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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시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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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상식을 알리는 포스터

LIFE, CAMERA, ACTION.


공식 홈페이지
공식 유튜브 페이지[1]

1. 개요2. 후보 선정
2.1. 후보작 선정 기준2.2. 후보 선정 과정
3. 트로피4. 역사5. 수상 목록6. 특징7. 여담8. 시상식 기록 및 에피소드9. 아카데미 시상식 수상 예측10. 수상 논란11. 아카데미의 콩라인(?)
11.1. 감독상11.2. 연기상11.3. 기타
12. 한 번의 수상으로는 부족한 사람들13. 그 외 기록
13.1. 흑인 영화인13.2. 히스패닉/라티노 영화인13.3. 아시아계 영화인13.4. 여성 감독13.5. 외국어 영화상
14.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영화 시상식
영화계 최고의 영예

미국의 가장 권위 있는 영화 시상식.[2] 흔히 "오스카상"으로 불린다.

미국 영화 예술 과학 아카데미(AMPAS)의 회원들이 그 해의 영화들 중에서 투표, 선정하여 시상하는 상이다. 기본적으로 할리우드 영화가 대상이긴 하지만, 할리우드 영화가 세계적으로 영향력이 가장 크기 때문에 전 세계의 주목을 받는 시상식이다. 미국 내에서도, 영화 관련 시상식 중 가장 유명하고 중요하며 권위 있는 시상식이다. 그리고 영화인들이 가장 받고 싶어하는 상이다. 또한 전 세계 시상식 중 가장 빨리 진행하는 시상식이다. 영화 제작에 직접 참여하는 사람들만 AMPAS 회원이 될 수 있어서, '영화인에 의한, 영화인을 위한 상'이라고 할 정도. 그 외 평론가, 언론인, 극장업자, 영화 팬은 AMPAS 회원의 자격이 없다.

수상 부문은 "작품상, 감독상, 남우주연상, 여우주연상, 남우조연상, 여우조연상, 각본상, 각색상, 촬영상, 편집상, 시각효과상, 미술상, 의상상, 분장상, 음악상, 주제가상, 음향효과상, 음향편집상, 장편 애니메이션상, 단편 애니메이션상, 장편 다큐멘터리상, 단편 다큐멘터리상, 단편 작품상, 외국어 영화상, 공로상"으로 총 25개다.

아카데미 시상식의 "BIG 5"는 '작품상, 감독상, 남우주연상, 여우주연상, 각본상'이다. 그리고 "그랜드 슬램"은 각본을 뺀, 나머지 네 상을 수상한 작품을 말한다. 참고로, BIG 5를 모두 수상한 영화는 오직 3편뿐이다. "어느날 밤에 생긴 일(1935)",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1976)", "양들의 침묵(1992)"이 그 세 작품이다.

매년 12월에 1차 투표로 후보작을 선정하고, 그다음 해 1월 즈음에 부문별 후보들이 발표된다. 2월 중순에 그 최종 후보로 2차 투표를 한 뒤, 2월이나 3월일요일 오후 5시 30분(현지 시각) 때, 할리우드가 위치한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시상식이 개최되는 것이 관례. "돌비 극장(코닥 극장)"을 주로 사용한다.

주관 방송사는 ABC.[3] 시상식이 치러지는 해의 사정에 따라, 개최 월과 요일은 달라질 수 있다.[4]

2. 후보 선정[편집]

2.1. 후보작 선정 기준[편집]

후보작을 정하는 제일 중요한 기준은 그 해의 12월 31일까지 시상식 개최지인 로스앤젤레스의 1개 극장 이상에서 상영된 영화를 기준으로 한다. [5] 또한 7일 연속으로 상영되어야 한다. 단, 외국어영화상, 장편 다큐멘터리상, 단편 다큐멘터리상의 경우에는 다른 방식으로 후보작을 선정한다. 그러기에 각종 배급사들은 작품으로써 무게 감 있고 작품성이 높을 것으로 평가되는 영화들을 12월 즈음에 개봉 시키는 경향이 생겼다. 첫 번째 이유로는 12월에 후보작 선정을 하기 때문에 "아카데미 시상식에 후보로 오른 영화"라는 식의 홍보를 할 수 있고, 두 번째로는 가장 최신 시기에 상영되어야 영화 예술 과학 아카데미에 속한 영화인들의 표심을 가장 쉽게 사로잡을 수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었다고 한다. 아예 이 시기를 노리고 일부러 영화를 배치하는 경향도 생겼다. 각종 음악 부분 수상이 유력했던 《시카고》와 《드림걸즈》의 경우 미국에서 크리스마스인 12월 25일 단 1개 극장에서 상영된 후, 연말이 지나고 새해가 되자 입소문을 함께 타며 상영관 수를 계속 늘려가는 그런 경우도 있다.

꼭 그렇다고 겨울에 개봉한 영화만 주는 게 아니다. 《포레스트 검프》나 《글래디에이터》 등 여름에 개봉한 영화도 상을 휩쓸었고 11월에 나온 영화도 마찬가지. 결론적으로 개봉시기와 수상 여부는 그리 큰 관련은 없다.

모든 연기상은 출연한 영화가 시상식 개최지인 로스앤젤레스의 한 곳 이상의 극장에서 상영하면 국적과 상관없이 후보에 오르는 것이 가능하며, 일반인들도 수상이 가능하다.[6]

2.2. 후보 선정 과정[편집]

후보 선정 과정은 다음과 같다.

  1. 아카데미상 시상식 집행위원회가 기준을 통과한 영화 리스트를, 6000명 이상의 AMPAS 회원에게 '소속 부문별'로 배포한다. 그런데 '작품상' 최종 후보 선정만큼은, 소속 부문과 상관없이 모든 회원이 투표를 하게 된다.

  2. 각 소속 부문별 회원은, 최종 후보에 올릴 영화[7]를 각각 5편을 지명한다.[8] '기명' 투표로 하게 되며, 투표를 한 회원은 그것을 집행위에 보낸다.[9]

  3. 집행위는 이를 공식 집계사인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에 넘긴다. 이곳에서 가중평균 시스템을 통해 집계한다. 오프라인과 온라인을 합쳐서 집계.

  4. 결과를 가지고 집행위는 알파벳 순서를 기준으로, 부문별 최종 후보를 발표한다.[10] 보통 1월 말쯤 "사무엘 골드윈 극장"에서 이를 발표한다.[11]

  5. 회원들은[12] 최종 후보 리스트를 받은 후, 2주일 이내에 투표(온라인 + 오프라인)해서[13][14] '무기명'으로 집행위에 보낸다.

  6. 공식 집계사인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가 이를 집계한다.

  7.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는 최종 선정을 아카데미 시상식 당일까지 비밀리에 보관한다.


2011년부터 작품상 후보를 5편에서 최대 10편까지 늘리면서, '작품상만' 투표 방식을 선호투표제로 바꿨다.[15] 바뀐 투표 방식은 다음과 같다.

  1. 작품상 최종 후보에 오른 영화 전체를 대상으로, AMPAS의 모든 현역 활동 회원은 각자 '1∼10위'까지 순위를 매겨서 투표한다.

  2. 모든 '1위 표'를 집계한다. 만약 과반 득표작이 있다면, 그 작품을 바로 수상작으로 결정한다.

  3. 과반 득표작이 없다면, '최하위' 영화 1편을 수상 후보에서 제외한다. 그리고 제외된 영화를 1위로 꼽았던 회원들의 '2위 표(2위 선정작)'를 '1위 표'로 간주하고 다시 집계한다.[16]

  4. 과반 득표작이 나올 때까지, 3번 과정을 반복한다.


과정을 보면 알겠지만, 최하위 영화를 1위로 꼽은 회원의 '2위 표(2위 선정작)'가 작품상 선정의 중요한 변수로 작용한다. 이런 선정 과정 때문에, 작품상에서 이변이 발생할 가능성은 어느 정도 있는 편. 회원 다수가 선호하는 스타일의 영화일수록 작품상 수상에 유리해지고, 호불호가 갈리는 영화일수록 불리해진다.

3. 트로피[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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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사진은 공로상 수상자를 포함한 모든 수상자들이 받는 트로피, 오스카.

현재 전세계에서 치러지는 각종 시상식(특히 연예 관련 시상식) 중 가장 유명한 트로피 라고도 할 수 있는데, 위는 브리타니움(합금)을 입혔고 아래는 검은 금속이다. 키는 34cm고 무게는 3.85kg. 표면이라도 금이 조금 섞였기 때문에 실제로 팔 수도 있다고 한다. 오스카와 아카데미의 명예 및 예술적 가치 때문에 실제가격이 공식적으로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4-50만원인 것으로 알려지고있다. 왜 "오스카"라고 불리는지는 명확하지 않으나 가장 널리 알려진 설은 시상식 관리자들 중 한 명이 트로피를 보고 "내 삼촌 오스카와 많이 닮았네요."라고 말한 것에서 비롯했다는 것이다. 참고로 오스카상 수상자 중 이름이 상이름과 동명인 수상자는 현재까지 1941년과 45년에 오스카상을 받은 뮤지컬 작곡가 '오스카 해버스타인 2세'가 유일하다.

2000년에 트로피가 몽땅 도둑맞은 일도 있다. 밑에 시상식 에피소드 참고.

트로피 제작 과정

4. 역사[편집]

1929년, 할리우드 영화 관계자 270여 명이 로스앤젤레스의 루스벨트 호텔에 모여 개최한것이 첫 시상식으로 이 때의 수상분야는 12개 분야로 작품상, 감독상, 남.여 주연상, 촬영상, 미술상, 각색상 등이었다. 사실 1회 시상식의 분위기는 당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던 《일곱 번째 천국》의 재닛 게이너의 회고로는 앞으로도 잘해보자는 정도의 저녁식사 모임이었다고 한다.

이듬해의 제2회 시상식부터 캘리포니아 지역 라디오 방송으로 중계가 시작되었다. 그랬던 것이 17회 시상식 때부터 미국 전역에 방송되었고 엔터테인먼트적인 요소가 강화되기 시작했다. 그 이유는 제2차 세계 대전에 파병된 미군들을 즐겁게 하기 위해서였다고. 25회 시상식부터 미국 NBC 방송을 통해 TV 생중계되었는데, 이 때의 시청률은 NBC 역사상 최고의 시청률이었다고 한다. 공식적으로는 《타이타닉》이 역대 최다 관왕을 휩쓴 1998년 제70회 시상식 시청자 수가 가장 높으며 약 5,500만 명이 지켜봤다. 그 이후 슈퍼볼을 제외한 그 어떤 프로그램도 이 때의 시청자 수를 넘어선 적이 없다.

