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종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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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치림 (信治琳)
SHINCHIREEM

파일:신치림.jpg
왼쪽부터 조정치, 하림, 윤종신


윤종신


조정치


하 림

음반 목록
EPISODE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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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윤종신(尹鍾信, Yoon Jong Shin)

출생

1969년 10월 15일(48세), 경상남도 진해시[1]

닭띠

본관

칠원 윤씨[2]

신체

168cm, 60kg[3], A형

가족

2남 중 장남

배우자

전미라[4]

자녀

아들: 윤라익, 딸: 윤라임, 윤라오

종교

개신교

학력

대원외국어고등학교 스페인어과 (졸업)[5]
연세대학교 원주캠퍼스 국어국문학 학사

데뷔

1990년 7월 1일[6], 015B 1집 '텅빈 거리에서' 객원보컬

소속

미스틱 엔터테인먼트(대표 프로듀서)

그룹

신치림, Team89[7]

장르

발라드, 팝, 어덜트 컨템포러리

악기

기타

별명

종신옹, 윤자기[8], 음악왕,
깐족종신, 종신보험, 보급형 정우성,
신경필[9], 게임계 복덩이[10]
만년대리[11],예능계 늦둥이, 윰, 다산(多産) 윤종신

SNS

月刊 尹鍾信 트위터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1. 소개2. 생애3. 음악가로서의 평가4. 가수 활동
4.1. 1990년대: 미성레전드4.2. 2000년대: 방송과 음악의 갈림길에서..4.3. 2010년대: 월간 윤종신
4.3.1. 2010~2016년4.3.2. 2017년
4.3.2.1. 좋니의 역주행
5. 싱어송라이터 활동
5.1. 작곡5.2. 작사5.3. 프로듀싱
6. 창법7. 정규 앨범 목록8. 방송 활동
8.1. 연기8.2. 예능
8.2.1. 개요8.2.2. 2000년대8.2.3. 2010년대
8.3. 오디션 심사위원
9. 라디오 DJ 활동10. 논란11. 트리비아

1. 소개[편집]

그에 대해서 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음유시인" 그 자체 단어로밖에 설명할 수 없을 것 같다. - 진중권


가요계와 예능계 전반에서 동시에 활약하고 있는 올라운드 멀티 엔터테이너, 가수.

대한민국가수예능인, 그리고 기획사 미스틱 엔터테인먼트(미스틱89) 대표 프로듀서.

2. 생애[편집]

1969년 10월 15일 경상남도 진해에서 2남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아주 어릴 때 잠깐 살다가 5살 무렵 서울 광진구로 상경, 그 뒤 대원외고[12] 스페인어과 졸업 후 연세대학교 원주캠퍼스 88학번으로 입학,[13] 소창사라는 음악동아리에 가입하며 음악에 대한 꿈을 키우게 되었다.

본래 가족들이 독실한 신앙인이 워낙 많아서 어릴 적부터 연세대 신학과에 진학하여 목사가 되는 것이 원래 꿈이었는데 성적상 원주캠퍼스 국문학과로 입학하게 되었고, 그 이후 적응을 못해서 1, 2학년 동안 방황을 많이 했다고 한다. 그리고 음악을 좋아하여 노래나 작곡을 취미로 하긴 했지만 사실 진짜 꿈이 프로가수였다거나 음악인이거나 해서 진지하게 노력했던 건 아닌데 우연히 교내 가요제에 참가했다가 수상 후 운좋게 데뷔한 케이스라고 한다. 만약 자신이 신학과에 합격했다면 목사가 되고, 가수가 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컸을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리고 자신의 음악 스타일에도 찬송가의 영향이 크다고도 하는데, 어릴 적부터 기독교 음악을 많이 접한 탓이라고 한다.[14] 원주캠퍼스 홍보비디오에도 나왔고 라디오 생방송에서도 원주캠퍼스 다닐 때 크고 아름다운 호수가 있었다는 등 대학시절 이야기를 종종하는 편이다. 예능 중간중간 문법으로 개그를 치는 것으로 보아, 국문학 '배운 사람' 맞다.

연세대 원주캠퍼스 가요제에서 금상 입상한 이후, 과 동기로부터 정석원을 소개받았다. 정석원은 친구의 아파트에서 윤종신의 노래를 듣고 015B의 객원보컬로 픽업했다. 이 때 장호일이 반대했다고 한다.[15] 이유는 비주얼. 그래도 보컬이 밴드의 얼굴인데... 가창력만으로 승부한 데뷔였던 셈이다.

015B를 병행하면서 자연스럽게 솔로 발라드 가수로 커리어를 쌓았고, 작사, 작곡을 배워 군 제대 후에는 작품주의 싱어송라이터가 되었다. 나름대로 발라드계에서 입지전적인 케이스다. 객원보컬이 프로 작곡가, 작사가로 인정받은 것은 대한민국 음악 역사상 윤종신이 유일하다.

유희열에 따르면 윤종신은 '뮤지션들이 휴지기를 가져야 음악이 나온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동의하지 않는다고 했다고 한다. 즉, "녹음실 갈 때나 집 갈 때 생각나면 쓸 수도 있는 것. 그건 급하지 않아서 그렇다"라고 했다. 유희열은 "만년 대리"같다고 평했고, 성시경은 요즘 임원이 되어서 음악 노예들을 부려먹는다고 디스했다. 그도 그럴 것이 유희열은 윤종신의 음악노예 1호 수준이었다. 윤종신 특유의 부지런함을 느낄 수 있는 부분.[16]

윤종신을 잘 모르는 요즘 사람들은 주로 예능에 나오는 연예인인 줄 알지만 데뷔했을 때나 지금이나 본업은 가수. 사실 예전에는 거의 가수 활동만 했지만, 군대에 갔다 온 후에 예능이나 시트콤 등에도 출연하고, 영화음악도 꽤 하게 되면서[17] 개인앨범 발매 주기가 상당히 늦어져서 그런 이미지가 생긴 듯하다. 그래서 두 자리수 앨범을 낸 가수임에도 개그맨이 장난으로 앨범을 내지 말라는 소리를 듣기도 했다. 그리고 아직도 그러는 인간들이 있다. [18][19] 2017년 현재 18집 가수다.

올드 팬에게는 내가 좋아했던 가수가 맞나는 의구심이 들 정도로 예능에서 이미지 변신을 했다. '텅 빈 거리에서, 애니, 모처럼, 바다이야기'등의 헤어진 다음에 찢어지는 남자의 감정(혹은 청승)을 가장 잘 표현했던 그이기에 예능 활동을 보고 있자면 눈물만 흐른다. [20] 다만 라디오에서는 전성기 때부터 이렇게 깐족거렸다.

부인은 9세 연하의 前 테니스 선수인 전미라 씨.[21] 힐을 안 신어도 전미라가 더 크기 때문에[22], 이를 소재로 한 개그를 종종 써먹는다. 슬하에 아이는 셋을 낳았는데, 윤라익(아들), 윤라임(딸), 윤라오(딸). 전미라의 이름 끝 글자를 돌림자로 썼다고 한다. 특히 막내딸은 전미라를 거의 빼다 박은 수준으로 닮았다. 그리고 2011년 2월에 라디오 스타에서 정관수술을 했음을 고백했다. 이미 조치를 취하셨다고 한다

사실 강호동과 윤종신은 굉장히 친한 사이로 윤종신이 아내를 만날 때 강호동이 바람잡이 역할로 계속 둘을 엮었다고 한다. 전미라가 처음에는 키 작은 남자에는 관심이 없었고 윤종신도 마찬가지였으나 계속 엮다보니 관심이 생기게 되었고 결혼까지 하게 되었다고 한다. 전미라는 결혼 전까지 윤종신의 노래를 듣지 않았다고...

두시탈출 컬투쇼에 출연했을때, DJ의 "윤종신 씨는 애가 셋이라던데, 생긴 것과는 달리 의외로 힘이 세다."라는 말에, "힘이 아니라 기교예요. 메시가 힘으로 축구하나요?"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유희열에 따르면 호는 '다산(多産)'이라고 한다

2012년 2월 윤종신은 SBS 힐링캠프에 출연해 난치병크론병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최초로 밝혔다. 크론병은 입에서부터 항문까지 이어지는 모든 소화기관에 염증이 생길 수 있는 병으로, 수술로도 완치는 불가능하며 평생 약물치료를 해야하는 병. 윤종신은 2006년에 처음으로 병에 걸린 것을 알았다고 한다. 너무 늦게 발견해 소장을 60cm나 잘라야 했고 지금은 약물 치료중이라고 한다. 게다가 더 놀라운 사실은 윤종신이 지금까지 예능에서 치질에 걸렸다는 얘기를 하며 웃으며 했던 얘기가 사실은 이 크론병으로 인한 치루질환을 말한 것이었다고… 난치병을 웃음소재로 바꿔 시청자들에게 웃음을 줘야 했던 윤종신의 안타까운 고백이었다.

이 소장수술을 하고서 마취가 풀리면 링거에 연결된 모르핀이 조금씩 나오도록 장치를 해 놨다고 한다. 간호사가 너무 아플 때마다 버튼을 한번씩 누르라고 했다고. 그런데 마취에 깨면서 "아, 아! 아!!!" 비명 지르며 뾱뾱뾱뾱뾱뾱뾱뾱뾱뾱뾱뾱… 그리고 3일간 기절해 있었다고 조미료 섞인 썰을 예능에서 풀었다... [23] 아직도 소화기 쪽이 완전히 회복되지는 않은 모양. 김구라에 따르면 윤종신이 배가 아파 라스 녹화가 지연된 바 있다고. 링크

과거 윤종신의 얼굴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치아교정으로 젊을 때보다 나이들어서 외모가 준수해진 케이스의 연예인이다. 과거엔 입이 유재석 같이 돌출형이었으나 교정을 하면서 인상까지 좋아졌다. 이때부터 정우성 닮았다는 드립을 치고 다닌다. 교정은 2010년 전후로 받은 것으로 알려져있다.

블랙베리를 사용해서 @MelodyMonthly라는 아이디로 트위터를 이용했었다. 2017년 현재는 아이폰 유저이고, 인스타그램을 자주 한다.

