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의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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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대하드라마
龍의 눈물
(1996)

파일:attachment/yngennml.jpg

방송 시간

토요일, 일요일 밤 9시 45분

방송 기간

1996년 11월 24일 ~ 1998년 5월 31일

방송 횟수

159부작[1]

방송사

파일:KBS_로고.png

장르

대하사극

제작

파일:KBS_로고.png 자체제작

연출

김재형

극본

이환경[2]

출연자

김무생, 유동근, 최명길, 김영란, 김흥기, 이민우, 안재모

저승사자해설

김종성[3]이강식[4]


1. 개요2. 특징
2.1. 철저한 고증과 탄탄한 스토리2.2. 화려한 캐스팅
3. 등장인물4. 명장면5. 옥에 티6. OST7. 특기사항8. 배우개그적 요소9. 관련 문서

메인 테마[5]

오프닝

1. 개요[편집]

KBS 대하드라마, 더 나아가 한국 사극계의 전설.
공전절후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은 대한민국 영화 및 드라마 역사에 길이 남을 불후의 명작.

1996년 11월 24일에 시작하여 1998년 5월 31일까지 KBS 1TV에서 159부작으로 방영한 전 대하사극. 이견의 여지가 없는 한국 방송사상 최고의 업적을 세운 걸작 사극이자 사극계의 끝판왕. 그 퀄리티와 명성은 《용의 눈물》이 처음 방영된 지 20년이 넘은 2018년 현재까지도 웬만한 사극과는 비교 자체를 불허하는 수준이며, 특히 이 작품 이후에 여말선초 시기를 다룬 모든 사극들은 그것이 드라마든 영화든 간에 전부 이 작품의 그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6] 지금의 KBS 대하드라마의 위상을 공고히 세운 가히 기념비적인 작품.


다음은 마지막회가 끝난 후 방송한 스페셜 프로그램에서 <용의 눈물>에 대한 각계 인사들의 평가. 절대 과장이 아니다.

"천하의 대작이고, 대단히 좋은 작품입니다." - 박동진 명창

"<용의 눈물> 한 편이 무수한 학자들이 상당한 기간을 걸쳐 한 그 이상의 성과를 이루었다고 생각합니다." - 신명호 정신문화연구원 선임연구원

"저도 그 시대를 다뤄봤습니다[7]만은, 굉장히 제작하기 어려운 장면들이 많이 나왔습니다. 그런 것을 그야말로 나이가 많이 드신 김재형 연출자께서 열과 성을 다해서 아주 빛나게 재현해 내신 그 연출솜씨, 그 연출의 열정!" - 이병훈 MBC 드라마 제작위원.[8]

"김재형 PD라는 위대한 PD와 함께 위대한 촬영감독 위대한 스탭들이 전부 동일하게 했기 때문에, 이것은 김재형의 승리만이 아니라 <용의 눈물> 스탭진의 승리라고 생각합니다." - 임웅균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원작은 박종화의 《세종대왕》이지만, 어찌된 일인지 극중 세종대왕[9]의 비중은 거의 없고, 위화도 회군으로부터 시작된 조선 개국 ~ 태종 이방원의 사망까지를 다루고 있으며 실질적으로 태조 이성계와 태종 이방원이 주인공인 작품이다.[10] 그리고 태조 이성계는 1대 주인공, 태종 이방원은 2대 주인공으로 이성계 사망 이후 주인공은 이방원으로 교체되었다. 처음에는 100부작으로 위화도 회군부터 조사의 난까지 다룰 계획이어서 이성계이방원의 비중이 비슷하게 설정되어 기획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초반에는 시청률이 저조하다가 이방원의 비중이 올라가면서 시청률도 급상승하게 되어 나중에는 59회나 연장하여 태종의 전생애를 다 다루게 되면서 결국 태종의, 태종에 의한, 태종을 위한 드라마가 되었다.

이에 대해 메인 시나리오가 용비어천가를 기반으로 했기 때문에 그렇다는 이야기도 있다. 제목도 '용'의 눈물이고. 좀 더 정확하게 파고들면 <용의 눈물>은 '태종우'를 빗댄 의미이기도 하다.

의상비만 10억 원, 총 160억 원의 제작비가 투입, 출연인원 7,950명, 엑스트라는 무려 5만여 명이 등장한 엄청난 규모의 드라마로 흔히 현재 방영되는 블록버스터 사극의 효시라는 수식어를 가지고 있는 작품이다.[11] 또한 역대 최고의 사극을 논할 때 절대 빠지지 않는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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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회인 위화도 회군의 촬영장면. 왼쪽부터 조민수[12], 이성계, 이지란(퉁두란).[13] 의상비뿐 아니라 개념도 충실했던 모양인지 어지간한 요즘 사극보다도 고증이 훨씬 나아 보인다.

당시까지 KBS 정통 사극을 넘어 시청률 관측 이래 사극 드라마로서는 가장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으며[14] '역시 정통 사극은 KBS가 우왕ㅋ굳ㅋ' 하는 국민적 인식을 심어준 작품으로 현재까지도 인정받고 있는 정통 사극의 정점이자 걸작이며 대한민국 사극계의 레전드 오브 레전드.

사극 마니아들도 인정한 사극으로 소수 마니아층에겐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으나 정작 방영 당시 시청률은 낮았던 무인시대와는 달리, 시청률도 높고 평도 좋았다. 사극 마니아들이 좋아하는 정통사극 중에서도 1위를 가장 많이 차지한 사극.

1화부터 159화까지 다루는 시대는 고려조 창왕말기이자 이성계. 조민수의 주도로 이루어진 1388년(공양왕 1년) 위화도 회군부터 태종 이방원이 숨을 거두는 1422년(세종 04년)까지 만 34년의 기간을 다루었다.

34년의 짧다면(?) 짧은 기간을 다룸에도 그 중에서 일어난 무인정사. 조사의의난. 민씨 4형제의 죽음. 세자 양위파동. 사병혁파. 호패법제정 등 굵직한 사건을 세세하게 다뤘으며 극중 나레이션의 인물소개 하나하나가 조선건국의 파란만장한 면모를 보여줄 만큼 나직하게. 하지만 무게있는 음성으로 다뤄 극의 몰입에 크나큰 이바지를 했다.

원래 <용의 눈물>은 100부작으로 기획되었고 원래 극중 배경도 위화도 회군에서 조사의의 난까지 다루기로 하였다. 처음에는 시청률이 저조하여 SBS의 사극 《임꺽정》에 밀리고 있었으나[15] 《임꺽정》의 종영 이후 알음알음 시청률이 올라가고 대박을 친 후로는 방송사가 이례적으로 60부작 가까이 연장, 양녕대군의 비행과 태종의 죽음까지 다루게 되었다.[16][17] 오히려 시청자들이 PC통신 등으로 <용의 눈물>의 연장을 바랐다고 하니, 요즘 드라마가 조금만 시청률이 높아져도 윗선이나 제작진에서 임의로 연장하는 것과는 다른 이례적인 사례. 그런데 연장된 후의 이야기는 태종이 자신의 사람들을 다 죽이고 물리고 하는 내용이라...

2014년에 방영된 정도전(드라마)가 비슷한 시대를 다루고 있는데다, 밑에 보다시피 겹치는 배우들이 여럿 되는지라 종종 같이 언급되기도 한다.

2. 특징[편집]

건국 초기 조선의 혼란과 다수의 정변을 다뤄서 정치 드라마로서도 흥미로웠지만[18], 콩가루 집안이었던 태조 이성계 가족의 불행, 이성계와 아들 이방원의 반목과 불화, 화해, 그리고 아버지 속을 썩인 태종 이방원 역시 아들 양녕대군 때문에 한껏 고생하고 고뇌하는 모습이 그려지는 등, 인간적인 드라마로서의 면모도 뛰어났다.

2.1. 철저한 고증과 탄탄한 스토리[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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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저[19] 시절의 원경왕후. 위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저고리가 팔 끝까지 내려가 있다. 역시 조선 전기를 다뤘던 사극인 《뿌리깊은 나무》, 《공주의 남자》에서 조선 후기식 짧은 저고리를 입었던 것과 달리 확연히 비교된다.

