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평도 포격 도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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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평도 포격도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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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격 직후 연평도의 모습. (출처: 대한민국 국군 · 위키피디아)

시기

2010년 11월 23일

장소

대한민국 인천광역시 옹진군 연평면 대연평도

교전국

파일:대한민국 국기.png대한민국

파일:북한 국기.png북한

지원국

파일:미국 국기.png미국

지원국 부재

지휘관

파일:대한민국 국기.png이명박 대통령
파일:대한민국 국기.png김태영 국방부장관
파일:대한민국 국기.png이홍기 합참작전본부장#
파일:대한민국 국기.png김정수 포7중대장#

파일:북한 국기.png김정일 국방위원장
파일:북한 국기.png김정은
파일:북한 국기.png김영철 정찰총국장
파일:북한 국기.png김격식 북한4군단장#
파일:북한 국기.png윤영식 북한4군단 포병여단장#

파일:미국 국기.png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파일:미국 국기.png로버트 게이츠 미국 국방부 장관

피해

전사 2 명
부상 16 명
민간인 사망 2 명
민간인 부상 3 명

전사 10여 명(추정)
부상 30여 명(추정)출처

병력

파일:republicofkoreamarinecorps_flag.jpg대한민국 해병대
파일:rokaf_logo.png대한민국 공군
K-9 자주곡사포 4문
파일:대한민국 국기.pngF-15 전폭기 4기
파일:대한민국 국기.pngKF-16 전폭기 4기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250px-Flag_of_the_Korean_People%27s_Army.svg.png조선인민군 육군
파일:900px-Flag_of_the_Korean_People's_Army_Air_Force.svg.png조선인민군 항공 및 반항공군
파일:북한 국기.png240mm 방사포
파일:북한 국기.png122mm 다련장로켓포
파일:북한 국기.png130mm 해안포, 76mm 평사포
파일:북한 국기.pngMiG-23 전투기 5기

지원병력[1]

파일:대한민국 해군기.png대한민국 해군
파일:육군미사일사령부.png육군미사일사령부[2]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United_States_Forces_Japan.png주일미군 F-22 전투기
파일:external/www.navy.mil/NavyEmblem.gif조지 워싱턴함을 포함한 미해군
항모전단

1. 개요2. 사건 경과
2.1. 사건 이전2.2. 사건 발생2.3. 포격과 반격2.4. 결과2.5. 혼란 속에서 활약한 용사들2.6. 한국 정부의 대응2.7. 이후 조짐
3. 도발의 이유4. 피해
4.1. 대한민국의 피해4.2. 북한의 피해4.3. 경제적 영향
5. 후속 대응
5.1. 한미합동훈련 시작5.2. 연평도 사격훈련 재개
6. 사후 보상 문제7. 한국의 반응
7.1. 한국 네티즌의 반응7.2. 당시 군 부대 내 분위기
8. 북한의 반응9. 국외 반응10. 포격 이후 남북의 영향
10.1. 북한10.2. 남한
11. 각종 비판
11.1. 발생전 처리에 대한 비판11.2. 전후처리에 대한 비판11.3. 작전 권한과 관련한 문제
12. 기타13.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선빵필패[3]
제2차 한국전쟁을 촉발할뻔 했던, 북괴가 저지른 최악의 대남 도발

2010년 11월 23일 오후 2시 34분부터 한반도서해 5도 중 하나인 대한민국연평도북한군선전포고 없이 포격한 사건. 또한 휴전 이래 최초로 발생한 민간 거주구역에 대한 공격이다.

그전의 도발과는 달리 민간인 거주지역이 포격을 당했고, 군인은 물론 민간인 사망자까지 나온 상황이었기에 조금만 수습이 늦었어도 정말로 휴전이 깨질 수도 있었던 일촉즉발의 상황이었다.

2. 사건 경과[편집]

2.1. 사건 이전[편집]

북한군은 2010년 11월 23일 오전부터 호국 훈련을 실시한 대한민국 국군에게 실질적인 침략행위라고 항의를 하였고 한국군은 기존의 훈련이라고 통지문을 보냈다. 게다가 이후 기사에 따르면 호국 훈련보다는 그냥 일상적인 사격훈련이었다고 한다. 즉 그냥 핑계. 애초에 포격을 작정하고 적당한 구실을 붙인 거라는 게 더 설득력이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하면, 북한의 요구를 받아들여 훈련을 하지 않았더라도 연평도 포격 사태는 결코 피할 수 없다는 것이다.

사실 단순히 남한만을 상대한다면 구실 그딴 거 필요 없을지도 모르지만 문제는 중국이다. 중국은 어디까지나 북한이 선제 공격당한 상황에서 발발하는 전쟁에만 개입하도록 약조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까지도 북한이 선제 공격 당했다고 보도하는 매체는 당연히 북한 내 매체뿐이다. 중국 또한 북한이 먼저 포격한 것으로 보도하였다.

포격 3시간 전 정보참모부의 수시첩보보고로 사전에 포사격 징후를 포착해 청와대와 국방부 장관 등 20여 개 기관에 알렸음에도 당시 정부와 군 지휘부가 이를 묵살했다.

2.2. 사건 발생[편집]

11월 23일 오후 2시경, 연평도에서는 하늘에서 무언가가 날아가는 소리가 들렸으며, 굉음과 함께 연기가 올라왔다. 당시 하교하던 연평 초등학교 학생들은 무방비로 위험에 노출되었다. 그때는 연평어린이집의 원생들이 낮잠을 자는 시간이기도 했다. 대부분의 주민들은 군인의 안내를 받아 대피소 안으로 피신했고[4], 이후 흩어져 있던 사람들이 초등학교나 중학교에 있는 대피소에 모여서 컵라면을 먹고 그곳에서 잠을 잤다.

연평도에서는 다음 날 새벽이 돼서야 텔레비전이 나오기 시작했고, 전화가 되기 시작했다.

2.3. 포격과 반격[편집]


2010년 11월 23일 오후 2시 34분, 북한의 포격이 시작됐다. 포격 직전 연평도로 입항했던 여객선에서 찍힌 동영상. 북한군 포격 소리가 생생하게 들린다.


비슷한 시각 촬영되어 제보된 동영상


한 학생이 연평도를 탈출하면서 휴대폰으로 제보한 동영상이다.

파일:attachment/DNKF00087983.jpg
2010년 11월 25일 국방부가 공개한 최초 피격 순간을 담은 사진.[5]

적의 포격임을 파악하자 포병들은 자주포들을 일단 포상 내부로 숨기고(소산) 나머지 병사들도 대피호로 대피하였으며, 14시 41분경 적의 포 공격이 멈추어 잠잠해지자 K-9 3문을 포상 밖으로 다시 끌어내어 14시 47분경부터 대응사격을 시작했다.# #

K-9 자주포의 뒤에 보이는 화염에 대해 일각에서 열압력탄이라고 주장하였으나 사진의 화염은 대구경 열압력포탄에 의한 화염으로 보기에는 지나치게 작으며, 열압력탄은 사진에서 보이는 것처럼 위로 피어오르는 형태의 화염을 내지 않는다. 포상에 있던 타이어가 타서 그렇다는 의견도 있는데, 실제로 2011년도 진지보수 공사 때 타이어를 제거한다는 소리가 있지만 사실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다. 이후에, 타이어가 불에 탔든 아니든, 실제로 타이어가 타는 우려가 있어 최전방 부대를 중심으로 타이어를 모두 제거하고 불에 타지 않는 것으로 전량 교체되었다. 해당 사진에 대해 국방부는 장약에 불이 붙은 것이라고 설명하였다.

대한민국은 당일 오전에 미리 예정된 호국훈련 계획에 따라 정상적으로 훈련을 실시했다. 해병대 연평부대도 호국훈련의 일환으로 남쪽 바다를 향하여 사격훈련을 했으나 북한은 이를 남한 측 도발로 규정하고 오후 14시 34분 대연평도에 기습적으로 포탄을 발사했고 남한 역시 14시 47분부터 이에 대응하였다. 북한군의 초반 포격에 한국군은 2대의 K-9 자주포가 손상되었고 한국군은 남은 3대[6]의 K-9로 무도의 북한군 기지를 향해 50발의 보복 사격을 가했다. [7] 30발쯤 사격할 때 1대를 긴급수리해 4대를 투입. 이후 북한이 다시 레이더 기지를 노리고 개머리 반도에서 포격을 개시하자 한국군은 다시 30여 발의 포를 개머리 반도에 발사했다. 교전이 중지될 때까지 북한군은 총 170여 발의 포를, 한국군은 80여 발의 대포병 사격을 실시했다.[8] 언론에서는 보복이 약하다고 보도를 했지만, 그렇게 보인 이유는 뒤에서 설명하겠다. 합참의장의 발표에 따르면 오후 3시 41분 일단 포격은 종료되었다.

이 공격에서 북한이 방사포를 사용했다고 한다. 122mm와 240mm 로켓탄 일부가 연평도에서 발견되었다는데, 이는 북한이 처음부터 계획적으로 이번 공격을 준비했다는 증거다. 240mm 방사포는 해안포 부대에 배치되지 않은 군단급 지원화기이기 때문이다.

북한의 포탄 중 절반 정도는 바다에 떨어졌고 나머지가 연평도에 떨어졌다.[9] 발견된 탄피로 볼 때 사용탄은 130mm과 75mm 포와 방사포탄. 군측에선 앞의 두 개로 영점조준을 하고 방사포를 메인으로 때려버린 거 같다고 한다. 문제는 오차도 매우크고 지상에 떨어진 것 중에서도 불발탄이 20여 발이나 되어 군이 수거하였다. 그러니까 지상에 낙하한 것만 불발탄 비율이 약 30%가 넘어갔다. 지상에 유효타를 본 것도 30% 정도. 그것도 수도권을 노리는 4군단에서 미리 준비해놓고도 이렇다는 것이다. 즉, 북한군의 탄약 관리와 제대로 된 포탄 생산/보급이 극히 부실하다.

그리고 연평도 지상에 떨어진 것들 중에 불발탄이 아니라 제대로 폭발한 포탄들도, 적의 목표라 할 수 있는 아군 포대쪽이나 군 시설에 정확히 떨어진 건 별로 없고, 대부분이 엉뚱한 민간인 지역 여기저기에 마구잡이식으로 산만하게 떨어졌다.[10] 북한군 포병대의 이러한 어이없이 낮은 정확도는, 북한 포병부대가 평소에 포사격 훈련이 전혀 안 되어 있는 형편 없는 수준이라는 걸 보여준 꼴만 되었다.

한편 포격이 일어나고 있을 때 한국군이 급히 F-15K와 해군 함정들을 보내자 북한은 MiG-23 3대를 출격시키고 경비정도 출동시켜 공중과 해상에서도 무력충돌 직전까지 갔다. 이를 볼 때 북한은 확전이 될 것도 각오하고 이번 도발을 저지른 것으로 보인다.무슨 자신감으로? 우리의 Mig-23은 F-15K를 발라버릴 수 있다우

당시 대포병사격 최초대응사격이 13분 이상 걸려, 평소 군 당국이 공언하던 5분 이내 대응사격에 비해 지연된 것이 아니냐는 논란이 있었으나 K-9 6문 전체가 사격훈련 중 사태가 발생하여 지연된 것으로 알려졌다. 2차 대응사격 역시 상당히 늦게 이뤄졌으나, 정밀타격을 위해 사격원점을 찾는 데 시간이 소요되었다고 군이 해명하였다. 사실 말이 쉽지, 장거리도 아니고 그런 지근거리에서 포를 발사했는데 이를 사전에 포착하기는 힘들다. 게다가 피격 원인 파악을 서두르다 오판해서 엉뚱한 방향으로 대응하면 얄짤없이 2차 한국전쟁으로 번질 수도 있다.

초기 추정치였던 50~200발의 포탄에 대응해 일반적인 3배 대응 원칙으로 반격했으면 150~600발을 발포했어야 하는데, 80발 정도만 대응사격한 것이 안타깝다는 반응도 있다. 급작스럽게 선제공격을 당한 사건임을 감안할 필요도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건 사격한 4대(초기 3대)는 오전에 훈련을 하여 탄약이 부족했고 2대는 초기 포격으로 파손당하고 전력에서 이탈, 나중에야 1대가 긴급수리로 복귀했고 1대는 처음부터 불발탄으로 인해 물리적으로도 즉각 응사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고 사건 당시 섬 일대에 정확히 몇 발이 떨어졌는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현장지휘관이 임의로 판단한 적 포탄사격수 계산에 의한 반격이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할 수 있을 듯. 이 도발이 지나고 나서야 우리는 북한이 200발을 쐈다는 것을 알고 질타를 하지만 당시 현장에 있던 해병대들이 정확하게 알 방법이 있겠는가?

그리고 해병대가 설사 포탄이 200발 이상이 떨어진 것을 정확하게 알았어도 600발을 쏘지는 않았을 것이다. 연평도는 섬이다 보니 언제 포탄이 다시 보급될지 알 수가 없다. 이건 어떻게든 보급을 다시 해놓으면 된다지만 더 중요한 건 포병 입장에선 이게 도발인지 아니면 제2차 한국전쟁의 시작인지 알 도리가 없다. 즉 현장에 있던 해병대로선 북측이 다음 날도 계속 포격도발을 해올지 아니면 한 시간 포격하고 끝낼지는 알 수 없기 때문에 확전이 결정난 상태라거나 아니면 지휘부가 따로 명령을 내리지 않는 한 포탄을 대량 소모하겠다는 판단을 하기 힘들다. [11]

2.4. 결과[편집]

북한이 발사한 포탄들로 인해 군 막사가 파괴되고 인근 숲 등 10곳이 불에 탔고, 떨어지는 포탄들 중 몇 개가 주민들이 사는 가구 위로 떨어져 민간인 부상자가 발생했으며, 상가 건물이 붕괴되었다. 또 해당 지역 소방서에는 차량이 1대뿐이며 전담 소방요원도 2명밖에 없는 데다가 전기도 끊어진 상황이라 진화 작업이 힘든 탓에 마을이 전소할 가능성이 있었는데 다급히 24일에 소방차 24대가 긴급 투입되면서 포격으로 10여 곳에 발생한 산불과 가옥과 창고 등을 태운 주택가 화재까지 모두 진화되었다.[12]#

대치 중이던 F-15K와 MiG-23은 결국 MiG-23이 도주하면서 남한 측이 제공권을 완전히 장악했다.

