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승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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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국회상징.png 대한민국 국회의원 (대구 동구 을)

제17대
박창달[1]

제17~20대
유승민

현직


역임한 직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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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Saenuri reverse logo cut.png 새누리당 원내대표

제4대
이완구

제5대
유승민

제6대
원유철


파일:bareunparty.png 대표

권한대행
주호영

제3대
유승민

신설합당
[2]

역대 당대표 목록


파일:bareunlogotype.png 바른미래당 대표

신설합당[3]

초대
박주선·
유승민

비대위원장
김동철

역대 당대표 목록

파일:1493436349553.jpg

이름

유승민(劉承旼, Yu Seungmin)

별명

장인어른, 기자들의 아이돌

출생일

1958년 1월 7일 (만 60세)[4]

출생지

대구광역시 중구 대봉동

본관

강릉 유씨[5]

신체

173~174cm[6], 69kg

혈액형

A형

거주지

대구광역시 동구 용계동

병역

파일:roka_logo.png 육군 병장(수도방위사령부)

최종 학력

위스콘신 대학교 경제학 박사

가족

아버지 유수호
형 유승정, 누나 유진희
아내 오선혜, 아들 유훈동, 딸 유담

종교

불교[7][8]

소속 정당

바른미래당

지역구

대구 동구 을

의원 선수

4

의원 대수

17, 18, 19, 20

소속 위원회

기획재정위원회

현직

제20대 국회의원

약력

한국개발연구원 연구원
위스콘신 대학교 경제학과 조교
한국개발연구원 수석연구위원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회 위원
공정거래위원장 자문관
한나라당 여의도연구소
대한민국 국회의원
한나라당 대구광역시당 위원장
한나라당 최고위원
국회 국방위원회 위원장
새누리당 원내대표
국회운영위원회 위원장
바른정당 대표
바른미래당 공동대표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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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생애3. 유승민 작성 논문4. 기자들의 아이돌 유승민5. 국방정책 관련 행적6. 비판과 논란7. 정치적 노선8. 친유9. 상훈10. 선거 이력11. 어록12. 여담
12.1. 딸의 인기
13. 관련 문서14. 틀 둘러보기

1. 개요[편집]

저는 높이 평가합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분명한 자기 정체성과 이념, 철학을 얘기하잖아요. 나는 보수다. 대북문제에 대해서도 안 된다. 그러한 보수가 있어야 됩니다. 또 저처럼 진보개혁적인 사람도 있어야 되고. 그렇게 해서 서로 상호경쟁하면서 발전해야죠. 그런데 유승민 대표는 그러한 면에서 저는 보수를 대표하는 가장 훌륭한 정치인이다. 그렇게 생각합니다.


민주평화당 박지원 의원, 2018년 2월 8일 tbs 라디오 인터뷰에서 #

TK의 유일한 바른미래당 소속 국회의원.

대한민국정치인, 제20대 국회대구광역시 동구 을 지역구의 국회의원으로 바른미래당에 소속되어 있다.

1958년 경상북도 대구시 삼덕동(현 대구광역시 중구 삼덕동)에서 아버지 유수호와 어머니 강옥성 사이의 2남 1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삼덕초등학교, 대륜중학교[9], 경북고등학교,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위스콘신 대학교 대학원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2000년 2월에 한국개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으로 있다가 이회창 당시 한나라당 총재의 영입으로 한나라당의 정책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소의 소장을 맡으면서 처음으로 정치권에 들어오게 되었고 2004년 한나라당 비례대표로 초선 국회의원이 되었다. 이후 20대 총선까지 내리 4선에 성공했다. 20대 국회 기준으로 지역구는 대구 동구(을)이다.

박근혜와는 2005년 1월에 당시 한나라당 대표였던 박근혜 대표의 비서실장으로 내정된 것을 계기로 처음 인연을 맺었으며, 같은 해 10월까지 10개월간 박근혜 대표 비서실장을 맡았다. 2007년에도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박근혜 캠프에서 활동하며 원조 친박으로 불리기도 했다.

그러나 2011년부터 2012년 초까지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비대위원장과 여러 차례 의견 충돌을 겪으면서 차차 사이가 멀어졌고, 이때부터 소위 "탈박"이라는 비주류의 길을 걷게 된다. 저 당시 의견 충돌이 있었던 것 중 대표적인 예로, 박근혜가 당명을 새누리당으로 변경하려고 하자 유승민이 "새누리당은 당명으로 쓰기엔 종교적인 색채가 너무 짙은 이름이다"라는 이유로 정면으로 반대했던 일이 있다. 그 뒤로는 소위 탈박 내지 비박계 인사로 분류되었다.

박근혜 대통령 취임 이후로도 박근혜정부의 정책을 공개적으로 비판하고 청와대와 여러 차례 충돌을 벌이다가, 2015년 7월 원내대표 당시 국회법 개정안을 두고 갈등의 정점을 찍었다. 특히 가장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던 것은 15년 4월에 있었던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로 대표되는 교섭단체 대표연설 이후였다. 그 연설 이후, 박근혜로부터 이른바 '찍박'으로 낙인찍혀 결국 원내대표직 사퇴까지 이르게 된다.

결국 이러한 갈등은 그때의 불씨가 화약고나 다름없던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공천 문제를 놓고 대폭발하여, 자신이 친박계비박계 간 대립의 정점에 올라서는 계기가 되었다. 사실상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여권 진영의 열쇠.

무소속으로 20대 국회의원 당선 이후 새누리당에 복당하여 당내에서 꾸준히 당 개혁의 목소리를 내고 당의 진로와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 쓴소리를 하다가 최순실 게이트를 계기로 2017년초 탈당하고 나와 바른정당을 창당했다. 현재는 대선주자로도 뛰는 등 바른정당의 간판으로 활동 중이며, 2017년 11월 전당대회에 출마하여 제3대 바른정당 대표가 되었다.

탈당 러쉬로 존립 자체가 위태로웠던 바른정당을 국민의당과의 통합을 통해 바른미래당으로 탈바꿈시키며 30석을 가진 원내교섭단체로 다시 올라섰다. 분열 사태를 맞은 국민의당과 대표직을 내려놓은 안철수와 달리 당내 입지의 변화 없이 합당을 마무리했으며, 바른미래당 초대 공동대표로 선출되었다. 자신만의 정치 세력도 갖춰가고 있었으나 결국 7대 지선 참패로 바른미래당 대표에서 사퇴했다.

2. 생애[편집]

유승민/생애 문서로.

2.1. 정치 경력[편집]

3. 유승민 작성 논문[편집]

유승민/논문 문서로.

4. 기자들의 아이돌 유승민[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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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유승민 기자 2.jpg

세상 모든 일은 정치가 다뤄야 할 일이고, 정치인이 고민해야 할 일이다. 현안이고 아니고 그런 거 없다. 편안하게 물어봐 달라. 정치부 3년 하는 동안, 이런 말을 한 정치인은 유승민 말고는 한 명도 없었다. - 프레시안 소속 최하얀 기자 -


유승민 의원은 언제, 어디서나 무슨 주제이건 질문을 하더라도 기자들이 원하는 수준의 답변을 전달한다고 한다. 또한 기자들의 피드백은 물론이고, 어떤 주제이건 전문가다운 답변을 내놓음과 동시에 보좌진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본인이 끝까지 기자들을 응대한다고 한다. 그리고 수많은 질문이 쏟아지는 상황에서도 하나하나 놓치지 않고 다시 기자들에게 내용을 되물으며 내용을 놓치지 않는다.

