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타리 2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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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CA 스튜디오 Ⅱ

벡트렉스


파일:external/vignette3.wikia.nocookie.net/Atari-woody.jpg
[1]

1. 소개2. 역사
2.1. 개발2.2. 성공2.3. 서드파티의 탄생2.4. 아타리 쇼크 이후
3. 사양4. 변형 모델
4.1. 아타리 27004.2. 아타리 28004.3. 아타리 2600 주니어
5. 기타6. 아타리 플래시백7. 관련 문서

1. 소개[편집]

고전이라는 단어를 정의하는 게임기죠. - AVGN


1977년에 미국의 아타리에서 발매한 최초의 총천연색 가정용 콘솔의 시조이자 고전 그 자체[2]

아타리 2600은 1977년 9월 11일 북미 시장에 먼저 출시되었다. 그 당시에는 아타리 2600이 아닌 아타리 비디오 컴퓨터 시스템(Atari Video Computer System, 줄여서 VCS)이라는 이름으로 출시되었으나 1982년 11월 아타리 5200이 출시되면서 아타리 2600으로 개명되었다.

당시 사람들이 오락실에서 볼 수 있던 브레이크아웃(벽돌깨기), 스페이스 인베이더, 팩맨 등을 집에서 할 수 있다는 점에 매료되어 큰 인기를 자랑했다. 판매 가격은 199달러, 롬 팩의 가격은 대체로 25달러. 당시의 물가를 고려하면 결코 저렴한 가격이 아니지만,[3] 1981년까지 큰 성공을 거두어 당해년도에만 11억 달러의 매출액을 올렸다.

아타리 쇼크가 1983~1985년도에 일어났고 이후 닌텐도가 패권을 장악했음에도 불구하고 아타리/시어스에서 1985년, 서드파티의 1986년을 제외하고는 1989년까지(유럽은 1990년까지)도 적은 숫자이지만 게임이 꾸준하게 발매되었다는 놀라운 사실이 있다. 장장 13년 동안 지원 된 셈으로 이는 플레이스테이션 2와 타이 기록이다. 또한 홈브류 게임은 2018년에도 나올 정도로 아직도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2. 역사[편집]

2.1. 개발[편집]

1974년에 아타리는 시안 엔지니어링을 인수해 캘리포니아의 그래스 밸리에 연구 개발팀을 만들었다. 놀런 부슈널은 이 팀으로 한 개의 게임기로 다양한 게임이 가능한 가정용 게임기를 개발하기 시작했다. 연구 개발팀은 연구 결과 그런 게임기를 구현하려면 마이크로프로세서가 필요하다는 걸 깨닫게 됐다. 하지만, 그 당시 마이크로프로세서는 무려 100~300달러나 되어 지나치게 비싸다는 문제점이 있었다.

당시 모토로라에서 척 페들과 여러 엔지니어들은 8비트 마이크로프로세서 모토로라 6800을 만들었으나, 지나치게 비싸서 바이어들이 구매하지 않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가격을 낮추기 위해선 칩의 사이즈를 줄여야 했고, 그러기 위해선 그 당시 새로운 공정 기술이었던 디플리션 부하(Depletion-load) MOSFET 기반의 칩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모토로라 경영진에 주장했으나, 모토로라는 마침 텍사스 오스틴에 건설한 반도체 공장에서 생산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기에 이를 거절했다. 결국 그들은 모토로라를 떠나 MOS 테크놀로지로 이직했고, 1975년 8월 모토로라 6800의 저비용 대체품 6502를 개발했다. 그리고 1975년 8월 19일 WESCON(Western Electronics Show and Convention) 무역 박람회에 전시했는데 이 때 아타리의 연구 개발팀이 이를 보게 되었다. 결국 이들은 논의 끝에 6502의 저가 버전인 MOS 테크놀로지 6507을 개당 8달러의 가격으로 구매하기로 계약을 맺었다.