정치성향은 중도 혹은 진보에 가까운 듯하다. 2008년 명랑 히어로 출연 당시에는 이경규와 함께 광우병 촛불시위를 지지하지 않는 것으로 묘사되었는데, 김구라가 이를 물고늘어지는 장면이 나온다. 하지만 2016년 박-최 국정농단 사태 때 '용기를 내어' 가족들과 함께 촛불집회에 참여했다. 이때의 감상을 바탕으로 2016년 12월 월간 윤종신 '그래도 크리스마스'를 작사 작곡했다. 마침 그 곡의 가사가 JTBC 뉴스룸의 앵커브리핑에 소개되고, 이 인연으로 뉴스룸에 인터뷰로 출연하기도 했다.

온누리교회에 다니는 듯. 그런데 2017년 월정사에서 공연도 했고, 이에 대해서 좋은 평을 남기기도 해서, 배타적인 신앙을 가진 것 같지는 않다.

3년 후면 어느덧 데뷔 30주년이다.

3. 음악가로서의 평가[편집]

올라운드 플레이어

015B의 객원보컬에서 시작해서 싱어송라이터, 작곡가, 작사가, 프로듀서[24]로까지 두루 손을 뻗었다.

2013년 음악취향 Y라는 웹진에서 발라드 명곡 100곡을 뽑아봤더니[25] 이문세, 유재하, 이승환, 신승훈, 김동률, 김형석 같은 내로라하는 80~90년대 음악가들보다 오히려 더 많은 곡을 실어 총 7곡으로 최다 노미네이트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여러 분야에서 각각 골고루 차트에 올린 것도 주시해볼만한 부분.

  • 보컬: 텅 빈 거리에서(015B) (2위)

  • 싱어송라이터: 우리 이렇게 스쳐보내면 (64위), 너에게 간다 (24위), 처음 만날 때처럼 (65위)

  • 작곡가: 거리에서(성시경) (15위), 넌 감동이었어(성시경) (91위)

  • 작사가: 이별택시(김연우) (96위)


데뷔곡인 '텅 빈 거리에서'는 심지어 전체 2등을 차지했다.

4. 가수 활동[편집]

윤종신의 음반 목록

정규 음반

1집 처음 만날 때처럼
(1991. 05. 12)

2집 Sorrow
(1992. 10. 15)

3집 The Natural
(1993. 11. 01)

4집 공존(共存)
(1995. 05. 01)

5집 우(愚)
(1996. 04. 01)

6집 육년(六年)
(1996. 11. 01)

7집 후반(後半)
(1999. 01. 17)

8집 헤어진 사람들을
위한 지침서

(2000. 03. 24.)

9집 그늘
(2001. 07. 06)

10집 Behind The Smile
(2005. 04. 12)

11집 동네 한 바퀴
(2008. 11. 25)

월간 윤종신 (月刊 尹鍾信)
MONTHLY PROJECT YOON JONG SHIN

2010 · 2011 · 2012 · 2013 · 2014 · 2015 · 2016 · 2017

행보 윤종신 (行步 尹鍾信)
1년 단위 월간 윤종신의 컴필레이션 앨범

12집 行步 2010 尹鍾信
(2010. 10. 28)

13집 行步 2011 尹鍾信
(2011. 12. 06)

14집 行步 2012 尹鍾信
(2013. 01. 03)

15집 行步 2013 尹鍾信
(2013. 12. 20)
Just Piano
(2014. 01. 03)

16집 行步 2014 尹鍾信
(2015. 01. 16)
Melodies on Film
(2015. 01. 23)

17집 行步 2015 尹鍾信
작사가 윤종신 Live Part 1
(2016. 01. 20)

18집 行步 2016 尹鍾信
작사가 윤종신 Live Part 2
(2017. 01. 20)

19집 行步 2017 尹鍾信
(2018. 01. ??)

기타 음반

The Natural Live
(1994. 09)

라이터를 켜라 OST
(2002. 07. 26)

불어라 봄바람 OST
(2003. 08. 29)

봄날의 곰을
좋아하세요 OST
(2003. 10. 10)

논스톱 4 OST
(2004. 05.)

LISTEN 010 좋니
(2017. 06. 22)

4.1. 1990년대: 미성레전드[편집]



1990년 7월 1일, 015B 1집의 객원 보컬로 데뷔했다. 노태우 재임할 때 데뷔했다는 걸 개그소재로 종종 써먹는다. 윤종신이 참여한 타이틀곡인 '텅빈 거리에서'의 '야윈 두 손에 외로운 동전 두 개 뿐'이라는 가사가 공감을 샀고 앨범도 30만 장으로 크게 히트했다.

당시 윤종신의 목소리는 지금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얇고 고운 미성이다. 당시 대중과 평단은 무공해 목소리라는 찬사를 내렸다. 창법 변화에 대해서는 후술.

015B 객원보컬로서 높아진 지명도를 바탕으로 1991년에 1집 앨범(TITLE : 처음 만날 때처럼)을 발표했다. 이후 015B에 지속적으로 참여하는 한편[26], 솔로 앨범에서도 많은 인기를 얻었다. 특히 2집 'Sorrow'(TITLE : 너의 결혼식)[27] 때가 윤종신의 전성기로, 개그맨 박휘순이 윤종신의 팬이었다고 한다. 3집 'The Natural'(TITLE: 오래전 그날), 4집 '공존'(TITLE: 부디, 내사랑 못난이), 5집 ''(TITLE : 환생) 등등 윤종신 전기 음악의 대단원이라 할만큼 노래 각각의 완성도로 보나 앨범의 완성도와 짜임새로 보나 걸작이었다.

특히 5집의 경우 1996년 별들의 전쟁이라 불리는 스타급 가수들의 컴백 경쟁 속에서도 꾸준히 인기를 얻은 앨범으로 가요톱텐에서는 최고 4위, 인기가요 베스트 50에서는 3주 간 1위 후보에 올랐다. 입대하기 직전에 부랴부랴 냈던 6집(1996. 11)까지도 상업적으로 성공을 거두었다. 확실히 이 시기는 인기로 보나 히트곡의 중량감으로 보나 명실공히 대한민국 발라드판에서 거의 신승훈, 이승환의 바로 아랫급 정도의 지위는 누렸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음반 판매량은 역대 최고인 4집, 5집 모두 밀리언에 약간 못미치는 90만 장으로, 밀리언셀러 대열에는 아깝게 합류하지 못했다.

해군 연예병사 1기 출신으로 2함대가 평택으로 이전하던 때 부른 '바다로 세계로'라는 군가는 일반 가요라고 해도 믿을 만한 가사와 멜로디를 자랑한다.
-바다로 세계로- 작사 : 금나영 / 작곡 : 조만호 / 노래:윤종신
해군 홈페이지 mp3 다운로드 주소 링크. (다른 군가와의 괴리감이 엄청나다.)

군 복무 중 하림이라는 인물을 찾아 내기도 했으나, 정작 전역한 후에는 음악 시장이 완전히 재편되어 있었다. 1999년 1월 17일에 발표한 복귀 앨범인 7집 '후반'(TITLE : 배웅)은 평가가 괜찮았으나 이전에 거두었던 상업적 성공과는 거리가 멀었다. 자신만만해하며 거액을 투자하여 만들었는데, 6집 판매량 대비 3분의 1이 팔렸다고 한다. 윤종신 본인도 거듭되는 성공에 취해 있다가 한 번 말아먹자 충격이 컸다고 한다. 게다가 판권 문제까지 걸렸다. 하지만 이러한 증언과 반대로 8집, 9집을 1년 주기로 계속 낸 것으로 보아 충격은 곧 가신 듯하다.

라스에서 본인이 밝힌 바로는, 그 당시 앨범도 망하고, 7집을 발표한 후 MBC에서 밤 10시에 맡았던 라디오 프로그램(윤종신의 자유지대)도 청취율이 개박살나는 등의 일이 일어나자 "내 연예인 운은 끝이구나" 하고 다른 일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친구와 노래방에 갔다가 "내 행복은 여기 있는데 왜 다른 걸 하려고 할까" 하면서 생각을 고쳐먹었다고 한다.

4.2. 2000년대: 방송과 음악의 갈림길에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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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3월 8집 '헤어진 사람들을 위한 지침서' 발매.
당시 자신의 이별 경험을 토대로 작업했다. 그래서 그런지 노래들이 하나같이 궁상의 극치다. 헤어진 직후 히키코모리를 하다가 겨우 집 밖에 나와서 한 게 전여친과 자주 다니던 커피숍에서 혼자 먹는 일[28]이질 않나... 왜 내가 울어야 하냐고 원망하다가도[29] 새사람을 만난 걸 알고는 잘 헤어졌으니 날 떠올리지 말라고 하질 않나[30].... 여행을 떠나서[31] 옛 애인 사진을 태우질 않나[32]... 흠좀무...

다행히도 10번 트랙 이후로는 또다른 사랑을 시작하는 듯하다. 후반부 곡들중 타이틀곡인 'Annie'의 주인공이 이영애가 아니냐는 루머가 퍼지기도 했다.[33] 둘 다 결혼함으로 인해 진실은 영원히 미궁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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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여름 콘셉트 앨범인 9집 '그늘'을 내놓았다.
이규호가 작곡한 팥빙수가 들어간 앨범. 이한철 등의 동료 가수들이 호평했다. 2010년 백비트 김봉현과의 인터뷰에서 본인의 베스트 앨범으로 9집을 꼽은 바 있다.[34]

2002년~2003년 사이에는 세 편의 영화 OST를 제작했다. 작품명은 봄날의 곰을 좋아하세요, 불어라 봄바람, 라이터를 켜라. 영화의 흥행 여부를 떠나서 영화음악 프로듀서로서 호평을 받았다. 이때의 작업물 중 일부는 2015년 1월 'Melodies On Film'이라는 컴필레이션 앨범으로 재발매된다.