1,700여 명의 주민들이 대피를 완료했다. 포격이 시작되기 바로 직전인 오후 2시 20분에 인천에서 온 여객선이 도착한 뒤에, 포격이 시작되자 미처 내리지 않은 원래의 승객과 부두로 도망쳐 온 주민 일부를 태우고 인천으로 회항하기도 했다. 발발 직후 연평도로 향하는 모든 항로는 폐쇄되었고, 23일 오후 11시 일부 주민들은 자기들의 어선으로 인천으로 대피하였으며, 나머지 주민들은 방공호에 대피했다.

다음 날인 24일부터는 본격적인 피난이 시작되었다. 해경의 지원 하에 어린이, 노약자, 환자를 우선하여 346명의 주민들이 해경 경비함 두 척에 나눠 타고 오전 7시에 연평도를 출항, 오후 2시경에 인천항에 도착했다. 이후 해경 공기부양정과 해군 공기부양정(러시아제 무레나)이 167명을 추가로 더 태우고 오후 3시에 인천항에 도착했고, 오후 7시에는 다시 추가로 17명을 태운 해경 경비정이 인천항에 도착했다.

25일에는 운항이 재개된 여객선과 해경 경비정을 이용하여 추가로 172명이 인천으로 피난했다. 25일까지 연평도 전체 주민의 80%에 달하는 1,115명이 인천으로 대피했고, 남아 있는 민간인은 약 280명 선이다. 외신들은 연평도 마을들을 둘러보며 유령 도시(Ghost town)란 표현까지 썼다.

처음에는 민간인 사망자는 없는 걸로 파악되었으나, 11월 24일 오후에 민간인 2명의 시신이 새로 발견되었다. 이들의 시신은 25일 오후 4시 10분 인천에 도착했다.

2010년 11월 26일 오후부터 어민들의 조업이 재개되었다. 쳐놓은 그물들을 놔둘 수는 없다고 해서 허가를 내렸다고 한다. 목숨을 걸고 목숨 같은 그물을 건지러 가는 어민들의 심정이 충분히 예상된다.

이 사태로 연평도 주민들이 일정 기간 연평도를 비운 사이에 몇몇 절도범들의 절도행위가 발생하여 경찰에 도난신고가 접수되었는데 이것은 마치 15년 전 일어난 대형참사였던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때 혼란을 틈타 약탈을 했던 종자들의 모습을 떠올리게 해주었다. 결국 대형 참사나 전쟁 혹은 국지 도발로 치안 혼란이나 치안 공백이 생기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또 다시 알 수 있게 해주었다.#

2.5. 혼란 속에서 활약한 용사들[편집]

  • 손병문 중사, 전지호 상병: 포격 소리가 나는 순간 밖으로 달려나가서 유치원생들의 대피를 도왔고, 이후 할아버지와 할머니 등 주민들을 방공호로 대피시키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다.

  • 정연하 일병: 23일 연평도에 도착한 뒤 포격에 우왕좌왕하던 신병 10여 명을 침착하게 인근 교통호로 안전하게 대피시키자마자 신병교육대[13]에 포탄이 떨어졌다. 하마터면 많은 인명피해가 발생할 뻔한 아찔한 순간이었다.

  • 남정일 소령, 정찬호 상사: 포격이 시작되자 마을 유치원으로 달려가 미처 피신하지 못하고 놀이터에서 울고 있던 20여 명의 어린이교사를 방공호로 대피시켰다.

  • 차재원 하사: 정비소대 이진규 일병을 비롯해서 부대원들과 함께 부대 거점으로 피신 도중 적의 무자비한 포격이 쏟아져 그 지점에 있던 모든 해병이 부상을 당했다. 다행히 부상을 면한 차재원 하사는 "내가 가서 구급차를 불러 올 테니 너희는 여기서 반드시 살아 있어라"라는 말을 남긴 후 화염 속으로 뛰어 들어갔다. 이후 포격이 멈추고 차재원 하사의 약속대로 구급차가 잠시 후 도착하여 위험했던 해병들은 목숨을 구했다.

  • 조수원 일병: 정비소대 조수원 일병의 경우 1차 포격 당시 부상을 당해 구급차 후송을 대기하고 있었다. 하지만 부상자가 많아 구급차의 승차 인원이 제한되어 조 해병은 자발적으로 나중에 탑승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각한 조 해병의 부상을 목격한 동료 해병 4명이 곧바로 조 해병을 들것에 싣고 포격을 피해가며 의무대로 후송, 조 해병의 생명을 구했다.

  • 배병규 중사: 부대 순찰 중 포격으로 대피호 쪽으로 차를 돌리는 중 부상 당한 해병을 발견해서 빗발치는 포격을 뚫고 부상병을 태워서 의무대로 향했다. 부상병의 피로 인해서 차 내부를 흠뻑 적실 정도로 중상이었지만 신속한 후송으로 생명을 구할 수 있었다.

  • 이충민 상병: 포격을 받은 연평도는 불바다가 되었고 화재 진압이 시급했다. 부대 소방차를 출동시키려 했으나 정전으로 전동 셔터가 열리지 않은 상황에서 지게차 운전병이었던 이 상병은 기지를 발휘해서 지게차로 셔터를 박살 내서 소방차를 출동할 수 있도록 하였으며, 7포대 탄약고 화재를 신속하게 진압해서 자주포들이 대응 사격을 할 수 있도록 하였다. 그는 이 공로로 2011년 국군의 날에 대통령 표창을 수상했다.

  • 임준영 상병: 적의 포격 속에서 자신의 철모가 불타며 녹아 내리는 와중에도 대응 사격에 열중하였다.

2.6. 한국 정부의 대응[편집]

한국 정부는 확전을 우려하여 중국 측에 접촉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북한군에게 사격을 중지하라는 전통문을 지속적으로 보냈으나 포격이 2010년 11월 23일 오후 3시 40분경까지 계속 진행되었고 이에 대응하는 대한민국 국군의 포병 사격도 계속되었다.

군 당국은 23일 국지도발 최고 대비태세인 진돗개 하나를 발령하였다. 경찰 또한 인천광역시 전역에 갑호비상을 내렸다.

개머리 해안 근처 해안포 진지에서 발사된 것으로 추정되며 한국군은 K-9 자주곡사포 등 연평도에 주둔 중인 자주포를 동원하여 대포병 사격을 실시했으며, F-15K 전폭기 및, KF-16 전투기를 긴급 발진시켰다고 한다. 관련기사

그리고 미군오키나와F-22(!)치트키를 가져왔다공중급유기를 한반도 상공에 출격시켰다고 밝혔다. 한반도 상공 美 F-22랩터 출격대기 중

이명박 대통령은 '단호히 대응하되, 확전되지 않도록 만전을 기하라'는 대응 지침에 따라 일단 이 상황의 확산을 막고 부상자의 후송과 치료를 최우선 과제로 삼을 것을 표명하였으나, 이후 청와대 대변인의 발표에 의하면 민간인 포격은 용납할 수 없으며, 추가 도발이 있으면 강력하게 타격하라고 지시하였다 한다. 앞서 언급한 단호한 대응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23일 9시 30분에는 청와대의 공식 브리핑에서는 '추가 도발도 예상되므로 몇 배의 화력으로 응징한다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 다시는 도발을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막대한 응징을 해야 한다'라는 이명박 대통령의 언급이 나왔다. 청와대 발표

이 확전 자제라는 지시에 대해 논란이 많았는데, 정부의 해명은 회의에서 여러 가지 이야기들이 오가는 과정 중 일부 참모들의 발언에서 그런 말이 야기된 것이라고 한다. 이에 따라 다음 날인 24일 오전 국회에서 증언한 국방장관의 발언 역시 오후에 번복되었으며, 청와대 공식 트위터의 내용 역시 슬그머니 사라졌다고 한다... '靑 말바꾸기' 입증한 '靑 트위터', 사라지다!

이명박 대통령과 조선일보 인터뷰에서도 이명박 대통령은 "확전하지 말라고 얘기 안 했다. '공군 뒀다 뭐하냐'고 했다. 당시 (국가위기관리센터 긴급회의에) 배석했던 한 인사가 청와대 대변인한테 개인적인 의견을 전한 거다. 그 후 나도 책임 추궁을 했다."며.... 그 트윗관련해서 책임을 추궁했다고 한다. 관련기사

사건 종료 이후 국방부 관계자는 K-9로 적의 포병 진지를 집중 사격했으므로 북쪽에서도 피해가 어느 정도 있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고 한다.

연평도 포격 당시 로버트 게이츠 전 미국 국방장관의 회고록 <임무(DUTY)>에 따르면 2010년 11월 북한의 연평도 포격 때 한국이 보복을 계획해 버락 오바마 대통령까지 나서 말렸다고 한다. "보복계획에 공중공격과 포격이 포함됐으며 과도하게 공격적이었다"고한다. 미국은 보복이 전쟁으로 확대될 것을 우려해 오바마와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 자신, 마이크 멀린 합참의장까지 며칠에 걸쳐 이명박 대통령 등을 설득했다고한다.

게이츠는 이후 한미가 핵항모 조지 워싱턴호가 참가하는 서해 연합훈련 실시에 동의했다고 밝혀 이를 조건으로 보복계획이 철회되었음을 추정할수 있다. 관련기사

이 게이츠의 회고록 내용은 당시의 연평도사건과 관련해 미국에서 공개한 한미 정상의 통화 내용에서 2010년도 당시 서해상에서 실시된 한미연합군사훈련과 동일하다.관련기사

2.7. 이후 조짐[편집]

이전 북한의 어떤 도발과도 다르게 직접적인 남한 영토에 대한 공격이라는 점에서 볼 때, 확전의 가능성이 어떤 형태의 도발보다 높았다.

백령도에서도 북한군 해안포 입구가 개방된 것이 확인되었다. 인천광역시 옹진군에서 민방위 동원령이 발효되었으며, 연평면에 대하여 통합방위 을종사태를 선포하였다. 더불어 오후 4시를 기해 서해 5도 지역에 북한의 무력도발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어 공식적으로 대피령이 발효된 상황이다.

파일:/pds/201011/23/25/c0024525_4ceb92ba773af.jpg
포탄이 산너머 섬 남쪽에 착탄한 것을 봤을 때 직사로 쏘는 해안포가 아닌 곡사포가 아니냐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다만 76.2mm 포가 아닌이상 주력포인 130mm, 122mm포로는 충분히 타격이 가능하다는 관측이다.

26일 북한에서 급작스럽게 포성 비슷한 2번의 폭발음이 3시 3분, 3시 40분 두 차례 총 4번 들려왔으며 국방부에 의하면 총 6번의 폭발음이 들렸다고 한다. 이에 한국 정부는 조사 결과 연평도와 인근 해상에 이상이 없었던 점을 미뤄 볼 때 포격 훈련을 했던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훈련한다는 핑계로 애꿎은 섬을 날려버린 주제에 자기들 훈련은 정당하다고 생각하는 모양. 하여튼 정신상태가 글러먹은 놈들이다

3. 도발의 이유[편집]

현재까지 연평도에 가해진 북한군의 공격은 그 전에 비교하면 유례가 없는 수위의 무력도발인데 그 이전까지는 간첩이나 특수부대의 침투나 테러행위를 제외한 정규군간의 충돌에서 민간인 희생자가 난 적이 없을 뿐 아니라[14] 군 기지와 전쟁과 무관한 민간인 거주지까지 포격을 가하여 인명살상까지 자행한 것은 전쟁해서 죽이자고 협박하는 수위이기 때문에 왜 이렇게까지 나왔느냐에 대한 의혹이 가시지 않고 있다.

일각에선 공격한 지역들이 10년 전 보안대나 해병대 내무반 위치인 듯 하여 의도적으로 조준 사격을 한 것 아니겠냐고 주장하지만,# 이런 기사도 있다.# 공격받은 지역 중 10년 전 보안대나 해병대 내무반 건물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KBS기사의 동영상을 보면 민간인 거주구역 전체에 걸쳐 총 '38곳'이 골고루 피격당했음을 알 수 있고, 그중 몇 곳이 옛날 군사관련시설이라고 해서 북한이 군사관련 시설만 타격하려 했으며 민간인을 사살할 의도가 없었다고 단정지을 수는 없다.

만에 하나 북한이 무모하게 전쟁을 일으킬 경우 남한에게 상대도 안 되는 북한이 멸망할 것이라는 것은 북한 군부도 잘 알고 있는 사실이며, 이를 반영하는 신문 기사도 있다.

현재까지도 북한군 포격의 이유는 명확하지 않지만, 김정은 후계 체계를 공고히 하기 위한 일종의 무력 시위가 아닌가 하는 의견이 대두되고 있다. 북한 소식통에 따르면 북한에는 김정은이 해안포대초소에서 신분을 숨기고 근무를 하고 있다는 둥 김정은 우상화식의 소문이 흐르고 있다고 한다. 김정은이 포술에 조예가 깊대나 어쨌대나는 식의 소문 말이다. 게다가 김정은이 승전(?!)한 해당 포병대를 극찬하며 위무했다는 사실이 북한 내에 보도되면서 설득력이 높아지고 있다.

또한 북한이 본격적인 우라늄 농축 시설을 가동하여 우라늄탄을 만들 정도의 우라늄을 확보했다는 말이 나온 게 고작 이틀 전(11월 21일)으로, 이에 대한 국제사회의 압박이 예상되자 이를 타개하기 위해 저지른 일이라는 시각도 있다.

4. 피해[편집]

4.1. 대한민국의 피해[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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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표가 난 피탄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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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진 하나만으로도 그 당시 연평도가 어떤 상황이었는지 잘 말해준다. 문자 그대로 1950년으로 돌아갔다. 전직 사진기자였던 군청 공무원이 찍은 사진이라고 한다.

포격이 끝난 후 확인된 한국군 피해는 해병대원 2명 전사, 6명 중상, 10명 경상이며#, 민간인 피해는 2명 사망, 3명 경상이다. 단 조선일보에서는 민간인 경상자를 58명이라고 하는데 사건 이후 조사한 바에 따르면 포격 사건 이후 섬 주민 중 58명이 (가까이에 포탄이 터져서) 귀가 잘 안 들린다든지 잠이 안 온다는 등의 각종 이유로 병원 치료를 받았다고 한다. 경상자의 범위를 어디까지 보냐의 문제인데 사실상 섬 주민 전체가 PTSD라는 부상을 평생 가지고 살아가게 된 셈이다.

