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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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회장

이병철

이건희

이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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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이건희 (李健熙)

출생

1942년 1월 9일 (75세), 대구광역시

본관

경주 이씨[1]

부모

이병철, 모 박두을

형제

3남 4녀 중 다섯째

배우자

홍라희

자녀

이재용, 이부진, 이서현, 故 이윤형[2]

거주지

서울특별시 용산구 한남동

학력

서울대학교사범대학부설고등학교
연세대학교 상학 (중퇴)
와세다대학교 상학부 졸업
조지 워싱턴 대학교 대학원 경영학 석사과정 수료

현직

대한체육회 이사
대한레슬링협회 명예회장
국제올림픽위원회 위원
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원회 고문

재산

180억달러, 한화 약 20조1400억 [3]

종교

불교[4]


1. 개요2. 생애
2.1. 학창 시절2.2. 삼성의 회장이 되기까지2.3. 회장으로의 활동2.4. 입원
3. 학력4. 가족관계5. 암흑기
5.1. 무노조 경영5.2. 삼성 반도체 노동자 사망사건5.3. 비리와 재판, 그리고 사면5.4. 성매매 의혹5.5. 각종 구설수
6. 트리비아

1. 개요[편집]

삼성그룹 창업주인 이병철의 셋째 아들.

삼성전자 회장이자 사실상의 삼성그룹 총수[5]이기도 하며, 2014년 입원한 이후부턴 그의 아들 이재용이 바톤을 이어받아 삼성을 이끌고 있다. 과거 각종 조사에서 현직 대통령을 제외하면 한국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국내 재벌계의 끝판왕 격으로 묘사되던 인물이기도 하다.

2. 생애[편집]

2.1. 학창 시절[편집]

1942년 1월 9일, 일제강점기 당시 경상북도 대구부에서 삼남으로 태어났다. 하지만 그는 얼마 안가 어머니 품을 떠나 아버지 이병철의 고향인 경상남도 의령군의 할머니댁에서 3살 때까지 자랐고, 이후 일본에서 소학교를 다녔다고 한다. 이때도 형과 자취생활을 했기 때문에 사실 이시기 이건희 남매가 부모와 함께 모인 자리는 손에 꼽을 정도였다고 한다. 이러한 환경 때문이었는지 이건희의 성격 또한 내성적이 되어 어릴때부터 말수가 적고 사람들과 어울리기보단 혼자서 놀고 사색하는 시간이 많았다고 한다.

그러다 전란 중인 고학년때 다시 한국으로 와 부산사범부속국민학교를 다녔던 것으로 보인다. 이때 4,5학년을 같이 다닌 권근술 전 한겨레신문 사장 증언에 의하면 부자집 도련님이라 신기한 장난감을 많이 가지고 와 같이 놀긴 했는데, 말이 없고 장난도 잘안치던 아이라 그 외엔 기억이 잘 안난다고(…). 딱히 존재감이 없는 아이였던 모양.[6]

그러다 고교시절엔 서울사대부고에 진학했는데, 당시 이건희 회장의 동창이었던 홍사덕 전 의원이 2001년 한 인터뷰에 따르면, 미국에서 차관을 많이 들여와야 미국의 이해관계 때문에 우리 안보가 튼튼해진다는 둥 공장을 지어서 일자리를 많이 만드는 게 애국하는 길이라는 둥 1950년대 후반 고등학생이 생각하기 힘든 매우 독특한 사고를 가졌다고 한다. 물론 성공한 뒤엔 그 사람이 방귀를 껴도 박수쳐준다는 사실은 잊지 말고 보자

이때도 이건희는 딱히 말이 없고 행동도 느릿느릿한 학생이었다고 하는데, 학과공부에도 별 뜻이 없어 무슨 생각을 그리 하고 사냐고 물어보면 “나는 사람공부를 제일 많이 한다”는 황당한 답을 했다고. 그게 그냥 하는 말은 아닌지 이후 삼성의 한 임원이 이병철 회장의 눈 밖에 나서 쫓겨난 일이 있었는데, 고교생 이건희가 아버지를 찾아가 설득하자 이병철이 두말 하지 않고 그 임원을 다시 불러들였다고 한다. 이병철은 스스로의 인사관리에 대해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보다도 고등학생 이건희의 사람 보는 눈을 더 인정하고 있었다는 얘기.

또 이 시절 이건희가 홍사덕에게 느닷없이 일본 소학교 교과서 몇 권을 건네면서 “니 일본어 배워놔라. 니 정도면 두어 달만 해도 웬만큼 할끼다”고 했다. 먹물 좀 들었다는 고교생들에겐 반일감정이 팽배해있던 시절이라 홍사덕이 “그걸 뭐하러 배우노?” 하고 뜨악하게 물었더니 예의 그 심드렁한 표정으로 이건희 왈 “일본이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봐야 그 속에서 우리가 가야 할 길을 찾게 된다”고 하더라는 것.

사대부고 레슬링부에서도 활동했다고 한다. 공부에는 별 뜻이 없었던지 성적은 중간도 못했다고 한다.

이후 연세대학교 상학과[7]에 입학했다 자퇴하고 와세다대학 상학부에 진학해 졸업했다.

2.2. 삼성의 회장이 되기까지[편집]

1966년 10월 동양방송에 입사한 뒤, 1968년 주식회사 중앙일보·동양방송 이사, 1978년 삼성물산주식회사 부회장, 1980년 중앙일보 이사를 거쳐 1987년 12월 삼성그룹 회장이 되었다.

이병철의 장남도 아니고 셋째 아들인 이건희 회장이 삼성을 물려받은 게 전통적인 재벌 구조에선 좀 의아할 수 있는데, 이는 1969년 말에 이건희 회장의 형들인 이맹희이창희가 아버지를 청와대에 고발하는 병크, 일명 왕자의 난을 터뜨리는 바람에 후계구도에서 쫓겨난 탓이 크다. 같이 왕자의 난이 일어난 현대에서는 정주영 회장의 사망 직전(2000년) 즉 정주영 회장의 힘이 빠질대로 빠진 상황에서 벌어져서 후계자들이 자신의 지분을 갈라 먹는 것에 성공, 현대그룹이 분열되었던 것이지만 삼성가에서의 왕자의 난은 이병철이 반란 따위 다 진압할 힘이 있었을 때[8] 벌어졌고 그 결과 이맹희와 이창희가 진압당해(…) 내쳐졌다는 결정적인 차이점이 있다. 물론 후술하겠지만 이건희 본인이 나름 능력을 보여준 덕도 있다.