2004년에는 논스톱4 OST를 제작하고, 신라대학교 교가 '꿈 그리고 한 가지'를 작곡하였다. 보컬은 무려 김연우... 교가 치고는 굉장한 고퀄리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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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종신 10집 'Behind The Smile' (2005년).
군 입대를 전후하여 윤종신 음악을 전기와 후기로 나눌 때, 후기를 대표하는 앨범. 90년대 초창기 솔로앨범들에 큰 도움을 준 음악적 스승 015B의 정석원, 그리고 7집 이후의 음악적 파트너인 하림과 함께 한 점이 특기할 만한 부분이다. 타이틀곡인 '너에게 간다'도 제법 히트하며, 매니아들과 대중을 두루 만족시킨 명반.
2000년대 초반의 작업물인 8, 9, 10집은 5집과 함께 이제 윤종신을 대표하는 명반이 되었다. 평론가들은 대개 10집과 5집을 윤종신의 디스코그라피 중 으뜸으로 꼽는다. 참고로 한겨레에서 만든 음악웹진 백비트에서 선정한 2000년대 베스트 앨범 100에서 'Behind The Smile'(10집)이 51위, 1990년대 베스트 앨범 100에서 '우 (愚)'(5집)가 27위에 선정되었다

파일:윤종신11집.jpg

2008년 11집 '동네 한 바퀴' 발매
결혼 및 예능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이후 2008년에 11집을 발매했다. 현재까지 마지막 정규앨범이다[35]. '동네 한 바퀴', '내일 할 일', '야경' 등 명곡이 다수 수록돼 있지만... 윤종신의 음방 활동의 존재감은 미미했고 라스명랑 히어로에서 김구라의 놀림거리로 전락했었다. 이후 음악과 예능의 병행을 고민하던 윤종신은 특유의 꾸준함을 활용, 몇 년에 한 번 정규앨범을 내놓던 기존 가수활동의 틀을 벗어나, 새로운 시도를 감행하게 되는데...

4.3. 2010년대: 월간 윤종신[편집]

월간 윤종신 프로젝트로 발매된 개별 곡들에 대한 정보는 월간 윤종신 으로.

4.3.1. 2010~2016년[편집]

2010년 윤종신의 음악활동은 월간 윤종신 프로젝트로 요약될 수 있다. 이 프로젝트의 시작은 M.net에서 방영한 디렉터스 컷(Director's cut)이라는 프로그램인데, 당시 윤종신이 아끼는 인물들(하림, 조정치, 정지찬 등)이 많이 나왔었다. 디렉터스 컷에서는 출연진들이 특정 지역을 여행하면서, 윤종신이 미리 만들어둔 멜로디에 함께 가사를 붙였다. 여기서 만들어진 수많은 노래 중에 단 두 곡, '새로고침'과 '빈 고백'이 Director's Cut이라는 앨범으로 2010년 1월에 발매되었는데...

이를 시작으로 2010년 3월 25일, Monthly Project라는 이름의 싱글을 발표했다. 이후 2017년 현재까지 매달 곡 2~3개를 묶어 싱글 형태로 발매하는 중이다. 잡지처럼 표현하자면 2017년부로 벌써 통권 100호를 넘었다.

전혀 이윤이 남지 않을 듯한 프로젝트를 하는 이유에 대해 본인은 그때그때의 감정에 충실하여 곡을 만들고, 그것을 바로 표현하고 싶어서라고 답했다.[36] [37]

2010년 말에는 디렉터스 컷의 노래를 포함, 2010년 동안의 월간 윤종신의 싱글들을 엮은 '행보 2010 윤종신'을 내놓았다. 타이틀은 '이별의 온도'. 한 해 동안의 월간을 묶어서 행보로 내놓는 전통은 2017년까지 현재 진행형.

2011년 10월에는 블루스퀘어 삼성카드홀 개관기념으로 'Just Melody'라는 제목의 콘서트를 열었다.

2012년에는 음악 후배인 하림과 조정치와 함께 신치림이라는 그룹을 결성했다.

2012년 10월에 발매된 손가인의 솔로 미니 앨범 2집 'Talk About S.'에 '시선'이란 곡으로 참여했다. 작사/작곡은 윤종신 본인이 하고 편곡만 POSTINO가 담당했다. 무려 가인과의 듀엣곡으로 가사가 비범하다. 사실 이 앨범 전체가 그런 컨셉이긴 하지만 사실 윤종신이 쓴 곡들치고 이런 느낌의 곡을 찾긴 힘든 편이다. 손가인유희열의 스케치북에서 밝히기로 윤종신 선배님에게 곡을 받는다고 했을 때 발라드를 기대하고 갔는데 점점 부르다보니 가사가 이상했다고 한다. 결국 듀엣곡이 음흉해졌다고 녹음 후일담을 밝히기도 했다.

결국 유희열의 스케치북 2012년 성탄특집에서 유희열까지 합세해 '시선'을 방송에서 불렀다. 포인트는 시종일관 진지한 표정으로 장미를 씹어먹을 듯한 윤종신과 무심히 피아노치며 코피 터지는 유희열. 그리고 손가인의 의상.


2013년에는 정말 오래간만에 가수 윤종신으로 연말 가요제에 참여해서 노래를 불렀다. 비록 소속가수인 김예림, 박지윤과 함께 나온 것이었지만, '본능적으로'를 '끈적한 버전으로[38] 연말 가요제에서 부른 건 처음이다.


2014년, 네이버 뮤직 음악감상회에서 했던 라이브. '오래전 그날', '1월부터 6월까지'외 여러 곡을 불렀다. 젊은 시절 미성은 사라졌어도, 부드러워진 저음과 한층 더 깊이 있어진 감성으로 아직도 충분히 경쟁력 있는 좋은 가수임을 보여주는 라이브이다.

2015년, 작사가 윤종신 콘서트를, 2016년 작사가 윤종신 Part 2를 열었다. 작사가 윤종신 콘서트의 실황은 행보 2015에 함께 담겼다. 자세한 사항은 추가바람.

4.3.2. 2017년[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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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5월 Monthly Drips라는 이름의 530장 한정판 싸인 LP를 출반했다. 가격은 88,000원. 월간 윤종신에서 선정된 곡들이 수록. 독일에서 리마스터링했다고 한다. 30장은 윤종신의 지인에게 나눠주고, 100장은 오프라인 판매, 400장은 온라인에서 판매했다. 온라인 판매된 400장은 1시간 남짓만에 매진되었다.

2016년 이후 발매곡을 보면 대체로 대중성 있는 발라드 곡은 객원보컬(특히 미스틱 소속)에게 주고, 본인은 실험적인 곡이나 자신의 심경을 표현하는 노래에만 보컬로 참여하는 경향이 강하다. 발라드 가수 윤종신을 사랑하는 팬의 입장에서는 여러모로 아쉬운 부분.

월간 앨범과 별개로 정규 12집 앨범을 준비 중인 듯. 시기는 미정.

박재정 싱글 '시력' 작사에 참여했다. 이별의 아픔을 흐릿해진 눈으로 비유한 것이 일품.

2017년 5월~6월 동안 명품 발라드를 네 곡이나 [39] 찍어냈다. 역시 다작의 대명사...

솔로 2집 시절부터 함께 작업해 온 사진작가 '안성진'과 2017년 6월~8월 27일까지 한남동 소재 '월간 윤종신' 스튜디오에서 사진전을 개최했다. 2집~10집 사이의 앨범아트워크 사진을 전시하고, 사진집 및 원본 필름도 판매했다. 인터뷰 영상 사진전이 9월 말까지로 연장되었다. 관심 있는 위키러는 방문해 보자.

9월 15일, 오랜만에 신치림의 이름으로 에디킴과 함께 신곡을 냈다. 미스틱의 음악플랫폼 LISTEN의 열네 번째 곡으로, 곡명은 '지금'. 윤종신으로서는 '좋니'에 이어 두 번째 LISTEN 참여곡. 미스틱과 SM의 컬래버레이션 음악 예능 눈덩이 프로젝트의 마지막 미션인 '황혼'을 주제로 한 노래로,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지금, 이 순간을 소중히 하자는 메시지를 담은 서정적인 발라드이다. 작곡 하림, 작사 윤종신, 편곡 강화성의 완벽한 조합..

2017 전국투어 콘서트가 결정되었다. 콘서트명은 무려 윤종신 좋니? 링크 울산 (10월 28일)부터 순차적으로 일정 공개. 공연일정

9월 24일 멜로디 포레스트 캠프에 출연하여 랩을 선보였다.

'좋니'에 이어 10월에 발표된 월간 윤종신 Special 곡인 '너를 찾아서'도 차트에서 선전하고 있다. 지니, 벅스, 소리바다 등에서 1위를 차지했다.

10월 12일 EBS 스페이스 공감에 출연했다. 박재정, 퍼센트, 장재인, 민서 등과 함께 출연. 여기서 부른 좋니 라이브가 역대급이라는 평가다.

박재정 싱글 '악역'을 작사했다.

4.3.2.1. 좋니의 역주행[편집]

음악성이 만들어 낸 역주행, 그리고 데뷔 27년 만의 첫 음악방송 1위

음악가 윤종신에게 2017년을 최고의 한 해로 만들어준 노래.

자세한 내용은 좋니 문서 참조.

5. 싱어송라이터 활동[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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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종신과 음악노예: 유희열, 조정치, 성시경, 박정현, 하림, 투개월(김예림, 도대윤) 순.[40][41]

"뮤지션은 휴지기(공백기)가 필요하다."에 대한 완벽한 안티테제

한 달에 한 곡을 찍어내는 공장장

5.1. 작곡[편집]

윤종신은 싱어송라이터로 높은 평가를 받는데, 015B 객원 보컬 출신으로 솔로앨범을 내면서 작사/작곡까지 참여하면서 스스로의 노래를 만드는 싱어송라이터로 발전했다. 유영석은 싱어송라이터를 두 부류로 분류하는데 보컬에서 작편곡을 시작하면서 싱어송라이터가 되는 부류, 전문 작곡가가 보컬에 참여하면서 싱어송라이터가 되는 부류이다. 윤종신은 바로 전자에 해당된다. 그런데 윤종신이 작사/작곡을 하는 싱어송라이터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 전문적으로 편곡을 배우지 않았기 때문에 대부분의 곡이 전문 작곡가와의 공동 작곡이고 편곡을 맡긴 경우가 많다. 디렉터스컷 방송을 보면 음표도 잘 못 그린다. 이 때문에 편곡 및 채보를 위한 서포터가 필요한데, 이들이 윤종신의 음악노예들이다.

윤종신은 015B 시절 정석원을 만나면서 작사 작곡에 눈이 떴다고 술회했다. 화성학을 배운 적이 없다 보니 최초로 스스로 작사/작곡/프로듀싱한 4집 타이틀곡 '부디'를 처음 들은 정원영 밴드의 정원영이 "윤종신 이 자식 뭐하는 놈이지..."라고 농담으로 디스하기도 했다고... 출처

한 엠팍커가 2011년에 분석한 윤종신의 작곡법

최근 방송에 노출되는 이야기에 따르면 곡을 쌓아 놓고, 집에 '고객상담용 모니터'가 있으며 폴더별로 나뉘어서 들려줄 정도로 공장장. 거기다 상당히 쿨한 성격이라 곡이 까여도 '마음에 안 드니? 그럼 이건?'라는 식이다. 메일 등을 이용해서도 노래를 무진장 가수들에게 뿌린다고 하는데, 성시경에게는 한 번에 9곡이 온적도 있다고.

