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튼 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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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r Elton John
C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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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

2017년

본명

엘튼 허큘리스 존 (Elton Hercules John)

개명 전

레지널드 케네스 드와이트 (Reginald Kenneth Dwight)

국적

영국 파일:영국 국기.png

출생

1947년 3월 25일, 잉글랜드 런던 피너

작위

기사 (Knight Bachelor)

직업

음악가, 작곡가, 프로듀서, 기획자, 사회운동가, 사업가, DJ

활동

1961년~

데뷔

1968년 싱글 〈I've Been Loving You
1969년 1집 《Empty Sky

악기

보컬, 건반 악기, 기타

장르

, , 피아노 록, 팝 록, 소프트 록, 리듬 앤 블루스, 컨트리 록, 포크 록, 글램 록, 로큰롤, 심포니 록, 영화 음악, 뮤지컬

별명

Rocket Man, Captain Fantastic

레이블

아일랜드 레코드, 머큐리 레코드

소속사

로켓 엔터테인먼트 그룹

서명

파일:external/eltonjohnmusicislove.lalique.com/ej-signature-black.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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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크

공식 홈페이지, EJAF,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png 파일:트위터 아이콘.png 파일:페이스북 아이콘.png 파일:external/0d7dacf4064a61547c6cfdd2ac49356d6281a58f3f212d62e34db6f40eda60e4.jpg 파일:external/upgradetest.sioutreach.org/youtube.png

민족

영국인

신장

172cm

거주

영국 잉글랜드 버크셔 주 윈저
영국 잉글랜드 런던
미국 캘리포니아로스앤젤레스
미국 조지아애틀랜타
프랑스 니스 리비에라

학력

피너 우드 초등학교 (졸업)
피너 사립학교 (졸업)
피너 카운티 문법학교 (중퇴)
왕립음악원 (중퇴)

소속

콜벳스 (1961-1962)
블루솔로지 (1962-1967)
브레드 앤 비어 밴드 (1968-1969)

종교

무종교

재산

$480 Million(약 5천억 원)[1]

가족

친증고조할아버지 로버트 드와이트 (1750-1830)
친증고조할머니 불명 (17??-18??)
친증증조할아버지 제임스 드와이트 1세 (1785-1858)
친증증조할머니 소피아 드와이트[2] (1794-18??)
친고조할아버지 제임스 드와이트 2세 (1821-1888)
친고조할머니 제인 드와이트[3] (1824-18??)
증종조모 새라 제인 드와이트[4] (1853-1922)
증종조모 엘리자베스 드와이트(1856-19??)
친증조할아버지 윌리엄 드와이트 (1848-1910)
친증조할머니 메리 앤 드와이트[5] (1848-1880)
증종조모 메리 앤 드와이트 (1847-1905)
증종조부 조지 드와이트 (1859-19??)
증종조모 에밀리 드와이트 (1862-19??)
이복 종조부 앨프레드 드와이트 (1877-1977)
이복 종조부 프레더릭 드와이트 (1879-1958)
친할아버지 에드윈 드와이트 1세 (1883-1958)
친할머니 엘런 드와이트[6] (1888-1950s)
종조모 앨리스 조지아나 드와이트 (1886-1930)
종조부 앨버트 존 드와이트 (1890-1892)
종조모 그루트루드 에디트 드와이트 (1892-1968)
외할아버지 프레더릭 조지 해리스 (1899-1952)
외할머니 아이비 해리스[7] (1899-1995)
친삼촌 프레더릭 윌리엄 드와이트 (1906-1907)
친삼촌 에드윈 조지 드와이트 2세 (1909-1943)
친삼촌 데니스 드와이트 (1911-1971)
고모 아이비 드와이트[8] (1913-1973)
친삼촌 퍼시 드와이트 (1916-1992)
이모 윈 해리스 (19??-)
외삼촌 레지 해리스 (19??-)
사촌 로이스턴 에드워드 드와이트[9] (1933-2002)
사촌 조앤 드와이트 (19??-)
사촌 캐스 드와이트 (19??-)
이복동생 스탠리 E 드와이트 2세 (1964-)
이복동생 로버트 A 드와이트 (1965-)
이복동생 제프리 윌리엄 드와이트 (1966-)
이복동생 사이먼 매슈 드와이트 (1969-)

부모

스탠리 드와이트 1세 (1925-1991)
실라 에일린 페어브라더[10] (1925-2017)
계부 프레드 페어브라더 (1919-2010)
계모 에드나 M 드와이트[11] (1929-)

배우자

레나테 블라우엘 (1984-1988) / (1953-)
데이빗 제임스 퍼니시 (2014-) / (1962-)

자녀

장남 재커리 잭슨 리번 퍼니시존 (2010-)
차남 일라이저 조지프 대니얼 퍼니시존 (2013-)

1. 개요2. 상세3. 경력4. 음악
4.1. 보컬4.2. 악기4.3. 작사가
4.3.1. 버니 토핀4.3.2. 게리 오스번4.3.3. 팀 라이스
4.4. 오해
5. 공연
5.1. 무대 의상5.2. 솔로 공연5.3. 내한 공연5.4. 엘튼 존 밴드
6. 개인사
6.1. 관련 인물
7. 자선 활동8. 로켓 엔터테인먼트9. 대중매체에서10. 학력11. 수상 및 서훈내역12. 디스코그래피13. 필모그래피14. 관련 저서15. 외부 링크16. 같이 보기

1. 개요[편집]

엘튼 허큘리스 존 경(Sir Elton Hercules John, CBE)은 영국가수/작곡가, 피아니스트, 프로듀서, 사회운동가, 사업가, 기획자, DJ, 왓포드 FC 前 회장 / 現 명예 회장이자 종신 명예 회장이다. 1947년 3월 25일[12] 잉글랜드 런던 북서부 피너에서 태어났다.[13] 개명 전 이름은 레지널드 케네스 드와이트(Reginald Kenneth Dwight)였다.[14]

2. 상세[편집]

반세기가 넘는 세월 동안 수많은 음반들을 발표하며 대중성과 음악성을 동시에 거머쥔 살아있는 전설이자 영미권 음악계에서 거목으로 평가받는 팝 록 음악가 중 하나이다. 피아노를 기반하는 음악 위주로 작곡하면서 록/팝 음악을 포함하여 장르를 가리지 않고 수준 높은 음악을 만들어내 끊임없는 창작력을 보여주고 있으며, 대표적인 록 피아니스트 중 하나로도 꼽힌다. 그를 통칭하는 별명들로 Rocket Man, Captain Fantastic이 있다. 엘튼 존 음악에서 작사를 맡고 있는 영국의 작사가이자 엘튼 존의 음악 동반자 버니 토핀과 함께 1967년 6월 17일부터 반세기가 넘는 세월 동안 장기간의 작사/작곡 협업을 이루고 있다.[15]

비틀즈, 마이클 잭슨, 엘비스 프레슬리에 이어 세계에서 가장 많은 음반 판매량을 기록한 음악가 4위이자 가장 많은 음반 판매량을 기록한 영국 솔로 음악가 1위로 공인 집계되었다. 공인된 음반 판매량이 1억 8,000만 장을 넘고, 비공식 기록까지 합치면 2억 5,000만~3억 장에 이른다. 미국에서 1억 2,900만 장 이상, 영국에서 2,200만 장 이상의 음반 판매를 거둔 걸로 공인 집계되었다.[16]

1961년, 14살에 친구들과 함께 로큰롤/블루스를 연주하는 아마추어 밴드 <콜벳스>(The Corvettes)를 결성했고 1년간 피너 지역을 중점으로 활동하다가 1962년에 해체했다.[17] 그로부터 6개월 뒤, 기존의 멤버들과 함께 리듬 앤 블루스 밴드 <블루솔로지>(Bluesology)로 재탄생하면서 영국, 스코틀랜드, 독일, 프랑스, 스웨덴 등 유럽 각지에서 순회공연을 진행했고 1965년 7월부터 1967년 10월까지 2년간 3장의 싱글 Come Back Baby, Mr Frantic, Since I Found You Baby를 연달아 발매했다.[18] 1967년 6월 17일, 버니 토핀과 작사/작곡 협업을 시작하면서 솔로로서 활동하기 시작했고 블루솔로지는 5년간의 활동을 끝으로 1967년 12월 말에 탈퇴했다.[19] 1968년 3월 1일, 첫 솔로 싱글 I've Been Loving You를 발매했고 1년 뒤 1969년 6월 3일, 정규 1집 Empty Sky를 발매하면서 솔로 음악가로 데뷔했다.[20]

통상적으로 솔로 음악가의 데뷔 연도는 1집 정규 앨범 발매 시점으로 치기 때문에, 첫 솔로 싱글 I've Been Loving You가 발매된 1968년이 아니라 1집 Empty Sky가 발매된 1969년을 데뷔 연도로 본다.[21] 반면, 음악 활동 시작 시기는 <콜벳스>를 결성한 1961년이다. 콜벳스의 후속 밴드 <블루솔로지>를 결성하고 3년 뒤 1965년 7월 23일 발매된 블루솔로지의 첫 싱글 Come Back Baby는 음악 인생의 시작을 알리는 곡인 건 맞으나, 엘튼 존으로 활동하기 3년 전에 발매된 곡이고 개명 전 이름 레지 드와이트와 블루솔로지 명의로 발매된 싱글이라서 정식 데뷔 싱글은 아니다.[22]

지금의 이름 엘튼 존(Elton John)은 1966년부터 1968년까지 2년간 활동하던 <블루솔로지>의 색소포니스트 멤버 '엘튼 딘'(Elton Dean), 1966년부터 1967년까지 <블루솔로지>와 함께 카바레 투어를 진행했던 영국의 블루스 가수이자 엘튼 존과 절친했던 '롱 존 볼드리'(Long John Baldry)의 이름을 따와서 지었다. 1968년 3월 1일 발매된 첫 솔로 싱글 I've Been Loving You 음반에 표기할 이름으로 정했던 것으로, <블루솔로지>를 탈퇴하면서 당사자들의 허락을 맡고 이것을 예명으로 선택해 그대로 사용하기 시작했다.[23] 1967년 12월부터 4년간 예명으로 사용하다가 1972년 1월 7일, 엘튼 허큘리스 존(Elton Hercules John)으로 법적 개명했고 레지널드 케네스 드와이트는 과거 이름이 되었다.[24][25] 허큘리스는 1962년부터 1974년까지 영국에서 방영되었던 인기 시트콤 <스텝토 앤 선>의 등장 (馬)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26][27][28]

엘튼 존은 작사를 하지 않기 때문에 싱어송라이터가 아니고 가수/작곡가(singer and composer)로 분류된다. 싱어송라이터의 정의에 따르면, 작곡뿐 아니라 작사까지 꾸준히 겸해야 엄격한 의미의 싱어송라이터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1967~68년 상근 작곡가로 활동하던 시절[29] 때 엘튼 존이 작사까지 맡은 곡들이 상당수 되며 무명 시절 이후에도 가끔씩 작사에 기여한 경우가 꽤 있어서 넓은 의미로 싱어송라이터로도 분류된다.

별명과 필명들이 굉장히 많다. 대표적인 별명들로 Rocket Man, Captain Fantastic이 있다. 엘튼 존은 자신이 백 보컬/건반 연주 피처링으로 참여한 음반과, 동료 음악가들에게 곡을 주었을 때 작곡가 크레디트, 싱글 B면 수록곡 크레디트를 본명이 아니라 다양한 필명을 표기하기도 했는데 해당하는 필명들로 Lord Choc Ice, Ann Orson, Dinah Card, Nancy Treadlight, Rockaday Johnnie, Tripe, Argosy, Sol En Si 등 있다.[30] 라이벌 기믹으로 유명한 절친 로드 스튜어트는 1970년대 후반부터 엘튼 존을 '샤론'(Sharon)으로 부르고 엘튼 존은 로드 스튜어트를 '필리스'(Phyllis)로 부르면서 지내고 있다.[31]

2018년 기준으로 공식적으로 발매된 음반들은 총 71장이다. 정규 앨범 32장, 사운드트랙 음반 8장, 라이브 앨범 4장, 컴필레이션 앨범 21장, EP 2장, 리믹스 앨범 1장, 헌정 앨범 3장을 모두 포함한 결과다. 싱글은 솔로, 듀엣, 블루솔로지, 피처링, 프로모션 싱글 등을 포함하면 150장을 넘긴다. 2018년 4월 기준으로, 공식적으로 발매된 곡들은 총 732곡이다. 라이브 실황을 제외한 솔로 명의, 듀엣, 피처링, 블루솔로지 등을 포함한 결과이며 작곡을 맡은 곡은 538곡이고 그중 버니 토핀과 작업한 곡은 396곡이다.[32][33] 엘튼 존이 작곡한 곡들은 미발매 곡들도 포함하면 1,000곡을 가뿐히 넘는다.[34]

가장 많은 판매량을 기록한 엘튼 존의 앨범들로, 전 세계적으로 3천만 장 이상의 판매를 거둔 1973년 7집 Goodbye Yellow Brick Road,[35] 2천 4백만 장의 판매를 거둔 1974년 컴필레이션 앨범 Elton John's Greatest Hits, 1천 8백만 장의 판매를 거둔 1994년 The Lion King 사운드트랙이 있다. 라이온 킹 사운드트랙의 경우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판매량을 기록한 애니메이션 사운드트랙 앨범이기도 하다.[36][37][38]

미국에서 가장 많은 판매량을 기록한 앨범은 플래티넘 17장(17,000,000장)을 기록한 1974년 컴필레이션 앨범 Elton John's Greatest Hits이며 정규 앨범으로는 플래티넘 8장(8,000,000장)을 기록한 1973년 7집 Goodbye Yellow Brick Road이다.[39][40]

영국에서 가장 많은 판매량을 기록한 앨범은 플래티넘 9장(2,700,000장)을 기록한 1990년 컴필레이션 앨범 The Very Best Of Elton John이며 정규 앨범으로는 플래티넘 3장(900,000장)을 기록한 1989년 22집 Sleeping With The Past이다.[41][42]

1970년 10월 26일 발매된 Your Song부터 2000년 4월 9일 발매된 "Someday Out Of The Blue"까지 30년간 한 해도 빠짐없이 빌보드 싱글 차트(핫 100)에서 매년 마다 50위 진입 히트곡들을 꾸준히 발매한 연속 기록을 가지고 있다. 싱글 차트 40위권에 진입한 곡들은 총 58곡이고 1위로 오른 곡은 9곡이다.[43][44] 첫 빌보드 싱글 차트 진입 곡은 1970년 3월 20일 발매되고 그해 8월 15일에 진입하여 92위로 기록된 Border Song이고 그 후로 발매된 솔로 싱글들과 듀엣, 그룹, 피처링 등을 모두 포함하여 총 70곡이 빌보드 싱글 차트에 진입했다.[45]

1970년대 빌보드 싱글 차트에서 비 지스에 이어 1위 곡을 가장 많이 기록한 음악가 2위(6곡)이자 비 지스, 로드 스튜어트에 이어 빌보드 총 결산 음악가 3위(15주), 가장 많은 10위 진입 히트곡을 가진 음악가 1위(16곡)로 이름을 올렸다.[46] 빌보드 싱글 차트에서 가장 많은 10위 진입 히트곡들을 가진 음악가 6위(27곡)로 재닛 잭슨, 머라이어 캐리, 리아나와 동률이다. 그리고 엘비스 프레슬리, 릴 웨인, 드레이크에 이어 빌보드 싱글 차트에서 총 57곡의 40위 진입 히트곡들을 내며, 가장 많은 40위 진입 히트곡들을 가진 음악가 4위(57곡)로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47]

빌보드 앨범 차트에는 정규 32장, 사운드트랙 4장, 라이브 4장, 컴필레이션 8장, EP 1장, 총 49장이 진입했다. 정규, 비정규를 포함하여 20장이 10위권에 진입했다.[48][49] 1970년대 빌보드 앨범 차트(빌보드 200)에서 1위를 가장 많이 기록한 음악가이자 2015년 기준으로 빌보드 200에서 가장 많은 1위를 기록한 음악가 7위로 이름을 올렸다.[50][51] 1972년 5집 Honky Château, 1973년 6집 Don't Shoot Me I'm Only The Piano Player, 1973년 7집 Goodbye Yellow Brick Road, 1974년 8집 Caribou, 1975년 9집 Captain Fantastic And The Brown Dirt Cowboy, 1975년 10집 Rock Of The Westies까지의 연속 기록과 1974년 Elton John's Greatest Hits까지 포함해 총 7장이 1위에 올랐고, 1970년대 이후로 발매된 앨범들 중에서 1994년 라이온 킹의 사운드트랙 앨범 The Lion King을 합산해서 총 8장이다.[52]

1970년대 가장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던 음악가 중 하나였는데, 이를 증명할 수 있듯이 빌보드 앨범 차트 역사상 최초로 "1위 데뷔(Hot shot debut)"를 이룬 음악가로 이름을 올렸다. 1975년 5월 발매된 9집 Captain Fantastic And The Brown Dirt Cowboy의 기록이고 7주 동안 1위로 기록되었다.[53] 두 번째 기록도 같은 해 10월 발매된 10집 Rock Of The Westies가 세웠다.[54] 이후 빌보드 200 차트 데뷔 1위의 세 번째 기록은 1976년 9월 발매된 스티비 원더의 18집 《Songs in the Key of Life》가 세웠다.[55] 싱글 차트에서 최초로 데뷔 1위 기록을 세운 곡은 1995년 8월 발매된 마이클 잭슨의 "You Are Not Alone"이다.[56]

빌보드 어덜트 컨템포러리 차트에서 1위 곡을 가장 많이 올린 음악가이자 가장 많은 곡들을 진입시킨 음악가다. 총 75곡이 진입되었으며 17곡이 1위로 올랐다.[57][58] 2위는 1위 15곡의 카펜터스, 진입한 64곡을 가진 바브라 스트라이샌드.[59] 어덜트 컨템포러리라고 해서 한국의 성인가요를 연상하면 안 되는 것이, 1990년대에는 R&B가 이 차트에서 인기를 얻었고 2000년대에는 전자음악의 요소를 지닌 곡들, 인디 록 음악도 수시로 진입하는 등 차트에서는 음악 장르 정의가 모호하다. 록이든 팝이든 경력 있는 음악가들은 이 차트에도 오른다고 봐도 된다.[60]

영국 싱글 차트에 솔로 싱글들과 듀엣, 그룹, 피처링 등을 모두 포함하여 총 98곡이 진입했다. 40위권에 진입한 곡들은 72곡이고 1위로 오른 곡은 8곡이다.[61] 영국 싱글 차트에 진입한 첫 곡은 1970년 10월 26일 발매되어 1971년 1월 23일에 7위로 기록된 Your Song이다.[62] 엘튼 존은 영국 싱글 차트에서 1위 곡을 가장 많이 기록한 음악가 8위(8곡)이자 영국 싱글 차트 총 결산 음악가 12위(23주)이자 싱글 차트에서 가장 많은 10위 진입 히트곡들을 가진 음악가 13위(33곡)로 이름을 올렸다.[63] "Your Song"부터 2009년 Tiny Dancer (Hold Me Closer) (feat. Chipmunk and Elton John)까지의 기록이다.[64][65] 영국 앨범 차트에는 정규 31장, 사운드트랙 1장, 라이브 4장, 컴필레이션 10장, 리믹스 앨범 1장, 총 47장이 영국 앨범 차트에 진입했고 그중에서 32장이 10위권 진입했다.[66]

본고장인 영국과 미국에서의 성공이 크게 각인되어 있지만, 캐나다에서도 영미 못지않게 커다란 성공을 거두었다. 2017년 기준으로 캐나다에서는 약 600만 장의 앨범 판매량을 기록하며 캐나다에서 가장 막대한 성공을 거둔 음악가들 상위권에 항상 오른다. 1970년 Your Song부터 발매된 싱글들 대부분이 싱글 차트[67] 10위 안에 진입했다.[68] 여기서 19곡이 1위로 기록되었다.[69][70][71]

1974년 빌보드 200 연말 차트에서 Goodbye Yellow Brick Road가 1위, 바로 다음해 1975년에 Elton John's Greatest Hits가 연말 결산 차트 1위로 연속 기록되었다. 1957~58년 빌보드 200 연말 결산 차트에서 연속 기록된 Music From My Fair Lady 뮤지컬 앨범, 1962~63년 연속 기록된 West Side Story 사운드트랙 앨범을 제외하면, 솔로 가수로서 연속 기록을 가진 건 엘튼 존이 최초이다.

1975년 전 세계 음반 판매량의 2%가 엘튼 존의 몫이었다.[72]

1979년 5월 1~6일 이스라엘, 21~28일 구소련에서 투어를 진행한 첫 번째 서방국가 록 음악가이며, 구소련에서 앨범을 발매한 첫 서방국가 음악가다.[73][74] 1978년 12집 A Single Man의 제목을 《Elton John Sings' in Russian》으로 변경해서 발매되었다.[75]

1992년 3월, 엘튼 존 에이즈 재단(Elton John AIDS Foundation, EJAF)을 설립한 이후로 사회적 소수자 인권 운동, HIV/에이즈 퇴치 운동에 열심히 참여하고 있다. 자선 활동을 수십 년간 꾸준히 해오면서 수백억의 거금을 기부하는 중이고 1992년 10월 발매된 싱글이자 에이즈로 인해서 세상을 떠난 이들을 추모하는 노래 "The Last Song" 이후로 발매된 모든 싱글들의 수익은 전액 기부한다.[76] 이 재단 주최로 1993년부터 매년 아카데미 시상식 때 함께 개최되는 후속 파티(Elton John AIDS Foundation Academy Awards Viewing Party)의 호스트이기도 하다. 할리우드 인맥의 핵심 인물 중 하나임을 알 수 있다.[77][78]

1992년 버니 토핀과 함께 작곡가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고, 1994년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단독으로 입성했다.[79][80] 2013년 버니 토핀과 함께 작곡가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음악가만이 대상이 되는 특별상 중 최고 권위의 상 조니 머서 어워드(Johnny Mercer Award)를 받았다.[81]

1994년 5월 발매된 라이온 킹의 사운드트랙 앨범 The Lion King은 1994년 미국에서 가장 많은 판매량을 기록한 앨범이다.[82] 이로써 엘튼 존은 1970년대와 1990년대 사이에 미국에서 특정 해마다 가장 높은 판매량을 기록한 앨범을 3장이나 가졌다.[83]

1996년 '음악과 자선활동에 헌신한 공적'을 인정받아 대영제국 훈장 3등급(CBE)을 받았다.[84] 그리고 1998년 신년 서훈 명단에 역시 음악과 자선활동 공훈으로 기사작위(Knight Bachelor) 대상자에 올라, 1998년 2월 24일 '경(Sir)'이 되었다.[85] 엘튼 존은 클리프 리처드(1995년 서임), 폴 매카트니(1997년 서임)에 이어 세 번째로 기사작위를 받은 록 음악가다. 자세한 내용은 대영제국 훈장 문서의 '뮤지션' 문단 참고.

1997년 9월 13일 발매된 다이애나 스펜서 추모곡이자 기존의 Candle In The Wind를 개사한 Candle In The Wind 1997 싱글은 수많은 국가에서 1위로 올랐고 전 세계적으로 3,300만 장의 판매를 기록하여 어마어마한 대성공을 거두었다. 5,000만 장의 판매를 기록한 빙 크로스비의 "White Christmas" 다음으로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이 팔린 싱글이자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CD 싱글, 1950년대 싱글 차트가 생긴 이후로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팔린 싱글로 집게되었다. 이는 기네스북에도 공식적으로 오른 것이다.[86] 미국과 영국 역사상 최초로 단기간에 가장 많이 팔린 싱글이자 동시에 영국에서 가장 많이 팔린 싱글, 미국에서 유일하게 다이아몬드(플래티넘 10장)를 기록한 싱글이기도 하다.[87] "White Christmas"는 1942년 발매된 곡으로 반세기 동안의 판매량을 집계한 것이라서 단기간 내에 집계량을 보자면 "Candle In The Wind 1997"가 가장 많은 판매를 기록한 곡이라고 할 수 있다. 발매 당시 빌보드 싱글 차트에서 14주간 1위로 기록되며, 최장기 1위를 기록한 6번째 곡으로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2004년 롤링 스톤이 선정한 역대 최고의 아티스트 100선에서 엘튼 존은 49위로 올랐다.[88]

2008년 빌보드가 선정한 빌보드 200에서 가장 성공한 음악가 200선에서 5위로 선정되었고 195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의 순위에서 1970년대 1위, 1980년대 10위, 1990년대 9위로 3번이나 선정되었다.[89][90] 그리고 2018년에는 빌보드 핫 100(싱글 차트) 60주년 기념으로 선정한 핫 100에서 가장 성공한 남성 음악가 60선에서 1위로 선정되었다.[91]

2015년 7월 6일, 애플 뮤직 Beats 1에서 라디오 방송 "Rocket Hour"의 진행을 맡아 DJ로 데뷔했다.[92] 본인이 새로운 음악을 접하는 것을 워낙 즐기다 보니 주로 세계 각지의 인디 음악을 소개한다. 해외는 물론이고 한국의 팝/록 음악 마니아들에게까지도 선곡이 좋다고 입소문을 타고 있다. 2017년 6월 5일, 100회를 맞이했다.[93][94]

커밍아웃동성애자이다. 1976년 10월에 양성애자로 커밍아웃했다가 1988년 11월에 동성애자로 커밍아웃했다.[95][96] 자세한 내용은 엘튼 존/개인사 문서의 '커밍아웃' 문단 참고. 2005년 12월 21일, 시민결합이 허용되자 1993년 10월부터 12년간 교제하던 캐나다의 영화 제작자이자 로켓 픽처스의 공동 창립자 데이빗 제임스 퍼니시(David James Furnish)와 함께 법적 파트너가 되었다.[97] 2014년 3월부터 영국과 웨일스에서 동성결혼이 가능해지자 그해 12월 21일 결혼했다.[98] 2010년 12월 25일, 대리모로 통해 장남 "재커리 잭슨 리번 퍼니시존"을 출생했으며 2013년 1월 11일, 같은 대리모로 통해 차남 "일라이저 조지프 대니얼 퍼니시존"을 출생했다.[99][100] 일라이저 출생 3개월 뒤, 엘튼 존과 친한 관계를 이루고 있는 레이디 가가가 그들의 대모(godmother)가 되었다.[101]

왓포드 FC의 열성 팬이다. 팀을 직접 사서 1976~1987년, 1997~2002년 두 차례에 걸쳐 회장을 역임했고 1990년에는 종신 명예 회장으로 임명됐다. 2014년에 홈구장의 스탠드 개축이 이루어지면서 스탠드 중 하나의 이름이 엘튼 존 경 스탠드로 바뀌었다.[102][103]

가장 부유한 영국 음악가 10위 안에 자주 들고 기부도 많이 하는 걸로 알려져 있다. 2014년 약 390억을 기부하면서 기업인을 제외한 영국의 유명인 기부왕으로 꼽혔고 2015년 약 437억을 기부하면서 영국에서 가장 많은 금액을 기부한 유명인 1위로 꼽혔다.[104][105]

남아메리카에서 상당한 인지도를 가지고 있는데 특히 브라질에서의 인기가 대단하다. 유튜브의 엘튼 존 영상들 댓글 절반 이상이 포르투갈어다. 1972년 4월 발매된 Rocket Man 싱글의 히트로 브라질에서 알려지기 시작했는데, 결정적으로 1973년 1월 발매된 Daniel 싱글 B면에 수록된 Skyline Pigeon을 브라질에서만 싱글 A면으로 바꿔서 수록하여 발매되었고 당시 브라질 싱글 차트에서 1위로 기록된 덕분에 커다란 사랑을 받아오고 있다. 1972~75년 사이에 The Ballad Of Danny Bailey (1909-34)가 차트 상위권에 기록된 적 있었다고 하는데 당시 브라질 싱글 차트는 공식적으로 인정받지 않았고 브라질 팬들의 증언들을 제외하면 자료가 별로 없다.[106][107] 브라질을 포함한 남미 국가에서 가장 많은 사랑을 받는 곡은 "Skyline Pigeon"이며, 2000년대 이후로 거의 남미에서만 부르는 남미 전용 레퍼토리가 되었다.[108][109][110] 1990년대 이후로 브라질, 아르헨티나, 페루 등 남미에서 투어를 꾸준히 진행하고 있는데 2010년대 기준으로 공연 반응이 가장 좋은 지역은 북미와 남미이고, 가장 열광적인 반응을 받는 곡은 "Skyline Pigeon"이다.[111][112][113]

3. 경력[편집]

4. 음악[편집]


기본적으로 을 바탕하고 있으며 피아노가 중심을 이루고 있는 구성으로 자신만의 예술성을 강조한 독특한 색채와 다채로움을 지니고 있는 음악이 특징이다. 유년 시절부터 다양한 음악을 듣고 지내온 것과 클래식 음악을 정식으로 교육받으며 전공한 덕에 음악 소양이 탄탄해서 어떤 장르든 자연스럽게 소화할 수 있는 것이 엘튼 존의 가장 큰 장점이다. 블루스, 가스펠에 영향을 받은 강렬한 터치감, 아르페지오와 브로큰 코드, 블루스 릭 위주의 화려한 피아노 연주는 엘튼 존 음악에서 가장 돋보이는 특징으로 꼽힌다. 데뷔 초기 때부터 블루 아이드 소울 풍의 깊은 보컬, 현란한 피아노 연주로 커다란 인상을 주었다.[114][115]

다양한 장르를 시도하면서도 블루스, 소울, 로큰롤에 영향을 받으며 종합시킨 자신의 스타일을 굳건히 유지하고 꾸준한 일관성을 보이는 음악, 단기간 내에 수많은 작품을 만들어내며 끊임없는 창작력으로 잃지 않는 대중성과 상업성, 후배 음악가들과 협업을 자주 선보이고 시대 흐름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새로운 음악을 꾸준히 들으면서 노력하는 것이 정상의 자리를 지켜내는 근원적인 힘이라고 할 수 있다.[116]

비록 엘튼 존은 세계 음악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던 일종의 선구자나 혁명가 역할에 있지 않지만, 무대에서 자주 선보였던 화려한 의상들과 쇼맨십 같은 외적인 요소로 대중에게 즐거움을 주면서도 자신만의 개성을 표출하는 아티스트로서의 역할을 70년대 글램 록 스타들과 함께 커다란 기여를 했고, 미국의 컨트리 록 음악가 리언 러셀과 함께 한동안 반주 악기에 지나지 않았던 피아노를 기타처럼 메인 악기의 위치로 올리며 피아노 록 음악이라는 개념을 세우는데 커다란 영향을 끼친 록 피아니스트라는 평가가 있다.[117] 이러한 요소들로 종합해서 엘튼 존은 영미권 음악을 대표하는 팝 아티스트 중 하나이자 피아노 록의 거장으로 평가받는다.

