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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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교 신앙을 상징하는 메노라와 다윗의 별(✡️).

1. 개요2. 교리
2.1. 경전2.2. YHWH2.3. 우상숭배 금지2.4. 메시아 사상2.5. 선민사상2.6. 율법과 금기
3. 유대교 분파
3.1. 극단주의 유대교3.2. 정통파 유대교3.3. 보수파 유대교3.4. 개혁파 유대교
4. 의례5. 역사
5.1. 이집트의 아톤 신앙 기원설5.2. 고대 유대교5.3. 바빌론 유수와 이후5.4. 성전 유대교5.5. 랍비 유대교
6. 다른 종교와의 관계
6.1. 기독교6.2. 이슬람6.3. 기독교, 이슬람과의 교리적 관계
7. 세계의 유대교
7.1. 메시아주의 유대교7.2. 카발라7.3. 한국의 유대교

1. 개요[편집]

유대인의 민족종교. 현재 약 1400만여명의 신자가 있고 3500여년 전부터 존재하던 신앙이며, 유일신을 숭배하는 현존하는 종교 중에서는 가장 오래되었다.[1] 보통 기독교 삼위일체에서 '성부' 라 불리는 존재인 야훼를 유일신으로 숭배하며, 토라라고 불리는 모세오경(창세기, 탈출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와 구약성경 타나크 34권을 정경으로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기독교와 달리 예수를 구원자로 보지 않고, 종교를 모독한 사기꾼으로 보기 때문에 신약성경과 복음서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 대신 탈무드를 준경전에 취급하며 사용하고 있다. 탈무드는 2세기 경 쓰였다.

기본으로는 셈족 종교, 즉 족에서 갈라져 나온 종족들이 만든 종교 중의 하나. 유대교기독교이슬람순으로 만들어졌고 교리와 세계관도 이에 영향받았다. 일례로 이슬람에서 유대교와 기독교도를 '성서의 백성'이라고 부르면서 인정하고 성모의 처녀 수태와 예수의 존재를 인정하고 신의 예언자로 다룬다. 꾸란과 성경에서 대천사 가브리엘이 나오는 것도 그 예시라서 유대교는 아브라함 계통의 종교의 근본이다. 기독교 성경의 일부인 구약은 원래 유대교 경전에서 가져 온 것이고 꾸란도 구약을 차용한다.

그 외에도 에티오피아 등지에는 유대교다운 관습이 민족상·종교상 전통에 많이 남아 있다. 솔로몬 왕과 남방 여왕의 야사에서도 알수 있듯이 에티오피아는 문화상으로도 유대교와 적지 않게 관계했다고 주장하는 지역이기 때문. 유대인 항목을 참조.

2. 교리[편집]

2.1. 경전[편집]

유대교의 경전은 보통 십계명(데칼로그라 부른다)과 구약성경으로 알려진 '타나크'가 있다. 때문에 서양권에서는 구약성경을 '히브리 성경'이라는 말로도 많이 부른다. 구약성경에서도 처음의 모세오경[2]인 율법서 토라를 대단히 권위있게 여긴다. 또 유대교 전승에는 토라를 모세가 시나이 산에서 받았다는 이야기가 있으며, 토라는 유대인들이 가장 극진히 아끼는 종교 서적이기도 하다. 토라 항목 참조.

또 신약성경을 인정하지 않는 유대교는 대신 서기 2세기부터 집필된, 구약 율법 규정에 대한 일종의 해설서이자 구전 율법[3]의 집합인 탈무드를 토라에 준하는 종교 경전으로 삼고 있다. 탈무드가 중요한 이유는 토라 율법에 모호한 부분이 많기 때문에 유대교 전통에 대한 이전 세대 최고 지식인 랍비들의 분석과 함께 무수히 많은 일화들과 신앙을 고취시키는 다양한 이야기들, 의견들을 기록하고 유대인들의 실생활에 율법을 체계적이고 유화적으로 적응시키는 데 필수이기 때문이다.

2.2. YHWH[편집]

유대교에서 섬기는 신은 야훼라고 부르지만, 어디까지나 이렇게 부르는 방식은 일단은 추정일 뿐이다. 신의 명칭을 인간이 함부로 불러서는 안 되었던 데다가 고대 히브리 문자에는 모음이 없어서 자음 4개로 표기(보통 YHWH로 표기한다)하며 영문으로도 YHWH라고 쓴다. 과거에는 주인을 뜻하는 히브리어 아도나이(Adonai)와 뭔가 연관이 있을거라 생각하여 여기의 모음을 따서 여호와라고 불렀지만, 학자들이 연구해보니 그건 아닌 것 같아 일단 야훼 또는 야웨로 부른 것으로 보고 있다. 학자들에 따라서는 야후가 맞는 발음이라는 사람도 있다. 이 4개의 글자를 가리켜 테트라 그라마톤Tetra grammaton(네 글자)이라 칭한다. 이윤기는 움베르토 에코의 <푸코의 진자> 번역의 각주에서 '테트라 그라마톤'을 '사자성명(四字聖名 네 글자의 신성한 이름)'이라 시역(試譯, 시험삼아 번역함)하였는데, 이 시역은 시역으로 그쳤고 그 후 어디에서도 나타나지 않는다.

유대교의 기본 신조는 야훼만이 유일한 신이라는 유일신 사상과, 혼탁한 세상이 멸망할 때 메시아(구세주)가 나타나 신의 백성, 즉 유대 민족을 구한다는 종말론, 신과의 특수한 관계를 맺었다는 선민 사상, 그리고 신의 뜻(가르침)을 따르는 율법주의다. 야훼는 천지 만물의 창조자이며, 절대의 신이다. 야훼는 유대인들을 이끌고 이집트에서 탈출한 모세와 시나이 산에서 계약을 맺었다. 야훼는 세상이 종말하는 순간에 메시아 즉 구세주가 나타나 그의 백성에 반역하는 다른 민족들을 벌하여 새로운 신의 나라를 건설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신의 백성이란 신이 구원할 민족으로서 유대 민족이다. 신은 유대 민족을 선택하였고, 또한 모세를 통해 유대 민족이 신의 뜻을 따를 것을 약속함으로써 신과의 특수한 계약을 맺은 것이다. 즉, 신이 유대 민족을, 유대 민족이 여호와를 선택한 것이다. 이 사건을 통해 유대 민족은 신이 자신의 민족을 선택하여 신의 백성으로 삼았고, 그 자손들에게 약속의 땅을 주어 그들을 지키고 축복한다는 선민 사상을 가지게 되었다.

2.3. 우상숭배 금지[편집]

겁내지 마라, 두려워하지 마라. 내가 오래 전부터 미리 들려주고 알려주지 않았느냐? 너희가 나의 증인이다. 밖에 다른 신이 또 있느냐? 과연 다른 바위는 없다. 나는 그런 것 모른다.

우상을 빚어 만드는 자들은 하나같이 바람잡이, 아무 덕을 끼칠 수 없는 것들을 소중히 여기는 바보들이다. 그렇게 눈이 멀어 멋도 모르고 우상을 섬기다가 결국 창피나 당하리라. 수입을 바라지 않고 신상을 빚어 내거나 우상을 부어 만들 자가 있겠느냐? 우상과 짝하는 자들은 무안이나 당하리라. 우상을 만드는 것은 결국 인간, 하나도 빠지지 말고 출두하여라. 모두들 어이없이 창피를 당하리라. (중략)

목수는 줄을 늘이고 석필로 금을 그어 모양을 그린다. 끌질하고 걸음쇠로 선을 그어 가며 사람의 초상을 뜬다. 이렇게 잘난 사람의 얼굴 모습을 본떠 우상을 만들어 그것을 신전에 모신다. (중략) 땔감밖에 되지 않는 것들, 베어다가 몸이나 녹이고 빵이나 굽는 데 쓸 것들, 그런 나무로 신이랍시고 만들어 예배를 드리는구나. 신상이랍시고 만들어놓고 그 앞에 엎드려 큰절을 하는구나.

반 토막으로는 불을 피우고 그 불에 고기를 구워 배불리 먹으면서 흥얼거린다. "아, 뜨뜻하게 불까지 쬐니 좋기도 하구나!" 이렇게 불을 쬐면서 남은 토막을 가지고 신이랍시고 만들지들 않느냐? 신상이랍시고 만들어놓고 그 앞에 엎드려 큰절을 하며 예배하고, "당신이 나의 신입니다. 나를 구해 주십시오." 하고 기도까지 하는구나. 이렇게 모두들 지각이 없고 철이 없는 것들, 눈은 닫혀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마음은 어두워 아무것도 깨닫지 못하는 것들. "반 토막으로는 불을 피우고 그 이글이글 타는 장작불에 빵을 굽고 고기를 구워 먹자. 남은 토막으로는 신상을 만들어놓고 그 나무토막 앞에 엎드리자." 하고 말하는 생각도 없고 지각도 없고 철도 없는 것들. 재티나 먹고 사는 것들. 생각이 비뚤어져 터무니없는 짓이나 하는 것들. "내 오른손에 붙잡고 있는 것이 허수아비나 아닐까?" 하고 반성하기는커녕 그 터무니없는 생각에서 도무지 헤어나지를 못하는구나.

