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타리 쇼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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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상세3. 배경
3.1. 아타리의 탄생과 성공3.2. 서드파티의 탄생3.3. 멸망의 전조3.4. 1983년~1985년, 2년간의 북미 게임 시장 붕괴3.5. 일본의 세계 게임시장 점령
4. 요약5. 제 2의 아타리 쇼크는 올 것인가?6. 다큐멘터리 팀의 E.T 팩 발굴7. 관련 문서8. 관련 내용

1. 개요[편집]

North American Video game crash of 1983
(1983년 북아메리카 비디오 게임 시장 붕괴 사건)

게임산업을 말그대로 사장시킨 최악의 사건

1983년부터 1985년까지 일어난 북미 비디오 게임 산업계의 대규모 경기침체 사건을 일컫는 말로, 1982년에 30억 달러까지 간 시장 규모가 1985년에 거의 3% 수준인 1억 달러 수준으로 떨어진 사건이다.

2. 상세[편집]

원인은 여러가지가 있으나 시장의 과포화(saturation)를 가장 큰 원인으로 꼽는다. 보통 아타리 쇼크를 거론할 때는 '저질게임의 범람으로 화가 난 소비자가 게임 시장을 외면해서 벌어진 일' 정도로 사용하지만 이야기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또한 미국에서는 'Atari Shock'라 부르지 않는다. 아타리 쇼크라는 단어는 일본에서 생겨난 것으로, 미국의 달러화 금태환 정지 정책으로 전 세계를 혼란에 빠뜨린 '닉슨 쇼크'에 빗댄 것이다.

이 사건 이후 85년에 뉴욕에서 런칭하여 87년, 전미에 선풍적으로 히트한 닌텐도NES 덕분에 북미 비디오 게임 시장은 다시 크게 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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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요약 영상

크래쉬: 비디오 게임이 죽은 해

[겜프] 게임업계 최악의 사건, "아타리 쇼크" 이야기!난 쓰레기 게임 제작을 취미로 하는 사람입니다.

와빌의 그재무지: 게임이 죽은 날...'아타리 쇼크'

3. 배경[편집]

1983년의 상황은 뭐랄까... 마치 건물이 무너지기 전에 비상구로 달려가는 것과 같았습니다. 아타리에서 덤핑 경쟁에 뛰어들면서 모든 것의 종말이 오기 시작했죠. 이때부터 게임산업 전체가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 짐 레비, 액티비전 회장

정말이지 게임 업계에 지독한 세월이었습니다. 너무나 끔찍했죠. 애플 II 게임을 내놓더라도 1만 5,000개를 팔기 힘들었습니다. 일렉트로닉 아츠를 시작한 때에는 카트리지 게임이나 플로피 디스크 게임을 만드는 회사가 130여 곳이나 되었지만, 그 가운데 오늘날에 살아남은 회사는 불과 6곳뿐입니다(1983년 아타리의 몰락 이후 상황).
- 트립 호킨스, EA 창업자

3.1. 아타리의 탄생과 성공[편집]

놀런 부슈널은 1972년 6월에 아타리라는 회사를 만들었고, 같은 해 11월에 을 내놓았다. 그는 퐁을 통해 비디오 게임 비즈니스라는 영역을 개척하여 게임의 아버지라는 말을 듣게 되었다.

1976년부터는 게임기 개발에 착수했다. 같은 해에 워너 커뮤니케이션즈에 2800만 달러 이상의 막대한 자금을 받고 회사를 매각했고, 1억 달러 이상의 자금을 투입한 끝에 77년 아타리 2600을 9개의 런칭 게임과 함께 발매했다.

놀런은 공격적인 경영을 위해 회사를 워너에 매각했으나 워너와의 불화로 1978년에 5년 동안 동종업계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약속을 하고 회사를 떠났다.[1] 그도 그럴 것이 당시에 아타리 2600은 그 기기 수명을 3년으로 보고 있었고, 메모리 가격이 저렴해지면 새로운 고성능 기기를 발매하길 바랐지만, 1억 달러 이상이나 쓴 제품이 겨우 팔리기 시작한 때에 그 제품을 버리자는 것도 황당한 소리이긴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놀런은 비디오 게임을 할 수 있는 피자 체인을 시작으로 이것저것 사업을 늘려나갔지만 아타리 같은 새로운 비디오 게임 회사를 만들지는 않았다.

아타리 2600의 성적은 그저 그랬다. 기계가 너무도 조악하고 불량이 많아 반품되기 일쑤였다. 1978년에 워너에서 놀런을 해고했고, 섬유 업계에서 활약하던 레이 카사르(Raymond Edward Kassar)를 아타리의 CEO 자리에 올려놓았다. 레이는 아무 것도 없던 개판 오분전의 아타리를 재정비하고 크게 성장시켜 놓기에 일조했다. 아타리의 판매량은 매년 두 배씩 증가하여 79년 크리스마스에는 1백만대가 팔렸고, 타이토의 대히트 아케이드 게임 스페이스 인베이더를 아타리용으로 이식하여 1980년 1월에 발매했다. 이때부터 아타리는 여전히 재고로 쌓여 있던 하드웨어의 매출이 두 배 이상으로 늘면서 80년도 한 해에만 2억 달러 이상 성장했다.

