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도 막부

최근 수정 시각:

분류


강호 · 도쿠가와 막부
(江戶(えど) · 徳川 幕府(ばくふ))

1. 개요2. 역대 쇼군

1. 개요[편집]

에도 시대일본을 통치했던 막부이자 최후의 막부.[1]

1603년에 도쿠가와 이에야스에 의해 세워져서, 제15대 쇼군 도쿠가와 요시노부덴노에게 권력을 반납하는 1867년 11월 9일의 대정봉환 때까지 약 265년간 일본을 통치하였다. 앞서 존재했던 가마쿠라 막부, 무로마치 막부와는 달리 비교적 오랜 세월 동안 안정기를 유지하는 데 성공했다.

일본사 전체 기준으로 볼 때 상대적으로 강력한 중앙집권제를 구축하는 데도 그럭저럭 성공했다. 단, 권력 구조에 있어서는 중기 이후로는 쇼군들의 능력이 초기에 비해 부족하다 보니 그 휘하의 로쥬(老衆)에게 실권이 쏠리고 쇼군은 다소 상징적인 존재로 물러나게 된다.[2]

전대 막부의 쇼군들과는 달리 시해당한 쇼군이 한 명도 없다는 특징이 있다. 일찍 사망한 쇼군은 있지만 전부 자연사했다.[3] 또한 아시카가 요시미츠처럼 조정 최고위 관직인 태정대신 직위를 받은 쇼군이 존재하는 막부이며, 특히 제109대 덴노인 메이쇼 덴노는 2대 쇼군 도쿠가와 히데타다의 외손녀이기도 하다.

2. 역대 쇼군[편집]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600px-Tokugawa_family_crest.svg.png
에도 막부의 역대 쇼군

이름

재임기간

비고

1대

도쿠가와 이에야스 (德川 家康)

1603 ~ 1605

세키가하라 전투 승리로 막부 개창
1605년~1616년 오고쇼(大御所)[4] 역임.
태정대신

2대

도쿠가와 히데타다 (德川 秀忠)

1605 ~ 1623

오사카 전투겐나 엔부, 무가제법도 제정
1623년~1632년 오고쇼 역임.
태정대신

3대

도쿠가와 이에미츠 (德川 家光)

1623 ~ 1651

산킨고타이, 시마바라의 난
막번 체제의 완성

4대

도쿠가와 이에츠나 (德川 家綱)

1651 ~ 1680

일본판 성종

5대

도쿠가와 츠나요시 (徳川 綱吉)

1680 ~ 1709

개 쇼군
겐로쿠 시대, 추신구라 사건

6대

도쿠가와 이에노부 (徳川 家宣)

1709 ~ 1712

학자쇼군, 금은 개혁[5]

7대

도쿠가와 이에츠구 (徳川 家継)

1713[6] ~ 1716

소년 쇼군, 거인증, 쇼토쿠의 치

8대

도쿠가와 요시무네 (徳川 吉宗)

1716 ~ 1745

최초의 방계 계승[7].
쌀 쇼군, 쿄호 개혁.
1745년~1751년 오고쇼 역임.

9대

도쿠가와 이에시게 (徳川 家重)

1745 ~ 1760

다누마 오키츠구를 크게 중용한 쇼군

10대

도쿠가와 이에하루 (徳川 家治)

1760 ~ 1786

텐메이 대기근

11대

도쿠가와 이에나리 (徳川 家斉)

1786 ~ 1837

역대 최장 재임 쇼군
막부 최대 판도[8], 칸세이 개혁
1837년~1841년 오고쇼 역임
태정대신, 물개 쇼군

12대

도쿠가와 이에요시 (徳川 家慶)

1837 ~ 1853

텐포 개혁, 쿠로후네 사건

13대

도쿠가와 이에사다 (徳川 家定)

1853 ~ 1858

14대

도쿠가와 이에모치 (徳川 家茂)

1858 ~ 1866

각기병 쇼군, 청년 쇼군

15대

도쿠가와 요시노부 (徳川 慶喜)

1866 ~ 1867

대정봉환, 무진전쟁메이지 유신

[1] 보통 지명을 따 에도 막부라고 하지만 종종 집권쇼군의 성씨를 따 도쿠가와 막부라고 부르기도 한다.[2] 이런 점은 호조 가문싯켄에게 실권이 몰렸던 가마쿠라 막부와 비슷하다.[3] 어떤 의미에서는 막부의 지배력이 전대 막부에 비해 안정적이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부분. 다만 도쿠가와 츠나요시는 당대에 정실인 노부코에게 암살당했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고, 도쿠가와 이에사다도 독살설이 나돌았지만 명확한 근거는 없다. 그 외 도쿠가와 이에모치도 유체의 상태에 근거해서 독살설이 제기된 바 있다.[4] 본래는 은거한 친왕이나 섭정이나 관백의 부친으로서 실권을 가진 사람을 뜻하는 단어였는데, 에도시대에는 은퇴한 전임 쇼군을 일컫는 단어로 자리잡았다. 오늘날 일본에서는 '현역에서 물러났지만 여전히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원로'를 일컫는 관용어로 쓰인다.[5] 순금/은 순도를 이에야스 시대로 끌어올렸지만... 바로 하쿠세키의 불황을 초래.[6] 이에노부 사후 쇼군직을 승계받는데 시간이 좀 걸렸다.[7] 이에야스의 10남 요리노부의 자손이다.[8] 1799년부터 몇 년간 북방 탐험으로 사할린 남부와 쿠릴 4도를 얻게되는 시점이 이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