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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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ited Nations
유엔

파일:un.png [1]

엠블럼

명칭

영어 : United Nations
프랑스어 : Organisation des Nations Unies
스페인어 : Organización de las Naciones Unidas
러시아어 : Организация Объединённых Наций [2]
중국어 : 聯合國[3]/联合国
아랍어 : الأمم المتحدة
한국어 : 유엔/국제 연합 [4]

가입국

193개국

설립일

1945년 10월 24일

본부

미국, 뉴욕

공용어

아랍어, 중국어, 영어, 프랑스어, 러시아어, 스페인어

사무총장

안토니우 구테흐스(포르투갈)
(2017년 1월 1일 ~)

사무부총장

아미나 모하메드(나이지리아)
(2017년 1월 1일 ~)

총회의장

피터 톰슨(피지)
(2016년 9월 13일 ~)

홈페이지 찬가 유엔 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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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입국

미가입국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다. 가운데 눈에 띄는 회색은 서사하라다. 대만은 미가입이나 유엔에서는 대만을 중국 영토로 처리해 대만도 색칠해져 있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450px-The_United_Nations_Building.jpg

본부


1. 간략 소개
1.1. 명칭
2. 역할
2.1. 국제평화 유지2.2. 인도주의적 지원과 인권보호2.3. 세계 인구 및 식량 관리 2.4. 경제개발 지원과 무역,투자 진흥2.5. 문화유산 보존과 자연환경 보호
3. 구성
3.1. 유엔 총회3.2. 안전보장이사회3.3. 경제사회이사회3.4. 유엔 사무국
3.4.1. 유엔 사무총장
3.5. 국제사법재판소3.6. 신탁통치이사회
4. 역사
4.1. 설립 배경4.2. 1942년 유엔 설립 선포4.3. 창립 직전과 초기4.4. 냉전4.5. 냉전 이후
5. 회원국
5.1. 주요 상임이사국5.2. 이전 회원국
5.2.1. 과거 상임이사국5.2.2. 유럽권5.2.3. 중동권5.2.4. 기타권
5.3. 참관국5.4. 유엔 미가입국
6. 공용어7. 유엔 관련기구
7.1. 산하기구7.2. 전문 기구7.3. 협력 기구
8. 현실적인 문제점
8.1. 분담금과 영향력의 관계8.2. 군사적 부분에서의 한계8.3. 비군사적 분야에서의 한계
9. 대중문화 속의 유엔10. 여담



































1. 간략 소개[편집]

It's your world!
바로 당신의 세계입니다!
[5]

유엔(United Nations, 국제 연합)은 국제 협력을 증진하고, 국제 평화를 위해 질서를 유지하는 국제 기구이다. 사실상 모든 국가와 민족을 아우루는 범세계적 기구로써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또한 현재 현존하는 대부분의 국가가 가입되어 있다.[6]. 유엔의 시작은 애초에 제1차 세계대전과 같은 더 큰 전쟁을 막기위해 설립되었지만, 정작 제2차 세계대전을 막지 못한 국제 연맹의 역할을 대신하여 1945년 10월 24일 2차대전 종전 이후에 연합국들을 중심으로 전 보다 더 큰 전쟁을 막고, 안정적인 국제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창립당시 회원국은 총 51개국으로 현재(2017년) 190여개국에 달하는 회원국들과 비교해 봤을 때, 국제 연합이라는 이름과는 다르게 시작은 그리 크지 않았다. 유엔 본부는 뉴욕시 맨하탄에 있으며, 주 사무소는 제네바, 나이로비비엔나에 위치하고 있다. 유엔의 운영 자금은 회원국들의 자발적 기부금으로 운영된다. 이 기부금으로 유엔의 한 해 예산이 편성되며, 그 쓰임은 국제 평화와 안전 유지, 인권 증진, 사회 경제적 개발 육성, 환경 보호, 기근을 비롯한 자연 재해 및 무력 충돌시 인도 주의적 원조 제공 등에 주로 쓰인다. 유엔은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국제적으로도 "하나의 국가"라는 대표성을 띄고있는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조직이다.

국제연합[7]헌장 및 국제사법재판소규정
Charter of the United Nations and Statute of the International Court of Justice


제1조 국제연합의 목적은 다음과 같다.
1. 국제평화와 안전(international peace and security)을 유지하고, 이를 위하여 평화에 대한 위협의 방지·제거 그리고 침략행위 또는 기타 평화의 파괴를 진압하기 위한 유효한 집단적 조치를 취하고 평화의 파괴로 이를 우려가 있는 국제적 분쟁이나 사태의 조정·해결을 평화적 수단에 의하여 또한 정의와 국제법의 원칙에 따라 실현한다.
2. 사람들의 평등권 및 자결의 원칙의 존중에 기초하여 국가간의 우호관계를 발전시키며, 세계평화(universal peace)를 강화하기 위한 기타 적절한 조치를 취한다.
3. 경제적·사회적·문화적 또는 인도적 성격의 국제문제를 해결하고 또한 인종·성별·언어 또는 종교에 따른 차별없이 모든 사람의 인권 및 기본적 자유에 대한 존중을 촉진하고 장려함에 있어 국제적 협력을 달성한다.
4. 이러한 공동의 목적을 달성함에 있어서 각국의 활동을 조화시키는 중심이 된다.

유엔 헌장은 1945년 4월 6일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강화 회의에서 초안을 작성한 후, 1945년 6월 26일 회의가 끝날 때 즈음 서명되었다. 유엔 헌장은 1945년 10월 24일 발효되고, 본격적으로 세계를 대표하는 국제 기구로써의 역할을 시작했다. 유엔의 주 임무는 알다시피 세계평화 유지이다. 특히 유엔의 세계평화 보존 임무는 특히 미국소련간의 냉전 대치 상황 속에서 더욱 더 부각되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유엔은 미국소련 두 양 강대국 사이에서 이해관계를 조절하고, 아찔하고 위험한 국제 위기 상황을 잘 넘김으로써 세계평화를 책임지는 국제기구로써의 역할을 잘 수행했다. 이러한 냉전 흐롬 속에서 1960년대와 1970년대에는 기존 열강들로부터 독립한 신생 아프리카 국가들을 상대로한 경제 및 사회 개발 원조 예산이 급증하였으며, 이에 수반된 분쟁을 조정하기 위한 지출도 급증했다. 냉전 종식 후엔 유엔은 현재까지도 개발도상국 경제 개발 원조, 세계 주요 분쟁 지역 중재 작업 및 평화 유지권 파견등을 중심으로 식량, 문화, 복지, 교육, 환경, 노동, 보건, 금융등 다양한 분야에서 전세계적으로 활약하고 있다.

1.1. 명칭[편집]

한국에는 '유엔(UN)'이라고 알려져 있고 이에 대한 번역명으로 '국제연합'이 쓰이고 있는데 사실 직역은 아니다. 중국어에서는 United Nations를 직역한 연합국[8]이 쓰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 번역명으로 '국제연합'을 사용하는데, 이는 일본이 '국제연합(国際聯合)'이라고 번역한 것을 한국에서 그대로 수입해 썼기 때문이다. 일본이 국제연합으로 번역한 까닭은, 한국의 국제법학자들의 연구나 일본의 메이저신문인 아사히의 기사들[9]이나 일본위키등에 따르면 추축국이었던 일본이 유엔에 가입할 때 추축국이었던 2차대전 당시의 적국연합체인 연합국이란 기구에 가입하는 것을 들어가는 것이 아무래도 꺼림칙한데다 일본인들에게 설득하기 어려운 이유로 신조어를 창조했음을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사정이 비슷했던 독일과 이탈리아조차 그냥 쿨하게 연합국(기구)을 직역한 Vereinte Nationen, Organizzazione delle Nazioni Unite[10]란 표현을 쓰는 걸 보면 유독 일본이 특이한 편에 속한다. 물론 유엔의 공식언어 중 서양권 언어와 다른 서양국가에서도 모두 연합국기구, 혹은 연합국들이며 아시아의 링구아 프랑카이자 유일한 아시아권 유엔 공용어인 중국어에서도 직역인 연합국(联合国)으로 칭한다.[11] 단 한번도 UNITED NATIONS는 국제연합이라고 자신들을 생각한 적이 없다. 즉 상기 아사히 신문의 내용을 요약한 것이 상기 본문의 내용이다.[12][13] 이후 대한민국 외교부에서는 '국제연합'과 '주 국제연합 대표부'를 각각 '유엔'과 '주 유엔대표부'로 변경하였다.

2. 역할[편집]

유엔의 직접적인 창립 배경은 제2차 세계대전과 같은 끔직한 비인간적 사태을 막기 위함이었다. 때문에 창설 초기 유엔의 역할은 단순 국제평화 유지의 임무만 주어졌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세계화가 진행되고, 국제사회의 상호교류가 전보다 증가함에 따라 범인류를 아우르는 세계기구인 유엔의 역할은 국제평화 유지에만 국한되지 않고, 보다 더 다양한 분야에서 역할과 그 영향력이 커지기 시작했다. 처음엔 2차적인 목표로 경제분야에 진출하여 개도국의 경제개발을 지원하고, 이와 관련된 사업을 시작하는 것으로 유엔의 역할 확장을 알렸다. 후 냉전이 끝나고, 자유진영공산진영으로 벽을 치던 상황에서 벽이 허물어 짐에따라 국가들의 상호 협력은 더욱 더 심화되었다. 이에 유엔은 자연스럽게 경제, 군사, 정치분야에서만 국한되지 않고 기후, 인구, 식량, 노동, 교육, 환경등 거의 인류와 관련된 모든 분야를 담당하고 포괄하는 차원으로의 역할을 수행하게 되었다. 현재 유엔은 국제평화 유지외에도 여러 분야에서 세계작지에 고문단을 파견하고 있다. 또 역할이 늘어남에 따라 유엔의 관련 산하기구들이 많이 생겨났고, 유엔에 협력하는 국제기구와 비정부기구들이 많이 등장했다.

2.1. 국제평화 유지[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유엔 평화 유지군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유엔은 제1임무로 국제평화를 유지하는 일을 담당하고 있다. 보통 국제사회에서 분쟁이 발생하면 먼저 이 국제 안보 이슈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를 두고 안전보장이사회이 결의안을 만들고 유엔 총회에 상정한다. 그리고 표결을 거친 후 국제평화를 해치는 국가나 단체, 지역에 결의안의 내용을 집행한다. 국제평화를 유지하는 결의안의 내용으로는 주로 유엔 평화 유지군 파견이 가장 대표적이다. 또는 국제안보에 위협을 가하는 국가에게 경제제재를 가하는 방법도 대표적인 방법 중 하나이다.

두 국가 이상이 이해관계를 두고 전쟁이 일어나게 되면, 제3자인 유엔이 두 국가의 전쟁이 사전에 더 큰 전쟁으로 번지지 않기 위해 군대를 파견하고 이 파견된 평화유지군은 평화를 위해 활동하게 된다. 군대가 직접 전쟁에 국제평화를 해치는 불온 집단과 함께 싸우는 경우도 있고, 그게 아니라면 현상 유지를 위해 국경지대에 완충지역을 설정해 놓고 유엔군이 주둔하는 방식으로 임무를 수행하기도 한다. 유엔 평화 유지군의 제1 핵심목표는 전쟁의 승리나, 영토 차지에 관련된 것이 아닌 "평화 유지"이기 때문에 일단 전쟁을 멈추고, 평화 상태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때문에 해당 국가에 일정 목표를 성취하는 것을 도와주기 위해 작전을 수행하지는 않는다.