- 《구약성경》 이사야, 44:8~20. 공동번역성경


유대교가 근동지역의 다른 종교들의 숭배를 비판하는 대목. 유대교의 많은 역사서들은 공통적으로 유대인들의 종교사(宗敎史)를 중심으로 "어떻게 YHWH 신앙이 주변 문화와 교류하며 변질되고 왜곡되어 갔는가"에 집중하고 있다. 또한 많은 예언자들도 마찬가지 맥락에서 "이민족들의 우상숭배에 혼합되고 오염된 지금의 신앙을 버리고 다시 과거의 정결한 신앙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메시지를 설파하곤 했다.

훗날 기원전 165년에 마카베오가 봉헌절을 만든 것 역시 우상 숭배 강요에 반발하면서 나온 것이기도 하다.

2.4. 메시아 사상[편집]

유대교는 메시아라고 하는 구세주 사상을 가지고 있다. 메시아는 기름을 군주의 머리 위에 붓는 유대 전통에서 비롯된 '기름부음 받은 자'(Anointed one) 이라는 뜻이며, 원래는 기름부음 받은 모든 유대인 군주[4]를 말했지만 바빌론 유수 이후로는 미래에 나타나 이스라엘 사람들을 적으로부터 구원하며 황금시대(메시아 시대)를 열 특별한 통치자를 의미하게 된다. 메시아가 다스리는 유대 민족의 세상은 지상에 인류애와 영광이 가득하며 전쟁이 사라지고 항구적인 평화가 도래한다고 믿는다.

유대교는 아직 메시아가 도래하지 않았다고 본다. 그래서 예수 시대에 유대교의 높으신 분들은 예수를 하느님의 아들을 사칭한 거짓 예언자로 보았기에 예수가 로마에 의해 공개처형당하는데 열광적으로 찬성하였다.[5]

사실 예수가 살았던 시대에는(로마 제국 지배하의 팔레스타인) 자신이 메시아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넘치도록 많았다. 복음서에도 예수를 죽이라고 외치는 군중들은 사실 제사장들이 예수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돈을 주고 데려왔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 때문에 예수가 거짓 예언자라는 주장은 기독교와 유대교가 분열되면서 사이가 벌어지면서 나온 이야기로 추정되며, 이 주장 때문에 유대인들은 중세 시대 내내 교회 중심 사회에서 박해당했다. 참고로 극단적인 유대교인(하레디)들은 메시아가 도래하지 않았는데 이스라엘 국가가 다시 재건됨은 신의 뜻에 어긋난다고 생각해서, 현대의 이스라엘을 인정하지 않는다.

2.5. 선민사상[편집]

유대교는 대표적인 선민사상을 가진 종교이기도 하다. 이 점이 같은 아브라함계 종교이면서도 나라와 민족을 초월한 세계인의 종교가 된 기독교, 이슬람과 비교되는 부분.

유대교에서는 야훼가 모든 민족을 지배하지만 그 중에서 특히 유대인들을 아브라함과 야곱과 모세, 그리고 토라를 통해 선택된 선민으로 뽑았으며, 다른 민족들은 유대인들이 타락할 경우 그들의 징벌을 위해서 사용한다는 이념을 가지고 있다. 메시아도 오직 유대인들을 위해서만 오는 존재라고 주장한다. 선민사상 자체는 수많은 민족들에게 존재하는 것이라서 크게 특별한 점이 없으나, 현대에 와서도 시오니스트 및 극우 유대교 정통파에게 이용되는 사상이라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다만 이러한 일부 꼴통들을 제외하면, 유대교가 혈통 중심의 구원론을 지닌다고 보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오늘날 유대교의 기본은 "유대인의 혈통을 지니면 구원받는다"가 아니라 '유대교를 믿으면 혈통 상관 없이 유대인이고 구원받는다'이기 때문이다. 사실 혈통을 넘어선 구원론에 대한 관심은 현대 유대교에서 갑자기 출현한게 아니라, 고대의 유대교에서도 충분히 찾아볼 수 있다. 성경의 요나서에서는 유대인만의 유일신으로 여겨지던 하느님이 아시리아인들의 구원을 원하는 모습이 나오고, 사도행전의 코르넬리우스는 로마 사람이었지만 유대교를 믿기도 하였다.[6] 다만 유대교를 믿는다는 것은 유대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갖고 유대인의 문화를 받아들이고 따른다는 것이기에, 선민사상이 완전히 없어졌다고 보기는 힘들고, 혈연적 선민사상에서 문화적 선민사상으로 변했다고 보는 게 더 타당하다.

2.6. 율법과 금기[편집]

율법 때문에 종교적으로도, 생활적으로도 금기나 규정이 빡빡한 편이다. 유대인들이 지켜야 할 율법은 무려 613개[7]나 되며 하레디같은 극정통파 유대인들은 최대한 많이 지키려고 한다. 안식일 같은 유명한 율법 외에도 옷에 술을 달아야 한다는 규정이나 혼방 섬유를 입으면 안 된다는 규정부터, 부부간 성관계나 생리 후에는 부정하므로 씻고 서로 떨어져 있어야 한다는 식의 세세한 규정들이 매우 많다.

한 예시로, 성경을 필사하는 규정이 있는데, 그 부분만 까다로운 것이 아니라, 모든 율법이 그 정도로 빡쎄다

  • 양피지를 만들기 위해 양이나 소를 잡는다. 단 이때 1년 미만의 동물을 잡는 것은 금지되어 있으며, 몸에 흠이 있는 동물의 가죽 또한 양피지로 쓸 수 없다. 또한 임신한 동물을 잡는 것도 금지다. 1년 이상이되 몸에 흠이 없고 임신하지 않은 암컷[8] 동물의 가죽으로 양피지를 만들고 이것을 이어서 두루마리를 만든다.

  • 필기구로는 항상 갈대를 깎아 만든 펜과 전통적인 방법, 즉 녹슨 철가루와 물고기로 만든 아교 등으로 만든 잉크를 써야한다. 이것도 일일이 코셔 인증을 받은 재료로만 선택해서 쓴다.

  • 성경을 필사할 때는 항상 필사자 옆에 사람 두 명이 지켜보고 있어야 한다. 필사자가 구절을 쓸 때마다 이를 읽어주고, 잘못 썼을 경우 바로 지적하기 위해서라고.

  • 아도나이(주님)가 들어가는 글씨를 쓸 때는 아도나이를 쓰기 직전에 잠시 손을 놓고 목욕을 해서 마음을 가지런히 해야하며, 반드시 기존에 쓰던 펜을 버리고 새로운 펜으로 바꿔서(혹은 다른 성스러운 펜으로) 써야한다.

  • 만약에 글씨를 잘못 썼을 경우에는 칼로 긁어서 지우고 그 위에 다시 써도 상관없지만, 아도나이를 잘못 썼을때는 해당 두루마리를 전부 버리고 새로 필사해야 한다.

  • 이렇게 '깨끗한' 성경으로 인정받은 두루마리는 절대로 손으로 직접 만져서는 안 되고 은으로 만든 손모양의 포인터를 짚어가면서 읽어야 한다. 만약에 비 유대인이 두루마리를 맨손으로 만지면 그 두루마리는 부정하게 된다.

  • 성경을 보관할 때에는 두루마리를 끈으로 묶고, 그 위에 천으로 만든 주머니를 씌우고, 나무함에 담은 다음에 성궤를 상징하는 전용 보관함 안에 두어야 한다.

  • 다 낡아서 못 쓰게 된 성경은 그냥 폐기해서는 안 되며 '게니자'라는 창고에 보관한다. 비단 성경 뿐만 아니라 "아도나이"라는 구절이 포함된 모든 문서들을 함부로 버려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아까는 틀리게 쓰면 버리라며?[9] [10]


워낙 음식 규정도 제약이 심하다. 카슈룻(Kashrut)이라고 불리는, 이슬람권의 할랄 푸드와 비슷한 코셔 푸드가 있는데 할랄 푸드보다 더 제약이 심하다.[11] 김종철이 지은 <이스라엘에는 예수가 없다>라는 책을 봐도 지은이 자신이 직접 만난 유대교도들의 까다로운 음식 제약을 쓴 바 있다. 이스라엘에서 한국등 해외로 온 유태교인들이 한국에서 절대로 다른 거 먹지 않고 오로지 직접 싸온 코셔푸드만 먹고 간다고 한다. 그 중에는 한국 대기업에 사업 관련으로 와서 한국 기업인들이 마련한 한식이나 중식, 일식, 양식 음식 죄다 거부하고 끝내 코셔 푸드만 먹겠다고 고집하던 유대인 사업가도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미국이나 캐나다, 유럽, 남미의 경우 유대인들이 살고 있지만, 이들 나라들의 유대인들은 이스라엘과 달리 정통적인 코셔 룰을 지키지 않고 있다. 대체로 돼지고기와 갑각류만 피한다거나, 유제품과 고기를 함께 먹지 않는다거나 하는 기본적인 룰만 지키고, 또는 코셔 룰을 알고는 있지만 별로 상관하지 않고 금기식품이나 허용식품 모두 그냥 다 먹는 유대인도 많다. 심지어 유대교에서 금기하는 돼지고기와 게, 왕게, 새우, 바닷가재등 갑각류들도 종교적 규율 따지지 않고 잘 먹는다.[12] 심지어는 아예 유대교를 믿지 않고 기독교나 불교를 믿거나 아예 종교를 갖지 않고 세속적으로 생활하는 유대인 후손들도 있다.