3.2. 서드파티의 탄생[편집]

아타리에 서드파티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았고, 그들이 모든 것을 독점했다. 그러나 개발자들에게는 금전적 보상은커녕 크레딧에 이름을 올리는 것조차도 허락하지 않았다.[2] 물론 아타리가 크게 성장하기 시작한 해는 1980년이지만, 개발자들은 여러모로 참을 수 없었는지 1979년 5월에 아타리의 프로그래머 몇명은 레이 카사르에게 자신들을 레코드 레이블처럼 판매량에 따른 로열티와 게임에 이름을 올릴 수 있기를 요구했다. 이들은 카사르가 자신들을 "수건 디자이너나 다를 바 없는 사람들"이라고 불렀다거나 '그런 일은 아무나 할 수 있다'라고 했다고 주장했다. 결국 이들은 회사를 떠나 79년 10월에 액티비전을 창업했다.

80년도 이전의 아타리에는 이렇다 할 히트작이 없었다. 판매량으로도 그렇고, 높은 평가를 받은 명작들을 나열해 봐도 80년대 이전 게임들은 순위권에 들어가지 않았다. 그러나 이 액티비전에서 만든 게임들은 판매량과 평가 면에서 모두 상위권에 들어가는 아타리 게임들을 진짜로 개발했다. 하드웨어의 한계를 뛰어넘은 것은 물론이고, 슈퍼 마리오의 선조격으로 불리는 피트폴이 바로 액티비전 작품이다.

하지만 문제는 바로 이 서드파티였다. 아타리에서는 서드파티에 대해 아무런 생각도 없었다. 자신들 밖의 다른 누군가가 아타리로 게임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기 때문이다. 서드파티 개발사들에서는 기기를 분해하고 역어셈블링 같은 리버스 엔지니어링으로 아타리 게임기를 연구하여 허락도 받지 않고 게임을 멋대로 개발했다. 아타리에서 할 수 있던 것은 오로지 소송뿐이었고, 1982년에 아타리가 패소하여 결국 로열티를 받는 조건으로 화해했다.

알려진 것과 달리 아타리에서는 다른 개발사에 플랫폼을 개방한 적이 없다. 저질 게임을 양산하는데 아타리에서 독려를 했다는 주장은 당연히 거짓이다. 퍼블리셔 'Mystique'에서 나온 일련의 포르노 게임들도 퍼블리싱과 서드파티에 대한 아타리의 통제력이 얼마나 없었는지 잘 보여주는 반증이다.

실제로 1970년대 후반에서 1980년도 내외에 나왔던 게임은 질이 좋았다. 그러나 1981년 말기부터 게임의 질이 저하되기 시작했다. 당시 아타리 내부에서는 다음과 같은 말이 나오기도 했다고 한다. "쓰레기를 넣은 카트리지도 백만 개는 팔릴 거야." 아타리 2600의 인기가 절정이었으니 썩 틀린 말도 아니었다.

3.3. 멸망의 전조[편집]

하지만 아타리라는 금맥을 향한 골드 러시는 이미 한창이었다. 그래도 액티비전에서는 제대로 된 게임을 만들어 냈지만, 그러지 않은 곳들의 모습을 잠깐 살펴보면...

  • 14개의 아타리 2600 게임을 낸 US GAMES는 식품회사 Quaker Oats[3]의 게임 개발 부서였다.

  • 11개의 아타리 2600 게임을 낸 Apollo는 커리어 컨설턴트용 영상음향 교재를 만들던 회사의 자회사였다.

  • Spieder Maze와 Vulture Attack을 퍼블리싱한 K-tel은 컴필레이션 음반 전문 회사다.


게임에 관심도 없는 회사들에서 게임 사업에 뛰어드는 것이 그렇게 대수는 아니라고 쳐도, 이때는 정도가 해도해도 정말로 너무했다.[4] 게임을 통해 한탕 쳐보려는 족속들이 너무 많았고, 이런 업체들에서 쏟아낸 게임 같지 않은 게임들이 시장에 대혼란을 야기했다. Kool-Aid Man이라는 음료수 캐릭터를 이용한 광고 게임도 그런 주류의 한 축이고, 남의 게임을 뻔뻔하게 베껴 파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한 게임이 4번쯤 복제되는 것은 놀랍지도 않았으며, 똑같은 게임들이 콜레코비전인텔리비전, 그 밖에도 벡트렉스(Vectrex)[5]과 페어차일드 채널 F(Fairchild Channel F)[6] 등등 갑자기 쏟아진 경쟁 기종별로 또 똑같이 등장했다.

TWAWFF: Adult Games (Atari 2600) - Part 2


사태는 악화일로로 나아가 마침내 아타리 2600용 저질 포르노 게임까지 등장하게 된다.[7] 그런데 이런 게임들의 컨셉들이 현재 일본 귀축물 에로 게임에 크게 떨어지지 않을 정도로 막장이여서 게임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나빠지기 시작한다.