각각 신인스타로서, 슈퍼스타로서 전성기를 보내게 만든 Your Song, Rocket Man이 대표곡으로 꼽힌다. 음악 정체성 및 시대 배경을 반영한 그 외 대표곡들로 Crocodile Rock, Candle In The Wind, Bennie And The Jets, Goodbye Yellow Brick Road, Saturday Night's Alright For Fighting, "The Bitch Is Back", "I'm Still Standing", "Sacrifice", Circle of Life, I Want Love 정도 있다. 대표곡 반열에 올라가지는 않지만 한국에서 커다란 사랑을 받는 곡들로 We All Fall In Love Sometimes, "Tonight", "Sorry Seems To Be The Hardest Word"가 있다.

그동안 시도한 장르들로 , , 로큰롤,[118] 컨트리 뮤직,[119] 포크,[120] 블루스,[121] 가스펠,[122] 재즈,[123] 소울,[124] 리듬 앤 블루스,[125] 사이키델릭 록,[126] 프로그레시브 록,[127] 하드 록,[128] 글램 록,[129] 얼터너티브 록,[130] 레게,[131] 뉴웨이브,[132] 어덜트 컨템포러리,[133] 일렉트로닉,[134] 댄스,[135] 홍키 통크,[136] 로커빌리,[137] 퓨전 재즈,[138] 블루그레스,[139] 디스코,[140] 클래식,[141] 영화 음악,[142] 뮤지컬,[143] 유로댄스,[144] 신스 팝,[145] 누 디스코,[146] 힙합,[147] 샹송,[148] 뉴잭스윙,[149] 크리스마스 음악,[150] 아일랜드 음악,[151] 북아메리카 민요,[152] 심포니 록,[153] 인스트루멘탈 록,[154] 부기우기,[155] 딕시랜드,[156] 스페이스 팝,[157] 코미디 록,[158] 스탠더드 팝,[159] 필라델피아 소울,[160] 라틴 팝,[161] 댄스 홀,[162] 칼립소,[163] 월드비트,[164] 패션쇼 음악,[165] 결혼식 음악[166] 등 있다.

엘튼 존은 작사를 하지 않는다. 가사는 작사가에게 맡기고 자신은 작곡과 연주를 맡으며 음악 그 자체에만 집중하는 스타일이다. 엘튼 존 음악에서 작사를 맡고 있는 파트너 버니 토핀과의 협업 방식은 다음과 같다. 버니 토핀이 먼저 가사를 쓰고 나서 엘튼 존에게 완성된 가사를 전달하고, 엘튼 존은 가사를 보면서 피아노를 연주하며 선율을 작곡하는 방식으로 곡을 완성시킨다. 한가지 특징이라면, 엘튼 존과 버니 토핀은 절대로 같은 방 안에서 곡들을 작업하지 않는다. 서로의 작사, 작곡에 집중해야하다 보니 같은 장소에 있어도 각방에 들어가며 작업한다. 예를 들면 버니 토핀은 안방에서 가사를 쓰고, 엘튼 존은 거실에서 전달받은 가사를 보며 곡을 작곡하는 형식이다. 다만 예외적으로 2001년 27집 Songs From The West Coast 세션 때에는 각방이 아니라 같은 방에서 함께 곡들을 작업했다고 한다.[167]

이런 협업 방식으로 반세기 동안 꾸준히 이어오고 있고 단기간 내에 수십 곡 이상을 쓴다.[168][169] 버니 토핀은 자신과 엘튼 존의 상황을 묘사한 자전적인 가사, 미국의 대중문화를 기반을 둔 상상력으로 묘사한 가사와 탄탄한 이야기, 내면적인 특징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추상적인 가사, 사회정치적인 가사 등 단지 하나의 주제에서만 정체하는 것이 아닌, 가지각색의 주제를 담으며 가사를 작사하는 것이 특징이다.[170]

하지만 1960년대 무명 시절 때 엘튼 존이 직접 작사까지 맡은 곡들은 수십 곡 정도 있고, 무명 시절 이후에도 가끔씩 작사에 기여한 경우가 꽤 있어서 넓은 의미로 싱어송라이터로 분류되기도 한다. 엘튼 존이 작사에 기여하거나 상당 수의 가사 내용을 직접 쓴 곡들만 따로 골라도 꽤 많다. 해당하는 곡들로 Come Back Baby, Mr Frantic, I've Been Loving You, Here's To The Next Time, 1967~68년 상근 작곡가 시절 곡들,[171] Border Song의 마지막 구절, "Don't Go Breaking My Heart"의 일부, "Sorry Seems To Be The Hardest Word"의 대부분 가사, "The Goaldiggers Song", "Flinstone Boy", "Song For Guy"를 포함한 대부분의 A Single Man 수록곡들,[172] "Cartier", Leather Jackets에서 게리 오스번과 작업한 곡들,[173] "Queen", "Into The Jungle" 등 있다.[174][175][176]

엘튼 존은 가사를 보며 곡을 작곡하는 속도가 아주 빠르다. 한 곡 당 작곡하는데 10~20분 채 걸리지 않는데 Your Song은 20분 만에 작곡되었고, Rocket Man은 10분 만에 작곡, "Sad Songs (Say So Much)"는 4분 만에 작곡되었다. 엘튼 존의 거의 모든 곡들은 전부 이런 방식으로 아주 빠르게 완성되었다.[177][178] 이렇다 보니 방송이나 인터뷰에 출연했을 때 가사를 보면서 즉석으로 곡을 작곡한 적도 있다.

1980년 8월, 평론가 폴 감바치니 인터뷰에서는 폴 감바치니가 존 돈의 시 "No Man Is An Island"(그 누구도 섬은 아니다)를 주면서 곡으로 작곡할 수 있냐고 요청했고 엘튼 존은 시를 보면서 즉석으로 잔잔한 발라드로 작곡해서 불렀다.[179] 1986년 9월 15일, 하워드 스턴 쇼에서 하워드 스턴이 준 가사로 즉석으로 작곡하고 그의 요청대로 "Don't Let The Sun Go Down On Me" 풍의 발라드 "Why Isn't Howard Stern On TV?"로 불렀다.[180] 1997년 9월 14일 영국의 프로그램 〈An Audience..〉 엘튼 존 에피소드에서는 영국의 배우 리처드 E. 그랜트가 준 오븐 설명서를 보면서 뮤직 홀 풍의 경쾌한 곡으로 불렀다.[181] 2005년 10월 16일 〈Inside The Actors Studio〉 게스트 출연분에서는 한 관객이 준 페르귄트를 보면서 비장한 발라드로 불렀다.[182] 이 말고도 몇 곡 정도 더 있다.

앨범을 작업하면서 평균 20곡 정도 작곡하고 녹음 작업도 고작 몇 주 만에 마무리한다. 1973년 6집 Don't Shoot Me I'm Only The Piano Player의 전곡 12곡을 4~5일간 작곡했다.[183][184] 1973년 7집 Goodbye Yellow Brick Road도 버니 토핀은 모든 가사를 쓰는데 2주 반밖에 걸리지 않았고 엘튼 존은 곡을 작곡하는데 15분 밖에 걸리지 않아 합쳐서 전곡 23곡[185]을 작곡하는데 3일밖에 걸리지 않을 정도로 매우 신속히 진행되었다.[186] 이는 노년이 돼서도 여전한데 2013년 31집 The Diving Board의 전곡 18곡을 작곡하고 녹음하는데 2~3일밖에 걸리지 않았다.[187] 다른 작사가와 협업을 가졌을 때에도 마찬가지다. 팀 라이스The Lion King, Aida 뮤지컬과 El Dorado를 작업했을 때 단기간 내에 수십 곡을 작업했고, 리 홀과 함께 Billy Elliot The Musical의 전곡 20곡을 2주 만에 작업했다.[188] 작곡 활동에 워낙 열정적이다 보니 그동안의 행적을 쉽게 종잡을 수 없을 정도라서 폴 매카트니, 데이비드 보위, 엘비스 코스텔로, 프린스, 닐 영, 밥 딜런 등과 더불어 다작하는 일 중독 음악가로도 알려져 있다.[189]

다른 사람들과 함께 곡을 쓴 경우도 꽤 된다. 버니 토핀 다음으로 가장 많은 협업을 선보인 게리 오스번,[190] 팀 라이스[191]가 있고 이어서 케일럽 퀘이,[192] 니키 제임스,[193] 톰 로빈슨,[194] 주디 주크,[195] 셰어,[196] 브루스 로버츠,[197] 크리스 디포드,[198] 리 홀,[199] 스콧 호프먼/제이크 셰어스,[200] 팀발랜드/네이트 힐스/월터 밀샙 3세,[201] 바즈 루어만,[202] 더 킬러스/닐 테넌트,[203] 리언 러셀,[204] 폴 루드닉[205]이 있다.

영어가 아닌 다른 언어들 중에서 프랑스어로 노래 부른 적 있다. 프랑스 갈과 듀엣으로 부른 1980년 "Les Aveux", "Donner Pour Donner", 1981년 "Nobody Wins"의 프랑스어 버전 "J’veux D’la Tendresse", 샤를 아즈나부르와 듀엣으로 부른 2008년 "Heir Encore", <이글스 오브 데스 메탈>의 곡을 발라드로 편곡해서 커버한 2016년 "I Love You All The Time"이 있다.[206] 엘튼 존은 프랑스어를 꽤 유창하게 하는 편이다. 1976년 11집 Blue Moves, 1978년 12집 A Single Man의 성공 덕분에 프랑스에서 엘튼 존의 인지도가 높아진 1970년대 후반 이후로 프랑스로 방문하면 주로 프랑스어를 사용한다.[207]

엘튼 존은 특히 컨트리 음악에 각별한 애착을 보이는데,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가수 중 하나로 미국의 컨트리 싱어송라이터 짐 리브스(1923~1964)를 꼽았다.[208] 엘튼 존은 십대 시절이던 1961~62년, 술집 피아니스트로 일했을 때 짐 리브스 곡들을 자주 불렀고 버니 토핀과 협업을 가진 계기가 되었던 1967년 <리버티 음반사> 오디션에서 부르려고 고른 5곡도 전부 짐 리브스의 곡들이다.[209] 1979년 A Single Man 투어에서는 짐 리브스의 "He'll Have To Go"가 레퍼토리였고, 그 후로 가끔씩 공연에서 부르며 한동안 엘튼 존의 대표적인 커버곡 레퍼토리 중 하나가 되었다.[210]

4.1. 보컬[편집]

독특하면서 개성이 강한 음색과 넓은 음역대를 가지고 있다.[211] 엘튼 존처럼 보컬 변천사가 이렇게나 많은 가수들도 드문데, 시대 별로 비교하면 같은 사람인가 싶을 정도다. 닮은 가수 찾기 힘들 정도로 개성 있는 음색과 블루 아이드 소울의 영향을 받은 특유의 발성으로 인해 모창하기 어려운 가수로도 꼽힌다. 많은 이들에게 떠올리는 엘튼 존의 보컬은 70년대의 카랑카랑한 테너와 90년대의 호소력 짙은 바리톤이다.[212]

가장 높은 음역을 가진 곡은 D6의 음을 기록한 1973년 Social Disease, C6의 음을 기록한 Jamaica Jerk-Off이다. 이 두 곡은 팔세토 애드리브로 이 정도의 음역을 낸 것이고 일반 백 보컬의 경우는 G5의 음을 기록한 1980년 "Two Rooms At The End Of The World"가 있다. 반면 가장 낮은 음역을 가진 곡은 2002년 4월 2일 미국 테네시주 내슈빌에서 라이언 애덤스와 함께 진행된 합동 공연에서 부른 Mona Lisas And Mad Hatters로, 코러스에서 라이언 애덤스와 같이 부르는 부분에서 엘튼 존은 E2의 음을 기록했다.[213][214]

1960~80년대에는 가늘고 카랑카랑하면서 고음 처리가 깔끔했던 보컬이었고 창법은 높은 테너였다. 한창 전성기 시절에는 D6까지 낼 수 있었다. 데뷔 초기 시절에는 리언 러셀의 영향을 많이 받은 미국 억양이 강한 블루스/소울 풍 보컬이었고 1972년부터 고음의 사용이 잦으면서도 한층 간결하고 깔끔해진 보컬로 한동안 창법을 유지했다. 1975년 6월 21일, 웸블리 스타디움 공연에서 부른 "Someone Saved My Life Tonight"과 1976년 9월 17일, 스코틀랜드 에든버러 공연에서 부른 "Someone Saved My Life Tonight"이 높은 테너 보컬을 확인할 수 있는 라이브 버전이다.[215][216]

1977년 10월, The Thom Bell Sessions을 작업하던 시기부터 보컬에 변화를 주기 시작했다. 프로듀서 톰 벨이 엘튼 존에게 노래를 너무 높게 부른다는 점을 지적했는데 보컬 톤을 살짝 낮추면서 소울에 가까운 음색으로 노래를 부르라고 조언했고, 로드 스튜어트는 엘튼 존에게 계집애처럼 노래를 부른다고 농담했다. 엘튼 존은 처음에 이를 무신경하게 넘어갔지만 이후 깨닫게 되면서 창법에 변화를 주었다.[217]

그렇게 변화한 창법을 본격적으로 보여준 시기가 바로 1978년 12집 A Single Man부터였다. 전성기 시절에 비하면 톤을 살짝 낮추었지만 특유의 고음 처리는 여전하고, 더욱 깊으면서 풍부한 울림이 돋보였다. 음악적으로는 침체에 접했어도 보컬 면에서는 오히려 전성기 시절보다 더욱 훌륭했다는 평을 자주 받았다. 그러나 과도했던 약물 중독과 무리하게 이어지던 투어 활동으로 인해 성대에 상당한 악영향을 끼치고 있었다.

1985년 11월부터 1986년 10월까지 진행된 Ice On Fire 투어부터 문제가 생겼는데 고음으로 올라갈 때 목소리가 탁해지고 갈라지는 경향이 커져서 몇 개월 사이에 음역대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1986년 3~4월에는 컨디션에 따라 목 상태가 바꿔져 "Tonight", Rocket Man 같은 일부 곡에서 가성 부분을 생략하고 불렀다. 1986년 8월까지만 해도 비교적 양호했지만 9월부터 목 상태가 급격히 나빠지기 시작하면서 결국 성대결절로 번졌다. 유튜브에 업로드된 1986년 9~11월 Ice On Fire 투어, Tour De Force 투어 공연들 부틀렉을 들어보면 알 수 있는데, 숨이 매우 짧아져 노래를 부르는데 힘겹게 들리며 가성도 거의 사용하지 못했다.[218] 1986년 9월 14일, 뉴욕 매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부른 "Someone Saved My Life Tonight"에서 당시의 보컬 상태를 확인할 수 있다.[219]

1986년 9월 15일 하워드 스턴 라디오 쇼에서 출연했을 당시, 하워드 스턴은 엘튼 존에게 자신이 직접 쓴 가사로 "Don't Let The Sun Go Down On Me" 풍의 곡으로 작곡하라고 요청했다. 그렇게 즉석으로 작곡해서 부른 "Why Isn't Howard Stern On TV?"는 '왜 하워드 스턴이 텔레비전에 나오지 않냐'라는 식의 유쾌한 가사를 가진 곡이다. 4분 33초부터 곡이 절정으로 흐르는데 워낙 긁어서 부르다 보니 엉망진창이 되었다.[220]

길게 잡아도 2년, 짧게 잡아도 5개월 전과 비교하면 변화가 심했는데 목 상태가 가장 안 좋았던 시기는 1986년 11월 5일부터 12월 14일까지 호주에서 Tour De Force 투어를 1개월간 진행했을 때였다. Tour De Force는 멜버른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참여한 대형 투어이며 모든 공연은 30곡 이상의 셋리스트에 3시간이 넘었다. 당시 투어의 지휘자였던 제임스 뉴튼 하워드의 회고에 따르면, 브리즈번에서 첫 공연을 진행하고 3일 뒤 퍼스에서 공연을 진행하기 전에 엘튼 존의 목 상태를 확인했는데 심각할 정도로 악화되어 가벼운 말조차 하지 못했을 정도였다고 한다.[221]

12월 9일 시드니 공연 중, 엘튼 존은 멜버른 심포니 오케스트라를 소개하다 말고 무대에서 쓰러지는 바람에 병원으로 긴급 후송되어 치료를 했고 공연은 중단되었다. 당시 의사는 엘튼 존의 성대 상태를 보고 인후암일지도 모른다고 했고 그가 마약을 했다는 것도 바로 알아챘다. 의사는 공연을 당장 취소하라고 했지만 엘튼 존은 공연 취소 따위는 없다면서 이를 강행하여 12월 14일 시드니 공연까지 무사히 투어를 진행했다.[222] 투어를 진행했을 당시 제임스 뉴튼 하워드는 엘튼 존에게 목 상태가 조금이라도 호전되기 전까지는 노래 부를 때를 제외하고 평소에 자주 말하지 말라고 지시했다.

투어를 마치고 3주 뒤 1987년 1월 5일, 호주 시드니에 위치한 성 빈센트 병원에서 성대 수술을 받았다.[223] 처음에는 인후암일지도 모른다고 했지만 사실 성대에 작은 혹이 붙어있었을 뿐이었다. 당시 병원에서 레이저로 15분간 혹을 떼는 가벼운 수술을 받았다.[224] 그렇게 수술을 마친 엘튼 존은 앞두고 있던 1987년 Leather Jackets 투어의 미국 일정을 모두 취소했고 몇 주 동안 휴식을 가졌다.[225][226]

흔히 알려진 바와 달리, 엘튼 존은 성대 수술 직후에 창법을 바리톤으로 바꾸지 않았다. 1987년부터 1991년까지 약 4년간 테너를 유지하고 있었고 하이톤을 어느 정도 섞어가면서 간드러지는 톤으로 불렀기 때문에 1980년대 초-중반과 유사한 톤이었다. 당시 공연에서 가성을 사용하며 부른 곡들도 있었다.[227] 1991년 후반까지만 해도 1980년대 후반과 유사한 목소리였지만, 1992년을 기준으로 기존의 테너에서 옥타브를 몇 도 내린 낮은 바리톤으로 본격적으로 창법을 바꾸었다. 테너 보컬로 부른 마지막 앨범은 1989년 22집 Sleeping With The Past이며, 바리톤으로 부른 첫 앨범은 23집 The One이다. 이 앨범부터 엘튼 존은 자신의 보컬 톤에 맞는 코드를 사용하면서 곡을 작곡하기 시작했다.[228] 1990년대 초반 이후로 절제 있으면서 한층 깊고 풍부한 울림을 가진 목소리가 되었다. 젊은 시절의 테너 보컬보다 오히려 중-노년 시절의 바리톤 보컬을 선호하는 경우도 꽤 있다. 이후 20년간 바리톤 창법을 변함없이 유지하는 중인데 오히려 세월이 흐를수록 더욱 깊은 역량을 보인다는 평, 흉성의 대가 정도로 평가받는다.

성대 수술 이후로 가성을 완전히 사용하지 못하게 되었다는 오해도 있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다. 1970~80년대에 비하면 옥타브가 많이 낮아지고 상대적으로 가성 사용이 줄어들어서 그렇지, 아예 사용하지 않았다는 건 아니다. 1990년대 이후로 Where To Now St. Peter?, Levon, All The Girls Love Alice, "Philadelphhia Freedom", "I'm Still Standing" 등 가성 파트를 웬만하면 제외하지 않고 그대로 부르는 곡들이 꽤 있다.[229] 1999년 솔로 투어에서 "Elton's Song"의 가성 부분을 무리 없이 깔끔하게 불렀다.[230][231][232]

2000년대 초반에는 비교적 카랑카랑하면서도 울림 있는 톤이었는데 2000년대 중반 이후로 더욱 두터운 톤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엘튼 존은 바리톤 창법을 유지한 건 테너 창법으로 유지했던 시기보다 더욱 많고, 2010년대 시점으로 나이도 있고 해서 1990년대에 비해 더욱 두터운 목소리로 변해서 젊은 시절의 목소리와 차이가 상당히 크다. 목소리 자체가 많이 낮아진 것도 있지만 창법이 창법이니 일부러 톤을 낮게 부르는 면이 크기 때문에 힘 빼고 살짝 톤을 올려서 덤덤하게 부르면 2000년대 초반 정도의 목소리로 돌아가는 기이한 현상을 보인다. 2000년대 후반에서 2010년대 중반까지 고음 부분이 상당히 위태하게 들릴 정도로 음정이 상당히 거칠던 시기도 있었지만 2010년대 후반 부로 음정이 한층 부드러워지고 고음 부분도 한층 안정적이게 들리기 시작하면서 엘튼 존의 목 상태가 오랜만에 좋아졌다는 소리를 듣고 있다.[233]

2010년대 시점으로, 공연에서 곡들을 대부분 원키로 부르고 있고 키를 내려서 부르는 곡은 몇 되지 않는다. Goodbye Yellow Brick Road는 1997년부터 2키 내린 Eb으로 부르고 "Someone Saved My Life Tonight"은 1995년부터 3키 내린 F, "Empty Garden (Hey Hey Johnny)"은 1988년부터 2키 내린 G, Your Sister Can't Twist는 5키 내린 B, "Don't Go Breaking My Heart"는 5키 내린 C로 부른다.[234][235][236][237][238] 이 곡들은 단지 낮아진 보컬 톤에 맞추려고 키를 내려서 부르지만 "Something About The Way You Look Tonight"과 "The Bitch Is Back"은 예외다. 이 두 곡의 경우는 발매 연도부터 각각 1키를 내린 F, G로 부르는데, 블루스 릭 위주의 현란한 피아노 연주를 원키인 플랫 키보다 일반 키로 연주하는 게 더욱 편해서 그렇다. 이런 경우는 플랫 키보다 주로 일반 키로 자주 연주한다.[239][240]

반대로 키를 올려서 부른 경우도 있다. 1993~95년, 1998년 투어에서 1~2키를 내려서 부른 Where To Now St. Peter?, I'm Gonna Be A Teenage Idol, High Flying Bird를 2000~2010년대 투어에서 다시 원키로 불렀다.[241][242][243] Ticking은 1994~95년, 2003~04년 투어에서 F에서 2키를 올린 G로 부르기도 했고 "Gone To Shiloh"는 2010~11년 레이 쿠퍼 2인조 투어에서 Dm에서 2키를 올린 Em로 불렀다.[244][245]

4.2. 악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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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The Million Dollar Piano〉 투어 공연 중인 엘튼 존.

가스펠, 블루스 기법에 영향을 받은 특유의 피아노 연주법을 가지고 있다. 재즈적인 코드 진행에 풍부한 화음을 넣으며 건반을 때리는 강렬한 터치감, 아르페지오와 브로큰 코드, 블루스 릭 위주의 화려한 기교가 돋보인다. 팝/록 음악 계에서 가장 뛰어난 실력을 가진 록 피아니스트 중 한 명이라는 평을 받는다.[246] 3살부터 피아노를 연주하기 시작한 엘튼 존은 유년 시절부터 영국 왕립음악원에 다니며 정식으로 레슨을 받았기 때문에 기본기가 탄탄하며 실력이 월등했는데 10대부터는 자신의 작고 뭉툭한 손으로 제리 리 루이스처럼 연주할 수 없다고 생각하여 자신만의 스타일을 가지기 시작했다.[247]

무명 시절이던 1960년대부터 현란한 연주와 기교를 가진 피아니스트라는 평을 주변인들로부터 받았으며 한창 전성기를 보내던 1970년대에도 특유의 연주로 무대를 장악하였다. 특히 명 공연으로 평가받는 1971년 라이브 앨범 17-11-70에서 그의 과격한 피아노 연주를 확연히 들을 수 있다.