그 외에 유대교의 주요 명절로는, 이집트 탈출을 기념하는 파스카(기독교부활절 기간과 겹친다.), 40년 광야 생활을 기념하는 초막절[13], 하만에 맞써 모르도카이와 에스델이 유대인의 절멸을 막은 것을 기념하는 부림절[14], 유다 마카베오가 그리스인들에게서 독립을 쟁취한 마카비 전쟁을 기리는 하누카(특이하게 크리스마스와 비슷한 기간이다.) 등이 있다.

유대교의 종교적 선생 개념인 랍비는 오래 전부터 율법에 따라 남자만이 될 수 있었다.[15] 하지만 근현대에 오면서 진보파 유대교를 중심으로 여자도 랍비로 임명하거나 여자 아이에게도 전통적 성인식(바트 미츠바)을 해 주는 등 혁신이 일어나기도 하지만, 하레디를 비롯한 많은 극정통파 유대교인들은 여전히 변화에 크게 배타적이다.

3. 유대교 분파[편집]

유대교는 크게 4가지 분파로 나누어져 있으며, 이들은 분파마다 교리 해석에 대한 내용은 다르지만 보통 유대교 극단주의자들은 제외한 나머지 분파들은 다른 분파를 같은 유대인으로서 인정한다.

3.1. 극단주의 유대교[편집]

하레디 유대인들이 대표적. 그야말로 이슬람 극단주의랑 판박이다. 이스라엘에서는 그야말로 골칫거리다. 사회적으로 짐만 되는 세력들이 계속 인구수를 불리고, 여성 장교와 여성의 사회적 활동을 극단적으로 부정하며, 세속 사회를 경멸하고 파괴하려 들거나 타민족과 타종교를 멸시하고 유대교 율법만을 극단적으로 지키는 걸 진정한 유대교 사상이라고 주장하고 초강경 극우 유대교를 이스라엘의 국가정책으로 쓰자고 막무가내로 주장하고 나선다.

자세한 것은 하레디 항목 참조.

3.2. 정통파 유대교[편집]

영어: Orthdox Judaism

유대교 율법과 의식을 정통으로 지키는 분파를 말한다. 보통 이스라엘이나 중동 지역에 많이 분포되어있으며, 이들은 개혁파 유대교가 주장하는 교리의 문화, 역사적 해석 및 수정을 전면적으로 부정하고 오직 정통성만을 강조한다. 그들은 토라와 탈무드, 구전율법에 나와있는 613가지 율법을 철저하게 준수한다. 대표적인 것으로 예배와 음식 규정(코셔 푸드만 섭취 가능), 전통적인 기도와 의식들, 규칙적이고 철저한 토라 연구, 회당 남녀 동석 금지, 예배 시 악기 연주 금지등이 있다.

입교도 굉장히 어려운 편이다. 정통파 유대인들은 이방인이 유대교에 입문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힐 경우 1년간 교육을 시키고 시험을 보게 하는, 정통 방식을 여전히 따르고 있다.

3.3. 보수파 유대교[편집]

영어: Conservative Judaism

전통 유대교의 본질적 내용을 보존하면서도 종교관습의 현대화를 인정하는 분파. 정리하자면 정통파보다는 진보적이고 개혁파보다는 보수적이다. 이들은 구전법과 성문법의 내용들이 현대 사회의 문화에 맞지 않다고 생각했으며, 1844년 자키라아스 프랭캘이 개혁파 회의에 참여하고 정통파에서 탈퇴, 보수파 운동을 시작하면서 만들어졌다.

이들은 토요일 예배 및 식사 예절, 기도 등 유대교에서 따라야하는 613가지 율법을 최대한 준수하려고 노력하지만 수정을 허용하고, 또 여성 랍비를 선임하는 등 정통파와는 반대되는 행보를 보였다.

3.4. 개혁파 유대교[편집]

영어: Reform/ Progressive Judaism

기존 유대교의 율법 및 신앙 등을 포기하거나 기존 사회에 적응하려는 운동, 즉 정통적인 교리를 지키는 것이 아닌 개인의 상황을 준시하는 분파. 이들은 숄(탈리트)를 두르지 않고, 안식일에도 예배만 보고 평소와 다름 없이 생활을 하며, 음식에 대한 율법은 돼지고기를 안 먹고 코셔 푸드가 있을 경우에만 먹는 등으로 한정하는 등 기존 교리에 대한 준수를 포기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들은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정책을 전면적으로 반대했다.

입교도 정통파에 비해 쉽고, 특별한 절차 없이 바로 교인이 될 수 있다. 동양에는 많이 없지만 서양에는 기본적으로 하나씩은 시나고그가 설치되어있다. 이스라엘인들을 제외한 서양인, 그리고 유대교를 믿는 동양인들은 대부분 개혁파 유대교인이다.

그러나 이들 역시 유대교는 유대교라서, 우상숭배만큼은 철저하게 금지하고 있다.

4. 의례[편집]

거룩한 하루의 기도 : 전통적인 유대인들은 날마다 아침, 점심, 저녁 세 번에 걸쳐 기도하는 시간을 가지면서 ‘쉐마’라든가 ‘아미다 기도문’ 혹은 토라(모세 오경)나 예언서를 낭송한다. 여기서 쉐마란 “너 이스라엘아, 우리의 하느님은 야훼시다. 야훼 한 분 뿐이시다.”(신명기 6:4-9)라는 구절로 시작되는 기도문으로, 유대교에서 가장 중시되는 기본신조 또는 전형적인 신앙고백이라 할 수 있다. 한편 아미다 기도문은 유대 기도집인 <<시두르>>에 실려있는 공동기도문으로 서서 조용히 암송하는 봉헌기도의 성격을 지니는데, 그 중 ‘18가지 축복기도’는 그리스도교의 주기도문에 비견될 만하다.

특히 창조자 하느님에 대한 찬양과 예루살렘 성전 재건을 기원하는 아침기도는 쉐마의 선포에 이어 출애굽 사건과 시나이산에서의 사건이 기록된 성서 낭송을 포함하여 구속자 하느님에 대한 찬미 및 종말론적 기원으로 끝난다. 다시 말해 경건한 유대인의 하루는 태초의 창조 사건과 출애굽에서 나타난 구속사건 그리고 시나이산에서 모세가 토라(계명 혹은 율법)를 받은 사건 등이 일상을 뚫고 침투해 들어와 거룩한 시간으로 재현된다고 말할 수 있다. 이때 기도자는 ‘탈리트’와 ‘테필린’을 착용한다. 여기서 탈리트는 장방형의 겉옷으로서 사방에 달린 술장식이 특징적이다. 또한 테필린은 원래 고대 의상의 일부였다가 후에 의례 때 사용하게 된 성물함으로, 두 개의 조그만 장방형 상자로 되어 있고 그 안에는 길고 가느다란 가죽끈과 토라가 기록된 작은 양피지 두루마리가 들어있다.

거룩한 주간과 안식일 : 히브리어로 ‘샤바트’라 불리는 안식일은 ‘안식일 중의 안식일’로 여겨지는 욤키푸르를 제외하고는 유대교의 모든 축일 가운데 가장 핵심적인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이 안식일의 의미는 첫째, 하느님의 창조를 기억하고, 둘째, 출애굽 사건을 상기함으로써 인간 역사에 개입하는 구속자 하느님을 기억하는 데에 있다.

경건한 유대인들은 매주 금요일마다 해가 지자마자 가정에 모여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한 후, 특별히 준비된 안식일 의상과 모자를 착용하고 가족들과 함께 촛불을 밝힌다. 가장은 손을 씻은 후 가족들에게 ‘할라’라는 안식일 빵을 나누어주며 ‘키두쉬’라 불리는 의식을 거행한다. 키두쉬는 출애굽 사건을 기억하면서 안식일이나 축일이 시작될 때 포도주잔으로 축성하는 의식을 말한다. 안식일 당일인 다음날 토요일 오전에는 가족들이 함께 회당 예배에 참석한 후 오후에는 집에 돌아와 토라에 대해 연구하며 토론하는 시간을 가진다. 일몰이 가까워오면 안식일을 마감하는 의식인 ‘하브달라’를 거행한다. 전통적인 유대인이라면 이런 안식일에는 전화를 받거나 자동차를 타는 일조차 삼갈 정도로 철저히 율법을 지키려고 노력한다.

