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언비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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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설명2. 유래 일화

1. 설명[편집]

고사성어

흐를 유

말씀 언

바퀴벌레 비

말씀 어


'흐르고 나는 거짓말' 해서 飛(날 비)로 알고 있지만 아니다. 한자의 뜻을 풀어보면 흘러가는 말 해충 같은 말이라는 뜻으로, 여기저기에서 떠도는 근거 없는 소문.

루머떡밥과 일맥상통한다. 카더라와도 관계가 있으며, 인터넷 기자들의 질 떨어지는 기사들의 원천이 되기도 한다. 유언비어는 점점 퍼지면서 구체화되는데, 그 극명한 실제 사례를 들면 다음과 같다. 뉴스기사 출처

트위터에서 ISIL 관련 소식을 전하던 한 트위터리안은, 얼마 동안 새로 들어오는 소식도 없고 상황이 잠잠해지자 문득 장난기를 발동하기로 했다. 그는 거짓으로 "카르발라 시 북부의 시치와(Shichwa) 마을에서 민병대가 IS를 물리쳤다" 는 소식을 전하면서 교묘하게 편집된 영상까지 함께 업로드했다. 사실 시치와 마을은 존재하지 않았으며, 이는 버터 제조용 도구의 이름이었다. 몇몇 인근의 중동 합필갤러들 트위터리안들도 장난스럽게 시치와 마을의 지도를 올리거나, CNN에서 상황을 보도하는 합성사진도 만들었다.

그런데 아무도 이를 저격하지 않았다. IS를 지지하는 세력과 IS를 반대하는 세력 양쪽에서 이를 굉장히 진지하게 받아들인 것. 양쪽의 공통점이라면 평생 버터를 만들어 본 적은 없었으리라는 것이다

도리어 이야기는 점점 살이 붙어서, 당초에는 생각도 못했던 이야기들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민병대가 시치와 마을의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카르발라 시에서 파티를 연다느니, 시치와 마을에서 피난민들이 빠져나와 카르발라 시로 이동하고 있다느니, 정부군이 즉각 진격해서 패주하는 IS를 요격해야 한다느니 하는 이야기들이 사방에서 솔솔 떠올랐던 것. 한 사람의 거짓말로 시작됐던 이 루머가 도저히 개인의 수준에서 감당하지 못할 수준이 되자, 결국 문제의 트위터리안은 시치와 마을에 얽힌 이야기가 모두 거짓이며 사실 이는 버터 제조용 도구의 이름이라고 실토해야 했다.

2. 유래 일화[편집]

한(漢)나라 경제(景帝) 때 사람 두영(竇嬰)은 태후의 조카이자 대장군 지위에 있는 실력자로서 각지의 반란을 진압한 공으로 위기후(魏其侯)의 관작까지 받아 조정 대신들이 모두 그의 앞에서 굽신거렸다. 이때 전분(田粉)이란 간신은 미미한 출신으로서 처음에는 두영의 집에 들락거리며 아첨을 일삼았으나, 아름다운 누이가 황후가 되는 바람에 벼락출세를 하여 태중대부(太中大夫)라는 높은 벼슬을 얻었다. 더구나 경제가 죽고 무제(武帝)가 즉위한 후에는 무안후(武安侯)에 봉해져 그 권세는 오히려 두영을 능가하게 되었다. 따라서 예전에는 두영 앞에서 얼찐거리던 그 많은 고관대작들이 이번에는 전분한테 몽땅 달라붙어 갖은 아첨을 떨었다.

“이런 몹쓸 인간들 같으니!”

강직하고 호걸풍인 장군 관부(灌夫)는 그런 꼴을 보다못해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는 영락한 두영과 여전히 친하게 지내며 같이 술잔을 나누고 세상 꼬락서니를 한탄하곤 했다. 어느 날 전분이 연(燕)나라 왕 유가(劉嘉)의 딸을 첩실로 들이게 되어 그의 집에서 성대한 잔치가 벌어졌다. 두영과 관부 역시 예의상 참석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그 자리에서 그만 불상사가 일어나고 말았다. 전분이 잔을 쳐들며 술을 권했을 때는 참석자들이 모두 엎드려 축하와 감사를 표하면서 각자 자기 잔을 들었으나, 두영이 손님의 입장에서 전분을 축하하는 의미로 건배를 제의했을 때는 대부분 들은 척도 하지 않았던 것이다.