그전에도 뛰어난 실력의 연주자였지만 1979년 A Single Man 투어를 기점으로 본격적으로 특유의 기법을 가지기 시작했다. 1970년대 말을 기점으로 소울에 가까운 음색으로 한층 깊은 톤으로 노래를 부르면서 창법에 변화를 주었고 피아노 연주에도 변화를 주었다. 1979년 투어는 퍼커셔니스트 '레이 쿠퍼'와 둘이서만 진행하는 피아노/타악기 구성의 2인조 공연인데 사실상 메인 악기는 피아노였기 때문에 사운드가 비지 않게 피아노만으로 풍부한 사운드를 내며 무대를 장악하는 실력을 이때부터 더욱 다지기 시작한 것이다. 1979년 실황과 그 이전 연도를 비교하면 상당한 차이가 난다.

무대 피아니스트로서 자질이 뛰어나서 1999년부터 피아노만 구성된 솔로 투어도 20년간 진행했다. 1980년대 이후의 라이브 영상을 보면, 대체로 보컬과 반주가 따로 노는 경향이 잦고 피아노를 갖고 논다.[248][249] 엘튼 존의 피아노 연주는 전반적인 화려한 이미지에 가려진 면이 적지 않아서 '겉만 현란하고 속은 비어있는 연주자'라는 평을 종종 받기도 했고 이 때문에 저평가된 피아니스트로도 재평가받기도 한다.

공연에서는 단 한 곡도 빠짐없이 화려한 피아노 반주를 선보이고 있는데, 5분여의 Bennie And The Jets와 4분여의 Take Me To The Pilot에 즉흥적인 솔로를 추가하며 7~14분으로 더욱 길게 늘려 현란한 연주를 무대에서 보인다. 화려한 피아노 반주를 가진 곡들로 Empty Sky, Amoreena, Burn Down The Mission, Can I Put You On, Levon, Madman Across The Water, Indian Sunset, Honky Cat, Rocket Man, Hercules, Crocodile Rock, Funeral For A Friend/Love Lies Bleeding, This Song Has No Title, Saturday Night's Alright For Fighting, "The Bitch Is Back", "Don't Let The Sun Go Down On Me", Ticking, "Pinball Wizard", "Philadelphia Freedom", "Tonight", "Crazy Water", "I'm Still Standing", "I Guess That's Why They Call It The Blues", "Sad Songs (Say So Much)", "Mona Lisas And Mad Hatters Part II", "I Don't Wanna Go On With You Like That", "Whitewash County", The Wasteland, Dream #3, Wonderful Crazy Night 등 있다.

엘튼 존의 피아노 연주는 밴드 공연 말고도, 레이 쿠퍼와 함께한 2인조 투어와 1999년부터 20년간 전 세계적으로 진행한 솔로 공연에서 그의 진가를 확인할 수 있다. 관련 공연들로 1994년 9월 22일 로스앤젤레스 공연 (with 레이 쿠퍼), 1998년 1월 15일 프랑스 파리 공연, 1999년 9월 1일 스페인 폰테베드라 공연, 1999년 10월 16일 뉴욕 매디슨 스퀘어 가든 공연, 2001년 7월 17일 터키 에베소 공연, 2002년 10월 31일 아랍에미리트 두바이 공연, 2009년 10월 2일 프랑스 파리 공연 (with 레이 쿠퍼) 등 있다.[250][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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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 Goodbye Yellow Brick Road 투어에서.

젊은 시절에는 베히슈타인, 볼드윈, 스타인웨이앤드선스를 사용했고 주로 스타인웨이 그랜드를 사용했다. 1968년부터 클라이브 프랭크스[252]가 한동안 엘튼 존에게 스타인웨이 그랜드를 제공해주었는데 당시 그는 스타인웨이 사에서 직원으로도 일했었다.[253] 클라이브 프랭크스가 엘튼 존과 함께 공동 프로듀싱을 맡던 1978년 12집 A Single Man, 1980년 14집 21 AT 33, 1981년 15집 The Fox를 포함한 1978년부터 1981년까지 발매된 싱글 음반에서는 자신의 성과 스타인웨이 이름으로 사용한 "Frank N. Stein Productions"로 크레디트 되었다.[254]

1988년 Reg Strikes Back 투어부터 1993년 The One 투어까지 롤랜드 전자 피아노를 사용했다. 그러나 1992년 11월 21일 아르헨티나 부에노스 아이레스 공연에서는 공연 시작부터 피아노에 기계적인 문제가 생겼음에도 고치치 못하던 일이 있었던 것처럼, 각종 기술적인 문제들로 인해 《The One》 투어를 끝으로 전자 피아노를 더 이상 사용하지 않았다.[255]

1993년 9월 30일부터 1993년 12월 10일까지 미국과 남아프리카에서 진행한 레이 쿠퍼 2인조 투어부터 7년 만에 다시 그랜드 피아노를 사용했고 이때를 기점으로 야마하 디스클라비어(Disklavier)를 사용하기 시작했다.[256]

2013년 1월 25일, 야마하 125주년 기념 공연 〈Yamaha's 125th Anniversary Dealer Concert Elton John + Yamaha〉에 출연했다. 엘튼 존은 공연에서 Your Song, Tiny Dancer, "Sorry Seems To Be The Hardest Word", "I Guess That's Why They Call It The Blues", Rocket Man을 불렀고 공연 실황이 피아노 건반과 페달의 움직임이 피아노를 통해 한국, 미국, 영국, 프랑스, 캐나다, 러시아, 일본, 호주, 독일, 싱가포르 등 세계 각지에 생중계로 그대로 재현되었다. 이 공연의 풀버전 영상은 엘튼 존의 공식 웹사이트에서 실시간으로 제공되었고 세계 각지에서 엘튼 존의 건반, 페달 움직임이 실시간으로 재현된 피아노의 모습을 담은 영상도 유튜브 등 각지에서 올라오기도 했다.[257]

해당 영상의 라이브 무대를 순서대로 보면, 1990년 5월 17일 MTV 언플러그드 (Bennie And The Jets), 1994년 9월 22일 로스앤젤레스 (Bennie And The Jets), 1997년 9월 19일 뉴올리언스 (I Guess That's Why They Call It The Blues), 1994년 9월 22일 로스앤젤레스 (Take Me To The Pilot), 1999년 9월 1일 스페인 폰테베드라 (Bennie And The Jets), 1994년 9월 22일 로스앤젤레스 (Levon), 2001년 12월 14일 필라델피아 (Honky Cat), 1999년 11월 12일 시카고 (Bennie And The Jets), 1990년 5월 17일 MTV (Sad Songs), 1995년 11월 25일 브라질 (Bennie And The Jets), 1990년 5월 17일 MTV (Sad Songs), 1994년 9월 22일 로스앤젤레스 (Take Me To The Pilot), 2000년 (날짜 불명, Bennie And The Jets).

엘튼 존은 가끔씩 인터뷰에서 피아노로 곡을 작곡한다는 건 쉽지 않다고 밝혔다. 피아노로 곡을 작곡하는 작곡가는 기타 코드 몇 개로 작곡할 때 한층 활기차고 직접적으로 와 닿는 곡도 괜히 정교하게 꾸미고 화음을 많이 사용하려 한다며 아쉬움을 자주 토로했다. 한동안 피아노 대신 신시사이저로 곡을 작곡한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1998년 3월 뉴질랜드 인터뷰에서 이에 대해서 설명하는 중, 옆에 있던 빌리 조엘도 엘튼 존의 말에 공감하면서 고개를 끄덕인다. 빌리 조엘 역시 피아노를 기반한 록/팝 음악을 작곡하면서 엘튼 존과 똑같은 고충을 느꼈기 때문이다.[258][259]

방송, 라디오 스튜디오 같은 특수한 장소에서는 디지털 피아노, 업라이트 피아노, 하프시코드를 연주하거나 무대에서는 로즈 일렉트릭 피아노, 야마하 CP-80을 연주한 적도 있다. 하프시코드를 연주한 경우는 1970년 5월 22일, BBC <Top of the Pops>에서 부른 I Need You To Turn To밖에 없고, 야마하 CP-80는 1979년 A Single Man 투어, 로즈 일렉트릭 피아노는 1982년 Jump Up! 투어에서 연주었다.[260][261][262]

오르간, 신시사이저, 하모니움, 멜로트론, 클라비넷 등은 정규 앨범을 작업하면서 사용했고 무대에서는 연주한 적은 없다. 신시사이저는 주로 엘튼 존 밴드의 키보디스트 담당이다. 1983년 17집 Too Low For Zero 작업 당시에는 처음으로 신시사이저로 곡을 작곡했는데 피아노보다 신시사이저로 경쾌한 록 넘버를 작곡하는데 더욱 수월하다는 이유로 1992년 23집 The One까지 피아노 대신 신시사이저로 곡들을 작곡했다.[263][264]

1995년 25집 Made In England부터 다시 그랜드 피아노로 곡을 작곡하기 시작했고 이 시기부터 야마하 디스클라비어 위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2004년 28집 Peachtree Road 이후의 앨범들에서는 오르간, 일렉트릭 피아노, 하모니움, 신시사이저 등의 건반악기들은 엘튼 존 밴드의 키보디스트[265]에게 맡기고, 엘튼 존은 피아노만 연주한다.[266]

건반 악기를 제외하면, 무대에서 연주한 적 있는 악기는 기타가 있다. 뮤지션으로서 악기의 기본 요소를 안다는 것은 당연하기 때문에 기타도 연주할 수 있다. 기타를 연주하는 모습을 거의 보여주지 않아서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기타를 연주하면서 노래를 부른 적 있다. 1976년 4~8월 〈Louder Than Concorde〉 투어에서 기타를 연주하며 레슬리 덩컨의 Love Song을 불렀고, 1986년 8~10월 미국에서 진행된 Ice On Fire 투어에서 "Love Song"을 어쿠스틱 기타로 연주하면서 불렀다.[267][268][269] 1986년 8월 21일 캔자스 시티 라이브 영상의 1:20:30 부근에서 기타를 잡는 모습이 나온다.[270]

4.3. 작사가[편집]

4.3.1. 버니 토핀[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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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 4집 Madman Across The Water 발매 당시 촬영된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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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3월 25일, 엘튼 존 에이즈 재단 주최로 진행된 엘튼 존의 70세 생일/버니 토핀과의 협업 50주년 행사에서.

버니 토핀은 엘튼 존 음악의 가사를 작사하면서 장기간의 협업을 이루는 사이로 유명하다. 존-토핀은 첫 협업을 가지기 시작한 1967년 6월 17일부터 꾸준히 깊은 협업을 이어가고 있는 음악적 동반자 관계이고 영미권 음악 계에서 레논-매카트니, 재거-리처즈와 더불어 손꼽히는 콤비 중 하나다. 엘튼 존을 명칭하는 닉네임 Captain Fantastic이 있듯이, 버니 토핀의 닉네임은 Brown Dirt Cowboy가 있다.

엘튼 존과 버니 토핀은 서로의 작사, 작곡 스타일을 존중하기만 하는 선이 분명한 표면적인 관계는 아니다. 사적으로 너무 가까운 사이까지는 아니라도 서로의 작사/작곡 능력을 존중하면서도 소중함을 느끼는 음악적 동반자이자 형제 사이에 가깝다. 중년 시절 이후로 서로의 소중함과 중요성을 느끼게 되면서 더욱 친밀한 관계로 발전한 것도 있고 반세기 동안 함께한 세월이 있다 보니 가족이라고 해도 무방하다.[271] 두 사람은 서로 성적인 면으로 엮은 일도 전혀 없을 뿐 더러 언쟁을 가진 적도, 다툼을 한 적도 전혀 없다고 한다.[272][273]

엘튼 존: 성적으로 끌린 것은 아니었습니다. 마치 친동생처럼 좋아했어요. 그는 내가 평생 찾았던 영혼의 동반자였습니다.

물론 수십 년간 함께하면서 두 사람의 협업이 금이 가거나 잠시 소원했던 적이 없는 건 아니다. 1976년 11집 Blue Moves 세션 당시, 버니 토핀은 첫 부인이던 맥신 파이벨만[274]과 이혼 이후로 한동안 남녀의 파탄 난 관계에 관해서 노골적으로 드러낸 가사들을 썼는데 엘튼 존은 몇몇 가사를 보면서 이건 좀 심하다고 생각하여 곡을 쓰는 것을 거부했다. 버니 토핀의 가사를 처음으로 거절한 경우였다.[275]

1977년부터 2년간 잠시 결별한 적도 있었는데 이는 개인적인 불화가 아닌, 10년간 똑같은 방식의 협업을 지나칠 정도로 꾸준히 이어왔다고 판단하여 잠시 다른 길을 걸었을 뿐이었다.[276] 당시 버니 토핀은 앨리스 쿠퍼의 14집 《From The Inside》에 참여하여 작사를 맡았고, 엘튼 존은 작사 파트너로 게리 오스번과 함께 작업하여 두 사람의 첫 협업이 되는 1978년 12집 A Single Man을 발매했다. 그랬던 두 사람은 1979년 8월, 14집 21 AT 33를 작업하던 시기부터 재결합하게 되면서 그 이후로 결별하지 않고 꾸준히 협업을 가지고 있다.

그 후로 십수 년간 꾸준히 협업을 이어오고 있었고 1997년 26집 The Big Picture 이후로 엘튼 존은 AidaThe Road To El Dorado, The Muse 등 영화 기획과 사운드트랙 작업에 몰두했고 버니 토핀은 윌리 닐슨과 함께 컨트리 밴드 <팜 독스>(Farm Dogs)로 활동하여 또다시 협업이 뜸해졌지만 2001년 발매된 27집 Songs From The West Coast로 다시 복귀했고 이후 변함없는 협업을 보여주고 있다.

엘튼 존은 작사를 하지 않았지만 편집자와 감독 역할을 맡아 되도록 버니 토핀의 가사에 손질을 가한 엘튼 존의 기여 또한 큰 도움이 되었고 버니 토핀의 작사력이 한층 개선한 계기가 되기도 했다.[277]

엘튼 존과 버니 토핀 협업의 한가지 특징이라면, 엘튼 존과 버니 토핀은 절대로 같은 방 안에서 곡들을 작업하지 않는다. 서로의 작사, 작곡에 집중해야하다 보니 각방에 들어가며 작업한다. 예를 들면 버니 토핀은 안방에서 가사를 쓰고, 엘튼 존은 거실에서 전달받은 가사를 보며 곡을 작곡하는 형식이다. 다만 예외적으로 2001년 27집 Songs From The West Coast 세션 때는 각방이 아니라 같은 방에서 함께 곡들을 작업했다고 한다.[278] 이 말고도 서로 다른 지역에서 곡을 작업하는 경우도 흔했다. 예를 들면 버니 토핀이 로스앤젤레스에서 가사를 쓰고 그걸 런던에 있는 엘튼 존에게 팩스로 보내주던 식이었다.[279] 1980년 14집 21 AT 33의 4번 트랙 "Two Rooms At The End Of The World"에서는 두 사람의 동떨어진 협업을 묘사한 가사를 담았다.[280] 1980년대 이후로 웬만하면 팩스로 보내서 곡들을 작업하기 보다 (각방이긴 해도) 같은 스튜디오 안에서 작업하는 경향이 잦다.

엘튼 존은 버니 토핀의 완성된 가사를 보면서 곡을 작곡하는 방식으로 꾸준히 이어오고 있지만, 가끔씩은 버니 토핀의 가사가 완성되기 전에 미리 곡 일부를 작곡하거나 전체적인 곡을 작곡하던 경우도 있었다. 1973년 히트곡 Goodbye Yellow Brick Road가 그렇게 해서 작곡된 곡인데, 이 곡은 7집 Goodbye Yellow Brick Road의 첫 세션을 가졌던 1973년 1월 자메이카에서 엘튼 존이 스튜디오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며 인트로를 먼저 작곡했고 이후 5월 10일, 프랑스에서 전체적인 곡을 작곡했다.[281] 이후 "Don't Go Breaking My Heart", "Idol", "Ego"도 그런 식으로 작업되었다.[282][283][284]

1982년 16집 Jump Up!에서는 엘튼 존이 먼저 곡을 작곡하고 나서 버니 토핀이 마지막에 가사를 붙이는 방식으로 작업되었다. 해당하는 수록곡들로 "Spiteful Child", "I Am Your Robot", "Where Have All The Good Times Gone", "All Quiet On The Western Front", 미발매로 남겨진 "Desperation Train" 등 있다. 《Jump Up!》의 경우는 당시 엘튼 존의 작사파트너였던 게리 오스번(1977~1982)과의 협업 방식처럼 작업에 임한 것이었는데, 버니 토핀은 이 시기의 결과물이 참혹했다고 뒤늦게 밝혔다. 다만 기존의 방식대로 작업된 "Empty Garden (Hey Hey Johnny)"는 예외라고 했다.[285]

엘튼 존과 버니 토핀은 자신들의 음악적 협업으로 통한 깊은 관계를 묘사한 앨범으로 1975년 9집 Captain Fantastic And The Brown Dirt Cowboy와 2006년 29집 The Captain & The Kid가 있고, 두 앨범의 수록곡 중에서 두 사람의 관계를 자세히 묘사한 곡들로 "Captain Fantastic And The Brown Dirt Cowboy", "Writing", We All Fall In Love Sometimes/Curtains, "Old '67", "The Captain And The Kid"가 있다.

버니 토핀은 엘튼 존과 50년 동안 협업을 이루고 있지만 정작 엘튼 존의 정규 앨범 메인 표지에 등장한 경우는 2006년 29집 《The Captain & The Kid》뿐이다. 두 사람이 메인 표지에 함께 나온 유일한 경우. 이전에도 두 번이나 앨범 표지에 등장한 적 있었는데, 1970년 3집 Tumbleweed Connection의 뒷면, 1975년 9집 《Captain Fantastic And The Brown Dirt Cowboy》의 뒷면 표지에 등장했다.[286][287]

엘튼 존과 버니 토핀 둘 다 밴드 활동 경력이 있다. 엘튼 존은 영국의 블루스 밴드 <콜벳스>(1961~62), <블루솔로지>(1962~67), <브레드 앤 비어 밴드>(1968~69)에서 활동했고 버니 토핀은 미국의 컨트리 음악가 윌리 닐슨과 함께 컨트리 밴드 <팜 독스>(1996~98)로 활동했다.[288]

2017년 6월 17일, 작사/작곡 협업 50주년을 맞이했다.[289]

4.3.2. 게리 오스번[편집]

게리 오스번은 1977년부터 1982년, 1986년까지 엘튼 존과 함께하던 영국의 작사가다.[290] 영국의 밴드 리더, 작곡가, 편곡자였던 토니 오스번의 아들이다. 게리 오스번은 어린 시절에 런던의 예술교육 학교에 다녔는데 그가 15살 때 프랑스 히트곡에 영어 가사를 붙이는 작사 재능을 발견하여 이후 학교를 그만두고 1960년대 말부터 음악 업계에 들어가 작사가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게리 오스번은 1973년에 키키 디의 3집 《Loving And Free》에서 작사가로 참여하여 프랑스의 싱어송라이터 베로니크 상송의 1972년 히트곡 "Amoureuse" 가사를 영어로 새로 개사했고 키키 디가 이 곡을 커버하여 싱글로 발매했는데, 키키 디 버전의 "Amoureuse"는 키키 디의 첫 히트곡이 되었고 이 곡을 계기로 작사가로서 경력을 이어가기 시작했다.[291][292][293]

게리 오스번은 1970년대 중반까지 주로 광고 음악 작사가로 활동하면서도 동료 가수들의 히트곡들에서 작사, 백 보컬을 맡았다. 엘튼 존과는 1970년대 초-중반부터 만나게 되었고 1~2년간 평범한 친구였던 두 사람은 1977년부터 작사/작곡 협업으로 관계가 발전했다.[294] 1977년 6월 경, 엘튼 존은 1976년 3월에 11집 Blue Moves를 작업하면서 가사 없이 곡만 작곡한 "Shine On Through"를 게리 오스번에게 작사를 요청했다.[295] "Shine On Through"의 가사를 완성하고 나서 엘튼 존이 다른 곡들도 맡을 수 있냐고 요청하면서 앨범에 수록해도 충분한 양의 곡들을 작업했다.[296][297] 이후 엘튼 존은 버니 토핀과 결별 이후, 게리 오스번을 영입하여 자신의 작사 파트너로 두었고 이듬해 봄부터 여름까지 작업된 1978년 12집 A Single Man은 두 사람의 첫 공동작이 되었다.

엘튼 존/게리 오스번의 작사/작곡 방식은 버니 토핀과 반대였다. 미리 완성된 가사를 보면서 곡을 작곡하는 방식으로 10~20분 만에 신속히 작업하는 게 엘튼 존/버니 토핀 협업 방식이지만, 엘튼 존/게리 오스번은 미리 완성된 곡에 가사를 붙이는 방식이었다. 게리 오스번은 작사를 천천히 하는 편이었는데 어쩔 때는 하루가 걸리거나 며칠, 심지어 몇 주 정도 걸릴 때도 있었다. 《A Single Man》 세션 때에는 "Shine On Through"를 제외한 대부분의 수록곡을 엘튼 존과 의논하면서 가사를 고쳐 썼는데 사실상 공동 작사라고 해도 무방하다.[298]

《A Single Man》의 수록곡 중에서 "Return To Paradise"이라는 캐러비안 풍의 시원스러운 발라드가 있는데, 이 곡에 대한 숨겨진 이야기가 있다. 12집 작업 도중, 게리 오스번이 엘튼 존이 작곡한 곡을 받고 가사를 쓰려고 보니 후렴 선율이 고전 카리브 명곡 "Jamaica Farewell"와 유사한 것이었다. 엘튼 존이 두 곡의 유사성을 알고 나면 곡을 폐기할 거 같아서 게리 오스번이 후렴의 선율을 새로 작곡해서 곡에 붙였다.[299][300]

일주일 뒤, 엘튼 존과 다시 레코딩 스튜디오에서 만난 게리 오스번은 엘튼 존에게 후렴 부분이 "Jamaica Farewell"과 비슷한 이유로 자신이 후렴 부분만 새로 선율을 작곡했다고 하자 엘튼 존은 마음에 들다고 하여 바로 스튜디오에서 녹음을 마쳤다. 한마디로 이 곡의 후렴 부분은 게리 오스번 작곡이라는 것이다. 이 곡에서는 게리 오스번 공동 작곡으로 크레디트 되지는 않았으나, 게리 오스번 작사로 크레디트 되어 있는 대부분의 가사를 엘튼 존이 직접 손봐서 작사한 경우가 많았고 엘튼 존 공동 작사로 크레디트 되지 않았기 때문에 서로 비긴 걸로 했다.[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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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7년 11월, 영국 웸블리 아레나에서 사운드 체크 도중 차이나 밴드[302]와 함께 촬영된 사진. 가장 왼쪽이 게리 오스번이다.

협업 방식이 버니 토핀과 딱 반대였기 때문에 게리 오스번과 작업한 곡들은 버니 토핀과 작업한 곡들에 비하면 이질감이 큰 편이다. 게리 오스번의 작사력은 시적이고 통렬한 가사가 주를 이루는 버니 토핀에 비하면 기대치에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라는 평을 받았다. 게리 오스번은 주로 단순한 내용의 가사를 즐겨 썼는데 이는 버니 토핀의 통렬하고 시적인 가사에 익숙하고, 애착하던 일부 엘튼 존 팬들에게 공격 대상이 되었다.

A Single Man이 발매 당시 혹평을 받았을 때 게리 오스번에게도 온 비난이 상당했지만 게리 오스번은 "10년간 파트너였던 버니 토핀에서 다른 사람으로 바꿔졌다는 것에 불만을 느끼는 건 당연하다", "나는 버니 토핀 같은 작사 실력이 없다"라고 대인배스럽게 넘어갔다.[303] 그렇게 게리 오스번은 1980년 14집 21 AT 33, 1981년 15집 The Fox, 1982년 16집 Jump Up!에 참여하여 몇 년간 엘튼 존의 작사가로 활동했다. 엘튼 존과 버니 토핀이 《21 AT 33》로 재회하면서 협업을 다시 이어가기 시작했을 때 게리 오스번은 버니 토핀과도 친한 사이를 유지했다.[304]

한때 백 보컬리스트로 활동했던 것처럼 엘튼 존의 1977년 11월 3일 웸블리 아레나 공연에서 백 보컬리스트로 참여한 적 있고, 작사를 맡은 대부분의 엘튼 존 곡들에서 백 보컬로 참여했다. 1978년 "Part-Time Love"의 프로모션 비디오를 자세히 보면, 왼쪽의 곱슬머리 백 보컬리스트가 바로 게리 오스번이다.[305]

1981년 The Fox의 수록곡 "Nobody Wins"는 프랑스의 가수 자닉 프레보의 곡을 영어로 개사하면서 커버한 건데, 엘튼 존과 그의 친아버지 스탠리 드와이트, 부자간의 어색하고 차가운 관계를 통렬하게 묘사한 가사를 담았고 가장 뛰어난 게리 오스번의 가사라는 평을 받는다.[306][307] 게리 오스번도 자신이 쓴 가장 만족스러운 가사라고 밝혔다.[308]

게리 오스번 작사의 곡들 중에서 가장 큰 성공을 거둔 곡들로 빌보드 3위, 캐나다 1위로 오른 1980년 "Little Jeannie", 영국 8위, 호주 4위, 캐나다 5위로 오른 1982년 "Blue Eyes"가 있다.[309][310]

1983년, 엘튼 존은 게리 오스번과 작업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1982년 9월에 작업된 17집 Too Low For Zero로 버니 토핀과 협업을 다시 예전처럼 이루기 시작하면서 게리 오스번과의 협업을 마치려고 했던 것이다. 게리 오스번은 몇 년간 이어졌던 협업이 끝났다는 걸 알고 실망감을 느꼈고 1980년대 이후로 두 사람은 이전 같은 사이로 지내지 않게 되었다.[311]

1986년 1월에 작업된 20집 Leather Jackets에 참여하면서 《Jump Up!》 이후로 4년 만의 협업이 되었다. 하지만 당시 엘튼 존의 약물 중독이 가장 심했던 시기였고 이때 작곡한 대부분 곡들의 퀄리티도 이전만 하지도 못했기 때문에 본인의 가사들도 형편없다고 했다. 특히 20집의 10번 트랙으로 수록된 "Memory Of Love"이 가장 맘에 들지 않는 작품이라고 밝혔다.[312][313] "Memory Of Love"를 제외한 게리 오스번이 작사를 맡은 나머지 곡들 "Rollercoster", "Is It You?", "Let It Shine", "Heart On Fire" 등 전부 미발매로 남겨졌으며 《Leather Jackets》 이후로 엘튼 존과 작업하지 않았다.