해병대 장병 중에서는 중상자 4명을 국군수도병원으로 이송하던 중 중상자 해병 연평부대 소속 서정우 하사와 문광욱 일병[15] 두 해병이 전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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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한 군인이 자신의 친구가 아니기를 바라는 두 번째 댓글이 참 안쓰럽다.

서정우 해병은 휴가를 가기 위해 부두에서 배 편을 기다리던 중 북의 포 공격이 시작되자 휴가 인솔 부사관의 복귀 명령에 따라 차량을 타고 가다가 다른 동료 2명과 내려서 인근 방공호로 몸을 피하려다 방공호를 300여 m가량 남겨 놓고 인근에서 터진 포탄 파편에 맞아 숨졌다. # #

문광욱 일병은 대피호에 있던 중 잠시 밖으로 나왔다가 주변에 터진 포탄 파편에 가슴을 관통당해 숨졌다.# 그런데 이를 두고 군 장성 출신이자 당시 한나라당 국회의원이었던 황진하 의원은, 대피호에 들어가 있던 중 선임과 함께 담배 피우러 대피호 바깥으로 나갔다가 파편에 맞았기 때문에 전사라고 볼 수 없다고 말해서 부적절한 발언이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2010년 11월 24일자로 전사자 일계급 특진 때문에 보도에는 서정우 하사, 문광욱 일병으로 나오고 있다. 발견 당시 서 하사의 시신은 두 다리가 크게 훼손된 상태였다고 전해지며 23일 밤에야 나머지 신체를 피격 현장에서 찾아내 병원으로 모셨다고 한다. 또한, 서 하사가 휴가 때문에 착용하고 있던 정모의 해병대 모표가 떨어져 나무에 박혀 있던 것을 뒤에 사진 촬영 후 수습했다. 문 일병은 눈을 뜬 채 숨져 있어 영안실에서 큰아버지가 눈을 감겨 줬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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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에 박힌 모표, 이후 다시 복원하여 보존해놓았다. 사진의 모표는 교체된 듯.

서정우 병장의 어머니가 슬픈 심정을 적은 글에 육군 제26기계화보병사단 병사들이 작사, 작곡한 '엄마는 울지 않는다' 라는 UCC가 있다. 듣기

군 부대 시설도 공격을 받아서 파괴되었다. 그러나 파괴된 것으로 알려진 K-9 자주곡사포는 파괴된 것이 아니라, 3대에 문제가 발생했는데 1대는 바로 직전 사격훈련 때 발생한 불발탄이, 2대는 전자장비에 문제가 생긴 것으로 파악되었다. 다만 전자장비가 고장난 2대 중 1대는 임시로 해결 후 사격을 계속했다고 알려졌고, 다른 2대도 발사를 못 했을 뿐 별 다른 피해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

연평도 주택 21동 피해 실종자 소식

민간인 피해는 김치백(61), 배복철(60) 씨 사망, 경상 3명이다. 민간인 사망자는 연평도 해병대 관사 신축공사를 하던 인부들로 처음에는 실종상태였으나 결국 숨진 채 발견되었다. 사망자 두 명 모두 시신이 손상된 상태이며, 한 구는 신체 대부분이 손상되었고 다른 한 구는 컨테이너 화재로 인해 하체가 손상된 상태로 발견됐다. 포격에 의한 화재가 원인인 듯하다.

또 한 가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은, 앞으로 연평도를 비롯한 서해 5도 주민들의 삶이다. 북한군에게 반격하여 적에게 얼마나 보복할 수 있는가 하는 것과는 상관없이, 전쟁과 전혀 무관한 시민들, 민간인들은 북한군이 전쟁과 상관없는 비전투원이자 민간인 거주 지역에 포격을 가하여 살상행위를 저질렀다는 사실 자체에 큰 충격과 두려움을 느끼게 되었다. 실제로 대피한 주민들은 그 당시 상황에 대한 큰 충격으로 심각한 후유장애까지 호소하고 있다. PTSD마저 의심되는 상황이다.[16] # 아예 영구 이주를 하자고 주장하는 주민들도 있다고 한다.

다행히 연평도에 남아 있는 주민들은 복구 작업을 시작했고 이후 대부분의 주민들이 섬으로 귀환했으나, 이 같은 공격이 계속 발생한다면 연평도에서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것이 매우 어려워질 수도 있다.

이후 보도 통제와 민간인 통제가 이뤄지고 있어서 앞으로는 군기지만 남을 수도 있다는 예측도 있었으나 포격사건 1년 5개월 후인 2012년 4월 기준으로 연평도 포격 이후 섬 인구가 오히려 150~170명가량 증가했다고 한다.# 주민들도 연평도 포격사태의 끔찍함을 잊고 꽃게잡이 등 생업에 열심이라고. 이후 2012년 4월에 500여 명이 피난할수 있는 1호 대피소가 세워졌고 앞으로 연평도 전 인구가 대피하여 생활할 수 있는 7개 대피소 시설이 건립될 예정이다.# 연평도는 포격 사태의 후유증을 벗어나려고 지금도 노력 중이다.

그러나, 피해 보상 등을 노린 인간 이하 같은 종자들의 유입 등으로 인해 평화로웠던 연평도는 사라지고 연평도의 치안과 분위기는 이 사건 전에 비해 매우 악화되었다. 사건 전에는 주민들만 있었기에, 연평도 내의 학교에 자유로이 통학도 하고, 집도 열고 잘 수 있을 정도였으나, 사건 후에는 치안과 분위기가 매우 악화되어 2010년 이후에는 다른 수도권 대도시와 같이 등교 때도 부모가 데리고 가야 하고 문은 꼭꼭 잠가야 할 정도가 되었다.

4.2. 북한의 피해[편집]

북한의 피해는 추정만 있을 뿐 아직 자세히 밝혀진 바 없다.

북한 측의 피해는 자세히 알 수 없으나[17], 이명박 대통령은 "북한 측의 피해 역시 상당하리라 본다."라고 언급했으며 대다수 군 관계자들과 전문가들 역시 이에 동의하고 있다. 방위사업청에서 근무하는 공무원들의 이야기에 따르면 포대 2개 정도는 초토화시킨 것으로 보인다.2010년 국회정보위에 따르면 무도에는 50여 발이 낙탄했고 이중 15발 정도는 막사에 떨어진 탄착점이 확인되었는데 155mm 고폭탄의 살상반경으로 보아 북측에도 사상자가 발생했을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또한 무도의 교통호가 매몰된 게 확인되었다고한다. 심지어 무도에서 갱도로 추정되는 곳이 직진갱도에서 u자형태로 바뀌어지는게 확인되면서 북한 해안포중 일부는 운용 인원과 함께 매몰된 게 아니냐는 추측도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구글어스가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개머리 진지에 가해진 30여 발은 별다른 피해를 가하지 못했을 거라는 추정이 우세하다.[18]기사하지만 디시 기갑갤 등지에서는 사진을 보면 최소한 두 발은 북한군 방사포 진지에 가깝게 착탄했는데 파편에 의한 피해는 있었을 거라는 말이 나오고 있었다.

한편 네티즌들이 당시 위성사진을 수집한 결과, 사건이 일어난 시각 연평도에서는 검은 연기가 확인되었으나 북한의 강령반도에서는 이러한 흔적을 찾을 수 없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합참 "北 해안포 아닌 막사 겨냥해 대응사격" 국군의 탄착 지점과 북한의 피해 상황이 확인될 때까지 대응의 적절성 논란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또한 UAV등을 이용한 정찰결과 별다른 피해가 없을 것이라는 추정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이는 '갑작스레 민가 사격을 당한 측'과 '철저히 계획적으로 준비해 포격한' 양측의 상황 차이를 감안해야 한다. 위 기사에 나오듯 대응 사격한 지역에 존재한 것은 이미 '빈 막사'였을 가능성이 높고 따라서 큰 효과를 보기 힘들었을 것이다. 해안포에 대한 타격 대책은 물론 마련해야겠지만 단순 비교는 힘들다. 일단 이러한 의혹들에도 불구하고 25일 군에서는 북에 상당한 피해가 났을 것이라고 자신하고 있는 중. 피해결과를 계속 분석하고 있다고 밝혔다.

대포병 레이더도 문제로 작용하고 있다. 북한의 1차 사격 당시 좌표를 알아내지 못해 시간이 지난 후 2차 사격 때 좌표를 잡아냈다고 국방부는 발표했다. 거기에다가 연평도에 배치한 대포병 레이더는 스웨덴제 신형이 아니라 기존에 운영하던 구형 미국제 AN/TPQ-37이라서 표적 입력을 수동으로 해야 하며 ECCM 능력이나 자동 추적능력 등이 결여된 것이다. 물론 주한미군 것은 신형이라서 앞에서 언급한 기능은 보유하고 있으며 무엇보다도 자동으로 포병과 자료공유가 가능하다.

....라지만 실제로는 기상제원의 문제일 가능성이 유력하다. 포병부대는 X시간마다 군단 관측소의 메트로를 받아 장입하는데, 이 기상은 사격위치와 상당히 먼 지점에서 측정하고, 측정값도 X선까지만 측정하여 정확도가 낮다. 과거에 K-9실사격 훈련시에는 반드시 기상관측반의 동행을 요구했고, 인근에서 15선까지 측정한 완벽한 기상을 BTCS에 장입하면 조정없는 효력사가 초탄에 가능했다. 문제는 이 관측반이 군단에서도 매우 제한적으로 존재한다는것.... 겉으로 보이는 화력만 중시하고 그에 따른 지원을 무시하는 군 교리상의 문제가 여실히 드러난 사태다.

국회 질문에서 K-9이 6문밖에 없다는 것이 지적당하고, 1개 대대(18문)를 배치하라는 요구를 하기도 했으며, 국방장관은 12문을 배치하겠다는 답변을 했었는데, 26일 18문으로 추가 배치하겠다고 다시 정정되었다. 군의 발표에서 초기 대응한 k-9의 숫자가 계속 바뀌는 것(6->4->3)에 대해서도 비판이 일고 있다.

2010년 12월 27일 김정은은 한국의 대응사격으로 인하여 사망한 북한군 5명에 대해서 영웅 칭호를 내렸다. 자기들이 선빵 쳐놓고는 영웅이라고 한다 전범이겠지 이로써 북한군의 인명피해는 최소 5명 이상인 것으로 추정된다.

2012년 3월 2일 미국 자유아시아방송(RFA)이 북한 내부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한 바에 의하면, 당시 북한에서는 남한의 대응포격으로 10여 명이 사망하고 30여 명이 부상을 입었다고 한다. 여기에 따르면 북한 측 사상자는 평양에 있는 북한군 총참모부 산하 중앙병원으로 후송되었다고 한다. 3월 15일, 탈북자 인터넷신문 뉴포커스에 따르면 연평도 포격 당시 북한군이 주변 농민들에게 수혈을 요청할 정도로 큰 피해를 입었다고 한다.북, 연평도 포격 이후 내부 피해 인정 으음 거참 통쾌하구먼

# 군은 북한군 전사 10여 명, 부상 20여 명으로 추정하고 있다.

# 북한의 피해를 여러 자료를 종합해 추정한 블로그

4.3. 경제적 영향[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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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YTN

사건이 발생한 직후 코스피가 하락하긴 했으나 이것은 당일 발생한 유럽 재정위기 + 중국의 긴축우려에 의한 영향이 더 큰 것으로 보인다. 다만 코스피200선물은 마지막 3시 15분 동시호가에서 대폭락했으며, 덩달아 금값과 채권 금리와 환율도 상승 중이었는데[19] 환율이 10원 단위로 움직이는 경우가 드물어 순식간에 40원이 급등한 것은 패닉 수준으로 받아들여졌다. 또한 다우존스 지수도 대폭 하락했다. 중동, 아프리카, 유럽, 중남미 주식시장과 외환시장이 열자마자 재정위기, 중국 긴축 우려, 연평도 포격 사태와 함께 52주 최저치를 달성하였다.

전반적으로 국가신용에 관련된 여러 경제수치들이 모두 요동쳤는데 다행인지 불행인지 오랜 학습효과(…)로 다음 날인 24일 주가와 환율은 어느 정도 방어에 성공했다. 이것은 개인 투자자가 순매도한 반면 기관과 외국인이 저점에서 순매수로 돌아선 영향이 크다. 개미지옥#

그러나 26일 미국의 핵 항공모함 조지워싱턴호의 한미 합동훈련 참가의 영향으로 인해 코스피 지수가 다시 하락하고, 환율도 다시 올랐다.#

5. 후속 대응[편집]

군 당국에서는 전사한 장병 유가족들에게 브리핑을 하는 과정에서 사망시각, 장소, 최초 목격자 등을 명확히 설명하지 않고 두루뭉술하게 넘어가는 바람에 유가족들이 분통을 터뜨리며 장례절차 논의를 거부하였다. 이 과정에서 '북한에 의해 사망한 것인지, 아군의 포탄(?)에 당한 것인지 밝히라, 이러니까 천안함 사태가 미궁인 것이다'고 외치는 등 격한 감정을 쏟아내었다. 관련기사

유가족의 발언이 한때 논란이 되긴 했으나 일단 명확히 정보를 알려주지 않는 군 당국에 대한 원망[20]에서의 발언이기에 과대해석은 경계할 필요가 있다. 다행히 당국에서 상세 브리핑을 하면서 장례절차에 합의했다고 한다. 27일 영결식 예정.#

또한, 중상자 후송에 헬기가 아닌 배를 사용했다고 하는데, 작전상황이라 헬기를 사용할 수 없었다고 한다.관련기사 [21] 천안함 사태 때나 1, 2차 연평해전 때도 같은 문제가 있었다.

한국 정부는 북한에 대한 모든 지원을 즉시 중단하겠다고 통보했으며 민간단체들을 통한 지원도 끊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수해지역에 지원할 예정이였던 쌀 등 각종 물자들은 보내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도발 다음 날인 24일에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의 관영 인터넷 웹사이트인 '우리민족끼리'는 이 판국에 '금강산 관광 재개를 가로막기 위한 고의적인 책동'을 통해서 "북남관계 개선에 관심이 있다면 부당한 구실에 매달리지 말고 관광재개를 위한 회담탁에 나와야 한다 지랄하고 있네", "우리는 악화된 북남관계를 풀고 민족적 화해와 단합을 실현하기 위해 대화와 관계 개선의 문을 열어놓고 있다"는 등으로 금강산 관광 재개 관련 회담이라는 개드립을 시전했다.article|default #

북한의 도발에 따른 대응조치의 첫 번째로 서해 한미연합훈련을 28일 실시하기로 결정하였다. 여기에는 핵항모인 조지 워싱턴이 참여한다. 공식적으로는 계획된 훈련을 날짜만 확정했을 뿐이라지만. 또한 연합위기관리팀을 가동하고 상황분석과 연합대응 방안 마련에 나섰다. 연합위기관리팀에서는 정규전 확산가능성과 데프콘 격상 여부를 평가하게 된다.

