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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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임한 직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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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200px-Saejeongchiyeonhap_logo.png 새정치연합 중앙운영위원장

발족

초대
안철수

해산


파일:npadreverselogo.jpg 새정치민주연합 대표

창당

초대
김한길·안철수

혁신위원장
박영선


파일:peoplelogo.jpg 국민의당 대표

창당

초대
안철수
·
천정배

비상대책위원장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
박주선

제3대
안철수

해산
바른미래당


파일:국회상징.png 대한민국 국회의원 (서울 노원구 병)

제19대
노회찬

제19·20대
안철수
[1]

공석

파일:external/image.nec.go.kr/100120964.jpg

이름

안철수(安哲秀)

영문 표기

An Cheolsu, Ahn Cheol-soo[2]

출생일

1962년 2월 26일 (55세)

출생지

경상남도 밀양군 밀양읍 내일리 142[3]

본관

순흥 안씨 1파 감찰공파 26세

신체

164cm, AB형

가족

부 안영모, 모 박귀남, 동생 안상욱
아내 김미경, 딸 안설희(安雪希)[4]

최종 학력

서울대학교 의학 박사

종교

천주교(세례명: 하상 바오로)[5][6]

소속 정당

바른미래당

현직

국민의당 노원구 병 지역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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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원 선수

2[7]

의원 대수

19, 20

병역

해군 의무사관(군의관) 대위 만기전역

약력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조교
단국대학교 의예과 학과장
안철수연구소 대표이사
포스코 사외이사
안랩 이사회 의장
카이스트 기술경영전문대학원 석좌교수
아름다운재단 이사
서울대학교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
새정치민주연합 공동대표
국민의당 공동대표
국민의당 노원구 병 지역위원장
국민의당 제19대 대통령 선거후보
국민의당 대표
국민의당 제2창당위원회 인재영입위원장

약칭

싱크 탱크

정책네트워크 내일

공식 사이트

ahncs.kr[8]

S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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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인생
2.1. 어린시절과 학창시절2.2. 가정사2.3. 군복무
2.3.1. 대한민국 해군 군의관
2.3.1.1. 육방부식 억지비난과 반론
2.4. 의사, 백신개발자2.5. 경영인
2.5.1. 안철수 재직 중 V32.5.2. 안철수 퇴직 후 V3
2.6. 교육인2.7. 정치인
2.7.1. 19대 대선 국민의당 대선 후보
3. 비판 및 논란4. 트리비아5. 저서6. 선거 이력7. 관련 문서8. 틀 둘러보기

1. 개요[편집]

대한민국정치인, 기업인, 프로그래머, 의사, 교수.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한 의사이자, 국내 최초로 컴퓨터 바이러스를 치료하는 안티 바이러스 V3-를 개발하고 이를 백신으로 불리게 만든 한국을 대표한다고 볼 수 있는 프로그래머다. 이후 IT기업 안랩(안철수연구소)을 만들어 대주주가 되었고, 서울대학교와 카이스트에서 교수로 재직했다가 18대 대선을 앞두고 정계 입문, 이후 재선 국회의원을 거치며 대통령 선거에 도전했다.

이력이 화려한 사람이다. 서울대 의대 출신 의사, 국내 최초로 백신을 개발한 프로그래머, 성공한 벤처기업가, 카이스트, 서울대 교수를 지냈고, 지금은 국회의원이 되었다. 정치인이 되기 이전까지도 다양한 이력을 보유하고 그 모두를 성공하며 많은 커리어와 업적을 쌓았고, 이를 바탕으로 국민에게 신뢰와 인기가 늘어났다. 이후 본격 정치인이 된 이후에는 그의 지난 인생 못지않게 혹독한 시기를 보내고 있다. 정치인으로서도 그의 바람을 이루게 될지 사람들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의 공동 당대표로써 제6회 지방선거에서 기대 이하의 성적, 2014년 재보궐선거에서 최악의 참패를 당한 뒤 대표직에서 물러나게 되었다. 이후 2015년 2.8 전당대회로 시작된 문재인 대표 체제에서 당지도부와의 불협화음으로 당내갈등을 지속하다 탈당해 국민의당을 창당했다. 20대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 정의당을 포함한 절망적인 일여다야구도에서 국민의당을 이끌고[9], 서울 노원구 병에서 50%가 넘는 득표율로 당선된 것도 모자라, 비례 득표율로 더민주를 이기고 38석이라는 대성공을 거두었다. 이후 리베이트 파문으로 당대표 직에서 사퇴했으나 무혐의로 결론이 나고, 19대 대선 경선에서 돌풍을 일으킨 뒤 2017년 제19대 대통령 선거에 국민의당 후보로 출마했으나 3위로 낙선했다. 그러나 대선 패배 이후 당을 재건하겠다는 명분으로 국민의당 당대표 선거에 출마하였으며 2017년 8월 27일, 국민의당 당대표로 51.08%의 득표율로 과반을넘기며 결선투표 없이 당선되었다.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대비하여 바른정당과 연대 논의를 시작했으며, 이는 합당 논의로 이어졌다. 당내의 찬반이 갈렸으나 이를 무릅쓰고 분당 사태까지 겪으며 합당을 밀어부쳤고, 결과적으로 바른미래당을 창당하기에 이른다. 이후 당대표직을 내려놓았고, 지방선거 하마평에 꾸준히 오르고 있다.