이듬 해인 1999년부터 시상식의 개최 요일이 월요일에서 일요일로 변경되었다. 그 이유인즉 평일인 월요일에 치러지는 데다 LA 시각으로 오후 5시에 치러지다 보니 퇴근 시간 등이 겹치고 방송국도 저녁 황금 시간대 광고수입보다 저조하였다. 이러한 여러가지 이유로 광고주 등이 아카데미 주최 측으로 항의가 계속되자 결국 일요일로 변경되었다고 한다. 현재는 미 동부 시각 일요일 오후 8시 30분, 서부시각 5시 30분에 방영을 시작한다.

현재는 거의 미국 ABC에서 단독 중계하고 있다. 하지만 절대적인 시청자 수는 갈수록 떨어져,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가 작품상을 수상했던 지난 2007년 사상 최저 시청자 수를 갈아 치운데 이어 2011년 시상식의 경우 음악 시상식인 그래미상의 시청자 수에 처음으로 밀렸다 (그래미상 시상식 개최 전날 사망한 휘트니 휴스턴의 효과가 컸지만). 그래도 여전히 미국에서는 이 시상식 중계가 슈퍼볼을 비롯한 미식축구 프로그램들을 제외하면 모든 드라마, 쇼 오락 프로그램과 일회성 생방송 프로그램을 통틀어 가장 높은 시청자 수를 기록하는 프로그램인 것은 맞다.

2013년도 아카데미 시상식 시청자 수는 총 4천 70만 명으로 집계 되었다.[17]

시상식 장소는 호텔에서 만찬형식으로 치러지다가 관객들이 몰리기도 하고, 시상식 흥행차원에서 16회 시상식부터 극장으로 옮겨 진행하기 시작했다. 1969년부터는 LA 카운티 뮤직 센터 도러시 챈들러 파빌론에서 치뤄졌다. 이후 1988년부터는 슈라인 오디토리움과 번갈아가며 진행되다가 2002년에 할리우드에 돌비 극장이 아카데미 전용 시상식장으로 사용되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5. 수상 목록[편집]

역대 가장 많은 부문을 수상한 영화는 세 편이며, 모두 최우수 작품상 포함 총 11개 부문을 석권하였다.


그리고 주요 5개 부문인 최우수 작품상, 감독상, 남, 여우 주연상각본 혹은 각색상. 이 다섯 개 부문을 모두 휩쓴 영화(즉 그랜드슬램 달성) 역시 현재까지 세 편.


세 작품 모두 각색상을 받았으며 아직까지 각본상을 포함한 그랜드슬램은 없다.

기타 수상작은 아카데미 시상식/수상 기록 참조.

인물 중 가장 많이 아카데미상을 수상한 인물은 월트 디즈니. 후보에만 59회 이름을 올렸으며 이 중 22번 상을 받았다. 비경쟁부문의 상도 4번 받아서 총 수상 횟수는 26번이다.

6. 특징[편집]

한국 각종 연예 시상식과의 대표적인 차이점이 있다면 신인상이 없다는 점이다.[19][20]

시상자가 "And The Oscar goes to..."라는 멘트로 운을 뗀뒤 수상자를 발표하는 것이 사실상의 클리셰가 되었다.[21] 그 후 수상자가 무대에 올라 오스카 트로피를 받고 수상소감을 발표할 때 감격에 찬 나머지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 방송 연장의 주범이 되자 주최측에서는 아예 남우주연상 2연패 관록의 수상자인 톰 행크스를 시상식 안내 영상에 출연시켜 "웬만하면 1분 안에 얘기하고 내려와 달라"라고 부탁할 정도다.

대체로 (LA 현지시간 기준) 오후 5시 30분에 시작하면 9시 넘어서 끝난다. 생방송으로 방송해도 돌발적인 변수가 없는 한 3시간 후반대면 끝난다. 최우수 작품상 발표하고 끝내면 뉴욕에서는 자정이 넘는다. 아무래도 방송 편성상 정해진 시간이 있어 방송사나 주최 측에서는 돌발적인 변수를 막으려고 최대한 노력을 하고 있다. 수상소감 빨리 하고 내려가라는 것도 바로 이 때문. 공로상을 제외한 전 부문을 시상해야 되는데다 각종 축하무대에 퍼포먼스, 중간광고까지 끼어 있기에 좀 오래 걸리는 편이기도 하다.

최우수작품상의 후보를 2010년 시상식 부터 5편에서 9편으로 늘렸으며 2016년 현재는 8편. 2011년부터는 시상식과는 다소 동떨어져 있다던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작품이 거의 유일하게[22] 받을 수 있는 시각효과상 부문 역시 3편에서 5편으로 늘렸다.

종전까지 본상 시상식에서 진행되던 공로상 시상은 2007년(80회)를 기점으로 Governors Awards에서 진행된다. 수상자가 등장할 때 내로라하는 배우들과 감독들이 예를 갖추고 박수와 함께 기립하는 장면은 아카데미 시상식의 또 하나의 볼거리였지만, 시간 문제로 인해 아예 따로 시상식을 만들어서 넉넉하게 진행하고자 하는 의도로 인해 과거가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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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칸부터 차례대로 샤를리즈 테론, 케리 워싱턴, 리스 위더스푼, 제니퍼 로렌스, 나오미 와츠, 조 샐다나

이 상에 대한 패러디로 시상식 하루 전날에 치러지는 골든 라즈베리상이 존재한다. 항목 참조.

7. 여담[편집]

미국 내에서도 영화계는 물론 쇼 비즈니스를 대표하는 시상식. 슈퍼볼, 그래미상, 골든글로브상과 함께 미국 전역에서 시차에 관계없이 동시에 생방송되는 대표적인 프로그램이다.

여기서 수상한 작품들이 1990년대 까지만 해도 세계 흥행에 영향을 받는 경우가 많았으나 요즈음은 그런 효과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근래부턴 상업적 가치보단 예술성과 당시의 정치성을 염두하여 수상하는경우가 많아져 북미에서도 저예산 예술영화나 비상업적인 영화들이 두각을 보이고있다. 그러하여 최근엔 작품상 수상 이후 해당 영화의 관객 수가 증가하지 않는 등 해외에서는 큰 영향이 없다고 한다. 할리우드 영화자체의 영향력과는 별개로 아카데미 수상이 상업적으로 직결되지는 않지만 전세계 수많은 영화인들의 꿈의 무대인 건 변함없다.

어디까지나 미국의 영화시상식인 만큼 한국 영화와는 별다른 접점이 없다. 21세기 들어 한국 영화시장이 성장하고 우수한 작품들이 여럿 제작되면서 외국어영화상 부문에 관례처럼 매년 작품을 출품하고 있지만 번번이 고배를 마시고 있다. 무엇보다 한국 영화인, 아니 한국인은 아직 수상은 커녕, 본상 후보에조차 오른 일이 없었다. 이웃 나라 일본 영화는 이미 1950년대부터 최근에 이르기까지 아카데미 외국어 영화상 등 여러 부분에서 수상을 해 온 바 있으며, 1958년에는 우메키 미요시가 영화 '사요나라'로 여우조연상도 수상한 적 있음을 비교해 보면 많이 아쉬운 부분. [23] 일본의 경우 후보가 아닌 수상횟수만 27회(특별상포함).다만 2005년 시상식 때 한국계 호주인인 박세종 감독의 작품 《버스데이 보이》가 단편 애니메이션상 후보에 오른 적은 있다. 이후 2013년 이민규 감독의 '아담과 개' 역시 단편 애니메이션상 후보에 올랐었다.

2016년에는 이병헌이 한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시상식에 시상자로서 초청되었다.[24] 콜롬비아 출신 여배우인 소피아 베르가라와 함께 외국어영화상 부문 시상에 나섰다. 이로써 이병헌은 한국 영화인으로 처음 아카데미 레드카펫을 밟는 기록을 세우게 되었다.[25] 또한 성악가 조수미가 부른 영화 《유스》(YOUTH)의 주제가 "Simple Song #3"이 주제가상에 후보에 올라 축하공연을 기대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시상식 시간관계상 노래를 편곡해서 짧게 불러달라고 요청했던 아카데미 측과 원곡을 훼손할 수 없다는 데이비드 랭과 조수미의 의견 차이로 인해 축하공연은 아쉽게도 불발되었다. 다만 후보에 지명된 사람은 조수미가 아닌, 노래를 만든 작곡가 데이비드 랭이 올랐는데 원칙적으로 주제가상은 가수가 아닌 작곡자에게 돌아가기 때문.

2015년 들어서 임권택, 봉준호가 감독으로서, 최민식, 송강호가 배우로서, 애니메이션 아티스트 김상진아카데미 역사상 처음으로 아카데미 회원으로 위촉되었다. 한국인 최초로 아카데미에서 후보작에 대해 투표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졌다.

90년대 후반에 우리나라 문화관광부가 아카데미 영화제를 세계 4대 영화제로 칸 영화제, 베니스 영화제, 베를린 영화제와 더불어 지정한다고 했다가 욕만 퍼먹고 없던 일이 되었다. 딴지일보에서는 달랑 외국어영화상 1개 부문 준다고 국제영화제로 봐야 하냐?라고 호되게 깠다.

8. 시상식 기록 및 에피소드[편집]

  • 1936년 제9회 시상식: 처음으로 연기 부문에서 주연상과 조연상을 나누어 시상하기 시작하였다. 이전까지는 주,조연에 관계없이 남,녀 배우 한명씩에게만 연기상 트로피가 돌아갔었고, 이 해부터 비로소 남,녀 주,조연 총 4명에게 영광이 주어지게 되었다. 이 해 첫 남우조연상 수상의 영광을 안은 월터 브레넌은 이후 총 두 번의 트로피를 더 받아 현재까지 조연상 3관왕의 업적을 달성한 유일한 배우로 기록되고 있다. 또한 캐서린 햅번과 더불어 연속으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던 여배우 루이제 라이너가 9회,10회에서 수상하였다. 이 분은 100세가 훨씬넘게 장수하여 2014년 12월 30일에 사망하였다.

