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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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현대 2018 시즌 스쿼드

1 김용대 · 2 이지훈 · 3 김기영 · 4 강민수 · 5 임종은 · 6 정재용 · 7 김인성 · 8 이근호 · 9 에스쿠데로 · 10 이종호 · 11 황일수 · 13 이명재
15 홍준호 · 16 김건웅 · 18 조수혁 · 19 김승준 · 20 배재우 · 21 오승훈 · 22 정동호 · 23 김태환 · 24 한승규 · 26 이상민 · 27 김창수
29 김수안 · 30 주니오 · 31 문정인 · 32 이영재 · 33 박주호 · 34 박용우 · 37 김레오 · 38 이은성 · 39 오세훈 · 40 리차드 · 42 믹스 · 79 이창용

* 이 표는 간략화된 버전입니다. 스쿼드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여기를 참고해주세요.
* 울산 현대 스쿼드에 변동이 있으면 두 틀 모두를 수정해주세요.


이근호의 역임 직책

[ 펼치기 · 접기 ]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주장

구자철
이청용
(2013~2014)

이근호
(2014)

기성용
(2014)


파일:이근호.jpg

울산 현대 No. 8

이근호 (李根鎬 / Lee Keun-Ho)

생년월일

1985년 4월 11일 (33세)

국적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대한민국

출신지

인천광역시 남동구

본관

경주 이씨[1]

종교

개신교

포지션

세컨드 스트라이커, 윙어

신체 조건

176cm, 74kg

학력

만수북초등학교 - 부평동중학교 - 부평고등학교 - 한중대학교

프로입단

2004년 인천 유나이티드

소속팀

인천 유나이티드 (2004~2007)
대구 FC (2007~2009)
주빌로 이와타 (2009~2010)
감바 오사카 (2010~2012)
울산 현대 (2012~2014)
상주 상무 (2013~2014, 군 복무)
엘 자이시 SC (2014~2016)
전북 현대 모터스 (2015.7~2015.12) (임대)
제주 유나이티드 (2016)
강원 FC (2017~2018.6)
울산 현대 (2018.6~ )

국가대표

84경기 19골



1. 소개[편집]

왕성한 활동량과 스피드, 투혼으로 무장된 공격수.

K리그를 대표하는 저니맨

인천 출생으로 만수북초등학교, 부평동중학교, 부평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확실한 실력을 갖췄음에도 팀을 굉장히 자주 옮겨다닌 선수인데 2군에만 머물렀던 인천을 제외한 K리그 팀에서 전부 제몫을 해줘서 K리그 팬덤에선 안티가 거의 없는 선수이기도 하다.

1군 데뷔팀인 대구 FC의 마스코트가 '태양'인 점에 착안하여 '태양의 아들'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이근호'라는 이름과 비슷하다는 점에 착안하여 이그노어(Ignore)라는 별명이 붙기도 하였우며, 국가대표 경기에서 중동팀을 상대로 많은 득점을 올리는 등의 강한 모습을 보이며 중동 킬러라는 별명을 얻기도 하였다. 마이너하지만 '릭어홀'이라는 별명도 있다.[2]

하대성과 초등학교, 중학교, 부평고, 대구 FC 시절 함께 활약했으며, 두 선수 사이의 두터운 친분도 유명하다.

2. 경력[편집]

2.1. 인천 유나이티드[편집]

인천광역시 출신으로 부평고 황금세대의 마지막 멤버로 졸업하고 2004년에 창단 멤버로 인천 유나이티드에 입단했으나 주전 경쟁에서 밀려 2군으로 밀려났다. 그러나 2군에서의 돋보이는 활약을 펼쳐 2군 리그 MVP까지 차지하고 윤주일을 상대로 대구 FC에 트레이드되었다. 그리고 대구에서 포텐셜이 폭발했다.

2.2. 대구 FC[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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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공산 라베찌


일찍 맞이한 그의 첫번째 전성기

대구 FC에서 활동하는 2시즌 동안 이근호는 46경기 19골 9도움을 기록했으며, 외국인 용병 공격수들과의 득점 경쟁에서 가장 돋보이는 한국인이었다. 이 때의 활약으로 대구 FC의 엠블럼에 있는 태양 문양에서 따온 명칭인 태양의 아들이라 불리며 대표팀에도 승선해 맹활약을 펼친다. 이 시기에 잉글리시 프리미어 리그블랙번 로버스에서도 2번이나 이적 제의를 했으나 본인이 주전 출장을 할 수 있는 수준의 팀으로 이적하길 원해 이적이 불발됐다.

2007시즌 초반 변병주가 이끄는 총알축구의 선봉장이었으며, 대구 FC 유일의 국가대표선수였다.[3] 루이지뉴, 장남석, 이근호가 주축이 된 삼각편대를 중심으로, 후방에서 하대성에닝요가 찔러주고, 진경선이 백업을 해주는 역할로 대구는 공격력의 비약적으로 상승했다.

당시 리그에서 이근호가 기록한 스탯만 봐도 태양의 아들이란 별명이 결코 과장이 아님을 잘 알수 있는데, 2007년 득점 랭킹 10위 가운데 국내 선수는 단 두 사람 이근호(8위/20경기 8득점) 우성용(9위/26경기 8득점) 뿐이었다. 참고로 같은 해 득점 랭킹 안에 든 외국인 공격수들의 면면을 살피면 몰라 뭐야 그거 무서워 소리가 절로 나올 이름들 투성이다. 26경기 26공격포인트를 기록하며 역대급 데뷔시즌을 보여준 득점왕 까보레를 필두로 K리그 역사상 최고의 공격수중 한명인 데얀, 신으로 불리운 사나이 모따, 까보레와 함께 경남의 돌풍을 이끈 뽀뽀, 대전의 6강 플옵 진출을 이끈 데닐손슈바, 이해가 커리어 하이였던 스테보 등 K리그를 거쳐간 무수한 외국인 공격수들 가운데도 믿고 쓰는 정도가 아닌 역대급 소리를 들을 쟁쟁한 선수들이 휩쓸 때였다.

그리고 2008년 26경기 11득점을 기록하며 득점 랭킹 5위에 오른다. 여담으로 한가지 재미있는 기록이 있는데 이해 득점 랭킹 10위 안에 대구 선수가 무려 세 사람이나 있었다. 이근호 장남석(6위/24경기 10득점) 그리고 에닝요(10위/19경기 8득점). 훗날 전북에서 닥공 축구의 핵심 멤버로 활약하며 60-60 클럽에 가입한 그 선수 맞다. 울산으로 이적한 루이지뉴(7위/19경기 9득점)까지 합친다면 대구FC는 그야말로 공격수의 산실인 셈이었다.

갈락티코도 아닌 일개 시민구단에서 득점 랭킹 10위 안에 공격수 3명이 들어간다는 건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결과인데, 당시 변병주 감독이 극단적인 공격축구를 표방했기 때문에 벌어진 현상이었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이해 팀 득점 1위였지만 실점도 독보적인 1위라 리그 순위는 11위에 그쳤다(...).

