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대학교

최근 수정 시각:

영남대학교
嶺南大學校
Yeungnam University

파일:YU_UI.png

창학정신

민족중흥의 새 역사창조

교훈

힘 슬기 정성

상징

천마

국가

파일:대한민국 국기.png대한민국

분류

사립대학

개교

1947년 9월 22일 (대구대학 설립)
1950년 4월 10일 (청구대학 설립)
1967년 12월 22일 (영남대학교 통합)

재단

학교법인 영남학원

설립자

박정희

이사장

제19대 한재숙[1]

총장

제15대 서길수[2]

주소

경산캠퍼스

경상북도 경산시 대학로 280

대구캠퍼스

대구광역시 남구 현충로 170

재학생

학부생

29,887명 (2017년)

대학원생

3,051명 (2017년)

교수 현황

884명 (2017년)

면적]]

2,718,970㎡[3]

대학기본역량진단

자율개선대학 (2018)

링크

영남대학교 홈페이지


1. 개요
1.1. 역사1.2. 캠퍼스 이전
2. 재단
2.1. 슬로건과 Y형 인재
3. 캠퍼스
3.1. 경산캠퍼스3.2. 대구캠퍼스
4. 개설 학과5. 교통6. 기숙사7. 이모저모
7.1. 주변시설7.2. YU 록 페스티벌7.3. 캠퍼스 건물들과 중앙도서관7.4. 교내 명소
7.4.1. 천마아트센터7.4.2. 박물관7.4.3. 민속촌
7.5. 등록금이 비싼 학교?7.6. 자동차 대회7.7. 동명의 학교
8. 논란9. 주요 출신 인물

1. 개요[편집]

파일:x3vMlcdvt2Q.jpg
파일:external/pr.yu.ac.kr/U4W7bmQOyCe.jpg

영남대학교 본부본관 앞길. 좌측으로는 자연계열 대학이, 우측으로는 인문계열과 예체능계열 대학이 위치해 있다.

영남대학교 홍보 영상 (2017)[4]



경상북도 경산시에 있는 4년제 사립대학이다. 사실상의 본 캠퍼스라 할 수 있는 경산 캠퍼스는 경상북도 경산시 대학로 280에 위치하며, 의과대학과 영남대학교 의료원, 일부 대학원이 소재한 대구 캠퍼스는 대구광역시 남구 현충로 170에 위치한다. 학교의 상징은 천마이다.

1.1. 역사[편집]

청구대학과 대구대학의 통합

영남대학교의 전신은 야청(也靑) 최해청(崔海淸·1905~1977)이 1950년 지금의 노보텔 자리에 세운 청구대학과 한국의 명가로 유명한 경주의 만석꾼 경주 최씨 부잣집의 마지막 부자이자 독립운동가인 12대 당주 최준(崔浚·1884~1970)이 1947년에 설립한 대구대학(현재 대구대학교와 다름[5])이다. 이 두 대학을 박정희 전 대통령이 병합하면서 만들어진 대학이 영남대이다.[6]

청구대학은 1948년 9월 최해청에 의해서 대구문리과전문학원 야간부로 종로에서 개교했으며 1950년 3월 포정동으로 이전하고 4월 25일 재단법인 청구대학 설립, 청구대학으로 개편했다. 1955년 문화동 현 노보텔 자리로 이전하고 1963년 병설 공업고등전문학교 설립했는데 이것이 경일대학교의 전신이다. 1964년 효목동으로 본부 이전했으나, 대학정비사업으로 한차례 흔들린 끝에, 붕괴사고가 일어나고 교직원 비리가 발견되자 이사회가 1967년은 청구대학이 학내외의 여러 가지 복잡한 사정 때문에 자력으로 존립하기 힘든 상황에 처한 시기였다. 이 때 청구대학 교수로 있던 이은상[7]이 그해 5월, 5대 대통령 임기를 마치고 6대 대통령에 연임된 박대통령에게 “각하. 임기를 마치고 나면 마당 쓸 데가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라고 진언했고, 이 의견이 받아들여져 영남대 탄생의 계기가 마련되었다고 전해진다. #

대구대학의 경우는 더 눈물겹고 복잡하다. 조선시대 무관 최진립 장군[8] 의 후손인 최준 선생은 12대에 걸쳐 내려온 어마어마한 부[9]를 쌓은 부농이었으며 조선국권회복단과 대한광복회에 독립자금을 제공, 안희제의 백산상회를 통해 임시정부에도 독립자금을 제공했으며, 무장투쟁계의 총무도 맡는 등 부를 민족과 나라를 위해 쓴 독립운동가였는데, 해방 후 새 나라를 위해서는 인재의 교육이 절실함을 알고 자신도 대구대학을 만들고 직접 운영했다.

대구대학은 1945년 10월 대구대학 전신 경북종합대학 기성회 조직했고 1947년 3월 경북종합대학이 가칭 대구문리과대학으로 개교하고 1947년 9월 재단법인 대구대학 설립 인가를 받았다. 1948년 9월 교사를 대봉동 현 대구중학교 자리로 이전했으며 1951년 4월 교사를 포정동 청구대학 구내로 이전, 향교재단과 합류하여 공동 운영했다. 1952년 5월 교사를 남산동 향교 구내로 이전했으나, 1954년 12월 대명동 신축 교사[10]로 이전했고 1957년 6월 본관이 준공되었다.

하지만 대구대학은 1960년대에 재정난에 빠지게된다. 사재를 거의 다 투자하여 대구대학을 운영했는데 당시 5·16군사정변으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 측은 대대적인 대학정비사업을 추진한다. 이 때 대구대학교의 설립자 최준은 당시 학생을 그만 받든지[11] 과를 줄이든지, 소유 대학인 대구대학에 더 많은 투자하라는 통보를 받는다. 이에 결국 최준은 고려대학교를 이용익 선생이 손병희에게 넘기듯 대구대학을 삼성그룹 이병철 회장에게 학교를 잘 운영하라는 일념하에 아무런 대가없이 학교 경영권을 넘겨주었다. 이렇게 학교의 경영권은 삼성그룹 이병철 회장에게로 넘어간다.