심지어 대선출마 간담회 이후 참석한 기자들과의 식사 자리에서, 한 기자가 정치부에 오기 전 다른 부서에서 작성했던 특집 기사를 언급해 동석자들의 눈이 휘둥그래졌다고도 한다. 또한 대개 언론에서 국회의원 인터뷰를 할 때는 보좌진에게 질문 내용이 전달되고, 그걸 의원 본인이 추려서 대답하는 형식으로 진행되지만 유승민은 그런 과정이 없이 본인이 직접 인터뷰를 진행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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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대 대선 유승민 후보 마크맨(전담취재기자)의 취재후기

1999년부터 시상된 '백봉신사상'은 백봉 라용균 선생을 기념하는 기념사업회에서 매년 정치부(국회출입기자)들 사이의 설문조사를 기반으로 그해의 가장 모범적인 국회의원을 뽑는 상이다. 정직성, 사회·국민에 대한 헌신, 정치적 리더십, 의회민주주의 실천, 소통능력 등이 평가 대상이며, 사실상 기자들 사이의 국회의원 인기를 가늠할 수 있는 상이다. 유승민 의원은 이전에도 수차례 베스트 10에 이름을 올렸지만, 2015년과 2016년은 각각 대상을 수상하였다. 특히 정의화 국회의장은 시상기념사에서 "유승민 의원은 압도적인 표차로 1위에 선정되었다"고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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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정의화 국회의장, 2016년 정세균 국회의장에게 백봉신사상 대상을 수여받는 유승민

사실 이같은 인기(?)는 유승민의 언론 독립성에 대한 소신 덕택일 가능성도 높다. 유승민은 KDI연구원 시절부터 공기업 독점에 의한 광고업의 폐혜 등 언론의 독립성을 매우 강력하게 주장해왔고, 특히 재벌 대기업의 언론사 소유를 금지해야 한다고 한 바 있다. 그리하여 2009년 속칭 '미디어법 개정 파동' 사태 당시 한나라당의 찬성이라는 당론을 깨고 반대하였으며, 2012년 이명박 정부와 MBC의 갈등으로 촉발된 언론노조 파업 당시에도, 정부와 정치권의 입김이 셀 수밖에 없는 현재 MBC와 KBS의 사장선임방식 등 지배구조를 바꿔야 한다고 해당 파업을 지지하였다.

심지어 이로 인해 MBC에 미운털이 박혀, 그를 향한 복수를 하고 있다고 주장되기도 한다. 노조파업 지지했던 유승민에 대한 MBC의 꼼꼼한 뒤끝과 복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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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파업 중인 노조대표들과 면담하는 유승민. 심지어 당시는 2012년 총선 직전이였다. 당시 여당이였던 한나라당의 심장과도 같은 대구광역시에서 출마하는 한나라당 후보자가 당시 정부에 반대되는 소신을 지킨 것.

2017년 대선 1차 토론회가 열리는 SBS 프리즘타워 앞에서 언론개혁을 요구하는 언론노조 조합원과 마주쳤는데, 간단한 인사만 하고 입장하는 몇몇 후보와는 달리 언론사 지배구조 개선에 관심이 많다며 사뭇 진지하게 대화하는 유승민이 포착되기도 하였다. 게다가 아래의 동영상에서 마이크를 든 연사 역시 2012년 유승민의 언론사 파업 지지를 언급하며 꼭 부탁드린다고 연설 중이다,

토론회장 앞에서 시위 중인 언론노조와 대화하는 유승민

5. 국방정책 관련 행적[편집]

파일:유승민 국방위원장.jpg

상임위 체제로 가니까, 모든 의원 분을 뵙기는 어려워요. 저희 상임위에서 보자면, 유승민 의원이라고 저희 위원회 위원장님이신데요. 사실 국방위 특성자체가 여야가 구분을 많이 짓지 않거든요. 사안 자체가 특별한 법률이 아닌 이상은 일반적으로 국가적 아젠다니까요. 그런 데다 유승민 위원장님이 여야 안배라든가 효율적 운영에 정말 신경을 많이 쓰세요. 옆에서 듣고 있다 보면, 인품이 좋으신 게 느껴지세요. 그리고 가장 좋은 건, 간식을 잘 챙겨주세요.


— 19대 국회 민주통합당 김광진 의원 여, 야 초선 "유승민, 신계륜 의원, 일 잘해"(노컷뉴스)

경제전문가인데요, 알고보면 군사적 식견이 엄청나다. 군사적 식견과 전략이 대단하신 분이다. 그리고 국방위원장으로서 여, 야에 대한 배려 그리고 균형감각이 뛰어나신 분.


— 19대 국회 새정치민주연합 백군기 의원[10]


유승민은 경제학 박사 출신의 경제전문가로 알려져 있지만, 제18~19대 국회에서 8년 연속으로 국방위원회 소속으로 활동했고, 특히 19대 국회 전반기에는 국방위원장으로도 재직했다. 당시 경선 상대였던 황진하 의원(육군 중장출신)과 맞붙을 당시 "병장이 장군을 이겼다"라는 우스갯소리도 있었다.[11] 또한 후반기에는 국회 정보위원도 겸임하였고 외교통상위원회에서도 활동하였다. 경제학자 출신답게 2013년에는 새누리당 사회적경제특위 위원장을 겸임하기도 했다.

특히나 한나라당의 토론 에이스이자 저격수였던 유승민이 국방위로 자리를 옮기자, 그야말로 국방부와 군 장성들을 압도하는(...) 논리와 날카로운 질의로 화제를 모았다. 예를들어 2009년 1월 국방위 전체회의에서, 제2롯데월드 관련하여 공군참모총장 본인의 주장을 본인의 발언으로 반박하게 만들어버리기까지 했다.

유승민 의원 : 동쪽 활주로를 3도 틀면 국가안보와 국민 생명에 전혀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나?
이계훈 공참총장 : 그렇게 확신하고 있다.

유승민 의원 : 이 문제를 지난 15년 동안 반대해온 여러분 선배들은 거짓말 하나? 누가 맞는 건가?
이계훈 공참총장 : 활주로 3도 조정과 항행안전시설, 안전관련 장비를 보강하는 조건을 충족했을 때...
유승민 의원 : 활주로 3도 조정하는 것만으로는 안보 작전 안전 보장할 수 없다는 것 아닙니까?
이계훈 공참총장 : (당황) 네....

심지어는 전 세계에서 빌딩을 위해 활주로를 조정한 사례가 있나? 라는 질문에 이계훈 총장이 '그것까지는 잘 모르겠다' 라고 대답하자 유승민 의원은 내가 알기로는 없다. 공군에서 대만의 101빌딩과 송산공항 얘기를 하는데, 그것은 활주로를 튼 게 아니고 항로 변경을 한 것이다. 그 항로 밑에 육군 부대가 있었는데 보안문제 때문에 군부대를 이전했다 라고 팩트폭격을 시전하여 총장을 데꿀멍 시키기도.