하지만 국가대표 차출 이후 복귀했을 때 경기를 설렁설렁 뛴다라는 비판을 종종 받곤 했다.[4] 일부 팬들은 스타 의식에 빠진건 아닌지 걱정할 정도. 그래서 당시 악의를 품은 이들이 붙인 별명이 이그노어였다.

2.3. 주빌로 이와타[편집]

파일:attachment/Lee_Keun-Ho_Jubilo_Iwata.jpg


대구 FC와의 계약이 끝난 이후에 이근호는 주전 출장을 할 수 있으며, 향후 유럽 3대 리그로 진출하기에 용이한 유럽의 리그로 이적하길 원했고 겨울 이적 시장이 열렸을 때 프랑스 리그 앙의 파리 생제르맹(PSG), 네덜란드 에레디비지에의 빌렘II, 덴마크 슈퍼리가의 오덴세 등 여러 팀[5]에 입질을 했으나 진출에 실패한다.

그 후 이근호는 국가대표팀에 계속 남아있기 위한 기량을 유지하기 위해 일본 J리그주빌로 이와타에 입단한다. 입단 초기에는 브라질리언이 아닌 한국인을 영입한다며 주빌로 이와타에 대한 혐한들의 비아냥도 있었지만 8경기 출전에 6골 5도움이라는 호성적을 내면서 하위권에 머물던 주빌로 이와타를 단숨에 중위권까지 끌어 올리며 에이스가 되었다.

2009 여름 이적 시장이 열리자 그 전 겨울 이적 시장에서 영입 전까지 갔다가 무산된 PSG에서 다시 입질이 들어왔다. PSG는 이근호의 에이전트 측에 선수를 영입하고 싶으니 주빌로 이와타와의 관계를 정리하면 좋겠다는 입단 의향서를 보냈고 에이전트와 이근호는 그 말대로 주빌로 이와타와의 관계를 정리했다. 하지만 2009년 7월 19일까지 PSG는 이근호에게 아무런 제의를 하지 않아 이적이 불발되었고[6] 다시 주빌로 이와타와 계약을 맺게 되었다.

PSG에게 이근호가 두번이나 물을 먹자 여론은 "J리그보다 K리그가 좋다더만 결국은 J리그에서 뛰냐?"라며 이근호를 욕하는 부류와 "에이전트가 계약도 제대로 못한다."며 에이전트를 비난하는 부류, 그리고 "역시 프랑스 놈들이라 계약을 엿같이 한다."라며 PSG를 욕하는 부류로 나뉘고 있다.

2009년 초반까지만 해도 국대 No.1 공격수로서 이근호의 파트너를 정한다고 언론에서 설레발을 떨정도의 최고의 위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이적 이후 K리그보다 압박의 강도가 덜한 J리그에서 뛰고[7] 이적 파동으로 마음고생을 하면서 폼이 심각하게 하락했다.

2010년 5월 31일 발표된 남아공 월드컵 국가대표 최종 엔트리에서 구자철, 신형민과 함께 탈락하였다. PSG 이적 불발 이후 2009년부터 이어진 심각한 슬럼프가 그 원인인 듯. 부동의 주전으로 군림하고 있었던 월드컵 예선때를 생각해보면 그저 안습인 상황이라고밖에 말할 수가 없다. 강민수도 뽑혔는데! 강민수도 뽑혔는데![8] 그리고 그 이근호의 자리를 메꾸기 위해 왼발골절로 몇 달 동안 재활중인 선수를 데려왔다 월드컵을 경기감각 익히려고 갔다고 카더라 그리고.......

2.4. 감바 오사카[편집]

파일:attachment/Lee_Keun-Ho_Gamba_Osaka.jpg

2010년 6월 J리그 감바 오사카로 이적했다. 하지만 첫 시즌 활약은 두드러지지 못했다.

2011년 3월, 거의 7개월만에 국가대표팀에 선발되어 온두라스전에 후반 교체 투입 되었다. 움직임은 활발했으나 좋은 찬스를 몇 번 놓쳐 해충갤에서 이그노어라는 별명을 들으며[9] 가루가 될 정도로 까였으나 후반 추가 시간이 끝날 무렵에 코너킥 찬스에서 헤딩골을 넣으면서 인간극장 취급을 받고 있다. 본인도 골을 넣고선 감격했는지 상당히 표정이...

그리고 2011 시즌서 화려하게 부활한다. 리그와 챔스에서 꾸준히 공격포인트를 올려주었다. 제주와의 챔스 경기에서는 도움을 기록하기도 했다. 이러한 활약에 힘입어 국대에서도 세르비아, 가나와의 평가전에 연달아 출전하며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조광래식 만화축구 하에서 스코어러 역할은 물론 왕성한 활동량, 미들과의 연계한 상대 공격진 예봉차단 임무까지 몽땅 떠맡은 박주영을 빠른 스피드로 보좌하며 또 다른 공격옵션이 되었고 상대팀 공격진의 섣부른 전진을 막아내는 역할도 준수하게 이행했다.

다만, 2011년 8월 10일. 다른 경기도 아니고 한일전에서 최악의 경기력으로 한국의 패배에 단단히 일조하면서 그야말로 폭풍처럼 까이고 있다. 물론 전술부터 선수 개개인 실력까지 한국이 전반적으로 일본에게 발린 경기이기는 한데 그 중에서도 유난히 돋보였으니 문제다. 덕분에 당시 조광래와 함께 까임의 양대 축을 맡아버렸다. EE

2011시즌 J리그 득점왕에 가까이 가기도 했었으나 이루지는 못했고 커리어 하이인 리그 15골로 마감한다.

그리고 2012년 1월에 울산 현대로 이적했다. 그리고 다음 시즌에 감바 오사카는 강등

2.5. 울산 현대[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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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유닛의 재림


아시아를 씹어 먹었던 두번째 전성기

병역 문제로 인해 군 팀에서 뛸 자격을 얻기 위해 국내 무대로 복귀. 그 때문에 감바 오사카에게 5억원 가량의 위약금을 물어내야 했다.

국내 복귀 이후에는 그야말로 사기유닛의 재림. 머리까지 노랗다!! J리그 득점왕 근처까지 간게 플루크는 아니었다는 듯이 종횡무진하고 있다. 다만, 골 결정력은 여전히 안습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으나 몸상태가 절정에 올라간 시즌 후반엔 그런 것도 없어졌다.

국대에서는 이청용의 공백으로 인해 붙박이 주전으로 복귀. 활약도 점차 나아지더니 최강희호에서는 이동국과 함께 맹활약중. 1박 2일의 힘

2012 시즌 김신욱과 함께 빅 앤 스몰 조합의 정수를 보여주며 팀을 AFC 챔피언스 리그 무패 우승으로 이끌었다. 이러한 성적을 인정받아 2012년 AFC 올해의 선수상을 수여받았다. 이는 1991년 김주성 이후 21년만이며, 현행 체재로 개편된 2002년 이후로는 한국인 최초 수상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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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에 기존의 대표팀 주력이던 유럽파들이 부상과 부진을 이겨내지 못하는 힘든 상황에서 한국 국가대표팀에서 빠질 수 없는 에이스로 발돋움했다.