대개 편곡은 다른 사람에게 맡기기 때문에 작곡 당시에는 본인이 직접 친 통기타 반주에 본인 목소리로 가이드를 넣는 것 같다. 다분히 옛날 방식이라고 할 수 있는데, 요즘은 가이드 곡이라도 편곡이 상당부분 완성된 상태로 나가고, 가이드도 실력파 보컬들이 맡아서 모르는 사람들이 들으면 팝송으로 들릴 정도로 세련되게 다듬어진 상태로 가수들에게 전달된다. 디렉터스컷에서 전한 일화에 따르면, 한번은 윤종신이 이효리에게 곡을 주려고 기타로 반주를 치고 멜로디를 흥얼거려서 녹음한 뒤 메일로 보냈는데 거절당했다고 한다. 헌데 나중에 이효리가 자기한테 굉장히 세련된 팝송을 들려주길래 "야 이거 좋다. 누구 노래야?" 라고 물어봤더니 이효리에게 온 가이드 곡이었다나. 자기는 통기타를 쳐서 흥얼흥얼 녹음한 뒤 "나중에 편곡이 되면 여기에 이런 비트가 들어갈거야, 상상되니?" 하는 식인데 이효리가 받는 가이드 곡들은 이미 완성품 수준의 퀄리티를 가지고 있어서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감성적인 멜로디와 감정을 억누르다 후반부의 폭발하는 전개로 좋아하는 사람들이 상당하다. 대표적인 곡이 "너에게 간다". 이런 노래들을 '매달' 국수 뽑듯 뽑아내고 있는 괴물.

5.2. 작사[편집]

자타공인 국내 탑클래스 작사가

극사실주의 작사의 최고봉

작곡에서 윤종신을 그저 그렇게 평가하는 사람들도 작사만큼은 이견없이 그 수준을 인정하는 편. 역시 국문과 전공자답다. 윤종신의 작사에서는 인간 본성의 여러 모습을 대하는 그의 따뜻한 시선을 느낄 수 있다는 평.

디렉터스 컷에서 작사에 대해 윤종신 본인이 직접 얘기한 바로는 자기는 작사에는 잘하고 못하는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고. 물론 겸손의 의미로 한 말이며, 옆에서 하림이 '근데 형은 잘하잖아요'라고 바로 되받아쳤다. 가사도 굉장히 금방 쓴다고 하며, 거리에서도 2절 가사가 없었는데 즉석에서 만들어줬다고 한다.

발라드 가사에 잘 등장하지 않는 의외의 상황이나 주제를 묘사하는 생활밀착형 가사를 자주 쓴다. 노래의 화자는 대개 찌질하고 볼품없는 남자로 그려지는 경우가 많다. [42] 그래서 사랑이나 이별을 주제로 한 작사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윤종신 특유의 '한끗'이 있는 표현, 혹은 하이퍼리얼리즘적 표현으로 가슴을 절절하게 하는 경우가 많은 편. 가사를 다 쓰고 나면 가수들에게 가사를 보여주며 '여기 이 표현은 앨범 몇 장짜리, 이 표현은 몇 장짜리' 하는 식으로 포인트를 짚어준다고... [43]

'~기에'라는 표현을 작사에 자주 이용하는 듯. 또, '-ㄴ다'를 가사에 쓰는 몇 안 되는 사람이라고 성시경이 언급한 적이 있다.[44]

박정현은 한국에 와서 윤종신이 작사한 '오랜만에'를 사전을 찾아가며 의미를 해석했고, 의미를 알게 된 후엔 가사가 너무 좋아서 '한국에도 작사를 시의 수준으로 해내는 사람이 있구나'하고 감탄했다고. 심지어 신사동호랭이같은 댄스 작곡가들에게도 작사가로는 존경받고 있는 롤 모델이라고 한다. [45]

윤종신 작사, 이규호 작곡의 '팥빙수'는 가요사상 거의 전무후무한 요리 레시피를 가사로 쓴 것이라 개그소재 등으로 자주 애용된다. 어느 방송에서 가사를 어떻게 썼느냐는 질문에 "인터넷에서 팥빙수 레시피를 검색했다"고 밝혔다.[46] 본인 스스로 '대한민국 푸드송의 원조' 라고 주장했으나 별 근거는 없다.[47] 요즘은 예능용으로 자주 써먹는다. 박명수의 "바다의 왕자", 쿨의 "해변의 여인" 등과 함께 오래도록 깨지지 않을 여름의 레전드 곡이다.

2009년 무한도전의 '강변대로 듀엣 가요제'에 '영계백숙'을 작사/작곡하기 했다. 그 기세로 또 하나의 푸드송 "막걸리나"를 내놓았다(국순당이 부탁해서 만든 막걸리 로고송) 2013년에는 망고 쉐이크라는 노래도 냈다. [48] 2014년에는 '눈송이 빙수', 2015년에는 '쿠바 샌드위치'로 영계백숙에 이은 두번째 핫 푸드 송도 냈다. 그리고 아무도 기억을 못하지만, 박경림이 전대미문의 히트를 쳤던 곡 '착각의 늪'이 수록된 앨범 '박고테 프로젝트'에 '안녕 핫바'라는 푸드송을 수록하기도 했다. 당시엔 본격적인 예능인이 되기 전 시절이라 방송에서도 진지하게 작사작곡을 하는 모습만 비춰졌다.

2016년 이후에는 월간 윤종신 수록곡들을 통해 단순한 남녀간의 사랑과 이별을 제외한 다른 주제들도 자주 노래하는 편이다. 2017년 1월호 '세로'에서는 차트 줄세우기 위주의 음반계를, 2016년 12월호에서는 촛불정국을 노래했다. 중장년층, 혹은 나이든 뮤지션으로서의 심경도 자주 노래하는 것 같다. [49]

참고로, 윤종신의 디스코그라피에는 약 10년 주기로 본인의 나이를 노래한 곡이 몇 곡 있다. 관심 있는 위키러는 들어 보자.

  • 28살 : 나의 이십대 (6집, 1996년) 링크

  • 37살 : 서른 너머... 집으로 가는 길 (10집, 2005년) 링크

  • 43살 : 나이 (13집, 2011년) 링크


윤종신이 작사에 자주 이용하는 소재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 벽지무늬/천장: 아이유 - 벽지무늬 / 박재정 - 시력 / 신치림 - 굿나잇

  • 동네 및 거리: 윤종신 - 돌아오던 날, 동네 한 바퀴, 모처럼, 야경 / 성시경 - 거리에서

  • 우연한 조우: 윤종신 - 너에게 간다 / 나윤권 - 미행, 뒷모습 / 이수영 - 스치듯 안녕

  • 요리 및 음식: 윤종신 - 팥빙수, 쿠바 샌드위치, 막걸리나, Home Made, 눈송이 빙수, 망고쉐이크...

  • 여행, 입/출국: 박재정 - 여권 / 하림 - 출국 / 윤종신 - 도착 (Vocal 박정현)

  • 독특한 장소 및 물건: 윤종신 - 수목원에서, 1월부터 6월까지, 일년, 치과에서, 자유로 Sunset / 성시경 - 굿모닝

  • 계절: 윤종신 - 가을옷, 늦가을 (Vocal 규현), 12월, 바캉스 매니아, 결국 봄

  • 헤어진 전날/당일/다음날: 윤종신 - 이별을 앞두고, 내일 할 일, 아침 / 김연우 - 이별택시

  • 치명적인 것 (독, 병 등): 김연우 - 해독제 / 윤종신 - 몬스터 / 하림 - 난치병

5.3. 프로듀싱[편집]

윤종신의 프로듀싱 능력은 015B 시절 음악적 스승이었던, 그리고 솔로 1~3집을 프로듀싱해 준 정석원으로부터 배운 것이다. 스스로 프로듀싱한 것은 4집 '공존'부터.

"이별여행"으로 유명한 가수 원미연의 말에 따르면, 의외로 윤종신이 깐깐하다고 한다.

윤종신이 혼자 작사, 작곡, 편곡을 한 노래는 상당히 드물다. 스스로도 자신이 화성학 지식이 있는 전문적인 작/편곡자가 아니기 때문에 아이디어나 멜로디는 자신이 만들고 그것을 곡으로 만드는 것은 조정치, 정지찬, 유희열, 정석원 등 전문가와 공동작업을 해 왔다.[50]

이들 중에 유명한 사람들이 소위 윤종신의 '음악노예'들인 유희열, 하림, 조정치. 셋 다 전문적으로 음악을 공부한 정통파들로 전부 윤종신이 발굴하다시피한 인물들이다. 윤종신 본인도 방송에서 자기 자신은 천재가 아니지만 천재를 보는 안목은 있다고 자부했듯이 셋 모두 탁월한 능력을 가진 음악인들이다. 유희열은 군에서 제대한 후 정신을 못 차릴 때 낚아챘다고 하며 조정치는 세션으로 활동하던 시절에 김C를 통해 세션 기타로 추천받았다가 재능을 알아보고 데려왔으며 심지어 하림의 경우 해당 문서에서도 알 수 있듯이 윤종신이 군 복무 시절에 알아보고 계약서를 쓰게 했다고 한다. 윤종신 본인은 이를 예능 소재로 써먹고는 있지만 본인의 한계점을 명확하게 인식한 뒤에 그 점을 보완하려고 재능 넘치는 원석들을 계속 발굴해서 성장시키며 가까이 두고, 서로 윈윈하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2000년대 초반 이후로는 군대에서 알게 된 작/편곡가 이근호와 매우 자주 함께 작업한다. 인터뷰 참조. 거리에서, 넌 감동이었어, 시간, 지친 하루, 오르막길 등 2000년대와 2010년대를 걸쳐 이근호의 손을 거친 명곡이 상당히 많다. 알고보면 하림, 조정치 등에 버금가는 전속 어시스턴트. 이근호는 클래식 작곡에 능하여, 윤종신이 흥얼거리는 멜로디에 코드와 반주를 입히고 편곡을 하는 역할을 맡는 것으로 보인다. 참고로 이근호씨는 2014년 창작동요대회 대상을 수상하였다. 동요뿐만 아니라 성가 등도 작곡하는 듯.