왕자의 난조사의의 난이 상당히 스펙터클하게 묘사되었다. 더군다나 의상면에서는 정말 여말선초의 복식을 완벽하게 재현했다는 이야기를 들을 정도로 그 고증의 강도가 철저했다. 어찌나 이 고증이 충실이 잘 되었는지, 이때 만든 의상 상당수가 드라마가 방영된 지 20년이 다되가는 지금도 고려시대 배경의 방송물에 계속 재활용된다. 또한 남자 복식의 경우 '요선철릭'이라는 상의와 하의를 주름으로 연결한 옷을 처음 선보였는데 이때 선보인 옷이 나중에 가서야 실물로 발견된 요선철릭과 그 형태가 아주 유사해 고증의 위엄을 보였다. 또한 창들도 여러 특이한 모양의 창과 장군들이 차고 다니는 장검 등도 대체로 고증이 잘된 편.[20] 환도 패용 고증의 경우 잘못된 게 많긴 하지만, 103화 초반부에서 이숙번과 이성계가 만나는 부분에서 이숙번의 환도 패용을 보면 어설프게나마 칼집을 끈으로 허리에 매어 제한적이나마 고증하고 있다.

극에서 등장하는 건물들도 현재의 세트장 건물과는 확연히 차이가 날 정도로 스케일이 상당한데 사실 경복궁실제 궁궐 건물에서 촬영한 것이다.[21][22]

특히나 이런 유의 사극이 쿠데타를 일으키려 하는 주인공의 행동을 상당수 미화하여 "구국의 결단"이라는 핑계를 대고 측근들에 의해 마지못해 쿠데타를 일으키는 것으로 묘사되는데 반해[23] 이 드라마에서의 위화도 회군 당시 이성계왕자의 난 당시 이방원 캐릭터는 별다른 미화 없이 자신의 야심을 직접적으로 드러내며 쿠데타에 주도적으로 참여한 것으로 그려졌다는 것이 특징이다. 왕자의 난 때 세자 이방석을 죽일 때만 해도 그래도 동생이었던지 잠깐 생각하다가 곧 병사에게 눈짓을 보내서 살려달라고 애걸복걸하는 방석을 끌어내 죽인 장면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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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사진은 이성계 역의 김무생, 아래 사진은 정도전 역의 김흥기신덕왕후 역의 김영란.
이 사진 보고 정도전이 간신 같다고 생각하면 지는 거다

또한 원작인 《세종대왕》에서는 정도전이 완전 소인배로 묘사되어 있지만 드라마에서는 기록 고증 등을 통해 조선왕조의 주춧돌을 닦다가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떠나야 했던, 그의 진면목을 제대로 조명해 낸 것도 매우 호평을 받았다. 특히 죽음을 맞으며 마지막으로 읊는 시[24]폭풍간지. 실록에선 정도전이방원에게 자신의 목숨을 구걸하다 비참한 죽음을 맞았으나 이환경이 종영 후 스페셜 방송에서 "조선을 건국하는 데 지대한 공을 세우며 그만한 파란만장한 일생을 산 사람이 그렇게 비굴하게 죽었을 리 없다" 하면서 비장한 최후로 그렸다고 한다. 태조실록을 쓴 주체가 바로 이방원 세력임을 생각하면 사료의 교차검증의 올바른 사례.[25][26] 또다른 교차검증으로는 태종 초기의 업적으로 잘 거론되는 신문고 설치에 대해서도 하륜조영무가 북을 시험삼아 쳐 보는 장면도 나오지만 내레이션으로 신문고 제도의 한계도 같이 설명하며 장단점을 같이 보여주기도 하였다.

이러한 이분법적인 선악 구도에선 벗어난 입체적인 캐릭터 묘사는 80년대90년대 초반의 사극과는 매우 이질적인 것이었다. 김재형 감독의 전작인 《한명회》마저도 한명회를 상당한 먼치킨으로 그렸을 뿐더러 한명회와 수양대군 세력에 끝까지 반대한 사육신김종서를 폄훼한 점이 많았다. 《용의 눈물》의 후속작인 《왕과 비》도 이점에서 자유롭지 못해 수양대군을 턱없이 미화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하지만 《용의 눈물》에서는 정도전의 재조명은 물론이거니와 카리스마 있고 엄격하여 아들에게 화살을 겨누지만 결국 세월 앞에 정을 끊지 못한 태조 이성계, 아버지를 쫓아내다시피하여 권력을 얻었지만 인과응보로 아들의 망나니짓에 속을 썩인 태종 이방원, 남편을 보위에 올리기 위해 갖은 노력을 하다가 외척 약화 정책으로 친정이 박살나서 기댈 곳이라고는 자식들밖에 없는 외로운 어머니 원경왕후 등 다양한 인간군상이 기록상의 모습에 인간적인 각색이 덧대여졌다.

야사에 나오는 소소한 일화들도 드라마에서 보여주고 있는 것도 특기할 점. 야사에만 나오고 실록에 기록이 없는 함흥차사와 실록의 조사의의 난을 적절히 믹스해서 이야기를 풀어냈다. 이것이 실패한 뒤 돌아온 태조가 아버지를 맞이하러 나온 태종을 처음엔 활로, 다음 연회석상에서는 철퇴로 차례로 죽이려고 했지만 무위로 돌아갔다는 일화도 생생하게 재구성하였다. 무학대사가 태조에게 이른 "부처님 눈에는 부처님만 보이고 돼지 눈에는 돼지만 보인다"는 일화도, 그리고 한양 천도 직전 이성계의 꿈에 태조 왕건이 나타나서 "네놈이 내 후손들을 죽였으니 너 역시 벌을 받을 것이다!"라고 일갈하는 장면도 나온다. 이들 역시 야사에 전하는 이야기다. 이렇듯 실록에 나와 있는 정사와 따로 민담으로 전해지던 야사, 그리고 여말선초의 여러 인간군상들의 모습을 잘 보여주는 캐릭터까지 고루고루 잘 버무려진 탄탄한 각본으로 크게 히트를 했다. 어떻게 보면 작가의 주관이나 지나친 역사왜곡이나 상상력을 개입시키지 않고 정사와 야사 모두를 거의 유일하게 제대로 아울렀던 진정한 사극(史劇)이었다.

이 사극이 다른 사극들과 차별화되는 점 중 하나는 근래 사극에서 조정 대신들이나 선비들이 모여서 정책논의 하지 않고 정치암투나 모략을 꾸미는 장면으로 때우는 경우가 많은데, 이 작품은 대신들이 정치모략을 꾸미는 것도 나오지만 제대로 정사를 논하는 국무 회의를 하는 장면이 굉장히 자주 나오는 편이다.

누군가를 제거하기 위한 탄핵과정도 신하들이 모여 논의한 다음 정식으로 상소문을 올려서 처결하고 큼직큼직한 사건들이 터지는 와중에도 인사조정, 구휼이나 서적간행, 명나라 사신행 등 정치, 행정, 외교 분야 업무를 수행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예를 들어 최후반부 태종의 양위와 세종의 장인 심온이 사사당하는 등 숨가쁜 정국이 이어지는 와중에도 태종과 세종이 최윤덕 등 중신들을 불러모아 국방 문제를 논의하는 모습이 세밀하고 심도있게 그려진다. 신하들이 일은 안하고 자객과 모략으로 정치하는 요즘 사극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덕분에 과거 왕조의 일상업무에 대해 나름 참고할 만한 사극인 셈.

물론 시대적 배경이 새로운 나라를 세운 후 제도를 정비하고 개혁하던 시대였기 때문에 이런 묘사는 당연히 있어야 할 부분이거나 별거 아닌 부분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왕정 시대에는 국가라는 하나의 조직이 어떻게 돌아갔고, 그 행정 기구가 어떻게 운영되었는지 최소한의 개념도 안 잡혀 있는 요즘 사극들과는 달리 국정 운영이 어떤 것인지 제대로 보여주는 중요한 장면들이다. 《용의 눈물》 이후로 어전회의는 매우 심플해져서 왕이 결정을 내리면 신하들은 그저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혹은 "통촉하여 주시옵서서" 일변도로 나가게 된다.[27]

그리고 극중에서 유명한 인물이 죽으면 실록에서 누군가 죽었다는 소식과 함께 "그는 어디 사람으로 언제 과거에 급제했고 무슨 벼슬을 지냈으며 무슨 업적이 있었다. 어떤 점은 장점이었으나 어떠한 것이 흠이었다"란 식의 기록인 '졸기'처럼 그 사람의 일생을 주욱 설명해주는 내레이션까지 깔아준다. 이는 주연인 태조나 태종 부자는 물론이고 정도전, 권근, 하륜, 조영무 등의 신하들도 마찬가지. 특히 마지막회의 마무리는 아예 태종 이방원의 훙기(薨記)[28]다. 마지막의 "태종이 한 일이 어찌 세종보다 가볍다 할 수 있겠는가"란 내레이션과 함께 태종의 얼굴이 클로즈업되며 엔딩.

