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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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식 아침식사(English Breakfast)

1. 개요2. 역사
2.1. 영국 요리와 육식2.2. 영연방과 영국 요리
3. 특징
3.1. 영국 요리/강점
3.1.1. 식재료의 품질3.1.2. 제과 제빵3.1.3. 미식 강국
3.2. 영국 요리/문제점
3.2.1. 채소 요리의 미비3.2.2. 해산물 요리의 미비3.2.3. 향신료 사용의 미비3.2.4. 영국 요리/급식의 문제점3.2.5. 기타 영국요리 비판에 관한 문서

1. 개요[편집]

영국요리.

영국 요리, 즉 브리티쉬 퀴진이란 오랜 세월동안 켈트, 로마, 앵글로색슨, 노르만등의 중세까지의 영국을 형성시켜 왔던 역사와, 인도파키스탄, 홍콩 등 식민지시대에서 주고받았던 영향들로 여러 민족과 문화가 융합되어 만들어진 요리이며 내부적으로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즈 각각의 특색을 지니는 것도 특징이다. 영어 위키백과는 영국의 전통적인 브리티쉬 퀴진을 '강한 향의 소스로 맛을 가리기보다는 심플한 소스를 곁들이길 즐겨하며 질좋은 현지 재료로 꾸밈없이 만든 요리이다'라고 설명한다.

분야별로는 베이커리와 육류 요리에 강하고, 채소 요리와 해산물 요리에 약하다.

2. 역사[편집]

영국은 기본적으로 육식, 그 중에서도 특히 쇠고기 요리가 중점적으로 발전했는데 영국보다 자연적으로 구이를 선호했던 투르크족, 몽골족, 만주족 같은 유목민족의 요리는 다른 문화권의 요리를 접하면서 터키 요리나 만한전석같은 독특한 요리들을 발전시켰고 영국요리도 항해술이 발달하면서 다른 문화권의 접촉을 거쳐 발전했다. 19세기부터는 지속적으로 자국의 영향권에 넣기 시작한 인도 요리중국 요리의 영향도 받았다.

이미 기원 전부터 영국은 인류가 생활하고 있었던 장소로서 숱한 이민족의 침입을 받으면서도 함락되지 않고 독자적인 문화를 지켜 왔다. 특히, 지금의 영국을 구성하고 있는 4개 지역은 지금까지도 각각 민족적, 문화적 특징을 가지고 있어 독자적인 요리 문화가 발전했다. 숲이 울창한 스코틀랜드의 경우 사냥한 동물을, 웨일즈는 농경문화를 중심으로 하는 가축과 야채를, 잉글랜드을 중심으로 한 곡식을 주요 재료로 하여 요리해 왔다. 아일랜드는 아일랜드 요리 참조.

재미있는 것은 주변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음에도 생선은 인기있는 음식이 아니었는데, 이는 북유럽 지방에 일반적으로 분포하는 바다에 대한 공포가 당시에도 널리 퍼져 있었기 때문으로 같은 섬나라로서 불교의 전래에 따라 육식을 거절하고 주로 생선을 즐겨먹던 일본과는 다르게 영국인들은 바다를 식량 창고가 아닌 죽음이 펼쳐진 하나의 암흑으로 간주하였기 때문이다.

이후 항해술이 발달하자 바다를 대륙으로의 진출을 위한 항로로만 간주하였기 때문에 바다에서 많이 잡히는 정어리나 특별히 맛이 있는 대구랍스터[1], 을 제외한 다른 물고기나 해초는 음식으로서 취급하지 않았다. 따라서 기원전부터 내려온 곡식과 육류 위주로 이루어진 식단을 지금까지도 지켜오고 있다.[2]

당시 요리의 조리법은 신석기 시대부터 발견하였던 불을 기초로 하는데 특히 잉글랜드 중심으로는 직화(直火) 문화가 발달하였고 아일랜드 중심으로는 냄비(Pot) 조리가 발달하였는데 이 때문에 잉글랜드는 곡식을 불에 구워 빵을 만들고 고기를 바로 불에 던져 태운채로 먹었고 반대로 아일랜드는 감자를 쪄서 으깨거나 곡식을 갈아 끓여먹는 차이가 있었다. 이는 사실상 국력의 차이로서 꾸준한 정복활동으로 고기를 쉽게 얻을 수 있는 잉글랜드는 고기를 통째로 불에 던져 태워낸 겉 부분을 제거하고 고기에 배어진 향기와 흐르는 지방질을 양념으로 통째로 먹으며 서민은 곡식을 갈아 불에 구워 독특한 향이 밴 을 먹은 반면에 아일랜드에서는 곡식이든 고기든 일단 물을 넣고 끓여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한 수단으로 요리를 판단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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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기와 17세기, 개신교 종교개혁의 영향으로 '심플하고 투박한' 특성이 생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영국 요리만의 특성이 아니라, 독일 등을 포함한 북유럽과 북미 등 여타 개신교 문화권의 요리 문화 전체가 공유하는 특성이다. [3][4] 이러한 '심플하고 투박한' 영국과 북유럽의 요리는 가톨릭 문화권인 화려한 프랑스나 이탈리아와 같은 남유럽 요리에 비해 오랜 기간 상대적으로 평가가 낮았다.

그러나 근세에 들어 이런 평가는 반전되어 가고 있는데, 1970년대 슬로우푸드의 유행과 함께 프랑스 요리도 무겁고 장식이 많은 오뜨퀴진에서 가볍고 담백한 누벨퀴진으로 이행했으며, 2000년대에 들어서 영국이 스페인과 함께 분자요리의 양대 산맥이 되고, 2010년대에는 담백하고 현지 재료를 중시하는 북유럽 퀴진이 세계 미식계를 휩쓸며 남유럽을 누르고 대세로 자리잡아 예전과 비교하면 완전히 달라진 평가를 받고 있다.

1970년대, 현대(modern) 영국요리가 성립되었으며, 성립 직후 굉장한 인기를 얻어 브리티쉬 퀴진의 대세가 되었다. 현대 영국 요리란 고품질의 현지 재료를 쓰며, 현대적 발명과 20세기 이전의 전통 영국 레시피를 섞어 사용하는 것으로써 슬로우 푸드 운동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것이다.

