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박스(게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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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나무위키+유도.png   마이크로소프트 게임기 브랜드에 대한 개괄적인 설명에 대한 내용은 엑스박스 시리즈 문서를, 인터넷 사진 오류에 대한 내용은 엑스박스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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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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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XB360.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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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XB1X.png

PROJECT SCARLET


파일:xbox logo.png

제작사

마이크로소프트

발매일

북미

2001년 11월 15일

일본

2002년 2월 22일

유럽

2002년 3월 14일

호주

2002년 3월 14일

생산종료일

일본

2006년 6월 4일

유럽

2007년 3월 11일

북미

2009년 3월 2일


1. 소개2. 상세
2.1. 개발2.2. 출시 이후 평가2.3. 가격 경쟁2.4. 그 이후
3. 사양
3.1. 게임 패드
4. 유지 및 보수5. 대표작6. 기타


파일:xbox logo.png


구동음 영상

파일:attachment/xbox.jpg
G-STAR 2011에 전시된 모델.

1. 소개[편집]

2000년 3월 GDC(게임 개발자 회의)에서 공식 발표한 이후, 2001년 5월에 E3 2001에서 게임 구동하는 시연 과정을 거쳐 2001년 11월 15일 마이크로소프트가 컴퓨터 하드웨어와 Windows API를 활용해 플레이스테이션 2를 누르는 것을 목표로 개발한 콘솔이다.

2. 상세[편집]

2.1. 개발[편집]

엑스박스 개발에 대한 비화는 딘 다카하시의 저서 '마이크로소프트의 도전:X박스의 게임의 미래' 에서 자세하게 알아볼 수 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DirectX를 통해 윈도우를 강력한 게임 플랫폼으로 만들어 거실용 종합 엔터테인먼트 허브 장치의 중추로 만들고 싶어했다. 그래서 세가드림캐스트를 제작하기 위해 마이크로소프트를 접촉했을 때에도 윈도우 CE와 DirectX 기반 개발 도구를 만들어 주기도 했으며, 빌 게이츠는 당시 소니 그룹의 회장이었던 이데이 노부유키와 만나 마이크로소프트의 프로그래밍 도구를 쓸 것을 권했으나 거절당하기도 했다. 또 1999년 3월 2일 SCE의 플레이스테이션 2 발표를 본 빌 게이츠는 플레이스테이션 2를 윈도우 프랜차이즈에 대한 거대한 위협이라고 판단했다.

때마침 드림웍스에서 쥬라기 공원 게임 '트레스페서'를 말아먹고 마이크로 소프트로 자리를 옮긴 시머스 블랙클리는GDC에서 플스2의 데뷔를 목도하고, PS2보다 훨씬 좋은 플랫폼을 만들 구상을 하게 된다. 그리하여 마이크로소프트의 DirectX 팀이었던 오토 버크스를 리더로 케빈 바커스, 시무스 블랙클리, 테드 헤이즈 엔지니어 4명이 Dell 랩탑 컴퓨터를 분해하여 프로토 타입 게임기를 제작하면서 시작됐다. 그리고 이 팀은 당시 마이크로소프트의 예산 지원을 받기 위해 게임 퍼블리싱 사업의 리더인 에드 프라이스에 접근하여 이 프로토 타입 게임기를 시연했는데 그것이 DirectX-Box였다. 프라이스는 그 때 이 팀을 지원해 주기로 결정해 마이크로소프트에 제안서를 제출했다.

개발 도중 DirectX-Box라는 이름은 Xbox로 바뀌었는데 마이크로소프트의 마케팅팀은 이 이름을 싫어했다. 그래서 그들은 이 게임기의 수많은 후보 이름들을 만들고 나열해 고객들을 통해 평가했으나, 결국 Xbox가 가장 많은 점수를 얻어 이름이 그대로 결정됐다.#

마이크로소프트는 거실용 종합 엔터테인먼트 허브 장치를 만들기 위해 이미 1997년에 웹TV를 4.25억 달러에 인수한 적이 있었다. 결국 웹TV 팀과 엑스박스 팀이 경쟁하게 됐다. 웹TV팀의 리더는 3DO M2를 설계 생산한 경험이 있었다. 1999년 5월 5일 회의를 통해 결국 빌 게이츠스티브 발머는 엑스박스 팀의 손을 들어줬고, 웹TV 팀은 엑스박스 팀의 개발을 지원하기로 했다. 그리고, 윈도우 95의 TCP/IP를 설계하고, 인터넷 익스플로러 등을 만들었던 네트워크 프로그래머 출신이었던 기술자 J 앨러드에게 팀을 지휘하도록 엑스박스 팀에 합류시켰다.# 엑스박스 개발 프로젝트명이 정해졌는데, 프로젝트 미드웨이라 불렸으며 이는 태평양 전쟁에서 미국이 주도권을 뺏은 계기가 된 미드웨이 해전이 기원이다.# 그러나 엑스박스의 4인방중 오토 버크스와 테드 헤이즈는 케빈과 시무스가 온전한 플랫폼을 주장하는 것과는 반대로 PC의 연장선상에서의 XBOX같은 구상을 했었고, 먼저 팀에서 떠나게 된다.[1] 여기에 앨러드가 가세한 덕분에 XBOX를 철저하게 게임기로 디자인 할 수 있었다.