《용의 눈물》이 또한 이전의 다른 사극과 차별화되는 점은 진정한 정치사극이라는 점도 있고 주인공의 미화가 상대적으로 이전의 사극보다 덜한 점도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고정된 주인공을 제대로 설정해서 이야기를 풀어나갔다는 점이다. 이전의 신봉승이 주로 쓴 80년대 사극은 일단 주연은 하나이나 점차 페이크 주인공화되며 진 주인공이 여러 곳에서 나타나서 일종의 군상극 형태를 취하면서 극이 지루해지고 통일감이 없어진 경우가 빈번했다. 그러나 《용의 눈물》은 주인공인 이성계, 이방원 부자를 극의 축으로 삼으면서도 주변 인물들의 분량을 적절히 조합하면서 주인공과 엮이게 하는 등 새로운 형식을 도입하면서도 기존의 사극 방식을 절충하여 연출력 역시 스토리라인에 뒤지지 않았다.

이 사극이 또한 히트하게 된 데에는 현실에서의 데자뷔도 크게 한몫을 했다. 극중 이성계 재위기간의 이방원의 왕권주의와 정도전의 신권주의가 당시 대통령 선거의 화두였던 김종필의 내각제 이슈와 맞아떨어졌던 것.

다만 한국 사극답게 주인공 투구 벗기기는 여전했는데 제1차 왕자의 난에서 이방원 혼자 투구를 벗고 출전하고 있다. 하다 못해서 옆구리에 끼고 있는 모습이라도 촬영했으면 좋을 텐데

2.2. 화려한 캐스팅[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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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드라마의 중심 인물인 태종 이방원 역의 유동근원경왕후 역의 최명길.

출연진도 상당히 화려했다. 당시를 거의 제대로 재현한 고증과 탄탄한 스토리와 힘입어 출연진의 연기가 하나같이 소름끼치고 제대로 무서운 후덜덜한 연기를 보여준다. 모든 것을 얻었다가 모든 것을 잃어가며 고뇌하는 태조 이성계 역에는 작고한 원로 배우 김무생이, 피도 눈물도 없어 보일 정도로 무서운 철혈군주인 주인공 태종 이방원 역에는 유동근이 열연했다. 김무생과 유동근은 이 이후로도 여러 작품에서 조회한다. 어린이 드라마 《누룽지 선생님과 감자 일곱 개》에서 유동근은 초등교사, 김무생은 마을 이장을 맡았다. 어깨동무라는 영화에서는 유동근이 다시 한번 김무생의 아들로 등장해서, 아버지에게 파리채로 얻어맞는 굴욕을 보여줬다(...). 김무생이 세상을 떠난 후 빈소에 가장 먼저 도착한 이가 유동근이었던 정도로, 이 드라마로 인하여 서로 잘 따르고 아껴주는 선후배 사이가 되었다.

남편을 왕으로 만들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대장부, 중전 원경왕후 민씨를 열연한 최명길은 후의 KBS 드라마 《명성황후》에서 명성황후를 맡음으로써(이번에도 민씨(...)[29]), 흥선 대원군을 연기한 유동근과 악연(?)을 이어나갔다.[30] 거기다 약 10년 뒤에 제작된 《대왕 세종》에서도 같은 인물인 원경왕후로 나왔다. 원경왕후로는 이 분을 따라갈 연기자가 없을 듯하다(?). 최명길 본인도 《대왕 세종》에서 원경왕후로 캐스팅된 이후 "원경왕후와 무슨 연이 있는 것이 아닐까"라며 소회를 남기기도 했다.전생이 여흥 민씨 집안 사람이었나 보지

최명길은 《용의 눈물》 촬영 중 임신을 하게 되었는데 극이 연장되면서 출산을 위해 끝까지 촬영을 함께 하기 어려워졌다. 하지만 그렇다고 후반부의 주요 사건인 양녕대군 폐세자와 심온의 죽음까지도 보고 죽은 원경왕후를 중도하차시킬 순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최명길이 출연하는 장면의 30회분을 미리 찍어 이 문제를 해결하였다. 최명길의 연기 투혼도 대단하지만, 쪽대본으로 촬영하는 요즘 드라마 환경에서 돌아보면 여기에 맞춰 따로 대본을 준비한 이환경 작가도 대단하다. 그 후 최명길이 출산하자, 상궁 역으로 출연한 배우들이 "중전마마의 아기씨 순산을 경하드립니다. 상궁 일동"이라고 적힌 꽃바구니를 보냈다고 한다.

한편, 냉정한 천재 재상 정도전 역에는 김흥기가 맡았으며 광기 넘치는 양녕대군을 훌륭하게 연기한 이민우[31]는 상당한 주목을 받았다. 특히 김흥기는 개국에서도 정도전 역할을 맡았었는데, 단순히 정도전 역할을 많이 맡은 정도가 아니라 정도전이라는 인물에 대해서 전문가 수준으로 깊게 이해하고 있어서 후배 배우들로 하여금 역사 공부를 충실히 하고 역할에 임하는 모습의 모범이 되는 배우였다. 실제로 그는 1997년에 국민대학교에서 정도전의 생애와 사상을 주제로 한 특강까지 진행했을 정도였다. 당시 신문기사, 당시 특강 내용

또한 충녕대군, 즉 세종대왕을 연기한 안재모, 이방번을 연기한 정태우, 나인 노씨[32]를 연기한 하지원, 이숙번의 부인 역을 맡은 송윤아[33], 세자 이방석의 세자빈으로 들어왔으나 내관이랑 간통하다가 목을 매고 자살한 폐세자빈 유씨 역의 이재은 등 유명 배우들의 리즈시절 연기도 지금보면 색다른 볼거리이며, 그 연기력도 매우 볼만하다.

이외에도 신덕왕후 강씨 역에는 김영란, 정종 역에는 태민영, 익안대군 이방의 역에는 최동준, 회안대군 이방간 역의 김주영, 남은 역에는 사망전대 이영후, 태종의 장인이자 원경왕후의 아버지로 부원군(국왕의 장인)의 자리에까지 올랐지만 결국 아들들의 몰락을 병석에서 지켜보는 민제 역에는 송재호[34], 민제의 장남 민무구 역에 신동훈[35], 차남 민무질에는 나한일, 태종의 심복인 조영무 역에는 장항선[36][37], 하륜 역에 임혁, 이숙번 역에 선동혁, 양녕의 부인 김씨 역엔 안연홍, 원경왕후 옆을 지키는 김 상궁 역에 김을동[38], 태종의 후궁들 중 효빈 김씨 역의 김혜리, 선빈 안씨 역의 이보희 등 알려진 배우들도 많이 나왔다. 이 밖에도 양녕의 궐 밖 친구와 조사의의 난 당시 여진 추장 중엔 구마적 이원종도 있고 주인 정몽주를 따라 사지로 가는 줄 알면서도 충직하게 말을 몰다 함께 변을 당하는 하인 역에 이상인 등, 이 당시엔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지금에 와선 많이 알려진 배우들도 간간이 찾아볼 수 있다.

사족으로, 유동근이 맡았던 태종 역은 이덕화가 한때 거론되기도 했지만 본인이 거절했었다고 한다.[39]

3. 등장인물[편집]

4. 명장면[편집]

수없이 많은 폭풍간지 명장면이 있지만 대표적으로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용의 춤

  • 늙고 병들어 가는 모습을 자주 보여주는 이성계 앞에서, 태종이 어떻게든 아버지의 무료함을 풀어 주고 싶다는 생각에 임금의 신분으로 몸소 춤을 추어 보이고… 그 광경을 보면서 과거 태종과 얽힌 모든 악연과 미움의 감정을 주마등처럼 되새김질한 이성계가 마침내 이방원에 대한 미움을 온전히 털어 버리는 장면. 이성계의 말이 떨어지자 그야말로 어린아이처럼 통곡하면서 무너져 내리는 철혈 군주 이방원의 모습이 눈물겹다. 수많은 명장면 중에서도 이 장면이 최고로 꼽힌다. 이성계 역의 김무생은 <용의 눈물> 종영 후의 특집방송에서 이 장면을 찍을 때 '역시 피라는 것은 사상이니 뭐니 하는 것을 다 떠나서 어쩔 수 없는 것이다' 라는 것을 순간적으로 느꼈다고 술회했으며 이성계가 이방원을 좋아하지 않았던 이유에 대해 '이방원이 이성계의 안 좋은 점을 가장 닮은 아들이었기 때문에' 싫어했던 것 같다고 배역에 대해 해석하기도 했다. 유동근김무생에게 안기는 순간 정말 아버지를 만난 것 같다고 술회하기도 했다. 또 최명길은 산전수전 다 겪은 중견연기자임에도 이때 두 사람의 연기에 너무 몰입된 나머지 눈물 조절 실패(...). 링크된 동영상 마지막 부분, 이방원이성계에게 기어가 안기는 장면 구석을 자세히 보면 알 수 있다. 김무생과 유동근의 연기력을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다. 한풀이와 용서라는 정서를 전통 가락과 춤이라는, 어찌 보면 왕실 인물들에게 도저히 가능하지 않은 소재로 풀어낸 명장면. 영상과 음악도 훌륭하지만 배우들의 연기 자체가 신들린 듯한 경지에 이르러 있다.