1981년 새해를 맞이하기 전에는 이런 일도 있었다. 엘튼 존은 1만 파운드(한화로 1700만 원 정도)나 하는 티파니 램프를 구매했는데 당시 몇 살밖에 안되던 게리 오스번의 아들 루크 오스번이 방에서 뛰어놀다 전선에 걸려 이 램프를 박살 내버렸다. 게리 오스번과 그의 아내는 크게 놀랐지만 정작 이 램프를 구입한 엘튼 존은 매우 침착한 태도로 루크 오스번에게 "걱정할 것 없다. 물건일 뿐이야. 물건은 얼마든지 다른 것으로 대체할 수 있어. 하지만 사람은 그럴 수 없지"라며 격려했다. 게리 오스번은 엘튼 존의 모든 노래보다 이 말이 그를 잘 보여주는 말이라고 생각했다.[314]

4.3.3. 팀 라이스[편집]

팀 라이스는 버니 토핀, 게리 오스번 다음으로 엘튼 존과 가장 많은 협업을 가진 작사가다.[315] 엘튼 존과 팀 라이스의 협업 방식은 버니 토핀 방식과 마찬가지로, 팀 라이스가 가사를 먼저 쓰고 나서 나중에 엘튼 존이 곡을 작곡하는 방식이다. 엘튼 존과 팀 라이스의 대표작으로 1994년 The Lion King과 1999년 Aida가 있다.

엘튼 존과 팀 라이스의 첫 인연은 의외의 부분에 있다. 1968년 11월 발매되어 영국에서 1위로 오른 <더 스캐폴드>[316]의 히트곡 "Lily The Pink"에서 각각 백 보컬을 맡았다.[317][318] 당시 엘튼 존은 1968년부터 1970년까지 2년간 동료 음악가들의 싱글, 앨범에 참여하여 백 보컬과 피아노를 연주하며 세션 음악가로 활동했고 팀 라이스는 1968년에 EMI 음반사에서 잠시 보조 프로듀서로 활동하던 시절이었다. 이 시기부터 친분이 생긴 것은 아니고 그저 우연히 같은 곡에서 세션으로 참여한 것이다. 팀 라이스와 함께 녹음 작업에 참여한 유일한 경우이기도 하다.

팀 라이스가 앤드루 로이드 웨버와 작업한 뮤지컬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의 콘셉트 앨범이 1970년 9월 발매되어 빌보드 200에서 차트 정상으로 올랐던 시기가 1970년 8월 25일, 미국 진출 공연으로 통해 신인 스타로 등극되어 한창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엘튼 존과 2집 Elton John의 성공 시기와 거의 같았다. 영국 아티스트가 본국보다 미국에서 먼저 큰 성공을 거두었다는 점, 서로 같은 MCA 음반사에 속한 상태이기도 해서 당시 <캐시박스> 잡지에서는 MCA의 새로운 스타로 '엘튼 존/앤드루 로이드 웨버/팀 라이스' 이렇게 묶어서 소개된 적이 있다. 세 사람의 성공 시기가 거의 비슷하다 보니 자연스레 친분이 생기게 된 것이다.[319]

두 사람이 작사/작곡 협업을 가지기 시작한 건 라이온 킹이 작업되기 10년 전인 1982년 16집 Jump Up!의 4번 트랙 "Legal Boys"가 처음이다. 곡과 앨범을 작업하던 시기인 1981년 9~10월 사이, 이혼에 관한 침울한 가사에 법률 용어를 집어넣은 "Legal Boys"는 원래 팀 라이스가 앤드루 로이드 웨버와 《Tell Me on a Sunday》를 작업하려고 쓴 가사지만 앤드루 로이드 웨버가 작사가 돈 블랙과 작업하기로 하면서 남겨두었다. 팀 라이스는 엘튼 존이 가사를 좋아할 것 같아서 혹시나 하고 보냈는데 그가 좋다고 해서 비장하면서 강렬한 분위기의 심포니 발라드로 작곡했다.[320][321] "Legal Boys"는 1994년 발매된 팀 라이스의 컴필레이션 앨범 《Any Dream Will Do: The Best Of Tim Rice》의 16번 트랙으로 수록되기도 했다.[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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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3월 27일, 제67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1991년, 디즈니는 팀 라이스에게 사자에 대한 영화[323]에서 가사 작업을 요청했고 당시 팀 라이스는 앨런 멩컨알라딘의 사운드트랙 작업을 마쳤던 상태였다. 디즈니는 음악을 맡길 사람으로 누가 좋은지 팀 라이스에게 물어봤는데 팀 라이스는 이 작업에 적합한 뮤지션으로 엘튼 존을 추천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엘튼 존에게 연락했다.

엘튼 존은 이전부터 디즈니 애니메이션들의 아름다운 사랑 노래들에 매료되어 자신도 꼭 그런 노래를 작곡해보고 싶었다면서 작업에 참여했다. 그렇게 1992년부터 작업에 들어가 1993년까지 라이온 킹의 음악을 작곡했다. 팀 라이스는 엘튼 존을 추천한 것을 디즈니에게 베푼 최고의 선물이라고 생각했고 다른 애니메이션과 달리 라이온 킹은 록적인 사운드를 가졌다는 점을 의의로 꼽았다.[324]

영화가 개봉되기 3주 전인 1994년 5월에 사운드트랙 앨범이 먼저 발매되었다. 사운드트랙 앨범은 전 세계적으로 대성공으로 거두었고 음악도 극찬을 받으면서 호평이 줄줄이 이어졌다. 미국에서는 17,000,000장의 판매를 거둔 1974년 Elton John's Greatest Hits에 이어 두 번째로 가장 많이 팔린 앨범이 되었고 1975년 10집 Rock Of The Westies 이후로 19년 만에 빌보드 200에서 1위로 오른 앨범이 되었다.

1995년 3월 27일 열린 제67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주제가상 부문에 후보로 오른 라이온 킹의 OST Can You Feel the Love Tonight가 주제가상을 수상했다. 엘튼 존은 아카데미 시상식이 열리기 1주 전에 세상을 떠난 외할머니 아이비 해리스에게 이 상을 바쳤고 팀 라이스는 영국의 크리켓/축구 선수 데니스 콤프턴에게 바쳤다.[325]

1996년, 라이온 킹 뮤지컬에 추가로 수록할 곡으로 The Morning Report, The Madness of King Scar, Chow Down 이렇게 3곡을 새로 작곡했다.[326] 엘튼 존과 팀 라이스는 라이온 킹 이후로 두 작품을 더 작업했는데 1996년 4월에는 주세페 베르디의 오페라 아이다를 모티브 한 디즈니 뮤지컬 Aida를 작업하여 약 30여곡을 작곡했고 1996년 겨울부터 1999년 2월 사이에는 2000년 개봉된 드림웍스의 장편 애니메이션 엘도라도사운드트랙을 작업하여 14곡을 작곡했다.[327][328] 《Aida》는 2000년 브로드웨이 뮤지컬 앨범이 발매되기 2년 전인 1998년 여름-가을, 엘튼 존은 스팅, 스파이스 걸스, 제임스 테일러, 레니 크라비츠, 보이즈 투 멘, 자넷 잭슨, 룰루 등과 함께 뮤지컬 넘버를 재해석한 콘셉트 앨범 Elton John And Tim Rice's Aida를 작업했고 1999년 3월 발매했다.

《The Road To El Dorado》의 수록곡들 중에서 7곡을 1996년 겨울에 먼저 작곡했고, 나머지 곡들은 사운드트랙 앨범을 녹음하던 1998년 12월부터 1999년 2월 사이에 작곡되었다.[329] 《Aida》는 세계적으로 흥행에 성공했고 토니 상 시상식에서 최우수 뮤지컬 주제가상을 비롯한 4개 부문의 상을 받는 성과를 거두었지만, 엘도라도는 흥행 대 참패를 하면서 사운드트랙 앨범도 마찬가지로 상업적으로 실패했다. 엘도라도 이후로 한동안 협업이 없었을 때 가끔씩 연락하며 지냈는데 2017년 11월 3일,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열린 라이온 킹 뮤지컬 20주년 행사에서 오랜만에 만났다.[330]

2014년 2월 6일, 앤드류 로이드 웨버/팀 라이스의 1970년 뮤지컬 <요셉과 놀라운 색동옷>(Joseph and the Amazing Technicolor Dreamcoat)이 엘튼 존/데이비드 퍼니시의 영화 제작사 〈로켓 픽처스〉로 통해 장편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될 것으로 발표되었다. 앤드류 로이드 웨버/팀 라이스/엘튼 존 이렇게 셋이서 작업할 예정인데 엘튼 존/앤드류 로이드 웨버 협업은 이번이 처음이다.[331][332][333] 2018년 2월 12일, 라이온 킹 실사 영화에서 기존의 OST 리메이크 작업을 맡은 엘튼 존은 팀 라이스와 함께 새로운 곡들을 작업할 것으로 발표되었다. 이렇게 두 사람이 협업을 가지는 것은 2000년 엘도라도 이후로 처음이다.[334]

팀 라이스는 엘튼 존의 신속한 작곡 능력에 감탄했다. 로스앤젤레스에서 라이온 킹 음악을 작업하던 1992년 겨울, 엘튼 존은 Circle of Life를 불과 30분 안에 작곡하고 나서 신속히 녹음한 데모를 팀 라이스에게 들려주었는데 팀 라이스는 이 데모를 듣고 크게 감탄했다고 회고했다.[335]

팀 라이스는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엘튼 존 곡으로 1989년 "Sacrifice"를 꼽았다.[336]

4.4. 오해[편집]

한국에서는 엘튼 존을 록 가수가 아니라 "점잖은 정장 차림으로 피아노에 앉아 조용한 곡들을 연주하는 얌전하고 고루한 가수" 정도로 알고 있는 경우가 상당히 많고 유독히 많은 사랑을 받는 "Sorry Seems To Be The Hardest Word"가 엘튼 존의 대표곡으로 잘못 알려져 있다. 한국에서 많이 선호되는 곡들은 Your Song, Daniel, Candle In The Wind, We All Fall In Love Sometimes, "Tonight", "Nikita", "Sacrifice", Can You Feel the Love Tonight 등 대부분 발라드이고, 록 히트곡의 경우는 Crocodile Rock, Saturday Night's Alright For Fighting 정도만 알려졌지만 발라드 히트곡들에 비해 많이 언급되는 편은 아니다.

1976년 11월 발매된 "Sorry Seems To Be The Hardest Word"는 엘튼 존의 히트곡들 중에서도 세계적으로 큰 인지도를 가진 곡이며 공연에서 빼놓지 않고 자주 부르는 곡이지만, 전성기에 주로 했던 록 음악 스타일과는 다른 발라드 곡이라서 엘튼 존의 음악 경력을 대표한다고 볼 수 없다. 그의 음악을 대표하기에 어려울 뿐 아니라, 이 곡은 차트 성적만 놓고 보더라도 미국 6위, 영국 11위에 그친 곡이고 6년간의 전성기가 끝나가던 시점 때 발매된 곡이다. 엘튼 존에게는 이 곡 이전에 발표한 미국 빌보드 1위 곡만 6곡이나 있다.[337] 비틀즈의 곡을 커버한 "Lucy In The Sky With Diamonds"를 제외해도 5곡이다.

"Sorry Seems To Be The Hardest Word"가 수록된 1976년 11집 Blue Moves는 엘튼 존이 가장 애착하는 자신의 앨범들 중 하나이고[338] 발매되고 사반세기 정도 지나서 엘튼 존의 최대 명반 중 하나로 재평가 받는 추세이지만, 1972년 5집 Honky Château부터 1975년 10집 Rock Of The Westies까지 이어온 공전의 히트 행진에 비해 처진 성적을 거둔 앨범이고 전성기의 마지막에 위치한 앨범이다. 또한, 11집은 다양한 장르와 실험적인 구성의 수록곡들이 많은 관계로 그의 전성기 음악 스타일에서 약간은 벗어나 있고 오히려 1970년대 초기 스타일이 크게 보이는 특별한 작품이기도 하다.[339]

1970~80년대 젊은 시절의 엘튼 존은 제리 리 루이스리틀 리처드의 영향을 받은 파격적인 무대 매너를 보여주던 돌+아이 스타일의 록커였다. 화려한 의상을 입으며 피아노를 과격하게 연주하면서 점프하거나 피아노 위로 올라가고, 아래로 수시로 들어가는 화려한 쇼맨십을 보였다.[340] 1970년 11월 17일 뉴욕 A&R 스튜디오 공연에서는 피아노를 워낙 과격하게 연주하는 바람에 건반이 온통 피투성이 된 적도 있었다.[341]

젊은 시절 엘튼 존의 쇼맨십을 보고 싶다면 1971년 7월 8일 스웨덴 스톡홀름 공연에서 부른 Burn Down The Mission/My Baby Left Me/Whole Lotta Shakin' Goin' On, 1973년 3월 23일 영국 런던 선다운 극장 공연에서 부른 Elderberry Wine, 1973년 9월 7일 할리우드 볼 공연에서 부른 Saturday Night's Alright For Fighting, 1974년 12월 24일 영국 런던 해머스미스 공연에서 부른 Saturday Night's Alright For Fighting, The Bitch Is Back, 1975년 10월 25일 다저 스타디움 공연 실황, 1976년 5월 12일 영국 런던 얼스 코트 공연에서 부른 Grow Some Funk Of Your Own, Hercules, 1980년 9월 13일 센트럴 파크 공연에서 부른 Bite Your Lip (Get Up And Dance!), 1984년 6월 30일 웸블리 스타디움 공연에서 부른 Saturday Night's Alright For Fighting 등 라이브 영상들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쇼맨십은 주로 1970~80년대 젊은 시절에만 보여주었다. 1990년대 이후로는 나이값 못한다는 본인의 판단에 반영되어, 더이상 화려한 복장을 입지 않고 주로 점잖은 양복부터 적당히 화려한 무늬가 그려진 코트를 입은 상태로 무대에 오르지만, 2000년대까지만 해도 "The Bitch Is Back"을 부르기 전에 피아노에서 점프했고 Bennie And The Jets의 간주를 연주할 때는 피아노 아래로 몸을 집어넣고 머리를 돌린 채 피아노를 연주하는 등 잔 쇼맨십도 가끔씩 보여주었다.[342][343] 2010년대 이후로 70대에 접한 지금은 나이가 있어 피아노에 앉는 시간이 더 많지만 그렇다고 해서 얌전한 공연을 진행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본인이 더이상 젊었을 때처럼 화려한 쇼맨십을 보여주지 않아도 엘튼 존의 공연은 2010년대에도 꾸준히 록 공연으로 지속적으로 진행되고 있다.[344]

네이버 뮤직은 엘튼 존과의 음악적인 교류도 거의 없는 미국의 싱어송라이터 배리 매닐로우[345]를 엘튼 존의 '관련 아티스트', 그것도 첫 번째로 소개하는 무지한 짓을 저지르고 있다. 멜론도 관련 아티스트 목록 중 두 번째로 소개하고 있다. 엘튼 존이 전성기에 했던 음악과의 관련성 뿐 아니라 엘튼 존과의 개인적인 인연을 놓고 봐서도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다. 엘튼 존/관련 인물 문서의 목차만 살펴봐도 알 수 있지만, 배리 매닐로우 앞에 놓을 수 있는 엘튼 존 관련 동시대 음악가들은 20명이 가볍게 넘어간다. 배리 매닐로우보다 엘튼 존과 가까운 후배 음악가들만으로도 조지 마이클, 존 본 조비, 액슬 로즈, 케이트 부시, 에미넴, 레이디 가가, 게리 발로우, 콜드플레이, 데이먼 알반, 더 킬러스, 폴 아웃 보이, 에드 시런, 에밀리 산데, 마일리 사이러스, 샘 스미스 등 10명은 어렵지 않게 꼽을 수 있다.

엘튼 존과 배리 매닐로우의 교류는 1988년 에이즈 자선 공연에서 "That's What Friends Are For"를 부르던 중, 후반부에 유명인들이 전부 무대로 오르면서 잠깐 서로 어깨동무하며 노래 부른 것처럼 단체 공연에서 만나거나 가끔씩 만나 사진을 찍은 경우밖에 없고 서로의 음반에 참여하던 형식의 음악적 협업은 단 한차례도 없다.[346][347] 한국에서 엘튼 존의 음악이 얼마나 잘못 전달되어 왔는지 알 수 있고, 한국이 엘튼 존에 대한 왜곡된 이미지가 고착된 나라임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스트라토바리우스의 사례처럼 엘튼 존도 음악가의 경력과는 관계없이 발라드를 선호하는 한국 대중들의 성향으로 인한 저평가, 오해를 사는 아티스트의 경우에 속한다. 1990년대 중반 이후 중-노년기의 모습에 비해 전성기의 활동이 한국에 잘 알려지지 않은 것도 이런 오해가 생기는 이유다.

표절 시비에 두 번 휘말렸지만 전부 기각되었다. 1989년 발매된 정규 22집 Sleeping With The Past의 수록곡 "Whispers"는 1984년에 작곡하고 당시 엘튼 존에게 테이프를 보낸 데모 곡을 표절한 것이라고 조지 사디, 레이 피킨스라는 자칭 엘튼 존 열성 팬이라고 주장하는 무명의 작사/작곡가가 1992년에 엘튼 존을 고소했고, 2012년에는 "Nikita"가 남아프리카에 거주하는 가이 홉스라는 남성은 엘튼 존과 버니 토핀이 1982년에 쓴 곡 "Natasha"의 가사를 표절한 것이라고 고소했다.[348][349] 자신들의 곡을 표절했다고 주장하는 측의 해당 곡이나 가사는 인터넷에서도 찾을 수 없다. "Natasha"의 경우는 가사만 존재하는 경우다. "Nikita" 표절 주장이 기각된 이유는, 분단국가의 두 남녀가 사랑에 빠지는 내용은 1980년대 냉전 시대에 반영된 대중매체의 클리셰이였고 주제가 너무 일반적이라는 이유로 기각된 것이다.

5. 공연[편집]


수천 차례나 공연을 진행한 덕분에 보컬, 피아노 연주가 많이 향상되어 라이브 실력이 뛰어나다는 평을 받는다. 원곡보다 라이브 버전을 더욱 선호하는 팬들도 상당수 된다. 1961~62년 <콜벳스>, 1962~67년 <블루솔로지> 활동을 제외하면, 솔로로서 공연을 처음으로 진행한 건 1968년 10월 28일 스튜어트 헨리 쇼의 BBC 런던 스튜디오 2 라이브다.[350] 당시 전국적으로 투어를 진행할 형편도 되지 못했던 무명이었고 1969년까지 레코딩 스튜디오에서 몇 곡 정도 부르는 정도였다.[351][352] 엘튼 존 밴드를 결성하고 진행한 첫 무대 공연 1970년 3월 25일 런던 레볼루션 클럽을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투어 활동을 돌기 시작했다.[353] 2010년대까지 진행된 공연들을 모두 합치면 대략 4,000차례나 한다.[354] 2011년 10월 8일 라스베이거스 시저스 팰리스에서 진행된 〈The Million Dollar Piano〉 공연이 자신의 3,000번 공연으로 기록되었다.[355]

2010년대 시점으로, 라이브에서 가장 많이 부른 곡은 Your Song이다. 첫 무대 공연인 1970년 3월 25일 런던 레볼루션 클럽부터 웬만하면 제외하지 않고 자주 불렀으며 라이브 횟수만 해도 4,000차례나 달한다. 이어서 Rocket Man, Bennie And The Jets, "I Guess That's Why They Call It The Blues", "Philadelphia Freedom", Saturday Night's Alright For Fighting, Tiny Dancer 등 있다. 공연의 첫 곡으로 사용하는 곡들로 Funeral For A Friend/Love Lies Bleeding, "The Bitch Is Back"이 있고 공연의 앙코르, 마지막 곡으로 Crocodile Rock, Candle In The Wind를 부른다.[356]

뉴욕의 실내 경기장 매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가장 많은 공연들을 진행한 음악가 2위가 엘튼 존이다. 1973년 9월 23일 매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첫 공연을 진행한 이후, 2017년 기준으로 70차례의 공연들을 진행했다.[357][358] 가장 많은 공연들을 진행한 음악가 1위는 2018년 기준으로 100차례 이상의 공연들을 진행한 빌리 조엘이다. 빌리 조엘의 경우는 2013년 12월부터 매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무한정으로 공연을 진행할 수 있는 특허권을 받았고 2014년 이후로 대부분의 공연들을 매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진행했기 때문에 공연 횟수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359]

수많은 공연들을 매년 간 진행하다 보니 청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는데 버니 토핀 1992년 인터뷰에 따르면, 엘튼 존은 1970년대부터 오른쪽 귀의 청력이 왼쪽 귀에 비해 30%나 떨어졌다고 한다.[360]

노래를 부를 때 왼쪽 눈썹이 계속 움직인다. 엘튼 존은 자신의 움직이는 왼쪽 눈썹이 마치 벌레 같다고 했다.[361]

공연에서 가끔씩 곡의 인트로만 연주하고 부르다 마는 식으로 관객들에게 장난친 적도 있다. 2004년 7월 라스베이거스에서 진행된 〈The Red Piano〉 투어에서는 Crocodile Rock, "Sorry Seems To Be The Hardest Word", Goodbye Yellow Brick Road의 인트로를 원키로 연주하다가 보컬이 나올 때쯤 바로 연주를 멈추었다. 이 장면은 2008년 발매된 〈The Red Piano〉 DVD에 수록되었다.

2016년 4월 1일, 엘튼 존은 70세 생일 공연에 대한 대형 프로젝트 <70-70-70>을 선언했다.[362] 2017년 1월 14일부터 시작해서 생일날 3월 25일까지 70일 동안 연속적으로 공연을 진행할 것이고 라이브에서 부르지 않은 희귀 곡들도 다수 선보일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만우절 장난이라서 대부분 속았다.

2010년대 들어서 공연에서 곡을 부르는 와중, 피아노 건반에 잠시 손을 떼고 관중석을 향해 관객들 일일이 가리키거나 각종 제스처를 취한다.[363]

2018년 1월 24일, 엘튼 존은 투어 활동에서 은퇴하겠다고 선언했다. 엘튼 존은 2015년부터 배우자 데이비드 퍼니시와 함께 진지한 대화를 나누면서 앞으로 영원히 공연 활동을 할 수 없다고 판단하여 공연 은퇴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두 늦둥이 아들이 있는 가정에 한창 신경 써야 할 시기이고 자신의 인생에 새로운 장을 펼칠 변화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공연 활동에서만 은퇴하는 것이고, 음악 활동은 은퇴 없이 앞으로 꾸준히 계속될 것이라고 했다. 공연 은퇴 선언과 더불어, 50년 공연 경력의 대미를 장식할 마지막 투어 〈Farewell Yellow Brick Road〉를 2018년 9월부터 2021년까지 3년간 전 세계적으로 진행한다고 발표했다.[364]

투어 은퇴/마지막 투어 발표 영상은 유튜브 공식 채널에서 스트리밍 영상으로 통해 전 세계 생중계되었다.[365] 공연 은퇴 발언에 앞서 진행된 엘튼 존의 50년 경력을 묘사한 AR 증강현실 인트로를 보여주었고 인트로가 끝난 직후, 엘튼 존은 Tiny Dancer, "I'm Still Standing"을 피아노 솔로로 부르기도 했다.[366][367]

5.1. 무대 의상[편집]

화려한 무대 의상들과 선글라스를 착용하면서 무대에서 보여주었던 쇼맨십으로도 유명하다. 엘튼 존 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이미지가 바로 정신 산만한 옷을 입고 피아노를 연주하면서 노래를 부르는 모습이고 그를 캐리커쳐 할 때 빼먹을 수 없는 요소다. 화려한 복장과 선글라스를 착용한 피아니스트라는 이미지가 대중에게 각인되어 있고 엘튼 존과 그의 음악을 모르는 사람들도 이런 모습에 익숙해하는 경우도 있다.[368]

그가 크게 애용했던 의상은 모헤어 코트, 핌프(Pimp) 슈트이며 그동안 입었던 의상들만 해도 어마어마하게 많다. 고릴라, , 꿀벌, 광대, 자유의 여신상, 카우보이, 마법사, 탐험가, 해적, 투우사, 탐정, 경찰관, 기관사, 경호원, 도널드 덕, 미니 마우스, 제독, 바버 숍 4중창, 심령술사, 크리스마스 트리, 에펠탑, 티나 터너, 모차르트 등, 1992~93년에는 자신의 절친이었던 이탈리아의 디자이너 지아니 베르사체가 디자인한 의상을 입고 활동하기도 했다.[369] 선글라스도 디자인들이 아주 다양했는데, 별 모양, 솜털, 피아노 건반, 태양, 자동차 와이퍼, 우주선, 음표, 손거울, 가위, 시계 등 무척 많고 직접 소유하고 있는 것들만 해도 수천 개가 넘는다.[370] 1988년 9월 영국 런던의 '소더비 쇼륨'에서 진행된 경매에서는 2,000점이나 하는 복장 및 수집품들을 전부 내놓았으며 경매 이후에도 꾸준히 물건들을 수집하였다.[371]

이런 식으로 화려한 의상을 고집했던 이유는 어린 시절, 친아버지의 억압과 제약에 대한 반항의 산물이자 피아노를 연주하는 로커의 모습을 크게 각인시키기 위한 것이다. 피아노는 매우 무거운 악기에다 기타나 다른 악기들에 비해서 한정되어 있는 부분들이 많기 때문에 화려한 의상을 입고 무대에서 뛰어다니거나 피아노 위로 올라가 점프하는 등의 쇼맨십을 보여주면서 각인을 시킨다는 것이 중요했다고 한다.[372] 또한 자신은 프레디 머큐리, 믹 재거, 데이비드 보위, 마크 볼란, 로드 스튜어트 같은 보컬리스트처럼 훤칠한 외모와 키도 아니고, 항상 피아노에 앉아만 있기 때문에 관객들에게 큰 인상을 주게 하려면 화려한 의상을 입고 온갖 쇼맨십을 보였던 것이라고 밝혔다.[373] 특유의 무대 매너는 리틀 리처드제리 리 루이스의 영향을 받은 것이고, 선글라스는 10대 시절 때 우연히 버디 홀리의 모습을 보고 큰 감명을 받게 되면서 쓰기 시작한 것이다.[3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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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 9~12월 사이, Caribou 투어에서

데뷔 초기에는 무난한 선글라스와 옷을 입고 활동하던 수줍은 청년의 모습이었다.[375] 엘튼 존 하면 떠오르는 의상을 입기 전이었지만, 이미 이때부터 화사한 색깔의 셔츠나 멜빵을 입고 무대에서 방방 뛰어다니던 쇼맨십을 자주 보여주었다. 1972년까지만 해도 다양한 색깔의 재킷만 걸치던 수준이었지만 1973년부터 본격적으로 화려한 의상과 선글라스를 착용하면서 화려한 이미지를 키우기 시작했다.[376]

1977년에는 음악 활동을 줄이면서 파일럿 선글라스에 베레모, 칙칙한 의상을 입고 활동했고 1978년부터는 이미지 탈피를 위해 선글라스를 벗으면서 활동했다.[377][378] 1980년부터 1986년까지 6년간 다시 화려한 의상을, 1985년부터는 선글라스를 다시 착용했다.[379] 선글라스는 1979년부터 가끔씩 착용했다가 1985년부터 다시 예전처럼 쓰기 시작한 것이다. 그 뒤로 선글라스나 안경을 벗고 활동하지 않았다. 1988년부터 2002년까지 주로 원형 안경 위주로 착용하다가 2000년대 중반부터 다시 다양한 디자인의 선글라스를 착용하기 시작했다.[380][381]

무대에서 뛰며 각종 쇼맨십을 보이던 시절에는 항상 피아노 의자를 뒤 무대로 던지거나 관객들에게 준 경우도 있었다. 주로 1970~80년대에 이런 모습을 자주 선보였는데 1974년 12월 24일 런던 해머스미스 오데온 극장 공연에서 부른 Saturday Night's Alright For Fighting, 1976년 9월 17일 스코틀랜드 에든버러 공연에서 부른 "Saturday Night's Alright For Fighting"에서 확인할 수 있다.[382][383]

자신의 실수로 관객에게 피해를 입힌 경우도 있었다. 1982년 12월 9일 런던 해머스미스 공연에서 Bennie And The Jets를 연주하던 중, 피아노 의자를 걷어찼는데 관중석으로 낮게 날아가는 바람에 한 여성팬의 뺨과 오른팔에 타박상을 입히는 사고였다. 엘튼 존은 공연이 끝나고 매우 정중히 사과했으며 사과의 의미로 그녀에게 샴페인과 가죽 재킷, 고가의 드레스를 선물해주었다.[384][385] 이 일은 1983년 3월 9일자 경향신문에 실렸다.[386]

1970~80년대에는 무대에서 피아노를 과격하게 연주하다가 의자를 걷어차고 메뚜기처럼 폴짝 뛰었다.[387] 빠른 템포를 가진 록 넘버를 부를 때 주로 하던 1970년부터 십수 년 동안 이어진 쇼맨십이다. 1990년대부터는 나이와 체력으로 인해서 피아노에서 뛰는 모습은 보여주지 않았지만 2000년대에는 공연의 오프닝 "The Bitch Is Back"을 부를 때 가끔씩 피아노에서 뛰기도 했다.[388]

1986년까지 화려한 의상을 자주 입었지만 1988년 9월 런던 경매에서 자신의 수집품들을 대부분 내놓은 이후로 적당히 화려한 재킷, 코트 위주로 입었고, 1990년대 들어서는 예전처럼 화려한 의상들을 입기에는 나이가 많고 어울리지 않다고 여겨 적당히 화려하면서 단정한 옷을 입기 시작했다.[389] 1970~80년대에 비하면 단정한 편이지, 노년기에 접하면서 입고 있는 코트들은 디자인과 색깔이 매우 다양하다.[390]

2000년대에는 Crocodile Rock의 일러스트가 그려져 있던 코트를 입거나 Madman Across The Water, Goodbye Yellow Brick Road, Captain Fantastic And The Brown Dirt Cowboy의 글씨 및 일러스트가 뒷면에 크게 박혀있는 코트도 때때로 입었고, 2010년대 후반 시점으로 별이 매우 반짝거리는 코트를 입고 활동한다.[391][392][393] 1988년 경매 이후에도 젊은 시절에 입었던 것보다 더한 복장도 종종 입었는데, 1997년 50세 생일 당시 배우자 데이비드 퍼니시와 함께 루이 14세처럼 꾸며 입었었다.[394]

1980년 가을 21 AT 33 투어를 진행했을 당시, 엘튼 존은 미니 마우스 의상을 입고 있었다.[395] 스팅이 엘튼 존을 처음 만났을 당시 엘튼 존은 미니 마우스 의상을 입고 있었기 때문에 그 후로 스팅은 엘튼 존과 만날 때마다 항상 미니 마우스 복장을 얘기했다고 한다.[396]

엘튼 존/관련 인물 문서의 로드 스튜어트 문단에 서술되어 있듯이, 1991년 로드 스튜어트 공연에서 만우절 장난 이후에도 여장을 두세 번 정도 더 하기도 했다. 1995년 10월 22일, 영국 런던 알버트 홀에서 진행된 자선 공연에서 금발에 검은 드레스, 하이힐을 신고 카일리 미노그와 함께 앤드루 시스터스의 곡들을 듀엣으로 불렀다.[397] 당시 공연 배경은 1997년 다큐멘터리 〈Tantrums And Tiaras〉에서도 자세히 나왔다. 무대에서 곡들을 부르고 나서 백스테이지로 향한 엘튼 존은 하이힐 때문에 발이 무척 아프다고 툴툴거렸다.