2.6. 상주 상무[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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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 종료 후 입대를 선택, 13~14 시즌은 K리그 챌린지의 상주 상무에서 보내게 되었다.
2013년 챌린지에서 이근호의 활약상은 한마디로 2부 리그에서 혼자 메시 놀이 한다(...). 챌린지 원년인 2013년 득점왕최우수선수상을 받았다.

2014년 상주상무가 K리그 클래식에 승격하면서 이근호의 활약상은 주춤한다. 일단 클래식과 챌린지는 리그 수준이 다른 데다가, 상무가 품고 있는 근본적인 한계점-입대와 전역에 따른 스쿼드 변경이 걸림돌이 되었다.
2013년 11월 김재성 김형일 백지훈 등이 전역했고 또한 상주 돌풍의 주역중 한명이였던 미친 왼발 이상협과 풀백 최철순마저 2014년 4월 전역하면서 졸지에 절름발이 팀이 되어버린 것. 물론 새로 들어온 선수들과 발을 맞추며 차츰 조직력을 끌어올리면 해결 가능한 문제겠으나, 문제는 이근호는 9월 전역이다(...) 틀렸어 이제 꿈이고 희망이고 없어. 상주 팬들의 한숨 소리가 들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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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7월 25일 올스타전에 참가했다. 그런데 올스타전 홍보용 티저 동영상에서 상주에서 서울 월드컵 경기장까지 트랙터를 몰고 상경한다는 개그 컨셉을 선보이며 빵 터진 네티즌들의 폭발적인 호응을 얻어냈다[10] 건빵맛스타 드립이나, 트랙터 주유비가 병장 한달 월급(...) 등 깨알같은 군대 개그가 일품

K리그 올스타 with 박지성 팀 티저 영상 / 영상=프로축구연맹

2018년 아시안게임 축구로 회자되는 원사 손흥민 짤의 원본이 바로 이 시절의 이근호가 국대로 뽑혔을때 나온 사진이다. #

2.7. 엘 자이시 SC[편집]

2014년 9월 5일 카타르 스타즈 리그 소속의 엘 자이시 이적이 확정되었다. 9월 16일 상주 상무에서 제대한 뒤 9월 18일부터 엘 자이시에 합류할 예정이다. 엘 자이시는 아랍어로 군대, 육군을 의미한다.

그리고 2015년 폼이 확 죽어버렸다. 믿음직한 원톱자원이 이렇게 나가떨어지나..슈틸리케: 신욱이도 없고, 근호도 없고

그런 가운데 7월 24일, 전북 현대에서 이근호를 임대했다는 기사가 올라왔다.링크

2.8. 전북 현대 모터스[편집]

2015년 7월 24일 전북 현대 모터스로 6개월간 임대 이적했다. 이동국의 골을 돕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어쩐지 청춘 FC에 나온다더니

이적 초기만 해도 폼이 전혀 돌아오지 않은 듯, 매우 좋지 못 한 경기력을 보이며 욕을 잔뜩 먹었으나 나중에는 적응이 되었는지, 완전히 날아다니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특히 이동국이 더 이상 나이를 숨길 수 없고, 실질적 포지션 경쟁자인 한교원은 이근호에게 밀려 풀백 기용까지 고려하고 있으니 사실상 윙어 자리를 레오나르도와 함께 자리 잡았다 해도 과언이 아닐 듯. 게다가 신형민과 달리 군대 보낼 걱정도 안 해도 된다 문제는 완전 이적 가능성인데 현재로서는 주급이 높아서 어렵다고 보인다.
2015년 기록은 15경기 4득점 1도움.

전북에서의 임대 종료 이후 원 소속팀인 엘 자이시로 복귀했으며 얼마 후 소속팀과의 계약 해지로 FA가 되었다. 관련 기사 이후 전북 현대 모터스울산 현대 두 곳중 한군데로 복귀를 타진했지만 엘 자이시로부터 계약 해지서를 18일이나 지나서야 받게 되어 절차가 늦어졌고 이 때문에 K리그 복귀가 사실상 무산되었던 상황이었는데.....

2.9. 제주 유나이티드[편집]

3월 25일 제주 유나이티드로 이적했다는 소식이 나왔다. 기사 2016년 제주 유나이티드에서 활약하다 다음 시즌 전북 현대 모터스로 이적했던 히카르도 로페즈의 공백을 메우기 위한 영입으로 보인다. 처음에는 리그 개막하고 입단한 몸이라 다른 선수들과 호흡이 맞지 않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빠른 스피드와 돌파력으로 제주에서는 좋은 활약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다 아시안컵 이후로 다시 국대를 갈지 기대된다.

11월에 결혼할 예정이라고 한다![11]

2.10. 강원 FC[편집]

강원 FC의 에이스이자 축구판 살려조


12월 9일 갑작스럽게 승격팀 강원 FC로의 이적을 확정지었다는 기사가 떴다![12]

왜 아챔 나가는 구단을 떠나 다이렉트 강등될지도 모르는 도민구단으로 가나 했더니 강원이 잔류를 위해 돈을 어마어마하게 썼다고 한다. 상세한 액수는 밝히지 않았지만 3년 20억 이상이라고 한다. 본인에 의하면 선수 생활 마지막을 강원 FC에서 보낼 것이라는 듯.

드디어 개막한 K리그 클래식 첫 경기에서 상주 상무를 상대로 2골을 집어넣었다. 완벽한 윙어의 모습을 보여줬고, 헤딩으로도 득점을 만들어냈다. 또한 정조국 - 이근호나 문창진 - 이근호 이 연계가 나오면서 팀의 핵심적인 역할을 맡게 되었다. 그 이후 강원 FC 최고의 윙어로서 맹활약했고, 상주 상무 경기 이후 FC 서울전에서 1골을 넣으면서 현재까지 3골 2도움이라는 기록을 가지고 있다.

2017년 5월 22일, 슈틸리케호2018 FIFA 월드컵 러시아/지역예선(아시아)/최종예선/A조이근호를 국가대표로 선발했다. 이근호가 강원 FC 역사상 최초의 국가대표 선발 선수라는 명예로운 기록을 남겼다.[13] 슈틸리케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 감독은 '지난 주말 (강원의) FC서울 원정 경기를 현장에서 지켜봤는데 이근호가 예전의 날카로움을 되찾았다. 이번 명단을 구성할 때 과거 우리와 함께한 경험까지 모든 것을 고려했다.'고 발탁 배경을 밝혔다.

수원전 2골으로 1:3에서 3:3으로 따라잡은 극적인 무승부를 도왔다.

대구전에서도 활발한 움직임을 보였다. 결승골 장면에서 스프린트 다음 결정적 패스는 백미.