  • 이성계가 사망하고 나서 빈 용상을 바라보며 자신이 왕위를 받기까지의 과정을 회상하다 쓰러져 연신 아바마마를 외치며 절규하고 마지막엔 '소자가 잘못했사옵니다! 아바마마!' 라고 하며 통곡하는 태종의 모습. 이때 이방원은 정말 어린아이처럼 바닥에 쓰러지며 대성통곡을 한다. 두 장면 다 회상이 나오면서 드라마에서 이성계이방원이 겪은 일들이 나오는 장면은 처음부터 이 드라마를 봐온 시청자들에게 전율을 일으킨다. 위의 이방원의 춤과 다른 점이라면 이성계의 회상이 주로 자신과 동고동락하다 희생되어 간 이들을 떠올리지만 이방원은 이성계가 그 일을 접하고 슬퍼하고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떠올린다. 이성계가 과거를 피를 흘린 것을 후회했던 것처럼 이방원도 자신이 아버지의 속을 썩였던 것을 후회하는 것을 보여주는 연출.

  • 태종의 가장 충성스런 왼팔, 오른팔인 하륜이숙번마저도 왕권 강화를 위해 조용히 제거된다. 하륜은 《고려사》를 개수하다 자신의 목숨이 다했음을 알고 유서를 남기고 조용히 쓰러지고[42], 이숙번은 태종이 '세자가 자네를 잘 다룰 수 없을거 같다'며 따라주는 마지막 술잔을 받고 충성과 원망, 허탈함이 뒤섞인 눈물을 흘리며 귀양길에 오르는 장면이 유명.

  • 태종은 평소에 여색을 아주 많이 밝혔고(...), 왕권을 위해서, 외척들을 경계하기 위해서 자신들의 처남들조차 제거했는데, 이것 때문에 부인인 원경왕후 민씨와 무진장 싸웠다. 그리고 그 대립은 원경왕후가 죽기 직전까지 가서야 풀렸다.# # 둘의 화해는 4번 내려가면 있다.

  • 양녕대군이 자신의 비행을 질책하는 태종의 면전에서 조선의 역사를 힘으로 누르고 폭군처럼 피로써 이루어놓은 역사라며 '진정 위대한 것은 덕치가 아니겠느냐' 고 치열하게 비판하고, 출중한 왕재(王材)를 지니고 있음에도[43] 계속하여 방황하는 양녕대군의 손을 잡고 무릎을 꿇은 채 눈물, 콧물을 흘리며 제발 정신을 차려 달라고, 왜 이 아비의 마음을 몰라주냐고 빌다시피 부탁하는 장면.[44][45] 자신이 아버지의 속을 그렇게 썩혔으니…

  • 양녕대군을 세자에서 폐위한다는 교지를 내리자마자 태종이 크게 대성통곡을 하는 장면. 태종의 부정과 고뇌를 확연히 느낄수 있는 장면이다.

  • 충녕대군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상왕으로 물려앉은 태종이 세종의 장인 심온의 집안을 박살내려 하고, 세종이 태종에게 "장인의 목숨을 살려달라"고 하자 모든 악업은 자신이 질 것이라고 꾸중하는 장면.

  • 남편을 왕으로 만들었다는 죄로 4명의 남동생이 모조리 횡사하고, 친정이 산산조각이 난 원경왕후는 속병을 얻어 (태종이 상왕이 된 후) 요양을 핑계로 궁을 나와 사가(私家)를 떠돌다 죽음을 맞게 된다. 그제서야 태종은 그녀에게 눈물을 흘리며 용서를 빈다. 다만 모두가 왕실을 위한 것이었노라고 변명하면서. 원경왕후는 유언을 남기며 태종의 품에서 숨을 거두고, 태종과 원경왕후를 조명하는 가운데 태종이 숨죽여 우는 장면.[46]

  • 등창이 퍼져 병들어 죽어가는 몸으로, 극심한 가뭄을 이겨내기 위한 기우제[47]를 지내면서 그동안 자신이 겪어야 했던 고뇌를 피를 토하듯 고백한다. 마침내 비를 내린 후 세종에게 "모든 악업은 내가 지고 갈 테니 부디 성군이 되어라"는 당부를 남기고 마지막 순간에 아들 양녕대군과 아버지 태조 이성계를 그리며 장장 159회 대단원의 막을 내린 마지막 장면. 기우제


이외에도 수없이 많은 명장면이 등장하지만 그것을 일일이 열거하기에는 위키의 칸이 너무 좁다. 한 마디로, 대작(大作).

또한 의외로 개그씬도 있었다. 그것도 제작진들도 의도하지 않았는데 결과적으로는 개그씬인 경우가 적지 않다.

  • 깨알같은 양위소동 개그씬. 태종이 양위 소동을 일으키자 대신들이 격렬히 반대하고, 중간에 끼인 도승지 황희가 어쩔 줄 몰라하는 장면이다. 분명 심각한 장면인데 황희를 말리며 패대기치는 대신들과 억지로 황희에게 옥새를 쥐어주며 밖으로 내보내는 태종의 모습이 은근히 몸개그를 연출한다.

  • 박포의 비장한 처형장면. 제2차 왕자의 난 이후 그 책임을 몰아서 박포가 익사처형당하는 장면인데, 이 때 망나니 역을 한 연기자가 막걸리를 너무 많이 얼굴에 뿌렸다. 이 때문에 박포 역을 맡은 서영진은 간신히 웃음을 참으며 연기해야 했다.

  • 궁녀를 데려다 첩실로 삼은 조영무를 꾸짖는 태종. 조영무에게 "그게 정승이 할 짓이냐, 그 궁녀란 계집도 참형으로 다스려야겠다"며 호되게 혼내며 "지금이라도 궁녀를 돌려보내라"고 하자, 쩔쩔매던 조영무는 그 와중에도 "내놓지 못하겠사옵니다. 용서하시옵소서!"라고 대응한다. 태종은 어이를 상실하지만 그래도 "이번만은 봐주겠다"고 말하고 "할 말 없으면 그저 '망극하옵니다'만 나오네"라며 투덜거린다.

5. 옥에 티[편집]

분명 작품 자체는 엄청난 대작이지만 사실과 다른 부분 또한 엄연히 존재한다. 작품 자체가 정사를 뼈대로 야사와 작가의 상상력을 더한 태종연의이기 때문. 삼국지 연의처럼 칠실삼허 정도로 보면 된다.

  • 초반부에서 정비 안씨(안 대비)가 너무 늙게 나온다. 1366년에 공민왕비로 책봉된 정비 안씨는 드라마에서 1388년 우왕 치세 때 등장하는데, 당시 그가 왕비로 책봉될 때 나이를 무리해서 20, 30대라고 가정해도[48] 40대 후반 내지 50대 정도인데 드라마에선 영락없는 70~80대 할머니. 공민왕의 비가 아니라 공민왕의 어머니 명덕태후 같다. 실제로 이 작품에서 정비 안씨 역을 맡은 한은진 여사는 1918년생의 원로 영화배우로 1997년도 당시 80세였다. 아마도 담당PD가 이때 나이를 잘 못 알고 캐스팅한 듯하다.

  • 조사의의 난의 진압과정이 묘사되었는데 조사의 군대와 여진족이 연합할 것을 걱정한 태종이 하륜명나라에 보낸다. 당시 명나라의 황제는 영락제. 하륜의 언변에 녹아난 영락제는 여진족이 조사의 군대의 편을 들면 100만 군대를 보내어 여진을 박살내겠다고 공언한다. 이 소식을 들은 여진족은 패닉상태에 빠지고 군대 충원이 안된 조사의의 군대는 결국 진압당한다. 실제 조사의의 난이 평정된 이유는 태종이 직접 친정을 감행하여 진압군의 사기가 올랐고 청천강 전투에서 결정적으로 패배하면서 진압된 것이지 명나라의 입김은 전혀 작용하지 않았다. 당시에 요동지역에 명나라의 입김이 그렇게 강하게 작용하고 있지도 않은 상태인데다가 조사의의 난이 진압된 시점은 1402년. 이때 영락제는 정난의 변을 평정하고 그제서야 황위에 올랐고 안으로 자신을 반대하던 親 건문제 신하들을 숙청하기에 바빴다. 이건 원래 <용의 눈물>이 조사의의 난을 끝으로 막을 내릴 예정이어서 조사의에게 최종보스 보정이 주어졌기 때문.