목표는 윈도우가 들어간 DirectX의 게임기였으나, J 앨러드는 엑스박스 팀에 합류하기 전부터 $500의 윈도우 게임기는 경쟁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게임 기능에 집중하기 위해 윈도우를 빼고 엑스박스 팀에서 자체적으로 OS를 만들기로 결정했다. 이 때문에 빌 게이츠스티브 발머는 격노하게 됐다. 빌 게이츠는 이를 두고 이것은 이 회사에서 자신이 했던 모든 것들중 가장 모욕적이라고 말했다. 스티브 발머는 그 동안 투입된 시간과 예산으로 개발팀을 질책했다. 그러나 회의가 지속되는 도중 소니가 소프트웨어와 프로세서를 서서히 거실에 침투시키고 있고, 이는 마이크로소프트에게 위협이 될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됐다. 결국 빌 게이츠스티브 발머는 우리는 당신에게 원하는 모든 것을 줄 것이고 당신을 지지할 것이고, 우리는 당신이 다르게 일할 것이란 점을 이해하며, 그 일 뒤에 서 있을 것이라고 말하며 엑스박스 개발에 대한 전권을 엑스박스 개발팀에게 일임했다. 회의 내내 격노하고 질책을 듣다 전권을 일임 받은 이 회의를 두고 에드 프라이스는 로비 바흐에게 내가 겪은 회의 중에 가장 이상한 회의라고 말하기도 했다. 에드 프라이스는 2000년 2월 14일에 하루 종일 이뤄진 이 마라톤 회의를 두고 발렌타인 데이 학살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IGN의 에디터와 엑스박스 전문 팟캐스트 "Unlocked"의 진행자, 라이언 맥케프리가 현재 엑스박스 수장인 필 스펜서, 엑스박스 360 당시 제작 수장이였던 피터 무어, 그리고 구 엑스박스 제작팀원이었던 시무스 블랙클리의 인터뷰에도 비슷한 내용이 있다. 참고로 저 인터뷰에서는 엑스박스의 로고가 형광빛의 초록색이 된 계기도 밝혀졌는데, 당시 미팅때 로고 디자인을 담당한 사람이 끝내주는 사인펜 세트를 갖고 나타나자, 참가자가 하나둘씩 사인펜 세트를 가져갔고, 결국 자신이 로고를 발표해야할때는 초록색만이 남았는데, 그 자리에서 선보인 초록색 엑스박스 로고가 지금까지 이어졌다는 사실.

보통 사람들이 M$가 돈이 많으니 넉넉하게 사업 했겠지, 빌게이츠 호주머니 돈 만으로도 이끌 수 있는 사업이다 같은 비아냥 섞인 상상을 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엑스박스 팀은 사업 인가가 난 다음에도 스티브 발머에게 지속적으로 집요하게 괴롭힘 당하며 수익 모델을 만들어 나갔다. 최초 엑스박스 팀은 개발에 로열티를 부여하고 싶지 않아했고, 발머는 계속 질문을 던져 사업 타당성과 함께 멍청이들을 일깨워주는 역할을 도맡았다.

칩셋 선정을 할때는 웹TV팀이 이미 계약을 마친 자사 제조 칩의 사용을 주장했으나 자사제조 칩의 저렴한 가격 같은 수많은 장점들을 뒤로 한 채 엑스박스 팀은 철저하게 개발자 입장에서 생각하여 가격이 타사의 두 배는 비싼 엔비디아 칩을 선정한다. 기술 개발 파트너를 위해 세계 유수의 전자 제조 업체와 접촉 했으나(삼성 포함) 요구 조건도 무리하고 자신에게 손해가 된다며 대부분 거절했다.

빌 게이츠스티브 발머 덕에 2000년부터 1년 넘게 마이크로소프트 내부에서 독립적으로 개발이 가능할 수 있었다. 플레이스테이션 2가 출시된지 엿새가 지난 2000년 3월 10일 게임 개발자 회의(GDC)에 참석한 빌 게이츠는 최초로 엑스박스 출시 선언 및 그 프로토타입을 공개했으며, 시연회도 가졌다.

또한 DVD를 일본계 기업이 아닌 외국 기업에 하청해 탑제되었다던데 나중에 추가바람(만약 일본제 DVD가 탑제되었다면 상황이 달라졌을수도?)

게임기엔 게임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는지 수 많은 개발사들을 손에 넣기 위해 적극적으로 뛰어다녔다. 우선 1998년 커맨드 앤 컨커 시리즈웨스트우드 스튜디오 인수를 시도했으나 EA와의 경쟁에 실패했다. 하지만 1999년에 멕커맨더를 만든 FASA 스튜디오를, 2000년 6월 19일에는 원래 애플이 먼저 인수하려고 했던 번지 소프트를 발빠르게 인수했고, 12월에는 윙커맨더 시리즈의 아버지인 크리스 로버츠가 만든 회사인 디지털 앤빌을, 2001년에는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 시리즈로 유명했던 앙상블 스튜디오를, 2002년 9월 24일에는 007 골든 아이로 유명했고 닌텐도의 주요 협력 게임 회사였던 레어액티비전과의 경쟁에서 승리해 3.75억 달러에 인수했다. 그 외에도 세가의 비주얼 콘셉츠, 당시엔 아직 소니 산하가 아니었던 너티 독과도 접촉했으나 불발에 그치고 만다. 심지어 IP확보를 위해 해리포터를 사려고 했으나 그나마도 EA에게 졌다고.

파일:xbox_prototype.jpg

엑스박스 프로토타입


그 해 드림캐스트 단종을 계획한 세가의 오오카와 이사오 회장이 빌 게이츠를 만나 엑스박스의 드림캐스트 호환을 논의한 얘기는 유명한 얘기다. 세가넷 지원 문제를 두고 마이크로소프트가 이견을 보이며 거절해 결국은 결렬됐다. 하지만 그 이후에도 세가는 후술하겠지만 자사 게임들을 엑스박스에 독점으로 출시했으며, 테크모와 마이크로소프트 연결을 주선해 데드 오어 얼라이브 3의 엑스박스 동시 발매 독점 출시하게 되는 계기를 만들었다. 또 엑스박스 게임 컨트롤러 설계에도 도움을 줬다.

엑스박스 디자인은 일본 쪽에 하청하지 않았다 자세한 것은 추가바람

2001년 1월 라스베가스의 가전 박람회(CES)에는 빌 게이츠는 프로레슬러 더 락과 함께 엑스박스 모습을 공개했다. 빌 게이츠는 2001년 E3도 참가해 엑스박스 출시일, 가격을 공개했으며 동시 발매 독점 출시 게임 헤일로: 전쟁의 서막데드 오어 얼라이브 3도 공개했고, 시연회도 가졌다.