  • 1939년 제12회 시상식: 영화사상 손꼽히는 명작들이 한 해에 쏟아져 나오면서, 이 해의 시상식은 현재까지도 아카데미 역사상 가장 치열했던 죽음의 조 한 해로 기록되고 있다. 《오즈의 마법사》, 《굿바이 미스터 칩스》, 《스미스씨 워싱턴에 가다》, 《러브 어페어》, 《역마차》 등 헐리우드 초창기의 주옥같은 작품들이 일제히 최우수작품상을 비롯한 주요 부문에 후보에 오르며 모든 제작들이 잔뜩 기대를 걸었으나 망했어요 세기의 명화이자 당시 경이적인 흥행돌풍을 일으켰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싹쓸이에 밀려 대부분 무관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이 작품은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한 최초의 컬러영화이기도 하며, 특히 흑인 유모 역의 해티 맥대니얼이 이 해 여우조연상을 수상, 흑인으로서는 최초로 아카데미 수상자가 되기도 하는 등 여러가지로 의미있는 기록을 많이 세웠다. 다만 한가지 어이없는 것은 정작 이 작품을 말할 때 절대 빼놓을 수 없는 레트 버틀러 역의 클라크 게이블이 남우주연상 부문에서, 장엄하고 감동적인 스코어를 작곡한 맥스 스타이너는 음악상 부문에서 고배를 마셨다는 것.

  • 1948년 제21회 시상식: 사상 처음으로 헐리우드에서 제작되지 않은 영화가 작품상을 수상하였다. 주인공은 바로 로런스 올리비에 주연의 《햄릿》.

  • 1969년 제41회 시상식: 주요 부문인 여우 주연상의 첫 공동 수상이 있었다. 바로 바브라 스트라이샌드와 연기부문 역대 최다관왕 수상에 빛나는 캐서린 헵번이 그 주인공. 모 국가 모 방송사와는 다르게 주요부문의 공동수상이 거의 없다시피 한 이 시상식의 특성상 희귀한 일이다.[26] 당시 시상자로 나온 잉그리드 버그만이 수상자의 이름이 적힌 종이를 펼치며 수상자를 호명하려는 순간 종이를 보고 당황한 표정을 짓더니 "The winner... is a... tie"(수상자는... 공동수상이군요) 라고 밝히며 수상자를 두 명 불렀다고 한다.

  • 1971년 제43회 시상식: 《패튼 대전차군단》이 작품상, 감독상, 남우주연상을 차지했다. 그러나 남우주연상 수상자인 배우 조지 스콧은 뭐하러 아카데미 가냐? 난 집에서 하키경기나 봐야지. 이라며 시상식에 나타나지 않았다. 결국 남우주연상 수상자를 발표한 골디 혼의 벙찐 표정만이 TV를 타고 전 미국에 방영... 스콧은 평소에 오스카를 싫어했고 자신에게 상을 준다고 해도 시상식에 나가지 않을 거라고 공언했었다고 한다.

  • 1972년 제44회 시상식: 찰리 채플린매카시즘 선풍이 일때 공산주의자로 몰려 결국 자의반 타의반으로 미국을 떠나 영국에서 활동하다가 이 해에 공로상을 수상하며 미국에 돌아왔다. 백발의 채플린이 입장할 때 관중들은 기립하여 박수를 쳤고 채플린이 수상소감을 다 마칠 때까지 자리에 앉지 않고 경청했다고 한다. 한편 《클루트》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제인 폰다는 '할 말 많은데 오늘은 말 안 하겠다'라며 수상소감을 거부해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었다. 폰다는 평소 베트남 전쟁에 반대하고 있던 차라 수상소감을 거부했다고 한다.

  • 1973년 제45회 시상식: 말런 브랜도는 《대부》로 남우주연상을 수상했지만, 그는 미국 정부가 네이티브 아메리칸들을 차별하는 것에 반대한다면서 수상을 거부하고 시상식에 불참했다. 대신 네이티브 아메리칸 전통 복장을 입은 서신 리틀페더(Sacheen Littlefeather)가 대리 수상하면서 브랜도의 불참 이유를 밝혔다고. 나중에 밝혀진 것으로는 리틀페더는 네이티브 아메리칸이 아니었기 때문에 브랜도의 수상거부의 진심이 과연 네이티브 아메리칸 차별 문제 때문이었는지는 불명. 한편 시상자로 예정된 찰턴 헤스턴 대신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나와서 시간을 끌다가 헤스턴이 나타나자 자리를 피했다. 헤스턴이 늦은 이유는 시상식에 오다가 자동차가 펑크가 난 탓이었다고.

  • 1974년 제46회 시상식: 미국판 카우치 사건인 오펄 알몸 사건이 일어났다. 사연인 즉 사회자 데이비드 니븐엘리자베스 테일러를 소개하려던 순간 로버트 오펄(Robert Opel)이란 사람이 홀라당 벗은 채로 무대 중앙을 가로질러 버린것. 니븐은 일순 당황했지만 "이런 일은 항상 있기 마련이지요, 재미있습니다. 저 사람은 옷을 벗고 자기 결점을 드러내는 게 인생의 낙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네요"라며 애써 웃어넘겼다. 시상자로 나선 테일러도 당황해서 수상 후보작들을 발표할때 버벅댔다고.#

  • 1977년 제49회 시상식: 이 해에는 《록키》가 작품상, 감독상등을 휩쓸었는데, 그런 분위기를 반영하듯 실베스터 스탤론이 시상식 초반 여우조연상 시상을 하러 나오다가 갑자기 무하마드 알리가 슬그머니 무대뒤에서 나와서 스탤론과 복싱을 하는 일이 일어났다. 물론 이건 일종의 퍼포먼스였으며 유일하게 록키와 알리가 맞붙었던 순간이었다나(…)#

  • 1978년 제50회 시상식: 여우조연상을 수상한 버네사 레드그레이브는 수상소감에서 시오니즘에 대해 노골적인 불만을 토로 했고 시오니즘과 파시즘에 대항해 싸울 것이라고 말했다. 유명한 안티 시오니스트였던 레드그레이브가 후보에 올랐을 때부터 반발하던 사람들은 이같은 발언을 듣고 사진을 불태우는 등 난리를 피웠다. 레드그레이브의 소감이 끝난 직후 이어진 각본상 시상에서 시상자 패디 차옙스키(Paddy Chayefsky)는 "개인적인 견해 및 정치 공세를 시상식을 이용한다는 것 자체가 역겨운 일이다"라고 바로 반박하고 "수상 소감을 말하는 자리는 단지 감사를 표하면 되지 선언을 할 필요는 없다"라고 일침을 가했다.[27][28]

  • 1981년 제53회 시상식: 원래 이 해의 시상식은 3월 30일에 열릴 예정이었지만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저격미수 사건이 일어나는 바람에 하루 연기되어 3월 31일에 열렸다. 이미 이전에 1968년 40회 시상식에도 마틴 루서 킹 목사가 암살되어 시상식이 연기된 적이 있었다.

  • 1988년 제60회 시상식: 이 해 작품상은 《마지막 황제》가 차지했는데 시상을 하러 나온 에디 머피"할리우드가 너무 흑인을 차별 대우한다. 흑인에겐 20년에 한 번꼴로 상을 주는데 내가 상을 타려면 2004년이나 돼야 타겠네?"라며 불만을 터트렸다. 재미있게도 머피의 예언(?)이 적중했는지 2005년 77회 시상식에서 흑인 배우인 제이미 폭스가 남우 주연상을 수상했다. 머피 자신도 2006년 드림걸스로 생애 첫 오스카 후보(남우조연상)에 올랐지만.

  • 1991년 제65회 시상식: 여우조연상 부문에서 버네사 레드그레이브, 조앤 플로라이트, 미란다 리처드슨 등 쟁쟁한 배우들이 후보로 오른 가운데, 많은 평론가들의 예상을 깨고 당시 신인이었던 《나의 사촌 비니》의 마리사 토메이가 상을 받았다. 이 결과를 놓고 곧 실제 수상자는 바네사 레드그레이브였는데, 시상자인 잭 팰런스가 약에 취해 봉투의 이름 대신 프롬프터에 마지막으로 등장한 후보명을 잘못 읽었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다. 아카데미 측이 여러 차례 근거없는 루머임을 밝히고 나섰지만 실제 수상자였던 토메이는 꽤나 마음고생을 했다는 후문.[29]

  • 1994년 제66회 시상식: 영화 《필라델피아》로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톰 행크스가 수상소감에서 자신에게 처음으로 연기를 가르쳐 준 은사를 들면서 아웃팅을 해버렸다.[30] 오스카상 수상소감 중 감동적인 수상 소감 중 하나로 꼽힌다. 그런데 이 때 받고 다음 해에 받는다. 그 영화는 바로...

  • 1999년 제71회 시상식: 이 해에 로베르토 베니니가 《인생은 아름다워》로 외국어 영화 최초로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는데 수상이 발표되자 통로로 나오는 게 아니라 의자를 마구 점프해서(…) 뛰어나왔다. 또 수상소감도 "나는 모든 사람에게 키스해주고 싶다"라고 해서 화제가 되기도. 이 영화는 그 해 4개 부문을 수상하는 기염을 토했다. 한편 공로상은 원로감독 엘리아 카잔에게 돌아갔지만, 카잔은 매카시즘 선풍이 불 당시에 동료 영화인들을 밀고했던 탓으로 절반은 일어서고 절반은 자리에 그대로 앉아 박수도 치지않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31]

  • 2000년 제72회 시상식: 이 해에는 오스카 트로피들이 몽땅 도난당하는 황당한 사태가 발생하는 바람에 다급해진 아카데미에서 1주일을 남겨두고 부랴부랴 트로피들을 다시 만들어야 했다. 도난당한 트로피들은 시상식 며칠 전에 LA 코리아타운의 쓰레기통 속에서 발견되었으며, 누가 트로피를 훔쳤는지는 아직까지도 밝혀지지 않고 있다.

