상이든 생활과 윤리든 윤리 계열 교과를 수능에서 택하는 사람들한테 칸트는 넘어야 할 산 중 하나인 셈.

현대 철학에서 지금 진행되고 있는 논쟁에서도 칸트는 곧잘 나온다. 비록 형이상학에서는 흄이 주로 다루어지지만 실천철학에서 그의 입장은 계속되는 떡밥이다. 당장 큼직한 주제만 들어 보더라도 결과주의 vs 비결과주의, 양립불가능론 vs 양립가능론, 공리주의 vs 자유주의, 경향성 vs 실천적 추론과정(혹은 이성)과 같은 모든 주제에서 우측의 입장들은 칸트의 영향을 받은 입장들이다.

또한 현대에 들어서 전혀 새로운 분야에서 주목받고 있는데, 칸트가 『영원한 평화』라는 말년 저작에서 제시한 '세계 시민'이라는 정치적, 윤리적 주제의 선구자이다. 인터넷을 비롯한 미디어가 발달하고 다른 나라에서 일어난 사건이 바로 전 세계에 알려지게 되면서 한 나라의 윤리적 문제가 다른 나라에도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세계 시민이라는 주제가 생겨났는데, 이게 나쁘게 말하면 쓸데없는 오지랖이다. 자기 나라의 문제도 다 해결하지 못하면서 남에게 이러쿵저러쿵 하는 게 말이 안 된다는 것. 하지만 조금 생각해 보면 굉장히 중요한 문제인 것이, 이미 윤리적인 문제를 한 나라에서 해결할 수 있는 시대는 끝났다. 우리나라에서 미국이랑 전혀 상관없는 위안부 문제를 미국 의회에서 다루는 데 왜 그리 큰 관심을 가지는지 생각해 보자.

결국 이러한 윤리적 목소리가 독재국가들이 맨날 하는 말처럼 내정간섭이 아니라 정당한 윤리적 비판이 될 수 있는 근거가 무엇인지는 현대 윤리학의 중요한 주제가 된다. 칸트는 인터넷은커녕 유선전신이 갓 발명되던 시기인 18세기에 이런 문제를 주목하고 현대적인 세계 시민의 개념을 처음으로 꺼낸다.[18] 그러면서 칸트는 '이성의 공적 사용'을 주장하면서 세계 시민의 정당성을 옹호했다. 결국 현대에 세계 시민이라는 주제를 윤리학적으로 다룰 때 첫머리에 나오는 것이 칸트가 되었다.

또한 막스 베버의 사회학, 장 피아제의 심리학, 노암 촘스키의 언어학에까지 영향을 미쳤고 사회, 행동 및 신체 과학으로까지 확대되었다. 칸트의 수학 및 인공적 사전 지식에 대한 연구는 또한 이론 물리학자인 알버트 아인슈타인의 지적 발달에 일찌감치 영향을 준 것으로 인용되었다. 칸트적 패러다임 전환의 철저함 때문에 그의 영향은 구체적으로 자신의 저작을 언급하거나 자신의 용어를 사용하지 않는 사상가들에게까지 미치게 됐다.

한마디로 다른 철학자들처럼 그의 주장들에도 오류가 있지만 적어도 철학이라는 학문이 사라질 때까지 칸트는 계속 언급될 철학자로 남을 것이다.

5. 어록[편집]

내용 없는 사고는 공허하며, 개념 없는 직관은 맹목적이다.[19][20]


Gedanken ohne Inhalt sind leer, Anschauungen ohne Begriffe sind blind[21]

모든 것은 경험으로부터 시작하지만, 경험만으로 끝나지는 않는다.[22]

내 마음을 늘 새롭고 더 한층 감탄과 경외심으로 가득 채우는 두 가지가 있다. 그것은 내 위에 있는 별이 빛나는 하늘과 내 속에 있는 도덕률(법칙)이다.[23]


Zwei Dinge erfüllen das Gemüt mit immer neuer und zunehmender Bewunderung und Ehrfurcht, je öfter und anhaltender sich das Nachdenken damit beschäftigt: der bestirnte Himmel über mir und das moralische Gesetz in mir.

6. 여담[편집]

  • 고등 과정 생활과 윤리윤리와 사상을 배운 학생에게는 애증의 철학자이다. 이론 윤리, 낙태 찬반, 자살, 안락사, 생명 과학, 성, 환경 윤리, 법적 정의, 예술과 윤리, 전쟁과 평화, 해외 원조에서 등장한다. 즉 생윤의 세부 파트의 과반수에 출현... 그 덕분에 입시생들에게 생윤 공무원, 생윤 철밥통(...) 등으로 불린다. 칸트가 선정된 문제는 오답률도 높은 편. 더불어 교육과정에서는 앞뒤를 대단히 간소화하고 정언명령만 가져와서 이상하게 꼰대 같은 이미지까지 생겼다.