경제, 국방, 외교통상의 삼박자를 고루 거친 탓에 각 분야에서 웬만한 전문가급 식견을 가졌다고 평가받고, 그 때문인지 국방정책 관련으로도 주목할 만한 주장을 간간이 내놓기도 한다. 그리고 모 신문사에서 매년 평가하는 '국감 스코어보드'에서 유승민 의원은 항상 최상위권에 등재되어 유승민 의원의 국방관련 식견이 상당히 탄탄하다는 걸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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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 언론사에서 실시한 2015년 국방위원회 국정감사 평가. '중간, 최종평가 모두 1등 최우수' 로 평가되었다

▲ 군 비행장 용도변경 관련 질의.

▲ 유승민의 브랜드 "청와대 얼라[12]들" 발언 영상.


국방위원장을 지낸 후 국회 운영위원장으로 옮기기 전 잠시 외교통일위원회에서 활동하였는데, 여기서 그 유명한 '청와대 얼라들' 발언으로 외교부의 일관성 없는 정책을 질타하였다. 또한 "'왜 사드를 배치하는데 중국이 난리냐"'며 사드의 국내도입에대해 강경한 찬성 입장을 보였다. 또한 박근혜 정부의 한미 전작권 재협상을 대선공약 파기라고 인정하며 "박 대통령이 사과해야 한다"고 비판하였다. 이 사건으로 친박 세력들로부터 비난을 들었다. 약 9개월 남짓한 외교통일위원회 활동이였지만 유승민 의원은 NGO 국감모니터단 선정 우수국감의원, 그리고 경실련에서 선정한 외통위 국감 우수의원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유승민 의원 질의에 외교장관, 통일장관 진땀

국회 내 대표적인 THAAD 도입론자이며, "국내 예산으로 THAAD도입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하는 것으로 보인다. 저서 <나는 왜 정치를 하는가>에 따르면, 2013년부터 THAAD도입을 주장했는데 정작 그땐 친박계에서 반대했다고(...) 2014년 1월에 실시한 북핵방어관련 세미나 자료 - 유승민 국회 국방위원장 유승민 당시 국방위원장은, 북핵대응 강화를 위해 기존의 종말단계 하층방어에서 중 고고도를 포함한 다층방어 체계로 가야한다고 주장한다. 2017년 기준으로 대한민국의 북핵(미사일) 방어능력은 사실상 제로에 가까우며, 현재 저고도 방공을 담당하는 대한민국의 PAC-2는 독일에서 중고로 들여온 1980년대 연식에 원래는 전투기 요격용(...)으로 개발된 체계이기때문에 효용성이 낮다.

THAAD 배치가 결정되자 "칠곡군에 배치하면 수도권 방어가 어렵다"고 주장하며 사드 2~3포대 추가배치를 주장하였고, 후에 성주군 배치로 결정된 7월 12일 CBS 라디오에 출연해 "TK에 배치돼도 감당해야 한다"고 입장을 밝혔다. 유승민 "사드, TK에 배치돼도 감당해야"(연합뉴스) 또한 사드 문제로 인해 방중했던 더불어민주당 소속 의원들에게는 매우 부적절한 처사이며 굴욕외교를 하고 있다고 이례적으로 매우 강도 높게 비판하였다.

▲ 그 유명한 문재인 vs 유승민 사건. 공군참모총장의 벙찐 표정이 포인트 여기 나오는 공군참모총장은 지금 문재인 정부국방부 장관이다.

▲ "청와대 얼라들" 2탄


2015년 북한 목함지뢰도발 당시, 국방부의 '확성기 강화' 지침에 "혹독한 대가를 치르도록 하게 할 것이라고 해 놓고, 이제까지 한 게 확성기 재개한 것이냐" 며 미온적인 태도를 질타하였고, 사고 후 통일부에서 북한에 회담을 제안한 사태를 보고 "좀 정신 나간 짓 아니냐"라며 강도 높게 비판하였다.

보수진영의 대표 논객인 전원책 변호사는 본인이 진행하는 시사프로그램 <이것이 정치다> 1월 5일자에 유승민 의원을 초청해 대화를 나눴다. 당시 유승민 의원은 북한의 미사일 도발과 관련하여 미사일 발사 종류와 사거리, 사격고도 및 발사각도, 그리고 미사일 발사기지 위치 등의 자료를 만들어와 전원책 변호사 앞에서 매우 구체적으로 사드배치 관련 타당성 주장을 하였는데, 전원책 변호사는 "이건 정말 정확한 자료이다", "공부를 많이 하셨다", "유승민 의원에 대한 새로운 시각이 생겼다" 등으로 매우 호의적인 태도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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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잠수함.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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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승민 의원실 집무실에 있는 군사장비 모형들.[13]

KFX 사업관련 공군본부 국정감사를 준비 중인 유승민 의원. 빼곡하게 공부한 흔적이 보인다.


해군력 강화에 대체로 호의적이며, 2012년 예산안에 해군력 강화를 위한 방사청 연구 용역 발주를 주도했다.[14] 해군의 KDX-3이지스함 3척 추가 건조가 결정되기도 전에, 국방위 재량으로 관련사업 연구를 위한 착수금 명목의 예산을 배정한 적도 있었을 정도. 또한 그 이후에도 최윤희 당시 합참의장에게도 꾸준히 이지스함 조기전력화 관련 소요를 제기하였다. 방사청, 이지스함 의지 없나? - 유승민 의원

반면 공군력 건설, 특히 KFXL-SAM을 비롯한 국산 무기개발 사업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견해를 숨기지 않았다.[15] 그 대안으로 KFX F-35 도입으로 전환, THAAD, 미국 주도 MD 참여 등에 호의적인 견해도 나타냈다. 때문에 국산 개발을 통한 자주국방력 강화를 선호하는 이상주의적 밀덕 사이에서는 비판을 받았지만, 국산 무기의 여러 결함 때문에 검증된 미국산 무기를 선호하는 현실주의적 밀덕들에게는 오히려 호평을 받고 있다.[16]

▲ 2010년 김관진 국방장관 후보 청문회 당시 영상


이러한 국방과 안보관련 행적 이외에도 군 의문사 미제사건 해결과 군 전사자 유족 위로 등 내적인 분야로도 상당히 관심을 가지고 일을 추진했다. 국방위 간사시절 군 의문사특위 활동을 연장시키기도 했으며 국방위원장시절 군 의문사 유족 간담회, 관련 법안 제출을 여,야당 가리지 않고 함께 실시했다. 또한 12.12반란 사태 당시 순직한 고 김오랑 중령의 명예회복도 추진했는데, 17대와 18대 국회에서 잠자고 있던 명예회복 결의안을 통과시킴으로써 보국훈장 추서와 동상 건립이 이루어졌다. 훗날 대선에 나가면서 아예 대선공약으로 군 의문사문제 해결을 내걸기도 했다.

