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코야마 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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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KB48 그룹 역대 총감독

다카하시 미나미

요코야마 유이
(2015.12 ~ )
[1]

-

AKB48 팀 A 역대 캡틴

시노다 마리코

요코야마 유이
(2013.07 ~ 2014.04)

다카하시 미나미

다카하시 미나미

요코야마 유이
(2015.09 ~ )

오카베 린

AKB48 팀 K 역대 캡틴

오오시마 유코

요코야마 유이
(2014.04 ~ 2015.08)

미네기시 미나미

AKB48 Team A

요코야마 유이 (横山 由依)

파일:yokoyama_yui.jpg

출생일

1992년 12월 8일 (25세)

출신지

교토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364px-Symbol_of_Kyoto_Prefecture.svg.png 기즈가와 시

소속 그룹

AKB48 팀 A
Not yet

그룹 경력

AKB48 9기생
AKB48 팀 A (2012~2014, 2015~)
AKB48 팀 K (2010~2012, 2014~2015)
NMB48 팀 N (2012~2013)
2대 AKB48 그룹 총감독 (2015~)

신체

키 158cm, 74-60-86(cm)[2]

혈액형

B형

별자리

사수자리

원숭이띠

별명

유이짱, 유이항[3], 슨드브[4], 슨듭, 티벳여우[5],
혼마양[6], 니로니[7], 듭총[8], 듭동님[9], 듭쿠르트[10]

소속사

오오타 프로덕션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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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KB48순두부 캡틴, 이제는 AKB48의 미래를 향해!
48그룹을 총 지휘하는 눈물 많은 아이


1. 개요
1.1. 다사다난한 이력1.2. 캐릭터 및 성격1.3. 대인관계1.4. 슨드브1.5. 전설의 패션센스1.6. 기타
2. 활동3. 논란 및 비판4. 선발 참여곡5. 작품
5.1. 사진집·영상집

1. 개요[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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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KB48 9기생 출신으로 운영진의 푸쉬멤버이다.[11] [12] 연구생시절 주로 팀 A 언더를 서다가 오노 에레나의 빈자리로 팀 K로 승격했다. 후에 도쿄돔 콘서트에서 팀 A로 이동했는데 시노다 팀 A의 캡틴인 시노다 마리코가 졸업하면서 캡틴직을 승계할 멤버로 요코야마를 지목하였다. 때문에 팀 A의 캡틴을 맡게되었다. 때문에 팀 이름도 요코야마 팀 A로 변하게 되었다. 9기생의 위엄 근데 총감독이랑 1살차이 밖에 안난다. 후에 AKB48그룹 대조각축제에서 팀 K로 이동과 동시에 팀 K의 캡틴직을 맡게 되다가 다시 봄 콘서트에서 팀A 캡틴으로 임명됨과 동시에 팀A로 이동했다. 또한 차기 총감독으로 지명되어 총감독 후계자를 수행했다가 2015년 12월 8일 AKB48 결성 10주년 기념공연에서 다카하시 미나미로부터 최종적으로 총감독직을 이양받았다.

캐치프레이즈는 금각사보다 빛나고 싶습니다! 교토 출신의 요코야마 유이입니다. 단, 교토 출신이면서 한번도 금각사에 가 본 적이 없다는건 넘어가자

장래희망은 AKB내에서도 매우 드문 솔로가수로 음악을 좋아하고 AKB내에서 노래를 상당히 잘하는 축에 속한다. 목표는 솔로가수로써 '오사카성홀'에서 노래하는 것. 슨듭의 교토홍보송

'유이항 ゆいはん '이라는 별명은 8기생 사노 유리코[13]가 지어주었지만, 후술할 '슨드브' 덕분에 한국에서는 많이 사용되지는 않는다. 이 별명은 '~씨'에 해당하는 さん을 칸사이벤에서 はん으로 쓰는 것을 보고 유이가 마침 AKB에서 드문 칸사이 지역 출신이니까 그렇게 지은 모양인데, 정작 칸사이 지역에서는 'さん=はん'이 아니라는게 문제. 간략하게 말하자면 い또는 う로 끝나는 경우 및 サ行으로 끝나는 경우는 칸사이에서도 그냥 さん을 쓴다. 따라서 '유이항'이라는 표현은 틀린 것. 일본사람이라도 칸사이 출신이 아니라면 이 사실을 모르는 경우가 많다. 친구들은 '요코항(横はん)'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유이항'이 유명해져서...

좌우명은 타인과 과거는 바꿀 수 없지만 자신과 미래는 바꿀 수 있다. 중학교때 국어선생님이 말하신건데 그 때에는 뜻을 잘 몰랐다고 한다. 근데 이제 스스로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1.1. 다사다난한 이력[편집]

유이는 노력은 반드시 보답한다는 것을 가장 잘 보여주는 멤버이다. 어렸을 적부터 가수를 꿈꿔온 유이는, 초등학교 4학년부터 지금까지 오디션을 봐왔다고 한다.

100회이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저, 교토출신이라 주위에 그렇게 말하는 친구는 없었어요. 초등학교 6학년부터 중학교 1학년때에는 어떤 사무소의 레슨생이었어요. 여름방학이나 겨울방학이 되면 도쿄에서 1주일간의 합숙이 있었어요. 거기에도 참가하고 그랬네요. 하지만 결국 후보생이었어서, 겉으로 나오기도 전에 떨어졌네요. 그 이후, 중학생 때의 어떤 시기에는 다른 사무소로 들어가서 레슨을 받았습니다만, 역시 겉으로 나올 수 없었어요. 그러고도 잡지에서 열린 오디션에 응모했지만 또 떨어졌네요. 그러니까 AKB48 오디션을 볼 때도 각오를 했습니다. 그런데 너무 분해서… 절대 리벤지하고 싶다고 맹세했어요. 후회하고 싶지 않았으니까요 (잡지 인터뷰中)


유이는 근성이 강한 멤버이다. 중학교 때 농구부 멤버였으며, 고등학생 때는 교토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알바로 야간버스[14]비와 생활비를 벌어가며 주말에 도쿄로 올라와 레슨을 받았다고 한다. 당시 돈이 없어서 신칸센은 못 탔다. 애초에 도쿄-교토간은 신칸센으로 만 엔 이상을 받고 버스는 프리미엄급 아니면 비싸도 17년 현재 기준으로 6천엔을 받고 있으니 당연할 수 밖에...

금요일 밤 10시에 집에서 나와요. 교토역 출구에서 23시에 심야버스가 출발합니다. 토요일 아침7시 4분에 도쿄역 야에스에 도착합니다. 8시간걸려요. 레슨은 10시부터인데, 메구로역 앞에 있는 맥도날드에서 시간을 보냅니다. 밥을 먹거나 춤 위치를 확인하고, 레슨을 받으러 가요. 밤에는 비즈니스 호텔에서 묵고, 일요일 레슨이 끝나면 심야버스를 타고 교토로 돌아갑니다. 이것을 매일 반복했습니다. 버스라고 해도 학생 요금 왕복이 1만엔이 넘어요. 비즈니스 호텔이라고 해도, 도심이라면 1만엔 전후입니다. 모으고 있던 아르바이트비로 충당해도 금방 바닥났어요. 아르바이트비로 도저히 충당할 수 없어서 부모님께 상담하여, 나중엔 부모님이 빌려주셨어요. (잡지 인터뷰中)

시간이 아까워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버스 안에서 이미지 트레이닝을 하기로 했습니다. 곡을 들으면서, 머릿속에서 안무를 이미지합니다. 어려웠지만 점점 할 수 있게 되었어요. 당시 연습하고 있던 팀B의 ‘아이돌의 새벽’을 들으면 아직도 고속도로 창문에서 보고 있던 오렌지색의 빛들이 생각나요 (웃음). 그리고 평일에도, 아르바이트가 끝나면 집에 돌아가서 자버렸지만, ‘돌아가고 나서 자는 것은 30분만’ 을 규칙으로 자고 일어나면 연습했습니다. 시간은 만드는 것이라는걸 실감했습니다 (잡지 인터뷰中)

크리스마스때는 집 근처의 빵 공장에서 알바를 했다는 슬픈 전설이 유명하다. 이런 근성과 노력은 후에 유이가 푸시를 받는 기반이 된다.