경제제재의 경우엔 직접적으로 군사작전을 전개하여 평화유지 활동을 하지는 않지만, 해당 국가에게 간접적인 경제적 타격을 주어 국제사회의 요구에 순응하게 하는 방식이다. 아울러, 국가가 운영되는 원동력 중, 제일 중요한 요소가 바로 “자금”이다. 때문에 이 자금줄을 차단하는 조치를 취함으로써 국제평화를 해치는 활동에 제동을 건다. 유엔군 파견이외에도 자주 쓰이는 방법이다. 하지만 제재안의 내용을 교모하게 피해 제3의 루트로, 제재 대상 국가가 자금을 확보하는 경우가 많이 있기 때문에 이러한 점은 아직 한계점으로 남아있다. 그 외에도 국제재판소를 두고 국가간의 분쟁을 조정하기도 한다

2.2. 인도주의적 지원과 인권보호[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유니세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유엔의 설립배경에는 참혹한 인권 유린 사건인 제2차 세계 대전과 같은 사건을 방지하고자, 국제평화 유지임무와 더불어 인권보호 활동과 인도주의적 지원도 함께 병행하고 있다. 인권과 관련된 사안은 유엔 헌장에도 명시되었는 사안이기 때문에 국제평화 유지 임무와 준하는 급의 의미를 갖는다고 말할 수 있다. 유엔은 인권이 심각한 지역에 “사람이라면 이러한 인권의 현장을 침묵해야하지 않아야 한다.”라는 신념을 가지고 정치적 이해관계와 상관없이 인권이 심각한 지역에 물자지원이나 구호활동, 봉사활동등을 전개한다. 또한 유엔은 유엔 산하에 유니세프와 난민 전담 기구를 설치하고 있다.

단순히 인간의 존엄성에 관련한 “인간답게 살 최소한의 기본 권리”에서의 관점에서 인권보호 활동을 전개하지 않는다. 이것이 정확하게 의미하는 것은 인권의 의미를 더욱 확장하여 양성 평등, 노동 평등과 같은 분야까지도 포괄한다는 것이다. 인권 보호의 범주를 넓게 봄으로써, 인간의 권리를 보호한다는 것이다. 유엔은 실제로 국제노동기구(ILO)와 협력하여 노동 권리 보호를 위한 국제 활동도 전개하고 있으며, 유엔 산하에 유엔 여성기구를 둠으로써 억압받고, 차별받는 여성들의 권리를 보호하는 활동도 하고 있다. 추가로 “인간의 존엄성”과 “인권”이라는 의미는 시대와 사회의 모습에 따라 다양하게 해석되는 변동성을 지니기 때문에, 앞으로의 유엔의 인권보호 활동도 시간이 갈 수록 더 광범위해지고, 다양해질 것으로 보인다.

2.3. 세계 인구 및 식량 관리 [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유엔식량농업기구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유엔은 인류 전체를 아우르는 기구가 된 만큼 전지구적 문제까지 담당하게 되었다. 인구와 식량에 관련된 주 역할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유엔은 현재 지구의 인구는 75억에 달하는데, 이 거대한 인구가 미래에 어떻게 될 것이며, 현재 우리가 인구를 어떻게 조절하고 이에 수반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하는 지를 광범위하게 연구한다. 또한 주요 약소국에서 식량난을 겪고 있기 때문에 각 국가에 식량을 보급하여 식량난을 해소하는 작업을 한다. 또한 식량난으로 빚어지는 영양실조 문제, 빈곤과 같은 부차적인 문제들로부터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을 돕고 있다. 아울러 유엔은 유엔 산하에 인구 기구와 식량 계획등과 같이 이 문제를 전담하는 기구를 설치하여 활동을 전개해오고 있다.

인구와 식량 문제와 관련해서 그 중요성과 의미는 더욱 부각되고 있다. 한 국가에서 인구, 식량의 문제를 고려해 봤을 때는 비교적 수월해 보일 수 있지만 지구로 시야를 확대해 봤을 땐, 상당히 문제가 심각해진다. 전인류를 대표하는 유엔이 “언제까지 거대한 인구를 지구가 버틸 수 있을 지, 그리고 인구가 계속 증가함에 따라 소비되는 식량문제는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인구가 늘어난 만큼의 식량 부양이 가능은 한 것인가, 거대한 인구 앞에서 일어나는 식량 분배, 빈곤, 사회적 불평등과 같은 문제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와 같은 시대적 과제를 안은 것이나 다름없다. 따라서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활동과 역할 또한 매우 중요하다.

2.4. 경제개발 지원과 무역,투자 진흥[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국제통화기금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세계무역기구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세계은행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유엔은 냉전 당시에, 수많은 중재 실패를 겪었기 때문에, 국제평화 유지의 임무에 집중적으로 신경쓸 수 없다고 판단하여 2차적인 목표로 “경제개발 지원과 무역,투자 진흥”이라는 목표를 설정하였다. 경제개발과 경제성장과 같은 경우 산업기반 시설이 전무하거나 자력으로 경제성장을 추진하기에 어려움을 겪는 제 3세계 국가들이나 경제적으로 뒤쳐진 나라들에게 필요한 사업으로 환영을 받았다. 유엔은 유엔개발계획(UNDP)을 설치하여 국제 원조를 통해 해당 국가의 경제 성장을 돕는다. 국제 경제 자문단을 파견하거나, 또 선진국으로 구성된 경제 파견단들이 산업 노하우를 전수해주기도 한다. 경제개발 지원과 더불어, 세계의 경제교류가 증가됨에 따라, 유엔의 무역 및 투자 진흥 관련 사업도 함께 그 중요성이 부각되었다. 유엔은 대표적인 경제 국제기구인 국제통화기금(IMF)와 세계무역기구(WTO), 세계은행 그리고 몇몇 기구들과 협력 관계를 가지고 세계 경제 교역과 투자를 보다 더 활성화 하기 위한 노력을 전개하고 있다.

2.5. 문화유산 보존과 자연환경 보호[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유네스코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세계자연보전연맹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유엔은 유네스코(UNESCO)를 중심으로 세계 각지에 문화유산을 지정하여 보존하고 관리하고 있다. 유네스코의 약자 자체가 “교육, 사회, 문화”를 의미하고 있다.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인간이 접하는 모든 형태의 문화유산을 전담하고 있다. 이는 단순 역사의 유형 문화재가 아닌, 지적유산과 연구 가치가 있는 교육적 문화, 그리고 사회적 유산까지 광범위한 인류 “문화유산”을 의미한다. 인류가 남긴 가치있는 문화유산을 보존하고, 관리함으로써 후대에 되물려 주는 이러한 활동은 역시 인류 발전의 발자취를 계속 기억하고 배운다는 측면에서 의미가 깊다. 문화유산 보존 활동과 더불어 전지구적 문제를 책임지는 유엔답게 자연환경 보호활동도 전개하고 있다. 주로 당장 닥친 지구온난화에 관련된 문제를 비롯하여 산림, 습지, 해양, 토지 훼손 및 오염 문제까지 정말 셀 수 없이 많다. 지구가 계속 이렇게 오염되어 사람이 살 수 없는 지경까지 이르게 될 경우.. 인류의 생존은 보장하기 힘들기 때문에 유엔은 회원국들과 협력하여 여러 협약을 맺고 관련 사항을 이행함으로써 자연환경 보호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환경관련 유엔 협력 기구로 세계자연보전연맹이 있다.

3. 구성[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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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에는 6개의 주요 기관이 존재한다. 기본적으로 유엔 가입국들의 의견을 모아 결의안을 채택하고, 국제 사회에서 주요한 현안을 처리하는 "유엔 총회"가 있다. 두번째는 국제 사회의 안보와 국제 평화를 위협하는 사안에 대해서 심도있게 논의하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있다. 세번째로 국제 사회 및 경제 개발을 촉진시키고, 이와 관련된 분야에 있어서 상호협력 증진을 위한 "유엔 경제사회이사회"가 있다. 네번째로 '유엔'이란 거대한 조직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행정 기구인 "유엔 사무국"도 존재한다. 다섯번째로 두 나라가 갈등을 겪고 있을 때, 국제 법에 의거하여 사법 판결을 내려주는 "유엔 국제사법재판소"가 있다. 마지막으로 해당 국가가 자체적으로 정부를 수립할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하여 해당 국가가 국민들의 치안, 행정, 인권등을 책임 질 수 없다고 판단되는 나라들을 지정하고, 이러한 국가들을 신탁통치하여 관리하는 것을 주 업무로 삼는 "유엔 신탁통치이사회"가 있다. 현재 유엔 사무총장포르투갈 출신의 9대 안토니우 구테흐스이다.

3.1. 유엔 총회[편집]

파일:1280px-UN_General_Assembly_hall.jpg

유엔 총회(General Assembly)는 유엔의 주요 의사결정기구이다. 모든 유엔 회원국으로 구성되며, 매년 정기적으로 회의를 갖지만, 유사시에 비상 회의가 소집 될 때도 있다. 총회는 회원국에서 각 선출된 유엔 대표부들을 중심으로 구성된다. 주로 총회에서 중대한 사안으로 다뤄지는 것은 국제 안보와 관련된 사안, 유엔 사무총장 선출, 가입국 심의, 회원국 제재, 유엔 예산 심의 등이다. 여기서 주요 유엔 대표부들이 정해진 현안에 대하여 연설하며, 표결을 진행한다. 총회에서 채택 대기중인 결의안을 통과시키기 위해선 참석국의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 필요하다. 모든 표결 및 의사결정은 다수결의 원칙을 따르며, 각 회원국들 마다 어느 한 사안에 대하여 하나의 표결권을 가질 수 있다. 유엔 가입국 심의, 유엔 예산 심의, 사무총장 선출, 각 기구의 인사에 관련된 처리 그리고 국제 안보에 관련하여 안전보장이사회에서 논의를 거쳐 올라온 사안을 제외하고는 유엔 총회에서 결정된 주요 결의안들은 해당 국가에게 별다른 구속력을 주지 못한다는 한계가 있다. 이를 테면, "환경 보호"에 관하여 탄소 감축 및 개발 지연에 관한 결의안을 통과시켰다면, 이 사안은 "권고"의 성격을 가질 뿐, 특별한 법적 구속력을 가져 해당 국가에 이 결의안을 강제할 수 없다는 뜻이다. 또 안전보장이사회가 심의중인 국제 안보 이슈에 관한 사안을 제외하고는 유엔이 할 수 있는 모든 범위안에서 결의안을 채택하고, 권고할 수 있다.

3.2. 안전보장이사회[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UNSC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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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 안전보장이사회(The Security Council, UNSC)는 유엔의 기본 임무인 세계평화 유지를 담당하는 제1 핵심 기구로, 국제 질서와 세계 평화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고, 국제 안보 이슈에 관련된 결의안을 심의하고, 채택하는 기구이다. 유엔의 주요 기관들은 회원국들에게 법적 구속력을 갖지 않는 '권고안'만을 제출할 수 있지만,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유엔 헌장에 따라 회원국들이 반드시 이행해야만 하는 구속력있는 결의안 결정 권한을 가지고 있다. 이사회의 결정은 익히 한국에는 "안보리 결의안"이란 이름으로 잘 알려져 있다. 안전보장이사회의 구성은 중화인민공화국, 프랑스, 러시아, 영국, 미국연합국으로 구성된 상임이사국 5개국과 유엔 총회에서 2년 임기로 선출된 비상임이사국 10개국을 포함하여 총 15개국으로 이루어져 있다. 결의안 결정을 위해선 상임이사국 5개국의 만장일치 동의와 비상임이사국 10개국 중 7개국의 찬성이 있어야 안보리 결의안이 통과되어 유엔 총회에서 심의가 가능하다. 또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의장국은 매달 알파벳 순으로 교체된다.