2.1. 영국 요리와 육식[편집]

영국 요리의 역사에 있어서 육식은 빼놓을 수 없는 관계로, 영국인들은 유럽에서 쇠고기를 가장 탐하는 민족이었다[5]. 그들의 켈트족 선조들은, 기원전부터 이미 영국 섬들에 사육 문화를 구축했으며, 43년에 브리튼을 공격해서 남부와 동부의 저지대에 자리잡은 로마인들도 로마군 병사들이 선호하는 쇠고기를 위해 소를 사육했다, 소고기 수요가 증가하자, 원주민들 사이에서는 자연스럽게 소를 매매하는 시장이 형성되었고, 켈트족의 소 사육 문화는 아일랜드스코틀랜드 북부 및 서부에까지 뿌리를 내렸다. 이후 로마인들이 영국에서 물러났지만, 소는 자연스럽게 부의 상징으로 남았으며 육식은 영국인 식생활의 중심이 되었다.

유럽인은 육식을 즐기기로 유명했지만, 그 중 영국인들은 이웃한 육지인들보다 훨씬 더 많은 쇠고기를 소비했다. 쇠고기에 대한 그들의 탐식은 켈트족이 사냥, 동물학살, 화려한 고기 만찬을 즐긴 전통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그 전통은 봉건왕조 시대의 귀족들을 거쳐서, 이후 젠트리 계급 사이에서 계속 이어졌다. [6] 영국인의 의식에서 동물 도살의 신성한 의미는 이미 오래 전에 퇴색 되었지만, 고기 특히 쇠고기가 '활력'을 불어넣는다는 믿음은 영국인, 그 중에서도 귀족들의 의식에 확고하게 자리잡았다. 쇠고기를 대량으로 섭취하는 것은, 엄청난 힘과 남성다움을 획득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미국 독립전쟁 직전. 즉, 영국의 군사력이 사실상 전세계 모든 대륙에 손을 뻗치고 있었던 무렵 한 영국인은 이렇게 적었다. "고기를 맘껏 먹는 사람들이 좀 더 가벼운 음식을 먹는 사람들보다 더 용감하다는 사실은 두 말하면 잔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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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문에 영국 귀족들은 서로 경쟁을 하듯이 호화로운 고기 만찬을 준비하기 위해서 개인의 재산과 시간과 에너지를 아낌없이 쏟아부었다. 부유층에서는 그 음식 준비가 지위와 특권을 내세우는 기본적인 수단이었다. 영국에서는 "빈자들은 살기 위해 먹었지만, 부자들은 먹기 위해 살았다." 라는 말이 나돌 정도였다. 귀족들 간의 경쟁이 점점 치열해지자 1283년 에드워드 2세는, 왕국의 저명 인사들이 자신들의 성에서 엄청난 양의 고기와 음식을 흥청망청 낭비하고 그보다 낮은 지위의 사람들이 자신들의 신분에 걸맞지 않게 그들을 흉내내는 것을 금하는 법령을 공포했다. 왕의 칙령은 만찬에서 고기 요리의 수를 제한하는 것이었는데, 만찬 주최자의 정치적 영향력이 준비한 요리에 따라 열렬한 지지자들을 끌어 모으는 능력을 크게 좌우한다는 점을 감안해 본다면, 그것은 상당히 중요한 결정이 아닐 수 없었다.

따라서 고기는 각 군주의 만찬에 초대된 손님들의 적절한 지위와 신분을 명확히 구분해 주는 정치적, 사회적 수단으로 사용되었다. 주빈석은 언제나 가장 윗사람에게 제공되었으며, 그 옆으로 지위에 따라 차례차례 자리가 정해졌다. 최고 부위의 고기는 가장 윗사람의 몫이었고, 질이 좀 떨어지는 부위는 아랫사람에게 제공되었다. 흔히 사용하는 "굴욕을 참다(eat humble pie)"라는 표현도 실은 "사슴 내장을 먹다"라는 뜻에서 유래된 것이다.

영국의 봉건군주들과 지주계급의 쇠고기 탐식은 가히 전설적이었다. 심지어, 빅토리아 여왕 시대 후기까지도 귀족과 상류층 계급은 화려하게 차려진 고기 만찬을 즐겼다. 소설가 프리스틀리(J. B. Priestly)는 "로마 제국 이래 탐식에 빠져든 사람들이 그토록 많았던 적은 없었다." 라고 말한다. 지주계급의 농총 주택에서는 매일같이 백정, 요리사, 주류 관리인, 부엌 하인들이 시중을 드는 성대한 사냥 파티, 만찬 준비, 화려한 음식들이 요란하게 펼쳐지곤 했었다.

근대 초기에는 영국 도시에서는 부유층과 빈곤층사이에서 부르주아 계급이 등장했고. 이들은 육식을 갈망했다. 때문에 영국 도시에서는 엄청난 쇠고기 소비가 발생했고, 산업혁명 직전에 영국은 이미 세계적인 쇠고기 육식 생활의 중심지로 자리잡았다. 1726년 즈음 런던 시장에서만 해마다 무려 10만 마리의 소들이 도살되었다. 당시의 런던 주민들은 스페인, 이탈리아, 프랑스 일부 지역 주민들이 한 해 동안 소비하는 전체 쇠고기보다 더 많은 양의 질 좋은 쇠고기를 겨우 1달 동안 먹어치웠다. 덤으로 영국군은 적색 육류가 군인들을 강하게 만든다고 믿어서, 해군 기준으로 수병 1인당 1년동안 무려 208파운드(1파운드=0.45kg)의 쇠고기를 제공했다. 소비량은 대략 하루에 250g정도였다. 그러니까 고깃집에 가면 나오는 쇠고기 1인분보다 좀 더 많은 양을 1년 365일 내내 먹었다는 계산이 나온다. 여담으로 이 믿음 때문에 영국 해군은 채소를 기피했고 이로 인해 괴혈병이 유행했다는 설이 있다. [7]

영국의 엄청난 쇠고기 수요는 영국의 식민지 정책의 방향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17세기 영국 귀족, 부르주아 계급, 군대에서 쇠고기 수요가 급증하자 영국 정부는 어쩔 수 없이 새로운 목초지를 찾아나서야 했다. 스코틀랜드아일랜드가 최초로 식민화된 목초지가 되었으며, 뒤이어 19세기에는 북아메리카 평원, 오스트레일리아 오지, 뉴질랜드 초원이 똑같은 길(정복)을 걸었다.