사실 어렸을 때만 하더라도 이건희는 형이 두 명이나 있어서 삼성의 회장이 되리라고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맹희의 무능과 이창희의 반란 등으로 인하여 자연스럽게 이건희에게도 기회가 왔고 이건희는 두 형들과는 대조적으로 아버지인 이병철의 마음에 들 정도의 업무성과를 내면서 후계자로 굳어졌다. 특히, 동양방송전두환에게 뺏기기 전까지는 드라마 부문을 직접 챙겨서 키웠을 정도로[9] 의욕적이었고, 성과도 꽤 좋았다. 삼성그룹 내부 경영진과 이병철 회장의 반대에 개인 사재로 한국 반도체를 인수하고 지속적인 설득으로 이병철 회장의 삼성 그룹 차원의 투자를 이끌어냈는데 이것이 현재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부가 되었다.

이 시절 군복무를 했는지에 대해선 이야기가 엇갈린다. 일전에 강용석은 이건희가 정신질환으로 면제받았다는 주장을 했으나 그 근거로 든 게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한 얘기임이 드러났고(…), 한겨레 신문의 취재에서는 만기 전역은 아니지만 복무를 하긴 했었다는 보도가 있기도 했었다. 이래저래 석연치 않은 이유로 군 복무를 회피한 것은 사실인듯. 그런데 이에 대한 비판은 이상할 정도로 잠잠한데 인터넷도 없던 시절이라 그런 부분이 거의 공개가 되지 않은 부분이 커보인다. 사실 지금도 '삼성가 남자라면 군 복무를 하는 것보다 기업을 키워 일자리를 만드는게 낫다'는 소릴 하는 사람들도 일부 있긴 하다. 삼성왕가 모병제를 하던지

이건희는 두 명의 스승으로 이병철 회장과 장인 홍진기를 꼽았다.

“선친은 경영일선에 항상 나를 동반하셨고 많은 일을 내게 직접 해보라고 주문하셨다. 하지만 자세하게 설명해주지는 않으셨다. 현장에 부딪치며 스스로 익히도록 하셨다. 이런 시간이 쌓이면서 ‘경영은 이론이 아닌 실제이며 감이다’는 체험적 교훈을 배웠다… 한편 장인은 기업 경영과 관련된 정치, 경제, 법률, 행정 등의 지식이 어떻게 서로 작용하며, 이 지식들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를 문답식으로 자상하게 설명해 주셨다. 결국 나는 두 분의 가르침을 통해 경영에 관한 문(文)과 무(武)를 동시에 배운 셈이다….”


이건희는 퇴근 후에 사람들과 어울려 술 마시고 놀지 않았다. 그럴 시간에 주로 기술관련 서적을 탐독하거나 전자제품, 각종 기계류를 분해하고 조립하면서 연구를 거듭했다. 혼자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가 생기면 관련 전문가들을 집으로 불러다 가르침을 청했다. 그는 삼성 부회장 시절 사석에서 “주말에 우리집으로 초청해 한수 배운 일본 기술자만도 수백 명이 넘는다”고 말한 적이 있다. NEC, 도시바, GM, 휴렛팩커드 등 세계 유수 기업의 CEO들도 방한시 이회장 자택을 주요 방문지로 잡는다.

그의 한남동 자택을 자주 찾는 한 재계 인사는 “이회장의 서가엔 경영학 서적은 별로 눈에 띄지 않는 반면 미래과학, 전자, 우주, 항공, 자동차, 엔진공학 등 이·공학 관련서적이 즐비하게 꽂혀 있는데, 전집류가 거의 없는 것으로 봐서 그 책들은 이회장이 직접 한 권 한 권 골라 읽은 것 같았다”고 전한다.

자동차 마니아인 이회장은 유학 시절부터 중고차를 사서 엔진까지 샅샅이 뜯어보고 다시 조립하곤 했다. 웬만한 전자제품은 콩알만한 부품의 기능 차이까지 꿴다고 한다. 국산 제품과 외국산 제품을 갖다놓고 부품 하나하나를 비교하며 품질 격차의 원인이 된 부품을 밝혀낸 뒤 계열사 기술담당 임원을 불러 그것을 쥐어주기도 했다고.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인데 회장님이니 말대꾸를 못한거 아닐까

2.3. 회장으로의 활동[편집]

회장이 된 뒤 이듬해에 제2창업을 선언하고, 인간중심·기술중시·자율경영·사회공헌을 경영의 축으로 삼아 세계 초일류 기업으로의 도약을 그룹의 21세기 비전으로 정하였다. 일본인 고문인 후쿠다에게서 받은 이른바 '후쿠다 보고서'를 보고 큰 충격을 받아 1993년 6월 위로부터의 적극적인 혁신을 시작하여, 모든 직원에게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는 모든 것을 바꾸라'고 요구했다.[10] 그는 이러한 '신경영'을 통해 획기적인 경영혁신을 추진해 나갔고 삼성그룹을 세계 일류 기업으로 도약시켰다. 후쿠다 고문에게는 매우 두둑히 챙겨줬다고 하는데 일본에서는 한국 기업이 일본 기업들을 다 제치게 도와줬다면서 욕을 먹기도 했다고.

그룹 회의에서 심심하면 위기라고 말하는 경향이 있다. 매출이 100조를 넘어도 시장 흐름이 바뀔지 모르니 걱정, 매출이 줄면 줄었다고 걱정. 그런데 다들 알겠지만 이렇게 항상 경각심을 늦추지 않는게 여러 CEO들의 특징이기도 하고, 삼성 성장의 비결 중 하나이기도 하다. 인텔의 前 CEO도 일본업체에게 메모리반도체 분야를 추월당한 다음엔 맨날 위기론에 빠져 있었다고. 다만 항상 그러는건 아니라 2010년대 초반 쯤엔 중국이 우릴 쫓아오려면 아직 멀었고, 일본은 힘이 빠졌다는 뉘앙스로 낙관론을 내놓기도 해 이목을 끌기도 했다. 다만 몇년 안가 또 위기론 펼치시다 병원에 입원한게 함정

대기업을 이끄는 총수답게 경영 방식 또한 철두철미하고 세세하게 관리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前 삼성그룹 법무팀에서 일했던 김용철 변호사가 쓴 책인 <삼성을 생각한다>에 나오는 지시사항을 보면 알 수 있다.