  • 하륜과 이숙번을 상당히 띄워주었다. 실제의 하륜은 상당히 경박하고 탐욕스러운 인물로, 세종조차 '아버지가 안 봐줬다면 진작에 옥황상제 곁으로 갔을 인물' 이라고까지 평했다. 하지만 강직한 대신 전문 배우인 임혁배우 보정으로 오히려 탐욕스런 노신에서 지략가, 책사 이미지로 변모한 것. 이 덕분인지 이후 하륜의 비리에 대해서는 묻어가는 감이 있었다. 이숙번 역시 선동혁의 연기와 각본 덕분에 정사에서 보여주던 탐욕스럽고 오만한 모습이 줄어들고 왕을 위해 악역도 불사하는 신하로 변모한 감이 있다.

  • 양녕대군의 경우 가만보면 어이가 없을 정도로 띄워주는 것을 넘어서 어떻게보면 아예 다른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다. 사실 양녕대군에 대한 미화는 조선 중·후반기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뿌리가 깊고, 이 드라마의 원작이었던 《세종대왕》과 상당한 부분의 위인전마저도 이 설을 수용하고 있으니 비단 이 드라마만 탓할 일은 아니긴 하다. 그러나 오늘날 양녕의 '호쾌하고 왕재도 있었으나 스스로 권력을 버리고 쾌락을 즐긴 왕자' 이미지가 확대 재생산된 것의 상당 부분은 이 드라마 탓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심지어 양녕이 명나라로 떠나 영락제를 만나 황제 즉위 과정을 까는 후덜덜한 장면까지 있다. 하지만 이 역시도 이민우의 배우 보정이 단단히 한몫을 했다. 오히려 이민우가 양녕대군에게 매력을 느끼고 자신이 작가에게 양녕을 풍류객 캐릭터로 묘사하고 싶길 원해서 사실과 다르게 간지나게 나온 것. 이 드라마에서는 권력의 비정함에 실의에 빠지면서 점점 비뚤어져 가는 양녕이 모습을 보여주는데, 그 미치광이스러운 막장짓을 어느 정도 뚜렷히 보여주긴 하지만 이를 마치 전부 양녕이 여러가지를 계산해서, 백성을 생각해서, 동생을 생각해서, 왕실의 미래를 생각해서 하는 일인것처럼 포장하고 있다. 미치긴 제대로 미쳤는데, 뒤로는 혼자 자조하고 한탄하며 "아버지를 이해하라"고 충녕에게 조언하기도 하는 등 그야말로 앞뒤 자체가 맞지 않아 보일 정도다. 심지어 하루종일 여자를 끼고 술마시고 북치고 꽹가리치고 놀다가 배고파 죽어가는 백성들을 보고 왕실의 죄라면서 한탄하는 씬도 있는데 지켜보기 좀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 하지만 실제 역사에서 노년에 들어 종손인 단종을 무시하고 야심많은 조카 수양대군에게 붙어 단종을 죽이라고 강권한 것을 보면 결국은 그도 아버지처럼 권력의 비정함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양녕대군의 뛰어난 면모, 즉 양녕대군에게 왕재가 있었다는 점을 지나치게 강조했다는 것이다. <용의 눈물> 최대 옥에 티라는 평가가 대다수.

  • 정도전을 띄워주면서 지나치게 왜곡, 미화된 부분이 존재하는데, 요동 정벌을 '대조선 제국'이라는 거창한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삼는 것으로 묘사된다. 실제로 정도전이 '황제'국을 추구했다는 기록은 없다.[49] 그리고 후반부 하륜과 이숙번의 대화에서 "고려의 자주적인 역사를 그대로 남겨준 정도전은 참으로 대단한 사람"이라고 칭찬하는 부분이 나오는데 《고려국사》 편찬하며 고려가 사용한 황제국 용어들을 전부 제후국의 것으로 고쳐놓은 장본인이 정도전이고 그걸 원래대로 돌린 사람이 세종이다. 또 이방원이 정도전이 개인적으로 지은 《조선경국전》을 보고 감탄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정작 역사적으로 훨씬 중요한 조선의 첫 번째 성문법전조준의 《경제육전》은 묻혔다.

  • 1차 왕자의 난의 진행 과정에서 다소 오류가 있었다. 그 이전 사극의 1차 왕자의 난의 묘사에 비해 용의 눈물에서는 크게 진보한 모습을 보였으나 지적되는 것은, 왕자의 난 당시 남은의 첩실 집에, 정도전, 남은, 심효생 등을 포함해 대략 수어 명이 술을 마시고 있었고, 난 발생 후 심효생 등 상당수는 현장에서 죽음을 당했고, 남은은 일단 피신했다가 자신감에 넘쳐 다시 돌아왔다가 살해되는 등의 과정이 무시되었으며, 남은의 첩실 집에는 정도전, 남은과 심효생만 있었던 것으로 묘사하고, 나머지는 궁성을 이미 장악한 이방원 일파가 작성한 살생부대로 입궐하는 대로 한 명씩 철퇴로 때려 죽이는 과정으로 전개되었다. 사실 대신들을 불러서 살생부에 따라 살해하는 장면[50]계유정난 때 일어난 일이지 왕자의 난 관련 기록에선 찾아볼 수 없다. 고증오류인지 혹은 의도적인 고증 무시인지는 알 수 없으나, 이 과정에서 지붕 위에 노비로 변장해 올라가 살았던 이직을 죽여버리는 오류가 일어났고, 이후 실록에서 이직이 다시 등장하므로 죽은 사람이 살아나는 일이 벌어졌다.

  • 일부 사형 집행 장면에는 오류가 있다. 박포의 처형 이후, 조사의의 난부터는 더 이상 극중에서 참형 등 다른 처형 방식을 사용하지 않고 오늘날의 총살형 비슷하게 사형수를 기둥에 묶어서 을 쏘아 죽이는 처형 방식이 등장하는데, 그러한 형 집행은 조선시대에 없었다. 조선시대의 사형은 기본적으로 참형과 밧줄로 목을 옭아매는 교형으로 나뉘어 있었고, 거기에 최고형인 거열형과 그나마 명예를 지키게 해주는 사사 정도가 있었다. 극중에서 궁살형(?)에 처해진 사형수들의 실제 죽음의 모습을 살펴보면, 양녕대군과 놀아난 구종수·이오방에 대해서 의금부에서는 능지처사할 것을 주청하였으나 임금은 참형[51]을 선고하였고, 세종의 처가를 박살내는 첫 단추가 되었던 강상인의 옥사에서 그는 거열형에 처해졌다. 다만 방송대본 데이터베이스에 실려 있는 <용의 눈물> 대본에는 실록대로 이오방과 구종수는 참형, 강상인은 거열형에 처해지는 것으로 그려지고 있다. 제작자가 너무 잔혹하다고 생각하여 촬영시에 순화한 모양.[52] 다만 참형 자체도 고증이 제대로 되지는 않았다. 그 외에 인물들의 처형 등의 사소한 묘사는 오류가 꽤 많은 편이다.

  • 고려 말, 조선 태조, 정종 연간까지 병졸들도 갑주를 잘 갖추고 창을 들고 나오다가 태종이 즉위하자마자 군제개혁이 되면서 병사들이 전원 포졸복으로 뒤바뀌고 당파를 드는 모습으로 나왔는데 이는 고증 오류이다. 이것은 조선군에 대한 일반적인 클리셰로 인한 것으로, <용의 눈물>에서도 이를 답습한 것으로 보인다.

  • 한양 재천도 (1405년) 후인 110화에서는 세월이 꽤 많이 흐른 듯 묘사되나, 실은 양녕대군이 아직 가례를 올리기 전인 1407년 즈음으로 불과 2년 밖에 지나지 않은 때이다. 양녕대군 역을 맡은 이민우는 그 당시 21세로 실제 양녕대군의 나이(14세)와 꽤 많은 차이가 난다.

  • 참수형을 집행함에 있어서도 사실과 다른 부분이 많다. 전문적인 망나니를 불러서 참수한 건 맞지만, 청룡언월도 같은 긴자루가 달린 칼을 사용하지 않았고, 조선시대 참수형은 술 마시고 칼춤을 추다가 목을 베어버리는 게 아니었다. 그런데 용의 눈물에는 이러한 장면이 있다.

  • 양녕대군은 폐세자 이후에 주어진 군호인데 원경왕후가 원자가 된 어린 이제를 끌어안으며 '양녕'이라고 부르는 장면이 있다.