2.2. 출시 이후 평가[편집]

2001년 11월 15일 북미 시장에 출시 됐으며, 일본은 2002년 2월 22일, 유럽은 2002년 3월 14일에 출시했다. 한국에선 2002년 12월 23일 정식 출시되었다. 현재 국내에서는 옛날 엑박이라는 뜻에서 구엑박이라고 불린다. 그리고 드림캐스트정신적 후속작

발매 초기부터 일본 시장에 많은 공을 들였지만 플레이스테이션 2게임큐브의 경쟁에서는 밀려났다. 이유는 두말할 필요도 없이 소프트 문제. 2001년부터 시작된 PS2의 무수히 쏟아지는 소프트와 강력한 독점작 라인업 [2] 을 엑스박스가 뚫어볼 여지 같은 것은 처음부터 없었다. 또한 일본 정서에 맞지도 않는 서양 게임을 일본인들이 사줄리도 만무했다.

초기의 자잘한 실패도 기세를 올리지 못하는데 한 몫 했다. 구엑박 특유의 투박한 디자인과 커다란 크기 등으로 '양키 게임기'로 인식되어[3] 본체를 흉기로 쓸 수 있다느니[4][5] 또한 게임을 하다가 디스크가 긁히는 일이 자주 일어났는데, 이때 일본 유저들의 항의를 무시하고 '게임하는데는 지장없으니까 그냥 쓰셈'이라 하는 바람에 부정적인 인식이 박혀버린 것도 한 몫했다. 만약 그 전에 엑스박스 출시하기 전에 디스크가 긁지 않을만한 DVD-ROM을 일본계 기업 아니면 필립스에 하청했다면 상황을 달라졌을 것인데 나중에 수정 또는 추가바람

드림캐스트의 사업을 접은 세가가 '엑스박스의 코드는 세가의 것과 흡사하다'며 크레이지 택시, 젯 셋 라디오 퓨처, 팬저 드래군 오르타, 쉔무 2, 더 하우스 오브 더 데드 3 등을 의욕적으로 개발했으나, 결국 이 역시 별 반향을 일으키지는 못했다.[6][7] 그 외에는 캡콤[8], 코나미가 각각 환마 귀무자와 메탈기어 솔리드2로 간을 봤지만 정말 간만 본 수준이었다. 코에이가 진삼국무쌍 2, 진삼국무쌍 3, 전국무쌍을 이식하고 붉은 바다라는 작품을 독점으로 공급하고, 테크모가 DOA를 독점 공급하고 령 제로를 이식하고, 남코가 브레이크다운이라는 작품을 독점 공급하기는 했지만 이정도로 플랫폼 세일을 이끌기는 역부족이었다. 또한 그나마 나온 일본 제작사의 게임도 대부분 멀티 공급이라 독점작의 희소가치가 떨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9]

결국 일본에서의 총 판매량은 약 50만대. 데드 오어 얼라이브 3 등을 제외하면 소프트 판매도 부진했다.[10] 결국 이 정서는 그대로 엑스박스 360에게도 이어지는 비극을 초래하고 말았다.[11] 괜히 첫 인상이 중요하다라는 말이 나온게 아니다.

다만 아시아 지역(특히 일본)과는 달리 북미에서는 타 기종들에 비해 압도적으로 월등한 스펙과 헤일로: 전쟁의 서막이나 스타워즈: 구 공화국의 기사단, 프로젝트 고담 레이싱 등 성인층을 타겟으로 한 명작 게임들을 앞세워 상당한 성공을 거뒀다. 플레이스테이션 2가 워낙 대히트를 해서 상대적으로 실패한 것처럼 보였을 뿐, 엑스박스에서 밀리언 셀러를 넘긴 타이틀만 20개나 된다.# 헤일로 2는 800만장이나 팔려서 엑스박스의 대표 게임이 되었고, 엑스박스 독점 이식으로 출시된 엘더스크롤 3: 모로윈드는 출시 당시엔 베데스다에서 별 기대를 하지 않은 것과 다르게, 136만장이나 팔리는 대히트를 쳐 크게 고무되었다는 후일담이 전해지고 있다. 그리고 엑스박스의 발매 게임 리스트#를 보면 FPS 게임이 많은 게임기라는 편견과는 다르게 스포츠 게임, 레이싱 게임, RPG, 대전 격투 게임 등 다양한 장르의 게임들이 발매되었다.

기기의 성능이 압도적이었던 만큼 해상도나 프레임 면에서 압도적으로 좋은 그래픽을 보여주었다. 하드코어 게이머들을 타깃으로 했다는 컨셉에 맞게 CPUGPU의 기본 스펙이 플레이스테이션 2와는 물론이고 게임큐브와 비교해도 비교가 불가능할 정도로 높았으며, 하드디스크가 기본적으로 내장돼 있었다. XBOX OS에 개발자들에게 친숙한 Windows API 일부 기능들이 내장돼 있고, DirectX를 활용한 개발이 가능해 개발자들이 크게 환호하기도 했다. DirectX 기반 개발 환경과 PC 게임 시장의 불법 복제 대두 등...갈고 닦은 기술력을 가진 PC 위주 서양 개발사들을 마이크로소프트가 콘솔 시장에 대거 끌어들이면서 다음 게임기 세대부터 콘솔 게임 시장에서 서양 게임들이 크게 앞서 나가게 되는 발판을 마련했다. 그 뿐만 아니라 그 전까지 1등 콘솔의 전유물로 당연시 여겨졌던 독점 서드파티라는 개념을 거의 사장시켰다는 의의도 있다. 일부 일본 게임을 제외하면 서양 게임을 포함한 대부분의 게임이 멀티 플랫폼으로 나오는 현재의 추세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참전으로 인해 생겨났다고 볼 수 있다.

기기 자체의 성능, 내구성과 안전성, 높은 신뢰성을 비롯한 여타 흠잡기 힘든 기기 특성 등으로 기기의 완성도에 비해 크게 뜨지 못한 아쉬운 기기라는 평가도 많다. 사실 동시대에 있어선 비교 불가할 정도의 최고의 스펙이었다. 섬세한 그래픽, 최초로 내장된 하드디스크로 별도의 이동식 메모리 장치가 필요 없었다는 점, 쉬운 게임 개발 환경으로 게임 개발자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지만 정작 제대로 활용된 적이 없는 비운의 콘솔이었다. 그리고 아무도 제대로 지원을 못했던 온라인 기능을 엑스박스 라이브라는 이름으로 거의 완벽하게 지원한 점 등을 생각해서, 패배의 원인이 단순한 게임 소프트의 부재보다는 선빵을 날리지 못한데에 있다고 하는 사람들도 많다.