2. 인생[편집]

2.1. 어린시절과 학창시절[편집]

1962년, 경상남도 밀양시에서 아버지 안영모와 어머니 박귀남 슬하 2남 1녀 중 첫째로 출생. 병원을 운영하는 의사이신 아버지 밑에서 어머니와 다른 형제들과 함께 아버지의 병원 건물[10]에 있는 방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화초 심는 것을 좋아해서 건물 옥상에다가 갖가지 종류의 을 심어, 옥상은 이미 어린 안철수만의 화원이 되었다고 한다. 그 외에도 학교 앞에서 사온 병아리를 곧 죽을 것이라는 모두의 우려와는 달리 까지 키워내기도 하는 등, 뭔가를 키우는것에 굉장히 능했다.[11]

동식물을 키우는 것 외에도 기계를 분해하여 재조립하는 것을 즐겨 했다고 한다. 한번은 친척집 괘종시계를 망가뜨리기도 했다고. 그래서 그를 잘 아는 친척들은, 그가 집에 오는 날이면 중요한 기계는 모조리 숨겼다고 한다.

의외로 중학생 시절까지는 그다지 우등생이 아니었다고 한다. 반에서 중간 정도 하는 성적이었으나[12] 대신 독서광이었다고 한다. 학교 도서관에서 매일 책을 빌렸고 빌린 책은 몇 권이든 하루 만에 다 읽어서 바로 다음날 반납했는데, 사서교사가 이를 보고 '얘가 일부러 장난 치는 거 아닌가'하고 의심하기도 했다고. 어릴 때 꾸준히 독서를 한 결과인지, 고등학생 때부터는 성적이 일취월장해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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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결과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에 진학할 수 있었다고 한다. 무릎팍도사 안철수 편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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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 오른쪽이 안철수다.

2.2. 가정사[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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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재학하던 중 만났던 김미경 서울대학교 교수1988년 결혼하였다. 그리고 딸 하나를 두었다.

2.3. 군복무[편집]

2.3.1. 대한민국 해군 군의관[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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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련소 시절(좌측 이미지). 오른쪽이 안철수.

좌측 이미지는 육군3사관학교 산하 화산유격장 산악교장으로 추정. 3사관학교 부대마크와 사관후보생 번호표를 군복에 부착하고 있는 걸로 봐서, 육군3사관학교 의무사관 후보생 기초군사교육 과정 중 찍은 사진이다. 특수사관후보생들은 기초군사훈련은 육군에서 받고 임관 전 최종적으로 임관할 군종이 정해진다. 현재는 육군학생군사학교로 양성과정 교육기관이 바뀌었다.

대한민국 해군 군의관으로 복무했다. 최종 계급은 대위. 해군 의무병과 인원들의 특성상 해병부대에서도 근무했기 때문에, 해병대와도 인연이 있다.

2.3.1.1. 육방부식 억지비난과 반론[편집]

해군 군의관 시절, 주말마다 진해에서 서울비행기 타고 왕래한 것 때문에 위수지역 이탈 문제가 논란이 된 적이 있었다. 이는 독재권력이 집중된 역사가 보인 육군 위주의 사고방식에서 비롯된 오해이며, 위수지역 개념이 없는 해군은 규정상으로는 문제 없었다. 오죽하면 해군 관계자마저도 열불날 일이란 걸 애써 참으며 '이것은 문제없다'고 답변했을 정도이다. 해병대 역시 제2해병사단만이 수도군단 통제를 받아[13] 위수지역 개념이 있고 제1해병사단은 신속대응부대를 제외하고는 2시간 내 복귀, 그리고 섬인 제6해병여단제9해병여단은 따로 위수지역이 없다. 배를 타지 않으면 섬을 못 벗어나기 때문이다. 애초 해군은 육군과 달리 지역이 아니라 시간제이다. 그래서 제2함대 함정 근무자의 경우 30분 내 부대 복귀 가능한 거리에 대기해야 한다. 참수리급 고속정은 아예 5분대기라 반쯤 영내생활이나 다름없다. 참수리 BOQ도 부대 내에 있다. 이 때문에, 해군은 오래 전부터 육군의 30년 내내 한 부대에 짱박히는 부사관 같은 모습이 없이 부사관들의 근무지 이동이 활발했다.