Weird Video Games - Custer's Revenge (Atari 2600)


앞서 말한 포르노 게임에는 '커스터의 복수'라는 게임이 가장 유명하다. AVGN의 리뷰로 잘 알려진 게임인데, 그 유명한 조지 암스트롱 커스터 장군을 주인공으로 하여 화살의 방해를 뚫고 인디언 여자가 있는 자리까지 보내는 것이 주 내용. 물론, 둘이 만난 뒤엔 뭘 하는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시기도 시기이지만 그래픽이 조악해서 아이가 '이게 무엇이냐'고 물어볼 때 어른은 '커스터 장군이 춤을 춘다'고 변명할 수 있었다.[8] 실존했던 역사적 인물, 그것도 인디언 전쟁 내내 이어진 아메리카 원주민에 대한 전쟁 범죄에 관련된 인물을 가지고 포르노 게임에다 인종차별고인드립까지 친 탓에 당시 미국 사회에서 큰 물의를 일으켰으며 오늘날 미국 대학 내의 게임 관련 과목에서도 다루고 있다.

그래도 겉으로 보기에 북미 게임계는 계속 성장중이었고, 1982년에 절정에 이르렀다. 하지만 이런 막대한 성장이 모두의 눈을 가리게 만들었고, 아타리의 셀 수 없는 미스 사이에서도 중대한 미스를 불러오게 만들었다.

아타리에서는 급성장으로 수요예측을 감당하기 어려워 1981년 10월에 각 도매상에 1982년에 판매할 수량을 미리 주문하도록 만들었다. 그때는 아타리에서도, 증권가도, 소매상에서도 모두 성장을 의심하지 않았기에 다들 미칠 듯한 물량을 써냈고, 그렇게 결정된 것이 팩맨 1200만개라는 주문량이다.

1982년 3월에 팩맨이 발매되었고, 무려 700만 개가 판매됐다. 하지만 5백만개는 고스란히 남아 크나큰 부담이 되었고, 조악한 품질로 반품되어 돌아온 것들은 상황을 악화시켰다. 그럼에도 82년 6월까지는 누구도 성장을 의심하지 않았고, 증권가 역시 최대 300% 성장이라는 분석안을 내놓아 장작을 쌓는 데 보태었다.

결국 이러한 무모한 물량전술은 게임기 고르는데 1주일, 다시 게임 고르는데 1주일, 게임을 하는데 1시간, 후회하고 욕하는데 1년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소비자들에게 비디오 게임에 대한 불신을 심어주고 있었다.

북미 게임계는 1982년 최고전성기를 맞은듯이 보였지만, 비디오 게임 콘솔계는 경쟁자의 범람과 더불어 저가격 홈 컴퓨터와도 경쟁을 해야 했다. 이는 결국 시장 포화로 이어졌고, 뒤늦게 우후죽순 끼어든 서드파티들은 슬슬 탈락할 준비를 하고 말았다.

결국 1982년, 연말 시장 붕괴의 신호탄이 쏘아졌다. 12월 8일에 아타리에서는 4분기의 실적 예측을 낮춰 발표했고, 이것이 투자자에게 쇼크로 이어져 모회사인 워너 커뮤니케이션즈의 주가 폭락을 촉발했다. 마텔, 콜레코 같은 경쟁사에서는 물론이고, 코모도어 같은 홈 컴퓨터 메이커에, 토이자러스 같은 유통 쪽까지 관련된 주식들은 모조리 곤두박질쳤다.

E.T. Christmas TV Spot - The Shadow - Atari Video Game Commercial - (1982) - Atari 2600/E.T의 크리스마스 TV광고 E.T.가 나에게 똥을 줬어.


여기에 설상가상으로 크리스마스 연말상전을 대비해 만든 비장의 소프트 E.T.가 화려하게 망하면서 아타리에서 또 다시 크나큰 손해를 입었다. 이는 당시 워너 회장인 스티브 로스의 탐욕에 따른 무리한 시도이고, CEO인 레이 카사르 역시 반대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7월에 제작이 결정되어 크리스마스까지 맞추기에 남은 시간이 고작 5주밖에 없던 게임이 좋을리가 전혀 없고, 5백만 개를 생산한 게임은 거의 팔리지 않거나 반품되어 돌아왔다.

3.4. 1983년~1985년, 2년간의 북미 게임 시장 붕괴[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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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 ~ 2013년, 2012년 기준 물가상승률을 감안한 미국 게임산업의 통계(단위: 10억 달러)[9]


1983년에도 가정용 비디오 게임기는 여전히 팔렸다. 도표참고 하드웨어도 6백60만대나 팔렸고, 게임 카트리지는 오히려 1500만개가 더 팔렸다. 콜레코비전을 만든 콜레코에서는 자신들의 기기는 별로 팔리지 않았지만 인텔리비전과 아타리에도 소프트를 공급해서 83년 8월에 8백만개의 소프트를 출하했다고 발표했을 정도다.