특히 개발 당시에는 하드 디스크를 집어 넣느냐 마느냐에 대해 의견이 분분했었다. 단가를 올리고 디자인을 크게 가면서 하드 디스크를 넣어야 하는가, 아니면 과감하게 포기하느냐. 하지만 게임들 사양들이 높아지고 온라인 멀티 플레이를 밀어 주기 위해서 하드 디스크를 내장하는 신의 한 수를 둔다. 이런 이유가 엑스박스를 멀티 플레이어를 위한 콘솔 선두를 잡게 해 준 셈.

후속기기인 엑스박스 360은 이런 원인들을 점검해 다양한 서드파티의 참여 유도와 선빵으로 플레이스테이션 3에 앞서는 데 성공했다. (디자인 역시 새끈해졌다.) 근데 후후속기는...

2.3. 가격 경쟁[편집]

엑스박스는 동세대 다른 게임기인 플레이스테이션 2게임큐브에 비해 성능이 압도적이었다. 그러나 이는 엑스박스의 생산 단가가 높아지는 결과를 낳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이크로소프트는 소니 및 닌텐도와 치열한 가격 경쟁을 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자본력을 무기로 E3쇼 즈음해 엑스박스의 가격을 매년 인하했다. 2002년 5월 16일에 $299에서 $199로, 2003년 5월 14일에는 $179로, 2004년 3월 29일 $149로 인하했다. 2004년의 경우에는 마이크로소프트가 E3쇼보다 2달이나 선수쳐서 인하했는데 그만큼 북미 시장에서 치열하게 경쟁했음을 반증한다. 그러나 그 때문에 마이크로소프트는 엑스박스 출시 이후 엑스박스 360이 출시되기 전까지 단 한 번도 수익을 낸 적이 없다. 회계연도 기준 2002년(2001년 7월 1일~2002년 6월 30일) $11.4억 2003년(2002년 7월 1일~2003년 6월 30일) $11.9억 2004년(2003년 7월 1일~2004년 6월 30일) $12.2억 2005년(2004년 7월 1일~2005년 6월 30일) $3.9억, 2006년(2005년 7월 1일~2006년 6월 30일) $12.8억의 손해를 봤다.

한 때는 엑스박스의 XGPU(NV2A)와 MCPX를 공급하던 기업이었던 NVIDIA와 가격 분쟁을 겪기도 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2002년 4월 29일 NVIDIA가 계약을 위반했다고 주장했고, 1,300만 달러 가격 인하 및 생산 수량 제한 해제를 요구했다. 이 분쟁은 약 1년간 지속됐고, 2003년 2월 6일 두 회사간 분쟁 조정에 성공하면서 끝이 났다. 구체적인 내용은 알려진 바가 없으나 마이크로소프트가 엑스박스 사업으로 인한 손실에 꽤나 힘들어 했음을 알 수 있다.

2.4. 그 이후[편집]

CPU에 인텔 코퍼마인 펜티엄 3 733MHz 기반 커스텀 프로세서를, GPU는 지포스 3 기반 커스텀 프로세서를 사용하는 등 컴퓨터와 유사한 구조 때문에 라이브만 포기하면 게임 소프트를 살 필요가 없을 정도로 개조할 수도 있었다. 심지어 모드칩을 설치해서 기본으로 내장되어 있는 하드디스크의 파티션만 밀어버릴 수 있다면 리눅스나 윈도우를 설치하는 것도 가능하다. 또한 모드칩 없이도 설치할 수 있는 리눅스 버전도 있었다. 상당한 성능으로 일부 게임에선 1080i[12] 해상도를 지원하며 당시 게임기 기준을 초과하는 성능을 자랑하였다. 또 게임기 사상 최초로 네이티브 5.1채널 사운드를 지원하였다. 각종 사운드 포맷을 돌비 사운드로 실시간 인코딩하는 칩셋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 원본 대시보드 프로그램만 백업할 수 있다면 하드디스크를 교체할 수도 있었는데, 보통 120GB급 EIDE 하드디스크까지는 충분히 인식했다.

NVIDIA는 이 게임기에서 지포스 프로세서 내장 노스브릿지와, 오디오 프로세서인 사운드 스톰 프로세서 내장 사우스 브릿지를 설계했는데, 이후 이 칩셋 아키텍처를 유용하여 nForce라는 명칭으로 메인보드 칩셋 시장에 진출한다. 초기 nForce는 CPU가 인텔에서 AMD로 바뀌고, GPU 성능이 지포스3 Ti에서 지포스2 MX로 다운그레이드 됐다는 것을 제외하면 엑스박스의 칩셋과 거의 동일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게임기가 아니면 DVD 플레이어 역할 이상을 기대하기 어려웠던 플레이스테이션 2와 달리 엑스박스는 게임기로서의 가치가 꺾이면서 오히려 멀티미디어 플레이어 내지 서버로 이용하는 것이 흔해졌다. 서버로 쓸 경우 '크롬웰'이라는 리눅스 패키지를 설치하는 경우가 많았고, 미디어 플레이어로는 XBMC가 유명했다. 이 가운데 XBMC는 엑스박스를 넘어 다양한 플랫폼용 미디어 플레이어로 진화하여 지금도 손꼽히는 오픈소스 미디어 플레이어 프로젝트가 되었다.[13] 그밖에 이 안에서 실행할 수 있는 MAME에뮬레이터도 많아 복돌이라는 비난을 감수하고 모드칩 개조를 한다면 그 당시까지 나왔던 어떠한 게임기보다 많은 기능을 가질 수 있었다.

양키센스가 거대한 크기만이 아니라 게임에서도 진하게 풍겨왔던 콘솔로 한때 북미게임에서 유행한 3D 마스코트 플랫포머 게임들도 상당수 있는 편. 그리고 드림캐스트와의 인연때문인지 폭발적인 인기는 끌지 못한 마이너한 연예 시뮬레이션 게임들도 XBOX로 출시되기도 했다[14].