그 외에도 임재범의 '통증'을 작/편곡하고, 나얼의 '같은 시간 속의 너'를 편곡한 작곡/편곡가 강화성[51], 싱어송라이터 정지찬과도 자주 작업한다.

아가씨 OST인 '임이 오는 소리' 프로듀서를 맡았다. 편곡은 조정치.

6. 창법[편집]

국보급 가사 전달력

한국인들이 일반적으로 좋아하는 창법은 풍부한 성량과 감정을 담아내는 호소력있는 보컬인데, 윤종신의 목소리는 거의 정반대이다. 발음도 발성도 깔끔해서 담백하면서도 절절하게 감정이 묻어나는 편이다. 따라서 가사 전달력은 국내 최고 수준이다. 담백하면서 부담없이 즐길 수 있고 감정표현이 뛰어난 보컬.

이 보컬은 윤종신의 가사와 맞물리면 오히려 더 큰 감정 동요를 일으킨다. 이별하고 미쳐 죽을 것 같은데 그걸 아무렇지 않다는 듯 담백하게 부르니 앞에서는 담담하게 얘기해도 속은 썩어들어가는 이별한 남자의 정서를 극대화시키는 효과가 있다. '너의 결혼식'에서 절규하듯 부르던 시절의 보컬 스타일과 비교하면 감정을 조금 누르고 절제시킴으로써 더 애절하게 만드는 스타일.

하지만 모든 노래를 담담하게만 부르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윤종신이 지르는 노래들은 대개 히트한다. 가깝게는 '좋니'부터, '너의 결혼식', '부디', '몬스터', '오르막길', '1월부터 6월까지' 등...역시 대중은 애절함을 좋아하나 보다.

국문과 출신이라 그런지 발음을 굉장히 중요시 여기는 편으로, 한국어에 서툴렀던 박정현이 첫 노래 작업을 윤종신과 함께했고 하도 교정받아서 그 때 많이 발전했다고 한다. 지금도 감사하다고 한다. 박진영은 발음을 또박또박 하는 것보다 흘리는 걸 좋아하는데, 이걸 가지고 라디오 스타에서 출연진과 나머지 MC들이 윤종신을 디스하기도 했다. 이 발음에 대해서는 2014년 4월 9일라디오 스타에서 정준일이 말한 "종신이형 창법은 중국 노래 같다."라는 내용을 보면 된다. 나~ 언~ 을~ 나는~

모 예능에 의하면 라틴 계열 발성에 잘 어울린다고. 하여간 여러모로 특이한 보컬. 뽕끼도 있어서 트로트도 잘 한다. '사랑의 뒷북'이라는 트로트 싱글을 낸 적이 있다.

데뷔 당시 윤종신은 옥구슬같은 미성을 자랑했으나 음주흡연 으로 인해 솔로 1집(1991년)~3집(1993년) 사이에 맑은 음색이 사라지고, 4집(1996년) 전후로 [52] 목소리가 급격히 탁해지더니 1999년~2000년 토이 <A Night In Seoul>, 8집 <헤어진 사람들을 위한 지침서>를 마지막으로 목소리 자체가 바뀌어버렸다!! 당장 1999년에 나온 <후반> 때 목소리와 2001년 <그늘>을 연달아 들어보면, 그 2년 사이에 많이 달라져 있다. [53] 때문에 당시 같이 미성으로 이름을 날렸던 신승훈도 그의 목소리가 너무 변했다며 안타까워했다. 이승환의 증언에 의하면 자신이 아는 가수 중 가장 단기간에 가장 많이 목소리가 변한 가수라고.

그의 창법은 2002년~2003년 사이 또다시 대격변을 거친 후 완전한 탁성으로 자리잡는데... 2005년 10집과 2008년 11집에서는 발성에 바람이 많이 들어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11집 발매 직후 출연한 수요일 밤 MBC의 음악프로 음악여행 라라라에서 본인의 옛 노래들을 매우 힘들게 부르더니, SBS의 음악프로그램인 김정은의 초콜릿에서는 7집 타이틀곡 '배웅'을 부르다가 아무래도 가래가 낀 듯한 목소리를 잠시 냈다. 그래도 3옥타브 도까지는 올라간다.[54] [55]

윤종신 본인에 따르면 잦은 음주흡연으로 인한 목소리 변화가 원인이라고 한다. 가수들 사이에서는 말술로 유명하다. 라디오 DJ로 활동하던 시절 밤 늦게 술 마신 얘기를 자주하는 편. 또한 헤비 스모커로 유명했다가 한 번 쓰러진 이후로는 술과 담배는 줄인듯 하다. 사실 이제는 거의 끊었다. 테니스를 통해서 몸은 오히려 좋아졌다고. [56] 금연쏭이라는 제목의 싱글도 냈었다.

2010년대 들어 윤종신은 보란듯이 성대를 갈아끼우는데... 2010년 이후 절주, 금연하면서 가창력이 확연히 좋아졌다. 2009년과 2010년의 가창력이 한 해만에 확연히 달라졌다. 2010년대 후반 들어서는 고음역대의 발성이 엄청 단단해졌다. 나이가 무색하게 짱짱한 고음을 뽑아내는 중. 2016년 6월 월간 윤종신 의미 없다에서의 최고음은 3옥타브 레. 물론 저 노래를 라이브 무대에서 부를 가능성은 낮지만 이걸로 리즈 갱신은 확정...

다만 깔끔한 가성은 이제 더이상 나지 않는 듯. 데뷔 초에는 무려 3옥타브 라까지 올라가던[57] 청명한 가성을 더는 들을 수 없다. 좋니 라이브영상들에서 3옥미b 가성을 거칠게 겨우 낸다. 원래 가성이란 게 성대에 상처가 많이 나 있을수록 바람빠진 소리가 나기 때문에... 대신 그때보다는 중저음이 훨씬 탄탄해졌다.

최근 라이브가 2000년대의 그것보다 훨씬 듣기 좋다. 예를 들어, 2002년 윤도현의 러브레터에서 키를 낮추고도 겨우겨우 불렀던 담배 한 모금을 2015년 작사가 콘서트에서는 원키로 가뿐히 부른다. [58]



미성이었던 흔적이 있다 보니 윤종신의 음역은 절대 낮지 않다. 최근 히트한 "좋니" 만 해도 진성으로 최고음이 2옥 라#이고, 위에서 말한 2016 월간 윤종신 6월호 의미 없다 음원에서는 샤우팅으로 3옥타브 레 까지 냈다. 그리고 미성이 사라진것같지만, 여전히 젊었을때의 미성을 간직하고는 있는데(스페이스 공감에서 라이브로 부른 2017 월간 윤종신 6월호 <끝 무렵>을 들어보면 정확히 알 수 있는데 진성을 내다가 가성으로 넘어가는 곳에서 상당히 맑은 미성이 나오는 것을 볼 수 있다 라이브 보러가기)이는 윤종신 본인이 창법을 따로 바꾼 듯 하다. 90년대 활동 당시에도 "텅빈거리에서"와 2집 "너의 결혼식" 때의 목소리가 미묘하게 다른데 이는 윤종신 본인도 창법을 바꾸려고 부단히 노력을 했다고 수차례 언급한 바 있다.



판타스틱 듀오에서의 '지친 하루' 최근 라이브 영상. 5분 5초에 진성으로 3옥 레#을 낸다.

7. 정규 앨범 목록[편집]


앨범 발매에 대해서는 위 문서 참고.

8. 방송 활동[편집]

8.1. 연기[편집]

8.2. 예능[편집]

8.2.1. 개요[편집]

윤종신 역대급 드립 TOP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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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라드계의 능참봉...

90년대에 가수로 활발히 활동할 때도 윤종신은 이미 그를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깐족의 대명사로 불렸다. 당시 윤종신의 그 간드러지는 평소 목소리를 들으면 사람들이 놀랐다고 할 정도. 본인도 "라디오 들어본 사람들은 자기가 원래 이런 이미지라는 것을 알 것."이라는 말을 하곤 했다.

애초에 윤종신의 캐릭터는 촐싹맞고 얄밉게 깐족대기. 아무래도 나이도 나이고 몸도 몸이니만큼,[59] 몸을 쓰는 일(몸개그를 포함하여)은 어려웠던 듯하다. 대신 쉴 새 없이 말로 태클을 걸거나, 특히 다른 사람이 던진 말장난을 한번 더 받아치는 '주워먹기' 개그에 뛰어나다. 그래서 기프갤에서 얻은 별명이 윤자기. 본인도 주워들었는지는 몰라도, 2010년 놀러와 283회에서 갑자기 윤자기 드립을 쳤다. 그 날 윤종신의 활약으로 놀러와는 음악성과 웃음을 함께 거머쥐며 흥했다. 윤종신은 자기가 나오는 프로그램에서는 거의 모든 드립을 주워먹는다. 특히 독한 것은 그 깐족대는 캐릭터와 겹쳐서 독한 드립은 더 독하게 치는 바람에 말리는 시누이 포지션으로 정착한 것. 김구라조차도 명랑 히어로에서 난 최소한 앞에서 때리지 저 형은 뒤에서 친다고라면서 질색했다.

하지만 본인은 예능인 윤종신과 음악인 윤종신의 괴리감에 대해서는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고 한다. 오히려 스스로 영화감독 기타노 다케시와 개그맨 비트 다케시와 같이 생각하면서 예능인과 음악인으로서 두 마리 토끼를 잡고 싶다고 얘기하고 다닌다고 한다.[60][61]

8.2.2. 2000년대[편집]

2000년대 초반에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에 영화감독 장항준과 함께 비실형제로 카메오로 출연, 이후 본격적으로 예능의 문을 두드리기 시작하여 2002년 똑바로 살아라[62]에 또 카메오로 2번정도 출연했고, 2003년 논스톱4에 교수 역을 맡는 등 점차 활동의 폭을 넓혀 3사를 종횡무진하는 예능인으로 성장했다.

2007년 5월부터 MBC 황금어장 라디오 스타에, 2008년부터는 SBS 패밀리가 떴다에 출연하기 시작했다. 2009년이 그 전성기로, MBC 황금어장의 라디오 스타, SBS 패밀리가 떴다, 예능선수촌[63] 에 고정출연하여 시청률 60%를 책임졌으면 좋았겠지만 모두 프로그램의 중심 캐릭터가 되지 못했다. 대신 깐족거리는 서브MC 이미지를 굳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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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밀리가 떴다에서 이효리에게 '효리야, 나랑 게임 한 번 하자'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었는데 자막에 '효리야, 나랑 한 번 하자'로 나와서 이 장면이 캡쳐되어 개그 요소로 쓰인 적이 있다.