그와 관련된 수많은 저서 중에는 제 3자인 작가가 쓴 평전인 「이건희 스토리」라는 책이 있는데, 우리가 일반적으로 아는 이미지와 다른 그의 삶을 알고 이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는 책이다고 평하는 사람도 있다.

다만, 관리의 삼성이라는 면에서 '자율경영'이 안 된다는 비판도 있다. 신경영만 봐도 당시 선언의 상징적 조치로 받아들여진 7-4제(7시 출근, 4시 퇴근)는 90년대 후반에 벌써 사라졌다. 또 신경영 당시 이건희 회장은 직원들에게 "회장이 잘못하거나 틀렸으면 '그게 아니라 이겁니다'라고 지적해주는 사람이 없다. 사장, 비서실장이 회장한테 지적을 안 하는데 어떻게 과장, 부장이 이사, 상무한테 지적하느냐. 이것부터 고쳐라"고 강도높게 주문했지만, 이 역시 사라졌다.

선대부터 이어져온 전통이긴 하지만 노조를 허용하지 않는 무노조 원칙을 고수하는 것도 주요 비판거리다. 다만 2010년대 이후부턴 원체 기업규모가 커져서 그런지 노조가 사실상 허용됐다는 말도 있다. 실용성은 의문이다만 자세히 아시는 분은 수정바람.

2.4. 입원[편집]

2014년 5월 급성 심근경색으로 인해 자택에서 가장 가까운 순천향대학교 서울병원 응급실에 입원했는데, 심장이 멎는 급박한 사태에 이르기도 했다. 그러나 심폐소생술로 심장기능이 돌아온 후 삼성그룹 산하인 삼성서울병원에 이송됐다. 스텐트 시술을 받고나서 VIP병실에 입원했다. 그리고 몇년째 계속 입원해있다. 덕분에 주기적으로 그의 사망설이 도는 중. 담당의사들 진땀 참고로 삼성병원 x층에 이건희 회장 전용 엘레베이터와 연결된 층이 있다고 한다.

투병생활 1년차 조금 넘어서서 2015년 대한민국 메르스 유행 파동이 일어났고 3차 감염자 태풍의 눈으로 삼성서울병원이 주목받는 와중에도 계속 자리를 지켰다. 병원측에서도 이건희 회장의 병실이동계획은 없고 입원수술상황 역시 정상적인 상황이라고 밝혔다. 애초에 이 회장이 입원한 이후부터 삼성 경영권은 이미 이재용으로 넘어갔다고 봐도 무방한지라 현 상황에서 삼성 기업에 큰 변동은 없을듯. 2015년 5월에는 삼성문화재단, 삼성생명공익재단 이사장직을 아들에게 넘겨주었다.[11]

이건희 회장의 건강상태에 대해선 온갖 추측들이 많다. 관련 기사. 대충 추측해보면 반 식물인간 상태에서 눈을 뜨고 감는 등의 반사적인 행동은 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재활치료도 진행 중인 것으로 보이는데 자기 구단에서 뛰고 있는 야구선수 이승엽홈런 소식에 눈을 번쩍 뜨기도 했다고. 국민화타 2016시즌에는 꿈도 희망도 없는데

2016년 6월 30일경 이건희 회장이 사망했고 오후 3시에 발표한다는 루머가 돌아 삼성주가가 폭등하는 해프닝이 벌이지기도 했으나 삼성은 사실 무근이라고 일축했다. 그리고 이 사망설을 퍼뜨렸다고 알려진 사이트 일베가 압수수색을 당하게 되었다(…). 건드리면 안되는 대상을 건드린 일베

양양 낙산사 홍련암에는 관세음보살상 중앙에 이건희 앞으로 건강 발원을 빌며 가장 큰 초가 하나 공양이 되어 있는데, 아마도 아들 이재용이 올린 것으로 추정된다. 제 아무리 정신나간 놈이라도 죽은 사람을 위해 건강 발원을 하지는 않는다. 일단 2017년 현재는 병원에 입원에 입원해 요양 중인 것으로 보인다.[12]

3. 학력[편집]

1961년 서울대학교사범대학부설고등학교 졸업
1961년 연세대학교 상학부 (중퇴)
1965년 와세다대학교 상학부 졸업
1966년 조지 워싱턴 대학교 대학원 경영학 석사과정 수료
2000년 서울대학교 명예 철학 박사
2005년 고려대학교 명예 철학 박사
2010년 와세다대학 명예 법학 박사


4. 가족관계[편집]

5. 암흑기[편집]

경영권을 물려받은뒤 삼성을 세계적인 기업으로 키웠다지만, 사실 들여다보면 이건희 체제에서의 흑역사도 장난 아니다. 참고로 삼성에 관한 비리는 삼성 내부고발자 김용철 변호사의 삼성을 생각한다, 삼성 비리전문가인 주진우 기자의 저서 주기자를 비롯 여러 언론사에서 나온 삼성 자료들만 대충 훑어봐도 충분히 알 수 있다.

5.1. 무노조 경영[편집]

선대 이병철때부터 내려온 무노조경영을 본인도 그대로 이어 받았다. 그리고 삼성은 노조활동을 방해하는 여러 일화들로 악명이 자자하다. 특히 여러 사업장(공장을 삼성은 사업장이라고 한다.)에서는 노조결성이 의심되는 직원들의 휴대폰, 전화를 도감청은 물론이고 미행까지 서슴치 않는다고 한다.[15] 통화내용을 얻기위해 경찰서에 알력으로 영장을 발부하게 해서 통신사에 의뢰하여 노조활동이 담긴 통화내역을 발췌해 직원을 자르는 일이 감사팀과 인사팀의 주요업무라고도 한다.-삼성을 생각한다-

이런 무노조방침은 해외도 어디 가지 않아서 매수와 협박등 온갖 방법을 동원한다고 한다. 영국의 사업장에는 노동조합이 존재하는데 무노조경영방침을 이야기하자 노동자들의 원성이 자자했다.# 결국 영국 노동청은 노조없는 기업은 우리나라에 필요없으니 나가라고 하여 삼성은 영국 노동자들의 노조활동을 인정했다고 한다.