물론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 모든 역사적 사실에 따라 극본을 쓰면 드라마가 아니라 다큐멘터리가 된다. 역사적 사실이 완전히 일치하지 않는다 해서 이 사극의 가치는 전혀 떨어지지 않음을 기억해두자. 뼈대는 거의 사실 그대로 전달한 편이다. 후속작 《왕과 비》처럼 왜곡이나 각색이 너무 심할 경우 비판을 듣기는 하겠으나 <용의 눈물>은 작품 자체의 완성도는 물론 각색 역시도 훌륭해서 크게 문제시 된 것은 없다.

6. OST[편집]


드라마의 서브 메인 테마인 〈왕조의 세월〉. 메인 테마의 느린 템포 버전이다.

위에 올려진 메인 테마를 포함한 OST 수록곡 전곡은 작곡가 김동성이 작곡했으며 이 사람은 그 전에 애니메이션 《아기공룡 둘리》(KBS판, 1987-1988)의 OST 전곡도 작곡했다. 위와 같은 웅장한 느낌의 곡을 작곡한 분이 이전에는 《아기공룡 둘리》에서 동요보다 더욱 동요스런 '오프닝 타이틀곡'이나 코믹한 스타일의 〈라면과 구공탄〉을 작곡했다는 사실이 그야말로 충공깽 수준.

이 OST가 가지는 의의는 한국 역사상 거의 최초로 많은 인원의 교향악단에 의해 연주된 곡이라는 점이다. 그 이전에는 단순히 신시사이저 등을 이용한 기계음, 또는 다른 영화나 드라마에서 이미 사용된 주제곡을 무단으로 사용했다.[53] [54]

이 작품의 음악감독을 맡았던 고 임택수 감독[55]이 작품의 대본을 보고나서 꼭 관현악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때문에 이후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음악이 완성될수가있었다.

연주는 의외로 KBS 교향악단이 아닌 우크라이나까지 가서 우크라이나 내셔널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했고, 합창은 우크라이나 라디오 합창단이 했는데 그 이유가 이렇다. 물론 KBS 교향악단도 처음엔 《용의 눈물》 OST의 연주 요청을 받았으나 드라마 주제가를 연주하기에는 격이 맞지 않는다는 이유[56]우크라이나에서 연주, 녹음을 하고 온 것. 저비용 고효율 그 뒤 이 음악들이 상당히 명곡에다가 사람들의 반응도 좋자 연주를 거절했던 KBS 교향악단은 그야말로 멘탈붕괴가 되었고 《태조 왕건》 때부터는 KBS 교향악단에서 KBS 대하드라마의 주제곡을 연주하게 되었다.

여담으로 곡들의 반응이 좋았고 당시 IMF로 돈도 없자 후속작인 《왕과 비》에서까지 이 곡들을 계속 사용하면서 1996년 11월 24일부터 2000년 3월 26일까지 4년 5개월 동안 주말 9시 40분에 흘러나오는 곡이 되었다.

7. 특기사항[편집]

유동근의 태종 연기는 그야말로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였고, 당연히 1997년 KBS 연기대상을 수상했다. 《대왕 세종》에서 태종을 한 김영철이 낫다는 의견도 있으나[57] 지금도 태종 이방원=유동근이라는 공식이 압도적으로 성립되고 있다.

더불어 원경왕후=최명길의 공식도 사실상 이때부터 성립되었는데 유일하게 같은 원경왕후를 2번 맡았던 경력도 있어서 (대왕 세종에서도 맡았다.) 더욱더 공식화된다. 최명길 스스로가 "원경왕후와 무슨 인연이 있는게 아닌가" 라고 할 정도.

태조 이성계=김무생, 삼봉 정도전=김흥기의 공식도(특히 장/노년층에서) 유동근 못지 않은 막강한 공식이 되었지만... 두 분 모두 故人이 되셔서 두 분의 명연기를 다시 볼 수 없게 된 것이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그리고 태조 이성계 역의 김무생원경왕후 역의 최명길은 1997년 KBS 연기대상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하였고 정도전 역의 김흥기 역시 이 시상식에서 우수상을 받았다.

인기를 등에 업고 '용의 국물'이라는 에로영화가 나오기도 했다(...). 조선일보 박광수 화백의 광수생각에서 언급되었는데 <용의 눈물> 스페셜 방송에서 유동근이 이걸 보고 "<용의 눈물> 신드롬입니다, 근데 시중에 <용의 국물>이라는 그런 비디오 테잎이 돌아다닌다고 합니다. 여러분, 유사품에 속지 마십시오."라고 일침을 가하였다.

첫 디지몬 애니 한국판에서 사천왕 중 바다 담당하는 녀석필살기 번역에 영향을 준 것 같다(...).


당시에는 이례적으로 드라마 종영 직후 1시간 30분 동안 뒷이야기와 제작과정, NG 등을 다룬 스페셜 방송이 방송되기도 하였다.

방송 당시가 제15대 대통령 선거 시기였는데, 이방원의 백마에 있던 DJ라는 머리글자가 화제가 되었다.[58] 당시 대선 후보였던 김대중은 이 해프닝을 '하늘의 계시'라고 말하기도 하였고, 이후에 촬영장에 방문하기도 하였다. 이에 당시 연출 감독이던 김재형 감독은 당시 정치인들이 매일 촬영장에 방문해서 고맙다고 하는데 곤란했다고 회고했다. 영웅시대 지못미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현재 본 작품의 마스터 필름이 KBS에 남아 있지 않다고 한다. 다만 방송자료 자체는 잘(...) 남아 있기 때문에 지금 케이블 쪽에서 간간히 방영하고 있는 중.

박시백 화백이 이 드라마를 보고 자신이 조선시대사를 잘 모른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아 한겨레를 퇴사하고 무작정 시작한 것이 바로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이다.

이 드라마의 인기가 대단하여 90년대 학습만화에선 인기있는 드라마 얘기 할 때마다 <용의 눈물> 혹은 패러디인 지렁이의 눈물(...) 드립이 나오곤 했다.

한편, 작가 이환경 씨와 담당 PD 김재형 씨는 태조 왕건에서 작가-연출자로 재회할 예정이었다.하지만, 담당 PD로 낙점된 김재형 씨가 수뢰 혐의로 불구속 입건되어 결국 감독 자리를 내려놓게 되었다.

2000년 일본에서 만들어진 NHK 대하드라마 아오이 도쿠가와 삼대는 용의 눈물을 참고해 만들었다 할 정도로 유사점이 많다. 도쿠가와 막부를 세운 이에야스, 히데타다, 이에미츠 3대의 일대기를 묘사한 것도 그렇고, 드라마의 서사와 구성 역시 유사하다.

TV드라마로서는 이례적으로 한국능률협회 1998 히트상품 본상을 수상하였다.

8. 배우개그적 요소[편집]

의외로 이 사극도 배우개그적 요소가 충만한 드라마다. 특히 방영 당시보다 10여 년 더 일찍 방송한 적이 있던 《조선왕조 5백년》과 《개국》의 배우들이 상당수 나와 다른 역할을 맡았고 일부는 아예 똑같은 역할을 다시 도맡았다. 일단 주인공인 태조 이성계 역을 맡은 故 김무생은 《조선왕조 5백년》에 이어 다시 이성계 역을 맡아 아들을 향한 극한의 분노를 보여주었다. 신덕왕후 강씨 역의 김영란도 《조선왕조 5백년》에서 아이러니하게도 신덕왕후와 사사건건 대립하던 원경왕후 민씨를 연기하였다. 동생에게 완전히 털리던 이방간 역의 김주영 역시 이전에 《조선왕조 5백년》에서 같은 역할을 맡은 적이 있다.

또한 《조선왕조 5백년》에서 나약하지만 이방원과의 우애가 좋았던 정종 이방과 역의 이영후는 이 드라마에서는 이방원에게 사사건건 태클을 걸은 남은을 맡다가 끔살당했다. 《개국》에서 공민왕 역으로 좋은 연기를 보여준 임혁하륜 역을 맡아 고려를 끝장내는 데에 공헌하였고 역시 《개국》에서 정몽주 역을 맡은 송재호는 이번엔 이방원의 장인 민제 역을 맡아 사위의 정몽주 암살에도 깊게 관여했다(...). 송재호는 후속작인 《왕과 비》에서는 아예 태종의 외척 제거의 최대 수혜자이자 민제의 외손자 세종대왕 역까지 맡는다.