2.4. 의사, 백신개발자[편집]

원래 직업은 의사였다. 하지만 기계에 관심을 보이는것은 여전하여 컴퓨터를 구매하기로 했는데 그 당시 컴퓨터의 가격은 안철수가 감당해내기에는 상당히 비쌌다. 그래서 그는 정말 돌아갈수있는 최소한의 부품만 갖춘 컴퓨터를 겨우겨우 구매했고 이후 컴퓨터에 빠졌다고 한다.

어느날 본인의 컴퓨터에 바이러스가 침투한 적이 한 번 있었는데 이는 안철수의 인생을 바꾼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거의 밤새 바이러스 걸린 컴퓨터와 씨름을 했다고... 그리고 그때부터 백신개발에 몰두하였는데 그 과정에서 의사를 그만두고 안랩을 설립했다고 한다. 사람을 고치는 의사에서 컴퓨터를 고치는 의사가 된 셈.

세계 최초의 백신은 1987년에 나온 것으로 추정되는데# V3이 88년 6월에 처음 배포된 것을 생각하면 안철수의 백신 배포 시기도 굉장히 빠른 축에 속한다. 당시의 소스 코드

군의관 제대 이후 의과대학 교수직을 내놓고 컴퓨터 바이러스 백신 개발 연구에만 전념하다가 1995년 12월 '안철수컴퓨터바이러스연구소' 를 개업한다.

2.5. 경영인[편집]

1995년 12월 안철수컴퓨터바이러스연구소를 개업했다. 하지만 초반에는 직원도 4명 뿐이었고 사무실 구할 돈이 없어 자신의 집에서 직원들이 일을 했다고 한다. 직원들 줄 월급이 모자라 부모님에게 돈을 빌릴 정도였다고. 그렇게 어려운 시간을 보내다가 1998년부터 본격적으로 안철수의 모범 경영과 멕카피의 제의를 거절한 내용이 보도되며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고 1999년 터진 Y2K 바이러스와 바이러스 대란을 잘 극복하면서 IT 기업 1위 자리를 하며 명실상부한 대한민국의 빌 게이츠로 이름이 알려지게 된다.

2000년 9월 안철수 연구소로 사명을 변경하고 2005년까지 대표 이사를 역임했으며, 2003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취임식에 국민대표 8인 중 1명으로 참석하였다.

경영자로서 모범적인 경영을 하였다. 안철수연구소의 대표이사로서 재직중인 당시에 절대 차입경영[14]을 하지 않았다. 이를 두고, 모범적인 벤처기업 경영의 사례로 손꼽는 이들이 많다. 또한 안철수연구소에서 채용을 할 때 학력, 외모, 성별 등을 따지지 않는다. 이게 당연한 듯 보여도, 아직도 많은 기업들은 학력을 대졸 이상으로 못박는다. 관련 내용[17] 물론 위에서 부채가 적으므로 좋은 회사라 표현했으나 부채가 있는 회사라고 하여 부실한 회사를 뜻하지 않는다. 부채가 없는 회사는 외부의 압력을 받지 않기 때문에 내부의 붕괴로 자멸한다는 것과, 부채가 없으면 공격적인 전략을 취하지 못한다는 점 때문에, 현대 회계에서는 일정량의 부채가 있는 것을 중요시하기도 한다. 단, 당시 안철수연구소는 이렇다 할 수익모델이 없이 필요성만 보고 백신을 개발하던 회사라, 누군가 투자하지 않는 한 애초에 돈을 빌려올 능력이 안되는 회사였을 수도 있다. 결국 금융권에선 회수 가능성과 수익 가능성을 볼 수밖에 없으니.

연구소를 나오면서 초창기부터 일했던 직원 100명에게 무상으로 주식 1.5%를 나누어주었다(안철수의 주식 1.5% 무상분배에 대하여)고 했지만 전부는 아니었는지 안철수는 현재 안철수연구소의 지분 37.1%를 보유 중이다. 이는 3,350억원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그리고 2011년 어느 기사에는 연구소에서 일하지도 않는데 주식이 있다고 부르주아 인텔리 좌파라고 까는 무개념 댓글이 베플에 오르기도 했다.

그러나 직원들과 간담회에서 한 직원이 "회사에 노조가 생기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질문하자 "회사 접어야죠"라고 대답해 분위기가 얼어붙었다는 일화가 정치계 입문 후 인터넷에 소개돼 노동관 논란이 일었던 적이 있었다. 기사 이에 대해 새정연 대변인을 지냈던 금태섭 변호사는 "(저서인) <안철수의 생각>부터 여러 차례 노동 문제를 다뤘고 대선 캠프에서 노동 분야도 따로 있었다. 전혀 그런 생각을 하지 않고 있다. 과거 회식 자리 비슷한 발언에 대해 당장 사실 관계를 확인할 수 없다. 이상한 전언을 가지고 이렇게 쓴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반박하였다.