패밀리가 떴다 시즌 1이 마감하면서 같이 하차. PD와 접촉하여 시즌 2를 노렸으나 대대적으로 물갈이하려던 방침에 맞지 않아 뜻을 이루지 못했다고 한다. 본인의 말로는 '애는 늘었는데 프로그램은 줄었다'라고 한탄하기도 했다. 예능선수촌의 경우 초기에는 최양락의 레전드급 토크로 흥하였으나 결국 놀러와를 이기지 못하고 그 해 가을 조용히 사그라들었다. 그 뒤 SBS는 월요예능을 화요일로 옮겨 강심장으로 재기한다.

무한도전 듀엣가요제에서의 영계백숙을 작곡했다. 그런데 작곡 후 정준하의 보컬이 아쉬웠는지, 본인이 직접 불러 리믹스를 해 유료 음원 시장에 내놓았다. 이에 대한 논란은 후술.

2008년에 무한도전에서 하하와 유재석이 금산에 인삼을 사러 갈때 잠깐 전화통화를 한적이 있는데, 그때 방송에 나온다는 것을 모르고 너무나 가볍게 됐어~ 이 시X놈아~라고 욕했다. 물론 욕은 묵음처리되었고, 그 뒤에 유재석이 "형, 이거 무한도전에 나가는 거야"라고 하자 바로 "웬일이니 재석아?"라고 하며 바로 급변했다.

8.2.3. 2010년대[편집]

2010년 KBS 2TV '밤샘버라이어티-야행성'에 출연했다.

2011년 나는 가수다에 가수가 아니라 3대 MC로 출연했는데 시즌1이 마무리되면서 하차했다.

SBS의 고쇼에서 고현정, 김영철, 정형돈과 진행을 했었고 현재는 종영했다.

결국 2012년 MBC 방송연예대상에서 최우수상라디오 스타로 최고의 프로그램상을 수상했다.

SBS 일요일이 좋다 - 맨발의 친구들(2013.11.17 폐지)에 출연했었다. 화신2013년 5월 14일을 끝으로 하차했다. SBS에서 윤종신이 출연한 프로그램은 족족 조기 폐지된 감이 있다.

2014년 7월 31일부터 M.net 블랙드라마 엔터테이너스에 출연했다. UV신드롬, 음악의 신, 방송의 적을 연출한 박준수 PD의 작품인데, 페이크 다큐멘터리였던 전작과는 달리 드라마 혹은 시트콤의 성격이 강하다. 윤종신이 틴탑의 프로듀싱을 맡으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음악의 신에서 한 몸 불살라 제 2의 전성기를 열었던 이상민처럼 자기 비하도 서슴지 않으며 분투하고 있지만 영 반응이 시원찮은 편.

2014년 11월부터 2015년 3월까지는 종편JTBC속사정쌀롱의 진행도 맡으면서 생애 처음으로 종편 프로그램을 맡기도 했다. 하지만 호평에도 불구하고 신해철사망 여파로 프로그램은 조기종영 크리...

2015년 5월부터 동년 11월까지는 리얼체험 프로젝트 인간의 조건 고정 멤버로도 출연 중이었다.

2016년 겨울부터 이듬해 늦봄까지는 은위에도 출연 중이었다.

또한, JTBC의 팬텀싱어는 시즌 1시즌 2 모두 심사위원 중의 하나로 참석하였다.

2017년 5월 부로 채널A 하트시그널MC로 참여한다. 또 라디오 스타는 10주년을 맞이했다. 첫회부터 모두 출연한 라스의 유일한 MC. 정말 성실함 하나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듯...

2017년 6월부터 9월까지 SM과 미스틱의 전략적 제휴의 결과물인 눈덩이 프로젝트에 출연했다.

2017년 10월 8~9일 양일간 방송되는 KBS2 건반위의 하이에나에 출연하고, 여기서 월간 윤종신의 제작 과정 및 음원을 공개한다. 10월호가 될 뻔했으나 월간 윤종신 스페셜호로 바뀌게 되었다. 제목은 <너를 찾아서>.

8.3. 오디션 심사위원[편집]

슈퍼스타K 1, 2, 3기에 걸쳐 심사위원으로 활동했다. 가끔 개드립을 치기도 했지만, 대체로 설득력 있는 평을 내린데다가 도전자들을 챙겨주고 가수로서의 방향성에 대해 많은 조언을 해준 덕분에 슈퍼스타K의 심사위원 중 비교적 시청자들의 반응이 좋은 편이었다.

슈퍼스타K4부터는 심사위원으로 참여하지 않는다고 한다.[64] 하차하고 나서 대체로 '윤종신 특유의 섬세한 심사평을 듣지 못하게 되는 것이 아쉽다'는 의견이 많았다.

그런데 그 와중에 슈퍼스타K 2, 3의 PD인 안준영 프로듀서는 트위터 상에 '앓던 이가 빠진 느낌이다! 감사합니다! 잘 빠졌네요^^' 라며 슈퍼스타K를 하차하는 윤종신을 저격하는 뉘앙스의 트윗을 남겨 잠시 논란이 됐었다.

프로그램 하차 이유에 대해서 인터뷰를 통해 '난 사실 음악을 말하는 걸 참 싫어했다. 그냥 듣고 느끼면 그게 다인데.. 트위터 시작하고 부쩍 음악을 말한다. 고치려고. 심사를 관둔 이유도 그 이유가 큰데. 열심히 만들고 부르고. 이 새벽도 그러면서 지샙니다'라는 트윗을 남겨 간접적으로 슈퍼스타K 하차 이유를 밝혔다.

하지만 슈퍼스타K5로 복귀했다.그리고 하차 건으로 김구라에게 슈파스타K의 장성택이라며 디스를 당하기도 했다.

슈퍼스타K7를 끝으로 하차가 결정되었다. 하지만 차후 언제든 다시 참여할 수 있다는 뜻을 밝혔다 한다.

그리고 슈퍼스타K 2016에서 탑10 결정전 윤종신의 곡을 부르는 미션에서 조언자로 출연하였다.

JTBC 팬텀싱어에서도 프로듀서들을 거의 리드하고 중재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아무래도 같이 나오는 윤상을 제외하면 방송경험이 별로 없는 각 분야 전문가들이고, 윤상은 평범한 멘탈이 아니기 때문에... 게다가 MC진인 전현무와 김희철도 거의 먹튀의 위엄을 보여줘서 진행도 일부 윤종신이 영향력을 발휘하는 느낌이라 MC들 출연료도 떼어서 윤종신 줘야 할 수준이다. 시즌 2에서 김희철이 하차했는데 여전히 전현무는 최소한의 진행멘트만 맡고 있다.

9. 라디오 DJ 활동[편집]

한편, 윤종신은 라디오DJ로 다수 활동했다. 리즈 시절인 1991년에 MBC 표준FM <우리는 하이틴>을 시작으로 SBS 표준FM <기쁜우리 젊은 날>, MBC FM4U <두시의 데이트> 등에서 오랜기간 DJ를 했다.

요즘은 완전히 깐족거리는 기믹으로 활약하고 있지만, <우리는 하이틴>[65]의 DJ로 활동하던 시절에는 내성적이었다고 한다. 한 번은 당대 최고의 스타였던 김완선[66]이 게스트로 출연했는데 작가가 써준 대본 내용으로만 프로그램을 진행했을 뿐,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해 방송사고를 낸 에피소드가 있다. 그러다 라디오DJ로서의 경험도 쌓이고 깐족거리는 이미지가 더해져 나른한 낮시간 때에 최적화된 DJ로 변모했다.

유희열에 의하면 본디 젊은이들의 감성을 건드리는 섬세한 오빠같은 섬세한 밤 DJ였다고 한다. 적어도 '우리는 하이틴', '기쁜우리 젊은 날'때까지는... 그런데 실제 당시 기사로 그렇게 나와있었다고 한다.

10. 논란[편집]

  • 무한도전 올림픽대로 가요제에서 영계백숙(정준하&애프터스쿨)을 작곡했는데, 후에 이를 리믹스 버전 음원으로 내놓은게 논란이 됐는데, 이에 네티즌들은 무한도전의 올림픽대로 가요제의 취지를 훼손한다며(무한도전 측은 가요제 수익 전액을 기부했다.) 대차게 깠다. 그러나 그것은 윤종신이 무한도전을 하며 스케쥴이 바빠 기존 영계백숙의 퀄리티에 대한 아쉬움이 있었고 그래서 더 좋은 퀄리티를 선보이고 싶은 뮤지션의 자존심으로 음악을 재편곡해서 다시 낸것인데, 물론 본인이 돈까지 들여가면서 재작업을 한것인데 네티즌들의 무분별한 마녀사냥을 받았다. 거기에 때맞춰 타블로가 정형돈과 부르려다 미완성한 '전자깡패'를 완성시켜 본인의 홈페이지에 올리며 저작권 Free를 선언하였다. 그럼에도 윤종신은 '그래도 유료'라는 입장을 고수하여 네티즌들의 엄청난 뭇매를 맞았다. 결국 자신의 홈페이지에 공식으로 사과를 하고 음원 수익 전액을 기부했다. 윤종신의 영계백숙 리믹스 발표는 무한도전의 프로젝트와 별개의 것이며 법적으로 전혀 문제가 없는 일이어서, 영계백숙 본곡이나, 리믹스나 윤종신으로써는 돈과 시간 모두 투자한 자신의 곡이었기 때문에 영계백숙 리믹스 발표가 문제가 없는것이 맞다. 대표적인 마녀사냥 케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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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7년경 본인이 진행하는 라디오에서 여자를 '회'에 비유한 발언이 논란이 되자 사과했다.# 맥락적으로 이해해줄 부분도 있지만, 윤종신 일생일대의 흑역사. 그리고 디씨 윤종신갤러리는 위 사진과 같은 생일떡을 선물했다. 이로 인해 김구라에게 끝도 없이 조롱당했다.

11. 트리비아[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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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급형 정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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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오프.