엘튼 존은 자신이 입었던 수많은 의상들 중에서 가장 맘에 드는 건 1980년 9월 13일 센트럴 파크 공연에서 입었던 도널드 덕 의상이라고 했다.[398][399] 이 의상을 입기도 전에 웃음이 터져 나와 입는데 5분이나 걸렸고 무대에서도 뒤뚱거리면서 노래를 부르는 모습이 무척 우스꽝스러워서 반응이 꽤 좋았다. 이 의상을 입고 Your Song을 부를 때 중간에 몇 번 꽥꽥거렸고 "Bite Your Lip (Get Up And Dance!)"를 부를 때는 무대에서 춤을 추었다.[400][401] 1988년 경매에 내놓지 않은 몇 안되는 복장이었고 2003년 2월 6일 카네기 홀에서 진행된 스팅 주최의 아마존 열대림 보존 공연에서 코트니 러브가 이 의상을 빌려 입기도 했다.[402]

1977년 더 머펫 쇼에 게스트로 출연한 에피소드에서 Crocodile Rock을 불렀을 때 입었던 거대한 깃털 의상도 유명한데, 이 의상은 1974년 Caribou 투어 때 입었던 의상이다. 40년 뒤, 2017년 개봉된 킹스맨: 골든 서클에 카메오로 출연했을 때 이 깃털 의상을 입고 격투 장면을 촬영하기 했다.[403][404]

5.2. 솔로 공연[편집]

피아노만 구성된 솔로 공연도 자주 진행했다. 언플러그드 공연이라고 하기도 하는데 보컬 이펙트, 스트링스가 피아노와 동시에 나오고 일렉트릭 피아노 기능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언플러그드라고 할 수 없다.

웅장한 보컬과 특유의 현란하고 즉흥적인 피아노 연주를 돋보이면서 밴드 공연 못지않게 풍부한 사운드로 공연장을 가득 메우고 분위기를 장악하는 것이 특징이고, 엘튼 존의 진가를 느낄 수 있다는 평을 받는다. 첫 솔로 공연은 1976년 9월 17일, 스코틀랜드 에든버러Playhouse 극장에서 진행되었다.[405] 에든버러 공연 이전에도 밴드 공연에서 피아노 솔로로 곡을 부르는 경우는 많았지만 공연 내내 엘튼 존 혼자서 진행한 형식의 공연은 에든버러 공연이 처음이다. 1971년 Madman Across The Water 투어를 진행하면서 초-중반부까지 엘튼 존 솔로, 후반부에 밴드과 함께 진행하던 구성이었다.[406]

1976년 에든버러 공연은 인터넷상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엘튼 존의 공연들 중 하나인데, 이 공연에서만 선보인 독특한 레퍼토리와 한창 높은 테너로 유지했던 엘튼 존의 뛰어난 보컬 퍼포먼스를 확인할 수 있다.[407]

공연에서 피아노 솔로로 곡을 부르는 경우는 잦아졌지만 정작 솔로 공연은 1976년 에든버러 공연 이후로 가끔씩 진행되었다. 1984년 8월 10일 모나코 몬테 카를로, 1990년 5월 17일, MTV 언플러그드 공연과 1992년 3월 15일, 미국 테네시주 내슈빌에서 두 차례 진행된 디 머리 추모 공연, 1997년 9월 19일 뉴올리언스, 1998년 1월 14~15일 파리 공연 등. 1999년부터 순회공연으로 진행했다.[408][409][410][41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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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3월 2일 미국 일리노이주 피오리아의 시빅 센터.

1999년 2월 19일, 미국 버지니아주 로아노크부터 시작해서 20년간 전 세계적으로 진행되었다.[413] 셋리스트에는 약 30곡 정도 수록되었고 절반 정도의 곡들은 밴드 투어에서 웬만하면 자주 부르지 않거나 라이브에서 거의 선보이지 않은 팬 위주의 곡들로 추가했다. 1999년 투어에서는 Friends, Come Down In Time, Talking Old Soldiers, "Amazes Me", "Elton's Song"이 레퍼토리였다.

1999년에는 〈An Evening with Elton John〉라는 이름의 투어로 2월 19일 버지니아부터 11월 20일 캐나다 밴쿠버까지 진행되었고 2000년에는 1월 7일 하와이 호놀룰루부터 12월 10일 먼트거머리까지 진행되었다.[414][415]

북미, 유럽 지역에서는 〈Medusa〉 투어로 진행되었는데 2001년 5~7월 영국, 유럽 지역에서는 〈Stately Home〉 투어의 이름으로 진행되었고 2001년 6월 16일 오스트리아 빈부터 7월 24일 스웨덴 스톡홀름까지 진행되었다.[416][417] 2002년 솔로 공연은 10월 31일 두바이 공연밖에 없다.[418]

2003년에는 5월 31일 시카고부터 12월 21일 스페인 바르셀로나까지 진행되었고 2004년에는 5월 26일 이탈리아 시칠리아부터 6월 9일 이탈리아 칼라브리아에서 진행되었다.[419][420]

2005년 솔로 공연은 1월 23일 프랑스 파리밖에 없고 2006년에는 한차례도 진행하지 않았다.[421] 1년 뒤, 2007년 11월 20일 일본 도쿄부터 12월 16일 호주 시드니까지, 2008년에는 2월 28일 메인주 포틀랜드부터 10월 3일 캐나다 뉴펀들랜드까지 가끔씩 진행되었다.[422][423]

2009년에는 4월 1~4일 미국 공연과 9월 11일 이탈리아 나폴리 공연으로 4차례 진행되었고 2년 뒤, 2011년 4월 12일 콜로라도주 덴버부터 9월 15일 캐나다 프린스에드워드아일랜드까지 진행되었다.[424][425] 2012년 4월 21일 인디애나주 포트웨인부터 12월 11일 대만까지 진행되었고 2013년에는 3월 6일 파라과이 아순시온과 3월 10일 브라질 올린다로 두 차례 밖에 진행하지 않았다.[426][427] 2014년에는 2월 15일 샌프란시스코, 4월 29일 런던, 6월 28일 영국 버킹엄셔로 세 차례밖에 진행하지 않아 횟수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428]

2015년에는 한차례도 진행하지 않았고 2016년에는 3월 2일 뉴욕, 4월 12일 뉴욕, 9월 2일 모나코로 두 차례 진행했다.[429][430][431]

2017년 9월 8일, 로마 콜로세움에서 진행된 안드레아 보첼리 쇼 공연에서도 참여해서 "Philadelphia Freedom", Tiny Dancer, "Sorry Seems To Be The Hardest Word", Your Song, Circle of Life을 피아노 솔로로 불렀다. 5곡 중에서 4곡은 엘튼 존 솔로로, "Circle of Life"는 안드레아 보첼리와 함께 듀엣으로 불렀다.[432][433]

1976년 9월 17일 스코틀랜드 에든버러 공연
1984년 8월 10일 모나코 몬테 카를로 공연, 부틀렉
1990년 5월 17일 MTV 언플러그드 공연
1992년 3월 15일 내슈빌 공연
1997년 9월 19일 뉴올리언스 공연
1998년 1월 14~15일 프랑스 파리 공연
1999년 2월 19일 로아노크 공연
1999년 9월 1일 스페인 폰테베드라 공연
1999년 10월 2일 일리노이 멀린 공연
1999년 10월 16일 뉴욕 매디슨 스퀘어 가든 공연
1999년 11월 12일 시카고 공연
2000년 4월 18일 뉴욕 시러큐스 공연
2000년 11월 14일 노르웨이 오슬로 공연
2001년 7월 17일 터키 에베소 공연
2002년 10월 31일 두바이 공연
2003년 7월 13일 프랑스 님 공연
2004년 6월 9일 이탈리아 칼라브리아 공연
2005년 1월 23일 프랑스 파리 공연
2007년 11월 20일 일본 도쿄 공연
2008년 2월 28일 포틀랜드 공연, 부틀렉
2008년 5월 29일 알래스카 페어뱅크스 공연
2009년 9월 11일 이탈리아 나폴리 공연
2010년 6월 29일 페로 제도 공연
2011년 4월 12일 덴버 공연

5.3. 내한 공연[편집]

2004년

2004년 9월 17일, 서울올림픽주경기장에서 첫 번째 내한 공연을 진행했다. 원래 첫 내한 공연은 1989년 12월 16~17일 잠실 주 경기장에서 두 차례 추진될 예정이었으나 취소되었고 12년 뒤, 2001년 11월 9일 추진될 예정이었으나 이 역시 취소되었다.[434][435] 두 차례의 취소에 이어서 2004년에 겨우 성사된 것이다. 당일 날씨가 대체로 흐렸던 데다 공연 초반에 부슬비가 잠시 내리는 바람에 관객들이 다소 동요하기 시작했다. 올림픽 주 경기장의 경우 지붕으로 덮는 형태의 돔 스타디움이 아니기 때문에 운동장 쪽에 위치한 앞 좌석 쪽은 비를 피할 지붕 같은 게 전혀 없었다. 엘튼 존은 곧바로 센스 있게 즉석에서 Singing In The Rain을 연주하며 관객들의 폭소를 자아낸 덕분에 분위기가 진정될 수 있었고 이후 다행스럽게도 비는 그쳤다.

당시 스탠딩석은 없었고 모든 관객은 좌석에 앉아서 공연을 감상하기로 되어 있었으나, 공연 중반부부터 분위기가 달아오르더니 무대에서 가까웠던 VIP 및 A 구역 관객들이 무대 앞 공간에 우르르 몰려들면서 졸지에 스탠딩 공연이 되어 버렸다. 하지만 실제로는 당시 VIP 구역 관객들은 모두 무대 앞으로 뛰쳐나갔고 위치상 이들이 거의 앞자리를 차지했기에 그렇게 손해라고 보기까진 어렵다.

엘튼 존은 Crocodile Rock을 부를 때 관객이 무대로 던져준 한국 전통 부채를 들고 관중들의 제창을 유도하는 등 흥분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 공연은 SBS에서 기획을 했고 엘튼 존 측과 협의하에 카메라를 동원해 실황을 촬영하여, 그다음 주인 추석 연휴 중에 녹화, 편집된 당시 공연 실황 영상을 특집으로 방영되었다. SBS에서 편집된 영상만 방영되었고 무편집 영상은 공개되지 않았다.

SBS에서 편집된 곡들은 Levon, "Someone Saved My Life Tonight", "I Guess That's Why They Call It The Blues", Take Me To The Pilot, I Want Love, Rocket Man, Funeral For A Friend/Love Lies Bleeding, "Are You Ready For Love"로 총 8곡이다.[436]

한국의 인디밴드 잔나비의 보컬리스트 최정훈은 2004년 내한 공연이 가수의 꿈을 키우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고 밝혔다.[437][438][439][440]

셋리스트

1. The Bitch Is Back

2. Bennie And The Jets

3. Levon

4. Daniel

5. Someone Saved My Life Tonight

6. Philadelphia Freedom

7. Rocket Man

8. I Guess That's Why They Call It The Blues

9. Singin' in the Rain

10. I Want Love

11. Tiny Dancer

12. Take Me To The Pilot

13. Sorry Seems To Be The Hardest Word

14. Sacrifice

15. Candle In The Wind

16. Funeral For A Friend/Love Lies Bleeding

17. Are You Ready For Love

18. I'm Still Standing

19. Saturday Night's Alright For Fighting

20. Crocodile Rock

21. Pinball Wizard

22. Your Song

23. Can You Feel the Love Tonight



2012년

2004년 내한 공연 이후로 엘튼 존 내한 공연은 두 번 무산되었다. 아시아, 오세아니아에서 솔로 투어를 진행하던 2007년 겨울에 성사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가 있었으나 무산되었고, 2008년 1월 1일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왔지만 몇 개월 뒤 무산되었다.[441]

2012년 11월, 서울과 부산에서 두 번째 내한 공연이 잡혔다. 그랬다가 부산 공연은 취소되었고 부산 공연을 서울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만 공연을 진행했다. 부산 공연은 티켓 판매 저조로 취소되었다는 말이 돌아다녔지만 기획사 간의 내부 사정으로 인해 취소되었다고 공식 밝혀졌다.[442] 2004년 공연에서 비가 온 탓에 "다음번에는 여러분이 비에 젖지 않도록 실내에서 공연을 하겠다"라고 말한 약속을 지켰다.

셋리스트

1. The Bitch Is Back

2. Bennie And The Jets

3. Grey Seal

4. Levon

5. Tiny Dancer

6. Believe

7. Mona Lisas And Mad Hatters

8. Philadelphia Freedom

9. Candle in the Wind

10. Goodbye Yellow Brick Road

11. Rocket Man

12. Hey Ahab

13. I Guess That's Why They Call It The Blues

14. Funeral For A Friend/Love Lies Bleeding

15. Honky Cat

16. Sad Songs (Say So Much)

17. Daniel

18. Sorry Seems to Be the Hardest Word

19. Nikita

20. Don't Let The Sun Go Down On Me

21. I'm Still Standing

22. Crocodile Rock

23. Saturday Night's Alright For Fighting

24. Your Song

25. Circle of Life



2015년

2015년 11월 27일, 〈All the Hits〉 투어의 일환으로 딱 3년 만에 세 번째 내한 공연이 잡혔다. 특이하게도 이 공연은 500명만 볼 수 있는 소극장 공연이었는데, 이런 형태의 공연은 〈All the Hits〉 투어가 진행되는 세계 40여 개 도시 중에서도 유일했다. 당시 엘튼 존은 한국을 방문한 김에 자신이 주주로 있는 코코넛 제품 브랜드 '잭스코코' 사업 등을 논의하고자 홍콩에 있는 잭스코코 본사에서 잭스코코 코리아를 설립한 박진영과 일정을 조율하기도 했지만 스케줄이 맞지 않아 만남은 성사되지 않았다. 박진영이 엘튼 존 공연 무대로 오른다는 얘기도 있었지만 이 또한 별 얘기 없이 넘어갔다.[443]

공연을 진행하기 1일 전 11월 26일 오후 6시, 언더스테이지에서 사운드 체크를 했을 때 연예인들 일부가 참석하여 인증 사진을 남기기도 했다. 이날 참석한 연예인들은 윤종신, 김수로, 윤하 등이었으며 윤하는 자신의 인스타그램 계정에서 인증 사진을, 윤종신은 엘튼 존, 김수로와 함께 촬영한 사진을 올렸다.[444] 공연은 11월 27일, 오후 8시부터 시작되었고 오프닝 곡으로 "The Bitch Is Back"을 부르면서 공연을 진행했다.

공연은 소규모 공연장인 이태원의 현대카드 언더스테이지(UNDERSTAGE)에서 진행되었고, 전석 스탠딩이었다. 무대 바로 앞인 0번대 자리에서 펜스를 쳤기 때문에 무대와는 조금 떨어져 있었다. 다른 나라에서 진행된 공연들과 달리 소극장이라서 그런지 공연 시간이 상대적으로 짧았고 이에 따라 몇몇 곡을 빼고 18곡만 불렀다.

앙코르를 부르고 나서 공연이 끝났지만, 당시 공연장에 있던 사람들은 Crocodile Rock이 공연의 마지막 곡이었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해서 앙코르 요청을 5분 동안 했다. 엘튼 존은 공연이 끝나고 나서 아디다스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공연장 2층에 잠시 올라가 위에서 관객들을 내려다보았다. 그렇게 더 머물고 있다가 차를 타고 떠났다. 밴드의 멤버들도 좀 더 머물고 떠났지만 관객들은 계속 앙코르를 외쳤고 결국 무대 스태프 중 한 명이 엘튼 존은 이미 차 타고 떠났다고 공지한 다음에야 다들 공연장에서 나왔다. 공연이 끝나고 나서 엔딩 스크롤 음악으로 "Song For Guy"가 나왔다.

이날 공연 때 제외된 곡들은 Funeral For A Friend/Love Lies Bleeding, All The Girls Love Alice, "Believe", "Hey Ahab", Burn Down The Mission, "Sorry Seems To Be The Hardest Word"로 총 6곡이다. 공연의 오프닝으로 불렀던 "Funeral For A Friend/Love Lies Bleeding"을 제외하고 대신 "The Bitch Is Back"을 오프닝으로 불렀다. 공연의 앙코르이자 마지막 곡으로 Crocodile Rock을 불렀다.

2012년 공연과 2015년 공연은 2004년 공연과 달리 방송국에서 직접 촬영하지 않았고 관객들이 촬영한 직캠 영상들만 인터넷상에 돌아다닌다.[445]

2004, 2012, 2015년 모든 내한 공연들의 오프닝 곡으로 "The Bitch Is Back"을 불렀다.

셋리스트

1. The Bitch Is Back

2. Bennie And The Jets

3. Candle In The Wind

4. Levon

5. Tiny Dancer

6. Daniel

7. Philadelphia Freedom

8. Goodbye Yellow Brick Road

9. Rocket Man

10. I Guess That's Why They Call It The Blues

11. The One

12. Your Song

13. Sad Songs (Say So Much)

14. Don't Let The Sun Go Down On Me

15. I'm Still Standing

16. Your Sister Can't Twist (But She Can Rock n' Roll)

17. Saturday Night's Alright For Fighting

18. Crocodile Rock



2019년

2018년 1월 24일, 엘튼 존은 투어 활동 은퇴 및 2021년까지 3년간 전 세계적으로 진행할 마지막 투어 〈Farewell Yellow Brick Road〉를 발표했을 때 아시아 방문을 언급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2019년 11~12월 사이에 한국을 포함하여 일본, 홍콩, 싱가포르에서 공연을 진행하며 아시아 투어를 돌 것이라고 발표되었다. 한국 공연 지역은 서울이다. 티켓은 2018년 11월 1일부터 사전 예매가 가능하며, 공연 날짜 및 정확한 장소는 추후 알려질 것이다.[446] 4번째 한국 방문이자, 마지막 내한 공연이 될 예정이다.

5.4. 엘튼 존 밴드[편집]

6. 개인사[편집]

6.1. 관련 인물[편집]

7. 자선 활동[편집]

  • 1992년 3월, 엘튼 존 에이즈 재단(Elton John AIDS Foundation, EJAF)을 설립한 이후로 사회적 소수자 인권 운동, HIV 퇴치 운동에 열심히 참여하고 있다. 자선 활동을 수십 년간 꾸준히 해오면서 수백억의 거금을 기부하는 중이고 1992년 11월 발매된 싱글이자 에이즈로 인해서 세상을 떠난 이들을 추모하는 노래 "The Last Song" 이후로 발매된 모든 싱글들의 수익은 전액 기부한다.[447]

  • 2011년 4월 12일 덴버 공연에서,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살해당한 와이오밍 대학교의 학생 매슈 셰퍼드를 추모하는 의미로 4분 정도의 연설을 했고 그를 기하는 의미로 American Triangle을 불렀다. 이후 엘튼 존은 '매슈 셰퍼드 재단'에 500,000 달러(한화로 5억 8천만 원)를 기부했다.[448]

8. 로켓 엔터테인먼트[편집]

9. 대중매체에서[편집]

화려한 이미지로 유명하다 보니 각종 방송, 만화, 영화 등에서 패러디되거나 특별 출연하는 경우가 잦다.

더 머펫 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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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머펫 쇼 시즌 2 에피소드 14에서 게스트로 출연했다. 1977년 10월 25~27일 촬영, 1978년 1월 8일(영국), 2월 6일(미국) 방영되었다.[449] 거대한 깃털 의상을 입고 악어 늪에서 Crocodile Rock을 불렀고 일렉트릭 메이헴이 연주를 맡았다. 코러스는 늪지대 악어들과 함께 합창했는데 마지막에 엘튼 존이 발을 헛디뎌 늪에 빠져 악어밥이 되었다.[450] 머펫 캐릭터들과 같이 Bennie And The Jets를, 일렉트릭 메이헴과 Goodbye Yellow Brick Road, 미스 피기와 "Don't Go Breaking My Heart"를 불렀다.[451][452][453] 해당 에피소드의 엔딩 부분에서 머펫들은 전부 엘튼 존처럼 화려하게 입었는데 정작 엘튼 존은 당시 패션이던 회색 베레모에 파일럿 선글라스, 회색 재킷을 입었다. 스쿠터는 엘튼 존에게 패션이 이상하다고 하자, 엘튼 존은 머펫들에게 도난당한 차량들처럼 입은 거 같다고 놀렸다.[454]

일렉트릭 메이헴의 리더 닥터 티스는 엘튼 존과 리버라치의 상당한 영향을 받은 캐릭터인데 애초에 닥터 티스의 이름을 "Leon "Doctor" Eltonjohn Dontshoot (The Piano Player)​"로 정할 예정이었다. 뒷 이름은 엘튼 존의 1973년 6집 Don't Shoot Me I'm Only The Piano Player에서, 첫 이름 'Leon'은 리언 러셀에서 따온 걸로 추정된다.[455]

사우스 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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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스 파크에서 꽤 자주 등장했다. 1997년 9월 10일 방영된 시즌 1 에피소드 5, "An Elephant Makes Love to a Pig"에서 제롬 맥엘로이와 "Love Gravy"를 부른 걸로 등장했고 몇 구절을 부르고 나서 바로 퇴장했다. 여기서는 엘튼 존이 아니라 트레이 파커가 목소리를 맡았는데 모창 실력이 상당하다.[456]

1998년 10월 7일 방영된 시즌 2 에피소드 14, Chef Aid에서 등장했는데 이 에피소드에서 엘튼 존이 성우를 맡았고 "Wake Up Wendy"를 작곡했다. 위 사진이 "Chef Aid"에 등장한 모습이다. 해당 에피소드에서 스탠 마시, 카일 브로플로프스키, 에릭 카트맨은 곤경에 빠진 쉐프를 도와주기 위해 쉐프와 인연이 있던 록 음악가들을 모두 만나 초콜릿 과자들을 사게 해서 돈을 모으려고 했고 엘튼 존을 가장 처음으로 만났다. 엘튼 존은 쉐프를 술집에서 시답지 않는 노래나 부르는 무명 가수였던 자신을 크게 도와준 은인으로 여겼다.

과거 회상 장면에서 엘튼 존이 부른 댄스 홀 풍의 경쾌한 곡 "Cheddar Cheese Girl"은 엘튼 존이 버니 토핀과 협업을 가지기 전이던 1960년대 초-중반, 영국의 블루스 밴드 <블루솔로지>에서 활동하면서 진부하고 밋밋한 곡들을 쓰던 무명 시기를 나타낸 유머 포인트다.[457] 결국 관객들한테 야유받으면서 무대에서 쫓겨나간 엘튼 존은 뒷 무대에서 쉐프와 만나게 되면서 조언을 들었는데, 쉐프는 엘튼 존에게 저능아 원숭이도 당신보다 가사를 더 잘 쓰겠다고 디스했다. 엘튼 존은 어떻게 하면 가사를 잘 쓸 수 있겠냐고 물어보자 쉐프는 버거 가게에서 일하고 있는 버니 토핀을 만나보라고 했다.

엘튼 존은 미트 로프, 오지 오스본 등 동료 음악가들과 함께 쉐프를 도와주기 위해 사우스 파크에서 자선 공연 "셰프 에이드"를 열었다. 엘튼 존은 스탠 마쉬의 부탁으로 스탠 마쉬가 쓴 가사로 웬디 테스터버거에 대한 "Wake Up Wendy"를 작곡했고 공연에서 부르고 있는 도중, 못된 소속사 사장이 무대 기둥을 절단하여 무대가 기울어지면서 공연을 망쳐버리는 바람에 끝까지 부르지 못했다.