2005년 8월 1일에 NVIDIA의 XGPU와 MCPX의 생산이 종료돼 사실상 단종됐다.# 2009년 3월 2일에 보증 수리 기간이 끝난 엑스박스의 기술 지원이 끝났으며, 구형 엑스박스 라이브 서비스 또한 2010년 4월 15일에 종료되었다. 마지막으로 출시된 게임은 2008년 8월 12일에 출시된 EA매든 NFL 09였다. 전 세계에 약 2,400여만대가 팔린 것으로 집계되었다.

3. 사양[편집]

CPU

인텔 펜티엄3 코퍼마인 기반 733MHz[15]

GPU

NVIDIA XGPU 233MHz[16]

OS

엑스박스 고유 OS[17]

API

DirectX 8.1 기반

메모리

64MB 200MHz DDR SDRAM[18]

스토리지

CD 읽기가 가능한 2배속, 5배속 CAV DVD-ROM[19]
3.5인치 5400RPM의 8/10GB HDD[20]
8~32MB의 메모리카드[21]

사운드

NVIDIA MCPX[22]

네트워크

패스트 이더넷[23]

포트

USB 1.1 포트 4개[24], MultiAV 포트[25][26] [27] [28] S/PDIF 포트(HD팩에만 내장 )[29]

외형

320㎜×100㎜×260㎜, 3.86kg


사양에 대한 알기 쉬운 일화로, 블랙클리가 테크모에 엑스박스 개발킷을 보내주고 이메일을 주고 받았는데, 처음 데드 오어 얼라이브 2를 이식했더니 120프레임이 나왔다며 기뻐하고, 그 다음에는 300프레임이 나오고 캐릭터 해상도가 두 배가 되었다며, DOA3는 엑스박스로 내놓겠다는 답장을 받았다고 한다.

근데 출시 당시에 DVD용량인 8.5GB로 선보였거나 듀얼 레이어를 최초로 탑재된 기종이라고 주장하는데 자세한 건 수정또는 추가바람

3.1. 게임 패드[편집]

파일:external/s3.amazonaws.com/Doc_Skidmore51cbfd7d23ee9.jpg

오른쪽 상단의 컨트롤러는 엑스박스 360 컨트롤러. ...아빠???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XboxOriginalController.jpg

왼쪽이 초기 컨트롤러, 오른쪽이 소형의 S 컨트롤러.

PS2 슬림 본체와 크기가 맞먹었던 초기의 듀크(Duke) 패드는 외주로 제작되었는데, 제작사에게 '제한받지 말고 마음껏 디자인해 봐' 라고 했다는 것. 나중에 크기가 어마어마하게 나와서 '아, 우리가 크기를 정해주지 않았구나' 했을 때는 이미 늦었다고 한다. 그리고 급하게 소형의 S 컨트롤러를 제작해서 일본에 묶음으로 판매한다. 같은 이유로 대한민국 정발품에도 S 컨트롤러를 번들하였다. 평소에 자기 손이 손인지 곰발바닥인지 몰랐던 사람들은 오히려 크고 아름다왔던 듀크를 그리워하기도 한다고(...). 손이 큰 서양인의 기준으로도 지나치게 크다 생각되었는지, 서양에서도 S 컨트롤러를 따로 구해서 쓰는 사람들이 많았다. 2016년 현재 구입 가능한 서드파티 컨트롤러들도 S 컨트롤러의 사이즈를 기준으로 만들어진 것들이 더 많다.

동시기에 활약했던 PS2의 패드와 비교해보면, L2와 R2 버튼의 상단에 위치한 L1, R1 버튼이 없는 대신, L과 R이 방아쇠 모양이어서 미세하게 강도 조절을 해가며 누를 수 있었던 부분이 차별화 포인트였다. 이는 엔진 스로틀이나 전력질주 등을 세밀하게 조절하는 용도로 활용되었다. 당시 저가형 호환 패드들은 이 부분의 성능이 정품에 못 미쳤기 때문에, 당시 추가패드를 찾던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 정품 S컨트롤러를 구입하였고 그중에서도 만듦새가 상대적으로 뛰어났다는 말레이시아산 제품만 찾아다녔다.

또한 2016년 현재의 기준으로는 흔한 일이지만 당시에는 별도의 컨버터 없이 USB 플러그만 장착하는 방식[30]으로 쉽게 패드를 PC에 연결할 수 있는 유일한 기종이었다. 인터페이스 자체가 USB여서 가능한 일. 게임패드 뿐만 아니라 전용 리모콘 수신기 등의 다른 주변기기도 비슷한 방식으로 PC에 장착할 수 있다. Kodi(구 XBMC)가 여전히 엑박 리모콘을 지원하는 것이 그 흔적. 반대로 USB 키보드 등 PC용 일부 주변기기를 XBOX에 장착해서 쓸 수도 있었다.

4. 유지 및 보수[편집]

출시된지 이제 10여년이 훌쩍 넘은 하드웨어라서 내구성 문제들이 발견되고 있다. 허나 PC와 유사한 조립식 모듈 구조를 택한데다 기본적인 내구성이 높고 엄청난 크기 덕에 내부 구성이 타이트하지도 않아서 상당부분 자가 수리가 가능한 점이 특징. 전용 툴 없이는 뚜껑 따기조차 힘겹고 내부 핵심 부품 위를 철판과 별나사로 떡칠하다시피한 엑스박스 360과 비교해보면 차이를 확실하게 느낄 수 있다.

이 중 가장 심각한 것은 기판 부식 문제이다. 자동화 과정에서 적용한 화학 약품의 문제였는지, 기판 가장자리의 회로 패턴들이 부식되는 문제가 보고되고 있다. 특히 ODD 열기 버튼과 전원 버튼 신호를 전달하는 회로 패턴이 희생자가 되는 경우가 많으며, 그 결과로 전원 버튼이 먹통이 되고 ODD 버튼이 전원 버튼 역할을 겸하는(...) 증상이 나타난다. 이대로 방치하면 곧 전원이 자동으로 계속 꺼지는 증상으로 발전하게 되고[31], 이 상태에 이르면 실사용이 불가능해지므로 수리를 하지 않는다면 내다 버리는(...) 테크를 타게 된다. 관련 증상 발생시 진단 및 수리법을 참고해서 수리를 시도해 보자. 간단한 납땜 장비만 있어도 시도해 볼 수 있다.