  • 2002년 제74회 시상식: 할리 베리가 《몬스터 볼》에서의 열연으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면서 74년 만에 흑인 최초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는 기록을 남겼다. 유독 흑인배우를 홀대하는 것으로 비판받았던 아카데미였기에 이 해의 수상은 더욱 인구에 회자되었는데, 단상에 오른 베리는 감격에 겨운 나머지 폭풍 눈물을 쏟으며 자신보다 앞서 활동했던 전설적인 흑인 여배우들에게 영광을 바친다고 말해 기립박수를 받았다.[32] 한편 이 해에는 남우주연상 역시 덴젤 워싱턴이 수상하면서 흑인배우가 남,녀 주연상을 휩쓰는 쾌거를 달성했으며, 전설적인 원로 흑인배우 시드니 포이티어 역시 공로상을 수상하면서 말 그대로 흑인 예술인들의 위상을 크게 세워준 시상식이 되었다.

  • 2003년 제75회 시상식: 이 해에 만 29세의 에이드리언 브로디가 《피아니스트》로 역대 최연소 아카데미 남우 주연상을 수상했는데 수상이 발표되어 무대에 올라가자마자 바로 시상자이던 할리 베리에게 진하게 키스했다. 그리고 전쟁과 인간에 대한 소감을 짤막하게 이야기 했는데 사실은 더 이야기 하고 싶었으나 키스하는 시간이 생각보다 길어 더 이야기 할 수 없었다고... 키스하는 광경을 보며 엄청나게 좋아하시는 잭 니콜슨 옹을 볼 수 있다.

  • 2011년 제83회 시상식: 1916년생인 미국의 대배우 커크 더글러스가 여우조연상 시상자로 무대에 나서 청중들의 기립박수를 받았다. 그는 뇌졸중의 후유증이 남아 부자연스런 언변으로도 청중들을 즐겁게 한 끝에 영화 《파이터》에서 열연을 펼친 멜리사 리오를 수상자로 호명하였다. 리오는 더글러스에게 최고의 예를 갖추었고, 덕분에 청중들은 1984년 데뷔한 이래 긴 필모그래피를 지닌 이 여배우가 대선배 앞에 무릎을 꿇고 인사를 올리는 멋진 광경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이와는 별개로, 제임스 프랭코앤 해서웨이의 시상식 진행은 눈사태 같은 혹평 속에 묻혀 버렸다. 안습.

  • 2013년 제85회 시상식: 시상식 사상 최초로 미국 대통령 영부인인 미셸 오바마가 최우수 작품상을 발표하였다. 물론 시상식장에 나온 건 아니고 백악관과의 이원 생중계 형식을 빌려, 화면으로 출연하였다.. 시상식장 무대에 같이 나온 배우는 잭 니컬슨. 백악관 안주인이 나온다기에 설마 이 영화를 예상했던 이가 있었겠으나, 실제 수상한 작품은 바로 《아르고》.

  • 2017년 제89회 시상식: 라라랜드가 상을 몇개나 휩쓸 것이냐(골든글로브 7관왕)로 압축되어 있고, 특히 작품상과 감독상은 이미 떼어놓은 당상이라는 평가가 많았다. 여우주연상, 각본상, 음향편집상, 주제가상 등에서도 유력한 후보에 올라있기 때문에 7관왕, 혹은 그 이상이 예상됐었으나, 결과는 라라랜드는 감독상, 여우주연상, 주제가상, 촬영상, 음악상, 미술상을 받는데 그쳤(?)고, 문라이트가 작품상과 남우조연상, 각색상을 가져가는 이변 아닌 이변을 연출했다. 그동안 유색인종에게 박해서 '화이트 오스카'라고 불리었던 것에 비하면 센세이셔널한 결과였다. 남우주연상은 맨체스터 바이 더 씨케이시 애플렉이 가져갔다.
    한편 이 와중에 아카데미 89년 역사상 최악의 사고가 발생했다. 가장 하이라이트인 작품상을 발표하는 순간, 발표자가 잠깐 멈칫하더니 라라랜드를 호명하고 라라랜드의 배우와 제작진이 모두 단상에 올라 포옹을 하고 무대에 올라가 수상소감을 발표하고 있었는데, 수상소감 와중에 스탭들이 분주하게 무대를 돌아다니더니 라라랜드 프로듀서가 "문라이트가 작품상이에요." 라고 밝혔다. 사람들은 다들 훈훈한 분위기를 위해 하는 수상소감인 줄 알았으나 정색을 하고 "농담이 아닙니다.(This is not a joke)" 라고 문라이트가 작품상 수상자라며 문라이트가 작품상 수상자라는 카드까지 보여줬다. 알고봤더니 아카데미 측[33]에서 작품상 발표 카드를 준다는 것이 여우주연상 발표 카드를 잘못 전달한 것, 발표자가 발표때 잠깐 멈칫한 것도 카드에 '엠마 스톤 - 라라랜드' 라고 써 있었기 때문이라고.

다음은 문제의 제89회 아카데미상 시상식 작품상 시상 장면이다.


한편, 89회 아카데미는 반(反) 트럼프로 하나가 되었다. 유독 백인중심이고 인종차별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아카데미가 트럼프 덕택에 화합의 장으로 탈바꿈했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였다. 이날 참석한 많은 문화예술계 인사들은 트럼프의 반이민 정책 등 인종, 종교차별 정책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냈다. 많은 스타들이 미국시민자유연맹(ACLU)[34]을 지지하는 뜻의 파란색 리본을 달고 레드카펫에 섰으며, 시상식을 맡은 지미 키멜의 "나라가 분열됐다. 미국은 하나로 뭉쳐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모든 사람들이 긍정적인 이야기를 하고 우리가 먼저 시작해야 한다." 라는 멘트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반 트럼프 발언은 대부분 외국인에게서 나왔고, 미국인 중에서 정치적 메시지를 표현했던 것은 진행자 지미 키멜 정도뿐이었다. 한편 뉴욕타임즈는 이날 트럼프를 비판하는 광고를 제작해 시상식 내내 내보냈는데, NYT가 TV광고를 낸 건 10년만이었다. 뉴욕타임즈와 트럼프 사이가 얼마나 험악해졌는지 알 수 있는 좋은 사례.
노미네이트 된 후보나 수상자 역시 유색인종이거나 이슬람 종교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이름을 올렸으며, 라라랜드문라이트, 주토피아, 라이언 역시 자유로운 표현과 인종주의에 대한 편견, 인종차별 등을 직접적으로 다룬 작품이었다.

9. 아카데미 시상식 수상 예측[편집]


보통 아카데미 시상식의 수상을 예측할 때, 골든 글로브를 참고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감독상', '촬영상', '연기상(주연상, 조연상)' 등 각 부문을 좀 더 정확하게 예측하려면, 미국의 각 조합 시상식을 참고하면 된다. 그 이유는, 조합 시상식의 수상 선정과 관련된 각 조합 회원들 대부분이,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도 그 부문과 관련해서 투표를 하기 때문이다.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은 '각 부문' 전문가들의 투표를 통해,[35] 수상을 결정한다. 예로, 주연상이나 조연상은 'AMPAS 모든 회원'이 그 부문과 관련해서 투표를 하는 것이 아닌, '연기와 관련된' 배우 등의 회원들[36]의 투표를 통해[37] 선정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배우들 중 '미국인 배우'는, 당연히 "미국 배우 조합"에도 회원으로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즉, 미국 배우 조합상의 결과와 아카데미 시상식 연기상(주연상, 조연상)의 결과가 '웬만해선' 같은 수밖에 없다는 것. 당연히 이것은, 미국 감독 조합상이나 다른 조합상의 경우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참고로, 각 조합 시상식 수상자와 아카데미 시상식 수상자가 다르게 나타나는 경우는, 아카데미 시상식 수상자가 해당 부문 'AMPAS 국제 회원들'의 지지를 많이 받은 것이다.[38] '미국 배우 조합'은 말 그대로 '미국 배우'들로 이루어진 조합이다. 즉, 미국 외의 국적을 지닌 'AMPAS 회원'은 미국 배우 조합상의 수상 선정과 관련이 없다는 것. 이는, 다른 미국 조합들도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미국 각 조합 시상식 수상자 = 아카데미 시상식 수상자'인 경우, 그 수상자는 해당 부문의 전 세계 영화인으로부터 인정을 받은 것이다.

그리고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도 약간 참고하면 좋다.

10. 수상 논란[편집]

각 분야에서 인정받는 '최고 영화 전문가'[39] 6,000명 이상[40]이 투표한 뒤, 후보작과 수상작을 선정하는 아카데미 시상식이지만, '수상 선정'에서 논란이 생기는 경우가 있다. 프리메이슨이 결정한다던데[41] 다음은 이와 관련된 일부 사례다. 타임지의 영화 평론가 리처드 콜리스가 평한 사례LA 타임스가 보도한 사례 참조.

여기서 반드시 알아둬야 할 것은, 평론가들[42]과 영화계 종사자들의 시각이 항상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전문 영화인이 봤을 때 납득할 만한 것도, 평론가가 봤을 땐 아닐 수 있다는 것. 그런데 대중의 대부분은 평론가의 의견만 접하게 되고, 평론가의 의견을 곧이 곧대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다. 즉, 전문인의 시각으로 영화를 보지 못 하고, 평론가의 시각으로 영화를 평가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 대부분의 논란은 이런 이유로 생긴다.[43]

과거의 사례일수록, 당시와 현재의 평가가 다를 수도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

흥행 성적은 수상 선정과 전혀 관련이 없다.

아래는 연도순대로 나열한 것이다.

  • 1994년쇼생크 탈출》과 《펄프 픽션》을 제치고, 《포레스트 검프》가 작품상을 받았다. 우열을 가리기 힘들 정도로 세 영화 모두 훌륭해서, 다른 경우에 비해 논란이 그렇게 크지 않았다. 요즘에 와서도, '포레스트 검프가 작품상을 받아선 안 됐다'는 의견보다 '쇼생크 탈출이나 펄프 픽션이 작품상을 받지 못해서 아쉽다'는 의견이 훨씬 많다.

  • 2001년와호장룡》이 비영어권[46] 영화로는 최초로 흥행 수입 '1억 달러'를 돌파하는 등 화제가 됐으며, 영화의 작품성 자체가 뛰어났기 때문에 아카데미 작품상을 기대하는 경우가 있었다. 그런데 리들리 스콧의 《글래디에이터》가 작품상을 받으면서, 와호장룡은 외국어 영화상에 만족해야 했다. 한국에서 수상작 선정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건 이때부터다.