한 가지 우연인 건 이민우, 안재모, 정태우는 모두 연산군 연기를 하게 되며[59], 드라마 주인공인 유동근 역시 《장녹수》에서 연산군 역을 맡은 적이 있다. 즉, 이 드라마는 연산군이 4명이나 등장한 셈(…).[60][61]

한편 양녕대군과 함께 놀던 거러지 임금을 맡은 이원종은 《대왕 세종》에서는 세종대왕의 측근인 윤회 역을 맡아 충녕대군 시절부터 그를 왕재감으로 지지한다.

그리고 2014년 드라마 《정도전》은 아예 제작진이 작정했는지 한술 더 뜬다. PD가 용의 눈물 당시 연출부 막내였던 그 강병택 PD인 것을 시작으로 해서 여기서 태종 이방원을 연기한 유동근은 《정도전》에서 태조 이성계 역을 맡았고 세종대왕을 연기한 안재모는 태종 이방원 역, 이숙번을 연기한 선동혁이지란 역, 이방원에게 패배하는 회안대군을 연기한 김주영은 여기서는 이성계에게 밀려나는 조민수 역을 맡는다. 본격 한 세대씩 레벨업 이 중 김주영은 조연배우임에도 그리고 《용의 눈물》에 등장했던 배우가 10여년 후 똑같은 역으로 《정도전》에서 등장하게되는 유일한 경우도 생겼는데 바로 무학대사. 배우 박병호가 다시 한 번 무학대사 역을 맡았다. 아이고, 선생님. 아빠의 친구가 아들의 친구로 거기에 정도전 역을 맡은 조재현은 아예 위화도 회군 당시 이성계와 함께 회군했던 조민수의 후손이다. 그 외 정도전에서 조준을 연기한 전현은 <용의 눈물> 조사의의 난 부분에서 단역으로 등장했다.

저기에 최명길이 이성계의 향처인 신의왕후 한씨로 출연하면 아주 용의 눈물 시즌2를 보았을 것이다.

정도전 46회에선 이숙번이 이지란과 대면하는 장면이 나왔는데, 이지란이 '이숙번? 어디서 많이 들어본 거 같은데?' 라며 대놓고 배우 개그를 했다.

9. 관련 문서[편집]