양고기 또한 유명한 식재료인데, 영국인들은 어린양(lamb) 고기와 늙은 양(mutton)을 철저히 구분하여 요리법을 체계화시켰으며, 근대 가축 품종 개량 기술의 발전 당시 가장 첫 대상으로 양을 품종 개량해 질 좋은 양고기를 생산해내었다.[8] 또한 여러가지 요리법으로 양고기의 단점인 누린내를 효과적으로 잡을 수 있는 방법을 발전시켰다. 영국인들은 목초지에서 소와 함께 양의 사육도 활발히 했는데, 이렇게 개척된 지역들인 웨일스뉴질랜드는 오늘날까지 드넓은 양목장과 질높은 양고기 생산으로 유명하다. 영국식 양고기 스튜는 오늘날 영국의 각 지역과 가문의 특징을 보여주는 가정식이자, 영국계 이민자들이 세운 캐나다, 뉴질랜드, 호주의 각 가정에서도 중요하게 만들어먹는 가정 요리 중 하나일 정도로 양고기에 대한 사랑도 크다.

이렇게 고기 매니아들이 넘쳐난 터라 이들은 고기를 2가지로 나눴는데, 이게 붉은 고기(살코기)와 하얀 고기(우유, 치즈, 버터 등)이다. 값비싼 것은 역시 살코기. 닭고기는 하얗지만, 레그혼 종은 2.7kg까지 기르는데다가 전근대식 사육은 효율을 되게 중요하게 여기지는 않았던지라 오늘날의 고기보다 더 늙고 풍미와 색이 짙었다.[9]

2.2. 영연방과 영국 요리[편집]

영국 요리의 발전을 얘기할 때 17세기 이후 전세계 곳곳에 있었던 영국 식민지들의 영향을 빼놓을 수 없다. 또한 20세기 이후 현재까지 영연방의 일원이 된 이들 국가 간 교류의 영향으로 다양한 나라의 음식 문화와 재료가 영국으로 유입됐으며, 많은 영연방 국가에 영국 요리가 유입됐다. 또한 현재도 강력하게 남아있는 영연방 국가간 교류 채널들로 영국과 영연방 각국의 요리들이 교류, 발전하고 있다.

가장 먼저 손에 꼽히는 것이 인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스리랑카 등 남아시아 지역의 요리이다. 남아시아 요리는 현재 영국에 성공적으로 정착하였으며, 영국 요리에 큰 영향을 끼쳤다. 처음에는 남아시아로 파견된 영국인들이 귀국하면서 데리고 들어온 인도인 하인 등 소수의 인도계 노동자들을 통해 영국 상류층 사회에 단편적으로 소개되었으며, 이 시기 커리, 고추 등 인도식 향신료가 영국 요리에 일부 첨가되게 된다.

19세기 후반 이후 남아시아인들의 영국행이 대폭 늘어났으며, 20세기 남아시아 각국이 독립한 이후에도 영연방 체제 내에서 영국 이민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졌다. 영국으로 이민온 이민자들은 런던 등 대도시에서 자국 요리를 파는 식당을 운영했으며, 이를 통해 영국 요리에 인도 등 남아시아 지역의 식문화가 유입되게 되었으며, 영국 외식업계의 흐름 또한 바뀌게 된다. 현재도 런던에서 가장 흔한 외식 식당 중 하나로 인도 요리 식당이 꼽힌다. 또한 현대 영국 요리에 카레 등 인도 향신료를 사용한 요리가 많은 원인이기도 하다.

중국, 특히 영국의 영향권 아래에 있던 광둥 지방 요리의 영향을 받기도 했다. 가장 기본적이고 대표적인 사례로, 현대 영국의 차문화도 생성 과정에서 중국과 인도의 영향을 받았는데, 19세기 초까지 영국의 차문화는 특히 중국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10]

차를 제외한 영국 요리 자체에 중국 요리의 영향이 유입되기 시작한 사건은 크게 두 가지로 꼽힌다. 19세기 싱가포르, 말레이시아[11] 등 영국령 식민지로 유입된 화교의 영향과, 영국령으로 편입된 홍콩의 영향이 있다. 싱가포르와 홍콩을 통해 영국 요리에 중국 요리, 특히 그 중에서도 광둥 요리[12]가 영향을 미치게 된다. 20세기 이후 해당 지역들의 발전과 영국과의 교류 확대로 이 흐름은 더욱더 확대되었다. 대표적으로 케첩[13]과 간장, 그리고 중국식 국수와 만두 그리고 볶음 요리법 등이 영국으로 유입됐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등에서 영국 본토에서는 나지 않는 열대과일, 향신료 등 다양한 식재료가 영국으로 유입됐으며 이로 인해 레시피가 수정, 보완됐으며 새로운 레시피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반대로 현재의 영연방 국가들로 건너간 영국인들과 그 후손들은 모국의 요리를 현지 사정에 맞게 개량, 발전시켰고, 지금도 현지화된 영국 요리는 영연방 국가의 주류 요리에 보이기도 한다. 다만 현지화 되면서 같은 메뉴여도 나라마다 레시피와 맛이 다른 일도 종종 벌어진다. 대표적으로 피쉬 앤 칩스의 경우 영국 본토에서는 대구를 이용하지만, 캐나다는 연어를 이용하는 경우가 많으며, 호주는 상어를 이용한다고 한다.