위 기사의 원 소스는 물뚝심송의 블로그 게시글. 2015년 12월에 이 논란이 다시 불거졌고, 결국 안철수 의원실에서 물뚝심송과 기사를 받아쓴 <미디어오늘>을 상대로 법적조치를 검토 중이라고 한다. 자세한 내용은 물뚝심송문서 참조.

2.5.1. 안철수 재직 중 V3[편집]

대표적 안티 바이러스 브랜드는 V3이 있다. 컴퓨터용 안티바이러스 제작에 뛰어들게 된 계기는, PC 통신 초기이던 80년대 말에 출현한 브레인 바이러스를 수동으로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어 이것을 프로그램화하여 최초의 한국산 안티 바이러스인 'Vaccine'을 만들게 되면서부터였다. 이것을 VT에 뿌렸을 땐 많은 사람이 환호했다. 차차 버전을 올려가면서 미켈란젤로 바이러스 퇴치기능을 추가할 때 Vaccine 3, 줄여서 V3로 명칭이 굳어졌고, 이것이 지금까지 사용되고 있다. V3부터는 버전 넘버를 따로 매겼는데, 그 버전 넘버가 곧 V3가 잡을 수 있는 멀웨어의 갯수였다. V3 Ver. 100이라면 100개의 바이러스를 잡아낼 수 있었단 얘기. V3의 영향은 한국의 많은 이들이 컴퓨터용 안티 바이러스 프로그램을 가리켜 '컴퓨터용 바이러스 백신'이라고 부르고 있는 데서도 찾아볼 수 있다. 본 문서도 마찬가지.

국내에서 경쟁할 프로그램이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백신을 사업화하지 않고 있다가 윈도우 시대로 넘어와서 백신을 유료화하자, 뭇 초딩들에게 "바이러스를 고치는 백신을 돈 받고 팔다니, 아저씬 나빠요"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고 한다. 이때 언론들 역시 백신의 사업화를 부정적으로 보도한 바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막 까대도 실질적으로는 V3+Neo를 계속 버전업했다. 사람들이 몰라서 그렇지모르고 까지는 맙시다 문제는 v3+neo는 실시간 감지 기능이 없었으며[18] 이미 당시의 백신의 대세는 무료백신으로 DB를 확보하고 부가기능이 추가된 유료백신을 사업자 & 코어사용자용으로 판매한다는 것이었다. 2000년대 이후의 V3는 무료백신(과 데이터 수집, 이미지 관리) 부분에서 시대에 많이 뒤떨어졌고, 그 여파를 회복하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려야 했다.

2.5.2. 안철수 퇴직 후 V3[편집]

안철수가 공부를 이유로 안철수연구소를 떠난 후, 안철수연구소는 무수한 병크를 터뜨렸다. 안철수가 떠난 뒤의 안랩은 '무료 백신은 세계의 대세가 아니다' 등의 헛소리를 했고, 무료 V3 역시 V3+Neo 같은 도스 버전만 지원하다가 국내에서도 어베스트 등의 한글화 무료백신이 나오면서 밀리고 밀린 끝에 출시했다. 물론 유료로 전환한 것 자체는 필요한 조치였으나, 당시 안랩 대표가 '무료 백신은 세계의 대세가 아니다'라는 얘기를 한 시점의 보안업계 뉴비들의 사업모델은 개인 사용자들에게 무료로 안티바이러스 / 방화벽을 뿌리고 개인 사용자들의 피드백을 통해 DB를 확충한 다음, 법인 시장을 노리는 것으로 변화하고 있었다. 세계의 대세를 읽지 못한 것은 당시의 안랩이었던 셈. 심지어 초창기 V3는 시대를 앞선 무료백신이었는데 그걸 활용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가장 심각한 것은, V3의 성능 부족을 '한국 토착화' 같은 소리로 무마하려고 하며 개선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때는 V3는 카스퍼스키가 잡아내는 거 절반 밖에 못 잡는다는 등의 온갖 흉흉한 평들이 돌아다녔으며, 이 때 생긴 V3의 나쁜 이미지를 극복하는 데는 꽤나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결국 우여곡절 끝에 지금은 윈도우용 무료 백신 V3 Lite를 배포하며 괜찮은 반응을 얻고 있다. 2015년 즈음부터는 해외의 벤치마크에서도 괜찮은 성적을 보여주고 있다.

2.6. 교육인[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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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가 딴 학위는 의학 학사-석사-박사, EMTM, EMBA이다.