스플릿 이전 정규 33라운드 전 경기 출전 3036분이라는 엄청난 출전 시간을 기록했다!!![14] 시즌 최종 성적은 37경기 8골 9도움. 한편 시즌이 끝난 뒤 이근호의 도움으로 ACL 우승을 쟁취했던 울산 현대에서 이근호의 재영입을 추진했으나, 강원 측에서 20억이라는 어마어마한 이적료를 제시하면서 결국 영입을 철회했다.

2018시즌에도 첫 경기 인천과의 경기에서 맹활약하며 어시 하나를 추가했고 연이은 서울전에서도 이웅희의 자책골을 유도하면서 맹활약했다.

3라운드에서는 엄청난 드리블을 앞세워 상주를 괴롭혔고 어시 하나 적립하며 활약했다.

5월 19일 경남 FC와의 경기에서 부상을 당해 아웃됐다. 리그는 휴식기라 당장은 영항 없지만 대신 러시아 월드컵에 출전하지 못하게 되었다.

이번시즌 전반기에서 생각보다는 활약이 저조했다. 이번시즌 아직까지 골 없이 4도움 만을 기록중

5월 28일 이근호울산 현대로 이적한다는 단독 기사가 나왔다. 그러나 팀 간 협상에서 난항을 겪고 있어 이근호의 행선지가 어디일지는 기다려봐야 알 듯 하다.

2.11. 울산 현대 2기[편집]

2018년 6월 20일, 울산과 이근호는 '2.5+1년' 계약을 맺었다. 이근호가 35세가 되는 2020년 말까지 울산에서 뛴 후, 1년 계약 연장을 검토한다는 옵션이다.

친정팀인 강원 FC전에서 친정팀에 비수를 꽂았다. 0:1로 뒤지고 있는 상황에서 헤딩 동점골을, 2:2로 맞선 상황에서 역전골을 집어넣으며 비수를 꽂았다. 팀은 3:3 무승부.

3. 국가대표[편집]

3.1.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편집]

3.1.1. 허정무호 시절[편집]

20세 이하, 23세 이하 대표팀을 거쳐 2007년 핌 베어백 감독 시절 이라크와의 친선 경기에서 A매치 첫 데뷔, 데뷔전에서 골을 넣었다. 이후 아시안컵 대표팀에 선발되었으며, 2008년 허정무 감독 부임 이후에도 꾸준하게 대표팀에 들어갔다. 국가대표에서는 부족한 결정력으로 지탄을 받는 경기가 많아 '이그노어'라는 달갑지 않은 별명도 생겨났다. 그럼에도 활동량 등 분명한 장점이 있기 때문에 상당한 기회를 받았으며, 월드컵 최종예선으로 접어들면서 박주영-이근호의 투톱 체제가 자리잡게 되어 환상의 호흡을 보여주어 최종예선에서 골을 연달아 넣기 시작했다. 그래서 무패로 예선 1위로 통과하면서 당시 주장이었던 박지성과 함께 월드컵 본선 진출의 1등 공신이 되었다.

그러나 2009년부터 유럽 이적 추진과 그 실패로 인한 후폭풍으로 슬럼프에 빠지게 되면서 최절정의 폼이 점차 하락하기 시작했고, 이게 국가대표 경기에서도 영향을 미치게 되어 2010년 남아공 월드컵 당시에는 국가대표에 뽑혀 전지훈련까지 받고 있던 와중에 23인 최종 명단 선발 과정에서 구자철, 신형민과 함께 마지막으로 낙마하고 말았다. 이근호 본인은 커리어에서 가장 고통스러웠던 시기로 이 비보를 접한 날을 꼽는다. 4년 후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서 이영표 해설위원의 "이근호가 한 건 해 줄 것이다"라는 예언이 화제가 되었는데, 러시아전에서 선제골을 넣은 후 이근호는 "가장 힘들었던 4년 전 최종 엔트리 탈락 당시 함께 숙소에서 울어 줬던 영표 형에게 감사한다"라며 이영표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3.1.2. 조광래호 시절[편집]

월드컵 대표팀 탈락 이후 1년 만에 대표팀에 발탁되어 온두라스와의 평가전에서 4번째 골을 성공시키며 부활의 조짐을 보였다. 하지만 삿포로에서 열린 일본과의 평가전에서 무리하게 공을 몰고가다 뺏겨 가가와 신지에 선제골을 허용하였고, 그는 패배의 원흉이 됨과 동시에 많은 사람들의 비난을 받기 시작하였다. 이후 한동안 대표팀에서 좋은 활약을 펼치지 못하였고, 아랍에미리트와의 브라질 월드컵 3차 예선에서 후반 34분 서정진과 교체 투입되어, 후반 43분 고전하던 대한민국 대표팀에 천금같은 결승골을 안겨주었고, 팀은 후반 추가시간 박주영의 쐐기골로 2:0으로 승리하였다. 그리고 그 다음 경기인 레바논과의 경기에서 페널티킥을 유도해 동점골의 발판을 만들어 1도움을 기록했으나, 더 이상 공격 포인트를 기록하지 못했다.

3.1.3. 최강희호 시절[편집]

조광래 감독이 성적 부진으로 경질된 이후 새로 부임한 최강희 감독의 신뢰를 얻으며 우즈베키스탄과의 친선 경기서 1도움, 쿠웨이트와의 3차 예선 마지막 경기에서는 이동국의 결승골을 어시스트 함과 동시에, 팀의 2번째 골을 성공시켜 대한민국을 브라질 월드컵 최종 예선에 진출시킨 주역이 되었다. 이후 카타르와의 최종예선 첫 경기에 서 2골을 기록했다. 광복절(2012년 8월 15일)에 열린 잠비아와의 평가전에선 2골을 기록해 팀의 2-1 승리를 이끌었다.

이렇게 최강희호 이후 대표팀의 믿을만한 공격수로 다시 자리잡게 되었는데 상무 입대 이후로 A매치에 출장했을 때는 역시나 한창 때보다 폼이 떨어진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럼에도 그 능력은 인정받아서 계속 기회를 얻고 있다.

3.1.4. 홍명보호 시절[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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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명보호 출범 이후 아이티-크로아티아 평가전에서 득점하더니 말리전에서 주장 완장을 차고 원톱으로 선발 출전, 제로톱에 가까운 역할을 수행하면서 특유의 왕성한 활동량으로 2선의 손흥민-이청용 등과 좋은 시너지를 내며 득점에 기여하진 못했지만 팀 승리에 한몫을 담당했다. 이로 인해 언론 및 박주영의 대표 복귀를 원하지 않는 팬들 사이에서 한국의 현실적인 최상의 원톱 대안으로 떠오르는 중.

본인 인터뷰에 따르면 아무래도 선수들 수준이 떨어질 수 밖에 없는 2부에서 뛰다 온 것을 스스로 인식해서 템포를 끌어올리려고 노력했던 듯. 과연 경기를 치를 때마다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2014년엔 미주 전지훈련의 평가전에서는 안 좋은 모습을 보였다. 이는 자신의 전술에 안성맞춤인 선수만 골라 뽑기 위해, 선수의 개성이나 플레이 스타일이야 어떻든 큰 틀만 짜놓고 거기에 끼워맞춰놓고 무작정 방치한 홍명보의 잘못이다. 사실 이 전지훈련은 케이리거와 시청자들에게 던지는 메세지에 가깝다. 쉽게 말해 대표팀 티오는 진작 정해졌으니, 대표팀에 오려면 해외파 따가리 노릇을 하던가 꼬우면 오지말던가.