  • 가터벨트의 창안자로도 유명하다. 여성 속옷과 깐깐해 보이는 이 학자분이 무슨 연관이 있는지는 항목 참고. 당시 스타킹이나 가터벨트 같은 것은 남성용이었다. 당시 여자들은 치마가 길어 다릴 드러낼 일도 없었으니.

  • 평생 자기가 태어난 쾨니히스베르크(현 러시아칼리닌그라드)를 떠나지 않았다. 반경 30km 밖으로 나간 적이 없다. 키가 작고(155cm 가량) 등이 굽어 꼽추처럼 보였다.[24] 용모가 추했지만 가 보지도 않았던 다리의 어느 부분에 나사가 몇 개 박혀 있는지를 맞힐 정도로 박식하고 기억력이 좋았다. 매일 3시 30분이 되면 산책해서 사람들이 그런 칸트를 보면서 시계를 맞추었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딱 두 번, 산책을 빼먹은 적이 있다. 한 번은 루소가 저술한 책 《에밀》을 읽다가, 또 한 번은 프랑스 혁명을 보도한 신문을 읽다가.

  • 칸트는 마구 기술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애초부터 귀족 출신이나 엘리트 출신은 아니라는 뜻. 칸트는 어렸을 때 어머니를 잃었고 시간이 조금 더 지나고서 아버지를 잃었다. 칸트는 경건주의에 충실했던 가정에서 성장했다. 이 신학다운 환경이 칸트의 철학에 알게 모르게 영향을 많이 주었으라. 어렸을 때 부모를 잃어서 먹고살려고 가정교사로서 일하면서 따로 논문을 틈틈이 발표하고 시간강사 자격으로 강단에도 섰다.

  • 엄청나게 박학다식했다. 칸트는 실제로 지식에 관계된 호기심이 왕성해서 온갖 다양한 분야에 관심하고 공부했다. 실제로 시간강사 시절에도 철학뿐만 아니라 별별 학문을 다 가르쳤다. 천문학, 물리학, 역사,수학, 화학, 지리, 정치학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강의했다. 화학 물질들로 불꽃을 만드는 기술도 가르쳤다. 재치 있게 잘 말하고 쏙쏙 귀에 들어오게 잘 요약해서 칸트의 강의실에는 수강생들로 늘 꽉 차 있었다. 다른 도시나 국가에서 학생들이 칸트의 강의를 들으러 온 적도 있었다.

  • 당구 실력도 출중했다.

  • 평생 쾨니히스베르크를 떠나지 않았지만 다년간에 걸친 학문 활동의 결과 대학에서 수많은 과목을 맡아서 학생들에게 가르쳤으며 마음먹고 이야기를 늘어놓으면 어디 가 보지도 못한 지역이나 본 적도 없는 동식물들을 주제로 얘기하는데도 학문상으로 하자가 없고 너무도 흥미로운 나머지 학생들은 눈과 귀를 떼어낼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런 강좌 중에서도 가장 인기를 끌었던 강좌는 세계지리.[25]

  • 루소의 저서를 접하기 이전까진 철저한 엘리트주의를 자처했다. 칸트는 루소의 《인간불평등기원론》을 읽고는 번개를 맞은듯 깨달았다면서 "나는 천성상으로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으로서 지식만이 인류의 영광을 이룬다고 믿어 왔다. 아무것도 모르는 평범한 대중을 경멸했다. 루소를 읽고는 이런 맹목스러운 편견이 사라졌다. 나는 인간성을 존경하는 심정으로 도덕에 기초한 평등주의자가 됐다."라고 했다. 허나 당시의 시대상엔 급진성을 띠었던 그 사상으로 평생 루소가 박해받았던 사실로 미뤄 보건대, 이후에도 엘리트주의의 그늘에서 완전히 벗어나긴 어려웠으리라.

  • 《순수이성비판》은 세계 철학사에서 매우 중요한 저서 중 하나이지만, 막상 처음 출판되었을 때는 반응이 뜨뜻미지근했다. 워낙 책이 장황하고 어려웠기에 제대로 이해했던 사람이 거의 없었던 것. 이에 관한 일화로 칸트가 이번에 내가 발표한 책을 봤느냐고 친구에게 편지를 보내자 친구가 손가락이 모자라다는 식으로 대답했다는 일화가 있다. 말하자면 "친구야, 나는 네 책을 읽으려고 내 손가락이 모자랄 지경이야. 네 책을 읽어 나아가면서 이해가 안 될 때마다 내 손가락을 하나씩 꼽고 있거든." 과 같은 식으로 편지가 돌아왔다고 한다.