  • 진중권 교수와 트위터 상에서 외모(둘 중에 누가 더 잘생겼냐는)에 대한 논쟁을 벌였으며, 이에 유희열은 전파낭비라고 라디오에서 얘기한 적이 있다. 이 얘기를 접한 윤종신은 "이게 웬 하수의 기웃거림인가?.....ㅋㅋㅋ"라는 트윗을 남겼다. 이후에도 SNS에서 종종 서로 까는 모습이 등장한다. 물론 분위기 자체는 가볍게 놀리는 정도. 아래 사진에서 볼 수 있듯이 두 사람이 실제로 만난 적도 있다.[67] 2014년에는 같이 예능에도 출연하고, 심지어 히든싱어 윤종신 편에는 진중권도 패널로 출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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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구라도 칭송하는 가요계의 황태자에서 김구라의 밥으로 전락한 비운의 음악가. 윤종신은 이 말이 얼마나 마음에 들었는지, 이걸 4년이 넘게 기억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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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예인 중에서도 특히 잘 알려진 시계매니아이다. 방송을 통해 소유하고 있는것으로 알려진 롤렉스 모델만 신/구형 서브마리너, 그린 서브마리너(초록베젤), 데이토나 등이며 그 외에도 태그호이어의 까레라 복각 모델을 자신의 뮤직비디오(1월부터 6월까지, 나쁜, 못나고 못난)에 착용하고 출연한다거나, 세이코의 SKX007 모델도 방송에 차고 나오는 모습을 보여준다.

  • 시계 뿐 아니라 2000년대 중후반 부터 슈퍼스타 K나 라디오스타 등에서 보여준 깔끔한 코디가 호평받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윤종신의 패션 센스일 것이라는 가능성을 배제하고 윤종신의 코디를 칭찬하고 있지만 '윤종신 코디', '윤종신 스타일리스트'는 한 때 검색어 자동 완성이 되었을 정도. 본인도 라디오스타 MC들의 패션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본인의 스타일리스트에 대한 칭찬을 인용하곤 하는 것을 보아 실제로 스타일리스트의 공이 꽤 큰 것으로 보인다. 튀지 않고 무난한 패션으로 키가 큰 편이 아니고, 특히 안경을 낀 일반인들은 롤 모델로 따라 입을만하다.

  • 유희열의 말론 한때 본인을 한국의 기타노 다케시(비토 다케시)라고 자칭했다고 한다. 이에 대해 김장훈은 윤종신과 달리 비트 다케시는 재밌는 사람이라고 말했다.[68] 사실 따지고보면 그렇게 틀린말도 아니긴하다... 다른점이라면 다케시의 경우 코메디를 하다가 영화인도 겸하게 된경우고 윤종신은 거꾸로 음악을 하다가 예능계로 손을 뻗은 경우. 둘 다 하고 싶은 일을 하기에 순서를 떠나 비슷한 것은 변함없다.[69]

  • 좋은 프로듀서가 아니라는 비판을 받았다. 윤종신 본인은 이 기사를 자신의 트위터리트윗 시켜놓았다. 윤종신의 됨됨이와 멋진 인성을 엿볼수 있는 부분이다.

  • 팥빙수 노래 가사 중에 '팥빙수 팥빙수 난 좋아 열라 좋아'라는 소절이 있는데 뒤의 '열라'가 비속어라는 이유로 방송 금지 판정을 받아서 방송용으로 '열라 좋아'를 '진짜 좋아'로 수정한 버전도 만들었다.

  • 1996년 발매된 015B 6집의 "21세기 모노리스"를 '신경필'이라는 가명으로 불렀다.[71] 공식적으로 밝힌 적은 없지만, 팬들은 다 아는 사실이다. 당시 대영AV에 소속되어 있던 015B가 LG미디어로 옮기면서, 대영에 남아 있었던 윤종신이 대놓고 참여하기 어려워서 그랬다는 설이 있다.[72] 그 외에도 하림의 1집 앨범에서는 '탁영'[73]이라는 가명의 작사가로 활동한 적도 있다.

  • 명랑 히어로 두 번 살다에서 유희열이 윤종신의 상체 체형을 일컬어 시샤모에 비유한 적이 있다.

  • 한 때 포유류만이 고통을 느낀다는 주장을 믿고 있었던 듯 하다. 이를 강호동에게 전파했고 1박 2일에서 이 떡밥으로 논쟁이 벌어진 끝에 강호동이 짜장면을 못 먹는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리고 강호동은 본래 윤종신이 엄청나게 똑똑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 사건으로 이미지가 와장창 깨졌다고 한다. 하지만 이후에도 방송에서 어려운 문제에서 윤종신에게 도움을 청하는 모습을 보였다.

  • 애견가다. 포이라는 이름의 개를 오랫동안 길렀다. 한동안 윤종신의 인터넷 아이디는 poydaddy. 하지만 포이는 죽고 현재는 라울이란 이름의 리트리버와 라리라는 이름의 개를 기르는 중.

  • 2011년, 디씨인사이드 윤종신 갤러리(약칭 깐갤)가 개설된 직후, 갤러리에 출몰 및 인증한 적이 있다. 닉네임은 왕왕왕... [74] 최근 컴퓨터 화면이 캡처되었을 때 즐겨찾기에 디씨 갤러리의 아이콘이 등장한 적이 있다. 아마도 종종 눈팅하는 듯.