해외파와 국내파와, 큰 차이가 없다 코스타리카와 평가전을 앞두고 국내파와 해외파의 수준을 이야기했던 인터뷰가 네티즌의 조소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이 인터뷰는 월드컵이 끝나고 재평가를 받았다.

3.1.5.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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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에서의 한을 풀다

수많은 선수 들이 싸는 와중에 김승규, 김신욱, 기성용, 손흥민과 함께 홍명보호에서 그나마 잘 한 선수

결국 지난 남아공 월드컵 탈락이라는 아픔을 곱씹으면서 절치부심한 끝에 브라질 월드컵 최종 명단에 당당히 선발되면서 생애 첫 월드컵 출전을 확정지었다.

1차전 러시아전에선 후반전에 박주영과 교체 이후, 활발한 움직임을 통해 공격진에 활기를 불어 넣더니 그대로 슈팅을 때려 골문을 흔들었다. 아킨페프 때땡큐 by 안정환[15] 골을 넣은 것 외에도 선발출장하여 56분동안 0골 0어시 0슈팅을 기록한 박주영과 비교해 활동량, 움직임, 돌파력 등 모든 면에서 우위에 서는 모습을 보였다. 이 골로 인해 이번 월드컵에서 골을 넣은 선수 중 최저 연봉자가 되는 진기록을 세웠다.[16]

여담으로 재미있는 기록임은 분명하나, 역대로 따져보면 그보다 더 연봉이 낮았던 서정원도 있다. 94년 미국 월드컵에서 스페인 상대로 득점할때 소속이 상무였다. 1990년에 병장 월급은 9,400원이었다. 2000년에 18,200원이었으니 서정원이 있을 당시에는 1만원 초반대였을 것이다. 연봉을 계산하면 지금 병장 월급 수준. 더군더나 서정원은 입대하자마자 이등병 신분으로 월드컵에 나갔다. 월드컵이 끝난 후 일병이 되어 훈련소에 입소했다고 한다.

사실 포기하지 않는 불꽃남자라 카더라

알제리전에서 결정적인 상황에서 욕심부리지 않고 쇄도하던 구자철에게 패스하면서 2:4로 만드는 만회골을 넣는데 공헌했다. 이로서 첫 월드컵 득점에 이어 도움까지 만들어내며 2경기 1골 1도움을 기록, 2경기 0슈팅 0어시 1따봉 1미안 1비행기를 한 어느 선수차원이 다른 경기력을 선보였다. 비록 한국팀은 알제리를 상대로 처절한 패배를 거두었지만 그라운드를 개처럼 뛴 손흥민, 후반 투입 이후 모든 공중볼을 따내며 알제리 수비진을 관광쳤던 김신욱과 함께 까방권을 얻은 몇 안된 선수였다. 또한 본인의 기량과 상관없이 K리그에서 뛰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저평가받던 입축구 좆문가 축구 사이트에서 재평가까지 이뤄지며 사상 최고의 순간을 맞이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3차전 벨기에 전에선 후반 한국영과 교체 투입되어 쿠르투와와 일대일 상황을 만들기도 하는등 2차례에 걸쳐 좋은 찬스를 잡았지만 하나는 칩샷을 시도했으나 골대 위로 멀찌감치 띄우고 하나는 쿠르투아의 선방에 막혀 득점에는 실패했다. 또한 얀 베르통헌의 결승골은 그가 한국 진영에서 공을 끌고 나오다가 탈취당한 것이 발단이었다. 하지만 그 실점 장면은 벨기에 역습상황에서 공격수 이근호가 죽어라 뛰어내려와서 탈취한 공이 다시 재탈취당한 것이다. 또 1차 선방 이후 쇄도하는 선수를 막지 '않은'[17] 수비수들 잘못도 크다.그리고 이근호가 죽어라 내려와서 공을 뺏었다 다시 뺏기고 골키퍼가 1차 선방한 걸 다시 차서 먹히는 와중에 수비형 미드필더 기 모 선수는 카메라에 잡히지도 않았다. 왜 안 보이나 몇 번씩 다시 돌려보니 상대편 문전까지 올라가서 어슬렁거리다 수비 복귀 안하던데 이게 수비형 미드필더 맞냐?

특히 이번 브라질 월드컵을 기점으로, 85년생 동갑인 박주영과의 비교에서 우위를 점하게 되었다. 박주영은 천재소리를 들으며 승승장구, 유럽 무대에서도 인지도를 올렸고 끝내는 통수아스날 이적까지 해내면서 빅클럽에 발을 붙였지만, 이근호는 이적 파동에 휘말리고 J리그로 간 이후 폼이 떨어져 남아공 월드컵 최종 명단에서 탈락하는 좌절을 맛보았고, 동갑내기 박주영이 유럽 여행을 하고 있을 때 국내용이란 소리를 들으며 까였다.

하지만 이번 월드컵에서 보여준 이근호의 투혼과 센스는 굉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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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보 쿠르투아의 세이브만 아니었으면 아마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 역사상 가장 멋진 골이 됐을지도 모른다.

비록 팀 성적은 별로였지만 이근호가 그간의 설움을 딛고 활약하는 모습에 많은 축구팬들이 감동해서 열렬한 성원을 보냈으며, 홍명보의 으리 논란에 맞서 김신욱, 김승규와 함께 K리거의 자존심을 세우고 돌아왔다.

3.2. 슈틸리케호 시절[편집]

3.2.1. 슈틸리케호/2014년[편집]

슈틸리케호에선 초반엔 국대에 뽑히지 않고 있었다. 단, 이전의 신태용 코치가 대행을 맡을 적엔 국대에 뽑혔다. 클럽에서의 출전을 중시하는 슈틸리케인 만큼, 팀에 완전히 자리잡게 되면 그 때쯤 다시 국대에서 볼 수 있을 듯 하다. 그리고 11월 평가전 명단에 포함되었다. 문제는 박주영도 같이 뽑히는 바람에 월드컵 때에 이어서 또 경쟁을 하게 된 것. 하지만 박주영이 요르단전에서 주영화(...)가 되자 이란전에 원톱으로 선발출전했다. 그다지 좋은 모습을 보여주진 못했지만 위협적인 슈팅을 하고 손흥민과의 연계플레이 등 좋은 모습도 많이 보여주었다. 이 후 소속팀에서도 골을 기록하면서 소속팀에서 부진한 박주영을 제치고 당당히 아시안컵 엔트리에 뽑혔다.