3.3. 경제사회이사회[편집]

파일:1024px-United_Nations_Economic_and_Social_Council.jpg

유엔 경제사회이사회(The Economic and Social Council, ECOSOC)는 국제 경제 및 사회 협력과 개발에 관련한 결의안을 담당하는 기구이다. 경제사회이사회는 총회에서 3년 임기로 선출되며, 회장국은 1년 임기로 선출된다. 주로 선출되는 국가들은 개발도상국이나 지역강국 등이 주로 선출된다. 경제사회이사회의 회의는 매년 7월 정기적으로 개최된다. 경제사회이사회가 하는 일은 경제 개발 지원, 회원국 자문, 권고안 작성등이 있다. 경제사회이사회의 보조기구에는 산림, 원주민 문제 해결, 비정부 기관 관리 등에 관련된 기구들이 산하에 위치하고 있다. 또 비정부기구들에게 해당 국가에게 자문을 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할 수 있다.

3.4. 유엔 사무국[편집]

파일:United_Nations_Headquarters_in_New_York_City,_view_from_Roosevelt_Island.jpg

유엔 사무국(The UN Secretariat)은 유엔의 행정적 업무를 처리하는 기구이다. 사무국은 사무총장을 수반으로 둔다. 유엔의 이사회들의 회의에 필요한 연구 자료와 정보를 제공하며, 관련 시설을 준비한다. 또한 안전보장이사회, 유엔 총회, 경제사회이사회 및 기타 유엔 기구들의 지시에 따라 업무를 수행하는 곳이기도 하다.

3.4.1. 유엔 사무총장[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유엔 사무총장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유엔 사무총장(United Nations Secretary-General)은 유엔 사무국의 사무총장이다. 사무국의 수반, 즉 우리가 익히 알고있는 유엔 사무총장이 바로 그것이다. 명목상으론 유엔의 한 기구의 수반이지만, 사실상 유엔의 대변인이자, 지도자의 역할을 맡고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따라서 이 직책을 "전세계를 관리하는 최고 행정 책임자"라는 이름으로 부르기도 한다. 임기는 5년이며 한 번 더 재선이 가능하다. 고로 총 10년의 임기가 가능하다는 얘기이다.

3.5. 국제사법재판소[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국제사법재판소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파일:International_Court_of_Justice.jpg

국제사법재판소(The International Court of Justice, ICJ)는 유엔의 주요 사법 기관으로, 국제법에 의거하여 주요 국제 분쟁 사안들을 처리하는 역할을 맡는다. 국제사법재판소의 구성은 유엔 총회에서 선출된 9년 임기의 15명의 판사로 구성된다. 또한 모든 재판관은 모두 다른 나라 출신이어야한다. 이는 국제적 분쟁에 있어서 다른 나라의 입김이 작용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안전 장치이다. 한 국가가 국제사법재판권 자리를 독점할 경우 그 판결은 상당히 편파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국제사법재판소의 주요 목적은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주요 국가들의 분쟁을 판결하는 것이다. 하지만 경제사회이사회와 같이 이 국제 판결은 지극히 '권고안'에 그치기 때문에 법적 구속력이 없다. 따라서 두 국가가 분쟁 해결을 위해 국제사법재판소에 회부하여 판결을 받는다고 한들, 국제법에 의거하여 판결된 사안이라고 한들, 꼭 분쟁 당사자 국가들은 이 국제사법재판소의 판결을 따를 필요가 없다. 한편 국제 분쟁을 처리하기 위해 유엔의 기구들에게 자문을 필요로 할때도 있다. 자문 및 관련 정보를 제공받기 위해서는 다른 유엔 기구들에 관련 자료를 요청할 수 있다.

3.6. 신탁통치이사회[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신탁통치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파일:United_Nations_Trusteeship_Council_chamber_in_New_York_City_2.jpg

유엔 신탁통치이사회(The UN Trusteeship Council)는 국제 평화와 안보가 불안정한 국가들을 유엔이 신탁통치하여 관리하기 위해 설립된 기구이다. 이 기구의 본 설립 목적은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주요 독립국들의 관리를 위해 설립되었다. 최근 대부분 신탁통치로 관리를 받던 국가들이 자치 정부를 수립하여 자체적인 국가 운영 능력을 보유하였으며, 독립을 달성하여 주권국가를 수립하였다. 따라서 사실상 신탁통치이사회는 기능을 다하였다고 봐도 무방하다. 마지막 신탁통치이사회의 업무는 1994년 12월 태평양 제도신탁통치 지역이었던 팔라우를 마지막으로 끝이났으며, 현재까지 신탁통치에 관련된 업무는 없다.

4. 역사[편집]

유엔의 설립배경부터 현재까지를 다룬다.

4.1. 설립 배경[편집]

유엔이 창설되기 약 100년전엔 국제적십자위원회와 헤이그 협약과 같은 국가 간의 긴강과 갈등을 조정하기 위한 몇몇 국제 조약기구와 회의가 결성되었다. 그리고 많은 사상자를 낸 제1차 세계대전 종전 직후, 앞서 언급된 몇몇 국제 조약기구와 협약들의 평화 정신을 기초로 국제연맹이 역사상 처음으로 세계를 아우르는 국제기구로 설립되었다. 이 조직은 일부 영토 분쟁 및 평화 유지를 위한 목표로 창설되었다. 그러나 국제연맹은 현재 유엔과는 다르게 주요 강대국들의 참여가 부족하였고, 실질적으로 분쟁을 조절할 만한 힘이 없었다는 것이 큰 한계였다. 강대국과 실질적인 힘의 부재는 곧 국제 질서를 유지하고, 세계를 대표하는 기구로써의 의미를 갖지 못하는 원인이기 때문에, 국제연맹은 사실상 이름만 세계를 대표하는 허수아비나 다름 없었다. 따라서 일본 제국만주 침략중일전쟁 그리고 아돌프 히틀러를 중심으로한 나치 독일의 유럽 대외 팽창에 효과적으로 대처하지 못하였다. 국제연맹은 이러한 침략 행위를 사전에 막지 못하여 인류 역사상 최악의 사건인 제2차 세계대전을 발발시키는 원인을 제공하기에 이르렀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직후엔, 국제 평화를 유지하지 못했다는 공감대와 국제연맹의 부실에 대한 반성과 성찰의 목소리가 커졌다. 이에 주요 승전국들은 실질적으로 국제 평화와 질서를 유지하고, 분쟁과 전쟁을 막을 수 있는 강력한 국제기구의 필요성이 절실해졌다. 이런 배경 속에서 유엔의 설립이 진행되기 시작했다.

4.2. 1942년 유엔 설립 선포[편집]

새로운 국제질서를 책임질 유엔의 위한 가장 초기의 구체적 계획은 1939년 미국 국무부의 기획아래 시작되었다. 1941년 12월 29일 백악관에서 이 유엔의 초기 계획에 대하여 논의하기 위해서 회동을 가졌다. 당시 대통령이었던 프랭클린 루스벨트, 영국 총리 윈스턴 처칠과 그의 보자관과 함께 "유엔 창설 선언문"의 초안을 작성했다. 이 초안에 담겨진 "유엔의 상임이사국 4개국"은 제2차 세계대전 연합국 진영의 영국, 미국, 소련, 중화민국을 지칭하는 것이었다. 추후에 프랑스도 추가되었다.[14] 이 초안 대로 후에 제2차 세계대전연합국들은 상임이사국으로서 절대적인 국제적 힘을 얻을 수 있는 기초가 마련되었다. 이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국제질서를 연합국 중심으로 재편하겠다는 의도가 담겨져있다. 이와 같은 맥락으로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새로운 국제기구의 명칭을 "연합국(United Nation)"이라는 이름으로 정했는데, 이는 곧 "제2차 세계대전연합국 진영"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1942년 미국, 소련, 프랑스, 중화민국의 정상들이 이 초안에 서명함으로써, 유엔의 시작을 알렸다. 1942년에 유엔의 모태가 생긴 것이다.

4.3. 창립 직전과 초기[편집]

유엔은 1944년 연합국 4개국 (소련, 영국, 미국, 중화민국) 대표단들 사이에서 공식화되어 본격적으로 협상되었다. 1945년 3월 1일 추가로 20여개국이 서명하였다. 1945년 4월 25일 샌프란시스코에서 개최된 국제 회의에서는 유엔 헌장 초안 작성에 참여하기 위해 50여개국과 비정부기구가 참석하였다.[15] 헌장 초안을 작성하기 위하여 연합국들을 중심으로 여러 대표단들과 수많은 회동과 논의를 거쳤다. 연합국들은 1945년 9월 2일 일본 제국의 항복을 받아낸 후, 전쟁 전후 처리를 마무리하고 1946년 10월 24일 공식적으로 "프랑스, 중화민국, 소련, 미국, 영국" 주요 5개국과 기타 46개국들이 서명하여 정식으로 국제연맹 이후로 세계를 아우루는 범세계적 기구인 "유엔(United Nation)"이 정식으로 출범하게 되었다. 1949년 1월 6일부터 영국 런던에서 유엔 총회안전보장이사회가 처음으로 개최되었다. 총회에서는 미국 뉴욕에 유엔 본부를 두기로 결정하였으며 1952년 유엔 본부의 시설을 완공하였다. 그외에 제네바, 비엔나나이로비에 유엔 주 사무실을 두고 운영하기로 하였다. 그리고 당시 노르웨이 외교부 장관이었던 "트뤼그베 리(Trygve Lie)"가 초대 유엔 사무총장으로 선출되었다.

4.4. 냉전[편집]

미국소련사이의 대치 상황 속에서 국제 평화가 상당히 위험한 상황이었다.[16] 하지만 유엔의 기본 임무가 세계평화 유지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두 양 초강대국들의 대치 상황이 유엔의 기본 역할 자체를 마비시켰고, 또 세계평화의 당시 가장 큰 위협이었던 냉전 대치 상황엔 정작 개입하지 못하게 하고, 냉전과는 상관없는 분쟁에만 개입할 수 있게 했다. 게다가, 평소엔 냉전 대치 속에서 개입 자체를 허락하지 않다가 필요할 때만 개입을 요청하는 일도 있었다.