5.2. 삼성 반도체 노동자 사망사건[편집]

삼성 반도체 노동자 황유미씨가 반도체 공장에서 백혈병에 걸려 사망하면서도(황씨 말고도 여럿있었다.) 산재로 인정안하고 끝까지 버티다가 결국 본인이 병환으로 눕게되자 뒤늦게 그룹차원에서 산재인정을 했다. 이 사건은 또 하나의 약속이라는 영화로도 개봉했다. 삼성을 다룬 이야기라 투자가 어려워서 전액 국민후원으로 영화를 제작했다. 이건희를 고발했던 김용철 변호사가 삼성을 폭로한 삼성을 생각한다를 보면, 자신과 같은 법무팀이 한 일들이 바로 삼성 사업장을 돌면서 이런 저런 사건사고와 악재들을 막아서(검찰인맥을 동원해서라도) 기소까지 가지않도록 하는 것이었다고 회고하고 있다. 결국 이 사건으로 삼성은 2012년 다보스포럼 세계 악덕기업 3위에 랭크되는 흑역사를 기록했다.#

5.3. 비리와 재판, 그리고 사면[편집]

삼성의 전 법무팀장인 김용철 변호사가 삼성비리 관련하여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에 양심고백을 했던 일이 있었다. 이로 인해 2008년 4월 22일, 이건희 회장의 차명계좌가 적발되고 천억원대의 세금포탈 혐의가 적발되면서, 이건희는 삼성 경영쇄신안을 내놓고 삼성과 관련된 모든 직책을 내놓고 이수빈 삼성생명 회장이 경영권을 승계하여 전격퇴진하였다. 이건희가 증여세를 피하면서 삼성 그룹의 지분을 물려주려 했다는 의심을 받은 이건희의 아들 이재용도 최고 고객 책임자[16]의 직위에서 물러났다. 김용철은 이건희의 비리 혐의와 삼성 내의 비화 등을 담은 <삼성을 생각한다>를 출간했고, 이 책은 상당한 반향을 일으켰다. 2008년 4월, 임원들과 함께 불구속 기소되었다. 참고로 이건희 본인이 구치소에 구금되거나 수감된 전력은 없다. 삼성공화국 '황제 경영’ 이건희 결정적인 흑역사 네 가지 장면.

2009년 12월 29일, MB정부에서 특별사면을 하기로 발표했다. 이와는 별도로 2010년 2월 7일, IOC에서도 견책(a reprimand) 조치를 취했으며, 향후 5년간 산하 위원회 활동을 금지하였다. 단, IOC 위원으로서의 활동은 계속할 수 있다. 동시에 대법원에서 근소한 차이로 삼성 에버랜드 사태에 대해서도 무죄 처분을 받았다.[17] 그리고 이듬해 3월, 경영에서 퇴진한다는 약속을 철회하고 회장 퇴임 23개월만에 삼성전자의 회장으로 복귀했다. 기사.

5.4. 성매매 의혹[편집]

2016년 7월 21일 오후 10시 인터넷 언론인 뉴스타파에 의해 이건희 회장의 불법 성매매 장면이 보도되었다. 이맹희 의문의 1승 말년에 이 무슨 개망신 이제는 마누라도 바꿀 때가 됐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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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이 촬영된 기간은 이건희 회장이 입원한 2014년 전인 2011년부터 2013년까지이며, 때문에 영상 속에는 건강했을 당시의 이건희 회장 모습과 목소리가 나온다. 그리고 수차례의 전문가 검증을 통해 위변조 가능성이 낮음을 확인했다.

영상에는 이건희 회장이 여러 여성에게 돈봉투를 건네주던 중[18] 한 여성에게 "니가 오늘 수고했어~ 응? 니 키스 때문에 오늘 했네OO했어." 와 같은 저질 음담패설을 내뱉는 등 누가 봐도 성매매로 의심할 만한 발언과 행동이 적나라하게 찍혔다.

뉴스타파 제작진은 취재 결과 이 영상이 삼성그룹으로부터 돈을 뜯어내려는 일당이 성매매 여성과 공모한 끝에 나온 것으로 보이며, 성매매에 대한 삼성그룹의 조직적 지원이 있었을 가능성도 보도했다.

보도 직후 이 영상이 트위터 등 SNS를 통해 빠르게 퍼져 나갔고, 기사화까지 이루어지면서 포털 사이트 실시간 인기 검색어에 이름이 오르내렸다.

다수의 네티즌들은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가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이건희 회장이 올라간 걸 보고 지난 몇 년간 투병중이던 이 회장이 결국 사망한 줄 알고(…) 기사를 찾아봤다가, 전혀 예상 못한 소식에 놀랐다고 한다.

2016년 7월 22일, 삼성그룹이 공식 입장을 발표했다. "물의가 빚어져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면서도, "회장의 사생활 관련이라 회사로서는 드릴 말씀이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허나 그동안은 회장 일가를 삼성그룹의 신처럼 받들던 사람들이 이제 와선 기업 삼성과 이건희 회장의 사생활은 별개라고 빼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있다. 관련 기사 그렇다하더라도 삼성그룹이 회장의 성매매에 대해 왈가왈부하는것도 애매하긴 하다.

특이한 점은, 이 정도로 대규모 사건이 터졌음에도 조중동에서는 2016년 7월 22일 14시 44분 현 시점까지 이와 관련된 기사가 하나도 올라오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조중동 뒤에 누가 있는지를 생각하면 딱히 특이하진 않다

네이버 기사의 순서를 보면, 최초 뉴스타파가 보도한 이후 1시간 정도 후에 한경오에서 지원 사격 관련 보도를 냈고, 이후 인터넷 뉴스들을 중심으로 관련 보도가 계속하여 올라왔다.

해당 기사마다 댓글이 수천개씩 붙고 최초로 보도한 뉴스타파 기사의 댓글 숫자는 무려 1만 개를 넘어가는가 하면, 각 포털 사이트마다 실검 1위에 이건희가 오르내리는 둥, 그야말로 대소동이 벌어졌다.