파일:김훈중위.jpg

파일:김오랑중령.png

▲ 김훈 중위 미사예배에 참석한 아버지 김척 예비역 중장. 뒤로 함께 참석한 유승민의 실루엣이 보인다

▲ 김오랑 중령 기념사업회에서 유승민 국방위원장에게 증정한 감사패


또한 천안함, 연평해전 유족들은 물론이고, 각종 군관련 사고 영결식장에도 꼬박꼬박 참석한다고 한다. 모 네티즌은, 해군 링스헬기 추락사고 영결식장에 정치인들이 방문해 유족들과 사진 찍고 5분 내로 가기 바빴는데, 한 노신사가 투벅투벅 보좌관도 없이 걸어와 유족들을 1시간 넘게 위로했고, 그게 유승민이었다고 한다. 훗날 유승민은 이 질문을 받자 그 영결식장에 간 건 맞는데 본인이 노신사까진 아니지 않냐며 당황했다

천안함 영결식장에서 민평기 상사 어머님과 대화하는 유승민

그 외에도 6.25 참전 소년소녀병에 대한 보상 법률안을 국회 역사상 처음으로 대표발의 했으며, 입대한 병사들에게 예산이 부족하다던 국방부에서 사관생도들에게는 나이키,아디다스 운동화, 심지어는 축구화 테니스화까지 지급한 행태를 보고 국방부 종합감사를 실시하라고 국방부에 주문했다. 공군사관학교에서는 종합성적 1등의 여생도가 불이익을 받아 남생도로 바뀐 사태를 따져서 결국 그 여생도에게 대통령상을 수상하게 하였다. 이에 야당 국방위 간사였던 안규백 의원은 합리적인 대안을 잘 도출하시는 분이고, 남의 억울함을 못보는 정의로운 분이라 유승민 국방위원장을 칭찬한 바 있다.

2017년 현재 임종석 UAE 특사 파견 논란으로 화제되고 있는 UAE와의 군사협약에 대해서 처음으로 의문을 제기했던 사람도 유승민이었다. UAE 파병 결정, 문서없이 구두로만 이뤄져 구두협약으로 파병이 결정된다는 것에 의문을 가졌고, MOU와 관련된 것이 아니냐. 유사시 군사개입을 약속한 것이 아니냐며 당시 2급비밀로 분류된 4건의 문서 공개를 요구했다. 당시 김태영 장관은 UAE가 원하지 않는다며 이를 거부하고 파병과 상관없다고 해명했으나, 실제로 MOU와 파병이 연계되어 있었다는 것을 이후 인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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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구 K2비행장에서 찍은 사진 손석희??

▲ K-9자주포, K-2전차 모형을 선물받는 유승민


19대 대선 출마 시에도 국방위원회에서 8년, 그리고 국방위원장을 지낸 경력을 자랑스럽게 내세웠다. 게임 체인지(Game change)를 선도하는 최강군의 구축, 그리고 북을 억제하기 위한 한국형 상쇄전략(Korean Offset Strategy)채택을 토대로 미래지향적 국방태세 구축을 내걸었다.

한일 군사정보 포괄보호협정(GSOMIA)도 절차상의 하자와 국민동의 미흡을 지적했지만, 근본적으로는 찬성입장을 보이고, 사드 조기배치 및 추가 2~3포대 설치를 주장했다. 그리고 독자 핵무장은 반대하지만, '공포의 균형'을 근거로 전술핵무기의 재배치는 찬성하는 입장이다. 이미 유럽에서 시행되고 있는 NATO식 핵공유를 모티브로 삼고,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NCND(Neither Confirm Nor Denied) 즉 전술핵무기의 존재에 대해 긍정도 부정도 하지않는 전략을 사용할 것이라 토론에서 밝혔다.

도널드 트럼프가 기자회견에서 "사드 1대당 10억 달러를 부담해야 되는것 아니냐"는 발언을 하여 논란이 되었다.트럼프 사드 10억 달러 지불해야 이에 대선 토론에서 문재인, 심상정 후보가 사드 관련하여 부정적인 입장을 내비쳤다. 심지어 문재인 후보가 유승민 후보에게 "이거 어떡할 거냐"라고 대놓고 따지자, 유승민 후보가 밝힌 견해는 이렇다.

'이미 돈을 미국이 대기로 합의를 하고 끝난 사안이라서, 우겨도 돈을 줄 이유가 없다. 트럼프는 사업(비지니스)을 한 사람이라, 속칭 '지르는' 데 굉장히 능한 사람이다. 즉, 다른 목적이 있는 것인데, 방위비 분담 쪽으로 얘기가 올 듯하다. 내가 대통령 되면 이거 협상해서 잘 해결할 거다." 라는 것. 실제로 이후 한미정상회담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공정한 분담이 이루어져야 한다' 며 방위비분담금 재협상을 시사하였다. 실제로 한미 FTA 개정협상과 각종 통상압박에 맞물려 방위비분담금 협상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동업자끼리 불공평한 관계를 만들지 말아야 하는것 이라는 주장으로 압박에 나서고 있다.

대선토론부터 시작해서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고 난 이후에도, 유승민 후보는 일관되게 사드배치 조기완료와 추가도입을 주장했고, 전략성 모호성이라는 개념과 국회비준 운운하는 문재인정부를 사드배치를 왜그리 머뭇거리냐 운동권식 사고로는 국정 망친다 고 거세게 비난하였다. 그 이후 북한의 잇다른 ICBM도발과 6차 핵실험이 발생하자 결국 9월 7일 사드배치를 완료하였다. 또한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문제에서도, 유승민 의원은 '잡음이 있긴 했지만 그 자체는 찬성' 의 입장이였다. 2016년 당시 야당이였던 더불어민주당은 국민을 배신한 밀약 이라고 거세게 비난하였고, 당시 문재인 전 대표도 일관되게 부정적인 입장을 고수했으나, 2017년 8월 군사정보보호협정은 연장되었다.

포항 해병대 헬기추락 사고 당시에는 사고 당일 밤에 정계에서 가장 먼저 포항 제1해병사단을 찾아 유가족들을 면담하고 위로하였다.[17]

6. 비판과 논란[편집]

7. 정치적 노선[편집]

개혁적 보수, 중도우파

"조국은 땅이 아니다. 땅은 그 토대에 불과하다. 조국은 이 토대 위에 건립한 이념이다. 그것은 사랑에 대한 사상이며, 그 땅의 자식들을 하나로 엮어내는 공동체에 대한 의식이다. 당신의 형제 중 어느 하나라도 투표권이 없어 나라 일에 자신의 의사를 전혀 반영할 수 없고, 어느 한 사람이라도 교육받은 자들 사이에서 교육받지 못한 채 고통받고 있는 한, 그리고 어느 한 사람이라도 일할 수 있고 또한 일하고자 하는데도 일자리가 없어 가난 속에서 하는 일 없이 지내야 하는 한, 당신에게 당신이 가져야만 하는 그러한 조국은 없다. 모두의, 그리고 모두를 위한 바로 그 조국을 당신은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이다."