영국과 상대적으로 교류가 많았고, 영국의 문화적 영향을 강하게 받은 자메이카의 경우, 영국 식민지 시절을 거치며 자메이카로 건너온 아프리카인들과 크리올들이 영국 요리를 받아들였다. 이들은 영국 요리를 기반으로 자메이카 섬의 독특한 환경과 특산물들 그리고 자신들의 조상들이 아프리카에서 해먹던 요리를 반영해 독특한 자메이카 요리 문화를 형성했다. 자메이카가 독립한 1960년대 이후, 자메이카인 이민자들과 교류 채널을 통해 이런 자메이카 요리들이 영국과 다른 영연방 국가들로 수출 되고 있으며, 현대 영국의 요리 또한 자메이카 요리에 영향을 주고 있다.

3. 특징[편집]

3.1. 영국 요리/강점[편집]

3.1.1. 식재료의 품질[편집]

영국산 식재료는 유럽을 포함하여 국제적으로도 품질을 인정받고 있다. (특히, 소고기에 대해서는 알아준다.) 지리적 표시제/유럽연합에 등록된 유럽연합 역내 28개국과 역외 등록 제품 보유국 8개국을 합쳐서 36개국 중 등록 품목수 7위가 영국이다.

18세기, 19세기에는 세계적으로 질 좋기로 유명한 영국의 Hereford 품종의 소가 호주, 뉴질랜드, 캐나다 등 영국의 식민지 지역으로 수출되었으며, 현재도 세계적으로 질 좋은 소고기로 영국산 품종 또는 영국에서 키운[14] 소들이 자주 이름을 올리곤 한다.

이에 대한 좋은 예시 중의 하나가 이 문서의 대표 이미지에 자리하고 있는 영국식 아침식사 인데, 논란이 많은 영국요리들의 평들 가운데서 영국식 아침식사만은 대부분의 여행객에게 맛있는 영국요리의 예로 손꼽힌다. 그런데 영국식 아침식사의 메뉴는 간단한 조리과정을 거치는 스크램블 에그, 소시지, 블랙푸딩등이라 준비된 소재의 맛에 크게 좌우된다. 결국 이는 영국에서 공급되고 있는 식재료 품질의 우수성을 간접적으로 나타내주는 바로메터라 할 수 있다. 자세한 내용은 영국 요리/종류 문서 참조.

3.1.2. 제과 제빵[편집]

1840년대에 사회 상류층의 문화로 시작되어 지금에는 서민층, 상류층을 막론하고 영국의 전반적인 식문화로 자리잡은 티타임[15] 의 영향으로, 영국은 차에 곁들여 먹기위한 제과제빵에 기본하는 디저트 음식문화가 발달되어 있다. 홍콩이나 싱가포르 등 과거 영국의 식민지로써 영향을 서로 주고받은 나라나 지역들도, 식사를 위한 영국식 요리메뉴 자체는 드물더라도 제과제빵의 영향은 남아있는 곳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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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는 홍콩 현지화된 영국식 밀크티와 간식들

또한, 지금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소비되는 빵의 형태인 식빵 역시 영국을 그 기원으로 한다. [16]
하단의 영국요리의 문제점항목에 서술되어 있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증언마저도, 빵은 맛있었다고 평하고 있다.

앞서 서술된 영국식 아침식사의 식재료에 기반한 호평과 더불어, 영국산 제과제빵 식품의 품질은 영국산 식재료와 영국식 아침식사의 인기에 의해 설명된다. 세계적으로 영국요리에 대해 부정적인 평을 보이는 나라에서도 영국산 빵, 디저트 메뉴에 대해서는 높게 쳐주고 있다.

3.1.2.1. 티타임[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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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에서는 전통적으로 티타임이 공식적인 식문화로 자리잡았고 케이크와 쿠키, 스콘, 샌드위치 등 다양한 간식을 곁들여 먹는다.

샌드위치의 경우에는 보통 마요네즈+ 1장 or 오이 1장의 단순한 구성으로, 차에 곁들여 먹기 위해 간단히 만든다. 과거 영국에서는 '아삭한 오이'를 먹을 수 있던 것은 상류층들의 특권이었으므로 식빵 사이에 얇게 저민 오이를 끼운 큐컴버 샌드위치가 티타임 전통 음식으로 내려왔던 것이다. 애초에 홍차 자체가 찻물의 색이 나지 않을 때까지 여러번 우려먹던 고급 음식이었고, 찻잎을 보관하는 상자는 감히 하인들이 만지지 못하고 오직 여주인만이 만질 수 있었다. 그리고 테스코 같은데서 1파운드도 안하는 싸구려 샌드위치를 사 먹는 게 아니라면 한국인이 일반적으로 햄 하면 생각하는 프레스 햄이 아니라 콜드컷 햄을 넣는 음식인데다, 같은 영국식 식빵[17]이라도 본토 물건은 조금 더 퍼석하기 때문에 촉촉하고 아삭한 오이와 매우 잘 어울리는 조합이다.

이 외로 곁들여 먹는 스콘은 퀵브레드의 일종으로 견과류와 여러 재료를 섞어 넣기도 하며, 종류가 다양하다. 밀가루로 만든 단순한 것은 클로티드 크림 같은 것을 얹어 먹기도 한다. 스콘 같은 경우 아무 것도 곁들이지 않은 상태에서는 한국에서 사 먹는 게 더 맛있는데, 영국 물건이 맛이 없는 게 아닌, 한국에서 파는 스콘에 유지방과 당분이 더 많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게, 저 동네는 빵에다 스프레드를 발라먹는 게 일상이다 보니 그냥 꿀이든 버터든 클로티드 크림이든 치즈든 입맛에 맞게 발라먹으면 그만인 반면, 일본과 그 일본에서 제과, 제빵을 받아들인 한국은 소비자가 그런 행동에 익숙하지 않으니 스프레드를 바르는 과정을 대체할만한 제조공정을 추가한 것. 다만, 식어빠진 스콘은 한국 것이든 영국 것이든 진짜 더럽게 맛없다(...)[18]

17세기 이후 이런 티타임 문화의 발전은 영국 농업의 산업화로 인한 농업 생산력 폭증과 과일 품종 개량과 겹쳐져 영국 제과 제빵의 급격한 발전이라는 의외의 결과를 불러오기도 했다.