대표적으로 미국의 경우가 있는데, 소련공산진영북한미국자유진영한국을 침략하자 1950년 총회에서 미국 한국전쟁 연합국을 승인시킨 전례가 가장 대표적이다. 한국전쟁을 위해 결의안을 가결한 것 외에, 1947년 총회에서는 팔레스타인을 분할하여 이스라엘 국가 건국을 승인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켰고,[17] 1956년에는 제2차 중동전쟁 종전 직후,[18] 이스라엘이집트 사이의 완충을 위해 유엔긴급군(UNEF)를 파견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는데 이것은 순수히 양 강대국이 개입되지 않은 중동 국가들의 문제였기 때문에 문제없이 처리가 가능했다. 하지만 유엔은 소련헝가리를 침공한 것에 대해서는 평화 유지군 파견은 고사하고, 중재를 위한 개입조차도 하지 못했다.[19]

1960년대에, 유엔은 1964년 콩고 민주 공화국의 내전을 매듭짓기 위하여 수십년 동안 콩고에서 평화 유지군을 파견하여 작전을 전개하였다. 이러한 유엔의 노력 속에 당시 사무총장이던 다그 함마르셸드가 반란 중 반란군 지도자를 만나기 위해 콩고로 가던 중 비행기 추락 사고로 사망하였다.[20] 1961년 사무총장이 갑자기 사망하자, 급하게 후임자를 물색하여 우탄트(U Thant)를 취임시켰다. 후에 콩고 내전우탄트가 지휘하는 유엔 작전에 의해 종식될 수 있었다. 1964년 우탄트키프로스에 군사적 위기가 발생하자 키프로스에 유엔 평화 유지군을 배치했다.[21]

우탄트의 임기 동안에 탈식민지화가 전개됨에 따라, 수많은 독립 국가들이 유엔의 회원국이 되었다. 1960년 한 해에만 무려 17개국이 동시에 유엔에 가입하였고, 그 중 16개국은 기존 열강에서 독립한 아프리카 신생 독립국이었다. 1971년 10월 25일에는 미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많은 소련제 3세계 국가들의 지원으로 공산주의 진영의 중화인민공화국상임이사국으로 취임했다.[22] 이 사건은 유엔내에서 미국의 영향력 감소로 해석되었다. 이 시기에 유엔은 극심한 냉전 대치 상황 속에서 수 많은 중재 실패겪었다. 따라서 유엔은 기본 임무인 평화 유지를 넘어 두번째 목표로 개도국 경제 개발 지원과 문화 교류를 설정하였다. 실제로 냉전이 가장 극심했던 1970년대 말까지는 기본 임무를 위한 평화유지 예산보다, 사회 경제적 개발 및 문화 교류에 관련된 예산 규모가 훨씬 더 컸다.

4.5. 냉전 이후[편집]

냉전 이후 유엔은 과거 40년 동안보다 냉전이 끝난 이후 20년 동안 더 많은 평화유지 임무를 수행할 수 있었다. 이 말은 냉전 동안 처리했던 평화유지 임무가 냉전 이후에 처리했던 평화유지 임무보다 더 적었다는 소리이다. 1998년2000년 사이에 채택된 안보리 결의안 수는 두 배 이상 증가했으며, 평화 유지 예산은 무려 10배 이상으로 증가했다. 유엔은 살바도르 남북 전쟁의 종식을 협상하고 나미비아에서 성공적인 평화 임무를 시작했으며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위기 해결 이후 캄보디아에서 민주적 선거를 감독할 수 있었다. 그리고 1991년 유엔은 이라크쿠웨이트 침공을 격퇴시킨 미국 주도 연합군을 승인했다.

1990년 초, 유엔은 소말리아, 보스니아, 르완다 등 여러 국가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심각한 위기에 직면했다. 먼저 소말리아에서의 유엔 대표단은 모가디슈 전투에서 사상자가 생기자, 미국이 철수 한 후에 유엔의 평화유지 활동은 실패한 것으로 국제사회에서 인식되었다. 또 보스니아에서 유엔이 임무를 수행하기도 했다. 또 1994년 르완다 대량 학살에 대해서 유엔이 개입하지 않아 수많은 희생을 치룰 수 밖에 없었다. 한편 이시기에 유엔의 국제 개입의 형태는 보다 다양한 형태로 나타났다. 1991년부터 2002년까지의 시에라리온 남북 전쟁에서 유엔의 임무는 영국 왕실 해병대에 의해 보완되었고, 2001년 아프가니스칸 침공은 나토에 의해서 감독되었다. 즉 기존 유엔의 군대가 직접 파병을 나가 임무를 수행하는 것이 아닌 다른 다국적 군사조직과 강대국과의 협력 작전으로 나타났던 것이다. 2000년대 초기, 2003년미국은 유엔의 안전보장이사회 승인을 받지 않은 채로 이라크를 침공했다.

새로운 천년 2000년의 시작과 함께 밀레니엄 정상 회의에선 21세기 유엔의 역할에 대하여 논의했다. 이 회의는 역사상 가장 많은 세계 지도자가 모인 모임으로 남아있다. 이 정상 회의에선 빈곤 감소, 양성 평등 및 공공 분야와 같은 분야에서 일정 목표를 도달하겠다는 내용의 결의안이 모든 회원국들의 만장일치로 채택되었다. 2005년 세계 정상 회의에선 유엔이 개발, 평화유지, 인권 및 세계 안보를 증진시키는 데 중점을 두고 있음을 재확인 하였다. 반기문 사무총장 임기 중엔 수단의 콩고의 갈등에 개입하여 유엔 평화 유지군을 파견하였고 결국엔, 기존 분쟁을 겪던 수단을 남수단으로 분리하는 것으로 매듭지었다. 그리고 화학무기 사찰단을 시리아 남북 전쟁에 파견했다. 그리고 비교적 최근인 2010년에는 아이티 대지진에서 유엔 직원이 사망하였다. 2013년 스리랑카 남북 전쟁의 마지막 전투에서 유엔의 평화유지 활동이 전체적으로 실패했다는 결론을 내렸다. 2015년엔 앞서 언급된 밀레니엄 정상회의에서의 공약을 실천하기 시작하였다.

유엔은 전 지구적 문제를 해결하는 것 외에도 유엔이라는 조직의 이름으로 시민 사회와 더 많은 관계를 맺고 상임이사국의 입김대로 부여되는 유엔의 민주적 정당성을 자체적으로 개선하려고 노력했다. 이러한 투명성 제고를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2016년 유엔은 처음으로 사무총장을 뽑기 위해서 후보자들 간에 공개 토론을 실시하였다. 2017년 1월 1일 유엔 난민 고등 판무관직을 맡았던 포르투갈의 외교관 안토니우 구테흐스가 제 9대 사무총장이 되었다. 구테흐스는 갈등을 방지하기 위하여 효과적인 평화유지 노력에 초점을 맞추고 국제 사회의 필요에 맞춰 빠르고, 다양한 대응을 할 수 있도록 유엔 조직 자체를 간소화하는 등, 그 외에도 몇가지 목표를 설정했다.

5. 회원국[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국가/목록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파일:UN_Member_Countries_World.svg.png

창립 회원국은 밝은 파란색으로 표시, 동남아시아에 다수 색칠되어있는 초록색은 1945년부터 1959년 사이에 가입한 국가를 표시한 것이다. 아프리카 대륙에 다수 색칠되어 있는 밝은 초록색 같은 경우엔 탈식민지화가 진행되던 1960년부터 1989년에 가입한 국가들을 표시한 것이다. 대한민국에 표시된 어두운 초록색은 1989년 이후, 냉전 이후의 시기에 가입한 국가이다. 그리고 노란색의 경우엔 비회원국이나 옵저버 국가들을 표시한 것이다. 회원국 가입 추세를 요약하면, 주로 제2차 세계대전 승전국과 그의 동맹국들이 창립 회원국이었으며, 그 뒤를 이어 1945년 이후엔 주로 동남아시아 주요국가들이 가입하였다. 그리고 1960년대부터 1970년대엔 주로 열강들로부터 독립한 다수 아프리카 국가들이 가입했으며, 아시아태평양 제도의 국가들도 가입하였다. 그리고 1989년 이후 탈냉전 시기엔 남북한이 함께 동시 가입하였다. 그리고 6년전인 2011년 남수단이 가입하였다. 현재 2017년 10월 기준 193개국이 가입한 상태이며, 거의 모든 국가들이 가입한 상태이다. 이 모든 유엔 가입국들은 유엔 헌장에 명시된 사항들을 준수해야 하며, 유엔 총회의 영향을 받도록 되어있다. 평화를 지향해야하며, 전쟁을 비롯한 침략적 행위는 자제해야한다. 특히 안보리 결의안은 반드시 준수해야하는 의무를 가지고 있다.

5.1. 주요 상임이사국[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상임이사국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800px-P5countries.png

순번

국명

2017년 GDP 규모($)

2017년 국방비 지출 규모($)

기축 통화 여부

2017년 핵무기 전력 규모

국제 공용어 여부

1

미국

19조 4,171억 $ (세계 1위)

6,112억 $ (세계 1위)

해당사항 임 (달러화)

약 7700기 (세계 2위)

영어

2

중국

11조 7,953억 $ (세계 2위)

2,157억 $ (세계 2위)

해당사항 임 (위안화)

약 250기 (세계 4위)

중국어

3

영국

2조 4,968억 $ (세계 5위)

485억 $ (세계 7위)

해당사항 임 (파운드화)

약 225기 (세계 5위)

영어

4

프랑스

2조 4,204억 $ (세계 7위)

557억 $ (세계 6위)

해당사항 임 (유로화)

약 300기 (세계 3위)

프랑스어

5

러시아

1조 5,607억 $ (세계 11위)

692억 $ (세계 3위)

해당사항 아님

약 8500기 (세계 1위)

러시아어


핵무기 전력 규모 출처
국방비 지출 규모 출처

유엔을 실실적으로 쥐고 흔들 수 있는 국가들이다. 이 주요 5개국 상임이사국중화인민공화국, 미국, 프랑스, 영국, 러시아로 이루어져 있다. 이 5개국들은 전 지구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강대국이며, 이들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군사 면에서 다른 국가들을 압도한다. 본래 정식 명칭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이다. 안전보장이사회의 결의안에 대해서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집단이며, 유엔이 어디로, 어떻게 국제 분쟁에 개입해야하는 지를 결정할 수 있어서 실질적으로 유엔의 주인이나 다름없다. 한편, 이 상임이사국들의 입김에 따라 유엔이 움직이는 일이 실제로 많으며, 종종 재기능을 못할 때도 있다. 이에 유엔은 국제 여론으로부터 "유엔은 단지 강대국들의 이익기구이며, 허수아비에 지나지 않는다"라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5.2. 이전 회원국[편집]

이전 회원국이었던 국가들은 과거 상임이사국이었던 중화민국, 소련이 있다. 유럽에는 체코슬로바키아, 유고슬라비아, 동독이 있다. 중동에서는 아랍 연합 공화국, 예멘남예멘이 있었다. 그리고 기타로는 말라야 연방 및 탕가니카잔지바르등이 존재했었다. 이전 회원국들은 영향력 감소로 상임이사국의 자리를 내주는 형식으로 이전 회원국이 되었고, 나머지는 흡수통합, 분리독립, 통합의 형식의 국가의 형태가 바뀜으로써 이전 회원국으로 남아있는 경우의 사례들이다.

5.2.1. 과거 상임이사국[편집]

첫째로 현재 대만, 타이완으로 잘 알려져 있는 과거의 중화민국제2차 세계대전연합국 진영의 한 축으로써,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5개국 중 하나였다. 제2차 세계대전의 승리로 중화민국1945년 창립 당시 유엔에 상임이사국 자격으로 가입했다. 이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중일전쟁을 이유로 국공합작으로 잠시나마 길을 같이했던 국민당공산당은 다시 중국 본토를 놓고 다시 국공내전에 돌입했다. 그리고 1949년 중국 공산당측이 승리함으로써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되고, 기존 중국 본토의 주인이었던 중화민국은 대만 섬으로 추방되면서 세력이 급속도록 작아지게된다. 이 시기에 중화민국중화인민공화국이 주장하는 하나의 중국의 원칙에 의거하여, 유엔도 중국의 대표가 두 나라인 것은 허용하지 않았다. 때문에 당시 중국의 대표는 "중화인민공화국"이 아닌, "중화민국"이었다.