아타리 2600 프로토타입의 이름은 '스텔라'였다. 1975년 12월 아타리 2600 프로토타입 디버그를 위해 조셉 디커를 고용했는데, '스텔라'는 그의 자전거 이름에서 유래한 것이었다. 1976년 3월 프로토타입 두 번째 버전을 완성했는데, 이 때 제이 마이너가 디자인한 그래픽과 오디오칩 TIA(Television Interface Adaptor)가 들어갔다. 또한 이 때부터 게임의 프로그램과 데이터가 들어간 ROM을 중심으로 구성된 카트리지라는 개념과 카트리지를 꽂을 수 있는 슬롯이 마련되었다. 놀런 부슈널은 다른 경쟁사들이 이 제품을 복제하는 것을 막기 위해 아타리 2600에 들어가는 반도체를 제조하는 기업들과 미리 독점 공급 계약을 맺었다.

아타리는 하루 빨리 완성하고 싶었지만 자금이 부족했다. 놀런 부슈널은 결국 아타리를 매각할 곳을 모색했고, 1976년 10월 5일 2800만 달러에 워너 커뮤니케이션즈에 매각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워너 커뮤니케이션즈는 게임기 완성을 위해 아타리에 1억 달러 넘게 투자했고, 그 덕에 아타리 2600 개발에 속도가 붙을 수 있게 됐다.

결국 1977년 여름 가전 박람회(CES)에서 아타리 2600을 전시 가능하게 되었는데, 이 때는 아직 아타리 2600이 아닌 아타리 VCS이라는 이름으로 전시되었다. 전술하였듯이 아타리 2600은 아타리 5200이 출시되고 나서야 개명되었다. 그리고 그 해 10월에 소매점을 통해 출시 가능하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아타리는 첫 번째 생산분의 품질 테스트에서 많은 문제를 겪어 결국 11월까지 미뤄져 출시되었다.

2.2. 성공[편집]

1977년 출시 이후 당장의 아타리 2600 판매량은 부진했다. 놀런 부슈널은 빠른 기술 발전에 반해 뒤쳐진 아타리 2600에 원인이 있다고 생각해 워너 커뮤니케이션즈에 후속 게임기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이는 놀런 부슈널과 워너 커뮤니케이션즈가 갈등하는 원인이 되었다. 실제로도 아타리의 엔지니어들은 CTIA와 ANTIC 그래픽 칩과 POKEY 오디오 칩등 차세대 게임기 시스템을 위한 칩들을 개발하고 있었다.

워너 커뮤니케이션즈에서는 1978년 하버드대 출신 레이몬드 카사르(Raymond Edward Kassar)를 마케팅 부사장으로 고용할 것을 추천했고, 놀런 부슈널은 그를 고용했다. 아타리에 들어온 레이몬드 카사르는 500만 달러를 투자해 1978년 연말 시즌을 노려 그 해 4분기 내내 "Don't Watch It, Play It"이라는 구호로 전례없는 TV 광고 공세를 한 결과, 그 해에만 2억 달러의 매출액을 올릴 수 있게 되었다. 결국 레이몬드 카사르 때문에 놀런 부슈널의 주장이 틀리게 된 것이다. 이 때문에 놀런 부슈널은 책임을 지고 아타리를 떠났다. 이후 레이몬드 카사르가 후임 아타리 사장이 되었고, 당시 사내 문화가 자유롭다 못해 개판 5분 전이었던 아타리의 체계를 잡아나갔다. 이런 변화에 반발하는 사람들은 아타리를 떠나기 시작했다. 또한 수많은 개발 프로젝트가 레이몬드 카사르에 의해 중단되면서 많은 엔지니어들도 역시 코모도어, 발리, 마텔 및 텍사스 인스트루먼트 등으로 떠났다. 하지만 아타리는 1981년까지 급속히 성장하면서 떠난 사람보다 입사한 사람이 더 많았고, 대기업이 되어갔다.