20대에 최연소 교수, 그것도 학과장이 되었다.(…) 여기에는 좀 속사정이 있는데, 안철수 본인이 임상의학보다 기초연구쪽에 관심을 두고 생리학을 전공하였으며 신설 의대 증가 등으로 전국적으로 의대 교수 자리, 특히 기초의학 교수 자리가 늘어나게 되면서 이례적으로 빠르게 교수를 달았던 것이다.[19] 그리고 학과장을 맡게 된 것은 다른 교수들에 비해 젊다는 이유로 귀찮은 일이 많은 학과장을 떠맡게 된 사정도 있다.[20]

카이스트 석좌교수 시절에는 학부 학생들은 1년만 가르치고 대학원생들을 가르쳤다. 여담이지만 학부생을 가르칠 때의 수업인 <기업가적인 사고방식>은 명강의로 소문이 자자했다. 수업 자료로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 케이스들을 사용했는데, 원본 뿐 아니라 학생들에게 배부할 자료들도 복사를 하지 않고 각 부에 해당하는 저작권료를 모두 자비로 냈다.

KAIST 석좌 교수로 있다가 서울대학교의 러브콜을 받고 이적, 서울대학교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직을 맡고 있었고 2012년 제18대 대통령 선거에 참가하는 출마선언을 기점으로 모든 직위에서 물러났다.

안철수는 의학박사를 딴 뒤 미국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에서 EMTM[21]을 취득했다. 중간관리직~임원 정도에 있는 사람들이 주중에는 회사를 다니고 주말에는 학교를 나가서 2년만에 석사학위를 취득하는 과정이다.#[22][23][24] 이것도 모자라 펜실베이니아 대학교[25]트럼프와 동문 와튼비즈니스스쿨[26]에서 EMB 학위까지 가지고 있다.

컴퓨터 회사를 창업한 이력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키보드를 보고 타이핑을 한다는 모양. 의대 교수 생활을 접고 창업해 안철수연구소에서 잘 나가던 CEO였지만 또 다시 접고(…) 카이스트 경영과학과의 '정문술 석좌교수'에 임용됐다. 정문술 미래산업 창업주의 적극적인 추천이 있었다는 후문이 있다. 실제로 안철수의 보직 이름은 정문술 석좌교수.

2.7. 정치인[편집]

2.7.1. 19대 대선 국민의당 대선 후보[편집]

초기에는 대선 유력 후보인 문재인과 지지율이 5%이내의 오차범위내로 차이나지 않는 양강구도를 주도함으로써 자신의 존재감과 영향력을 크게 떨쳤었다. 실제로 이때만 하더라도 안철수가 대선에서 처참하게 패배하리라 예측하는 사람은 전무한 상황이였다. 오죽하면 상당수의 보수측에서 홍찍문을 주장하며 보수대권주자로 대선에 출마한 홍준표 후보에 대한 악질적인 비방과 개인의 품성에 대한 비난을 줄곧 제기하며 안철수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기까지 한다.

하지만 이후 안철수의 지지율은 줄곧 하락하기만 하지 반등의 기미를 보이지 않게 되면서 기존의 안철수 지지기반까지 동요하게 되며. 안철수에게 몰렸던 표가 다시 홍준표에게 되돌아가는 상황까지 발생하였다. 급기야 초기 문재인 - 안철수의 양강구도는 깨지고 1강 2중 체제로 전환하게 된다.

결국 대통령 선거 이후 언론사들의 출구조사에서 20%대를 기록하며 2위는커녕 3위에 그쳤고, 최종 개표 결과에서도 여전히 20%대의 득표율을 기록하며 2위인 홍준표 다음으로 3위라는 결과를 받게 되었다.

대선 직후, 자신의 대선 패배를 복기하는 백서를 쓰자고 제안했다.
그리고 "다음 대선에서는 달라질 것이다."라며 차기 대선 출마 의지를 공식 피력했다.

3. 비판 및 논란[편집]

4. 트리비아[편집]

  • 파일:/image/003/2016/04/15/NISI20160415_0011589824_web_99_20160415134904.jpg
    글씨체는 대략 이렇다. 둥글둥글

  • 무릎팍도사에도 출연했다. 2009년 06월 17일에 방영. 엄청난 포스로 방송분량 1시간을 거의 채웠으며 그에 따라 라디오 스타는 다음주 분량의 예고편만 방영했다. 참고로 여기서 본인 말에 따르면, 군의관 입대하러 가는 당일 새벽에 초기버전 V3 제작 완료했다고 한다. 그 덕분에 가족들에게 입대하러 간다는 말을 일절 안하고 나왔다고… 가다가 도중에 아차 싶었다고 한다. 하지만 아내 김미경 교수의 인터뷰를 보면 아내가 바래다 주긴 한 듯하다. 안철수는 그냥 V3 생각만 하다가 군대 간다고 가족들에게 말하지 않고 허둥지둥 서울역으로 달려갔고, 아내는 안철수가 말하지 않았어도 군대 가는 날을 알고 있어서 군대 가는 안철수를 쫒아와서 바래다 준 듯. 근데 강용석은 이거 가지고 아내가 안철수가 군대 간다고 말했다고 말하지 않았는데도 안철수의 거짓말이라며 블로그에 포스팅까지 했다.(…)