하지만 국제적으로 중화인민공화국의 입지는 더 커져만 가고, 기존 중국의 주인이었던 중화민국의 입지는 "합법적인 오직 하나의 중국 대표"라는 의미에서 다소 애매한 위치에 서있게 되었다. 이는 유엔이 중국 대표 문제를 다룰 때에도 문제가 되기 시작하였고, 힘의 논리에 의해 국제사회의 여론도 기울기 시작했다. 또한 냉전이 심화되던 상황인 만큼 소련의 입장에선 공산진영중화인민공화국중화민국을 대신하여 상임이사국의 자리를 꿰찰 경우 자유진영미국의 영향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면 나쁠 것이 전혀 없었다. 또한 이런 소련의 국제적 계획을 일종의 힘의 균형을 바라는 제3 세계 국가들도 지지하는 양상을 보였다. 이에 반대로 자유진영의 맹주였던 미국은 당연히 자유진영중화민국을 지지하였다. 또 초기에 소련미국, 그리고 당사자(중화민국)를 제외한 두 개의 국가도 미국의 뜻을 지지하였다.

결국 1971년 동유럽 공산국가 알바니아를 중심으로 처음으로, "중국 대표를 중화인민공화국으로 교체하자"라는 안건이 제출되었다. 역시 미국중화민국을 절대지지하였다. 하지만 아무리 초강대국, 세계 패권국이라고 한들 국제 여론 자체를 뒤집고 맘대로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미국중화민국을 보호하는 쪽으로 최대한 심혈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처음엔, 미국의 주도로 "중화민국의 대표 지위를 보호를 담은 절충안"을 유엔 총회에 상정했지만 거부되었다. 설상가상으로 미국자유진영의 최대 파트너 국가인 영국프랑스중화인민공화국의 중국 대표 지위를 승계하는 쪽으로 기울기 시작했으며 나중에는 중화인민공화국을 지지하게 되었다. 여론은 더욱 더 기울기 시작했으며, 결국엔 중화인민공화국중화민국상임이사국 자리를 승계하게 되었다. 이런 중대한 유엔 결의안에 의하여 중화민국은 더 이상 "국가" 자격을 갖지 못하게 되었고, 중화인민공화국의 "일부"로 간주되어 "중화 타이베이"로 취급되는 되는 운명을 맞게 되었다. 이에 반발한 중화민국은 유엔을 탈퇴하게 된다.

둘째로 소련이 있다. 소련이 이전 회원국이 된 가장 직집적인 원인은 "연방의 해체"때문이다. 당시 소련의 마지막 서기장이었던 고르바초프가 취임하면서 글라스노스트, 페레스트로이카를 추친하게 된다. 이는 지금까지 소련이 추진해왔던 폐쇠적인 정책과 상당히 대비되는 것인데, 이는 소련에서의 경제 개방과 표현의 자유 실현, 각 동맹국들에 대한 내정간섭 중지를 추친하는 것이었다. 소련이 지금까지 추친해왔던 폐쇠적인 정책을 철회함에 따라 소련의 지원을 받던 공산주의 국가들은 지금까지 숨겨왔던 자유를 향한 국민들의 열망으로 점차 흔들리기 시작하였으며, 결국엔 이런 자유쥬의 혁명의 물결로 각 소련 동맹국들의 사회주의 정권이 붕괴하기에 이른다. 원래 소련의 동맹국들의 정권이 위기에 처해있다고 판명될 시에, 공산진영의 보호 차원에서 소련이 직접적인 개입을 행사 해왔다. 하지만 소련이 개방, 자유정책을 실행함에 따라 더이상 그런 개입은 없어졌기에 소련에게 정치적으로 많은 의존을 해왔던 공산주의 동맹국들이 무너지는 것은 시간 문제였던 것이다.

소련의 자유정책에 의하여 제2 세계가 상당히 불안정 해졌다. 제2 세계의 리더가 자유정책을 핀다는 것 자체가 제1 세계와 뜻을 같이한다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는 곧 지구상 모든 공산진영의 붕괴로 이어지기 시작했다. 다시 말해 소련의 해체를 의미하기도 했다. 소련 해체의 징조는 기존 소련의 방향성을 역행하는 고르바초프의 정책에 항의하는 보수파들이 반란으로 나타났다. 보수파들의 반란으로 초강대국 소련마저 상당히 불안정하게 되었고, 고르바초프는 일시적으로 실각되었다. 보수파들의 쿠데타로 가뜩이나 불안정한 소련의 재조직 가능성 마저 무너뜨려 소련의 존재 자체를 보장할 수 없는 돌아올 수 없는 길을 건너버렸다. 이런 보수파들의 내전이 진압되고, 혼란스러워진 전후 상황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국민적 영웅으로 떠오른 보리스 옐친은 현 상황을 가만하여 소련의 재조직이라는 길을 버리고, 자본주의 체제로의 전환 그리고 최종적으로 "소련의 해체"를 결정하고, 소련을 직접적으로 계승하는 "러시아 공화국"을 선포하기에 이른다. 따라서 소련이 해체되었고, 러시아 이외에 연방으로 소련을 구성하고 있던 여러 국가들도 독립을 맞이한다. 유엔의 상임이사국의 변동 또한 불가피하였다. 따라서 유엔 총회에서는 소련을 전신으로 하고 있는 러시아에게 상임이사국 자리를 승계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5.2.2. 유럽권[편집]

첫째로 동독이 있다. 독일 연방 공화국 (서독)과 독일 민주 공화국 (동독)은 유엔에 1973년 9월 13일에 가입했다. 하지만 소련으로부터 시작된 공산진영의 균열은 동독까지 그 영향이 미쳤다. 따라서 베를린 장벽이 붕괴됨과 동시에 동독은 자연스럽게 서독에 흡수 통일이 되었다. 따라서 독일 민주 공화국의 영토는 독일 연방 공화국의 일부가 되어 오늘날의 독일이 되었다. 결과적으로, 독일 연방 공화국은 유엔 회원국으로 남아 있지만, 동독독일 연방 공화국에 흡수 통일 됨으로써 더 이상 유엔 회원국으로써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둘째로 유고슬로비아가 있다. 이후 추가예정

셋째로 체코슬로바키아가 있다. 이후 추가예정

5.2.3. 중동권[편집]

추가 예정

5.2.4. 기타권[편집]

추가 예정

5.3. 참관국[편집]

아래는 유엔의 참관국이다. 즉 옵저버.. 유엔에 등록은 되어 있으나 표결권이 없다.

국가명(가나다순)

수도

소속지역

제1공용어

통화

정치형태

대한수교현황

바티칸 시국(Vatican City)

바티칸

유럽

라틴어

EUR

군주제(교황)

남 1963, 북 미수교

팔레스타인(Palestine)

라말라

아시아

아랍어

JOD

자치정부

남 미승인, 북 1966

5.4. 유엔 미가입국[편집]

아래는 소수의 국가만 인정한 미승인국이다.

국가명(가나다순)

수도

소속지역

제1공용어

통화

정치형태

남북승인현황

아르차흐 공화국(Artsakh)

스테파나케르트

아시아

아르메니아어

AMD

공화제

남북 미승인

남오세티야(South Ossetia)

츠힌발리

아시아

오세트어

AMD

공화제

남북 미승인

북키프로스(Northern Cyprus)

니코시아

유럽

터키어

TRY

공화제

남북 미승인

서사하라(Western Sahara)

티파리티

아프리카

아랍어

MAD

공화제

북한만 승인

소말릴란드(Somaliland)

하르게이사

아프리카

소말리어, 아랍어

SLSH

공화제

남북 미승인

압하스(Abkhazia)

수후미

아시아

압하스어

RUB

공화제

남북 미승인

중화민국(Republic of China)

타이베이

아시아

중국어

TWD

공화제

남북 미승인

코소보(Kosovo)

프리슈티나

유럽

알바니아어

EUR

공화제

남한만 승인

트란스니스트리아(Transnistria)

티라스폴

유럽

몰도바어, 러시아어

PRB

공화제

남북 미승인

6. 공용어[편집]


유엔의 공식 언어는 위의 6개다. 이 언어들의 기본적인 공통점은 대개 상임이사국들의 언어이거나 전세계에서 가장 폭넓게 쓰이는 언어라는 것인데 이는 인구 기준이 아니다.[23] UN의 모든 공식 문서들은 이 6개의 언어로 번역된다. 가장 많이 쓰이는 언어는 영어와 프랑스어이다. 영어야 영국과 미국 두 상임이사국의 언어이자 두말할 필요가 없는 국제공용어이고 유엔의 모든 공식 회의는 전부 영어로 진행된다. 또 영어만큼 크지는 않아도 유엔에서 프랑스어의 영향력은 막강하다[24]. 프랑스어도 상임 이사국 중 하나인 프랑스가 쓰고, 영어와 더불어 세계 외교가의 표준 언어다. 프랑스가 프랑스어를 못한다고 반기문 총장을 깔 정도[25].

그 다음으로 많이 사용되는 게 스페인어인데, 스페인중남미 국가들이 자주 쓰며 모국어로 쓰는 인구도 5억 명 이상으로 중국어에 이어 세계에서 두번째로 많다. 아랍어, 중국어, 러시아어는 공용어로 지정은 되어 있지만 잘 쓰지 않는다. 중국은 유엔 공식 석상에서 중국어로 발표할 때가 있는데 이는 그 외교관이 영어나 프랑스어를 못해서가 절대 아니고 일부러 쓰는 것이다. 중국어 또한 공식 언어 중 하나이므로 써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일부러 많이 사용하는 것을 보면 영향력 확대를 노린다는 분석이 많다.

7. 유엔 관련기구[편집]

유엔에 직접적인 지배를 받는 산하기구와, 유엔의 간섭은 덜 받으면서 전문적인 분야를 전담하고 있는 전문기구가 있다. 마지막으로 완전히 독립된 기구이지만 유엔과 상호협력 관계에 있는 기구도 존재한다. 다음은 유엔의 관련기구들을 나열한 것이다. 시간이 지나 추가되거나 없어지는 산하기구들도 있을 수 있기 때문에 분류에 변동이 있을 수 있으니 혹여나 자료를 사용할 때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사용하기를 바람.