그러나 이렇게 팔린데에는 다른 이유가 있다. 먼저 포화상태가 된 시장에 늦게 뛰어든 얼치기들이 도산을 시작했다. 그 다음에 도산한 회사의 게임 카트리지를 반품도 못하고 둘 공간도 더 이상 없게 된 소매상들이 게임 덤핑 판매를 시작했다. 그래서 대체로 30달러였던 가격은 보통 5달러, 심지어는 2달러까지 떨어졌다. 이어서 낮아진 가격에 익숙해진 소비자들이 제 가격을 주고 게임을 사지 않게 됐다. 마치 번들 CD 경쟁시대가 열린 것이다. 하지만 지난 해보다 1500만 개나 더 팔렸는데도 게임이 저렴하니까 수익이 오히려 더 감소한 것이다. 그리고 수익이 줄어든 개발사들은 정리해고 등으로 버티다 결국 줄도산으로 이어졌다.

당시 최대 게임기 회사였던 아타리의 모기업이었던 워너 커뮤니케이션은 1984년 아타리를 아타리 게임즈와 아타리 홈 컴퓨팅 & 게임 콘솔 사업부로 분할해 아타리 홈 컴퓨팅 & 게임 콘솔 사업부를 코모도어의 창업자 잭 트래미얼에게 2.9억 달러에 매각했으며, 아타리 게임즈는 1985년 남코에 매각됐다. 이후 아타리의 운명은 아타리 4번 항목을 참고하자.

당시 게임기 시장 2위였지만 본업이 게임이 아니었던, 인텔리비전을 개발한 마텔에서는 1983년 3.94억 달러의 손실을 입고 마텔 일렉트로닉스를 독립 시켜버렸고, 3위였던 필립스는 마그나복스 오딧세이2 후속 게임기의 북미 시장 출시를 포기하였다. 콜레코비전으로 4위였던 콜레코는 가정용 컴퓨터 콜레코 아담 사업 실패와 겹쳐지면서, 1985년 전자기기 사업 자체를 철수했으나 1988년에 파산했다. 아타리의 첫번째 서드파티 게임 소프트웨어 기업이었던 액티비전에서는 컴퓨터 게임으로 옮겨 목숨만은 겨우 부지했으나, 두번째 서드파티 게임 소프트웨어 기업이었던 Imagic은 신규주식모집을 단념하고 도산했으며 아타리에 참여하던 중소 게임 소프트 메이커가 거의 사라졌다. 83년 하반기부터 적자를 면치 못한 아타리에서도 84년에 컨슈머 부분을 분할하여 매각했다.

그렇게 2년 동안 게임을 만들 사람도, 게임을 팔아주는 사람도, 또 게임을 제 값에 사주는 사람도 모두 잃었고, 북미 가정용 게임 산업이 완전히 붕괴되었다. 아케이드 게임도 비슷하게 하락세를 겪었으나 컨슈머 게임과 달리 처참하게 몰락하지는 않았다.

3.5. 일본의 세계 게임시장 점령[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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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 2013년, 2012년 기준 물가상승률을 감안한 일본 게임산업의 통계(단위: 10억 달러)[10]

17 Best Old Nintendo Commercials


1985년에 닌텐도가 북미에 진출했다. 게임 시장 붕괴를 겪으며 게임이라면 넌더리가 나는 소매상의 눈치를 본 닌텐도에서는 '콘솔'이라는 단어 대신 'Entertainment System', '게임 팩'과 '컨트롤 덱' 같은 단어를 사용하였고, 장난감처럼 보이도록 로봇인 R.O.B.를 추가하는 등 어디까지나 엔터테인먼트 시스템이며, 게임은 부가적인 요소라는 점을 강조하는 마케팅을 했다. 닌텐도는 이 사태로부터 아타리에서 서드파티 관리에 실패한 점을 반면교사로 삼아 북미판 패미컴에는 하드웨어적으로 락아웃칩을 도입하는 것부터 서드파티 라이선스 관리와 카트리지 제조를 직접 관리함은 물론이고, 각종 법적 제도적 장치까지 보완한 다음 북미 시장에 뛰어들었다. 이에 따라 미국에서 Tengen과 EA[11] 같은 업체들로부터 제멋대로 하겠다는 도전을 받았지만 모조리 물리치는 데 성공했다.

닌텐도에서의 이런 일련의 작전이 성공하여 미국에서 '닌텐도를 하다'는 말 그대로 '게임을 하다'는 의미가 되었으며, 기존의 퍼스트파티들이 떠나간 탓에 이후 마이크로소프트엑스박스(게임기)가 나오기 전까지 미국의 가정용 게임기 시장은 한동안 닌텐도세가를 비롯한 일본 회사들에서 쥐고 있는 것과 같았다.