  • 《순수이성비판》은 칸트가 시간을 근 10년 투자해 완성한 책이였다. 그래서 칸트의 지인이 칸트에게 "칸트 씨. 아무래도 책 판매량이 별로인 거 보니 이번 책은 망한 듯합니다." 라고 하소연하자 칸트 본인은 당당하게 "시간이 얼마나 걸리더라도 이 책은 그 가치를 인정받을 것"이라고 당당하게 대답했다고. 과연 시간이 조금씩 흐르자 《순수이성비판》은 철학사의 중요한 저서로 조금씩 떠올랐고 칸트가 늙그막한 나이가 되었을 때는 그 책으로 말미암아 칸트의 성명이 유럽 전역에 알려지게 된다.

  • 이 사람이 어느 정도로 깐깐한지 알 수 있는 이런 일화도 전해진다. 칸트는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체구가 왜소하고 용모가 추했기에 나이를 많이 먹을 때까지 혼인하지 않았다. 그러나 칸트에게 어떤 여인이 청혼한다. 칸트는 그 여인에게 '생각을 좀 해 볼 테니 기다려 달라'라고 부탁했다. 그러고는 도서관에 가서 사랑과 관련된 책을 모두 읽은 후 혼인해야 할 이유와 하지 말아야 할 이유를 모두 썼다. 결국 혼인해야 할 이유가 4개 더 많아서 혼인을 승낙하려고 했는데 이는 그로부터 7년이 지난 뒤였다. 물론 그 여인은 이미 다른 남자와 혼인하고 아이도 낳은 상태였다.


…깐깐함이 인간으로 표현된다면 이런 사람이 아닐까.

  • 하지만 일상생활에서는 생각보다 다정다감하고 재미있는 사람이었다고 한다. '밥을 혼자 먹는 건 불행한 일'이라고 말하며 사람들과 식사하기를 즐겨해서 매일 겨자소스를 만들었는데 자기는 절대로 그 소스를 먹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있다.[26] 또한 술을 너무 마시는 사람이나 술을 아예 안 먹는 사람 둘 다 경멸했다고 한다. 칸트는 도이칠란트 사람이었지만 맥주를 싫어하고 와인을 좋아했다. 오죽하면 칸트에게 식사를 초대받은 사람 한 명이 선물로 맥주를 꺼냈는데 칸트가 식탁에 놓인 맥주를 보자 정중하게 맥주를 마실 거면 내 집에서 나가라고 했다고.

  • 니체는 이 사람을 저질이라고 말했다. 뭐 이해 안 되는 건 아닌 게 저 깐깐한 성격 주제에 자기 욕망을 억누르거나 하지 않아서 70대였던 칸트의 소원이 "저 아랫마을 우물가 처녀 엉덩이를 보는 거."라고 농담이라지만 거리낌 없이 말하는 양반이었으니…. 알고 보면, 니체는 칸트의 사상과 정 반대에 위치한 철학자였다. 이성과 실증주의의 비대화를 까면서 선악의 존재 개념을 거부했던 니체였으니 칸트의 정언명령이나 인식론이 무척 쓸데없는 소리로 들렸을 수밖에 없었다. 니체는 "서툴고 고루한 소인배이자 소도시 취향을 지닌, 그러면서 의무감에 사로잡혀 살았던 프로이센의 관리"라고 칸트를 폄하했다.(니체 전집 참조) [27]

  • 이렇듯 통념들(사실과 다른 것도 꽤 있다)과는 달리 중년의 칸트는 여러 사람과 매우 쉽게 잘 사귀었다. 학문 활동은 생활의 절반만을 차지하였고 나머지 절반은 사회 활동으로 채워졌다(오트프리트 회페, 이마누엘 칸트). 또 다른 전기에서는 이런 대목이 있다. "실제로 당시 칸트 선생은 여성 사이에서 세상에서 여러 사람과 가장 쉽게 잘 사귀는 사람으로 통하였으며, ...모든 사교 모임에 참석하였다." (뵈티거, I 133)

  • 루트비히 판 베토벤이 19살 때 백작 발트시타인의 주선으로 본대학에서 철학을 비롯한 인문과학 과목들을 청강할 때 칸트로 대표되는 계몽주의를 접했다. 그래서 그런지 칸트 철학에 심취해 "하늘엔 빛나는 별. 가슴엔 실천이성"이라는 칸트의 명언을 어디엔가 써 놓았다.