이외에도 PC 메인보드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사실 웬만큼 PC를 굴려서는 보기 힘든 일이지만 전해 콘덴서가 부풀면서 전원 장치에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도 보고되고 있는데, 수리 방법도 PC 메인보드와 동일[32]하다. 다만 콘덴서에서 전해액이 흘러나와 회로 패턴 또는 부품의 부식이 진행된 경우, 경과 시간에 따라 예후가 매우 불량해진다. 수리 불가 판정 받고 버리는 경우는 상당수가 이런 경우. 이런 면으로 봤을 때, 기판 자체의 내부식성이 그다지 좋지 못한 걸로 보인다. 예방 차원에서 기판을 청소한 뒤 코팅을 해버리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

ODD 고장은 워낙 개조가 유행했던 기종이라 ODD를 쓰질 않아서 자주 접하기는 힘들지만, 전용 교체 부품이 존재하므로 이것으로 수리하거나, PC용 ODD를 사용해서 수리할 수 있다.[33] 다만 후자의 경우 ODD 전면 패널을 깔끔하게 처리하기가 어렵고, 펌웨어와 관련된 문제로 정품 게임 DVD는 쓰기 어렵다.

5. 대표작[편집]

※ XBOX 독점작은 (◆)표, XBOX+PC 독점작은 (◇)표, 자막 한글화가 된 게임은 (☆)표, 음성 한글화가 된 게임은 (★)표를 합니다. 엑스박스 원 하위 호환 가능 게임은 (■)로 표기합니다. 가나다 순으로 기재해 주십시오.

그 밖의 게임 시리즈가 있으면 항목을 추가해 내용을 추가바람.

6. 기타[편집]

게임 중 치명적인 오류가 발생해서 시스템이 정지될 경우에는 윈도우의 블루스크린에 대응되는 그린 스크린(!)이 뜬다.

초기형의 경우 내구도가 상당히 좋다고 알려져 있다. 미국에선 IMI 데저트 이글로 발사된 총알을 튕겨낸 전적도 있다.[51] 덕택에 "방탄엑박" 등으로 불린다. 다만 너무 오래된 것들은 광 드라이브의 부품 마모로 미디어에 흠집을 내는 경우도 있다고.

음악 CD를 립핑하여 하드디스크에 저장할 수 있는 기능을 최초로 도입한 콘솔. 이렇게 립핑한 음악은 그냥 재생도 가능하지만, 게임에서 지원한다면 커스텀 BGM으로 사용할 수도 있다. 몇몇 레이싱 게임은 자신이 립핑한 음악을 BGM으로 들으면서 플레이할 수 있고, DOAX 역시 립핑한 음악과 게임 내에 기본으로 들어있는 BGM과 섞어서 커스텀 플레이리스트를 만들 수 있다.

DVD 재생도 가능하지만 반드시 리모컨을 연결해야만 재생할 수 있고, PS2가 일정 버전 이후로는 DVD의 프로그레시브 출력이 가능했던 반면 XBOX는 불가능하다. 물론 이를 해결한 홈브류 소프트가 있지만.

국내에서는 애칭으로 엑박(또는 후속기기들을 생각해서 구엑박), 일본에서는 상자라는 의미로 箱라고 부른다. 일각에서는 凶이라고 표기하기도 했다. 일본에서의 저조한 인기를 빗댄 것이기도 하고 모양이 X + 상자모양이기도 해서



인생은 짧으니 게임을 즐길 수 있을 때 즐기라는 컨셉의 엑스박스 이미지 광고(Life is short)를 만들었는데, 하도 괴상해서 제작진이 약빨고 만들었다는 우스개까지 돌았으며 결국 그 표현의 자유를 중시하는 미국에서 방영 금지처분을 받았다.(…) 이 광고는 여태까지 플레이스테이션 베이비공포물?와 함께 도대체 콘솔을 팔려고 광고를 만든 건지 의심스러운 퀄리티의 쌍벽으로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해외 게임 커뮤니티 등지에서는 LCD 스크린등으로 개조하거나 슬림형으로 만들기도 한다.

현재 이 게임기에서 가장 그래픽이 좋다고 평가되는 게임은 밸브의 하프라이프 2이다. 게이브 뉴웰이 엑스박스 버전에 대한 인터뷰도 했다.

구엑박을 부팅한 채로 장시간 놓아두면 수군거리는 듯한 소리가 들리는데, 이게 은근히 섬뜩하게 느껴진다.

램 용량 개조, 커스텀 펌웨어 및 홈브류 소프트웨어 설치 그리고 바이오스를 개조했다면 치히로 기판용 아케이드 게임도 구동된다. 그러나 버추어 캅 3와 고스트 스쿼드, 그리고 아웃런 2의 데모 버전만 가능하다. 이유는 온라인 인증 방식이거나 발판형 조작기 구현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참고로 아웃런 2는 엑스박스에서도 출시된 게임이다. 아케이드 시스템 특성상 데이터를 램에 모두 적재하고 실행해 엑스박스보다 램 용량이 많은 반면, XGPU 성능은 엑스박스가 살짝 좋다. 이식의 용이성을 위한 것으로 보인다.

엑스박스에 플레이스테이션 에뮬레이터가 있지만 겨우 돌아간다. 이는 프로세서가 서로 많이 다르기 때문이다. 게임중 우측 트리거를 누르면 나오는 메뉴에서 하드웨어 옵션을 누를 수 있는데, 여기서 비로소 텍스처 필터링을 적용할 수 있다. 그러나 FPS는 옵션에 따라 18~20 프레임으로 떨어진다.

재밌는 이스터에그가 있다. 구식 엑스박스에서 음악을 듣는 옵션에 <<Eggβox>>를 입력하면 엑스박스 스태프롤을 볼 수 있다. 영상

엑스박스 디스크를 DVD 재생이 되는 다른 콘솔이나 플레이어에 삽입하게 되면, 엑스박스의 디스크이니 실행하려면 엑스박스에 삽입하라는 다국어로 표시된 DVD-Video 규격의 영상이 재생된다.

