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변 조선족 자치주

최근 수정 시각:

연변 조선족 자치주 (지린성)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604px-Location_of_Yanbian_Prefecture_within_Jilin_%28China%29.png

1. 개요2. 예하 행정구역3. 인구4.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延边朝鲜族自治州 / 延邊朝鮮族自治州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530px-Yanbian-map.png
연변(延邊, Yánbían, 옌볜) 조선족 자치주는 중국 지린성의 행정 구역으로, 지급시에 상당한다. 주도(州都)는 옌지 시(延吉)이며, 면적 43,474km²이다. 인구는 2010년 기준으로 227만 1,600명이며, 인구 중에서는 한족이 64%, 조선족이 32%, 만주족이 2%를 차지한다. 조선족도 줄어들고 만주족은 없고

북쪽에 위치하여 기후는 추운 편이다. 연길의 1월 평균기온은 -13.6℃이며, 7월 평균기온은 21.5℃이다.# 연강수량은 528mm로 적은 편. 서북쪽 둔화의 경우 더 추워서 1월 평균기온이 -16.6℃에 달해 중강진(-16.1℃)과 비슷한 수준. 기후 상황은 한반도와 비슷한 편인데, 한반도에서 비가 오는 날에는 여기도 십중팔구 비가 오고, 한반도에 한파가 몰려오는 기간에는 여기도 추위에 시달린다.

일제강점기간도(間島)라고 불렸던 지역으로 만주국 때 간도성이 설치됐다. 만주국(1932-45)과 중화민국 시대(1945-49)에 연변의 여타 지역은 간도성/송강성에 속해 있었으나, 돈화는 길림성에 속했었다.

중공 수립 직후인 1952년 9월 3일[1] 조선족자치구가 되었다. 6.25 전쟁에서 북한군의 주력으로, 그리고 중공군에 참전하여 북한 공산정권을 위해 숱한 피를 흘렸는데 1952년 설립된 연변조선족자치구(延边朝鲜族自治區)가 전후 1955년 조선족이 극히 드문 돈화가 편입되며 연변조선족자치주(延边朝鲜族自治州)로 격하된 것.[2] 중국은 소수민족 자치구역으로 자치구가 1급이고 자치주가 2급이다. 비록 조선족자치구가 위구르티베트, 내몽골 자치구와 같은 동급의 자치구역은 아니었다고는 하나 명칭뿐이더라도 내려앉은 것.

돈화를 제외하면 조선족의 비율이 50% 정도이다. 자치주는 기본적으로 소수민족 비율이 30% 이상이어야 지정되는데, 나 혼자 산다에서 김광규백두산 방문했을 때 가이드가 직접 언급한 바로는 "줄어드는 인구로 인해 수십 년 이후에는 자치주가 사라질 수도 있다"고 한다.[3] 조선족의 출산율은 저출산 문제가 심각하다는 한국보다도 낮은데, 2010년 기준으로 조선족의 합계 출산율이 0.98이었다. 1990년대까지 출산율이 그리 낮지는 않았지만[4], 이촌향도의 영향으로 출산율이 급속하게 줄어든 것이다. 동북 3성 자체가 극도의 저출산과 고령화, 타지역으로의 인구 유출로 중국 내에서도 인구가 감소하고 있는 지역으로 손꼽히지만 연변은 그 정도가 심한 편이다.

연변 지역의 소득 수준은 상위권이었지만 공업이 별로 발달하지 않았다. 연변 지역이 중국 대도시와는 상당히 멀리 떨어져있고, 공장이 들어서기에도 중국 내 단둥 같은 주요 항구로부터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 별로 메리트가 없기 때문이다. 북한과 인접해있다는 것이 그나마 연길이 가진 메리트라 할 수 있었지만[5] 폐쇄된 북한의 상황 때문에 북한의 항구를 쓰기 쉽지 않고 설상가상으로 90년대 이후에는 북한의 구매력이 형편없어지면서 공업의 발달이 지체되었다. 아울러 개혁개방이 본격적으로 진행된 이후로부터 많은 조선족들이 돈을 벌려고 남한이나 중국 내에 있는 대도시로 일하러 가서 인구도 감소했고, 공업의 발전이 이루어질래야 이루어질 수 없었다. 도시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60년대 한국 풍경이 펼쳐질 정도이다.

중화인민공화국에서는 최동남단의 혼춘(琿春)을 동북 지역에서 바다로 나가는 창구로 여기며 개발을 진행하고 있으며, 러시아의 크라스키노 - 블라디보스토크, 우수리스크 등 러시아 극동지역 도시로의 육로 이동도 가능하다. 물론 그 반대의 경우도 가능.

연변 곳곳의 가게들을 보면 간판에 한글을 위에 쓰고 아래에 중국어를 병기한 경우나 좌우로 한글과 중국어를 병기해 놓은 곳이 많은데, 간판에 한글을 써 넣지 않으면 가게 허가가 안 나기 때문이라고 한다. 조선족이 운영하는 곳은 남한식의 세련된 폰트나 북한 폰트, 한족이 운양하는 곳은 굴림체나 돋움체, 궁서체 계열을 많이 쓴다. 자치주 외에서도 조선족이 많이 사는 하얼빈, 무단장 등의 도시 일부 지역에서 이러한 간판 형태가 발견되기도 한다. 그리고 훈춘의 경우 러시아 접경으로 러시아어 - 한국어 - 중국어의 3개 언어 병기를 볼 수 있으며 이 곳 조선족들은 러시아어를 섞어 쓴다.[6]

어쨌거나 한국과 이래저래 교류가 많고[7] 경제적, 문화적, 사회적으로도 한국의 깊은 영향을 받는 지역이지만, 한국 영사관은 설치되어 있지 않다. 그래서 연변 주민들이 한국행 비자를 발급받으려면 영사관이 설치되어있는 선양까지 가야 한다. 가까워 보여도 서울~부산 거리 그 이상이다.