전말은 과거 대구대학 교수를 지냈던 신현확[12] 씨가 시멘트 사업을 확장하면서 홍보 목적으로 고심하던 이병철 회장에게 대구대학의 인수를 제안하고 이병철 회장은 경주로 내려가 인수를 요구한 것이다. 그러나 삼성그룹의 사카린 밀수 사건때문에 이병철 삼성 회장이 퇴진하고 2년 뒤 현장 복귀하는 조건으로 박정희 대통령에게 양도되었다. 정확히는 대구대를 넘기고 성균관대학교를 받는다는 조건으로 대구대학의 경영권을 이병철이 박정희 대통령에게 넘기게 된다. 즉 대구대학 재단의 소유권은 경주 최씨 일가 → 삼성그룹 이병철 前 회장 → 박정희 前 대통령으로 이어진다.

이러한 우여곡절 끝에 청구대학, 대구대학 이 두 대학이 통합하여 1967년 12월, 현재의 영남대가 출범하게 된다. #1 #2

영남대학교의 탄생

  • 이사장 이동녕(제4,6,7대 국회의원)

  • 이사 이효상(제6,7대 국회의장)

  • 이사 김성곤(민주공화당 재정위원장, 쌍용그룹 회장)

  • 이사 신현확(국무총리,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

  • 이사 백남억(민주공화당 의장, 제5,6,7,8,9,대 국회의원)

  • 이사 이후락(중앙정보부 부장, 대통령비서실장)

  • 이사 신기석(영남대학교 초대총장, 부산대학교 총장, 국회의원)

  • 이사 서정귀(국회의원, 재무부 차관)

  • 이사 성상영(대성모방 회장)

  • 이사 여상원(대구상공회의소 회장, 대구은행 초대회장)

  • 감사 오일룡(대한상공회의소 회장)

파일:external/www.yu.ac.kr/about_01_e_img2.jpg

2대 이선근 총장[13]


위 이사진 구성으로 통합 영남대학교가 출범하였다. 1970년대, 영남대는 이선근 박사(신간회 출신으로 문교부 장관, 영남대학교, 성균관대학교, 동국대학교 총장 역임. 문교부 장관 시절 현재 국사편찬위원회를 설립한 장본인이다.)라는 카리스마 넘치는 총장 재임 시절(1969년 4월~1974년 2월)에 전성기를 구가했다. 박정희 대통령은 자신의 국사 가정교사였던 그에게 전폭적인 신임을 나타냈다. 이선근 총장의 승용차에는 ‘경북 1호’의 번호판이 부여되었고,[14] 경북 각급 기관장들은 대통령과 직접 전화 통화를 하던 그 앞에서 머리를 조아려야 했을 정도이다. 학교가 뻗어나가는 데 거칠 것이 없었다. ‘한강 이남에서 제일 좋은 대학’이라는 자부심이 이 시기에 용솟음쳤다. 신생대학에 불과했던 영남대학교가 아웃풋 좋은 대학으로 평가받는 명성은 대부분 이 시기에 만들어졌다.[15]

그러나 1979년 박정희 대통령 서거 후 학교 또한 혼란에 빠졌고, 이후 박근혜 前 대통령이 이사장[16]으로 취임하였다. 그러나 이후 토지 이면계약 등으로 국정조사를 받은 최초의 사립학교가 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유례없는 민주화보도 대행진과 같은 민주화 운동에 앞장섰던 대학이기도 했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 총학생회가 임수경 방북 사건 등으로 논란이 되어오던 운동권 단체인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를 탈퇴하면서 기존 학내 운동권 세력과 총학생회와의 다툼이 있었다. 이후 2009년 박근혜 대통령의 추천이사 4명을 포함한 7인 이사회로 개편되면서 정상화되었다. 매일신문 '영남대 설립에 얽힌 이야기'

2016년 말에는 제14대 노석균 총장이 임기 만료 100여 일을 앞두고 사퇴를 했다. 한국일보 기사 총장 관사 사용, 약학대학 신관 건축 등과 관련하여 교직원에게 내려지는 징계를 막지 못한 것과 내부 소통 문제가 주된 이유였지만, 2013년 노석균 총장 취임 이후로 이어져 온 재단과 본부 간 갈등으로 인한 것이라는 시각도 존재한다.

1.2. 캠퍼스 이전[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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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초기의 영남대학교 경산 캠퍼스 전경 (1975년)

대구 시내 대명동 캠퍼스(현재 대구캠퍼스)의 부지가 좁아 1970년대부터 단과대학과 각종 학내 시설 등을 점차적으로 대구의 동쪽에 위치한 경산시로 옮기면서 넓기로 유명한 현재의 영남대 경산캠퍼스의 역사가 시작된다. 실제 단일면적으로 서울대학교와 1, 2위를 다툴 정도의 크기다. 본관 뒤편으로 펼쳐진 토지를 한국조폐공사에게 팔기 전까지는 흔히 말하는 100만평 부지였는데 지금은 대략 82만평으로 부지의 대부분은 거의가 평지다. 자전거를 타고 모든 곳을 갈 수가 있으며 교내 순환버스도 운행하고 있다.

2. 재단[편집]

http://infor.sahak.or.kr/portal_main.asp

파일:A16miDu.jpg

재단은 학교법인 영남학원으로 재단의 주축인 영남대학교가 경산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재단 사무처는 영남대학교의료원(대구광역시 남구 현충로 170번지)에 위치하고 있다. 영남학원은 영남대학교와 더불어 영남이공대학교를 산하에 두고 있다. 현재 한재숙 영남대 명예교수를 제19대 이사장으로 선임하였다.

사실 영남학원은 IMF 사태 이전에는 막대한 토지, 목장과 더불어 학교법인으로서는 드물게 종합금융회사인 영남종합금융을 소유하는 등 건실한 재단으로 이름이 높았다. 특히 영남종합금융은 서울과 구미에 지점을 두고, 1995년에 증권거래소에 상장까지 되어 유명세를 탔다. 그러나 다른 대부분의 금융사와 마찬가지로 IMF 사태의 여파로 유동성 부족에 시달리다가 공적자금까지 투입되었고, 이후 김대중 정부 방침에 따라 하나로종합금융(現 우리종합금융)으로 통폐합되고 말았다. 물론 재단 차원에서도 IMF 여파로 교직원 사택과 토지 등을 홀라당 까먹고 말았다. 안습. 그래도 그때 단국대학교처럼 부도가 나지 않은 것이 어디야

2.1. 슬로건과 Y형 인재[편집]

파일:Y-Brand_01.gif

파일:슬로건_가로형-1.png

공식 슬로건 YU the Future

제13대 이효수 총장 취임 이후로 21세기 세계화와 지식기반사회에 부합하는 Y형 인재[17][18]를 길러내는 것을 대학의 목표로 삼고 있으며, "미래를 만드는 대학 YU, the Future"를 슬로건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 대학 캠퍼스 내에서는 서길수 총장의 취임이후로 "밝고 강한 대학 "이라는 표현이 많이 보이며, 학교 홈페이지에서는 "미래를 여는 밝고 강한 지역거점대학" 이라는 슬로건을 활용하고 있다.

