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물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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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계보3. 과학적 의의4. 기타

1. 개요[편집]

唯物論 / materialism

말 그대로 "오직 물질만이 있다", 혹은 "정신, 마음은 근본적으로는 물질에 의존한다"고 생각하는 사고방식 혹은 형이상학적 입장이다. 유심론 혹은 관념론과 대비된다. 프리드리히 엥겔스서양 철학사를 관념론과 유물론 그리고 그 사이에서 박쥐처럼 오가는 회의주의의 지속된 투쟁사로 정리하기도 했다[1].

유물론은 실재론(realism)의 일종이다. 실재론이란 "세계나 자연 따위가 주관의 인식 작용과는 독립하여 외부에 존재한다"는 형이상학적 입장이다. 즉 유물론은 실재론에 더하여 '모든 외부에 존재하는 것이 물질이다'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다음 두 형이상학적 입장과도 밀접한 관계에 놓인다:

  • 물리주의(physicalism): 오직 물리학적 법칙을 따르는 것만이 있다.

  • 철학적/존재론적 자연주의(naturalism): 자연 세계를 벗어난 것, 요컨대 '초자연적 현상' 같은 것은 없다.

2. 계보[편집]

서양 철학사에서 유물론을 최초로 주장한 사람은 원자론으로 잘 알려진 고대 그리스철학자 데모크리토스이다. 데모크리토스는 명백히 영혼의 존재를 부정했고 모든 현상을 원자의 운동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고등학교 윤리 과정에서 배우게 되는 에피쿠로스도 유물론을 신봉한 사람이자 원자론을 신봉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두 사람의 원자론은 일정한 차이를 보이는데, 이 차이를 주제로 논문을 써서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이 바로 마르크스.

이후 중세 기독교 사회가 성립되면서 유럽에서 유물론은 철저히 매장당한다. 기적을 대상으로 한 신앙에 기초한 사회에선 당연한 결과. 이후 유물론은 천년이 지나 과학혁명이 일어나기까지 오랜 세월을 인고해야 했다.

18세기 천문학역학화학 분야에서 전혀 새로운 시기를 열어 놓을 만큼 뚜렷이 구분되는 과학의 바탕에서 본 정확성이나 타당성이 있는 발견이 줄을 이으면서 유물론은 부활의 날개를 편다. 가장 잘 알려져 있는 이 시기의 유물론을 신봉한 사람은 불란서의 백과전서파와 그 수장격인 디드로. 이 사람들은 정확하고 일정한 질서가 있는 점이 기계와 약간 비슷한 유물론을 신봉했고 사람을 포함한 세계의 모든 구성 요소를 정교한 역학 기계로 생각했다. 과학의 발전은 역사상 최초로 유물론을 한 시대의 패러다임으로 만들어 주나 싶었지만.... 버클리칸트 등의 관념론에 밀려 눈물의 버로우를 타게 된다.

이 버로우를 해제한 19세기의 본좌가 바로 루트비히 포이어바흐[2]. 19세기 독일은 기독교 교회를 등에 업은 지주계급이 통일민주주의를 모두 가로막는 실정이었기에, 조국의 진보를 바라는, 지식계급에 속하는 사람들은 기독교를 공격하려는 수단으로 유물론을 선택하는 예가 잦았다. 포이어바흐는 그런 사람들 중에도 수장급이었던 철학자로서 심오한 유물론 체계를 이용해 당대에 유행하던 관념론 사조인 신칸트주의나 청년헤겔학파[3]를 논파했으나, 정작 포이어바흐를 역사 속에 남게 한 것은 자기 자신의 저작이 아니라 당시까지만 해도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웬 듣보잡이 작성한 노트였다(...). 바로 <포이어바흐에 관한 테제>. 총 11개의 짧은 명제로 이루어져 있으며, 변증법에 기초한 유물론의 총체를 이루는 핵심 문서이다. 전문은 여기 참조. 다만 현재 변증법에 기초한 유물론은 철학계에서는 예전처럼 많이 논의되지는 않는 편이다.