이후 미국의 게임 소프트웨어 회사들은 한 동안 콘솔보다 PC를 위주로 출시하기 시작했다. 당시에 질 좋은 게임을 낸 서드파티 제작사는 많이 남아 있었고, 또한 가정용 컴퓨터(Home Computer)의 개념으로 애플 2코모도어 64 등의 8비트 PC가 보급되고 있던 때였다. 이들 서드파티 제작사들은 PC 환경으로 게임을 내놓으면서 미국의 자국산 게임 시장은 한 동안 콘솔과 PC로 양분됐다. 이후 미국 게임 시장은 엑스박스가 나온 2000년대 초중반까지 PC를 기반으로 한 독자적인 성장을 하였고, 콘솔 못지 않은 수많은 명작을 탄생시켰다.

4. 요약[편집]

  • 아타리에서 77년에 VCS를 발매했지만 잘 팔리지 않았다.

  • 아타리는 스페이스 인베이더를 기점으로 1980년부터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 이윽고 수많은 회사에서 게임기와 소프트웨어를 발매하여 시장은 금방 포화상태가 되었다.

  • 아타리에서는 서드파티의 존재를 용납하지 않았으나, 통제할 수도 없었다.

  • 메이커, 소매상, 주식시장의 낙관 속에 경영 미스가 남발되었다.

  • 공급 과잉으로 게임 가격이 폭락하여 소비자들은 게임에 제값을 치르지 않게 되었고, 이로써 많은 제작사가 도산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워너의 인수 이후 아타리 게임들의 전체적인 품질 하락이 직접적인 원인이다. E.T.를 계기로 한 번에 무너지기는 하였으나 이것 외에도 여러 가지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한꺼번에 터진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미 당시의 콘솔 게임시장은 질 나쁜 상품만 넘쳐나는 레드 오션이었고 E.T.는 그 레드 오션의 자폭 스위치였다.

게다가 당시의 콘솔 게임시장은 이미 자정능력을 상실한 시장이었다. 회사들이 윤리경영과 게임의 본질을 망각한 채 상업성만 쫒은 결과, 게임의 질은 갈수록 떨어졌고, 정상적인 윤리의식으로는 나올 수 없었던 게임들(포르노 게임 등)이 남발하기도 해 학부모들의 원성을 사기도 했다. 이렇듯 시장 자체가 이미 비정상적이었던 걸 생각하면, 시장 자체가 리셋된 것이 잘 된 일이다.

아타리 쇼크는 경제학 뿐만 아니라 경영학, 응용윤리학에도 큰 의미가 있다. 경제학에는 시장에 풀린 상품, 그것도 대체재가 풍부한 것들의 전체적인 품질이 지나치게 떨어지면 시장 자체가 붕괴될 수 있다는 아주 좋은 사례가 되어주었고, 경영학과 응용윤리학에는 각각 '지속 가능한 경영'과 '윤리경영'의 경각심을 일깨워준 사건이기 때문이다. 게임업계 뿐만 아니라 무언가를 만드는 사람이라면 한 번 정도는 사건의 개요라도 읽어보는 편이 좋을 듯하다.

간단하게 관리회계적으로 해당 사건을 분석하자면 아타리 쇼크의 원인은 게임산업 구조 자체가 고정비가 너무 컸고 이에 따라 레버리지 효과가 발생한 것에 가깝다. 즉, 게임산업이란 것 자체가 게임을 개발하고 출시하기 전까지는 비용이 많이 들고(높은 고정비), 게임이 출시된 후 새로운 카피를 찍어내는데는 돈이 별로 들지 않는다(낮은 변동비)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12]

시장이 호황일때는 이미 투자한 고정비가 조기에 회수되고 패키지 카피를 찍어내는 족족 불티나게 팔려 높은 마진으로 유입되기 때문에 게임회사에게 큰 이득을 가져다주나 시장이 불황일때는 개발에 이미 투입된 고정비가 오히려 회사의 발목을 잡아버리는 케이스다. E.T.같은 경우에는 실제 개발기간이 짧았으므로 개발에 따른 고정비는 오히려 적었으나[13] 출시전에 재고를 너무 많이 준비하여 통상적으로는 변동비에 해당하는 부분인 패키지 비용마저 고정비로 돌려버린 까닭에 오히려 화를 자초한 케이스.

이 때문에 요즘 게임 회사들은 DLCESD 등을 통해 온라인 다운로드를 적극 권장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디지털 카피는 패키지와 달리 실물 재고를 발생시키지 않아 고정비 부담이 훨씬 적기 때문이다. 게다가 순수하게 어셈블리어로만 짜야 해 훈련을 중심으로 한 인적 비용이 상당했던 당시와는 달리, 요즘은 웬만한 고급 언어에 웬만한 개발 도구로도 충분히 게임을 개발할 수 있기에 부담이 더욱 줄어들었다.