특히 Y형 인재와 관련해서는 매년 전반기, 후반기가 끝나면 Y형 인재상이라고 하여 영남대 학생들 중 특출난 성과를 뽑낸 학생들에게 상장을 수여하는데, 자격 조건이 굉장히 까다로운데 해당 조건은 '1) 전국 규모 및 유사한 대회에서 1위로 수상한 학생, 2) 국제학술지에 논문을 게재한 학생, 3) 기타 해당부서에서 우수하다고 인정하여 추천한 자 중에서 학생포상규정 제5조 학생포상심사위원회에서 인정한 학생, 4) 단체인 경우 3명까지는 상장과 개별 부상을 수여하며, 4명 이상인 경우는 상패만 수여' 등으로 규정하고 있다.

수상 인원에 제한을 두진 않지만, 한 해에 대략 40~50명 정도의 학생들이 수상을 하는 것으로, 학교 측에서는 기사가 나오고 있다. 해당 상장을 노린 영남대 위키러는 중소기업청장, 소방안전관리협회장, 대구광역시사회복지협의회장, 지방 복지관 공모전 상장을 들고 갔지만, 단번에 튕겼다 카더라

3. 캠퍼스[편집]

3.1. 경산캠퍼스[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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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산 캠퍼스 캠퍼스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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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문 쪽에서 바라본 경산 캠퍼스의 전경


경상북도 경산시 대동에 위치하고 있으며, 사실상 영남대학교의 주축을 이루고 있다. 캠퍼스 면적은 약 82만평(!!) 정도로 그 유명한 서울대학교 관악캠퍼스보다 조금 작고, 충남대학교 대덕캠퍼스보다 조금 더 넓은 편으로 대부분이 평지로 이루어져 있다. 일설에는 현재 경산캠퍼스 부지를 박정희 前 대통령이 정했다는 얘기도 있다.

정문에서 본관까지 이어지는 천마대로를 중심으로 서쪽에는 상경대학과 문과대학, 정치행정대학, 음악대학, 중앙도서관, 종합강의동 등이 위치해 있고, 동쪽에는 이과대학, 공과대학, 생활과학대학, 건축학부 등이 위치하고 있다.

3.2. 대구캠퍼스[편집]



정식명칭은 대구캠퍼스로 흔히 캠퍼스가 위치한 동명을 따서 대명캠퍼스라고도 불린다. 대구광역시 남구 대명동에 위치하고 있으며, 영남대학교 의료원, 의과대학과 일반대학원을 제외한 경영대학원, 행정대학원이 소속되어 있다. 인근에는 영남이공대학도 위치하고 있다.

파일:yudmmap.jpg

중앙 오른쪽 병원 기준으로 왼쪽으로는 같은 재단소속의 영남이공대학교 건물들이 있고 병원 오른쪽에 몇개의 의대대학 건물과 전문대학원과 평생교육원 수업을 담당하는 경영관 건물이 있다.


파일:mtakHPTr.jpg

대명동 캠퍼스 영남대학교 의료원 전경



4. 개설 학과[편집]

4.1. 학부과정[편집]

4.1.1. 문과대학[편집]

4.1.2. 자연과학대학[편집]

4.1.3. 공과대학[편집]

4.1.4. 기계IT대학[25][편집]

4.1.5. 정치행정대학[편집]

4.1.6. 상경대학[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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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경대학이 소재한 상경관(좌측)과 중앙도서관(우측)[29]

4.1.7. 경영대학[편집]

4.1.8. 의과대학[편집]

4.1.9. 약학대학[편집]

4.1.10. 생명응용과학대학[편집]

  • 식품경제외식학과[32]

  • 원예생명과학과

  • 산림자원및조경학과

  • 식품공학과

  • 생명공학과

  • 의생명공학과

4.1.11. 생활과학대학[편집]

4.1.12. 사범대학[편집]

4.1.13. 디자인미술대학[편집]

4.1.14. 음악대학[편집]

4.1.15. 기초교육대학[편집]

4.1.16. 자연자원대학[편집]

  • 식품자원경제학과

  • 원예생명과학과

  • 산림자원및조경학과

  • 식품공학과

  • 외식산업학과

4.1.17. 독립학부[편집]

4.2. 대학원과정[편집]

5. 교통[편집]

영남대 일대의 교통량은 상당하다. 북쪽으로는 진량읍 및 하양읍으로 향하는 도로(대학로)가 있으며, 남쪽으로는 경산시장 및 경산역과 같은 경산시의 주요 시가지로 향하는 도로(대학로, 경안로)가 있고, 서쪽으로는 대구광역시로 향하는 달구벌대로가 있다. 이렇게 영남대학교 일대에는 세 주요 지점으로 향하는 도로가 만나기 때문에 교통량이 매우 많다.

5.1. 시내버스[편집]

영남대 주위에는 상당히 많은 시내버스가 다니는데 경산시를 종점으로 설정한 상당수의 대구버스 노선들은 이곳을 경유하며[40] 다수의 경산시 시내버스 노선들도 이곳을 거칠 만큼 영남대 일대는 경산 교통의 요충지로 손꼽힌다. 무엇보다 압량면으로 들어가는 길목에 버스 회사 삼천리버스의 차고지인 일명 '75번 종점'[41]이 영남대 종점이다.

정문으로는 대구 309번, 449번, 509번(영남대학교 분리 노선), 609번, 649번, 719번, 840번[42], 909번, 980번, 경산 107번, 109번, 399번(자인~마곡 가지 노선 한정), 803번, 809번, 911번, 918번, 990번(가일~서문시장~자인 가지 노선 한정),[43] 991번, 압량1번이 다닌다. 2011년 8월 18일 이전에는 대구 939번도 있었으나, 사동으로 조정되었다.