다만 문제는 조지 워싱턴호 파견에 대해 중국 측이 '한반도 평화에 방해만 될 뿐이며, 외교적 노력과 대화로 풀어야 한다'며 반대하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22] 일단 미국은 이번 한미연합훈련 일정을 북한과 중국 측에 통보한 상태이며, 이 두 나라의 반응에 따라 한반도가 한동안 잠잠해 질 것인지, 아니면 정말 확전 내지는 전면전이 될지 판가름나게 될 것으로 보인다.

대응조치에 대해선 사실상 마땅한 아이디어가 없는 상황이다.

  • 군사적 맞대응 옵션
    사실 북한이 이에 대해 전면전으로 대응할 가능성은 거의 없기도 하고, 미국도 이에 동의하지 않았다.

  • 해상봉쇄 혹은 모든 북한 출입 선박에 대한 검문검색
    UN의 승인과 국제연합군 결성이 필요하다.

  • 유엔 안보리 회부
    시간이 오래 걸려서 실효성이 크지 않으며, 중국과 러시아의 비협조적인 태도가 예상되기에 오히려 NLL이 분쟁수역화되는 등의 북한이 원하는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

  • 대북 금융 제재
    이미 북한은 최고 수준으로 금융 제재를 당하고 있다.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는 이미 다 하고 있기 때문에 더 이상 뭐 추가할 조치가 없다.

이에 양자조치에 초점을 맞추고 한미공조를 강화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고 있으나, 이 경우도 북한이 예전부터 반복된 이런 류의 대응에 단련된지라 실효성이 적을 것으로 보인다.

11월 25일부터 연평도를 포함한 서해 5도의 여객선 운항이 재개되었다.

이 사건으로 김태영 국방장관의 사의가 수용되어 김관진 전 합참의장이 새로 국방장관에 내정되었다. 김태영 장관이 경질된 데에는 사태가 발발하고 이명박 대통령이 한 발언에 대해서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함부로 이야기했다는 청와대 측근들의 불만 및 국지도발 시 작권권한과 관련해 우리군의 행동제약을 주장해서 이명박 대통령을 화나게 했다는 것이 작용했다고 한다. 일단은 확전 방지에 초점을 맞추려는지 심리전 계획은 취소시켰다.남북관계 악화 우려, 심리전 재개 포기

그리고 29일, 연평도에 K-9 자주포 6문과 구룡 다연장로켓을 추가로 배치했다.#

뒤늦게 확인된 바로, 대한민국은 육.해.공군을 총동원한 보복공격을 감행하려 했다고 한다. 실제로 로버트 게이츠전 미국 국방장관이 2014년 1월 14일 출간한 회고록에 따르면, 한국 정부의 원래 보복계획은 공중공격과 포격이 포함된 공격적인 수준의 대응이었고, 이에 미국은 보복이 서해에서의 국지적 전쟁으로 확대될 것을 우려하여 한·미 간 협의 끝에 연평도의 포병대가 북한 해안포대에 보복 포격을 가하는 것으로 수준을 낮췄다고 한다.

5.1. 한미합동훈련 시작[편집]

CVN-73 조지 워싱턴을 포함해 알레이 버크급 구축함 스테담, 피츠제럴드, 타이콘데로가급 순양함 샤일로,카우펜스, 원자력 잠수함 버지니아급인 하와이, 화물탄약선 1척, 보급선 1척 그리고 유조선 1척이 한국시간으로 2010년 11월 28일 저녁쯤 서해안에 도착하여[23] 예정대로 한미합동훈련이 진행되었다. 그런데 28일 오전 11시쯤 북한 지역에서 약 21발의 포성이 울려 주민들이 긴급 대피하고 전군이 비상전투태세에 돌입하는 일도 있었다.

29일 오후 1시부터 연평도가 통제구역으로 설정되어 주민, 관공서 직원을 제외한 인원의 출입이 제한, 취재진은 최소 인력만 남기고 30일 아침 철수했다.

5.2. 연평도 사격훈련 재개[편집]

2010년 12월 20일 오후 14:30경 연평도 주둔 한국군은 포격사태로 인해 중단되었던 사격훈련을 재개했다. 앞서 북한은 전통문을 통해 사격훈련을 재개할 경우 "자위적 타격"을 가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은 상태였으나, 당일 실제로 대응사격은 없었다. 이후 북한은 "최고사령부 보도"를 통해 "우리 혁명 무력은 앞에서 얻어맞고 뒤에서 분풀이하는 식의 비열한 군사적 도발에 일일이 대응할 일고의 가치도 느끼지 않는다"고 개드립을 발표했다.

6. 사후 보상 문제[편집]

현실적으로 피해주민들에게 가장 와닿는 부분이고 중요한 부분이다.

대한민국의 헌법상 사후 보상 문제가 매우 복잡하게 처리된다. 북한이 포격을 가했음에도 대한민국 헌법상에서 북한은 국가가 아니고[24], 아무리 UN에 가입했더라도 대한민국은 북한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는다. 법률상으로 북한은 '행정력이 미치지 못하는 지역'이다. 그 예로 북한주민이 남한법원에 소송을 낼 수 있으며 그 친자확인소송이 승소한 사례가 있다. 북한주민재판가능 고로 법률이 우선 적용되는 보험약관 규정상의 '외국의 무력행사는 보상하지 않음'이 적용되지 않아야 한다. 이번 판례가 차후 유사한 북한의 도발행위 피해 보상판결시 중요해 보이는데 메트로신문 11월30일자 4면을 보니 보상은커녕 숙식제공도 제대로 안 되고 있는 듯하다. 기사 하루 뒤인 12월1일 인천광역시에서 임시 거주지를 마련했고 그동안 피해주민들이 대피소로 이용한 인스파월드 사용비를 지불하기로 발표되었다.인천시보상 여담이지만 다른 외국인이 포격의 피해를 당했다면 북한=외국 이니 '외국의 무력행사'에 해당되어 보험처리가 안 될지도?

7. 한국의 반응[편집]

6.25 전쟁 이후 최초의 북한군 민간인 거주 지역 공격 사례가 되었기 때문에 많은 시민들이 충격과 공포를 느꼈으며 군필자인 20~30대 예비군 연령층에서도 많은 이야기들이 오갔다. 전쟁은 싫지만 이런 식으로 당할 순 없다. 북한군에 철저하게 보복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다. 마치 태평양전쟁 전후의 일본 주변 국가들을 연상케 하는 상황.

같은 진보를 표방하는 민주노동당진보신당도 논평을 냈는데 진보신당 논평은 상식적인 논평이지만 문제는 민주노동당 논평. 안 그래도 김정은의 3대 세습에 대해서 신경 끄자는 논평으로 논란을 일으킨 민노당의 NLPDR 노선은 여기서도 여전히 건재함을 과시했다. 두 논평을 비교해보면 민노당이 얼마나 미묘하게 북한을 옹호하는지 표현이나 내용의 온도차가 느껴진다. 덧붙여서 진보신당은 연평도 사태 관련 긴급상황실을 편성하겠다고 밝혀 민노당이 범접 못할 개념성을 인정받고 있다.

국회에서도 대북 규탄 결의안이 통과되었는데 송영선 의원은 "이것도 북한의 도발에 비하면 너무나 낮은 수위라 가치가 없다."며 기권했다. 또한 진보신당의 조승수 의원은 "북한의 행위는 명백히 규탄 받아야 마땅하나 무력 사용 위주의 결의안 내용에는 찬성할 수 없다."며 유일하게 반대 표를 던져 눈길을 끌었다. 한편 민주노동당은 전부 기권 소신도 없고 줏대도 없고 대놓고 반대표 던지기는 눈치가 보이니 치사하게 기권하며 도망가는 거냐며 오히려 반대 표를 던진 조승수 의원보다 더 까이고 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북한과 중국은 믿을 수 없다며 불 같은 성격답게 확 저질러 버리고 싶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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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천안함 사태 이후 다시 한 번 군의 긴급 대응능력에 의문을 품는 기사들이 쏟아지고 있다.

29일 오전 10시에 이명박 대통령이 대국민담화를 발표했는데, 내용에 대해 호불호가 갈리고 있다. 30일에는 동아일보와 조선일보가 "MBC 보도진이 연평도 주둔 해병대의 복지시설인 충민회관에서 밤늦도록 술을 마시며 고성방가를 하다가 해병대원들의 제지를 받았다"는 보도를 했다.#1#2#3 MBC에서는 그럴 리가 없다고 부인하고 있지만, 지난 아이티 지진 때 벌인 병크때문에 신뢰감이... 게다가 카메라를 막아서는 군인의 손을 치우는 저 개념 없는 기자의 행동도 좀 까여야 한다. 자기 입으로 군 통제지역이라고 말하면서 정작 무슨 뜻인지는 모르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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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 한국 네티즌의 반응[편집]

사건 이후 국내의 주요 포털 사이트, 커뮤니티 등지에서 대부분의 여론은 군사적 행동에 대응할 수 없는 민간인들에게 생사 따위 무시하고 포격을 행한 것에 대하여 북한의 무개념성을 비판하며 격앙된 분위기를 보였다. 일부는 진흙탕 싸움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 와중에서도 상당수 커뮤니티에서는 일부 정부를 겨냥한 음모론과 종북성 발언이 나오는가 하면 심지어 '전쟁나면 정부를 뒤집어 엎어버리자'는 정줄 놓은 발언도 보였다. 그런가 하면 희생자들의 거주지나 경제환경에 대한 고인드립도 나타나는 등 이래저래 개념없는 발언도 보였다. 사건이 일어난 지 1년이 지난 지금도 자칭 반북 진보단체인 다함께에서는 "연평도 상호포격이라는 개드립을 내뱉고 있다.(2011년)

또한 트위터 이용자들과 미투데이 이용자 중에 개념없는 발언을 하는 사람이 많이 목격되어 네티즌들에게 비난을 받았다. # 특히 아무 생각 없이 인간말종을 넘어 인간 쓰레기급의 뻘글을 적은 사례도 있어 인터넷 익명성의 문제성을 다시 보여주었다. 전쟁은 무슨 게임 같은 것이 아니고 최악의 경우 순식간에 나라가 무너질 수도 있는 중대사항이며, 죄없는 사람이 네 명이나 죽었고 수십 명의 민간인의 목숨이 위협받았던 사건을 농담조로 다루는게 인간이 할 짓인가? 또한 충분히 분개할 만한 각종 개념없는 발언들을 따로 캡쳐해서 인터넷에 퍼뜨려 네티즌들에게 어그로를 끄는 짓도 자제하도록 하자.

이 사태 이후 디시인사이드는 기본 화면의 타이틀바를 "미친 개는 몽둥이가 약이다!"로 바꾸고, 사건이 터진 지 3시간도 안 되어 연평도 북괴도발 갤러리를 신설했다. 디시인사이드의 일부 무개념인들은 2003년 이라크 전쟁 때 바그다드 위성사진을 연평도인 것마냥 올렸는데 이것이 트위터를 타면서 급속도로 확산되었고, 이걸 믿은 국내 방송사를 거쳐 세계구급으로 보도되었다. 그 낚인 방송사에는 CNN도 있었다.# 그런데 이 사진 낚시와 관련해 2010년 12월 19일 MBC 보도에서는 워싱턴주에서 근무하는 현역 미 육군 이병이 올린 사진이라고 보도했다.# 뭐가 어떻게 된 건지.

또한 "그러게 왜 북한 가까이서 훈련을 벌여 갖고 스스로 매를 벎?" 같은 개드립성 여론을 조성하는 박창신 신부 같은 개념없는 사람들도 있는데[25], 명심할 것은 연평도에서 포사격 훈련하고 있던 해병대뿐 아니라, 엉뚱하게도 군사 훈련과 전혀 무관한 민간인인 연평도 주민들도 큰 피해를 입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북한 가까이에서 훈련은 6. 25 이후에 늘상 있던 것이어서 새삼스럽게 북한을 자극하는 게 아니다. 애당초 사격훈련은 남서향으로 이루어졌고, 그래서 반격이 늦어지는 계기도 됬다.. 북한쪽으로 포 쏜게 아니란 이야기. 관련 영상을 보면 연평도 주민들은 정말로 죽을 뻔했는데 이런 상황이 몇 분도 아니고 한 시간 넘게 이어졌다. 군사적 행동에 대응할 수 없는 민간인들에게 생사 따위 무시하고 포격을 행한 것이다! 민간인들은 딱히 북한을 기분 나쁘게 할 거리가 없는데도 말이다.

이는 이전의 전투나 포격과는 확연히 구분되는 것으로, 이와 같은 사례가 앞으로도 발발한다면 한반도의 운명은 정말 아무도 모르게 된다. 도발이 거듭될수록 대응은 더욱 단호하게 될 것이며, 유화책이든 강경책이든 북한의 다음 도발을 예방할 확신을 주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연평도 주민들은 관계의 격화를 불안해하고 있다.#

이 사건에 대해 '예비군 소집설', '대피설' 등 유언비어를 퍼트리며 사회불안을 조성하면 처벌을 받을 수 있다. 조심하자. 공식적으로 소집된 게 있었긴 하지만, 그건 예비군이 아니라 인천 근방의 민방위다. 실제로 예비군 소집을 위장한 문자를 보낸 2명이 경찰에 불구속 입건되었다.

사실 전쟁 발발의 우려가 있는 상황에서 돌발행동이나 사회혼란을 조장하는 행위를 했다가는 적의 도발행위로 간주될 수 있다. 물론 정부에서도 사이버 테러나 온라인을 통한 전쟁 조장 행위를 체크하고 있으니 처신에 신중하도록 하자. 위에서 언급한 음모론, 고인드립, 종북성 선동글 역시 걸리면 처벌받을 가능성이 높으니 극단적인 반응은 국가는 물론 개인의 신상을 위해서도 자제하는 편이 좋다. 실제로 연평도사건 남한이 도발이란 음모론의 글을 올렸다가 불구속 입건이 된 경우도 있으니 재미로라도 이런 개드립은 하지 말자.# 댓글이 기가 막힌다

게다가 11월 26일, 사이버민족방위사령부의 발언이 기사화되면서 논란이 되고 있다. 인기검색어 순위에 오르기도 하고 대중들에게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리고 연평도 주민들이 피신한 방공호새마을운동 때 지어진 것이라 화약냄새가 새들어오고 바닥은 플라스틱 + 냉골방에 물자는 식수밖에 없고 보조 발전기도 별로 못돌려서 양초를 켜서 지낼 정도였다.