  • 2003년시카고》가 《갱스 오브 뉴욕》을 제치고 작품상을 받았다. 스콜세지의 작품이 자주 등장한다 사회를 맡은 스티브 마틴은 오프닝 모놀로그에서 "《시카고》의 인기가 마케팅 때문이라고 하는데, 미라맥스에게 죄가 있다면, 모두가 좋아하는 영화를 만든 것뿐이다"라고 했을 정도였다. 그리고 《시카고》의 감독인 롭 마셜이 당시엔 신인이어서, 감독상을 스콜세지가 받을 거라고 예상하는 경우가 있었다. 하지만, 감독상은 《피아니스트》의 로만 폴란스키가 받았다.

  • 홍콩 영화무간도》를 리메이크한 《디파티드》가 "71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감독상, 각색상, 편집상, 남우조연상(마크 월버그) 총 5개 부문 후보에 올랐다. 남우조연상을 제외한 4개 부문에서 수상을 했는데, '애초에 후보에 들만했는가?'와 관련해서 논란이 있었다. '일부 팬들과 평론가'는 《디파티드》의 작품상 수상을 비판했다. 《디파티드》는 기존의 스콜세지 영화와는 달리, 순수 창작이 아닌 홍콩 영화를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그리고 스콜세지를 위한 상이었다고 보는 경우도 있다.

  • 2009년 81회 시상식에서 흥행과 비평의 새로운 역사를 썼던 《다크 나이트》가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후보에 들지 못 했다. 히어로 영화의 한계로 보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픽사의 《월-E》와 《레볼루셔너리 로드》, 《그랜 토리노》가 작품상 후보에 들지 못 했다. 이후 시상식부터, 아카데미 작품상 후보작 수가 5편에서 10편으로 늘었다.

  • 2013년 85회 시상식에서, 《다크 나이트 라이즈》는 시상식의 한 부문조차도 지명받지 못 했다. 전 세계 흥행 3위를 기록한 《어벤져스》는 시각효과상 한 부문에만 후보로 지명됐다. 크리스천 베일은 이미 《파이터》로 남우조연상을 수상해서 그런지, 《다크 나이트》에 이어 《다크 나이트 라이즈》에도 남우주연상 후보에 지명받지 못 했다. 《제로 다크 서티》가 주요 부문에서 수상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 경우가 있었는데, 음향편집상만 《스카이폴》과 공동 수상했다.

  • 아카데미 시상식 후보들이 백인 위주라며, 흑인 주도로 2016년 때 인종차별 논란이 일었다. 비백인 영화인 중 후보에 오를만한 경우가 있는데도, 후보에 오르지 못 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 조지 클루니가 이를 비판하는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 진행자였던 크리스 락(흑인) 본인은 동양인 어린이들을 통해 인종 차별 발언을 해서, 또 다른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 여우주연상은 젊은 백인 여배우에게 밀어준다는 의견이 있다.

    • 1998년 줄리 크리스티와 주디 덴치를 꺾고, 헬렌 헌트가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 1999년 케이트 블란쳇메릴 스트립을 꺾고, 기네스 팰트로셰익스피어 인 러브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이를 최악의 여우주연상 수상으로 보는 경우가 많다.

    • 그런데 유독 주연상이나 조연상 관련해서, 전문적인 시각과 동떨어지게 논란을 만드는 경우가 많다.[47] '배우'가 후보에 선정되다 보니, 싫어하는 배우가 상을 받거나 좋아하는 배우가 상을 받지 못하면 논란을 만들어내는 것이다.[48] 이와 관련해, 2017년 엠마 스톤의 여우주연상 수상과 관련된 논란이 대표적.[49] 엠마 스톤은 영화계 종사자들의 인정을 실제로 크게 받았다. '영화 감독, 영화 제작자, 동료 배우' 등 전문적인 영화인들에게 여우주연상 수상과 관련해 비판을 받은 적이 아예 없고, 라라랜드 연기에 대해선 언제나 호평을 받았다. 따라서, 엠마 스톤의 여우주연상 수상에 대해 논란이 생긴 것은, 엠마 스톤을 싫어하는 사람들과 다른 후보 배우들의 팬 때문이다.[50] 논란의 근거로 가져오는 것을 보면 하나같이, '아카데미 시상식 전에 열린 다른 시상식들[51]에서의 수상'과 '몇몇 평론가, 언론인, 커뮤니티의 의견'이다. 그런데 비평가 등과 관련된 시상식과 영화제에서 받은 상은 아카데미 시상식과 관련이 매우 없다. 특히, 비평가와 관련된 시상식은 그 전문성이 매우 떨어진다. 근거로 들기에는 부족하다는 것. 반대로, 배우 조합 회원에 속한 '배우들'이 선정하는 미국 배우 조합상의 경우, 2017년 여우주연상 수상자는 "엠마 스톤"이었다.[52] 이는, 엠마 스톤의 연기가 '수많은 배우'에게 인정받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전문성을 갖춘 골든 글로브 시상식(뮤지컬 코디미 부문)과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도 엠마 스톤이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11. 아카데미의 콩라인(?)[편집]

11.1. 감독상[편집]


  • 로버트 올트먼: 5회에 걸쳐서 감독상 후보에 선정되었지만(《야전병원 매쉬》(1970), 《내슈빌》(1975), 《플레이어》(1992), 《숏 컷》(1993), 《고스포드 파크》(2001)) 단 한번도 수상을 못했다. 《야전병원 매쉬》가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것을 비롯하여, 그의 다른 작품들이 다른 유수의 영화제에서 상을 여럿 받은데 비해, 아카데미와 관련된 상은 단 하나도 받지 못했다는 면에서 진정한 콩라인으로 볼 수도 있겠다. 결국 2006년 감독상이 아닌 공로상을 수상해 콩라인의 한을 풀었고, 아이러니하게도 그 해 11월에 사망했다. 그 전에라도 콩라인의 한을 풀었으니 다행이라면 다행?

  • 시드니 루멧: 역시 4회에 걸쳐 감독상 후보에 올랐으나 수상은 실패.(《12인의 노한 사람들》(1957), 《뜨거운 오후》(1975), 《네트워크》(1976), 《심판》(1982)). 베를린 영화제 그랑프리를 수상한 《12인의 노한 사람들》이나 《네트워크》 같은 경우가 아까운 케이스로 꼽히는데, 특히 《네트워크》같은 경우에는 각본상과 더불어 연기상 부문에 5명 노미네이트, 3명 수상[53]이라는 엄청난 성과를 거두고도, 작품상과 감독상은 《록키》에게 내줘 아쉬움을 더 한 케이스. 2004년에 평생 공로상을 받았다. 큐브릭과 루멧 이외에도 4회 선정-무수상에는 피터 위어페데리코 펠리니 등이 있다.

  • 스티븐 스필버그: 스필버그의 감독상 도전사는 눈물겨울 정도. 《미지와의 조우》, 《레이더스》, 《E.T.》, 《칼라 퍼플》로 도전했지만 모두 미끄러졌다.[54] 《E.T.》는 가장 아까운 수상 실패작이라고 할 정도이고 《칼라 퍼플》은 아카데미의 구미에 맞는 작품성을 갖춘 영화였지만 흑인 여성의 인권이라는 소재가 발목을 잡은 듯. 결국 《쉰들러 리스트》로 눈물겨운 도전사가 승리로 장식되긴 했다. 그리고 《라이언 일병 구하기》로 두 번째 수상에도 성공했다. 21세기에는 실화를 각색한 두 영화인 2005년 《뮌헨》으로, 2012년 《링컨》으로 두 차례 감독상에 지명되면서, 2014년 기준으로 2승 5패가 되었다.

11.2. 연기상[편집]

  • 피터 오툴: 아카데미의 진정한 콩라인. 무려 8회에 걸쳐서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지만 수상에 모두 실패했다(…) 가장 아까웠던 순간은 1962년의 《아라비아의 로렌스》로 뛰어난 연기에도 불구하고 수상을 하지 못했다.[55] 이 때의 남우주연상 수상 실패를 아카데미의 사상 최악의 실수라고 평가하는 사람들이 많다. 2007년에도 후보에 올랐지만 수상에 실패했고, 결국 2013년 12월 14일 사망했다. 그나마 2003년에 아카데미에서 평생공로상은 받았다.

  • 리처드 버튼: 남우주연상 후보에 6번, 남우조연상 후보에 1번 후보에 올랐지만 수상에 모두 실패했다. 피터 오툴과는 달리 평생공로상도 받지 못한 채 1984년 8월 5일 58세의 나이에 사망했다.

  • 글렌 클로즈: 현 시대의 데보라 커 혹은 여자 버전 피터 오툴 1983년, 1984년, 1985년 모두 여우조연상 후보로, 1988,1989년 그리고 가장 최근은 2012년[56] 여우주연상 후보로 올랐는데 단 한 번도 수상받지 못했다. 1989년 영화 위험한 정사로 가장 유력한 수상후보였지만 조디 포스터가 여우주연상을 가져갔다.

  • 에이미 아담스: 여우조연상 후보에 4번, 여우주연상에 후보에 1번 총 5번 후보에 올랐지만 전부 수상에 실패했다. 사실 매년 후보에 오를때마다 상대 후보가 더 주목을 받는 불운의 케이스. 2006년 《준벅》으로 후보에 올랐을땐 《콘스탄트 가드너》의 레이첼 바이스가 수상했고, 2009년 《다우트》로 후보에 올랐을때, 《비키 크리스티나 바르셀로나》의 페넬로페 크루즈가 수상, 2011년에 《파이터》로 후보에 올랐을때, 같은 영화에 출연한 멜리사 리오가 수상했다. 2013년엔 《마스터(영화)》에서의 연기력이 찬사를 받아 드디어 오스카를 수상하는게 아니냐는 여론이 있었으나... 하반기에 공개된 《레 미제라블》에서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앤 해서웨이가 수상자가 되었다... 그리고 2014년 《아메리칸 허슬》로 생애 첫 여우주연상에 노미네이트 되었으나, 수상자는 그 해 모든 시상식을 휩쓸었던 《블루 재스민》의 케이트 블란쳇. 블란쳇이 《블루 재스민》에서 워낙에 강렬한 연기를 선보였기에, 거의 확정적이였던 셈이다. 사실 이와 관련해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인연 아닌 인연이 있는데, 2014년에 둘 다 통합 5번째로 남녀주연상 후보에 올랐으나 수상에 실패했다. 둘이 같은 나이인데다가 캐치 미 이프 유 캔에서 같이 호흡을 맞춘 적이 있어서 그런지 그 해 최대의 콩라인으로 같이 언급되기도 했다... 물론 디카프리오 쪽의 언급이 더 많긴 했다. 2016년에 디카프리오가 남우주연상을 받긴 했지만.