7.1. 산하기구[편집]

  • 세계식량계획(WFP)

  • 유엔환경계획 (UNEP)

  • 유엔인간정주위원회 (HABITAT)

  • 유엔마약통제계획 (UNDCP)

  • 유엔마약통제및범죄예방사무소 (ODCCP)

  • 구유고국제형사재판소 (ICTY)

  • 르완다국제형사재판소 (ICTR)

  • 유엔인구기금 (UNEPA)

  • 유엔대학(UNU)

  • 국제공무원위원회 (ICSC)

  • 국제해양법재판소 (ITLOS)

  • 유엔사막화방지협약사무국 (UNCCD)

  • 유엔무역개발회의 (UNCTAD)

  • 유엔합동감사단 (JUD)

  • 유엔아동기금 (UNICEF)

  • 유엔개발계획 (UNDP)

  • 유엔팔레스타인난민구호사업기구 (UNRWA)

  • 기후변화에관한유엔기본협약(UNFCCC)

  • 유엔시스템대학(UNSSC)

  • 유엔직원합동연금기금 (UNSSC)

  • 유엔인간주거계획 (UN-Habit)

  • 유엔여성기구 (UN Women)

  • 유엔인구기금(UNFPA)

  • 유엔난민기구 (UNHCR)

  • 유엔에이즈합동계획 (UNAIDS)

  • 유엔연구사업소 (UNOPS)

  • 유엔재해경감국제전략 (UNISDR)

7.2. 전문 기구[편집]

  • 유엔식량농업기구 (FAO)

  • 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 (UNESCO)

  • 국제민간항공기구 (ICAO)

  • 국제통화기금 (IMF)

  • 국제노동기구 (lLO)

  • 세계지적재산권기구 (WIPO)

  • 세계보건기구 (WHO)

  • 유엔공업개발기구 (UNIDO)

  • 국제농업개발기금 (IFAD)

  • 국제해사기구 (IMO)

  • 세계기상기구 (MWO)

  • 국제전기통신연합 (ITU)

  • 만국우편연합 (UPU)

  • 세계은행 (World Bank)

  • 세계관광기구(UNWTO)

7.3. 협력 기구[편집]

  • 세계무역기구 (WTO)

  • 국제원자력기구 (IAEA)

  • 포괄적 핵실험 금지조약기구 (CTBTO)

  • 화학무기금지기구 (OPCW)

  • 국제형사재판소 (ICC)

  • 국제무역센터 (ICT)

  • 세계자연보전연맹 (IUCN)

8. 현실적인 문제점[편집]

우리 연합국 국민들은 우리 일생중에 이나 말할 수 없는 슬픔을 인류에 가져온 전쟁의 불행에서 다음 세대를 구하고, 기본적 인권, 인간의 존엄 및 가치, 남녀 및 대소 각국의 평등권에 대한 신념을 재확인하며, 정의와 조약 및 기타 국제법의 연원으로부터 발생하는 의무에 대한 존중이 계속 유지될 수 있는 조건을 확립하며, 더 많은 자유속에서 사회적 진보와 생활수준의 향상을 촉진할 것을 결의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목적을 위하여 관용을 실천하고 선량한 이웃으로서 상호간 평화롭게 같이 생활하며, 국제평화와 안전을 유지하기 위하여 우리들의 힘을 합하며, 공동이익을 위한 경우 이외에는 무력을 사용하지 아니한다는 것을, 원칙의 수락과 방법의 설정에 의하여, 보장하고, 모든 국민의 경제적 및 사회적 발전을 촉진하기 위하여 국제기관을 이용한다는 것을 결의하면서,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우리의 노력을 결집할 것을 결정하였다. 따라서, 우리 각자의 정부는, 샌프란시스코에 모인, 유효하고 타당한 것으로 인정된 전권위임장을 제시한 대표를 통하여, 이 유엔헌장에 동의하고, 유엔이라는 국제기구를 이에 설립한다.
ㅡ UN 헌장 전문

“우리는 인류 역사상 어느 때보다 운명 공동체가 되었다. 그 운명에 함께 맞서야만 운명을 지배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게 유엔의 존재 이유다.”
ㅡ 코피 아난, 7대 사무총장

“유엔은 인류를 천국으로 이끌기 위해서가 아니라, 지옥에서 구출하기 위해 존재한다.”
ㅡ 다그 함마르셸드

“유엔은 중립 기구가 아니라 공정한 기구다.”[26]
반기문, 8대 사무총장

“유엔은 미국의 개다.”
체 게바라

사담 후세인의 공포 정치가 끝나간다. 그는 곧 사라질 것이지만 외롭지는 않을 것이다. 어느 정도는 아이러니하지만 유엔을 붙잡고 같이 사라지게 될 테니까.”
(“Saddam Hussein's reign of terror is about to end. He will go quickly, but not alone: in a parting irony he will take the United Nations down with him.”)[27]
ㅡ 리처드 펄[28]


제2차 세계대전의 피해와 충격은 세계가 진정한 평화를 가질 수 있는 세계규모 기관을 만들게 했다. 유명무실한 기관이었던 국제연맹과는 다르게 유엔 평화 유지군(#)이라는 이름하에 군대를 끌고 다니며 세계 분쟁에 개입한다. 예상대로라면 유엔은 세계 평화에 크나큰 기여를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사실 유엔의 주요 권력은 유엔안전보장이사회(UNSC)의 5개 상임 이사국(미국, 영국, 프랑스, 러시아, 중국)에 집중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만 애초에 국제 사회의 유일한 능동적 주체인 강대국들을 기반도 자금도 몽땅 바로 그 강대국에 의지하는 국제기구 따위로 제지할 수 있을 리 없었다.

  • 유엔 창설 직후부터 소련중국 문제로 총회 참석을 보이콧 해대면서 시작부터 유엔의 체면을 마구마구 구겨준다. 근데 소련이 이렇게 열심히 보이콧을 해준 덕분에 1950년 6월 26일 유엔 안보리에서 유엔군의 한반도 파병안이 통과되었다. 다만 통과 안 됐다 하더라도 미군과 몇 나라 군대는 유엔과 상관없이 파병했을 것이다. [29]

8.1. 분담금과 영향력의 관계[편집]

2015년 기준 유엔 분담금

순위

나라

분담금(미국 달러)

분담금(원화)

비율

1위

미국

$654,778,938

₩747,757,550,000

22.0%

2위

일본

$322,419,102

₩368,202,610,000

10.83%

3위

독일

$212,535,291

₩242,715,300,000

7.14%

4위

프랑스

$166,462,664

₩190,100,360,000

5.59%

5위

영국

$ 154,140,914

₩176,028,920,000

5.18%

6위

중국

$153,218,271

₩174,975,270,000

5.15%

7위

이탈리아

$132,384,396

₩151,182,980,000

4.45%

8위

캐나다

$88,811,834

₩101,423,110,000

2.98%

9위

스페인

$88,484,445

₩101,049,240,000

2.97%

10위

브라질

$87,323,700

₩99,723,670,000

2.93%

11위

대한민국

$59,346,782

₩67,774,030,000

1.99%


미국의 가장 강한 힘은 역시 . 그래서 유엔총회나 기타 의사결정기구에서는 미국이 반대하는 일은 재정상의 문제로 실현되기 대단히 어렵다. 미국이 돈을 안 내버리기 때문. 200여개 국가가 가입되어 있는데 미국 혼자서 부담금 22%[30]를 내고있다. 2위로는 상임이사국 자리를 노리고 있는 일본으로 11%.[31] 중국은 5%, 한국은 2%[32]를 내고 있다.

한편, 유엔 기부액만큼은 미국이 전세계 1위다. 유니세프 같은 기구는 전액 기부금으로만으로 운영되니 미국이 없으면 사단난다. 이런 상황이 벌어지는게 유엔총회에서 의결하는 문제는 전부 의무분담금에서 예산이 책정되기 때문에 수틀리면 분담금을 안 내 버려도 되지만, 그렇다고 굶어죽는 어린애들을 보고 모르쇠 할 수는 없어서 분담금으로 낼 돈을 기부금으로 내버리는 것.[33] 참고로 대한민국의 유엔 기부금은 점점 증가하는 추세.[34]

분담금이 곧 그 나라의 유엔 내 영향력과 직결되기 때문에 국가간에 분담금을 두고서도 국가간에 신경전이 벌어진다. 중국은 자국의 경제규모가 세계 2위인만큼 분담금을 더 내겠다는 입장이지만 중국의 영향력 확대를 경계하는 미국 등의 견제로 쉽지 않다. 일본도 자국의 영항력 축소를 우려해 분담금을 2번째로 많이 내는 나라 지위를 포기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래서 국제연합이 지금의 미국과 같이 강대국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일을 막기 위해 전체 예산 (2012~2013년 2년간 55억 달러)의 22%[35] 이상을 한 나라가 지불할 수 없도록 정하고 있고 미국은 22%를 지불하고 있다.

예산의 최소 0.001%는 아무리 규모가 작은 후진국이라도 지불해야 한다. 참고로 한국의 유엔 예산 지불액은 총액의 약 2%. 다만 국제관계가 전쟁만 있는 것이 아니고, 무역분쟁이나 환경문제 등 사람이 살아가는 데는 전쟁 말고도 할 일이 많은데 이 방면에서의 영향력은 설립 당시보다 크게 늘어났다. 범인류를 아우를 수 있는 국제기관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유엔이 유일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현재는 설립 목적인 전쟁방지와 평화유지보다는 포괄적인 국제문제의 조정 기구에 가까운 현실이다. 여기엔 심지어 학술회의 등 인문 협력까지 포함되어 영역이 매우 넓다.

또한 아무리 분담금을 많이 내는 강대국이라고 해도 힘의 논리로 군사 작전을 전개하고 싶어도 의외로 유엔을 완전히 무시하기도 힘든 게 유엔의 지지를 얻느냐 아니냐에 따라 국제여론이 심각하게 좌지우지 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UN결의안이 전쟁의 정당성을 부여하는 역할만큼은 무시할 수 없다. 간단한 예로 유엔 안보리의 승인을 받은 걸프 전쟁의 경우 반미여론이 거의 없었지만 유엔의 지지를 받지 못한 이라크 전쟁의 경우 전세계적으로 엄청난 어그로를 끌었다.[36]

때문에 분담금을 많이내는 미국 등 강대국이라 해도 어떻게든 유엔의 승인을 받기 위해 애쓰는 편이다.[37] 그 때문인지 미국과 유럽국가들도 리비아 사태에서는 얌전히 유엔의 승인을 받았고 안보리 결의안 내용대로 지상군 파병을 하지 않고 있다. UN결의안이 있었기 때문인지 전쟁으로 인한 반미감정이나 반유럽감정은 두드러지게 나타나지 않고 있다. 이스라엘도 대표적으로 유엔 결의를 무시하는 나라인데 덕분에 이스라엘에 대한 국제여론은 대단히 나쁜 편이다. 하지만 남오세티아 전쟁에서 보듯 서방 국가들의 여론은 크게 좌지우지하는 데 반해 러시아중국처럼 언론이 통제되고 정치적으로도 독재에 가까운 국가들은 딱히 유엔의 승인 여부에 여론이 흔들리지 않는 듯 하다.

8.2. 군사적 부분에서의 한계[편집]

당연히 자체적 물리력 보유도 가드가 걸려있다. 아니, 가드 레벨이 아니라 진짜 유엔 휘하 군대는 하나도 없다. 다국적군이라는 단어는 유엔을 위해 만들어진 단어라고 해도 된다. UN 소속의 군대는 타국군에서 차출한 것이다. 이런 점에선 나토군도 마찬가지 아니겠냐 싶겠지만 나토군은 한미연합군사령부처럼 상설부대인데 비해 유엔 평화 유지군은 그냥 그때그때 필요하면 피스키퍼로 차출되는 비상설부대이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불과 5년만에 발발한 한국전쟁만큼은 설립 이후 유엔의 전쟁개입 테스트 겸해서 유엔군을 조직해 유엔의 깃발 아래 참전했으며[38], 지휘권은 유엔군 총사령관인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에게 있었다. 하지만 실질적인 영향력은 미군에게 있었다.[39] 그리고 3년간의 전쟁 끝에 휴전을 하게 되자 실질적으로 유엔군이 전쟁에 참가해 봐야 그리 효과가 없다는 걸 깨닫게 되고 덕분에 유엔은 유엔군은 평화 목적으로만 파견 하고 제3차 세계대전이 일어날만한 전쟁이 아니면 참전 안 해! 상태가 되었다.[40] 유엔 평화 유지군의 전투력이 그렇게 강하지 않은 것은 평화유지군 자체가 강대국의 주력군이 아니라 어중간하게 가난한 나라들이 파견보조금을 탈 겸 해서 파견하는 병력이 주가 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평화유지군에서 다수 병력을 차지하는 나라들을 보면 일반적으로 알려진 군사강국들이 아니라 그보다 훨씬 아랫급에 있는 국가들이 대다수이다. 사실 평화 유지군이 소집될 때 상임이사국은 못 끼도록 정해져 있다. 그래야 평화 유지군이 상임이사국의 입김에서 자유로울 수 있기 때문이다.