여담으로 연평도에 피난민들이 두고 온 애완동물(, 고양이 등)에 대한 사연으로 애견, 애묘 네티즌들 사이에서는 연평도의 개와 고양이를 구출해야한다는 여론이 있었다. 피난민들이 미처 자신의 반려동물들을 데려갈 수 없는 환경이기 때문에 사료를 남겨두고 줄을 풀어주는 등 안타까운 조치를 하고 떠났다. TV 뉴스에서는 주인을 알아보는 고양이를 두고 떠나는 할머니의 모습이 나와 시청자들을 안타깝게 하기도 했다.[26] 네티즌 제보에 의해 동물보호단체들이 연평도 동물에 대한 실태파악을 하려 시도했다고 한다. 다행히 파악을 하고 보호조치에 들어갔다고 한다.# 포털 사이트 다음 메인에서는 어린 강아지가 주인이 두고 간 틈에 다른 성견들에게 공격을 받아서[27] 죽은 강아지를 위로하는 부상당한 개의 모습이 나와서 대중들의 심금을 울리기도 했다. 위협에는 약한 동물들도 피해를 입는다.

한편 이번 사태가 일어나고 있을 때 국회의원 연봉이 5% 올랐다는 뉴스가 보도되면서 국민들은 이럴 시국에도 니들 밥그릇은 챙기냐며 분노하고 있다. 예전에 국회의원 연금 특혜 입법 때에도 불거진 사안이지만, 이런 것만은 좌우고 이념이고 당파고 다 초월해 대동단결한 것 같다. 하지만 하필 나라에 큰 위기가 닥쳤을 때(...).

그날 의무경찰중대에서 구타사건이 같이 나오자 당시 육해공군에서 근무 중인 이들이 분위기 파악 안 되냐고 분개하는 상황이 발생하였다.

그리고 문제의 좌우의 드립 대결보온병 ASS폭탄주 드립이 나왔다. 각각 항목 참조.결국 보온병드립이 이겼다 착각은 실수지만 폭탄주 드립은 패드립 아님? 사안에 대한 관점은 자유이지만, 희생자를 과도하게 욕 보이는 발언은 자제하도록 하자.

연평도 포격사건은 언론사들의 포커싱 차이를 볼 수 있었던 대표적인 사례이기도 하다. 다만 이 사건을 당시의 정치적 사안과 무리하게 연관짓는 바람에 비난과 비판을 받은 경우도 있었다. 대표적인 것이 한겨레의 만평. 워낙 비난을 많이 받아 수정하였는데, 수정한 것 조차 비난을 피할 수 없었다. 북한 측이 무자비한 보복이라고 하는데, 보복이라면 남한 측에서 뭔가 먼저 잘못을 했고 그에 타당한 반격을 했다는 의미가 되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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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전

수정 후

한편 여러 언론에서 보도사진에다 멋대로 뽀샵질을 감행하여 이 또한 논란거리가 되었다. 아래의 사진들 중 연합뉴스 것이 원본(이미지 일부 잘림)이다. 연평도 주민이 찍어서 제보한 사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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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단은 각자 알아서.중앙일보가 가장 티나게 했다

7.2. 당시 군 부대 내 분위기[편집]

연평도 포격 이후 대부분의 군 부대에서는 말 그대로 '전쟁 준비 태세' 분위기였다.

연평도가 터진 날 각군 본부에서 긴급 공문을 통해 말년휴가, 신병위로외박, 이미 출발한 휴가를 제외한 모든 휴가, 외박을 일시에 전면 중지, 취소시켰다. 이에 따라 연평도 포격 다음 날에 휴가 출발예정이었던 사람은 순식간에 안습(…). 당시 인사계원들은 미리 휴가 인사명령으로 올라간 미출발 휴가들을 취소시키기 위한 공문을 올리느라 진땀을 뺐다. 전역을 앞둔 말년병장들은 쌓아둔 포상이 다 날아갔으며, 연가로 보장되는 정기휴가만 나갈 수 있게 되었다. 서부전선 일선 부대들은 연가로 보장되는 정기휴가도 사태 이후 열흘 가까이 제한되어있었다. 사태 후 약 2주가 지난 시점에서 제한적으로 전역 임박자의 정기휴가와 신병위로외박에 한하여 제한을 해제한 부대가 있었는데 제한 해제 당일 급격한 출타자 숫자에 놀란 지휘부에서 반나절 만에 제한 해제를 취소하여 전역 예정자들의 희비가 엇갈린 부대도 있다. 안습 그리고 기 휴가 출발자나 말년휴가자, 신병위로외박자에 대해서는 부대에서 해당 출타자의 동선을 더 꼼꼼하게 확인하는 차원에 그쳤던 부대(주로 후방 비전투부대)도 있었고, 신병위로외박자를 포함한 기 휴가 출타자들에게도 복귀명령을 내린 부대(일부 전방부대)도 있었다.

당사자였던 해군 및 해병부대 근무자들은 뻔하지만, 육군 전방부대 역시 출신 전역자들이 들려준 후일담에 의하면[28] 하필 호국훈련 기간이었기 때문에 사격도중, 전투축구대회 도중, 심지어는 집중정신교육 도중에 연평도 포격 소식을 전파받고 훈련상태에서 계속 군장메고 전투대기하거나 기존에 하던 사격 및 행사를 즉각 취소하고 막사로 달려가 군장을 쌌다고 한다. 간부조차도 진지하게 X씹은 표정이었으며 군장을 싸는데 비장미가 느껴지고... 시신을 대신하여 국립묘지 안장용으로 쓸 머리카락과 손톱, 발톱을 채집한 부대도 있었고 유서를 작성케하는 곳도 있었다고 하니 당시 분위기는 정말 살벌 그 자체였다.[29]

육군본부(계룡대), 군수사령부, 한미연합사 등 극히 일부 후방 상급 행정부대를 제외한 모든 육군 부대는 전후방을 막론하고[30] 짧게는 며칠, 길게는 수십 주 동안 전투 대비태세에 돌입했으며, 몇몇의 전방부대 경우 오전 기상부터 오후 취침 전까지 얼굴에 위장크림을 바르는 부대가 있었고, 전투복에 단독군장으로 취침했다고 한다.[31] 대부분의 육군 부대에서는 사지방, 공중전화, PX 이용이 통제되었다고 한다.[32] 아까 언급한 군수사와 인접한 모 군지단조차 분위기가 장난 아니었으니 그 분위기는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추가적으로 비행단 전투비행대대는 말그대로 즉시 출격준비를 한 상태로 대기했다. 어느 정도였냐하면 조종사가 전투기에서 숙식을 제외하고는 즉시출격하기 위해 조종석에 상시 앉아있었다. 조종사가 이랬으면 전투비행대대의 다른 부대원들은 어떠했을지 잘 알거라고 본다.

당시 최전방에 속하는 사단이 속한 군단 예하의 포병대가 최전방으로 긴급히 전진배치되는 게 그냥 도로 앞에 서있기만 해도 보였다. 실제로 당시 전방부대 포병대대들 중 전진배치가 필요없을 정도로 주둔지 자체가 전방이었던 대대들은 상황이 터진 그 시점부터 예정되어 있던 모든 일과와 훈련을 취소하고 여차하면 바로 갈겨버릴 수 있도록 대대 전체가 포상 대기에 들어갔으며, 야간에는 잠은 자야하므로 포대별로 돌아가며 포상에서 대기하였다.

이는 당시 현역병의 대부분을 차지하던 1987년~1990년생 남성들에게 상당한 트라우마를 안겨줬다. 이들 세대가 이전의 젊은 세대와 다르게 안보적 문제에서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스탠스인 것도 이 때문이다. 이들 중 특히 10년 초반 군번(공군은 09년 후반 군번까지)은 천안함, 연평도, 김정일 사망이라는 트리플 크리를 온 몸으로 겪은 군번이다(...).

백골부대로 유명한 3사단은 당시 사단장이 직접 대적관구호를 만들었다고 한다. 사건 후 1주일 뒤, 즉 11월 30일에 입대한 장병들은 모 부대 신병교육대에서 모 정훈장교가 대적관 교육을 단 한마디로 끝냈다. "뭐...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겠지?" 그리고 거기 있던 신병들중 몇 명은 그저 한숨을 쉬었다 카더라

공군부대의 경우 실질적으로 국지전을 자주 겪는 해군 함정 그리고 육군의 DMZ 인근의 강원도 경기도 전방부대들 아니 이것을 떠나 육군의 경우 대다수가 전투병과이기 때문에 몸으로 체감하는 전시위협감이 다르다고 할 수 있으나, 이게 되려 연평도, 천안함 사태 때 긴장감이 배로 다가왔다고 한다. 평소에 군장도 차지 않았는데 뜬금없이 실제상황이라고 군장차라고 명령이 떨어지고 경계근무에 들어갔다. 그것도 전역할 때까지 총잡을 일이 사격훈련빼고는 전무하다시피한 행정병과들까지도...주위에 공군 예비역이 있다면 헌병과 방포병 빼고 평소에 군장 할 일이 몇 번이나 있나 물어보자.[33] 한반도 내 공군 최 후방인 사천 비행장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였다. 평소 헌병 장구를 차고 근무하던 후임들이 말년휴가 복귀하는날 군장을 차고 정문을 비장하게 지키고 있었다. 하필 복귀하는 날이 연평도 사태가 발발한 날이었던 것. 공군 헌병이 군장을 차고 근무를 하는 경우는 특수한 훈련을 제외하고는 손에 꼽을 정도인데, 거의 전시상황에 준하는 훈련을 할 때였다. 대한민국 최전방부터 최후방까지 준전시상황이었다는 말.

공군의 경우 휴가체계가 타군과는 달리 말년휴가를 연차+위로휴가+포상휴가 등을 붙여서 짧게는 3~4일 길게는 40~50일 정도 나가기도 하는데[34] 이 당시 전역 한 달 내지 두세 달 정도 앞둔 병사들의 말년 휴가가 추풍낙엽처럼 스러져갔기에 그 분노가 하늘을 찌를 듯 했다. 실제로 말년휴가가 3/4 이상이 날아갔을 때의 그 심정이란...

당시 공군 예하부대에 공문으로 하달된 휴가 관련 지시사항은 별도 지시 이전까지 휴가 및 외출 금지, 전 휴가자 복귀(말년휴가 제외)였다.[35] 다행히 말년휴가 중인 병장들은 휴가를 누릴 수 있었지만 말년휴가 개념이 없는 전역을 앞둔 영외자들은 모두 휴가에서 복귀하였다. 몇 가지 사례

그리고 휴가 및 외출금지 해제 후에도 추가적인 조치가 있었다. 바로 전투복 차림으로 휴가 및 외출을 보낸 것이다. 육군출신은 이해가 힘들지몰라 덧붙히면 공군의 경우 신형전투복 보급 전에는 외출, 외박시 약복 차림이 원칙이였다. 그런데 연평도포격 후 얼마간 육군처럼 전투복 차림으로 휴가, 외출을 공군도 했다는 것이다. 이는 2000년대 들어서는 처음이었다고 하니 상황이 얼마나 심각했는지 알 수 있는 또 다른 지표다. 라고 하지만 전투복을 입고 휴가를 간 적이 이전에 있었다. 천안함 사태가 발생했을 때 전투복 차림으로 휴가를 갔던 적이 있는데, 실제 부대마다 규정을 달리 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처음은 아니라는 것.

그리고 당시 전의경의 후임병 폭행사건이 같이 뉴스를 타게되자 이 때문에 분노가 극에 달했었다. 이 때문에 전의경들은 전부 북괴군 취급을 당했었다. 원래부터 이들을 쓰레기 취급하던 백골부대의 부대원들 사이에서는 아예 죽여버리겠다는 말까지 나왔었다.

8. 북한의 반응[편집]

북한의 조선중앙통신은 북한 최고사령부 보도를 인용하여 늘 그렇듯이 "남조선 괴뢰들이 우리 측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먼저 연평도의 북한 측 영해에 사격을 가해 군사적 도발을 해왔다."[36], "우리 혁명 무력은 괴뢰들의 군사적 도발에 즉시적이고 강력한 물리적 타격으로 대응하는 단호한 군사적 조치를 취했다.", "남조선 괴뢰들은 빈말을 하지 않는다는 우리 혁명 무력의 엄숙한 경고를 똑똑히 새겨들어야 한다.", "앞으로 조선 서해에는 오직 우리가 설정한 해상군사분계선만 존재할 것." 같은 소리들만 되풀이했다. (....)

기본적으로 북한 체제에서 이 정도 규모의 강도 높은 군사행동이 김정일의 지시 없이 행해질 수 없다. 여러 차례의 쿠데타 시도가 있었고, 군에 대한 통제가 강력한 북한에서는 실탄사격 한 번 멋대로 했다가 숙청되는 일이 흔하다(...). 특히 보도의 주체가 최고사령부란 점에서, 전문가들은 치밀하게 계획된 것으로 보고 있다.

대청해전(2009.11.10) → 천안함 피격사건(2010.3.26) → 재처리 시설 공개 → 연평도 포격(2010.11.23)까지 걸린 시간이 고작 1년 조금 지난 수준으로 매우 빠른 속도로 도발이 자주, 더 높은 강도로 일어나 북한 내부에 심각한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말도 나오고 있다. 실제 속보가 진행되는 도중에 해외 언론 기자들 사이에서 한때 김정일 사망 소식이 돌기도 했다는 언급이 나왔으나 유언비어였다. 천안함과 동일하게 3대 문제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과거 김일성이 사망하고 김정일이 권력세습을 하는 과정에서도 강도높은 도발이 나왔었기 때문에 이번에도 김정일과 김정은의 권력 세습을 위해서 의도적으로 포격을 가했다는 의견이 많다. #외신들은 김정은의 업적쌓기로 추측. 그놈의 업적이 뭔지 세계적 어그로 만땅

북한 주민들은 철저한 언론 통제 속에서도 알 건 다 아는 모양. 그리고 마침내 포격 사실을 인정했다. 어처구니 없을 만큼 자신만만한 발언.