  •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길버트 그레이프》, 《블러드 다이아몬드》, 《에비에이터》,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로 아카데미 남우조연상 1번과 남우주연상에 3번, 작품상 1번[57]으로 총 5번이나 후보에 이름을 올렸지만 단 한 차례도 수상하지 못했다. 날이 갈수록 더 출중한 연기력을 보여주고 있기에 많은 팬들이 그가 수상하지 못하는 걸 안타까워하고 있다.[58][59] 또한 《타이타닉》 때에는 후보에도 오르지 못하면서 한동안 아카데미 시상식에 참석하지 않았다.[60]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에서조차 미끄러지면서 아예 미국 웹에서는 '오스카를 못 받는 디카프리오 놀리기'가 하나의 이 되었다(…) 현재는 아카데미 콩라인 관련 인물로서 일반인에게는 가장 유명한 인물. 이에 굴하지 않고 레버넌트에서 그야말로 개고생해가며 연기한 끝에 2016년 또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이런 게임도 나왔을 정도. 그러나 이번만큼은 수상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많았고, 결국 2016년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한다.

  • 알 파치노: 역시 빼놓을 수 없다. 1972년대부》에서 처음 남우조연상에 이름이 불린 후 1974년 《대부2》, 1975년《뜨거운 오후[61][62] 등 총 8편의 영화로 후보에 올랐으나 모두 실패. 93년 65회 에서 《글렌게리 글렌 로즈》로 남우조연상을, 맹인 퇴역 장교로 큰 인상을 다시 한번 남겼던 《여인의 향기》로 남우주연상에 노미네이트되었는데, 먼저 시상된 조연상은 진 해크먼이 가져가면서 올해도 공치는 분위기인가 싶었지만, 주연상을 기어이 따내면서 동료배우들에게 기립박수를 받았다. 저서 《65년간의 오스카: 아카데미 시상식의 역사》에서 저자가 파치노 사진 아래에 “그는 언제나 신부의 들러리 같았지 신부 같진 않았다.”라고 밝힌 바 있다.

  • 폴 뉴먼: 50년대 말부터 70년대 초를 호령한 차도남의 조상으로, 클리프트-브랜도-을 잇는 할리우드의 반항아이자, '스크린의 전설, 슈퍼스타, 영화 역사 상 가장 유명한 푸른 눈을 가진 배우'이다(Screen legend, superstar, and the man with the most famous blue eyes in movie history)[63]. 그러나 이 분도 뛰어난 연기력과 화려한 경력에 비해 아카데미와 지독히 인연 없기로 유명하다. 1959년 《뜨거운 양철 지붕 위의 고양이》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에 처음 후보로 오른 뒤로, 1962년 《허슬러》, 1964년 《허드》, 1968년 《폭력 탈옥》, 1982년 《선택》, 1983년 《심판》으로 계속해서 남우주연상 후보에만 올랐다. 게다가 1969년에는 자신이 감독한 《레이첼, 레이첼》이 작품상 후보에 올랐다가 수상에 실패했다. 진정한 콩라인.. 그러다가 1986년에는 아카데미 공로상을 받았고 1987년에는 드디어 《컬러 오브 머니》로 남우주연상을 받아 30년 동안 묵은 한을 풀었.....는데, 하필 본인은 이 해 시상식 때 '더 이상 실망하기 싫다'라며 참석하지 않았었다고. 더구나 이 해 칸 국제영화제를 비롯, 미국 4대 비평가 협회와 골든글로브 남우주연상 등을 싹쓸이하며 오스카 수상이 거의 확실시되었던 《모나리자》의 밥 호스킨스가 뉴먼에 밀려 수상하지 못한 데 대해 지금까지도 비판하는 여론도 있다.

11.3. 기타[편집]

  • 이안: 이쪽은 감독상은 두 번이나 탔으니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작품상과 인연이 전혀 없어서 해당되는 케이스. 2001년에는 《와호장룡》이 나왔지만 《글래디에이터》에 밀려 작품상 후보에 그치고, 2005년엔 《브로크백 마운틴》을 선보였으나 《크래쉬》에 인해 탈락, 2013년엔 《라이프 오브 파이》를 선보였으나 《아르고》가 차지했다.

  • SF 영화: 스탠리 큐브릭의 《시계태엽 오렌지》, 조지 루카스의 《스타워즈》, 스티븐 스필버그의 《E.T.》가 작품상 후보에 오른 적이 있다. 그러나 모두 다 미끄러졌다(…) 다만 SF영화는 2010년 82회 시상식에 《아바타》와 《디스트릭트 9》이 후보에 올랐기 때문에 콩탈할 가능성이 그 어느 때 보다 커지긴 했지만 결국 골든 글로브가 선택했던 《아바타》는 아카데미에선 미끄러지고 말았다. 결국 콩탈 실패. 2011년 83회 시상식에는 크리스토퍼 놀런의 《인셉션》이 작품상 후보에 올랐다. 하지만 《블랙 스완》과 《킹스 스피치》라는 막강한 경쟁자들이 있어서 콩탈 실패의 가능성이 커보인다. 결국 작품상의 영예는 말 더듬이 임금님에게로 넘어갔다. 예상대로 콩탈 실패. 2014년 86회 시상식에는 《그래비티》가 작품상에 노미네이트된 상황인데 이번의 경우는 《노예 12년》이나 《내브래스카》같은 경쟁작들이 있지만 2010년의 《블랙스완》, 《킹스 스피치》에 비하면 막강하다고 하긴 힘들다는 지적이 있어서 이번에야 말로 사상 최초의 SF 영화의 작품상 수상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 나오곤 있지만... 일단 골든 글로브는 《노예 12년》을 선택했는데 《아바타》와 《허트 로커》가 맟붙었던 2010년과는 정반대의 상황. 골든 글로브와 반대로 가면 그래비티가 수상하나? 《그래비티》는 무려 7개부분을 석권했지만 작품상은 골든 글로브처럼 《노예 12년》에게 넘겨주었다. 그러나 알폰소 쿠아론이 감독상을 수상했는데 흑인감독의 흑인영화 최초 작품상 수상이라는 오스카 역사를 새로 쓴 노예 12년에 가려져서 별로 주목받지 못하는 사실이지만 SF 영화로 감독상을 받은것은 《그래비티》가 최초라고 할수 있다. 감독상 접수했으니 다음은 작품상이다!

  • 케빈 오코널: 아카데미의 또다른 콩라인 이자 총 18번 후보지명(…)《탑건》, 《스파이더맨》, 《트랜스포머》 등 음향으로 참여하여 18번 후보에 총 20편이 지명[65] 되었지만 한 번도 수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런 이유 때문인지 미국 CBS 방송에도 출연까지 할 정도로 유명인사가 되었다.[66][67] 그리고 2017년 마침내 <핵소 고지>로 음향상을 수상하였다!!

12. 한 번의 수상으로는 부족한 사람들[편집]

  • 메릴 스트립: 총 21번 후보지명, 3번 수상. 사실 필모그래피 부터 연기력까지 못해도 평타 이상이라서 공평성을 위해 아카데미에서 상을 안주는 것이... 2012년 2월 26일에 열릴 예정인 제84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 후보에 지명되어 기록을 갱신하기에 이르렀다. 그녀의 선정 기록은 아카데미 역사상 최다 후보지명 기록인데 그걸 또 갈아치우기에 이르렀다. 그녀가 이번에 수상할지에 관심이 모이고 있는 중인데 일단 아카데미 시상식 예측의 척도인 골든글로브 시상식에 이어 84회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에 수상하며 3번째 수상에 성공했다. 그리고 2014년 86회 시상식에서 《어거스트 : 가족의 초상》이란 영화로 또 다시 여우 주연상 후보에 오른 바 있다. 심지어 오는 2017년 제89회 시상식에서는 《플로렌스》로 2018년 제90회 시상식에서도 《더 포스트》로 연이어 여우주연상 후보로 지명되어 최초로 개인 통산 21회 노미네이션이라는 대기록을 수립하게 되었다.

  • 잭 니콜슨: 총 12번 후보지명, 3번 수상. 여배우에 스트립이 있다면 남배우에는 니컬슨이 있다. 연기력 하나에선 역시 타의 추종을 넘는 배우로 평가받고 있다.

노미네이트 목록
95년 쇼생크 탈출 - 가을의 전설 수상
97년 파고 - 잉글리쉬 페이션트 수상
98년 쿤둔 - 타이타닉 수상
01년 오 형제여 어디있는가 - 와호장룡 수상
02년 그 남자는 거기 없었다 - 반지의 제왕: 반지 원정대 수상
08년 비겁한 로버트 포드의 제시 제임스 암살
08년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 데어 윌비 블러드 수상
09년 리더 - 슬럼독 밀리어네어 수상
11년 트루 그릿 - 인셉션 수상
13년 스카이폴 - 라이프 오브 파이 수상
14년 프리즈너스 - 그래비티 수상
15년 언브로큰 - 버드맨 수상
16년 시카리오 - 레버넌트 수상

13. 그 외 기록[편집]

13.1. 흑인 영화인[편집]

13.2. 히스패닉/라티노 영화인[편집]

  • 작품상: 1985년작 《거미 여인의 키스》를 시작으로 89회 시상식 현재까지 5번의 노미네이트가 있었다. 수상작은 《버드맨》이 유일하다.

  • 여우주연상: 1998년작 《중앙역》(Central Station)에 출연한 페르난다 몬테네그루(브라질 출신)가 처음 후보에 올랐다. 이후 2002년작 《프리다》에 출연한 셀마 헤이엑(멕시코 출신의 멕시코계 미국인), 2004년작 《기품있는 마리아》(Maria Full of Grace)에 출연한 카탈리나 산디노 모레노(콜롬비아 출신)가 후보에 올랐다.