거룩한 한 해와 계절축제 : 신년맞이 대축제인 ‘로쉬 하샤나’, 이 로쉬 하샤나 기간중 마지막 날 24시간 내내 금식하는 ‘욤 키푸르’(속죄일), 욤 키푸르가 지난 뒤 닷새째 되는 날 초막을 짓고 거기서 지내며 광야생활 40년간 선조들을 지켜주었던 구속자 하느님을 기억하는 ‘수코트’(초막절), 이 수코트 절기가 끝난 다음날 회당의 성궤에서 토라 두루마리를 꺼내 행렬하는 ‘심하트 토라’(기쁨의 토라절), 기원전 165년 우상숭배를 강요한 시리아 왕 안티오쿠스 4세를 몰아낸 후 마카베우스가 예루살렘 성전에서 8일간 봉헌의식을 거행했던 역사적 사건에 대한 기념일인 ‘하누카’(봉헌절), 바빌로니아가 페르시아에 정복당한 뒤 본국으로 귀환하지 않고 잔류했던 유대인들이 당시의 반유대주의적 세력에게 멸절당할 위기에 처했을 때 당시 왕비가 되었던 유대인 에스델과 그녀의 친척인 모르드개에 의해 극적으로 민족적 재난을 피했다는 히브리 성서 <에스델서>의 설화로부터 유래된 ‘부림절’, 출애굽 사건을 기억하면서 문설주에 짐승의 피를 바르고 누룩 없이 만든 무교병을 쓴나물과 함께 나누어 먹는 ‘페사크’(무교절), 시나이산에서 모세가 토라를 받은 날을 기념하는 ‘샤부오트’(칠칠절), 예루살렘 성전파괴를 기억하면서 회당에 모여 히브리 성서 <애가>를 낭송하며 금식하는 ‘아브달 9일제’ 등이 있다. 이 계절축제들은 대부분 원래 고대 근동지방의 농경축제적 성격을 지닌 것이었다가 후대에 내려오면서 유대교 특유의 역사적 의미가 첨가된 것으로서, 오늘날 행해지는 의례 형태는 주로 중세 이후에 그 관행이 확립된 것들이다.

거룩한 일생의 통과의례 : 유대 어린아이가 태어나면 남아인 경우 출생 후 8일째 되는 날에 할례 의식을 행하고 히브리어 이름을 지어준다. 이 때 열 명 이상의 유대인 성인남자가 입회하도록 되어 있다. 유대법상 모친이 유대인이기만 하면 출생과 더불어 인종적으로 이미 유대인으로 인정받지만, 이와 더불어 할례를 받아야 비로소 계약의 백성으로 승인받는다. 부친만 유대인인 경우에는 반드시 할례를 받아야만 인종적으로 유대인임을 인정받을 수 있다. 이에 비해 여아인 경우에는 출생 후 첫 번째 안식일날 회당 예배 도중 아기의 출생을 축복하는 간단한 의식이 행해지고 히브리어 이름을 지어준다.

할례를 받은 남아는 13세가 되면 계명 준수를 맹세하는 의식을 치룬다. 그럼으로써 그는 유대 공동체의 한 성원으로서 공식적으로 인정받으며, 회당에서 테필린을 착용하고 토라를 낭송할 수 있는 권리를 갖게 된다. 이것이 바로 성년식이다. 한편 유대 결혼의식의 독특한 성격은 다음과 같은 결혼기도문에 명백히 드러난다.

“…당신이 에덴 동산에서 첫 번째 남자와 여자에게 그랬듯이 이 사랑하는 한 쌍에게 완전한 기쁨을 허락하소서…지금은 파괴된 유다의 성읍과 예루살렘 시가에 즐거움과 환희의 소리가, 신랑과 신부의 음성이, 그리고 이 한 쌍을 축하하기 위해 모인 젊은이들의 소리가 들려 나오게 하소서.”

주례자는 포도주 한 잔을 축성하면서 7가지 축복을 선포하는데, 그 중 전반부는 우주만물과 남녀 인간을 지으신 하느님을 찬양하는 내용이고, 후반부에는 신부로서의 시온과 신랑으로서의 이스라엘이 하느님의 사랑으로 결합될 것을 꿈꾸는 유대공동체의 오래된 소망이 짙게 반영되어 나온다. 유대인들은 이와 같이 가장 기쁜 날인 결혼식 때에도 성전을 파괴당하고 유랑하는 민족으로 지냈던 오랜 세월의 슬픔을 잊지 않으려 한다.
죽음 앞에서 : 죽음을 앞둔 경건한 유대인들은 이렇게 고백한다고 한다.

“…제가 죽어야만 한다면 저의 죽음이 곧 당신 앞에 지은 저의 모든 악행과 범죄에 대한 보속이 되게 하소서. 그리하여 저를 당신의 날개 안에 품어 주소서. 다가올 세상에 저의 몫을 허락하소서. 고아의 아버지시며 과부를 지켜주시는 이여, 저의 사랑하는 가족을 지켜주소서. 제 영혼을 당신 손에 맡기오니 저를 구원하소서. 오, 진리의 하느님이시여. 이스라엘아 들어라. 우리의 하느님은 야훼시다. 야훼 한 분뿐이시다. 야훼 한 분뿐이시다.”

여기서 알 수 있듯이, 유대인의 삶은 쉐마의 선포와 더불어 막을 내린다. 가족들은 시신을 땅에 묻은 후 마지막으로 카디쉬 즉 하느님의 이름을 축성하는 종말론적 기도를 암송하면서 메시아의 임박한 도래를 기원한다. 결국 죽음에 이르기까지 유대인의 삶은 특정 개인만의 삶이 아니다. 거기에는 언제나 유대공동체의 집단적인 기억과 꿈이 드리워져 있기 때문이다. 이 집단적인 기억은 태초의 창조사건, 출애굽으로 상징되는 구속사건, 그리고 시나이산에서 계명을 받은 사건 등에 대한 기억으로 집약될 수 있을 것이다.

5. 역사[편집]

5.1. 이집트의 아톤 신앙 기원설[편집]

흔히 최초의 유일신 종교가 유대교라는 인식이 있지만, 아브라함 계통의 종교의 최초이고, 21세기 지금도 현존하는 유일신교 중 가장 오래된 종교라는 게 정확하다. 유일신교는 그 전에도 있었다고 하는데, 기원전 1350년대의 이집트파라오였던 아케나톤(개명하기 전 이름은 아멘호테프 4세)이 다신교인 종래의 이집트의 종교를 금지하고 태양신 아톤을 유일신으로 숭배하는 일신교 체제를 만들었다. 이걸 세계 최초의 유일신 종교로 인정하는 사람들이 많다(게다가 세계 최초의 종교개혁인 셈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유대교를 확립한 모세가 사실은 아케나톤 때의 태양신 아톤의 사제거나 그 추종자로서 유대인들의 조상인 히브리인들에게 그런 유일신 사상을 변형하여 전파한 게 유대교가 된 거라고 추측하는 학자도 여럿 된다. 대표적인 가설로 프로이드의 저작 '인간 모세와 유일신교' 가 있다.

그러나, 유대교가 태양신 아톤의 영향을 받았다는 가설을 그대로 믿기엔 부족한 점이 많다. 먼저 아케나톤이 아톤만을 섬기라고 한 것이 최초의 유일신 숭배였는지는 불분명하고 이견이 많다. 또 사실 아케나톤이 섬기라고 한 신이 아톤인지 다른 신인지조차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게다가 유대민족들이 그 전부터 자기들만의 신앙으로 가지고 있었을 지도 모르고, 게다가 접점이라고 할 만한 부분이 유일신, 그리고 만질 수 없다는 점 빼고는 딱히 없다. 접점 부분도 논란이 있는게 아톤 신앙에서는 여전히 파라오 역시 신이라는 전통적 신앙이 남아있어서 이신교에 가깝다라는 비판이존재한다. 그리고 근본적인 문제로, 유대인들의 선조가 과연 집단으로 이집트에서 노예 생활을 했는지 자체가 불확실하거니와, 노예 생활을 실제로 했다고 생각하는 학자들 사이에서도 어떻게 이집트에서 유대인들의 선조가 나왔는지 말이 다르다. 중동에서 유대인들은 오랫동안 그리 대단한 민족이 아니었기에, 구약성경 외에는 자료가 별로 없어 신빙성이 떨어진다. 그나마도 구약성경은 한참 후대의 것이라 그냥 대입하기는 상당히 곤란하다. 출애굽기에 나오는 몇몇 일화에 대해서는 심지어 출애굽기를 쓴 사람마저도 전승은 전해지되 무슨 의미인지 몰라 견강부회하여 해석한 것이 있을 정도. 이런 상황에서 모세가 아케나톤의 사제, 혹은 추종자 아니었을까 하는 주장은 가장 근본이 되는 문제, 즉 히브리인들이 이집트에서 노예생활을 했는지, 했다면 어떻게 이집트에서 나왔는지에 대한 역사적 문제가 남아있게 된다. 또한 모세가 과연 아케나톤의 사제가 맞았는지도 의문이다. 사제 명단에 모세라는 이름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나마 남아있는 자료라고 해봐야 출애굽기 쪽이 전부인데 출애굽기 측에서는 모세가 사제였다라는 언급이 전혀 없다. 참고자료(십계명이 아케나톤을 배꼈다는 것에 대한 반박자료) http://kwangmin.blogspot.kr/2012/08/18-18-1-2.html