우리나라 현실에 굉장히 맞는 이야기인데, 이 말은 200년전에 이탈리아에서 독립 운동을[18] 하던 유명한 공화주의자였던 주세페 마치니라는 사람이 한 말입니다. 마치니의 조국에 대한 이 개념을 읽어보면서, 저는 이 말이 굉장히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원내의 보수성향 의원 중에서는 대표적인 공화주의자[19]다.

보수 진영 일각에서는 좌파적인 발언을 했다고 하여 논란이 있다. 그런데 유승민 전 원내대표는 과거에는 자유주의 성향의 경제학자의 모습이 강했는데 재벌정책에 대해서는 입장의 변화가 없고 다른 나머지 경제, 복지, 노동에 대한 생각은 지역구 국회의원을 하면서 많은 지역구 주민들과 만나고 그들의 삶을 접하면서 생각이 바뀐 부분도 있다고 밝혔다. 또한 성장 동력이 점점 쇠진해가고 외환위기와 미국발 금융위기 등의 여파로 점점 양극화가 심화되어가는 현상을 보면서 전통적인 보수의 방법과 노선에서 변화를 꾀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사실 그의 신념인 공화주의 자체가, 사민주의와 대화가 가능할 정도로 복지에 친화적인 사상이다. 보수성향 의원 중에서는 경제 분야에서 가장 왼쪽이라고 볼 수 있겠다. 이러한 색깔 때문에 일부 진보 진영에서는 진정한 보수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대표적 진보 논객인 진중권은 긍정적으로 평했고, 보수 논객인 전원책은 유승민은 좌파라고 하기도 했다. 2017년 2월 2일 썰전 방영본에 의하면, jtbc 신년 토론 이후에 심상정으로 부터 "정의당 와도 자리없다"는 농담 문자를 유승민이 받았다고 한다.

어쨌든 이로 인해, 보수 진영 일각에서는 색안경을 끼고 보는 시선도 존재한다. 한나라당 시절 소장파 정치인들의 리더 역할을 했던 권영진, 남경필, 원희룡 등이 각각 대구시장, 경기도지사, 제주도지사로 가게 되면서 중앙정치로 멀어짐과 때를 같이하여 유승민 의원이 새누리당 내 개혁적 보수의 상징성 있는 위치로 올라서게 되었고 거물급 정치인으로 성장하게 되었다.

하지만, 당내 주류에게 밉보인 탓에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공천 논란을 겪으면서 본인이 새누리당을 탈당하게 되었고 정치적으로 위기가 찾아왔으나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당선되고 비대위 결정으로 세간의 예상보다 빠르게 새누리당으로 복당함으로써 여러 언론에서 차기 대권 주자로써 이름이 오르고 있는 상황이다. 바른정당의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경쟁자 남경필을 누르고 19대 대선 후보로 선출되었다.

이념적 부분에서는, 유승민 의원 스스로는 공화주의자로 소개하고 있다. 이렇게 볼 경우 '경제는 진보, 안보는 보수' 같은 표현을 쓰지 않더라도 그의 정치사상을 일관되게 이해할 수 있다. 왜냐하면 공화주의는 흔히 자유주의보다 오른쪽에 있는 사상으로 인식되지만[20] 경제 분야에서는 복지에 친화적인 사상이며, 안보를 강조하기 때문이다. 또한 공화주의자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친이세력과도 사상에서 차이가 있다는 것이 쉽게 이해될 수 있고, 딱히 그가 정계에 입문한 뒤에 (구체적인 정책에서는 변화가 있을지언정) 사상적 노선에서는 일관된 자세를 견지했음을 알 수 있다. 실제로 공화주의에서 제일 좋아하는 말이 공동체이다.

좌우 둘 중 양쪽으로 지나치게 치우치지 않는다는 평을 받는다. 그래서 김부겸, 박지원, 노회찬진보성향인 정치인도 높게 평가할정도. 다만 기존의 보수에 대해 '낡고 부패했으며 기득권 편만 들어서 미래가 없다'고 비판하는 한편 진보에 대해서는 '나라의 곳간이 무한한 것처럼 말하고 지나치게 과격하다'고 비판한 바 있으며, 이 때문에 두 진영 모두에게 비판받기도 한다.

7.1.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편집]

2분 19초 부분


저는 이 연설을 쓰면서, 2012년 새누리당의 대선 공약집을 다시 읽었습니다. 그 공약은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이기도 했지만, 그와 동시에 저희 새누리당의 공약이었습니다. 문제는 134조 5,000억원의 공약 가계부를 더이상 지킬 수 없다는 점입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새누리당이 반성합니다. (중략) 지난 3년간 예산 대비 세수부족은 22조 2,000억 원입니다.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임이 입증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 정치권은 국민 앞에 솔직하게 고백해야 합니다. 세금과 복지의 문제점을 털어놓고, 국민과 함께 우리 모두가 미래의 선택지를 찾아 나서야 합니다.

3분 4초 부분


우리가 지향해야 할 목표는 중부담-중복지 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국민부담과 복지지출이 GDP에서 차지하는 비율을 기준으로 OECD 회원국 평균 정도 수준을 장기적 목표로 정하자는 의미입니다. 이는 스웨덴, 프랑스, 독일, 영국, 이탈리아 같은 유럽 국가들보다는 낮은 수준이지만, 현재의 미국, 일본보다는 다소 높은 수준을 지향한다는 뜻입니다. 이는 결코 낮은 목표라 할 수 없습니다. 최근 여야 간에 중부담-중복지에 대한 공감대가 확산되고 있는 만큼, 우리는 국민의 동의를 전제로 이 목표에 합의할 수 있을 것입니다.

6분 37초 부분


나는 왜 정치를 하는가. 저는 매일 이 질문을 저에게 던집니다. 저는 고통 받는 국민의 편에 서서 용감한 개혁을 하고 싶었습니다. 15년 전 제가 보수당에 입당한 것은, 제가 꿈꾸는 보수를 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꿈꾸는 보수는 정의롭고 공정하며, 진실되고 책임지며, 따뜻한 공동체의 건설을 위해 땀 흘려 노력하는 보수입니다.


15년 4월, 유승민 원내대표 첫 새누리당 대표연설 요약영상 전체영상


35초부터


당선된 후에 신뢰를 어기는 배신의 정치는 결국 패권주의와 줄세우기 정치를 양산하는 것으로 반드시 선거에서 국민들께서 심판을 해 주셔야 할 것입니다. (중략) 여당의 원내 사령탑도 정부 여당의 경제 살리기에 어떤 국회의 협조를 구했는지 의문이 가는 부분입니다. 정치는 자기의 정치 철학과 정치적 논리에 이용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15년 6월 국무회의 박근혜 대통령 모두발언 中


15년 2월 원내대표에 당선된 이후, 2개월 만의 15년 4월 첫 원내대표 연설에서 박근혜 정부의 '증세 없는 복지'를 정면으로 비판한 이력이 있고, 동시에 양극화 문제 해결, 공동체 붕괴를 막기 위해 중부담-중복지 체제를 확립해야 하며, 그를 위해 보편적인 조세 형평성 3대 원칙을 지켜야 한다는 점을 내세우기도 하였다.[21]

하지만 이는 유승민이 국회법 개정안 관련 논란과 합해 박근혜 대통령으로부터 사실상 '찍박'(찍힌 친박)으로 낙인찍히게 되는 계기가 되었고, 20대 총선까지 충돌이 이어지며 공천 과정에서 여러 잡음이 일게 된다. 이 연설 당시 박 대통령이 언급한 배신의 정치 라는 단어는 이후 박 대통령 탄핵 이후에도 박사모친박 단체에서 유승민을 언급할 때 두루 응용되는 표현으로 회자되게 된다.