3.1.3. 미식 강국[편집]

해외에서 작성된 통계수치를 바탕으로 볼 때, 런던은 미슐랭 레스토랑 별점 갯수에서 7위에 랭크된다. [19]

영국 텔레그래프지

사실, 영국이라는 나라는 (양극화와 최근의 경제침체는 잠시 제쳐두고,) 과거부터 지금까지 여전히 세계적인 금융중심지이자 경제강국이며, 인기있는 관광지이기도 하다. 이 중에도 런던은 수많은 여행객과 사업가가 드나드는 도시이기 때문에, 시쳇말로 목이 좋으며 실력있는 쉐프가 유럽 관광객들이나 경제력이 있는 사업가들을 타겟으로 할 때, 미슐랭 레스토랑으로 대표되는 하이엔드급 식당이 애초에 없을래야 없을 수가 없는 환경이다.[20] 때문에 돈이 있고, 미식에 관심이 있다면 영국은 좋은 식도락 관광지이며, 미식 선진국이기도 하다.

영국 출신으로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린 요리사로는 고든 램지제이미 올리버를 비롯하여 마르코 피에르 화이트 등이 있다. 한국에서도 영국유학파 출신 쉐프들이 늘어나는 추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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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전통 레시피에 기반한 미슐랭 2스타 레스토랑 DINNER의 메뉴. 1720년, 1670년경의 영국 전통요리를 어레인지한 것이다.

3.2. 영국 요리/문제점[편집]

이 항목은 상기에 서술된 영국요리의 식재료, 제과제빵, 미식강국으로써의 강점과는 다른, 전반적인 영국요리의 문제점에 대해 서술한다.

상기에 서술된 장점들에도 불구하고, 영국요리는 그 악명으로도 유명한데, 대표적인 증언을 몇가지 살펴보자면 다음과 같다.

"어릴 적 나는 전통 영국 서민 요리의 온갖 익숙한 추한맛을 먹으며 자랐다. 매년 도버 해협 건너 벨기에에 사는 친척들 집에서 식사를 하는 명절날을 일년 내내 기대했고, 내 십대 무렵 즘에 대도시에 막 독립한 식민지 인도에서온 이민자들의 식당들이 생기기 시작 했던 것은 성장기의 축복이었다."

-역사학자 토니 주트(1948~2010,유태계 영국인), 유작인 자서전적 회고록 Memory Chalet (2010) 중에서

동아시아 담당 기자로 내가 누린 가장 큰 행운은 지난 15년간 내 나라 음식 대신 한국 요리, 중국 요리, 일본 요리를 먹을 수 있었다는 점이다.

-영국 가디언지의 동아시아 특파원 조너선 와츠의 말

나는 런던에서 지내는 동안 거의 외식을 하지 않았다. 솔직히 말하면 무엇을 먹어도 맛이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맛있는 레스토랑은 분명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탈리아에서 지내다 보면, 런던에서 돈을 내고 레스토랑에서 식사하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는다. 미안한 말이지만 직접 만들어 먹는 편이 더 맛있다. 식빵은 맛있었다. 요리라고 할 정도의 음식은 아니지만.

-무라카미 하루키[21], 먼 북소리 中

"올림픽에만 3번째로 참가하면서 선수촌 [22] 맛없는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다."

-2012 런던 올림픽에 참가한 대한민국 사격선수 진종오증언


증언은 이 외에도 다수 존재한다. 이 외의 증언들은 영국 요리/증언 항목을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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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는 BBC를 포함하여 다양한 저널리즘 관련 수상경력이 있는 푸드 저널리스트 조안나 블리스먼이다.
책의 제목은 "나쁜 음식 영국 - 어떻게 국가가 그 국가의 식욕을 파괴하는가" ("How A Nation Ruined Its Appetite".) 인데, 이 책의 소개를 일부 발췌하자면 다음과 같다.

레시피와 다이어트책이 꾸준히 베스트셀러 탑10에 들지만, 평균적인 식사를 준비하는 시간에 단 8분밖에 들이지 않고, 사람들은 스스로 요리하기 보다 유명 쉐프의 TV 요리를 보는데에 더 시간을 들이는 나라에 어서오세요.
Welcome to the country where recipe and diet books feature constantly in top 10 bestseller lists but where the average meal takes only eight minutes to prepare and people spend more time watching celebrity chefs cooking on TV than doing any cooking themselves, ...

음식의 안전과 산지에 거의 병적으로 집착하지만, 영양섭취는 공장생산 제품에 의존해서 다른 유럽국가에 비해 4배나 많이 소비하는 나라에 어서오세요.
Welcome to the nation that is almost pathologically obsessed with the safety and provenance of food but which relies on factory-prepared ready meals for sustenance, eating four times more of them than any other country in Europe, ...



이러한 비판은 단순히 한 저널리스트의 저서에 그치지 않는데, 다음은 2009년 영국관광청(VisitBritain)에서 영국을 방문하는 36개국 관광객에게 "영국요리는 매우 맛이 없다" (very bad) 라는 질문으로 설문조사를 하여, 가장 많은 관광객 숫자를 차지하는 상위 10개국의 결과이다.