1980년 타이토스페이스 인베이더의 북미 가정용 시장 독점 판권을 계약 맺고 아타리 2600에 이식해 출시한 이후 게임기의 판매량은 4배로 증가했다. 급속도로 성장해 1981년에는 무려 11억 달러의 매출액을 올리게 되었다.

2.3. 서드파티의 탄생[편집]

아타리와 갈등하던 아타리 게임 프로그래머 넷이 회사를 떠나 1979년 액티비전이라는 회사를 창업하고, 아타리 2600용 게임을 내놓았다. 이뿐 아니라 여러 프로그래머들이 아타리 2600을 리버스 엔지니어링해서 게임을 내놓기 시작했는데 이 당시의 게임 관련 산업에서 플랫폼 홀더와 서드 파티라는 개념이 전무하던 시절이었고, 아타리는 자사 게임을 팔아서 수익을 낸다는 생각밖에 없었기 때문에 액티비전을 비롯한 이들 프로그래머들에게 특허 침해를 비롯한 온갖 소송을 걸었다. 그러나 실패했고, 결국 특허료를 받는 조건으로 아타리 2600에 게임을 낼 수 있게 되면서 이 때부터 서드 파티라는 개념이 탄생하게 되었다.

이 이후로 서드 파티들이 크게 번성하게 되었고, 서드 파티의 게임들 중 특히 액티비전의 피트폴, 카붐!, 리버 레이드나 이매직의 데몬 어택, 아틀란티스는 인기가 좋아 이 게임들은 아타리 2600의 판매의 견인차 역할을 했다.

2.4. 아타리 쇼크 이후[편집]

이렇게 잘 나가던 아타리 2600은 1982년 연말부터 아타리 쇼크를 맞이했다. 자세한 것은 해당 문서를 참고할 것. 이 사건으로 워너 커뮤니케이션즈는 아타리의 게임기 사업부를 1984년 7월 3일, 잭 트라미엘에게 2억 4천만 달러에 매각했고, 이후 아타리는 잭 트라미엘에 의해 대규모로 해고 되었으며, 아타리 2600은 잭 트라미엘이 중점적으로 밀던 아타리 8비트 컴퓨터 시리즈와 아타리 ST에 밀려 핵심 사업에서 밀려나게 되었다.

그러다가 1986년 "The Fun is Back"과 50달러 미만이라는 구호로 후술할 아타리 2600 주니어를 출시하면서 생명이 연장되었다. 그러다가 1992년 1월 1일 아타리 8비트 컴퓨터 시리즈와 아타리 7800, 아타리 XEGS와 함께 일괄 단종되면서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단종될 때까지 아타리 2600 시리즈는 약 3천만대 이상 팔려나갔다.

3. 사양[편집]

  • CPU : MOS Technology 6507 1.19MHz[4]

  • 오디오 + 비디오 프로세서 : 아타리 10444D TIA (Television Interface Adaptor) 3.58MHz (NTSC)[5]

    • 비디오 (NTSC의 경우)

      • 플레이 필드 해상도: 40×192 (20×192를 좌우 대칭 또는 복제로 표현)

      • 플레이어, 볼 및 미사일 스프라이트 해상도: 1,2,4,8×192

      • 최대 해상도: 160×192

      • 색상 수: 128색/한 화면, 4색/한 줄

      • 한 화면에는 배경화면, 플레이어 스프라이트 2개, 미사일 스프라이트 2개, 볼 및 미사일 스프라이트 1개 동시 표시 가능(= 스프라이트 5장)

      • 라인간 팔레트 전환 가능

    • 오디오: 4비트 볼륨 조절이 가능한 1비트 모노 사운드 2채널

    • AV 출력: RCA 단자[6]

  • MOS Technology 6532: RAM 및 I/O 컨트롤러, Timer 칩셋

    • RAM : 128바이트 (게임 카트리지에 추가 RAM 포함 가능)[7]