강대국이 아닌 약소국의 분쟁에 대해서도 제대로 평화유지를 하는 곳이 있는 반면 전혀 사태해결을 하지 못하고 쩔쩔 매는 곳도 있다. 대체적으로 해당국가의 무장세력들이 독한 맘 먹고 대대적으로 밀어붙이면 비록 장비는 뛰어나지만 수적으로는 절대적으로 열세인 평화유지군은 제대로 기를 펴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보스니아 내전 당시 세르비아에 인종청소 방지를 위해 파견되었던 유엔 평화유지군이 세르비아 정규군이나 민병대들에게 제압당해 인간방패로 사용된 것은 두고두고 유엔의 굴욕으로 남아있다(관련글). 그 밖에 시에라리온이라든지 여러 아프리카 나라에서도 유엔 평화유지군이 가서 개털린 굴욕도 있긴 하지만 이런 건 좀 특별한 경우. 왜냐하면 겉은 유엔 평화유지군으로 찬란했으나 정작 주변의 가난한 아프리카 나라 군대들이 열악한 무장을 하고 가니 내전으로 전투 질리게 한 시에라리온이나 여러 내전 국가에선 이들 나라 군대는 이었다. 미국은 물론이오, 유럽이나 아시아 쪽은 일절 해당되지 않음.

결국 소말리아 해적 소탕을 기점으로 다국적군 파견보다는 민간군사기업을 통한 분쟁지역의 무력개입방식이 조심스럽게 논의되고 있으며 소규모나마 실험이 이뤄지고 있다. 또한 시리아 내전이라크 레반트 이슬람국가(IS)와의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도대체 유엔은 뭐 하나?'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국가간(특히 미국과 러시아)의 이해관계의 충돌 때문에 유엔 차원에서 개입하기는 쉽지 않은 게 사실이다. 안보리 상임이사국들중에서 거부권을 가진 러시아가 바샤르 알 아사드 정권을 지지하고 있어 시리아 정권를 전복시킬 군사 개입은 불가능하다.

8.3. 비군사적 분야에서의 한계[편집]

보다시피 유엔의 군사적 영향력은 그다지 크지 않다. 그러나 비군사적 측면에서 보면 국제기구 중에서 외교문제, 경제문제, 무역문제, 조약문제, 인권문제, 환경문제, 빈곤문제, 핵문제 등등 국제사회와 정치 분야에 있어서 가장 많이 참여하고 있으며 가장 많은 역할을 하고 있다. 유엔이 미국의 개라는 것도 군사적 측면을 두고 한 말이지, 그 외의 분야에서는 꼭 그렇지만은 않다. 오히려 냉전이 끝난 지금 유엔의 영향력은 전보다 더 커졌다는 것이 국제법학계의 중론. 그러니 유엔의 군사적 측면만을 보고 실체없는 단체 취급하는 것은 옳지 않다. 애당초 아무 힘이 없다면 수많은 나라들이 돈 내가며 가입할 이유가 있을 리 없다.

유엔의 비군사적 역할을 알려면 보조기구와 전문기구를 살펴보는 것이 빠른데 유엔에 소속된 보조기구(총회를 비롯한 경제사회이사회 등 유엔의 조직을 직접적으로 보조하는 유엔소속 보조기구)로 UNICEF(국제아동기금), UNCTAD(UN무역개발회의), UNDP(UN개발계획), UPeace(UN평화대학), UNU(UN대학), WFP(세계식량계획)를 두고 있으며, UN과 밀접한 관계에 있는 전문기구(UN의 경제사회이사회와 협정을 맻어 연대관계에 있으나 유엔과는 별도의 독립기관으로써, 종속기관이 아님)로는 IMF(국제통화기금), IBRD(국제개발부흥은행), WTO(세계무역기관), WHO(세계보건기구), ILO(국제노동기관), UNESCO(UN교육과학문화기관)등이 있다. 국제 정세에 별 관심 없는 사람일지라도 뉴스나 신문에서 들어본 적이 있는 국제단체들 대부분이 유엔산하기구 혹은 관련기구다.[41]

비군사적이고 세계적으로 합의하기가 상대적으로 쉬운 주제에 대해서라면 유엔은 오히려 막강한 행동력을 과시하는 경우도 있다. 특히 새천년개발목표로 대표되는 국제개발 이슈에 대해서라면 유엔이 그냥 허수아비는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의 리더십을 보여주기도 한다. 하지만 강대국의 영향력에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 군사적인 영향력이 약하다는 점 등을 이유로 '유엔 무용론' '유엔 개혁론' '세계정부론' 등이 나오기도 한다. 참고 기사 한편,제 4차 산업혁명으로 일어날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전세계가 법인세나 노동법을 통합하는 방안이 제시되지만 UN을 위시한 국제기구의 한계를 넌지시 언급하면서 해당 방안에 대해 회의적으로 보는 사람들이 많다.

9. 대중문화 속의 유엔[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유엔/대중문화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10. 여담[편집]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360px-Original_United_Nations.jpg

  • 한국한국전쟁 당시 유엔군의 도움을 받아서 UN데이[43]를 기념일로 지정한 유일무이한 나라다. 1976년부터 공휴일에서 제외. 한국이 가장 먼저 가입한 국제기구는 만국우편연합으로 대한제국의 가입자격을 계승해서 유지하고 있다. 한국에 본부를 둔 국제기구로 국제백신연구소 등이 있다.

  • 한국계 UN직원으로는 전직 사무총장인 반기문 이외에도 패티김의 장녀 최정아도 있다.

  • 유엔의 본 건물처럼 보이는 저 높은 빌딩은 사실은 그저 직원들 사무실이다. 실제 안보리 회의장과 국제연합 회의장은 그 옆에 있는 낮은 건물에 다 있다.[44] 유엔 본부 설계에는 당시 쟁쟁한 건축가들이 모두 탐내던 프로젝트로 결국 최종안은 브라질의 현대 건축가인 오스카르 니메이예르의 고층 빌딩안과 현대 건축의 아버지라 불리우는 르 코르뷔지에의 단일 대형 건물안을 절충하여 사무동 및 회의건물이 지금 모습과 같이 지어지게 된다. 그리고 유엔 본부 건물의 내부는 어느 국가에도 속하지 않는 공역으로 정해져 있다. 대사관을 해당 국가의 영토로 취급하는 것과 유사한데, 예시를 들자면 유엔 세계본부 내부에서 범죄가 발생할 경우 세계본부가 위치한 뉴욕 경찰이 바로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유엔 측과 협의를 거쳐서 처리 과정을 결정해야 한다.

  • 남한북한의 유엔가입은 한국전쟁이 끝난지 훠얼씬 지난 뒤인 제6공화국시기인 1991년 8월에 가입이 이루어졌는데, 가입당시 북한이 160번째, 남한이 161번째로 가입했었다.[45] 사실 1960년대 이후로는 전세계에서 가입하는 국가들이 상당히 늘었다는 점에서 의외인데, 이미 한국전쟁 이전에 광복 이후인 1949년 2월에 한국의 가입 권고 결의안에 채택되어 당시 가입국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소련과 다른 국가들(주로 소련권 국가들)의 거부권 행사로 인해 부결되는 것을 시작으로 근 40~50년 동안 가입을 하고 싶어도 소련의 극구 반대로 인해서 가입이 이루어지지 못했다. 소련은 거부권 행사를 할 수 있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5개국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자세한 내용은 이쪽에 잘 설명되어 있다. 어쨌든, 가입을 안했지만 유엔으로부터 여러 가지 원조는 받아왔었다. 그리고 가입하기 위해 남한은 얼마나 많은 공을 들였는지도 참고할 수 있다. 한국의 유엔가입이 늦어진 이유에는 남한의 단독 가입을 주장했던 것도 한 이유였다. 헌법상 한반도의 유일정부를 자임하는 한국으로서는 북한이 유엔에 가입하는 것은 북한을 하나의 국가로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용납할 수 없었고, 미국도 이런 입장에서 북한의 유엔 가입을 반대했었다.[46] 마찬가지로 소련에서는 88올림픽 전까지는 북한을 한반도의 유일한 정부임을 지지해왔기 때문에 반대하였다.

  • 팔레스타인이 2012년 11월 29일, 상주옵저버국가(Permanent Observer State)에서 옵저버 국가(Observer State)로 지위가 격상되었다. 옵저버 국가는 유엔총회의 정식 의석을 갖지 않은 국가로 의결권은 없으나, 회의에 참석해 활동할 수는 있다. 이전까지 옵저버 국가로 인정 받은 것은 바티칸뿐이었다.

  • 간혹 유엔이 대한민국의 정책 또는 이슈에 의견을 내놓았다는 기사가 올라올 때, 그 의견이 불만스러운 쪽에서는 꼭 북한도 유엔말 무시하는데 우리라고 왜 지켜야 하냐!! 식의 병맛 반응이 나오기도 한다. 대표적인 것이 병역거부. 이쪽은 보상심리, 무임승차, 북한 등 오만잡다한 요소가 얽히는지라 국내에서도 논쟁이 심하다. 대체복무제도를 연구하고 있다지만 그게 쉽게 풀려야 말이지.. 그 외에는 유엔과 서방국가들이 오염되어(???) 학생인권과 동성애자 인권을 한국에 강요한다는 드립도 있다.

  • 전 세계적으로 중/고/대학생들을 대상으로 모의 유엔 회의(대회)가 개최되고 있다. 한국에서는 UN 한국협회에서 전국 대학생 모의UN을 시행하고 있다. 그 외에 학생주최로 2015년 여름 기준 3기를 맞은 SIGMUN, HAIS MUN, 조선일보에서 주최하는 MUNOS (Model United Nations of Seoul), 비영리 법인 GLIS®에서 주최하는 GLIS MUN, 고려대학교와 연세대학교에서 각각 주최하는 KMUN과 YMUN등이 있다. 자세한 것은 모의 유엔 문서 참고.