연말에는 야마자키 빵 공장에서 크리스마스 케익을 만드는 아르바이트도 했어요. 짧은 기간 동안이긴 했지만 시급도 좋았으니까요. (중략) 크리스마스 이후에는 과자를 포장하는 일을 했어요. 사원 중 한 분에게 공장에 취직하지 않겠냐고 스카우트되었습니다!


이후의 이력을 살펴보면,
2009년 3월 'SKE48 제2기 멤버 오디션'에서 불합격[15]
2009년 4월 'AKB48 제8기 연구생 오디션'에서 불합격[16]
이렇게 인생을 바꿔버릴 수 있었던 오디션 2개를 매우 운좋게 떨어진다.
2009년 9월 20일 'AKB48 제9기 연구생 오디션'에서 합격 입갤[17]
합격 이후에, 당시 다니고 있던 교토에서 다니던 고등학교를 그만두었다. 이때까지는 가장 친한 친구에게도 AKB에 대한 말을 꺼내지 않았다고 한다.

오디션을 치루기 시작한 초등학생 때부터 가족과 아주 극소수의 사람 외엔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않았어요. 친구들에게도 일체 이야기 안했습니다. 뭔가, "요코야마 유이"라는 이름으로 제대로 출세하기 전까진 말하고 싶지 않았으니까요. AKB48의 경우엔 정식으로 연구생이 될 때까지 말해선 안된다는 규칙도 있었지만. 반 친구들에게는, 학교를 그만두는 날 홈룸 시간에 선생님이 작별인사할 시간을 주셔서 "AKB48에 들어가게 되어서, 오늘로 학교를 그만둡니다."라고 말했어요. 언제나 학교에서 함께 지냈던 친구에겐 역시 미리 말해두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해서 그 전날에 말했습니다.


파일:external/img.theqoo.net/uqI1qpM.jpg
그런데 9기생 연구생 합격 이후의 앞날은 어두워 보이는게 사실이었다. 2010년은 AKB가 슬슬 입질을 받는 타이밍이었다. 그러므로 정식멤버들중에 졸업하는 멤버가 아무도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팀에서도 연구생들의 승격을 위한 TO가 나질 않았다.[18] 그리고 이미 인기멤버들이 완전 자리를 잡았기 때문에, 새로 푸쉬멤버가 된다는 것은 더욱더 어려워 보였다.

그런데 2010년 팀 K의 인기멤버였던 오노 에레나대 여배우로서 공부를 위해 퇴갤졸업해버린다.[19] 정식팀의 TO가 기적적으로 났는데 그 TO가 인기멤버 포지션. 이 하늘이 내려준 기회의 주인공이 누가 될 지 팬들 사이에서는 의견이 분분하였다. 당연히 1순위는 9기생중에 인기가 높았던 낚시녀야마우치 스즈란, 아이돌 외모를 자랑하는 파레기시마자키 하루카였다. 그런데 2010년 10월 10일, 「AKB48 도쿄가을축제」의 마지막날. 요코야마 유이를 팀K로 승격시키는 걸 발표한다. 여기에서 유이는 AKB48 내에서 가장 프로 의식이 높고, 모두에 있어서 타협이 없는 시노다 마리코에게 '굉장한 노력가로 다카미나 다음으로 존경한다'라는 극찬을 듣게된다. 유이는 팀A 6번째공연『목격자』에서 마리코씨의 파트(언더)로 마리코가 레슨에 참가할 수 없을 때 가르치는 역할을 했었는데, 누구보다도 죽을 생각으로 멤버 누구보다도 정확하게 댄스와 포지션을 기억하고 쭉 연습하고 있었다고 한다. 아마 마리코가 유이를 운영진에 승격멤버로 적극추천하지 않았나 싶다.

당시 나고야에서 무대에 오르고 있었기 때문에, 일정이 겹쳐서 한동안은 연습에 참가도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어요. 제 언더로 있던 유이쨩이 안무와 포지션을 외워서, 밤늦게 나고야에서 돌아오는 저를 기다려주곤 했어요. 그것도 선생님께 배운 것뿐만 아니라 유이쨩 자신이 의문을 느꼈던 부분이라든지, 중요한 포인트까지 전부 기억해서 알려줬었어요. 전 (다카하시) 미나미를 정말 존경하지만, 유이쨩도 미나미처럼 인간적으로 존경할 수 있는 아이라고 생각해요. 솔직히 유이쨩이 있었기에 제가 신 팀 A 공연을 해낼 수 있었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시노다 마리코. AKB 히스토리中)

제가 잘못 가르쳐서 시노다씨가 잘못하면 제 탓인데 시노다씨의 실수가 되잖아요. 그래서 세세한 것까지 확실하게 기억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예를 들어, 제 자신의 다음 위치를 극장에 있는 기둥과의 위치로 관계지어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레슨장에도 같은 기둥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 기억하는 방법이 제자신은 알아도 시노다씨는 모르잖아요. 그러니까 제대로(기둥에 의한) 가르쳐드리지 않으면 안됐어요. 그리고, 시짱삿시가 도와주었습니다. 밤에, 시쨩의 집에서 함께 연습한다던가.『アイヲクレ』 라는 곡이 있습니다만, 그 곡이 어렵습니다. 원래 리듬조차 기억할 수 없었어요. 그렇지만, 제가 자버렸을 때 시짱이 쭉 카운트를 하면서 연습하고, 그것을 자면서 들으면 다음 날에는 기억할 수 있었어요…. 그런 일도 있었답니다 (잡지 인터뷰中)


오노 에레나는 AKB를 졸업하기 전에 AKB내에서 가장 강력한 소속사인 오오타 프로덕션 소속이었다. 아마 이때부터 오오타 프로에서 에레나의 자리를 유이로 대신하기로 이미 이야기가 끝나지 않았나 싶다. 오노 에레나를 대신해서 들어온 까닭에 상당히 까였으나, 졸업 후 오노가 유학은 엿 바꿔 먹고 DQN스러운 행동을 계속했다는 의혹이 일고 있어서[20], 오히려 앞에서 언급한 긍정적인 측면으로 인해 재평가받고 있다. Oh Oh 슨듭 Oh Oh 거기다가, 선배 멤버들이 다른 스케쥴로 못 나올 때엔 언더로 대타 뛰고, 해당 선배들의 안무를 지도 해 주기 위해 밤 늦게까지 대기하기도 하여 선배 멤버들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멤버이기도하다. 관계자, 멤버 모두에게 인정받는 멤버이다.

이후로 유이는 엄청난 광푸시를 몰아 받게된다.