이 사건은 미국 게임시장의 객관성을 크게 끌어올렸고, 게임이 발매되면 여러 게임 전문 잡지, 웹진들이 그 게임을 '평가'하는 리뷰 시스템이 매우 잘 되어 있다. 물론 게이머들과 전문 리뷰어들 간 성향이 달라서 마찰이 있는 경우도 많고, 풋볼 매니저 2008을 IGN에서 2점을 때린 사례 등 아예 엉뚱한 이유로 이상한 점수를 받는 일도 있지만 마니아들끼리 싸우는 것이 아무도 즐기지 않는 것보단 낫다는 것을 몰랐던 그 당시에는 이런 리뷰 자체가 거의 없어서 어떤 게임들이 재미있고 질 좋은 게임인지 알아내기가 매우 어려웠다.

5. 제 2의 아타리 쇼크는 올 것인가?[편집]

우리는 20년 뒤, 지금 이 시절을 이렇게 떠올릴지도 모릅니다. '겉만 다른 똑같은 게임들이 수도 없이 찍어져 나오고, 돈에 눈 먼 게임사는 유저들의 돈 뺏을 궁리만 하는 시절이 있었습니다.'
- 겜프

아타리 쇼크는 게임이 범람하는 현 시대에 다시 한 번 조명받고 있다. 소셜 게임, 카카오 게임, 가챠와 DLC 등으로 게임의 가치가 훼손되고 있으며, 머지않아 소비자들이 이런 저질 게임에 질려 게임을 외면하고 게임 시장이 망할지도 모르니 제작사들에서는 정신을 차리라는 경고를 하며 아타리 쇼크를 인용하고 있다.

2010년대부터 미국, 유럽, 아시아, 어느 나라 할것 없이 이 그것도 이 수익만을 우선시하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 요 근래 거의 대부분의 게임 회사는 멀쩡한 게임을 여러개로 조각내 DLC로 비싼 값을 받고 판매하는 행각을 보여 비판받고 있고, 게임을 발매하기도 이전에 유료 DLC를 발표하거나 게임 발매와 동시에 유료 DLC를 함께 발표하는 등의 만행을 보여주고 있다. 이것으로 악명높은 기업 중 하나가 캡콤. 이쪽은 진엔딩을 아예 DLC로 팔았다. EA는 수익에만 눈이 멀어 셀 수도 없이 수많은 프렌차이즈를 망쳐버렸고 프렌차이즈 종결자라는 소릴 듣고 있는데 이 EA가 저질렀던 그리고 지금도 저지르고 있는 수많은 병크와 만행을 이 항목에 다 적기에는 여백이 부족하다. 코나미는 수많은 게임 개발자들을 내쫓더니, 특히 코지마 히데오를 부사장에서 일반사원으로 강등시키더니 죄인마냥 내쫓아 내고 코나미와 관련된 모든 행사에도 참석을 못하게 하고 코나미에 있던 코지마의 기록이나 흔적들을 모두 지워버려 완전히 코나미에서 처음부터 없는 사람으로 만들어버리는 사실상 기록말살형을 당하고 말았다.[14] 게다가 현재 상술된 캡콤과 마찬가지로 제대로 된 신작 게임은 거의 내지 않고 있다.

국내 게임 회사도 매우 심각한 수준이다. 번들 CD 경쟁시대로 비틀거리던 패키지 업계가 와레즈의 직격타를 얻어맞으며 완벽한 침체기에 빠졌고, 마그나카르타 눈사태의 망령으로 국내 패키지 게임 시장 자체가 완전히 몰락한 것이 그 시초였다. 이후 온라인 게임, 모바일 게임이 비중이 커지며 어느 정도 신뢰도를 되찾나 싶었더니 사행성 짙은 랜덤박스를 내놓기 시작하며 도로 망조가 들기 시작했다.

초기에는 랜덤박스를 돈 주고 사서 까도 아무런 아이템도 나오지 않거나 쓰레기와 다를바 없는 아이템을 내는 등의 말도 안되는 짓을 하다가 철퇴[15]를 두들겨 맞았고, 요 근래에는 있으면 좋지만 굳이 돈 주고 살 메리트는 없는 아이템들을 랜덤박스에 끼워서 팔아먹고 있다. 더군다나 모바일 시장은 더욱 심각한데, 중국산 양산형 RPG로 대표되는 비슷한 컨셉의 비슷한 게임을 대충 만드는 게임이 매우 늘어났다. 2015년 이후의 추세는 작중배경이라면 삼국지 아니면 판타지요, 장르라 하면 RPG 아니면 AOS라는 농담도 나올 정도니 말다했다. 몇몇 사람들은 게임을 할 때 For kakao만 봐도 진저리가 난다고.

그 짓거리를 하다 또 확률형 아이템 규제 법안이라는 철퇴를 두들겨 맞아 이번에는 랜덤박스의 아이템별 확률이 공개됐는데, 그 확률이 심히 막장스러워 유저들의 비난을 사고 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욕을 바가지로 얻어먹어도 게임사들이 지나친 사행성을 개선하려는 생각이 별로 없어 제 2의 아타리 쇼크가 현실이 될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은 점점 높아지고 있다. 한 예시가 역사는 반복된다 문서에 기재될지도 모른다.