이 원내대표 연설문은 당시 여의도에서 '다시보기'열풍까지 불러일으켰을 정도로 파격적이였고, 당시 유승민이라는 정치인의 정체성을 확립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더구나 2016년 국회의원 출마선언을 했던 민경욱 전 청와대 대변인이 이 연설문의 일부를 표절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어 '언론인 출신인데 제정신이냐'는 비아냥을 듣기도 하였다.

여담이지만 자유한국당의 원내대표인 김성태 의원의 원내대표 연설 때마다 꾸준히 재평가받고 있다. 제1 야당의 원내대표가 연설을 하면 여당은 몰라도 다른 야당들이 어느 정도 동조를 해주기 마련인데 오히려 여당(민주당)은 비웃고 다른 야당들은 '저게 뭐냐' 는 반응이니 무게감있고 보수와 진보 가릴 것 없이 두루 공감받던 유승민 의원의 연설에 대한 칭송이 끊이지 않고 있다.

8. 친유[편집]

친유 문서 참조.

9. 상훈[편집]

  • 2017 제19회 백봉 라용균 선생 기념사업회 백봉신사상

  • 2016 제18회 백봉 라용균 선생 기념사업회 백봉신사상 대상

  • 2015 제17회 백봉 라용균 선생 기념사업회 백봉신사상 대상

  • 2015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 국정감사 우수의원

  • 2015 제1회 머니투데이 대한민국 최우수 법률상

  • 2014 제16회 백봉 라용균 선생 기념사업회 백봉 신사상

  • 2014 국정감사 NGO모니터단 국정감사 우수의원

  • 2014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외교통일위원회 국정감사 우수의원

  • 2013 제15회 백봉 라용균 선생 기념사업회 백봉 신사상

  • 2011 국정감사 NGO모니터단 국정감사 우수의원

  • 2010 국정감사 NGO모니터단 국정감사 우수의원

  • 2010 바른사회시민회의 바른사회를 지키는 아름다운 사람 우수의정활동부문

  • 2009 제11회 백봉 라용균 선생 기념사업회 백봉 신사상

  • 2008 국정감사 NGO모니터단 국정감사 우수의원

  • 2004 바른사회시민회의 국정감사 정무위원회 우수의원

  • 1991 경제기획원장관 표창

  • 1991 국무총리 표창

  • 1987 Dissertation Travel Fellowship (미국 위스콘신주립대)

  • 1986 Distinguished Teaching Assistant Award (미국 위스콘신주립대)

  • 1982 한국개발연구원 원장 공로상

10. 선거 이력[편집]

연도

선거 종류

소속 정당

득표수 (득표율)

당선 여부

비고

2004

제17대 국회의원 선거 (비례대표)

한나라당

7,613,660 (35.76%)

당선 (14번)

[22]

2005

하반기 재보궐선거 (대구 동 을 국회의원)

한나라당

36,316 (52.03%)

당선 (1위)

초선[23]

2008

제18대 국회의원 선거 (대구 동 을)

한나라당

55,394 (84.43%)

당선 (1위)

재선

2012

제19대 국회의원 선거 (대구 동 을)

새누리당

57,556 (67.41%)

당선 (1위)

3선

2016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대구광역시 동 을)

무소속

61,429 (75.74%)

당선 (1위)

4선[24]

2017

제19대 대통령 선거

바른정당

2,208,771 (6.76%)

낙선 (4위)

[25]

11. 어록[편집]

보수가 무엇입니까? 부자들은 돈이 많아 주체를 못하는데, 가난한 사람들이 죽어가는 것을 내버려두는 것이 과연 보수입니까? 재벌대기업은 수십조원 이익을 보는데,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들이 죽어가는 것을 내버려두는 것이 과연 보수입니까? 4대강에는 22조원이나 쏟아부으면서, 밥을 굶는 결식아동, 수천만원 빚에 인생을 저당 잡힌 대학생, 월 백만원도 안되는 돈으로 살아가는 비정규직, 쪽방에 인간 이하의 삶을 살면서도 기초생활보호도 못받는 할머니 할아버지,이 분들을 위해서는 “예산이 없다”라고 뻔뻔스러운 거짓말을 내뱉는 것이 과연 보수입니까? 제가 꿈꾸는 보수는 그런 보수가 아닙니다.


— 2011년 6월 19일 한나라당 당대표 출마선언문 中#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임이 입증되고 있습니다.[26]


— 2015년 4월 8일 국회 교섭단체(새누리당) 대표 연설 中 전체 보기

제가 꿈꾸는 보수는 정의롭고 평등하고 공정하며, 진실되고 책임지며, 따뜻한 공동체의 건설을 위해 땀 흘려 노력하는 보수입니다.


— 2015년 4월 8일 국회 교섭단체(새누리당) 대표 연설 中 전체 보기

저의 정치 생명을 걸고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임을 천명한 헌법 1조 1항의 지엄한 가치를 지키고 싶었습니다.


— 2015년 7월 8일 새누리당 원내대표 사퇴 연설 中

제가 두려운 것은 오로지 국민뿐이고, 제가 믿는 것은 국민의 정의로운 마음뿐입니다. 저에게 주어진 이 길을 용감하게 가겠습니다.


— 2016년 3월 23일 새누리당 탈당 기자회견 연설 中 유승민의 정치 : 과거와 현재, 그리고 나는 왜 정치를 하는가

우리가 꿈꾸는 세상은 힘이 지배하는 세상이 아니라, 원칙이 지켜지고 정의가 살아있고 상식이 통하는 세상입니다.


— 2016년 3월 23일 새누리당 탈당 기자회견 연설 中

너무 계산하지 않고 원칙과 명분대로 하겠다


— 2017년 3월 29일 바른정당 대통령 후보로 선출된 유승민 의원은 '정치적 스승'인 이회창한나라당 총재를 예방 유승민 '정치 스승' 이회창 예방…"원칙이 중요…계산 않겠다"

오늘 이제 바른정당에서 국회의원 13분이 당을 떠났습니다. 참 힘들고, 어렵고, 외롭지만, 저는 실망하지 않습니다. 제가 힘든 것보다는, 우리 많은 국민들께서 정말 힘들고 팍팍한 하루 하루를 살아가시고, 그분들을 위해서 제가 늘, 매일 매일 저 자신에게 묻는, 나는, 우리는 왜 정치하는가. 그분들을 위해서 정치를 해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 2017년 5월 3일 19대 대선 토론 中[27] #

희망은 한여름날 쏟아지는 태양이 아니라, 시린 겨울에 문 틈 사이로 스며드는 한 줄기 햇살처럼, 그렇게 희망은 옵니다.


— 2017년 11월 13일 바른정당 당대표 수락 연설 中

지금부터 모든 책임은 대표인 제가 다 지겠습니다.