후문으로는 대구 509번(계양동 분리 노선), 경산 100번, 109번, 399번, 990번, 경산1(-1)번, 경산2(-1)번, 남산1번, 남산2번(정평역 지원운행 한정), 용성1번(정평역 지원운행 한정)이 다닌다.

특이한 점은 경산 109번은 노선 특성상 유일하게 영남대 정문과 후문을 모두 경유하는 노선이다.

영남대 경유 또는 영남대 종점 시내버스 노선들은 사월역에서 옥산네거리~경산역~경산시장~중방네거리~경산네거리 구간으로 우회한다. 하지만 사월역에서 정평동~경산네거리 구간으로 직진하는 대구 449번, 649번, 경산 991번은 시간이 절약되기 때문에 대구도시철도 2호선영남대역까지 연장되기 전까지 상당히 많은 승객을 확보했다. 참고로 대구 509번 계양동 분리 노선도 사월역에서 직진하여 정평동~경산네거리 구간으로 직진하지만 이 분리 노선은 영남대로 직진하지 않고 경산네거리에서 우회전해서 중방네거리~경산오거리~계양네거리~계양동으로 가 버린다. 하지만 도시철도 2호선이 영남대역까지 연장된 지금은 거의 모든 시내버스 노선들이 직접적인 영향을 받아 승객들이 많이 줄어든 상태이다.

여담이지만 영남대는 대구시내버스가 들어오는 대구권 종합대학 중에서 유일하게 급행 버스가 경유하지 않는다.

5.2. 도시철도: 2호선 영남대역[편집]

앞서 설명한 대로 대구와 경산간의 이동량은 상당히 많다. 대구 도시철도 2호선 영남대역이 영업을 개시하면서 대구와 경산간의 이동이 원활해졌으며, 교통량이 이전보다 늘어나고 있다. 일 평균 탑승객 수 1만 명(대구광역시 중심가인 동성로 입구에 위치한 대구 도시철도 1호선 대구역과 유사한 수준)을 넘길 만큼 상당히 많은 승객들이 이용하고 있다.그리고 2호선은 영대-계대 셔틀 어차피 종착역이 목적지라서 자리에 앉은 학생들은 꿀잠을 잔다 카더라 진정한 WARP

또한 영남대역이 생김으로써 영남대학교 학생뿐만 아니라 대구대학교, 대구한의대학교, 대구가톨릭대학교, 대경대학교, 경일대학교 같은 다른 학교 학생들의 통학 환승 거점으로 변모하게 되었다.

5.3. 철도[편집]

학교에서 시내버스로 약 20분 뛰어가면 40분안에도 갈수있다. 버스비가 아깝고 다리근육이 뛰어나다면 뛰어가길 추천해본다. 기숙사에서 자전거타고 10분 컷도 가능하다거리에 경부선 경산역이 있다. 영남대학교에서 대구로 나가는 시내버스들 중 90%는 경산역 및 경산시장으로 들어간다(안심교를 경유해 대구 동구 반야월 일대로 빠져나가는 719번, 980번 등 제외). 택시를 타게 되면 요금은 약 5000원선으로 보면 되겠다.

5.4. 시외버스[편집]

경산역 근처에 있는 경산시외버스터미널에서도 시외버스를 이용할 수 있지만 영남대 국제교류센터(대구은행 영남대지점, GS25, 서점 등이 있는 정문 근처의 건물) 앞에서도 시외버스를 이용할 수 있다. 영남대 국제교류센터 안에 중간 정류장 및 시외버스 매표소가 있기 때문인데 단, 경주-포항울산 방면 시외버스만 정차하기 때문에 해당 방면 노선만 이용할 수 있다. 그 외에 당연하지만 경주-포항 및 울산에서 경산행 시외버스를 타고 올 때도 영남대 국제교류센터 건너[44] 에 중간 정차한다.

5.5. 스쿨버스[편집]

영남대역이 개통하기 이전에는 등하교시간에 사월역과 영남대를 오가는 스쿨버스가 10분마다 1대씩 올 정도로 수요가 상당했다.[45] 가끔 학생들이 셔틀버스를 타기 위해 사월역 출입구의 계단에서부터 줄을 서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 이러한 장면은 신천역에서나 볼 수 있다. 2012년 9월 19일 정문 앞에 대구 도시철도 2호선 영남대역이 생기면서 사월역과 학교를 오가던 셔틀버스는 당연히 폐선되었다.그리고 사월역은 반토막 현재는 대구 도시철도 1호선 반야월역과 대구 일대(칠곡, 침산, 대곡, 복현, 화원, 용지), 경산시(경산역, 하양, 진량)를 오가는 스쿨버스가 자주 운행 중이며 구미시, 영천시, 경주시, 포항시, 울산광역시를 오가는 스쿨버스도 운행 중이다. (단 대구, 경산지역 외의 시외지역 스쿨버스는 월마다 이용료를 납부하여야 이용할 수 있다.)

2015년부터는 모든 스쿨버스 승차시 버스 내에 설치되어 있는 단말기에 학생증을 태깅하여 확인을 받아야만 승차할 수 있다(자신의 학번을 단말기 키패드에 입력해도 된다). 예전에는 학생증 검사도 거의 안 했지만, 최근부터는 얄짤없다. 2018년 현재 학생증을 안찍고 타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5.6. 순환버스[편집]

학교 캠퍼스가 상당히 넓기 때문에 순환버스를 운행하며 2개의 노선이 있다. 영남대역이 개통하기 전까진 복지관 뒷편이 순환버스의 시종점이었으나, 개통 이후에는 노천강당 주위, 공대운동장으로 시종점이 변경되었다. 도시철도를 이용하는 학생들은 순환버스를 쉽게 이용할 수 있지만 시내버스를 이용하는 학생들은 이전보다 순환버스를 이용하기 힘들다. 따지고 보면 둘 다 이용하기 편하진 않다.

6. 기숙사[편집]

7. 이모저모[편집]

7.1. 주변시설[편집]

일단 많은 자취생이 사는 대학로가 횡단보도 건너서 있다. 그리고 양방향의 버스 정류장과 지하철 2호선 영남대역의 존재 덕분에 아침이면 정문 근처는 육상선수권대회를 방불케 하는 레이스가 펼쳐진다.