[1] 처음 기획 당시 104회 방영 예정이었으나 대선정국과 맞물려 시청자에게 좋은 반응을 얻자 159회로 막을 내렸다.[2] 당초 정하연 작가로 낙점되었지만 KBS 2TV 월화드라마 조광조를 끝낸 지 얼마 안 돼 사극을 쓰는 건 무리가 있다고 판단하여 고사했는데 역설적이게도 정하연 작가의 첫 사극 집필작인 KBS 2TV 장녹수는 98년 초 <용의 눈물>과 동시간대(주말) 재방송으로 경쟁한 SBS 모래시계의 본방(월화) 당시 이 작품과 맞붙었으며 유동근(이방원 역)은 <장녹수>에서 연산군 역을 맡았다[3] 스펀지와 태조 왕건 등의 나레이션을 맡았다.[4] 후에 야인시대의 나레이션을 맡았다.[5] 그야말로 포스가 철철 넘쳐흐른다. OST에 대해서는 하단 참조.[6] 오죽하면 아주 오랜만에 정통 사극을 표방하면서도 스피디한 진행으로 각계의 호평을 받은 드라마 정도전조차도 용의 눈물의 후계를 자처할 만하다 라고 평할 정도였다(...). 사실 <정도전> 자체가 <용의 눈물> 당시 스탭진이었던 PD의 작품인데다, 적잖이 겹치는 여말선초 시대를 다루고 있어 비교를 피해갈 수 없는 상황이었고 제작비 등의 여건 차이도 존재했기에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고 하겠다.[7] <조선왕조 오백년>의 추동궁마마.[8] 조선왕조 오백년, 대장금, 허준 등의 PD.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9] 이후 대왕세종으로 남은 부분을 다루었다.[10] 사실 원작 《세종대왕》 은 여말선초 전체를 배경으로 하고 있어 거의 중반부까지는 세종대왕페이크 주인공이고 태종이 진 주인공이다. 태종 이방원 사후는 온전히 세종 시대를 다루지만, <용의 눈물>은 원작의 중반 정도까지만 다룬 셈이다.[11] 사실 그전에 《삼국기》나 《찬란한 여명》 같은 블록버스터 대하드라마가 나오긴 했다. 그러나 저조한 시청률과 함께 묻혔다.[12] 2차 요동출정 당시 우군통제사는 이성계였고, 좌군통제사가 이 사람이었다. 이성계와 의기투합하여 쿠데타를 일으키지만 이 사람 또한 곧바로 이성계에 의해 숙청당한다. 안습. 사실 이성계의 정치적 역량을 만만히 보고 창왕을 옹립시키는 등 이성계에게 개겼으나 이성계의 심복인 대사헌 조준의 탄핵으로 박살난다.[13] 본래 여진족인데, 젊은 시절 이성계의 의형제가 된 사람이다. 본 작품에서도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며 오래 등장한다.[14] 역대 KBS 대하드라마 시청률 중에선 《태조 왕건》 다음으로 2위다.[15] 하다못해 <임꺽정>에서는 이 드라마에서 정도전 역을 맡은 김흥기가 악역 남치근까지 맡고 있었다.[16] 그래서인지 태종이 조사의의 난을 진압하고 한성으로 환도하는 장면 이후 태종의 왕자들이 장성하는 기간까지 타입슬립한다.[17] 후속작인 《왕과 비》도 원래는 주인공인 인수대비가 대비로 책봉되어 궁에 들어가는 것까지만 다루기로 하였으나 그 다음에 방영될 《태조 왕건》의 제작이 더디어지자 폐비 윤씨와 연산군 파트까지 다루고 그동안 시청률이 높지 않았던 왕과 비는 그제서야 시청률이 대폭 상승했다(...). [18] 당시 신한국당 경선분위기와 더불어 비교되는 경향도 잦았다. 그리고 신문만평에서는 《용의 눈물》 패러디가 종종 등장하기도 하였다.[19] 潛邸. 국왕이나 그 일족이 궁궐에 들어가기 전에 살던 집.[20] 위화도 회군 장면을 찍을 때 이성계황금으로 도금된 경번갑을 입었는데, 이 옷은 무려 80kg이나 나갔다. 그래서 촬영이 끝난 후 김무생이 꽤나 고생을 했다.[21] 다만 2000년대 이후엔 문화재 보호 논란 때문에 궁궐에서 사극을 찍는 것은 거의 없어졌다. 초반의 중요한 장면만 경복궁에서 찍는 경우는 간간이 있으나, 극이 본격적으로 전개된 후에는 화성행궁이나 세트장에서 찍는다. 2000년대 사극 중 실제 궁궐에서 극의 대부분을 찍었던 사극은 SBS 여인천하, KBS 2TV 명성황후, KBS 장희빈 정도다.[22] 이때 당시 경복궁의 1차 복원작업, 즉 강녕전, 교태전 권역 복원이 막 끝난 뒤여서 <용의 눈물>이 금방 복원된 경복궁에서 촬영한 최초의 드라마였다. 더군다나 복원 작업도 끝났고 마침 드라마에선 한양 천도를 이야기하였던 중이었던지라 복원 완료 타이밍도 맞아떨어졌다.[23] 가령 여러 사극에서 수양대군이 무력사용을 망설이는 것을 측근들에 떠밀어 쿠데타를 일으키는 걸로 그리는데, 실제로는 주저하는 인간들 윽박질러가며 주도한 게 세조다.[24] 자조시, 실제 정도전의 문집 《삼봉집》에 그의 남긴 마지막 시로 기록되어 있다.[25] 실제로 태조실록에는 정도전의 비굴한 최후 일화 다음에는 정도전의 사뭇 비장한 최후 기사도 실려 있는데, 정도전의 아들 정담이 '정안군에게 빌어야 한다' 고 한 것을 거부한 일화가 그것이다.[26] 김흥기는 <용의 눈물> 이후 정도전의 후손 봉화 정씨 일족에게 환영을 받았으며, 그 자신도 정도전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연구했다.[27] 이환경 작가 본인조차도 이런 모습을 이후 사극에서는 제대로 살려내지 못한다. 당장 "태조 왕건"만 보더라도, 어전화의 장면은 신하들 중 수장인 시중이 "허허... 이 일을 어찌하면 좋을꼬..."라고 하면, 주요 인물들이 "그러게 말이외다", "이거야 원", "이런 일이 어찌...", "허허... 참..." 정도로 대강 때우는 일들이 다반사이며, 대부분의 사극은 신하들이 하라는 정치는 하지 않고 모략과 협잡에만 더 공을 들이는 식으로 나온다.[28] 유교사회에서 천자의 죽음은 붕(崩), 제후의 죽음은 훙(薨), 대부의 죽음은 졸(卒), 선비의 죽음은 불록(不祿), 백성의 죽음은 사(死)로 표현했다. 조선왕조는 어쨌건 제후국을 표방한 나라이므로 태종 이방원의 죽음은 훙(薨)이 맞다.[29] 둘 다 여흥 민씨다.[30] 심지어 정안대군이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는 얘길 민씨 부인 앞에서 하는 장면이 본작에 나온다(...).[31] 천민들과 어울려 상주놀이를 하는 모습, 어머니 원경왕후가 아들을 위해 열어 놓은 굿판에 뛰어들어 무당의 칼을 빼앗아 들고 자신이 무당춤을 추는 모습 등 광기 어린 양녕의 기행을 신들린 듯 연기하여 방영 당시에도 대단한 주목을 받았다.[32] 궁궐에서 밥상 나르다가 태종 이방원의 눈에 띄어 '승은'을 입게 되는데... 이에 분노한 원경왕후에 의해 죽을 뻔하고, 태종의 흥미도 잃게 된 채 조용히 극중에서 사라진다. 안습. 2001년 드라마 인생은 아름다워에서 이성계(김무생)의 딸로 나온다. [33] 원래 경순공주 역으로 들어갈 예정이었으나 당시 영화 촬영 중이라 삭발이 불가능해서 거절했다.[34] 극중에서는 학문과 인품을 겸비한 당대의 대학자로 등장했다. 중전이 된 딸과 권세를 차지하는 장/차남(민무구-민무질 형제)이 사위 이방원과 함께 두 차례의 왕자의 난에 가담하는 등 강한 권력의지를 드러낼 때 민제가 이를 강하게 만류, 경고하는 모습이 자주 등장한다. 이는 민제 자신이 권력에 초연한 학자 스타일이기도 했지만 외척정치에 대한 방원의 경계감을 눈치 채고 있었기 때문이다.[35]태조 왕건》에서 배현경 역을 맡은 배우.[36] 극중에서 이성계여진족 의형제 이지란의 부하 장수 출신으로 등장한다. 두 차례의 왕자의 난을 비롯해 초반부에는 고지식하고 용맹할 뿐인 무사였는데, 방원이 즉위하여 중신으로 정계에 본격 등장하면서 나름 학문과 유머를 구사하는 개그 캐릭터로 변모한다. 조영무가 죽은 직후, 그의 상갓집에 조문 온 중신들 중 황희가 "우리에게 많은 웃음을 주신 분"이라고 인증까지 했을 정도이다.[37] 제2차 왕자의 난 직후 이방원이 사병 폐지의 일환으로 측근들을 귀양 보내는 장면이 나오는데(그래도 즉위 직전에 대부분 복귀시켜 중신에 임명함), 조영무가 귀양 생활하면서 뒤늦게 공부에 심취하는 모습이 나온다. 늦깎이 학구파. [38] 이 사람은 이후 KBS 드라마 《장희빈》에서도 상궁 역을 맡았었다.[39] 이 같은 미안함 때문에 유동근은 이덕화 임동진 등 선배 탤런트들과 함께 2005년 7월 8일 열린 김재형 PD 고희연을 마련했다[40] 양조에 한결같은 마음으로 공력을 다 기울여, 서책에 담긴 성현의 교훈을 저버리지 않고 떳떳이 살아왔네. 삼십년 긴 세월 온갖 고난 겪으면서 쉬지 않고 이룩한 길에서, 송현방 벗님네에서 한 잔 술 나누는 사이 모두 다 허사가 되었구나.(操存省察兩加功 不負聖賢黃卷中 三十年來勤苦業 松亭一醉竟成空) 참고로 자조에 대한 해석은 요즘에는 많이 다르다. 특히 兩加를 <용의 눈물>에서처럼 '두 왕조'로 해석하는 것은 무리한 것으로 보이며, 오히려 유가의 수양방법을 뜻하는 操存과 省察에 힘을 다했다는 뜻으로 보는 것이 더 합당하다. 그래서 동시대를 다룬 드라마 정도전에서는 "조존과 성찰 2곳에 온통 공을 들여서"라고 해석했다.[41] <용의 눈물>에서 극에 달한 분노를 주체 못한 이성계가 어검을 찾는 부분이 있다. 어검, 어검을 가져오너라! 어서 가져와![42] 이 장면은 임혁의 사극 연기 중 가장 포스가 넘치는 장면이기도 하였다. 덕분에 근래의 과격한(?) 연기변신이 돋보인다. 해당 문서 참조.[43] 어디까지나 극중에서의 설정이다. 실제로는 그런 거 없었다. 다만 양녕대군을 걱정하며 태종이 신하 앞에서 눈물지었다는 내용은 사실이다. 실제로 실록에 기록되어 있다. 양녕대군 문서 참조.[44] 빠르게 보고 싶다면 양녕의 반발은 5분부터, 빌다시피 부탁하는 태종의 모습은 9분부터.[45] 왕권강화를 위해 4명의 처남들을 모조리 죽여버릴 정도로, 그야말로 피도 눈물도 없는 독사같이 차가운 이방원의 포스를 연기했던 유동근이, 또 이런 평범한 아버지의 모습을 처절하게 보여준 것은 그야말로 할 말을 잊게 만드는 명장면이었다.[46] 둘의 대화는 1시간째부터, 빠르게 보고 싶다면 1시간 8분 40초부터.[47] 이 역시 야사에 나오는 태종우 전설을 각색한 것. 야사에만 나온다지만 태종우 전설은 《난중일기》에서 이순신 장군도 이야기하고 있다. 제법 민간에는 널리 퍼진 이야기였던 모양.[48] 정비 안씨의 출생년도는 미상이다.[49] 재미있게도 2014년작 《정도전》에서의 정도전은 오히려 이인임에 의해 고구려의 명맥 이야기가 나오는 것을 백성부터 챙겨야 한다며 단칼에 자르는 정반대 캐릭터로서의 면모를 보였다. 이 부분은 해당 문서 참조.[50] 1990년 방영된 <파천무>의 살생부 씬을 <용의 눈물>에서 그대로 써먹었다.[51] 실록에는 처참(處斬)하게 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흔히 능지와 처참을 혼동하는 경우가 있지만 다르다. 처참은 문자 그대로 참형에 처했다는 뜻이고, 실록에도 분명히 의금부의 주청에 대하여 강등하여 처참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는 형을 한 단계 낮추었다는 뜻이다.[52] 이는 후에 《대왕 세종》에서 제대로 묘사되었다. 여기선 강상인이 압슬형으로 무자비하게 고문당하고 처형당하는 과정이 꽤나 적나라하게 나온다.[53] 본작에서도 중요한 장면에서 구로자와 아키라 영화의 배경음악이 등장했다. 본작의 초반 명장면이라 할 수 있는 선죽교 장면이나 세자빈 자진 장면 등.[54] 제작비 등 기타문제때문에 소규모로 음악작곡을 한 경우는 있어도 관현악단을 동원한 대규모 음악은 없었다.[55] 우리가 흔히 아는 뉴스데스크 시그널 음악도 바로 이 분이 작곡하셨다.[56] 과거에는 이런 관념이 많았으며 세종문화회관이 오랫동안 대중음악 공연을 거절한 이유도 같다. 결국 무너지긴(?) 했지만.[57] 사실 《대왕 세종》의 태종은 그 포스가 《용의 눈물》에 비해 상당히 떨어진다. 김영철 배우의 연기는 출중하지만, 각본상 캐릭터 자체의 차이가 무시할 수 없는 차이를 낳은 경우. <용의 눈물>은 태종이 중심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면서 주인공으로 활약했지만, 대왕 세종에서는 어디까지나 세종의 아버지로서 묘사되었기에 시세에 휘둘리고 고뇌하는 비교적 나약한 모습이 더욱 두드러졌기 때문이다(...).[58] 방송사는 DJ 이니셜은 말 목장의 소유주를 뜻하는 것이라고 해명했다.[59] 정확히 말하자면 이민우의 경우 2년전 1994년 KBS 드라마 한명회에 출연하여 연산군 역할했다.[60] 사실 이민우는 원래 충녕을 제안받았고, 양녕은 안정훈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것이 무산되면서 안정훈의 성년 사극 연기는 1999년의 "어사 출두"(박문수의 어사보-조수격)에서의 단역과 3~4년 뒤인 《태조 왕건》의 혜종 역으로 미뤄지게 되었고 이후 안정훈은 현대극 중심의 배우가 되었다. 하지만 《카이스트》엔 같이 나왔지 [61] 이민우는 한명회 드라마에서 연산군을 맡았으며, 안재모는 차기작인 왕과 비, 정태우는 왕과 나에서 맡게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