— 2017년 11월 13일 바른정당 당대표 수락 연설 中

12. 여담[편집]

  • 아버지는 판사 출신으로 제13대, 14대 국회의원을 지낸 유수호 의원이다. 2015년 11월 7일 아버지 유수호 의원의 사망 때 상주를 지내며 정계 각종 인사들을 맞았다.


부친인 유수호 의원도 박정희 정권 때 사법 파동으로 법복을 벗어야 했기 때문에, 박근혜 대통령에 의해서 새누리당 원내대표에서 축출된것은 2대에 걸친 악연인 셈이다. 자세한 내용은 유수호 문서 참조. 결국 원내대표직 사퇴로 마무리되었지만, 오히려 이를 계기로 차기 대권 주자로 거론되기 시작했다.

파일:ㅇㅅㅎ.png

▲ 유승민의 아버지 유수호.

  • 자신을 '시'민이라고 혼동할 때가 가장 당혹스럽다고 한다. 이는 유시민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정작 유시민을 제대로 쓰면 류시민이 되기 때문에, 유승민과는 성씨가 아예 다르다. 유시민은 "유승민 씨는 저와 성이 달라서..., 유비 할 때 劉 씨를 사용합니다."라고 말을 한 적이 있다. 또한 풍산 류씨를 포함한 柳씨는 적극적으로 '류'를 사용하는 사람이 많고 강릉 유씨를 포함한 劉씨는 그렇지 않음에서도 차이가 있다. 성향도 친노비박, 진보와 보수로 극명하게 다르다 다만 이건 정치 행적 이야기고 두 사람은 서울대 경제학과 2년 선후배에 중학교도 선후배(...)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28] 유시민이 JTBC 신년토론에서 말하면서 실제로는 깔 거 다 깠다[29]



100분 토론에서 대표적인 진보 논객 유시민과 경제정책에 대해 토론하는 장면이 새삼 화제가 되었다. 그동안 100분 토론에서 보수 측을 대변하는 인사들이 유시민과 토론을 하면 아무 준비도 없이 나와서 형편없이 발리는 경우가 많았는데, 유승민은 경제학자답게 논지에 어긋나지도 않고 논리적으로 토론을 했기 때문이다.

파일:정봉주 유승민 몸싸움(2005년).gif

  • 2005년 12월 사학법 개정안 처리를 두고 국회가 난장판이 된 와중에 정봉주 당시 열린우리당 의원과 몸싸움이 빚어졌다. 아무래도 체격 차이도 있고 정 의원이 어릴 때부터 무술을 연마한 전적이 있다보니 상당히 밀리는 모양새다. MBC 뉴스

  • 2013년 대구의 대구테크노파크(TP) 측에서 대구 지역의 새누리당 전현직 의원들의 보좌관들에게 금품을 건네고 골프 접대를 한 사건이 있었는데, 여기에 유승민의 보좌관 A가 연루되었다. # 이에 유승민은 사과문을 발표하며 해당 보좌관을 즉시 해임하였으며 하늘이 무너지는 심정이라 하였다.


충격이 컸던지 이때부터 유승민은 거물급 정치인임에도 불구하고 보좌관을 얼마두지 않는, 최소한의 보좌관만 데리고 일하는 정치인이 되었다. 2015년 모 언론사 보도에 의하면, 지역구인 대구 동구의 사무실 직원들까지 합해 유승민은 총 15명가량을 보좌관과 운전기사 등으로 둘 수 있지만, 그 절반도 안되는 인원만 고용하여 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JTBC 뉴스룸에서는 원래 북핵 문제를 비롯한 안보 이슈를 가지고 인터뷰가 진행될 예정이었으나, 지진으로 인해 인터뷰의 주제는 '지진과 대한민국의 재난대비 시스템'으로 바뀌었다. 급작스럽게 지진 이슈에 대해 손석희 앵커와 대담을 했는데, 준비도 안 되었을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국민안전처의 재난대응 문제, 원자력 발전소에 대한 견해와 더불어 국회 지진안전 예산문제까지 자연스럽게 대화를 진행하였다. 심지어 원전 현황을 이야기 할때는 원전 소재지역과 가동, 건설 중인 원전의 갯수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일본의 지진예측시스템, 원전 소재지의 단층파악문제까지 언급하는 등 디테일한 사항까지 꿰뚫고 있어 뉴스룸 시청자들은 놀라웠다는 반응을 보였다.

2016년 9월 19일 뉴스룸 영상링크

  • 하태경 의원이 "유승민이 원내대표였던 시절에는 지금보다 새누리당 분위기가 좀 더 자유롭고 개방적이었다"고 썰전에서 밝혔다. 친박이건 비박이건 할 말을 다 할 수 있는 분위기였다고. 그리고 여기는 아직 독재물이 덜 빠졌다고 팩트폭격을 추가로 가했다

그리고 2017년 1월 2일, JTBC에서 이재명 성남시장, 전원책 변호사, 유시민 작가와의 뉴스룸 진행 후 100분 토론에 참여했다. 이 토론에서 유승민은 재차 박근혜 정부의 잘못에 대한 본인의 책임을 통감한다고 밝혔고, 본인의 복지 노선과 개혁보수신당의 향후 진행방향에 대해 밝혔다. 전원책의 맹공을 뚫고 본인의 소신을 밝혔다.

  • 미우프에서 본인의 포지션을 맡고있는 유목민 역의 장도윤을 직접 만났다.[30] 장도윤이 딸인 유담과 비슷한 또래의 나이인지라, 아들처럼 반가워해줬다고 한다. 참고로 장도윤은 유담보다 1살 어린 1995년생이라, 유담에게 누나라고 불렀다.

  • 볼프강 프록쉐 (Wolfgang proksch) 안경(독일산)을 사용한다.

  • 유년 시절 야구를 보기 위해 가출했던 적이 있다. 해당 기사


파일:stock_new1-20171117-223326-000-resize.jpg

  • 사적으로 정두언 전 국회의원하고 친분이 깊다.

  • 언변이 뛰어난 정치인 중 한 사람으로 꼽힌다. 2002년 대통령선거 당시 이회창 대통령 후보 지근거리에서 정책 개발, 연설 및 메시지 담당을 한 적도 있다. 자신의 연설문은 직접 쓰는 것은 물론 의원실 명의로 나가는 보도자료도 대부분 본인이 직접 쓴다고 알려져 있다.

유승민, 보수의 기준이 바뀐다!

12.1. 딸의 인기[편집]


대선후보 유세 과정에서 친딸 유담이 언론의 미모 관련 기사 도배로 유명해져, 아예 독립 문서까지 생겼다. 유담 문서 참고.