3.2.1.1. 2015년 AFC 아시안컵[편집]

조별리그 첫 경기인 오만전에서는 나오지 못했다가 쿠웨이트전에서 원톱으로 선발출전했다. 이 날 대표팀 경기가 워낙 막장이었지만 이근호는 그나마 기성용, 박주호와 같이 칭찬을 받았다. 비록 골은 기록하지 못했지만 왕성한 활동량으로 수시로 뛰어다니면서 쿠웨이트 선수들을 압박했고 수비가담도 적극적으로 했다. 하지만 이근호 특유의 투박한 플레이와 드리블은 그대로 남아있어 커뮤니티에서는 이근호를 신나게 깠다. 그러나 이 날 경기에서 가장 많은 슈팅을 기록한 것도 이근호였다. 하지만 골 결정력이 그야말로 안습이어서 전반 30분에 김민우의 스루패스를 받고 1:1 찬스를 맞이하고 골키퍼가 각을 좁히자 칩샷을 시도했지만 막혔고 헤딩슛은 골대를 아슬아슬하게 스쳤다. 후반에는 골키퍼에게서 공을 가로채 오른쪽 골라인에서 공을 감아찼지만 그것도 빗나갔다. [18] 게다가 이청용이 빠지자 다른 선수들은 시도하지도 않은 2:1 패스 등 연계플레이를 많이 보여주었다.

3차전인 호주전에서도 무난한 플레이를 보여주었다. 다만 이번엔 원톱이 아닌 평소 뛰는 위치인 윙으로포지션을 전환했다. 특유의 투박한 스타일은 그대로 있었으나 좋은 드리블을 보여주고 수비가담을 쉴새없이 하였다. 전반 30분 경에는 기성용의 패스를 받고 이를 다시 이정협에게 연결해주면서 어시스트를 기록했다.

토너먼트 8강전에서도 호주전에서 같은 포지션으로서 출전했고 무난한 드리블과 많은 활동량으로 우즈베키스탄 선수들을 압박했다. 공격시에는 올라오고 특히 적극적인 수비 가담으로 수비시에는 내려와 다른 선수들과 우즈베키스탄 선수들을 압박해 공을 탈취했다. 끊임없이 공간을 찾아 움직였지만 우즈벡 수비수들의 방해와 아쉬운 골 결정력으로 득점을 올리진 못했다. 전반 17분에도 손흥민의 절묘한 패스를 받았지만 수비수들에게 막혔다. 그리고 기성용과 박주호의 절묘한 로빙패스를 두 번이나 받았지만 퍼스트터치가 시망이라서 공이 한 번은 골라인으로 나가고 한 번은 골망을 때렸다. 공격에 있어서 퍼스트터치는 상당히 중요하기 때문이다.

결승전에서는 후반 62분에 교체 출전했지만 시간이 부족해 이렇다 할 모습을 보여주질 못했지만 전과 같이 끊임없이 공간을 찾아 들어가고 수비가담을 적극적으로 하는 등 고군분투했지만 결국 팀은 1:2로 아쉽게 지고 말았다.

3.3. 슈틸리케호/2015년[편집]

아시안컵이 끝나고 작년 중동 진출 후로 좋았던 폼이 떨어지면서 대표팀과 멀어진 상태이다. 그의 대체자로는 석현준과 이정협, 황의조가 있고, 2선 자원은 기존의 지동원, 손흥민, 이청용 외에 가능성 있는 선수들이 속속 등장하면서 대표팀 복귀를 위해서는 꾸준한 출전과 결과물이 있어야 가능할 것이다. 결과적으로는 홍명보호때 생존자중 김신욱과 함께 나가떨어졌다. 김신욱은 이미 슈틸리케가 써먹기 어렵다는걸 알아서 그런지 국대에 잘 안뽑으려고 하고, 이근호는 제주 이적후 폼을 끌어올린다면 국대로 다시 갈 가능성이 있다. 손흥민, 이청용, 석현준이 삐걱거리기 때문에 어느 자리에 서도 괜찮은 만능 자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제주에서 준수한 모습을 보였음에도 6월 평가전 명단에는 들지 못했다.

3.4. 슈틸리케호/2017년[편집]

2017년 6월 14일 2018 FIFA 월드컵 러시아/지역예선(아시아)/최종예선/A조 8차전인 카타르전에 교체 투입됐다. 이근호가 들어오자 공격 분위기가 살아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근호가 아쉽게도 좋은 찬스들을 많이 놓쳐서 골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3.5. 신태용호 시절[편집]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에서 투톱의 가능성을 열다[19]

11월 평가전부터 합류했다. 콜롬비아전과 세르비아전에서 손흥민을 보조하는 섀도 스트라이커 역할을 정말 잘 해줬다.[20] 공간 침투 및 돌파 능력을 십분 활용하여 다수의 득점 기회를 만들어 내는 등, 여러모로 이근호를 재발견하면서 손흥민의 잠재력을 끌어올렸다. 손흥민&이근호의 투톱 체제가 상당히 안정적으로, 공격진의 플랜A로 다시 중용될 듯하다.

EAFF E-1 챔피언십 3차전에는 울산 시절 콤비인 김신욱과 투톱으로 출전하며 일본을 4-1로 압살해 버렸다. 사실 이 대회 이근호는 무릎에 물이 차는 등, 출전이 불투명했지만, 계속 휴식을 취하며 컨디션을 올려 놓았다. 그리고 2012년 아시아를 제패했던 울산 철퇴 콤비의 진가를 보여줬다. 비록 이근호가 직접 도움이나 골을 기록하지는 못했지만, 활발한 움직임으로 일본 측면과 수비를 괴롭혔다. 이 날 승리로 이근호는 삿포로 참사 당시 수모를 갚아주는 데 성공했다.

이 페이스로 컨디션이나 경기력을 유지한다면 러시아 월드컵에서 주전이 유력한 상황이었으나, 오른쪽 무릎 인대 파열이 확인되어 월드컵을 눈앞에 두고 국가대표팀에서 낙마하고 말았다. 근호야...너도 어떻게 나랑 같은 길을...불쌍한 녀석.. 설상가상으로 서울양양고속도로에서 교통사고까지 당하기도 했다.[21]

부상으로 월드컵 최종 엔트리에서 낙마한 후 KBS에서 해설위원을 해달라는 요구를 수락해 이영표, 한준희 등과 2018 러시아 월드컵 경기를 해설했다. 해설자로 러시아에 가서 우리가 언제부터 16강을 당연하게 바라봤냐는소신 발언을 했다가 다수의 네티즌들한테 축협의 앞잡이, 적폐로 몰리고 심지어일부 네티즌이 이근호의 SNS에 욕설 공격을 남기기도 했다. 관련 칼럼

사실 기사에서 이근호가 한 말의 전문을 읽어보면 사실 우리는 그런 것 계산하는 수준의 나라가 아니다.멕시코가 1차전에서 이겼으니까 2차전에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고, 우리가 1차전에서 스웨덴에 졌으니까 2차전에서 어떻게 해야 하고... 사실 월드컵에서 한국 축구는 그런 위치가 아니잖는가. 우리는 그냥 매 경기가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최선을 다하는 것 뿐.이라는, 한국 축구 팬들이 입에 달고 사는 말을 그대로 했을 뿐이지만 이를 팬들을 저격하는 발언으로 왜곡시켜 조회수를 늘리고자 한 기자의 농간에 수많은 네티즌들이 낚였을 뿐이다.