‘어디 이놈들!’

평소부터 심사가 꼬여 있던 관부는 잔을 들고 전분 앞에 걸어가 직접 건배를 제의했다. 그러나 전분은 ‘이미 마셨다’는 핑계로 그 건배를 받지 않았다. 관부는 이번에는 전분의 추종자인 관현(灌賢)에게도 건배를 제의했으나, 관현은 옆사람과의 대화에만 정신이 팔려 있었다. 드디어 화가 난 관부는 잔을 내동댕이치며 외쳤다.

“어찌 이렇게 무례할 수가 있단 말이냐!”

그 바람에 잔치는 엉망이 되었고, 사람들은 슬금슬금 자리에서 일어났다. 두영은 관부를 달래어 돌아가도록 했으나, 분노한 전분이 관부를 붙잡아 투옥해 버렸다. 두영은 집에 돌아가자마자 황제에게 상소를 올렸다.

관부는 나라를 위해 세운 공이 큰 장군입니다. 무안후의 집에서 있었던 소란은 예도에 크게 어긋난 사람들에게 발단의 책임이 있다고 봐야 합니다. 그런데도 무안후는 개인 감정으로 관부를 포박한 것입니다.

무제는 다음날 조회 자리에서 그 문제를 끄집어 내고 잘잘못을 가리려고 했다. 그러나 두영과 전분이 각각 자기 주장만 내세울 뿐 아니라 바른 증언을 해야 할 대소신료들도 어정쩡한 태도를 보였으므로, 무제는 화를 버럭 내며 들어가고 말았다. 이 일이 왕태후의 귀에 들어가자, 그녀는 발끈해서 아들인 무제를 찾아가 따졌다.

“가당찮은 놈들이 이 어미와 내 집안을 욕보이려고 하는데, 성상께서는 뒷짐지고 구경만 하겠다는 것이오?”

처지가 곤란해진 무제는 하는 수 없이 형식적인 탄핵 절차를 밟아 두영을 ‘주군기망죄(主君欺罔罪)’로 투옥해버렸다. 다급해진 두영은 생전의 경제로부터 받아 두었던 ‘황제 친견(親見)의 특혜’를 써먹기로 했다. 그것은 비상시에 황제를 단독 대면할 수 있는 특권으로서, 무제를 직접 만나 전후 사정을 설명하고 용서를 빌 작정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불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되고 말았다. 전분 일파로 꽉 찬 조정은 왕태후의 입김에 따라 두영에게 ‘유조위조죄(遺詔僞造罪)’를 뒤집어씌운 것이다. 그것은 사형을 도저히 모면할 수 없는 중죄에 해당되었다.

“아하, 세상 이치가 어찌 이다지도 비정하단 말인가!”

두영은 자기 가슴을 쥐어뜯으면서 탄식해 마지않았다. 더구나 자기를 알아 주던 유일한 친구인 관부가 가족들 모두와 함께 처형당했다는 소식을 듣게 되면서 삶에 대한 의지를 완전히 상실하고 말았다. 두영은 일체의 식사를 거절한 채 죽기만을 기다렸는데, 어느 날 옥리가 가만히 귀띔해 주었다.

“내년 여름이 되면 특별사면이 실시된다고 합니다. 그때까지만 참고 견디십시오.”

그 말을 들은 두영은 마음을 돌리고 새로운 희망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그 무렵 장안성 안에 이런 ‘유언비어’가 떠돌았다.

“두영은 옥중에서도 반성은커녕 천자를 헐뜯는 소리만 늘어놓고 있다고 한다.”

이것은 말할 것도 없이 전분 일당이 꾸며낸 것이었지만, 소문을 들은 무제는 몹시 노하여 두영을 사형에 처했다.
그 뒤 전분도 훗날 반란에 가담하는 바람에 거열형을 받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