    • 입력 장치 제어 기능 내장

      • DE-9 컨트롤러 포트 2개: 단일 버튼 조이스틱, 패들, 트랙볼, 드라이브 컨트롤러, 12키 키보드 컨트롤러(0-9, # 및 *) 및 기타 서드 파티 컨트롤러

      • 6개의 스위치 (원본 버전) : 전원 켜기/끄기, TV 신호 (흑백/컬러), A 및 B 플레이어 난이도 설정, Select, 리셋. 전원 스위치를 제외하고 게임에서 스위치에 다른 기능 지정 가능.

  • ROM (게임 카트리지) : 4KB (뱅크 스위칭으로 최대 64KB 지원 가능)


플레이 필드의 도트 구성은 40×1 로서 가로 40도트는 CPU가 1.19MHz 세로 1도트는 텔레비전의 주사선 1에 해당한다. 이게 주사선 위치가 바뀔 때 마다(HBlank) 덮어 쓰여지는 방식으로 보통 주사선이 192개이기 때문에 실질적 세로 해상도는 192 도트가 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CPU가 엄청 느리기 때문에 실제로는 192 도트를 쓸 수 있을리 없고, 가로 40 도트도 실제로는 20 도트 그림을 좌우대칭으로 표시하는 눈속임에 지나지 않는다.

정말 한숨 나오는 사양이지만 메모리가 비쌌던 1970년대 기술력을 감안하면 이 정도도 대단한 수준이라 할 수 있다.

색상은 주사선 하나에 4색, 화면 전체로는 128색(실제로는 16색에 8단계 명암)에서 선택 가능하다. 주사선 째로 색의 밝기를 변경하면 제법 그럴싸한 그라데이션 표시가 가능하고(컬러 지정 레지스터는 1색 1바이트분이기에 도트 변경보다도 간단하다.), 이 부분 한정으로는 패미컴 보다도 우수하다. (패미컴은 52색 중 4색, 4팔레트, 16×16 단위 교체)

플레이어 스프라이트의 해상도는 최대 8×1. 플레이 필드와 같은 이치이다. 2장까지 표시할 수 있지만 도트와 색이 똑같은걸 1장마다 3장씩 복제할 수가 있어서 전부 6장을 주사선에 캐릭터로 표시할 수가 있다. 이것을 응용한 것이 스페이스 인베이더.

미사일/볼 스프라이트는 가로 1, 2, 4, 8 도트에서 선택하여 단색으로 도트는 변경 불가능하다.

컨트롤러는 조이스틱과 버튼 하나라는 심플한 구성으로 되어 있다. 사실 조이스틱이라고 해도, 분해샷을 보면 다른 조이스틱처럼 아날로그 방식이 아니라 디지털 4버튼에 막대기 붙여놓은 모양이란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형태이다보니 아타리 2600의 컨트롤러를 조작할 때에 상당히 뻑뻑하고 섬세한 조정이 힘들다. 대신이라고 해야할지 이 9핀 규격은 MSX 게임 포트나 세가메가 드라이브 등에도 사용되었기 때문에[8] 메가 드라이브용으로 나온 컨트롤러로 아무런 문제없이 아타리 2600을 플레이 할 수 있다. 본체에는 전원과 리셋 버튼 말고도 셀렉트 스위치와 난이도 스위치등이 달려 있어 그걸로 난이도나 설정을 조작할 수 있다.

비록 큰 반응을 얻지는 못했지만 혁신적인 아이디어로 만들어진 주변기기도 다수 있다. 예를 들어 전화로 1달러에 게임을 받아서 하는 서비스, 카세트 테이프에 들어있는 게임을 할 수 있는 기기, 무선 컨트롤러[9], 발로 조작하는 컨트롤러(Wii Fit과 비슷한 모습) 등.