파일:attachment/visitbritain_2009.jpg
https://www.thecaterer.com/articles/335666/what-kind-of-food-offering-do-foreign-guests-want-from-you

1이 강한 부정, 7이 강한 긍정으로 3.5미만은 '아주 나쁘지는 않다' 는 뜻이다. 여기서 실제로 영국땅을 밟은 여행객 숫자 상위 7개국이 3.5를 웃도는 답변을 했다는 것은 영국 요리에 대한 나쁜 인상이 몇몇 나라에 불과하며, 심지어 문제점 부분에서도 다른 나라도 이정도의 문제점은 있다고 물타기하는 주장과 달리 영국요리에 대한 나쁜 인상이 비단 일부에 국한되는 현상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23]

이와 같은 영국요리에 대한 자료들은 영국요리에 대한 악명이 충분히 실제에 근거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와중에도 상기 서술된 영국요리의 장점들과 문제점들의 다른 모습에 당황하지 않아도 되는 이유는, 장점들은 식재료, 베이커리, 하이엔드급 레스토랑에 대한 부분이며, 단점으로 지적되는 부분은 그에 해당하지 않는 전반적인 영국의 식문화 경험에 비롯한 것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것은 영국요리 레시피 자체에 문제가 있어서라고도 단정지을 수 없는것이, 같은 레시피 베이스라도 실제로 여러 나라에서, 심지어 같은 영연방내에서 만드는 피쉬 앤 칩스도 맛은 물론이고 조리법까지 다른경우가 많으며, 심지어 같은 영국인이 만들어도 그 맛이 서로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24]

이와 같은 현상에 대해, 영국의 문화인류학자 케이트 폭스는 그녀의 2004년 베스트 셀러 Watching the English: The Hidden Rules of English Behaviour 에서 영국인들은 타 유럽인들에 비해 요리에 관한 열정 자체가 결여되어 있다고 설명했다. 게다가 앞서 언급한 청교도 특유의 금욕주의로 요리자체에 관한 열정을 비웃는 분위기와 문화가 있어서 역시 영국 요리의 질을 떨어뜨리는 데 일조한다고 말한다. [25]

종합해보자면, 영국요리에 대한 나쁜 인상은 일반적으로 접하게 되는 전반적인 영국식사, 그 중에서도 영국요리라는 레시피 자체가 아닌 조리의 측면에서 기인하고 있는 면이 크다고 봐야 할 것이다. 요약하자면, 레시피 자체는 아주 정상적이고 공급되는 식재료의 질도 좋아 잘만 만든다면 맛도 있는 요리가 맞는데, 몇몇 극소수를 제외한 그걸 만드는 사람들 대부분이 요리에 관한 열정도 없고 관심도 없으며 조리법도 개판이라(...) 이런 대참사가 발생했다는 소리.

3.2.1. 채소 요리의 미비[편집]

동아시아와 남서유럽권 사람들이 영국 요리에서 가장 적응하기 힘들어하고, 공통적인 문제로 지목하는 지점이 바로 영국 요리에 채소가 없다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영국 요리에서 많이 사용되는 채소들이라고 하면 강낭콩, 양상추, 당근, 토마토, 아스파라거스 정도가 있는데, 이는 다양한 채소들을 두루 요리에 이용하는 타문화권 요리에 비하면 매우 뒤쳐진 수준이다.[26]

이는 영국의 기후적-토지적 요인에 기인하는 점이 큰데, 영국 요리가 탄생하고 성장한 브리튼 섬과 아일랜드 섬은 대부분의 지역이 서안 해양성 기후이기 때문에 기후 상 다양한 채소를 키우기에 좋지 않은 환경이며, 브리튼아일랜드의 토질도 밀(식물)보리 같은 곡류가 아닌 채소를 키우는데에는 문제가 많았다. 이 때문에 영국인들이 접할 수 있는 채소는 매우 한정적이었으며, 온실 기술 등이 등장한 오늘날에도 영국에는 영연방 혹은 유럽산 채소를 제외하면 다양한 채소를 접하기가 힘들다.

이는 채소를 요리하는 문제로 이어졌는데, 채소를 다양한 방법으로 요리해 먹는 타 문화권들과 달리 영국 요리의 채소 요리는 기껏해야 샐러드로 먹는 거나 삶는 것 정도 밖에 없었으며, 그나마 샐러드의 경우도 19세기 들어 다양한 드레싱이 등장하면서 발달하기 시작한 거라, 삶아 먹는 것 외에는 사실상 채소 요리가 없었다고 보면 된다.

3.2.2. 해산물 요리의 미비[편집]

섬나라라는 지형적 특징에도 불구하고, 과거부터 대구 정도를 제외하면 영국인들의 해산물 요리 수요는 사실상 바닥인데, 이는 오늘날 영국 요리에서 해산물 요리가 매우 낙후된 요인이 됐으며, 해산물 요리가 크게 발달한 프랑스나 한국, 일본에서 영국 요리에 대한 평가가 매우 안 좋아진 이유가 됐다.

영국인들은 전통적으로 바다에서 해산물 채취 작업을 하고, 이렇게 난 해산물을 섭취하는 것을 터부시하는 경향이 있었다. 이는 앵글로 색슨과 노르만 족의 문화적 영향으로 추측되는데, 전통적으로 앵글로 색슨 족과 노르만 족은 바다를 죽음의 공간으로 보았으며, 바다 생물들을 괴물처럼 보는 경향이 있었다.[27] 이들은 바다에서 나는 생산물들을 먹기를 꺼려했고, 상어대구, 과 같은 제한된 경우를 제외하면 해산물을 섭취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비교적 최근까지 영국과 그 영향을 강하게 받은 국가들의[28] 해산물 요리는 매우 후진적이었으며, 이런 전통은 현재까지도 많은 영국인들이 해산물 요리를 꺼려해 해산물 요리가 발달하지 못하게 하고 있는 모습을 보이는 주요 원인이 되고 있다.

또한 이러한 환경의 후폭풍으로 인해, 영국에서 그나마 나오는 해산물 요리들도 맛을 내기 위한 제대로 된 처리과정을 거치지 않아 비린내가 넘쳐나거나 기름덩어리가 되는 등 결과물이 좋지 않다. 각주에 나온 랍스터 조리방식이나 영국에서 만든 피쉬 앤 칩스의 안좋은 평가가 대표적인 예.

3.2.3. 향신료 사용의 미비[편집]

이 점은 고전적인 영국 요리의 문제점인데 사프란이나 바질, 파슬리 등 다양한 향신료를 사용하는 남유럽권 요리들이나, 고추, 계피, 고수 등을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동아시아권 요리들과는 달리, 영국 요리에는 18~19세기 전까지 향신료 사용이 거의 없었으며, 현재도 타문명권에 비해 향신료 사용이 적다.