1.2. 캐릭터 및 성격[편집]

체육 전반에 자신 있는 체육계 캐릭터이다. 하이킥![21]특기는 측회전,물구나무서기등 기계체조(!!!)라고 한다. 또 다른 특기는 드럼

처음에는 차분하고 조용한 캐릭터가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개드립도 잘치게 되었고, NMB48을 겸임하면서는 눈에 띄게 밝아졌다고 한다. 이제 이런 낯간지러운 것도 시키면 잘한다. 어른이 된 슨드브의 유혹

출신지는 캐치프레이즈에 나와있다시피 교토[22]로 방송시에는 가급적 표준어인 도쿄말을 쓰려고 노력하나, 간간히 튀어나오는 교토 사투리가 은근한 매력을 풍긴다는 팬들이 많다. 다만 실제로 나고 자란 곳인 키즈가와시가 교토이긴 한데, 나라현 바로 옆이라 실제 행동반경은 나라현이었다는 얘기도 있고, 교토 팬들이 '교토 사투리가 어색하다'며 까기도 했다(…)

성격은 다소 남자같은 성격이라고 한다. 인생에서 한 번도 고민이라는 것을 해본적이 없다고 한다. 그리고 오기와 근성이 대단하다. 슨듭의 마카오 번지점프의 전설 또한 매사에 진지한 성격. 하지만 그런 너무 진지한 성격덕에 악수회 성적이 좋지 못하다. 유이항의 악수회가 재미 없다는 것. 물론 사람마다 다르지만 일본팬이나 한국팬이나 모두들 유이가 너무 진지하기 때문에 악수회 성적이 낮다고 분석하고 있다.

끈기와 집중력이 엄청나다. 지기 싫어하는 성격도 가지고 있는 듯.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영상

매운 음식을 매우 잘먹는다. 2012년 7월 6일 '가치챠레'에서는 타바스코보다 6배 맵다는 대한민국청양고추를 사용한 '불닭', 세계에서 가장 요리가 맵다는 부탄의 요리중 하나인 치즈국물에 청양고추보다 2배정도 매운 부탄고추를 통으로 넣고 졸인 '에마다치', 타바스코의 100배 이상 매운 하바네로안에 고기를 넣고 튀긴 멕시코요리, 하바네로보다 매운 태국산 고추 프릭끼누를 사용해 볶은 태국요리인 '파 가파오', 하바네로를 뛰어넘어 세계 제일의 매운맛으로 기네스북에도 오른 부트 졸로키아라는 맨손으로 만지면 손이 따가울 정도라는 위험한 이 고추를 사용한 인도 요리카레를 모두 정복했다. 예나야 한판붙자

AKB내 차기 캡틴으로 주목받고 있는 듯하다. 참고자료 그러나 유이는 캡틴으로서 적합한 멘탈과 근성을 가지고 있지만 닼민보다 불과 1살 어리고, 유이 자신으로서의 그룹 내 리더쉽은 아직 증명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다카하시 미나미-마에다 아츠코를 이을 캡틴-센터 콤비로 요코야마 유이-시마자키 하루카를 만드려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도 있다[23].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졸업하는 시노다 마리코를 대신하여 팀 A의 캡틴이 되었다. 2013년 12월 17일 개최된 '제3회 AKB48 홍백대항가합전'에서는 오오시마 유코를 제치고 백조의 캡틴을 맡기도 했다. 홍조의 캡틴이 이분인 것은 그냥 넘어가자

총감독으로 내정된 이후에는 솔선해서 운영을 설득해서 무료 라이브 공연을 기획하는 등 그룹을 생각한 의견을 적극적으로 내고 있다. 보다 많은 사람에게 AKB를 알리고 싶다고.#

1.3. 대인관계[편집]

선배들과도 터놓고 지내는 사이고 동기, 후배들에게도 신뢰가 두텁다.

출신지가 지방인 멤버들의 모임 '지방조'의 오오야 시즈카, 코모리 미카, 키타하라 리에, 사시하라 리노와도 친하다. 키타리에와 삿시는 같이 AKB48의 선발을 맡고 있고 같은 지방조에다가 같은 유닛같은 소속사기 때문에 특히 친한 것 같다. 특히 친한 멤버는 키타하라 리에 팀 K 캡틴 부캡틴까지 같이 맡고, 투샷도 많이 같이 올라오며 잠자러도 많이 가는 사이. 전설의 짤방 역시 키타하라 리에의 작품

같은 9기생인 시마자키 하루카와는 절친이며, 유이파루를 결성. 파루루가 푸시를 받고 같이 선발멤버가 되고나서 더욱 더 붙어다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시마자키가 요코야마에게 많이 의지를 한다고 한다.[24]

NMB48 겸임시절 알게 된 남바 멤버들하고도 여전히 친분을 유지하고 있다. 같이 유닛곡을 불렀던 야마모토 사야카야마다 나나와는 특히 더 친한 모습을 많이 보이는데, 야마모토 사야카와는 요코야마모토라는 이름으로 상당히 가까운 사이. 겸임 시절에는 '사야카의 무거운 짐을 반 짊어져 줄게'라고 했을 정도로 우정이 깊다. NMB48 홍백가합전 첫 출장이 발표되었을 때 대기실에서 눈물을 터트린 사야네를 달래주는 사진이 올라오기도 했다. 겸임 이후 유이의 성격이 많이 밝아진 것을 이때 사귄 남바 멤버들 덕이라고 생각하는 팬들도 많다.[25]

카와에이 리나가 팀A로 이동 후 카와에이와 무척이나 친해졌다. 마음이 잘맞아서 사소한 일에도 서로 깔깔거린다고 한다. 요코에이라고도 부르죠

月刊ENTAME 2014년 2월호에서 친한 멤버들로 오오야 시즈카, 키타하라 리에, 사시하라 리노, 시마자키 하루카, 카와에이 리나, 다카하시 쥬리, 미야자와 사에, 카시와기 유키를 꼽았다.
존경하는 멤버는 다카하시 미나미, 언니같은 멤버는 키타하라 리에, 동생같은 멤버는 카와에이 리나, 오시멘은 무카이치 미온이라고 한다.


코지마 마코가 팀K로 이동 후 마코와도 상당히 친해졌다. 요코야마코라는 이름으로 투샷이 자주 올라온다. 제 7회 총선거 속보에서 마코가 권외였을 당시 본인 역시 속보 성적이 좋지 않았음에도 마코를 위로해주기 위해 각종 먹을 것을 사 가지고서는 마코의 집 앞에서 기다렸다고. 이후 마코는 이에 대해 인간의 상냥함을 넘어섰다고 평했다 이외에도 극장 공연에서 마코의 여동생다움에 푹 빠져 있다고 말하는 등 제법 친분이 있는 사이.

1.4. 슨드브[편집]

한국에서의 별명이 슨드브, 내지는 슨듭. 한국내에서 슨드브로 불리는 이유는 바로 아래 사진 때문.
파일:external/24.media.tumblr.com/tumblr_ma5qhz1Wtv1r8s56vo1_500.jpg
일본에서는 순두부가 아이돌을 먹습니다!

좋아하는 음식이 순두부라고 인증을 했는데 순두부의 일본식 발음이 슨드브인 관계로 별명으로 바로 굳어진 케이스. 이게 시초가 되어 디시 일연갤에서는 본명보다는 슨듭으로 알고 있는 경우가 더 많고(…), 슨듭외의 다른 별명은 여기서 파생되어 나온 것. 최근에는 자신이 한국에서 '슨드브'로 불린다는 것을 알았다고 한다.