2016년 7월 6일에 서든어택 2가 출시되면서 한국 게임 업계에 대한 다양한 기사가 물밀듯이 쏟아져나오기 시작했다. 넥슨 쇼크 어찌 꼭 시기도 5월 13일에 출시된 둠(2016), 5월 24일에 출시된 오버워치 이후라서 무엇보다도 같은 장르인 FPS 게임이라는 점에서 논란이 점화됐다.[16] 그리고 2016년 9월 29일, 서든어택 2는 결국 멸망했다.

현재 대한민국에서도 양판소, MMORPG 그리고 카카오게임 등으로 자칫 아타리 쇼크가 재현될까 하는 우려가 있다. 실제로 서든어택 2가 끝내 자폭 스위치를 건드린 탓에 우려가 증폭되고 있다. 실제로 현재 게임 시장은 랜덤박스를 중심으로 한 사행성 논란이 끊이지 않으면서 이 거품이 소멸하거나 정부에서 건드리는 즉시 붕괴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이에 국내에서 아타리 쇼크가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주장이 꾸준히 나오고 있지만, 국산 게임의 문제점들을 아는 사람들은 이미 다 알고 문제시하는지가 오래다. 리그 오브 레전드, 오버워치 등, 해외산 대체재들이 널려 있기 때문에 문제가 생기더라도 국산 게임들만 망하고 유저들은 해외 게임으로 갈아타게 될 가능성이 높으며, 이미 일정부분 현실화 되어가고 있다. 즉 "한국게임에서만 유저이탈 현상이 이루어지고 있는가?"하면 이것은 이미 현실화된 것이다.#

다만 이런 것은 대체제가 많지 않아 게임 시장 전체가 급격히 침체되는 아타리 쇼크와는 완전히 다른 경우이다.[17]

다시 해외로 넘어가자면, 해외 비디오 게이머들은 DLC나 가챠가 범람하는 상황에서 언제 제 2의 아타리 쇼크가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게 생각하고 있으며, 그래서 Video Game Crash라 검색하면 연관 키워드로 "Video Game Crash 2017" "Video Game Crash Coming" 등의 키워드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6. 다큐멘터리 팀의 E.T 팩 발굴[편집]

아타리에서 사막에 묻은 게임팩들은 주변에 사람들이 가져가려 하고 굳어버린 시멘트를 뚫어 파내기도 하였다. 이 E.T.가 묻어진 곳을 찾으러 가는 영상도 있다.[18]

Wintergreen "When I Wake Up" Dir: Keith Schofield (업로드된 날짜: 2006. 3. 9.)

사막에 감추어진 보화
아이러니하게도 이 생매장에서 살아난 E.T. 게임은 상당히 고가에 거래된다고.[19] 그러나 아무도 실제로 묻혀 있는 것을 보거나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에 게이머들 사이에서는 도시전설화되어 가고 있었는데...

파일:external/pbs.twimg.com/BmK77NNIcAAQ33b.jpg

Excavating the Atari E.T. Video Game Burial Site-Game|Life-WIRED


2014년 4월에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지원하는 다큐멘터리 팀에서 뉴멕시코에서 30년 동안 묻혀있던 E.T.와 팩맨 카트리지를 발굴해 냈다. 영상의 압권은 1분 20초 즈음에 나오는 E.T. 제작자. '여기 카트리지가 있을 리 없다'라고 하다가 정말 나오자 경악하는 장면이 인상적.# 링크 기사에 좀 더 많은 발견 당시의 사진이 있다. 한국 넷플릭스에 "아타리: 게임오버"라는 제목으로 검색하면 위의 다큐멘터리를 시청 가능하다.[20]

사실 E.T. 제작자가 여기에 있을 리가 없다고 한 이유는 따로 있다. 그곳은 제작자가 아는 곳이 아니며, 텍사스 주에 있던 아타리의 제조공장을 이전하면서 남은 잉여물품들을 버린 곳이다. 한마디로 팩맨과 E.T.가 잉여물품에 섞여 있던 것. (관련영상) 뉴멕시코에서 파낸 카트리지들에서 E.T.는 10% 정도를 차지하고, 아타리 게임팩들이 이것저것 잔뜩 나왔다고 한다. 단순히 악성 재고를 한꺼번에 폐기한 것으로 보인다.

2016년 11월 6일자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서 이 부분을 다루었다.[21]

7. 관련 문서[편집]

8. 관련 내용[편집]