그런데도 늘 특종에 목말라하던 조중동의 보도는 이미 하루가 지나간 시점까지 없는 상태이고, 상대적으로 빨리 보도했던 KBS의 기사는 삭제되었다. 다만 다시 몇 줄짜리 단막 기사로 보도되긴 했다. KBS 해명에 의하면 처음엔 진의 여부를 믿기 어려워 기사를 삭제하고 뉴스타파에 연락해 동영상 원본을 보여줄 것을 요청했으나 거부당해 그냥 단막 기사로 재보도했다고.

여튼 이런 주요 언론들의 행태는 기존의 연예인 성매매 및 성폭행 사건 등과는 전혀 다른 얌전한(?) 행보이기 때문에 네티즌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역시 삼성공화국 삼성 쪽에서 언론사에 전화를 돌렸을 가능성도 있는데, 이와 관련 뉴스타파는 다음과 같은 글을 올렸다. “뉴스타파 보도와 관련해 삼성으로부터 전화를 받으면 반드시 녹음을 해주세요. 만일 뉴스타파 보도 관련 청탁이 있다면 뉴스타파로 해당 녹음 파일을 보내주세요.”

하지만 사안이 워낙 세간의 큰 관심을 모은 사안인지라(…), 인터넷 없던 시절이면 레알 묻혔을지도 모른다 결국 7월 22일 삼성그룹과 특수 관계하에 있는 언론사인 JTBC[19]에서도 JTBC 뉴스룸을 통해 소식을 보도하였고, 뉴스채널인 YTN과 비슷한 시각에 방송되는 공중파 방송 3사의 저녁 뉴스에서도 모두 보도되었다. KBS, SBS, MBC, YTN.

조선일보도 7월 23일자 사회면 톱(A10면)에 실어 보도하였다.기사글 하지만 아무래도 사안의 중대성에 비해 혹은 바로 얼마 안된 시점에 터진 의 성 관련 논란에 비해 보도 비중이 확 줄었다는 느낌을 지우긴 힘들다. 그리고 기사 본문을 보면 알겠지만 뉴스타파를 거듭 언급하면서 (자신들은) 뉴스타파의 보도를 인용했을 뿐이라는 점을 은연중에 강조하는 뉘앙스다… 게다가 기사가 올라온 시각도 새벽 3시 5분.

참고로 KBS의 경우는 이건희 회장이 성매매를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을 주로 다룬 것이 아니라 몰카만을 집중해서 다뤘다. 몰카의 불법성 등을 말이다. 당연히 기사의 모양새에서 이건희는 온데간데 없고 몰카의 불법성만 부각되었으며 이건희는 마치 피해자처럼 둔갑되었다. 그걸 본 사람들은 그야말로 경악… 거기에 덤으로 뉴스타파까지 이건희를 괴롭히는 모습으로 변신시켜 버렸다.# 이건 마치 초원복집 사건을 보는 듯 하다.

한편, 8.15 특사를 앞두고 이 사건이 터져 특사를 기대했던 여러 재벌가에서 노심초사 중이라는 기사도 나왔다. 그렇잖아도 재벌 출신 경제사범을 특사로 사면해주는 것에 대해 유전무죄라고 말이 많은데, 이 사건으로 재벌에 대한 국민 감정이 악화되면 정부도 부담감을 느껴서 재벌들을 특사에서 제외할 수 있기 때문.

그런가하면 동영상 촬영자들이 삼성에 돈을 요구하기 전에 당시 재산 승계를 놓고 법적 분쟁 중이던 CJ쪽에 먼저 접근했다가 거절당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이건희 동영상 촬영자쪽, CJ그룹에 ‘거래’ 제안” 당시 CJ는 형제간의 갈등에 이런 영상을 이용하는 것은 적절하지 못하다고 거절했다고 한다.

뉴스타파에 따르면, 이 영상을 촬영하고 협박을 주도했다고 보여지는 뉴스타파에서 잡범이라 칭해진 두 남성의 행방이 묘연하다고 한다. 직계 가족들도 연락이 안되는 상황이라고. 취재진은 "선 씨의 친형, 이 씨의 전 부인과 어렵게 접촉했지만 자신들도 이들과 연락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물론 연락이 안될뿐 실종 같은 루머는 현재로선 그저 추측일 뿐이긴 하다.

김성환 삼성일반노조 위원장은 7월 25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선 씨를 지난해 4월 경기도 안성의 터미널 내 한 찻집에서 만나 그 동영상을 접했다고 밝혔다.

선 씨는 '김 위원장을 수년 동안 지켜봤다. 삼성과 싸우는 사람들은 1~2년 안에 돈을 받고 끝냈는데 김 위원장은 끝까지 싸우더라'고 말을 하면서 노트북을 건네며 보여주었다고 했다.

9월에 선 씨와 이 씨를 만났는데 이 씨가 '삼성 미래전략팀 위기관리팀 소속이라고 하는 50대 남성 두 명이 찾아와 동영상을 공개하지 말고 죽을 때까지 가져가자고 했다'는 말을 들었다고 밝혔다.#

묻힐 뻔했다가 검찰이 반년 만에 고발인 조사에 착수해 본격 수사 검토에 나섰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네이버 기사 댓글들을 보면 "삼성에 악감정이 있는건지", "그래봤자 공갈협박자" 식의 댓글들이 오히려 호응을 받고 있는데 초기 여론 장악이 아니냐는 의심이 생긴다.

오히려 '이건희 정도면 적어도 영화 내부자들 이상 급으로 데리고 놀 줄 알았는데 의외로 소박해서 실망'이라며 초일류기업의 회장 답지 않다는 평이 지배적이었다. 이게 무슨 미친소리야(…) 현재는 투병생활로 생사조차 판별하기 힘들기 때문에 더욱 빠르게 묻힌 점도 무시할 순 없다.