  • 칸트는 1804년 2월 12일 죽었는데 장례식날 고향인 쾨니히스베르크 시 전체가 휴무에 들어가 모든 상점들은 문을 닫았으며 수천 명이 운구 행렬의 뒤를 따르고 시내의 모든 교회가 같은 시간에 조종을 울리는 등 위대한 철학자의 사망을 애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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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트의 무덤

칸트는 자신이 평생을 보낸 쾨니히스베르크 대학의 묘지에 묻혔는데 칸트의 묘비명엔 칸트의 '실천이성비판'에 실린 유명한 문구가 적혀 있다.

'내 마음을 늘 새롭고 더 일층 감탄과 경외심으로 가득 채우는 두 가지가 있다. 그것은 내 위에 있는 별이 빛나는 하늘과 내 속에 있는 도덕률(법칙)이다.'

  • 근대 철학에 끼친 영향력이 워낙 커서 세계 이곳저곳에 칸트 학회(Kant Society)가 있다. 국내에도 한국 칸트 학회가 있으며 일정한 간격을 두고 되풀이하여 세미나를 진행하고 학회지를 발행한다.

7. 저서[편집]

이 리스트에서 『실용적 관점에서의 인간학』까지는 백종현 역(아카넷)의 칸트 선집에 포함된다. 백종현 역 이외에도 최재희 역(『순수이성비판』, 『실천이성비판』 등)이나 이석윤 역(『판단력비판』 등) 등 여러 다른 번역본이 있으나, 백종현 역본이 있는 경우 특수한 경우가 아니면 별도로 소개하지 않았다. 번역서가 있는 경우, 번역서의 명칭을 따랐다.

  • 『형이상학 서설』(학문으로 등장할 수 있는, 모든 장래의 형이상학을 위한 서설; Prolegomena zu einer jeden künftigen Metaphysik, die als Wissenschaft wird auftreten können, 1783): 『순수이성비판』의 방대함을 덜기 위해 칸트 자신이 좀 더 짧고 쉽게 쓴 이론 철학 교본.

  • 『윤리형이상학 정초』(Grundlegung zur Metaphysik der Sitten, 1785): 주제 면에서는 『실천이성비판』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서술이 평범한 인간 인식과 대중적 윤리 지혜로부터 분석적으로 진전해가고 있어 일반 독자의 접근이 비교적 용이하다.

  • 『순수이성비판』(Kritik der reinen Vernunft, 1787[1781])

  • 『실천이성비판』(Kritik der praktischen Vernunft, 1788)

  • 『판단력비판』(Kritik der Urteilskraft, 1790)[30]

  • 『이성의 한계 안에서의 종교』(Die Religion innerhalb der Grenzen der bloßen Vernunft, 1793): 종교는 인간의 "모든 의무들을 신의 계명들로 인식함"에 그 참뜻이 있고, 진정한 성스러움은 인간이 선한 원리에 따라 '윤리적 공동체' 내지 '덕의 나라'를 지상에서 이룩하는 데 있음을 역설하는 저서. 백종현 및 김덕영은 진, 선, 미에 이어 성을 다룬 제4비판서라고 칭하기도 했다.

  • 『영원한 평화』(영구평화론; Zum ewigen Frieden, 1795): 칸트는 인권이란 "인간들 사이에만 있을 수 있는 가장 신성한 것"이자 "신이 지상에서 가지고 있는 가장 신성한 것"이라고 보았다. 신성성은 "우리가 인간들을 결코 한낱 수단으로 쓰지 않는다"는 데에 있다. 이런 인권보장이 법치국가에서만, 나아가 국제적으로는 '보편적 국가 연합'을 이룸으로써만 실현될 수 있다고 주장한 책. 이후 국제정치학의 이상주의(후에는 자유주의)적 '세계정부' 구상이나, "민주 국가들끼리는 전쟁을 벌이지 않는다"는 도일의 민주평화론의 기초가 되었다. 신기동전기 건담 W에 등장하는 완전평화주의의 모티브가 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 『윤리형이상학』(Die Metaphysik der Sitten, 1797): 1부 「법이론의 형이상학적 기초원리」와 2부 「덕이론의 형이상학적 기초원리」로 구성되어 있다. 윤리형이상학이란 ‘자유의 형이상학’으로서 자유의 법칙에 대한 철학적 탐구를 말한다. 1부는 법철학(정치철학)을 다루며, 2부는 『실천이성비판』에 뒤이어 도덕철학을 다룬다. 법은 외면적인 자유의 법칙을, 도덕은 내면적인 자유의 법칙을 그 내용으로 갖기에, 양자는 하나로 묶이면서도 서로 구별된다. 참고로 이충진 역(2013, 이학사) 『법이론』이 이 책의 1부에 해당한다.