  • DOS 시절에 제작된 러시아산(?) 컴퓨터 바이러스 중 하나는, 당시 뜨던 V3을 놀려먹기 위해서인지 메세지 중에 '안철수 바보'라는 뜻의 메세지를 집어넣었다고 한다.(…)

  • 아내 뿐 아니라 학생, (CEO 시절의) 직원들 등 아랫사람에게도 가리지 않고 존댓말을 쓴다. 이는 그의 가정환경이 가장 큰 원인인 듯 한다.

  • 고등학생 시절 집 앞에서 택시를 타고 나가게 되었는데 그의 어머니께서 존댓말을 하며 배웅하셨고, 그걸 본 택시기사가 두 사람의 관계를 파악하지 못해 "형수님이냐?"고 물었다는 일화가 있다. 안철수는 이때까지 집에서 가족들은 서로에게 존대를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해 왔다는 듯. 그리고 그 덕에 반말을 잘 못해 해군 장교일 때도 고생했을 정도로 존댓말이 입에 붙었다고 한다.

  • 해군 복무시절, 수병, 해병들에게도 하대하기 힘들었다고 한다. 일반 병 신분의 환자들은 존대해준대도 "저 군의관 친절하네" 하며 긍정적으로 넘기고 별 일 없으나, 자기 밑의 지시를 내려야 할 의무병에겐 존대할 수 없어 곤란했다고 한다. 결국 생각 끝에 한 말은 "~래…요?" (이것도 무릎팍도사에 나온다.)

  • 상당한 영화광으로 알려져 있다. 소장한 DVD, 블루레이가 1,000여 장은 되는데다가, 바쁜 와중에도 웬만한 개봉영화는 시간을 쪼개서라도 아내와 함께 보러 간다고 한다.

  • 하이텔의 유명 게임 동호회 중 하나였던 개오동(KETEL오락동호회)에서 위저드리7 때문에 정치 선배 이찬진 씨와 더불어 채팅방에 자주 출몰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안철수의 아이디에는 특수문자가 들어갔다고… (하이텔 아이디가 ahn.cs였다.) 당시 하이텔에는 아이디에 특수문자를 삽입할수 없었다. 하이텔 측에서 백신을 배포해 준 보답으로 아이디에 특수문자를 넣을수 있도록 했다는 카더라 통신이 돌지만, 사실 그냥 하이텔 초창기인 케텔 시절 특수문자 아이디가 생성 가능했던 때에 가입했기 때문이다.

    • 또한 유명세로 인한 해킹(이라기 보다는 버그를 악용한 것) 사건이 KETEL시절 일어나기도 했다. 당시 KETEL/KORTEL은 버그 투성이라 해커의 온상지였다. 일례로 갈무리 기능인 PR의 버그로 인해 읽기 제한인 글들을 줄줄이 읽어내는 등… 당시 아이디들이 실제로는 저장되는 방식이 'ahn.cs'와 같이 공백을 두고 저장하던 식이라 문자열을 비교하는 알고리즘이 비교적 허술하게 작성되었다. 당시에는 3자리 아이디도 허용되던 시절이었다. 대표적인 버그중 하나로 아이디가 'a', 'ah', 'ahn', ahn.', 'ahn.c' 인 사람들은 얼마든지 안철수(ahn.cs)의 게시글을 수정할 수 있었던 것. 지금 생각하면 있을 수도 없는 일이지만 그정도로 문자열 비교 알고리즘은 쉬운게 아니기도 하다. Kit-Virus 작성자라고 자칭하는 사람이 이런 문제를 간파하고 안철수가 올린 V3의 자료 설명과 내용을 파괴하고 장난해서 물의를 빚은 사건도 있었다.

    • 또한 한번은 개오동에서 유령회원을 정리할 목적으로 회원을 모두 탈퇴시키고 12시부터 재가입을 받기로 했었는데, 12시가 되고 몇초 지나지 않아 바로 재가입 신청을 했다고 한다.

  • SNL 코리아 시즌 2의 여의도 텔레토비 코너에서 '안쳤어'로 패러디된다. 등장했다가 간만 보고 금방 사라지는 역할이다. 상징하는 색깔은 흰색.

  • 관련 사건 목록은 여기에 잘 정리되어 있다.

  • 2016년 11월 23일 수원대학교에 강의를 하러 왔었다. 그러나 사학비리를 언급하지 않은 것 때문에 비판의 목소리도 있다.