이 점도 1.의 채소 요리 미비와 비슷한 원인에서 기인하는데, 영국의 토질과 기후가 향신료들을 키워내기에 매우 부적합하다는 것이다. 후추육두구와 같은 다양한 향신료가 나는 열대 지방을 제외하고, 바질이나 파슬리 등과 같은 온대 기후에서 나는 향신료 식물들은 기본적으로 풍부한 일조량과 온화한 기후가 필요한데[29], 영국은 이런 조건에 맞지 않으며, 온실 등 근대 과학기술의 도움이 없는 상태에서는 향신료 식물들을 키워내기가 매우 힘들다.

이 때문에 영국에서 소금을 제외하면 향신료는 사실상 전량 수입에 의존해야 했고, 19세기 영국령 식민지들에서 증기선을 타고 향신료들이 대거 들어오기 전까지 영국 요리에서 향신료는 서민들에게는 접할 수 없는 귀족들의 것이나 다름 없었다. 이 때문에 향신료 사용에 적극적이었던 귀족 요리와 달리, 향신료를 접할 수 없는 서민들이 즐기는 대중 요리에서는 향신료가 사실상 사용되지 않았다.

향신료의 사용의 미비는 같은 재료에서 다양한 조리방식을 파생시켜 발전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낮추고, 나아가 소재 본연의 맛만으로는 다양한 향신료를 맛본 혀를 사로잡을 수 없기 때문에 요리에 대한 평가가 안 좋아질 수 밖에 없다.[30]

이후 호주와 뉴질랜드, 캐나다, 아프리카 식민지의 영국인들은 현지인들과 영국 외 이주자들의 향신료 이용법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고, 영국 본토인들은 영국으로 건너온 인도인들과 화교, 말레이 족 등의 영향으로 아시아의 향신료 사용법을 받아들였는데, 이 점 때문에 오늘날 영국과 영연방 국가들의 주류 향신료 요리가 다름 아닌 커리케첩간장이 되는 촌극이 빚어진다.

해산물 요리 문제와 마찬가지로, 향신료를 잘 안쓴다는 것은 향신료를 쓸 줄 모른다는 것으로 연결되었다. 따라서 가정집에서 향신료를 막 쓰는 경향이 강하다. 예를 들면 자기집 특제 소스랍시고 누텔라, 그레이비 소스, 간장 따위를 막 섞거나 아니면 그냥 그 소스들을 퍼다 쓴다. 그리고 그 특제 소스(?)를 아무데나 바르는 것. 당연히 어울리지 않는 곳에도 발라대니 맛이 좋을 리 없다.

3.2.4. 영국 요리/급식의 문제점[편집]

1944년 법적인 영양 가이드라인이 갖춰진채 급식이 시작된 이래로 잘 진행되어 오던 급식이 1980년대 마가렛 대처 정부에 의해 무상급식과 같은 재정지원이 폐지 되고 학교 급식을 관리하는 주체가 학교에서 민영사업자로 넘어가면서 급식의 질이 급격히 하락했다. 민영사업자들이 감자튀김, 칠면조 너겟, 피자와 파이등 수준 낮은 '따뜻하지 않고 차가운' 패스트푸드 수준의 급식을 학교에서 제공하자 이에 경악한 제이미 올리버가 2004년 본격적으로 문제 제기를 시작하고, TV 방송을 통해 이를 알리기 시작했다.

제이미 올리버영국 급식을 바꾸기 위해 노력한 내용을 보면 정말 충격과 공포. 제이미 올리버 문서를 보면 알 수 있지만 요리사인 그가 성인병 예방과 급사의 위험을 줄이기 위해서 "학교 급식에라도 제대로 된 음식을 먹이자."라는 상식선의 운동을 펼치고 이를 위해 텔레비전에 나왔는데 심지어 영국 급식을 상대로는 방송 중에 울면서 노력해도 제대로 안 됐다. 그나마, 이 에피소드들이 나간 뒤에 뒤늦게 개선이 되었다고는 하지만.

이러한 상황 속에서, 마사 페인(Martha Payne)이라는 9살짜리 꼬마가 자신의 학교에서 나오는 급식에 대해 신랄하게 평점을 매겨 비판하는 글들을 자신의 블로그에 올렸고, 그 포스팅이 반 년만에 300만 조회수를 기록하고 이전 급식개혁운동을 주도했던 제이미 올리버의 격려 멘트까지 받았다. 때문에 자신들의 입장이 불리해진 현지 협의회가 근면성실한 직원들의 사기를 저하시키는 부당한 모함이라며 급식에 대한 사진 촬영과 업로드를 금하고 탄압하자, 영국 급식에 대해서 논란이 사회문제로 크게 불거져서 급식 개혁에 대한 불길이 각 지역으로 퍼져나가고 있다고 한다. 참고.

결국, 제이미 올리버의 이러한 노력이 2005년 영국총선의 주요 화두로까지 진화하여, 영국 정부로 하여금 아이들의 급식영양권을 지키기 위하도록 아이들의 급식신탁(Children's Food Trust)이라는 비정부공공기관까지 만들게 되었고 2014년 9월부터 영국 모든 학교의 유치원생들은 무상으로 '따뜻한' 급식(free hot meal at lunchtime)을 제공받게 되었다. 부총리인 닉 클레그도 적극적으로 나서 모든 유아들에게 인당 2.30파운드를 급식비로 지원하기 시작했고, 스코틀랜드에서는 모든 어린이들이 무상급식을 제공받게 되었다. 영국의 교사노조는 여전히 영국에서 나머지 모든 학생들이 무상급식을 받기 위해 노력하고 있고, 영국 노동당에서는 이를 정책 과제로 삼아 진행 중이다.