아울러 북한 입장에서는 매우 중요한 창구이다. 북한 제조업은 90년대 고난의 행군으로 대차게 타격을 입으면서 주요 소비재들이 중국을 통해서 수입되고 있고, 아울러 북한경제가 장마당 위주로 돌아다니게 되면서 장마당 경제를 쥐락펴락하고 있는 돈주들의 돈줄 상당수도 연변과 맞닿아있기 때문이며 남한 소식들이나 영상매채들도 연변을 통해서 유통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중요한 창구가 아닐수가 없는것이다. 주로 함경도 일대의 유통을 책임지는 역할을 한다. 평안도쪽은 랴오닝성과 맞닿아있으니까 그렇다

최근에는 북한의 핵실험으로 방사능 유출에 대한 불안감이 심화되자 방사능 오염에 대한 검사를 하고 있다.# 다만 생각보다 별볼일 없는 듯.

2. 예하 행정구역[편집]

연변 조선족 자치주의 행정구역

[ 펼치기 · 접기 ]

밑줄은 최대 도시이다.

6개 현급시, 2개 현이 있다. 연길, 용정, 도문은 중국 치고는 행정구역 면적이 작은 편.

3. 인구[편집]

  • 볼드체는 주도.

도시명

총인구

조선족 인구 (명)

조선족 인구비율

연변

옌지 시

410,000

200,000

48.8%

용정 시

250,000

190,000

76%

화룡 시

210,000

152,000

72.4%

도문 시

130,000

82.000

63.1%

혼춘 시

220,000

80,000

36.4%

돈화 시

480,000

22,000

4.6%

안도 현

210,000

52,000

24.8%

왕청 현

250,000

85,000

34%

= 총합 2,160,000명 인구 중 조선족은 863,000명(40%)
총인구는 2003년 추정치. 조선족 인구 기준 연도는 추가바람. 조선족 비율은 총인구와 조선족 인구가 같은 해에 측정되었다고 가정, 산출했다.

4. 관련 문서[편집]

[1] 소위 구삼절(九三節). 자치주 차원의 공휴일.[2] 돈화의 편입은 조선족자치주를 약화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돈화지역은 자치주의 다른 지역과 달리 조선족이 거의 살고 있지 않은 지역이었기 때문이다.[3] 원칙적으로는 그렇다고 하지만, 소수민족 비율이 낮은 자치주들도 찾아보면 얼마든지 있다. 신장 위구르 자치구에 위치한 창지 회족 자치주(昌吉回族自治州)의 경우 1954년 자치주로 설정되었으나, 2010년 기준으로 회족의 비율은 9%, 위구르족의 비율은 4%에 불과하고 인구의 75%가 한족이다. 실제 중국에서 폐지되는 자치 지역의 경우 소수민족의 비중이 적다기보다는 상위 행정구역으로 승격하거나, 혹은 주변 대도시에 편입되는 경우이다.[4] 통계상으로 보면 1999년까지 출산율이 2명대에 달했다.[5] 그래서 1990년대 한중수교 이전까지 북한과의 교류가 꽤 빈번했다고 한다. 이때에는 중국/경제 상황이 별로 좋지 않았고 북한의 공업화가 진전되던 상황이라 북한제 물품이 중국제 물품보다 훨씬 품질이 좋아서 북한물품이 연변 각지에서 돌아다니던 시절도 있었다고 한다. 그렇지만 1980년대 이후로 북한이 점차 쇠퇴되고 1990년대 와서 한중수교로 교류길이 열리면서 상황이 완전히 뒤바뀌게 된 것. 물론 현재도 북한과의 교류는 어느정도 있는 편이고 북한으로 중국제 물품이나 남한제 물품을 수출하는 일종의 창구역할을 하고있지만 그래도 남한과의 교류가 더 활발한 상황이다 그래도 북한내에서 남한소식을 듣거나 중국산 공산품이 반입되는 통로이기에 북한 입장에서는 연변과의 교류가 매우 중요하다.[6] 조선족들의 외래어 차용어는 중국어를 제외하면 대개 러시아어 차용어들이며 일제강점기를 겪은 세대들은 일본어의 영향도 받고 있다. 영어 차용어와 일부 불어 차용어가 존재하는 남한식 한국어와 달라 서로 말이 안 통하기도 한다. 애초에 동북 방언에 중국어와 러시아어 차용어들이 많다. 뭐 근래에는 남한식 한국어의 영향도 점점 많아지는 추세지만.[7] 과거 1980년대까지만 해도 남한 출신들이 괄시를 받는 경향이 있었다고는 하나, 1990년대 이후로는 남한에 친척이 있는 조선족들이 상대적으로 수월하게 한국에 취직하며 사정이 뒤집혀졌다.[8] 토문이라고 불리기도 함.[9] 한국 한자음으로는 혼춘이나, 조선족들은 중국음으로 훈춘으로 표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