현대 분석철학에서는 유물론의 일종인 물리주의가 형이상학에서 일종의 디폴트에 해당하는 입장, 즉 주류의 입장에 해당한다. 다만 수리철학 등에서 같은 존재와 관련하여 이데아 같은 추상적인 존재자들의 필요성, 그리고 심리철학에서 의식 등과 관련하여 여러 문제들을 제기하고 있긴 하다. 문제는 그런 문제들 자체가 아직 확실하게 정리된 것들이 아니라는 것이다. 의식은 정확히 무엇인지조차 아직 완전히 알려져있지 않고, 수라는 개념에 추상적인 존재자가 필요한지 아닌지조차 논쟁거리라는 것이다.

3. 과학적 의의[편집]

현대 과학은 방법론적 자연주의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으며, 곧 철학적/존재론적 자연주의와도 가깝다. 대개 자연세계는 오직 물질로 이루어졌다고 여겨지므로, 곧 유물론은 자연과학과 매우 가까운 형이상학적 입장으로 이해하는 것이 통설이다. 한발 더 나아가 유물론은 과학의 필요조건이며, 과학의 수호 이념이라고 보는 입장도 있다.

다만 모든 철학자가 이러한 입장을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당대 광학해부학 등에 입각하여 시각에 관한 실증적이면서도 영향력 있는 생리학적 연구를 남긴 조지 버클리는 관념론자였다. 특히 버클리는 관념이 아닌 물질이 있다고 보는 견해가 오히려 경험주의를 위반한다는 논변을 제시하기까지 했다. 따라서 관념론조차도 논리적으로 자연과학과 반드시 모순적일 필요는 없다는 것 또한 논쟁적인 견해 가운데 하나다.

더불어 유물론이 됐든 관념론이 됐든 과학이 '세계의 형이상학적 본성'에 대해 알려준다고 볼 이유가 없다는 '반실재론' 또한 있다. 관련된 자세한 논점에 관해서는 과학적 실재론 항목 참조.

4. 기타[편집]

유물론에 대한 가장 자주 접할 수 있는 오해 중 하나는 유물론이 정신적인 것을 경시한다는 것이다. 심지어 유물론자를 자칭하는 사람들 중에도 이런 오해를 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다. 유물론은 정신적인 것을 경시하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인 것 역시 물질로부터 비롯되었다고 보거나 물리적 현상의 하나로 보는 것이다. 결코 정신적인 것은 가치가 없다고 말하는게 아니다. 쉽게 말해 컴퓨터의 소프트웨어 역시 엄밀히 말하면 특정한 전기신호의 집합이지만, 그 사실을 인정한다고 해서 소프트웨어의 가치를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과 같다. 물론 유물론자면서 물질적인 가치를 중시하는 사람도 있지만, 똑같이 유물론자면서도 정신적인 가치를 중시하는 사람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물론 그 정신적 가치들도 물질로부터 비롯되었기에 결국 물질적 가치의 일종이라 여기겠지만 말이다.

[1] <포이어바흐와 독일 고전철학의 종말>[2] Ludwig Andreas von Feuerbach(1804년 7월 28일-1872년 9월 13일). 독일의 철학자. 청년헤겔학파를 대표할 정도로 전형이 될 만하거나 특징이 있는 인재이다. 형법학자 파울 포이어바흐의 四男. 헤겔 철학에서 출발했으나 후일 결별. 유물론의 입장에서 특히 당시 기독교를 격렬히 비판했고 신념이나 생각이 현세에 가치를 두는 행복을 전파, 그 사상은 마르크스와 엥겔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포이어바흐는 철학사의 관점에서 헤겔과 마르크스의 중개한 인재로서 그 이름을 볼 수 있다.[3] 19세기 후반 헤겔학파의 左派. 헤겔 철학의 보수성을 비판하면서 그 문제점을 혁명에 의해 극복해야 한다고 주장한 혁신파로서, 포이어바흐나 슈트라우스가 그들을 대표할 정도로 전형이 될 만하거나 특징이 있는 인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