4. 변형 모델[편집]

4.1. 아타리 2700[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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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external/www.atarimuseum.com/2700front.jpg
아타리 2600에 무선 컨트롤러 기능을 추가한 '아타리 2700'을 개발해 1981년에 출시하기로 했으나 개발이 중단되었다. 중단된 이유는 그 당시 기술로서는 무선 컨트롤러가 자신의 게임기와 페어링할 방법이 없었던 데다가, 다른 무선 컨트롤러나 게임기의 전파 간섭을 처리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개념은 아타리 2600 무선 원격 조이스틱으로 결국 출시되었으나, 전파 간섭 문제를 해결하려 한 바람에 크기가 매우 커졌고, 조작감이 구린 데다가 건전지 수명까지 하도 좋지 않아서 별로 팔리지 않았다.

아타리 2700의 케이스 디자인은 나중에 아타리 5200의 토대가 되었다.

4.2. 아타리 2800[편집]

파일:Atari2800.jpg
아타리는 1983년 5월 자로 일본에서 아타리 2800을 출시한 적이 있다. 이름만 바뀐 것이 아니라 패드와 본체를 묶고 패드 모양도 바꿨다. 다만 발매일 두 달 뒤인 7월에 패미컴이 발매된 바람에 참패했다. 가격 조차도 24,800엔으로 비싼데, 설상가상격으로 단 두 달 뒤에 나온 패미컴이 그보다 훨씬 저렴한 14,800엔이었으니... 게다가 에폭사에서 이미 1979년부터 아타리 2600을 수입해서 '카세트 TV 게임'이라는 게임기명으로 판매하고 있었기 때문에 일본인들이 살 이유가 전혀 없기도 했다.

4.3. 아타리 2600 주니어[편집]

파일:atari_2600_jr.jpg
아타리는 1986년에 작고 경량화 됐으며 비용 절감 모델인 아타리 2600 주니어를 출시했다. 아타리 7800과 비슷한 디자인이었으며 가격은 50달러 미만으로 저렴한 가격에 출시됐다. 아시아 시장에는 1990년, 그 외 시장에는 1991년까지 팔려나갔다.

5. 기타[편집]

아타리 2600 게임을 실기나 에뮬레이터 이외의 방법으로 즐길 수 있는 건 앱스토어구글 플레이에서 구매할 수 있는 Atari's Greatest Hits와 Activision Anthology가 있다. 게임을 하려면 앱 내 결제로 게임을 열어야하지만 무료 게임이 하나씩 들어있으므로 아타리 2600 게임이 어떤 느낌인지는 알 수 있다.[10]

2016년 3월에 스팀을 통해 Atari Vault라는 게임이 발매되었다. 모바일로 나왔던 Atari's Greatest Hits의 PC판으로 총 100개의 아타리 게임이 내장되어 있다. 다만 아타리에서 직접 만든 게임만 포함시킨 탓에 피트폴같이 정말 유명한 아타리 2600 게임은 실려있지 않다. 전설의 게임인 E.T.와 팩맨은 아타리에서 직접 만든 게임이지만 저작권 문제로 잘렸다. 그래서 100개라고 해도 상당수는 보드 게임과 스포츠 게임으로 차있는 편.

에뮬레이터로는 1996년부터 20년 넘게 유지 보수를 하고 있는 Stella가 유명하다. RetroArch에서 지원하고 있는 아타리 2600 에뮬레이터도 Stella의 Libretro 버전이 들어가고 있다. 처음엔 리눅스용으로 개발되었으나, 1997년부터 윈도우와 2004년부터 macOS도 지원하고 있다. 스텔라 홈페이지에 있는 개발팀의 말에 의하면 처음 만들었던 개발자는 은퇴했고, 현재 4명의 개발자가 유지보수 중이라고 밝히고 있다.