골목 안으로 들어가보자. 일단 3번출구에서 나와 횡단보도 건너 미니스톱 골목 쪽으로 들어가면 타코야끼 전문점이 하나 나온다.

일단 을 먹으려면 꿀막을 먹자. 그리고 푸른영대라는 막걸리집이 유명한데, 정문쪽 큰 막걸리집을 앞푸영, 후문쪽 구멍가게 같은 막걸리집이 뒷푸영이다. 맛은 뒷푸영, 분위기는 앞푸영이다. 보통 개강파티때 많이 간다.

찜닭을 먹고 싶다면 x가찜닭이라는 곳이 가장 맛있다. 장x찜닭이란 곳도 있긴 한데 여긴 찜닭집주제에 제육볶음이 가장 맛있다. 제육에서 불맛이 난다. 존맛탱 사장님 업종좀 바꿔주세양

핫도그는 미니스톱 옆 감자핫도그, 골목안 라면핫도그가 진리이니 한번쯤은 먹어보길.

교내는 아니고 학교 밖 구역이지만 인근에서 가장 젊고 큰 유흥가인 오렌지 거리가 정문 건너편에 형성되어 있다. 통계상으로 전국에서 가장 큰 규모의 원룸촌(!!)이 영남대학교를 낀 권역에 존재하는데 서문 쪽의 기숙사 인근, 음대 근처의 출입구인 동문쪽에 있는 신대부적지구와 본관 뒤쪽의 원룸촌, 남쪽 테크노파크 인근 삼풍동 일대, 구 경산소방서 인근의 조영동 일대와 임당동 등등 원룸촌이 교정을 에워싸다시피 조성되어 있다. 특히 정문 건너쪽 원룸촌은 조영동과 임당동, 압량면 등지를 걸쳐서 원룸촌이 빼곡하게 형성되어 있으며 경산시에서 가장 젊고 큰 유흥가라고 할 수 있는 오렌지 거리가 있어 밤이 되면 경산권의 수많은 대학생들이 영남대로 몰려들어 유흥을 즐긴다. 지금도 오래 된 개인주택을 허물고 원룸을 올리는 공사현장이 제법 있다. 정문 쪽은 교통이 편리해 영남대학교 외의 대학교(대구한의대, 대경대 등 하양지역에 위치하지 않은 대학을 다니는 학생들 중 자취생은 대부분 이 일대에 거주한다)에 재학중인 학생들이 영남대 근방 원룸촌에서 자취하는 경우도 많다.

그리고 술 진탕먹고 해장하고 싶으면 미니스탑 골목길 안쪽 스타벅스 앞에 가x라는 해장국집이 있는데 맛은 평균사실 꽐라돼서 먹으면 무슨맛인지도 모른다이지만 7000원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미칠듯한 가성비로 유명하다. 그리고 거기서 한블록 더 건너서 경양식집 2층에는 가x밀면이라는 곳이 있는데 역시 가성비 및 맛에서 재학생들에게 인기를 얻고 있다. 추천메뉴는 밀면 + 삼겹살.

학교 근처에 카페가 상당히 많은 편이다. 대부분의 메이저 커피숍과 중저가 브랜드 봄X, 빽X방, 마시그X이 등등뿐아니라 개인이 운영하는 카페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그리고 여담이지만 학교 내부(중앙도서관 1층 로비, 천마아트센터)와 정문 횡단보도 맞은 편까지 스타벅스가 3개나 입점해있다. 세 군데 모두 장사가 잘 되는듯하다

영남대 정문 일대의 대학가(소위 영대 정문)는 많은 대학이 존재하는 대구, 경산권 대학의 대학가 중에서도 경북대학교 북문(소위 경대 북문), 계명대학교 성서캠퍼스 동문(소위 계대 동문)과 함께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한다. 어디가 좋은지는 각자 판단하자 영대뿐 아니라 타 대학생들의 모임이나 행사술판 역시 영대 정문 유흥가에서 열리는 경우가 꽤 잦은편.

7.2. YU 록 페스티벌[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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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4회 YU 록 페스티벌


최고의 명물은 매년 열리고 있는 YU 록 페스티벌. 국내의 인기 메이저 록밴드를 비롯해 여러 인디밴드들도 출연을 하고 있어 대학교 내의 가장 유명한 행사로 손꼽힌다. 주최가 영남대학교 총동아리 연합회 자체 주최인데다가 스폰서도 상당하고 역사도 깊어서 높으신 분들이라고 해도 쉽게 없어지지는 않을 듯 하다. 영남대 4대 밴드로는 COSMOS, BLUE WAVE, Echoes, The We가 있다. 불독맨션 이한철, 걸스데이 소진(기계공학과 05학번)이 '에코스' 출신. 소진은 안좋게 나갔다 카더라

2013년 부터 독도수호YU힙합페스티벌도 열리고있는데 내노라하는 래퍼들이 많이참여하고 런타임이 기본 400분 이상이다 중간에 뛰다가 지쳐서 자면서 봤다 이걸 주최하는 단체인 소셜런투유의 대표도 영남대 총학생회장 출신이다. 2015년에는 봄에는 청년대구로힙합페스티벌(5월 2일) 가을에는 독도수호힙합페스티벌을 열었다. 2018년에는 무려 비와이, 헤이즈, 스윙스를 부르는 패기와 자본력을 보여주었다 오오

7.3. 캠퍼스 건물들과 중앙도서관[편집]

영남대는 캠퍼스가 상당히 넓은 편인데, 대학관계자들이 칠곡과 경산 등 몇군데 대학부지 후보를 선정해서 대통령에게 보고했더니.. 직접 헬기를 타고 돌아본후 경산으로 정해 주었다고 한다.[46] 이 넓은 캠퍼스 부지 덕에 교직원들은 기아 모닝이나 대우 다마스급의 경차, 그리고 1톤 트럭을 몰고 다닌다. 아예 학교 마킹의 소형차들이 즐비하다. 정문 근처의 대학 건물들은 그럭저럭 봐줄 수 있지만 정문과 동문 사이의 원룸촌으로 빠지는 샛길에 있는 조형대학 실기동 건물들은 슬레이트 지붕으로 덮여있는 안습한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2009년 6월 조형대학 실기동 리모델링이 진행되어서 2009년 2학기부터는 수업이 재개되었다. 리모델링 전엔 옆의 사범대학보다 조형대학이 초라해보였지만 리모델링후에는 사범대가 무지 초라해보인다. 이제 사범대학도 외형만 리모델링 했다! 외형만.. 캠퍼스 내부도 꽤 커서 전용버스가 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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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대학교 중앙도서관[47]