  • 2016년 6월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 때 중국등소평을 롤모델로 하면서 연설을 했다.#

  • 도널드 트럼프와튼스쿨 동문인점을 좀 강조하고있다. 썰전과 SBS 대선토론에 출연해서 언급했었다. MBN 근데 정확히 말하자면 학교는 같은데 캠퍼스가 다르다. 또한 석사 학위 과정의 경우 트럼프 대통령은 일반 MBA 과정을 거쳤지만, 안철수 대표는 이와 다른 EMBA, 즉 최고 경영자 과정을 거쳤다. 즉, '''트럼프 대통령과 안철수 대표는 동문이긴 하지만 같이 수학하진 않았다.

  • SNL 코리아 시즌 9의 미운 우리 프로듀스 101 코너에서 '안찰스 (피플컴퍼니)'로 패러디된다. 정상훈이 역할을 맡았으며, 실제로 정상훈이 '안찰스' 컨셉을 잡고 안철수를 직접 만났다.[27] "~~입니까!!!" 그리고, 포스터 등을 패러디 했으며 '문재수'와의 양자구도도 패러디했다.

  • 파일:1517029777.jpg

정계 입문 전인 기업인 안철수와, 현재 정치인인 안철수의 인상을 비교하면 인상이 상당히 나빠졌다. 아무래도 기업인 시절보다는 정계에서의 당 안팎으로 정치싸움으로 인해 항상 스트레스를 달고 웃을 일도 거의 없기 때문에 아무래도 인상이 나빠질 수밖에 없다. 비슷한 케이스로는 자유한국당 한선교가 있다.

5. 저서[편집]

6. 선거 이력[편집]

연도

선거 종류

소속 정당

득표수 (득표율)

당선 여부

비고

2013

상반기 재보궐선거 (서울 노원 병 국회의원)

무소속

42,581 (60.46%)

당선 (1위)

[28]

2016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노원 병)

국민의당

53,930 (52.33%)

당선 (1위)

[29]

2017

제19대 대통령 선거

국민의당

6,998,342 (21.41%)

낙선 (3위)

[30]

7. 관련 문서[편집]

8. 틀 둘러보기[편집]