  • 『실용적 관점에서의 인간학』(Anthropologie in pragmatischer Hinsicht, 1798): 미셸 푸코가 박사학위 부논문으로 이 문헌을 불역하고, 긴 서설을 붙였다. 이 서설은 국내에도 『칸트의 인간학에 관하여』(2012, 김광철 역, 문학과지성사)라는 제목으로 출판되어 있다.

  • 『교육학 강의』(Über Pädagogik, 1803[유고. 링크 편집]): 말 그대로 교육학에 대한 강의이다. 조관성 역(2007, 철학과현실사)이 있다.

  • 『학부들의 논쟁』(Der Streit der Fakultäten, 1798): 이 작품은 「실용적 관점에서의 인간학」과 함께 칸트의 생전에 그 스스로 출간한 마지막 저술이다. 본래 이 작품은 칸트가 순수한 종교론과 경험적 계시 종교론의 충돌로서의 철학부와 신학부와의 논쟁만을 기획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영혼의 장소’가 어디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해부학적-심리학적 분과인 의학부와 심리학적-형이상학적 분과인 철학부 사이의 논쟁, 순수한 법론과 경험적 정치의 충돌에 대한 철학부와 법학부의 논쟁으로까지 확대 구성하게 된 것이다. 오진석 역(2012, 도서출판b)이 있다.

  • 「아름다움과 숭고함의 감정에 관한 고찰」(Beobachtungen über das Gefühl des Schönen und Erhabenen, 1764): 『판단력 비판』이 쓰여지기 26년 전에 나온, 칸트 미학의 초기저술. 이재준 역(2005, 책세상)이 있다.

  • 「감성계와 지성계의 형식과 원리들」(De mundi sensibilis atque intelligibilis forma et principiis, 1770): 칸트의 교수취임 논문으로, 칸트가 '비판기'로 넘어가는 중간과정에 있는 책이라고 한다. 최소인 역(2007, 이제이북스)이 있다.

  • 『자연과학의 형이상학적 기초』(Metaphysische Anfangsgründe der Naturwissenschaft, 1786): 19세기 독일어권 과학자들에게 많은 영향을 준 책이다. 외르스테드가 강한 영향을 받았고, 쿠르트 괴델 역시도 비엔나 서클에서 이 책을 공부한 적이 있다고 한다. 국역본은 없으며, 마이클 프리드만Michael Friedman(Cambridge University Press, 2004)의 영역본이 있다. 마이클 프리드만(2012, 박우석, 이정민 역, 서광사)의 『이성의 역학』에 관련된 내용이 약간 소개된다.

  • 「속설에 대하여」("그것은 이론적으로는 올바르지만, 실천적으로는 쓸모없다"는 속설에 대하여; Über den Gemeinspruch: Das mag in der Theorie richtig sein, taugt aber nicht für die Praxis, 1793): 오진석 역(2011, 도서출판b)이 있다.

  • 『칸트의 역사철학』: 이한구 역본(2009, 서광사)의 제목이다. 이 역본은 역사철학에 대한 7개의 논문을 모은 것이다. 이 중 위의 5개 논문은 학술원판 전집 8권에 실려있고, 학부들의 논쟁 2부는 7권, 낙관주의에 관한 시론은 2권에 실려있다.
    - 「"계몽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변」(Beantwortung der Frage: Was ist Aufklärung?, 1784): 미셸 푸코가 말년에 쓴 「계몽이란 무엇인가」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인터넷에서 정지인·강유원 역(2006)을 찾을 수 있고, 별도로 영어 중역인 정성훈 역도 있다.
    - 「세계시민적 관점에서 본 보편사의 이념」(Idee zu einer allgemeinen Geschichte in weltbürgerlicher Absicht, 1784)
    - 「헤르더의 인류 역사의 철학에 대한 이념」(Rezensionen von J. G. Herders Ideen zur Philosophieder Geschichte der Menschheit, 1785)
    - 「추측해본 인류 역사의 기원」(Mutmaßlicher Anfang der Menschengeschichte, 1786)
    - 「만물의 종말」(Das Ende aller Dinge, 1794)
    - 「다시 제기된 문제: 인류는 더 나은 상태를 향해 계속해서 진보하고 있는가?」 (위의 『학부들의 논쟁』 2부)
    - 「낙관주의에 관한 시론」(Versuch einiger Betrachtungen über den Optimismus, 1759)

7.1. 한국어 번역 논쟁[편집]

칸트 철학서의 한국어 번역에 관한 논란은 20세기 말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그중에서도 대표적인 떡밥으로는 다음과 같은 개념어들을 들 수 있다:

  • a priori: "a priori한 판단(Urteile)", "a priori한 인식(Erkenntnisse)" 같은 용법으로 쓰인다. "경험 이전(a priori)"이라는 의미. 즉 경험과 독립적으로 이루어지는 판단, 인식 등을 뜻하며, 칸트에 따르면 이는 오직 순수 지성(Verstand) 혹은 이성(Vernunft)에서 유래한 것이다 (IV 266). 수학이 대표적으로 a priori한 학제다.