캠퍼스 내의 건물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중앙도서관이다. 20층 빌딩의 형태이지만 가까이 가보면 한쪽이 튀어나온 의 형태를 하고 있다. 주변의 3, 4층 건물들 중심에서 혼자 잘난 듯한 포스를 풍기지만 실상은 3, 4층까지만 도서관 겸 열람실로 운영되고 나머지 윗층은 전부 교수들의 연구실이다. 1975년 당시 대구 도심에도 없던 21층 건물을 왜 건축했을까에 대해서는 몇 가지 도시전설이 있다. 어느 날 경산 인근을 지나가던 박정희 대통령이 "영남대가 어느 쪽인가?"라고 묻자 측근들이 "저쪽입니다 각하"라면서 방향을 가르쳐주었는데, 그러자 박 대통령은 "여기선 안보이는구만"이라고 한 마디를 했을 뿐인데 얼마 안 있어 거대한 도서관이 세워지면서 그 위치에서 보이게 되었다는 설이다[48]. 두 번째는 박 대통령이 그 당시에 고층이었던 김일성종합대학의 도서관보다 높은 21층 높이로 도서관을 지으라고 지시했다는 설이다. 세 번째는 캠퍼스가 위치한 압량벌 주변에 크고 작은 못과 저수지들이 실제로 많은데 덕분에 음기가 가득해서 박정희 대통령이 남성의 성기 모양의 건물을 지어 이 음기를 누르려고 했다고도 한다. [49] 우스개에 가까운 도시전설이니 실제로 믿지는 말자. 어째 도시전설 전부 다 박정희 대통령과 연관이 있다. 과연 박정희대학교

학교 건물의 구조가 복잡한 건물이 몇가지 있다. 인문관의 경우 제 2인문관이라는 건물이 별도로 있는데 이 건물이 인문관에 인접해있는 것이 아닌 길을 건너 있는 종합강의동 건물의 뒷편에 있어 대부분의 신입생과 공대생들을 혼란을 겪게 한다. 게다가 이 제 2인문관은 종합강의동과 연결이 되어 있는데 지하와 2층이 연결되어 언뜻보면 연결이 안 되어 있는것으로 느껴지게 한다.[50] 상경관 역시 증축에 증축이 더해져 1층으로 들어가 계단을 내려갔더니 1층으로 나온다던지 계단식 강의실의 존재로 계단을 올라가도 같은 층에 있는 괴랄한 구조[51]를 갖추고 있다. 덕분에 상경관 건물은 익숙한 상대생 외에 처음 강의실을 이곳으로 배정받은 교수님들이나 시험 때 처음 상경관에 들어선 타 단대 학생들에게는 지리감각을 혼란케 하는 미궁 수준이다.[52][53]

중앙도서관 지하입구로 들어가는 큰 길 앞에 별 7이라는 제목의 동상이 세워져 있는데, 재학생들은 이 동상의 키가 상당히 크다고해서 홍만이라고 부르고있다(...). 2015년 즈음에는 알수없는 누군가가 이 동상의 신발에다가 발가락(...)을 하나하나 발로 그려놓은 낙서를 해놓은 적도 있었는데 이후 그 발가락 낙서는 한동안 방치되다 어느순간 지워졌다. 보통 모임의 약속장소나 야외 교정에서 음식을 주문할 떄의 배달 포인트로 많이 이용되는 편이다.

여담으로 진량에 위치한 대구대학교는 본관이 영남대 중앙도서관과 비슷한 높이를 자랑하는데 하양-대구간 도로에서 시계가 좋을경우 두개의 높은 건물이 서로 마주보는 장관을 보게 된다두 개의 탑

7.4. 교내 명소[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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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과학대학 뒤편 벚꽃길[54]


교내에는 러브로드라는 유명한 벚꽃 산책로가 있다. 거울못과 생활과학대, 법학전문도서관을 오른쪽에 끼고 주욱 올라가는 벚나무 흙길이다. 막 시작하는 커플이 이 긴 러브로드를 끝까지 걸으면 그 커플은 깨진다는 미신이 존재한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산책로 주변은 울창한 산림지대라 남녀가 마음만 먹으면 사람들의 시선에서 사라지는건 쉬운 일이다. 또한 동성 친구와 둘이서 같이 이 러브로드를 걷게 되면 3년동안 애인이 없다는 미신도 있다. 하지만 생길 사람은 생긴다. 러브로드는 교내 야산과도 연결되어 있어서 산책로로 애용되고 있다. 이 외에도 교정 중간을 크게 가로지르는 천마로나 천마로에서 이도(이과도서관, 과학도서관)로 올라가는 길이 벚꽃철 산책로로 많이 찾는다. 야산에는 군부대 훈련용 사격장 역시 있으나 근래에는 사용되지 않고 있다.

학교 근처에 연못 역시 많으며 그 수가 20개라고 알려져 있다. 또한 20개의 연못을 다 찾아내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미신이 있는데 맑을 때에는 지표면에 없다가 비가 와서 물이 불어나야 나타나는 연못도 있어서 다 찾아내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거울못, 남매지, 자원대 연못 정도가 많이 찾는 연못이다.

7.4.1. 천마아트센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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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대학교 천마아트센터


또한 경산시의 대형공연장 중 하나인 천마아트센터가 교내에 있다. 개교 60주년 기념으로 건축되었다. 그랜드홀과 챔버홀로 구성되어 있으며, 내부에는 스타벅스도 위치하고 있다. 경산이 대구광역시위성도시이자 공생관계에 가까운 지역이라 사실상 대구의 대형공연장이나 다름없다. 일부 행사의 경우 영남대 학생증이 있으면 할인된 가격에 티켓을 구하는 것이 가능하다.