5.2. 고대 유대교[편집]

모세의 유명한 이집트 탈출을 기원으로 고대 유대교의 역사는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초기에는 광야 중심, 성막[16] 중심의 신앙생활을 했으며 가나안에 정복전쟁을 통해 정착하고 왕정 시대가 개막된 후에는 세워진 성전과 이스라엘과 하느님의 관계의 상징인 언약궤, 토라를 중심으로 유대교 율법에 따른 신정 정치를 시행했다. 이는 북왕국 이스라엘과 남왕국 유다가 각각 멸망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5.3. 바빌론 유수와 이후[편집]

일반적으로 바빌론 유수는 유대교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 바빌론 유수 참조. 바빌론 유수에서 돌아오고, 무너졌던 첫번째 성전을 다시 세운 뒤에도 이스라엘에 대한 외세 침략은 계속되었고, 그리스계 셀레우코스 왕조에 맞선 종교적 투쟁인 마카비 전쟁, 로마 제국의 침략 속에서 유대교는 유대인들의 종교적 정체성 그 자체가 되었다.

5.4. 성전 유대교[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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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성전 유대교 시절의 사제 복장. 왼쪽은 제사장, 오른쪽은 대제사장의 복장이다. 대제사장은 '야훼의 성결'이라고 히브리어로 쓴 금띠를 두른 흰색 모자를 쓰고 이스라엘을 상징하는 열두 개의 보석을 단 판결패를 가슴에 차고 어깨받이를 한 채로 세마포 속옷과 금색, 청색, 자색, 홍색 실과 가늘게 꼰 배실로 짠 조끼와 허리띠를 착용했다. 그리고 제사를 드리러 갈때 금방울을 겉옷에 달아 제사장임을 알게 했다.

서기 70년 이전까지의 고대 유대교는 예루살렘 성전을 중심으로, 제사장들이 치르는 제사 중심의 종교였다. 제사장들은 야훼를 섬기는 복잡하고 독자적인 종교의식(동물을 희생하는 번제와 소제, 속죄 제사, 화목제사 등)을 주관하고 매일 거행했으며, 유대 민족에 대한 재판권도 있었다. 이 시기에는 예루살렘의 성전이 신앙의 중심이 되었고 유월절 등의 명절이 되면 수많은 유대인들이 예루살렘 성전으로 제물을 바치러 오곤 했다.

고대 유대교의 성전에 대하여 이야기를 좀 더 해보자면, 최초의 성전은 다윗이 준비하고 솔로몬 왕이 세웠다고 알려진 제1성전이었다. 과거의 성막과 달리 건물이었기 때문에 규모도 훨씬 커져서, 제사장용 물두멍과 금촛대, 떡상이 열개로 늘어났으며, 야훼의 세우심과 능력을 상징하는 두개의 놋 기둥인 야긴과 보아스를 설치했다. 그러다 586년 바빌론의 3차 침공 때 첫번째 성전은 완전히 파괴되고 만다. 그러다 기원전 539년 키루스 대왕에 의해 바빌론 유수가 끝나고 두번째 성전이 지어지는데, 이 때 건축 지휘를 맡았던 즈룹바벨의 이름을 따서 즈룹바벨 성전이라고도 한다. 페르시아의 지배를 받고 있던 때라 물자도 풍부하지 못했고, 일꾼을 구하기 힘들 때 지어져 솔로몬 시대의 제1성전에 비하면 여러모로 스케일이 작은 것이 특징이었다. 이 두번째 성전은 기원전 167년에 시리아의 안티오쿠스 4세에게 크게 수난을 당하기도 했다. 성전의 역사에 대해 자세한 정보는 예루살렘 성전 문서를 참고하면 좋다.

그러다가 에돔 출신의 헤로데 왕이 이민족 출신 개종자인 자신을 싫어하는 유대인들의 마음을 사기 위해 기원전 20년경에 다시 한번 성전에 대한 대규모 개축을 시도하는데, 9년간의 건축으로 외관은 완성했지만 헤로데 왕이 죽을 때까지 성전은 완공되지 못하였다. 예수가 활동하던 시기까지도 성전 개축은 계속되었다고. 이를 '헤로데 성전'이라고도 부른다. 이전의 성전에 비해서 규모가 엄청났고 역대 성전 중 가장 웅장하게 만들어졌으나 후술할 로마와의 전쟁에서 서쪽 벽(현재의 그 유명한 통곡의 벽)만 남기고 다시 한번 파괴되고 만다.

바빌론 유수와, 이후 헬레니즘 왕조와의 마카비 전쟁 이후 지중해 세계 패권을 장악한 로마 제국이 이스라엘 지방을 점령했고, 이 시기의 유대교 교파는 매우 엄격한 형식적 율법을 강조하고 상선벌악적 사후세계를 인정하며, 토라 뿐만이 아니라 이후 유대교 발전 과정에서 전해져 내려오던 전승들도 모두 인정하는 바리사이파[17], 성전 제사장 계층을 형성하면서 토라 이후의 모든 전승과 사후세계의 관념까지 부정하고 토라 자체만을 신성하게 여겼던 근본주의적 종파인 사두가이파, 사해 근방에서 장로의 지도와 엄격한 율법준수 하에 공동체 생활을 하면서 토라 연구에 매진하며 메시아를 기다리고, 금욕주의적 전통을 발전시킨 종파인 에쎄네파 등으로 나뉘어졌다.

5.5. 랍비 유대교[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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랍비들의 모습. 검은 양복에 중절모, 길게 기른 수염이 특징적이다.

유대교의 '랍비'는 선생이란 뜻이다. 예수도 복음서에서 존중받는 의미로 랍비라고 불렸고, 랍비란 유대교에 정통한 현명한 어르신이라 이해하면 된다. 참고로 유대교는 자손을 남기는 것을 중시해 랍비는 결혼을 해야 제대로 대접을 받았다.[18] 보통 랍비가 유대교의 성직자라 생각하지만 아니다. 원래 유대교엔 성직자가 있었지만 현재는 없다.

유대교의 모든 제사는 예루살렘 성전에서 바쳐야 하는데, 서기 70년경에 로마가 유대인 반란을 진압하는 과정에서(여기서 유명한 '마사다 요새의 항전'이 있었다.) 티투스 장군에 의해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되면서 더 이상 제사를 드릴 수 없게 되었다.[19]

결국 이 일로 기존의 성전 중심의 유대교는 엄청난 타격을 입게 되고 큰 변화가 불가피해졌는데, 주목할 만한 변화는...

먼저 성전이 파괴되면서 더 이상 의미가 없어진 제사장들과 성직자단이 저절로 해체되었고, 자연스레 성직자단을 중심으로 군림하던 사두가이파와 로마에 대항한 젤로트당 등의 세력은 몰락했다. 원래부터 비주류이던 에세네파는 1세기 말경에는 자연스래 소멸했고, 이제 남은 바리사이파는 유대교의 명실상부한 주류가 되어 현재까지 발전되는 유대교 전통을 형성한 종파가 되었다. 제사를 드릴 수 없는 상태에서 토라[20] 공부가 제사를 대신한다고 명망 있는 랍비가 해설한 이래, 랍비와 토라 공부장소(예쉬바), 토라 낭독, 시나고그(유대 회당)[21]를 중심으로 한 랍비 유대교가 수립되었고, 현대까지 발전해 이어지고 있다. 당연히 랍비의 권위도 엄청나게 신장되었으며 이전의 성전 의식 중심의 고대 유대교와 구분하여 '랍비 유대교'라고 불리게 된다.[22][23]

토라 공부와 시나고그(회당) 중심의 랍비 유대교가 확립된 후에도 하시딤하레디 등의 극정통파, 개혁파, 진보파, 보수파, 신정통파, 카라이트[24] 등 여러 분파로 나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6. 다른 종교와의 관계[편집]

6.1. 기독교[편집]

초기 기독교는 유대 반란으로 인해 유대교와 연계된 것으로 여겨져 로마 제국 정부에게 많은 고초를 겪어야 했고, 동시에 유대교도들에게는 이단으로 여겨져 박해를 받았다. 이 때문에 기독교는 유대교에서 분리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이후 기독교 세력이 강해져 기독교가 콘스탄티누스 황제 재위시 로마의 국교로까지 지정되자 반대로 기독교에 의한 유대교/유대인 박해가 시작 된다. 대부분의 중세 유럽에서 유대인들은 예수를 죽인 죄로 인하여 차별을 받기는 했지만 고리대금업 등 기독교인에게 금지된 직업 등을 차지하면서 나름의 위치를 차지하였다. 심지어 기독교로 개종한 유대인과 유대교로 개종한 유럽인 사이의 논쟁이 남아있기도 하다. 일부에서는 개종 아니면 죽음을 선사하기도 하고, 개종한 유대인조차도 종종 박해당했다.