16년 6월 13일, 키타하라 리에와 함께 개인방송 "Showroom"을 진행하던 중, 스스로 슨드브를 인증하였다. 한글 닉네임을 가진 팬을 보고, 한국어로 인사한데 이어, 옆에 있던 키타하라에게 "나, 한국에서는 '슨드브쨩'이라고 불린대"라고. 키타리에의 반응은, "귀엽잖아! 좋겠다. 나도 그런 별명 가지고 싶어. (온천달걀을 좋아해서) 온타마쨩이라던가" 누가 키타리에에게 어개라는 별명을 말해줘야. 근데 일본에서도 장어개로 불리잖아? 28분 19초부터 보자

1.5. 전설의 패션센스[편집]

유이는 패션센스가 엉망인데, 그 패션센스를 보여주는 전설의 명짤이 있다.[26]

파일:external/livedoor.blogimg.jp/a0f985a2.jpg

이 강렬한(?) 사진은 AKB팬들 사이에서 깊은 인상을 주었고 후에 패러디가 난무하게 된다.

이 모든 옷은 브랜드 옷이다. 뭐가 문제인걸까

2016년 2월 23일자 런던하츠 사복센스없는여자에 출연에 우승(...)을 차지했다.

1.6. 기타[편집]

파일:external/24.media.tumblr.com/tumblr_miv7oiDWHm1rcpzhlo1_500.jpg
고양이 비스를 키우고 있다. 사실 비스가 슨드브를 키우고 있다. 잘생긴 외모로 멤버들 사이에서도 인기만점. 타노 유카의 증언에 의하면 폰 갤러리의 1/3이나 1/4가 비스 사진이라고. 팬들끼리 투표한 AKB48 멤버들의 애완동물 선거에서도 4위를 차지했다. 물론 투표수가 낮아 큰 의미는 없다.

파일:external/livedoor.blogimg.jp/521f536f-s.jpg
최근 주인을 닮아서 살이 좀 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인기는 좋다.

파일:external/37.media.tumblr.com/tumblr_n3byg5Cq7G1r31n4zo1_250.gif

파일:external/37.media.tumblr.com/tumblr_n3byg5Cq7G1r31n4zo2_250.gif

듭캡틴한테 깝치면 명치를 존내 쎄게 맞는다.

파일:attachment/요코야마 유이/yoko.png
하지만 이케멘 앞에선 나도 여자

연구생 때 굉장히 말라서 비쥬얼도 나쁘지 않았지만 나중에 살찌면서 이런 느낌은 전혀 사라진다. 그렇게 거의 6년을 그 상태로 보내다가 2016년 후반기 부터 살이 빠지기 시작한다. 2017년 들어선 그렇게 안빠지던 팔뚝살과 얼굴살이 확실하게 빠졌다.

2. 활동[편집]

2011년 1월 21일,'AKB48 리퀘스트 아워 세트리스트 베스트 100 2011'에서 오오시마 유코, 키타하라 리에, 사시하라 리노와 같이 신유닛 Not yet을 결성하는 것이 발표되어, 3월 16일에 데뷔하였다. 당시 유이는 AKS절반오오타소속이었고 나머지 낫옛멤버들은 모두 오오타 프로덕션소속이었다. 이로서 유이도 이후 오오타행 확정. 후에 낫옛은 AKB유닛중에 가장 강력한 유닛으로 성장한다.

이후에 AKB48 주연의 본격 양아치 학원물 드라마 마지스카 학원 2기에서 취주악부의 부장 오타베역[27]으로 단아하면서도 무서운 미인의 이미지로 자신의 존재를 어느 정도 알린 후 인지도 급상승, 극중 오타베는 교토 여자답게 조용하고 날카로우며 꼼꼼한 성격으로 주인공 네즈미를 사사건건 방해한다.

2011년 5월 25일 AKB48 21st Single Everyday、カチューシャ에서 처음으로 선발 멤버 진입을 달성하게 된다.[28]

2011년 6월에 실시된 제3회 총선거에서 단박에 19위에 랭크되는 기염을 토한다. 2010년의 제2회 총선에서 등수에도 들지못한 것을 생각하면 그야말로 대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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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기쁨 때문인지 결과 소감발표 후 감격에 겨워 정신줄을 놓은상태로 스탭에게 부축받는 모습을 보이기도. 물론 전세계에 큰 웃음 빅재미를 주었다. 실신슨듭 이후 신음소리는 슨듭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었다

이후 푸쉬의 단적인 사례로, 발매 첫날 100만장이라는 위엄을 보인 <フライングゲット>에서는 AKBINGO! 후반에 공연하는 스테이지 라이브에서 마에다 아츠코의 센터를 당당히 차지했다.[29] 오오시마 유코, 코지마 하루나등의 인기 선배들이 있어도 얄짤없다.유코 안습…[30] 그래서인지 몇몇, 특히 카미7 팬들에게는 어째서 아키P는 아이돌답게 생기지 않은 멤버만 푸쉬하냐는 불만도 나오고 있다는 듯(…)

최근 AKB48의 핵심세력으로 급부상 중인 "지방조(지방 출신 멤버들의 모임)"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으며, AKBINGO!에서는 안습+자학 컨셉을 밀고 있다. 사복특집에서는 사복을 잘 입는 코지마 하루나를 보고 "저렇게 사복을 잘 입는 사람이 이 세상에 있다니, 같은 인간이 아니에요.. ㅠㅠ", 남장특집에서 "혹시 남학생이 되면 지각사유로 뭘 대겠는가?"라는 질문에 "밤새 하는 아르바이트가 늦어져서요 ㅠㅠ"로 답했다. 순식간에 분위기가 숙연해지면서 큰 웃음을 주었다. 2012년 1월 18일자 빙고에서는 다카미나에게 칭찬 아닌 칭찬 (다카미나의 드립 재밌다고 생…각….^%#$@%) 을 하며 큰 웃음을 주었다. 예능감이 조금씩이나마 상승하고 있는 듯.

이후, AKB 그룹 멤버들이 콩트에 도전한 히카리 TV의 '미묘~'에서는 '혼마양' 캐릭터를 만들어내며 가장 큰 수혜자로 평가되었으며, Not yet 멤버들이 레귤러를 맡은 TBS 테레비의 '욘파라'에서 예능감이 만개한다. '니로니'사건이 그 대표적인 예중 하나.[31]

2011년 12월 15일 "AKB to XX!"에서는 이상형을 묻는 질문에 동방신기라고 대답했다.

2012년 3월 25일, AKB48 '업무 연락. 부탁한다, 카타야마 부장! in 사이타마 슈퍼 아레나' 콘서트의 3일째에 AKS로부터 오오타 프로덕션으로 정식이적발표가 났다. 반오오타에서 완전오오타가 되는 순간

2012년 6월 6일 제4회 총선거에서 15위로 선발진입에 성공하였다. [32] 여기서 또 신음여우 소리와 함께 소감을 발표해 오타들이 폭소하게 만들었다. 이건 뭐 2011년 총선거영상을 가져다 붙여 틀어도 되는 그런 판박이 형국. 2013년 총선거에서 다이제스트 영상을 틀어줄 때에 두고 두고 개그포인트감이 될 듯.

2012년 7월 18일 칸사이 TV에서 자신의 첫 단독 칸무리 프로그램[33] '요코야마 유이가 유쾌하게 돌아다니는 교토미의 음색'이 방영되었다.