7.4.2. 박물관[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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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대학교 박물관


국제교류센터(구 복지관)와 축구장 옆에는 박물관이 있다. 대구, 경산, 포항 등 인근에서 발굴한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다. 특히 영남대 근처의 여러 고분군(일명 임당동 고분군)의 출토품을 전시하는 특별 전시관이 있다. 때때로 특별 전시도 하고 있으며, 박물관 앞에는 고인돌과 석탑 등을 조경한 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광개토대왕릉비 모형이 1층에 있는데 크기가 ㅎㄷㄷ하다

7.4.3. 민속촌[편집]

파일:영대민속촌.jpg

영남대학교 민속촌


본관 뒤편에 민속촌이 조성되어 있다. 구계서원, 쌍송정, 의인정사, 까치구멍집 등이 있는데 이는 안동댐 건설 수몰구역에서 이전 복원한 것이다. 그 외에도 경주맞배집, 인왕동 고분군, 화산서당 등 경주나 칠곡 등지에서 건축 중 발굴, 수몰 등의 이유로 이전 복원한 건물 및 유적지가 제법 있다. 나즈막한 야산을 끼고 있어서 봄철 꽃놀이 뿐만이 아니라 산책하기에 좋은 곳이다.

7.5. 등록금이 비싼 학교?[편집]

등록금이 비싸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2009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보자. 그 당시 2009년에 영남대 제2캠퍼스(대명동 캠퍼스)가 1위를 하게 되었는데 이 경우 본교만 발표한게 아니라 각각 캠퍼스를 따로 등록금 발표를 했었기 때문에 비싸다고 알려진 의대나 이공계열만 있는 학교들의 캠퍼스같은 경우 최상위권에 올라가게 되었고 반면에 실제 대학교 본교가 비싼 학교들은 은근슬쩍(?) 뒤로 밀려나게 되었다고 한다.

자칫 잘 모르는 사람들이 보면 저 대학교 본교가 비싸구나 라고 오해를 살 수 밖에 없게 되었다. 그래서 비싼 의대만 위치해 있는 영남대 대명동 캠퍼스(제 2캠퍼스)가 1위를 할 수 밖에 없게 된 것이다. 이로 인해 영남대학교는 오해(?)를 받을 수 밖에 없었다. 막상 2009년 전국의 의대 등록금 순위만 놓고 보면 영남대 의대는 9위라고 한다. 2013년 영남대 의대 등록금은 964만원으로 전국 의대중에서 18위 이다. 아무튼 이 때문에 대구 경북권 학생들이나 어른들은 이 통계를 보고 영남대가 등록금이 비싸다고 (사실 근처에 있는 학교보다는 비싸긴 하다 대표적으로 경북대학교가 있다.. 거긴 국립이야..) 잘못 알려지게 됐으며 아직까지도 영남대 등록금이 톱10 안에 든다고 잘못된 사실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여전히 공대 등록금은 눈물난다

영남대 본교 경산캠퍼스 같은 경우 2013년 기준 대학알리미 사이트 자료를 확인해보면 1년간 평균 등록금이 730만원으로 전체 대학교 중 69위에 랭크 되었으며 이 통계는 왠만한 서울 사립 대학교 보다는 등록금이 싸고 전국 사립대학 등록금 순위에서는 중위권에 위치한다고 볼 수 있다. 또한 같은 대구, 경산 지역 대학교인 대구한의대학교 평균 등록금이 732만원으로 68위, 계명대학교가 714만원으로 84위, 대구가톨릭대학교가 710만원으로 88위에 각각 랭크되었다.별 차이 없다

7.6. 자동차 대회[편집]

국내에서 2개뿐인 대학생 자작자동차대회도 1996년부터 이 학교에서 매년 개최. Baja SAE KOREA 국제대학생자작자동차대회라는 이름으로 매년 7월 학교 뒷산의 길을 오프로드 코스로 만들어 수많은 자동차 엔지니어 지망 학생들을 관광보내고 있...었는데 2007년에 피치버그 대학에게 1위를 내주더니 그 이후부터는 성적이 영 신통치 않다. 게다가 춘천에서 열리던 KSAE 주관의 춘천 대학생 자작 자동차 대회가 군산으로 옮겨지면서 엄청난 스폰서를 받은 것에 비해 영남대학교 자작 자동차 대회는 시간이 흐를수록 참가 팀과 스폰서가 줄어드는 등 점점 규모가 작아지고 있다. 매우 드문 확률로 튜닝된 대회용으로 추정되는 차를 볼 수 있었다

7.7. 동명의 학교[편집]

홍콩에 동명의 대학인 링난(嶺南)대학교가 존재한다. 링난대학교 홈페이지 2007년에 한국과 홍콩의 두 영남대가 자매결연을 맺기도 하였다. 관련 기사 광저우에도 동명의 링난대학교가 있었으나, 지금은 중산대학에 합병되었다.

8. 논란[편집]

9. 주요 출신 인물[편집]

자세한 내용은 영남대학교/출신 인물을 참조.