엘튼 존이 작곡한 "Wake Up Wendy"는 E로 구성된 경쾌한 록 넘버다. 스탠 마쉬가 가사를 썼다고 나오지만 실제로 가사를 쓴 건 버니 토핀이다. "Wake Up Wendy"는 1998년 11월 24일 발매된 사우스 파크 사운드트랙 앨범 《Chef Aid: The South Park Album》에 수록되었다.[458]

"Chef Aid" 에피소드에 관련된 모큐멘터리이자 미국의 VH1 채널의 다큐멘터리 방송 〈Behind The Music〉을 패러디한 〈Chef Aid: Behind The Menu〉에서 실제 모습으로 직접 출연하여 쉐프가 자신에게 끼쳤던 영향에 대해서 밝혔다.[459]

사우스 파크 특성상, 유명인들은 거의 대부분 심하게 까이지만 엘튼 존은 드물게도 약간의 험한 꼴도 받지 않은 게스트들 중 하나다. 트레이 파커가 엘튼 존 열성 팬이라서 그런 걸로 보인다. 트레이 파커는 한 인터뷰에서 어린 시절 때 엘튼 존 곡들을 듣고 피아노로 연주하면서 자랐다고 밝혔고, 맷 스톤Chef Aid에서 가장 좋아하는 퍼포먼스로 엘튼 존의 "Wake Up Wendy"를 꼽았다.[460][461]

트레이 파커와 맷 스톤은 엘튼 존과 개인적으로도 친분이 있는 걸로 보이는데 2002년 2월 24일 할리우드에서 열린 제10회 엘튼 존 에이즈 재단 주최 행사에 두 사람이 같이 참석했고, 2016년 2월 24일 웨스트 할리우드 파트에서 열린 제24회 엘튼 존 에이즈 재단 아카데미 시상식 후속 파티에 트레이 파커만 참석한 적이 있다.[462]

2012년 제54회 그래미 어워드에서 최우수 뮤지컬 앨범(Best Musical Theater Album) 부문에 후보로 오른 트레이 파커와 로버트 로페즈의 2011년 뮤지컬 The Book of Mormon이 수상했을 때, 그래미 어워드가 끝나고 나서 열린 특별 파티에서 트레이 파커와 로버트 로페즈가 각각 엘튼 존과 빌리 조엘 곡들을 피아노로 연주하며 대결했다고 한다.[463]

시즌 10 에피소드 1 "The Return of Chef"에서 셰프의 장례식에 참석한 걸로 등장했고 시즌 15 에피소드 11 "Broadway Bro Down"에서는 <Broadway Bros>의 멤버로 앤드루 로이드 웨버, 스티븐 손드하임, 스티븐 슈왈츠와 함께 뮤지컬 제작자로 등장했다.[464] 시즌 2 에피소드 14 Chef Aid 이후로 가장 비중이 높은 등장이고 이 에피소드에서 엘튼 존이 직접 목소리를 맡지 않았다. 2000년대의 모습을 그대로 묘사해서 당시 모습과 비슷하지만, 해당 에피소드는 뮤지컬의 성적인 잠재의식에 관해서 풍자하는 내용이라서 다른 뮤지컬 제작자와 함께 까이는 면이 살짝 있다. "Broadway Bro Down" 에피소드 방영 직전에 한 걸로 추정되는 인터뷰에서 트레이 파커는 비록 의도한 결정은 전혀 아니지만, 그를 살짝이라도 깔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465]

엘튼 존이 등장한 건 아니지만 곡들로 패러디된 적도 있는데, 시즌 4 에피소드 17 "A Very Crappy Christmas"에서 Circle of Life이 "The Circle of Poo"로 패러디되었다.[466]

시즌 15 에피소드 3 "Royal Pudding"에서 캐나다 공주가 충치에게 납치되자 캐나다 전역이 슬픔에 잠겼고 러시가 추모 공연을 열어서 추모곡 "Flower Breaking Wind"를 불렀는데, 이는 엘튼 존의 다이애나빈 추모곡 Candle In The Wind 1997을 패러디한 것이다. 노래를 부르던 중, 알렉스 라이프슨은 권총을 머리에 쏴 자살한다.[467]

시즌 12 에피소드 1 "Tonsil Trouble"에서 직접 등장하지 않았지만 몇 차례 언급되었다. 해당 에피소드에서 에이즈에 감염된 에릭 카트맨은 엘튼 존이 후원하는 모금 행사를 열었는데 정작 엘튼 존은 암 모금 행사에서 연주하게 돼서 참여를 못하자 미국의 싱어송라이터 지미 버핏이 대신 공연을 맡았다. 결국 에릭 카트맨은 완전히 빡쳐서 지미 버핏을 맹렬하게 깐다.[468]

심슨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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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슨 가족에서도 카메오로 등장했고, 여기서도 엘튼 존은 성우로 참여했다. 1999년 2월 14일 방영된 시즌 10 에피소드 14 "I'm with Cupid"에서 전용기 샹들리에가 문제가 생겨 스프링필드 공항에 잠시 내린 걸로 등장했다.[469] 해당 에피소드에서는 아푸만줄라를 위해서 엘튼 존을 섭외한 거라고 오해한 호머 심슨, 줄리어스 히버트, 위검 서장, 모 시즐랙이 엘튼 존을 제지하려고 나선다.

여기서 호머가 엘튼 존을 붙잡고 "나는 당신의 열성팬이고 당신의 모든 노래를 녹음했다"라고 가짜 팬심을 보여주었고 엘튼 존은 기특하다고 여기면서 호머에게 그래미상 상패를 주었는데 심슨 특성상 그래미를 골든 라즈베리 급으로 취급하기 때문에 호머는 기겁하면서 곧바로 쓰레기통에 갖다 버렸다. 해당 장면에서 엘튼 존은 아무렇지 않게 그래미상을 던져주지만 실제로 엘튼 존에게 그래미상은 귀한 상이다. 최고 전성기라 할 수 있는 1970년대에마저도 그래미에서는 11번 노미네이트만 되고 수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 이후에 5번 수상하고 그래미 레전드 특별상을 받기도 했지만, 그래미가 엘튼 존에게 상을 후하게 주는 편은 아니다.

엘튼 존은 호머 일행에 의해 기내용 케이지에 가둬지면서도 "신입 신고식이냐", "예전에 엘리자베스 2세 여왕에게 기사작위를 받았을 때 바보 같은 놈이라면서 뺨을 철썩 맞은 적이 있다"라고 하면서 해맑게 말한다. 호머 일행이 떠나고 나서 엘튼 존은 도움을 청했지만 아무도 꺼내주지 않아 직접 케이지를 물어뜯고 나왔다. 다시 전용기에 탑승하려고 활주로로 나왔다가 우연히 자신의 팬이기도 한 아푸와 만나면서 얘기한다. 아푸의 도움으로 경비행기 프로펠러에 갈려질 위기를 모면했고 여기서 아푸가 Take Me To The Pilot, "Someone Saved My Life Tonight", "The Bitch Is Back"으로 언어유희를 해 엘튼 존을 화나게 만들었다.

이후 엘튼 존은 퀵키마트 옥상에서 아푸와 만줄라를 위해 Your Song을 피아노로 연주하면서 불렀고 가사에 You를 Apu로 개사해서 불렀다. 이 에피소드에서 부른 "Your Song"은 1970년 원곡 이후로 두 번째의 스튜디오 녹음이기도 하다.

이후 카메오로 가끔씩 등장했지만 목소리 없이 모습만 나왔다. 시즌 18 에피소드 16, 호머 심슨이 파파라치가 되는 에피소드 "Homerazzi"에서 세탁소에서 화려한 의상을 들고 나가는 모습으로 등장했고 호머에 의해 폴 매카트니와 게리 콜먼, 야오밍과 같이 촬영되었다. 시즌 22 에피소드 14 "Angry Dad: The Movie"에서는 레이디 가가와 함께 카메오로 등장했다. 시즌 28 에피소드 20 "Moho House"에서 모 시즐랙이 유명인들을 위한 사교 클럽을 지었을 때 엘튼 존은 클럽에 참석한 유명인들 중 한 명으로 등장했다.[470]

호머 심슨과 마지 심슨의 고교 시절에 대한 시즌 2 에피소드 12 "They Way We Was"에서 나온 졸업 파티의 밴드의 이름이 Goodbye Yellow Brick Road이다. 이 밴드가 부른 곡들 중 하나가 바로 Goodbye Yellow Brick Road이고 원키 F에서 3키를 내린 D로 부르는 장면이 스쳐 지나간다. 이 밴드는 그 후로 등장이 없었다가 시즌 13 에피소드 10, "Half-Decent Proposal"에서 재등장했고 아티 지프가 연 제2 고교 졸업 파티에 참여했다. 아티 지프가 말하길, 이 밴드는 고등학교 졸업 파티 이후로 일자리를 찾지 못해 오랫동안 실업자 상태였다고 한다.[471]

시즌 13 에피소드 5, "The Blunder Years"에서 과거 회상 중, 레니에게 나중에 커서 Lenny And The Jets로 같이 활동하는 게 아니냐고 말했다.

시즌 19 에피소드 8, 사이드쇼 밥의 장례식에서 크러스티가 피아노를 연주하면서 부른 추모곡 "Farewell, Sideshow Bob"은 Candle In The Wind 1997을 패러디한 것이다. 이 에피소드의 제목은 Funeral For A Friend이기도 한데, 이 곡은 1973년 7집 Goodbye Yellow Brick Road의 1번 트랙이고 바로 다음 트랙이 "Candle In The Wind 1997"의 원판 Candle In The Wind이다.

밥 더 빌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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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10월 22일 방영된 영국의 애니메이션 <밥 더 빌더(한국명: 뚝딱뚝딱 밥아저씨)> 크리스마스 스페셜 "A Christmas To Remember"에서 특별출연했다.[472] 성우도 엘튼 존이다. 이 에피소드에서 엘튼 존은 대스타가 아니고 작중 록스타 캐릭터 '레니 라젠비'(성우 크리스 에반스[473]) 밴드의 키보디스트이자 작곡가, 레니에 비해서 비교적 주목을 많이 받지 못하는 무명 음악가로 묘사되었고 이름도 그저 "존"이다.

밥 더 빌더 캐릭터들이 사는 마을 '밥스빌'에서 크리스마스 공연을 진행하려고 밴드와 함께 비행기 타고 마을로 왔다. 밴드가 비행기에서 내리는 장면에서, 한 기자가 "어떻게 유럽으로 방문하게 되었냐"라고 질문하자 레니는 "그린란드에서 왼쪽으로 방향을 틀었다."라고 답했는데 이는 비틀즈의 1964년 영화 A Hard Day's Night존 레논 대사를 패러디한 것이다. 마을 도착 이후, 레코딩 스튜디오에서 밴드와 함께 연습하는데 중간에 연습을 멈추고 잠시 스튜디오 밖으로 나와서 곡을 마저 쓴다. 작곡에 어려움을 느낀 존은 로큰롤을 좋아하는 초록색 드럼 롤러 '롤리'의 도움으로 곡을 완성한다. 여기서 존은 롤리와 함께 작사까지 맡는 걸로 묘사되었는데 버니 토핀은 언급도, 출연하지도 않았다. 공연 날, 레니는 갑작스러운 감기로 인해 목이 쉬어버려 노래를 못 부르게 되자 결국 롤리의 제안으로 존이 메인 보컬을 맡게 되었고, 롤리의 제안으로 이름도 "엘튼 존"으로 정하게 된다. 그렇게 존은 롤리와 함께 쓴 Crocodile Rock을 부르면서 밴드와 함께 연주했고 결과는 성공적이었다.[474]

이 에피소드가 방영되고 얼마 뒤에 발매된 밥 더 빌더 사운드트랙 앨범 《Bob The Builder: The Album》에 리믹스 버전의 Crocodile Rock이 수록되었다. 이 리믹스 버전에는 엘튼 존의 1970년대 프로듀서 거스 더전이 보컬을 녹음하기도 했다.[475][476] 엘튼 존이 밥 더 빌더에서 게스트 성우로 참여한 건 잘 알려진 사실이 아니라서 어렸을 때 밥 더 빌더를 봐오면서 컸던 사람들 중에서 이 사실을 알고 놀라는 경우도 종종 있다.

탑기어

탑기어에서 비싸고 고급스러운 차량들 리뷰에서 이런 차량들을 대체로 아주 부유한 유명인들이 구매한다고 말할 때 엘튼 존을 간간이 언급한다. 예를 들어 시즌 2 에피소드 10에서 제임스 메이가 2003년 캐딜락 식스틴 컨셉카를 리뷰하면서 "요즘에는 엘튼 존, 데이비드 베컴 같은 사람들이 이런 차를 구입합니다", 시즌 17 에피소드 5에서 제레미 클락슨이 젠슨 인터셉터를 리뷰하면서 "만약 당신이 엘튼 존이라면 그리 비싼 가격이 아닙니다"라는 식이다. 시즌 11 에피소드 5에서 제레미 클락슨과 제임스 메이가 각각 1969년형 메르세데스-벤츠 600, 1972년형 롤스로이스 코니시의 유명한 오너들을 정리했을 때 엘튼 존이 롤스로이스 코니시 오너 명단에 있다. 제레미 클락슨은 게이들의 자동차라고 놀렸고 제임스 메이는 독재자들의 자동차라고 놀렸다.

시즌 1 에피소드 6, 제레미 클락슨은 자신이 크게 좋아하는 2002년형 메르세데스-벤츠 SL55 AMG를 리뷰하고 나서 스튜디오 장면으로 돌아왔을 때, 리처드 해먼드는 가장 게이스러운 자동차 1위로 메르세데스-벤츠 SL을 꼽은 한 웹사이트 자료를 들고 와서 제레미 클락슨을 놀렸고, 하필 그 목록에서 2위 자동차는 자신이 칭찬한 적 있는 지프 랭글러라서 웃음을 주었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는데 탑기어 제작진은 당시 제레미 클락슨이 가지고 있던 SL55 AMG를 몰래 스티그에게 주고 그걸 탑기어 트랙에 돌아 랩타임을 쟀다. 이에 제레미 클락슨은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어이없어했다. 스티그가 SL55 AMG를 몰았을 때 "Don't Go Breaking My Heart"가 오디오에서 나왔는데 제레미 클락슨은 이를 듣고 "내 마음도 무너지고 있어!"라고 말해 웃음을 주었다.

시즌 10 에피소드 4, 보츠와나 특집에서 리처드 해먼드의 1963년형 오펠 카데트(일명 올리버)로 강을 건너다가 물이 차 안으로 들어와 고장나 수리하던 중, 제레미 클락슨과 제임스 메이는 해먼드가 싫어하는 곡들을 옆에서 틀어 장난쳤는데 그중 하나가 "Sorry Seems To Be The Hardest Word"이고 다른 곡들은 에릭 카르멘의 "All By Myself"과 R.E.M.의 "Everybody Hurts".[477] "Sorry Seems To Be The Hardest Word"로 다른 멤버 놀려먹기를 두 번 정도 더 사용했는데, 시즌 21 에피소드 7 버마 특집 2부에서 제임스 메이의 히노 레인저 FB 110[478]이 고장 나자 클락슨이 이 곡을 틀면서 가버렸다.[479] 시즌 22 파타고니아 특집에서는 해먼드의 1971년형 포드 머스탱 마하 1이 눈에 처박히자 클락슨은 이 곡을 틀면서 가버렸다.[480]

시즌 16 에피소드 5, 뉴스 코너에서 2011년형 닛산 에스플로우 컨셉카의 세부 사항을 설명하던 중, 제레미 클락슨은 이 차의 운전자에 대해서 묘사한 글을 직접 읽었고 바보 같다면서 깠다. 그 내용은 바르셀로나에 살고 첨단 기술관련업에 종사하는 대니얼이라는 실존하지 않은 가상 남성에 대한 글인데 이는 탑기어가 지어낸 게 아니고 진짜로 닛산 측에서 만든 글이다.[481] 여기서 제임스 메이는 닛산의 "대니얼"은 엘튼 존의 Daniel의 "대니얼"과 실존 인물이냐고 묻자 클락슨과 메이 둘이서 "Daniel" 가사에 닛산 에스플로우를 갖다 붙이면서 장난쳤다. "Daniel"에서 대니얼은 스페인으로 떠나는 구절이 있는데 공교롭게도 닛산의 대니얼도 바르셀로나에 산다는 공통점이 있어서 이 이야기를 꺼낸 것이다. 그러면서 제임스 메이의 중간 이름이 대니얼이라고 하면서 웃음을 주었다.

그 외 매체에서

파일:external/vignette1.wikia.nocookie.net/PharaohsFuneralSong.png

2002년 3월 10일 방영된 퓨처라마 시즌 4 에피소드 7, "A Pharaoh To Remember"에서 파라오의 장례식에서 노래를 부르는 장례식 가수로 나왔다. 성우는 퓨처라마의 주조연 캐릭터 담당 성우인 데이비드 허먼이다. 파라오 추모곡들의 제목은 각각 Pharaoh, Pharaoh And His Pets, Pharaoh Rock. 파라오의 하인들은 엘튼 존을 파라오의 재물로 삼으려고 엘튼 존과 그의 피아노를 파라오의 무덤으로 떨어뜨렸고 피아노에 깔려 즉사했다. 이 에피소드에서 엘튼 존은 머리가 유리병에 담겨 있는 다른 20세기 유명인들과 달리 멀쩡히 몸을 가지고 있다.

패밀리 가이 시즌 3 에피소드 5 "And the Winnder Is..."에서 스튜이 그리핀Rocket Man을 낭송했는데 이는 스타트렉의 배우 윌리엄 샤트너가 1978년 공상과학영화 어워드에서 낭송한 버전을 패러디한 것이다.[482][483] 시즌 5 에피소드 14 "No Meals on Wheels"에서 피터 그리핀이 휠체어 신세를 지게 된 장면에서 "I Guess That's Why They Call It The Blues"가 배경음악으로 나왔다.[484]

시즌 8 에피소드 6, "Quagmire's Baby"에서는 피터 그리핀이 노래방에서 "Don't Go Breaking My Heart"를 라디오로 녹음된 로널드 레이건의 목소리와 함께 듀엣으로 불렀는데 마이크를 라디오 볼륨에 갖다 대서 엄청난 소음을 낸 바람에 모든 손님들이 귀를 막고 질색한다.[485]

패밀리 가이에는 엘튼이라는 이름의 캐릭터가 있는데, 엘튼 존과 연관성은 하나도 없다. 이 캐릭터는 시즌 12 에피소드 16, "Herpe, the Love Sore"에서 보니 스완슨의 간호사로 잠시 등장하던 캐릭터다.[486]

2000년 3월 31일 개봉한 드림웍스 애니메이션이자 엘튼 존과 팀 라이스, 한스 치머, 존 포웰이 음악을 맡은 엘도라도의 주제가 중 하나인 "Someday Out Of The Blue"의 뮤직비디오에서 엘튼 존이 캐릭터화로 등장했다.[487] 숲에서 그랜드 피아노를 연주하며 노래를 부르던 엘튼 존은 실사 모습에서 캐릭터로 변하며 옷차림도 16세기 풍으로 변한다. 엘튼 존은 엘도라도에 돌아다니면서 노래를 부르며, 영화의 장면들마다 주조연 캐릭터들 옆에서 노래를 부르는 모습으로 나온다. 실제 영화에서 이렇게 나오지 않았으며 그저 뮤직비디오에서만 이렇게 편집한 것이다.

2003년 7월 2일 개봉된 터미네이터 3의 초반 장면, T-850이 인근 술집에서 옷을 탈취하고 주머니 속 빨간 별 모양 선글라스를 썼다가 마음에 안 들었는지 벗어서 바닥에 버리고 발로 밟아서 부순다.[488] 이 선글라스는 엘튼 존이 1970년대 전성기 시절 당시 즐겨 쓰던 모양의 선글라스였고 엘튼 존을 대표하는 모양의 선글라스다. 화려한 선글라스를 쓴 아놀드 슈워제네거의 모습이 상당히 우스꽝스러워서 순식간에 진지한 장면에서 웃긴 장면으로 만들었다. 터미네이터 시리즈에서 사라 코너는 엘튼 존의 Rocket Man을 좋아한다는 언급이 나오기도 했다.

2008년 3월 8일 방영된 피니와 퍼브 시즌 1 에피소드 22, "Dude, We're Getting the Band Back Together"에서 엘튼 존이 직접 출연한 건 아니지만 피니어스 플린이 엘튼 존처럼 분장하고 흰색 피아노를 연주하는 모습으로 잠깐 나왔다.[489] 정확히 작중의 1980년대 인기 록 밴드 러브 헨델의 보컬리스트 대니(성우 자렛 레딕)가 "History of Rock"이라는 록 음악의 역사를 설명하는 곡을 부르는 장면에서 1970년대 훵크 파트 도중, 엘튼 존으로 분장한 피니어스가 나온 것이다.[490] 여기서 퍼브 플래처존 레논처럼 분장했다. 훵크 장면에서 뒷 글씨로 크게 "Funk Train"으로 써져 있는 걸 확인할 수 있는데, 이는 1971년부터 2006년까지 미국에서 방영되던 흑인 음악 프로그램 <Soul Train>를 패러디한 것이기도 하다. 2015년 6월 12일 방영된 피니와 퍼브 시즌 4 에피소드 48, "Last Day of Summer"에 나온 비틀즈 풍의 노래 "Gotta Get Back In Time"은 엘튼 존 밴드에서 2012년부터 베이스를 맡고 있는 베이시스트 맷 비저넷이 부른 것이다.[491][492]

2016년 12월 21일 개봉한 일루미네이션 엔터테인먼트의 장편 뮤지컬 애니메이션 에서 조니(성우 태런 에저턴)가 엘튼 존의 1983년 히트곡 "I'm Still Standing"을 피아노로 연주하면서 노래를 불렀다.[493]

2017년 9월 22일 개봉한 킹스맨: 골든 서클에서 포피 아담스한테 납치되어서 강제로 공연을 하지만 해리 하트게리 에그시 언윈이 구조하러 올 때 Saturday Night's Alright For Fighting의 "Saturday"를 "Wednesday"로 바꾸어 부르면서 포피의 부하들을 혼자 상대하는 위엄을 보인다. 토요일이 아니라 수요일로 바꿔서 이유는 킹스맨이 포피의 아지트에 쳐들어온 날이 수요일(Wednesday)이라서 그렇다. 해리 하트가 포피의 로봇 개들한테 살해당할 뻔 할 때 포피가 로봇 개는 엘튼 존을 공격하지 못하게 설정한 걸 이용해 해리를 도와주고 같이 로봇 개를 박살내는 활약을 한다.

10. 학력[편집]

피너 우드 초등학교 졸업, 피너 사립학교 졸업, 피너 카운티 문법학교 중퇴, 영국 왕립음악원(RAM) 5년 중퇴(1958~1963년), 명예회원(1997년), 명예박사(2002년)

영국 왕립음악원(Royal Academy of Music)은 왕립음악대학(RCM, Royal Collage of Music)과는 다른 곳이다. 전통과 역사, 동문 등 종합적으로 RAM쪽이 더 높게 평가받는 편이다. RAM은 미국의 줄리어드, 독일의 베를린 음악대학 등과 함께 세계 5대 음대로 꼽히기도 했다.