2012년 8월 24일 도쿄돔 콘서트에서 신내각이 조성되어 팀A로 이동과 함께 NMB48로의 겸임이 발표되었다.

2012년 9월 18일 'AKB48 29th Single 가위바위보 대회'에서 3위를 차지했다. 순위결정전에서 이타노 토모미, 카시와기 유키, 시노다 마리코등은 모두 떨어지고 남은 멤버는 시마자키 하루카, 니토 모에노, 우치다 마유미 밖에 남지 않은 절망적(?)인 상황… AKB팬들은 한마음으로 한뜻으로 센터슨듭을 외쳤지만… 시마자키 하루카한테 져버렸다. 결국 센터는 시마자키 하루카가 차지해버렸다.

2012년 12월 19일 NMB48 팀 N 극장 공연에 데뷔했고, NMB48 게닌!2 데뷔까지 하였으나, 2013년 4월 28일 무도관 콘서트 서프라이즈로 겸임해제 되었다. 겸임 이후 상당히 좋은 적응력을 보여주었고, 오히려 NMB48이 더 잘 어울린다는 이야기까지 들을 정도로 좋은 평을 받은 활동이었던지라, 남바 멤버들은 물론 팬들도 많이 아쉬워했다.

2013년 1월부터 일본 U-CAN[34]의 광고모델로 다른 AKB 멤버들과 함께 발탁된다. 동시에 실제로 조제약국사무라는 자격증에도 도전한다.

2013년 6월 8일 AKB48 제5회 총선거에 53,903표를 득표. 13위를 차지했다. 기대했던 수상소감때는 슨듭의 트레이드 마크인 신음소리가 작렬했으나 뒤에 갈수록 안정을 찾았다. 내용은 작년 총선거부터 1년간 여러 경험을 해봤는데, NMB48의 겸임도 해보고 도쿄돔 콘서트에서 팀도 바뀌면서 자신이 크게 성장한 계기가 되었고, 13위라는 멋진 순위를 주신 여러분과 3년간 크게 성장하게 해 주신 이 AKB48에 이 순위 이상의 것으로 보은하고 싶다 라고 깔끔한 소감으로 마무리.

그리고 2013년 6월 16일 사요나라 크롤 대악수회 현장에서 조제약국사무사 합격/ 불합격 통지서 봉투를 들고와서 합격증을 직접공개하며 합격했음을 선언했다.[35] 유이항은 전대미문의 조제약국사무사아이돌이라는 타이틀을 얻게되었다. 흠좀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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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후 노후따위는 걱정없어 나는 네가 먹여 살리는 거야 (키타리에)

CF도 찍었다.[36]

2013년 06월 19일 자신의 첫 단독 칸무리 프로그램 '요코야마 유이가 유쾌하게 돌아다니는 교토 미의음색'이 종영되었다.

2013년 7월 17일부터 지금까지 칸사이 TV '요코야마 유이가 단아하게 돌아다니는 교토채색일기'가 방영되고 있다.[37]이거 프로그램을 보다보면 제목처럼 여행이나 기행 프로가 아니고 아이돌 DVD 같은 느낌이다. 물론 프로그램은 제목 그대로 교토의 여러 전통적이고 다채로운 색과 가게나 관광지를 소개하는 프로그램이다. 그러나 거의 유이 혼자 단독샷을 45분 가까이 내내 그것도 나레이션 나올 때는 거의 화보집 장면 같은게 나온다. 먹는 장면이 정말 많이 나오는데, 리액션이 항상 거의 일정하다. "음, 음? 으음~ 아~ 오이시~"(...) ~ 본격 유이먹방 ~

2014년 2월 24일 'AKB48그룹 대조각축제 ~시대는 변한다. 하지만, 우리는 앞밖에 보지않아!~'에서 팀 K로 이동과 팀 K의 캡틴을 맡는 것이 발표되었다.

2014년 6월 7일 AKB48 제6회 총선거에 40,232표를 득표, 13위를 차지했다. 순위는 작년과 똑같지만 표수는 작년보다 13,671표가 줄어든 다소 아쉬운 결과가 나왔다. 2014년 수상소감도 역시나, 부축받으며 올라가면서 특유의 신음소리를 작렬하면서 어김없이 지켜보던 멤버들과 팬들에게 빅재미 큰웃음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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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파루루가 활짝 웃었으니 말 다했다

하지만, 수상소감 하면서 여유를 찾으면서, '올해는 눈물은 멈췄어요. 저도 조금은 성장했을까요?' 라는 농담도 하며 여유롭게 웃으며 내려왔다.

2014년 12월 8일 AKB48 9주년 기념공연에서 다카하시 미나미가 2015년 12월 8일 10주년을 기해 졸업한다는 소식과 함께, 차기 총감독으로 지명되었다. 자기 생일날에 충격적인 소식을 접한 것.사실은 본인은 알고있던 사실 사실 총감독 직책이 폐지되지 않는다면 차기 총감독감 1순위로 꼽혀오기는 했다. 그러나 총감독직이 주목받는 자리기는 해도 그만큼 엄청난 부담이 따르는 자리이기 때문에 심정이 복잡미묘할 수밖에 없을듯. 그리고 이제 슨듭오시의 지갑은 블랙홀에 빠지게 되었다 그녀의 결의를 담은 트윗은 야후 재팬 첫 페이지 기사로 다뤄지기도 하였다.

2015년 1월 19일 부터 니혼 TV에서 방영하는 마지스카 학원 4에서 랏파파 사천왕 중 한명인 오타베로 연기중이다. 교토사투리를 쓰는 등 전체적인 설정은 마지스카 학원 2와 이어지지만, 왜인지 스타일도 바뀌고 유급+부장 자리에서 물러나게 되었다... 하지만 신 부장인 솔트에게 직언을 하고, 사천왕 중에서도 최강으로 여겨지는 등 포스는 그대로인 듯.

2015년 1월 24일, AKB48 리퀘스트 아워 1035 4일차 밤공연에서 서프라이즈로 마츠이 레나(게키카라)와 함께 주연을 맡은 마지스카 학원 오리지널 스토리 무대화가 결정되었다. 5월달에 공연 예정. 오타베 유급의 진실을 밝히다

2015년 2월 5일, 자신의 첫 사진집인 「ゆいはん」이 발매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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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3월 18일, 솔로영상 DVD & Blu-ray 『ゆいはんの夏休み ~京都いろどり日記~』발매 (1st 사진집 메이킹 필름)[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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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3월 26일, AKB48의 단독 봄 콘서트 'ジキソー未だ修行中!'에서 4차 팀셔플이 있었고 타카하시 미나미를 이어 팀A 캡틴을 맡는게 발표되었다. 후임 팀K 캡틴은 미네기시 미나미가 되었다. 드디어 총감독 푸쉬가!!

2015년 6월 6일, 제7회 총선거가 열렸다. 개표 전 발표된 속보에서는 20위로 발표되어 많은 이들이 노심초사했다. 아닌 게 아니라 지난 총선거에서 표수가 줄어드는 등 팬덤 화력이 떨어진 것이 보여 자칫하면 선탈할 수 있다는 극단적인 예상까지 나왔으나, 다행히도 2만 3천여 표 증가로 당당히 10위로 올라섰다. 다만 소감을 발표할 때 이전과 다를 바 없는 캐릭터를 밀고 나가서 아쉬움을 샀다. 차기 총감독으로서의 면모를 어필할 필요가 있었다는 평. 그리고 코지나 유이는 요코야마를 패러디했다.