  • 여우조연상: 1954년작 《부러진 창》(Broken Lance)에 출연한 케이티 후라도(Katy Jurado, 멕시코 출신), 1959년작 《이미테이션 오브 라이프》(Imitation of Life)에 출연한 수전 코너(어머니가 멕시코계 미국인 배우인 루피타 토바르)가 후보에 오른 뒤, 1961년작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에 출연한 리타 모레노(푸에르토 리코계 미국인)가 처음으로 수상했다. 이후 1987년작 《가비의 기적》(Gaby: A True Story)에 출연한 노르마 알레안드로(아르헨티나 출신)가 후보에 올랐고, 1991년작 《피셔 킹》에 출연한 머시디스 룰(어머니가 쿠바계)이 두번째로 수상했다. 그 후에는 1993년작 《공포 탈출》(Fearless)에 출연한 로지 페레즈(부모가 푸에르토 리코계), 2006년작 《바벨》에 출연한 아드리아나 바라자(멕시코 출신)가 후보에 올랐다. 2011년작 《아티스트》에 출연해 후보에 오른 베레니스 베조의 경우 아르헨티나에서 태어났지만 호르헤 라파엘 비델라가 벌인 더러운 전쟁으로 3살 때 가족이 프랑스로 망명했다.

13.3. 아시아계 영화인[편집]

  • 작품상: 1986년 《전망 좋은 방》(이스마일 머천트[72], 인도계 영국인)을 시작으로 89회 시상식까지 8번의 노미네이트가 있었지만 수상은 하지 못했다. 《와호장룡》과 《라이프 오브 파이》로 작품상 후보에 이름을 올린 이안 감독 역시 수상하지 못했다. 이들 이외에 후보에 오른 키트먼 호(A. Kitman Ho)[73]는 홍콩 출신, 리처드 사카이[74]일본계 미국인이다.

  • 여우주연상: 1935년작 《다크 엔젤》에 출연한 멜 오베론(인도계 영국인)이 후보에 오른게 유일하다.

  • 남우조연상: 1957년작 콰이 강의 다리에 출연한 하야카와 셋슈(일본 출신)가 처음 후보에 올랐고, 1984년작 《킬링필드》에 출연한 행 송남 응오(캄보디아 출신)가 처음 수상했다. 하지만 행 송남 응오는 조연상이 아니라 주연상을 받아야 한다는 논란이 거셌고 조연상을 받아야 했다던 백인 배우 샘 워터스튼이 주연상을 받으며 더 말이 많았다. 결국 이 둘 다 이후로 별다른 행보를 보이지 못하며 배우로서는 그다지 알려지지 못했다. 이외에 1966년작 《산 파블로》에 출연한 이와마츠 마코(일본 출신), 1984년작 《베스트 키드》에 출연한 팻 모리타(캘리포니아 출신 일본계 미국인), 1991년작 《벅시》, 2001년작 《섹시 비스트》에 출연한 벤 킹즐리, 2003년작 《라스트 사무라이》에 출연한 와타나베 켄(일본인), 2016년작 《라이언》에 출연한 데브 파텔(인도계 영국인)도 후보에 올랐다.

  • 여우조연상: 1957년작 《사요나라》에 출연한 우메키 미요시(일본 출신)가 처음 후보에 올라 수상했다. 이외에 1985년작 《신의 아그네스》에 출연한 멕 틸리와 1994년작 《브로드웨이를 쏴라》에 출연한 제니퍼 틸리(아버지가 중국계), 2006년작 《바벨》에 출연한 기쿠치 린코(일본 출신), 2010년작 《트루 그릿》에 출연한 헤일리 스타인펠드(어머니가 필리핀계 포함)이 후보에 올랐다.

  • 2003년작 《모래와 안개의 집》에 출연해 여우조연상 후보에 오른 쇼레 아그다슐루는 이란 혁명으로 망명한 이란계 미국인이다.

13.4. 여성 감독[편집]

1976년 《Seven Beauties/Pasqualino Settebellezze》의 리나 베르트뮬러[75], 1993년 《피아노》의 제인 캠피언, 2003년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의 소피아 코폴라, 2009년 《허트 로커》의 캐스린 비글로, 2017년 《레이디 버드》의 그레타 거윅 감독 5명만이 감독상 후보에 올랐으며, 이 중 수상자는 비글로 감독이 유일하다.

13.5. 외국어 영화상[편집]

한국은 이미 제35회 아카데미 시상식이 열었던 1962년사랑방 손님과 어머니로 출품작에서 시작하였다. 2002년 이창동 감독의 오아시스 이후 매년 출품작을 오르고 있지만, 후보까지 못 오르고 있는 실정이다.

아시아에서는 일본, 이스라엘이 자주 오르지만 2010년대 들어서는 이란도 오르고 있다.

유럽은 이미 오래 전부터 다양한 국가들이 후보에 오르기도 했으며, 프랑스, 이탈리아은 자주 오르면서 받는다고 본다. 독일, 러시아은 후보로 많이 오르는 국가이지만 수상에는 자주 보이지 않은 실정이다. 지금은 잘 오르지 못하지만 폴란드, 벨기에도 꽤 자주 후보로 오르기도 했다. 후보로 오르지 못한 국가들도 있다. 대표적으로 루마니아, 포르투갈이 출품작으로 그치고 있는 상황이다.

외국어 영화상을 타면 할리우드에서도 어느 정도 주목받지만, 대부분은 자국에서 영화 만드는 길을 많이 택한다. 아무래도 할리우드 시스템에 대한 거부감 등 여러가지 면이 있었어 그런 듯하다. 다만 이안 감독 같이 외국인 영화 감독들 중에서 후보에 자주 오르고 상을 받으면서 할리우드에 정착한 사례가 있지만, 콘-티키의 에스펜 잔드베르크, 요아킴 뢰닝 감독[76] 같은 외국어영화상은 못 받았지만 주목도를 높여서 할리우드로 진출한 사례가 있다.

14. 관련 문서[편집]