유대인 박해가 격해진 시대는 흑사병 같은 사회 불안기나 근세의 신, 구교 종교분쟁기로서 흑사병 시대는 흑사병의 원인으로 여겨져 처형되어서 교황이 그런 짓 하지 말라고 칙서를 내리기까지 할 정도였고, 종교분쟁기는...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이스라엘은 아랍 국가들 이상으로 기독교 악랄 탄압 국가로 악명이 자자하다. 심지어 기독교의 상징인 십자가를 혐오하여 이스라엘의 교차로(사거리)는 십자 형태가 드물다던가, 덧셈 기호로 +가 아닌 ㅗ를 쓴다는 말도 있다. 실제로 이스라엘의 적십자사(적수정사)는 상징문양으로 일반적인 적십자가 아닌, 유대교의 상징문양인 '다윗의 별'을 붉게 칠해 쓴다(적십자 문서 참조).

"1967년만 해도 요르단이 여길 지배했는데 차별이 있긴 해도, 그들은 공존을 허락했다. 하지만 이스라엘이 여길 차지하자, 극우 민병대가 기독교인은 유대인이라도 자주 폭행을 가했는데 경찰도 외면했다. 많은 기독교 유대인은 떠나버렸고 남은 사람들은 요르단이 지배하던 시절이 천국이라고까지 말한다." 이스라엘에 대한 다큐멘터리 영화 '회복'을 만든 김종철이 예루살렘에서 몰래 만난 유대인 기독교인 노인이 울음을 터뜨리며 들려준 이야기라고 소개한 바 있다.

더불어 이스라엘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극우 유대교 극단주의자들이 나날이 늘어나면서 이게 되려 이스라엘 미래에 어둠만 주고 있다.

6.2. 이슬람[편집]

이슬람도 사이가 좋지 않다. 과거 무함마드가 정복전쟁 와중에 유대인들을 학살한 적도 있고, 중동 이슬람 지배 하에서 피지배층으로 제한 속에 사는 건 기독교권과 마찬가지였다. 특히 현대에 와서 이스라엘 문제로 피터지게 대립하는 중동의 이슬람권 국가들과는 그야말로 원수 그 자체가 된 상황. 이슬람권의 반유대주의도 기독교 문화권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매우 심각하며 중동 아랍 국가 등지에서는 이스라엘을 여행했던 외국인 방문객들에게 자국 입국을 불허할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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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파냐에서 태어나 이집트에서 활동한 유대인 철학자, 랍비이자 살라흐 앗 딘의 주치의였던 마이모니데스(Maimonides).

다만 중세에는 유럽에서 추방당한 유대인들은 중동으로 향하였다. 핍박이 있긴 해도 서유럽 국가들과는 달리 살게는 해주었기 때문.

6.3. 기독교, 이슬람과의 교리적 관계[편집]

유대교를 믿는 유대인들은 예수를 선민인 자신들로부터 성경을 훔쳐간 도둑쯤으로 취급한다. 당대 시험해 볼려고 했던 유대인들은 예수와 율법과 성경을 가지고 논쟁했다가 졌다고 한다.[25] 그렇다고 신약의 이런 내용이 근거적이라고도 할 수는 없다. 유대인들이 신약을 인정하지 않지만, 신약에 묘사된대로 탈탈 털린 기억은 남아있어서 어떻게든 기독교의 논리를 깨부수려고 한 결과 발견한게 공관복음서 문제였고 유대인들은 이 문제를 아주 잘 써먹고 있다. 당연하지만 유대교의 경전이었던 성경이 예수로 인해 기독교의 경전으로 더 유명해졌으므로 유대교는 기독교를 예수와 함께 성경 도둑 취급한다. 거기다 이슬람 역시 유대교 입장에서는 이슬람의 신이 자신들의 신과 동일하다고 주장하고, 역시 기독교와 마찬가지로 쿠란에서 타나크를 채용했기 때문에 유대교인 입장에서 성경 도둑인데다 모세(무사) 같은 예언자들을 차용했다는 이유로 교리적으로 사이비 종교로 취급하며 싫어한다.

7. 세계의 유대교[편집]

복잡한 역사적 이유로, 유대인들에게 유대교는 종교라기보다는 전통이고 생활이다. 실제 유대교 특유의 교리엔 유대인의 민족 전통에 따른 생활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것이 많다고 한다. 유대인의 민족 특성 때문에도 유대인 외에 신자는 거의 없어 종교적인 의미에서 세계적인 영향력은 크지 않지만 이 종교를 믿는 유대인이 전체 1500만명도 안되는데 노벨상은 싹쓸이 해가고 하버드의 30%이상이고 2%도 안되는 인구인데 미국 경제의 20%를 차지하며 대다수가 자본가,기업가 등 초 부유 엘리트들이며, 세계 경제를 뒤흔들 정도로 영향력이 크다. 종교적인 인지도는 세계 4대 종교 중 2개가 이 종교에서 갈라져 나온 거라 민족종교 중에선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하다. 반대로 유대교만 믿으면 혈연이 없어도 유대인으로 인정해 주기도 한다. 2천년 간을 나라 없는 민족으로서 여러 나라에 흩어져 있고 박해받으며 떠돌아다녔는데도, 유대인들이 사라지지 않고 계속 정체성을 가질 수 있었던 건 이 유대교( + 굉장히 끈끈한 민족주의)덕택이다. 그렇다보니 서로간에 신뢰가 굉장히 강한 편이라 똑같은 사업을 투자받는데 유대인이 따낼 확률은 98%이고 한국인은 1.5% 이하라는 통계가 나올 정도. 최소한 같은 민족끼리는 사기는 안치고 서로 돕는것이 민족이 살아남을수 있는 인식 때문. 이 덕분에 결집력이 강한 편이고, 물론 유대인들이 현대 이스라엘을 세워 정상적인 국가였다면 진작에 사라져도 할말 없을정도로 전쟁범죄를 많이 일으켰는데도 살아남은것도 유대인들의 힘때문이며 그것이 국가 기강을 확립해 나가는 데도 큰 도움을 주었다. 하도 흩어져 있었는데다 단절의 역사가 2천 년이나 되므로, 이스라엘은 공용어를 정하거나 해서 사회적인 기틀을 다져나가는 과정이 식민지가 되어 멸망했다가 다시 부활한 나라들에 비해 쉽지 않았다고 한다.

극히 소수이긴 하지만 인도와 한국 등지에도 신자가 있다. 인도에서는 왕이 환영한다고 칙사까지 내렸기에 유대인들은 자기 종교 믿으면서 편하게 살수있었고 아직도 인도계 유대인들은 그 환영사가 담긴 동판을 간직하고 있다. 그 외에도 이란, 중앙아시아, 동남아시아 등등 사실 유대인들은 전 세계 각지로 퍼졌기 때문에 웬만한 곳에는 유대인이 다 있으며, 일본에까지 유대인이 흘러와 정착했다는 설도 있다. 어느 정도냐 하면 남아프리카의 어떤 소수민족 원주민이 알고 보니 유대인이었다든지 그런 일까지 있다. 중국에도 유대교도들이 있고 유대교 공동체도 존재한다고 한다. 자세한 이야기는 카이펑의 유대교도 참조.

7.1. 메시아주의 유대교[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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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시아주의 유대교의 상징

예수를 메시아로 보는 유대교파다. 그럼 그냥 기독교라고 생각될 수도 있으나[26][27], 일부는 삼위일체론을 인정하지 않고 단순히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보는 사람들도 있는 점(물론 삼위일체를 인정하는 메시아주의 유대인도 많다), 그리고 아직 인류가 선민, 곧 세상 만민을 포괄하는 새로운 보편 이스라엘이 세상에 물리적으로 다시 설 수 있다고 본다는 점에서 차이가 난다.[28] 따라서 이 종파는 기독교 교회선민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으로 본다. 더욱 직설적으로 설명하면, 유대인 스스로 말아먹은 모세의 율법을 아직 수습할 수 있다고 본다고 할 수 있다. 즉 예수를 예수 그리스도(메시아 예수)로 본다는 점에서는 기독교, 이슬람과 비슷하지만 민족종교적인 색체가 어느 정도 가미되어 있다.

이 유대교파는 바리사이파가 제사장직을 꿀꺽해서 율법을 말아먹었고, 한술 더떠 자신들, 즉 유대인들이 메시아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은 병크를 일으켰어도[29], 아직 세상이 영적으로 노답 상태에 도달한 것은 아니며, 하느님에게 패역을 저지른 자신들의 과오를 참회하고, 이제 이방인들에게 나아가, 선민이었던 유대인으로써, 이방인들을 이끌고, 그들과 함께 개발살난 이스라엘을 다시 세워야 한다고 본다. 즉, 과거 이스라엘 왕국처럼, 세상에 물리적으로 존재하는 하느님의 나라[30]를 다시 세울 수 있으며, 유대인들은 파기당한 자격을 수복하고, 이방인들은 유대인들과 함께 이스라엘 백성 = 선민이 되는 개념이다.