[1] 현재 창원시 진해구.[2] 칠원 윤씨 39세손 '鍾'자 항렬이다.[3] 같이 라스에 출연하는 김국진과 체격이 거의 비슷하다. 김국진 역시 168cm, 60kg 전후인데 더 말라보인다.[4] 2015년 현재는 진짜 사나이 여군 특집에 출연해서 좀 유명해졌지만, 예전에 윔블던 주니어 부분 결승에 진출한 적이 있었던 한국을 대표하는 여자 테니스 선수였다. 1994년 윔블던 주니어 여자단식에서 준우승을 기록했는데, 당시의 결승상대는 여자 테니스계의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급 선수였던 마르티나 힝기스였다. 이후 1995년 US오픈에서는 힝기스와 복식조로 나서기도 했다. 2005년에 현역 생활을 마감하고 결혼했다. 2015년 현재 테니스 해설위원으로도 활약하고 있으며, 후배 테니스 선수들을 위하여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5] 작곡가 및 프로듀서 MGR과 동급생.[6] 015B 데뷔 당시. 윤상(11월 30일), 신승훈(11월 1일)보다도 빨랐던 편. 다만 솔로로서는 1991년도로 좀 늦었다.[7] 포스티노, 정석원과 함께 활동하는 작곡팀.[8] 방송에서 애드립을 잘 받아먹어서. 인자기에서 유래...[9] 1996년 015B 6집 앨범에서 (21세기 모노리스 등) 본명이 아닌 신경필이라는 가명으로 곡을 쓰기도 했다. 이승환 역시 비슷하게 토이 앨범에 '이철민'이라는 가명으로 참여했기도 했고.[10] 1박2일 복불복 게임에서 김승우에게 말하길, 자칭 게임계 복덩이라고 했다. 하지만 정작 입수, 야외취침, 아침결식 등 다 걸렸다.[11] 유희열이 그의 음악 작업 방식을 음도에서 평하기를[12] 2회 졸업생으로, '대원 외국어학교' 시절이다. 일반 고등학교를 못 갈 것같은 사람들이 가던 그 시절 맞다. 그래서 라디오 스타에서 윤종신이 "나 외고 나온 사람이야!" 라고 하자, 김구라가 "못 나가던 시절에 나온 거잖아!" 라고 공격했다. 대원외고 동창으로 현재 벤츠의 딜러인 한성자동차의 세일즈맨으로 알려진 가수 김민우, 작곡가 MGR(음악가)이 있다.[13] 이를 통해 대원외고-연세대 졸업이라는, 겉으로만 보면 완전 엘리트인 타이틀을 갖게 되었다.[14] 이런 성향이 두드러지게 나타낸 곡이 '환생'이다. 꽤나 가스펠 스타일인 곡.[15] 출처는 힐링캠프.[16] 참고로 한때 유희열은 윤종신이 참 게으르다며 한탄을 한 적이 있다. 아무래도 음악에 한해서인듯.[17] 그리고 자기가 영화음악을 만든 그 영화에 출연을 하기도 한다.[18] 실제로 나이가 어려서 윤종신을 TV로만 접한 학생들은 아직도 윤종신의 본업이 개그맨으로 아는 경우가 많다. 물론 슈퍼스타K나 월간 윤종신같이 음악적 활동으로도 대중적인 어필을 한 후엔 많이 줄었지만.[19] 윤종신의 반응 [20] 본래 코미디에 욕심이 있어 시트콤에 종종 출연해서 기존 팬을 깜짝 놀라게 했었다. 거침없이 하이킥에까지 섭외되었으나 테니스 선수 출신 부인과 만날 시간이 없을 것 같아 거절했다고 한다.[21] 1994년 윔블던 주니어 여자 단식 결승에 진출하여 준우승을 기록한 경력이 있다. 당시 상대는 훗날 1990년대 중후반 세계 여자 테니스계를 주름잡았던 스위스마르티나 힝기스. 2005년에 현역 은퇴를 선언한 후 이듬해 윤종신과 결혼했다. 현재는 엠스플의 테니스 해설위원으로 활동하면서 후배 테니스 선수들을 위하여 여러 가지 활동을 하신다고 한다. 마리텔에 부부 자녀 동반으로 출연했으나, 최하위에 그쳤다.[22] 윤종신은 (프로필상) 170cm, 전미라가 175cm이다. 각자 프로필 상 키기 때문에 실제로는 더 차이날 수도.[23] 물론 실컷 눌렀다고 해서 모르핀이 쭉 나왔을 리는 없다. 모르핀이 한번에 많이 들어가면 죽을 수도 있기 때문에, 짧은 시간 동안 여러 번 눌러도 실제로는 한두 번 밖에 안들어가도록 설계되어있다. 대체로 10분 간격으로 자동으로 투입되나, 그 사이에 몇 분 안에 한해서 누를수 있다던가. 방식으로 사용한다. 실제로 수술 후 깨어난 뒤에 모르핀 때문에 다시 기절해서 3일동안 못 깨어난다면 의료사고가 될 수 있어서 병원 뒤집어져 난리난다. 최소한 하루 이상 지난 뒤 '윤종신 수술 후 혼수상태로 위독'으로 연예뉴스에 나왔어야 할 정도..[24] 조정치, 김연우 등이 소속된 미스틱엔터테인먼트 대표 프로듀서이다.[25] http://cafe.naver.com/musicy/16642[26] 015B 2집 '두 번째 에피소드'의 수록곡 '친구와 연인', 'H에게", 3집 '제3의 물결'의 수록곡 '우리 이렇게 스쳐 보내면'(박선주와의 듀엣곡), '1월부터 6월까지' 등 간간히 피처링으로 015B를 돕고 있다.[27] 원래는 작곡가 박강영에게 편곡을 맡기려고 아는 사람한테 번호를 물어봤는데, 그 사람이 실수로 작사가 박주연의 번호를 알려 줬다고 한다. 차마 잘못 걸었다고 할 순 없어서 작사를 부탁드렸는데, 그 잘못 걸린 전화로 인해 윤종신의 초기 양대 명곡으로 꼽히는 너의 결혼식과 오래전 그날이 탄생하게 되었다.[28] 모처럼[29] Why[30] 잘 했어요[31] 여행을 떠나요[32] 불놀이[33] 당시 둘은 SBS '아주 특별한 만남' 공동MC였다. 2008년 명랑히어로에서 장항준 감독이 애니가 '눈이 크고 얌전하고 우아한 한류스타'라며 이영애와의 열애설을 폭로. 당시 윤종신은 이영애와는 애니가 가상인물이라고 해명했다.[34] 윤종신 曰, "9집이(나의 베스트 앨범이)다. 제일 창의적인 작품이었다. 수목원에서 같은 곡은 우리나라에서 나만 할 수 있다. 버릴 곡이 하나도 없었다. ... 음악을 해 본 사람은 알겠지만 팥빙수가 그렇게 만만한 노래가 아니다. 이규호가 곡을 호락호락하게 쓰지 않았다. 어렵게 만들었는데 쉽게 들리는 노래가 멋있는 노래다. 9집은 전곡이 어쿠스틱 모양새가 나온다."[35] 편의상 월간 윤종신의 연말 행보 앨범도 정규 n집으로 표기하기는 하지만, 진정한 의미의 정규 앨범은 아니다.[36] 그러나 2번째 Monthly 앨범(Project 2010 May)의 수록곡인 '본능적으로'가 슈퍼스타K 2에서 강승윤 덕분에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지면서 이문도 남는 프로젝트가 되었다. 이 노래는 윤종신이 표현하길 자신의 음악 인생을 통틀어 유일한 1등곡이자 초대형 히트곡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 기록은 2017년 '좋니'로 보기 좋게 깨졌다![37] 버스커버스커가 슈퍼스타K 3에서 리메이크한 첫번째 Monthly앨범 수록곡 '막걸리나'도 히트했다.[38] 선글라스에 의자까지, 작정하고 꾸미셨다![39] 여권, 시력, 좋니, 끝무렵[40] 이 순서는 그림 순서이고, 실질적으로 '음악노예'라는 별명이 가장 어울리는 사람들은 유희열, 하림, 조정치 정도까지로 봐야 한다. 가수 활동 위주로 하는 사람들이나 윤종신과 함께 일한 지 몇 년 정도 밖에 안 된 다른 사람들은 사실 노예 수준 노가를 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그에 비해 유-하-조 세사람은 그와 함께 적지 않은 기간 일하면서 가수활동만 한 것이 아니라 엄청난 양의 작곡과 편곡을 해 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하림의 경우는 윤종신 관련 음반 편곡의 대다수에 기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유희열은 독립이라도 했지 하림은 윤종신에게 여전히 속해 있다.[41] 이 중 김예림은 미스틱을 떠났다. 이제는 저 자리에 박재정이 들어와야 맞다 카더라...[42] 우리 모두 내면 어딘가에는 그 '찌질한' 자신의 모습이 있기 때문에 윤종신의 작사가 카타르시스를 주는 것이다.[43] 2008년 명랑히어로 두 번 살다에 나온, 당시 예능감 없던 박정현이 한 말이니, 아주 빈말은 아닌 모양...[44] 너에게 간다, 내일 할 일, 거리에서, 나이, 이별택시, 눈물이 주룩주룩, 그대 없이는 못 살아 등. 여기에 최근엔 좋니까지 추가됐다.[45] 출처 추가 바람[46] 물론 조크다. 실제로는 이 레시피대로 하면 망한다. 음과 박자를 고려해서 세심하게 단어를 배치한 것. 그렇게 쉽지 않다.[47] 1994년에 정광태가 발표한 김치 주제가가 있다. 김치 없인 못살아, 정말 못살아.의 그 곡. 또 1980년대 후반에 아기공룡 둘리의 삽입곡으로 나온 라면과 구공탄도 있다.[48] 다만 팥빙수와는 다르게 영계백숙이나 막걸리나, 망고 쉐이크는 레시피를 다루진 않았다.[49] 마지막 순간, Old school, 나이, Birdman 등...[50] 이승환과 비슷한 작업 방식이다. 이승환 역시 음악과를 전공한 게 아니기 때문에(그는 외대 출신이다) 황성제 등과 공동작업을 하고 있다.[51] 임재범의 통증을 작곡한 적이 있다.[52] 정확히 말하면 The Natural Live 앨범에서부터[53] 제대 이후 방황하던 7집의 발성에 비해 오히려 2000년 8집을 기점으로 현재와 같은 창법으로 안정화됐다고 봐야 할 듯.[54] 하림과 함께 부른 '출국' 라이브[55] 라디오 스타 '이승철'편에서 옥타브 대결 비슷하게 했었는데 2옥타브 시를 생목이긴 하지만 올리긴 올렸다. [56] 하지만 주량은 아직도 5병 정도다...[57] 1992년 015B 라이브 앨범, 친구와 연인 후반부 애드립[58] 최고음 3옥 도[59] 항문이라든지 무좀이라든지[60] 하지만 김장훈과 유희열은 이 얘기를 듣고 비웃었다.[61] 물론 2시간 내내 방송에서 예능인 윤종신을 비웃다가 마지막에는 정색하고 어렵고 힘든 길을, 그것도 두 길을 모두 성실하게 묵묵히 걷는 윤종신을 존경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셋은 거의 형제같은 사이로 장난끼 넘치는 디스는 그들의 일상이다. 참고로 유희열이 잠시 미국 여행을 간 사이 윤종신은 자신의 공연에서 "희열씨가 드디어 빚쟁이의 등쌀에 못 이겨 라디오를 버리고 미국으로 도피하셨습니다"라는 드립을 쳤다.[62] 심지어 주제곡까지 불렀다. 2번째로 나온 에피소드에선 언더그라운드 가수의 설정이었는데 나중에 TV에 출연해서 이노래까지 불렀다.[63] 야심만만 시즌2[64] 대신 싸이가 참여한다.[65] 윤종신은 이 프로그램의 DJ가 되기 전에 015B의 멤버들과 출연한 적이 있었는데, 텅빈 거리에서를 2번이나 틀려, 녹음방송이라 그냥 넘어갔지 생방송이었으면 완전 끝장날 뻔한 짓을 한 적이 있다고 한다. 그것 때문에 윤종신은 우리는 하이틴이란 이름만 들어도 치를 떨었다고 했는데, 몇 달 후 DJ로 섭외가 들어왔으니 윤종신의 심정이 어땠을까...(출처는 정석원이 쓴 '공일오비 스토리')[66] 김완선과 윤종신은 동갑이다. 생일은 김완선이 더 빠르고, 데뷔 연도로만 따지면 4년 차이.[67] 그 전부터 서로 외모가 많이 닮았다는 이야기는 네티즌들 사이에서도 있었던 이야기였다.[68] 이때의 윤종신은 예능 늦둥이로 불리던 시절로 2015년 기준 현재처럼 그다지 예능계에 영향력이 있던 사람은 아니었다. 지금이야 두 분야 각각 충분히 인정받고있지만 그땐 아직 음악인 윤종신으로서의 모습이 강했기때문에 낯설어 하는 사람들과 젊은 세대들에겐 알듯말듯한데 예능계에 자주 눈에띄어 가수인지 예능인인지 헷갈려하던 시절이었다.[69] 흔히들 사람들이 착각하는 것이 윤종신은 예능을 꽤 오래전부터 하고 싶어했다. 주변에 가까운 사람들 사이에서의 언급을 보면 줄곧 벼르고 있었던 듯. 음악을 떠나 라디오라든지 시트콤, 활동기간에서의 방송을 보면 그 부분이 두드러져 있는 걸 알 수 있다.[70] 극중 내용: 꼴통 4총사(노영삼 외 3인)가 방학 중 휴가비 마련을 위해 팥빙수 장사 시작 → 윤종신이 매일 사먹으면서 '이 빙수를 먹으면 악상이 떠오른다'고 말하며 이 노래를 부름 → 1주일 뒤 빙수를 먹으면서 배가 아파오는 것을 단순히 장이 나빴던 것으로 의심하다가 그 빙수를 사먹은 종신의 어머니도 똑같이 복통을 호소 → 결국 빙수 제조 공정의 불량(위생얼음도 안 쓰고 청결상태가 영 좋지 못한 손으로 제조)을 눈치채서 빙수 장사를 접게 만들고 끝.[71] 비슷한 케이스로 토이 3집, 5집에서 이승환이 이철민이라는 가명으로 불렀다.[72] 참고로 LG미디어는 1997년 외환 위기 때 사업을 정리했다. 덕분에 015B 6집은 음악 성향이 상당히 실험적으로 변한 것과 맞물려 재발매도 안 되어서 다른 앨범에 비해 현재 구하기 엄청나게 어렵다.(다만 근래에는 2006년 발매된 7집이 더 구하기 힘들어지긴 했지만. 이 앨범은 1만장 한정 판매) 아닌 게 아니라 1980~1990년대에 괜찮은 음악을 내던 음반사와 기획사들이 1997년 외환 위기로 대부분 몰락한 것이 MP3의 범람과 함께 대한민국 음악 시장이 1990년대 말에 급변한 하나의 원인으로 꼽힌다. 예당음향, 동아기획, 대영AV, 서울음반 등도 이 시기에 치명타를 맞으면서 사그라들었고, 그 빈 자리를 채운 것이 기획형 아이돌을 내세운 SM엔터테인먼트, YG엔터테인먼트, JYP엔터테인먼트 등이다. 이외에 서태지 5집, 토이 4집을 낸 삼성뮤직도 음반업계에서 결국 철수했다. (다만 토이 4집은 다른 회사에서 재발매 중이다.)[73] 탁한영혼[74] 아마도 음악왕이란 표현을 변형한 듯. 혹은 강아지가 짖는 소리일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