[1] 이 곳에서 역대 아카데미상 주요 장면들을 모아 놓은 영상들을 직접 검색해서 볼 수 있다. 단 자동으로 재생되는 영상이 있을 수 있으니 주의할 것.[2] 영국이나 여러 나라에서도, 자국 시상식 이름을 아카데미로 부르곤 한다. 과거 홍콩도 아카데미 영화제란 이름으로 영화제를 열었었다. 지금은 금상장 영화제로 부른다. 일본도 1978년부터 "아카데미 영화상"이라는 시상식에서 시상한다.[3] 2020년까지 계약이 돼 있다고 한다.[4] 경쟁 방송사인 NBC사가 동계올림픽 독점 중계 방송사라서, 올림픽 시기를 피해 3월로 미루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2014년 치러지는 시상식과 2018년 제90회가 그런 경우.[5] 영어로 상영된 영화가 아닌 인생은 아름다워, 아무르 등도 최우수작품상 후보에 올랐다. 당장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 아카데미 장편 애니메이션상를 탄 바가 있다.[6] 현재 일반인은 2명 받았다.[7] 작품상이 아닌 부문에서 어떤 영화를 지명하는 것은, 지명한 영화의 해당 부문 담당자(총괄자)를 지명하는 것과 같다.[8] 이때 "연기 부문"에 소속된 회원은, '남우주연상 5명 & 여우주연상 5명 & 남우조연상 5명 & 여우조연상 5명'을 각각 지명한다.[9] 요즘은 종이 투표(오프라인)뿐만 아니라, 온라인 투표로도 진행한다. 회원 대다수는 온라인 투표를 하고 있다고 전해진다. 공식 집계사인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가 보안을 담당한다.[10] 각 부문마다 5편(명)이 최종 후보가 된다. 작품상(10편)이나 분장상 등은 예외적인 경우.[11] 최종 후보에 오르는 것도 쉽지 않기 때문에, 최종 후보에 드는 것만으로도 인정받았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를 대단한 영예로 본다.[12] 최종 투표는 전 회원이 참여하지 않는다. 400명 이상의 현역 회원만 투표를 할 수 있다.[13] '전 부문의 후보'가 기록된 투표 용지로, 최종 투표를 하게 된다. 즉, 최종 투표는 회원의 소속 부문을 벗어나, 전 부문에 대해서 투표를 하는 것이다. 전 부문에 걸쳐서 각 1편(명)씩 투표한다. 그런데 아무리 전 부문 투표라고 해도, '각 소속 부문' 회원의 표가 '그 부문' 수상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된다. 예로, '촬영 감독'인 현역 회원이 '분장상' 투표를 할 때, 이를 전문적으로 판단해서 하기 어렵다. 따라서, 전 부문 투표일지라도, 다른 부문 회원들에 의해 대세가 바뀌는 경우는 사실상 없다.[14] '작품상'은 최종 후보 선정 때부터 모든 부문 회원의 표를 받기 때문에, 최종 투표 방식(전 부문 투표)에 큰 영향을 받지 않는다. 대신, 최종 투표를 하는 회원이 '현역 회원'으로 한정된 것이, 작품상 수상작 선정에 많은 영향을 끼친다. 현역으로 활동 중이기 때문에, 최근 영화계의 인종차별 같은 'PC 논란'을 체감할 수밖에 없다. 이것과 관련된 대표적인 사례로, 제89회 작품상 수상작인 문라이트를 들 수 있다.[15] 작품상 후보작이 10편으로 늘었기 때문에, 단순히 다수결로 수상작을 선정하게 되면, 과반에 미치지 못해도 작품상을 받을 수 있게 된다. 그래서 작품상만 투표 방식을 바꾼 것.[16] 과반 득표작이 이번에도 안 나왔는데, 처음에 2위로 꼽았던 영화가 또 제외된다면, '3위 표'를 '1위 표'로 간주하고 다시 집계한다. 이런 식으로 반복.[17] 당시 약 한 달 전 치러진 그래미상은 2천 8백만 명 이라고 한다.[18] 앤서니 홉킨스한니발 렉터 역으로 단 16분 정도만 출연하고도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흠좀무.[19] 골든글로브 시상식도 1983년까지는 신인상을 시상한 적이 있다. 다만 대중음악 분야 최고의 상인 그래미상의 경우 Big 4 부문 중 하나에 '베스트 뉴 아티스트' 즉 신인상 부문이 있다. 다만 흔히 아는 신인상과는 조금 미묘한 차이가 있다. 그래미상 참조.[20] 이순재가 언론과의 한 인터뷰에서 '아카데미상에는 신인상이 없다. 관객은 배우가 신인인지 아닌지 구분해서 연기를 평가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라고 한 적이 있었다.[21] 예전엔 And the winner is... 라고 했었는데 승패를 가르는 게 아니기 때문에 좀 더 정치적 올바름을 강조하여 바뀌게 되었다. 다만, 시상자들이 가끔씩 농담조로 쓰는 수준으로 간간히 들을 수 있는 편인데, 커크 더글러스가 요즘은 바뀌었다는데도 끝까지 저 드립을 치며 웃음을 주었다.[22] 물론 《타이타닉》이나 《반지의 제왕》 같이 스케일 큰 블록버스터에 작품성까지 갖춰진 영화는 타 부문도 많이 받는다. 그러나 요즘 보면 그런 경우가 드물다. [23] 중국 영화는 문화대혁명과 냉전 시대의 영향 탓에 암전이었으나, 구소련의 몰락과 개방화를 시작한 90년대 이후부터 숱한 세계 영화 시상식에서 여러차례 수상하며 세력을 떨치고 있다.[24] 다만 당시 화이트오스카라는 악명을 지우려고 급하게 여러나라에서 초청한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있었다. 백인 후보자만 가득하다고 비난의 눈초리를 받던 상황에 갑작스럽게 한국, 콜롬비아, 인도 같이 여러나라에서 초청을 하여 다양성을 강조하였다는 것.[25] 다만 '오스카를 받을 분은...(And the Oscar goes to...)'는 파트너인 소피아 베르가라가 말했다.[26] 그 전에도 공동 수상이 있었고, 그 이후에도 있었다. 1932년 《챔프》의 윌리스 비어리와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의 프레더릭 마치가 남우주연상을 공동 수상 했고, 다큐멘터리 부문에서는 1949년에 《A Chance to Live》와 《So Much for So Little》, 1986년에 《Artie Shaw: Time Is All You've Got》과 《Down and Out in America》가 공동 수상을 했다. 1994년에 《프란츠 카프카의 멋진 인생》과 《트레버》가 최우수 단편 영화상을 공동 수상했고, 최근 2012년에는 《스카이폴》과 《제로 다크 서티》가 음향 편집상 부문에서 공동 수상을 했다.[27] 패디 차옙스키는 유대인으로 반 시오니스트였던 레드그레이브를 엄청나게 싫어했다. 감독인 시드니 루멧과 같이 영화 《네트워크》를 만들 때도, 당초 루멧은 여주인공으로 레드그레이브를 캐스팅하려 했지만, 차옙스키의 완강한 반대에 부딪히게 된다. 루멧도 레드그레이브를 최선을 다해 변호했지만 결국 밀려 계획을 철회했다. 아이러니한 것은 루멧도 유대인이라는 점.[28] 다만 차옙스키의 이 발언에 대해서도 반응은 여러 갈래로 나뉘었다. 당시 영상을 보면 객석에 앉아있던 배우 셜리 매클레인이 차옙스키의 발언에 표정이 싹 굳어지며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장면이 그대로 포착되어 있기도 하다.[29] 아카데미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라면 믿을 수 없는 루머이긴 했다. 프롬프터의 글자는 빠르게 지나가기도 하고, 봉투에는 오로지 수상자 한 사람의 이름만 적혀있다.[30] 물론 동성애자라고 아웃팅을 한 건 아니고 이미 사전에 해당 지역 신문이 그 은사에게 허락을 받은 상태에서 이미 기사화되어 알려져 있었으며, 그리고 시상식 전에 미리 연락을 했다고 한다.[31] 영상은 이곳에서 확인할수 있다. 영상 2분쯤에 등장하는, 무대를 싸늘하게 바라보는 닉 놀티가 무척이나 인상적이다.# 에드 해리스, 에이미 매디건 부부 역시 팔짱끼고 노려보듯 바라봤다.[32] 그리고 이후 베리는 《캣우먼》으로 골든 라즈베리 상을 받으며 이 장면을 셀프 패러디했다(…).[33] 정확히 말하면 주최사측이 아닌 협력사인 세계적인 회계법인사 PWC의 직원이 저지른 개인적인 실수다. 그것도 수상하고 내려오는 엠마스톤 찍겠다고...[34] 트럼프 대통령의 반이민 행정명령에 항의, 소송을 제기한 시민단체[35] 각 부문의 전문가들이 투표를 해서, 부문별 최종 후보를 먼저 선정하게 되기 때문.[36] 연기 부문 소속 회원[37] 연기 부문의 회원들이 투표를 해서, 주연상과 조연상 최종 후보를 먼저 선정하게 되기 때문.[38] 최종 투표가 전 부문 투표로 진행돼도, 소속 부문 회원들의 지지를 받아야 해당 부문에서 상을 받게 된다.[39] 평론가, 언론인, 대중 등은 "영화 예술 과학 아카데미(AMPAS)"의 회원이 될 수 없다.[40] 즉,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수상한다는 것은 수많은 영화 전문가들에게 인정을 받은 것이다. 소수가 아니기 때문에, 우연히 수상하는 경우는 없다.[41] 음모론 항목 참조. 《심슨 가족》의 에피소드 중 하나.[42] 평론가는 영화를 평론하는 사람일 뿐이지, 영화와 '전문적'으로 관련된 직업이 아니다. 즉, 전문적인 관점에서 영화를 평가하는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43] 아카데미 시상식은, 언론과 평론가들의 리뷰나 "로튼 토마토" 같은 영화 평가 사이트의 점수로 수상을 선정하지 않는다. '팬, 언론, 평론가'의 시각으로는 이해하지 못 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는 것.[44] 처음으로, 배우 출신 감독이 데뷔작으로 상을 받았다. 그 다음 1993년2004년클린트 이스트우드가, 2002년 아역배우 출신 이었던 론 하워드가 받았다.[45] 케이트는 엘리자베스로 엄청난 호평을 받고 있었던 상황.[46] 할리우드 제작사에서 만든 작품이므로, 제작 국가는 미국으로 한다.[47] 작품상과 감독상도 그런 경우가 많다. 대중은 좋아하는 감독이 받는가 못 받는가로 접근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 그런데 유독 배우와 관련된 상들이 非전문적인 논란에 휩싸일 때가 많다. 이는, 배우가 감독보다 더 많은 대중의 관심을 받기 때문에 그렇다. 좋아하는 배우가 상을 못 받으면, 논란으로 만들어버리는 경우가 많은것.[48] "수상한 배우가 왜 받아선 안 됐는가?"에 대한 근거로, "다른 배우가 연기를 더 잘했다"나 "그 배우는 연기를 못했다(과하게 했다)" 식으로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즉, 전문적인 근거 없이 주관으로 논란을 만드는 것.[49] 전에 쓰여진 서술에는 2013년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의 제니퍼 로렌스가 사례로 있을 정도.[50] 기네스 팰트로의 사례를 제외하면, 커뮤니티 반응은 대부분 저 배우가 상을 못 받아서 아쉽다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상을 받은 배우에 대한 깎아내리기는 없었다는 것. 그런데 엠마 스톤의 경우, 그전까지 연기력 논란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연기력을 깎아내리는 반응이 국내 커뮤니티에 많이 있다. 즉, 엠마 스톤에게 유독 가혹한 것. (이와 관련된 커뮤니티 반응은 금방 찾을 수 있기 때문에, 쉽게 확인할 수 있다)[51] 비평가와 관련된 시상식이나, 영화제 등.[52] 참고로, 2013년 미국 배우 조합상 여우주연상 수상자는 "제니퍼 로렌스"다.[53] 이때 이후로도 한 작품에서 연기 부문에 5명 노미네이트, 3명 수상의 기록은 깨지지 않고 있다.[54]죠스》는 지명조차 되지 못했는데 스필버그는 이 사실에 크게 분개했다고 한다.[55] 이때 수상자는 《앵무새 죽이기》의 그레고리 펙 [56] 글렌 클로즈와 닮은 꼴로 뽑히는 메릴 스트립이 수상했다.[57]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의 제작자로도 참여하여 작품상 후보에 이름을 올렸다.[58] 하지만 디카프리오를 제치고 수상한 배우들의 소위 말하는 인생 연기를 보면 밑에 등장할 알 파치노에 비해 억울하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59] 사실 이에 관한 다른 관점도 존재한다. 디카프리오가 상을 너무 의식한 듯한 영화에 출연해 오버 액팅을 한다는 현지 비판도 존재한다. 길버트 그레이프때와 같은 연기를 바란다는 주문까지 있을 정도. 실제로 수상자들의 연기를 보면 양식화되거나 오버 액팅보다는 극과 인물에 녹아든 연기가 대부분이다.[60] 디카프리오 외에 남우조연상의 빌리 제인도 후보에 오르지 못했고 제임스 캐머런은 작품상과 감독상에는 후보에 올라 수상까지 했지만 시나리오 (각색상)은 후보에 오르지 못했다.[61] 원제는 Dog Day Afternoon. dog day는 '뜨거운'을 뜻하는 관용어다. 이전 엔하에서는 개 같은 날의 오후라고 번역했으나, 이는 오류다.[62] 한편 동 세대 배우인 잭 니컬슨의 경우 1974년 영화 《차이나타운》으로 파치노와 후보에 올랐다가 이듬해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로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바 있다.[63] 출처 - imdb. http://www.imdb.com/name/nm0000056/bio?ref_=nm_ov_bio_sm[64] 그래서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이탈리아계를 차별한다는 논란도 일었다.[65] 69회 시상식 때는 《트위스터》와 《더 락》이 동시 지명되었고 71회 시상식 때는 《아마겟돈》과 《마스크 오브 조로》가 동시에 후보에 올랐다.[66] 인터뷰 영상은 이곳에서 볼 수 있다.# [67] 같은 인터뷰 영상이지만 이건 5분이다.# [68] 총 9번 지명 (자신이 감독, 제작한 영화로 작품상 후보 1회 포함) 90회 시상식까지 남우주연상에 6번, 남우조연상에 2번 그리고 자신이 감독, 제작한 작품으로 작품상에 1회 노미네이트 되었다.[69] 잉그리드 버그만 주연[70] 1965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도 외국어 영화상 후보에 올랐다.[71] 《란》 이전의 작품들은 외국어 영화상 후보에 올랐다.[72]하워즈 엔드》, 《남아있는 나날》로도 후보에 올랐다.[73] 7월 4일생, JFK[74] 제리 맥과이어[75] 가이 리치 감독, 마돈나 주연의 《스웹트 어웨이》로 리메이크된 《귀부인과 승무원》이 대표작이다.[76] 훗날 캐리비안의 해적 5를 연출했다.