  • transzendental: 칸트 철학의 핵심적인 떡밥이며, 칸트가 스스로의 철학을 "transzendental 철학"이라고 부르기도 하는 이유. transzendent와는 명시적으로 구분된다. 그 의미에 대해서는 칸트가 다음과 같이 비교적 명료한 정의를 제시한 바 있다.

[내 정의에 따르면] 용어 transzendental은 [...] 모든 경험을 넘어서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경험에 앞서되 (a priori) 오직 경험적 인식을 가능하게 해주는 것으로 규정된 것일 뿐이다. 이들 개념이 경험을 넘어설 경우, 그런 쓰임은 transzendent한 것이라고 불리며, 이는 내재적(immanenten)인 것, 즉 경험으로 제한된 쓰임과 구분된다.


『형이상학 서설』, IV 373, 저자 주 (역자 강조)


이처럼 위 개념들은 칸트 자신이 비교적 그 의미를 명료하게 제시한 것이며, 칸트 학계에서도 그 의미에 대한 이해 자체는 그리 이견이 없다. 다만 한국의 칸트 철학사 연구자들 간에는 이들 개념어를 어떻게 한국어로 번역할 것이냐에 관한 첨예한 의견 대립이 벌어지고 있다. 특히 2018년에 한국 칸트학회에서 칸트 전집 출판을 선언한 이후로 한겨레신문에서 이해 당사자들 간의 지면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1] 근대 철학의 문을 연 근대 철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데카르트를 이은 최고 철학자로 여겨진다.[2] "Immanuel Kant (1724–1804) is the central figure in modern philosophy." 스탠포드 철학 백과사전 Immanuel Kant 항목. 용어 "modern"은 다양한 의미를 지닌다. 이 문장에서 쓰인 'modern'은 특정 시기를 지칭하며, 보통 '근대'로 번역된다. 바로 뒷 문장은 'He synthesized early modern rationalism and empiricism'이라 서술하고 있는 걸로 보아, 여기서 'modern'은 16세기에서 18세기 사이의 시기를 지칭한다 할 수 있다. 우리가 사는 시대, 즉 '오늘날' 혹은 '동시대'를 주로 'contemporary'라는 용어로 쓴다. (modern이라는 표현은 경우에 따라서, 지금을 가르켜 '현대'를 의미할 수도 있고, 근대로 번역되어 역사상 특정 시기 - 16세기부터 좁게 잡아서는 18세기 말, 넓게 잡아서는 20세기 초 - 를 의미할 수도 있다. 또한, 분야(철학, 건축, 문학) 에 따라서, 이 용어의 의미는 달라진다.)[3] 제3 비판인 『판단력 비판』은 이 세 질문의 도식에는 부합하지 않는다. 한국 칸트 연구의 권위자 중 하나인 서울대학교 철학과 교수 백종현은 제3 비판에 적당한 질문은 아마도 "나는 무엇에서 흡족함을 느낄 수밖에 없는가?"일 것으로 보지만, 칸트 본인은 이런 내용을 언급한 적이 없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4] 이러한 의무들이 깨어져야만 할 듯한 상황들을 어떻게 처리해야하는지에 대한 칸트의 입장이 무엇인지에 대한 해석은 갈리곤 한다. 하나의 해석은 '어떤 경우에도 거짓말은 그르다'(그것이 요청되는 순간이 있다고 할지라도 말이다.)고 칸트를 해석하는 방식이며, 다른 하나의 해석은 '결과적으로 사람을 속이게 되더라도 말 자체로 거짓말하지는 않아야만 한다' 는 방식이다. 이를테면 독립운동가를 숨겨주는데 순사가 자신에게 그의 행방을 물을 때, 전자의 입장을 취하면 독립운동가를 숨겨주지 않는다는 적절한 대답은 그 상황에 의해서 요청될지라도 잘못된 행위를 함축한다는 결론이 따라나온다. 후자의 입장은 '어제 제 집 앞을 지나서 남쪽으로 가고 잇었어요'라고 대답해야 한다는 입장으로 칸트를 해석하게 된다.(샌델이 이러한 방식으로 칸트를 해석했다.) 어느 입장이 보다 적절한지는 각자의 판단에.[5] 그래서 칸트에 따르면 도덕적 신을 믿지 않는 사람은 악하다(...) 그는 최고선을 진짜 받아들인 사람이 아니니까(......)[6] 이 부분을 담은 논고가 검열에 걸려서 칸트는 당시 왕에게 다시는 이 책을 출간하지 않겠다고 싹싹 빌어야 했다. 