참고로, 이들은 대체로 카발라를 매우 위험한 사상으로 보며, 이것을 메시아를 곡해하려는 수작으로 의심한다.[31]

기독교에서 규정하는 정경 목록을 그대로 가지고 있지만, 순서가 조금 다르다. 다른 유대교파의 성경과도 순서가 다른대, 이들의 성경은 일단은 선민의 자격의 수복에 포인트가 맞추어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엄연히 모세 율법의 복원이 가능하다고 보기 때문에, 토라의 규례들을 최대한 준수할 것을 요구한다. 그리고 예수를 통하여 개정된 율법을 인정하면서도, 아직 개정이 완료되지 않은 것으로 신학적 의견이 모여있다. 메시아 예수의 죽음으로써 죄가 용서되었다고 보기는 하지만, 새 이스라엘의 완전한 성립, 곧 메시아 예수의 재림이 이루어지기 전 까지는 안심할 수 없다는 것이 주류이며, 유대교의 전통적 율법들은 그 이유로 (최소한 유대인들에게는) 계속 준수되어야 한다고 본다. 개개인의 일생 동안의 구원론적 문제의 경우는 의견이 분분한대, 엄연히 유대교인지라, 기독교와는 다르게, 최소한 율법을 제대로 붙들고 있으면, 나중에 "이게 아니었어?" 식으로 뒷통수가 얼얼하지는 않을 것 이라는 자신감이 있다. 선민으로써 이어온 성경 전통이 존재하기 때문에 성경 해석에 있어서 굉장히 자신감이 있는 분파이기도 하다.

또한 극초기 기독교의 신학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종교이기도 하다. 기독교예수 항목에도 써 있듯 원래 예수가 기독교라는 새 종교를 만들려고 한게 아니라 유대인 중 예수를 메시아로 믿는 파가 점점 발전하면서 새로운 정체성을 확립힌 것이기 때문. 신약 성경도 마태오 복음서요한 묵시록, 야고보 서간 등을 보면 1세기 후반과 2세기 초까지 여전히 유대인과 이방인의 구분이 확실히 있었으며 (예수를 믿는) 유대인이 선민이라는 사상이 존재했다는걸 확인 가능하다. 특히 바오로 서간을 보면 유대인 신자들이 중심이 된 예루살렘 교회에서는 베드로에게도 '이방인과 한자리에서 식사하는건 율법에 어긋난다'고 잔소리를 해대는 등 율법의 준수가 여전히 강조되었다. 그러다가 반로마 유대독립 전쟁 때 독립전쟁에 참여한 유대교와 참여하지 않은 기독교의 노선 차이가 커지면서 기독교가 자신들만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혈통적 유대인에 대한 개념도 서서히 흐려지면서 기독교라는 새 종교로 확립한 것.[32][33]

어찌 보면 아브라함계 교파들 중에서 제일 슬픈 교리를 가지고 있는 종교라고도 할 수 있는데, 선민으로써 건국한 이스라엘을 말아먹고, 모세의 율법을 망가뜨려놓고, 기껏 하느님이 보내주신 메시아는 처형시켜 버리고 ,[34] 덕분에 선민 자격을 날려먹고, 메시아 예수를 통하여 용서를 받았긴 해도, 예수의 재림 이전까지는 이방 = 사탄의 영역의 놓여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초창기 기독교가 유대인의 민족 종교라는 정체성과 인류의 보편 종교라는 정체성 속에서 갈팡질팡 했고,[35] 전통주의 유대교가 '메시아 언제 옴?'이란 문제에 시달린다면, 메시아주의 유대교파는 안습한 현실에 시달린다. 또한, 이들은 그래도 선민으로 택함을 받았던 유대인으로써 율법을 붙들고 있기는 하지만 하필 회당에 의해 선동당한 무개념한 선민들이 예수를 처형해버리는 바람에 현재 들고 있는 전통적 율법이 고장난 상태라는 것을 인정하므로, 기독교에도 유대교에도 끼지 못하는 신세라고도 할 수 있기 때문에...

참고로, 혈통적으로 유대인이 아니라면 일단 (유대인 입장에서의) 이방인으로 보며, 메시아주의 유대교파로 개종하는 것은 비유대인으로써 유대인의 공회에 참여할 자격을 얻는 것으로 보고, "어쨌든 다 같이 이스라엘에 들어가서 선민이 되겠지만" 개종한다고 갑자기 유대인으로 돌변하지는 않는다고 본다.[36] 따라서, 기독교도 또한 메시아주의 유대교도가 될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기독교도가 아닌 것도 아니고, 또 완전한 (유대인들의 신앙으로써의) 유대교도가 되는 것도 아니다.

7.2. 카발라[편집]

유대교는 또 특이한 신비주의 교리인 카발라로도 꽤 유명하다. 13세기 말 스페인에서 시작되었는데, 선악의 원인과 구원에 이르는 길, 아담의 타락을 세피로트와 세비라, 내면의 성스러운 불꽃 등 신비주의적 개념으로 설명한 것이 특징이다. 세피로트의 나무도 참고. 카발라 유대교는 정통파 중의 하나인 하시딤 유대교의 토대를 이루기도 했다.

7.3. 한국의 유대교[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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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유대교가 들어온 것은 다른 외래 종교가 그렇듯, 한국전쟁과 밀접한 연관을 가진다. 주한미군으로 들어온 유대계 미국인들을 위해 랍비들이 군종으로 자연스럽게 파견되면서 한국에도 유대인 공동체가 시작되었다. 하지만, 유대교 자체가 혈통적 특성이 강한 민족 종교의 특성이 워낙 강한지라 터키인을 중심으로 왕성하게 선교했던 이슬람이나 혹은 그리스인들처럼 원래 존재하던 공동체의 선교를 지원한 정교회와 달리 오랜 시간동안 유대계 미국 군인 중심의 커뮤니티만 구성해 사실 한국인이 유대교를 접할 기회는 없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나마 용산 미군기지 내에 시나고그가 있긴 했으나, 미군 관계자, 그것도 유대인들만 출입이 가능했다.


민간에서 유대교를 접할 기회가 생긴 건 2010년대, 한남동에 새로이 카바드 유대인 공동체가 설립되고 시나고그와 민간인 리츠만 랍비가 한국에 거주하면서 가능해졌다. 한국 카바드 홈페이지 금요일 저녁부터 이스라엘과 마찬가지로 안식일이 시작되며 안식일 회당모임이 있으나, 이는 유대인들만 참석이 가능하다. 대신 일요일 4시부터 5시까지 토라 공부가 진행되며 이는 유대인뿐만 아니라 비유대인들도 참석이 가능하다고 한다. 대신 6강좌당 11만원의 유료 코스로 진행이 되므로 참고하기 바란다.


서울에서의 토라 증정식. 45분쯤부터 토라가 적힌 두루마리가 든 용기를 들고 노래를 부르며 한남동의 카바드로 이동하기 시작한다.

메시아닉 유대교의 경우 한국 개신교(주로 백 투 예루살렘 계열)와의 교류가 활발한 편이다. 복음주의 성향을 띈 메시아닉 유대교의 경우 복음주의 개신교와 큰 차이가 없는 편이지만... 최근 들어 블러드 문 종말론에 편승한 토라주의자들 역시 난입했기 때문에 다소 복잡한 상황.