[1] 북극점 위에서 지구를 내려다보는 구도의 정거 방위 도법으로 그려진 지도로, 어떠한 특정 국가도 엠블럼의 중심에 가지 않도록 하기 위해 선택된 구도라고 한다.[2] Organizatsiya Ob'edinyonnykh Natsiy 약어로 ООН로 표시하기도 한다.[3] Liánhéguó[4] '국제연합'은 일본에서 유래된 조어로, 한국 외교부의 공식 용어는 '유엔'이다. 자세한 서술은 하단 참조.[5] 유엔의 모토다.[6] 현재 193개국이 가입해 있다. 현재 현존하는 대부분의 국가가 가입되어 있으며, 인류 역사상 "인류 전체"를 테마로 논의가 오고가고 있는 기구는 이 기구와 그 산하기구들이 거의 유일하다. 미승인국속령이 아닌 실제 국가 수준의 대접을 받으면서 UN에 가입하지 않은 국가는 바티칸, 대만, 코소보, 서사하라, 팔레스타인 뿐이다.[7] 이 헌장이 공포될 당시에는 아직 한국어 공식 용어가 '국제연합'이었다.[8] 원래 중국어는 단수형과 복수형의 차이가 없다. 물론 일부러 복수형임을 강조할 방법은 있지만 중국어에서는 Nations를 그냥 國으로 썼다. 참고로 중국에서 國聯은 국제연맹을 말한다.[9] 현재 아사히에서는 당 기사들을 모두 내렸다. 그래서 1번기사는 이곳, 2번 기사는 이곳에서 확인 할 수 있다.[10] 독일어 명칭은 줄이면 파우엔이고, 이탈리아어는 유엔 공식언어들 중 프랑스어와 약칭이 똑같다![11] 단, 중국어에서 2차대전 중의 연합국을 칭할 때는 동맹국(同盟国)이라고 하여 한국어 및 일본어와 마찬가지로 국제기구로서의 유엔과 구분해서 부른다. 1차대전의 동맹국과 명칭이 겹쳐 헷갈릴 수 있으니 주의.[12] 외교적인 경우 단어의 선택에 매우 신중한 경향을 볼때 국제연합이라는 기구를 만들려 했다면 국제의회연맹(est.1889)의 사례나 international Court of Justice(ICJ = 국제법원), UNITED KINGDOM(영국=연합왕국)을 참조한다면 당시 전권대사들이 International Union 이라 칭했을 것이다.[13] 이러한 일본의 번역을 그대로 가져다 쓴 다른 예로는, 국제사법재판소라고 번역된 ICJ가 있다. ICJ는 International Court of Justice 의 약자인데, Court of Justice 자체가 그냥 '법원'라는 뜻밖에 없다. ICJ의 명칭 어디에도 '사법'이라는 말은 없으므로 직역하면 국제재판소 정도가 적당하지만, 일본에서 의역한 것을 그대로 사용했다. 사실 재판소라는 말도 잘못된 것으로써 일본에서는 'Court of Justice'가 재판소이지만 한국에선 법원이다. 즉 국제법원이 맞는 말이고 International Court를 복수로 부를 때와 구분하기 위해라도 국제사법법원, 즉 재판소나 재판관이 아닌 법원과 법관으로 고쳐야 한다. 한국에서도 헌법재판소의 경우에는 재판소와 재판관이라는 말이 그대로 사용되고 있으나, 이것 역시 일본식 조어라는 동일한 이유로 비판받고 있다.[14] 당시 프랑스는 국가가 없는 상태로 나치 독일에게 레지스탕스로 대항하고 있던 중이었다.[15] 참고로 나치 독일이 항복한 날은 1945년 4월 30일이다. 일본 제국과는 아직 전쟁 중이었다. 추축국의 패배가 거의 확실히 되는 상황에서 진행된 것이다[16] 세계평화를 위해서 자신들이 유엔을 만들었지만 제3차 세계대전을 일으키는 원인을 제공하고 있는 꼴. 국제사회에서 힘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생각해보게 되는 상황[17] 당시 팔레스타인땅에 유대인 민족들이 자신들의 국가를 건설하고자, 제1차 중동전쟁를 일으켰고, 결국엔 이 전쟁에서 승리하여 유엔의 승인을 얻어 이스라엘 국가를 건국하게된다. 유대인은 전세계의 거의 대부분을 웃도는 검은돈을 유통시키는 거물들이 많은 상당히 영향력 있는 민족이었기 때문에 주요 서방 강대국들을 쥐고 흔들 만한 힘이 있었다. 따라서 뜬금없이 몇 천년전에 잃어버린 우리 조상들의 땅을 되찾자라는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 밖에 없었던 것, 그래서 기존에 살고있던 팔레스타인의 땅을 뺏고 자신들의 국가를 건설할 수 있었던 것이다.[18] 이집트수에즈 운하를 차지하기 위해 일으킨 전쟁.[19] 1965년 당시 헝가리민주주의 혁명이 일어났는데, 소련동유럽내에서의 영향력 감소를 우려하여 헝가리를 침공한 사건. 당연히 유엔은 소련의 문제이기 때문에 개입하지 못했다.[20] 콩고 내전을 해결하기 위한 평화적 노력을 전개한 그에게 사후 노벨상을 수상하였다.[21] 그리스에서 1964년 군사정권이 수립되자, 같은 인근 그리스계 국가인 키프로스와 군사적 긴장이 심화 되었다.[22] 당시 중화민국국공내전에서 패배하여, 대륙에서 밀려난 상황이었다. 하지만 1949년 대륙에서 밀려난 이후에도, 중국을 대표하는 국가는 중화민국이었다. 즉, 하나의 중국을 대표하는 나라는 이때까지는 중화민국이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중화인민공화국의 급부상으로 중화민국은 힘의 논리에 의해 기존의 지위에서 강제로 내려오게 된 것. 같은 자유진영이었던 미국의 반대가 있었음에도 이 결의안이 통과되었던 것을 보면 당시 중화인민공화국이 상당히 부상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고, 미국 패권주의에 반대하여 중화인민공화국상임이사국 진출에 지지한 다수의 국가들의 영향력 자체를 미국이 무시할 수는 없었을 것으로 보임.[23] 사용 인구로 따지면 힌디어가 아랍어보다 많다.[24] 일부 아랍국가들과 아프리카 국가 상당수가 프랑스를 공용어로 사용할 정도로 영어 다음으로 널리 쓰이는 언어다. 그래서 외교상으로 프랑스어를 할 줄 안다면 많은 도움이 된다.[25] 프랑스는 프랑스어 못 하는 반 총장에 대해 선출 거부권까지 행사하려 했었다. 물론 반 총장도 이를 알고 프랑스어를 열심히 공부하여 지금은 수준급의 프랑스어 실력을 보유하고 있다. 프랑스는 자기 대통령과 반기문 총장이 무난하게 프랑스어로 대화하는 것을 보고 선출 거부권을 행사하려던 계획을 철회했다.[26] 이 말을 했을 당시(위안부 문제로 한일 갈등이 극에 달했던 시기)에 극우주의자는 물론 일본의 관방장관까지 나서서 똑같은 단어가지고 왜 말장난을 하냐고, 이 말을 이해 못하겠다고 항의 했으나 그건 그냥 그 사람이 바보인거다. 중립이란건 누구의 편도 들지않고 니들이 그러든 말든 신경쓰지 않고 방관한단 뜻이고 공정하다는 건 선과 악을 구분하거나 피해자와 가해자를 구분짓고 선과 피해자를 도와주고 갈등을 조정한다는 뜻이다. 즉 중립이라는건 유엔의 본래취지와는 크게 모순되는 단어다. 애초에 유엔이 중립입장이면 유엔의 이름 아래 다국적군이 결성되거나 안보리의 제재결의안 등이 만들어질 이유가 없다.[27] 이걸 프레시안 등에서는 유엔이 작별선물로 같이 사라지게 될 것이다 라고 번역해서 우리가 없애주마라는 표현으로 번역을 해 놨는데, 뉘앙스를 보면 유엔에서 전쟁 반대하면서 유엔을 중심으로 국제사회 질서가 유지될 수 있다는 것이 환상(fantasy)으로 밝혀졌으니 자업자득이라는 식이다. 미묘한 뉘앙스 차이가 있는 것. 다만, 유엔은 쓸모가 없으니까 국제구호 기구와 평화유지 관료체제 약간만 남겨두고 없애야 한다는 것은 차이가 없다. 전문을 보면 미국식 일방주의가 어느 정도까지 갔었는지 알 수 있다.[28] 도널드 럼즈펠드가 미 국방장관이었던 시기 미 국방정책자문위원회 위원장 겸 국방부 자문위원. 리처드 닉슨 정권 시기 대표적인 데탕트 반대파로 네오콘의 주요인물이기도 했다. 펄은 이 글을 쓰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사임했는데, 일단 공식적으로는 이 글을 써서가 아니라 통신업체 해외매각에 개입하는 대가로 뇌물을 수수한 혐의가 밝혀졌기 때문이다.[29] 사실 6.25 전쟁 당시 소련 대표가 타고 있던 자동차가 고장이 나서 참석 못한것이다.[30] 2015년 기준 약 6억 5천만 달러, 한화로 약 7400억원.[31] 일본은 상당한 친미국가라는 것을 감안하면 사실상 유엔에서 미국의 입김이 상당히 크게 작용한다.[32] 약 5천 9만달러, 한화로 약 680억원[33] 기부금 낼 때 특정 판무관 사무소나 평화유지군 예산으로 책정할 수 없도록 사용처를 지정하여 요구할 수 있다.[34] 한때는 멕시코보다도 적었던 적이 있었다.[35] 2000년까지는 25%였는데 소폭 내려갔다.[36] 미국 국내에서도 이라크 전쟁 당시 유엔의 승인을 받지 못한 전쟁이라고 크게 비판 받았고(반전단체의 주요 레퍼토리 중 하나가 유엔의 승인이 없는 전쟁이라는 점이다), 전세계적인 반미감정의 증가 때문에 이를 교훈으로 지금은 미국내에서도 유엔의 동향에 신경써야한다는 말이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37] 사실 이라크 전쟁 때도 미국이 유엔을 완전히 무시한 건 아니었다.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이 유엔의 승인을 받기 위해 본인이 직접 유엔총회에서 연설까지 하고 안보리에 상정했지만, 끝내 지지를 받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전쟁을 일으켰던 것.[38] 유엔군이 실질적으로 전투에 투입된 것은 한국전쟁이 유일했기 때문에 부산광역시UN기념공원 또한 유엔이 관리하는 유일한 유엔군 묘지다.[39] 외국의 지원군이 총 35만 명가량인데, 그중 30만 명이 미군이었다. 병력 비율로 보면 미군이 주도권을 쥐는 게 당연.[40] 정확히는 북한군을 거의 다 밀어내는데 까지 성공했으니 효과가 있긴했다, 문제는 중국의 참전, 유엔군 < 중국군(...) 즉 이미 전쟁중인 국가를 지원할때는 효과적이나 전쟁 중간에 어느 강대국이 상대편으로 끼어들면 유엔군의 효과를 보기 어렵다는 것.[41] 유엔의 비군사적 영향력 역시 강대국의 자본에 기반하고 있음은 부정할 수 없다. IMF, WTO 등으로 대표되는 경제적인 영향력 역시 미국을 비롯한 강대국에 기대고 있다. 그런 까닭에 유엔은 강대국의 정치논리에서 완벽하게 자유로울 수 없고 아마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다.[42] 사무총장이라고 유엔의 수장인건 아니고 유엔 산하 국제연합사무국의 수장이라고 봐야 한다. 애초에 사무총장이라는 자리는 UN의 통치자가 아니니 세계정부의 황제 같은걸 생각하면 안된다. 국제분쟁의 조정자 정도가 적절하다.[43] 10월 24일-유엔창설일.[44] 사실 이건 다른 단체들 역시 비슷하다. 예를 들면 웬만한 국가의 의회나 지방정부의 의회 역시 보통 1층에서 입장가능하게 되어 있다.[45] 남북한보다 늦게 가입한 나라들은 특정 나라에서 분리되거나 독립된 나라들, 면적이 코딱지만 한 듣보잡 나라들, 그리고 스위스뿐이다.[46] 단, 대한민국의 헌법재판소의 판례에 의하면, 남북한이 동시에 UN에 가입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남한이 북한 정부를 별개의 국가로 인정하지 않고 여전히 반국가 단체가 무단으로 북쪽지역을 점령하였으며, 남북한의 UN 가입은 UN과 UN 내 다른 회원국에서 남북한 두 정부의 실체를 확인한 것일 뿐이라는 기존의 입장을 명확히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