참고로 이 논고에서 이상적 행위자, 곧 예수와 같은 존재는 결코 인간과 다른 신적인 존재여서는 올바른 이상일 될 수 없으며, 오로지 각 개인들이 다다를 수 있는 인간적 도덕적 이상(악한 성벽을 억제하고 선한 소질에만 따르는 사람)으로 다루어져야 한다고 논했다. 또 이 책에서는 교회는 반드시 보편교회여야 한다고도(...) 어느 쪽이든 당시 프로이센을 지배하던 개신교가 보기에는...[7] Verstand: 영어로는 보통 "Understanding"으로 번역된다. 도올 김용옥은 기존 번역어 '오성(悟性)'이라는 표현은 그냥 이해력이나 비슷한 개념을 의미하는 'understanding'을 번역한 것인데, 이때 번역하는 놈들이 괜히 있어 보이려고 오성이랍시고 번역했다고 지적한 바 있다. 21세기 이후 한국의 칸트 번역에서는 "Verstand"를 '지성(知性)'으로 번역하는 진영도 늘어나는 중이다. 이들은 Verstand가 오성의 깨달을 '오(悟)'처럼 어떤 대오각성하는 능력이 아니라 사고하고 개념화하고 판단하고 인식하고 이해하는 능력, 즉 '앎'의 능력이므로 알 '지(知)'를 써서 지성으로 써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성은 사고, 개념화, 판단, 인식, 이해를 모두 포괄하는 데 반해 이해력은 '이해'에만 한정된 능력으로 비춰지기 때문이다.[8] 흄도 이 부분에는 동의하였다. "아름다움은 사물 안에 있는 게 아니라 우리 인간의 마음 안에 있다."[9] 엄밀히 말하자면 '소녀시대를 좋아하'는 것은 미를 느끼는 일 이라 할 수 없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데 있어 단순히 '좋아함'은 개인적 만족감과 크게 결부된다. 즉 취미판단의 첫 번째 조건인 무관심적 만족감 부터 이미 위반하는 것. 또한 13절. 순수한 취미판단은 매력과 감동에 독립적이다. 16절. 어떤 대상을 일정한 개념의 조건 아래서 아름답다고 언명하는 취미판단은 순수하지 않다- 를 보면 알 수 있듯이, 내가 '누군가를 좋아한다'고 느끼는 것은 칸트가 말하는 취미판단의 과정에서 미 라고 판단하기 어렵다.[10] 18세기 당시 사람들처럼 칸트 역시 기독교인이었기 때문에, 그의 철학은 결국 신으로 귀결된다. 기존의 종교적 가치와 자신의 철학적 사유가 조화되기를 바랐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칸트는 우리는 원래 태어날 때부터 (선험적으로, 즉 신이 만든 대로) 윤리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능력을 탑재하고 있다 본 것이기도 하다. 반면 당시 영국의 경험론자들은 윤리적 행동도 경험으로 훈련되어야만 할 수 있다 보았다. 칸트는 영국 경험론과 대륙 합리론을 조화시킨 것이고, 때문에 오늘날까지도 칸트를 대단하다 여기는 것이다.[11] 칸트의 말을 정말 제대로 따른다면, 진정한 미는 사물화, 구체화할 수 없다. 반면 이전 예술가들은 자기 작품이 아름답다고 했으니... 둘 중 하나가 틀린 셈.[12] 사실 그래서 미학자들이 어쩔 수 없이 예술작품을 놓고 예를 들며 설명하긴 하지만, 미학자들은 그걸 진짜 아름다움 그 자체일 것이라 확정하고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어디까지나 흘낏 미의 특성을 보여주는 예시일 뿐이다.[13] 인간의 모든 인식은 경험에서 비롯된다. 따라서 무언가 경험을 쌓기 전까지는 인식하거나 생각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다. 영국에서 주창된 설.[14]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타고난 본유관념(本有觀念)은 신에게 선물받은 보편적이고 이성적인 것이다. 그러니까 경험 없이도 인간은 사색을 통해 진리를 도출할 수 있다. 수학 공식 같은 거라든지. 주창자로 데카르트가 대표적.[15] 여기서 칸트가 읽은 흄의 책은 『인간오성론』으로 추정되는데 이 책은 흄의 첫 번째 저서이자 대표작인 『인성론』의 주요 내용을 요약하고 문체도 좀 더 다듬은 버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흄은 『인간오성론』에서는 나오지 않는 "인격동일성"에 관한 문제를 『인성론』에서만 논의했다. 