[1] 의원직 사퇴[2] 안랩 영문판 홈페이지에는 안철수를 자사의 창립자로서 Dr. Charles Ahn으로 소개하고 있다. 하지만 안철수가 정치에 입문한 후 그를 찰스라고 부르는 것은 안티들이 희화화할 때인 경우가 많아서, 꽤 많은 지지자들이 그를 찰스로 부르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는데 2017년 대선 이후로는 지지자들도 찰스라는 표현을 많이 쓰게 됐다(...) 어차피 외신에서도 거의 다 Ahn Cheol-soo로 표기하고 있으니 이제는 굳이 찰스를 쓸 일이 별로 없을 듯하다.[3]경상남도 밀양시 내일상가1길 10. 당시 부친이 밀양에서 군의관으로 활동하고 있기에 밀양에서 출생했다고 한다. 그래도 어린 시절부터 부산에서 자랐으니 사실상 부산 출신이라 해도 큰 무리는 없다.[4] 1989년생[5] 10월 11일 세례성사를 받았는데 우연인지 아닌지 바오로 사도는 문재인 대통령의 세례명인 티모테오의 스승이다. 하지만 세례명에 사용하는 성인의 이름으로서는 '바오로'와 '하상 바오로'(정하상 바오로 성인)가 명백하게 구분되므로, 전술한 내용은 가톨릭 성인명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이 빚은 해프닝. 한편 안철수는 세례 전에 불교 승려에게서 ‘대경’이란 법명을 받은 적이 있다. 하지만 이는 수계 없이 일종의 선물처럼, 덕담처럼 이름을 선물한 것으로, 안철수가 그 당시에 불교에 귀의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안철수는 무종교인에서 천주교인으로 입교하였다.[6] 여담이지만 바른미래당 내에서 정병국, 이학재, 유의동 의원도 같은 천주교 신자이다. 20대 총선 당시 맞붙었던 이준석바른정당 최고위원 역시 천주교 신자이다. 이외에도 이언주 의원도 과거 천주교 신자였었긴 했으나, 현재는 성공회 신자로 알려져 있다.[7] 의원 선수는 2선이지만 기간으로 치면 1선 임기 기간인 1461일(4년+윤년 1일)도 못채웠다. 2013.04.24.~2017.04.15. 총 1453일[8] 현재는 광고 사이트 이다.[9] 이 당시 "1번과 2번에겐 기회가 많았습니다. 그들을 일하게 하고 싶으시다면 3번에 기회를 주십시오."라는 전설적인 문구로 돌풍을 불렀다.[10] 하도 많이 취재가 들어오자 2012년에 폐업했다. 구 범천의원 터[11] 결국 그 은 집 어른들이 잡아다가 삼계탕을 했다고 한다. 그 닭이 단번에 자기가 키운 닭임을 알아본 안철수는 어린 마음에 꽤나 상처를 받았다고.[12] 지금으로 치면 하위권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당시엔 한 반에 50~60명씩 꾸겨 담는 일이 부지기수여서, 30등 정도면 딱 중간 정도의 성적[13] 해병2사단이 육군17사단의 전방을 지키는 위수부대라서 그렇다.[14] 돈을 빌려와서 회사를 꾸려가는 경영형태. 어느 위키러가 부채가 [15][16]이라고 표현했지만 그렇지 않다. 전자공시시스템가서 확인해보시길. 다만 그렇다해도 다른 기업과 비교하면 거의 없는 수준. 15년 12월 기준 자산 1,900억, 부채 330억 원. 웬만한 대기업들도 자기자본 대비 부채가 100%가 넘어가는 걸 생각하면, 정말 적은 것 맞다. 은행에서 돈을 빌리거나 회사채를 발행하여 자금을 조달하지 않아도 회계상 부채는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직원들 퇴직금만 해도, 실제로 지급되기 전까지 부채로 쌓여 있다.[15] 무차입경영은 가능할지 몰라도 부채가 0인 기업은 절대 존재할 수 없다. 이연법인세부채라든지 퇴직급여충당부채등의 각종 비이자부 충당부채성격의 채무들이 존재하기때문이다.[16] 알기 쉽게 설명하자면 회계적으로 부채란 단순히 회사채가 아니라 쉽게말해서 '미래의 현금 유출'이다. 기업들간의 거래는 대부분 거래 즉시 현금유출입이 일어나지않는 일종의 외상거래 혹은 장부거래이기 때문에 무차입경영을 하더라도 '매입채무'같은 부채계정이 안생길 수 없다. 또한 기업은 미래에 발생가능한 예상가능한 손실에 대해서 의무적으로 일정%이상 충당부채를 설정해야한다(ex.외상으로 우리회사의 서비스를 공급받은고객이 갑자기 망할 우려 등 혹은 이전 각주가 말한 법인세관련 및 퇴직관련 등등 종류가 매우 많다).[17] 입사지원 자격요건에 관한 내용을 클릭하면 된다.[18] 도스시절, 램에 상주하는 실시간 감지체계는 함께 배포되던 V3 RES의 몫이었다.[19] 여담으로 90년대에 나온 생리학 교과서를 보면 교수 안철수의 이름을 찾아볼 수 있다.[20] 실제로 많은 대학, 많은 학과에서 정규직 교수(정교수, 부교수, 조교수)가 여러명이 재직 중이지만 꼭 경력이 많은 정교수만이 학과장을 맡는다는 법은 없다. 부교수, 조교수도 학과장을 맡는다. 대부분의 정교수들은 이미 학과장 경력이 있어서 학과장을 하면 귀찮아 지고, 학과에서 일어나는 모든일에 책임을 져야하는 걸 알기 때문에 학과장 맡기를 꺼려한다. 더구나 정교수까지 승진이 끝났기 때문에 인사고과에 신경 쓸 필요도 없다.[21] 관리직을 위한 기술경영 석사[22] 이를 컴퓨터과학 석사로 오해하는 경우도 있는데 전혀 관계 없다. 제조업이나 IT산업 쪽 회사를 경영하는 방법에 대한 석사학위다.[23] 이를 우리나라의 최고위과정과 비슷하게 오해하는 경우도 있는데, 전혀 다르다. 그쪽은 학위가 나오지 않는 친목단체이고 돈만 내면 들어갈 수 있다. 반면 이쪽은 학위가 나오는 석사과정이고 GMAT나 GRE 등 미국 대학원 입학시험 성적 제출이 필수적이다.[24] 이를 정규 학술석사(M.S.)로 오해하는 경우도 있는데, EMTM은 논문을 쓰고 연구를 하는 과정은 아니다.[25] 아이비리그에 속한다.[26] 세계 최고 수준의 경영대학 중 하나이나 그건그거고, 켈리포니아에서 수업받았다고 한다. 돈 있는 기업가들의 학위를 위한 과정[27] 사실 이 코너에서 후보 패러디 역할을 맡은 사람들도 각자의 후보를 만났다.[28] 전임자 노회찬 피선거권 상실.
2014.02.17 새정치민주연합 창당
2015.12.13 새정치민주연합 탈당
2016.02.02 국민의당 창당
[29] 2017.04.15 의원직 사퇴(대통령 선거 출마)[30] 전임자 박근혜 탄핵 인용에 따른 파면으로 인한 궐위에 의한 선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