4. 기록[편집]

4.1. 울산 현대[편집]

  • AFC 챔피언스리그 우승 : 2012

4.2. 상주 상무[편집]

  • K리그 챌린지 우승 : 2013

4.3. 전북 현대 모터스[편집]

  • K리그 클래식 우승 : 2015

4.4.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편집]

  • AFC 아시안컵 준우승 : 2015, 3위 : 2007

5. 통산 성적[편집]

5.1. 클럽[편집]

2004시즌(인천 유나이티드)

KFA컵 1경기 0골

2005시즌(인천 유나이티드)

KFA컵 1경기 0골
리그컵 5경기 0골

2006시즌(인천 유나이티드)

리그 2경기 0골
리그컵 1경기 0골

2007시즌(대구 FC)

20경기 8골
KFA컵 2경기 0골
리그컵 7경기 2골

2008시즌(대구 FC)

26경기 11골
KFA컵 3경기 2골
리그컵 6경기 2골

2009시즌(주빌로 이와타)

리그 24경기 12골
일왕배 1경기 1골
리그컵 1경기 0골

2010시즌(주빌로 이와타)

리그 12경기 1골
리그컵 4경기 1골

2010시즌(감바 오사카)

리그 20경기 4골
일왕배 5경기 1골

2011시즌(감바 오사카)

리그 32경기 15골
일왕배 1경기 0골
AFC 챔피언스리그 7경기 2골

2012시즌(울산 현대)

리그 33경기 8골
AFC 챔피언스리그 7경기 1골

2013시즌(상주 상무)

리그 25경기 15골
KFA 0경기 0골

2014시즌(상주 상무)

리그 18경기 4골
KFA 0경기 0골

2014-15시즌(엘 자이시)

리그 18경기 2골
AFC 챔피언스리그 2경기 0골

2015시즌(전북 현대 모터스)

리그 15경기 4골

2016시즌(제주 유나이티드)

리그 35경기 5골

2017시즌(강원 FC)

리그 33경기 7골
KFA 2경기 0골

5.2. 국가대표[편집]

국가대표

84경기 19골

6. 주요 개인 수상[편집]

  • 백운기 전국고교축구대회 최우수선수상 : 2003

  • K-리그 2군리그 최우수선수상 : 2006

  • 제21회 스포츠서울 올해의 프로축구 대상 인기선수상 : 2007

  • 윈저 어워드 한국축구대상 베스트11 공격수부문 : 2007

  • K리그 클래식 베스트 XI : 2007, 2008, 2012

  • 윈저어워즈 한국축구대상 대상, 베스트 11 FW 부문상 : 2008

  • AFC 챔피언스리그 MVP : 2012

  • 아시아축구연맹(AFC) 올해의 선수상 : 2012

  • 현대오일뱅크 K리그 대상 챌린지 베스트 11 공격수부문 : 2013

  • 현대오일뱅크 K리그 대상 챌린지 득점왕 : 2013

  • 현대오일뱅크 K리그 대상 챌린지 MVP : 2013

  • 현대오일뱅크 K리그 대상 사랑나눔상 : 2016

7. 둘러보기[편집]

2012년 아시아 올해의 축구 선수

세르베르 제파로프(알 샤밥)

이근호(울산 현대)

정즈(광저우 헝다)

파일:K리그 챌린지 로고.png MVP

2012년

2013년

2014년

리그 창설

이근호
(상주 상무)

아드리아노
(대전 시티즌)

파일:K리그 챌린지 로고.png 득점왕

2012년

2013년

2014년

리그 창설

이근호
(상주 상무)

아드리아노
(대전 시티즌)

2007 K리그 베스트 일레븐

FW
이근호

FW
까보레

MF
따바레즈

MF
이관우

MF
김기동

MF
김두현

DF
아디

DF
마토

DF
황재원

DF
장학영

GK
김병지

2008 K리그 베스트 일레븐

FW
이근호

FW
에두

MF
김형범

MF
조원희

MF
기성용

MF
이청용

DF
아디

DF
마토

DF
박동혁

DF
최효진

GK
이운재

2012 K리그 베스트 일레븐

FW
이동국

FW
데얀

MF
몰리나

MF
하대성

MF
황진성

MF
이근호

DF
아디

DF
정인환

DF
곽태휘

DF
김창수

GK
김용대

2013 K리그 챌린지 베스트 일레븐

FW
이근호

FW
알렉스

MF
염기훈

MF
이호

MF
최진수

MF
김영후

DF
최철순

DF
김형일

DF
이재성

DF
오범석

GK
김호준

2017 K리그 클래식 베스트 일레븐

FW
이근호

FW
조나탄

MF
염기훈

MF
이재성

MF
이창민

MF
이승기

DF
김진수

DF
김민재

DF
오반석

DF
최철순

GK
조현우

8. 플레이 스타일[편집]



광역버퍼

대한민국 최고 수준의 빠른 스피드, 그리고 왕성한 활동량, 뛰어난 축구지능을 활용한 연계 플레이와 오프 더 볼 무브까지 가진 윙어의 교본. 공격 진영 전반을 휘저으며 동료들에게 공간을 만들어주면서 본인도 찬스를 많이 찾아낸다. 전술적 활용도가 박지성에 버금가는 수준이라 다른 선수들이 가진 전술적 제한까지 풀어준다. 포스트 플레이 능력 부재로 최전방 스트라이커 롤을 맡기면 지워지기 일쑤인 김신욱과 머리가 기술을 못받쳐주는 손흥민 모두 이근호만 붙여놓으면 장점이 극대화되고 단점이 줄어 활용도가 훨씬 올라간다. 신태용호의 실질적인 에이스는 이근호였고 신태용호의 가장 큰 손실이 이근호의 부상으로 인한 엔트리 탈락이였다.

다만 단점도 뚜렷하다. 상당히 투박한 스타일로 퍼스트 터치나 볼 컨트롤이 국제무대 기준으론 둔탁해서 찬스를 많이 찾는 만큼 놓치기도 많이 놓친다. 덕분에 눈에 많이 띄게 되면서 유난히 욕을 먹는 경향이 있다.[22] 하지만 해외파를 통틀어서도 이근호만큼이나 찬스 냄새를 맡을 줄 알고 또 거기까지 움직여주는 선수는 없다. 정말로 없다. 이 덕분인지 한때 박지성-이근호 콤비는 절정을 이뤘으며, 박지성 은퇴 이후 손흥민과의 조합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부상으로 오랫동안 뛰지 못하게 된 것이 아쉬울 따름.