11월 27일 저녁 조선 중앙 통신을 통해 "민간인 사망이 사실이라면 매우 유감스럽다"라는 #논평을 발표했다(...). 그놈의 유감 그러면서도 민간인을 군부대 내에 배치해 인간 방패로 삼은 남측 잘못이라면서 적반하장 드립을.... 북한의 이런 시인은 중국의 압력이 있은 것이지 자의로 한 말이 아닐 거라고 하는 의견도 있었다.

북한에서는 이렇게 본다 카더라남한괴뢰 국가로 묘사한 건 신경 쓰지말자.

9. 국외 반응[편집]

전쟁 발발 시 제3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는 지역인 한국과 북한의 접경지역에서 발생한 교전 상황이기에 전 세계의 언론에서도 이 사태가 일어나자 정규방송을 끊고 속보를 내보내거나, 정규 방송 중에 자막으로 특보부터 내보내고 정규 뉴스 시간에도 상세하게 다루는 등 관심을 집중하였다. 특히 인접국인 일본중국이.

주요 서방국가들은 하나같이 북한을 강력히 비난하며 정전 협정 준수를 촉구했다. 특히 천안함 피격사건 때와 비교하여도 유례 없이 신속하고 단호한 어조로 성명을 발표했는데, 이는 해상 무력충돌과 시설(특히 군 주둔지와 민가를 포함한)에 대한 직접공격이라는 사태의 중대함 차이. 또 한반도를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 지역에서의 신냉전 상태가 벌어질지도 모른다는 우려도 섞였다.

9.1. 미국[편집]

백악관의 빌 버튼 대변인에 의하면 새벽 3시에 사태를 보고 받은 오바마 대통령은 격노(outraged)하였다고 한다. 현지시간으로 이른 새벽에 백악관 대변인이 특별 논평까지 내 가며 북한에게 엄중 경고하였다. 또한 6자회담 당사국들에게 이번 일에 대해 협조를 요청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동시에 한국에서의 대규모 보복 공격 계획을 막아서는 등 확전을 막으려는 태도도 보였다.

중국의 반발로 참여하지 못한 미국의 니미츠급 원자력 추진 항공모함 조지 워싱턴함이 훈련 참가를 위해 출항했다. 중국은 당연히 불편한 심기를 내비쳤으나, 결국 훈련 강행. 그리고 이런 경고마저 날렸다. 그러나 미 국무부는 도발 자체는 1회성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을 내놓았다.나 지금 빡쳤으니까 가만히 놔두지 않으면 험한 꼴 볼 줄 알아라

그리고 그 와중에 사라 페일린은 "우리(미국)는 북한을 도와야 한다"고 이야기했다가 남한과 북한도 구분 못 하냐며 까였다.

9.2. 일본[편집]

총리실 직속의 정보 연락부를 설치했고, 한국여행 주의보를 발령했다.

일본정부는 미국, EU, 러시아가 발표한 뒤 7시간이라는 늦은 시간이 지나서야 성명을 발표했다. 북한의 미사일 사정거리 내에 일본 전역이 포함되는 등 지리적으로 가까웠기 때문에 신중한 대응을 했다는 일본 언론의 추측.[37] NHK 등 주요 방송들은 공휴일(11월 23일 근로자의 날)임에도 불구하고 정규방송을 중단한 뒤 긴급속보를 내보내는 등 민감하게 대응했다. 또한 나리타인천행 항공기가 30여분 간 나리타에서 이륙이 유보되기도 했다. 일본 여야는 일시적으로 휴전.

이 와중에도 재특회들은 재일 다 나가라 한국 미녀만 받아들여 결합하자 소리를 해댄다고 한단다.[38] 일본 내의 전체적인 사회 분위기로는 굉장한 공포 분위기가 조성된 듯하다. 그리고 한미 훈련 기간 동안은 각료들이 도쿄를 떠나지 말라는 지시가 떨어졌다고 한다.

그리고 이로 인해 '자위대법'의 변동이 있을 수도 있다는 떡밥도 나왔다.[39] 일각서에는 일본의 재무장화를 경계하고 있다. 심지어 산케이 신문은 "한국군 별것 아니잖아?" 하는 근거없는 망언을 쏟아냈다. 그리고 이번 사태로 대외정보수집능력이 부족하다고 느낀 일본은 정보전 능력을 늘리기 위한 명목으로 국정원이나 CIA같은 정보기관을 신설하려는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

흔히 '조선'이라는 어감 때문에 북한 국적이라고 도매금으로 싸잡히는 일본내의 조선적 교포 3, 4세대들도 큰 피해를 입고 있다고 한다. 특히 조선학교 학비경감 정책이 무효화 되었다. 다만 일본 내 조총련은 북한 자금책으로도 활동한다고 하니, 남한 내 자국민이 위협받는 이 판국에 신경이 날카로워져 있는 입장 자체를 이해 못할 것은 아니다. 북한 이놈들은 자신들의 행위가 일본의 동포들까지 난처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근데 애초부터 쟤들은 해외 동포보고 반쪽바리라고 하면 했지 그들의 처지에 딱히 관심따위 없다.

또 서해에서 한미 연합훈련을 하고 있는 도중에 2ch에서 "한국과 북한이 전쟁하면 어느 쪽을 지지할 것인가"라는 뭐 같은 스레드를 달았는데 거기서 넷 우익 네티즌들이 올린 댓글이 가관이다. 일본의 대부분의 2ch 네티즌들은 애써 무관심한 척 하면서도 '혐한성이 짙은 댓글들을 남겼다. '둘 다 망해버려라', '영원히 싸워라'라는 식의 망언이 판을 쳤다.[40] 더구나 독도한국이 불법점거를 하고 있다고 북한을 지지하는 정신나간 놈도 있었다.[41]

9.3. 중국[편집]

반면 중국은 일단 사건을 규탄하면서도 그 해결을 위한 6자회담 재개가 급선무라고 주장했다. 북한의 돌발행동에 당황하여 신속히 통일된 입장이 수립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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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CTV와 같은 언론에서는 북한의 보도를 바탕으로 적당히 물타기를 한 "남한의 주장처럼 북한이 선제공격을 한 것은 아니며 누가 먼저인지 모르는 상황에서 포격이 오고 갔다. 그런데 남한이 군사 훈련 중이었다."라며 옹호하고 있다(...).

그런데 중국에서는 하필 사건발생 당일인 11월 23일엔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이 진행 중이었다. 2008 베이징 올림픽 도중에는 남오세티아 전쟁이 발발하더니(...). 중국도 참 타이밍 맞춰 잔치 분위기 깨지는 게 전통으로 자리잡을 판이다. 그것도 이번에는 터트린게 자기네 '동맹국'이니 원.[42]

CCTV는 관영 언론인 데다 중국 체제의 특성상 정부의 입장을 그대로 대변한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따라서 CCTV의 보도 상황을 볼 때, 중국은 유일한 북한의 후원자 역할을 자처하는 셈이다. 물론 이건 일상적인 중국의 안습한 수준의 북한 옹호 발언이라고 볼 수도 있다. 이걸 가지고 중국 정부가 북한의 공격을 용인했을 거라는 건 아직 과도한 발상이다. 정부의 직접 성명도 그렇고 CCTV의 보도 역시 문제를 적당히 호도한 다음 재빨리 북한을 불러 조지는협상하는 것을 노리는 분위기다.

또한 각종 언론과 포털사이트의 뉴스란에서도 사건 다음 날 메인을 장식하는 헤드라인은 대부분 미국이 항공모함을 파견해 합동군사훈련을 하기로 했다는 내용이 부각되고 있다.[43] 또한 소극적인 면을 보이며 양제츠 외교부장 방한이 연기되었다. 일정상의 문제라고 하지만, 추측에 따르면 부담돼서. 또 이 것을 보면 중국도 북한을 다룰 자신이 없는 모양이다.

사실 중국은 북한의 핵실험 당시 이례적으로 북한을 비난함으로써 그전까지 조금이나마 유지하고 있던 대북영향력을 완전히 소진하는 쓰라린 경험이 있어 북한에게 강한 모습을 보이기 어려운 상태이다. 중국 외교부가 아예 북한 대사를 불러서 이에 대해 이야기했다고 공식적으로 발표하기까지 했다. 이번 사태가 중국에 이득이 거의 없다는 것은 확실하다. 아니, 이득이 어디에 있는지가 궁금할 지경(...) 한반도에서 전면전은 사실상 미친 짓, 중국이 그런 것을 원할 리 없다. 하여튼 최근의 중국은 불쌍할 정도로 사방에서 비난을 얻어 맞고 있다. 북한 때문에 이게 무슨 일이야. 그런데 이런 비난을 맞아도 할말 없는 일도 저질러 버렸다!

남한 측의 포격이 먼저 시작되었다고 한 것이다! 아마 미국의 항모 파견이 심기에 많이 거슬린 듯하다. 그리고 드디어...중국이 제 정신을 차린 것인가?! 아직 확실하지는 않지만 이제는 제대로 빡친 모양이다.

다만 환구 시보의 내용은 만일 북한에서 만일의 사태가 나면 중국군을 국경선에 배치한다는 내용도 실려있어 결국에는 자기네 입장대로 하겠단 얘기. 단, 이는 전쟁/내란으로 북한에서 중국으로 탈출하는 주민들을 도로 북한으로 밀어넣겠다는 내용이다. 북한을 도와 한미연합군을 막겠다는 발언은 아직 없다. 그런데 자신들의 배타적 경제수역을 넘어 오는 것을 반대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그리고 북중 국경 지역이 24시간 경계태세를 강화했다.

하지만 역시 전쟁 분위기는 부담스러운지, 28일 급하게 다이빙궈 국무위원을 특사로 한국에 파견했다. 또한 언론에서도 북한이 이 이상 평화를 위협하는 행위를 해봤자 좋을 것이 없으며 칼자루는 한국이 쥐고 있으니 유연하게 대처를 하길 바란다는 뉘앙스의 보도를 하고 있다. 또한 북의 최태북 최고인민회의장을 베이징에 소환한 것을 볼 때 중국은 한국을 달래면서 더 이상 북한이 무력도발 하는 것을 막는 방향으로 중재하고 있는 듯.

#참고 기사 그리고 11월 27일 정오경 중국은 다이빙궈의 방한을 일방적으로 통보했고, 28일 이명박 대통령과 면담한 이후 다이빙궈가 귀국하자 오후 5시 40분경 중대발표라며 왕자루이를 북한으로 보낸다는 것과 '12월 초 베이징에서 6자회담 개최제안'을 발표했다. 그러나 청와대를 비롯한 일본과 미국은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으며 #심지어 북한까지도 회의적이다. 게다가 일방적인 방한통보 이후 발생한 외교적 결례가 구설수에 올랐다.#다이빙궈의 무례한 '1박 2일' 중국이 힘이 강해지면 우리나라가 어떤 수모를 당할 지 예상되는 부분이다.

위키릭스에 따르면 중국이 계속된 북한의 지랄돌출적인 행동과 유아적인 행동에 강한 염증을 느끼고 있다고. 그리고 이제는 #슬슬 포기하고 싶은 듯(...).[44]

9.4. 러시아[편집]

러시아 외무부는 공식 성명에서 무력 사용의 주체를 구체적으로 북한이라고 표기하지 않는 대신 '국가 간의 어떠한 무력 사용도 강하게 비난한다'고 밝혔다. 또 '남북한 양측이 인내와 책임감 있는 태도로 한반도 내 군사적 대결의 악화로 이어질 수 있는 행동을 삼가라'고 촉구하였다.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부 장관은 기자회견 자리에서 '연평도에 대한 포격을 주도한 자들은 분명히 큰 책임을 져야 한다'고 강조하여 공식 성명과는 조금 차이를 보였다.

하지만 역시 미국이 자국 근처에서 무력시위스러운 행동을 하는 것은 좀 거슬리는 듯, 6자회담 재개를 주장했다. 그리고, 이번 사태의 안보리 회부를 강하게 주장했다. 그리고 러시아에서 북한 노동자들이 본국으로 귀환했다. 또한 러시아 정부 주지의 논평을 내어 북한을 다시금 강하게 비판했다.

9.5. 캐나다[편집]

스티븐 하퍼 총리는 이번 사건에 대해 북한을 강력히 비판했다. 또한 이 사건 이후 인도주의적인 구호활동이나 자국의 안전에 필요한 교류를 제외한 모든 정부 차원의 교류를 끊었다.

9.6. 유럽연합 (EU)[편집]

한반도 문제에 관해서는 직접적인 논평을 그다지 내놓지 않던 유럽연합조차도 이번 사건에 대해 신속하게 규탄 성명을 발표하였다. 독일 외무부에서는 따로, 홍찰일 북한 대사를 소환해 항의를 했다고. 이 일로 인해 영국에서는 군비 감축으로 인한 항모 퇴역이 경솔했다는 소리까지 나왔다.

9.7. 대만[편집]

중국의 대북감정과는 별개로, 대만 지도부는 28일부터 시행되는 서해 한미 합동훈련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아시아, 태평양 안보에 중요한 도움이 된다고 하는 것을 보면, 똑같은 화약고인 대만해협을 끼고 있는 입장이라 중국을 은근히 압박해 주길 바라는 것 같다.

사실 비슷한 상황이 한국전쟁 당시에도 있었다. 중국이 계획했던 대만 침공이 한국전쟁 때문에 무산되었는데, 당시 대만 해협에 항모가 왔었다고. 대만은 1954년과 1958년의 진먼 포격전 등을 겪었던 경험이 있다.

9.8. 이스라엘[편집]

외무장관 성명을 통해 이번 사건은 "미친 체제를 저지하고 쓰러 뜨려야 할 필요성을 그 어느 때보다 절감케 한다"며 원색적인 표현까지 사용하며 강도높게 비난."그들의 무기 확산과 도발 행위를 중단시켜야 한다"고 밝혔다. 물론 그들이 팔레스타인을 어떻게 하는지 보면 딱히 비난을 할 자격은 없는 것 같다

이스라엘은 북한과 이란, 시리아가 서로 연계해서 핵무기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상황에다, 수시로 헤즈볼라 등의 반이스라엘 무장단체에 의한 기습포격을 당하는 입장으로서 일종의 동병상련을 느끼는 듯도 하다.

