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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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화가[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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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년 12월 24일 ~ 1982년 12월 25일

인상주의 회화 양식을 우리나라에 토착시킨 서양화가. 1905년 12월 24일 전라남도 동복군(현 화순군 동복면) 출생.

오지호는 경성부로 유학온 후 휘문고보에 진학하여 고영동의 지도로 본격적인 미술공부를 시작한 뒤 고려미술회관 미술연구소에서 계속 공부하였다.

경성에서 김주경(金周經) 등이 주동이 된 녹향회(綠鄕會) 동인전에 참가, 사실적 자연주의 수법의 유화를 발표하였다. 그후 1935년부터 10년간 밝고 투명한 색채와 가득한 빛살, 경쾌한 붓놀림의 인상주의 화법으로 한국의 자연미와 풍정미 표현에 주력하였다.

해방후에는 국전에 출품하여 초대작가와 심사위원을 역임하였다. 광주에 거주하면서 조선대학교 교수로 후진을 양성하였고, 한글전용 반대운동에도 앞장섰으며, '현대회화의 근본문제'라는 저술도 하였다.

1974년 유럽 각지의 문화계와 1980년 아프리카의 미술계를 시찰하였다. 1982년에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사망한 뒤 미망인이 유작 34점을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하였다.

광주광역시 동구에 그의 이름을 딴 지호로[1]가 있으며, 전라남도 화순군 동복면에 오지호기념관[2]이 있다.

2. 배우[편집]

오지호(배우) 항목으로.

[1] 지산유원지에서 동명동을 잇는 도로[2] 2번항목의 오지호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