[1] 떠날 때도 다른 경쟁 업체엔 가지 않는다는 계약까지 했던 모양이다.[2] 당시에 아타리의 <Adventure>(1979)를 만든 워렌 로비넷은 비밀의 방으로 들어가면 자기 이름이 나오는 이스터 에그를 만들었다고 한다. 미로 속 어딘가에 열쇠가 숨어있는데, 작은 회색 점 모양의 열쇠를 찾으면 자신의 이름을 몰래 숨겨둔 비밀의 방으로 들어갈 수 있다. 이것이 비디오 게임에서의 첫 번째 이스터 에그로 알려져 있다. 이 에피소드는 어니스트 클라인의 소설 <Ready player one>(2011)에도 소개되어 있다.[3] 간혹 한국 수입식품점이나 미군PX 유출품으로도 볼 수 있는, 퀘이커교도의 얼굴이 새겨진 그 오트밀 만드는 회사. 한때 게토레이도 여기서 생산하였다.[4] 사실 게임업계의 여명기에는 저런 일이 드물지 않아서 업력이 오래된 업체의 출발을 찾아보면 저런 식인 경우가 꽤 많다. 닌텐도화투패를 비롯한 카드 제조사였다가 업종을 전환했다는 것은 유명한 이야기이며 스퀘어의 모회사는 전기회사, 아이렘의 모회사는 모니터 제조사(Eizo)였고 타이토는 원래 무역 회사였다고. 일본의 전자기기 전문매체인 전파신문사나 전자계산기로 유명한 카시오도 한때 게임 제작을 한 적이 있다. 그러나 아타리쇼크 무렵의 업계는 최소한의 개발력이나 사업성 검토도 없이 뛰어든 곳이 많았다는 것이 문제. 결국은 말도 안되는 일은 아니었지만 정도가 지나쳤다 정도로 요약할 수 있겠다.[5] 벡터 그래픽을 기반으로 둔 콘솔.[6] 아타리 2600보다 1년 앞선 1976년에 출시되었다.[7] 포르노 게임 자체가 만들어지고 출시된다는 것 자체가 문제였지만.[8] 개드립이 아니라 실제로 게임 패키지 뒷면의 주의문에 그렇게 하라고 적혀 있었다. [9] 1982년 이후 급격히 그래프가 내려간 모습. (빨간색 선) 참고자료. [10] 아타리 쇼크가 터진 1982년 이후 급격히 그래프가 올라간 모습. 이후 게임시장은 한동안 일본이 점령한다. 참고 자료. [11] 세가를 협박하는 데에는 성공했다.[12] 유사한 산업구조로서 광산, 유전개발이나 영화나 만화, 음악 등의 컨텐츠 시장이 그렇다.[13] 라이센스 비용을 포함하면 이것도 상당히 커진다.[14] 이로 인해 사일런트 힐즈 프로젝트는 공중 분해 되었고, 메탈기어 솔리드 V 더 팬텀 페인과 함께 출시될 예정이었던 메탈기어 솔리드 V 그라운드 제로즈는 게임 분량이 프롤로그 수준의 분량밖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돈독이 오른 코나미의 횡포로 인해 정가 게임과 맞먹는 가격으로 발매되어 애꿎은 코지마만 욕을 먹었고 팬텀 페인마저도 사실상 메탈기어 시리즈의 마지막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미완성작으로 나와 수많은 게임팬들의 분노와 울분을 자아내게 했다.[15] 랜덤박스에서 나오는 결과물이 랜덤박스를 구매하는 값보다 가치가 떨어지는 물품이어서는 안 된다는 규정이 생겨났다.[16] 다만 오버워치, 둠(2016), 그리고 서든어택 2는 세부장르부터가 서로 다르다. 그래도 2007년에 발매된 AVA보다 못한 그래픽과 끔찍한 게임성등의 문제가 컸다. 자세한건 서든어택2/문제점문서 참조.[17] 즉, 아타리 쇼크는 게임 시장 전체가 무너진 사건인데, 한국은 해외 게임들이 차지하는 비중이 절반을 가볍게 넘긴다. 당장 1, 2위에 있는 오버워치와 리그 오브 레전드는 전부 해외 게임이며, 이 둘의 합만 따져도 60%를 넘는다. 물론 이미 피시방이 시작된 시점부터 스타크래프트 1 같은 외산게임 점유율 자체가 지금의 오버워치나 리그 오브 레전드보다 높았고, 온라인 게임의 컨텐츠 확장의 특성상 기존 던전 앤 파이터메이플스토리 같이 남아 있는 게임들도 있으니 무조건 외산 게임으로 간다고 단언할 수도 없다.[18] 영상에 간단한 사전 정보도 나온다.[19] E.T. 카트리지를 워낙 많이 만들었기 때문에 중고로 구하는 건 의외로 쉽다.[20] E.T. 제작자 인터뷰가 대부분의 분량을 차지하고 상당히 지루한 편이니 적당히 스킵하면서 보길.[21] 단, 방송에서 약간 틀리게 다룬 부분이 있는데, 해당 방송분에서는 이 게임을 놀런 부슈널이 직접 진두지휘해서 무리하게 개발했다고 설명하는데 실제로 해당 인물 정보를 들여다보면, 놀런 부슈널은 E.T 개발 이전에 아타리 2600 게임기의 초기 판매 부진 및 아타리 경영진들과의 마찰로 아타리를 떠난 상태였고 E.T의 개발은 그 후임 CEO이자 돈만 밝히고 게임산업에 무지했던 레이 카사르의 손에서 탄생한 것이다.[22] E.T. 프로젝트에 반대했으며, 경영자로서 회사의 성장과 책임감을 다했다고 볼 수 있는 내용이다. 판단은 각자 알아서 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