[1] YHWH의 말씀을 받은 자는 다 신이라고 가르쳐진 경우도 있었으나 일반적으로는 YHWH 중심의 유일신교로서 기능하였다. 엘로힘 항목 참조.[2] 창세기, 탈출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3] 유대 전승에 따르면 모세가 시나이 산에서 토라와 함께 추가적으로 받은 교리라고 한다.[4]다윗이나 솔로몬 왕도 역사 속에서 메시아로 불렸다.[5] 다만 예수가 단지 하느님의 아들이 맞냐 아니냐의 문제로 처형을 당한 것은 아니다. 후술되어 있는 많은 거짓 메시아들은 그저 '미친 사람' 취급을 받았을 뿐 예수처럼 엄청난 논란 속에 십자가형으로 죽지는 않았다. 때문에 단순히 유대교 내부의 문제를 넘어, 빌라도 쪽에서도 예수를 '사적 추종자 집단을 이끌고 다니는' 위험 인물로 받아들였을 가능성을 감안해야 한다.[6] 참고로 코르넬리우스는 유대교에서 기독교로 개종한다.[7] 의무적 율법(해야 하는 것) 248개와 금지적 율법(하면 안되는 것) 365개로 이루어져 있다. 참조 [8] 숫소나 숫양은 가죽이 두껍기때문에 좋은 양피지를 만들 수 없다고 한다.[9] 덕분에 가끔씩 오래된 유대회당(시나고그)의 게니자를 보면 온갖 귀한 사료들이 쏟아져나온다.[10] 이 게니자는 보통 회당의 지면을 파서 바닥 밑에 만든다. 이 때문에 사실상 무덤에 가까우며, 이는 즉 성경을 사람에 준하여 취급하는 것이다.[11] 단 유대교는 보수파 진보파 가리지 않고 은 자유롭게 허용하는 편이다.[12] 미국의 유명한 유대계 영화감독인 스티븐 스필버그도 유대교 신자였으면서도 유대교에서 금지하는 게나 바닷가재 등 갑각류들을 거리낌 없이 즐겨먹었다.[13] 이 시기엔 사막의 초막 비슷한 허술한 초막을 지으며 광야의 고난을 기억한다. 참고로 한국의 추석(음력 8월 15일)과 같은 날짜다.[14] 이때는 다들 정신없이 술 먹고 춤추고 놀며 대규모 축제에 정신이 나간다고.[15] 재미있는 사실은, 유대교는 어머니가 유대교인이면 자식도 유대교인이 되는, 모계 종교라는 점이다.[16] 성막의 지성소 안에는 금촛대와 향단, 떡상과 언약궤가 안치되어 있었으며, 사제 계급만 몸을 씻는 물두멍에서 정결하게 한 후 출입 가능했다.[17] 신약성경에 자주 나오는 '율법적 위선'의 대명사인 바리새인, 바리사이들이 바로 이 사람들이다. 다만 완전한 기득권층은 아니고, 광범위한 '신앙운동' 정도에 가까웠다.[18] 예수가 혼인했을 것이라고 추측하는 이들은 이를 주요 근거로 삼는다.[19] 당연히 동물 희생제사 같은 제사 율법들도 드릴 수가 없게 되면서 자연스레 사문화되어 버렸다. 아이러니하게도 아직도 극소수인 사마리아인들은 게리짐 산에서 드리고 있다고는 하지만...[20] '토라'라는 단어는 한국어 성경에서 율법이라 번역하는 단어다. 율법이란 의미도 있지만 가르침으로 해석할 수도 있는 등 의미가 좀 미묘하다. 그 미묘한 의미를 번역하기 쉽지 않다 하여 그냥 음역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21] 물론 회당 자체는 성전이 멀쩡하던 바빌론 유수 이후 시기부터도 있었다. 성전에 가기 힘든, 먼 지방에 사는 유대인들이 율법을 배우고 예배와 모임, 교육을 진행하는 장소로서 기능했다.[22] 하지만 이스라엘이 건국된 현대엔, 예루살렘에 있던 성전 위치에 지어져 있는 이슬람 반석위의 돔(알 아크사) 모스크를 파괴하고 성전을 재건하여 다시 고대 유대교의 전통 성직자단을 복구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다. 시오니즘적 민족주의와 결부되어 이러한 주장은 대단히 과격한데, 몇몇 유대인들은 실제로 폭탄을 몰래 설치하여 모스크를 부수려고 한 적도 있었다. 그 정도는 아니더라도 다시 성전이 복구되리라 믿고 아론의 후손인 유대인들이 과거 유대교의 사제들이 행하던 종교의례를 복구하려고 하고 있다.[23] 그러나 예루살렘의 알 아크사 모스크는 칼리프 오마르가 지은 것으로, 무함마드가 대천사 가브리엘의 안내를 받아 신을 만나고 올 때 승천한 지점으로 믿어지고 있으며 이슬람의 3대 성지 중 하나이다. 만약 정말로 알 아크사 모스크를 파괴한다면 이스라엘은 문자 그대로 전세계 무슬림들과 불구대천의 원수가 되는 헬게이트가 열리게 된다. 진짜로 친미 국가라고 해도 전원 이슬람 통합군으로 세계 대전이 열릴 것이라고 전망한다... 따라서 이스라엘 정부는 모스크 파괴를 절대로 허용하지 않고 있다.[24] 타나크만을 인정하는 소수종파. AD 70년 이전 사두가이파와 달리 사후세계를 인정한다는 점과 다른 유대교파와 달리 육류와 유제품을 같이 먹어도 되는 등 여러가지 면에서 다른 유대교 교파와는 많은 차이를 보인다.[25] 다만 사두개파에서 그와 부활에 대해 논쟁하다가 토라를 인용하는 부분에서 'ㅇㅇ'이란 식으로 가볍게 넘어가기도 했다.[26] 사실 기원만 보면 기독교유대인 선교 일환으로 시작된 것이 맞다. 그동안 기독교는 유대인 전도에 열심을 기울였으나 결과가 시원찮았다. 그래서 19세기 말부터 기독교로 개종한 유대인들을 선봉으로 선교운동이 조직되었으며, 유대인에게 이질감이나 정체성의 위기감을 주지 않고 예수를 믿으면서도 민족성을 지킬 수 있게 하는 현지화 접근법으로서 메시아닉 유대교라는 개념이 탄생했다. 메시아닉이란 이름부터가 유대인의 반감을 의식해 크리스찬 대신 사용하는 단어다.[27] 그래서 메시아닉 랍비라는 사람이 유대 전통에 무지한 모습을 보여 정통파에게 쿠사리를 먹는 일도 생겼고, 그러다보니 이 교파를 기독교로 받아들이는 기독교인은 많아도, 유대교로 여기는 유대교인은 별로 없다. 물론 이런 정체성 문제를 의식하다 모르는 사이에 교리 자체가 유대화하는 경우도 많아서 1세대 선교자가 멘붕하기도 한다.[28] 기독교에서도 세상 마지막에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함께 하느님 나라(보편 이스라엘)가 물리적이고 실체적으로 완성될 것이라 보는 관점은 같다. 거기에 예수를 그리스도로 인정하기까지 하고 신약 성경도 인정하므로 메시아닉 쥬는 유대교 정부에 의해 기독교 분파로 분류되기도 하고, 기독교도들의 후원 및 친분이 엄청나게 많은 편.[29] 정확히는 회당 지도자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예수를 믿지 않은 유대인들만 골라가지고 예수를 죽여야 한다고 선동시킨 것이다. 따라서 이 주장을 하는 유대인들은 개종했을 가능성이 높다.[30] 이 경우 다시 세우는 이스라엘과 세상 다른 나라의 전쟁은 곧 하느님의 전쟁이 된다.[31] 그래서 탈무드를 경전으로 삼는 것은 매우 위험한 것으로 여긴다.[32] 그러나 신학 전통이라 보기 힘든 것이, 베드로부터가 저렇게 이방인과 식사중 유대인들 눈치보고 튀었다가 바오로에게 혼났고, 바오로갈라디아서에서 율법덕후들에 대해 "이런 행위로 거룩해질 것 같으면 그리스도의 대속과 부활이 무슨 의미냐"며 극딜했다. 초대 교회에 할라카 전통을 따르려는 파벌이 있긴 했지만, 교회는 되려 이를 유대인/비유대인으로 갈라놓는 집착으로 보아 배척했고, 유대인은 선민이되 유대인 여하는 믿음으로 정해진다고 주장했다. 물론 로마서에서 혈통적 유대인도 결국 돌아올 거라 하나, 이는 이스라엘 본체인 교회에 이방, 유대 혈통의 성도들이 차례로 합류해 하나의 이스라엘을 이룬다는 내용이다. 1세기 말경의 디다케에서도 유대/이방인을 나누지 않고, 되려 금식일을 유대교와 달리하는 등 차별화를 꾀하고 있다.[33] 애초에 메시아닉 쥬 자체가 사도들부터 이어져온 유구한 교파 같은 것이 아니라, 현대 영미권에서 교회들의 종말론에 근거한 야심과 유대인의 민족 감정이 맞물리며 나온 운동인데, 이를 교회사에 심심하면 나타났던 여러 유대화Judaizing 운동들처럼 나름의 재구 시도로 볼 수 있을지는 몰라도 초대 교회의 풍부한 유대전통과 신학을 보존하고 있다는 식의 주장은 타당하지 않다.[34] 기독교는 예수가 이 땅에 온 이유에 대해 세상의 모든 죄를 다 지고 대신 죽음으로써 모두를 속량하기 위함이라고 주장한다. 엄밀히 따져서 하나님의 계획이라는 것.[35] 신약에서 사도들끼리 이것으로 논쟁하기도 한다. 물론 결론은 다들 아시다시피 '보편 종교'로 방향을 잡는다.[36] 이렇게 기독교의 "영적 이스라엘" 개념에 대한 반동으로 "혈통적 유대인"이라는 명제에 집착하다 보니, 팔레스타인 아랍계에 대해선 "이스마엘" 자손이라는 식으로 선을 긋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물론 "성경에선 이스마엘도 축복하고 있다"고 말은 하지만, 결국 야곱의 자손이 아닌 이방인이라는 얘기고, 가나안 땅은 유대인에게 약속된 것이니 아랍계는 설령 기독교도일지라도 우선 유대인을 이해하고 양보하는 것이 맞다는 일방적 주장으로 이어진다. 그래서 팔레스타인 문제에 관해선 아랍계에 책임을 전가하기 일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