측면으로 빠지는 플레이가 많기 때문에 크로스도 적당히 올릴 줄 알고, 라인 파는 플레이도 괜찮다. 그리 큰 키는 아니지만 점프력이 나쁘지 않고 의외로 헤딩 감각도 날카롭다. 중앙에 섰을 때 도움됨은 물론이고 울산 철퇴축구 시절에는 곽태휘, 김신욱 같은 거인들에게 주구장창 경합을 시키다 가까운 쪽에 있는 이근호에게 한 번 올려서 매섭게 잘라들어가는 플레이는 알고도 손발이 어지러워서 못 막았다.

[1] 시조 42세손 '호(鎬)' 항렬[2] 유명 유튜버 KSI가 동생 Deji의 권유에 따라 피파 시리즈에서 한국 국대를 플레이하다가 Lee Keun Ho를 듣고 "Lick a whore?(창녀를 핥으라고?)"라고 대답한 데서 유래.[3] 물론 당시 선수들 기준이다. 오장은, 홍순학, 진순진 등의 선수들이 국가대표 경력이 있었다.[4]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대표로 선출되어 박주영과 함께 팀의 공격을 책임졌으나 단점인 골 결정력 부족을 극복못해 부진한게 컸다. 승점자판기로 예상된 약체 온두라스와 3전 전승이 예상되는 강호 이탈리아, 다크호스 카메룬과 한조가 된 대표팀이 8강에 진출하기 위해선 온두라스는 무조건 이긴다고 보고 카메룬을 잡는게 필수였다. 그러나 이근호가 여러번의 좋은 기회를 모두 날려 버리면서 무승부를 기록한다. 이후 2차전 이탈리아전에서 세바스티안 지오빙코와 토마소 로키를 앞세운 이탈리아에 0-3으로 참패하여 경우의 수를 따지게 되었고 3차전 온드라스 전에서 1-0 승리에 그치며 8강 진출에 실패한다. 지금도 대표팀이 졸전할때면 나오는 축구장에 물채워라 드립이 처음나온게 이 때였다.[5] FA로 풀린 이후 빌렘 II와 계약 성사 직전까지 갔으나 파리 생제르맹이 이근호의 영입을 추진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오면서 이근호 측에서 게약을 무산시켰고, 그 후 파리 생제르맹과 게약 성사 직전까지 갔으나 비유럽인 등록 기간 문제로 이 역시 무산된다. 당시 파리 생제르맹 측에서 다음 이적시장이 열릴 때 까지 6개월간 뛸 팀을 추천해준다며 알려준 팀이 덴마크의 오덴세였으나 정작 오덴세 측에서는 6개월 계약은 맺어줄 수 없다는 입장을 표했다고.[6] 폴 르구엔 감독이 경질되면서 이근호는 더 이상 팀의 우선 타겟이 아니게 되었고, 만일 이적한다 하더라도 PSG는 이미 공격수 보강을 마친 상황이여서 주전 출장을 보장받기 어려운 상황이었다.[7] 압박의 강도가 덜하니 골 넣기는 K리그보다 수월하지만 장기적으로 선수의 성장에는 좋지않은 영향을 미친다는게 중론. 베어백 재임 시절 국대 원톱 이었던 조재진은 K리그 시절 골 결정력은 떨어졌지만 왕성한 활동량과 몸싸움으로 동료들에게 많은 기회를 제공해주던 선수였는데 J리그 진출 이후 장점이던 왕성한 활동력을 잃어 버렸다.[8] 물론 강민수는 곽태휘의 부상으로 인하여 대체선수로 뽑힌 것이긴 하지만...[9] 다만 이 이그노어란 별명은 처음부터 비아냥대는 뜻으로 쓰인 것이 아니라, 2007년 아시안컵 당시 주전 공격수들의 절망적인 경기력에도 벤치의 이근호를 베어백 당시 감독이 끝까지 ignore한다는 안타까움에서 비롯된 것이다.[10] 실제로 트랙터는 서울에 있는 트랙터 업체 본사에서 옮겨다 놓았다. 이근호는 올스타전 후반에서 말년 병장다운 구라빨을 세우며 상주에서 서울까지 자신이 몰고 왔다고 허풍을 쳤다. 시청자 속여먹을 속셈인지 시속이 40km도 안 되더라는 구체적인 드립까지...[11]  여담으로 이근호 선수는 백종원의 3대 천왕 짝꿍 특집편에 이휘재의 짝꿍으로 출연했는데 이휘재의 소개로 지금의 아내를 만나게 되었다고 밝혔다.[12] 이로써 17시즌 기준 K리그 12개 팀 중 절반이 넘는 7개 팀에서 뛰어본 선수가 되었다. 지금까진 모은 유니폼은 10개로 그 풍운아 이천수와 동일한 숫자다. 17시즌 만 32세로 선수생활 몇년 더 할수 있어서 추가할 가능성도 높다.[13] 런던올림픽 대표까지 포함하면 당시 강원 소속이던 오재석이 있다.[14] 놀랍게도 1위가 아닌 2위다. 경고누적과 지친 체력으로 인해 2위이다.1위는 광주 FC의 송승민.[15] 아킨페프 골키퍼가 이근호의 공을 잡는 듯 하다 놓쳐버렸다. 재밌는 것은, 이근호는 2012 클럽 월드컵 울산 vs 몬테레이 경기에서 비슷하게 골을 넣기도 했었다.[16] 참고로 골을 허용한 이고르 아킨페프는 당시 러시아 최고 연봉자... 지못미[17] '못한'이 아니다. 손드는 버릇 못 고쳐서 놓쳤다.[18] 이 때 이근호의 성실함을 볼 수 있는데 공이 튕겨 골키퍼 쪽으로 가까이 다가갔는데 다른 선수들과는 달리 끝까지 달려 기어이 골키퍼 손에서 공을 가로챘다[19] 투톱이라는 전술의 특성상, 대한민국 국가대표에서 녹아들기 어려울 것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이근호는 정통 투톱이 아니라 다른 방법으로 투톱을 소화했고, 이는 성공적으로 이어졌다.[20] 선수 본인의 최전성기였던 울산 시절에 보여줬던 모습이 바로 최전방 공격수인 김신욱을 뒤에서 보좌하는 섀도 스트라이커였다. 애초부터 맞는 옷을 입혀놓으니 잘할 수밖에 없었던 셈.[21] 하필이면 차종이 G63 AMG.... 다만 당시 이근호는 운전하지 않았다.[22] 골 결정력이란 말은 많이 쓰이지만 사실 굉장히 애매한 말이다. 야구에서 아무리 타자라도 10번 중에 3번 맞추는 게 한계인 것처럼 아무리 좋은 선수라도 슈팅을 전부 골로 연결시킬 순 없다. 이점을 감안해야 하고 찬스때만 되면 당황해 허둥지둥하거나 긴장으로 몸이 굳는 새가슴이 아닌 다음에야 슈팅을 많이 날리는건 결국 기술 문제라는 점도 감안해야 하는데 결정력이란 단어는 문제의 근본원인을 뭉개서 아리송하게 만든다. 설명을 죽 읽어보면 알겠지만 이근호는 침착성이 부족하거나 새가슴은 절대 아니다. 결국 과거 유상철처럼 기술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