3.2.5. 기타 영국요리 비판에 관한 문서[편집]


[1] 다만 랍스터는 19세기 이전까지 영국 본토에서는 취급도 잘 안 했고, 북아메리카와 오스트레일리아 식민지 해안 지역에서 죄수들 식량용으로 썼다.[2] 이 때문에 호주나 자메이카에서는 바로 옆에 해산물이 넘쳐나는 바다를 두고 고기를 구워먹는다는 농담도 나올 정도다.[3] 이 점 때문에 영국과 독일에서는 서로의 요리가 맛이 없다는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다.[4] 비슷하게 개신교 문화권에 속한 네덜란드도 마찬가지이며 음식 문화가 단순하다는 평이 많다. 게다가 일본인들이 맛없다고 투덜대는 것까지 비슷하다.[5] 그래서 구시대 영어로 영국인을 칭하는 별칭으로 'Beefeater'가 있다.[6] 일례로 제임스 1세는 사슴 사냥을 할 때 직접 그 목을 딴 다음 "관리들의 얼굴에 사슴 피를 바르고 나서 그 피를 닦는 것"을 금했다. 사슴 사냥을 마친 뒤 "상류층 숙녀와 여성들은 사슴 배를 가를 때까지 기다렸다가 손을 하얗게 해 준다는 믿음에 양손을 피로 씻는 것"이 관례였고 지금도 영국에서 여우 사냥을 할 때는 첫 사냥감을 잡은 사람의 얼굴에 피를 살짝 묻히는 의식을 한다.[7] 고기를 먹어야 강해지고, 야채를 먹으면 약해진다는 믿음은 당시 영국군뿐만 아니라 유럽 대부분에 퍼져 있었다.[8] 다만 이 과정에서 유전자에 이상이 생긴 양고기가 들어간 사료를 먹은 소를 통해 광우병이 영국 지역에서 처음 등장했다.[9] 이러한 고기 사랑은 현재에 이르러 서양 요리들 중에서도 유독 저평가되는 요인으로도 다뤄지는데, 고기 요리에 집중한 결과 상대적으로 채소 요리는 기껏해야 샐러드 정도인 부실한 수준에 머물렀기 때문이다. 이웃 국가인 프랑스는 물론 대륙 유럽 대다수의 국가들도 영국보다는 훨신 더 다양한 채소 요리가 존재할 정도.[10] 아편전쟁의 원인 중 하나로 중국으로부터 찻잎, 도자기 등을 수입하며 생긴 막대한 무역 적자가 꼽히기도 한다.[11] 이 시기 영국인들이 하인으로 부리던 말레이 족들의 요리가 영국 요리에 일부 영향을 주기도 했다.[12] 전통적으로 홍콩 요리는 광둥 요리의 일부였다.[13] 원래는 남중국 사람들이 먹던 굴소스에서 유래했다.[14] 본 품종은 다른 경우도 있다[15] 해외에서는 tea break 라고도 쓰인다.[16] 자동으로 슬라이스해주는 기계를 최초로 도입하여 공급한것은 미국이 시초[17] 우리가 아는 그 식빵 맞다[18] 일단 어떤 음식이든 갓 조리되어 나온 것이 맛있는것은 사실이다.[19] 2017년 기준 [20] 물론, 이 레스토랑들이 모두 영국요리를 내는 것은 아니지만.[21] 이 양반은 그리스 요리이탈리아 요리를 잘 먹었고 터키 요리는 맞지 않았으나 그래도 먹을 만 한 건 있었다고 쓴 바 있다. 정확히는 "향이 너무 강하여 한국 요리처럼 나에게 맞지 않는다."고 썼다. 터키 요리그리스 요리와 겹치는 항목도 있지만 뭐... 자기가 그렇다니까.[22] 보통 운동선수들은 평상시 몸 관리를 위해 거의 중세 수도자 같은 음식을 먹지만, 큰 경기를 앞두고서는 보통 사기 진작을 위해 선수가 특별히 좋아하는 음식이나, 홍보차원에서 해당 올림픽 주최국의 음식 중 가장 호평 받은 맛있는 음식이 나오기 마련이다. 평소에 무미건조한 운동선수용 식단에서 벗어난 것만으로도 뭐든 맛있게 느껴져야 정상이다.[23] 단, 아일랜드와 독일을 제외한 다른 나라들은 영국식 아침식사에 대해서만은 언제든 먹어도 좋다라고 답했다. 영국요리의 강점과 단점이 갈리는 부분.[24] 고든램지가 내는 피쉬 앤 칩스가 그 맛이 형편없을리 없지 않은가?[25] 한국어로도 번역되어 있다 http://book.daum.net/detail/book.do?bookid=KOR9788956251042[26] 예를 들어 한국 요리의 경우 나물 요리 등으로 채소를 사실상 주식 중 하나로 삼고 있고, 중국 요리이탈리아 요리 등도 다양한 채소를 적극적으로 활용-섭취하고 있다. 심지어 채소 섭취량이 부족하다고 알려진 북미권에서도 양상추는 건강에 좋은 식재료라기보다는 샐러드에서 양을 채우는 용도로 취급되서 시금치보다 급을 낮게 친다.[27] 대표적인 사례로 크라켄은 바다 생물 중 문어와 오징어와 같은 다족 해양 연체동물들에게서 모티브를 따왔다.[28] 미국캐나다, 호주의 경우 18세기 전까지 랍스터 요리 방법이 삶는 것 외에는 없었고, 삶아낸 랍스터는 매우 맛이 없었기 때문에, 18세기 후반~19세기에 랍스터 요리법이 들어오기 전까지 랍스터들은 죄수들이나 먹이는 해양 쓰레기 취급을 받곤 했다.[29] 유럽에서도 다양한 향신료를 사용하기로 정평이 난 이탈리아, 그리스, 스페인의 경우 대표적인 지중해성 기후 지역들이고, 마찬가지로 향신료를 많이 사용하는 한국의 경우 열대 지방과 맞먹는 수준의 여름 기후가 있기 때문에, 여름에 이런 향신료 작물들을 키워 날씨가 추워지기 전인 가을에 수확하는 게 가능하다. 특히 한국은 전통적으로 삼남 지방(전라, 충청, 경상)이 이런 조건을 잘 충족했기 때문에 타지역보다 삼남지방 전통 요리의 향신료 사용 비율이 높다.[30] 사족으로 향신료 사용이 미비할 경우 재료의 품질 저하로 인한 맛의 저하를 덮을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즉, 향신료 없이 요리할 경우 재료의 품질이 조금만 떨어져도 요리의 맛이 급격히 나빠진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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