왕립음악원이 1999년 9월부터 런던 대학교 시스템 산하 단과대학으로 병합되었기 때문에 2002년 받은 명예박사학위는 런던 대학교 시스템 명예 음악학 박사이다. 왕립음악원 역사상 명예박사학위는 이 해에 처음 주어졌고 지휘자 콜린 데이비스 경과 함께 받았다.[494]

11. 수상 및 서훈내역[편집]

파일:로큰롤 명예의 전당 로고.png 로큰롤 명예의 전당 헌액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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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엘튼 존
ELTON JOHN

멤버

(개인자격)

입성 연도

1994년

엘튼 존의 주요 수훈 및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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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 명예의 거리 입성자

파일:할리우드 명예의 거리.png

이름

엘튼 존
ELTON JOHN

분야

음악

입성날짜

1975년 10월 21일

위치

6915 Hollywood Blvd.






영국 기사 서임자 (남성)
British Knigh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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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보기: 기사 서임자 (여성)

KBE 파일:external/s-media-cache-ak0.pinimg.com/7b160a24b08857219efc111189b9773d.jpg

시드니 포이티어
(1974년)

찰리 채플린
(1975년)

앨프리드 히치콕
(1980년)

앤드루 와일스
(2000년)

로저 무어
(2003년)

팀 버너스리
(2004년)

조너선 아이브
(2012년)

Knight Bachelor 파일:knightbachelor.jpg

아이작 뉴턴
(1705년)

코난 도일
(1902년)

알렉산더 플레밍
(1944년)

존 길구드
(1953년)

칼 포퍼
(1965년)

알프 램지
(1967년)

로저 펜로즈
(1994년)

팀 라이스
(1994년)

캐머런 매킨토시
(1996년)

리처드 브랜슨
(2000년)

숀 코너리
(2000년)

믹 재거
(2002년)

벤 킹슬리
(2002년)

리들리 스콧
(2003년)

케네스 브래너
(2012년)

다니엘 데이 루이스
(2014년)

마크 라이런스
(2017년)

CBE + Knight Bachelor 파일:knightbachelor.jpg

알렉 기네스
(1959년)

스탠리 매튜스
(1965년)

맷 버스비
(1968년)

에른스트 곰브리치
(1972년)

월터 윈터보텀
(1978년)

데이비드 애튼버러
(1985년)

윌리엄 골딩
(1988년)

이안 맥켈런
(1991년)

안소니 홉킨스
(1993년)

보비 찰튼
(1994년)

사이먼 래틀
(1994년)

조지 마틴
(1996년)

마이클 갬본
(1998년)

아서 C. 클라크
(1998년)

엘튼 존
(1998년)

존 엘리엇 가디너
(1998년)

톰 피니
(1998년)

알렉스 퍼거슨
(1999년)

프랭크 윌리엄스
(1999년)

마이클 케인
(2000년)

바비 롭슨
(2002년)

앨런 파커
(2002년)

트레버 브루킹
(2004년)

제임스 다이슨
(2007년)

크리스토퍼 리
(2009년)

브래들리 위긴스
(2013년)

존 허트
(2015년)

칼 젠킨스
(2015년)

로드 스튜어트
(2016년)

레이 데이비스
(2017년)

배리 깁
(2018년)

그레고리 윈터
(2018년)

OBE + Knight Bachelor 파일:knightbachelor.jpg

잭 브라밤
(1978년)

지미 새빌
(1990년)

클리프 리처드
(1995년)

스털링 모스
(2000년)

재키 스튜어트
(2001년)

톰 존스
(2006년)

테리 프래쳇
(2009년)

패트릭 스튜어트
(2010년)

밴 모리슨
(2015년)

앤디 머레이
(2017년)

가즈오 이시구로
(2018년)

MBE + Knight Bachelor 파일:knightbachelor.jpg

폴 매카트니
(1997년)

제프 허스트
(1998년)

니콜라스 윈턴
(2003년)

닉 팔도
(2009년)

링고 스타
(2018년)

케니 달글리시
(2018년)



파일:Kennedy Center honors.jpg 케네디 센터 공로상 수상자

[ 펼치기 · 접기 ]

1978년

매리언 앤더슨, 프레드 아스테어, 조지 발란신, 아르투르 루빈스타인, 리처드 로저스

1979년

에런 코플런드, 엘라 피츠제럴드, 헨리 폰다, 마사 그레이엄, 테네시 윌리엄스

1980년

레너드 번스타인, 제임스 캐그니, 애그니스 데밀, 린 폰탠, 리언타인 프라이스

1981년

카운트 베이시, 케리 그랜트, 제롬 로빈스, 헬렌 헤이스, 루돌프 세르킨

1982년

조지 애벗, 릴리안 기쉬, 베니 굿맨, 진 켈리, 유진 오르만디

1983년

캐서린 던햄, 엘리아 카잔, 프랭크 시나트라, 제임스 스튜어트, 버질 톰슨

1984년

레나 혼, 대니 케이, 잔카를로 메노티, 아서 밀러, 아이작 스턴

1985년

머스 커닝햄, 밥 호프, 아이린 던, 앨런 제이 러너, 프레더릭 로, 베벌리 실즈

1986년

루실 볼, 레이 찰스, 제시카 텐디, 흄 크로닌, 예후디 메뉴힌, 앤서니 튜더

1987년

페리 코모, 새미 데이비스 주니어, 베티 데이비스, 네이선 밀스타인, 알윈 니콜라이

1988년

앨빈 에일리, 조지 번스, 마이어나 로이, 알렉산더 슈나이더, 로저 L. 스티븐스

1989년

해리 벨라폰테, 클로데트 콜베르, 알렉산드라 다닐로바, 메리 마틴, 윌리엄 슈만

1990년

디지 길레스피, 캐서린 헵번, 라이즈 스티븐스, 줄리 스턴, 빌리 와일더

1991년

베티 콤덴, 로이 아커프, 아돌프 그린, 헤럴드 니콜라스, 로버트 쇼, 그레고리 펙

1992년

라이어널 햄프턴, 폴 뉴먼, 조앤 우드워드, 진저 로저스, 므스티슬라프 로스트로포비치, 폴 타일러

1993년

조니 카슨, 아서 미첼, 조지 숄티, 스티븐 손드하임, 매리언 윌리엄스

1994년

커크 더글러스, 아레사 프랭클린, 모튼 굴드, 해럴드 프린스, 피트 시거

1995년

자크 당부아즈, 메릴린 혼, 비비 킹, 시드니 포이티어, 닐 사이먼

1996년

에드워드 올비, 베니 카터, 조니 캐쉬, 잭 레먼, 마리아 톨치프

1997년

로런 버콜, 밥 딜런, 찰턴 헤스턴, 제시 노먼, 에드워드 빌렐라

1998년

빌 코스비, 프레드 엡, 존 칸더, 윌리 닐슨, 앙드레 프레빈, 셜리 템플

1999년

빅터 보르게, 숀 코너리, 주디스 재스민, 제이슨 로바즈, 스티비 원더

2000년

미하일 바리시니코프, 척 베리, 플라시도 도밍고, 클린트 이스트우드, 앤절라 랜즈베리

2001년

줄리 앤드루스, 밴 클라이번, 퀸시 존스, 잭 니콜슨, 루치아노 파바로티

2002년

제임스 얼 존스, 제임스 리바인, 치타 리베라, 폴 사이먼, 엘리자베스 테일러

2003년

제임스 브라운, 캐럴 버넷, 마이크 니콜스, 로레타 린, 이작 펄만

2004년

워렌 비티, 오시 데이비스 & 루비 리, 엘튼 존, 조앤 서덜랜드, 존 윌리엄스

2005년

토니 베넷, 수잔 파렐, 줄리 해리스, 로버트 레드포드, 티나 터너

2006년

주빈 메타, 돌리 파튼, 스모키 로빈슨, 스티븐 스필버그, 앤드루 로이드 웨버

2007년

레온 플라이셔, 스티브 마틴, 다이애나 로스, 마틴 스콜세지, 브라이언 윌슨

2008년

모건 프리먼, 조지 존스, 바브라 스트라이샌드, 트와일라 사프, 더 후

2009년

멜 브룩스, 데이브 브루벡, 그레이스 범브리, 로버트 드 니로, 브루스 스프링스틴

2010년

멀 해거드, 제리 허먼, 빌 존스, 폴 매카트니, 오프라 윈프리

2011년

바바라 쿡, 닐 다이아몬드, 요요마, 소니 롤린스, 메릴 스트립

2012년

버디 가이, 더스틴 호프먼, 레드 제플린, 나탈리아 마라코바

2013년

마티나 아로요, 허비 핸콕, 빌리 조엘, 셜리 매클레인, 카를로스 산타나

2014년

앨 그린, 톰 행크스, 퍼트리샤 맥브라이드, 스팅, 릴리 톰린

2015년

캐럴 킹, 조지 루카스, 리타 모레노, 오자와 세이지, 시실리 타이슨

2016년

마르타 아르헤리치, 이글스, 알 파치노, 마비스 스태플스, 제임스 테일러

2017년

카르멘 드 라발라데, 노만 레어, 글로리아 에스테판, LL 쿨 J, 라이오넬 리치

2018년

셰어, 필립 글래스, 리바 매킨타이어, 웨인 쇼터, 해밀턴 팀 (린 마누엘 미란다, 토마스 카일, 알렉스 라카뫄르, 앤디 블렝큰불러)

12. 디스코그래피[편집]

음반


싱글


뮤직비디오


문서가 분리된 곡들

13. 필모그래피[편집]

영화

  • 1972년 《본 투 부기》 - 본인

  • 1975년 《토미》 - Pinball Wizard

  • 1997년 《스파이스 월드》 - 본인

    • 스파이스 걸스가 복도를 지나가다 엘튼 존을 만나 반갑게 인사하고 가는 장면이다. 여기서 엘튼 존은 멤버들과 키스를 하면서 인사를 했는데 얼굴이 립스틱투성이 되었다. 이 장면은 영화에서 삭제되었다.

  • 2000년 《엘도라도》 - 음악, 내레이터

  • 2002년 《컨트리 베어스》 - 정원사

    • 컨트리 베어스가 우연히 저택의 정원을 가꾸고 있는 엘튼 존에게 길을 물어보는 장면에서 특별출연했다. 엘튼 존은 컨트리 베어스를 알아보고 "당신들은 혹시..."라고 하다가 컨트리 베어스는 우린 바쁘다고 해서 그냥 가버렸다. 여기서 한 녀석이 "저 사람 엘튼 존과 닮았는데"라고 하자 다른 녀석이 "아냐, 엘튼 존은 키가 더 커"라고 하면서 갔다. 이 영화 엔딩 크레딧에서는 Friends가 사용되기도 했다.

  • 2017년 《킹스맨: 골든 서클》 - 본인

    • 본인 역으로 등장하였지만 영화가 영화니 만큼 격투씬도 있고 카메오치곤 분량과 재미 모두 챙겼다. 악당에게 잡혀서 피아노 연주를 하거나 갤러해드 앞에 갑자기 나타나서 구해주는 장면은 관객들을 빵 터지게 만들었다.


다큐멘터리

  • 1971년 《아쿠아리우스: 엘튼 존》

  • 1974년 《굿바이 노마 진》

  • 1976년 《올 디스 앤 월드 워 II》

  • 1988년 《존 레논의 이매진》

  • 1991년 《투 룸스: 엘튼 존 앤 버니 토핀》

  • 1997년 《엘튼 존: 탠트럼스 앤 티아라스》

  • 2001년 《비잉 믹》

  • 2001년 《엘튼 존: 굿바이 옐로 브릭 로드》

  • 2001년 《더 콘서트 포 뉴욕 시티》

  • 2002년 《키드 스테이스 인 더 픽쳐》

  • 2004년 《조지 마이클: 다른 이야기》

  • 2005년 《올 아이 원트》

  • 2005년 《올 위어 세잉》

  • 2007년 《엘튼 존: 미, 마이셀프 앤 마아이》

  • 2011년 《더 러브 위 메이크》

  • 2010년 《더 메이킹 오브 엘튼 존》

  • 2011년 《더 유니온》

  • 2012년 《셀레브리티》

  • 2013년 《나는 여신이다》

  • 2014년 《스타로부터 스무 발자국》

  • 2014년 《프리 투 록》

  • 2014년 《수퍼두퍼 앨리스 쿠퍼》

  • 2015년 《올 띵스 머스트 패스트》

  • 2017년 《아메리칸 에픽》

  • 2017년 《프리덤》


음악 및 기획

14. 관련 저서[편집]

  • 1975년 《Five Years of Fun》 - 로버트 힐번

  • 1975년 《Elton John》 - 케시 스테인

  • 1975년 《Elton John》 - 케시 스테인

  • 1975년 《Elton John》 - 파울라 테일러

  • 1975년 《A Conversation With Elton John and Bernie Taupin》 - 폴 감바치니

  • 1975년 《Elton John and Bernie Taupin》 - 폴 감바치니

  • 1976년 《Elton John Showman》 - 아란 래드너

  • 1976년 《The One Who Writes the Words for Elton John》 - 버니 토핀

  • 1976년 《Reginald Dwight And Company》 - 린다 제이콥스

  • 1976년 《Elton John》 - 딕 태텀, 토니 재스퍼

  • 1976년 《Elton John》 - 딕 태텀, 토니 재스퍼

  • 1976년 《Elton John (Story of Pop Special)》 - 딕 태텀, 토니 재스퍼

  • 1976년 《Elton John (Story of Rock Special)》 - 딕 태텀, 토니 재스퍼

  • 1976년 《Elton John》 - 딕 태텀, 토니 재스퍼

  • 1976년 《A Biography In Words And Pictures》 - 그레그 쇼

  • 1976년 《Elton John》 - 제럴드 뉴먼, 조 비보나

  • 1976년 《Elton John》 - 제럴드 뉴먼, 조 비보나

  • 1976년 《Elton John A Biography》

  • 1977년 《It's A Little Bit Funny》 - 데이비드 너터

  • 1980년 《Le Gentleman Musicien》 - 장-프랑소와 부케

  • 1981년 《The Elton John Tapes》 - 앤디 피볼스

  • 1981년 《The Illustrated Discography》 - 아란 핀치

  • 1981년 《Elton John》 - 마시모 스카라포

  • 1982년 《Music Number One》 - 실비 메나제

  • 1984년 《Elton John Only The Piano Player》 - 아란 핀치

  • 1984년 《Elton John》 - 폴 롤랜드

  • 1984년 《Elton John》 - 크리스 찰스워스

  • 1986년 《Elton John》 - J.M. 에스커레일라

  • 1986년 《Elton John》 - 폴 메칼리스터

  • 1988년 《A Cradle of Haloes - Sketches of a Childhood》 - 버니 토핀

  • 1988년 《Elton John A Biography》 - 배리 토버만

  • 1988년 《Sotheby's Auction Box Set》 - 소더비 런던

  • 1989년 《Elton John》 - 스테파노 마냐니

  • 1991년 《Elton John The Biography》 - 필립 노먼

  • 1991년 《Elton John》 - 이냐키 베리오

  • 1991년 《Two Rooms》 - 로나 디킨슨, 클라우디아 로젠크랜츠

  • 1992년 《Elton John》 - 스테파노 마냐니

  • 1992년 《The Many Lives Of Elton John》 - 수잔 크림프, 패트리샤 버스타인

  • 1992년 《Elton John》 - 수잔 크림프, 패트리샤 버스타인

  • 1992년 《The Many Lives of Elton John》 - 수잔 크림프, 패트리샤 버스타인

  • 1993년 《Elton John The Biography》 - 필립 노먼

  • 1993년 《A Visual Documentary》 - 나이절 구달

  • 1993년 《The Complete Elton John Discography》 - 존 디 스테파노, 피터 도빈스

  • 1993년 《In His Own Words》 - 수잔 블랙

  • 1993년 《Elton John》 - 예르크 피처

  • 1993년 《The World's Greatest Composers》 - 존 오'마호니

  • 1993년 《Sotheby's Elton John Collection Jewellery》 - 소더비

  • 1994년 《Elton John》 - 믹 성 미카엘

  • 1994년 《Elton John Bernie Taupin: The Complete Lyrics》 - 버니 토핀

  • 1994년 《Elton John Rocket Man》 - 수잔 크림프, 패트리샤 버스타인

  • 1995년 《25 Years In The Charts》 - 존 토블러

  • 1995년 《Rocket Man: Elton John From A-Z》 - 클로드 번다인, 톰 스탠턴

  • 1995년 《Elton My Elton》 - 게리 클락

  • 1996년 《Elton John Rocket Man》 - 수잔 크림프, 패트리샤 버스타인

  • 1997년 《Elton John's Flower Fantasies》 - 캐롤라인 캐스

  • 1997년 《I Miti Canzone》 - 아놀도 몬다도리 에디또레

  • 1998년 《The Life and Music of a Legendary Performer》 - 마이클 히틀리

  • 1998년 《Essential Elton》 - 스펜서 브라이트

  • 1998년 《A Little Bit Funny》 - 패트릭 험프리스

  • 2000년 《Sir Elton》 - 필립 노먼

  • 2001년 《His Song》 - 엘리자베스 J. 로젠탈

  • 2001년 《Christie's Exceptional Motor Cars from the Collection of Sir Elton John CBE》

  • 2002년 《The Elton John Scrapbook》 - 메리 앤 카사타

  • 2003년 《Elton John: Rocket Man》 - 엘리자베스 J. 로젠탈

  • 2003년 《Elton John and His London Lifestyle》 - 소더비 런던

  • 2003년 《Rock And Roll Hall Of Famers》 - 캐서린 화이트

  • 2003년 《Elton Made In England》 - 주디 파킨슨

  • 2003년 《Elton John Superstar》 - 주디 파킨슨

  • 2004년 《World Musicmakers》 - 존 오'마호니

  • 2004년 《Dream Ticket》 - 폴 플린

  • 2005년 《Elton John de A à Z》 - 스테판 부드소크

  • 2006년 《A Voice Louder Than Rock and Roll》 - 케일럽 퀘이, 데일 베리힐

  • 2006년 《A Boy Called Elton》 - 피터 로빈슨

  • 2007년 《Sir Elton John》 - 버트랜드 메이어 스테이블리

  • 2007년 《Elton the Biography》 - 데이비드 버클리

  • 2008년 《Eltonography - A Life in Pictures》 - 테리 오닐

  • 2008년 《Pop Rock Elton John》 - 에단 슐레진저

  • 2009년 《Elton John: The Bitch Is Back》 - 마크 베고

  • 2010년 《Gorringes: The Entertainment Sale》 - 고링지 LLP

  • 2010년 《The Illustrated Biography Elton John》 - 엘리자베스 발머

  • 2010년 《Elton John the Biography》 - 데이비드 버클리

  • 2011년 《Elton John》 - 로익 피코

  • 2012년 《Love Is The Cure》 - 엘튼 존

  • 2013년 《Tin Pan Alley: The Rise of Elton John》 - 키스 헤이워드

  • 2015년 《Elton John: From Tin Pan Alley To The Yellow Brick Road》 - 키스 헤이워드

  • 2015년 《Two Days That Rocked The World》 - 앤티크 콜렉터 클럽

  • 2016년 《Who Is Elton John?》 - 그로셋, 던랩

  • 2017년 《Captain Fantastic》 - 발란타인 북스

  • 2019년 《회고록(TBA)》 - 엘튼 존

15. 외부 링크[편집]

2000년대 초-중반에 '엘튼 존 코리아'라는 한국 팬사이트가 있었지만 2010년에 폐쇄되었고 남은 흔적도 찾아볼 수 없다.

  • 엘튼 존 공식 웹사이트

  • 버니 토핀 공식 웹사이트

  • 데이비 존스턴 블로그 - 여기서 갖가지 질문을 하면 데이비 존스턴이 직접 팬들에게 답글을 쓰고 하나도 빠짐없이 일일이 작성한다. 심지어 알려지지 않은 귀한 정보들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2016년 6월 7일부로 바쁘다는 이유로 블로그를 끊었다고 선언했고 2017년부터 사이트 접속이 되지 않는다.

  • 나이절 올슨 팬클럽

  • 존 메이혼 팬클럽

  • 엘튼 존 에이즈 재단

  • 유튜브

  • VEVO

  • 트위터

  • 페이스북

  • 인스타그램

  • IMDB 프로필

  • thecrazywaterboard - 2000년 3월 11일 설립된 해외 팬 사이트이자 가장 커다란 규모의 팬 사이트.

  • eltonfan - 1997년 설립된 영국의 팬 사이트. 각종 자료와 뉴스를 전달하는 사이트였고 이 사이트의 관리자가 1988년부터 잡지에서 엘튼 존 관련으로 일하기 시작한 경력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2017년 3월 31일부로 사이트 업데이트를 중단했다.

  • eltonjohnworld - 최신 정보를 신속히 올리는 블로그. 1996년부터 2010년대까지 20년간의 뉴스 자료들이 아카이브로 남아있다.

  • eltonography - 가사, 투어 기록, 저서, 세션 참여 등 방대한 자료들을 담은 사이트.

  • eltonchords - 대부분 곡들의 기타 코드가 있다. 피아노나 기타로 곡을 연주할 때 매우 유용한 사이트.

  • eltonscafe - 히트곡들과 싱글로 발매되지 않은 앨범 수록곡들의 악보와 미디 파일들이 있다. 전부 사이트 운영자가 손수 제작했고 악보는 물론 기타 코드로도 보기 어려운 곡들의 악보도 다수 있다. 2016년 초에는 사이트 접속이 불가했다가 그해 여름부터 다시 정상적으로 운영 중이다. 목록

  • eltonjohnallsongslist - 전 세계 각지의 엘튼 존 팬들과의 인터뷰,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들, 차트 기록, 엘튼 존 주변인들과의 인터뷰 등을 기록한 팬 사이트이며 다양한 정보들을 찾을 수 있다.

  • sleepingwiththepast - 1989년 22집 Sleeping With The Past의 모든 정보를 담은 사이트.

16. 같이 보기[편집]

엘튼 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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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력

1960년대 · 1970년대 · 1980년대 · 1990년대 · 2000년대 · 2010년대

음악

음악 · 음반 · 싱글 · 뮤직비디오 · 수상 및 서훈내역 · 엘튼 존 밴드

작사가

버니 토핀 · 팀 라이스

관련 문서

개인사 · 관련 인물 · 로켓 엔터테인먼트 · 로켓맨

정규 앨범

Empty Sky · Elton John · Tumbleweed Connection · Madman Across The Water · Honky Château · Don't Shoot Me I'm Only The Piano Player · Goodbye Yellow Brick Road · Caribou · Captain Fantastic And The Brown Dirt Cowboy · Rock Of The Westies · Blue Moves · A Single Man · Victim Of Love · 21 AT 33 · The Fox · Jump Up! · Too Low For Zero · Breaking Hearts · Ice On Fire · Leather Jackets · Reg Strikes Back · Sleeping With The Past · The One · Duets · Made In England · The Big Picture · Songs From The West Coast · Peachtree Road · The Captain & The Kid · The Union · The Diving Board · Wonderful Crazy Night

사운드트랙, 뮤지컬, 영화 음악

Friends · The Lion King · Elton John And Tim Rice's Aida · The Muse · The Road To El Dorado · Billy Elliot The Musical · Lestat · Gnomeo & Juliet · Sherlock Gnomes · The Lion King

라이브 앨범

17-11-70 · Here And There · Live In Australia With The Melbourne Symphony Orchestra · Elton John One Night Only - The Greatest Hits

컴필레이션 앨범

Elton John's Greatest Hits · Elton John's Greatest Hits Volume II · Lady Samantha · The Very Best Of Elton John · Love Songs · The Superior Sound Of Elton John (1970-1975) · Your Songs · Elton John's Greatest Hits Volume III · The Very Best Of Elton John · To Be Continued... · Rare Masters · Greatest Hits 1976-1986 · Chartbusters Go Pop · Classic Elton John · Love Songs · Prologue · Greatest Hits 1970-2002 · Elton John's Christmas Party · Rocket Man: The Definitive Hits · Diamonds

EP

The Thom Bell Sessions · The Complete Thom Bell Sessions · Remixed

리믹스 앨범

Good Morning To The Night

헌정 앨범

Two Rooms: Celebrating The Songs Of Elton John & Bernie Taupin · Revamp: Reimagining The Songs Of Elton John & Bernie Taupin · Restoration: Reimagining The Songs Of Elton John And Bernie Taupin