[1] 케빈 바커스 역시 2001년에 다른 회사로 이직했고, 시무스 블랙클리 역시 엑스박스 출시 이듬해에 케빈 바커스가 이직했던 동일 회사에 이직했다.[2] 파이널 판타지 시리즈, 철권 시리즈, 데빌 메이 크라이 시리즈, 귀무자 시리즈, 킹덤 하츠 시리즈, 드래곤볼 게임 시리즈, 버추어 파이터 시리즈, 릿지 레이서 시리즈, 에이스 컴뱃 시리즈, 괴혼 시리즈, 그란 투리스모 시리즈, 테일즈 오브 시리즈, 진삼국무쌍 시리즈, 전국무쌍 시리즈, 스타오션 시리즈, 드래곤 퀘스트 시리즈[3] 무엇보다 큰 본체가 발목을 잡았다. 부동산 가격이 매우 비싸 대부분이 20평대 중반에 불과한 규모가 작은 일본의 가정집 형편상 이런 커다란 크기의 게임 콘솔은 아무래도 면적을 더 요구할 수밖에 없기 때문. 일본에서 게임큐브가 저조했음에도 불구하고 엑스박스가 그보다 덜 팔렸다.[4] 지금 기준으로는 아주 큰 편은 아니지만 초기형 컨트롤러를 아령 대용으로 쓴다느니 하는 우스갯소리가 발매 초창기부터 이어졌는데, 그런 반응을 인식해서인지 곧 소형인 컨트롤러 S를 발매했다.[5] 아이러니하게도 초기 미국내에서 개발된 듀크 컨트롤러는 미국인 게이머들 사이에서조차 너무 크고 무거워 손목에 피로가 많이 간다는 얘기를 들을 정도였고, 일본용 컨트롤러 S가 수입 게임 가게에서 출시되자 컨트롤러 S를 구입해 사용하는 일이 생기면서 결국 미국판 듀크 컨트롤러 대신 컨트롤러 S가 쓰이게 됐다. 당시 초기 미국판 컨트롤러를 잡아본 게임 전문 기자의 평이 걸작인데, "감자 2개를 들고있는 느낌이다" 라고(...)[6] 무엇보다 2002년 및 2003년 당시 세가의 최대 킬러 타이틀인 버추어 파이터 4버추어 파이터 4 에볼루션은 결국 각각 2002년과 2003년에 PS2로 독점발배되어버렸다.[7] 또한 세가의 대표 타이틀인 소닉 더 헤지혹 시리즈소닉 히어로즈 전까지는 게임큐브에 독점 발매된 타이틀이었다. 심지어 소닉 히어로즈 이후의 타이틀마저도 PS2, 게임큐브와 멀티플랫폼으로 발매되었다.[8] 그래도 캡콤은 엑스박스의 멀티플레이 기능을 활용하여 온라인 대전 격투게임을 선보였고, 철기(게임)이라는 독특하고 과감한 시도를 하기는 했다.[9] 소닉 히어로즈부터 PS2게임큐브와 같이 멀티 기종으로 나왔고, 소울 칼리버 2 같은 경우에도 소닉 히어로즈와 마찬가지로 세 기종 전부 출시. 소닉 시리즈는 소닉 어드벤처 2 배틀때부터 소닉 어드벤처 DX까지 게임큐브 독점작이었고, 바이오하자드 역시 바이오하자드 리버스부터 바이오하자드 4까지는 게임큐브 독점작이었다. 또한 소울 칼리버 3도 PS2로 독점발매된다.[10] 사실 일본 내에서 게임 판매 순위에 들었던 엑스박스용 일본산 게임이라곤 데드 오어 얼라이브 3와 '오토기'를 제외하면 거의 없었다.[11] 참고로 360의 일본에서의 판매량은 150만대.[12] 사실 PS2도 1080i까지 지원해주지만 정작 지원하는 게임 타이틀은 거의 없었다. 사실 720p/1080i를 지원하는 게임 상당수는 업스케일링이긴 하지만, 가끔가다 렌더링까지 네이티브인 경우도 있으며 그런 게임은 상당한 화면빨을 보여주었다. 소울 칼리버 2가 대표케이스.[13] XBMC는 2014년 12월에 나온 버전 14부터 Kodi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나오고 있다.[14] 대표적으로, 한국에서도 정발된 적이 있는 PC용 홍콩산 미소녀 게임인 큐피드 비스트로가 일본에서는 XBOX로 이식(+성우 더빙 추가)되어 발매되었다.[15] L2 캐시가 128KB로 펜티엄3 733EB에 비해 절반으로 제거됐다.[16] 지포스3(NV20) 기반 GPU이나 지포스4 Ti(NV25)의 듀얼 버텍스 쉐이더 프로세서가 먼저 채용됐다. 그 외에도 픽셀 쉐이더 프로세서 4개, 렌더 출력 유닛 4개, 텍스쳐 맵핑 유닛 8개 등으로 구성돼 있다. 부동 소수점 연산 성능은 약 20GFLOPS#이다. 또한 노스 브릿지 기능도 내장됐다. TSMC 150nm 공정에서 생산됐다.[17] Windows 2000 기반이라는 정보가 퍼져 있으나, 마이크로소프트에 따르면 이는 잘못된 정보이다. 엑스박스팀의 팀 블로그 내용에 따르면 유지보수 편의성과 성능 그리고 보안을 위해 처음부터 전부 만들었다고 한다. 엑스박스 게임 개발자들의 편의성을 위해 Windows API들의 일부가 내장돼 있는것 뿐이다.[18] DDR(Double Data Rate)이므로 실효클럭은 400MHz. 128비트 듀얼 채널이므로 최대 대역폭은 6.4GiB/s이다. 노스브릿지 기능이 내장된 GPU에 직접 연결돼 있으며, CPU에는 1.06GiB/s, GPU에는 5.34GiB/s의 대역폭이 할당돼 있다.[19] 필립스, 삼성, 톰슨 ODD중에서 무작위 장착. 2004년에 삼성과 도시바가 ODD 사업을 통합 및 분사해 TSST의 회사명으로 납품되기도 했다.[20] 시게이트 제조. 파일시스템은 FAT를 마이크로소프트가 변형시킨 엑스박스 전용 포맷인 FATX가 채용되었다.[21] 드림캐스트 처럼 패드의 확장 슬롯에 장착하지만, 엑스박스는 주로 하드디스크에 게임을 저장하므로 그다지 큰 의미는 없다.