만약 칸트가 『인성론』을 읽었다면 이 문제를 언급하지 않을 리가 없는데 칸트는 흄의 인격동일성 문제에 대해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 그래서 후대 연구자들은 칸트가 『인성론』은 읽지 않았을 것이라고 추측한다.[16] 알다시피, 당시는 대학생들의 데모가 한창이던 시기였다.[17] 오죽 자주 나오면 대충 서양사상가 같고 모르겠으면 칸트로 찍고 푸는 것이 윤리와 사상선택자들이 많이 사용하는 수법이다(...).[18] 그전에도 이와 유사한 단어는 있었지만 지금의 세계 시민과는 다른 개념이었다.[19] 칸트어로 쓰인 대표적 문장이다. 거칠게 의미를 한국어로 번역하면 "무언가 나에게 나타나는 것 없이는 우리는 어떤 사물도 지각할 수 없을 것이다. 동시에 그러나 우리 자신이 가지는 어떤 형식도 없다면 여전히 그 사물은 지각될 수 없을 것이다." 정도가 될 것이다.[20] 이후 학자들도 칸트와 비슷한 형식의 말을 했다.(A 없는 B는 공허하며, B 없는 A는 맹목적이다 형식의 말) 아인슈타인은 1941년에 출판된 『과학과 종교(Science and Religion)』에서 "신앙심 없는 과학은 불완전하며, 과학 없는 신앙심은 맹목적이다."라고 말했고, 독일의 사회학자 울리히 벡(Ulrich Beck)은 1986년 『위험사회 – 새로운 근대(성)를 향하여』“사회적 합리성이 없는 과학적 합리성은 공허하고, 과학적 합리성 없는 사회적 합리성은 맹목적이다.”라는 말을 했다.# 다만 양자가 비슷한 모양이라고 내용이 함축하는 바가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매우 곤란하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라는 데카르트의 주장에 대해 '나는 달린다, 고로 존재한다' 내지 '나는 먹는다 고로 존재한다' 따위의 주장으로 응수하면 심히 곤란한 것과 마찬가지이다.[21] 영어로 옮기면, thoughts without content are empty, intuitions without concepts are blind.[22] 경험의 한계 내에서 탐구하되, 경험으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진 그 형식이 철학적 탐구의 적법한 대상이다.[23] 별이 빛나는 하늘은 물리적 인과법칙, 내 속의 도덕법칙은 도덕적 응보에 따르는 법칙, 이 둘이 같이 있음은 양립가능론을 의미한다.[24] 학교대사전에서는 심지어 얼굴도 골룸처럼 생겼다고 깠다.[25] 칸트가 태어났고 평생 그곳에서 생활하며 학생들을 가르치고 연구하였던 '쾨니히스베르크 대학'은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소련의 영토가 되면서 지명이 '칼리닌그라드'로 바뀌었고 교명도 '칼리닌그라드 대학'으로 변경되었다. 그랬다가 2005년 당시 러시아 대통령 푸틴과 도이칠란트 총리 슈뢰더가 참석한 행사에서 교명이 '칸트 대학'으로 다시 바뀌었다.[26] 그 외에도 집사가 10년간 자신이 정한 옷만 입다가 하루 다른 스타일의 옷을 입자 너무 충격받아서 실신 직전까지 갔다고 한다.[27] 그런 니체조차도 칸트의 영향력에서 자유로울 순 없었지만.[28] 이 여담 항목 내에서 위에 있는 부분을 다시 보자. 칸트는 과학에도 정통했고 과학의 무한한 가능성을 긍정한 사람이었으니 칸트가 과학 이론을 한두 개 정도는 발표하지 않았을 리는 없다. 근데 부업으로 한 것치고는 너무나도 거대한 업적을 세웠다[29] 개신교 신학자이자, 새교회라는 개신교 교파의 창시자로 유명한 사람 맞다.[30] 참고로 판단력 비판 서문은 1790년에 나온 제1판의 서문과 1799년에 나온 제2판의 서문이 다른데, 제2판 서문은 칸트가 출판사로부터 서문이 너무 길다는 항의를 받아 제1판의 서문을 삭제하고 새로 쓴 것이다. 다만 삭제된 제1판 서문에는 3대 비판서에 대한 칸트 본인의 개괄적인 설명이 들어 있어 칸트 철학에 입문하는 사람들에게 길잡이로서 중요한 자료이다. 현재 국내에 나온 판단력 비판 번역본들에는 모두 이 제1판 서문이 부록으로 수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