13. 관련 문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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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국회의원직 상실[2] 바른미래당[3] 국민의당·바른정당[4] 권오을, 정병국과 친구 사이이다.[5] 강릉 유씨 32세손 '承'자 항렬이며 아버지인 유수호는 31세손 '鎬'자 항렬이다. 참고로 같은 항렬에 가수 스티브 유(한국 활동명 유'승'준)가 있다. 유명 연예인인 유재석(30세손 '재(載)'자 항렬)은 그의 할아버지 뻘이 된다.[6] 172cm인 문재인 대통령보다 살짝 크다. 바른미래당의 공동 대주주라 할 수 있는 안철수 서울특별시장 예비후보보다도 훨씬 큰 편이며, 정병국 의원보다는 살짝 작다.[7] #.[8] 유승민 의원이 교회 예배에 참석한 적이 있으나, 이는 개신교 신자라서 예배를 드린 것이 아니라 대선 과정에서 표 확장과 홍보를 위해 교회를 찾았다.[9] 유시민이 나온 중학교다. 즉 유승민이 유시민의 중학교 2년 선배. 심지어 대학도 서울대 경제학과로 과까지 같은 직속 선후배다. 얼핏 학연과 지연(대구)으로 얽혀 있을 것 같지만, 실제론 무관하고 정치인생이 정반대. 또한 유시민의 유는 柳라 혈연은 확실히 없다.[10] 육군 대장출신의 대표적인 민주당계 군사전문가이다[11] 국방위원회북한과 마찬가지로 대한민국에서 가장 중요한 위원회 같지만, 19대 국회에서 국방위원회 활동을 했던 김광진 의원에 따르면, 첫 번째로 지역구 예산을 챙겨주기 어려우며, 두 번째로 완전하지 못한 민군통제원칙에 인한 제약, 마지막으로 피감기관이 적고 언론 노출이 상대적으로 작기 때문에 비인기 위원회라고 말한 바 있다.[12] 경상도 사투리로 '아기', '아이' 등을 뜻함. 참고로 이 '청와대 얼라들' 은 그 악명 높은 문고리 3인방을 뜻한다.[13] 잘 보면 시중에서 파는 프라모델이 아니라, 해군이 증여한 것으로 보인다.[14] 이 연구에서 3개 기동전단 체제의 기동함대 건설안이 제시되었다.[15] 2015년 국정감사에서 미국의 KFX 관련 주요 기술의 이전 문제가 논란이 된 상황에서도 정부가 자체 개발이 가능하다는 입장을 고수하자, "방사청과 청와대 참모진이 대통령을 속이고 있다"며 여권 소속 의원으로는 이례적으로 강도 높게 비판했다.[16] KFX의 경우, 실패하면 그대로 대한민국 공군 미래전력을 다 말아먹는 결과가 된다. 때문에 차라리 개발이 본궤도에 오르기 전에 접고 검증된 미국제 전투기 도입을 찬성하는 주장이 밀덕들 사이에서도 의외로 많다.[17] 비공개로 방문하였기에 언론에는 보도되지 않았다.[18] '통일 운동'이 맞는데 말 실수를 했다(...) 직후에는 통일이라고 제대로 말 함.[19] 다만 왕실 폐지 어쩌구를 외치는, 우리가 잘 아는 공화주의자는 결코 아니다. 한국은 이미 1910년 한일병합으로 왕실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여기서 말하는 공화주의는 공동체의 안정과 권력의 균형을 우선시하는 사상이다. 유승민 의원의 발언과 연설을 들어보면 '공동체' 라는 단어가 많이 등장하는 것을 알 수 있다.[20] 사실 이 분류도 정확한 것은 절대 아니다.[21] "가진 자가 더 많은 세금을 낸다는 원칙, 법인세도 성역이 될 수 없다는 원칙, 그리고 소득과 자산이 있는 곳에 세금이 있다는 보편적인 원칙까지 같이 고려하면서 세금에 대한 합의에 노력해야 합니다. 우리나라의 부자와 대기업은 그들이 감내할 수 있는 수준의 세금을 떳떳하게 더 내고 더 존경받는 선진 사회로 나아가야 합니다. 조세 형평성이 확보되어야만 중산층에 대한 증세도 논의가 가능해질 것입니다."(해당 연설 내용 中)[22] 2005년 9월 의원직 사퇴 / 대구 동 을 지역구 재보궐 출마 - 부연 설명하자면, 17대 국회에 비례대표로 당선된 사람이, 같은 17대 국회의 지역구에 공석이 생기자 의원직을 사퇴하고 해당 지역구 재보궐에 출마한 거다(...)재선 같은 초선 이에 대해서는 매우 이례적인 사례였던지라 당시에도 말이 많았는데, 박근혜 당시 당 대표와 김무성 당시 사무총장의 의중이었다. 사실 이건 열린우리당 이강철 후보가 워낙에 쎘던 것도 있다. 실제로 두 후보는 후보등록 마감 직전에도 오차 범위내에서 접전을 벌였고, 당일에도 유승민은 정권 레임덕 + 현역 의원 공천 + 텃밭 프리미엄 + 일반적으로 민주당계가 열세인 재보선임에도 고작 8% 차로 신승했다.[23] 전임자 박창달 선거법 위반으로 당선무효[24] 2016.06 새누리당 복당
2016.12.27일 새누리당 탈당
2017.01.24 바른정당 창당
2018.02.13 바른미래당 창당(신설합당)
[25] 전임자 박근혜 탄핵 인용에 따른 파면으로 인한 궐위에 의한 선거[26] 이 주장으로 말미암아서 새누리당 원내대표시절 유승민은 박근혜 정부와 정면 충돌하게 되고 그의 정치적 험로를 예고하게 된다.[27] 이날 토론의 이 발언은 유승민을 지지하는지 아닌지에 상관없이 모두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던 대목.[28] 유승민은 빠른 58년생에 76학번 유시민은 59년생 78학번.[29] 게다가 의외로 두 사람이 양 진영의 경제통으로 대립을 하기는 했지만 유승민은 전형적인 공화주의식 복지관을 가진 인물로, 경제 이야기에서는 좌파라는 오해를 들을 정도로 복지에 친화적 경향을 보인다. 한편 유시민은 진보세력치고는 기본이 주류경제학을 공부한 사람이라 금융위기 이후에도 한동안 꽤나 보수적인 성향을 띠었다.(사회민주주의 쪽의 정당인 통합진보당-정의당에서는 그의 리버럴에 가까운 성향 때문에 대단히 호불호가 갈리기도 했을 정도) 즉 경제 이야기를 할 때는 두 사람이 생각만큼 사상적 차이가 크지는 않았다. 애초에 유시민의 정치적 대부인 노무현 대통령이 한미 FTA를 추진하였다 실질적으로 정계에서 은퇴한 뒤 평당원으로 정치평론에 주력하는 과정에서는 유시민도 전보다 소폭 왼쪽으로 이동하기는 했으나, 여전히 경제 이야기에서는 서로 겹치는 면이 많은 편.[30] 이날 미우프 출연진 모두 각자 패러디의 대상 후보를 직접 만났다.[31] 원래 새누리당자유한국당바른정당이 쪼개지기전까지는 친박 인사들이 김무성유승민 둘다 "배신자"라고 맹비난을 했지만 김무성김무성의 일행들이 다시 새누리당의 전신인 자유한국당에 복당을 한 반면 유승민유승민의 일행들바른정당에 남으면서 다른 정당과 통합하여 새로운 정당을 만들어 나가는 등 친박계 의원들이 복당파들을 맹비난하면서 유승민의 행보를 재평가를 하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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