2015년 8월 24일부터 방송되는 마지스카학원 5에서 오타베역을 맡았다.
2015년 8월 26일 요코야마 팀K 센슈락 공연을 끝으로 팀K 캡틴직에서 물러났다.

2015년 12월 08일 'AKB48 극장 10주년 기념 공연' 계승식에서 다카하시 미나미에게 계승 받으면서 정식으로 2대 총감독이 되었다.권력이양

2016년 1월 AKB48신문 표지 북조선의 모수령의 동상이 생각나는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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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8회 총선거에서는 11위를 차지. 작년에 비해 한 계단 내려오고 표수 또한 4,000표 정도 떨어졌다. 차기 총감독이라는 타이틀로 작년 총선거에서 10위를 차지했지만, '총감독' 이라는 위치가 있기 때문에[39] 유이의 활동에서 큰 변화가 생기지 않는 이상 총선거 내 위치는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예측되었지만...

2017년 9회 총선거에서는 7위를 차지하여, 드디어 꿈에 그리던 카미7에 진입하게 되었다. 선발 상위권 멤버들이 많이 빠진 것도 있는 데다가, 그동안 그룹에서 주력멤버로 분류되던 멤버들이 이미 많이 졸업해버렸다. 더구나 요코야마 유이의 리더십에 별다른 흠결이 발견되지 않으면서, 총감독으로써의 위치를 확고히 굳혀가는 중이다.

2017년 11년 29일 한국 엠넷에서 주관하는 연말 시상식 2017 MAMA in Japan에서 AKB48로 참가해 I.O.I[40]와 콜라보 무대로 Pick Me, 헤비로테이션, 코이스루 포춘쿠키를 함께 공연하였다.

3. 논란 및 비판[편집]

요코야마에 대해서는 팀 K 승격 이후로부터 선배들의 전폭적인 신뢰가 뒷받침해주었다. 위에도 드러나있지만, 시노다 마리코를 비롯해 초대 총감독 다카하시 미나미, 이타노 토모미 졸업 이후 후배들의 멘탈 케어를 맡고 있는 미네기시 미나미, 마에다 아츠코가 졸업한 이후에는 절대적 에이스 자리에 군림했던 오오시마 유코 등 전설적인 멤버들은 모두 그녀에게 호평을 했다. 그녀에 대해 시노다 마리코는 다카하시 미나미 말고는 정말 보기드문 노력가라고 평가했고, 다카하시 미나미 역시도 차기 총감독에는 그녀만큼의 적임자가 없다고 말했다. 총감독직을 수행하면서 단맛 쓴맛 다 겪은 다카하시가 말했던 것이기 때문에 사실상 총감독으로서의 리더십은 이미 어느 정도 싹이 보였다고 봐야 한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그런 리더십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비판이 한때 여기저기서 나왔다. 요코야마가 총감독으로 취임한 이후 AKB 그룹이 이전보다 훨씬 어수선한 느낌이 든다는 의견이 있는가 하면, 과거와 같은 영광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의견도 있다. 물론 선대 총감독인 다카하시 미나미처럼 당차고 파워풀한 캐릭터라기보단 조용하고 절제적인 이미지가 강하다 보니 리더와는 안 어울리는 느낌이 있다. 이는 2015년 총감독직을 물려받은 직후 토크쇼나 콘서트 회장에서 이런 모습이 더욱 두드러진다. 입담이나 집결력이 딱히 강하지 않을 뿐더러 분위기를 돋우려다가 오히려 더 썰렁하게 만드는 경우도 심심치 않다. 물론 다카하시 미나미도 썰렁한 캐릭터였기 때문에, 딱히 이에 대한 비판은 없었다. 게다가 2017년 들어서는 토크도 웬만한 분량은 뽑아내는 편이고, 그녀 자신의 캐릭터와 연관되어 오히려 재밌다는 반응도 많기 때문에, 앞으로도 딱히 썰렁 기믹 때문에 비판받을 일은 없을 듯하다.

그녀를 다카하시 미나미와 비교해선 안 된다는 말이 있다. 다카하시 자신도 "요코야마는 역시 요코야마로서 (나 때와는 다른) AKB그룹을 만들어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한 적이 있다. 리더십이라는 건 여러가지 방향으로 나올 수 있는데, 다카하시의 경우 강렬한 발언과 행동으로 후배들을 질타하면서도 어려운 후배를 격려하는, 말하자면 전면으로 나서는 리더십을 가지고 있었다. 반면 요코야마의 경우는 그때그때 질책하기보다는 "이렇게 이렇게 해줬으면 좋겠다"고 애둘러 말하는 편이며, 전면에서보다는 뒤에서 지원하는 리더십을 가지고 있다. 게다가 요코야마의 경우에는 그녀 자신보다 기수 높은 선배가 아직 많이 있기 때문에 더 부담이 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게다가 과거와 같은 영광이 보이지 않는 책임을 그녀에게 몰아서는 곤란하다. 전설의 에이스인 마에다 아츠코, 오오시마 유코의 졸업 이후 AKB그룹은 전체적으로 퇴조하고 있었다. 사실 그 동안 전면에 내세운 에이스가 두 명이나 졸업해 버렸는데 인기를 유지하고 있다면 그건 기적이다. 그나마 새롭게 인기를 흡수한 와타나베 마유, 사시하라 리노, 그리고 다카하시 미나미, 코지마 하루나 등 오리멘 멤버들이 버텨주어서 인기가 폭락하는 지경으로는 가지 않았지만, 이들마저 졸업발표, 혹은 졸업을 암시했기 때문에 그룹의 인기가 흔들리는 건 어쩔 수 없다. 차세대가 채 성장하기도 전에 에이스들이 차례차례 졸업하면서 그 자리를 메꿀 만한 특출난 멤버가 없는 것도 문제다. 아직도 오오시마 유코 시절의 전성기를 회복하지 못하고 있고, 더군다나 기대를 모았던 차세대 유망주인 시마자키 하루카, 마츠이 레나 등도 하나 둘씩 졸업하고 있다. 이건 딱히 요코야마 유이의 리더십 부재와 연관된다기보다는, 에이스들이 떠나감에 따라 공백기가 온 것에서 기인한다고 봐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악수회 성적이 미진한 것이 주로 공격의 대상이 되었다. 실제로 2016년 6월 TBS 다큐멘터리 정열대륙에 출연했는데[41], 악수회 현장에서 팬들이 오지 않는 것을 보고, 같이 시간이 텅 빈 키자키 유리아와 "악수회에 팬들이 오지 않는다"고 한탄하는 장면이 나왔다. 어떻게 하면 악수회 성적을 높일 수 있을까 고민하고, 나름 여러가지로 노력을 해보는데도 실적이 부진한 모양이다.