[1] Elton John Net Worth | TheRichest[2] 결혼 전 성은 콕[3] 결혼 전 성은 워너[4] 결혼 후 성은 푸드팻[5] 결혼 전 성은 브래클리[6] 결혼 전 성은 셜리[7] 결혼 전 성은 화이트[8] 결혼 후 성은 애셔[9] 에드윈 조지 드와이트 2세의 아들이자 리버풀 FC, 노팅엄 포레스트에서 활동하던 축구선수.[10] 결혼 전 성은 해리스, 이혼 전 성은 드와이트[11] 결혼 전 성은 클라프[12] 생일이 아레사 프랭클린과 같다.[13] 당시 피너는 미들섹스 주에 속한 런던권 위성도시였으나, 1965년에 그레이터 런던으로 편입되었다.[14] 엘튼 존 공식 웹사이트의 '경력' 페이지, 엘튼 존 '경력' 페이지, 올뮤직의 엘튼 존 '경력' 페이지, ELTON JOHN, 17 페이지[15] 엘튼 존 공식 웹사이트의 버니 토핀 페이지, 엘튼 존과 버니 토핀, 작사/작곡 협업 50주년[16] 영어 위키피디아의 음반 판매량 문서[17] 레지 드와이트의 첫 밴드, 콜벳스, ELTON JOHN, 33 페이지, Elton John, 30 페이지, More about Elton John[18] 블루솔로지 디스코그래피, ELTON JOHN 52~53, 75 페이지[19] ELTON JOHN, 74 페이지[20] 디스코그스의 Empty Sky 페이지[21] 디스코그스의 Empty Sky 페이지[22] 디스코그스의 Come Back Baby 페이지[23] ELTON JOHN, 75 페이지[24] 엘튼 존의 1972년 연대기, 증명사진[25] Heritage Odyssey Music and Hollywood Memorabilia Auction Catalog 148 페이지[26] ELTON JOHN, 138 페이지[27] Imdb의 '스텝토 부자' 프로필[28] 스텝토 앤 선의 허큘리스 사진들[29] 자세한 내용은 엘튼 존/1960년대 문서 참고.[30] 디스코그스의 엘튼 존 페이지[31] Rod Stewart and Elton John text each other to compare album sales as part of rivalry[32] 엘튼 존 공식 웹사이트의 69세 생일 축하 게시글(2016년 3월 25일 기준)[33] 엘튼 존 공식 웹사이트의 버니 토핀 66세 생일 축하 게시글(2017년 6월 17일 기준)[34] 엘튼오그래피의 곡들 목록[35] 더블 앨범이라서 실질적인 판매량은 절반인 16,000,000장 정도.[36] Elton John: 'Goodbye Yellow Brick Road'[37] RIAA의 골드/플래티넘 목록[38] IFPI의 합산 판매량[39] RIAA 사이트의 '다이아몬드로 기록된 앨범들' 목록[40] RIAA 사이트의 'Goodbye Yellow Brick Road 판매량 증명 기록'[41] BPI 사이트의 'The Very Best Of Elton John' 판매량 기록[42] BPI 사이트의 'Sleeping With The Past' 판매량 기록[43] 영어 위키피디아의 엘튼 존 싱글 문서[44] 미국 빌보드 싱글 차트에 진입한 모든 엘튼 존 곡들[45] Elton John's Biggest Billboard Hot 100 Hits[46] 영어 위키피디아의 1970년대 빌보드 싱글 차트 1위 곡들 문서[47] Elton John's Biggest Billboard Hot 100 Hits[48] Elton John's Biggest Billboard Hot 100 Hits[49] 빌보드 200의 엘튼 존 기록[50] Acts With The Most #1's on The Billboard 200[51] Most Billboard 200 No. 1 Albums By Artist[52] 미국 빌보드 200 앨범 차트에 진입한 모든 엘튼 존 앨범들[53] Elton Expands 'Captain Fantastic' With Live Tracks[54] Ultimate Classic Rock 사이트의 Blue Moves 40주년 게시글[55] Inside Stevie Wonder's Epic Magnum Opus 'Songs in the Key of Life'[56] This Week in Billboard Chart History: 20 Years Ago, Michael Jackson Was 'Alone' at the Top[57] Daniel, Don't Go Breaking My Heart, Sorry Seems To Be The Hardest Word, Mama Can't Buy You Love, Little Jeannie, Blue Eyes, That's What Friends Are For, I Don't Wanna Go On With You Like That, Healing Hands, You Gotta Love Someone, Don't Let The Sun Go Down On Me (live), The One, Simple Life, Can You Feel the Love Tonight, Believe, Something About The Way You Look Tonight, Candle In The Wind 1997[58] 빌보드 어덜트 컨템포러리 차트에 진입한 모든 엘튼 존 곡들[59] Elton John Charts Record-Extending 72nd Adult Contemporary Hit[60] 빌보드 어덜트 컨템포러리 차트[61] 영어 위키피디아의 엘튼 존 싱글 문서[62] 영국 싱글 차트 | 엘튼 존[63] 영어 위키피디아의 영국 싱글 차트 각종 기록들 문서[64] 영국 싱글 차트에 진입한 모든 엘튼 존 곡들[65] 영어 위키피디아의 영국 싱글 차트 10위 진입 히트곡들이 가장 많은 음악가들 문서[66] 영국 앨범 차트에 오른 모든 엘튼 존 앨범들[67] 2000년대 들어서 생긴 핫 100 차트, 싱글 차트가 아니라 1964년부터 2000년까지 존재했던 캐나다의 이전 싱글 차트인 RPM 차트에서의 기록.[68] 영어 위키피디아의 음반 판매량 문서[69] 캐나다 RPM 싱글 차트 아카이브[70] 캐나다 싱글 차트에 진입한 모든 엘튼 존 곡들[71] 캐나다 앨범 차트에 오른 모든 엘튼 존 앨범들[72] ELTON JOHN, 183 페이지[73] 이스라엘 공연 셋리스트, 구소련 공연 셋리스트[74] 이스라엘은 최초이나, 구소련에 방문한 첫 음악가는 엘튼 존이 아니라 1976년 8월 16~28일 방문한 클리프 리처드이다.[75] The Story of Elton John’s Historic First Tour of Russia[76] 엘튼 존/빌리 조엘 E! 다큐멘터리, 10분 45초 부분.[77] 영어 위키피디아의 소개 글[78] 참석 인원들의 면면[79] 작곡가 명예의 전당 사이트의 엘튼 존/버니 토핀 페이지[80] 로큰롤 명예의 전당 사이트의 엘튼 존 페이지[81] Elton John, Bernie Taupin to get Johnny Mercer Award[82] Chart Watch: Sell 14K Albums, Make The Top 10[83] 영어 위키피디아의 195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의 각 해마다 미국에서 가장 많은 판매량을 기록한 앨범들 문서[84] 런던 가제트, 페이지 9[85] 런던 가제트, 페이지 2[86] Guinness Book of Records, 2007 Edition, 187 페이지[87] 롤링 스톤 사이트의 엘튼 존 페이지[88] 롤링 스톤 선정 100대 아티스트[89] 빌보드 200에서 가장 성공한 음악가 200선 목록[90] 빌보드 선정 최고의 아티스트 1955-2009[91] Sir Elton Tops Magazine's List of Solo Male Artists[92] 엘튼 존 공식 웹사이트의 게시글[93] 인스타그램 게시글[94] 트위터 게시글[95] Elton John, Lonely at the Top: Rolling Stone's 1976 Cover Story[96] The Seductions of Biography, 23 페이지[97] 10 Years Ago: Elton John and David Furnish Make It Legal[98] Sir Elton John and David Furnish marry[99] Elton John is a Dad! - Congratulations on Baby Zack!![100] Please Welcome Elijah Joseph Daniel Furnish-John[101] Lady Gaga Named Godmother to Elton John's New Son Elijah[102] 엘튼 존 공식 웹사이트의 '왓포드' 페이지[103] [이성모의 영국축구 이야기 06] 엘튼 존과 왓포드 FC의 '우정' 이야기[104] 엘튼 존, 알고보니 '기부왕'[105] 엘튼 존 437억·JK 롤링 168억원…영국 유명인 기부 1·2위[106] 엘튼 존의 브라질 팬들과의 인터뷰[107] Elton John in Brazil[108] 엘튼오그래피의 브라질 투어 기록[109] setlist.fm의 브라질 투어 기록[110] 엘튼 존 공식 웹사이트에 올라온 브라질 팬과의 인터뷰[111] 2009년 1월 17일 브라질 리오 라이브, 2011년 9월 23일 브라질 리오 라이브[112] 2015년 9월 20일 브라질 리오 라이브[113] 2017년 4월 1일 브라질 리오 라이브, 2017년 4월 6일 브라질 상파울루 라이브[114] 참고 자료: Elton John’s American Debut: August 25, 1970[115] 참고 자료: The Day Elton John Played His First U.S. Concert[116] 엘튼 존이 DJ를 맡고 신세대 음악을 주로 방영하는 라디오 프로그램 'Rocket Hour'[117] 1972 - A Biased History of UK Glam Rock[118] Rock And Roll Madonna, Teacher I Need You, Crocodile Rock, Whenever You're Ready[119] 1970년 3집 Tumbleweed Connection, 1972년 5집 Honky Chateau, 2004년 28집 Peachtree Road, 2010년 30집 The Union[120] All Across The Havens, Lady What's Tomorrow, Hymn 2000, 1971년 4집 Madman Across The Water, This Song Has No Title[121] Have Mercy On The Criminal, Stinker, It Ain't Gonna Be Easy, Heart In The Right Place, The Wasteland[122] Border Song, All The Nasties, Where's The Shoorah? 등[123] Sweet Painted Lady, Idol, Blue Eyes, It's Tough To Be A Gad, My Quicksand, The Diving Board[124] 1977년 The Thom Bell Sessions, Healing Hands, On Dark Street 등[125] 1972년 5집 Honky Chateau, I'm Gonna Be A Teenage Idol, Bennie And The Jets, 1989년 22집 Sleeping with The Past[126] Regimental Sargent Zippo, Lady Samantha, Gulliver/Hay Chewed/Reprise, The Wide-Eyed And Laughing 등[127] Empty Sky, Gulliver/Hay Chewed/Reprise, Burn Down The Mission, Madman Across The Water, Indian Sunset, Funeral For A Friend/Love Lies Bleeding, One Horse Town 등[128] Love Lies Bleeding, All The Girls Love Alice, Saturday Night's Alright For Fighting, The Bitch Is Back, Grow Some Funk Of Your Own, Street Kids 등[129] 1973~76년[130] Sick Love[131] Jamaica Jerk-Off, Love So Cold, Durban Deep, Hakuna Matata, Warthog Rhapsody, Another Pyramid 등[132] 1981~1988년[133] 1992년 23집 The One, 1997년 26집 The Big Picture[134] Trust Me[135] I Don't Wanna Go On With You Like That, Understanding Women, When The Money's Gone 등[136] Honky Cat, Social Disease[137] Your Sister Can't Twist[138] Out Of The Blue[139] A Dream Come True[140] 1977년 The Thom Bell Sessions, 1979년 13집 Victim Of Love[141] Sixty Years On, The Greatest Discovery, Tonight, Carla/Etude, The Muse[142] 1971년 Friends, 1994년 The Lion King, 1999년 The Muse, 2000년 The Road To El Dorado, 2011년 Gnomeo & Juliet, 2018년 Sherlock Gnomes[143] 1994년 The Lion King, 1999년 Aida, 2005년 Billy Elliot The Musical, 2005년 Lestat[144] Don't Go Breaking My Heart (with RuPaul)[145] 2012년 Good Morning To The Night[146] I Don't Feel Like Dancin'[147] Stan, Ghetto Gospel, 2 Man Show, All Of The Lights, Solid Wall Of Sound[148] Les Aveux, Donner Pour Donner[149] Sweat It Out[150] Step Into Christmas, Ho! Ho! Ho! (Who'd Be A Turkey At Christmas), Calling It Christmas (with Joss Stone)[151] Belfast[152] Indian Sunset[153] 1970년 2집 Elton John, 1971년 4집 Madman Across The Water, 1976년 11집 Blue Moves[154] Breakdown Blues, Get Out (of This Town), 71-75 New Oxford Street, Funeral For A Friend, Out Of The Blue, Earn While You Learn, Tactics, Hognuts Blues, The Pacifier 등[155] Choc Ice Goes Mental, Born To Boogie[156] Honky Cat, The Ballad Of Danny Bailey (1909-34)[157] Rocket Man[158] Give Peace A Chance[159] The Tide Will Turn For Rebecca[160] Philadelphia Freedom, Tell Me When The Whistle Blows, 1977년 The Thom Bell Sessions[161] 2000년 The Road To El Dorado[162] I Think I'm Going To Kill Myself, Big Dipper, Expressing Youself[163] Daniel, Return To Paradise[164] Passengers, 1994년 The Lion King[165] Queen, Into The Jungle, Marching In Milan[166] H.R.H., Coltrane, Blue And Dizzy[167] 2002년 3월 26일 〈Last Call with Carson Daly〉 인터뷰[168] 엘튼 존 공식 웹사이트의 버니 토핀 페이지[169] 엘튼 존과 버니 토핀, 작사/작곡 협업 50주년[170] 참고 자료: 버니 토핀의 가사 베스트 10[171] I Could Never Fall In Love With Anybody Else, I Get A Little Bit Lonely, Countryside Love Affair, The Witch's House, If You Could See Me Now, The Year Of The Teddy Bear, I Love You And That's All That Matters, I Can't Go On Living Without You 등[172] Return To Paradise, I Don't Care, It Ain't Gonna Be Easy, Shooting Star, Madness 등[173] Memory Of Love, Heart On Fire 등[174] 엘튼오그래피의 Border Song 문서, 엘튼 존 공식 웹사이트의 거스 더전 인터뷰[175] 엘튼오그래피의 The Goaldiggers Song 문서, 엘튼오그래피의 Flinstone Boy 문서, 엘튼오그래피의 Song For Guy 문서, 엘튼오그래피의 Cartier 문서, 엘튼오그래피의 Queen 문서, 엘튼오그래피의 Into The Jungle 문서[176] ELTON JOHN 229, 245 페이지[177] ELTON JOHN, 144 페이지[178] Sad Songs (Say So Much)의 숨겨진 이야기[179] No Man Is An Island[180] Why Isn't Howard Stern On TV?[181] Oven Manual Song[182] Peer Gynt Song[183] 정식 수록곡 10곡, 미 발매곡 Tell Me What The Doctor Said, 로드 스튜어트에게 준 Let Me Be Your Car를 포함해서 총 12곡이다.[184] 엘튼 존 공식 웹사이트의 'Don't Shoot Me, Caribou에 모르는 10가지 사실' 페이지[185] 정식 수록곡 18곡 (Funeral For A FriendLove Lies Bleeding을 따로 나누고) 싱글 B면 수록곡 Whenever You're Ready, Jack Rabbit, Screw You, 미 발매곡 Gotta Back To England, Good Moring 포함해서 총 23곡이다.[186] 2000년 다큐멘터리 〈The Making of Goodbye Yellow Brick Road〉[187] Elton John Wrote New Album 'The Diving Board' in Two Days. 2012년 1월, 1차 녹음 당시 2일간 10곡을 작곡했고 2013년 1월, 2차 녹음 당시 8곡을 추가로 하루 만에 작곡했다.[188] 2008년 인터뷰, 3분 20초 경[189] 엘튼오그래피의 엘튼 존 음반 목록, 싱글, 피처링 목록[190] 1977~1982년, 1986년[191] 1992~2000년, 2018년. The Lion King, Aida, The Road To El Dorado, The Lion King[192] 엘튼 존의 초기 시절 동료이자 1975~76년 엘튼 존 밴드의 기타리스트. I Want To See You Smile, You'll Be Sorry To See Me Go, Sitting Doing Nothing, Thank You For All Of Your Loving[193] 레드 제플린, 무디 블루스, ELO 등과 작업한 영국의 가수. Where It's At[194] 영국의 가수. 1979~80년 21 AT 33, The Fox Sartorial Eloquence, Never Gonna Fall In Love Again, Elton's Song, Reach Out To Me[195] 영국의 가수. 1980년 Give Me The Love[196] 1986년 Don't Trust That Woman[197] 미국의 싱어송라이터. 1992년 Some Other World[198] 영국의 가수. 1993년 Duets For One[199] 2005년 Billy Elliot The Musical[200] 더 시스터즈의 멤버들. 2006년 I Don't Feel Like Dancin', Intermission 공동 작곡[201] 2007년 2 Man Show 공동 작곡[202] 호주의 감독/배우. 2008년 The Drover's Ballad[203] 2008년 Joseph, Better You Than Me 공동 작곡[204] 미국의 컨트리 록 음악가. 2010년 A Dream Come True[205] 미국의 극작가. The Devil Wears Prada 뮤지컬 (예정)[206] 엘튼 존 공식 웹사이트의 69세 생일 게시글[207] 1999년 인터뷰[208] imdb의 엘튼 존 페이지 '트리비아' 문단[209] ELTON JOHN, 58 페이지[210] He'll Have To Go의 엘튼 존 라이브 기록[211] 영미권 록/팝 가수들의 음역대[212] 1965년부터 2013년까지의 보컬 변천사[213] Mona Lisas And Mad Hatters (with Ryan Adams, live 2002/04/02)[214] E2부터 D6까지 곡들의 음역대 모음[215] Someone Saved My Life Tonight (live 1975/06/21)[216] Someone Saved My Life Tonight (live 1976/09/17)[217] ELTON JOHN, 238 페이지[218] 1986년 9~11월 부틀렉들[219] Someone Saved My Life Tonight (live 1986/09/14)[220] Why Isn't Howard Stern On TV?[221] Elton or Elton John, 441 페이지[222] ELTON JOHN, 298 페이지[223] 30 Years Ago: Elton John Undergoes Voice-Altering Throat Surgery[224] ELTON JOHN, 305 페이지[225] 엘튼 존의 1987년 연대기[226] 1987년 1월 5일 BBC 뉴스[227] 성대 수술 이후의 가성/고음 모음[228] Elton John, 471 페이지[229] 성대 수술 이후의 가성/고음 모음[230] 1999년 9월 29일 일리노이주 록포드 공연[231] 1999년 10월 16일 뉴욕 매디슨 스퀘어 가든 공연[232] 1999년 11월 12일 시카고 공연[233] Goodbye Yellow Brick Road (live 2013/02/28), Goodbye Yellow Brick Road (live 2017/11/16)[234] Goodbye Yellow Brick Road (live 2016/09/11)[235] Someone Saved My life Tonight (live 2001/07/17)[236] Empty Garden (Hey Hey Johnny) (live 1999/11/05)[237] Your Sister Can't Twist (live 2014/06/15)[238] Don't Go Breaking My Heart (with Kiki Dee) (live 2000/10/21), Don't Go Breaking My Heart (with Ed Sheeran) (live 2015/07/11)[239] The Bitch Is Back (live 2016/09/11)[240] Something About The Way You Look Tonight (live 2007/03/25)[241] Where To Now St. Peter? (live 1993/12/10), Where To Now St. Peter? (live 2007/03/25)[242] I'm Gonna Be A Teenage Idol (live 1998/08/17), I'm Gonna Be A Teenage Idol (live 2012/03/16)[243] High Flying Bird (live 1993/04/09), High Flying Bird (live 2007/03/25)[244] Ticking (live 2003/06/22)[245] Gone To Shiloh (live 2010/10/01)[246] Best Rock n Roll Pianists top 10[247] ELTON JOHN 21, 29~33 페이지[248] Take Me To The Pilot (live 1994/09/22[249] Rocket Man (live 2003/12/10)[250] 1994년 9월 22일 로스앤젤레스 공연, 1998년 1월 15일 프랑스 파리 공연, 1999년 9월 1일 스페인 폰테베드라 공연, 1999년 10월 16일 뉴욕 매디슨 스퀘어 가든 공연[251] 2001년 7월 17일 터키 에베소 공연, 2002년 10월 31일 아랍에미리트 두바이 공연, 2009년 10월 2일 프랑스 파리 공연[252] 1967년부터 2010년까지 엘튼 존과 함께 일했던 음향 기술자.[253] Rocket Man: Elton John From A-Z, 36 페이지[254] Unforgettable People (XXVI): Clive Franks[255] 1992년 11월 21일 아르헨티나 부에노스 아이레스 공연[256] 1993년 9월 30일 플로리다 공연, 1993년 12월 10일 남아프리카 공연[257] 2013년 1월 25일 야마하 125주년 기념 공연[258] 1984년 1월 폴 감바치니와의 인터뷰[259] 1998년 뉴질랜드 인터뷰[260] I Need You To Turn To (live 1970/05/22)[261] He'll Have To Go (live 1979/5/28), Where To Now St. Peter? (live 1979/5/28), I Heard It Through The Grapevine (live 1979/5/28)[262] Chloe (live 1982/3/19), Daniel (live 1982/12/24)[263] 17~23집 라이너 노트[264] 1984년 1월 폴 감바치니와의 인터뷰[265] 2004~2006년까지는 가이 바빌론, 2009년 이후로 킴 불러드[266] 25~32집 라이너 노트[267] 1976년 사진, 1976년 사진 2[268] Love Song (live 1986/10/12)[269] 1986년 사진[270] 1986년 8월 21일 캔자스 시티 공연[271] ELTON JOHN, 74 페이지[272] Elton John: My Life in 20 Songs[273] 2017년 11월 12일 BBC 인터뷰[274] Tiny Dancer에서 엘튼 존 밴드 멤버들의 의상을 담당하는 제봉사로 언급된 걸로 알려져 있다.[275] 1980년 8월 폴 감바치니와의 인터뷰, ELTON JOHN, 228 페이지[276] ELTON JOHN, 232 페이지[277] ELTON JOHN, 133~134 페이지[278] 2002년 3월 26일 〈Last Call with Carson Daly〉 인터뷰[279] ELTON JOHN, 233 페이지[280] ELTON JOHN, 268 페이지[281] 엘튼 존 공식 웹사이트의 'Goodbye Yellow Brick Road 숨겨진 이야기' 페이지[282] 엘튼 존 공식 웹사이트의 '거스 더전 인터뷰' 페이지[283] 유튜브의 Idol 영상[284] ELTON JOHN, 244 페이지[285] Bernie Taupin on Elton John's New LP: 'It's Kudos All Around'[286] Tumbleweed Connection 뒷면 표지[287] Captain Fantastic And The Brown Dirt Cowboy 뒷면 표지[288] 올뮤직의 팜 독스 페이지[289] 엘튼 존 공식 웹사이트의 엘튼 존/버니 토핀 50주년 축하 게시글[290] 엘튼 존 공식 웹사이트의 '게리 오스번' 페이지[291] ELTON JOHN, 172~173 페이지[292] 베로니크 상송이 부른 Amoureuse[293] 키키 디가 부른 Amoureuse[294] ELTON JOHN, 238 페이지[295] Shine On Through[296] ELTON JOHN, 239 페이지[297] 2007년 5월, BBC 라디오 4 The Thom Bell Sessions 인터뷰[298] ELTON JOHN, 245 페이지[299] Return To Paradise[300] Jamaica Farewell[301] ELTON JOHN, 249 페이지[302] 데이비 존스턴의 그룹 밴드[303] ELTON JOHN, 251 페이지[304] ELTON JOHN, 268 페이지[305] Part-Time Love 프로모션 비디오[306] J'veux d'la tendresse[307] Nobody Wins[308] ELTON JOHN, 274 페이지[309] Little Jeannie[310] Blue Eyes[311] ELTON JOHN, 284~285 페이지[312] ELTON JOHN, 294 페이지[313] Memory Of Love[314] ELTON JOHN, 271~272 페이지[315] imdb 팀 라이스 프로필[316] 1964년부터 1977년까지 영국에서 활동한 코미디 록 그룹으로 동요나 코미디 노래 위주로 불렀다. 폴 매카트니의 동생 마이클 매카트니가 마이크 맥기어라는 가명으로 활동한 것으로도 유명하다.[317] The Guinness Book of 500 Number One Hits, 페이지 121~122[318] Lily The Pink[319] ELTON JOHN, 116 페이지[320] ELTON JOHN, 278 페이지[321] Leagal Boys[322] Any Dream Will Do: The Best Of Tim Rice[323] 라이온 킹의 가제가 정글의 왕(King of the Jungle)이었다.[324] ELTON JOHN, 334 페이지[325] 제67회 아카데미 시상식, 주제가상 부문[326] Unforgettable People (XI): Tim Rice[327] 엘튼 존의 1996년 연대기[328] 팀 라이스의 웹사이트 '엘도라도' 페이지[329] 팀 라이스의 '엘도라도' 페이지[330] 엘튼 존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게시글[331] Rocket Pictures will produce another animated film[332] Tim Rice on casting Elton in "Joseph"[333] Elton teams with Andrew Lloyd Webber and Tim Rice[334] John And Rice to Join Forces Again[335] New Illustrated Treasury of Disney Songs, 19 페이지[336] ELTON JOHN, 315 페이지[337] Crocodile Rock, Bennie And The Jets, Lucy in the Sky with Diamonds, Philadelphia Freedom, Island Girl, Don't Go Breaking My Heart (with Kiki Dee)[338] 1986년 12월 14일 호주 시드니 Tour De Force 투어 공연 중, Tonight을 부르기 전에 한 말이다.[339] Blue Moves 40주년 게시글[340] 피아노에서 점프하는 사진들[341] Captain Fantastic: Elton John's Stellar Trip Through the '70s, 59 페이지[342] "The Bitch Is Back" 부를 때 피아노에서 점프하는 사진[343] 1986년 12월 14일 호주 시드니 공연에서 부른 Bennie And The Jets, 1995년 11월 25일 브라질 리오 공연에서 부른 Bennie And The Jets[344] 2015년 8월 9일 샌프란시스코 공연, 2016년 9월 11일 하이드 파크 공연[345] Mandy, Ships, Looks Like We Made It, Copacabana, If I Should Love Again 등으로 유명하다.[346] That's What Friends Are For[347] 엘튼 존과 배리 매닐로우 사진들[348] <해외연예> 엘튼존, 팬들로부터 고소당해[349] 엘튼 존 ‘니키타’ 26년만에 저작권 침해 피소[350] 1968년 10월 28일 BBC 런던 스튜디오 2 라이브 셋리스트[351] 1969년 7월 11일 Sails 라이브[352] 1969년 7월 11일 Lady Samantha 라이브[353] 1970년 3월 25일 공연 셋리스트[354] 셋리스트 웹사이트의 엘튼 존 기록[355] 2011년 10월 8일 라스베이거스 시저스 팰리스 공연 영상[356] setlist.fm의 엘튼 존 라이브 기록[357] 1973년 9월 23일 매디슨 스퀘어 가든 공연 셋리스트[358] 엘튼 존의 매디슨 스퀘어 가든 라이브 기록[359] Meet Madison Square Garden's new franchise: Billy Joel[360] ELTON JOHN, 379 페이지[361] 데이비드 퍼니시 인터뷰[362] 70-70-70[363] I'm Still Standing (live 2016/9/11), Have Mercy On The Criminal (live 2016/11/25)[364] 엘튼 존 공식 웹사이트의 Farewell Yellow Brick Road 투어 상세 정보 및 티켓 예매[365] 2018년 1월 24일 뉴욕 고담홀, 투어 은퇴 선언 기자회견 영상[366] Tiny Dancer (live 2018/01/24)[367] I'm Still Standing[368] 엘튼 존의 패션들[369] 지아니 베르사체, 도나뗄라 베르사체, 엘튼 존[370] 엘튼 존 선글라스들[371] Elton John's Rock Auction[372] The Union 다큐멘터리[373] Elton John The Nation's Favourite Song[374] ELTON JOHN, 33 페이지[375] 엘튼 존 1971년 사진들[376] 엘튼 존 1973년 사진들[377] 엘튼 존 1977년 사진들[378] 엘튼 존 1978년 사진들[379] 엘튼 존 1985년 사진들[380] 엘튼 존 1995년 사진들[381] 엘튼 존 2000년대 사진들[382] Saturday Night's Alright For Fighting (live 1974/12/24)[383] Saturday Night's Alright For Fighting (live 1976/09/17)[384] ELTON JOHN, 279 페이지[385] 1982년 12월 9일 런던 해머스미스 공연 셋리스트[386] 엘튼 존 런던 공연 중 관중석에 의자 던져[387] 피아노를 잡고 점프하는 젊은 엘튼 존[388] 피아노를 잡고 점프하는 노년의 엘튼 존[389] 2015년 3월 6일, 플로리다주 마이애미 공연 모습[390] 엘튼 존 2010년대 사진들[391] Madman Across The Water 코트[392] Crocodile Rock 코트[393] Captain Fantastic 코트[394] 1997년 3월 25일, 50세 생일 파티 때 사진들[395] 엘튼 미니 마우스 존[396] ELTON JOHN, 264 페이지[397] 엘튼 존의 1995년 연대기[398] ELTON JOHN, 263 페이지[399] 엘튼 도널드 덕 존[400] Your Song (live 1980/09/13)[401] Bite Your Lip (Get Up And Dance!) (live 1980/09/13)[402] 엘튼 존의 2003년 연대기[403] Crocodile Rock - 더 머펫 쇼 라이브[404] 킹스맨: 골든 서클의 엘튼 존 격투 장면[405] 1976년 9월 17일 스코틀랜드 공연 셋리스트[406] 1971년 7월 31일 영국 런던에서 진행된 Madman Across The Water 투어 공연.[407] 1976년 9월 17일 스코틀랜드 에든버러 공연 영상[408] 1984년 8월 10일 모나코 몬테 카를로 공연 셋리스트[409] 1990년 5월 17일 MTV 언플러그드 공연 셋리스트[410] 1992년 3월 15일 디 머리 추모 공연 셋리스트[411] 1997년 9월 19일 뉴올리언스 공연 셋리스트[412] 1998년 1월 14~15일 프랑스 파리 공연 셋리스트[413] 1999년 2월 19일 버지니아주 로아노크 공연 셋리스트[414] 1999년 11월 20일 캐나다 밴쿠버 공연 셋리스트[415] 2000년 1월 7일 하와이 호놀룰루 공연 셋리스트, 2000년 12월 10일 먼트거머리 공연 셋리스트[416] 2001년 5~7월 유럽 투어 기록[417] 2001년 6월 16일 오스트리아 빈 공연 셋리스트, 2001년 7월 24일 스웨덴 스톡홀름 공연 셋리스트[418] 2002년 10월 31일 두바이 공연 셋리스트[419] 2003년 5월 31일 시카고 공연 셋리스트, 2003년 12월 21일 스페인 바르셀로나 공연 셋리스트[420] 2004년 5월 26일 이탈리아 시칠리아 공연 셋리스트, 2004년 6월 9일 이탈리아 칼라브리아 공연 셋리스트[421] 2005년 1월 23일 프랑스 파리 공연 셋리스트[422] 2007년 11월 20일 일본 도쿄 공연 셋리스트, 2007년 12월 6일 호주 시드니 공연 셋리스트[423] 2008년 2월 28일 포틀랜드 공연 셋리스트, 2008년 10월 3일 뉴펀들랜드 공연 셋리스트[424] 2009년 4월 1~4일 공연들 셋리스트, 2009년 9월 11일 이탈리아 나폴리 공연 셋리스트[425] 2011년 4월 12일 덴버 공연 셋리스트, 캐나다 프린스에드워드아일랜드 공연 셋리스트[426] 2012년 4월 21일 인디아내주 포트웨인 공연 셋리스트, 2012년 12월 11일 대만 공연 셋리스트[427] 2013년 3월 6일 파라과이 아순시온 공연 셋리스트, 2013년 3월 10일 브라질 올린다 공연 셋리스트[428] 2014년 2월 15일 샌프란시스코 공연 셋리스트, 2014년 4월 29일 런던 공연 셋리스트, 2014년 6월 28일 영국 버킹엄셔 공연 셋리스트[429] 2016년 3월 2일 뉴욕 공연 셋리스트, 2016년 3월 2일 뉴욕 공연 영상[430] 2016년 4월 12일 뉴욕 공연 셋리스트[431] 2016년 9월 2일 모나코 공연 셋리스트, 2016년 9월 2일 모나코 공연 영상[432] 2017년 9월 8일 로마 콜로세움 방영판 영상[433] Your Song (live 2017/09/08)[434] 1989년 8월 29일자 동아일보 기사[435] 궁금한 엘튼 존 내한공연. setlist.fm에서는 취소된 11월 9일 일정이 그대로 있다.[436] 2004년 9월 17일 한국 소울 공연 셋리스트[437] [2015.02.09.월. MONDAY PROJECT VOL.17 - 뮤지션 인터뷰 '잔나비'[438] 인디밴드 잔나비 인터뷰 스케치 with 지니포터[439] 잔나비, 재기 발랄한 92년생들의 ‘힙’함[440] [인디레이블탐방] (55) 잔나비, 트렌드를 파괴하는 '사이키델릭 록' 대형밴드 보인다[441] Elton Coming to South Korea[442] 엘튼 존, 부산 공연 취소! 서울 내한 공연은 예정대로[443] 내한하는 엘튼 존, 박진영 만난다…"코코넛 사업 논의"[444] 윤종신, 엘튼 존과 함께 한 놀라운 밤~[445] 2015년 11월 27일 서울 공연 영상[446] Elton John confirms Asian destinations for farewell tour – Singapore, Hong Kong, Japan, and Korea[447] Billy Joel & Elton John - The Piano Men on E! 1994, 10분 40초 부근[448] 2011년 4월 12일 덴버 공연[449] 엘튼 존의 1977년 연대기[450] Crocodile Rock - 더 머펫 쇼 라이브[451] Bennie And The Jets - 더 머펫 쇼 라이브[452] Goodbye Yellow Brick Road - 더 머펫 쇼 라이브[453] https://www.youtube.com/watch?v=-OX2WErOvD4Don't Go Breaking My Heart - 더 머펫 쇼 라이브[454] 엘튼 존 에피소드 엔딩 장면[455] 닥터 티스의 컨셉 아트[456] Love Gravy (fe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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