[1] 영남대학교 가족주거학과 명예교수, 前 위덕대학교 총장[2] 영남대학교 화학공학부 교수, 前 영남대학교 교학부총장[3] 약 82만 평.[4] 양준혁의 자리가 신태용으로 바뀌었다.[5] 청구대와 대구대가 통합해서 영남대로 바뀌자, 기존 한사대가 버려진 대구대 이름을 가져다 썼다[6] 이때 영남대의 법인인 학교법인영남학원 정관 1장 1조에 "이 법인은 대한민국의 교육이념과 교주 박정희선생의 창학정신에 입각하여 교육을 실시함을 목적으로 한다."라고 써놓았다. 전 세계 유사사례를 찾기 힘든 학교의 주인을 정관에 명시한 괴이한 케이스. 심지어 박정희 사후에도 이 조항이 변경되지 않다가 현재는 결국 설립자 박정희로 변경되었다.[7] 독재에 영합하여 곡학아세한 그에게는 선생이라는 호칭이 어울리지 않는다.[8]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때 활약한 장군. 왜란 때 의병장으로 활약하며 공을 세웠고 이후 정식으로 무과에 급제하여 벼슬을 하다가 호란 때 인조가 남한산성에 갇히자 주변의 만류에도 왕을 구하기 위해 북진하여 청군과 싸우다가 전사하였다. 인조 당시에 인조가 죽음을 애석해 하며 제문을 지어주었고, 숙종 때에 사액 서우가 내려졌는데 당시까지 무반의 사당에 왕이 현판을 내린 사례는 충무공 이순신김시민의 사례 밖에 없었다. 국가의 양난에 무공과 충정을 보였으나 현재 세간에 잘 알려지지 않은 위인.[9] 최진립의 손자인 최국선(1631~1682) 이후로 이 집안은 지역민•소작농에게 어진 경영을 하고, 모든 식객에게 공평한 대접을 하는 등 명망이 높아 20세기까지도 부를 유지할 수 있었다.[10] 현재 영남대학교병원, 영남대 의과대학, 영남이공대학교가 있는 자리이다.[11] 당시엔 등록금도 교수월급도 다 설립자가 냈었다![12] 3.15 부정선거 관련으로 구속된 적도 있으나 제9, 10대 국회의원에 부흥부 차관, 부흥부 장관, 보건사회부 장관,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 국무총리, 박정희대통령기념사업회 회장 역임[13] 영남대를 비롯해 성균관대, 동국대 총장을 역임했다. 직업이 총장[14] 당시 경북도지사 번호판이 경북 가 1001호였고, 영남대 총장 번호판은 경북 나 1001호였다.[15] 그저 막연한 주장은 아닌 것이, 70~80년대 졸업생들은 대구, 경북 일대에서 막강한 파워를 행사함은 물론이고 전국적으로도 지방사립대학으론 유례없는 전성기를 누렸다. 그래서 현재도 대기업이나 고위 공직자 중에서 영남대학교 출신을 발견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16] 무려 20대에 이사장이라는 파격으로 박정희 전 대통령이 교주(校主, 학교주인)이라는 정관과 박정희 정부 하에서 직간접적으로 일한 사람들이 주요 이사진으로 자리잡고 있었다.[17] 영남대학교의 이니셜인 Y와 더불어 Yield의 의미도 담고 있다[18] D. McMgregor의 XY이론에 따르면 Y형 인간은 지시를 받기보다는 자기 의지대로 움직이기를 선호하며 능력 발휘와 자아 실현을 중요시하는 능동적 인간이라고 한다.[19] 중어중문학전공, 중국어통번역전공[20] 프랑스어문전공, 독일언어문화전공[21] 2015년 국사학과와 사학과의 통합으로 탄생하였다.[22] 화학전공, 생화학전공[23] 2015년 화학과가 생명공학부의 일부를 흡수하여 화학생화학부로 변경[24] 화공시스템전공, 고분자·바이오소재전공, 융합화학전공(구 IT에너지화공), 에너지화공전공[25] 공과대학에서 분리되어 신설하였다.[26] 기계설계전공, 기계시스템전공, 첨단기계전공[27] 학과명에서 느껴지듯 그 분으로부터 모티브가 됐다[28] 2014년 신설.[29] 상경관은 이전에 사회관으로도 불렸다.[30] 2017년부터 국제통상학부에서 무역학부로 이름이 변경되었다.[31] 약학전공, 제약학전공[32] 전국에 해당 전공이 개설된 곳이 몇 없다. 1968년 설립 이후에 장관도 배출할 정도로 나름의 지지기반이 있다. 적어도 이쪽 계통에서는 알아주는 정도. 나름 서울경기쪽의 서울대와 건국대, 강원도쪽의 강원대처럼 경상도 쪽에서는 이 학과가 유명하다.[33] 체육학전공, 무용학전공[34] 회화전공, 트랜스아트전공[35] 작곡전공, 국악전공[36] 피아노전공, 관현악전공[37] 크게는 인문사회계열, 자연계열로 이루어져 있다. 인문사회계열 안에 공군장학생으로 이루어진 항공조종계열이 속해있다. 그러나 프라임사업으로 인해 2016년부터 자연자율전공학부 폐지, 인문자율전공학부는 순차적으로 인원 감축을 통해 학부를 서서히 없애 나갈 것이라고 한다.관련 기사[38] 건축학전공(5년제), 건축공학전공, 건축디자인전공[39] 생명공학전공, 분자생명과학전공, 미생물생명공학전공[40] 경산버스보다 대구버스가 훨씬 많다. 단, 대구~경산 하양 구간을 운행하는 대구 급행5번, 518번, 708번, 808번, 814번, 경산 818번은 제외한다.[41] 1998년 906번으로 변경된 대구 버스로 2005년 609번과 통합되어 사라졌다.[42] 대구, 경산 노선을 모두 통틀어 유일하게 하양~진량~영남대~경산시장~서문시장 구간을 운행한다.[43] 399번, 990번은 해당 가지 노선만 운행 하며 영남대학교 건너편으로 편도 운행만 한다.[44] 버스 정류장 쪽, 정문에서 횡단보도 바로 건너 정차[45] 학생회에서 피터지게 싸워서 얻어낸 것이었다. 권리는 공짜가 아니다.[46] 경주 교동고택과 경주최씨 가문 선산도 영남대 소유이다. 일부는 영남대에서 민간 업체에게 매각했다고 한다. 관련 기사[47] 현재는 #자 부분에 시계가 설치되어 있다.[48] 가장 메이저한 설이라서 대구 시민은 물론 교직원들도 사실이라고 믿는 설이다[49] 캠퍼스 안에도 6-7개의 못이 있다. 실제로 이 못들을 다 보고 졸업하는 학생은 많지 않다. 이 숨겨진 못들을 보기 위해서는 상당한 용기가 필요하다.무슨 목적이였던 간에 일부러 안으로 들어가야 하고 을 잃을 각오도 해야 한다. 후술했듯 이 연못들을 전부 찾으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미신도 있다.[50] 실제로 교내방송 기획 중 공대생이 제2 인문관내 강의실을 찾아가는데 강의실을 찾는데 길을 못찾아 헤메는 경우도 발생했다.종합강의동에 붙어있다고 가르쳐 준 상태에서 시작했는데도[51] 이 점은 인문관도 같으나 인문관은 상경관보단 건물이 작아 길찾기가 쉽다[52] 상대에 대형강의실이 많아 타과 수업이나 시험에 종종 이용되곤 한다.정확하다. 소오름[53] 출입이 가능한 문도 곳곳에 있어 아무 생각 없이 들어갔다간 길 잃어버려 빠져 나가지도 못한다.[54] 러브로드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