그러나 악수회 실적이 부진하다고 해서, 그녀에게 문제가 있다고 보면 그것도 곤란하다. 악수회는 특정 멤버를 지지하는 팬들의 행사이기 때문에 팬들이 오시헨을 하지 않는 이상 악수회 실적이 올라갈 리가 없다. 게다가 예전에 비해 AKB그룹의 인기가 하락해서 전체적으로 악수회에 참가하는 팬들의 숫자가 줄어드는 형편이다. 또한 딱히 악수회에 나가지 않아도 지지하는 멤버들을 비교적 자주 미디어 등으로 접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에, 악수회에 대한 인기가 전반적으로 떨어지는 편이기도 하다. 악수회 성적이 미진해도 총선거 순위는 그럭저럭 높은 것을 보면 인기가 그렇게 없다고 볼 수도 없다. 악수회 성적이 떨어져도 비교적 총선거 순위는 높은 시마자키 하루카의 경우와 자주 비교되는데, 둘의 악수회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요코야마 유이의 경우에는 "말도 잘 들어주고 대답도 잘해주는데, 뭔가 진지해서 재미없네"라면, 시마자키 하루카의 경우에는 "뭔가 별로 흥미도 없어보이고 무시당하는 듯한 이 짠내나는 느낌"이다. 게다가 총감독까지 되고 나서는, 그룹 전체를 돌아다니면서 멤버들 케어하랴, 스텝들과 회의하랴, 틈틈이 이벤트 홍보하랴, 차기 에이스들 돋보이도록 해주랴 여러모로 본인에게는 도움 안 되는 일로 바쁘기 때문에 악수회 실적이 떨어지는 것도 어쩔 수 없다.[42] 또한 2017년 현재 악수회 성적은 다시 상승세를 기록하고 있다. 오히려 AKB48 내에서만 본다면 최상위권에 속하는 멤버가 되었다.[43]

2016년 3월, 다카하시 미나미 졸업콘서트 중 첫날 AKB48 단독 콘서트에서 왼쪽 가슴 부분에 욱일기로 보이는 형상이 그려진 의상을 입고 춤을 추어 논란이 되었다. 이를 연출한 디렉터의 잘못이지만, 일부 팬과 이때다 하고 달려드는 안티들은 요코야마 유이에게 비난을 퍼부었다. 그러나 의상의 경우는 한번 정해지면 거부할 수 있는 권리가 없다. 그룹 내 의상을 담당하는 시노부의 권위가 워낙 절대적인 데다가 의상 제작에는 그만큼 엄청난 공이 들어가기 때문에, 거부한다는 건 말 그대로 찍힌다는 뜻이기도 하다. 오리멘급 멤버들도 의상에 대해서는 주는대로 입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44] 이건 그녀의 문제라기보단 그룹 지배인과 의상팀, 연출 디렉터들의 문제로 봐야 한다. 물론 이 논란은 한국 오타들 사이의 논란일 뿐이고, 일본의 오타들, 그리고 심지어 중국의 오타들 사이에서조차 논란거리로 안 다뤄지고 있는 중이다.

4. 선발 참여곡[편집]

AKB48

NO

싱글명

발매일

21th

Everyday、カチューシャ

2011년 5월 25일

22th

フライングゲット

2011년 8월 24일

23th

風は吹いている

2011년 10월 26일

25th

GIVE ME FIVE!

2012년 2월 15일

26th

真夏のSounds good!

2012년 5월 23일

27th

ギンガムチェック

2012년 8월 29일

28th

UZA

2012년 10월 31일

29th

永遠プレッシャー

2012년 12월 5일

30th

So long!

2013년 2월 20일

31th

さよならクロール

2013년 5월 22일

32th

恋するフォーチュンクッキー

2013년 8월 21일

33th

ハート・エレキ

2013년 10월 30일

35th

前しか向かねえ

2014년 2월 26일

36th

ラブラドール・レトリバー

2014년 5월 21일

37th

心のプラカード

2014년 8월 27일

38th

希望的リフレイン

2014년 11월 26일

39th

Green Flash

2015년 3월 4일

40th

僕たちは戦わない

2015년 5월 20일

41th

ハロウィン・ナイト

2015년 8월 26일

42th

唇にBe My Baby

2015년 12월 9일

43th

君はメロディー

2016년 3월 9일

44th

翼はいらない

2016년 6월 1일

45th

LOVE TRIP / しあわせを分けなさい

2016년 8월 31일

46th

ハイテンション

2016년 11월 16일

47th

シュートサイン

2017년 3월 15일

48th

願いごとの持ち腐れ

2017년 5월 31일

49th

#好きなんだ

2017년 8월 30일

50th

11月のアンクレット

2017년 11월 22일

51st

AKB48 51st Single

2018년 3월 14일


NMB48

No

발매일

싱글명

6th

北川謙二

2012년 11월 7일

5. 작품[편집]

5.1. 사진집·영상집[편집]

순번

발매일

표지

제목(한글번역)

출판사

구분

유형

판매

비고

1

2015/02/05

파일:external/ecx.images-amazon.com/413Mi6uSjZL.jpg

1st ゆいはん
(유이항)[45]

学研マーケティング

사진집

대형책

31,838

일러스트수록,포스터

2

2015/03/18

파일:external/ecx.images-amazon.com/51L2saOT23L.jpg

1st「ゆいはんの夏休み」
~京都いろどり日記
(유이항의 여름휴가
~쿄토 채색일기)