삼성은 지금 성매매가 문제가 아니라 노트 7이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사태 때문에 고생하고 있지만 게다가 이미 당사자가 생사가 불투명한 입원환자니… 근데 깨어나도 쪽팔려서 못나올듯

검찰 조사 결과 영상에 등장하는 여성들에게 촬영을 지시한 사람은 CJ그룹의 차장급 직원인 S씨로 파악됐다. 구속 후 사직서를 제출했다고. 성폭력처벌법에 따라 "카메라 등 기계를 이용해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다른 사람의 신체를 몰래 찍고 이를 타인에게 제공하는 것"을 지시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에 수사팀은 S씨를 상대로 이 회장 동영상을 갖고 삼성그룹을 협박해 금품을 요구한 적이 있는지 조사중이라고 전해졌다. 출처

5.5. 각종 구설수[편집]

이런저런 사건으로 구설수에 오르며 흑역사를 찍기도 했다. 후술된 사례 외에도 삼성 내부고발자 김용철 변호사의 저서 삼성을 생각한다나 삼성 비리 전문가인 주진우 기자의 저서 주기자도 참고해보면 좋다.

  • 프랑스에 가서 스키장 슬로프 하나를 전세내서 황제 스키를 즐겼다가 프랑스 언론의 집중포화를 맞고 국제적 망신 거리에 오른 적이 있다. 그뒤 2004년에 처남 집안인 보광그룹에서 운영하는 휘닉스 파크에 가서 가족이나 임원진들과 스키를 타기도 했는데 역시나 또 슬로프를 전세내서 쓰다가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이 역시 보도가 되자 화가 난 이건희는 없었던 일로 하고팠는지 삼성그룹 명의로 계약한 슬로프 전세금 100억원을 하루아침에 갚으라고 해서 당시 휘닉스 파크 임원진들이 돈을 마련하느라 비상이 걸렸었다는 일화도 있다. 기사.

  • 영화 베테랑에서 차용한 사장단 회의때 사장들이 기저귀를 차고 회의에 참석하는 장면은 실제로 '삼성을 생각한다'에 나오는 실화를 각색한 것. 기사

  • 이건희 전용기에 적힌 회장님 지시사항은 참으로 민망하다는 후문. 전용기서 먹었던 초코칩 쿠키가 촉촉하지 않다는 이유로 쿠키를 담당한 신라호텔 제과팀이 문책을 당해 담당쉐프가 어떻게 만들겠다는게 답변한게 나와있고, 담요를 3장이 아니라 2장만 덮으라고 적혀있다고 한다. 문제는 이런 일들을 회장님 지시사항이라고 하달했다고 한다. 회장님 지시사항은 삼성 전 계열사에 하달된다.

  • 이건희 전용기를 타본 김용철 변호사에 따르면, "백 수십명이 탈 수 있는 초음속[20] 전용기를 16인승으로 개조한 까닭에 공간이 넉넉했다. 침실과 와인바까지 갖춰져 있었다. 전용기 안에서는 스튜어디스가 무릎을 꿇고 기어와서 시중을 들었다. 동행한 검사들은 전용기 안에서 신기하다는 듯 연신 두리번거렸다."고 한다.

  • 이건희의 생일잔치엔 당대 최고의 연예인들이 초청되었다고 한다. 한곡만 부르고 가도 수천만원씩 줬다고. 근데 당시 유일하게 거절한 연예인이 나훈아. 내 노래 듣고 싶으면 티켓 끊고 콘서트 와서 들으라고 했다고. 패기 때문에 이후 나훈아가 성루머 스캔들 등으로 구설수에 오르자 꽁한 이건희의 지시로 당시 삼성이 개입한거 아니냔 카더라 찌라시가 떠돌기도 했다. 헌데 정작 조용필 예술의전당 공연 때는 표 사서 봤다

  • 휘닉스 파크서 잠시 휴식을 취하던 이건희는 창밖이 시끄러워 봤더니 당시 체리필터가 리조트에 초청되어 공연 중이었다고 한다. 허나 이건희의 시끄럽다는 한마디가 전달된 뒤 체리필터의 공연은 강제로 중단되었다고(…). 기사. 기사가 나온 당시 휘닉스 파크는 보광그룹의 소유였는데, 보광그룹은 1999년 삼성그룹에서 계열분리된 범 삼성계 그룹 중 하나이고 보광그룹의 회장인 홍석규는 중앙일보 회장인 홍석현의 셋째 동생이다.[21] 게다가 보광의 핵심 계열사인 STS반도체는 반도체 후공정 분야에서 삼성그룹과 협력관계를 유지하였는데,[22] 핵심 계열사의 주요 핵심고객이 삼성그룹이라 당연히 보광그룹에서 이건희의 입김이 셀 수밖에 없었다.

  • 용인 에버랜드에 있는 에버랜드 스피드웨이는 사실상 자동차 광인 이건희 전용 서킷으로 지어진 거라는게 정설. 이것도 역시 언론의 거센 구설수 때문이었는지 모터스포츠 활성화라는 측면을 걸고 각종 레이싱 대회를 열게 하고 있다. 안전상의 이유로 사용이 중지된 서킷을 이용하다 카메라에 찍힌 적도 있다.

  • 막내 딸 이윤형이 2005년 미국에서 자살한 사건도 있다. 처음엔 교통사고라고 했지만 뉴욕시경의 발표에선 맨해튼 숙소에서 목을 매 자살했다고 한다. 자세한 내막은 나오지 않았지만 뉴욕에 유학간 이윤형이 그곳에서 남자친구와 사귀었고[23] 결혼을 허락해 달라는 요구를 받아주지 않아서 자살한거라는 추측만 있다. 딸이 사망했지만 이건희 회장은 뉴욕을 방문하지 않았고 오빠인 이재용이 와서 시신을 수습해 갔다고 한다. 관련자료. 그녀가 보유한 삼성 주식은 사후 장학재단에 들어갔다고 한다. 이건 구설수라기보단 비극인듯

6. 트리비아[편집]

아들인 이재용은 재벌개그를 담당하고 있고 이런 거라든지 이건희는 재벌이미지보다는 귀엽다는 이미지로 한때 쁘띠거니로 알려졌었다. 이 별명을 본따 이건희 회장의 여러가지 모습을 모아 놓은 '쁘띠거니' 시리즈가 한때 유행했었다. XX에 상황에 어울리는 말을 넣어놓고 'XX거니'라는 제목을 달아놓는 형식. 예시. 지금와서 보면 빛이 바랬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레슬링부에 들어있었다. 럭비도 좋아했고 승마도 즐겨했던 모양. 이를 바탕으로 레슬링협회[24]와 승마협회 회장직을 맡았다. 2008년 특검 수사 때는 수사관들에게 승마의 장점에 대해 줄줄이 설명하면서 아예 직접 배워보라고까지 권했었다고.