이스라엘의 한 일간지는 한국의 무기력한 대응은 북한이 핵을 소유했기 때문이고, 우리 이스라엘은 이란을 그 지경으로 놔두어 한국과 같은 전철을 밟아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는 착각인 것이 북한이 핵을 소유해서 한국이 보복을 못 한 게 아니라 미국이 막아서 못 한 것이기 때문으로, 이스라엘 역시 이란의 핵협상을 미국이 주도하자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9.9. 인도네시아[편집]

인도네시아 일간지 자카르타 포스트는 "이제 북한에게 남은 것은 채찍뿐이다!"라는 생각보다 강경한 표현을 썼다. 그렇지만 남북한의 사이가 험악한 것은 이익이 없는지, 6자회담으로 해결하라는 공식발언이 있었다.

9.10. UN[편집]

반기문UN 사무총장은 어떠한 의견 충돌이든 대화와 평화로운 방법으로 해결되어야 한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실제로 유엔이 북한에 할 수 있는 것들은 거의 없을 것이라는 것이 전문가 대부분의 의견이다. 그런데 중국 다음으로 북한에 가까운 러시아가 안보리 회부에 벌벗고 나서, 의외로 안보리 회부가 강한 억지력이 될 가능성이 생겼다. 허나, 천안함 때에도 안보리가 힘을 못 쓴 일이 있었으니, 경과를 지켜봐야 할 듯.

9.11. ICC(국제형사재판소)[편집]

국제형사재판소(ICC)에서는 2010년 12월 초 한국 시민단체인 반인도범죄조사위원회 등이 천안함 피격사건과 관련하여 이 사건을 제소하자, 예비 조사에 들어갔으며 이 사건이 전쟁범죄임이 틀림없다는 잠정결론을 내렸고, 본조사를 시작할 것이라는 소식이 들려왔다.#

9.12. 네티즌[편집]

해당 사태는 트위터를 중심으로 그야말로 삽시간에 전세계 네티즌에게 퍼져나갔다. 최초 포격 이후 약 20분 만에 해쉬태그 #KoreaPeace와 #PrayForKorea가 생성되어, 1시간 만에 트위터의 Top Trend 1,2위에 랭크되었으며, 그 밖에 North Korea, Korean등의 태그도 Top 10 안에 일시적으로 포함되었다. 비영어권 지역에 관련한 해쉬태그가 Top Trend에 이 정도로 급속히 등록되는 것은 이란의 '트위터 혁명' 이후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참고로 '#prayforkorea' 태그를 쓰자고 처음으로 제안한 사람은 많은 팔로워를 갖고 있는, 다름아닌 파울로 코엘료였다.

덕분에 트위터에 접속한 전 세계 모든 네티즌들에게 해당 태그가 노출되었고, 따로 뉴스를 접하지 않은 네티즌들도 사태에 대해 비교적 자세히 그리고 빠르게 알 수 있었다.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는 (영어를 중심으로 한) 여러 가지 언어로 초당 수십 건의 트윗들이 올라왔다.

Scandinavia and the World의 작가는 세계가 한반도 때문에 난리가 났는데 덴마크의 뉴스에는 눈 얘기밖에 안 했다며 깠다.#[45]

10. 포격 이후 남북의 영향[편집]

10.1. 북한[편집]

한마디로 정리하면 도대체 왜 한 거냐?

천안함의 경우 북한 입장에서 최고의 결과였다. 멀쩡한 군함을 침몰시켰고, 초기에 적극적인 부인으로 한국을 비롯해서 주변국 모두 우왕좌왕 하느라고 제대로 대응을 못했다. 그동안 내부선전용으로 잘 써먹었고 반대로 한국은 천안함 침몰 원인을 놓고 설왕설래 하느라 국론분열에 전통적인 대정부 불신도 매우 강해졌다.

반대로 연평도의 경우에는 공격자체는 일단 성공했지만 그 후폭풍은 북한에게 영 안 좋게 돌아갔다. 빼도박도 못하게 공격자가 명확한데가 민간인 거주구역에 대한 직접 공격이라는 점에서 대북여론이 이 이상 나빠질 수 있을까 할 정도로 나빠졌다. NLL지역의 해전이나 천안함 침몰 사건은 군에 대한 공격이라는 점에서 무력 충돌로 받아들여졌으나, 이번 사건은 민간인까지 피해를 입은 국지전이므로 당연히 느끼는 감정이나 위험도가 다르다. 이 공격 한 번에 천안함 주장들 중간에서 긴가민가 하던 사람들 중 북한짓으로 확정짓는 이들이 늘었고, 북한을 옹호하던 견해는 모조리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게다가 이번에는 미국이 한국의 보복을 막아서 일단 넘어갔지만 다음에도 미국이 막아 줄지는 의문이었고 결국 북한은 그 뒤 서해에서는 비슷한 무력 도발을 하지 않고 있다. 다만 휴전선의 GP나 GOP를 기습, 방어병력을 몰살하고 일시적으로 점거한 뒤 철수하는 방식의 도발을 준비하고 있는 상황.[46]

위에서도 몇번 서술되었지만 당시 우리 정부는 대대적인 보복공격을 계획했을 정도로 속된 말로 "빡쳐"있었고, 오바마 대통령에 국방장관까지 달려들어 말렸었다...그러나 5년 뒤 서부전선 포격 사건이 일어났다.

10.2. 남한[편집]

우선 북한이 휴전 중일 뿐 전쟁 중이라는 점이 명확해졌다. 덕분에 말 많던 주적 개념에 대해서는 의문이 없어졌다. 핑클도 아는 국군의 주적 2013년 당시 북한의 전쟁 위협에 대해서 한국 정부가 단호한 태도를 보일 수 있었던 것도 역으로 보면 북한이 주적임이 명백하다는 점을 국민들이 합의했기 때문이다. 좌우를 가리지 않고 북한의 몇 안 되는 제대로 된 전력이자 가장 큰 위협으로 꼽는 포병으로 공격이 이어졌기 때문에 북한군 포병에 대한 경계심이 높아졌다. 덕분에 포병은 즉각대기 임무 등 훈련과 경계가 매우 빡세졌다.

사건 이후 서해 5도 지역 주민들을 지원해야 하는 여론이 커졌으며, 그로 인해 특별전형 중 하나인 서해5도특별전형이 생겨났다.

이 사건으로 해병대와 서북도서의 중요성이 부각되며 이것저것 해병대가 득을 본 것이 많다. 국방개혁 2020으로 갈려나갈 뻔한 제6해병여단연평부대가 증강된 것이 좋은 예시. 그 외에도 스파이크 NLOS 미사일, 구룡 MLR 등이 서북도서에 배치되었고, 공기부양정/고속단정으로 편성된 해병 전투주정대가 창설 예정이다. 원래는 해군이 운용할 예정이었던 상륙기동헬기가 해병대로 넘어간 것 역시 이 사건의 여파.

20대, 즉 1990년대생들의 대북관에 큰 영향을 끼친 사건으로 평가된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의 경우 유년기에 겪었기 때문에 90년대생들에게 거의 영향을주지 못했지만 연평도 포격사건의 경우 10대 중반-20대초반의 나이에 겪었기 때문에 이들이 어느정도 철이 들고 나서 처음으로 경험한 북한의 이미지가 바로 남한 영토에 대한 최초의 포격인 연평도 포격 사건이라는 점은 이들의 반북, 친미, 안보중시 등의 성향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다시 말하면 한 세대의 정치성향을 결정했을 정도로 한국사회에 커다란 영향을 준 사건이다.

11. 각종 비판[편집]

11.1. 발생전 처리에 대한 비판[편집]

국방비도 감축시키고 국방개혁 2020 예산을 22조원[47]이나 깎는 등 참여 정부에 비해 자주국방에 대한 의지가 퇴색한 모습을 보였다.[48] 이 점 때문에 평소에도 밀리터리 관련 갤러리에게 많이 까였었다. 그에 대한 문제가 전혀 일어나지 않았던 것도 아니고, 얼마 전에 천안함 피격사건이 일어났다. 이후 이명박 정부는 안보를 강조하여 표를 얻었는데, 안보를 강조해놓고 안보에 많은 노력을 하지 않은 건 모순된 행동이다. 하지만 국방개혁2020 자체가 현실성이 부족한 계획이었다. 2020년까지 매년 7% 이상의 성장률을 달성할 거라고 가정하고 세운 계획인데, 7%는 세계경제가 호황기였던 노무현정권 때도 달성해보지 못한 수치다. 이러한 문제점을 이명박 정부는 더욱 몽상가적 행동으로만 일관한 덕에 인지하기 힘들게 되었다.

또한 위키리크스에 따르면 국정원이 8월에 북한이 거하게 공격할 것이라는 징후를 알고도 대응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있다. 이는 사건 직후 지상파 보도로도 다뤄졌다.

11.2. 전후처리에 대한 비판[편집]

기갑 갤러리를 비롯한 밀리터리 관련 갤러리에서는 이를 보고 미온적 대응이라고 신나게 깠다. 작정하고 들어오는 공격인데 왜 참냐는 반응. 공대지 무장을 장착하고 출격한 KF-16F-15K는 공격하지 못하고 초계비행만 하다 돌아왔다.[49]

사실 이러한 경우에는 민간인을 공격했기 때문에 제네바 협약 위반이며, 때문에 폭격이고 뭐고 다 동원하고, 여기에 최고 지휘관인 김정일이 시킨 게 명백했기에 주석궁을 폭격했어도 국제법상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확전되지 않게 방지하는 것도 좋다. 하지만 대외적으로 나가는 말과 내부적으로 논의하는 사항을 구분하지 못했다는 것은 큰 문제다.

물론 내부적으로는 확전되지 않게 지시하는 것이 당연하다. 어찌되건 전쟁이 나면 어차피 개판이라 잃을 것도 없는 북한과는 달리 남한은 잃을 것이 너무나도 많다. 평양을 잿더미로 만들더라도 그 대가로 수도권에 포탄이 한 발이라도 떨어진다면 손해규모는 남한이 훨씬 더 커진다! 경제적 손실은 그리 크지 않으나 최소 수천에서 많게는 10만에 이를 인명피해와 코리안 리스크가 문제. 하지만 대외적으로 확전되지 않게 하라는 말이 나간다면 이는 국민들에게 신뢰를 주지 못하고, 미온적 대응이라는 비판을 얻을 수밖에 없다.

언론에는 사후 보고를 받은 이명박 대통령이 확전방지나 교전수칙만을 운운한 장성들에게 크게 화를 내었다는 내용이 실렸다.

그리고 이런 최전방 지역의 비상상황에선 군인이 민간인을 먼저 우선 대피시켜야 하는 건데, 반대로 해병대원들이 민간인보다 먼저 연평초등학교 내 대피소로 대피했고 게다가 가장 안쪽 자리를 차지해버려서 엄청난 비판을 받기도 했다.#

2014년 1월 이슈가 되었던 게이츠의 회고록에 따르면 당시 대한민국 정부는 전투기와 대포를 이용한 대규모의 반격을 준비하고 있었지만 확전을 우려한 행정부의 며칠간의 기나긴 설득에 의해 무력 시위로 수위를 낮췄다고 한다.

11.3. 작전 권한과 관련한 문제[편집]

당시 이명박 대통령은 청와대 지하벙커에서 주한미군에 사전통보 없이 대구공군기지의 F-15K 4대를 출격시켰다고 하는데 F-15K는 이륙하기 전 반드시 미군에 사전통보가 의무로 규정되어 있다고 한다. 따라서 연평도 포격 당시의 전투기는 사상 최초의 위반이라는 듯. 그리고 그 전투기로 보복 공습을 지시하였으나, 김태영 전 국방장관이 대통령에게 연합사령관이 규정한 교전 규칙에 위배된다며 반대했다.

이는 연합권한위임(CODA)라고 하는 비밀조약에 기인한 것으로, 1994년에 평시작전권이 이양되었음에도 평시 활동 중 일부 핵심 권한은 계속 연합사령관이 갖는다는 내용이다. 비밀조약답게 당연히 일반에 전문이 공개되지도 않았으며, 동급 수준의 무기사용 따위의 잘 알려진 규정 같은 수준이 아니다(국지도발 작전계획과 혼동하지 말자). 미사일이나 전투기 등의 전략무기의 사용에 관한 내용일 가능성이 높다. 명분은 확전 방지의 취지에 따른 것과 한국군의 재량이 확전 사태에 대해서 제대로 대처할 역량이 부족하다는 것.[50]

이러한 한국 정부의 단독 전투기 작전 명령 움직임에 대해 주한미군은 전투기 4대를 긴급 출격시켰다. 한국 전투기를 요격하려는 듯한 움직임(!)이 있었다고 했지만 이후에 한국 정부는 이륙한 어떤 한국 공군 전투기에도 공대지 미사일이나 폭탄은 전혀 탑재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후에 연합사에서는 포격 당시 한국군의 대응을 말리지 않았다고 항변했지만, 과연....?

며칠 후 김태영 국방장관이 경질되었는데 평시작전권도 전투기 공습과 같은 핵심권한은 연합사에 있다는 취지로 전투기 폭격을 반대한 이유 때문일 확률이 크다. 새로 임명된 김관진 국방장관은 대통령의 견해를 지지하면서, 국제법상 자위권 행사는 유엔군사령부가 규정한 교전 수칙에 우선하기 때문에, 한국 마음대로 전투기 공습이 가능하다고 여러 차례 주장했다.관련기사

당시 이명박 대통령이 크게 화를 내어 새로운 작계를 요구했지만, 이후 새로 작성된 작계에서도 문제가 된 내용은 수정되지 못했다.

이후 한국군은 국지도발 시 전투기의 사용이 불가능할 수도 있다는 점을 이번 사건에서 경험하고서, 연평도에 스파이크 미사일을 배치하는 등 현장의 일선 장교에게 첨단 보복수단을 지급하여, 일선 지휘관의 자위권 행사이지, 청와대가 특별히 한미 합의를 깨는 등의 작전권 행사를 하는 것은 아니라는 방향의 대책을 마련했다.

12. 기타[편집]

  • 2013년도 전국기능경기대회 게임개발분야의 주제로 연평도 사건을 배경으로한 고인드립포트리스 게임이 등장했다.

  • 부상당한 해병들에게 훈장이 수여되었는데, 해병대사령부가 훈장을 택배로 부치는 병크를 저질러 욕을 바가지로 먹었다. 부대에 초청해 수여식을 하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수훈자가 소속된 군의 장교와 부사관이 직접 정복 차림으로 방문하여 훈장을 전달하는 것이 기본적인 예의이다.