[22] 사우스브릿지 겸용 오디오 프로세서이다. 최대 64채널 3D오디오 및 256채널 스테레오 오디오 지원, HRTF Sensaura 3D 오디오, MIDI DLS2, 돌비 서라운드, 돌비 디지털 라이브 5.1 등을 지원한다. NVIDIA가 이후 진출한 메인보드 칩셋 시장에 내장되어 있는 Soundstorm의 기반이 됐으나, 비용 문제로 nForce3 칩셋 출시 이후로 명맥이 끊어진다.[23] 최대 100Mbps 네트워크 지원[24] 컨트롤러를 연결하기 위해 사용하며, 단자는 완전히 독자 규격으로 제작되었다.[25] 컴포지트, 컴포넌트, S-Video, SCART 등의 출력 단자와 480i, 480p, 576i, 576p, 720p, 1080i 해상도 출력 가능[26] SCART는 핀배열이 다소 다른 일본형이 RGB21이라고도불리는데 진짜 RGB가 분리된것일뿐 동기신호는 컴포지트싱크처럼 수평해상도에 해당하는 C싱크한계만 들어간다. 동기신호분리를 하여도 VGA처럼 31khz가 아니기에 업스케일러는 필수라고 봐야한다. 아니면 대응 모니터나 방송및 산업, 의료장비나 고가의 텔레비전이 필요하다. S단자처럼 요즘텔레비전엔 없다[27] 플2처럼 핀맵을 맞춰 다른종류로 바꿀수도 있다. 플스는 동시출력가능이지만, 엑스박스는 배선을 점퍼선을 연결하여 종류별로 달리한다. SCART가 점퍼3개를 점유하고, 컴포넌트는 가운데와 우측만 한다. VGA는 바이오스미지원이므로 이 두개 출력방식을 트랜스코더로 출력하는것이 정신건강에 좋다. 바이오스개조도 아무기종만 되는게 아닌데다가, 로더돌리는입장에서 기존 컨텐츠를 날리고 싶은게 아니면 시도하지도 말자. 가끔 보드크리티컬도 나온다고 한다.[28] 정식은 아니지만 VGA출력장비도 있다 전용업스케일러인듯하다. 컴포넌트는 HD팩이라는 장비를 통하여 연결.[29] 이론적으론 플스2와 같이 단자에서 핀맵에 따라 따오면 된다. 옵티컬맞다[30] 특히 패드 케이블 중간에 사고방지용 연결 부위가 있었는데 여기에 서드파티 플러그를 꽂기가 딱 좋았다. 컨버팅이 없는 단순 젠더이므로 자작도 가능.[31] 전원 버튼이 ON도 OFF도 아닌 open 상태가 되는 셈이므로 제멋대로 동작하게 된다.[32] 동일한 용량의 전해 콘덴서를 구해서 납땜.[33] 딱히 고장이 나지 않았는데 필립스 번들 ODD가 DVD-R을 잘 못 읽는다는 이유로 일부러 교체하는 사람도 있었다.[34] 일본에서 가장 마지막으로 출시된 엑스박스 타이틀[35] 오리지널판 한정. 이후 복각판인 BFG에디션은 플레이스테이션 3, 엑스박스 360, PC로 발매.[36] PS2로만 발매했던 오리지널 버전인 선즈 오브 리버티의 획장판. VR 미션이 대거 추가되었다.[37] 미국대통령이 로봇을 타고 테러리스트들을 때려잡는다라는 지극히 양키센스 취향과 연출의 게임이지만 제작사가 일본(프롬 소프트웨어)이고 또 일본에서만 발매된 이상한 게임(...)[38] 1,2,3편의 합본판[39] 원래 세가 드림캐스트로 나온 적이 있지만 드림캐스트가 망하는 바람에 드림캐스트의 위치가 엑스박스로 넘어가게 되면서 실질적인 독점작이라고 볼 수는 있다.[40] 구엑박 게임들 중에서 헤일로 시리즈와 함께 가장 평가가 높은 수작이다.[41] 하이퍼 스트리트 파이터 2와 스트리트 파이터 3 서드 스트라이크의 합본판[42] 스플린터 셀 1편의 경우 구엑박 버전만 한국마이크로소프트에서 무려 음성 한글화를 해 줬다고 한다!! 음성 한글화된 게임플레이 영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링크 추가바람.[43] 카스 컨디션 제로를 기반으로 한 엑박판 포팅이다. 국내에서는 한국마이크로소프트에서 자막 한글화로 정발했다. 포팅은 밸브 코퍼레이션이 아닌 다른 외주회사에서 했다.[44] 원래 닌텐도 64용 게임이었지만 이 게임을 만든 회사가 MS로 인수되면서 엑스박스용으로 그래픽 등을 새로 리메이크하여 발매하였다.[45] 엑스박스 최초의 국산 게임으로 완전 한국어화가 되었으며 상당히 낮은 평가를 받은 오리지널 PC판과 달리 메타스코어도 80점을 찍고 전 세계 판매량이 50만장 이상이라서 나름대로 선방했다.[46] 마지막 야루도라 시리즈, PS2와 함께 멀티 플랫폼 발매[47] 특이하게도 마소 일본 지부에서 만든 3인칭 액션 게임이다. 자막 한글화로 정발되었으며 엑스박스 원으로 리마스터링판이 나올 예정이었으나 아직까지도 감감무소식.[48] 이후 오렌지 박스는 플레이스테이션 3, 엑스박스 360, PC로 발매되었다. 구엑박 게임 중에서 그래픽이 가장 좋다고 평가받는다.[49] 구엑박으로 나온 1,2편은 PC판도 나왔기 때문에 ◇표를 한다.[50] 엑스박스가 PC 기반으로 만들어진 콘솔이다 보니 잘만 손보면 라디오 음악을 바꿀수도 있거나, 한글 패치를 적용할 수도 있다.[51] 흔히 알려진 .44 매그넘이나 .50 액션 익스프레스가 아닌, 9발들이 .357 매그넘 버전으로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