KBO 리그 창립 초창기에는 삼성 라이온즈 초대 구단주[25]로서 야구에도 많은 관심을 보여 미국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의 영향을 받아 비슷한 구단 경영 방식을 도입하기도 했다. 1984년 한국시리즈롯데 자이언츠에 패한 뒤로는 직관은 안 간다고 한다. 어차피 아들이 가고 있다

와 같은 동물들을 좋아하여 한남동 자택에서 개를 직접 길렀다고 한다. 오죽하면 이런 일도 있을지 개소리 좀 안나게 해라 그것을 계기로 하여 삼성생명에서는 안내견 관련 사업을 지금까지도 계속 하고 있다.

일본에서 산 어린 시절에는 영화를 보다가 하나가 죽어도 모르는 영화광이었다고 한다. 가정교사의 특별교육만 받아 평범한 친구를 접할 기회가 없었던 이건희는 거의 하루종일 영화관에서 영화를 봤다고 한다(…). 진정한 니트 이것은 이건희 회장의 인생에 큰 영향을 주었는데 같은 영화를 수차례 관람하면서 주연의 입장에서, 조연의 입장에서, 프로듀서 입장에서 보는 버릇을 갖게 되었고 이는 회장이 된 후 다각적인 사고방식을 갖게 되는 원동력이 되었다고 한다.[26]

대표적인 자동차 매니아다. 자동차 수집과 운전도 좋아했다고 한다. 가끔은 에버랜드 서켓을 전세 내고 레이서에게 교습 받아가며 드라이빙을 배웠다고 한다(…). 1982년에는 차를 몰고 가다가 사고가 크게 나서 병원에서 대수술을 받아야 했을 정도. 부가티 타입을 비롯한 클래식 카들은 물론 고급 세단을 수집하기도 했다. 그 중에서도 슈퍼카 매니아로 알려져 있는데 2015년 조사 결과 26억원짜리 부가티 베이론 포함 총 126대의 차량을 보유하고 있고, 차량 가격을 다 합치면 총 477억원에 달한다. 그런데, 이게 1억원 이상 차량만 조사한 거라서 1억원 이하의 저렴한 차량은 누락되었다는게 함정. 관련기사 에피소드로 외제차를 구매하다 영업사원에게 굴욕 아닌 굴욕을 당한 적이 있다. 포르쉐를 구입하려 매장을 방문한 이건희, 포르쉐를 총 6대 고르고 계약사인을 하고 가는 이건희를 포르쉐 신입직원이 몰라보고 계약금을 달라며 발목을 붙잡은 일이 있었다, 이에 이건희는 지갑가져와라 하면서 3억을 즉납했다는 일화도 있다. 벤틀리 매장서는 벤틀리를 고르는데 역시나 이건희를 몰라본 직원이 얼굴이 귀여운 졸부아저씨로 알았겠거니 차를 리스로 하면 좋다는 조언을 해주고 직원은 신원조회를 위해 이건희의 정보를 삼성 캐피탈에 의뢰했다는 웃긴 이야기도 있다. http://issuebox.tistory.com/121 내용 보기 웬만한 술자리 경험담 대결에서 보기드문 경험담 내가 예전에 삼성캐피탈에 이건희 회장 신용조회 해달라고 했던 사람이야 나보다 더한경험한 사람있음 나와보라 그래!! 근데 계약금은 구매자가 돈이 있냐 없냐를 떠나서 앞으로 구매절차에 대한 담보적 성격이기 때문에 받는 게 옳다. 예를 들면 돈이 아무리 많은 사람이라도, 차를 구매하기로 해서 영업사원이 이런저런 절차를 다 거쳐놨는데 갑자기 안 산다고 하면 영업사원 입장에서는 손해기 때문에 그런 경우 손해를 조금이라도 만회하기 위해서 받아두는 것이다.

조용한 성격에 어렸을 때부터 혼자 있던 습관이 있었는지 경영권을 이어받은 후에는 회사일 외에 대중매체나 외부와의 접촉을 꺼리는 편이었다. 주로 한남동 자택에서 집무를 보며 은둔과 칩거 등을 반복하였다고 한다. 또 국제적 기업의 회장답게(?) 3~4개월간 일본, 미국, 서유럽 등으로 국외 출장도 잦았으며 암 투병 경험에 유전적으로 병이 있는데다 폐까지 좋지 않아 요양 겸 하와이 같은 곳으로도 오래 나갔다. 신비주의? 사실 예전부터 그랬지만 국내 대기업 총수들이 대외적으로 모습을 노출하는 경우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정치인이나 연예인처럼 언론지상에 자주 오르내릴 직종이 아니기 때문.[27] 언론접촉도 신문 매체의 경우 1990년대 중반까지는 자주 하다가 그 후에는 거의 없다. 2003년 동아일보에서 질문지를 기자가 미리 보내면 비서와 함께 구술을 통해 답변하는 식으로 인터뷰하기도 했다. 다만 뉴스에는 이따금씩 나온다. 본사 사옥으로 출근할 때나 해외로 출국할 때, 생일 파티나 만찬같은 각종 모임이 있으면 행사장 앞에서 기자들 모아 놓고 스탠딩 인터뷰 잠깐 하는 정도.

재계에 영향력, 인지도를 갖춘 인물이니만큼 재벌의 대명사로도 쓰인다. 이건희 손자에게도 공짜로 급식을 줘야하느냐? 이에 대한 답변으로 "이건희 손자가 군대가면 밥 안 줄래?"가 있다 등등.

그리고 이 사람과 본명이 같은 막장 BJ 페북 스타가 있기도 하다.

이 사람의 이름이 니코니코니의 '니코니'와 운이 비슷해 패러디 용도로 쓰이기도 한다.영상 이건희에서 이건 = 이것은으로 치환되어, 트위터 등에선 이것은희가 이건희로 자동 필터링이 된다.

하지만...결국 2017년 외아들인 이재용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연루되어 있는 사실이 확인되어서 구속되었다. 이 때문에 미래전략실이 없어지게 되는 등 삼성그룹 자체의 위기가 오게 되었다.