  •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소속 신부 중 한 명인 박창신 신부가 2013년 11월 22일에 전라북도 군산에서 제18대 대통령 선거 당시의 선거부정 의혹을 규탄하고, 박근혜 대통령의 하야를 요구하는 시국미사를 집전했는데 이 과정에서 연평도 포격을 옹호하는 듯 한 발언을 해서 큰 정치, 사회적인 물의를 빚었다.# 정부와 여당, 보수단체는 당연히 강력히 반발 및 비판했고, 야당인 민주당조차도 이 발언의 본질을 봐야 한다며 정부와 여당인 새누리당은 비판했지만 문제가 된 연평도 및 NLL 관련 발언에 대해서는 공감하지 않는다고 했을 정도. 야당은 뜬금없이 이 발언의 본질을 봐야 한다며 쉴드쳤다. 후에 신부 본인이 이 부분에 대해 해명을 하였다.#해명이 있었지만 보수단체의 극심한 반발이 이어졌고 결국 검찰에 고소장을 보내어 검찰은 이 발언에 대한 수사여부에 대해 검토하였고#, 결국 전주지검에서 수사에 나서기로 결정하였다#

  • 오유 시사게에서 연평도 포격사건은 한국에서 북측의 포격을 유도했거나 북한과 짜고 벌인 일이라는 식의 음모론이 올라왔다.#1#2 타 게시판 사람들이 음모론에 반발하였으나 오유 관리자는 오히려 음모론에 반발한 사람들을 분란조장 사유로 계정차단해버렸다.

13. 관련 문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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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북한과 직접 교전 및 대치 외에 무력시위를 전개한 병력[2] 도발 당시 현무 미사일이 대기했다고 한다.[3] 선제공격을 했던 쪽이 오히려 더 치명적인 피해를 입었다.[4] 연평도에는 대피소가 상당히 많다.[5] 이 사진을 찍은 연평부대 정훈장교 이성홍 대위의 증언에 따르면 저 상황은 다음과 같다.# 이 대위는 부대원들의 포 사격훈련 모습을 촬영하고 있었는데, 사격훈련이 모두 끝난 뒤 잠시 후 앞쪽에서 잇따라 폭발음과 함께 화염이 솟자 반사적으로 셔터를 눌러서 그 순간이 고스란히 사진에 담겼다. 그 뒤 그게 적의 공격이라는 사실을 그제서야 깨달았고, "빨리 피해"라는 고함소리를 듣고는 정신없이 대피호 안으로 뛰어들었다고 한다. 즉 마침 훈련 홍보촬영으로 카메라를 들고 있었기 때문에 최초의 적 포탄이 떨어진 직후의 순간을 그대로 찍을 수 있었던 것이다.[6] 원래는 포병의 1개 포대당 화포 보유량이 6대이므로 4대가 남아야 하지만 1대는 이미 훈련 때 불발탄 문제로 고장난 상태였다.[7] 대포병레이더가 당시 가동중단되었으므로 우선순위로 정해진 사격목표인 무도에 사격을 가했다고 한다.[8] 자주포 절반만 작동... 포탄장전도 4발씩만... "안 쏜 게 아니라 못 쐈다", 한국일보, 2010.11.26[9] 웃자고 하는 얘기지만 북한 포병 전력의 무서운 점을 여기서 알 수 있다. 어디로 떨어질지 모른다! 물론 방사포의 정확도는 현저하게 낮긴하지만, 그래도 이건 아니다.[10] 그래서 민간 건물 등 민간시설 피해가 많았다. 주변 곳곳에 설치되어 있는 대피소에 빨리 대피했기 때문에 인명 피해는 다행히 많지 않았지만.[11] 근데 만약 위의 추측성 주장을 전제로 적 포격을 받았을 때 3배로 대응해야 된다는 원칙이란 건 실행되기를 기대할 수 없는, 즉 있으나 마나한 원칙일 뿐이라는 의견도 있다.[12] 의용소방대뿐만이 아니라 자진해서 소방작업을 지원한 시민들로도 부족해 인천에서 배타고 온 소방 요원들까지 가세한 후에야 제대로 진압을 끝냈다.[13] 해병대교육단과 같은 개념이 아니라, 자대 배치 전 대기 및 사전 교육을 맡는 일종의 대기대이다. 보충중대의 확장판으로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14] 그전까지는 해상이나 GOP 부근에서 간간히 교전이 일어난 적이 있어도 민간인이 거주하는 한국 영토에 포격을 한 적이 없었다.[15] 1계급 추서[16] 실제로 포격사태 1년이 넘었지만,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만 들리면 깜짝 놀라는 주민들도 종종 볼 수 있다.[17] 북한은 이런 피해를 숨기려 하고, 남한 측에서도 피해 규모를 산정하는 과정에서 군사기밀이 유출될 수 있으므로 국민들에게는 두루뭉술하게 발표하기 때문이다. 시일이 지나고 탈북자들이 들어와서 증언해야 어느 정도 추측이 가능할 것이다. 대청해전에서 사망한 이의 이름이 그로부터 1년 뒤인 2011년 11월, 노동신문에서의 발표를 통해 바뀐 학교명으로 쓰이게 되었다는 걸 공식매체에서 확인한 적도 있다.[18] 14발과 6발은 빈 논두렁에 착탄했고 10여 발은 북한군 방사포 진지 인근에 착탄한게 확인되었다.[19] IMF 구제금융 시기를 통해 알 수 있듯이 금은 전쟁 등으로 경제가 혼란이 되면 그나마 표준 화폐의 구실을 할 수 있는 것이라 혼란해질거 같으면 오른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브레튼우드 체제에서 달러가 전세계에 통용될 수 있었던 이유도 미국 연방은행이 보유하고 있던 막대한 금 보유량 덕분이었다.[20] 사태 초반이었기에 군 기밀로 분류되어 함부로 밝히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지만.[21] 연평도를 포함한 서해 5도는 북한군의 대공미사일 사거리 내에 있다. 이 문제 때문에 서해5도로 어떤 형식이든 항공기가 들어가는 경우는 상당히 드문 편이다. 평상시에는 육지의 병원으로 즉각 후송해야할 환자가 있을 경우 헬기가 뜨긴 한다.[22] 중국은 근대에 들어 서해에서 진짜 쓴맛을 많이 보았다. 90여 회의 크고 작은 사건이 서해에서 있었다고 하니, 당연히 중국 입장에서는 신경이 쓰일 것이다. 게다가 사건이 있었던 때는 아시안 게임이 한창 진행될 때. 얼마나 북한을 패버리고 싶을까. 만약 서해에 항모가 오면, 일시적으로 대만 - 미국 - 남한이라는 라인이 만들어진다. 게다가 미국 항모전단 서해 파견은 자동으로 '중국 공격 훈련'도 겸할 수 있다. 중국의 입장에서 반기고 싶을까?왜 우리가 중국의 입장을 생각해야하지 민간인이 죽었는데[23] 참가하는 구축함, 순양함 모두 이지스시스템이 기본 장착. 거기다 카우펜스는 토마호크 미사일 을 300발가량 탑재가능하단다. 후덜덜.[24] 헌법 제3조에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정한다고 쓰여있다.[25] 원래 인터넷의 친북 사이트에서 시작된 게 퍼진 거라는 말도 있고, 이와 관련없이 서로 다른 커뮤니티에서 비슷한 말을 한 거라는 이야기도 있다. 2013년,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의 박창신 신부가 연평도 포격사건을 우리가 먼저 잘못한 것이라 미사 중에 발언하면서 논란을 또 일으켰다. 그리고 박근혜와 새누리당이 싫다는 이유만으로 어처구니없는 발언을 부적절한 장소와 시간에 터뜨린 박창신 신부를 옹호하는 개념없는 개티즌들이 양산되고 말았다.[26] 여담으로 세계 2차 대전 때 영국에서는 폭격 중에 자신의 반려동물을 데려가려고 폭격당하는 곳으로 다시 돌아올 것을 염려해 개와 고양이 등을 안락사 시켰다고 한다. 위협이나 전쟁에는 동물들도 피해를 본다.[27] 먹을 게 부족하니 먹을 것을 얻기 위해 사람들이 사료를 주는 곳으로 개들이 모이게 되고 약한 개들을 공격해서 쫓아내기 때문이라고 한다.[28] 이건 인터넷 검색해보면 쉽게 찾아볼 수 있다.[29] 어떤 부대는 하필 그 주간이 집중정신교육주간이었는데 사건 터지기 전날에 유서쓰는 행사가 있었다고 한다...예습 다행히도 이분들의 유서가 진짜 유서가 되지는 않았다.[30] 천안함 사태 당시엔 후방 부대는 이런 분위기는 아니었다.[31] 전방부대뿐만이 아니라 각 비행단 후방부대도 단독군장으로 취침하고 침상 아래에 기타 군장을 뒀고 총을 꺼내기 위한 자물쇠도 항시 개방되어 있었다.[32] 아까 언급한 일부 상급부대인 계룡대, 군수사, 한미연합사는 PX, 사지방, 공중전화 이용 통제는 없었다.[33] 특히 조그만 부대의 경우 헌병말고 타병과가 같이 들어가기도 하니까 생각보다 자주 찰 수 있다. 자세한 건 코렁탕을 먹고 싶지 않다면 알려하지 말자.[34] 09~10년도 사이에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지금은 하고 싶어도 못 할 거다.[35] 그 당시 말년휴가자로서 행정반 최선임 후임, 담당보직 간부(!!), 중대장(!!)이 직접 전화를 해서 휴가는 즐기되 상황이 상황이니 전화는 유지하고 가족과 지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참고로 공군은 휴가 시 확인전화를 잘 안 하는 편이다.[36] 북한이 이 따위 개소리를 하는 것은 북방한계선 문제와 관련 있다. 현재 북한은 북방한계선을 무시하고 자신들 임의로 해상경계선을 설정하여 북한의 영해를 주장하고 있는 상황이다. 바꿔 말하면 국군은 북한의 영해에 선제공격을 하지 않았다. 훈련도 연례적이고 일상적인 수준이다. 게다가 북쪽이 아닌 남쪽을 향해 사격훈련을 했다!!! [37] 이 사건이 일어날 때쯤에 민주당 정권이 하도 미국에게 삽질해서 미국이 뭐라고 하기전에 설레발치다가 돌이킬수 없게 되지 않기 위해 미국의 발표를 기다렸다는 얘기가 있다.[38] '불리한 쪽 지지 한다. 그래야 오래 싸우지.' 따위의 소리를 하는 작자들이 있는데...전쟁나면 자기들도 위험하다는 것을 모르는 바보니 이쪽은 무시하자. 그런데 분위기를 그런 쪽으로 몰고가려 해서 문제가 된다...전쟁을 게임으로 보는 인간도 나왔다. 이뭐병[39] 정확히는 자위대법 안의 '주변사태법'. 일본이 직접적인 무력공격을 받을 상황이 생겨 일본내의 평화와 안보에 영향을 주는 상황을 말하는 것이다. 현재로써는 그렇게 판단하지 않으며, 만약 한국 내의 일본인이 피해를 입는다면 자위대가 구출수송 작전을 수행할 수 있다.[40] 사실 일본인넷 우익들이 간절히 바라는 것이지만 실제로 일어날 확률은 거의 0%.[41] 물론 독도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북한 또한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에 대해 매우 부정적이다.[42] 북한은 2002 한일 월드컵 도중 제2연평해전을 도발하고 2006년 독일 월드컵 도중에는 미사일 시험발사로 국제 경기대회 분위기를 험악케 한 전력이 있다.[43] 다만 댓글의 분위기들은 우방인 '조선'을 유사시 돕자는 의견도 있지만, 전체주의 문제집단인 김씨 왕조를 이제는 중국도 포기하자는 의견도 상당하다.[44] 사실 이러한 얘기가 흘러나오는 것은 중국의 립서비스일 가능성이 높다. 북한이 국제 사회에서 물의를 일으킬수록 중국에게 부담되는 것이 사실이지만, 중국은 어떠한 대가를 치르더라도 북한을 포기할 의향이 없다. 단지 그러면서 미국과 일본을 견제하기 위해 한국편을 드는 척 하는 것이다. 북한을 포기할 생각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지금 당장 북한에 무상 공급 중인 식량과 원유를 끊는다면 북한은 정말 버티지 못할 것이지만 중국은 이러한 제재를 가할 생각조차 없다. 기껏해야 하는 거라곤 중국 내 북한 대사관을 불러 항의하는 수준...다만 중국 정부와 달리 중국 국민들 사이에서는 계속 미쳐 날뛰는 북한에 대한 반감이 커지고 있는 건 사실이긴 하다.[45] 참고로 작가는 덴마크인이다.[46] 이 경우 한국으로서는 연평도 포격이나 천안함 공격보다 대응하기가 더 힘들다. 천안함 격침은 잠수함을 동원한 기습공격이기에 전면전 사유가 되고, 연평도는 민간인까지 피해를 본 거라 미국이 막아서지 않았으면 평양을 공격해도 할 말이 없었다. 반면 DMZ에서 한국군 방어병력 일부를 몰살하고 빠져나가는 것은 순수하게 대놓고 군사적 국지전만을 노린 거라 미국이 오히려 연평도보다 더 강하게 막아설 공산이 크다.[47] 2020년까지 투입될 총예산을 621조 원에서 599조 원으로 조정했다.[48] 노무현 대통령이 자주국방을 표방하느라 미군의 역할 축소, 전작권 전환을 대비하기 위한 국방력 강화안이 국방계획 2020이다. 자세한 것은 항목 참조[49] 다만, 여기에 대해선 높으신 분들의 사정이 있는 듯. 자세한 내용은 아래 항목에.[50] 민감한 사안인 만큼 당연히 해석의 차이도 존재하는데, 미국의 법률해석 견해는, CODA에 명기된 사항에 한해서는 한국이 군사작전권의 소유권 자체를 양도 또는 이전했다고 보는 취지이며, 한국의 법률해석 견해는, 한국이 군사작전권의 소유권은 그대로 보유하고 있으며, 다만 미국에 위임을 했다는 취지이다.[51] 전사한 두 해병대원 출신이 호남권임을 트집잡아 지역드립 및 "빨갱이들끼리 팀킬"이라는 개념없는 이야기도 튀어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