소니 뮤직 마케팅

영상집

Blu-ray/DVD

소책자,포스터,응모엽서


[1] 2015년 12월 8일 10주년 기념 공연에서 총감독으로 취임[2] 『AKB48 じゃんけん大会2012 感動総集号 2012年 11月15日号』(光文社、2012年)35頁[3] 공식 닉네임은 "유이(ゆい)", "유이짱(ゆいちゃん)"이지만 교토벤화시켜 "유이항(ゆいはん)"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유이항"이라고 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아 올 나잇 니혼에서는 "유이항"이라고 쓰여있던 청취자의 편지를 "유이"라고 스스로 바꾸어 소개했다. 스스로 "유이항"이라고 부르는 것은 별로 좋아하지 않아 팬들에게 "유이라고 불러주세요"라고 말하고 있다. 왜 좋아하지 않는지는 개요란에 후술.[4] 하단 슨드브 항목 참조.[5] 티벳여우를 닮았다.[6] AKB꽁트에서 뭐든지 의심하는 '의심암귀전사 혼마양'을 연기했다. 분명 연기인데 헐랭한 모습이 반쯤은 자기 원래성격같은 느낌이 드는 높은 싱크로(...)를 자랑. 혼마양은 우리말로 하면 '참말이네'정도 뉘앙스다.[7] 활동 항목의 미묘와 욘파라부분 참조[8] 슨듭 + 총감독[9] AKB48 갤러리 한정.[10] 자세한 건 여기참조 [11] 9기생 중 시마자키 하루카를 제치고 도쿄 아키마츠리에서 제일 먼저 선발로 승격되었다.승격영상[12] 2012년 말부터 같은 9기생 시마자키 하루카가 차세대 에이스로 떠오르면서 푸쉬가 시마자키 하루카에게 쏠리면서 예전만 못한 푸쉬를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다른 AKB48 멤버들에 비하면 아직도 많은 푸쉬를 받고 있다.[13] 셀렉션 탈락. 암흑의 기수로 불리는 8기생 중에서 가장 오랫동안 살아남았으나 결국 해고되고 말았다. 사노 유리코를 자른 것에 대해서는 여전히 말이 많다.[14] 이 야간버스가 도쿄오사카, 고베, 교토를 연결하는 JR 히가시니혼, JR 니시니혼의 <드림호>다. 그리고 요코야마는 2017년 드림호의 홍보대사이자 CM 모델이 된다. 사실 저 야간버스가 비슷한 시간대에 다니는 선라이즈 시리즈보다 접근성면에서 압도적으로 좋았기에(저 선라이즈는 애초에 양방향으로 교토는 서지 않으며, 긴키권 전체로 범위를 넓혀도 하행은 히메지만, 상행은 히메지, 산노미야, 오사카만 서고 도쿄로 간다) JR패스 들고 타는 사람이 많았으나, 2013년부터 패스 사용이 불가능해졌다(...).[15] 이미 SKE 1기에는 더블마츠이가 있었기 때문에 AKB로는 절대 뽑히지 못했을것이고, 야가미 쿠미, 오오야 마사나등 인기멤버도 있었다. 또 같은 2기에는 타카야나기 아카네무카이다 마나츠, 후루카와 아이리등이 있어서 만약 여기서 붙었다면 SKE에서의 푸쉬멤버가 될 확률도 낮았다. 또 아무래도 SKE보다는 AKB가 대우가 훨씬 좋다. 여기서 문제는 사실 유이가 SKE 2기 오디션에 떨어질 수가 없었다. 야마다 레이카도 붙어서 아무나 뽑는다고 말이 많았던 오디션이기 때문이다.[16] 전화위복이다. 8기는 일부 멤버들의 잘못된 행동 때문에 연대책임으로 전부 셀렉션 탈락당했다. 그나마 가장 팬들의 지지를 많이 얻은 사노 유리코조차도 탈락 후 백화점 점원으로 일하다 2년 가까이만에 다른 아이돌그룹으로 데뷔했으니...[17] 9기생들이 미디어의 수혜를 가장 많이 입은 기수였다. 왜냐하면 9기생 오디션 뒤에 바로 '아리요시 AKB공화국'이라는 레귤러프로그램이 생겼다. 무려 정규멤버도 아닌 연구생들이 TV프로에 나올 수 있었다. 그전까지는 연구생들이 어필할 수 있는 곳은 극장과 악수회밖에 없었다. 공화국에서 유이는 활약한다.[18] 당시에는 팀 A/K/B가 각각 16명 정원이었기 때문에 기존 정규멤버가 졸업하지 않으면 연구생이 승격할 수가 없었다. 9~10기 연구생들을 정규멤버로 승격시켜주기 위해 만든 것이 팀4였고, 팀4의 해체와 함께 결국 16인 정원 체제는 깨진다.[19] 오노의 졸업에 대해서는 상당히 말이 많은데, 해외유학을 목적으로 자발적으로 졸업한 게 아니라 역변과 남자관계가 원인이 되어서 강제로 "퇴학"당했다는 설이 유력하다. 졸업 후 인터넷에서는 프리쿠라가 유출되고 BUBKA에서는 독자모델과 같이 데이트하는 장면이 포착되기도 했으니… 이는 AKB 93년생 몰락의 원인 중 하나가 된다. 그리고 7월 28일 유학은 엿 바꿔 먹고 다시 예능계 복귀를 선언한다.[20] 이 의혹은 2ch에서 대부분 사실로 드러났다. 특히 비밀어카운트로 범죄자 옹호 트윗을 업로드했다던가… 유학갔다더니 역전유학인가[21] AKBINGO!를 보면 하이킥으로 블럭을 쓰러뜨리는 모습이 나온다.[22] 또 다른 교토 출신 AKB계열 멤버는 NMB48코타니 리호가 있는데, NMB 2기생 몇 명이 더 입갤하여 교토 출신 멤버가 여러 명으로 늘었다. 하지만 AKB48에는 교토 출신이 요코야마밖에 없다.[23] 비슷한 느낌으로, 코지마 하루나-오오시마 유코를 이을 콤비로 타노 유카-무토 토무 콤비를 밀어주고 있다.[24] 다만 졸업후엔 거의 안만단다고 한다.[25] NMB48은 방정맞을 정도로 활발한 그룹 분위기로 유명한데, 오죽하면 한국 내 팬덤에서 부르는 NMB48의 별명이 남바여상이다...[26] 참고로 말하자면 유이랑 친한 멤버들은 다 옷을 잘 못입는다. 다카미나는 바나나만 입고, 사시하라도 이상하게 입고, 키타리에도 이상하고, 사에는 미친패션이고, 미네기시는 극악이다.[27] 유이는 9기생이라는 걸 잊으면 안된다. 캐스팅 당시에는 아직 선발데뷔도 안한 상태였다. AKB를 대표하는 드라마 마지스카 학원에서 라빠빠 부장이라니 정말 엄청난 푸쉬였다. 다만 2기의 경우에는 실제적으로는 마츠이 쥬리나, 와타나베 마유를 띄우기 위한 드라마였다. 2기 출연 분량도 광푸쉬라기에는 아쉬울 정도로 적다. 한편 극중의 오타베라는 캐릭터와 함께 유이의 차가운 비주얼이 절정이었던 시기라 지금도 이때를 그리워하는 팬들이 많다. 파일:external/blog-imgs-15.fc2.com/201106300235484fc.jpg[28] 반면 다른 승격후보생이었던 동기의 9기생들은 팀死로 강제징집되고. 한국 해병대캠프에서 지옥을 경험하게 되었다. 씨마잒끼! 씨마잒끼![29] 마에다는 개인 스케줄이 바빠서 AKBINGO!에는 출연하는 일이 드물다.[30] 사실 유코는 2위 포지션이기 때문에, 앗짱의 대타로 센터에 서는게 이상하다. 이는 다른 멤버도 대부분 마찬가지.[31] 욘파라에서 요코야마 유이가 그린 용 밑에 2012를 한자로 썼는데 二□一二가 가타카나의 ニローニ처럼 보여서 니로니가 되었다[32] 생각보다 순위가 낮은편이라는 소리가 많았다. 이쯤되면 솔직히 9기생 같지도 않다.[33] 프로그램 이름에 자신의 이름을 걸고 하는 프로그램[34] 일본의 자격취득 관련업체. # 참고로 두번째 도전자는 카와에이 리나.[35] 밀봉한 상태로 들고왔기 때문에 그 전까지 아무도 몰랐다. 즉 불합격이었을 지도 몰랐다는 것.[36] 광고 모음집이다.[37] 첫방때 유이는 자기가 좋아하는 '보라색'을 '보라'라고 부르는걸 싫어한다고 밝혔다.[38] 관련기사 http://akb48gs.com/20150120/18331/ 요코야마 유이 솔로영상집발매 [39] 총감독이라는 자리의 특성 상 개인의 두드러지는 활동이 없을 수 밖에 없다. 개인의 독창성으로 성공해야 하는 그룹 내에서 자신에게 투자할 시간과 능력을 그룹을 위해 투자해야 하기 때문. [40] 정확히는 I.O.I 출신들로 데뷔한 위키미키, 청하, 프리스틴, fromis_9 그리고 아이돌학교 1반[41] 정열대륙이라는 프로그램은 당시 화제를 모으고 있는 사람을 밀착 취재하는 프로그램이다. 놀랍게도 다카하시 미나미도 정열대륙에 출연한 바가 없는데, 요코야마가 출연했다. 참고로 그녀를 제외하면 역대 AKB48 멤버 중 정열대륙에 출연한 멤버는 마에다 아츠코, 오오시마 유코, 와타나베 마유 세 명뿐이다.[42] 다카하시 미나미조차도 총감독이 되고 나선 인기가 점점 하락세였다는 것을 생각해보자.[43] 사실 이건 악수회 인기가 그만큼 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더 확실히 보여준다. 현재 48그룹 전체를 통틀어 악수회를 완매시키는 멤버조차 드물 정도다. 어떤 멤버나 완매가 당연했던 전성기 시절과 비교하는 것은 확실히 무리다.[44] 온갖 푸시를 받던 마에다 아츠코와 오오시마 유코, 초대 총감독인 다카하시 미나미도 얄짤없었다.[45] 유이짱의 교토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