이분이 총에맞고 봉산탈춤 추다가 부르는 사람이라 카더라 이건희.... 모에하고 EAT☆SOME


[1] 경주 이씨 40세손 熙(희)자 항렬로, 동명이인인 신태일(유튜버)(본명 : 이건희)와 같은 항렬이고, 이명박의 먼 조카뻘이며, 이재명 성남시장의 먼 삼촌뻘이다.[2] 2005년 11월, 미국 유학 도중 자살했다.[3] 2017.06.01 / 포브스 기준.[4] 불교이나 원불교도 믿음ㆍㆍ[5] 2008년 4월에 사임했으나 2010년 3월 24일 복직하였다. 정확하겐 2010년 경영 일선에 복귀하면서 삼성전자에만 공식적으로 회장 직함을 유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사실상 삼성그룹 전체를 총괄하는 총수라는 사실을 부정하긴 어렵다.[6] 실제로 젊을땐 술도 안했다고 한다. 권근술 전 사장 말에 의하면 지금은 하긴 하지만 잘 못한다고. 와인은 좋아한다는데 정작 와인 얘기를 하자 무관심했다는 소리도 있다.[7] 경영학과격인 학과. 지금은 사라졌다.[8] 이병철은 이 사건 이후 한참 후인 1987년 사망한다.[9] 드라마에 대한 이건희 회장의 통찰력을 드러낸 일화를 소개하자면 자사 소속 중견배우였던 강부자, 이순재, 여운계 등의 급여 지급과 대우에 신경 쓸 것을 드라마 제작진들에게 주문했는데, 그 이유가 걸작이었다. "주연은 얼굴 반반하고 적당히 연기하면 되지만, 극을 살리는 건 조연이니까 잘 챙겨줘야 한다." 당시부터 주연은 얼굴 반반에 적당한 연기력이 공식이었군 [10] 이른바 '프랑크푸르트 선언', 또는 '신경영 선언'. 지금 삼성그룹 로고와 폰트도 이 시기에 등장했다.[11] 계열사의 지분을 소유하고 있는 재단인데다가, 이 재단들이 가지는 상징적인 의미도 있어서 재계에서는 사실상 삼성을 승계했다고 판단한다.[12] 사실 이건희가 버티고 있는 이유 중 하나는 아들인 이재용 부회장에게 경영권을 무사히 승계하기 전까지 자신이 건강을 유지해야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아들은 지금...[13] 그녀의 어머니인 금호아시아나그룹家 박현주 여사와 홍라희 여사가 불교 모임에서 만나 인연이 되었다고 한다.[14] 평범한 집안 출신으로 이부진과 결혼해 역신데렐라 스토리로 화제가 되기도 했으나, 결국 이혼소송에 맞닥드리게 되었고, 2017년 1월 기준 재판상 임우재의 판결불복으로 항소심 진행 중이다.[15] 범삼성계 기업들의 특징인듯. 여동생이 운영하는 기업 이마트에선 한때 창고에서 전태일 평전이 발견되었다는 이유로 직원들을 일일히 솎아내서 퇴사에 이르도록 하기도했다.[16] CCO, Chief Customer Officer. 고객 서비스 담당 총책임자 임원이다.[17] 에버랜드 전환사채의 중요 논점은 주주배정 방식의 신주발행을 시가 이하로 발행하는 것이 배임행위에 해당하느냐인데… 사실 상법학계 쪽에서는 상법 424조의 2 불공정한 가액의 주식발행으로 인한 통모인수인의 책임은 제3자 배정과는 달리 주주배정 방식에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보는 견해가 다수설이고 이러한 견해가 업무상 배임죄에 관한 대표이사의 임무 개념에 반영됐다.[18] 1인당 500만 원이라고 한다.[19] 중앙일보종합편성채널. 알다시피 중앙일보는 이병철이 창간한 신문이고, 현재 이건희의 처남인 홍석현(홍라희의 남동생)이 회장이다. 현재 지분 관계가 전혀 없다고 하더라도, 아무 관계가 없다고 보긴 어렵다. 게다가 이건희가 가장 처음으로 입사한 회사가 JTBC의 전신이라 불리는 동양방송이다. 손석희가 들어오고 나서 조금 다른 방향이 된 듯. 그런거 빼도 누나가 뒤통수 맞았는데 홍석현이 가만히 있는 것도 웃기긴 하다 [20] 초음속과 점보 제트기 등과 혼동한 모양이다. 당연하겠지만 삼성그룹은 초음속 제트기를 보유한 적이 없다.[21]홍라희의 동생이다. 남동생 중 막내.[22] 2015년 보광그룹은 STS반도체를 정리하게 된다. 명목적 이유는 2013년부터 지속된 반도체 업계의 불황이지만 사실 삼성이 생산라인을 확충하는 바람에 삼성과의 거래관계가 끊어져서 그렇다. 물론 이 기사의 배경인 2009년에는 멀쩡히 보광 계열사로 영업 잘 하고 있었다. 보광그룹에 대한 기사 [23] 예전 루머에서는 상대가 경호원이었다. 루머의 특성상 사실확인은 불가능에 가까우나 어느 쪽이 정설(?)인지는 아시는 분이 추가바람. 장녀 이부진의 남편 임우재씨도 오랜 세월 동안 삼성물산 사원 출신으로 삼성그룹 봉사활동에서 만나서 사랑에 빠졌다고 알려져 있었으나 이혼 뒤 본인 스스로 삼성에스원 소속의 경호원이었으며 경호를 하다가 사랑에 빠져서 결혼까지 가게 됐었다고 진상(?)을 밝힌 바 있다.[24] 레슬링 협회 회장, 대한체육회 이사를 거쳐 1996년 IOC 위원에 당선되었다.[25] 나중에는 이수빈 삼성생명 회장 등 그의 경영 참모들이 구단주 역할을 대리했다.[26] 2014년 병환으로 쓰러져 있을 때에는 병원 측에서 의식이 깨어나도록 그가 좋아하는 프로그램을 틀어줬는데 자주 보던 스타워즈 시리즈삼성 라이온즈 경기 등을 보여줬다고 한다.[27] 예외적으로 정계에까지 진출한 현대 정주영, 정몽준, 또는 두산박용만 등이 대중매체에 자주 모습이 나왔던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