1992년 1월 1일에 단종되었는데, 14년 동안 팔린 것으로 미국 게임기 가운데 최장이다. 또한 몇몇 게임을 내장하여 일체형 형식으로도 판매되는 기종도 판매되고 있다. 특히 아타리 플래시백 시리즈는 아타리에서 직접 만들어서 판매하는 내장형 게임기. 내장형은 국내에서도 가끔 보이는데 아타리 2600 조이스틱 모양의 일체형 게임기를 COEX Mall 애니랜드와 펀샵에서 팔고 있었다. 현재는 품절.

홈브류 개발이 의외로 활발해서 2006년에 나온 게임도 있다. (링크 동영상) 또, 2009년에 나온 게임도 있다.(링크) 2016년 현재까지도 여러 홈브류 게임들이 나오고 있다.

만우절이 되면 이 기종으로 개발 중인 게임의 발표가 나오곤 한다.(예: 듀크 뉴켐 포에버,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등) 헤일로의 경우는 진짜로 아타리 2600 버전이 존재한다. 헤일로: 리치 발매 기념으로 아타리 버전 헤일로가 제작되었다. 실제로 팩으로도 만들어졌지만 팩은 제작자들만 가진 비매품이고, 여기에서 헤일로 2600을 플레이 할 수 있다.

초차원게임 넵튠 시리즈이 캐릭터(스포일러 주의)가 사실 아타리 2600의 의인화 캐릭터이다(...).

6. 아타리 플래시백[편집]

아타리에서 2004년부터 아타리 2600의 복각판 게임기를 설계 및 생산해 판매하고 있다. 자세한 것은 해당 문서 참조.

7. 관련 문서[편집]

[1] 이미지 저작원: "Atari-2600-Wood-4Sw-Set" by User:Evan-Amos, Locke Cole[2] 1972년에 나온 세계 첫 가정용 게임기인 마그나복스 오디세이가 있지만, TV 스크린에 씌우는 덮개로 그래픽을 대신하기 때문에 제대로 된 그래픽을 가진 게임기로 볼 수 없다. 또한 1년 앞선 1976년에 페어차일드 채널 F가 출시 되었지만, 2비트 RGB의 안습 팔레트를 가지는지라 그저 컬러가 나오는 수준이다.[3] 현재 출시된 3대 게임 콘솔인 XBOX, 닌텐도 스위치, PS4 Pro보다 비싼 가격이라고 보면 된다.[4] 6502는 애플 II, 패미컴에도 쓰인 CPU이고, 6507은 6502의 염가판으로, 메모리 접근의 경우, 6502는 64KB까지 가능하지만, 6507은 8KB까지만 가능하다.[5] 당시 아타리의 엔지니어였던 故 제이 마이너가 설계한 칩이다. 이후로도 아타리 400/800 컴퓨터나 아타리 5200를 그래픽 칩셋을 설계했고, 아타리를 떠난 이후 코모도어 아미가 시스템을 설계하기도 했다.[6] 컴포지트 커넥터와 외형이 같지만, AV 출력 규격은 동축 케이블(RF) 규격이다.[7] 킬로바이트가 아니다! 거기에다가 VRAM이 따로 없어서 TV 주사선 타이밍에 맞춰서 색상값을 일일이 바꿔야 한다. 그래도 나중에 게임 팩에 128바이트의 메모리를 추가로 장착이 가능하게 됐다.[8] IBM PC 호환기종에서 사용한 DE-9 직렬 포트와 똑같이 생겨서 혼동하기 쉽지만, 이 둘은 호환성이 전혀 없다. 그래서인지 아타리 게임 포트를 사용하는 기기에서는 예외없이 DE-25 직렬 포트를 사용하고 있다.[9] 일반 컨트롤러보다 두껍고 무겁다.[10] 다만 Atari's Greatest Hits는 아케이드 버전 '미사일 커맨드'가 무료로 풀려있다. 아타리 2600판 미사일 커맨드와 거의 차이가 없긴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